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0

새로운 길, 2021년 1월에 제시된다

 [한호석의 개벽예감](425)

자주시보 2020년 12월 28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직설적인 질문과 솔직한 답변

2. 선평화, 후통일론의 실체

3. 선통일, 선평화론의 실체

4. 평화협정 체결하기까지 두 단계 거쳐야

5. 새로운 길, 2021년 1월에 제시된다

 

 

1. 직설적인 질문과 솔직한 답변

 

“통일을 해야 합니까? (Do you have to reunify?)"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질문이다. 2017년 11월 7일 서울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청와대 상춘재에서 담화하다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위와 같은 엉뚱한 질문을 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서 우리나라의 통일문제에 대해 그처럼 직설적인 질문을 제기한 대통령은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좀 특이한 사람이다. 그는 기존 관례와 격식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행동을 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듣기에 민망한 왜곡발언이나 허위발언도 꺼내놓지만, 그런 역겨운 언행 뒤에는 직설적이고 솔직한 면도 있다. 

 

통일을 해야 하느냐는 엉뚱하고 직설적인 질문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답변했을까? 자세한 답변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워싱턴포스트>의 정치분석가 조쉬 로긴(Josh Rogin)이 2017년 11월 15일 그 신문에 실은, ‘트럼프는 남한 대통령에게 ’통일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략적인 사연을 찾아볼 수 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울을 방문 중이던 조쉬 로긴과 대담하면서 그녀가 한미정상회담 이튿날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문재인-트럼프 상춘재 담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쉬 로긴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날 상춘재 담화 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직설적인 질문에 답변할 때, “김정은 정권 아래서 비인간적인 대우(inhumane treatment)를 받으며 고통을 겪는 북조선 인민들에게 자신이 큰 책임감(great sense of responsibility)을 느낀다”고 하면서, “민주주의의 빛(light of democracy)을 북조선 인민들에게 비춰주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설마 그런 말을 했을까 하고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상춘재 담화에서 솔직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므로, 위에 서술한 답변은 문재인 대통령의 속마음이 드러난 솔직한 발언이었다. 답변에서 드러난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은 ‘독재정권의 어둠 속에 있는 북측 인민들에게 자유민주주의의 빛을 비춰주는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여 북을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흡수해야 한다’는 극우반북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극우반북적인 견해를 가진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그가 ‘독재자’로 생각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한 직후 이런 말을 남겼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해 수시로 논의할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극우반북적인 견해를 은폐한 외교적인 발언이었다. 

 

위선적인 발언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19일 평양을 방문하는 중에 5.1경기장에 모인 평양시민 15만 명 앞에서, 그가 독재정권의 암흑 속에서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하는 북측 인민들에게 연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습니다. 얼마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지 절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이것도 역시 자신의 극우반북적인 견해를 은폐한 외교적인 발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적 발언 뒤에 극우반북적인 견해가 은폐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그가 남북정상회담에서 쏟아낸 외교적인 발언에 찬사를 보내며, 그의 방북에 큰 기대를 걸었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적 발언 뒤에 극우반북적인 견해가 은폐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헤쳐보면,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이 왜 전혀 이행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있고, 2020년 6월 16일 북이 왜 남북공동련락사무소를 폭파해버렸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어 8천만 민족의 통일열망이 뜨거워졌던 2018년 9월 26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뉴스(Fox News)>가 문재인 대통령과 대담을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 대담진행자가 “대통령님 생애 안에 통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십니까?”라고 질문했다. 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통일은 정말 예상할 수 없습니다. 통일은 계획대로 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평화가 완전해지면 어느 순간 정말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시기가 제 생애 안에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통일되는 날이 언제인지 예언할 수는 없지만, 통일의지를 가는 대통령이라면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방안과 경로를 담은 통일정책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위의 대담에서 나온 답변을 들어보면,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통일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 대통령이 평화가 먼저 실현되고 통일이 나중에 실현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선평화, 후통일론을 믿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진 1> 

 

▲ <사진 1> 위의 사진은 2017년 11월 7일 서울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는 장면이다. 그날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직전 청와대상춘재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차담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통일을 해야 합니까?"라는 직설적이고 엉뚱한질문을 했다. 그런 질문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속마음을 드러내면서 솔직하게답변했다.  



2. 선평화, 후통일론의 실체

 

문재인 대통령이 믿고 있는 선평화, 후통일론은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30년 정도 서로 왕래하고 협력하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통일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선평화, 후통일론은 통일국가건설을 사실상 반대하는 반통일론의 변종이 아닐 수 없다. 통일학의 견지에서 이 문제를 분석,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1) 선평화, 후통일론은 7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조국통일이 앞으로 30여 년이 더 지나 100년 뒤에야 실현될 것처럼 상상하면서, 조국통일위업을 다음 세대에게 미루려는 허황된 주장이다. 75년 동안이나 지속되는 민족의 분렬을 어떻게 해서든지 하루빨리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중대하고 절실한 조국통일위업을 기약 없는 먼 훗날로 미루는 것은 통일국가건설을 무한정 지연시키고 회피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평화, 후통일론은 1960년대 박정희의 선건설 후통일론, 그리고 1970년대 김대중의 선민주, 후통일론을 모방한 통일무한연기론이며 통일위업회피론이다. 지난 시기 선건설, 후통일론이나 선민주, 후통일론이 그러했던 것처럼, 현 시기 선평화, 후통일론도 통일국가건설을 무한정 연기하고 조국통일위업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반통일론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다. 

 

2) 선평화, 후통일론은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30년 정도 서로 왕래하고 협력하면, 어느 날 동부도이췰란드가 갑자기 무너지고 서부도이췰란드에 흡수되었던 것처럼 북의 사회주의체제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고 남의 자본주의체제에 흡수될 것이라는 전형적인 흡수통일론이다. 이런 내막을 알게 되면,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남북평화공존과 남북상호협력은 남측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시장경제가 30년 동안 북측에 점차적으로 침투, 확대되어 점진적인 개혁과 개방을 불러일으키고 북측의 자주적 사회주의와 사회주의계획경제가 변질, 소멸되는 점진적 붕괴과정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그러므로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남북평화공존과 남북상호협력은 흡수통일론의 정체를 은폐한 현란한 수식어에 불과한 것이다. 명백하게도, 선평화, 후통일론은 점진적인 흡수통일론의 변종이다. 

 

3) 선평화, 후통일론은 남과 북이 평화공존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평화를 실현하는 데서 가장 중요하고 선결적인 평화협정문제는 외면한다. 어느 날 누구의 머리 위에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위태로운 정전체제를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려면 반드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평화공존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강조해야 할 평화협정체결문제는 한 마디도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평화가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선평화, 후통일론은 평화를 강조하면서도 평화협정을 외면하는 비과학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를 강조하면서도 평화협정을 외면하는 까닭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당연히 점령군이 철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한미국군철수를 반대한다. 반대할 뿐 아니라, 철군이라는 말만 나와도 조건반사적인 거부반응을 보인다. 만일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면, 한미동맹이 해체될 것이므로, 한미동맹을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문재인 대통령은 철군문제에 직결되는 평화협정체결문제를 철저히 외면하는 것이다.  

 

주한미국군이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정전체제 아래서 점령군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대북전쟁연습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런 참담한 현실 속에서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다. 불행하게도, 문재인 대통령이 믿는 선평화, 후통일론은 그런 궤변과 결부되어 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고서도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비과학적인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대안이 종전선언을 채택, 발표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남, 북, 미 3자가 종전선언을 채택, 발표하면, 전쟁이 끝나는 것이므로, 평화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처럼, 종전선언이 발표되더라도 정전상태는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종전선언을 발표하더라도 정전체제는 여전히 유지될 것이고, 따라서 미국이 지휘하는 한미연합군은 여전히 북침전쟁연습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침전쟁연습은 종전선언문을 한낱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종전선언을 발표하려는 구상은 문재인 대통령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전략적 추진방향은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과 매우 다르지만, 지난 시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도 종전선언을 진지하게 검토한 적이 있었다. 이를테면,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었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발표하려고 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하려고 했던 종전선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구상한 종전선언과 다른 것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은 종전선언⟶잠정협정⟶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점진적 과정이고, 그것은 곧 한미연합군의 북침전쟁연습중단⟶남과 북의 단계적 군비감축⟶주한미국군의 단계적 철수로 이어지는 단계적, 점진적 과정이다. 다른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하려고 했던 종전선언은 한미연합군의 북침전쟁연습중단⟶주한미국군감축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설명한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군사분계선 남쪽에 설치된 철책과 철조망을 촬영한 사진이다. 반만년 동안 이어져온 민족의 혈맥이 저 철책과 철조망으로 끊긴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원통하고 분하다. 군사분계선 남측 지역에서는 한국군과 미국군이 합동으로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있고, 그 북측 지역에는 조선인민군이 단독으로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만일 조선인민군과 미국군이 우리 영토 안에서 무력충돌을 벌이면, 그것은 남과 북의 내전이 아니라, 미국의 무력침공으로된다.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군이 장악하고 있으므로, 우리 영토에서전쟁이 재발하면 한국군은 미국군의 작전통제를 받으며 미국군의 대북무력침공에 참가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을 분렬시키고 전쟁위험을 불러오는 군사분계선을철폐하고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려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해야 한다.  



