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31

‘세포등판’에 풀피리 소리 울릴 때

[한호석의 개벽예감] (43)
자주민보 2012년 12월 29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북에서 쓰이는 ‘먹는 문제를 푼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북은 이제껏 인민의 먹는 문제를 풀기 위해 끊임없이 힘써왔다. 북에서 쓰이는 “먹는 문제를 푼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쌀, 옥수수, 콩, 밀, 보리 같은 곡물을 더 많이 생산하여 인민의 식량수요를 원만히 충족시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북에서 먹는 문제를 푼다고 했을 때, 그 말은 곡물증산을 뜻하는 것이지 ‘기근 탈출’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대북악담 중독자들은 북측 인민들이 기근을 겪고 있다는 황당한 헛소문을 아직도 퍼뜨리고 있고, 그런 헛소문이 언론에 보도되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헛소문을 사실로 믿어버리는 우매한 사람들이 있다.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북의 현실과 기근을 겪는 소말리아의 현실은 서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만큼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도, 대북악담 중독자들이 말이 되지 않는 북의 ‘기근설’을 자꾸 퍼뜨리는 까닭은, 북의 자립적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자기 인민들을 먹여 살리지 못할 만큼 피폐하였다는 식의 중상비방을 늘어놓음으로써 대북 혐오감을 남측 민중에게 심어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2년 11월 7일 <중앙일보>는 최근 북에서 이제껏 곡물을 생산해오던 곡창지대 여기저기를 과수원으로 갈아엎고 있다고 하면서, “북한이 올해 대외적으로 선전해온 식량난이 과대포장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썼다. 북이 ‘먹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식량난’이라는 말을 꺼낸 적은 없는데도, 그 보도기사에는 북이 대외적으로 식량난을 선전해왔다고 쓰여 있다. 세상에 식량난을 밖에 선전하는 나라도 있을까? 북이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헛소문을 퍼뜨려온 쪽은 <중앙일보> 자신이면서도, 북이 대외적으로 식량난을 선전해왔다는 황당한 거짓말까지 늘어놓은 것이다.

대북악담 중독자들은 이전에 식량난 또는 식량위기라는 말을 자주 쓰더니, 요즈음에는 식량부족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 아주 최근에는 영양부족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식량난, 식량위기라는 말과 식량부족, 영양부족이라는 말은 사실상 같은 뜻이다. 예컨대,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12년 12월 6일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35개 식량부족국가들 가운데 북을 제멋대로 포함시키면서, 북이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약 280만 명이 굶주릴 위기에 놓여있다고 하였는데, 그들이 북의 만성적인 식량부족이나 굶주릴 위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엉터리 통계자료를 만들어 헛소문을 퍼뜨리는 짓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가 펴낸 북의 식량사정에 관한 자료가 헛소문 퍼뜨리기에 악용된다고 지적하는 까닭은, 위에 인용한 <중앙일보> 보도기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에서는 이제껏 곡물을 생산해오던 곡창지대를 여기저기 갈아엎어 초대형 과수원만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초대형 남새온실(채소온실), 그리고 묘목생산시설과 화초생산시설도 함께 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북에서는 곡물생산 이외에 과일생산, 채소생산, 묘목생산, 화초생산에도 국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북에서 곡창지대 곳곳을 갈아엎고 초대형 과수원과 초대형 남새온실, 묘목생산시설과 화초생산시설을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북이 곡물을 자급자족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가 늘어놓는 왜곡된 자료에 나온 것처럼, 만일 북이 정말로 식량부족을 겪고 있다면, 곡창지대에서 곡물을 생산해야 하는 것이지 그런 지대를 갈아엎지는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우선 곡물생산에 국력을 집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북측 곳곳에 초대형 과수원과 초대형 남새온실이 건설되는 것은, 북에서 말하는 인민의 ‘먹는 문제’가 곡물문제, 과일문제, 채소문제를 총체적으로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 통계자료를 인용한 <미국의 소리> 2012년 11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북의 연간 식량수요량은 540만t인데, 유엔세계식량계획(WFP) 통계자료를 인용한 <연합뉴스> 같은 날 보도에 따르면, 2012년 말에서 2013년 초에 북의 수확량은 지난해에 비해 10% 정도 늘어난 580만t이 될 것이라고 한다. 연간 식량수요량이 540만t이고, 올해 말과 내년 초 수확량이 580만t이라면, 식량 40만t이 남는 데도, <자유아시아방송> 2012년 11월 21일 보도는 북측 인민 24,00만 명 가운데 약 350만 명이 굶주리고 있다는 황당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북의 자립적 사회주의계획경제를 헐뜯으려는 악의를 가지고 날조한 그런 거짓말은, 너무 오랫동안 들어와서 이제는 환멸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유엔세계식량계획이 추산한 북의 올해 수확량 580만t은 매우 부정확한 통계수치다. 왜냐하면, 그 통계수치는 방북조사단 몇 명이 열흘 동안 강원도, 함경남도, 평안남북도에서 40개 군만 돌아보고 추산한 통계값이기 때문이다. 북에 200개 군이 있는데, 방북조사단은 그 가운데서 겨우 20%에 해당하는 40개 군만 돌아보았을 뿐 아니라, 북이 방북조사단에게 ‘조사활동’을 허용한 40개 군은, 다른 군들에 비해 작황이 상대적으로 그리 좋지 않는 지역들이므로, 그 조사단이 추산한 수확량 580만t은 매우 부정확한 것이다. 유엔세계식량계획 대표단이 대북식량상황 조사방식에 관해 언급한 <조선일보> 2011년 4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유엔세계식량계획 방북조사단의 조사활동은 식량비축창고에 가서 실물을 확인하는 게 아니고, 북이 방북조사단에게 넘겨준 자료를 가지고 책상 위에서 추산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 북의 실제 수확량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북의 올해 실제 수확량은 유엔세계식량계획이 추산한 580만t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관해서는 <조선신보> 2009년 8월 12일 보도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보도에 따르면, 3년 전 당시 석탄 가스화 공정이 건설되고 있었던 함경남도의 흥남비료련합기업소와 평안남도의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두 곳에서 석탄 가스화 설비를 각각 완성하여 생산설비를 만가동하면 연간 비료생산량을 100만t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인데, 연간 비료생산 100만t 목표를 달성하는 목표시점을 올해 2012년으로 잡아놓았던 것이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비료 1t당 식량 10t을 생산할 수 있으므로, 2012년에 비료를 100만t 생산하면 식량도 최고 1,000만t까지 생산할 수 있다고 전망하였던 것이다.

북이 연간 비료생산량을 외부에 발표하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연간 비료생산 100만t 목표를 내건 올해에 그 목표에 근접하였다면, 식량생산량도 당연히 580만t을 훌쩍 뛰어넘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아무리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북의 올해 실제 식량생산량은 유엔세계식량계획이 추산한 식량생산량보다 50만t 정도 늘어난 630만t 수준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북이 방대한 양의 곡물을 전시식량으로 비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의 전시식량은 조국통일대전에 대비하여 전략적으로 비축한 식량이므로, 평시에는 전시식량에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다. 남측 정부 고위당국자의 말을 인용한 <조선일보> 1997년 10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15년 전에 북의 전시식량 비축분은 놀랍게도 120만t이나 된다는 것이다. 1997년이라면 북이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었던 ‘고난의 행군’ 시기인데, 그처럼 힘든 조건에서도 전시식량을 120만t이나 비축한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전시식량 생산량이 유엔세계식량계획 방북조사단에게 북이 제공한 수확량 통계자료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었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생산, 비축한 전시식량이 120만t이었다면, 식량생산량이 부쩍 늘어난 요즈음에 비축하는 전시식량은 아무리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50만t이 늘어난 170만t 수준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북의 올해 식량생산량은 실제 식량생산량 630만t과 전시식량 생산량 170만t을 합해 모두 800만t 수준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인다.

북의 축산정책은 선진적일까?

북에서는 인민들에게 열량(calory)을 원만히 공급하기 위한 곡물증산을 넘어서, 인민들에게 비타민(vitamin) 등의 영양소를 원만히 공급하기 위한 과일증산과 채소증산을 맹렬한 속도로 추진하고 있다. 이 글에서 맹렬한 속도라는 말을 쓰는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예컨대, 2008년 12월에 착공하여 2011년 6월에 완공한 대동강과수종합농장은 건설비용이 북측 화폐로 10억9,580만원이 들어간 초대형 과일생산기지인데, 135,070 평방미터의 부지에 키 작은 우량품종 사과나무 360만 그루를 심고, 그 밖에도 배, 복숭아, 딸기도 심었다. 2014년에 가면, 대동강과수종합농장의 연간 수확량이 50,000t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2008년 현재 유엔식량농업기구가 추산한, 북측 전역의 사과 생산량은 635,000t이다.

사람이 생활하는데 필수적인 영양단위 가운데는 열량과 비타민은 물론이고 단백질도 있다. 농업생산이 늘어나고 식품가공이 발달하여 식생활이 더 풍성해질수록, 사람들은 열량과 지방은 적고 단백질은 많은 저열량, 저지방, 고단백질 식품을 찾게 된다. 그것이 현대인의 건강한 생활에 요구되는 균형 잡힌 식생활이다. 그러므로 북에서도 인민의 먹는 문제를 풀려면 열량 식품과 비타민 식품만이 아니라 단백질 식품도 원만히 공급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축산과 낙농에 힘써야 한다.

북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만연된 북측 외부에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북은 이제껏 선진적인 축산정책을 실시해왔다. 북의 축산업에서 나타난 선진적 특징을 열거하면 이렇다.

첫째, 축산에서 알곡먹이를 적게 쓰는 사료를 개발하거나 알곡먹이를 사료로 쓰지 않아도 되는 비알곡 축산업을 육성한다. 이것은 알곡먹이가 아니라 풀먹이를 주는 집짐승을 기르는 방식으로 축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북에서 돼지, 닭, 오리는 알곡먹이가 적게 들어간 사료로 써서 기르는 축산품종이고, 염소와 토끼는 알곡먹이 대신에 풀먹이를 사료로 써서 기르는 축산품종이다. 2008년 현재 북의 연간 토끼고기 생산량은 91,000t으로, 북은 세계 4위 토끼고기 생산국이다. 또한 북에서는 염소젖을 가공하여 생산한 치즈, 버터, 요구르트, 케피르 같은 각종 낙농제품을 생산한다.

둘째, 북에서는 군단위로 농업과 축산업을 발전시켜 인근식량체계(local food system)를 건설하였다. 쉽게 말해서, 인근식량체계란 식량의 생산, 유통, 공급이 근거리에서 지역단위로 이루어지도록 상호연결된 체계를 뜻한다. 북에서는 1970년대에 사회주의농업체계를 완성할 때부터 이미 인근식량체계를 세웠는데, 축산부문에서도 각종 목장들을 군단위로 건설하였고, 지방식료산업을 육성하는 원칙에 따라 군단위로 축산과 낙농을 발전시켜온 것이다.

