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9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그 뒤에 선 미국

<민중의 소리> 2014년 07월 28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팔레스타인 민족통일정부를 무너뜨리려는 범죄행위
 
암살과 납치를 저지르는 집단은 테러단체로 낙인 찍혀 국제사회의 제재와 응징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런 정당한 처사가 통하지 않는 나라가 있으니, 그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건국운동을 파괴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요인들을 납치하거나 암살하는 테러범죄를 자행해오고 있다. 전 세계를 경악시키는 그런 테러범죄는 이스라엘군, 이스라엘 대외첩보기관 모싸드(Mossad), 이스라엘 국내수사기관 신베트(Shin Bet)가 저지르고 있다.
 
예컨대, 이스라엘군은 2004년 3월 22일 가자시(Gaza City)에서 새벽예배를 마치고 사원을 막 나선 팔레스타인건국운동의 최고지도자 아흐메드 야씬(Ahmed Yassin)을 아파치 공격헬기에서 발사한 헬파이어 미사일로 무참히 살해하였고, 그로부터 16일이 지난 4월 17일 야씬과 함께 팔레스타인건국운동을 이끌어온 또 다른 최고지도자 압델 아지즈 알란티시(Abel Aziz al-Rantisi)가 타고 가던 승용차를 향해 또 다시 아파치 공격헬기에서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하여 그와 동승자들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이스라엘의 테러범죄는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 잠입한 모싸드 소속 암살단은 2010년 1월 19일 그 곳에 체류 중이던 팔레스타인 군사지휘관 마흐무드 알마부(Mahmoud al-Mabhouh)를 호텔 객실에서 살해하고 이스라엘로 도주하였다. 2010년 2월 21일 영국 일간지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2010년 1월 초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모싸드 본부를 찾아가 모싸드 총책임자 메이르 다간(Meir Dagan) 국장으로부터 마흐무드 알마부 암살계획에 관한 보고를 받고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다른 한편, 우크라이나에 잠입한 신베트 소속 납치단은 2011년 3월 20일 그 나라를 여행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전력발전소 기술자 디라르 아부 시시(Dirar Abu Seesi)와 우크라이나 출신 그의 아내를 달리는 열차 안에서 납치하여 이스라엘 감옥으로 압송하였다.
 
위와 같은 끔찍한 테러사건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테러단체를 도와주는 테러지원국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테러범죄를 저지르는 명백한 테러국가다. 2014년 7월 현재, 미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이 규정해놓은 전 세계 테러단체들은 모두 154개인데, 그 154개 테러단체들이 저지른 테러범죄를 다 합쳐도 이스라엘이 국가 차원에서 저지르는 테러범죄에 비하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테러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물론이고 극악한 인권폭압까지 자행하고 있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인구 182만 명이 거주하는 가자지구(Gaza Strip)를 외부세계와 완전히 차단하고 봉쇄하였을 뿐 아니라 시멘트와 철근 같은 건축자재도 군사시설 건설에 전용될 수 있다는 생억지를 부리며 반입을 차단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권폭압을 자행하고 있다. 가자지구 봉쇄에 성이 차지 않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인구 267만 명이 거주하는 서안지구(West Bank)까지 외부세계와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보안장벽’이라 부르는 높이 8m, 총길이 810km의 거대한 봉쇄장벽을 건설하고 있는데 2020년에 완공될 것이라고 한다.
 
위에 열거한 것처럼, 이스라엘의 국가테러는 평시에 납치, 암살, 고문, 인권폭압 같은 각종 범죄형태로 자행되는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이 전시에 저지르는 전쟁범죄(war crime)와 반인륜범죄(crime against humanity)다.
 
폐허가 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남성
이스라엘의 가지지구 공습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폐허가 된 도시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뉴시스
 
이스라엘군은 지난 7월 8일 가자지구에 전폭기를 동원하여 무차별 공중폭격을 시작하였고, 7월 17일부터는 전차부대를 앞세운 지상군 병력까지 가자지구에 들이밀어 전차포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가자지구에 쳐들어간 이스라엘군의 집중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하루 평균 100명씩 살육당하고 있다. 지난 7월 23일에는 수백명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무차별 공격을 피해 피신한, 유엔이 운영하는 학교에 이스라엘군 전차부대가 전차포를 발사하여 15명을 살해하고 150여 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만행을 저질렀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유엔시설이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피신하지만, 이스라엘군 전차부대들은 유엔시설도 가차 없이 전차포로 공격하여 주민들을 살육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있는 유엔시설을 파괴한 것은 지난 7월 8일 폭격을 개시한 이후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쳐들어가 살육만행을 저지르는 까닭은, 지난 6월 2일 팔레스타인의 양대 정파인 하마스(Hamas)와 파타(Fatah)가 공동으로 수립한 팔레스타인 민족통일정부(Palestine National Unity Government)를 폭력으로 무너뜨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의 양대 정치세력인 하마스와 파타는 건국운동에서 무장투쟁노선(하마스)과 평화협상노선(파타)로 분열하여 갈등과 충돌을 빚어왔고, 특히 지난 7년 동안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파타는 서안지구를 각각 분할통치해오다가 이번에 존이구동(存異求同)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합의한 결과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다. 하마스와 파타가 공동으로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한 것은 66년 동안 민족해방투쟁의 가시밭길을 헤쳐온 팔레스타인건국운동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다. 왜냐하면,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규정하여 폭력적으로 제거하려고 광분하면서, 파타를 회유하여 기만적인 ‘평화협상’을 벌여온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분열-점령정책은, 팔레스타인민족통일정부 수립에 의해 파탄났고, 강력한 민족단결역량이 팔레스타인건국운동에 공급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민족통일정부를 하루 빨리 붕괴시켜 팔레스타인건국운동을 파탄에 빠뜨리고 자기들의 팔레스타인분열-점령정책을 되살려야 하는 다급한 처지에 빠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민족통일정부가 출범한 때로부터 한 달 뒤 이스라엘 청소년 세 명이 의문의 피살을 당한 사건을 하마스가 저지른 범행이라고 뒤집어씌우더니 파타에게 하마스와 결별하라고 겁박하다가 파타가 이스라엘의 결별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결국 하마스의 정치기반이 구축된 가자지구에 쳐들어가 파괴와 살육의 만행을 저지르게 되었던 것이다.
가자지구에 쳐들어간 이스라엘군은 학교, 병원, 은행, 일반주택, 자선단체, 이슬람사원 등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무력침공이 얼마나 광란적이었으면, 폭격만행에 격분한 외국인 8명이 가자지구의 어느 한 병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인간방패’로 나서기까지 했겠는가!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이 벌이는 무차별 공습과 포격이야말로 군대를 동원하여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하는 반인륜범죄이고, 국제질서를 유린하며 지역평화를 파괴하는 전쟁범죄인 것이다.
   
비밀전문에서 드러난 미국의 친이스라엘 옹호, 두둔, 은폐
 
그런데 유엔헌장과 국제질서를 짓밟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살육만행을 뻔히 보면서도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그 흔한 의장성명 한 장도 내지 못한 채 ‘이상한 침묵’에 빠졌고,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에 정의의 심판을 내린다는 국제형사재판소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저지르는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를 못 본 척 외면하고 있다. 요즈음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이 교전을 벌이자, 러시아가 친러시아 반군을 지원해준다며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를 추가하려고 서두는 서유럽나라들도 정작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를 저지르는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는 꿈도 꾸지 않는다.
 
군대를 동원해 민간인을 마구 살상하고 비군사시설을 파괴해도 국제사회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군, 모싸드, 신베트를 내세워 전쟁범죄, 반인륜범죄, 국가테러를 마음대로 자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엔안보리, 국제형사재판소, 서방나라들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반인륜범죄, 국가테러에 대해 왜 침묵하는 것일까? 그 까닭은 미국이 무조건 이스라엘의 편을 들면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반인륜범죄, 국가테러를 옹호, 두둔, 은폐해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그런 미국을 믿고 전쟁범죄, 반인륜범죄, 국가테러를 마음 놓고 저지르는 것이다.
 
2008년 12월 27일부터 2009년 1월 18일까지 계속된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습과 포격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1,400여 명이 사망하고 5,300여 명이 부상당했을 때도, 미국은 특유의 압박과 술책으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를 은폐해주었다.
 
당시 미국의 압박과 술책에 대해서는 2011년 4월 19일 미국 외교전문지 포른 팔러시(Foreign Policy)가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킬릭스(Wikileaks)에 실린 비밀전문을 인용하여 보도한 바 있다. 그 비밀전문은 유엔주재 미국대표부가 작성하여 미국 국무부로 발송한 것이다. 포른 팔러시의 폭로기사에 따르면, 2009년 5월 4일 수전 라이스(Susan E. Rice) 당시 유엔주재 미국대사(현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하루 동안 무려 세 차례나 연락하면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유엔사무소들에 대한 유엔의 조사활동을 중지하고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별도문서가 유엔 사무국 보고서에 첨부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유엔주재 미국대표부가 작성한 그 비밀전문에는 라이스 대사가 강조(underscore)하였다고 표기되었지만, 당시 정황으로 봐서 그것은 강조가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압박으로 보인다. 미국으로부터 압박을 받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관계자들이 이스라엘 대표단과 함께 가자기구에서 피해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응답하였고, 유엔 조사활동을 중지하고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요구가 담긴 별도문서가 유엔 사무국 보고서에 첨부되었을 때, 반기문 사무총장은 수전 라이스 대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이 보기에도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통보하였다. 유엔주재 미국대표부가 작성한 비밀전문에는 유엔 사무총장이 전화통보(call)를 하였다고 표기되었지만, 당시 정황으로 봐서 그것은 전화통보가 아니라 유엔주재 미국대사에게 상신보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 유엔주재 미국대사 앞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쩔쩔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반기문 총장이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양측의 즉각 휴전을 역설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유혈사태 종식을 위한 중동순방 중 요르단을 방문, 압둘라 2세 국왕과 회담하고 나세르 주데 요르단 외무장관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반 총장은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양측의 즉각 휴전을 역설했다.ⓒ뉴시스
                                          
 
또한 폭로기사에 따르면, 그로부터 얼마 뒤 미국은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발생한 가자지구 피해상황을 조사하는 유엔인권위원회의 활동마저 중단시키려고 획책했다고 한다. 원래 유엔인권위원회 조사단이 작성한 보고서는 교전 쌍방인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군사조직들이 모두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를 저질렀음을 입증할 증거들이 나왔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얼마 뒤 유엔인권위원회 조사단 단장은 새로 나온 정보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민간인을 공격목표로 삼았다는 기존 보고서의 내용은 오류였다고 하면서 조사결과를 뒤집고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를 부인하였다.
 
위에 언급한 비밀전문 내용이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은 가자지구를 파괴하고 민간인을 살육한 이스라엘군의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가 국제사회에서 공인되지 않도록 압박과 술책을 동원하면서 이스라엘을 무조건 옹호, 두둔하기에 바빴고, 유엔 사무국과 유엔인권위원회는 이스라엘을 무조건 편들며 압박과 술책을 휘두르는 미국의 횡포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위의 폭로기사에 따르면, 수전 라이스 당시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대니 아얄론(Danny Ayalon) 이스라엘 외교차관과 만나 회담하면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회담이 진전되면, 유엔조사단이 작성한 가자지구 피해 보고서는 “쉽게 처리될 수 있다”고 낙관하면서,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회담을 신속히 재개해줄 것을 이스라엘에게 주문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이른바 평화회담 추진이라는 구실을 내걸고 이스라엘군의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를 은폐하려고 이스라엘과 공모하였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말한 ‘중동의 평화’는 평화가 아니라 가자지구를 파괴하고 1,400여 명을 무참히 살육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를 은폐하려는 속임수였던 것이다.
 
미국이 집착하는 친이스라엘정책의 내막
 
지난 7월 23일 유엔인권이사회는 긴급회의에서 이스라엘군의 가지지구 침공으로 발생하는 인권침해를 강하게 규탄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였고,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력사용에 대해 조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유엔인권이사회 긴급회의에 참석한 성원국들 가운데 미국만 결의안 채택에 반대표를 던졌다. 미국은 지난 2009년에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에 대한 유엔인권이사회 조사위원회의 조사활동을 중단시키려는 술책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안보리마저도 미국의 위세에 눌려 이스라엘의 범죄행위에 대해 침묵하는 판인데, 유엔인권위원회의 침묵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유엔인권이사회의 조사활동은 이스라엘이 미국의 비호 속에 저지르는 범죄행위를 중지시킬 아무런 제재효과도 발생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공습 2주째 지속
팔레스타인의 베이산 다히르(7)가 20일 오후(현지시간) 가자시티에 있는 시파 병원에서 잠들어 있다. 가자 지구 시자이야에 있는 베이산의 집은 이스라엘의 공격 중 파괴됐다.ⓒ뉴시스

그러면 미국은 왜 테러국가 이스라엘을 그처럼 무조건 옹호, 두둔하는 것일까?
 
첫째, 6.25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드러난 것처럼, 미국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나라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를 저지르는 이스라엘을 옹호, 두둔해주는 미국의 행동은 지난 시기 식민지조선과 중국에서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일본을 옹호, 두둔해준 것보다 훨씬 더 강도 높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미국-이스라엘 동맹과 미국-일본 동맹은 사실상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의 동맹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팔레스타인건국운동이 반이스라엘투쟁에서 승리하여 팔레스타인국가가 수립되면, 그 신생국은 반이스라엘-반미노선을 걷게 될 것이며, 같은 노선을 따르는 이란, 시리아, 헤즈볼라와 연대하게 될 것이고, 그로써 강력한 반이스라엘-반미연대전선이 중동지역에 구축될 것이다. 미국은 그런 연대전선이 구축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여야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무조건 옹호, 두둔하는 것이다.
 
셋째, 미국의 건국지도자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독립운동세력이 영국과 싸워 아메리카합중국을 세우던 시기에 미국에 건너와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조지 워싱턴의 반영독립운동을 지지·후원하였고, 당시 유럽 각지에서 흩어져 살던 수많은 유대인들은 신생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한 미국으로 밀려들었다. 이처럼 유대계 미국인들은 미국 건국시기부터 사회정치세력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 정치권은 유대계 미국인을 무시하고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맥락을 이해하면, 유대계 미국인들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미국의 친이스라엘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을 옹호, 두둔하고 있으니, 미국 언론도 그 뒤를 따르고 있으며, 언론보도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이스라엘 지지여론이 두껍게 형성되었다. 이를테면, 지난 7월 18일부터 20일 사이에 실시된 CNN/ORC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응답자의 57%가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을 정당하다고 인정하였으며, 그 군사작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한 응답자는 10%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미국이 친이스라엘정책에 집착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건국운동은 반미노선을 추구하게 되며, 미국의 비호 아래 전쟁범죄, 반인륜범죄, 국가테러를 자행하는 이스라엘에 맞서 피어린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비록 지금은 고난과 시련을 겪고 있지만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불굴의 신념이 팔레스타인건국운동을 지켜주고 있다.
 


[알림]스마트폰 사용자를 위한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와 모바일 뷰


위의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QR Code )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해 보세요.

스마트폰 사용자는 웹버전과 같은 주소 www.changesk.blogspot.com 에서 자동으로 모바일 뷰로 보실 수 있습니다.
 

원산 앞바다에 ‘용궁’ 건설과 조국통일

[한호석의 개벽예감](123)
자주민보 2014년 07월 28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페르시아만 연안국가인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유명한 도시 두바이에 있는 주메리아 앞바다에 건설되고 있는 '물의 도시 수중호텔'의 수상건축물 전경이다. 이 수상건축물에서 소음없는 전동차를 타고 수심 20m 바다속으로 내려가면 수중호텔에 당도하게 설계되었다.     © 자주민보


    
북, 수중호텔 건설에 도전장을 내밀다
    

소년기에 공상과학소설을 즐겨 읽었던 사람이라면, 1870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판된 줄 베른(Jules Verne)의 공상과학소설 ‘해저 2만리(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를 읽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공상과학소설은 인도인 함장 네모(Nemo)가 모는 잠수함 노틸러스(Nautilus)가 신비로운 해저세계를 탐험하면서 겪는 재미난 이야기들로 엮어졌다.

공상과학소설 ‘해저 2만리’가 출판되기 3년 전에 프랑스 해군은 세계 최초로 420t급 기계동력 잠수함 플롱저(Plongeur)를 건조하였는데, 줄 베른은 1867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전시된 그 잠수함을 직접 보고 소설적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문인의 소설적 상상보다 해군당국이 건조한 실물이 먼저 존재했던 것이다.

줄 베른이 공상과학소설 ‘해저 2만리’에서 펼쳤던 신비로운 해저세계의 상상을 현실로 끌어들이려는 유럽인들의 오랜 숙망은 그 소설에 출판된 때로부터 136년이 지난 2006년에 야심에 찬 설계도로 탈바꿈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물의 도시 수중호텔(Hydropolis Underwater Hotel)’ 건설사업이다. 호텔을 바다속에 짓는다니, 상상만 해도 흥미롭다. 수중호텔은 페르시아만 연안국가인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유명한 도시 두바이(Dubai)에 건설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수중호텔은 두바이의 주메리아(Jumeriah) 앞바다에 건설되는 것이다.

설계도에 따르면,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초대형 기둥들이 떠받치는 접시형 수상건축물에서 무소음 전동차를 타고 큰 유리관처럼 생긴 515m 길이의 복선 수중통로를 지나 수심 20m 바다속으로 내려가면, 겉모습이 거대한 해파리처럼 생긴, 객실 220개를 갖춘 수중호텔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이 수중호텔은 엄청난 수압에 견딜 수 있도록 강철과 콘크리트로 수중구조물을 세우고 플렉시유리(Plexiglass)로 덮는 최첨단 시공기술로 세워지는데, 총건설비가 5억1,100만 달러나 된다고 한다.
▲ <사진 2> 컴퓨터 영상기법으로 그려낸 이 사진은 주메리아 앞바다 수심 20m에 건설될 '물의 도시 수중호텔' 식당을 보여준다. 바다속의 환상적인 모습을 안겨줄 이 수중호텔이 완공되면 세인을 경탄헤 하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자주민보



컴퓨터 영상기법으로 그려낸 <사진 2>를 보면, 주메리아 앞바다 수심 20m에 건설될 ‘물의 도시 수중호텔’은 바다속의 환상적인 모습을 안겨주며 세인을 경탄케 할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수중호텔의 설계는 ‘심해기술(Deep Ocean Technology)’이라는 설계회사가 맡았는데, 시공과정에서 제기된 몇 가지 기술공학적 난제를 풀지 못했고, 건설비도 예상보다 더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완공예정일은 자꾸 뒤로 밀려나 멀어졌다.