3. 선통일, 선평화론의 실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6년 5월 6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를 하면서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책임진 우리 당 앞에 나선 가장 중대하고 절박한 과업”이라고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우리는 전체 조선민족의 한결같은 지향과 요구에 맞게 하루빨리 분렬의 장벽을 허물고 조국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야 합니다. (중략) 나라와 민족들이 저마다 자기 리익을 내세우며 경쟁적으로 발전을 지향해나가고 있는 때에 우리 민족이 북과 남으로 갈라져 아직까지도 서로 반목하며 대결하는 것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스스로 가로막고 외세에 어부지리를 주는 자멸행위입니다. 민족의 분렬을 더 이상 지속시켜서는 안 되며 우리 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여야 합니다.” 8천만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을 이른 시일 안에, 반드시 실현하려는 강렬한 통일의지를 표명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통일방략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선통일론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선통일론은 자주적 평화통일론으로 집약된다. 자주적 평화통일론은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우리 민족끼리 평화통일을 실현하려는 주장이다. 역사적 견지에서 보면, 자주적 평화통일론은 1948년 4월 19일부터 4월 30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와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지도자협의회의에서 이루어진 전민족적 합의를 계승발전시킨 조국통일론이다. 연석회의와 지도자협의회는 미국의 조선분할점령정책을 추종한 친미우익세력을 제외한 남과 북의 좌우익세력이 모두 참가한 그야말로 전민족적 회의였다.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우리 민족끼리 평화통일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해야 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자주적 평화통일이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평화협정체결은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남북평화공존론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말하는 자주적 평화통일의 전제조건이며,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을 포기시키는 조치로 된다.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을 포기시키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화전략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선평화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통일우선주의와 평화우선주의를 통합한 선통일, 선평화론을 제시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처럼 중대하고 절박한 평화협정은 어떻게 체결될 수 있을까?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려면 협정체결당사자들이 평화회담을 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까지만 해도, 북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평화회담을 조미양자회담 또는 남북미 3자회담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북은 1990년 5월 31일 발표한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평화적 환경을 마련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문서에서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조선반도에서 완전하고도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현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시켜야 한다. 미국은 조선반도 평화보장의 주되는 당사자인 것만큼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조미회담이나 3자회담에 반드시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조미양자회담, 4자회담, 6자회담이 진행되었으나 평화협정체결문제는 미국이 거부하는 바람에 의제에 오르지 못했다. 더욱이 그런 회담들에 참석한 외교관들에게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중대사안을 다룰 권한이 없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중대사안을 다룰 권한은 조선의 최고령도자와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    하지만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조미정상회담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조미고위급회담에도 소극적이었던 그들에게 조미정상회담은 언제나 관심 밖에 밀려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조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떻게 해서든지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자신의 전략구상을 실현해야 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하여 조선의 핵무력을 완성하면, 미국은 조선의 핵문제를 협상하기 위해 그 동안 외면해온 조미정상회담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런 예상은 적중했다. 2017년 11월 29일 조선이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하자, 2018년 1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은 청와대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미정상회담을 제의했고, 마침내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었던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1999년 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4자회담에 참가한 남,북, 미, 중 회담대표들이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평화체제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린 4자회담은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제네바에서 네 차례 개최되었으나,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평화체제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6자회담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10차례나진행된 6자회담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4자회담과 6자회담의실패경험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중대사안이 오직 조미정상회담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안겨주었다. 그로써 평화협정체결문제를 조미정상회담에서 해결하려는 조선의 견해와 입장이 정당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4. 평화협정 체결하기까지 두 단계 거쳐야

 

사상 처음 성사된 것으로 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8천만 민족에게 커다란 기대와 희망을 안겨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 제2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선차적인 방도는,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각각 구상하고 있었던 종전선언을 채택, 발표하는 것이었다. 2018년 6월 14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말과 영어로 각각 작성된 종전선언문 초안을 가지고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 참석했다고 한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채택, 발표하려던 계획은 그가 주한미국군을 감군하려던 계획과 맞물린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에 주둔하는 미국군을 유지하는데 너무 많은 국가재정을 지출하지 않으려고 감군정책을 추진했고, 종전선언을 발표하려는 계획을 감군정책과 연동시키려고 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종전선언을 채택, 발표한 뒤에, 주한미국군을 부분적으로 철수하는 감군조치를 실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준비해간 종전선언문 초안을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꺼내놓지 않았다. 그는 왜 꺼내놓지 않았을까? 2020년 9월 15일 미국에서 출판된 밥 우드워드(Robert U. Woodward)의 책 ‘격노(Rage)’에서 공개되지 않은 사연을 엿볼 수 있다. 그 책에 나오는 트럼프 대통령의 회고담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중에 “비핵화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서 정말로 힘들어했고, 주춤거렸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중에 비핵화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하고 주춤거린 까닭은, 조선이 “강도적인 비핵화요구”라고 비난할 만큼 일방적이고, 급진적인 비핵화요구를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2018년 6월 19일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국무장관은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일방적이고, 급진적인 비핵화를 실행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정전협정을 확실하게 교체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전협정을 확실하게 교체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었지만,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일방적이고 급진적인 비핵화를 제의한 것은 합의를 가로막은 걸림돌로 되었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우선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평화실현과정에 부합되는 쌍무적이고 점진적인 비핵화를 제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일방적이고 급진적인 비핵화를 제의했던 것이다. 

 

만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의한 쌍무적이고 점진적인 비핵화를 받아들이면서 종전선언문 초안을 꺼내놓았다면, 회담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전협정을 대신할 잠정협정(modus vivendi)을 체결하는 문제를 제의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잠정협정이란 적대관계에 있는 쌍방이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까지 적대관계를 평화적으로 해소하는 정치적 합의를 말한다. 1996년 2월 22일 조선은 미국에게 다음과 같이 제의했었다. 

 

“정전협정의 거의 모든 조항들이 파괴되고 남아있는 조항들마저 현실을 반영할 수 없는 조건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현 정전협정을 대신할 수 있는 잠정협정을 체결하고 그를 리행하기 위한 잠정기구를 내올 데 대한 제안을 내놓고 그와 관련한 협상을 진행할 것을 미국측에 또다시 제의하였다. 이 제안은 미국이 평화협정의 체결을 반대하고 있는 조건에서 조선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무력충돌을 방지하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의 과도적인 기간에 필요한 잠정적인 조치로서 쌍방에 다같이 접수될 수 있는 현실적인 제안이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잠정협정과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선언은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될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방안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2018년 조미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의하면 그것을 받아들여 정전협정체결 65주년이 되는 2018년 7월 27일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그에 기초하여 잠정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차기 조미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018년 7월 7일 조선 외무성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가 말해주는 것처럼, 조선은 2018년 7월 6일과 7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에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몇 가지 방도를 제기했는데, 그 가운데는 “조선반도에서의 평화체제구축을 위하여 우선 조선정전협정체결 65돐을 계기로 종전선언을 발표할 데 대한 문제”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위에 인용한 조선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따르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조미고위급회담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은 “싱가포르 수뇌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요구만 들고 나왔”으며 “조선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이미 합의된 종전선언문제까지 이러저러한 조건과 구실을 대면서 멀리 뒤로 미루어놓으려는 립장을 취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2018년 7월 6일과 7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음을 알 수 있다. 만일 그 회담에서 쌍방이 2018년 7월 27일 종전선언을 발표하기로 합의했다면,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은 결렬되지 않았을 것이며, 조미협상은 계속 진척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사리 성사된 조미정상회담을 조선의 핵무장을 일방적으로 해제하려는 기회로만 생각하는 전략적 오판에 빠지는 바람에 자기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렸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사진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중에서 공동성명 서명식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각각 공동성명문에 서명했고,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마익 팜페오 국무장관은 공동성명문을 교환했다. 공동성명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공동으로노력할 것이다"라는 조항이 들어있다. 두 정상은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으로 종전선언을 발표하려고 하였지만, 2018년 7월 6일 평양에서 진행된조미고위급회담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은 여러 가지 조건과 구실을 꺼내놓으면서종전선언을 발표하는 문제를 무한정 지연시키고, 일방적이고 급진적인 비핵화를주장했다. 그로써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조미정치협상은 더 이상 진척될 수없었다.  

 

 

5. 새로운 길, 2021년 1월에 제시된다

 

2021년 1월 20일 조 바이든(Joseph R. Biden Jr.)이 대통령에 취임해도, 그는 조미정상회담을 외면하면서 조선의 핵무장을 일방적으로 해제할 생각만 할 것이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예상하는 까닭은,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주둔미국군을 유지하는 비용을 너무 많이 지출하지 않기 위해 동맹관계를 약간 훼손하더라도 감군정책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동맹관계를 우선시하는 바이든에게서는 그런 감군정책마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선유세 중에 감군문제를 언급했었지만, 바이든은 대선유세 중에 감군문제에 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9월 초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가 평양을 방문하면 제3차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이라는 의사를 담은 마지막 친서를 보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을 받고 평양을 방문할 의향이 있는가라고 묻는 백악관 출입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아마도 아니다. 우리는 그에 대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그런 답변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7통의 친서를 교환했던 친서외교는 중단되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2019년 11월 18일 김계관 외무성 고문은 담화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무익한 그러한 회담에 더 이상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고, 2019년 12월 12일 조선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에서 “미국이 입만 벌리면 대화타령을 늘어놓고 있는데 설사 대화를 한다고 해도 미국이 우리에게 내놓을 것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위에 열거한 상황은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불러온다. 협상의 문은 모두 닫혔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비관적인 전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2019년 9월 초 트럼프 대통령에게 마지막 친서를 보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북초청거부의사를 접하고 친서외교를 중단한 이후,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9년 10월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백두의 첫눈을 맞으시며 몸소 백마를 타시고 백두산정에 오르시였다”고 한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백두산 등정이었다.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동행한 일군들 모두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께서 백두령봉에서 보내신 위대한 사색의 순간들을 목격하며 또 다시 세상이 놀라고 우리 혁명이 한 걸음 전진될 웅대한 작전이 펼쳐질 것이라는 확신을 받아안으며 끓어오르는 감격과 환희를 누르지 못하였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첫눈 내리는 백두산에서 모색한 새로운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1월 1일에 발표한 신년사에서 언급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미정상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사라져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없게 되었지만,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면서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 새로운 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모색한 새로운 길은 장기간 협상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기존 방도가 아니라, 협상을 배제하고 급진적으로 해결하는 새로운 방도이다.  

 

2020년 8월 19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는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를 2021년 1월에 소집할 것을 결정하였다. 2021년 1월에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가 열리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면서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할 것으로 예견된다.