그런데 인근식량체계의 우월성을 뒤늦게 자각한 미국, 서유럽, 일본 같은 나라들에서는 2000년대에 와서야 기존 원격식량체계(global food system)를 인근식량체계로 전환하기 시작하였다. 이를테면, 미국의 인근식량시장(local food market) 증가추세를 보면, 2001년 400개소에서 2005년 1,144개소로 늘어났으며, 2010년 초에는 1,400개소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런 발전추세를 비교해보면, 인근식량체계를 세우는 데서 북은 미국, 서유럽, 일본보다 30년 이상 앞서나갔음을 알 수 있다.

셋째, 북은 농산과 축산의 순환체계, 농산과 양어의 순환체계를 세웠다. 이것을 농산과 축산, 농산과 양어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고리형 순환생산체계라고 부른다. 고리형 순환생산체계는 유기질 비료를 생산하여 유기농업을 발전시키는 가장 선진적인 식량생산체계다.
<조선중앙통신> 2010년 11월 9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9년 10월과 11월에 평안북도닭공장, 석정돼지공장, 대동강과수종합농장을 현지지도하면서 고리형 순환생산체계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침을 제시하였고, 그 방침에 따라 고리형 순환생산체계가 북측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 북의 농축산부문에서 고리형 순환생산체계는 이미 대세로 되었다.

‘세포등판’에 빠른 속도로 건설 중인 초대형 축산기지

지금 북에서는 ‘세포등판 대자연개조사업’이 국책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2012년 12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종합적인 대규모 축산기지를 세포등판에 건설하기 위한 군민련환궐기모임이 12월 4일에 진행되었다.

세포등판은 어디에 있는 지명일까? 등판이라 했으니, 서해안 평야지대보다 높은 고원지대를 뜻하는 것이 분명하다. 지도를 보면, 서북쪽으로 야호비령산맥이 흐르고, 동북쪽으로 태백산맥이 흐르고, 남쪽으로 광주산맥이 흐르는 강원도 북측 지역 한 복판에 자리잡은 세포군이 시야에 들어온다. 세포등판에 종합적인 축산기지를 건설하는 사업은 세포군만이 아니라 세포군에 인접한 평강군과 이천군을 비롯한 3개 군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2012년 12월 27일 ‘유투브(You Tube)’에 게시된 ‘혁신창조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는 세포등판’이라는 북측 방영물은 군인건설자들을 비롯하여 남포시, 철도성, 조선대양총회사, 인민봉사총국, 황해남도 등에서 모여든 수많은 건설돌격대들이 눈 덮인 세포등판에서 풀판조성을 위한 토지정리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껏 축산업을 군단위로 발전시켜 인근식량체계를 운영해온 북에서 이제는 국책사업으로 초대형 축산기지를 건설하고 있으니, 매우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측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세포군, 평강군, 이천군 일대에 인공풀판과 자연풀판을 조성하여 초대형 축산전문기지를 건설하는 국책사업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기존 군단위 축산업에 국가적 차원의 초대형 축산업을 추가하는 새로운 축산업 발전방침을 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군단위 축산업은 종전대로 발전시키면서, 국가적 차원의 초대형 축산업을 병진시키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단위 과수업을 종전대로 발전시키면서, 국가적 차원의 과수업을 병진시키기 위해 초대형 대동강과수종합농장을 건설한 것처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세포등판에 초대형 축산종합농장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12월 19일 <조선중앙텔레비죤>이 보도한 ‘20시 보도’에 나온 강원도 농촌경리위원회 김철민 부위원장의 발언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세포등판 개간사업은 “자연풀판, 인공풀판, 방풍림, 저류지”를 건설하고, 소, 양, 염소 같은 풀먹는 집짐승을 기르는 사육기지와 가공기지, 그리고 축산업 근로자들의 주택단지를 건설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북의 표현을 빌리면, “사회주의문명강국 건설”을 위한 “웅대한 대자연 개조구상”으로 추진되는 “종합적인 대규모 축산기지” 건설사업인 것이다. 그 보도에서는 평토기(bulldozer)들이 눈 덮인 땅을 고르고 있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위의 보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자연풀판과 인공풀판을 건설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풀판이란 방목초지라는 한자말을 순우리말로 바꾸어 쓰는 북의 조선식 축산용어인데,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에 나온 강원도 농촌경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자연풀판과 인공풀판을 구분하였다. 자연풀판은 풀먹이 집짐승들을 놓아먹이는 방목지를 뜻하고, 인공풀판은 목초를 생산하는 목초지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자연풀판은 자연상태로 방치한 초원이라는 뜻이 아니라, 방목에 적합한 자연친화적 사육환경을 조성한 풀판이라는 뜻이다. 잡초와 관목이 무성하고 지면굴곡이 심한 풀판은 방목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토지를 정리하고 잡초와 관목을 제거해야 한다. 더욱이 인공풀판을 건설하는 경우에는 석회와 비료를 주고, 품종이 좋은 풀씨를 뿌려 목초지로 개간하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보도내용은 세포등판에 초대형 방목지와 초대형 목초지가 건설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포등판의 방목지 건설은 밀폐된 공장식 축사에서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사료급식으로 집짐승을 키우려는 게 아니라, 드넓은 풀판에서 친환경적 사육방법으로 집짐승을 키우려는 것이다. 인민의 건강과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주장해온 북에서 그런 친환경적 사육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계획경제에서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풀기 위한 농축산물 생산을 국가가 계획하고 관리한다. 세포등판에 세워질 초대형 축산기지가 바로 그런 사회주의축산업의 발전된 형태다.

지금 북의 각 지역 산업현장에서 추진되고 있는 ‘새 세기 산업혁명’은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세포등판에서도 열정의 불꽃을 일으키는 중이다. 2013년 세포등판에 눈뿌리 아득하게 드넓은 풀판이 펼쳐지는 날, 청춘남녀 사육공들의 유정한 풀피리 소리가 봄하늘 저편에 울려갈 것이다.(2012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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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7

진보정치역량을 다시 전선구축으로!


변혁과 진보 (10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전선에는 실의와 비관이 없다
 
대선패배의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대선패배로 절망에 빠진 민주노조 활동가들과 진보단체 활동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슴 아픈 비보가 전해졌다. 정권교체에 대한 열의와 요구가 강했으므로, 정권교체 실패에서 느끼는 실의와 비관도 그만큼 심한 것이다. 실패는 위험을 불러온다.

그러나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길에서 맞닥뜨리는 진짜 위험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실패를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다. 정권교체 실패를 실의와 비관으로 대하면 더 큰 실패를 불러오게 되며, 진보적 정권교체의 길은 그만큼 더 멀어질 뿐이다. 실의와 비관은 최후 승리를 믿는 주체의 신념과 의지가 박약한 까닭에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앞길을 스스로 가로막는 매우 유해한 자포자기 행위다.

허탈감에 빠져 있을 게 아니라, 패인을 정확히 분석하여 거기서 교훈을 찾고, 진보와 변혁이 승리할 내일을 굳게 믿으며 낙관할 때, 오늘의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실의와 비관은 없다. 이것은 자기위안적인 발상이 아니다.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그들을 중심으로 건설된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뼈아픈 실패를 겪으면서도 결코 실의와 비관을 모르는 까닭은, 그들의 시선이 패배가 아니라 전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전선이란 무엇일까?

명백하게도, 전선은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존재방식이다. 이 명제를 달리 서술하면, 진보정치는 전선의 정치이며, 사회변혁은 전선의 변혁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정치의 주체인 진보정당 자체가 진보정치세력을 당적 체계로 결합시킨 강고한 전선체이며, 또한 진보정치가 지향하는 사회변혁은 강력한 전선역량을 총결집시킨 가장 높은 수준의 전선운동으로 자기의 변혁강령을 실현해가는 것이다.

그런데 제18대 대선이 실시된 선거시기는 이전에 있었던 다른 선거시기들과 마찬가지로, 진보정당의 전선역량이 일시적으로 퇴조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다. 왜냐하면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위해 존재하는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 대 새누리당의 양자대결구도가 지배적인 선거시기에 존재감을 거의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지지율이 20%선으로 높아지면서 통합진보당, 민주통합당, 새누리당 사이에 삼자대결구도가 형성될 때, 바로 그런 정치적 변화가 일어날 때,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전선역량은 선거시기에도 약화되지 않고 되레 더 강화될 것이다.

실패를 불러온 주된 원인, 그리고 실패를 극복하는 방도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통합진보당은 자기의 추락한 지지율을 20%선으로 끌어올리는 ‘비결’을 반드시 전선에서 찾아야 한다. 진보정치활동가라면 그런 ‘비결’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이나 새누리당은 자기들의 지지율을 높이는 ‘비결’을 전선이 아니라 여론에서 찾지만, 오직 통합진보당만은 전선체를 건설하고 전선역량을 강화하고 전선을 확대하는 고유한 방식으로 자기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게 된다. 바로 이것이 진보정당과 비진보정당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존재방식의 근본적 차이이며, 비진보정당들에 대한 진보정당의 전략적 우월성이다.

제18대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한 까닭은, 분당소동과 종북모략소동으로 당세가 위축된 통합진보당이 전선역량을 잃어버리고 전선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당소동과 종북모략소동이 일어나기 전에 통합진보당 건설과 야권연대 실현이라는 개념으로 수행되었던 과업이 바로 전선구축의 실제 내용이었지만, 통합진보당은 분당소동과 종북모략소동에 휘말려 고군분투하는 바람에 그 두 가지 과업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전선구축의 실패가 제18대 대선의 정권교체 실패를 가져온 주된 원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정권교체 실패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주된 원인은 전선구축 실패였다. 전선구축에 실패한 통합진보당은 단기필마로 접전지에 나선 이정희 후보가 수구정당 대선후보에게 기습공세를 가하고 사퇴하는 전술밖에 취하지 못하였다. 단기필마 전술과 후보사퇴 전술은 통합진보당이 취할 수 있었던 제한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므로 통합진보당과 그 지지세력이 정권교체 실패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려면, 전선구축 실패요인을 분석하고 그것을 극복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자기성찰의 심정으로 다시 읽는 전선론

지금이야말로 통합진보당과 그 지지세력이 전선론을 다시 읽어보며 생각을 가다듬는 자기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전에 두 단계 사회변혁론을 서술한 글들에서 설명한 적이 있지만, 전선론을 다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이해하기 쉽게 군사학 용어를 빌려 서술하면, 전선에는 정예병력과 주력부대가 전진배치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 일컫는 정예병력이란 생산자 대중 속에 파고들어 다양한 현장정치활동을 펼치는 진보정당활동가를 뜻한다. 현재 우리의 사회정치적 현실에서는 통합진보당에 결집된 진보정당활동가들이 전선의 정예병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한 편, 이 글에서 일컫는 주력부대란 조직력과 단결력을 지닌 민주노조를 뜻한다. 현재 우리의 사회정치적 현실에서는 민주노총이 전선의 주력부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의 통합진보당은 전선적 임무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 만큼 당세가 약해졌고, 오늘의 민주노총도 전선적 임무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만큼 내부혼란을 겪고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다.

