2011/05/20

이 땅의 민중은 그 길에 서리라

변혁과 진보(3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4대 투쟁강령을 제시하다

2011년 4월 8일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세상을 바꾸는 민중의 힘(준)'이 출범을 선언하였다. '세상을 바꾸는 민중의 힘'이라는 명칭은, 민중의 힘으로, 오직 민중의 단결된 힘으로 낡고 썩은 자본독재의 세상을 새롭고 건강한 민중주체의 세상으로 바꾸는 사회변혁의 진리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민중의 힘' 공동대표단은 2개 진보정당 대표들과 6개 민중운동조직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2개 진보정당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고, 6개 민중운동조직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빈민연합, 빈민해방실천연대, 전국여성연대다. '민중의 힘'에는 40여 개 사회단체들이 참가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공동대표단을 구성한 2개 진보정당과 6개 민중운동조직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민중의 힘'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6개 민중운동조직은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여성운동을 각각 대표하는 진보적 대중단체들이다.

△민주노총에서 열린 ' 민중의 힘 (준)' 출범 기자회견 모습. (뉴시스 2011년 4월 8일 보도 사진)

'민중의 힘'이 제시한 투쟁강령은 출범선언문에 들어있는데, 4대 투쟁강령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기층민중, 여성, 사회적 약자의 인간적인 삶과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
둘째, 신자유주의 정책을 철폐하기 위해 투쟁한다.
셋째, 반민주적 제도와 악법을 철폐하고, 민중의 민주적 권리를 확대하며 사회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
넷째, 제국주의 전쟁책동을 반대하고,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

'민중의 힘'을 상설연대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공동투쟁강령을 채택하고 공동대표단을 구성하였으므로 연대수준을 넘어 연합수준으로 전진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연합전선체라고 불러야 더 정확하다. 사회변혁이라는 말만 들어도 흠칫 놀라는 수구언론매체들은 '민중의 힘' 출범을 애써 외면하였지만, 그들이 외면하건 말건 상관없이 '민중의 힘'은 사회변혁을 수행하는 연합전선체로 이 땅의 정치무대에 당당히 등장한 것이다.


형태와 임무와 역할이 구별된다

두 단계 사회변혁론의 견지에서 보면, 민주노동당의 지위나 '민중의 힘'의 지위는 똑같이 연합전선체이지만, 형태와 임무와 역할이 구별된다. 

민주노동당은 정당 형태의 연합전선체이고, '민중의 힘'은 대중조직 형태의 연합전선체다. 정당 형태로 결성된 연합전선체의 기본임무는 진보정치 실현이고, 대중조직 형태로 결성된 연합전선체의 기본임무는 대중투쟁 전개다.

△대중조직 형태로 결성된 연합전선체 '민중의 힘'의 기본임무는 대중투쟁 전개다. (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민중들이 모인 121주년 세계노동절 대회.  민주노총 <노동과 세계> 2011년 5월 1일 보도사진) 

진보정치를 실현하는 민주노동당은, 각계각층의 지지를 받으며 정치권에서 정당활동을 전개하고 진보적 정권교체를 추구한다. 그에 비해, 대중투쟁을 전개하는 '민중의 힘'은, 각계각층 투쟁력을 집중시킨 폭넓은 연합전선을 구축, 강화함으로써 민중의 분산적, 자연발생적 투쟁을 단결적, 변혁지향적 투쟁으로 이끌어 간다. 연합전선체가 이끌어 가는 민중의 단결적, 변혁지향적 투쟁의 3대 당면과업은, '민중의 힘' 출범선언문에 제시된 것처럼, 민주적 권리 확대, 신자유주의 제거, 사회공공성 강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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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역할이 서로 다르다. 정당 형태의 연합전선체는 기층민중에게 고통과 불행을 주는 우파정권을 물리치고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파정당의 폭정으로 파탄위기에 내몰린 중산층을 위한 정치활동도 전개한다. 정당 형태의 연합전선체의 지지기반은 기층민중과 중산층을 포괄하는 가장 폭넓은 지지기반이다. 따라서 정당 형태의 연합전선체는 중산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 같은 중도우파정당과도 정치적으로 연합하여 우파정권에 맞서 싸우게 된다.

그와 달리, 대중조직 형태의 연합전선체는 노동계급 중심성을 강화하는 가운데 기층민중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는 사업에 주력하면서, 중산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 같은 중도우파정당과도 정치적으로 연대하여 우파정권에 맞서싸우게 된다.