그런데 세계 최고 수준의 설계기술과 최첨단 시공기술로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기술공학적 난제를 안고 있을 뿐 아니라 막대한 건설비를 요구하는 수중호텔 건설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진 나라가 있으니, 그 나라가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북이 수중호텔을 건설할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은, 북의 건축기술수준과 자금동원력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믿기 힘든 소문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떠도는 소문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다.

북이 수중호텔을 건설할 것이라는 소식은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이 지난 5월에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은 지난 5월 2일 평양 양각도호텔에서 진행된 경제개발구 전문가토론회에서 공개되었고, 5월 12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진행된 투자설명회에서 또 다시 공개되었다.
    
▲ <사진 3> 동해의 항구도시 원산의 야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전력부족으로 북의 도시들이 밤이면 불빛 한 점 없이 캄캄하다는 미국 언론보도는 북을 헐뜯기 위해 꾸며낸 허위보도다. 원산시가 21세기 문화휴양도시, 과학기술도시로 개발, 변모되면, 위의 사진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자태를 세상에 자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자주민보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이 말해주는 다섯 가지 놀라운 사실    

북은 이미 2013년 11월에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을 완성하였다. 총계획에 따르면, 원산지구개발은 원산시, 갈마반도, 석왕사로 나뉘어 추진된다고 한다. 북측 언론과 남측 언론에 각각 보도된 관련정보들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은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원산시에는 상업편의봉사시설들, 문화시설들, 휴식명소들, 과학기술교류거점들이 현대적인 건축물로 세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개발계획이 실현되면 원산시는 21세기 문화휴양도시, 과학기술도시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원산의 야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데, 21세기 문화휴양도시, 과학기술도시로 변모되면 더욱 아름답고 화려한 면모를 세상에 자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은 원산을 찾는 관광객이 날로 증가하는 것에 대비해 현재 1,300명 수준의 호텔숙박능력을 11,000명 수준으로 10배 이상 늘린다고 한다. 또한 원산항에는 25만명이 드나들 수 있는 여객선 부두와 정박장도 건설한다고 한다. 다른 나라 유람선들이 원산항에 들어올 것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 <사진 4> 예로부터 '동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사장'으로 이름난 갈마반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10km 백사장을 품에 안은 울창한 솔밭이 눈길을 끈다. 지금 북은 이 해수욕장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는 중인데, 이 사진은 갈마호텔과 새날호텔이 건설되기 전에 찍은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나라가 통일되면 남, 북, 해외동포들이 이 아름다운 해변에서 서로 만나 지난 날 자기들을 갈라놓았던 분단의 아픈 추억을 저 푸른 물결에 흘려보내며 행복의 웃음꽃을 활짝 피울 것이다.     © 자주민보


둘째, 백사장, 솔밭, 해당화가 어우러진 송도원 청정해변에는 12,000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해수욕장을 건설하고, 10km에 이르는 명사십리 해변에는 10만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해수욕장, 놀이공원, 자연생태공원, 휴양시설, 물놀이장 등을 건설하며, 두남산지구에는 화초공원, 국제회의장, 전시관, 박람회장, 경기장, 극장, 골프장 등을 건설하고, 갈마반도 앞바다에 떠있는 여러 섬들도 관광명소로 변모되는데, 바로 그 갈마반도 앞바다에 수중호텔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사진 4>는 예로부터 ‘동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사장’으로 이름난 명사십리 해변이다.
▲ <사진 5> 강원도 고산군 설봉산 기슭에 자리 잡은 명찰 석왕사의 조계문을 촬영한 사진아다. 북이 실행에 옮기는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에는 원산시, 갈마반도와 더불어 풍치수려하고 훌륭한 산림과 계곡에 안긴 문화유적이 있는 석왕사 일대를 자연생태-문화유적 관광지로 개발하는 계획이 들어 있다. 산-바다-도시-문화유적을 하나로 아우르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자주민보


셋째, 석왕사가 있는 강원도 고산군 설봉산에는 등산로와 호텔들이 건설된다고 한다. 마식령산줄기의 지맥에 속한 설봉산은 해발고가 942m인데, 안변군 남대천으로 합류하는 설봉천이 그 산에서 발원한다. 설봉산은 수령이 200년 넘은 송림과 느티나무숲이 펼쳐져 자연풍치가 뛰어난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이다. 원산시로부터 40km 떨어진 설봉산 기슭에 자리 잡은 석왕사는 <사진 5>에서 보는 것처럼, 고려 말기부터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신증축된, 70여 채의 갖가지 사찰건물들이 자연지형에 맞춰 조화롭게 배치된 유명한 거찰인데, 6.25전쟁 시기 미국군의 폭격으로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민족21> 2008년 10월 1일부에 실린 북측 <통일신보> 기자의 석왕사 답사기에 따르면, 북의 민족문화보존정책에 의해 석왕사가 원상대로 복원되고 있다고 했으니, 아마도 지금쯤 복원을 마쳤을 것이다. 원산시를 21세기 문화휴양도시, 과학기술도시로 개발하는 것과 함께 석왕사 일대를 문화유적 관광명소로 개발하는 것은 21세기 문화과학도시와 우리나라 중세기 문화유적을 하나로 아우르는 세계적인 관광지를 개발한다는 뜻이다.

넷째, 원산지구는 평양-원산고속도로와 함흥-원산고속도로, 원산항과 원산비행장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고, 원산지구과 금강산지구를 잇는 관광도로와 고속관광철도가 건설되면 원산지구와 금강산지구가 단일한 관광지구로 결합되는 것이다. 원산지구는 평양에서 200km, 금강산에서 110km 떨어져 있다. 또한 원산지구는 안변청년발전소와 원산청년발전소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다섯째, 원산지구는 산, 바다, 도시, 문화유적이 하나로 어우러진 거대한 관광지로 건설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관광지들 가운데 산, 바다, 도시, 문화유적이 하나로 어우러진 특출한 관광지는 원산지구 이외에 찾기 힘들다.

북측 언론보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요즈음 북측 각지에는 ‘건설열풍’이 불고 있다. 수력발전소를 건설해도 청천강 유역에 발전소를 한꺼번에 10개나 계단식으로 건설하고, 경제개발구를 내와도 북측 각지에 한꺼번에 19개나 설치하고, 축산업을 발전시켜도 광주시 면적(501㎢)보다 더 넓은 약 540㎢의 세포등판을 개간하여 대축산기지를 건설하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측 각지에서 추진되는 다종다양한 건축물들의 신설 및 개건이나 지역개발은 한결같이 대형화, 현대화, 고급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북에서 말하는 ‘사회주의문명국’의 체모에 맞게 신설, 개건 또는 개발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원산지구도 당연히 세계적인 수준으로 대형화, 현대화, 고급화되는 추세에 따라 개발, 변모될 것으로 예견된다.
    

‘용궁의 전설’ 잉태한 원산 앞바다 수중호텔 건설    

위에서 언급한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에 따르면, 수중호텔은 갈마반도 앞바다에 건설되는 것이다. 갈마반도 앞바다는 원산만을 뜻한다.

첫째, 200km에 이르는 긴 해안선이 둥글게 둘러쳐진 원산만으로는 금야강, 덕지강, 남천강, 심포천, 적천천, 갈마천, 학천수, 남대천이 흘러들어 언제나 맑고 푸르며 어족 또한 다양하고 풍부하다. 연평균 물온도가 섭씨 13.3도인 원산만에는 명태, 고등어, 청어, 도루묵, 가자미, 임연수어, 숭어, 문어, 해삼, 조개, 생복, 바지락, 소라, 참굴, 싹새기, 미역, 다시마, 파래 등이 산다. 이것은 원산만이 해양생태관광지로 개발하기에 아주 적합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특출한 자연환경을 갖춘 것으로 하여 원산지구는 세계적인 해양생태관광지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둘째, 원산항에서 동해로 드나드는 원산만의 어귀는 너비가 24.1km로 좁으며, 려도, 신도, 대도, 소도, 소제도, 큰구비섬, 황토도, 우미도, 석도를 비롯한 크고 작은 섬들이 그럼처럼 떠 있어서 동해에서 원산만 안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준다. 그래서 원산만은 연평균 물결분포가 0.1m밖에 되지 않은 아주 잔잔한 바다로 유명하다. 이것은 원산만이 수중호텔을 건설하기에 아주 적합한 천혜의 해양환경을 갖추었음을 말해준다. 주메리아 해안 앞바다에 건설 중인 ‘물의 도시 수중호텔’은 파도와 해류이동으로 생기는 해저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공학기술적 문제를 풀지 못해 전전긍긍하는데, 원산만에 건설될 수중호텔은 그런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 <사진 6> 중앙아메리카의 영국령 케이먼제도에서 운항하는 관광용 48인승 잠수정이다. 원산 앞바다에 수중호텔이 건설되면, 북도 관광용 잠수정을 운항할 것으로 보인다. 원산만은 해양생태관광의 최적지로 평가받는다.     © 자주민보


셋째, 해저지형이 평평한 대륙붕으로 이루어진 원산만에서 가장 깊은 곳은 31m다. 이러한 해저지형은 원산만이 잠수정 관광에 아주 적합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음을 말해준다. 예컨대, <사진 6>에서 보는 것처럼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있는 영국령 케이먼제도(Cayman Islands)는 잠수정을 타고 바다속을 구경하는 관광으로 유명한데, 48인승 잠수정 애틀랜티스호는 수심 30m까지 잠항한다고 한다. 잠수함강국인 북이 관광용 잠수정을 건조, 운항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산만에 건설될 수중호텔은 잠수정 관광까지 겸한 세계적인 관광지로 건설될 것으로 보인다.

천혜의 조건을 갖춘 세계적인 해양관광지로 부상할 원산만에 수중호텔을 건설하고 잠수정 관광을 하게 되는 것은, 우리 민족의 구전소설들 가운데 하나인 ‘별주부전’에 나오는 용궁의 전설을 연상시킨다. 용궁을 연상시키는 원산만 수중호텔은 북에서 말하는 ‘사회주의문명국’의 상징들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북이 원산지구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는 목적은 외국인에게 개방하는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만이 결코 아니다. 북측 각지의 관광지들이 하나같이 그러한 것처럼, 원산지구도 당연히 ‘인민의 관광지’로 개발되는 것이며, 외국인에게 개방하는 국제관광은 어디까지나 2차적이다. 그런 사정은 북의 관광명소 명칭에 ‘국제’라는 말이 들어간 곳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원산지구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개건된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의 ‘주인공’들은 북측 각지에서 오는 소년들이고, 외국인 소년들은 8월에 한 차례만 받는다.   
▲ <사진 7> 이 사진 1950년 10월 18일 미국군이 원산만 기뢰제거작전에 동원한 한국군 소해정 516호가 촉뢰로 폭파되는 장면이다. 이 소해정은 원래 제2차 세계대전 말에 영국 해군에 파견되었던 미국 해군 소해정을 종전 뒤에 넘겨받은 것이다. 6.25전쟁 시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도 미국은 원산기습상륙을 노리는 대북전쟁연습을 지속적으로 감행하고 있다. 그런데 북은 미국군이 기습상륙을 노리는 원산지구에 세계적인 관광지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 자주민보


북이 미국군의 기습상륙전 예정지에 세계적인 관광지를 건설하는 뜻     

이제 원산지구는 북의 국가정책에 따라 세계적인 관광지로 변모되기 시작했지만, 6.25전쟁 시기에 원산만은 미국이 사상 최대 규모의 소해작전을 벌인 곳으로 세계전쟁사에 기록되었다. 1950년 10월 중순 미국 해병대 제1사단을 앞세운 제10군단의 방대한 병력은 상륙함들을 타고 원산만에 몰려가 상륙전을 벌이려고 하였다. 그들의 원산상륙전은 10월 20일로 예정되었다.

그런데 조선인민군이 동해 연안 곳곳에 부설한 기뢰에 선체가 닿은 미국군 전투함들이 여기저기서 폭파, 침몰되는 바람에 뜻밖의 호된 타격을 입은 미국군은 원산상륙전 개시일 열흘 전에 원산만에 부설된 기뢰부터 제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조선인민군은 미국군의 원산상륙을 예견하고 원산만에 3,000기에 이르는 기뢰를 부설해놓았다. 미국군은 구축함, 소해정, 수송함, 정찰헬기, 전투기, 수중폭파반(UDT)을 지뢰제거작전에 동원하였고, 일본해상보안청 소속 소해정과 순찰정도 끌어들였다. 2008년 8월 6일 일본 텔레비전방송 <NHK>가 해상자위대의 비밀보관문서 ‘조선동란특별소해사’를 인용하여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일본은 당시 점령군사령부인 미국 극동군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소해정 13척, 순찰정 7척, 병력 2,000여 명을 비밀리에 한반도 전선에 보냈다고 한다. 미국은 식민지시기 한반도를 강점하고 한반도 지형지리를 파악한 일제침략군 출신들에게 군복을 입혀 다시 6.25전쟁에 내보낸 것이다.

그런데 기뢰제거를 조심스럽게 시작한지 이틀 뒤인 10월 12일 625t급 미국 해군 소해정들인 파이럿호(USS Pirate)와 플레지호(USS Pledge)가 촉뢰로 폭파, 침몰되었고, 10월 17일에는 일본해상보안청 소해정 한 척이 촉뢰로 폭파, 침몰되었고, <사진 7>에서 보는 것처럼 10월 18일에는 한국 해군 소해정 516호가 촉뢰로 폭파, 침몰되었다. 지금으로부터 64년 전 원산만에 침몰한 그 네 척의 소해정 잔해는 바다밑에 남아있을 것이므로, 앞으로 북이 관광용 잠수정을 건조하면 그 잠수정을 탄 관광객들이 그 잔해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원산만은 6.25전쟁 시기에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미국 해병대, 한국 해병대, 일본자위대 가 합동상륙전을 감행하려고 노리는 공격예정지다. 이를테면, 미국은 지난 3월 27일 경상북도 포항 영일만 일대에서 미국 해병대 7.500명, 미국 해군 2,000명, 한국 해병대 2,000명, 한국 해군 1,000명을 동원하고, 강습상륙함 반홈 리처드호(USS Bonhomme Richard), 수직이착륙기 V-22 오스프리(Osprey) 22대, 대잠-해상작전기 P-8A 포세이돈(Posidon), 한국 해군 P-3C 대잠초계기 등을 동원한 대규모 ‘쌍룡훈련’을 실시하였는데, 이 상륙전연습도 원산에 기습상륙하여 평양-원산 축선인 ‘제1전방지대’ 이남을 차단하는 미국의 ‘작전계획 5027’에 따라 실시된 것이다. 그에 대응하여 올해 북도 미국의 원산기습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반상륙전연습과 미국 항모타격단의 동해 출현에 맞서는 대함미사일 화력타격연습과 잠수함전연습을 원산 앞바다에서 실시하였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원산지구는 미국군의 기습상륙전과 조선인민군의 집중타격전이 예상되는, 극도의 긴장감이 감도는 지역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북은 미국군이 기습상륙을 노리는 원산지구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 변모시키려는 준비를 갖추고, 그 사업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이를테면, 마식령스키장과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가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건설 또는 개건되었고, 명사십리 해변에는 갈마호텔과 새날호텔이 신축되었다. 지난 6월 12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현재 원산지구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변모되는” 중이고, 지난 1월 21일 중국 <신화망> 보도에 따르면, 북은 앞으로 5~10년 동안 원산지구를 사계절 위락단지와 관광특구로 개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의 관광지개발과 미국의 상륙전연습은 정면으로 배치, 충돌하는 상극이다. 북이 미국군의 기습상륙전 예정지에 세계적인 관광지를 건설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만일 북이 미국의 대북전쟁위험을 곧 제거하기로 결심하지 않았다면, 2013년 11월에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을 수립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북은 미국의 대북전쟁위험을 제거할 정치군사적 준비를 이미 갖추어놓았고, 또 그 위험을 앞으로 1~2년 안에 반드시 제거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북에서 말하는 ‘반미대결전’에서 승리하여 미국의 대북전쟁위험을 곧 제거하려는 북의 결심과 준비가 원산지구개발에 ‘보이지 않는 배경’으로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요즈음 북측 언론매체들은 사상정신적 준비를 우선하는 싸움준비에서 마지막 완성단계에 이른 조선인민군이 “세기를 이어온 반미대결전을 승리로 곧 결속하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기사를 자주 내보내고 있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7월 26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미사일야간발사연습을 현지에서 또 다시 지도하면서 “이번 화력타격훈련의 폭음은 전략군의 싸움준비완성을 알리는 장쾌한 포성과도 같다”고 지적하고,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과 그 추종무리들을 하루빨리 이 땅에서 쓸어버리고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북의 주장을 인용하면, 조선인민군의 싸움준비완성은 조국통일대전준비가 완료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에서 전략군의 역할과 임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요즈음 전략군의 타격전준비를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에서 전략군의 타격전준비완성은 곧 ‘조국통일대전’의 마지막 준비를 완료한다는 뜻이다. 북의 언론에 보도되는 이러한 상황은 남측 언론의 대북보도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위와 같은 현 상황을 인식하면, 북이 미국의 대북전쟁위험을 제거할 정치군사적 준비를 이미 갖추어놓았고, 또 그 위험을 앞으로 1~2년 안에 제거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북의 원산지구개발에 주목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원산 앞바다에 ‘용궁’이 세워질 때 실현될 통일은 어떤 통일인가?


[알림]스마트폰 사용자를 위한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와 모바일 뷰


위의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QR Code )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해 보세요.

스마트폰 사용자는 웹버전과 같은 주소 www.changesk.blogspot.com 에서 자동으로 모바일 뷰로 보실 수 있습니다.

2014/07/22

마지막 선을 향해 남하하는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

[한호석의 개벽예감] (122)
자주민보 2014년 07월 21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이 사진은 2012년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인민군 군사행진에 참가한 4축8륜 자행발사대 행진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북에서 4축8륜 자행발사대에 탑재하는 세 종류의 미사일은 화성-5호, 화성-6호, 화성-9호다. 2014년 7월 9일 새벽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의 미사일발사연습은 한미연합군 미사일감시체계를 무력화시킨 가운데 미사일발사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화성-6호 두 발을 동해로 쏜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이었다. 발사지점은 청와대로부터 104km 떨어진 린산비행장 인근이었다.     © 자주민보,한호석소장제공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은 발사징후를 노출하지 않는다     

군사분계선 가까운 최전방에서 지축을 흔드는 엄청난 폭음이 들려오고 있다. 그 폭음은 날이 갈수록 군사분계선을 향해 차츰 남하하고 있다. 군사분계선 가까운 곳에 전진배치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귀에 폭음이 차츰 가까이 들려오는데도 그들은 짐짓 못 들은 척 어물쩍 넘어갔지만, 그들의 그런 무반응이야말로 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말해주는 반증으로 보인다.