전선의 정예병력과 주력부대가 진보정치활동과 사회변혁운동을 이끌지 못하는 전선은 아직 전선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진보정당의 전선적 정치활동과 민주노조의 전선적 대중투쟁이 없이는 결코 강고한 전선을 구축할 수 없는 것이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조가 전선에 나서지 못한 대중투쟁은 아무리 많은 대중을 동원하였더라도 오래 가지 못하고 사그라지고 만다. 다시 군사학 용어를 빌려 서술하면, 정예병력과 주력부대를 전전배치하지 못한 전투는 아무리 많은 병력을 동원하였더라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들의 진보정치사와 사회변혁운동사를 살펴보면, 정예병력과 주력부대를 전진배치하지 못하여 좌절한 경험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시기 6월 민주항쟁이나 ‘촛불투쟁’이 강렬한 대중투쟁열기를 분출하였지만, 진보정당의 전선적 정치활동, 그리고 민주노조의 전선적 대중투쟁과 연결되지 못하고 분노한 대중의 자연발생적인 투쟁열기만 분출하였기 때문에, 그 폭발적 투쟁열기가 강력한 전선역량으로 전환되지 못했고, 강고한 전선이 구축되지 못했고, 미국과 수구정권의 기만술책과 폭력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중도에 주저앉았던 것이다. 그런 좌절경험에서 교훈과 극복방도를 찾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통합진보당이 가장 선명한 진보정치이념을 제시한 진보정당이지만 아직 전선적 정치활동을 본격적으로 벌이지 못하고 있고, 또한 민주노총이 가장 규모가 큰 진보적 대중단체이지만 아직 대규모 총파업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강고한 전선이 구축되지 못하고, 전선구축을 지향하는 준전선만 존재하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강고하지 못한 준전선의 역량으로는 강적들을 상대하는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강고한 전선을 구축하고 강력한 전선역량을 축적해야 수구정권과 정면대결하는 위력적인 대중투쟁을 전개할 수 있고, 그런 대중투쟁을 통해 진보적 정권교체의 길을 열어놓을 수 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을 최악 위기에 빠뜨린 분당소동과 종북모략소동이 당 안팎에서 일어났고, 이제껏 진보정당에게 ‘애정’이 별로 없던 민주노총이 그 와중에 결국 통합진보당에게 ‘별거’를 선언하였고, 민주노총 지도부 출신 노동계 인사들이 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에 들어갔고, 대중들에게 아무런 존재감도 주지 못하는 무소속 노동자 대선후보와 무소속 청소노동자 대선후보가 각각 경쟁적으로 출마한 현재 상황에서, 전선적 대중투쟁과 진보적 정권교체는 너무 멀리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준전선이나마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다.

극복방도는 명백하다. 오늘 우리의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에 요구되는 시급하고 당면한 과업은 준전선의 역량을 비상히 강화하여 강고한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준전선의 역량강화와 전선구축이야말로 정권교체에 실패한 통합진보당과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다시 일어설 재기의 활로이며 반드시 뚫고 나아가야 할 시련돌파의 지름길이다.

현 시기 전선구축에 유리한 세 가지 조건들

전선구축은 투쟁구호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계획도 요구된다. 전선구축에서 기본적인 과업은, 민주노총의 조직력을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전선역량으로 확대, 개편하는 것과 더불어 통합진보당과 진보적 대중단체들을 강고하게 결합시킴으로써 통합진보당을 강력한 전선체로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과업이 전선구축에서 ‘기본’이다. 그러한 ‘기본’과 더불어, 통합진보당은 현재 정세 속에 형성된 유리한 조건을 최대로 살려 전선구축에 더욱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유리한 조건을 손꼽을 수 있다.

첫째, 이번에 정권교체를 요구하였으나, 대선에서 패배하여 그 요구를 접을 수밖에 없었던 각계각층에서 새누리당의 집권연장에 대한 정치적 불만이 팽배하였다. 특히 20대와 30대 청년층에게 그런 정치적 불만이 매우 크다. 이런 현상은 이전의 대선 직후 상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오늘날 각계각층에 팽배한 정치적 불만은 불시에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박근혜 당선인이 무슨 ‘탕평책’이라는 소리를 꺼내놓는 것은, 각계각층에 팽배한 정치적 불만이 폭발하기 전에 ‘뇌관’을 제거해버리려는 사전조치로 보인다.

통합진보당에게 요구되는 전선역량은 정권교체 실패로 정치적 불만을 느끼는 청년층 속에 널리 잠재되어 있다. 통합진보당의 전선적 정예병력이 그런 청년층 속에 파고들어, 그들의 정치적 불만을 전선역량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현 시기 전선구축의 당면요구다.

대중의 정치적 불만은 시간이 흐르면 식어버리기 쉬우므로, 통합진보당이 참신하고 호소력 있는 청년층 정치활동을 시급히 전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 청년층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던 ‘촛불투쟁’ 같은 대규모 대중투쟁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느닷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기 전에, 폭발적인 대중투쟁열기를 전선역량으로 전환시킬 치밀한 사전준비가 통합진보당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둘째, 민생파탄으로 생산자 대중의 생존권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 저임금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심한 고통,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더 심한 민생파탄에 빠진 영세자영업자와 영세농민이 겪는 고통은 너무 가혹하다. 그런 가혹한 고통을 겪고 있는 생산자 대중 가운데는 철탑에 올라 결사적인 생존권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자포자기식 절망과 좌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게 요구되는 전선역량은 민생파탄으로 생존권이 짓밟힌 생산자 대중들 속에 널리 잠재되어 있다. 통합진보당의 전선형 정예병력이 그런 생산자 대중들 속에 파고들어, 그들의 생존권 투쟁을 적극 지원하고, 그들이 자포자기식 절망과 좌절에서 벗어나 전선에 나서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현 시기 전선구축의 당면요구다.

생산자 대중의 절망과 고통이 더 깊어지기 전에, 통합진보당은 기존 현장정치활동에 더 많은 당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으며, 민주노총은 생산자 대중의 생존권 투쟁을 안받침하는 믿음직한 투쟁주체로 일어설 필요가 있다. 민생파탄으로 무너진 아르헨티나에서 대형매장 약탈폭동과 경찰의 유혈진압이 일어나고 있는 오늘의 불행한 현실은, 생산자 대중의 절박한 생존권 요구를 전선역량으로 전환시키는 현장정치활동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통합진보당은 ‘2013년 민중 생존권 수호 구상’을 노동자, 농민, 서민에게 제시하고 이를 위해 당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셋째, 오늘 한반도 정세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위험으로 다가서고 있다. 이것은 문학적 표현도 아니고 과장된 서술도 아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과 이명박 정권이 지난 5년 동안 반북대결로 북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전쟁위험을 극도로 고조시킨 것이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이후에도 반북대결은 여전히 지속될 것이다. 이런 오늘의 정세는 이 땅에서 전쟁위험이 고조될수록 평화실현에 대한 대중적 요구도 그만큼 더 절실해지고 강렬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통합진보당에게 요구되는 전선역량은 한반도 평화실현을 요구하는 각계각층 대중들 속에 널리 잠재되어 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전쟁위험의 폭발을 저지하느냐 아니면 반북대결을 고집하게 될 박근혜 정권의 자기파멸적 행동을 방치하여 전쟁위험이 극도로 고조되느냐 하는 문제는, 반북대결을 저지하고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각계각층 대중의 집단적 의지와 행동을 통합진보당이 어떻게 조직하고 표출시키느냐 하는 데 달려있다.

특히 2013년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때로부터 60년이 되는 해이므로,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각계각층 대중의 요구도 더 강하게 표출될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2013년 평화협정 체결 구상’을 각계각층 대중들에게 제시하고, 미국과 박근혜 정권의 반북대결을 저지함으로써, 평화협정을 요구하는 각계각층 대중의 집단적 의지와 행동을 전선역량으로 조직하고 표출하는 정치활동에 힘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진보정치역량을 다시 전선구축으로! 이것이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단체들에게 주어진 당면임무다. (2012년 12월 2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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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6

박근혜의 길, 크리스티나 키르쉬너의 길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240)
통일뉴스 2012년 12월 24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예상 밖의 이변은 왜 일어났을까?

2012년 12월 19일에 실시된 제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108만 표 차이로 문재인 후보의 추격을 따돌리고 당선되었다.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을 반대하는 여러 정치세력들과 각계각층 대중들은 지난 5년 동안 벼르고 별러온 정권심판과 정권교체에 실패하고 또 다시 수구정권의 5년 통치를 받게 되었다.

수구정권 통치기간을 5년이나 더 연장시킨 결과를 낳은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패배원인은 무엇일까? 언론보도에 나온 대선결과 분석에 따르면, 박근혜 후보에게 쏠린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몰표가 그녀를 당선시킨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50대 장년층 인구는 지난 17대 대선 당시 581만 명(15.4%)이었는데, 이번 18대 대선에서는 778만 명(19.2%)으로 197만 명이나 늘었고, 60대 이상 노년층 인구는 680만 명(18.1%)에서 842만 명(20.8%)으로 162만 명이나 늘었다. 그에 비해, 20대 청년층 인구는 793만 명(21.1%)에서 733만 명(18.1%)으로 줄었고, 30대 청년층 인구도 862만 명(22.9%)에서 815만 명(20.1%)으로 줄면서 청년층 인구의 감소폭은 107만 명이나 되었다.

남측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60대 이상 노년층 인구의 증가폭이 커진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또한 노년층 투표성향이 언제나 그러했듯이 수구정당후보에게 쏠린다는 점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50대 장년층에서 일어난 이변이다. 50대 장년층의 투표참가율이 89.9%로 급등한 것도 전례 없는 일이었을 뿐 아니라, 50대 장년층이 박근혜 후보에 몰표를 던진 것도 예상 밖의 이변이었다.