좌경급진주의와 속히 결별하라

그런데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고 하면서,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 같은 중도우파정당과 정치적으로 연합할 가능성을 배제하거나 심지어 정치적으로 연대할 가능성마저 배제하려는 것은, 진보정당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자승자박의 맹동이므로 무조건 배격해야 한다. 또한 중산층을 배제하고 기층민중만으로 사회변혁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현 시기 우리 사회에 성립된 사회계급관계를 외면한 비과학적 발상이며, 낮은 단계를 무시하고 높은 단계에서 사회변혁을 시작하려는 급진주의 조급증의 발로인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 같은 중도우파정당과 정치적으로 연대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적으로 연합하려는 것은, 지난 시기 그 두 당이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였던 중대한 오류를 못본 척 눈감아주자는 것이 아니라, 그 두 당을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길로 견인하여 신자유주의 자체를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노력이다. 그런 정치적 노력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노동당과 '민중의 힘'이 힘을 합해 중도우파정당들을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길로 견인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신자유주의를 제거할 방도는 어디에서도 찾을 길 없다.

만일 조급증에 걸린 좌경급진주의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따른다면,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을 내리고 사회주의 강령을 들어야 하며, 진보적 대중정당(progressive mass party)이 아니라 노동자 정당(workers party)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도우파정당들을 배척하면서 사회주의 강령을 든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려는 좌경급진주의는, 현 시기 이 땅의 사회계급관계를 반영하는 과학적 인식에 눈을 감아버리고, 사회변혁을 단계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을 포기한 자기파멸적 맹동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특히 지금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논의과정에 참여한 민주노동당은 합리적인 좌파들과는 당연히 통합논의를 계속 해야 하지만, 그처럼 백해무익한 좌경급진주의와는 속히 결별해야 '쎅트(sect)'의 해악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만이 아니라, '민중의 힘'도 마땅히 좌경급진주의와 결별하고, '쎅트'의 준동를 배격하는 투쟁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민중의 힘' 출범의 정치적 의의

'민중의 힘' 출범의 정치적 의의는, 진보적 대중정당과 진보적 대중단체이 힘을 합해 대규모 연합전선체를 결성하였다는 데 있다. 진보적 대중정당과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연합전선체를 결성한 것은, 민중의 분산된 힘을 총결집하여 낮은 단계 사회변혁을 수행하는 강력한 전략적 투쟁거점을 구축한 것이다. 이것은 낮은 단계 사회변혁을 수행할 조직태세를 갖추었음을 뜻한다.

진보적 대중정당과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연합전선체를 결성하여 낮은 단계 사회변혁을 추진하려면, '민중의 힘' 출범선언문에 제시된 것처럼, 민주적 권리를 확대하고, 신자유주의를 제거하며, 사회공공성을 강화하는 3대 당면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3대 당면과업을 수행하는 것은, 낮은 단계 사회변혁의 요구에 맞게 남측의 사회계급관계를 상당부분 변화시키는 것이다.

낮은 단계 사회변혁을 수행하는 연합전선체는, 민주노동당이나 '민중의 힘'이나 가릴 것 없이, 계급노선과 대중노선을 결합하는 원칙을 견지하게 된다. 원래 계급노선을 견지한다는 말은 민주노총이 사회변혁을 수행한다는 뜻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대중단체 범주에 속하는 것이지 정당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장차 높은 단계 사회변혁을 수행할 주체는 어디까지나 노동자 정당이지 진보적 노동조합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낮은 단계 사회변혁을 수행할 조직태세를 이제 막 갖추었을 뿐이다. 노동계급의 정치역량이 아직 미성숙하고, 정치세력관계에서 노동계급이 단독으로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지 못하는 현재 조건에서, 다시 말해서 낮은 단계 사회변혁을 실현하여야 하는 현재 조건에서는 당연히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정당 형태의 연합전선체(민주노동당)와 대중조직 형태의 연합전선체(민중의 힘)를 함께 건설하고, 그 양대 기축에 의거하여 사회변혁운동을 떠밀고 나가야 한다.

따라서 '민중의 힘'은 계급노선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계급노선과 대중노선의 결합을 추구해야 한다. 계급노선과 대중노선의 결합은 민주적 권리를 확대하고, 신자유주의를 제거하며, 사회공공성을 강화하는 3대 정치과업을 수행하는 낮은 단계 사회변혁의 당면요구다.

연합전선체가 낮은 단계 사회변혁을 수행하기 위해 계급노선과 대중노선의 결합을 추구하는 것은, 자본독재를 타파하지도 못하면서 자본독재을 타파할 것처럼 무모한 좌경적 언사나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반민주적 제도와 악법부터 철폐하여 민주적 권리를 확대하고, 자본독재의 극악한 형태인 신자유주의부터 제거하여 근로대중의 인간적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사회공공성 강화와 연립정부 수립

주목하는 것은, 민주적 권리를 확대하고 신자유주의를 제거해야 사회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민주적 권리가 억압당하고 신자유주의가 악랄하게 횡포를 부리는 사회에서 그 어떤 사회공공성을 강화한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허튼 소리다. 