그처럼 엄청난 폭음을 듣고서도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지와 오판을 뿌리치고, 최근 북에서 전개되고 있는 전례 없는 군사동향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엄청난 폭음을 군사분계선으로 차츰 남하시키는 조선인민군의 최근 군사동향은 누가 보더라도 통상적인 군사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한반도와 그 주변의 정세가 격동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 격동기에 어떤 목적과 계획에 따라 전개되는 특수군사활동인 것이다. 특수군사활동의 목적은 무엇이며, 특수군사활동의 계획은 또 어떤 것인가?

지난 7월 9일 오전 4시와 4시 20분께 황해북도 평산 인근에서 지축을 흔드는 엄청난 폭음이 두 차례 들렸다. <사진 1>에서 보이는 것처럼, 4축8륜 자행발사대에 실린 탄도미사일 두 발이 발사된 것이다. 이튿날인 7월 10일 북측 언론보도를 통해 좀 더 정확한 사정이 알려졌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날 새벽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의 전술로케트발사훈련을 현지에서 지도”하면서 “전술로케트 발사명령을 하달”하였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 현지에서 직접 지도한 7월 9일 미사일발사연습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사실을 논할 수 있다.

첫째, 북측 언론매체는 7월 9일 새벽 미사일이 발사된 지점이 어디였는지 밝히지 않고 서부전선이라고만 언급하였는데,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내용을 인용한 남측 언론매체들은 그 미사일이 황해북도 평산 인근에서 발사되었다고 밝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발사지점은 평산군과 린산군 경계에 있는 해발고 816m의 멸악산 뒤쪽에 있는 린산비행장(공군기지) 인근이다.

미사일발사지점 인근의 린산비행장에서 군사분계선까지 직선거리는 60km이고, 청와대까지 직선거리는 104km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청와대로부터 104km 떨어진 지점에서 미사일자행발사대의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을 직접 명령한 것이다.

둘째, 남측 언론보도에서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황해도 평산 일대에 있는 기지에서 나온 차량이동식 미사일발사대(TEL)가 숲과 터널 등에 숨어 있다가 새벽에 기습적으로 쐈다”고 하였다. 그는 차량이동식 미사일발사대라 하였는데, 북측에서는 로케트자행발사대라 한다.

위의 인용구에서 북이 미사일을 “기습적으로 쐈다”고 언급한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말은, 한미연합군 미사일감시체계가 북의 미사일발사징후를 전혀 포착하지 못하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군 소식통은 2014년 7월 13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미연합군 통신감청부대가) 예전에는 통신감청을 통해서도 (북의 미사일)발사징후를 포착할 수 있었지만, 올해 들어 (북은 미사일)시험발사 전에 일절 통신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북은) 정찰기와 위성 등 한국과 미국의 감시장비가 (자기들을) 지켜보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새벽 등 가장 취약한 시간대에 (미사일)시험발사를 감행하고 있다.” 이 인용문에 나오는 시험발사라는 용어는 발사훈련 또는 발사연습으로 바로잡아야 하는데, 주목하는 것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미사일을 쏘기 직전에 무선교신을 전혀 하지 않는 바람에 한미연합군 미사일감시체계가 무력화되었고, 그런 사이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미사일자행발사대를 긴급출동시킨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인민군 전략군 지휘부는 지난해만 해도 최고사령관의 미사일발사명령을 무선교신을 통해 자행발사대에 전하였지만, 올해부터는 무선교신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특유의 방식으로 최고사령관의 미사일발사명령을 자행발사대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식의 명령전달은 실전상황에서 시행되는 특별한 것이므로, 지금 북은 실전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북측 언론매체가 7월 9일에 있었던 미사일발사연습을 보도하면서 “실전을 방불케” 하였다고 묘사한 것은 긴장된 실전분위기가 조성되었음을 말해준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실전을 방불케 한 미사일발사연습을 통해 “긴급정황발생시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의 전투행동질서와 화력임무가 정확히 규정되고 각이한 적목표에 따르는 사격방법이 완성되게 되였다”고 한다.

한미연합군 미사일감시체계가 북의 미사일발사징후를 전혀 포착하지 못했는데도,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의 자행발사대 두 대가 기지에서 나와 숲과 터널에 숨어 있다가 발사하였다는 식으로 말한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발언은 순전히 상상에 의존한 것이다. 그 날 새벽 자행발사대 두 대가 지하기지에서 나와 숲속과 터널 안에서 일정시간 대기하였다가 발사명령을 받고 미사일을 쏘았는지 아니면 지하기지에서 발사지점으로 신속히 기동하여 순식간에 미사일을 쏘았는지 미국군과 한국군은 전혀 알지 못했다.
   
▲ <사진 2> 이 사진은 2013년 7월 27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한, 사거리가 700km인 화성-6호 자행발사대 행진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만일 이 미사일을 황해북도 린산비행장 인근에서 동북쪽으로 쏘았다면, 700km를 날아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앞바다에 떨어졌을 것이고, 남동쪽으로 쏘았다면 일본 나가사키 앞바다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은 발사각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그 미사일의 사거리를 500여 km로 줄여 쏘았던 것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함경북도 경성 앞바다에 떨어진 화성-6호     

지난 7월 9일 새벽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이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한 실제상황은 어떠했을까?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미사일발사연습은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의 실전능력을 판정, 검열하기 위하여 불의적인 기동과 화력타격을 배합하여 진행”되었다고 하였는데, 이 인용구에서 두 군데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첫째, 당시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전술미사일을 실은 자행발사대 두 대를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에 동원하였는데, 위의 보도기사에서는 발사연습에 동원된 부대가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이라고 복수로 표기되었다. 이러한 복수표기는 황해북도 평산 일대에 주둔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이 자행발사대를 각각 한 대씩 출동시켜 서로 다른 발사지점으로 기동시킨 뒤에 20분 간격으로 미사일 한 발씩 쏘았음을 말해준다.

둘째, 위의 보도기사에서는 “불의적인 기동과 화력타격을 배합하여 진행되었다”고 기술되었다. 이것은 자행발사대 두 대가 서로 다른 지하기지에서 각각 출동하여 숲속과 터널 안에 대기하였다가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하기지에서 불시에 긴급출동한 자행발사대 두 대가 서로 다른 발사지점으로 신속히 기동하여 전술미사일을 20분 간격으로 기습발사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지금 미국군 지휘부와 한국군 지휘부가 매우 심각하게 우려하며 긴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이 자행발사대 두 대를 지하기지에서 출동시켜 지정된 발사지점으로 기동하고 발사준비를 갖춘 뒤에 쏘기까지 순식간에 진행된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과정을 미국군과 한국군이 파악하지 못한 채 캄캄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이 쏜 첫 번째 미사일이 화염을 뿜으며 새벽하늘로 날아올라 동북쪽으로 비행하며 일정한 고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미사일감시레이더에 나타난 미사일비행궤적을 볼 수 있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청와대로부터 104km 떨어진 곳에서 자행발사대의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을 직접 명령하였는데도, 북의 미사일발사를 24시간 감시한다는 미국군과 한국군은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만일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그런 식의 불시기동-기습타격을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한다면,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미국군과 한국군은 미사일비행궤적을 미사일감시레이더에서 포착하였어도, 그 비행궤적을 바라보기만 할 뿐 요격하지 못한다. 한국군은 이른바 ‘킬 체인(Kill Chain)’이라는 미사일요격체계를 설치하여 북이 쏜 미사일을 막아보겠다고 하지만, 무선교신을 하지 않고 불시기동-기습타격으로 쏜 미사일을 막아낼 그 어떤 수단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이 7월 9일 새벽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에서 쏜 미사일 두 발은,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측 지역을 동북쪽으로 가로지르며 500여 km 날아가 동해에 떨어졌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그 미사일이 동해에 떨어졌다는 사실만 언급했는데, 린산비행장에서 동북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해상은 함경북도 경성 앞바다이므로, 그 미사일은 경성 앞바다에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 미사일을 남동쪽으로 쏘면 일본 쓰시마에 떨어지게 되고, 남쪽으로 쏘면 제주해협에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이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에서 쏜 미사일 두 발은 어떤 미사일이었을까? 남측 언론매체들은 그 미사일이 스커드-C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북에 스커드 계열의 미사일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 남측 언론매체들은 소련이 1960년대 중반에 만든 스커드-C의 사거리가 500km이고, 이번에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이 쏜 미사일이 500여 km 날아갔으므로, 스커드-C를 쏜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그러나 북에는 ‘스커드’ 계열의 미사일이 없다. 북이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작전배치한 각종 탄도미사일의 명칭은 화성이다. 북은 태양 주위를 도는 네 번째 붉은 행성의 이름을 자국산 탄도미사일에 붙였다. 그러므로 지난 7월 9일 새벽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이 쏜 전술미사일 두 발은 화성 계열의 탄도미사일이 분명한데, 좀 이상한 것은 화성 계열의 탄도미사일들 가운데 사거리가 500km인 미사일이 없다는 점이다. 화성-5호는 사거리가 320km이고, <사진 2>에서 보이는 화성-6호는 사거리가 700km다.

만일 그 날 화성-6호를 동북쪽으로 쏘았다면, 700km를 날아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앞바다에 떨어졌을 것이다. 영토가 좁은 북에서 사거리가 긴 미사일을 쏘는 발사연습을 실시할 때는 발사각을 조절하여 사거리를 줄여야 하는데, 그 날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은 500여 km밖에 날아가지 않도록 발사각을 조절하여 화성-6호를 쏜 것이 확실해 보인다.

내가 2013년 6월 5일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전략로케트관을 참관하면서 살펴본 화성-6호는 실물이 아니라 축소모형이었는데, 4축8륜 자행발사대에 실린 그 미사일은 위장무니로 도색된 것이었고, “1988년 발사시험 성공, 1990년대 독자생산”이라고 쓰인 해설판이 그 앞에 있었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에 가서 보니, 화성-1호와 화성-3호를 ‘지상대지상전술로케트’로 분류해놓았고, 화성-5호, 화성-6호, 화성-7호, 화성-9호, 화성-10호를 ‘지상대지상전략로케트’로 분류해놓았고, 화성-11호를 ‘작전로케트’라고 분류해놓았다. 화성-13호의 분류명칭은 표기되지 않았는데 ‘대륙간전략로케트’라는 분류명칭이 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분류법에 따르면, 지난 7월 9일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이 발사한 미사일 두 발은 ‘전략로케트’인데, 이번에 북측 언론보도에서는 그 미사일을 ‘전술로케트’라고 하였다. 왜 그런 엇갈림이 생겼는지 알기 힘들다.

북측 언론매체는 7월 9일의 미사일발사연습을 보도한 기사에서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즉각적인 발사태세를 항시적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지적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한미연합군 미사일감시체계를 무력화시킨 가운데 전술미사일을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서 순식간에 쏘는 불시기동-기습타격태세를 24시간 갖추고 발사명령을 대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로부터 64km 떨어진 곳에서 발사된 화성-6호 두 발    

한국군 합참본부 발표를 인용한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은 지난 7월 13일 오전 1시 20분과 1시 30분에 개성 북쪽에서 탄도미사일 두 발을 또 발사하였는데, 이 미사일들도 지난 7월 9일에 발사한 미사일들처럼 북측 지역을 가로지르며 동북쪽으로 500여 km 날아가 동해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정황은 북이 지난 7월 9일에 이어 7월 13일에도 발사각을 조절하여 사거리를 500km로 줄인 화성-6호 두 발을 쏘았음을 말해준다. 만일 발사각을 조절하지 않고 개성 북쪽에서 화성-6호를 쏘면, 제주도 서귀포 상공을 넘어 170km를 더 날아가게 된다. 미국 해군 7함대 해군기지가 있는 일본 사세보는 화성-6호의 타격권 안에 있다.

7월 9일에 이어 7월 13일 새벽에도 화성-6호 두 발을 동해로 발사한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의 제2차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에 대해 아래와 같이 논할 수 있다.

첫째,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은 화성-6호 두 발을 7월 9일 오전 4시와 4시 20분에 각각 쏘았는데, 7월 13일에는 오전 1시 20분과 1시 30분에 각각 쏘았다. 20분 발사간격을 10분으로 더 줄여 쏜 것이다. 이처럼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탄도미사일을 10분 만에 쏠 수 있는데, 그에 대응하는 한국군 탄도탄작전통제소가 레이더탐지, 궤도추적, 요격명령, 요격체발사 순으로 진행하는 데는 30분이나 걸린다. 뒤늦게 요격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탄도미사일 요격은 불가능하다. 2013년 10월 17일 <M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이 운용하는, 항공기와 순항미사일을 격추하는 저고도미사일요격체계의 명중률이 50% 이하인데, 항공기나 순항미사일과 비교할 수 없이 빠른 탄도미사일을 격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이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한국군 탄도탄작전통제소부터 타격할 것이므로 탄도미사일 요격이라는 말을 꺼내기 힘들다.

둘째, 지난 7월 13일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가 화성-6호 두 발을 쏜 발사지점은 개성에서 북쪽으로 약 12km 떨어져 있는, 해발고가 764m인 국사봉 인근이다.

셋째,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는 지난 7월 9일 화성-6호 두 발을 청와대로부터 104km 떨어진 곳에서 쏘았는데, 7월 13일에는 판문점으로부터 불과 1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청와대로부터는 64km 떨어진 곳에서 쏘았다. 이것은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가 나흘 만에 청와대 쪽으로 40km 더 남하하여 화성-6호를 쏘았음을 말해준다. 음속보다 일곱 배나 더 빠른 속도(마하 7)로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이 64km를 순식간에 날아가 타격목표를 맞추기까지 약 3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면,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한미연합군 미사일감시체계를 무력화시킨 가운데 전술미사일을 임의의 시각에 개성 북쪽에서 기습적으로 발사하면, 약 30초 뒤에 청와대에 떨어지게 되고, 약 3분 35초 뒤에 부산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7월 9일 미사일발사연습을 현지에서 직접 지도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선인민군 전략군 참모부가 작성한 발사계획, 설정된 비행궤도와 목표수역 봉쇄정형 등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였다고 한다.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그 날 북이 동해에 항행금지구역을 설정하지 않고 미사일 두 발을 쏘았다고 하였는데, 북측 언론보도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목표수역 봉쇄정형을 요해하였다고 하였다. 북은 항행금지구역을 바다에 설정하지 않지만, 탄착예상구역과 그 상공으로 자국의 선박이나 항공기가 지나가지 않도록 사전에 봉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제해사기구에 사전에 통보하는 항행금지구역은 넓지만, 북이 자체로 설정하는 봉쇄수역은 좁다. 이런 사정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쏘는 미사일의 명중률이 매우 높다는 점을 말해준다.

화성-6호의 명중률은 어느 정도일까? 군사전문 웹사이트 ‘디펜스 업데이트(Defense Update)’에 따르면, 그 미사일은 타격목표에 접근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탄두의 비행고도와 비행방향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TV감지기(sensor)’를 탄두 앞부분에 장착하고 있어서 원형공산오차(CEP)가 약 50m라고 한다. 이런 정보를 살펴보면, 화성-6호가 정밀타격미사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북측 언론매체는 7월 9일의 미사일발사연습에서 “(화성-6호) 전술로케트들의 명중성과 전투적 위력이 남김없이 과시”되었다고 지적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7월 9일과 7월 13일에 화성-6호를 각각 두 발씩 쏘았다. 왜 두 발씩 쏜 것일까? 지난 6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전술로케트발사연습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술로케트발사연습은 “적의 개별목표와 집단목표 소멸을 위한 정밀유도 및 산포사격방법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개별목표를 소멸하기 위해 정밀유도탄두를 쏘았고, 집단목표를 소멸하기 위해 산포탄두를 쏘았던 것이다. 화성-6호에 정밀유도탄두만이 아니라 산포탄두도 장착된다는 말은, 전시에 그 미사일로 정밀타격과 산포타격을 모두 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사진 3>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가 이번 불기기동-기습타격연습에 동원한 탄도미사일 화성-6호는 정밀타격과 산포타격에 모두 사용된다. 그 미사일에 장착된 산포탄두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탄도비행 마지막 단계에서 탄두가 여러 개의 자탄들로 분리되어 적의 미사일요격망을 뚫고 들어가 타격목표 바로 위에서 폭발하여 그 일대를 축구장 네 개 면적만큼 초토화한다.     ©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 <사진 4> 이 사진은 얼마 전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전차와 차량들이 분리독립주의자들이 쏜 BM-21 그라드 방사포 공격을 받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파괴된 피격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피격현장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 30여 명이 즉사하였다. 러시아산 방사포의 파괴력이 그 정도이므로, 산포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 화성-6호의 파괴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짐작할 수 있다.     ©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화성-6호의 정밀타격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하였으니, 이번에는 그 미사일의 산포타격에 대해 알아볼 차례다. 화성-6호의 산포타격에 대해 군사전문 웹사이트 ‘디펜스 업데이트’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 미사일에 장착된 산포탄두는 길이가 약 3m, 지름이 약 65cm인데, 탄도비행 마지막 단계에서 탄두가 여러 개의 자탄들로 분리되는 것이다.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여러 개로 분리된 자탄들은 적의 미사일요격망을 뚫고 들어가 타격목표 바로 위에서 폭발하면서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그 일대를 축구장 네 개 면적만큼 초토화한다.
    
▲ <사진 5> 2014년 7월 1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171군부대의 포실탄사격훈련을 지도하였다. 방사포와 해안포 120여 발이 발사되었다. 이 사진은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남북을 연결하는 동해선 철로 바로 옆에서 240mm 방사포를 동해로 사격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대남압박강도 차츰 높이며 ‘마지막 선’을 향해 남하하는 발사폭음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지난 7월 1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동부전선 최전방을 지키는 조선인민군 제171군부대의 포실탄사격연습을 지도하였다.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내용을 인용한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날 조선인민군 제171군부대는 오전 11시 43분부터 오후 12시 15분까지 32분 동안 방사포와 해안포 120여 발을 동해로 쏘았다고 한다. 그 포탄들은 동해 해상경계선에서 북쪽으로 1~8km 떨어진 해상에 떨어졌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발사지점은 “동부전선 최전방의 영웅고지 351고지” 인근이고,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발사지점은 군사분계선에서 3.5km 떨어진 강원도 고성군 구선봉 일대라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보도내용을 종합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351고지 정상에 있는 감시소에서 포실탄사격연습을 지도하는 가운데, <사진 5>에서 보는 것처럼 351고지와 구선봉 사이의 계곡 일대에서 방사포와 해안포를 사격한 것으로 보인다.