이번 대선에서 50대 장년층의 투표성향과 강남3구 주민의 투표성향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부유층 거주지역인 강남3구에 사는 주민들은 새누리당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강남3구 주민들의 투표성향과 50대 장년층의 투표성향을 비교하면, 50대 장년층 표심이 박근혜 후보에게 얼마나 집중적으로 쏠렸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 대한 투표율은 강남3구 주민들이 42.6%, 50대 장년층이 37.4%였다. 강남3구 주민들과 비교할 때, 50대 장년층은 문재인 후보에게 5.2% 포인트나 더 투표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박근혜 후보에 대한 투표율은 강남3구 주민들이 59.9%, 50대 장년층이 62.5%였다. 강남3구 주민들과 비교할 때, 50대 장년층은 박근혜 후보에게 2.6% 포인트나 더 투표한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이번 대선에서 이변을 일으킨 50대 장년층의 투표성향을 좀 더 분석해보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10년 전 16대 대선에서 40대 장년층은 48.1%가 노무현 후보에게, 47.9%가 이회창 후보에게 투표하였다. 당시 두 후보의 득표율 격차는 불과 0.2% 포인트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10년 전 40대였던 그들이 50대가 되어 투표권을 행사한 이번 대선결과에서는 아주 뚜렷한 차이가 돋보인다. 이번 대선에서는 37.4%가 문재인 후보에게, 62.5%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함으로써, 두 후보의 득표율 격차가 10년 전의 0.2% 포인트에서 25.1% 포인트로 매우 크게 벌어진 것이다.

같은 연령층의 투표성향이 10년 만에 0.2% 포인트 격차에서 25.1% 포인트 격차로 크게 벌어진 것은, 그 연령층의 투표성향에서 수구정당 대선후보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준다. 50대 장년층에게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50대 장년층의 투표성향에서 변화를 일으킨 근본원인은, 그 연령층이 사회경제적 위험에 대해 매우 심각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남측 사회에서 민생파탄은 50대 장년층에게서만 일어난 게 아니라 이미 사회 전반에 확산되었지만, 특히 50대 장년층이 지난 5년 동안 이명박 정권 밑에서 겪어온 민생파탄은 가혹하다고 표현할 만큼 극심하였다. 이를테면, 소득감소, 물가폭등, 실업공포, 가계파산, 노후불안 같은 각종 사회경제적 위험이 특히 50대 장년층에게 집중적으로 몰려들었고, 그로써 그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50대 장년층에게 사회경제적 위험이 얼마나 극심하게 집중되었는지를 말해주는 아래의 분석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2009년 6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자영업 노동시장 연구’에 따르면, 1995년에 전체 자영업자 가운데 50대 이상이 96만 명(22.9%)이었는데, 2007년에는 190만 명(38.1%)으로 급증하였다. 이것은 50대 근로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른바 기업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직장에서 밀려나 자영업자로 변신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2002년의 월평균 실질소득과 2005년부터 2007년까지의 월평균 실질소득을 비교한 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20대 연령층에서 40대 연령층에 이르는 자영업자들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40만 원에서 60만 원까지 늘었고, 60대 연령층 자영업자들의 월평균 실질소득도 7만 원이 늘었지만, 유독 50대 연령층 자영업자들의 월평균 실질소득만 14만 원이 줄었다. 모든 자영업자들의 생활만족도는 제16대 대선이 있었던 2002년 이후부터 급속히 떨어지면서 정규직 임금노동자의 생활만족도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종업원을 두지 못하고 자영업자 홀로 일하거나, 몇몇 가족과 함께 일하는 영세자영업자의 임금 및 소득 만족도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및 소득 만족도보다 훨씬 더 낮았다. 주목하는 것은, 특히 50대 여성 영세자영업자와 저학력 영세자영업자가 가계파산으로 몰락할 위험이 가장 극심하다는 점이다.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표심을 움직인 요인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50대 장년층의 투표성향을 남녀 성별로 구분하면, 50대 남성 투표자들은 40.4%가 문재인 후보에게, 59.4%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였는데, 50대 여성 투표자들은 34.7%가 문재인 후보에게, 그리고 65.7%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였다. 그와 달리, 20대 여성 투표자들은 69.0%가 문재인 후보에게, 30.6%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였고, 30대 여성 투표자들은 65.1%가 문재인 후보에게, 34.7%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였고, 40대 여성 투표자들은 52.0%가 문재인 후보에게, 47.8%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였다.

이러한 여성계층의 연령별 투표성향을 살펴보면, 50대 여성 투표자들이 박근혜 후보에게 집중적으로 몰표를 던졌음을 알 수 있다. 50대 여성의 투표성향에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50대 여성 투표자들은, 가계파산으로 이미 몰락한 이른바 ‘신빈곤층’에 속한 빈민층 여성이거나, 또는 가계파산으로 몰락할 위험에 빠져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거나, 몰락위험에 빠진 영세자영업자의 배우자들인 중년 가정주부들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이 땅에서 궁핍과 빈곤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광범위한 신빈곤층 여성들이다. 바로 이들이 박근혜 후보를 향해 열광하였고, 기표소에 몰려들어 그녀에게 ‘결정적인 몰표’를 던진 것이다. 이에 관해서 아래의 두 가지 사실을 논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50대 연령층 유권자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총력안보 대통령’에 대한 오래 전의 집단기억을 다시 끌어내는 데 주력하였다. 이를테면, 새누리당은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왜곡하면서, 대중들이 그의 정치적 후예인 문재인 후보에게서 ‘안보불안감’을 느끼도록 대선용 여론조작을 벌였고, 그와는 정반대로 ‘총력안보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집단기억을 불러내 그것을 박근혜 후보에게 덧칠하면서 대중들이 그녀에게서 ‘안보안정감’을 느끼도록 대선용 여론조작을 벌였다. 이러한 인상조작술책은 청년층에게는 별로 먹혀들지 않았지만, 장년층과 노년층에게는 먹혀들었다.


대선용 여론조작이 그들에게 쉽게 먹혀든 까닭

그런 여론조작이 특히 50대 장년층에게 쉽게 먹혀든 까닭은, 그들이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반공주의 안보교육’으로 장기간 세뇌를 받으며 성장한 불행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 세대는 학교에서 ‘승공통일의 길’이라는 정규과목을 배우며 ‘반공궐기대회장’에 동원되는 등 소름끼치는 반공광기에 노출되었고, 이른바 ‘대간첩작전’이나 ‘간첩망 일망타진’ 같은 사건을 전하는 긴급보도를 들으며, ‘박정희식 총력안보’에 세뇌 당한 세대다. 그런 세대가 기억하는 박정희에 대한 인상은 폭압을 자행한 악질 독재자가 아니라 ‘총력안보’를 실현한 믿음직한 대통령이고, 그런 세대의 시야에 비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인상은 친일파 독재자 다카키 마사오의 딸이 아니라 ‘북방한계선’에 대한 북의 ‘도발’을 물리치고 ‘안보’를 튼튼히 지켜줄 ‘총력안보 대선후보’인 것이다.

둘째, 취임 후 6개월 만에 있었던 2008년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성공시대를 넘어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겠다”는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던 것처럼,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도 “국민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이명박식 감언이설을 똑같이 반복하였다. 5년 전 제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연평균 7% 경제성장, 4만 달러 국민소득 달성, 선진 7개국 진입”을 늘어놓으며 이른바 ‘747 공약’이라는 감언이설로 이 땅의 대중을 속이더니, 이번에는 박근혜 후보가 ‘민생안정’과 ‘국민행복’이라는 감언이설로 이 땅의 대중을 속인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그런 감언이설은 20대와 30대 청년층에게는 잘 먹혀들어가지 않았지만, 50대 장년층에게는 아주 잘 먹혀들어갔다. 그렇게 된 까닭은, 50대 장년층이 반서민적 재벌경제를 무슨 ‘성공적인 산업화’라고 왜곡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교육과 선전으로 장기간 세뇌를 당하며 성장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 세대는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또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라는 식의 국민선동가를 따라 부르며 박정희식 재벌경제에 대한 환상을 간직해온 세대다. 그런 세대가 기억하는 박정희에 대한 인상은 폭압적인 독재자가 아니라 ‘경제건설 대통령’이다.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50대 장년층의 집단기억 속에 들어있는 ‘새마을 노래’와 ‘잘 살아 보세’ 노래를 다시 끌어내면서, 그들의 표심을 꼬드겼다. 새누리당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귀가 아프게 들었던 ‘잘 살아 보세’라는 선동구호를 다시 들려주었고, ‘민생안정’이니 ‘중산층 70% 재건’이니 하는 귀에 듣기 좋은 말만 꺼내놓으면서 ‘민생대통령’을 뽑아달라는 대민선동에 열을 올렸다. 표심을 현혹시키는 새누리당의 선거용 감언이설은 이른바 ‘국민행복 10대 공약’을 내걸고, 18조 원에 이르는 ‘국민행복기금’을 마련하겠다는 공약발표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 대선에서 청년층은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였던 반면, 50대 이상 장노년층은 사회적 안정을 요구하였다. 문재인 후보가 제기한 정권교체라는 선거구호는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는 청년층에게는 먹혀들었지만, 사회적 안정을 요구하는 50대 이상 장노년층에게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50대 이상 장노년층 시야에서 바라보면, 문재인 후보가 주장한 정권교체는 사회적 안정을 뒤흔들 정치혼란 이외에 다른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년층이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고, 그 요구에 화합하여 문재인 후보가 정권교체를 더 큰 목소리로 외칠수록,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정권교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수록 그들은 박근혜 후보가 외친 ‘민생안정’과 ‘국가안보’에 더 깊이 현혹되면서 새누리당의 정권연장을 지지했던 것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대선후보 3자 토론회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맹공을 퍼부은 것과 무소속으로 출마한 안철수 후보가 전격 사퇴하고 문재인 지지로 돌아선 것이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안보심리’를 자극하여 그들의 표심결집을 촉진하였고, 그것이 이번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였지만, 그런 분석은 한 측면만 바라본 단견이다. 만일 이정희 후보의 박근혜 공세도 없었고, 안철수 후보의 문재인 지지도 없었다면, 청년층의 투표 참가율이 크게 떨어졌을 것이며, 그에 따라 두 후보 사이의 득표격차는 108만 표 이상 더 벌어졌을 것이다. 이정희 후보의 박근혜 공세와 안철수 후보의 문재인 지지가 청년층의 투표열의를 끌어올려 득표격차를 108만 표로 좁혀놓았다고 분석해야 옳으며, 또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안보교육’ 중독증과 박근혜 후보의 ‘민생안정’ 감언이설이 상호협동작용(synergy)을 일으켜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표심을 움직이면서, 이번 대선의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해야 옳다.


<타임>이 박근혜 당선인에게 전한 불길한 예언들

이번 대선 선거일 직전에 박근혜 후보를 ‘독재자의 딸’로 지칭하였던 미국의 유력한 주간지 <타임>은 2019년 12월 19일에 나온 아시아판 온라인 보도기사에서 박근혜 당선인의 “앞길은 평탄하지 않을 것(moving forward won't be easy)”이라고 썼다. 이건 무슨 뜻인가?

첫째, <타임> 보도기사는 “한국의 민주투사들에게 박정희의 딸은 권위주의적 과거의 상징”이라고 지적하면서, 박근혜 정권이 ‘국론분열’이라는 난관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것은 앞으로 박근혜 정권 5년 동안, 유신독재 부활을 저지하려는 민주정치세력과 유신독재 부활을 획책하는 수구정치세력의 갈등과 대립이 격화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둘째, <타임> 보도기사는 남측에서 2013년도 경제성장율 전망치가 3.8%밖에 되지 않고, 빈부격차가 계속 확장되고, 가계부채는 증대하였고, 경제현실이 자기들에게 불리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앞으로 박근혜 정권이 경제위기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것으로 내다보았다.