민주적 권리를 억압하는 신자유주의 폭정 아래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기층민중과 중산층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민중의 힘'의 투쟁을 지지할 것이므로, '민중의 힘'이 신자유주의 제거투쟁을 전개하는 것은 결코 난제가 아니다.

진짜 어려운 과제는 신자유주의를 제거한 뒤에 제기된다. 신자유주의를 제거한 뒤에 제기되는 새로운 과제는 사회공공성을 결정적으로 강화하여 중요산업 국유화를 준비하는 것인데, 사회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은 최소한 연립정부를 세울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만일 내년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연립정부 수립에 실패하고 민주당이 단독으로 집권하는 경우, 사회공공성 강화는 실현하지 못하게 된다. 그와 반대로, 연립정부가 세워지는 경우, 2013년부터 연립정부 임기 5년 동안 달성해야 할 정책목표들 가운데는 민주적 권리를 확대하고 신자유주의를 제거하고 사회공공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정책목표들이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나 만일 연립정부 수립에 실패하고 민주당이 단독으로 집권하여 사회공공성을 강화하지 못하는 경우, 근로대중을 위한 복지정책을 실시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치과업도 실현할 수 없으며, 그러한 정치과업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낮은 단계 사회변혁의 전략목표로 제시된 중요산업 국유화에 대해서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민중의 힘'은 조직화된 대중투쟁역량으로 사회공공성 강화를 강력히 요구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이 중도우파정당들과 공동집권전략을 합의하는 복잡하고 험난한 협상과정에서 중도우파정당들이 근로대중을 위한 복지정책을 실시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치과업을 수용하도록 압박해야 할 것이다.   


이 땅의 민중은 그 길에 서리라

'민중의 힘' 출범의 정치적 의의는, 남측의 사회계급관계를 변화시킬 대중운동역량을 조직화하는 정치과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반도 정세를 변화시킬 대중운동역량을 조직화하는 전략적 투쟁거점을 구축하였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 정세에서 변화를 일으킬 3대 정치노선을 견지하는 대중운동역량을 조직화하는 전략적 투쟁거점을 구축한 것이다. 3대 정치노선이란, '민중의 힘' 출범선언문에 제시된 것처럼, 반제자주노선과 반전평화노선과 자주적 평화통일노선이다. 한반도 정세를 변화시킬 3대 정치노선은 대미예속, 전쟁위험, 분단체제를 타파하는 정치노선이며, 낮은 단계 사회변혁에서 흔들림 없이 견지해야 할 정치노선이다.

중요한 것은, 반제자주노선, 반전평화노선, 자주적 평화통일노선을 견지하는 것이 남측의 사회계급관계를 낮은 단계 사회변혁의 요구에 따라 변화시키는 3대 정치과업 수행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3대 정치과업은 민주적 권리를 확대하고, 신자유주의를 제거하며, 사회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남측이 미국에게 예속되고, 한반도에서 미국의 전쟁책동이 지속되며, 남북대결적 분단체제가 유지된다면, 남측에서 민주적 권리를 확대하고, 신자유주의를 제거하며, 사회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집권 10년 동안 3대 정치노선을 견지하지 못한 까닭에 민주적 권리를 확대한다는 말잔치만 벌였고, 신자유주의를 제거하고 사회공공성을 강화하기는커녕 되레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사회공공성이 훼손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연합전선체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실패경험을 딛고 앞으로 전진하여 민주적 권리 확대, 신자유주의 제거, 사회공공성 강화를 실현하려면, 마땅히 반제자주노선, 반전평화노선, 자주적 평화통일노선을 견지해야 한다. 3대 정치노선에 따라 자주, 평화, 통일로 나아가는 한반도 정세의 질적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할 때, 바로 그런 변화 속에서 3대 투쟁강령에 따라 민주적 권리를 확대하고, 신자유주의를 제거하며, 사회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그들 자신에게 묻는다. '민중의 힘'은 어디로 가는가? 그들은 대답한다. '민중의 힘'이 가는 길은 폭력경찰에게 두들겨맞고 국정원 요원들에게 끌려가는 저항과 수난의 길이 아니라, 3대 정치과업을 수행하고 3대 정치노선을 견지하는 낮은 단계 사회변혁의 길이라고 당당히 대답한다. 누구나 믿고 있듯이, 역사는 민중의 힘으로 발전해왔으며, 사회변혁의 길은 민중의 힘으로 기어이 쟁취할 위대한 승리의 길이다. 이제 그 길에 서리라. 이 땅의 민중은 '민중의 힘'과 함께 그 길에 굳건히 서리라. (2011년 5월 2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