2020/12/23

땅속으로 60km 이동하는 저격땅크

 [한호석의 개벽예감](424)

자주시보 2020년 12월 21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한국군이 발견하지 못한 22개의 남진갱도

2. 740여 건의 첩보를 입수했어도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3. 전술갱도가 있고, 전략갱도가 있다

4. 한 개의 주선갱도와 여러 개의 지선갱도들

5. 남진갱도 입구 앞에서 대기하는 저격병들과 저격땅크들

 

 

1. 한국군이 발견하지 못한 22개의 남진갱도

 

2020년 12월 16일 중국 홍콩에서 발간되는 영어매체 <조간 남중국(South China Morning Post)> 보도기사를 통해 중요한 정보가 세상에 알려졌다. 보도기사에는 2009년 타이 방콕에서 29명의 탈북자와 함께 전세기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어느 탈북자의 이야기가 실렸다. 그 탈북자는 자신이 2008년에 개성공단 인근에 있는 조선인민군 최전방부대에서 중좌(중령)로 군사복무를 했었고, 제대 후에는 로씨야에 가서 해외파견근로자로 일하다가 ‘기획탈북공작’에 넘어가 중국을 거쳐 타이로 잠입했고, 2009년에 타이에서 남측에 들어갔으며, 남측에서 7개월 동안 정보당국의 조사를 받으면서 자기가 아는 북의 갱도에 관한 첩보를 진술한 사람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말쓰임새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남측에서 땅굴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는데, 그것은 틀린 말이다. 원래 땅굴은 토굴과 같은 말이다. 북측에서는 갱도라는 말을 쓰는데, 갱도를 순우리말로 하면 굴길이다. 갱도(굴길)와 땅굴(토굴)은 다른 개념이다. 갱도는 사람이나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게 땅속에 뚫어놓은 지하통로이고, 땅굴은 사람이나 짐승이 들어가 사는 지하생활공간이다. 갱도에는 입구의 반대쪽에 반드시 출구가 있지만, 땅굴은 출입구 하나만 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에 따르면, 개성 인근 군사분계선 일대에는 1998년 이전에 조선인민군이 뚫어놓은 남진갱도 6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 3개는 한국군이 발견했으나, 나머지 3개는 그 탈북자의 진술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북의 지하시설에 관한 개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남진갱도, 갱도진지, 지하대피소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이를테면, 남진갱도는 조선인민군이 한국군과 주한미국군을 공격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뚫어놓은 지하기동로다. 그러므로 남진갱도의 입구는 군사분계선 북쪽에 있고, 출구는 군사분계선 남쪽에 있다. 그와 달리, 갱도진지는 적의 위성감시를 피하고, 적의 공습이나 화력타격을 받지 않기 위해 전투병력과 군사장비가 들어가는 지하군사시설이다. 조선인민군의 지하군사시설 중에는 전략군이 운용하는 핵기지, 항공 및 반항공군이 운용하는 지하활주로, 지하격납고, 지하레이더기지, 해군이 운용하는 지하해군기지 등이 있다. 

 

다른 한편, 지하대피소는 전시에 공습이나 화력타격을 받지 않기 위해 피신하는 지하방호시설이다. 조선인민군 제11군단 예하 부대에서 군사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뒤 월남한 탈북자가 2020년 12월 2일 <자유북한방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북에 있는 지하대피소는 폭이 3m이고, 길이는 약 2km이며, 입구에 6~8개의 굽이길이 있다고 한다. 지하대피소 입구에 만들어놓은 6~8개의 굽이길은, 적이 지하대피소 입구를 폭격했을 때 화염과 폭풍이 지하대피소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차단해주는 장치다.  

 

이 글에서 분석, 고찰하려는 것은, 조선인민군이 1998년 이전에 굴설한 남진갱도 6개가 개성 인근 군사분계선 일대 어딘가에 있는데, 그 중에서 3개는 한국군이 발견했으나, 나머지 3개는 탈북자의 진술로 알려졌을 뿐이고, 한국군이 발견하지 못했다는 보도내용이다. 이런 보도내용을 분석적으로 고찰하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지난 시기 한국군은 북의 남진갱도 4개를 발견했다. 4개의 남진갱도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군이 1974년 11월에 발견한 제1갱도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군사분계선 남쪽 1.2km 지점에 있다. 한국군이 1975년 3월에 발견한 제2갱도는 강원도 철원군 근동면 군사분계선 남쪽 900m 지점에 있다. 한국군이 1978년 10월에 발견한 제3갱도는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군사분계선 남쪽 435m 지점에 있다. 한국군이 1990년 3월에 발견한 제4갱도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북동쪽 26km 지점에 있다. 

 

위에 열거한 사실을 보면, 한국군이 발견한 4개의 남진갱도는 탈북자가 말한 6개의 남진갱도와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군이 발견한 남진갱도가 4개 있고, 탈북자가 남측 정보당국에 진술한 남진갱도 6개가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보도기사에서는 한국군이 남진갱도 3개를 발견했다고 했으니, 오보가 아닐 수 없다. 한국군이 남진갱도 4개를 발견했는데, 3개를 발견했다고 단순히 착오한 것이 아니라, 한국군이 남진갱도 6개를 발견하지 못했는데도, 3개를 발견하고 3개는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오보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군은 탈북자의 진술을 듣고 개성 인근 군사분계선 일대 어딘가에 6개의 남진갱도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남진갱도는 개성 인근 군사분계선 일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인민군은 240km에 이르는 군사분계선 전역에서 남진갱도를 굴설했다. 이와 관련하여 2013년 10월 11일 <동아일보> 보도기사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군 육군본부가 국회에 제출한 비공개보고서를 인용한 그 보도기사에는 한국군이 2000년 이후 몇몇 탈북자들의 진술을 통해 알아낸 남진갱도에 관한 첩보가 들어있다. 그 첩보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제2군단이 주둔하는 개성 인근 군사분계선 일대 어딘가에, 그리고 제5군단이 주둔하는 철원군 군사분계선 일대 어딘가에 22개의 남진갱도가 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에 나온 탈북자가 2009년에 남측 정보당국에 진술한 6개의 남진갱도는 2000년 이후 몇몇 탈북자들이 남측 정보당국에 진술한 22개의 남진갱도들 가운데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2000년 이후 몇몇 탈북자들이 남측 정보당국에 알려준 22개의 남진갱도가 군사분계선 전역에 있는 수많은 남진갱도들 가운데 일부라는 사실이다. 군사분계선 전역에는 남진갱도가 몇 개나 있을까? 남진갱도에 관한 정보는 군사기밀이므로, 외부에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추론한다. <사진 1> 

 

▲ <사진 1> 위의 사진은 한국군이 1990년 3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북동쪽 26km 지점에서 발견한 제4남진갱도 내부를 촬영한 것이다. 사진에 나타난 것은 암석층 구간이다. 한국군은 1974년, 1975년 1978년에 각각 군사분계선 다른 지역에서 북의남진갱도를 발견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발견한 남진갱도는 4개다. 그런데 최근 외신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이 발견하지 못한 남진갱도 6개가 개성 인근 군사분계선일대에 더 있다고 한다. 한국군은 동서로 240km에 이르는 군사분계선 일대에 조선인민군이 뚫어놓은 남진갱도가 24개 정도 있는 것으로 추정하지만, 여러 자료를 종합, 분석하면 남진갱도의 총수는 48개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2. 740여 건의 첩보를 입수했어도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충격적인 것은, 2000년 이후 몇몇 탈북자들이 22개의 남진갱도가 각각 위치한 지역들이 어디인지를 남측 정보당국에 진술했는데도, 한국군은 남진갱도를 단 한 개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남진갱도가 있는 지역을 알면서도,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무척 힘들고 어려운 남진갱도탐사작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수수방관하는 것 아니다. 

 

한국군 육군본부가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남진갱도에 관한 보고서를 인용한 2013년 10월 11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는 육군본부 탐지과와 수도방위사령부 공병단에 갱도탐사인원을 배치하고, 연간 4억8,000여 만원의 예산을 들여 갱도탐사작업을 계속하고 있고, 한국군 수뇌부는 탈북자들의 진술에 따라 남진갱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지역들에서 갱도탐사를 집중적으로 벌이라는 명령을 2009년 이후 2013년까지 7차례나 최전방부대들에 내렸다고 한다. 또한 2015년 1월 2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는 1982년 이후 2014년까지 남진갱도에 관한 740여 건의 첩보를 입수하고, 590개 지점을 시추했으나, 아무런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2017년 3월 2일 <국방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은 탈북자들의 진술과 위성영상자료를 종합, 분석하여 선정한 27개 구역에서 매년 400여 개의 시추공을 뚫고 갱도탐사를 계속하고 있으며, 지하 1.5km까지 시추공이 내려가는 시추장비 16대와 탐사장비 12대를 보유하였다고 한다. 또한 한국군은 청음장비 34대를 동원하여 이미 뚫어놓은 9,300여 개의 시추공에서 24시간 청음하면서 특이한 소음이 들리지 않는지 감시한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보면, 한국군이 남진갱도탐사작업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으나, 아무 것도 찾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왜 찾지 못한 것일까?

 

위에 인용한 <동아일보> 보도기사에 나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근무하는 어느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서울보다 면적이 더 큰 대규모 유전을 발견하는 확률도 1% 정도에 불과한데, 지질이 매우 복잡한 지하 200m에 있는 폭이 2m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갱도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한다. 한국군이 남진갱도를 찾아내는 것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떨어진 바늘 한 개를 찾아내는 것만큼 힘들다는 말이다. 