<타임> 보도기사가 전망한, 박근혜 정권의 앞길에 놓인 난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정치대립 격화와 경제붕괴 위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박근혜 정권은 정치대립 격화와 경제붕괴 위험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대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념과 정책과 인맥에서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극소수 재벌들을 세계적 수준의 대부호로 만들어주고, 절대다수 노동자, 농민, 서민은 궁핍과 빈곤으로 몰아넣어온 그야말로 민생경제파탄의 가혹한 현실을 무슨 ‘민생안정’이니 ‘국민행복’이니 하는 감언이설로 덮어버린 교묘한 술수를 생각하면, 앞으로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방한계선’을 사수하여 ‘안보’를 튼튼히 한다고 하면서 북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남북관계를 파탄시키고, 평화와 통일의 길을 가로막는 정신착란성 반북대결을 생각하면, 앞으로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입으로는 ‘화합’과 ‘상생’과 ‘국민대통합’을 말하면서도, 실제 행동으로는 ‘국가보안법’과 종북모략소동으로 진보정치세력을 탄압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 투쟁을 진압하여 기존 정치대립을 더욱 격화시키는 것은, 앞으로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권의 앞날을 이처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까닭은, 이 땅의 현실이 아르헨티나의 현실과 너무도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 키르쉬너의 54.1% 득표율과 박근혜의 51.6% 득표율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어 이 땅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되었는데, 아르헨티나의 현 통치자도 집권당 ‘승리전선(FPV)’의 여성 대통령 크리스티나 키르쉬너(Cristina Kirchner)다. 두 여성 대통령은 나이도 비슷해서, 박근혜 당선인은 1952년생이고, 크리스티나 키르쉬너 대통령은 1953년생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이전 대통령의 딸이고, 크리스티나 키르쉬너는 이전 대통령의 부인이다. 그녀의 남편 네스토르 키르쉬너(Nestor Kirchner)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직하였고, 2010년 10월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크리스티나 키르쉬너는 2007년 10월 선거에서 45.3%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11년 10월 선거에서는 54.1%의 득표율로 재선되었다. 그녀의 득표율은 4년 만에 8.8% 포인트나 더 올랐다.

2011년 10월 선거에서 사민주의 정당인 사회당(PS)의 후보로 출마한 에르메스 비너(Hermes Binner)의 득표율은 16.8%였고, 자유주의 정당인 급진시민연합(UCR)의 후보로 출마한 리카르도 알폰신(Ricardo Alfosin)의 득표율은 11.1%였다. 제1야당과 제2야당 후보들이 얻은 득표율을 합해도 27.9%밖에 되지 않아서, 크리스티나 키르쉬너가 얻은 득표율 54.1%에는 대비되지 않는다.

크리스티나 키르쉬너 대통령이 그처럼 압도적인 득표율을 얻을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아르헨티나의 장노년층이 1970년대에 자기 나라를 휩쓴 남미형 대중인기영합주의(popularism)인 페론주의(Peronism)에 집단적으로 감염된 중독증을 아직 털어버리지 못하였으므로, 전형적인 페론주의 정당인 ‘승리전선’의 선거용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간 것이 원인이었다.

크리스티나 키르쉬너 대통령이 청년기에 페론주의의 정신적 세례를 받았던 것처럼, 박근혜 당선인도 청년기에 유신독재의 정신적 세례를 받았다. 아르헨티나의 장노년층이 1970년대의 페론주의 중독증을 아직 털어버리지 못한 것처럼, 이 땅의 50대 이상 장노년층도 1970년대의 유신독재 중독증을 아직 털어버리지 못하였다. 아르헨티나 장노년층이 ‘승리전선’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크리스티나 키르쉬너 후보에게 몰표를 준 것처럼, 이 땅의 50대 이상 장노년층도 새누리당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박근혜 후보에게 몰표를 주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 땅에서도 그렇고, 아르헨티나에서도 그런 것처럼 경제파탄의 절망과 고통이 너무도 깊고 혹독하다는 점이다. 1997년에 밀어닥친 사상 최악의 외환위기로 이 땅의 경제가 치명적인 파탄상태에 빠진 뒤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2001년에 밀어닥친 사상 최악의 재정위기로 아르헨티나 경제도 치명적인 파탄상태에 빠진 뒤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2011년 1월 말 현재, 아르헨티나 빈곤층은 30.9%이고 굶주림과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극빈곤층은 10.6%이며, 인플레율은 2007년 18.7%, 2008년 22.2%, 2009년 15.0%, 2010년 26.4%로 급증해왔다. 2012년 12월 3일 브라질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민생파탄으로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빈곤인구가 급증하고 그들이 몰려든 도시빈민지역은 날로 확장되고 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빈부격차는 더 말할 나위 없이 극단적으로 벌어졌다.

아르헨티나의 경제파탄 비극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2012년 10월 2일 세계 각국을 순항하면서 훈련을 실시하던 아르헨티나 해군 프리깃함 한 척이 아프리카 가나의 어느 항구에 입항하자, 가나 정부는 미국 투기자본의 요청에 따라 그 군함을 전격 억류하였다. 미국 투기자본은 10여 년 전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당시 3억7,000만 달러를 빌려주었는데, 그 동안 아르헨티나 경제가 파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빚을 갚지 못했다. 2012년 11월 16일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다른 나라 해군 군함들과 합동훈련을 하던 또 다른 아르헨티나 군함이 외채상환을 하지 못한 탓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법당국에 억류되었다. 아르헨티나의 외채총액은 1,300억 달러인데, 미국 투기자본의 독촉을 받다 못해, 군함까지 억류되는 치욕까지 당하였으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크리스티나 키르쉬너 정권이 무사할 리 만무하다. 선거용 감언이설이 먹혀들어가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녀는 지금 반정부 대중시위와 전국적인 총파업으로 몰락위기에 내몰렸다. 이를테면, 2012년 9월 13일 아르헨티나 대도시들에서 20만 명이 참가한 동시다발적인 반정부 대중시위가 일어났고, 11월 8일에는 50만 명이 참가하여 반정부 대중시위가 격화되었고, 11월 19일에도 10만 명이 참가한 반정부 대중시위가 있었고, 11월 20일에는 아르헨티나 전국노동자총연맹(CGT)과 아르헨티나중앙노조(CTA)가 전국적 총파업에 돌입하였고, 같은 날 아르헨티나 남부지역에서는 폭동을 일으킨 주민들이 대형매장을 약탈하면서 진압경찰과 충돌하였다. 대형매장 약탈폭동은 이튿날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진압경찰과 충돌하여 유혈사태를 빚었다.

오늘날 아르헨티나가 겪고 있는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다. 2012년 10월 26일 <연합뉴스>는 남측 경제가 “L자형 저성장에 돌입하였다”고 지적하면서, 이 땅의 암울한 경제현실을 밑창에 구멍이 뚫려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난파선으로 비유하였다. 현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땅에 밀어닥친 경제파탄위기는 극소수 재벌총수들에게는 금융자산증식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극대화한 호기로 되었지만, 절대다수 노동자, 농민, 서민들에게는 가계파산, 실업공포, 가정해체, 동반자살, 질병감염, 범죄만연 같은 그야말로 끔찍한 절망과 고통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예컨대, 2010년 12월 15일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세계 임금 보고서(World Wage Report)’에 따르면, 이 땅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땅에서 실질임금 증가율은 2006년 3.4%, 2007년 -1.8%, 2009년 -3.3%로 계속 악화되어왔다. 또한 2012년 1월 3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이 땅에서 3가구 가운데 1가구는 상대빈곤층으로 몰락한 적이 있고, 4가구 가운데 1가구는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절대빈곤층으로 몰락한 적이 있으며, 5가구 가운데 1가구는 절대빈곤층으로 몰락한 뒤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2012년 1월 5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구조로는 경제가 아무리 성장해도 저학력 실업자나 영세자영업자 등 빈곤계층은 그 혜택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

아르헨티나의 사회경제적 현실과 이 땅의 사회경제적 현실이 쌍둥이형 닮은꼴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아르헨티나에서는 반정부 대중시위, 전국적 총파업, 대형매장 약탈폭동이 벌어지고 있는 데 반해, 이 땅에서는 그런 폭발적 대중투쟁이나 대규모 약탈폭동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겪고 있는 폭발적 대중투쟁이나 대규모 약탈폭동이 이 땅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 땅의 암울한 경제현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민심의 ‘시한폭탄’ 초침을 재깍재깍 돌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선거용 감언이설에 속아 크리스티나 키르쉬너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던 대중들이 그녀의 감언이설에 속았음을 깨달았을 때, 민심의 ‘시한폭탄’이 폭발하였다.

2011년 10월 대선에서 54.1% 득표율로 당선된 크리스티나 키르쉬너 대통령은 불과 1년 뒤 민심의 ‘시한폭탄’이 폭발하는 바람에 지금 몰락위험에 빠졌다. 2012년 12월 대선에서 51.6% 득표율로 당선된 박근혜 당선인의 앞길이 매우 불안해 보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18대 대선처럼 다사다난했던 이 땅의 365일은 암울한 경제현실과 불안한 정치현실을 ‘시한폭탄’처럼 안은 채 또 다시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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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2

개벽예감 안겨주는 광명성

[한호석의 개벽예감] (42)
자주민보 2012년 12월 20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은하 3호 1단 추진체의 지름이 밝혀졌다
 
북의 첫 실용위성 광명성 3호 2호기가 태양동기극궤도에 올라선 때로부터 사흘이 지난 2012년 12월 15일 오후 6시, 남측 군부는 북의 위성운반로켓 은하 3호 추진체 잔해를 탐색해오던 해저수색작업을 중단하였다. 남측 군부는 해저에 가라앉은 은하 3호 잔해를 찾아내려고 구조함 1척과 소해함 4척을 서해에 긴급출동시켰는데, 12월 14일 밤 12시 26분 전라북도 군산항 서쪽 160km 해상에서 1단 추진체 잔해를 건져 올렸다. 은하라고 쓴 선명한 글자가 남아있는 원통형 잔해의 길이는 7.6m, 지름은 2.4m, 무게는 3.2t이다.