351고지는 6.25전쟁 시기 조선인민군 제7사단이 한국군 제15사단의 연속적인 집중공격을 막아내고 대승을 거둔 격전지다. 북에서 편찬된 전사에 따르면, 6.25전쟁 시기 조선인민군이 대승을 거둔 5대 전투는 주문진해전, 대전해방작전, 월미도방어전, 1211고지전투, 그리고 351고지전투다. 해발고가 351m밖에 되지 않는 그 작은 고지 하나를 두고 조선인민군이 격전을 벌인 까닭은, 351고지를 빼앗기면 월비산고지를 빼앗기게 되고, 월비산고지를 빼앗기면 금강산과 원산을 내주게 되기 때문이다.

351고지에서 남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군사분계선 일대를 지키는 한국군 부대는 지난 6월 21일 총기난사-무장탈영사건이 일어난 제22사단 55연대다. 총기난사-무장탈영사건이 남측 국민들에게 매우 심각한 우려를 안겨준 까닭은, 이른바 ‘관심병사’ 한 사람이 총격과 수류탄투척으로 동료병사 5명을 죽이고 다른 7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탈영한 사건이 조선인민군 제171군부대 산하 민경초소와 대치한 일반전초(GOP)에서 일어났다는 것, 사건발생 뒤 51분이나 지나서야 한국군 합참본부에 늑장보고가 올라갔다는 것, 소초장이 총기난사 와중에 무기고 열쇠를 갖고 다른 일반전초로 달아나는 바람에 남은 병사들은 우왕좌왕하다가 무기고 자물쇠를 부수고 겨우 무장을 했다는 것, 무장탈영병을 체포하기 위해 동원된 군병력에게 실탄 없는 빈총을 주고 긴급수색작전에 나서게 하는 바람에 무장탈영병과 조우한 수색조가 도망치고 말았다는 것, 43시간 동안이나 계속된 수색작전에서 수색조들끼리 서로 오인하고 교전하는 바람에 총상자가 발생하였다는 것 등이다.

당시 총기난사-무장탈영사건 자체도 남측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한국군이 무장탈영병 한 명을 잡지 못하고 오합지졸 같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본 남측 국민들은 더욱 경악하였다. 한국군의 대응모습이 오죽 한심했으면, 합참본부 관계자마저도 지난 6월 24일 <CBS 노컷뉴스> 보도기사에서 “과거와 달리 심약한 병사들이 많아지면서 상당수 지휘관들의 부대운영원칙이 전투부대육성보다는 사건사고방지에 맞춰져 있다. 당연히 부대의 전투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탄식조로 말하였겠는가.

▲ <사진 6> 이 사진은 2014년 7월 14일 조선인민군 제171군부대가 발사한 방사포 포탄이 하늘로 솟구치는 장면을 남측의 고성 통일전망대 직원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것이다. 사격지점은 비무장지대 북측 경계선에서 불과 1.5km 떨어진 곳이었다. 군사분계선을 향해 차츰 남하하는 조선인민군의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은 북측 국방위원회의 '특별제안'을 받아들이라고 남측 정부를 고강도로 압박하는 중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주목하는 것은, 6.25전쟁 시기 대승을 거둔 351고지 일대에 전개된 조선인민군 제171군부대가 한국군 제22사단 55연대 코앞에서 기습적인 포실탄사격연습을 실시하였다는 점이다. 사격지점은 비무장지대 북측 경계선에서 불과 1.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그처럼 가까운 거리는 기관총 사거리에 해당한다. 조선인민군 제171군부대가 포실탄사격연습을 실시할 때, <사진 6>에서 보는 것처럼 고성 통일전망대에 찾아간 관광객들이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관측하였고 전망대 직원은 휴대전화로 포실탄사격을 촬영하였다. 남측 주민들이 망원경으로 관측하고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근접거리에서 조선인민군이 포실탄사격연습을 실시한 것이야말로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위에서 언급한 조선인민군의 전술미사일발사연습과 포실탄사격연습은 결코 통상적인 연습이 아니고 어떤 정치적 의도에 따라 실시되는 특수한 군사활동이다.

지난 7월 9일 북은 화성-6호 두 발을 청와대로부터 104km 떨어진 곳에서 쏘는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을 하였고, 7월 13일에는 그 미사일을 청와대로부터 64km 떨어진 곳에서 쏘는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을 하였고, 7월 14일에는 비무장지대 북측 경계선에서 1.5km 떨어진 곳까지 내려와 방사포와 해안포 120여 발을 쏘는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을 하였다. 북은 평시군사활동이 허용되는 마지막 선인 군사분계선으로 차츰 남하하면서 사전징후를 전혀 노출하지 않은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인민군이 불시기동-기습타격을 연습하는 포성이 ‘마지막 선’을 향해 차츰 남하하는 것은, 남측 정부에게 가해지는 엄청난 압박이 아닐 수 없다.

북의 군사활동이 그처럼 대남압박강도를 차츰 높이며 ‘마지막 선’을 향해 남하하는 것은, 지난 6월 30일 북측 국방위원회가 남측 정부에 보낸 ‘특별제안’에서 언급한 것처럼 ‘운명적인 7월’을 맞은 오늘 남측 정부는 외세와 공조하여 북을 적대하지 말고 남북관계개선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전 정부가 만들어놓은 ‘5.24조치’를 해제하는 것마저도 거부한 현 정부가 북을 적대하는 외세와의 공조를 중지하고 북의 ‘특별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지난 7월 16일 한국군은 전술핵탄을 탑재하는 미국 해군 제7함대 항모타격단의 뒤를 따라 대북공격을 상정한 한미연합 해상타격연습을 시작하였고, 오는 7월 21일에는 일본해상자위대까지 끌어들인 가운데 대북공격을 상정한 한미일연합 해상타격연습도 감행할 것이다.

‘운명적인 7월’은 숨이 막힐 듯한 극도의 긴장과 위험 속에서 지나고 있다.           
 
 

[알림]스마트폰 사용자를 위한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와 모바일 뷰


위의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QR Code )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해 보세요.

스마트폰 사용자는 웹버전과 같은 주소 www.changesk.blogspot.com 에서 자동으로 모바일 뷰로 보실 수 있습니다.
 


2014/07/15

극도로 위험한 SAREX와 수륙기동단

[한호석의 개벽예감] (121)
자주민보 2014년 07월 1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2013년 5월 15일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벌어진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 해군 7함대 소속 니미츠급 초대형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부산항에 들어갔다. 미국이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으로 부르는 대규모 해상작전연습은 대북공격 전술핵탄을 탑재한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이다. 그에 대응하여 북도 전술핵탄을 전쟁억제수단으로 하는 실전연습을 실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현대전에서 전술핵탄은 과시용이 아니라 실전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전술핵탄을 탑재한 미국 항공모함이 한반도 인근해역에 나타날 때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위험에 몰리게 되고 남과 북은 공히 미국의 핵위협를 받게 되는 것이다.     © 자주민보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을 내걸고    

북측 국방위원회가 남측 정부에게 ‘특별제안’을 보낸 날로부터 9일 만에, 그리고 북측 정부가 “남조선당국이 호응해 나서리라는 기대를 표명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날로부터 불과 2일 만에 남측 정부의 ‘본심’이 드러났다. 지난 7월 9일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한미일 수색구조훈련(Search and Rescue Exercise, SAREX)을 오는 7월 21일부터 22일까지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실시한다는 것이다.

오는 7월 21일부터 22일까지 실시될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에 동원되는 해군무력은 방대하다.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이번에 미국 해군은 니미츠급 초대형 항공모함(Nimitz-class super carrier) 조지 워싱턴호(USS George Washington), 순양함 두 척, 구축함 한 척, 항공기 한 대를 동원하고, 한국 해군은 구축함 두 척, 항공기 한 대를 동원하고, 일본 해상자위대는 구축함 한 척, 항공기 한 대를 동원한다.

도대체 무슨 수색구조훈련이기에 항공모함 한 척, 순양함 두 척, 구축함 네 척, 항공기 세 대로 편성된 방대한 해군무력을 동원하는 것일까? 이 문제를 파악하려면, 통상적인 수색구조훈련에 해군무력이 어느 정도 동원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통상적인 수색구조훈련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선례를 손꼽을 수 있다.

첫째, 2008년 8월 5일 미국 하와이 인근해역에서 실시된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에 미국 해군 순양함 한 척, 한국 해군 구축함 한 척,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한 척, 미국 해안경비대 경비정 한 척이 동원되었다. 이 훈련에 동원된 순양함 한 척과 구축함 두 척은 가상조난선박 역할을 맡은 경비정에게 의료와 기관수리를 지원해주는 구조활동을 벌였다.

둘째, 2013년 9월 9일 미국 하와이 인근해역에서 미국 해군과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이 합동으로 수색구조훈련을 실시하였다. 그 훈련에 미국 해군은 순양함 한 척, 부속함선 한 척, 해상작전헬기 두 대를 동원하였고,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은 구축함 한 척, 호위함 한 척, 해상작전헬기 한 대를 동원하였다.

셋째, 2014년 4월 12일 베트남 다낭 앞바다에서 미국 해군과 베트남 해군이 합동으로 수색구조훈련을 실시하였는데, 미국 해군은 구축함 한 척, 구난함(salvage tug) 한 척을 동원하였고, 베트남 해군은 소해정(minesweeper) 한 척을 동원하였다.

위의 세 가지 선례가 말해주는 것처럼, 원래 수색구조훈련에는 순양함이나 구축함이 두 세 척 정도 동원되고, 구난함이나 가상조난선 역할을 맡은 선박이 동원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이다. 수색구조훈련에 초대형 항공모함을 비롯한 방대한 해군무력이 동원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실시될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에는 니미츠급 초대형 항공모함 한 척, 순양함 두 척, 구축함 네 척, 항공기 세 대로 편성된 방대한 해군무력이 동원된다. 정작 수색구조훈련에 동원되어야 할 구난함도 없고, 가상조난선 역할을 맡은 선박도 없다. 이것은 이번에 실시되는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이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을 내건 해상작전연습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지 워싱턴호는 7월 16일부터 21일까지 제주도 북쪽 바다와 목포 남서쪽 바다에서 한국 해군과 합동으로 해상작전연습을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이번 한미연합 해상작전연습은 해상기동, 항공모함 호위, 항공기 요격 등으로 진행되는데, 조지 워싱턴호를 주축으로 미국 해군 순양함 두 척과 구축함 한 척, 한국 해군 구축함 두 척이 동원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조지 워싱턴호 같은 초대형 항공모함은 아무 때나 동원되는 게 아니라, 항모타격단 출동에 동원된다. 명백하게도, 미국 해군의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은 적국을 불시에 침공하기 위해 벌이는, 가장 위험하고 도발적인 무력침공연습이다. 미국 해군이 한반도 인근해역에서 자주 감행하는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군은 핵타격전에 사용할 전술핵탄을 적진과 가까운 지상기지에 고정배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적국이 정밀타격미사일로 지상기지를 불시에 급습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투종심이 매우 짧고, 주한미국군 군사시설의 위치가 북에게 모조리 노출된 한반도에서, 정밀타격미사일을 집중배치한 조선인민군의 기습타격위험에 맞서야 하는 미국군이 북에게 위치가 노출된 기지에 전술핵탄을 고정배치하는 것은 자멸을 부르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미국군이 한반도에서 작전할 때는 북의 정밀타격미사일 조준을 피하기 위해 전술핵탄을 이동수단에 탑재할 수밖에 없는데, 전술핵탄을 탑재하고 한반도 인근해역에서 돌아다니는 이동수단이 항모타격단(Carrier Strike Group)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을 핵타격단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이 북을 향해 24시간 겨누고 있는 전술핵탄은 전폭기에서 쏘는 공중발사 전술핵탄과 잠수함에서 쏘는 수중발사 전술핵탄으로 구분되는데, 만일 전쟁징후가 나타나면 항모타격단은 그런 전술핵탄들을 발사하며 선제핵타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2009년 12월 27일 <니혼게이자이신붕> 보도에 따르면, 1973년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를 모항으로 삼고 작전하던 미국 해군 항공모함 미드웨이호(USS Midway)가 전술핵탄을 탑재하고 일본 영해에 들어가도 미국은 전술핵탄 반입문제를 사전에 일본과 협의하지 않는다는 밀약을 맺었다고 한다. 전술핵탄을 탑재한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는 1976년 8월 21일 ‘판문점사건’에 대처한다면서 원산 앞바다까지 바짝 접근하여 대북선제핵타격을 노렸으며, 광주시민군이 전두환 군사독재만행에 항거하여 무장항쟁을 전개하였던 1980년 5월 하순에도 항공모함 코럴 씨호(USS Coral Sea)와 교대로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대기하면서 대북선제핵타격을 노렸다.

둘째, 지난 시기와 달리 요즈음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은 북에 가까운 동해나 서해까지 감히 북상하지 못하고 제주도 남쪽 바다에 출동한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조준하는 정밀타격미사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북은 전술핵탄을 탑재하고 제주도 남쪽 바다에 긴급출동하는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을 격침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데, 북에서 직선거리로 600km 정도 떨어진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이동 중인 항모타격단을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600km 밖에서 정밀타격미사일로 격침하는 것은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북이 600km 밖에서 이동하는 항모타격단을 격침하려면 잠수함련합부대를 제주도 남쪽 바다로 출동시키는 수밖에 없다. 조선인민군 해군 잠수함련합부대에 대해서는 2014년 6월 23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세계가 놀랄 북의 잠수함련합부대의 위력(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6615)’에서 상세히 논한 바 있다.

전시에 대북공격 전술핵탄을 탑재하고 제주도 남쪽 바다로 긴급출동하게 될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은 자기들을 기습공격할 북의 잠수함련합부대에 대응하여 대잠수함 항모호위에 무력을 집중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한 대잠수함 항모호위에 동원되는 것이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다.
▲ <사진 2> 이 사진은 미국 해군이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을 실시하는 장면이다. 순양함과 구축함들이 항공모함 주위를 둘러싸고 호위하는 가운데 항공모함이 전속력으로 항진하고 있다. 2006년 5월 17일 일본 언론에 공개된 일본 자위대 극비문서에 따르면, 미국 해군 7함대 항모타격단이 자주 출동하는 제주도 남쪽 바다는 대잠수함전과 항모타격단 호위작전을 벌이는 해상작전구역으로 표기되었다.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는 미국 해군사령관의 지휘에 따라 항모타격단 호위대로 동원될 것이다.     © 자주민보


<사진 2>에서 예견할 수 있는 것처럼, 전시에 일본의 해군기지에서 출항한 항모타격단은 전술핵탄을 탑재하고 제주도 남쪽 바다에 긴급출동할 것이고,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는 항모호위대로 따라가게 될 것이다. 전시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한 미국은 오늘과 같은 평시에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를 동원하여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을 내건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을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자주 실시하는 것이다.
    

8년 전 극비문서에서 드러난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의 실상  

2006년 5월 17일 <아사히신붕>에 공개된 충격적인 군사정보가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에 관해 말해주었다. 당시 공개된 군사정보는 일본 자위대가 작성한 몇 건의 대북전쟁계획 극비문서들인데, 자위대 관계자가 2006년 1월 21일 사고로 인터넷에 유출시키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졌다. 극비문서에 담긴 일본 자위대의 대북전쟁계획에서 주목되는 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극비문서에서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은 ‘모군(母軍)’으로 표기되었고, 한반도 전역은 ‘모군작전지역’으로 표기되었고, 항모타격단이 출동하는 제주도 남쪽 바다는 대잠수함전과 항모타격단 호위작전을 벌이는 해상작전구역으로 표기되었다.

둘째, 한반도 유사시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은 한반도에서 작전을 전개하고, 동해에서도 해상저지작전(MIO)을 전개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일본 해상자위대의 주력부대인 자위함대는 작전해역으로 향하는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을 호위하고, 육상자위대 부대를 적진에 상륙시키기 위한 해상수송작전을 담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셋째, 일본 해상자위대는 2003년 11월에 열흘 동안 한반도 유사시를 가정한 대북전쟁연습을 ‘주변사태’와 ‘방위출동사태’로 구분하여 사상 최대 규모로 실시하였는데, 군함 80척, 항공기 170대, 병력 25,000명이 동원되었다.

대북공격 전술핵탄을 탑재한 항모타격단이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으로 실시해오는 긴급출동연습은, 원래 하와이 인근해역에서 실시되는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RIMPAC)’ 직후 항공모함을 동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2008년 8월부터 줄곧 실시해왔다. 그러다가 북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화성-13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세상에 처음 공개한 2012년 4월 15일 직후인 6월부터는 훈련장소를 하와이 인근해역에서 제주도 남쪽 바다로 갑자기 옮기고,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에 더욱 박차를 가하면서 대북공격능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특히 북과 미국의 군사대결상황이 격심했던 2013년에 미국은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을 내건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을 5월과 10월 두 차례나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강행하였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은 수색구조훈련이라고 부르는 해상작전연습은 수색이나 구조와는 거리가 멀고, 실제로는 한반도를 전술핵탄으로 위협하는 매우 위험천만한 대북선제핵타격연습이라는 점을 명백히 말해준다.
    

항공모함은 왜 닷새 전에 부산항에 들어갔을까?    

남측 언론보도를 읽어보면, 오는 7월 21일부터 22일까지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을 내걸고 실시되는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은 이전에 실시된 같은 종류의 연습과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견된다.

첫째, 미국 해군 7함대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일찌감치 지난 7월 11일에 부산항에 입항한 것이다. 조지 워싱턴호는 7월 16일부터 21일까지 제주도 북쪽 바다와 목포 남서쪽 바다에서 한국 해군과 합동으로 해상작전연습을 실시하게 되는데, 왜 닷새 전에 일찌감치 부산항에 입항하였을까?

이와 관련하여 조지 워싱턴호의 최근 출동상황을 추적하면, 그 항공모함은 지난 6월 16일 중국 홍콩 빅토리아항에 입항하여 20일까지 머물렀다가 6월 26일에는 싱가포르에 있는 창기해군기지에 정박하여 나흘 동안 머물렀고, 지난 7월 1일 창기해군기지를 떠나 필리핀해로 북상하였다. 미국군 지휘부는 지난 7월 9일 필리핀해에서 대기 중이던 조지 워싱턴호에게 한반도 인근해역으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출동명령을 받은 조지 워싱턴호는 필리핀해를 출발하여 7월 11일 부산항에 입항한 것이다.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미연합해상작전연습 개시일보다 닷새나 앞서 부산항에 들어간 조지 워싱턴호는 해상작전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한국군으로부터 군수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지난 7월 8일 필리핀해에서 한반도 인근해역으로 북상하는 길에 일본 사세보 해군기지에 들러 군수지원을 받을 시간여유가 없었던 조지 워싱턴호는 필리핀해에서 부산항으로 직행하여 한국군으로부터 긴급히 군수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처럼 급히 서둘렀던 것일까?