 

지난 시기 한국군이 4개의 남진갱도를 찾아낸 것은 탐사결과가 아니라 우연한 발견이었다. 이를테면, 제1갱도는 1974년 11월 15일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던 한국군 병사들이 지하에서 공기구멍을 통해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일대를 파헤쳐 찾아낸 것이다. 또한 한국군은 1974년 9월 탈북자의 진술을 듣고 제3갱도가 있는 지역을 알아내고, 그 지역을 돌아다니며 4년 동안 탐사작업을 집중적으로 벌였으나 찾지 못했는데, 1978년 10월 17일 갑자기 지하에서 폭발음이 들리면서 시추공에서 지하수가 솟구쳐 오르는 바람에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한국군 탐사요원들과 미국군 탐사요원들로 구성된 합동탐사단이 남진갱도가 있음직한 징후가 나타난 지역을 돌아다니며 300차례의 시추작업을 벌인 끝에 제4갱도를 발견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한국군이 남진갱도를 찾지 못하는 또 다른 요인은, 그들이 사용하는 시추장비와 탐사장비가 노후화된 것이다. 2013년 10월 11일 <뉴스1>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이 갱도탐사에 사용하는 시추장비는 수입한지 34년이 지났고, 탐사장비는 수입한지 21년이 지났다고 한다. 그처럼 낡은 장비를 가지고 탐사작업을 하고 있으니, 남진갱도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한국군 남진갱도탐사단이 시추장비를 동원하여 갱도를 탐사하기 위해 시추공을 뚫는 장면이다. 한국군은 탈북자들의 진술과 위성영상자료를 종합, 분석하여 선정한 27개 구역에서 매년 400여 개의 시추공을 뚫고 갱도탐사를 계속한다. 그들은 이미 뚫어놓은 9,300여 개의 시추공에서 24시간 청음하면서 특이한소음이 들리지 않는지 감시한다. 그런데도 한국군은 지난 30년 동안 북의 남진갱도를 한 개도 찾지 못했다. 한국군은 자기들이 아무리 애써도 북의 남진갱도를 찾지못하면서, 마치 남진갱도가 더 이상 없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다.  

 

 

3. 전술갱도가 있고, 전략갱도가 있다

 

2018년 1월에 나온 <주간동아> 1123호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제593부대, 제667부대, 제744부대는 갱도를 전문적으로 건설하는 공병부대라고 한다. 2013년 12월 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인민군 설계연구소를 현지지도했는데, 그 설계연구소에서 핵공격에도 견딜 만큼 견고한 갱도의 설계도를 완성하면, 갱도건설전문부대들이 그 설계도에 따라 갱도를 시공하게 된다. 

 

조선인민군이 갱도를 건설한 역사는 6.25전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5월 24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6.25전쟁 시기에 조선인민군 3개 군단과 중국인민지원군 8개 군단은 우리나라 중부지역을 동서로 관통하는 250km 길이의 전선에 거대한 갱도진지를 구축했다고 한다. 그들은 삽과 곡괭이로 갱도를 굴착하면서 나오는 버럭을 갱도출입구까지 운반해놓았다가, 적에게 노출되지 않는 야간에 손수레에 실은 버럭을 산기슭으로 나르며 밤낮으로 갱도굴착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처럼 치렬하게 갱도를 굴착한 조선인민군은 1,730개의 통로를 가진, 총길이가 88.3km인 장거리갱도를 굴설했고, 31,700개소에 이르는 각종 엄체호를 팠고, 총길이가 263km나 되는 참호를 팠다. 다른 한편, 중국인민지원군은 7,780개 통로를 가진, 총길이가 198.7km인 장거리갱도를 굴설했고, 752,900개소에 이르는 각종 엄체호를 팠고, 총길이가 3,420km나 되는 참호를 팠다. 놀랍게도,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이 함께 건설한 거대한 갱도진지의 총길이는 근 4,000km에 이른다. 지금도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오성산 일대에는 전투병력 60,000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거대한 갱도진지가 남아있다. 이처럼 조선인민군의 갱도굴착기술과 갱도전법은 1950년대 격전의 포화 속에서 피땀으로 창조된 유산이다. 그들이 미국군의 무차별 폭격과 포격을 물리칠 수 있었던 승리의 비결도 바로 갱도전법이었다.    

 

조선인민군은 6.25전쟁 정전 이후 오늘까지 60여 년 동안 갱도굴착기술을 발전시켜왔다. 6.25전쟁 시기에 그들은 삽과 곡괭이로 갱도진지를 굴착했고, 1980년대까지는 착암기와 폭약으로 갱도진지를 굴착했는데, 1990년대 이후에는 조선에서 자체로 만든 소형 갱도굴착기(tunnel boring machine)와 폭발음이 거의 나지 않는 무폭음 폭약으로 갱도진지를 굴착하고 있다. 이처럼 굴착수단이 발달하자 굴진속도는 이전에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빨라졌다. 

 

또한 조선인민군은 다양한 갱도전법을 개발했다. 중국인민해방군이나 로씨야군도 갱도전법을 사용하지만, 조선인민군처럼 갱도전법을 중시하는 군대는 없다. 조선인민군의 갱도전은 조선인민군의 화력타격전, 야간습격전과 더불어 한국군과 주한미국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지난 60여 년 동안 조선인민군이 뚫어놓은 남진갱도들은 단거리남진갱도와 장거리남진갱도로 구분된다. 단거리남진갱도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약 10km에 이르는 남측 전방지역까지 뚫어놓은 갱도를 말하고, 장거리남진갱도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50km 이상 남측 후방지역 깊숙이 뚫어놓은 갱도를 말한다. 또한 조선인민군이 굴설한 남진갱도들은 전술갱도와 전략갱도로 구분된다. 전술갱도는 전시에 경무장한 특수작전군 저격부대가 남측 후방으로 은밀히 침투하는 갱도를 말하고, 전략갱도는 전시에 전차와 장갑차 같은 중장비들이 남측 후방으로 은밀히 침투하는 갱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의 남진갱도는 단거리전술갱도와 장거리전술갱도, 단거리전략갱도와 장거리전략갱도로 구분되는 것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단거리전술갱도와 단거리전략갱도는 굴착거리가 짧아 굴진작업이 비교적 쉬우므로 그 수가 많고, 장거리전술갱도와 장거리전략갱도는 굴착거리가 길어 굴진작업이 어려우므로 그 수가 적다. 

 

그런데 국방부는 단거리남진갱도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장거리남진갱도의 존재를 부인한다. 2014년 12월 6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는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뚫린 단거리갱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길이가 30km 이상인 장거리남진갱도는 지금까지 굴착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기술공학적으로도 굴착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부인해도 장거리남진갱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5년 1월 2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는 조선인민군이 60km 길이의 장거리남진갱도를 굴착하는 경우, 지상으로 통하는 환기구를 3km마다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20개나 되는 환기구들의 위치가 노출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장거리남진갱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월간조선> 2007년 4월호에 실린, 북에서 갱도굴착에 참가한 경험이 있고, 1980년대 후반에 월남한 탈북자 4명이 진술한 경험담에 따르면,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시공된 태천강발전소의 물길갱도는 길이가 40km인데, 굴착공사 중에 물길갱도 한쪽에 긴 환기통이 설치되었고, 출입구에 설치된 송풍기가 그 환기통으로 바람을 보내주었기 때문에 건설자들이 물길갱도 안에서 굴착노동을 하면서도 호흡장애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1990년 3월 5일 <중앙일보> 보도는 조선인민군이 1972년 5월부터 각 군단별로 군사분계선 전역에 남진갱도를 굴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조선인민군은 1972년 이전에도 전투병력과 군사장비가 들어가는 갱도진지를 건설해왔지만, 1972년부터 각 군단별로 본격적인 남진갱도굴착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지난 48년 동안 240km에 이르는 군사분계선 전역에 남진갱도를 얼마나 많이 뚫어놓았을까?

 

2000년 이후 몇몇 탈북자들이 남측 정보당국에 진술했으나 한국군이 발견하지 못한 남진갱도는 22개다. 2013년 5월 15일 <뉴스한국>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 갱도탐지과는 군사분계선 일대에 22~24개의 남진갱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조선인민군이 남진갱도를 10km마다 1개씩 뚫어놓은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부의 동서를 관통하는 군사분계선은 240km인데, 서부전선은 조선인민군 제2군단이 담당하고, 중부전선은 조선인민군 제5군단이 담당하고, 동부전선은 조선인민군 제1군단이 담당한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1개 군단이 담당하는 전선구간은 동서로 약 80km라고 볼 수 있다. 국방부 갱도탐지과가 추정한 것처럼, 조선인민군이 남진갱도 24개를 굴설했다면, 조선인민군 1개 군단이 남진갱도를 8개씩 굴설한 것으로 된다. 