남측 군부가 은하 3호 잔해를 해저에서 건져낸 것은, 무슨 군대가 파철수집을 하느냐는 눈총을 받으며 창피함을 느낄 만한 짓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런 게 아니다. 남측 군부가 창피함을 무릅쓰고 은하 3호 잔해를 해저에서 건져올린 것이야말로, 북의 위성운반로켓 제작기술이 얼마나 높은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증거다. 만일 북의 위성운반로켓 제작기술이 그렇고 그런 수준이라면, 남측 군부가 그처럼 창피함을 무릅쓰고 구조함과 소해함을 출동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남측 군부가 건져올린 은하 3호 추진체 잔해에서 원통형 추진체의 지름이 밝혀졌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미국 군사정보기관은 북이 소련제 미사일 R-27(미국의 자의적 명칭은 SS-N-6 Serb)을 복제하여 화성 10호(미국의 자의적 명칭은 ‘무수단 미사일’)를 만들었는데, 그 복제품 지름은 원제품 지름과 똑같은 1.5m라고 추정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북이 화성 10호를 대륙간탄도미사일(미국의 자의적 명칭은 ‘대포동 2호’) 1단 추진체로 사용하였는데, 그 대륙간탄도미사일 지름은 R-27의 지름 1.5m보다 긴 2m로 확장되었을 것이라고 제멋대로 추정하였다. 미국 군사정보기관의 그런 헛소리 같은 추측에 따르면, 은하 3호는 ‘대포동 2호’를 위성운반로켓으로 전환한 것이므로, 이번에 남측 군부가 해저에서 건져올린 은하 3호 1단 추진체 잔해의 지름은 2m이어야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다밑에서 모습을 드러낸 은하 3호 1단 추진체 잔해는 지름이 2.4m나 되었다. 추진체 지름이 40cm나 더 긴 것은 큰 차이다.

원래 2005년에 발사될 예정이었지만, 7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실패만 거듭하고 있는 남측의 위성운반로켓 나로호는 3단형 추진체가 아니라 2단형 추진체인데, 나로호 1단 추진체는 러시아 후르니체프사가 만든 지름 2.9m의 앙가라 로켓이다. 러시아가 만든 2단형 추진체의 1단 추진체는 지름이 2.9m이고, 북이 만든 3단형 추진체의 1단 추진체는 지름이 2.4m다.

은하 3호 1단 추진체의 지름이 2.4m라는 것은 은하 3호가 북측 외부의 빗나간 추정을 뛰어넘는 매우 강한 추력을 뿜어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북이 만든 위성운반로켓이 그처럼 강한 추력을 뿜어냈으므로, 북이 실전배치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얼마나 강력한 추력을 뿜어내는 전략적 타격수단인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은하 3호 잔해에서 나타난 추진체 지름의 실물지표는,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한 미국 군사정보기관의 추정자료들이 순전히 엉터리였고, 그들이 고의적이고 상습적인 과소평가로 북의 미사일 능력을 왜곡하였다는 점을 백일하에 드러내었다.

북의 첫 실용위성이 발휘하는 각종 성능들

2012년 12월 12일에 지구를 떠나 우주공간에 올라간 광명성 3호 2호기는 지상으로부터 약 500km 높이에서 북극과 남극을 지나는 거대한 태양동기극궤도를 타고 초속 7.9km에 이르는 제1우주속도로 날면서, 지구를 95분 29초마다 한 바퀴씩 돌고 있다. 광명성 3호 2호기는 날마다 지구를 15번씩 돌면서, 3일에 한 차례씩 같은 지역 상공을 지나가는 것이다. 그에 비해, 남측이 다른 나라의 위성운반로켓에 실어 쏘아올린 인공위성 아리랑 2호와 3호가 같은 지역 상공을 지나려면 7일이 걸린다.

그런데 북의 위성운반로켓 성능을 고의적, 상습적으로 과소평가해온 미국 군부는 광명성 3호 2호기가 지구궤도에 진입하기는 했지만, 그 위성에서 아무런 신호도 발신되지 않고 있다느니, 북에는 아직 위성관제기술이 없어서 광명성 3호 2호기를 관제하지 못하고 있다느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이를테면, 2012년 12월 14일 일본 <NHK> 대담에 출연한 미국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 소속 관리는 “북의 물체(object)는 지상에서 통제되지 않고 있다. 그 물체와 지상관제소가 정보를 주고받은 사실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떠들어댔다. 전 세계가 인공위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유독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만 ‘물체’라고 우겨대고 있으니, 그들의 억지야말로 세계의 조롱거리가 아닐 수 없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가 꺼내놓은 ‘물체설’은 북이 위성발사에 성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북에 쏠리는 세계 각국의 관심을 어떻게 해서든지 돌려보려는 유치한 심리전이다.

2012년 12월 12일 중동지역 출장길에 쿠웨이트 시티에 있는 샤피르 호텔에서 잠자고 있었던 미국 국방장관 리언 패네타는 북이 은하 3호를 쏘아올렸다는 급한 소식을 전해주는 보좌관의 전화소리를 듣고 새벽 4시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그는 마치 잠에서 덜 깬 사람처럼, 북의 위성발사가 무슨 ‘도발’이라느니,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 본토로 쏘는 경우에도 그것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느니 하는 생뚱맞은 소리를 중얼거렸다. 심리적 충격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처럼 자기들의 직속상관인 미국 국방장관이 심리적 충격을 받고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지켜본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가 북의 성공적인 위성발사를 깎아내리려는 유치한 심리전에 매달리는 것은 그들로서는 조건반사행동인지 모른다.

광명성 3호 2호기와 관련하여 미국 군부가 늘어놓은 발언이 얼마나 허튼 소리인가 하는 것은 아래의 정보만 읽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첫째, 북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는 지구궤도를 회전하는 광명성 3호 2호기를 조종하고 있다. 2012년 4월 10일 평양의 양각도 국제호텔 1층에 있는 회의장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위성관제종합지휘소 백창호 소장은 “임의의 조종요구에 따라서 위성을 충분히 조종한 다음에 필요한 사진자료가 얻어지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발언은 지난 4월에 쏘아올린 광명성 3호 1호기가 비록 실패하였지만,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가 위성조종기술을 이미 확보하고 광명성 3호 1호기에 그 기술을 적용하였음을 알려준 것이었다. 8개월 전에 광명성 3호 1호기가 그러했으니, 광명성 3호 2호기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관계자는 2012년 12월 13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서 “큰 위성에는 작은 추력기가 탑재돼 자신이 원하는 좌표로 이동할 수 있지만 북한의 위성은 100kg에 불과해 그런 추력기가 없다”는 무식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래에서 다시 논하겠지만, 북이 개발한 추력기는 초소형이어서 무게가 100kg밖에 되지 않는 작은 위성에도 얼마든지 들어간다.

<연합뉴스> 2012년 12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당일 오후 국회 정보위원회 긴급회의에 출석한 국정원 고위관리는 광명성 3호 2호기에 대해 말하면서 “위성역할을 하려면 중량이 500kg은 돼야 하는데, 100kg 중량의 물체를 탑재했다는 것은 위성이 아니라고 봐도 무방한 정도”라는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횡설수설하였다. 이제껏 실패만 거듭해온 남측의 위성운반로켓 나로호에 탑재하는 위성도 무게가 100kg밖에 되지 않는데, 광명성 3호 2호기의 무게가 100kg이라고 해서 위성이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다니, 도대체 그런 궤변이 어디에 있을까! 국정원이 토해내는 그런 궤변을 무슨 ‘정보’인양 들어주면서 멍하니 앉아있는 국회 정보위원회는 ‘궤변위원회’로 간판을 바꿔 달아야 하지 않을까.

둘째, 북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는 지구궤도를 회전하는 광명성 3호 2호기와 교신하고 있다. 만일 지상관제소와 교신도 하지 못하는 불구화된 인공위성이 있다면, 그런 쓸모 없는 위성을 무엇을 위해 지구궤도에 쏘아올린다는 말인가.

북의 위성제작능력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그 능력을 깎아내려야 속이 시원해지는 대북악담 중독자들은 광명성 3호 2호기에서 발신하는 전파신호를 자기들이 수신하지 못하는 것을 무슨 ‘근거’라고 꺼내놓으면서, 그 위성에 통신장비가 없는 것처럼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북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 이외에 어떤 지상관제소나 위성관련연구기관도 광명성 3호 2호기가 발신하는 전파신호를 수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연합뉴스> 2012년 1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하 인공위성연구센터의 연구원들은 광명성 3호 2호기의 주파수 정보를 알지 못한 채 임의의 주파수 대역에서 무작위 검색을 자꾸 시도해보면서 북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와 광명성 3호 2호기의 교신을 추적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관계자는, 그런 무작위 검색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고, 설령 제3자가 주파수를 알아내도 교신이 암호화되었으므로 교신내용을 해독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2년 12월 12일 밤 10시 30분에 방영된 <조선중앙텔레비죤> 대담에 출연한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김혜진 실장은, 지금 광명성 3호 2호기에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그 위성에 실린 통신장비에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김정일 장군의 노래’를 전파신호로 변환한 전파가 발신되고 있다는 뜻이다. 북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서 그 전파를 수신하여 음파신호로 변환하면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울려나오게 된다.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참관하던 북의 취재진이 그 노래를 “격정 속에 들었다”고 한 것은 바로 그런 뜻이다.

셋째, 은하 3호 발사 직후, 은하 3호의 비행궤적을 추적한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는 광명성 3호 2호기에 39026이라는 자기들의 식별번호(ID)를 붙여놓았고, 2012-072A라는 국제부호(international code)도 붙여놓았다. 1998년 8월 31일과 2009년 4월 5일에 북이 각각 쏘아올린 광명성 1호와 광명성 2호가 모두 실패하였다는 허위사실을 발표하였던 미국은 왜 이번에는 광명성 3호 2호기 발사성공을 인정한 것일까? 그 까닭은 광명성 3호 2호기가 지구관측 영상자료를 위성관제종합지휘소로 송신하는 실용위성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북이 쏘아올린 시험위성과 시험통신위성은 전파신호밖에 보내오지 못하였으므로, 미국이 실패하였다는 허위사실을 국제사회에 퍼뜨려도 북이 그것을 반박할 ‘물적 증거’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광명성 3호 2호기에서 보내올 지구관측 영상자료가 미국의 실패설 조작기도를 사전에 차단해버린 ‘물적 증거’인 것이다.

2012년 12월 14일 <로동신문>에 실린 정론 ‘조선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 따르면, 광명성 3호 2호기에서 “지면촬영결과가 곧 나오게 된다”는 것이고, 위성관제종합지휘소 김혜진 실장의 말에 따르면, “나라의 과학기술과 인민경제발전에 절실히 필요한 화상자료들을 얻어 지구로 전송하게 된다”는 것이다. 2012년 3월 19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발사준비단계에 있었던 광명성 3호 1호기가 지구궤도에 올라서는 경우, 지구관측 영상자료를 극초단파(UHF)로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 전송할 계획이라는 통보를 북측으로부터 받았다고 하였다.