둘째, 오는 7월 21일과 22일에 실시될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에는 미국 해군, 한국 해군, 일본 해상자위대가 연합한 방대한 해군무력이 동원된다. 특히 조지 워싱턴호 같은 니미츠급 초대형 항공모함 한 척이 출동하면, 매일 약 44만 달러씩 경비를 써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처럼 방대한 무력규모와 막대한 소요경비에 비하면 이번 연습시간이 너무 짧다. 불과 24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수색구조훈련’을 하면서, 그들은 왜 그처럼 방대한 해군무력을 동원하고, 엄청난 경비를 지출하는 것일까?

위의 두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얼마 전 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한미일 합참의장 3자 회의에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지난 7월 1일 미국 군부는 하와이에 있는, 미국 국방부 산하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소(APCSS)에서 진행된 한미일 합참의장 3자 회의에서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에 관해 상대측과 협의하였다. 그 회의와 관련하여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연합뉴스> 2014년 7월 2일 보도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미일은 수색 및 구조훈련(SAREX)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이번 림팩훈련이 끝난 직후에도 SAREX훈련을 한다. 이런 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문제 등도 논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발언을 읽어보면, 그는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이 오는 8월 1일에 끝나는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 직후 통상적인 수준에서 실시될 것으로 예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국 군부는 그런 예견을 뒤엎고 시일을 훨씬 앞당겨 7월 21일에 실시하기로 결정하였고, 항공모함까지 동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 군부가 필리핀해에 있던 조지 워싱턴호를 한반도 인근해역으로 급파하고, 시일을 훨씬 앞당겨 ‘수색구조훈련’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바로 얼마 전에 실시된 조선인민군의 항모격침훈련을 보고 놀란 미국 군부가 그에 긴급히 대응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측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6월 15일 함경북도 리원만에 있는 차호 잠수함기지에서 잠수함을 타고 동해로 나가 잠수함련합부대의 항모격침훈련을 지도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지난 6월 23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세계가 놀랄 북의 잠수함련합부대의 위력’에서 논한 바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지도한 잠수함련합부대의 항모격침훈련을 보고 놀란 미국 군부는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을 앞당겨 실시하기로 결정하였고, 이 문제를 7월 1일에 있었던 한미일 합참의장 3자 회의에서 남측과 일본에게 통보하였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한국군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2014년 7월 9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서 이번에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이라는 위장명칭으로 실시될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이 “군사전술적 훈련이 아니라 인도적 차원의 훈련”이라고 주장하였고, 다른 한국군 관계자는 이번 연습을 “통상적인 훈련”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전시에 전술핵탄을 탑재하고 대북공격에 나설 항공모함이 한반도 남해에 출동하여 벌이는 2자 및 3자 연합해상훈련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이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항모타격단 긴급출동연습을 가리켜 인도적 차원의 훈련이니 통상적인 훈련이니 하며 억지를 부리는 것은 대북전쟁연습의 실상을 감추고 국민을 속이는 기만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한반도에 상륙하여 전쟁범죄 저지른 왜군의 후예들이 수륙기동단으로 출현한다    

지난 6월 11일 수전 라이스(Susan E. Rice)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워싱턴 디씨에 있는 신미국안보센터(CNSA)에서 진행된 국가안보토론회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이 한미일 3자 안보협력과 상호운용성의 심화를 추구한다고 지적하면서 “약 20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과 함께 방위협력지침을 보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편, 지난 7월 8일 <마이니치신붕>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에 대응하기 위한 ‘주변사태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미일군사협력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이 한미일 3자 군사동맹 강화추세에 맞춰 ‘미일방위협력지침’을 보강하고, 일본은 그에 발맞춰 ‘주변사태법’을 새로운 미일군사협력법으로 대체하려는 목적과 의도는 무엇일까?

기존 ‘미일방위협력지침’이나 기존 ‘주변사태법’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일본 자위대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서 미국군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인데, 지금 미국과 일본은 그런 내용을 변경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일본 자위대가 대북공격에 나선 미국군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돌격대로 출전하여 대북공격의 최전선을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현대전에서 공격의 최전선을 담당하는 무력단위는 적진해안에 기습적으로 상륙하여 수도로 진격하는 해병대다. 해병대 상륙전이야말로 최전선 공격전인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과 일본이 ‘미일방위협력지침’과 ‘주변사태법’을 각각 개정하여 일본 자위대의 대북공격능력을 결정적으로 보강하려는 것은 일본 자위대에 해병대를 신설하려는 것이라는 점이 자명해진다. 지난 7월 11일 척 헤이글(Chuck Hagel) 미국 국방장관은 워싱턴 디씨를 방문한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을 만난 자리에서 일본 극우내각의 집단자위권 행사 결정이 “대담하고 역사적이며 획기적”이라는 찬사를 보냈는데, 바로 그 결정의 내밀한 의도는 자위대에 해병대를 신설하여 대북공격능력을 결정적으로 보강하려는 것이다. 이런 심각한 상황은, 전쟁범죄청산을 거부한 일본 극우내각이 1930년대 일제전범들의 침략야욕을 집단자위권이라는 명분으로 부활시켜보려고 집요하게 책동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자위대 창설 60주년을 맞은 지난 7월 1일 일본 각의(남측에서는 국무회의)에서 집단자위권 행사에 관한 헌법해석을 변경하는 조치가 결정되었을 때, 일본 방위성은 충격적인 장면을 담은 사진을 언론에 공개하였다. 그 사진은 얼룩무늬 위장복을 입은 일본 자위대 정찰부대가 해안으로 접근한 쾌속선박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해안에 상륙하는 연습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에 나온 정찰부대는 일본 육상자위대 서부방면보통과련대 소속이고, 사진에 나온 상륙전연습장소는 미국 하와이 카네오헤 해병대기지의 상륙전연습장이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7월 10일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콴티코 해병대기지에 오노데라 일본 방위성 장관이 나타나 케네스 글룩(Kenneth J. Glueck) 미국 해병대 사령관을 만났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집단자위권 행사에 관한 헌법해석을 변경하는 내각의 조치가 결정되던 날을 골라 일본 방위성이 육상자위대 상륙전연습을 언론에 공개하고 그로부터 열흘 뒤 방위성 장관이 미국 해병대기지에서 해병대 사령관을 만난 것은, 일본 자위대의 상륙전능력을 길러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려는 일본 극우내각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2014년 3월 4일 미국 일간지 <월 스트릿 저널> 보도에 따르면, 오노데라 일본 방위성 장관은 3,000명 병력을 3개 연대로 편성한 수륙기동단을 최대한 빨리 신설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2014년 3월 30일 <니혼게이자이신붕>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2018년까지 나가사키현 사세보 해군기지에 수륙기동단을 배치한다는 것이다. 수륙기동단 신설을 향한 일본 자위대의 발걸음에 그처럼 가속도가 붙고 있는 가운데, 2014년 5월 23일 일본 육해공 자위대 1,300명 병력은 사세보 해군기지에서 9,000t급 상륙수송함 시모키타(JDS Shimokita)를 타고 가고시마현 아마미군도(庵美諸島)의 무인도에 상륙하는 연습을 실시하였다.
▲ <사진 3> 이 사진에 나타난 큰 함선은 일본 해상자위대가 운용하는 휴가급 헬기 항공모함이고, 크기가 작은 함선은 이즈모급 헬기 항공모함이다. 지금 일본은 휴가급 헬기 항모 두 척, 이즈모급 헬기 항모 한 척을 운용하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이미 강력한 상륙전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범죄청산을 거부하는 일본의 극우내각이 대외침략을 위한 상륙전능력을 갖추고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한반도에 상륙하여 전면전을 도발하려는 재침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 자주민보


일본 자위대의 상륙전능력을 확보하려는 일본 극우내각의 의도는 상륙전에 요구되는 각종 군사장비를 도입하는 데서도 드러났다. 2013년 12월 14일 <아사히신붕>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앞으로 5년 동안 추진할 ‘중기방위력정비계획’에서 육상자위대의 전차 보유량을 삭감하는 대신 상륙전능력을 갖춘 수륙양용부대를 새로 편성하기 위해 수륙양용차량 52대를 도입하고, 주행속도가 빠른 기동전투차량 90대를 배치하고, 수직이착륙 수송기 17대와 무인정찰기 세 대를 도입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또한 2014년 2월 3일 중국 홍콩에서 발간되는 <문회보>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중기방위력정비계획’에 따라 배수량이 40,000t이나 되는 초대형 강습상륙함 두 척을 도입하려고 한다는 것이고, 2014년 7월 12일 <도쿄신붕>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8일 오노데라 일본 방위상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해군기지를 찾아가 강습상륙함을 시찰하였다고 한다. 원래 강습상륙함(amphibious assault ship)에는 수륙양용차량, 수직이착륙 수송기, 대잠작전헬기, 해상공격기, 해병대 병력 등을 실을 수 있다. 예컨대, 일본 사세보 해군기지에 전진배치된 미국 해군 7함대의 40,000t급 강습상륙함 반홈 리처드호(USS Bonhomme Richard)는 해상작전헬기 42대, 해상공격기 5대, 대잠작전헬기 6대, 해병대 병력 1,800명을 싣는다.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 해상자위대는 19,000t급 헬기 항공모함 한 척과 27,000t급 헬기 항공모함 두 척을 이미 보유하였는데, 일본 육상자위대는 40,000t급 강습상륙함 두 척을 도입한 수륙기동단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종합하면, 일본 육상자위대의 수륙기동단은 병력 3,000명을 3개 연대로 편성한 해병대로 조직될 것인데, 40,000t급 초대형 강습상륙함 두 척, 수륙양용차량 52대, 기동전투차량 90대, 수직이착륙 수송기 17대, 무인정찰기 세 대 등으로 무장한 강력한 상륙전부대로 출현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 해병대가 일본 육상자위대의 수륙기동단 신설준비를 이미 2012년부터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미국 제3해병원정군은 2012년 8월 21일부터 37일 동안 일본 육상자위대와 함께 서태평양에 있는 섬들인 괌(Guam)과 티니안(Tinian)에서 강습상륙함, 공격헬기를 동원한 상륙전연습을 실시하면서 일본 육상자위대의 상륙전능력을 증강시켜주었다. 2014년 7월 1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10일 미국 콴티코 해병대기지에서 진행된 미국 해병대 사령관과 일본 방위성 장관의 회담에서 미국 해병대 사령관은 일본 육상자위대가 수륙기동단을 신설하는 것과 관련하여 기술과 장비를 지원해주기로 약속하였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시켜온 미국 해병대 병력 8,600명과 부속인원 9,000명을 2016년까지 괌으로 이동배치하게 되는데, 일본 육상자위대가 그에 대처하여 수륙기동단을 신설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변동은 미국이 자국 해병대 병력을 괌으로 멀리 이동배치하는 대신에 일본의 수륙기동단 신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군사동향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일본 육상자위대 수륙기동단이 돌격대로 대북공격 상륙전에 앞장서게 될 것임을 말해준다.

그런데 일본 자위대는 수륙기동단 신설을 위한 자기들의 상륙전연습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상륙하는 섬상륙연습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 그런 위장술책을 간파하지 못한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일본 자위대의 상륙전연습이 낙도탈환연습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댜오위다오(釣魚島)에 중국인민해방군이 기습상륙해 점거할 것에 대비하여 일본 자위대가 낙도탈환연습을 실시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수륙기동단이 그 작은 무인도에 상륙하면, 중국인민해방군 해군과 공군은 수륙기동단의 해상보급선을 끊어놓고 무인도에 고립시킬 것이며, 무인도를 겨냥한 집중적인 미사일공격으로 그들을 몰살시킬 것이다. 이런 사정만 예상하더라도, 일본 자위대의 상륙전연습은 낙도탈환연습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일본 자위대의 상륙전연습은 중국 본토 해안에 상륙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되는 것일까? 미국은 중국과 전면전으로 맞붙을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미국 해병대가 중국 본토 해안에 상륙하는 연습을 실시하지 않는 것처럼, 일본 육상자위대 수륙기동단도 중국 본토 해안에 상륙하기 위한 연습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자위대가 상륙전을 연습하는 목적이 낙도탈환도 아니고 중국 본토 해안상륙도 아니라면, 그들의 작전목적은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된다. 일본 자위대는 한반도 전쟁을 가상한 상륙전을 연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북측 해안에 상륙하는 침공연습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 자위대가 대북전쟁을 실제로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본 자위대 육상막료감부가 2005년에 작성한 극비문서 ‘방위경비계획’에서 드러났는데, 그 극비문서는 일본의 적국들인 북, 중국, 러시아 가운데서 북을 일본과 실제로 전쟁을 벌일 위험이 있는 유일한 나라로 지목한 바 있다.
 
▲ <사진 4> 2012년 8월 21일부터 37일 동안 일본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는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미국 제3해병원정군과 함께 서태평양에 있는 섬들인 괌(Guam)과 티니안(Tinian)과 그 주변바다에서 대규모 상륙전연습을 실시하였다. 이 사진은 일본 해상자위대 함선이 일제의 침략전쟁마당에 나부끼던 '욱일승천기'를 다시 날리면서, 미국의 대외침략을 상징하는 '성조기'를 날리는 미국 해군 함선과 함께 연합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하는 장면이다.     © 자주민보


멀지 않아 출현할 일본 육상자위대 수륙기동단은 한반도 전쟁을 가상한 상륙전연습에서 단독으로 한반도에 상륙하는 연습을 하지 않고,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의 뒤를 따라 한반도에 돌격대로 상륙하는 미일연합상륙전을 연습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시에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의 뒤를 따라 미국 제3해병원정단과 일본 자위대 수륙기동단이 한반도에서 연합상륙전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지난 시기 일본군의 한반도 상륙이 이 민족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한 재앙을 가져다주었음을 증언한다.

1592년 4월 14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왜군 150,000명을 부산에 상륙시켜 임진왜란을 도발하였다. ‘징비록’에 따르면, 왜군은 진주성을 함락시키고 그 성에서 조선인 60,000여 명을 학살하였으며, 우물을 메우고 집에 불을 지르고 소와 말은 물론이고 닭과 개까지 남김없이 죽여 없앴다고 한다. 왜군이 어찌 진주성에서만 그처럼 극악한 만행을 저질렀겠는가. 그들이 임진왜란 7년 동안 저지른 극악한 만행은 한반도 전역에 참혹한 재앙을 몰아 왔다.

1904년 2월 8일 중국 뤼순(旅順)에서 그 곳을 점령하고 있었던 러시아군이 왜군과 교전을 벌이자, 왜왕 히로히토(裕仁)는 이튿날 새벽 왜군을 제물포항에 상륙시키고 서울에 들어가게 하여 일제의 대러전쟁에 협력하라고 조정을 강요, 협박하면서 ‘한일의정서’라는 것을 강제로 체결하였고, 이 땅에서 러일전쟁을 도발하였다. <진중일지(陣中日誌)>에 따르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기세가 등등해진 왜군 제12려단 병력 1,291명은 1907년 7월 26일 부산항에 상륙하였다. 그들은 한반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일제의 조선침략에 항거하는 항일의병을 잔인하게 살해하였을 뿐 아니라 항일의병에게 협력한 주민들을 총살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극악한 만행을 저질렀다.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기들이 명나라를 칠 테니 조선은 길을 빌려달라는 이른바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명분을 내세웠고, 러일전쟁 당시 히로히토는 자기들이 러시아를 칠 테니 일본에게 협력하라고 조선에게 강요하며 식민지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그런데 지금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히로히토의 후예들이 집단자위권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한반도 재침야욕을 드러냈다.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징후가 나타나면, 일본은 자기 군대가 대북공격 돌격대로 나설 테니 남측은 길을 빌려달라는 명분을 내세워 부산항에 대거 상륙할 것이고, 대북전쟁에 나선 일본 자위대에게 협력할 것을 남측 정부에게 강요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예상하면, 오늘 이 민족은 항일선열들의 자주정신을 되살려 우리 민족끼리 손을 잡고 대일공조를 하루 빨리 실현해야 할 급박한 전환점에 다가섰음을 알 수 있다.
 


[알림]스마트폰 사용자를 위한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와 모바일 뷰


위의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QR Code )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해 보세요.

스마트폰 사용자는 웹버전과 같은 주소 www.changesk.blogspot.com 에서 자동으로 모바일 뷰로 보실 수 있습니다.

 

2014/07/08

42년 뒤에 다시 찾아온 ‘운명적인 7월’

[한호석의 개벽예감] (120)
자주민보 2014년 07월 07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이 사진은 1972년 5월 4일 0시 15분 김일성 주석이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접견하는 장면이다. 이후락은 박정희 대통령의 특사로 1972년 5월 2일 판문점을 지나 평양에 도착하여 3박4일 체류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후락을 자신의 특사로 파견하면서 북측과의 회담에서 평화통일원칙에 대해서만 합의하라고 지시하였으나, 김일성 주석은 이후락 특사를 몸소 두 차례나 접견하면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제시하였고 그 원칙을 명시한 7.4 공동성명을 발표하도록 이끌었다.     © 자주민보


왜 2014년 7월을 ‘운명적인 7월’이라고 하였을까?
  

북측 국방위원회는 지난 6월 30일 남측 정부에게 보내는 ‘특별제안’을 발표하였다. ‘특별제안’의 제목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틀어쥐고 북남관계개선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자’라고 되어 있다. ‘특별제안’에서 북측 국방위원회는 남과 북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에 따라 민족공동이익에 맞게 남북관계개선을 추진하자고 남측 정부에게 제안하였다.

그런데 남측 정부는 북측 국방위원회의 ‘특별제안’을 즉각 거부하였다. 요즈음 남측 정부가 대북적대감을 표출하며 북을 자극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이 북측 국방위원회의 ‘특별제안’을 “얼토당토(하지) 않은 주장과 진실성이 결여된 제안”이라고 받아치며 거부한 것은 뜻밖의 일로 보이지 않는다. 정작 뜻밖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남측 정부가 북측 국방위원회의 ‘특별제안’을 거부한 행동이 아니라 북측 국방위원회가 남측 정부에게 ‘특별제안’을 보낸 행동이다. 북측 국방위원회는 남측 정부가 거부할 것이 뻔한 ‘특별제안’을 왜 이 시점에 보낸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특별제안’에 나오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은 1972년 7월 4일 남과 북이 분단 이후 최초로 합의, 발표한 7.4 공동성명에 명시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이다. 7.4 공동성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전격적으로 발표되었던 42년 전 그 날, 이 민족의 통일열망은 그야말로 열화처럼 끓어올랐으며 국제사회로부터도 적극적인 지지와 찬동을 받았는데, 특히 유엔총회 정치위원회는 7.4 공동성명을 지지하는, ‘코리아문제에 관한 합의’라는 제목의 성명을 1973년 11월 21일에 채택한 바 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40여 년 전에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말 자체를 거부하였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는 진보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으며, 국민들에게 ‘멸공통일사상’을 주입하며 대북적대감을 고취하고 있었다. 그런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었지만, <사진 1>이 말해주는 것처럼, 당시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반대할 수 없어 그 원칙을 인정하였고, 그에 따라 7.4 공동성명이 합의, 발표되었던 것이다.