 

그러나 조선인민군이 전쟁의 운명을 좌우할 가장 중대한 갱도굴설을 지난 48년 동안 추진해오면서 군단별로 겨우 8개씩만 굴설했을리 만무하다. 조선인민군 1개 군단이 지난 48년 동안 남진갱도를 16개씩 굴설한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더 합리적인 추론이다. 이런 추론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최전방에 주둔하는 3개 군단은 남진갱도를 5km마다 1개씩 굴설하여 2020년 12월 현재 48개의 남진갱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육군이 기존 지하전 교리(underground warfare doctrine)를 수정, 보완하여 2017년에 펴낸 새로운 야전교범에 따르면, 지하도시로 기능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지하군사시설 4,800개 이상이 조선 각지에 있다고 한다. 미국 육군은 조선에 건설된 4,800개 이상의 각종 지하군사시설들 가운데서 남진갱도가 몇 개인지 알지 못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48개의 남진갱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017년 6월 21일 미국군 소식지 <스타즈 앤드 스트라이프스(Stars & Stripes)>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굴설한 남진갱도 1개에서 시간당 약 30,000명의 전투병력이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48개의 남진갱도 중에서 약 40개는 단거리남진갱도인데, 단거리전술갱도가 약 30개이고, 단거리전략갱도가 약 10개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약 48개의 남진갱도 중에서 약 8개는 장거리남진갱도인데, 장거리전술갱도와 장거리전략갱도가 각각 4개씩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20년 11월 5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20시 보도시간에 나온 장면이다. 광부들이 소형 갱도굴착기로 석탄광맥을 굴착하는 모습이다. 스웨리예에서 만들었다는 대형 갱도굴착기는 엄청나게 크고, 값도 매우 비싸서조선의 갱도굴착공사에서는 쓸 수 없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자기 실정에 맞는 소형갱도굴착기를 만들었다. 위의 사진은 석탄갱 광부들이 소형 갱도굴착기를 사용하는 장면이지만, 조선인민군 갱도굴설전문부대가 남진갱도를 굴착할 때도 위와 같은 소형 갱도굴착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굴진 중에 암석층이 나오면, 착암기로 구멍을 내고 그 구멍에 폭약을 넣고 터뜨리는데, 조선에서는 폭발음이 거의 나지않는 무폭음 폭약도 개발했다. 이처럼 소음을 적게 내는 소형 갱도굴착기와 무폭음폭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군이 전방지역에 뚫어놓은 9,300여 개 시추공에 청음장비를 넣고 24시간 청음을 계속해도 굴착소음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4. 한 개의 주선갱도와 여러 개의 지선갱도들

 

북의 전술갱도에 관한 사례를 살펴보자. 2020년 12월 2일 조선인민군 제11군단 예하 부대에서 군사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뒤 월남한 어느 탈북자가 <자유북한방송>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1개 중대병력이 굴착을 맡은 구간에서 1년 동안 굴착하면, 이듬해에는 다른 1개 중대병력이 뒤를 이어 굴착한다고 한다. 그 탈북자는 2001년에 남진갱도굴착공사에 동원되었는데, 당시 자신이 속한 중대 병사들이 굴착한 갱도는 폭이 1.5m이고, 길이는 약 45~50km이었으며, 2001년 당시 계속 남쪽으로 굴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말한 갱도의 굴착폭과 굴진길이를 보면, 그 갱도는 경무장한 저격병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후방 깊숙이 침투하는 장거리전술갱도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이번에는 북의 전략갱도에 관한 사례를 살펴보자. 군사복무시절에 갱도굴착공사에 동원되었던 조선인민군 제6사단 군관출신 어느 탈북자의 경험담이 실린 <뉴스한국> 2013년 5월 17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8명이 1개조로 편성되고, 3개조가 8시간씩 교대로 24시간 갱도를 굴착하는데, 갱도폭은 10m라고 한다. 조선인민군 제6사단은 서부전선에 주둔하는 최전방 전투부대이므로, 갱도폭이 10m나 되는 거대한 전략갱도가 서부전선 어디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에서 갱도를 굴착한 경험이 있고, 1980년대 후반에 월남한 탈북자 4명의 경험담이 실린 <월간조선> 2007년 4월호 기사에 따르면, 강원도 철원에 주둔하는 조선인민군 제5군단은 땅크가 다닐 정도로 규모가 큰 남진갱도를 몇 군데 굴착했다고 한다. 이 경험담은 폭이 10m 정도인 또 다른 전략갱도가 중부전선 어디엔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그 전략갱도의 굴진길이를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그것이 단거리전략갱도인지 아니면 장거리전략갱도인지는 알 수 없다. 

 

돌이켜보면,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3축6륜 정찰장갑차, 신형 4축8륜 보병전투차량, 신형 4축8륜 기동포, 신형 저격땅크를 비롯한 고속기동전장비들은 모두 전략갱도를 통해 이동하기에 적합한 무기체계들이다. 이런 사정은 조선인민군이 2020년 12월까지 통일대전준비를 완료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1개 중대병력이 2m의 폭을 가진 전술갱도를 하루에 평균 20m씩 굴착하면, 그들이 한 해 동안 굴진하는 길이는 7km이고, 그런 굴진속도로 40년 동안 계속 뚫으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200km 이상 굴진할 수 있다. 지도를 보면, 개성역에서 평택미국군기지까지 거리는 약 120km다. 또한 조선인민군 1개 중대병력이 10m의 폭을 가진 전략갱도를 하루에 평균 4m씩 굴착하면, 그들이 한 해 동안 굴진하는 길이는 1.5km이고, 그런 굴진속도로 40년을 계속 뚫으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60km를 굴진할 수 있다. 지도를 보면, 개성역에서 광화문까지 거리가 약 60km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지금 오산미공군기지와 평택미국군기지 지하에는 전시에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저격부대들이 지표토사를 뚫고 나올 장거리전술갱도 출구가 각각 은폐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와 더불어 서울 중심부 땅속에도 전시에 조선인민군 기갑부대들이 지표토사를 뚫고 나올 장거리전략갱도 출구와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전투부대들이 지표토사를 뚫고 나올 장거리전술갱도가 각각 은폐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인민군의 남진갱도는 본선갱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본선갱도에서 갈려나간 많은 지선갱도들이 여러 방향으로 많이 뚫려있다. 그 지선갱도들마다 입구가 하나씩 있다. 본선갱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지선갱도들마다 입구가 한 개씩 있는 것이다. 지선갱도들마다 입구를 설치한 이유는 굴착공사 중에 나오는 많은 분량의 버럭을 밖으로 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갱도굴착길이가 60km 이상 길어지는 경우, 약 70만t의 버럭이 나오는데, 이것을 모두 실어내려면 5t 화물차 10대가 약 8년 동안 계속 날라야 한다. 그런데 5t 화물차 10대가 한 개의 갱도입구에 집결하여 계속 드나들면 미국의 첩보위성에 입구위치가 노출될 수 있으므로, 화물차 10대를 여러 지선갱도입구에 분산배치하여 여러 방향으로 버럭을 실어내면서 미국의 위성감시망을 따돌리는 것이다. 

 

또한 전시에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은 서로 멀리 떨어진 여러 지선갱도입구를 통해 갱도에 들어가 본선갱도에서 합류하게 된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수많은 저격병들과 군사장비들이 갱도에 들어가려고 한 개의 갱도입구에 집결하면, 미국의 정찰위성에 공격징후를 노출하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의 남진갱도는 그처럼 입구가 여러 개 설치되었을 뿐 아니라, 출구도 여러 개 설치되었다. 전시에 본선갱도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침투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은 여러 지선갱도출구 지하에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공격명령이 내리면 서로 멀리 떨어진 여러 지선갱도출구에서 일제히 지표토사를 뚫고 지상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미국 육군이 기존 지하전 교리를 수정, 보완하여 2017년에 펴낸 새로운 야전교범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굴설한 남진갱도 1개마다 출구가 5개씩 있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인민군의 단거리전술갱도는 약 30개, 장거리전술갱도는 약 4개로 추정되는데, 이들 전술갱도 1개마다 출구가 5개씩 있다고 보면, 전체 출구는 170개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저격부대들이 170개의 전술갱도출구에서 2~3m의 지표토사를 파내고 지상으로 나온다고 가정하면, 최정예 저격병 90,000명이 30분 만에 남측 후방 각지에서 쏟아져 나와 습격전에 돌입할 수 있다. <신동아> 2020년 1월호에 실린, 한국군 당국이 2014년에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은 이전에 전방지역에 36,000명을 배치했었는데, 2014년 이후에는 90,000명으로 증강배치했다고 한다. 

 

또한 조선인민군의 단거리전략갱도는 약 10개, 장거리전략갱도는 약 4개로 추정되는데, 이들 전략갱도 1개마다 출구가 5개씩 있다고 보면, 전체 출구는 70개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기갑부대가 70개의 전략갱도출구에서 2-3m의 지표토사를 뚫고 지상으로 나온다고 가정하면, 약 700대에 이르는 전차, 장갑차, 보병전투차량들이 30분 만에 남측 후방 각지에 뚫린 전략갱도출구들에서 쏟아져 나와 고속기동전에 돌입할 것으로 예견된다. 

 

주목되는 것은, 전략갱도출구가 남측 고속도로에 가까운 지점에 은폐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시에 전략갱도출구에서 쏟아져 나온 조선인민군 기갑부대는 고속도로에서 운행하는 일반차량들의 교통흐름을 타고 남해안까지 고속으로 진격하게 된다. 고속도로에서 남진하는 조선인민군 기갑부대를 저지할 유일한 공격수단은 한국군과 주한미국군이 보유한 공격헬기인데, 전시에 그 공격헬기들은 조선인민군 조종방사포의 초정밀타격으로 이미 파괴되었거나, 치렬한 교전이 벌어지는 전방작전에 우선적으로 투입되기 때문에 후방의 고속도로는 무방비상태이다. <사진 4>    

 

 

▲ <사진 4> 위쪽 사진은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열병식에 참가한 특수작전군 저격병들이 행진하는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그 열병식에 참가한 신형 저격땅크들이 행진하는 장면이다. 사진 속에 나타난 저격병들은 갱도전과 야간습격전에 필요한 우수한 전투장비를 갖추었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저격병 90,000명은 남측 후방 각지에 뚫린 170개의 전술갱도출구에서 30분 만에 쏟아져 나와 습격전에 돌입할 것으로 예견된다. 또한 전시에 조선인민군 기갑부대 소속 전차, 장갑차, 보병전투차량 약 700대는 남측 후방 각지에 뚫린70개의 전략갱도출구에서 30분 만에 쏟아져 나와 고속도로를 타고 남해안까지 고속으로 진격할 것으로 예견된다. 통일대전준비를 완료했다는 그들의 말을 건성으로 듣지 말아야 한다.  

 

 

5. 남진갱도 입구 앞에서 대기하는 저격병들과 저격땅크들 

 

1990년대 국방부 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낸 윤여길 공학박사는 2013년 5월 17일 <뉴스한국>에 실린 대담기사에서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남진갱도를 통해 남하하면, “한국군을 장악하는 것은 하루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조선인민군 교도지도국 제19여단(2017년에 창설된 특수작전군에 편입)에서 군사복무를 하고 1995년에 제대한 후 2000년에 월남한 탈북자가 2013년 5월 20일 <뉴스한국> 취재기자에게 진술한 경험담에 따르면, 전시에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이 남진갱도로 남하하면, 1개 저격여단 6,000~8,000명이 서울 또는 다른 대도시를 점령할 수 있으며, 하루 안에 충청남도까지 진격할 수 있다고 한다. 