2012년 4월 10일 평양의 양각도 국제호텔 1층에 있는 회의장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우주공간기술위원회 우주개발국 류금철 부국장은 광명성 3호 1호기에 탑재된 지구관측 촬영장비의 분해능(resolution)이 100m라고 밝혔다. 이것은 그 위성에 탑재되었던 전자광학 촬영기(electro-optical camera)의 분해능(해상도)가 100m라는 뜻이며, 100m 길이의 지상물체가 영상자료에 점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광명성 계열의 위성에 탑재되는 전자광학 촬영기의 분해능이 100m라는 사실은, 우주공간기술위원회가 당시 평양을 방문한 북측 외부 취재진에게 공개한 정보다. 북이 쏘아올린 지구관측위성의 분해능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문제는 북의 적국들이 알아내려는 중요한 정보이므로, 광명성 계열의 지구관측위성의 분해능이 실제로 100m인지 아니면 100m 이하인지는 북측 외부에서 확인할 길이 없다.

지난 4월 광명성 3호 1호기에 탑재되었던 전자광학 촬영기의 분해능을 미국 국가항공우주국(NASA)이 만든 지구관측위성에 탑재되었던 전자광학 촬영기의 분해능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1972년 7월 23일 미국 국가항공우주국이 처음으로 제작하여 태양동기극궤도로 쏘아올린 지구관측위성 랜드샛 1호(LandSat 1)는 2년 동안 지구 전체의 75%에 이르는 면적을 촬영한 영상자료 10만 장을 보내왔는데, 그 위성에 탑재된 전자광학 촬영기의 분해능은 80m였다.

군사정찰위성은 분해능을 1m 이하로까지 낮추면서 지상물체를 아주 세밀히 관측하지만, 지구관측위성은 지상물체를 세밀히 관측하는 게 아니라 특정지역을 전체적으로 관측하게 되므로 군사정찰위성처럼 정밀영상 촬영기능이 필요하지 않다. 지구관측위성인 광명성 3호 2호기가 분해능 100m의 전자광학 촬영기로 지구를 관측하는 데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정찰위성은 지상에서 움직이는 차량 같은 작은 물체까지 포착해야 하기 때문에 분해능을 1m 이하로 낮춘 전자광학 촬영기를 탑재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초정밀 전자광학 촬영기는 크기도 매우 크고 무게도 매우 무거운 대형장비다. 이를테면, 미국의 최신형 정찰위성 KH-12의 경우, 전자광학 촬영기 렌즈만 해도 길이가 3m나 되고, 위성의 길이는 19.6m, 무게는 15t이다.

그러나 북이 자체로 군사정찰위성을 만든다고 해도, 그런 초정밀 전자광학 촬영기까지 만들 필요는 없으며, 따라서 미국의 군사정찰위성처럼 크고 무겁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북은 적국의 지상에서 움직이는 차량 같은 물체까지 포착할 필요가 전혀 없으며, 지상에 건설된 커다란 군사전략거점을 타격할 좌표만 파악하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만든 군사정찰위성의 주된 기능이 정밀감시를 위한 것이라면, 북이 만들 군사정찰위성의 주된 기능은 정밀타격을 위한 것이다.

조종발동기가 전해주는 놀라운 정보

2012년 12월 10일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운반로케트의 1계단 조종발동기 계통의 기술적 결함이 발견되여 위성발사 예정일을 12월 29일까지 연장하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것은 은하 3호 1단 추진체에 장착된 조종발동기 계통에서 어떤 이상이 생겼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조종발동기란 무엇일까? 북에서 조종발동기라 불리는 장치는 추력벡터제어기(Thrust Vector Control)가 아니라, 견제 및 자세제어 체계(Divert and Attitude Control System)다. 추력벡터제어기는 전투기 제트엔진에도 장착될 만큼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와 달리, 견제 및 자세제어 체계는 로켓이나 위성이 비행하는 중에 고압가스를 분출하여 동체의 균형을 잡아주고 비행궤도를 수정하는 장치다. 조종발동기는 위성운반로켓이 가동할 때 쓰는 추진제와 다른 단일추진제(monopropellant)를 쓴다.

2012년 12월 14일 <로동신문>에 실린 정론 ‘조선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 따르면, 북은 은하 3호 2단 추진체를 “국제해상통로와 주민지대에 떨구지 않고 공해에 떨구기 위하여 자리길을 꺾어야 했다”고 지적하였는데, 이것은 은하 3호 2단 추진체가 필리핀해 상공을 날아갈 때, 필리핀 부근의 국제해상통로나 필리핀 영토에 떨어지지 않도록 비행궤도를 바꿨다는 뜻이다. 이처럼 비행 중에 위성운반로켓의 자리길을 꺾는 장치가 바로 조종발동기다.

미국에서 ‘견제 및 자세제어 체계’라고 불리는 이 장치를 만드는 첨단기술은 2003년 11월에 미국 보잉사(Boeing) 계열의 로켓엔진개발회사 로켓다인(Rocketdyne)이 개발한 것인데, 로켓 동체 측면에 장착하는 길이 20cm의 초소형 엔진에서 500kg의 추력을 내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2009년 4월 5일에 쏘아올린 은하 2호에 바로 그런 유형의, 조종발동기라 부르는 초소형 엔진이 장착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북이 ‘견제 및 자세제어 체계’를 2008년 이전에 이미 자체로 개발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북이 그 첨단장치를 2008년 이전 언제 개발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분야에서 북이 개발한 최첨단 기술은 미국이 동급 최첨단 기술을 개발한 시기와 비교할 때, 불과 3-4년 격차밖에 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로켓엔진 설계기술에 관한 한, 북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선 것이다.

원래 미국이 ‘견제 및 자세제어 체계’를 개발한 목적은 미사일방어체계의 장거리 요격미사일에 장착하여 요격미사일의 궤도비행에서 정밀도를 보장하려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위성운반로켓, 장거리 미사일, 장거리 요격미사일에 ‘견제 및 자세제어 체계’를 장착하여 궤도비행 정밀도를 크게 높였다.

북도 마찬가지다. 북이 자체로 개발한 조종발동기는 은하 계열의 위성운반로켓에도 장착되었고, 2010년 10월 10일 인민군 열병식에 등장한 ‘주체식 요격미싸일종합체’의 장거리 요격미사일에도 장착되었고,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열병식에서 거대한 8축16륜 발사차량에 실려 등장한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 13호에도 장착되었다.

지구관측위성을 운영하는 전 세계 위성보유국들은 지구관측 영상자료를 민간산업에도 이용하고 군사적으로도 이용한다. 지구관측 영상자료를 그처럼 이중용도로 쓰는 것은 오늘날 세계적인 추세다. 그런 세계적인 추세에서 북이라고 예외로 될 리 없다.

북이 지구관측 영상자료를 민간산업에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이용할 경우, 미국과 일본의 군사전략거점들에 대한 정확한 타격좌표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두 적국의 군사전략거점을 파괴할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궤도비행 정밀도까지 결정적으로 끌어올린 조종발동기 제작기술까지 확보한 것을 보면, 북이 은하 계열의 위성운반로켓을 쏘아올릴 때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으로,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이 공포에 질려 밤잠을 설치고, 일본 정부 고위관리들이 전신성 경련을 일으키는 까닭을 알 수 있다.

더 큰 위성운반로켓이 발사대에 세워질 것이다

이번에 성공적인 실용위성발사로 위성강국을 향한 직통로를 열어놓은 북은 앞으로도 계속 실용위성을 쏘아올릴 것이다. 이를테면, 2012년 12월 14일 <로동신문>에 실린 정론 ‘조선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는 “오늘의 성공에 이어 10개, 100개, 1,000개의 위성들이 우주에 오르고 우주에는 람홍색 공화국기가 그려진 내 나라의 위성의 령역이 더 넓어질 것”이라고 예고하였다.

2012년 4월 19일 우주공간기술위원회가 발표한 대변인 담화는 “우리에게는 우주개발기구들을 최첨단의 요구에 맞게 확대강화하고 나라의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실용위성들을 계속 쏴올리는 것을 포함한 종합적인 국가우주개발계획이 있다”고 밝힌 바 있고, 2012년 11월 15일 유엔총회에서 연설한 북측 대표는 “우리는 국가우주개발계획에 따라 우주개발기관을 확대강화하고 정지위성을 포함하여 나라의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각종 실용위성들을 계속 쏴올릴 것”이라고 언명한 바 있다.

북이 언급한 국가우주개발계획이란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인데, 이와 관련하여 우주공간기술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조선신보> 2012년 4월 14일 보도기사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북은 올해 2012년부터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올해 두 차례나 있었던 지구관측위성 광명성 3호 발사는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의 첫 번째 사업이다. 또한 보도기사에 따르면, 북은 앞으로 5년 안에 지구관측위성 이외에 정지위성도 개발할 것이며, 정지위성을 쏘아올릴 대형 위성운반로켓도 개발할 것인데, 이 위성운반로켓은 은하 3호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고 추력이 더 강한 신형 위성운반로켓이라는 것이다.

이 글을 집필하고 있는 2012년 12월 17일 오전 현재 ‘실시간 위성추적(Real Time Satellite Tracking)’이라는 웹사이트에 나타난 광명성 3호 2호기의 현 위치를 살펴보니, 그 위성이 미국 본토 중앙부 상공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광명성 3호 2호기가 미국 본토 중앙에 있는 콜로라도주 상공을 지날 때는 지난 12월 12일 발사 직후 그 위성의 비행궤적을 추적한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와 미국북부사령부(USNORTHCOM)에서 동쪽으로 22km 떨어진 지역의 상공을 지나갔다. 이것은 광명성 3호 2호기가 그 사령부가 위치한 피터슨 공군기지(Peterson Air Force Base)를 500km 상공에서 촬영하였음을 말해준다.

2012년 12월 14일 <로동신문>에 실린 정론 ‘조선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는 “우리는 자기의 과학기술위성을 통하여 지구에서 보고 싶은 것을 다 볼 수 있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래서 광명성은 북에게 개벽예감을 안겨주는 별이다.(2012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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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1

수구정권의 집권연장에 맞서 시련을 돌파하는 비결


변혁과 진보 (104)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사상정신적 혁신, 자주의식화, 진보조직화
 
20121219일에 실시된 제18대 대선결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나왔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어 수구정권의 집권기간이 앞으로 5년 더 연장된 것이다. MB라는 소리만 들려도 환멸을 느껴야 했던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심한 절망과 고통 속에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GH라는 소리를 들으며 환멸을 느끼게 될 박근혜 정권 5년 동안 그 절망과 고통이 더 연장되는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시련이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위해 투쟁하는 진보정당에게도 시련이다.
 
우리 사회에 노동자들이 약 1,700만 명이고 그 가운데 특히 살인적인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600만 명인데, 이번 대선에서 그 많은 노동자는 다 어디에 갔으며, 그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또 어디에 갔을까? 새누리당 후보와 민주통합당 후보를 가려볼 줄도 모르는 노동자가 1,700만 명이 아니라 5,000만 명이 있으면 뭐하나?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의 두뇌 속에 깊숙이 주입당한 수구친화적 허위의식을 깨뜨리고 스스로를 자주의식화하고 스스로를 진보조직화하지 못하면, 대선을 50, 100번 실시한들 뭐가 달라지나?
 