해마다 7월 4일이 오면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에 따라 남북관계를 개선하자고 제의하는 내용의 대남성명을 발표해왔는데, 특별히 올해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아니라 북의 국정최고기관인 국방위원회가 ‘특별제안’이라는 전례 없는 발표형식으로 남측 정부에게 그 3대 원칙에 따라 남북관계개선에 나서자고 제안한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측 국방위원회가 이번에 발표한 ‘특별제안’은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대남성명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북의 최고영도자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의사가 ‘특별제안’에 담겼음을 직감할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특별제안’의 마지막 문장이 “운명적인 7월이 남조선당국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는 점이다. 왜 2014년 7월을 ‘운명적인 7월’이라고 하였을까?

시간흐름을 꽤 거슬러 올라가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에 펼쳐졌던 복잡한 정세를 되짚어보면, 남과 북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합의하고 7.4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던 1972년 7월도 이 민족에게 ‘운명적인 7월’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72년 7월이 이 민족에게 ‘운명적인 7월’이었기에, 남과 북은 분단 이후 최초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천명한 7.4 공동성명을 발표한 역사적 사변을 이룩하였던 것이다. 1972년 7월이 이 민족에게 ‘운명적인 7월’이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 <사진 2> 7.4 공동성명이 발표되기 약 넉 달 전인 1972년 2월 21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였다. 이 사진은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가 베이징에서 닉슨 미국 대통령과 회담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1972년 2월 28일 상하이에서 역사적인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국제정세가 격동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음을 알려주는 놀라운 사변이었다. '상하이 공동성명'에서 중국은 북이 1971년 4월 12일에 발표한 '조선의 평화적 통일에 관한 8개항'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명시하였다. 7.4 공동성명 발표는 '상하이 공동성명' 발표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세가 급격히 변화되는 격동기에 남과 북이 공동으로, 주체적으로 대응한 역사적 사변이었다.     © 자주민보


‘상하이 공동성명’과 ‘파리평화합의’, 그리고 7,4 공동성명   

역사적인 7.4 공동성명이 발표되기 약 넉 달 전에 또 다른 역사적인 공동성명이 발표되어 세상에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1972년 2월 28일 미국과 중국이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당시 미국 대통령은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1972년 2월 21일부터 28일까지 중국을 방문하였고, 그의 중국 방문 중에 ‘상하이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도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 미국과 중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개선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도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목하는 것은, ‘상하이 공동성명’이 미중관계개선에 대해서만 밝힌 것이 아니라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는 점이다. 관련부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중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1971년 4월 12일에 발표한 조선의 평화적 통일에 관한 8개항을 확고히 지지하며,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U.N.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철폐를 요구하는 조선의 입장을 확고히 지지한다.” ‘상하이 공동성명’에서 중국이 확고히 지지한다고 밝힌 ‘조선의 평화적 통일에 관한 8개항’이란, 허담 당시 북측 외무상이 1971년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발표한 조국통일방침인데, 그 내용을 원문 그대로 축약,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남조선에서 미제침략군을 철거시키는 것”

둘째, “미제침략군이 물러간 다음 남북조선의 군대를 각각 10만 또는 그 아래로 줄이는 것”

셋째,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일조약>을 비롯하여 남조선 괴뢰정권이 민족의 리익에 배치되게 외국과 체결한 모든 매국적이며 예속적인 조약들과 협정들을 폐기하며 무효로 선포하는 것”

넷째, “자유로운 남북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적인 중앙정부를 세우는 것”

다섯째, “자유로운 남북총선거를 위하여 남조선 전지역에서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며, 남조선에서 체포, 투옥된 모든 정치범들과 애국자들을 무조건 석방하는 것”

여섯째, “현재와 같은 남북의 각이한 사회제도를 그냥 두고 과도적 조치로서 남북조선련방제를 실시하는 것”

일곱째, “남북 간의 통상과 경제적 협조, 과학, 문화, 예술, 체육 등 여러 분야에 걸친 호상교류와 협조를 실현하며 남북 간의 편지거래와 인사래왕을 실현하는 것”

여덟째, “이상의 과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각 정당, 사회단체들과 인민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로서 남북조선정치협상회의를 진행하는 것”

미국은 위에 열거한 8개항을 거부하였다. 1971년 10월 22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중국 총리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 당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담록을 읽어보면, 저우언라이 총리는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북이 발표한 ‘조선의 평화적 통일에 관한 8개항’ 전문을 읽어주었는데, 키신저는 그 8개항이 발표된 것조차 알지 못하였으며, 8개항에 나오는 ‘남조선 괴뢰정권’이라는 용어를 지적하며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중국은 ‘조선의 평화적 통일에 관한 8개항’을 적극 지지하였고, 미국은 그것을 전면 거부하였으니, 그 두 나라가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한반도 문제에 관한 어떤 합의도 담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상하이 공동성명’은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별도항목으로 병기한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상하이 공동성명’에서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밝힌 부분을 원문 그대로 인용하면 이렇다. “미국은 대한민국에 대한 지지와 대한민국과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것이며,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교류증대를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노력을 지지할 것이다.”

1971년 10월 22일에 진행된 저우언라이-키신저 회담에서 저우언라이 총리가 지적한 것처럼, 당시 미국과 중국이 상호관계개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3대 문제는 베트남 문제, 대만 문제, 한반도 문제였는데, 미국과 중국은 1972년 2월 28일에 발표한 ‘상하이 공동성명’에서 베트남 문제와 대만 문제는 해결하였으나, 한반도 문제는 미해결로 남겨두었다.
▲ <사진 3> 1973년 1월 23일 레 둑 토 당시 베트남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위원장이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회의센터에서 진행된 회담에서 헨리 키신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협상하고 회담장을 떠나면서 주위에 모여든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과 격렬하게 맞붙은 20년 전쟁에서 북베트남이 승리하였다는 자주적 베트남민족의 신심을 그의 당당한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국주의 미국의 패전과 자주적 베트남민족의 승리를 알린 파리평화합의는 긴 협상 끝에 1973년 1월 27일에 발표되었다. 그리하여 미국군은 1973년 3월 29일까지 남베트남에서 철군하였고, 그로부터 2년 뒤 남베트남 친미예속정권은 북베트남에게 항복하였고, 베트남전쟁의 종식과 베트남의 통일이 실현되었다.     © 자주민보


당시 미국과 중국이 상호관계개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베트남 문제와 대만 문제를 각각 해결한 방식은 종전과 철군이었다. 그에 따라, 미국과 북베트남은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전쟁 종식과 베트남에서의 평화회복에 관한 합의’(파리평화합의)를 발표함으로써 1955년부터 1975년까지 20년 동안 지속된 베트남전쟁을 끝냈고, 미국은 대만에 주둔시켜온 미국군을 1973년 8월 26일부터 철군하기 시작하였다.

주목하는 것은, 1972년 2월 28일 ‘상하이 공동성명’이 발표되고, 1973년 1월 27일 ‘파리평화합의’가 발표되고, 1973년 8월 26일 대만 주둔 미국군 철군이 시작된 대격동기에 7.4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7.4 공동성명 발표는 당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미중관계개선, 베트남전쟁 종식, 대만 주둔 미국군 철군으로 이어진 동아시아의 격동적인 정세변화에 남과 북이 공동으로, 주체적으로 대응한 역사적 사변인 것이다. 동아시아의 격동적인 정세변화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던 1972년에 만일 남과 북이 공동으로, 주체적으로 대응한 7.4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못한 채 맥을 놓고 방관하였더라면, 이 민족은 동아시아 정세변화의 구석으로 밀려나 자괴감과 열패감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러나 남과 북이 공동으로, 주체적으로 동아시아의 격동적인 정세변화에 대응하여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합의하고 역사적인 7.4 공동성명을 발표하였으니, 1972년 7월을 어찌 ‘운명적인 7월’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국과 중국이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한 격동적인 사변은 미중관계개선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 격동적인 사변은 당시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의 결과였으며, 동시에 동아시아 정세에 미증유의 위험이 임박하였음을 예고한 것이었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가 한반도 정세에 충격을 안겨주는 것은 불가피하였으며, 거기에 더하여 동아시아에 임박한 미증유의 위험이 한반도에 파급되리라는 것도 명백하였다. 이처럼 한반도 정세가 거대한 변화와 임박한 미증유의 위험으로부터 각각 충격과 동요를 받고 있었다는 점에서, 1972년의 7월은 이 민족에게 그야말로 ‘운명적인 7월’이었다. 그리하여 당시 남과 북은 한반도 정세변화를 민족공동이익에 맞게 추동하기 위한 공동지침을 시급히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것이 바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이었으며, 남과 북이 그 3대 원칙을 공동으로 천명한 역사적인 합의가 바로 7.4 공동성명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중국봉쇄전략 파탄과 일본의 무력증강책동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절정에 올랐던 미국의 대중관계개선 움직임은 이미 1970년 하반기부터 조용히 준비되고 있었다. 이를테면, 1970년 11월 10일 야히아 칸(Yaya Khan)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이 닉슨의 친서를 들고 중국을 방문하였고, 1970년 12월 18일 마오쩌뚱(毛澤東)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일찍이 중국혁명을 서방에 알린 저명한 미국인 문필가 에드가 스노우(Edgar P. Snow)와 회견하는 자리에서 닉슨의 중국방문을 환영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었다. 그에 화답하여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1971년 4월 14일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를 완화하고 중국과의 인사교류를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새로운 중국정책을 발표하였고, 이틀 뒤인 4월 16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중국과의 국교수립이 미국의 목표라고 언급하면서 중국을 방문하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1970년에 자기의 중국정책을 급전환하여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정치적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거기에는 아래와 같은 사연이 있었다.

1971년 6월 13일 <뉴욕 타임스>는 ‘베트남 기록문서: 30년 동안의 미국의 개입을 추적한 펜타곤의 연구(Vietnam Archive: Pentagon Study Traces Three Decades of Growing US Involvement)’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미국 현대사에 ‘펜타곤 문서(Pentagon Paper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충격적인 문서는 존슨 행정부 시기에 로벗 맥나마라(Robert McNamara) 당시 국방장관의 특별지시로 1967년 6월 17일 미국 국방부에 설치된 실무진이 작성한 비밀문서다. 그 비밀문서가 언론에 유출, 공개됨으로써 미국이 베트남전쟁을 도발한 목적이 중국을 봉쇄하려는 데 있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미국 언론에 유출, 공개된 ‘펜타곤 문서’를 일고 커다란 충격을 받은 미국의 각계각층은 베트남전쟁을 즉각 중지하고 미국군을 철군하라는 반전여론으로 더욱 들끓게 되었다.
▲ <사진 4> 1975년 4월 30일 오전 덩 반 민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은 라디오특별방송을 통해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에게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항복선언을 발표하였다. 그 항복선언이 발표된 직후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북베트남군 전차가 남베트남 대통령궁 정문을 부수고 진입하여 북베트남 국기를 게양하였다. 미국은 20년 동안 지속된 베트남전쟁에서 50,000명이 넘는 병력을 잃고 패하였다.     © 자주민보


‘펜타곤 문서’에 따르면, 미국의 중국봉쇄전략은 일본-한국 전선, 인도-파키스탄 전선, 동남아시아 전선을 반원형으로 구축하여 중국 포위망을 치는 것은 물론이고 당시 중국과 격돌하고 있었던 소련까지 대중포위망에 끌어들여 중국을 세계적 범위에서 봉쇄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 포위망을 치려던 미국의 봉쇄전략은 결국 완전히 파탄되고 말았다.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1955년부터 1975년까지 장장 20년 동안이나 지속된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패하여 퇴각함으로써 미국이 구축해오던 중국봉쇄포위망이 찢어지고 말았다. 더욱이 중국을 포위하려던 미국의 중국봉쇄전략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여 결정적으로 파탄시킨 놀라운 사변은, 1971년 9월 중국이 사거리가 15,000km에 이르는 첫 자국산 대륙간탄도미사일 둥펑(東風)-5호를 시험발사한 것이었다. 이미 1970년 4월 24일 첫 자국산 인공위성(東方紅-1호)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고, 1971년 3월 3일 두 번째 자국산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던 중국은 1971년 9월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시험발사함으로써 마침내 핵강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하였던 것이다.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는 그 나라의 국제적 지위를 단번에 격상시켰으니, 1971년 10월 25일 유엔총회 제26차 본회의에서는 대만을 유엔에서 추방하고 중국을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영입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핵강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한 중국이 대만을 밀어내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영입된 1971년에 미국은 결국 자기의 중국정책을 급전환하여 중국봉쇄를 포기하고 중국과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길로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일련의 사변들이 당시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였던 것이다.

그러면 1972년의 동아시아에 임박하였던 미증유의 위험은 무엇인가? ‘상하이 공동성명’에는 그 문제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다. “중국은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과 대외팽창을 강하게 반대하며, 독립적이고 민주적이며 평화롭고 중립적인 일본을 건설하려는 일본 인민들의 열망을 확고히 지지한다.” 여기에 인용한 ‘상하이 공동성명’의 관련문장에 따르면,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과 대외팽창이 1972년 동아시아에 임박하였던 미증유의 위험이었던 것이다.

1971년 7월 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저우언라이-키신저 회담에서 저우언라이 총리는 “우리의 견해에 따르면, 일본 군국주의는 현재 되살아나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은 미국과 일본이 1969년에 발표한 공동성명에 의해 촉진되고, 뒷받침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가 언급한, 1969년에 발표된 미일공동성명은 1969년 11월 21일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과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일본 총리가 워싱턴 디씨에서 진행한 미일정상회담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을 뜻한다.

주목하는 것은, 그 공동성명에 이런 구절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은 극동국가들이 지역의 안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기대하면서, 미국이 극동에서 자기의 방위공약의무를 존중함으로써 극동의 평화와 안전을 계속 유지하리라는 확신을 표명하였다.” 이 문장에 따르면, 미국은 앞으로 동아시아의 안전문제를 일본에게 맡기고 자기는 미일상호방위조약의 의무를 이행(implement)하는 게 아니라 존중(honor)하겠다는 것이다. 1969년에 발표된 미일공동성명을 읽어보면,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력이 이전보다 약화되면서 재기한 일본 군국주의세력이 동아시아를 위협하게 될 가능성이야말로 당시 중국이 우려한, 동아시아에 임박한 미증유의 위험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그러한 우려는, 저우언라이-키신저 회담에 키신저의 특별보좌관으로 배석한 윈스턴 로드(Winston Lord)가 작성하여 키신저에게 제출한, 저우언라이-키신저 1971년 7월 29일 회담록에서 더 뚜렷이 나타났는데, 그 회담에서 저우언라이 총리는 “일본의 국력이 강화된 판국에 미국이 극동에서 철군하는 것은, 미국의 목적이 일본을 강화시켜 다른 아시아 나라들을 지배하는 데서 일본을 미국의 전위대(vanguard)로 내세우려는 데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당시 중국이 심히 우려하였던 것은, 미국군이 동아시아에서 철군하는 경우 무력증강을 다그치고 있는 일본 자위대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위험요인으로 등장하게 되리라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은 특히 한반도와 대만에 대해 우려하였는데, 1971년 10월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저우언라이-키신저 회담에서 저우언라이 총리는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한반도 문제는 “오늘날 새로운 위기를 발생시키는 문제”라고 하면서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조선과 대만을 자기들의 대외팽창을 위한 도약대로 삼았는데, 이것은 세상에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고 지적하고 “중국은 미국이 대만 주둔 미국군을 일본 자위대로 대체하는 것을 반대하고, 남조선 주둔 미국군을 일본 자위대로 대체하는 것도 반대한다. 만일 미국이 남조선의 군사력을 전례 없이 증강시켜놓고 철군한다면, 미국군이 철군한 이후 더욱 심각한 무력충돌이 일어날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극동에서 긴장완화를 크게 저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에 인용한 각종 역사자료들은 1970년대 초 베트남전쟁에서 패하여 퇴각을 앞둔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력이 이전보다 상당히 약화되었고, 그 틈을 노린 일본이 무력증강을 다그쳐 미국의 돌격대로 변신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복잡하고 위험한 정세에 처해 있었던 남과 북이 민족공동이익에 맞게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할 긴급한 상황이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1972년 7월은 ‘운명적인 7월’이었다.
   
▲ <사진 5> 일본 자위대가 발족한지 60주년이 된 2014년 7월 1일 일본 육상자위대가 사상 처음으로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에 참가하여 상륙전연습을 벌이고 있었던 시각 상륙전연습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미국 국방부 산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에서 미국, 일본, 한국의 합참의장들이 3자 군사회담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같은 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극우내각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관한 헌법해석을 변경하는 조치를 결정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일본이 재한일본인 보호라는 구실을 내걸고 미국의 지휘에 따라 일본 자위대를 이 땅에 출병시켜 미국의 대북전쟁 돌격대로 나서겠다는 한반도 재침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 자주민보


지금‘운명적인 7월’에 얼마나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가?    

베트남전쟁에서 패하여 퇴각을 앞둔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력이 이전보다 상당히 약화되었고, 그 틈을 노린 일본은 무력증강을 다그쳐 미국의 돌격대로 변신하고 있었던 1972년의 ‘운명적인 7월’로부터 어느덧 42년 세월이 흘러 2014년 7월이 되었다. 그 7월을 하루 앞둔 지난 6월 30일 북측 국방위원회는 남측 정부에게 보낸 ‘특별제안’에서 “운명적인 7월이 남조선당국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북측 국방위원회가 ‘특별제안’에서 2014년 7월을 ‘운명적인 7월’이라고 한 까닭은, 42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 또 다시 ‘운명적인 7월’을 맞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펼쳐지고 있는 정세변화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북측 국방위원회가 ‘특별제안’을 발표하기 나흘 전인 지난 6월 26일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RIMPAC)’이 하와이 인근해역에서 시작되었다. 수상전함 47척, 잠수함 6척, 각종 작전기 200여 대, 병력 25,000명이 참가한 세계 최대 규모의 해군훈련이다. 미국은 항공모함 1척, 순양함 4척, 구축함 4척, 호위함 2척, 공격잠수함 3척, 수륙양용공격함 1척, 상륙함 1척, 연안전투함 1척, 긴급전투지원함 1척, 보급함 2척, 구난함 1척, 예인선 1척, 병원선 1척, 연안경비함 1척으로 편성된 대규모 해군무력을 참가시켰다.