 

충청남도 이남지역에는 레이더상실고도(음영구역) 이하 초저공으로 날아가는 조선인민군 야간습격기들이 달빛 없는 무월광심야에 출동하게 된다. 항공륙전병 30명이 탑승하는 야간습격기의 비행속도는 시속 240km이며, 항속거리는 500km다. 야간습격기가 북측 전방지대에서 이륙하면, 2시간 30분 만에 부산과 목포에 도달하게 된다. 야간습격기의 활주거리는 약 300m밖에 되지 않으므로, 학교운동장, 골프장, 도로 같은 평지에 착륙할 수 있다. 조선은 야간습격기를 자체로 생산하는데, 2020년 1월 현재 약 500대를 실전배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전시에 항공륙전병 15,000명은 야간습격기 500대에 분승하여 2시간 만에 충청남도 이남 각지 상공에서 강하하여 습격전에 돌입하게 된다. 2020년 10월 15일 미국의 온라인 매체 <나의 북조선(My North Korea)>에 실린 위성사진분석기사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전에 6개였던 저공강하훈련장을 10개로 증설했다고 한다. 야간습격기를 타고 심야에 공중으로 침투하는 항공륙전병의 저공강하훈련에 힘을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이 남진갱도로 남하하여 남측 각지에 도달하기 전에, 조선인민군 화력타격부대들은 300mm 조종방사포, 400mm 조종방사포, 500mm 조종방사포, 600mm 조종방사포, 610mm 조종방사포, 그리고 사거리가 500km인 3세대 전술유도무기, 사거리가 690km인 4세대 전술유도무기를 비롯한 초정밀화력타격수단들을 동원하여 한국군 기지의 핵심부과 주한미국군기지의 핵심부를 족집게식으로 제거하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이것이 북에서 말하는 통일대전의 시작이다. 

 

이처럼 초정밀화력타격으로 한국군 기지들 및 주한미국군 기지들의 핵심부가 제거되면,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저격부대가 그 기지들 인근에서 불시에 나타나 습격전과 포위전에 돌입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군과 주한미국군은 무기고에서 무기를 꺼내기 전에, 전투기나 헬기를 타고 이륙하기 전에 사면이 포위될 것으로 예견된다. 포위전의 말미에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예하 함화공작부대가 나타나 포위망에 갇힌 한국군 장병들과 주한미국군 장병들에게 확성기를 통해 투항권유방송을 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초정밀화력전, 갱도전, 야간습격전, 함화공작이 배합된 조선인민군의 초단기속결전은 인명살상과 시설파괴를 최소화하고, 72시간 만에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인명살상과 시설파괴는 치렬한 교전이 벌어지는 군사분계선 인근에서만 발생하게 된다. 

 

조선인민군, 사회안전군, 로농적위군은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2020년 12월 1일부터 올해 제1기 전투정치훈련을 시작했다. 연례적으로 진행되는 제1기 전투정치훈련은 2021년 3월 31일까지 4개월 동안 계속되고, 제2기 전투정치훈련은 2021년 7월 1일부터 시작된다. 

 

올해 제1기 전투정치훈련을 진행하기 위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연락군관들을 군단사령부, 사단사령부, 여단사령부에 파견하여 최고사령관의 훈련명령서를 각 지휘관들에게 직접 전달했다. 훈련명령서를 받은 야전지휘관들은 자기 휘하의 연대와 대대를 직접 순회하면서 각급 지휘관들에게 최고사령관의 훈련명령을 침투시켰다. 최고사령관의 훈련명령서에는 조선인민군, 사회안전군, 로농적위군이 올해 수행해야 할 전투정치훈련의 과업과 기간이 명시되었다. 

 

2020년 12월 1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올해 제1기 전투정치훈련에서 특징적인 것은 전략군 훈련기간이 다른 군종에 비해 훨씬 늘어났는데, 전략군 부대들에 새로 배치된 각종 핵타격수단들의 운용방법을 숙련시켜 불의의 정황에 대처할 수 있게 강도 높은 훈련을 하라는 것이 최고사령부의 명령이라고 한다. 

 

올해 제1기 전투정치훈련에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저격병들도 전략군 로케트병들과 마찬가지로 강도 높은 갱도전 훈련을 진행할 것이다. 조선인민군 교도지도국 제19여단에서 군사복무를 하고 1995년에 제대한 후 2000년에 월남한 탈북자가 2013년 5월 20일 <뉴스한국> 취재기자에게 진술한 경험담에서 갱도전 훈련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북에서 군사복무를 할 때 폭이 1m, 높이가 1.5m밖에 되지 않아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는 비좁은 갱도에 들어가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입구만 있고, 출구는 없는 갱도 안에 들어가면, 공기가 잘 통하지 않고, 어둡고, 완전히 폐쇄된 공간이어서 숨이 막히는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데, 갱도적응훈련은 그런 압박감을 극복하는 초기훈련이라고 한다. 갱도적응훈련을 마치면, 완전무장을 하고 남진갱도를 따라 장거리를 민첩하게 이동하는 신속기동훈련을 한다고 한다. 또한 남진갱도 안에서 방독면을 쓰고 가스살포구간을 통과하는 화학전 훈련도 하는데, 병사들이 화학전 훈련 중에 질식해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거기에 더하여, 남진갱도로 이동하다가 적의 공격을 받는 경우 불의의 정황에 대비한 후퇴훈련도 하는데, 남진갱도 안에 500~1,000m 지점마다 폭발물을 1개씩 설치해두었다가 적의 공격을 받고 후퇴할 때는 폭발물을 하나씩 터뜨리며 이동한다고 한다. 

 

이처럼 강도 높은 갱도전 훈련을 군사복무기간 12년 동안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강철처럼 단단해진 저격병 90,000명이 성능이 우수한 저격무기를 들고 남진갱도 입구 앞에서 최고사령관의 통일대전명령을 대기하고 있으며, 저격병들과 협동작전을 벌일 첨단성능의 저격땅크들도 남진갱도 입구 앞에서 최고사령관의 통일대전명령을 대기하고 있다. 통일대전준비를 완료했다는 그들의 말을 건성으로 듣지 말아야 한다.

2020/12/16

고별방문에 얽힌 해괴하고 복잡한 사연들

 [한호석의 개벽예감](423)

자주시보 2020년 12월 1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아부와 굴종이 가득 찬 사은환대

2. 모화사상, 모일사상, 모미사상

3. 비건의 거짓말과 허망한 기대

4. 협상탁자에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

 

 

1. 아부와 굴종이 가득 찬 사은환대

 

스티븐 비건(Stephen E. Biegun)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조선특별대표가 서울을 방문하기 직전인 2020년 12월 6일 미국 국무부가 보도자료를 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비건 부장관은 “한미동맹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고, 인도-태평양의 안전, 안정, 번영을 위한 공동노력을 논의하고, 북조선에 대한 지속적이고 긴밀한 공조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 정부 관리들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보도자료를 읽어보면, 비건 부장관이 중대현안을 논의하려고 서울을 방문했었구나 하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는 비건 부장관이 서울을 방문한 의미를 너무 크게 부풀려놓았다. 그가 서울을 방문한 목적은 퇴임을 앞둔 때에 서울에 가서 그 동안 알고 지낸 고위관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려는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비건 부장관이 서울을 방문한 때는 그가 퇴임하기 약 40일 전이다. 그의 부장관 임기는 2021년 1월 19일에 끝난다. 퇴임을 앞둔 그가 새로 들어설 바이든 행정부에 업무를 인계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할 시기에 서울에 가서 무슨 중대현안을 논의할 수 있었겠는가. 실제로 그가 서울방문 중에 꺼내놓은 것은 알맹이 없는,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퇴임을 앞둔 관리에게서 알맹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2) 비건 부장관은 즉흥적인 초청발언을 즉석에서 수락하고 서울을 방문했는데, 그렇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2020년 11월 17일과 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한미재계회의 제32차 총회를 대면회의 및 화상회의로 진행했는데, 회의참석자들 중에는 비건 부장관과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도 있었다. 그런데 최종건 제1차관은 화상회의에 참석한 비건 부장관에게 닭한마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면서 그를 초청했고, 비건 부장관은 “닭한마리라면 언제든지 좋다”고 말하면서 즉석에서 초청을 수락했다. (인삼, 대추, 밤, 당귀, 찹쌀을 닭 뱃속에 넣고 푹 끓이는 삼계탕과 달리, 닭한마리는 전골처럼 끓이는 요리인데, 그 담백한 맛에 매료된 비건 부장관은 서울에 갈 때마다 광화문에 있는 닭한마리식당을 찾는 단골손님이다.) 