오늘날 이 땅의 사회계급관계는 명백하게도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의 적대적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대선정국에서는 그런 적대적 관계가 연기처럼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왜 그럴까?
 
예컨대, 이번 대선에서 비록 완주하지는 못하였지만 이정희 후보가 통합진보당 대선후보로 나왔을 때, 그녀를 지지한 것은 민주노총이 아니라 전농이었다. 진보적 농민단체는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하는데, 민주노조는 진보정당에 대한 형식적 지지마저 철회해버린 어처구니없는 사례는 세계 진보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하다. 민주노조가 설마 그렇게까지 몰상식한 과오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 만큼 너무 기괴한 일이라서 국제노동계와 국제진보정치계에 창피한 소문이라도 나돌까봐 걱정스럽다.
 
하기야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들마저 무슨 정파적 이해관계가 맞지 않는다고 투덜대면서 통합진보당을 등지고 민주통합당에 들어가거나 그 당의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해괴한 장면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버젓이 연출하는 판이니, 그런 민주노총 지도부를 어느 노동자가 믿고 따르겠는가.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의 적대적 관계가 대선정국에서 연기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그 기이한 현상의 밑바닥에는 도대체 무슨 원인이 깔려있을까? 민주노조운동을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길로 이끌지 못하고 우왕좌왕해온 민주노조 지도부의 정치적 무능이 주된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무능하면서도 무슨 높은 자리나 차지해보려고 시류 따라 이리저리 쏠리는 정치적 야심이 또 다른 주된 원인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민주노조 지도부가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민주노조를 대표하는 위원장 출신들이 거의 예외 없이 이번 대선을 계기로 그런 무능과 야심을 속속 드러내 보였으니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노총의 그런 심각한 사정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민주노총 지도부가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향한 사상정신적 혁신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면, 통합진보당의 장성과 발전은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민주노조와 진보정당이 별거하면, 진보정치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고, 사회변혁의 앞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런 혁신은 어떻게 해야 하나?
 
위가 막혔으면, 아래에서 뚫어야 한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상정신적 혁신은 각성한 조합원들의 단결된 힘으로 추진할 수 있다. 통합진보당을 쪼개놓으려는 우경파벌주의자들의 분당소동을 저지하고 당을 사수하기 위해 5,300명 노동자 당원이 지난 8월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듯이, 이제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상정신적 혁신을 위해 수 천 명 노동자 당원들이 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이제껏 민주노총 안에서 활동해온 조합원들이 더욱 분발하고,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적대적인 사회계급관계를 타파하고, 그리하여 노동계급이 하나의 계급으로 단합하고, 근로대중과 협동한 광범위한 생산자 대중이 사회역사발전의 주체로 일어서는 저 눈부시게 새로운 미래를 향해 진보하려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상정신을 진보적으로 변화시키는 자주의식화부터 실현해야 한다는 진보정치의 원리와 사회변혁의 진리를 이번 대선에서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 그 원리, 그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민주노총 지도부부터 사상정신적으로 자기혁신을 해야 민주노총에 가입한 전체 조합원들이 자주의식화될 수 있고, 민주노총에 아직 가입하지 않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진보조직화할 수 있다. 노조 지도부의 사상정신적 자기혁신, 전체 조합원의 자주의식화, 미가입 노동자들의 진보조직화, 바로 이것이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길을 열어 노동계급 자신을 살리는 길이요, 노동계급과 끝까지 함께 갈 근로대중을 살리는 길이며, 자주적 평화통일로 민족을 살리는 길이다.
 
지금으로서는 굴곡 많은 앞길이 험하게만 보이는 박근혜 정권 5년은 민주노총과 통합진보당에게 절망의 시간이 아니라, 바로 그런 사상정신적 혁신, 자주의식화, 진보조직화라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주어진 천금 같이 귀중한 투쟁의 시간이다. 5년의 투쟁에서 승리해야 진보적 정권교체의 길이 열리게 된다.
 
 
멕시코에는 강력한 제2야당이 있다
 
세계 진보정치계를 살펴보면, 진보정당과 민주노조의 결합력만으로는 수구정치의 두꺼운 장벽을 돌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보정당이 진보적인 농민조직을 비롯한 각계각층 대중조직들과도 결합할 때, 진보적 정권교체의 길을 열어놓을 수 있다. 이것이 통합진보당이 그 실현을 위해 투쟁해온 폭넓은 진보정치역량의 총결집이다. 그처럼 진보정당이 중심이 되어 폭넓은 진보정치역량을 결집시킨 사례는 멕시코 정치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멕시코의 현 집권당은 제도혁명당(PRI)이다. 우리 정당구도에 대비하면, 이 당은 민주통합당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910년에 시작되어 1920년까지 지속된 멕시코혁명의 불길 속에서 단련된 여러 정파들이 1929년에 민족혁명당(PNR)을 창당한 것이 제도혁명당의 출발이었다. 혁명정신이 펄펄 끓고 있었던 초창기에 민족혁명당은 멕시코혁명의 이념을 계승하여 농민에게 농지를 무상으로 분배하고,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국유산업을 보호하며, 선진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도입, 노동조합을 조직화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멕시코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을 수 있었고, 장기집권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제도혁명당은 40여 년 장기집권기간 중에 멕시코혁명의 이념을 차츰 퇴색시켰고, 정권의 권력형 부패가 심해져 나중에는 멕시코 민중들에게 부패정당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래서 2000년과 2006년에 각각 실시된 대선에서 연속적으로 두 차례 패하여 국민행동당에게 정권을 내주었는데, 올해 2012년에 다시 정권을 탈환하였다. 이런 사정은, 멕시코 민중이 이 부패정당에 대한 미련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제도혁명당은 현재 하원 500석 가운데 207(41.4%), 상원 128석 가운데 52(40.6%), 주지사 32석 가운데 20(62.5%)을 차지하였다.
 
제도혁명당에 맞서고 있는 제1야당은 1939년에 창당된 수구정당인 국민행동당(PAN)이다. 우리 정당구도에 대비하면, 이 당은 새누리당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당은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집권하였는데, 현재 하원 500석 가운데 114(22.8%), 상원 128석 가운데 38(29.6%), 주지사 32석 가운데 8(25.0%)을 차지하였다.
 
멕시코의 제2야당은 민주혁명당(PRD)이다. 우리 정당구도에 대비하면, 이 당은 통합진보당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정당의 도전을 압도적인 표차로 물리치고 장기집권을 순탄하게 지속해오던 제도혁명당 앞에 사상 처음으로 강력한 도전자로 등장한 것이 바로 민주혁명당이다. 민주혁명당이 아직 결성되기 전인 1988년에 실시된 대선에 출마한 진보정치연합세력의 후보가 31.1%의 득표율을 올린 것이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제도혁명당 후보의 득표율은 50.4%였다.
 
1988년 대선에서 비록 패하였으나 집권당을 크게 위협한 진보정치연합세력은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해 새로운 형의 진보정당을 건설해야 할 절실한 요구를 느꼈다. 그런 요구에 따라 결성된 것이 민족민주전선(FDN)’이라는 전선체다. 이 전선체는 권력형 부패로 몸살을 앓던 제도혁명당에서 갈라져 나온 그 당의 진보세력과 4개의 군소좌파정당들(멕시코 공산당, 멕시코 통합사회당, 사회주의멕시코당, 멕시코노동자당)19895월에 결집하여 세운 것이다. 바로 이 전선체가 진보정당으로 확대강화되어 오늘의 민주혁명당으로 되었다. 현재 민주혁명당은 하원 500석 가운데 100석을 차지하였고(20.0%), 상원 128석 가운데 22석을 차지하였고(17.1%), 주지사 32석 가운데 3(9.3%)을 차지하였다.
 
민주혁명당은 2006년 총선 직후 노동당(PT), 시민운동(MC)과 연대하여 새로운 전선체인 폭넓은 진보전선(FAP)’을 결성하였다. 전선역량으로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려는 정치적 의지와 전망이 돋보인다.
 
오늘날 이 땅의 통합진보당과 멕시코의 민주혁명당은 각각 제2야당의 위치에 있지만, 그 두 당의 정치역량을 대비해보면, 통합진보당 당세는 민주혁명당 당세에 비해 현저하게 약하다. 멕시코 정당구도는 진보정당, 중도정당, 수구정당이 3파전을 벌이는 3당구도인데 비해, 이 땅의 정당구도는 수구정당이 여전히 우세한 가운데 중도정당과 수구정당이 2파전을 벌이는 보수양당구도에 고착되어 있다. 이번 대선이 그런 현실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낡고 무능한 보수양당구도를 깨고, 3당구도로 개편해야 할 중요한 임무가 통합진보당에게 주어졌다.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난 해 말부터 민주노동당을 확대개편하는 노력을 기울여오다가 난데없는 분당소동으로 임무수행에 실패하였다.
 
 
멕시코 노조의 한심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위에서 언급한 멕시코 정치권 사정을 살펴보면, 민주혁명당이 가까운 장래에 선거에서 승리하여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기치를 들고 투쟁하는 민주혁명당은 왜 멕시코 민중의 20% 지지선을 그처럼 오래도록 뛰어넘지 못하는 것일까?
 
결정적인 원인은 멕시코 노동계급의 우경화와 어용화에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멕시코의 노조조직화된 노동자들 가운데 85%를 포괄하는, 조합원 총수가 500만 명이 넘는 막강한 멕시코노동자연맹(CTM)이 제도혁명당과 구조적으로 밀착되어 어용노조로 전락한 것이다. 1936년에 결성된 멕시코노동자연맹은 1941년부터 멕시코 정권과 밀착되어 어용화되고 말았다. 어용화된 멕시코노동자연맹 지도부는 차츰 부정부패에 빠져 들었고, 권력을 잡은 제도혁명당은 노동법이라는 것을 만들어놓았고, 멕시코 정부는 그 법의 고삐를 틀어쥐고 노조를 통제, 관리하였다.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길을 가야 할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제도혁명당 정권에 밀착되어 통제와 관리에 순응하고 있으니, 민주혁명당이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는 것에는 결정적인 제약이 따른다. 다시 말해서 민주혁명당과 멕시코 노동계급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 노동자연맹이 어용노조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진보적 노조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혁명당은 폭넓은 진보전선을 결성하고 거기서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추진동력을 공급받고 있지만, 정작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주력인 노동계급으로부터는 매우 제한적인 동력밖에 공급받지 못한다. 멕시코의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이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선이 바로 거기에 그어져 있다.
 
이 땅의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에 나선 통합진보당 노동자 당원들은 진보정당과 노조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멕시코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민주노총 지도부를 혁신하는 투쟁에 힘써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 5년 동안, 통합진보당이 시련을 돌파할 수 있는 비결이 거기에 있다. (201212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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