그런데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던 지난 7월 1일 미국과 일본은 매우 이례적으로 몇 가지 움직임을 한꺼번에 연출하여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그것은 하와이 카네오헤만(Kaneohe Bay)에 있는 미국 해병대기지에서 일본 육상자위대 서부방면연대 소속부대가 상륙전연습을 실시한 것이다. 일본 자위대 중에서 육상자위대가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처럼 일본 육상자위대가 사상 처음으로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에 참가하여 상륙전연습을 벌이고 있었던 시각, 그 상륙전연습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미국 국방부 산하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소(APCSS)에서는 미국, 일본, 한국의 합참의장들이 3자 군사회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진 5>에서 보는 것처럼, 최윤희 한국군 합참의장, 마틴 뎀프시(Martin E. Dempsey) 미국군 합참의장, 이와사키 시게루(岩崎茂) 일본 자위대 통합막료장이 한 자리에 모인 3자 합참의장 군사회담은 이번에 사상 처음으로 열렸다.

하와이에서 일본 육상자위대가 상륙전연습을 실시하고, 미국, 일본, 한국의 합참의장들이 3자 군사회담을 진행하였던 지난 7월 1일은 일본 자위대가 발족한지 60주년이 되는 날이었는데, 일본 도쿄에서는 바로 그 날 아베 신조(安培晋三)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관한 헌법해석을 변경하는 조치를 결정하였다.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관한 헌법해석을 변경하는 조치는 아베 내각이 단독으로 추진한 게 아니다. 집단자위권 행사로 동아시아 침략전쟁의 길을 터놓은 일본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미 50년 전에도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기를 바랐던 ‘전과’가 있다. 2013년 11월 30일 기밀해제된 일본 외교문서에 따르면, 1964년 6월 30일 로벗 맥나마라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워싱턴 디씨를 방문한 후쿠다 도쿠야스(福田篤泰) 당시 일본 방위청 장관과 회담하면서 “일본에서 헌법 9조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은 이 움직임이 일본의 경제력에 비해 최소한의 조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후쿠다 방위청 장관은 “헌법 9조는 일본을 약체로 만들려는 점령정책의 유산이다. 경찰예비대, 보안대, 자위대 등의 단계를 거치며 실질적으로는 (헌법 9조를) 변경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개헌을 찬성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꼭 50년이 지난 2014년 7월 1일 일본 자위대는 재한일본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한반도에 출병하여 미국군사령관의 지휘를 받으며 한국군과 대북합동작전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7월 1일 하와이와 도쿄에서 일어난, 마치 치밀하게 짜인 각본에 따라 움직인 것 같이 보이는 일련의 맞물린 사건들을 살펴보면, 북측 국방위원회가 6월 30일에 발표한 ‘특별제안’에서 2014년 7월을 왜 ‘운명적인 7월’이라고 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1972년의 ‘운명적인 7월’에 그러했던 것처럼, 2014년의 ‘운명적인 7월’에도 미국은 일본을 돌격대로 앞세워 동아시아에서 차츰 쇠퇴하는 자기의 지배력을 유지해보려고 획책하는 중이고, 그 틈을 노린 일본은 집단자위권을 틀어쥐고 무력증강을 다그치면서 한반도 출병기회를 노리게 된 것이다.

동아시아 정세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와 무력증강책동이 중일전쟁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판이다. 미국군이 본진으로 출전하고, 일본 자위대가 돌격대로 앞장서고, 한국군이 선견대로 동원되는 ‘미일한 3자 군사동맹’의 1차적인 공격대상은 중국이 아니라 북이다. 미국과 일본에게 중국은 공격대상이 아니라 견제대상이다. 댜오위다오 주변해역에서 중국과 일본의 영유권 분쟁이 국지적 무력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지만, 중일전쟁의 가능성은 없다.

중국와 달리, 북은 미국과 일본에게 있어서 견제대상이 아니라 공격대상이다. 2004년 12월 12일 <아사히신붕>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에 대처하는 ‘작전계획 5055’를 2002년에 공동으로 작성하였고, 일본이 2004년 12월 10일 채택한 ‘신방위계획대강’은 ‘작전계획 5055’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다고 한다. 미국과 일본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대북전쟁계획을 세워놓았고, 전시에 한반도에 출병할 미국군을 신속기동군으로 재편하고 일본 자위대의 무력증강을 추진하면서, 2자로 변형된 ‘미일한 3자 합동전쟁연습’을 끊임없이 벌여오더니 이번에 결국 일본이 집단자위권이라는 위장명칭을 달아놓은 대외침략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대중군사준비태세는 중국과 전면전으로 맞붙지 않고 견제하는 데서 멈추기 때문에 중국 유사시에 대처할 작전계획이 필요하지 않으나, 북을 전면적으로 침공할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유사시에 대처할 ‘작전계획 5055’를 이미 12년 전에 만들어놓고 그 동안 무력증강과 전쟁연습을 계속해오면서 집단자위권을 틀어쥘 기회를 이제껏 기다려온 것이다. 지난날 한반도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청산을 거부한 일본의 극우정권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그들이 재한일본인 보호라는 구실을 내걸고 미국의 지휘에 따라 일본 자위대를 이 땅에 출병시켜 미국의 대북전쟁 돌격대로 나서겠다는 한반도 재침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지금 일본의 극우정권이 주장하는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것은 1880년대에 ‘미개한 조선을 정벌하자’고 떠들어댄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망령을 무덤에서 불러낸 것이며, 1960년대에 ‘평화헌법 개정, 군국주의 부활, 핵무기 개발’을 노렸던 1급 전범 출신 일본 총리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침략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에 집단자위권 행사를 결정한 아베 신조의 사상적 원류는 후쿠자와 유키치에게서 시작되었고, 그의 정치적 스승은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다.

2014년 7월에 들어오면서 전개되기 시작한 위와 같은 심각한 사태는,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넘어 침략만행을 노리는 흉악한 전범국가로 회귀하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일본의 재침위험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운명적인 7월’에 벌어진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지난 7월 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을 먼저 방문하였던 외교관행을 변경하여 황급히 서울에 가서 박근혜 정부에게 중국과 한국의 대일공조를 제안하였겠는가.

그러나 “운명적인 7월이 남조선당국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북측 국방위원회의 충고도 청와대의 ‘불통 대통령’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북측 국방위원회가 발표한 ‘특별제안’을 즉각 거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의 ‘중한대일공조’ 제안도 거부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자기에게 모처럼 찾아온 정책적 방향전환의 기회를 모두 내던지고 ‘운명적인 7월’에 성큼 들어선 것이다. 미국이 장악, 주도하는 ‘미일한 3자 전쟁체제’에 깊숙이 끌려들어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편입되려는 박근혜 정부가 그 ‘전쟁체제의 늪지대’에서 자기 몸을 빼내 남북관계개선과 ‘중한대일공조’를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42년 뒤에 다시 찾아온 ‘운명적인 7월’에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언행은 일본이 미국의 계략에 따라 한반도를 향해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게 된 사태의 위험성을 간과한 채 제 손으로 제 무덤을 파는 자멸행위로 보인다.
 
 

[알림]스마트폰 사용자를 위한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와 모바일 뷰


위의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QR Code )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해 보세요.

스마트폰 사용자는 웹버전과 같은 주소 www.changesk.blogspot.com 에서 자동으로 모바일 뷰로 보실 수 있습니다.

2014/07/01

화성-11호 능가하는 북의 경이적인 전술유도탄

[한호석의 개벽예감](119)
자주민보 2014년 06월 30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첫번째 사진은 2014년 6월 26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로 실시된 신형 전술유도탄 시험발사장면이다. 남측 군부는 북이 300mm 방사포를 쏘았다는 헛소문을 퍼뜨렸지만, 그런 헛소문은 통하지 않는다. 두번째 사진은 2011년 6월 20일부터 29일까지 카자흐스탄에서 실시된 러시아-카자흐스탄 합동군사훈련에서 러시아군이 발사한 정밀타격전술유도탄 토치카가 솟구쳐오르는 장면이다. 북이 이번에 시험발사한 신형 전술유도탄도 그와 매우 유사한 모습으로 발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능면에서 북의 신형 전술유도탄은 러시아의 토치카보다 훨씬 더 우수하다.      ©자주민보 , 한호석 소장 제공



300mm 방사포 발사설은 남측 군부가 퍼뜨린 헛소문    

요즈음 북의 군사부문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놀라운 사변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바람에 군사전문가들이 그 뒤를 따라가며 분석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4년 6월 26일 현장에서 몸소 지도한 신형 전술유도탄 시험발사도 그런 놀라운 사변들 가운데 하나다.

북이 신형 전술유도탄을 시험발사하면서 언론보도를 통해 그 사실을 세상에 공개한 것은 북의 건국 이래 처음으로 되는 매우 특별한 일이다.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북이 신형 전술유도탄 시험발사를 세상에 공개한 것은, 고도로 발전된 군사과학기술과 국방공업생산체계를 보유한 것에 대한 긍지와 자신감을 내외에 과시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14년 6월 27일 북측 언론에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최첨단 수준에서 새로 개발한 초정밀화된 전술유도탄 시험발사를 지도하시였다”라는 제목의 보도기사가 실렸다. 신형 전술유도탄 시험발사와 관련하여 북이 세상에 전하려는 깊은 사연이 바로 그 짤막한 제목에 모두 담겼다.

국가수반의 국정운영에 관련하여 취재기자가 개별적으로, 재량껏 작성한 기사가 언론에 보도되는 다른 나라들의 사정과 판이하게 다르게, 북의 최고영도자의 ‘혁명활동’을 전하는 북의 보도기사는 취재기자가 개별적으로, 재량껏 작성하는 게 아니다. 특히 북의 최고영도자가 군사부문을 지도한 ‘혁명활동’을 전하는 보도기사는 거기에 쓰이는 낱말 한 개 한 개를 정확하게 골라 쓰는 용어선택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작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의 제목에 나온, “최첨단수준에서 새로 개발한 초정밀화된 전술유도탄 시험발사”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파악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북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국의 군사기밀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한 신형 전술유도탄이 얼마나 강한 파괴력과 얼마나 특출한 성능을 지닌 무기인지 보도기사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으나, 그 보도기사와 언론에 공개된 군사정보를 대조해가며 심층분석하면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만나게 된다.

북측 언론보도를 읽어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이 이번에 시험발사한 발사체는 북에서 최근에 새로 개발된 전술유도탄이다. 북측 언론매체들이 북에서 새로 개발된 전술유도탄을 시험발사하였다고 명백하게 보도했는데도, 남측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북이 300mm 방사포를 발사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였고, 남측 언론매체들은 그런 왜곡정보를 그대로 받아쓰는 오류를 범했다. 전술유도탄과 방사포는 서로 다른 무기체계인데, 남측 군부는 북의 신형 전술유도탄을 300mm 방사포로 둔갑시킨 헛소문을 퍼뜨렸다. 이를테면, <뉴스1> 2014년 6월 27일 보도에서 남측 합참본부 관계자는 북이 시험발사한 단거리발사체에 대해 언급하면서 “현재로서는 KN-09로 불리는 300mm 신형 방사포와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남측 군부가 유포한 북의 300mm 방사포 발사설은 이번에 처음으로 언론에 보도된 것이 아니다. 이전에도 남측 군부는 북이 단거리발사체를 동해로 쏠 때마다 300mm 방사포 발사설을 퍼뜨리곤 하였다. 이를테면, 2013년 5월 18일부터 사흘 동안 북이 단거리발사체 여섯 발을 동해로 쏘았을 때, 2014년 2월 21일 북이 단거리발사체 네 발을 동해로 쏘았을 때, 그리고 2014년 3월 4일 북이 단거리발사체 네 발을 동해로 쏘았을 때, 남측 군부는 300mm 방사포 발사설을 거듭 유포한 바 있다.

더욱이 주목하는 것은, 미국 군부가 북의 300mm 방사포를 ‘KN-09’라는 자의적 별칭으로 부른다는 사실이다. 미국 군부는 북이 동해로 발사한 단거리발사체가 300mm 방사포인지 전술유도탄인지 분간하지도 못하면서 ‘KN-09’라는 자의적 별칭을 조작해낸 것이다. 이전부터 미국 군부는 북, 러시아, 중국이 신형 무기를 만들어낼 때마다 그에 대한 자의적 별칭을 속속 만들어 유포하는 식으로 명칭사용에 국제적 혼란을 조성해왔다. 미국 군부의 그러한 비뚤어진 작명관행은 자기들이 정체를 파악하지도 못한 북의 신형 무기에 대해 막무가내로 자의적 별칭부터 붙이고 보는 비정상적인 사태를 불러왔다.

그러나 명백하게도, 북이 이번에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한 단거리발사체는 미국 군부가 ‘KN-09’라는 자의적 별칭으로 부르는 300mm 방사포가 아니라 북이 최근에 새로 개발한 전술유도탄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러시아는 9A52-2 스머취(Smerch)-M이라고 부르는 300mm 12관 방사포를 1989년부터 작전배치하였고, 중국은 A-100이라고 부르는 300mm 10관 방사포를 2000년부터 작전배치하였다. 그런데 만일 북이 2014년 6월 26일에 300mm 방사포를 시험발사하였다면, 그것은 세상에 내놓고 과시할 만한 사변이 되지 못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은 민족적 자존심을 매우 중시하는 나라인데, 그런 북이 러시아에 비해 26년이나 늦고, 중국에 비해서는 15년 늦게 개발한 300mm 방사포를 시험발사를 하였다면, 북은 자기들의 뒤늦은 300mm 방사포 개발에 관한 정보를 세상에 자랑스럽게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북이 이번에 시험발사에서 성공하자마자 세상에 당당히 공개한 단거리발사체는, 러시아와 중국이 아주 오래 전에 개발한 300mm 방사포를 본떠 만든 모조품이 아니라, 북이 새로운 기술로 개발한 신형 전술유도탄이었음이 자명해진다.

둘째, 북이 300mm 방사포가 아니라 전술유도탄을 시험발사하였음을 말해주는 정보는 그 단거리발사체가 날아간 비행거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이 이번에 시험발사한 단거리발사체가 날아간 거리에 관한 남측 언론보도를 보면, <동아일보>는 180~190km라고 보도했고, <중앙일보>는 190km라고 보도했고, <연합뉴스>와 <조선일보>는 각각 190여 km라고 보도했고, <뉴스1>은 195km라고 보도했다. 어느 쪽의 보도가 사실에 가까운 것일까?

남측 언론매체들이 제각기 산만하게 보도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북은 지난 6월 26일 오후 5시께부터 약 25분 동안 강원도 원산 북쪽 원산만 해안에 배치된 자행발사대(TEL)에서 단거리발사체 세 발을 동북쪽 해상으로 쏘았다. 약 25분에 걸쳐 세 발을 쏘았으니, 약 12분 시간차를 두고 세 발을 쏜 것이다. 원래 방사포의 우월성과 특징은 거의 1초도 되지 않은 찰나에 한 발씩 연속적으로 집중발사하는 것인데, 약 12분 시간차를 두고 쉬엄쉬엄 쏘았으니, 명백하게도 그것은 300mm 방사포가 아니라 전술유도탄이다.

그런데 약 12분 시간차를 두고 발사된 발사체 세 발은 북측 동해안을 따라 동북쪽으로 날아가 함경북도 김책시 앞바다 김책만 인근 해상에 떨어졌다. 온라인 거리측정 웹사이트에 들어가 강원도 원산만 북쪽 해안에서 함경북도 김책만 인근해상까지 직선거리를 측정해보니, 235km라는 측정값이 나왔다. 북이 이번에 시험발사한 단거리발사체는 210~230km를 날아갔는데, 남측 언론매체들은 남측 군부가 북의 단거리발사체 비행거리를 축소한 정보를 알려준 것도 모른 채 오보한 것이다.

셋째, 어느 나라나 100km 이상 날아가는 발사체를 개발하는 경우, 그것을 방사포로 만들지 않고 유도탄으로 만든다. 이것은 로켓무기개발부문에서 예외 없이 통용되는 ‘효율의 법칙’이다. 100km 이상 날아가는 발사체를 유도탄으로 만들지 않고 방사포로 만드는 어리석은 나라는 세상에 없다. 왜냐하면 유도비행능력이 없는 발사체가 100km 이상 날아가는 경우 정해진 비행방향을 벗어나 타격목표로부터 멀리 떨어진 엉뚱한 곳을 타격하게 되는데, 그런 발사체는 사실상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100km 이상 날아가는 발사체에 반드시 유도장치가 내장되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러므로 이번에 북이 실시한 시험발사에서 210~230km를 날아간 북의 단거리발사체는 300mm 방사포가 아니라 전술유도탄인 것이 분명하다.   
▲ <사진 2> 이 사진은 영국의 다국적 군수기업 BAE 시스템즈가 개발한, 155mm 곡사포로 쏘는 정밀유도포탄에 내장되는 부품단위를 촬영한 것이다. 사거리가 22.4km인 이 정밀유도포탄도 원형공산오차는 수 십 m나 된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200km 밖에서 직경 1m의 동그라미 표적에 명중하는 초정밀타격능력     

그렇다면 북이 이번에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한, 사거리가 210~230km인 신형 전술유도탄은 구체적으로 어떤 전술유도무기인가?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우리의 국방과학기술자들과 군수공업부문 로동계급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직접적인 발기와 세심한 지도 속에 짧은 기간에 초정밀화된 우리 식의 위력한 전술유도무기체계를 개발하고 드디여 시험발사를 진행”하였고, “시험발사에서 경이적인 결과를 달성”하였다고 한다. 이 인용구에서 “경이적인 결과를 달성하였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이적인 결과란 무엇을 뜻하는가?

사거리가 10,000km가 넘는 화성-13호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목성 계열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이미 오래 전에 작전배치한 북에서 사거리가 210~230km밖에 되지 않는 전술유도탄을 만들어 시험발사에 성공한 것은 경이적인 결과라고 말할 수 없다. 북이 이번에 시험발사한 전술유도탄의 비행속도가 기존 전술유도탄에 비해 훨씬 더 빠른 것도 아니다. 사거리나 비행속도에서 경이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라면, 북측 언론매체들이 언급한 경이적인 결과는 타격정밀도를 뜻하는 것이다. 실제로 북측 언론매체들은 이번에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한 전술유도탄에 대해 보도하면서, “초정밀화된 전술유도탄을 시험발사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북이 초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신형 전술유도탄을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유도탄의 성능지표를 거론할 때, 정밀(precision)이라는 말과 초정밀(ultra-precision)이라는 말을 구분해서 쓴다. 정밀이라는 말 앞에 ‘초(ultra)’자를 앉힌 것은 타격정밀도를 과장하거나 좀 더 멋지게 보이려고 그렇게 꾸미는 것이 아니다. 군사과학기술부문에서 정밀타격과 초정밀타격은 서로 구분되는 차등개념인 것이다.