 

최종건 제1차관의 즉흥적인 초청을 수락한 비건 부장관은 2020년 12월 8일부터 11일까지 4박5일 동안 서울을 방문했다. 그런데 자기 혼자 가지 않고, 다른 관리들을 데리고 갔다. 알렉스 웡(Alex N. Wong) 미국 국무부 대조선특별부대표와 앨리슨 후커(Alliosn M. Hooker) 백안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비건 부장관과 함께 서울에 나타났다. 원래 최종건 제1차관은 비건 부장관에게 서울에 오면 닭한마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즉흥적인 초청의사를 전했는데, 외교부는 비건 부장관의 서울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의 동료들까지 초청했다. 그렇게 되어 비건 부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고별방문단이 서울에 나타났던 것이다. 퇴임을 앞둔 미국 고위관리들이 고별방문단으로 서울에 나타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2020년 12월 8일 고별방문단이 탑승한 전용기가 경기도 오산에 있는 미공군기지에 착륙했다. 오산미공군기지는 한국 정부의 행정권이 미치지 않는 미국통치구역이므로, 고별방문단은 출입국 절차를 전혀 밟지 않았다. 그들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제공한 헬기를 타고 오산기지를 이륙해 서울 용산기지에 내렸다. 서울에서 4박5일 일정을 마친 고별방문단은 12월 12일 이른 아침 오산미공군기지에서 전용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20년 12월 1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서울 한남동에 있는장관공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조선특별대표의 고별방문을위해 차린 성대한 사은만찬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사진 속에서 비건 부장관, 알렉스 웡 미국 국무부 대조선특별부대표,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의 얼굴이보인다. 퇴임을 앞둔 미국 차관급 관리가 닭한마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외교부 제1차관의 즉흥적인 초청을 받고 서울을 찾은 고별방문인데도, 외교부 장관,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장관급 관리들이 줄줄이 차관급 관리인 비건을 만나 사은회동을 했고, 사흘 동안 연속해서 그를 위해 사은만찬을 차렸다. 옛날 한양을 방문한 명제국 황제의 칙사를 극진히 영접했던 조선왕조 고위관리들의 굴욕적인 보은환대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고별방문단이 서울에 머무는 동안 해괴한 사건이 벌어졌다.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장관급 관리들이 줄줄이 차관급 관리인 비건을 만나느라 법석을 떨었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그들은 앞을 다투어 비건을 극진히 대접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대등한 지위에서 외국 관리를 상대하는 외교활동의 기본원칙을 내던지고, 아부하고 굴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퇴임을 앞둔 비건에게 왜 아부하고 굴종했을까?  

 

2020년 12월 1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당국자들은 비건 부장관이 한미관계발전에 이바지한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비건 부장관이 한미관계발전에 무엇을 어떻게 이바지했는지 알 수 없지만, 문재인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건 부장관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사례행위로 나타났는데, 그게 바로 아부와 굴종이 가득 찬 사은환대였다. 그 내막은 다음과 같다. 

 

2020년 12월 9일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각각 비건 부장관을 위해 사은회동을 했다. 2020년 12월 10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비건 부장관을 위해 사은조찬을 차렸고,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그를 위해 사은오찬을 차렸다. 같은 날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각각 비건 부장관을 위해 사은회동을 했다. 

 

사은환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0년 12월 9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비건 부장관을 위해 첫 번째 사은만찬을 차렸다. 12월 10일에는 최종권 외교부 1차관이 비건 부장관을 위해 두 번째 사은만찬을 차렸다. 그리고 12월 11일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서울 한남동에 있는 장관공관에서 성대한 사은만찬을 대접했다. 퇴임을 앞둔 미국 차관급 관리가 닭한마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즉흥적인 초청을 받고 서울을 찾은 고별방문인데도,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장관급 관리들이 줄줄이 차관급 관리인 비건을 만나 사은회동을 했고, 사흘 동안 연속해서 그를 위해 사은만찬을 차렸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퇴임을 앞둔 비건 부장관에게 사은환대를 베풀며 아부하고 굴종한 것은, 옛날 한양을 방문한 명제국 황제의 칙사를 극진히 영접하였던 조선왕조 고위관리들의 굴욕적인 보은환대를 연상케 한다.  

 

 

2. 모화사상, 모일사상, 모미사상

 

‘조선왕조실록’에는 굴욕적인 보은환대에 관한 다음과 같은 역사기록이 있다.

 

“명나라 황제의 칙사가 와서 칙서를 받으라고 고하니 임금이 절하고 나서 서쪽 층계로 올라가 칙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조아리며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해 명을 받들지 않겠나이까 하고 아뢰었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조아리며 아부, 굴종한 임금은 1400년부터 1418년까지 조선왕조 제3대 국왕으로 재임한 태종 이방원이다. 태종은 명제국 황제에게 겉으로만 아부하고 굴종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1407년에 명제국을 숭모하는 모화라는 뜻을 지닌 모화루(慕華樓)라는 건축물을 세운 것만 봐도, 명제국 황제를 향한 그의 아부와 굴종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태종은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한양을 방문할 때 지나가는 돈의문(서대문의 원래 명칭) 밖에 모화루를 세웠는데, 그 누각 앞에는 명제국 황제의 은덕을 맞이한다는 뜻을 지닌 영은문(迎恩門)을 세웠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조선을 방문하면, 2품 이상 고위관리인 원접사(遠接使)가 한양을 떠나 압록강 국경에 있는 의주까지 올라가서 극진히 영접했고, 2품 이상 고위관리인 선위사(宣慰使)가 의주에서 한양에 이르는 먼 행로에 있는 5개소를 지날 때마다 성대한 환영연회를 차렸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모화루에 당도하면, 왕세자가 고위관리들을 거느리고 그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배례했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경복궁에 입궐하면, 조선 국왕은 칙사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황제의 칙서를 받고 황제에게 아부, 굴종하는 보은환대의식을 진행했다.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한양방문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갈 때는 고위관리들이 영은문 왼쪽 도로변에 길게 늘어섰다가 일시에 배례하면서 그를 전송했다. <사진 2>

 

▲ <사진 2> 명제국 황제의 칙사가 경복궁에 입궐하면, 조선 국왕은 칙사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칙서를 받고 황제에게 아부, 굴종하는 보은환대의식을 진행했다. 명제국 황제인 영락제가 사망했을 때, 세종은 자기와 영락제는 군신관계라고 하면서 궁궐에 영락제 위패를 모시고 그 앞에서 27일 동안 소복을 입고 식음을전폐하며 곡을 하는 해괴망측한 행동을 계속하는 바람에 건강이 매우 나빠졌다.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훌륭한 임금으로 후세에 알려져 서울광화문 한복판에 동상까지 건립하고 세종대왕으로 칭송받는 그는 자기 건강을 해치면서 명제국 황제에게 아부하고 굴종한 지독한 모화사상 중독자였다.  

 

그런데 태종보다 한 술 더 떠서 명제국 황제에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부하고 굴종한 조선 국왕이 있었다. 그는 1429년에 모화루를 모화관으로 개칭했고, 1433년에는 모화관을 확장, 개축하면서 모화관 남쪽에 연꽃이 만발하는 연못을 만들어놓았고, 연못 주위에 버드나무도 심었다. 명제국 황제인 영락제가 사망한 1424년, 그는 자기와 영락제는 군신관계(임금과 신하의 관계)라고 하면서 궁궐에 영락제 위패를 모시고 그 앞에서 27일 동안 소복을 입고 식음을 전폐하며 곡을 하는 해괴망측한 행동을 했다. 27일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않고 곡을 하는 바람에 그의 건강은 매우 나빠졌다. 이처럼 명제국을 숭모하는 모화사상 중독자라고 부를 만한 그가 바로 조선의 제4대 국왕 세종이다. 세종은 27명에 이르는 조선 국왕들 가운데 가장 심한 모화사상 중독증에 걸린 왕이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훌륭한 임금으로 후세에 알려져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동상까지 건립하고 세종대왕으로 칭송받는 그가 실은 자기 건강을 해치면서 명제국 황제에게 아부하고 굴종한 지독한 모화사상 중독자였다는 사실을 알면, 그를 더 이상 세종대왕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위에 서술한 역사적 사실은 조선왕조 통치계급이 모화사상에 얼마나 중독되었는지를 말해준다. 모화사상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 동안 조선왕조 통치계급의 사상정신에 파고들어 왕조의 몰락을 재촉했다. 

 

19세기 말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청제국이 일본제국과 싸운 청일전쟁에서 패하고,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강점한 이후, 중국을 숭모하는 모화사상은 일본을 숭모하는 모일사상으로 변천되었다. 1945년 8월 일본제국이 미제국과 싸운 태평양전쟁에서 패하고, 미제국이 북위 38도선 이남지역을 점령한 이후, 일본을 숭모하는 모일사상은 미국을 숭모하는 모미사상으로 변천되었다. 

 

조선왕조 518년 동안 모화사상에 중독되었고, 일제식민지시기 36년 동안 모일사상에 중독되었던 것처럼, 8.15해방 후 지금까지 75년 동안 미국의 지배를 받아온 한국은 ‘한미동맹’을 떠받드는 모미사상에 중독되었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의 장관급 인사들과 고위관리들이 서울을 고별방문한 비건 부장관을 위해 사은환대의식을 진행한 사건은, 모화사상에서 모일사상을 거쳐 모미사상으로 변천되어온 아부와 굴종의 추악한 역사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동맹’이라는 허울을 쓰고 자행되는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모미사상을 타파하지 않으면,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3. 비건의 거짓말과 허망한 기대

 

고별방문단은 4박5일 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사은환대만 받고 돌아간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명색이 미국의 고위관리인데, 어찌 얻어먹기만 할 수 있었겠는가. 비건 부장관은 회담도 했고, 강연도 했다. 2020년 12월 9일 미국 국무부는 비건 부장관이 최종건 제1차관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각각 만나 진행한 회담과 관련하여 논평을 내놓았다. 그 논평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부장관은 한미동맹에 대한 우리의 노력을 재확인했고,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하여 한국이 지속적으로 협조해준 것에 사의를 표했다. 또한 비건 부장관은 미국이 남북협력을 지지한다는 것(U.S. support for inter-Korean cooperation)을 재확인했고,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기 위한 조선과의 의미 있는 대화에 관여하기 위해 계속 준비해왔음을 재확인했다. 부장관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과 지역안보를 증진시키기 위해 (한국이) 일본과 지속적으로 협력할 것을 권고했다.”

 

위의 인용문에 들어있는 초점은 한미동맹, 남북협력 및 조미대화, 그리고 한일안보협력으로 요약되는데, 지면이 제약된 이 글에서는 남북협력 및 조미대화에 관한 비건 부장관의 견해만 선별적으로 검토한다. 