북측 언론매체들이 이번에 시험발사에 성공한 신형 전술유도탄의 초정밀타격능력에 대해 언급한 배경을 이해하려면, 전 세계 로켓무기개발추세를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북의 신형 전술유도탄이 지닌 초정밀타격능력에 대해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유도탄의 타격정밀도는 원형공산오차(circular error probability, CEP)라는 지표로 표시된다. 만일 어느 유도탄의 원형공산오차가 100m라면, 발사된 유도탄들 가운데 50% 이상이 탄착점을 중심으로 둘러싼 직경 100m의 원형구역 안에 착탄한다는 뜻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말인 1944년 9월 나치 독일이 세계전쟁사에서 최초로 발사한 비유도로켓인 V-2는 원형공산오차가 자그마치 17km나 되었다. 정밀타격이 불가능한 그런 로켓무기는 작은 도시 하나를 타격목표로 삼고 쏴도 도시 밖으로 빗나갈 수 있다. V-2 출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군사강국들은 각종 유도탄을 개발하면서 타격정밀도를 높이는데 힘써왔다. 예컨대, 중국이 2006년부터 작전배치한 사거리 1,700km의 지대지중거리유도탄 둥펑(東風)-21의 원형공산오차는 30~40m다. <사진 2>는 미국군이 155mm 곡사포로 쏘는 정밀유도포탄에 내장되는 부품단위(module)인데, 사거리가 22.4km인 155mm 정밀유도포탄도 원형공산오차가 큰 것은 마찬가지다. 미국이 1974년부터 작전배치한 공대지단거리유도탄 헬파이어(Hellfire)는 사거리가 8km밖에 되지 않는데도 원형공산오차는 4m다.

원형공산오차가 30~40m인 둥펑-21을 초정밀유도탄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원형공산오차가 4m밖에 되지 않는 헬파이어도 초정밀유도탄이라고 하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기준에 따르면, 원형공산오차가 10m 정도는 되어야 정밀유도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그보다 한 급 높은 초정밀유도탄으로 인정받으려면 원형공산오차가 1m 이내로 축소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북이 이번에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한 단거리발사체는 원형공산오차가 1m 이내로 축소된, 그야말로 경이적인 타격정밀도를 지닌 초정밀전술유도탄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초정밀전술유도탄을 쏘면, 탄착점을 중심으로 둘러싼 직경 1m의 동그라미 안에 명중된다는 뜻이다. 그런 까닭에, 북은 이번에 전술유도탄 세 발을 쏠 때, 이전처럼 동해 넓은 바다를 향해 쏜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선박들이 오가는 김책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김책만 인근해상으로 쏘면서도 탄착이 예상되는 해상구역에 항행금지구역을 설정하지 않았다. 북이 이번에 항행금지구역을 설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남측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바 있다. 탄착해상에 띄워놓은 크기가 1m 정도 되는 아주 작은 표적물에 명중하는 경이적인 초정밀타격이었으므로 항행금지구역을 설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북이 이번에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한 전술유도탄은 200km 떨어진 적진에 있는 1m 크기의 고정물체를 선별하여 족집게 식으로 타격할 수 있는 경이적인 전술유도탄인 것이다.
  

북의 초정밀전술유도탄 앞에서 미국의 에이태킴스나 러시아의 토치카는 빛을 잃는다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군사과학기술을 개발, 축적한 군사강국으로 자처하는 미국과 러시아는 원형공산오차가 1m 이내로 축소된 초정밀전술유도탄을 만들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군사강국들이 유도탄개발부문에서 이룩한 군사과학기술 발전추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군사강국들은 정밀유도무기를 3세대에 걸쳐 발전시켜왔는데, 그 사정은 아래와 같다.

첫째, 1세대 정밀유도무기는 원격조종식(remote-controlled)이다. 원격조종식 정밀유도무기는, 공격자가 타격목표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발사하면, 유도무기 앞부분에 장착된 적외선카메라가 타격목표영상을 인식하고 발사체 꼬리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 타격목표로 날아가는 비행방향을 자동적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둘째, 2세대 정밀유도무기는 레이저유도식(laser-guided)이다. 레이저유도식 정밀유도무기는, 공격자가 타격목표를 향해 레이저광선을 쏘면, 유도무기 앞부분에 장착된 컴퓨터가 그 광선을 따라가면서 발사체 꼬리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 비행방향을 자동적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이 개발한 GBU-10 레이저유도폭탄이 그런 레이저유도식 정밀유도무기에 속한다. 한 발에 60,000달러나 하는 GBU-10의 사거리는 14.8km인데, 미국이 제1차 이라크전쟁과 코소보전쟁에서 사용하였다.

셋째, 정밀유도무기에 장착된 적외선카메라와 레이저탐지장치는 구름이나 안개가 끼거나 눈이나 비가 내리는 날, 또는 연기나 먼지가 날리는 공간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맑은 날, 맑은 공간에서만 쓸 수 있다. 이런 환경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한 3세대 정밀유도방식이 위성유도식(satellite-guided)이다. 위성유도식 정밀유도무기는 자체에 내장된 컴퓨터가 항법위성(navigation satellite)에서 발신되는 신호전파를 수신하여 타격목표로 날아가는 발사체 꼬리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비행방향을 자동적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북이 이번에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한, 원형공산오차가 1m 이내로 축소된 초정밀전술유도탄은 3세대 정밀유도무기인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대표적인 위성유도식 정밀유도무기로 손꼽히는 것은 미국이 운용하는 통합직격탄(Joint Direct Attack Munition, JDAM)이다. 미국이 그 동안 성능개량을 거듭해온 여러 종류의 통합직격탄들 가운데서 신형 통합직격탄은 미국 군수기업 맥다널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가 개발한 GBU-32 위성유도폭탄이다. ‘스마트 폭탄(smart bomb)’이라고도 부른다. GBU-32 위성유도폭탄은 기존 폭탄의 뒷부분에 항법위성 신호전파를 수신하는 장치를 부착한 것이다. 미국은 제2차 이라크전쟁 중에 위성유도폭탄을 사용하면서 그것의 실전능력을 점검하였다.

재래식 활강폭탄을 탑재한 전폭기가 지상으로부터 8~12km 떨어진 공중에서 폭탄을 투하하면, 그 폭탄은 지상타격목표를 향해 활강비행을 하게 된다. 그와 달리 위성유도폭탄을 탑재한 전폭기는 지상으로부터 60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초저공에서 폭탄을 투하하는데, 그 폭탄은 지상타격목표를 향해 유도비행을 하게 된다. 활강폭탄의 원형공산오차는 94m 정도인데, 통합직격탄의 원형공산오차는 10m이고, 위성유도폭탄의 원형공산오차는 1.5m로 줄어들었다. 위성유도폭탄의 사거리는 28km다.

주목하는 것은, 전폭기에서 투하되는, 사거리가 28km밖에 되지 않는 위성유도폭탄을 만들어낸 미국과 달리, 북은 지상에서 재빨리 이동하는 자행발사대에서 발사되는, 사거리가 210~230km에 이르는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러면 미국은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을 만들지 못했을까?

미국 군수기업 락키드 마틴(Lockheed Martin)이 생산한 육군전술유도탄체계(Army Tactical Missile System)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명칭을 에이태킴스(ATACMS)라고 약칭한다. 원래 에이태킴스 전술유도탄은 타격목표상공에서 야구공 크기만한 자탄 275개를 한꺼번에 터뜨려 일대를 초토화하는 무기이므로, 애초에 초정밀타격과는 거리가 먼 구역타격을 위해 설계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나중에 에이태킴스 계열의 MGM-168 전술유도탄을 개발하면서 이전의 집속탄두를 213kg 또는 247kg짜리 단일탄두로 교체하여 탄두무게를 줄이고 사거리를 165km에서 270km로 연장하였고, 위성위치확인체계(GPS)에서 발신되는 전파신호를 수신하는 위성항법기능을 갖추었다. 하지만 그 전술유도탄에 내장된 위성항법장치는 관성유도비행을 보정하기 위한 보조기능밖에 수행하지 못한다.

▲ <사진 3> 러시아군이 운용하는 3세대 토치카가 3축6륜 자행발사대에 실려 이동하는 장면이다. 3세대 토치카는 러시아의 지구항법위성쳬계에서 발신되는 신호전파를 수신하는 위성유도장치를 부착하였지만, 그것은 관성유도비행을 보정하기 위한 보조기능밖에 갖지 못한다. 그에 비해, 북이 이번에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한 신형 전술유도탄은 최첨단 수준의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그러면 러시아는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을 만들었을까? 러시아군이 운용하는 전술유도탄 토치카(Tochka)는 원래 1970년대에 개발된 것인데,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3축6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된다. 길이 6.4m, 지름 65cm, 무게 1,800kg, 탄도무게 480kg다. 소련은 1980년대에 기존 토치카를 토치카-U로 개량하였고, 러시아는 1990년대에 토치카-U를 3세대 토치카로 또 다시 개량하여 사거리를 185km로 연장하였다. 이처럼 성능개량을 거듭한 3세대 토치카의 공식명칭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는데, 미국 군부는 이 신형 전술유도탄을 SS-21 스캐럽(Scarab)-C라는 자의적 별칭으로 부른다. 주목하는 것은, 3세대 토치카는 기존 관성유도장치 이외에 러시아의 지구항법위성체계(GLONASS)에서 발신되는 신호전파를 수신하는 위성유도장치도 추가로 장착하였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에이태킴스 계열의 MGM-168 전술유도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3세대 토치카에 장착된 위성항법장치도 관성유도비행을 보정하기 위한 보조기능밖에 갖지 못한다. 이처럼 관성유도를 주축으로 하고 위성유도를 보조로 삼는 3세대 토치카의 원형공산오차는 70m이고, 에이태킴스 계열의 MGM-168 전술유도탄의 원형공산오차는 50m다.

미국이 개발한 MGM-168 전술유도탄(사거리 270km)과 러시아가 개발한 3세대 토치카 전술유도탄(사거리 185km)은 모두 관성유도를 주축으로 하고 위성유도를 보조로 삼는 전술유도탄들이며, 원형공산오차도 50m 또는 70m다. 그런데 북이 이번에 개발한 신형 전술유도탄(사거리 210~230km)은 유도비행기술에서 가장 앞선 위성유도식으로 설계되었을 뿐 아니라, 원형공산오차가 1m 이내로 축소된 경이적인 초정밀전술유도탄인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오늘 북은 군사과학기술에서 가장 앞섰다는 미국과 러시아의 전술유도탄개발수준을 뛰어넘은 세계 최고의 전술유도탄개발기술을 보유한 것이다. 북측 언론매체들이 이번에 북이 실시한 신형 전술유도탄 시험발사를 보도하면서 왜 “경이적인 결과를 달성하였다”고 기술하였는지 그 까닭이 자명해진다.
   
▲ <사진 4> 북이 2005년 5월 1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전술유도탄 화성-11호가 3축6륜 자행발사대에 실려 이동하는 모습이다. 북은 2012년에 화성-11호를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으로 개량한 것으로 보인다. 북은 그 경험에 기초하여 이번에 최첨단 수준의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을 새로 개발하였다. 세계 정상을 향한 북의 군사과학기술개발은 차츰 더 빠른 속도로 진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 화성-11호를 능가하는 최첨단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     

북은 이번에 시험발사한 초정밀전술유도탄에 앞서 아주 우수한 전술유도탄을 개발하였고 그것의 성능을 향상시킨 기술축적경험을 가지고 있다. 북이 이전에 만든 우수한 전술유도탄이 <사진 4>에 나온 화성-11호다. 내가 2013년 6월 초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을 참관하였을 때, 거기에 전시된 모형에는 “화성-11호 작전로케트”라는 공식명칭이 적혀 있었다. 미국 군부는 화성-11호를 ‘KN-02’라는 자의적 별칭으로 부르고, ‘독사(Toksa)’라고도 부른다.

2005년에 5월 1일 화성-11호 시험발사에 성공한 북은 2007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경축 군사행진에서 처음으로 화성-11호를 세상에 공개하였다. 2007년 7월 버웰 벨(Burwell B. Well)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서울의 관훈클럽 초청연설에서 화성-11호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첨단 단거리미사일이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으며, 고체(연료)미사일로 현대화되었고, 신속한 발사와 이동이 쉽다”고 평가한 바 있다. 미국 군부의 추정자료에 따르면, 화성-11호는 무게가 500kg인 고폭탄두 또는 화학탄두, 또는 전술핵탄두를 장착하고 120~160km를 날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시기 북은 화성-11호의 성능을 더욱 향상시켰다. 남측 정부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4년 3월 5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당국은 ‘KN-02 미사일에 대한 위협평가’라는 보고서에서 아래와 같은 사실을 언급했다고 한다.

첫째, 화성-11호의 사거리가 120km에서 170km로 늘어났으므로, 전방으로 이동하지 않고서도 평택-원주선까지 타격할 수 있다.

둘째, 북은 화성-11호를 위성유도식으로 개량하여 정밀도를 향상시킴으로써 원형공산오차를 50m 정도로 줄였다.

셋째, 화성-11호는 사격통제레이더를 가동할 필요가 없이 5분 안에 발사되기 때문에 발사징후를 포착하기가 매우 어렵다.

넷째, 화성-11호는 발사된 뒤 불과 3~4분 만에 최장사거리 170km까지 날아갈 정도로 비행속도가 매우 빠르고, 초탄을 쏜 뒤 15분 안에 제2탄을 쏠 수 있다.

다섯째, 화성-11호를 운용하는 단위부대는 자행발사대, 지휘통제차량, 정비지원차량, 유도탄운반차량으로 편성되었다.

여섯째, 북은 화성-11호 100여 발을 작전배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의 인용문에서 주목하는 것은 북이 이미 2014년 이전에 화성-11호를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으로 개량하였다는 사실이다. 러시아가 세계적 범위에서 운용하는 독자적인 지구항법위성체계 구축을 완료한 때가 2011년 10월이었으므로, 북은 2012년에 화성-11호를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으로 개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북이 이번에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한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은 북이 처음이 아니라 두 번째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미 화성-11호를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으로 개량하는 기술을 축적한 북이 이번에 두 번째로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을 만들었는데도, 북측 언론매체들은 이번에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한 전술유도탄이 “최첨단수준에서 새로 개발한 초정밀화된 전술유도탄”이라고 하였다. 이 인용구에서 주목하는 것은 최첨단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점이다. 북에서 과학기술수준에 대해 언급할 때, 첨단이라는 말과 최첨단이라는 말을 구분해서 쓴다. 극소수 과학기술강국들이 개발한 선진과학기술을 북이 개발한 경우 첨단과학기술이라고 하고, 북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선진과학기술에 대해서는 최첨단과학기술이라고 한다.

그런데 북측 언론매체들은 이번에 성공적으로 시험발사된 전술유도탄이 최첨단과학기술로 개발되었다고 보도하였다. 이것은 북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최첨단과학기술을 그 전술유도탄 개발에 도입하였음을 뜻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을 만드는 기술은 첨단군사과학기술이긴 해도 북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최첨단군사과학기술은 아니다. 그렇다면 북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하여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에 도입한 최첨단군사과학기술은 무엇일까? 그것은 북이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 개발에서 발생하는 과학기술적 난제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해결한 최첨단군사과학기술을 도입하였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북은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어떤 과학기술적 난제를 해결한 것일까?

첫째, 미국의 위성위치확인체계나 러시아의 지구항법위성체계는 위치확인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약 15m의 오차를 내게 되는데, 북이 위성유도식 전술유도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바로 그러한 오차발생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과학기술적 난제였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이 이번에 개발한 초정밀전술유도탄은 원형공산오차가 1m 이내인데, 그 유도탄의 비행을 유도하는 지구항법위성체계의 위치확인오차가 약 15m라면, 북이 초정밀전술유도탄을 만들었어도 사실상 초정밀타격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북은 초정밀전술유도탄의 경이적인 명중률을 보장하기 위해 지구항법위성체계의 위치확인오차를 보정하는 새로운 기술을 이번에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북의 신형 전술유도탄이 최첨단수준에서 개발되었다는 표현을 쓰지 못하였을 것이다.

둘째, 항법위성에서 발신되는 신호전파의 강도는 너무 약해서, 단파라디오방송국에서 발신되는 신호전파의 강도의 100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1와트 강도의 교란전파를 발신하면 60km 밖에서도 지구항법위성체계의 신호전파수신을 교란할 수 있다. 적군이 발신한 교란전파가 항법위성에서 발신되는 신호전파를 교란시키는 순간, 타격목표를 향해 날아가던 위성유도식 정밀유도무기는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이 이번에 개발한 초정밀전술유도탄의 원형공산오차가 1m 이내라고 해도, 교란전파공격을 뚫고 나아가지 못하면 초정밀타격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북은 초정밀전술유도탄의 경이적인 명중률을 보장하기 위해 교란전파공격을 돌파하는 새로운 기술을 반드시 개발하여야 하였고, 이번에 그 기술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북의 신형 전술유도탄이 최첨단수준에서 개발되었다는 표현을 쓰지 못하였을 것이다.

북측 언론매체들은 “이번 시험발사를 통하여 우리 인민군대는 자기 손에 틀어쥐고 있는 단거리 및 중장거리 유도무기들을 비롯한 모든 타격수단들을 세계적 수준에서 초정밀화할 수 있는 관건적인 열쇠를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타격의 명중성과 위력을 최대로 높일 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열어놓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초정밀전술유도탄 시험발사를 현장에서 지도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현대전의 그 어떤 작전과 전투에서도 정확한 선제타격에 의한 주도권을 확고히 쟁취할 수 있는 고도로 정밀화된 전술유도무기들을 더 많이 만들어내리라는 확신을 표명하시면서 새로운 국방과학기술과제들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이런 보도내용은 북이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유도탄을 모두 최첨단 수준의 초정밀유도탄으로 개량할 수 있게 되었음을 예고한다.

군사전문가들이 공인하는 것처럼, 유도탄의 초정밀타격능력은 전시상황에서 아군의 파괴력을 증대시키는 작전효과와 적진 타격 중에 의도하지 않은 부수적 손실(collateral damage)을 감소시키는 작전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전투종심이 짧고, 인구밀도가 높은 한반도 작전환경에서 사용되는 전술유도탄이 그러한 최첨단 수준의 초정밀타격능력을 갖추는 것은 비전투부문에 대한 부수적 손실을 결정적으로 줄이면서도 압도적인 타격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세계 정상을 향한 북의 군사과학기술개발은 차츰 더 빠른 속도로 진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알림]스마트폰 사용자를 위한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와 모바일 뷰


위의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QR Code )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해 보세요.

스마트폰 사용자는 웹버전과 같은 주소 www.changesk.blogspot.com 에서 자동으로 모바일 뷰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