 

1) 비건 부장관은 미국이 남북협력을 지지한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을 오도하는 허위발언이다. 미국은 남북협력을 지지하기는커녕 대조선경제제재를 가중시켜 남북협력사업을 전면 차단해버렸다. 그래서 지금 남과 북이 상호협력을 하려고 해도 미국의 극단적인 대조선경제제재에 가로막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현실이 그런데도 비건 부장관은 미국이 남북협력을 지지한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았으니, 참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2017년 조미적대관계가 폭발 직전 상태에 이르렀을 때, 조선에 대한 적대감에 사로잡혀 광분하던 미국은 조선에 대한 무력위협과 경제제재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다. 그런 광란 속에서도 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은 미국을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 끌어냈다. 2018년 6월 15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전날에 진행된 회담준비접촉에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당시 직책)은 조선이 핵시험과 미사일발사시험을 중지하고, 미국인 억류자 3명을 석방하고, 지하핵시험장을 폐쇄하는 성의 있는 행동을 취했으므로,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조선제재를 해제한다는 조항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지만, 미국측은 끝내 거부했다고 한다.   

 

더구나 미국은 남북협력사업을 통제, 차단하기 위해 2018년 11월 20일 한미실무단(Working Group)이라는 것을 만들어놓았다. 한미실무단의 미국측 대표가 바로 비건 부장관이다. 한미실무단을 통해 남북협력사업을 통제, 차단하는 장본인의 입에서 미국이 남북협력을 지지한다는 말이 나왔으니, 그처럼 뻔뻔스러운 거짓말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2019년 2월 12일부터 13일까지 금강산에서 진행된 남북교류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남측 취재기자들이 휴대용 컴퓨터와 카메라 같은 취재장비를 가지고 금강산에 가려고 했지만, 미국은 그런 취재장비들이 제재품목에 속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방북을 가로막았다. 미국의 대조선제재는 취재장비는 물론이고 작은 나사못 한 개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남북협력을 완전 봉쇄하는 극단적인 조치다. 그런 극단적인 제재만행으로 남북협력사업은 완전히 차단되었다.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되자 미국은 더욱 광란적으로 대조선제재를 가중시켰다. 미국은 2019년 3월 21일 조선 선박 49척과 조선과 거래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외국 선박 46척을 무더기로 제재하는 횡포를 저질렀다. 그런 횡포가 거듭되면서 미국의 대조선제재대상은 개별인사 177명과 주요기관 313개소로 늘어났다. 

 

2020년 1월 27일 일본 <요미우리신붕> 보도에 따르면,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백악관을 방문한 2020년 1월 8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협력을 재개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사를 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묵묵부답으로 거부의사를 밝혔고, 그 전날 로벗 오브라이언(Robert C. O'Brien)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실장을 만났을 때도 금강산관광재개, 개성공단재개, 북측 철도 및 도로 현대화사업을 추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오브라이언은 제재를 무시하고 남북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면서 반대했다고 한다. 

 

2) 비건 부장관은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조미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준비되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조선과 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비건 부장관은 2020년 12월 10일 고별방문 중에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조미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난 2년 반 동안(비건이 부장관으로 재임한 기간을 뜻함-옮긴이) 우리는 미국이 70년 묵은 갈등관계를 뒤로하고 새로운 관계로 함께 나아가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음을 북조선에 언명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난 2년 동안 북조선측 협상상대는 참여의 기회를 잡는 것 대신에 협상의 장애물을 찾는 일에 자주 몰두함으로써 많은 기회를 허비하고 말았다. 하지만 주목되는 것은, 우리가 비록 합의사항을 진척시키지는 못했어도, 싱가폴 정상회담은 아직 온전히 건재한다는 사실이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20년 12월 10일 고별방문 중에 서울에 머물던 비건 부장관이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미국과 한반도의 미래'라는 제목의 특별강연을 하는 장면이다. 그는 강연에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아직 건재하다고 주장했고, 조미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면서, 조선이 제시한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이제 와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아직 건재하다느니,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느니 하면서 협상재개의사를 표명해봤자 그것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조선은 협상을 재개하려는 미국의 거듭되는 제의에 대해 응답조차 하지 않고 무시해버렸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을 읽어보면, 비건 부장관이 조미협상이 파탄된 책임을 부당하게 조선에 돌리면서도,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협상을 재개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아산정책연구원 강연에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협상이 재개되는 경우, 조선이 제시했던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사도 표명했다. 강연에서 그는 만일 조미협상이 재개되면, “우리는 행동계획(roadmap for action)을 수립하는 것을 합의해야 하며, 그 행동계획이 궁극적으로 도달할 목표도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건 부장관이 그런 말을 꺼내놓기 전에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국무장관은 2020년 7월 9일 취재기자들에게 “트럼프 행정부는 북조선이 제기하는 전략적 위협에 관한 진지한 대화에 참여하는 접근법을 취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비건 부장관이 이제 와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아직 건재하다느니, 조선이 제시한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느니 하면서 협상재개의사를 표명해봤자 그것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가져가겠다는 “날강도 같은 요구”를 꺼내놓아 회담을 결렬시켰을 뿐 아니라, 회담결렬 이후 대조선제재를 더욱 광란적으로 가중시키면서 대조선전쟁연습을 형태와 방식만 바꿔 계속했는데, 이런 일련의 도발행동들을 본 조선은 조미협상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버렸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비건 부장관이 이번 고별방문 중에 조미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기 훨씬 전부터 백악관과 국무부가 조선에 협상재개를 거듭 제의했건만, 조선은 응답조차 하지 않고 무시해버렸다. 2020년 1월 10일 로벗 오브라이언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의 온라인매체 <악시오스>와 대담하면서 “우리는 2019년 10월에 진행된 스톡홀름 조미실무회담을 다시 이어가기 바란다는 의사를 조선에 전했다”고 밝혔지만, 조선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2020년 7월 16일 미국의 언론매체 <어메리컨 컨서버티브>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2020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전에 그 동안 오랜 교착상태에 빠진 조미협상에 돌파구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 희망을 품은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1월과 3월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으나, 답신을 받지 못했다. 

 

2020년 9월 17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조선 외무성에 조선의 수해복구와 코로나방역을 위한 인도적 지원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제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은 응답조차 하지 않고 무시해버렸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실을 보면, 조미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비건 부장관의 기대야말로 허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4. 협상탁자에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

 

조선이 미국의 협상제의에 응답하지 않는데도, 팜페오 장관과 비건 부장관이 조선에 협상재개의사를 거듭 밝힌 것은 그들이 2019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두 차례에 걸쳐 언명한 중대한 문제를 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망각한 사연은 다음과 같다.   

 

1)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언명한 중대한 문제를 망각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언명한 중대한 문제는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2020년 7월 10일에 발표한 담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담화에 따르면,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조선 경제의 밝은 전망과 경제적 지원을 설교하며 전제조건으로 추가적 비핵화조치를 요구하는 미국 대통령에게 화려한 변신과 급속한 경제번영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 제도와 인민의 안전과 미래를 담보도 없는 제재해제 따위와 결코 맞바꾸지 않을 것이라는데 대하여서와 미국이 우리에게 강요해온 고통이 미국을 반대하는 증오로 변했으며 우리는 그 증오를 가지고 미국이 주도하는 집요한 제재봉쇄를 뚫고 우리 식대로, 우리 힘으로 살아나갈 것임을 분명히 천명하시였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이 녕변핵시설과 다른 핵시설들을 폐쇄하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이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조건을 즉석에서 거부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거부의사를 밝힌, 말이 되지 않는 협상조건을 다시 꺼내놓고 협상을 재개해보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2)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2019년 8월 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직접 언명한 중대한 문제를 망각하였다.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Robert U. Woodward)가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관리들을 면담한 자료를 가지고 집필한 책 ‘격노(Rage)’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8월 5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미국이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나는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게 될 우리 두 나라의 실무협상에 앞서 도발적인 연합군사훈련이 취소 또는 연기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연합군사훈련은 취소도 연기도 되지 않았다. (중략) 조선반도 남반부에서 벌어지는 연합군사훈련은 누구를 상대로 하는 것이며, 누구를 억지하려는 것이며, 누구를 패배시키고 공격하려는 것인가? 개념적으로나 가설적으로, 전쟁준비훈련의 대상은 우리 군대이다. 이것은 우리의 오해가 아니다. (중략) 나는 이런 감정을 당신에게 숨기고 싶지 않다. 나는 정말 매우 불쾌하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8년 9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양복 안주머니에서 꺼내 보이는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2019년 8월 5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미국이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판은 협상상대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지 않고 변칙적으로 계속하면서 협상을 재개해보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밥 우드워드가 집필한 책 ‘격노’에 따르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당시 국방장관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작은 단위의 군사훈련은 필요하다. 장병들이 훈련하지 않고 막사에 앉아있는 것은 좋지 않다. 군사훈련을 하지 않는 군대는 몰가치하다”고 말한 뒤에 국방부 청사로 돌아가서 사단급 대조선전쟁연습을 하지 않는 대신 연대급, 여단급, 대대급, 중대급, 소대급 대조선전쟁연습을 지상과 공중과 해상에서 중단 없이 계속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매티스가 억지주장을 늘어놓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조선전쟁연습 중단공약을 반대했어도,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의 공약을 이행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매티스의 반대를 제지했다면, 미국의 대조선전쟁연습은 중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매티스의 억지주장을 용납하면서 대조선전쟁연습을 묵인하는 최악의 실책을 저질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이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하여 협상상대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대조선전쟁연습이 중단되지 않는 한 조미협상을 재개하지 않을 것임을 친서에서 언명했다. 그러므로 미국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지 않고 변칙적으로 계속하면서 협상을 재개해보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2020년 7월 10일에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은 대화의 문이나 열어놓고 우리를 눅잦히면서 안전한 시간을 벌기를 원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나는 조미 사이의 심격한 대립과 풀지 못할 의견차이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미국의 결정적인 립장변화가 없는 한 올해 중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도 조미수뇌회담이 불필요하며 최소한 우리에게는 무익하다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이것은 조선과 미국이 협상탁자에 마주앉을 필요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미국이 협상재개를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