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26

2013년 6월 평양견문록 (2)

[한호석의 개벽예감] (67)
자주민보 2013년 06월 2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릉라도에서 바라본 여가생활도시
 
평양 한 복판을 굽이도는 대동강에는 여러 섬들이 줄지어 떠 있다. 릉라도, 양각도, 쑥섬, 두루섬, 곤유섬이다. 그 가운데서 허리춤에 청류다리를 걸치고, 발목에 릉라다리를 걸친 큰 섬이 릉라도다. 내가 탄 승용차는 릉라도로 들어가기 위해 청류다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청류다리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의 군인건설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건설한 길이 1.6km의 현수교다.

청류다리를 달리는 승용차 차창 밖에 펼쳐진 대동강의 풍치는 실로 아름다웠다. 6월의 눈부신 햇살을 받은 대동강은 비취색으로 흠뻑 물들어 있었다. 갑자기 차안공기를 흔든 뜻밖의 음악선율에 놀라 나는 시선을 차안으로 돌렸다. 그것은 안내자의 주머니에서 흘러나오는 손전화 착신음이었다. 북에서 쓰이는 손전화가 착신하면, 북측 혁명가요 선율이 울려나온다.

8년 전, 내가 방북했을 때는 손전화를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손전화 착신음 음악선율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얼마 전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에서 손전화 사용자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통화료 지불방식은 선불제다.

안내자는 주머니 속에서 혁명가요 선율을 울리는 손전화를 서둘러 꺼내들었다. 승용차의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진 통화는, 상대방의 통화음성을 간간이 내 귀에까지 들려주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떤 젊은 여성의 목소리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통화를 엿듣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지만,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내 귀를 막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윽고 통화를 끝낸 안내자는 자기 딸과 통화하였다고 하면서, 대학에서 해양생물학을 전공한 딸로부터 들은 곱등어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이를테면, 곱등어와 돌고래가 어떻게 다른가, 릉라곱등어관에 있는 곱등어는 어떻게 동해안 해상가두리로 이동하여 새끼낳이를 하는가 등등 자못 흥미로운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니, 그가 왜 나에게 릉라곱등어관에 가보자고 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 릉라곱등어관 정문. 관람시간이 아니어서 한산한 분위기였다.     © 한호석


승용차는 어느새 릉라곱등어관에 이르렀다.(사진) 1,400석을 가진 세계 최대 규모의 곱등어관이 우람한 자태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옆에서 바라보면, 릉라곱등어관은 곱등어를 형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 릉라곱등어관에 들어가 관람하려면 관람시간을 맞춰 갔어야 하는데, 그 날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평양체류기간 중에 한 군데라도 더 많이 가보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는 곱등어관 관람을 포기하고 밖에서 사진촬영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릉라곱등어관 주차장에서 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날렵한 청기와를 머리에 얹고 대동강 건너편 기슭 푸른 숲 속에 서 있는 청류정이 시선을 끌어당긴다.(사진)

▲ 멀리 숲 속에 청류정이 보인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정각 아래로 대동강이 흐른다.     © 한호석


릉라곱등어관은 바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평양 한 복판에 세워졌다. 다른 나라의 대형 돌고래 묘기장은 돌고래 생활환경에 필수적인 바닷물을 계속 공급해주기 위해 대부분 바닷가에 건설되었는데, 그와 달리 릉라곱등어관이 평양 한 복판에 세워진 것은, 총연장이 100km가 넘는 남포-평양 바닷물수송관을 땅속에 부설하고 그 수송관으로 방대한 양의 서해 바닷물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저수조를 실은 대형화물차가 남포에서 평양까지 오가며 바닷물을 실어 나르는 방법으로는 릉라곱등어관의 초대형 수조에 바닷물을 수시로 갈아줄 엄두도 내지 못한다.

2011년 2월에 착공하였고 2012년 4월에 완공한 남포-평양 바닷물수송관을 부설한 주된 목적은 식수공급이다. 바닷물을 전기분해한 전해수로 대동강 상수원에서 나오는 물을 소독하여 평양에 질좋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것이다. 전해수를 이용한 물소독기술은 액체염소를 이용한 종래의 물소독기술보다 훨씬 더 우월하고 안전하며 실리적이다.

남포-평양 바닷물수송관에서 얻는 실리는 생활용수 공급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지금 평양 각지에 실내물놀이장과 야외물놀이장이 이미 건설되었거나 현재 건설되고 있는데, 거기에서 지속적으로 교체공급해주어야 할 방대한 양의 물을 소독하는 것도 남포-평양 바닷물수송관으로 끌어온 서해 바닷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평양에서 돌아본 실내물놀이장들에서는 역한 물소독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릉라곱등어관은 릉라물놀이장, 릉라유희장과 함께 릉라인민유원지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릉라인민유원지 종합안내도’를 살펴보니, 그 유원지에 모두 38개 시설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38개 시설명칭들 가운데 ‘미니골프장’이라는 말 이외에 외래어를 쓴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섞어쓰는 것을 막고,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거기서도 엿볼 수 있었다.(사진)

▲ 릉라인민유원지종합안내도. 그 뒤쪽에서 잔디밭을 가꾸는 어떤 사람이 우연히 촬영되었다.     © 한호석


승용차를 돌려 릉라도를 한 바퀴 돌아보노라니, 1989년에 준공된 150,000석 규모의 5.1 경기장 앞마당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준비하는 집체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연인원 100,000명이 출연하는 세계 최대의 집체공연작품으로 2002년에 초연되었고 2005년부터 해마다 진행되는 ‘아리랑’은 2007년 8월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세계에 널리 알려졌는데, 올해도 7월 22일에 개막되어 매주 월요일, 수요일, 목요일마다 5.1 경기장에서 화려한 공연무대를 펼치게 된다고 한다.

릉라도에서 청류다리를 건너 동평양으로 들어서면 대동강구역인데, 거기에 이전에 문수유희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이전의 문수유희장은 온데간데없고 방대한 규모의 건축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109,000평방미터의 부지에서 벌어진 건축공사는 문수물놀이장을 건설하는 공사다. 올해 당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까지 완공할 목표로 건설되고 있는 문수물놀이장은 야외물놀이장과 실내물놀이장을 비롯한 물놀이시설과 부대시설을 두루 갖춘 세계적 수준의 물놀이장이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릉라인민유원지로부터 문수물놀이장까지의 구간을 연결하는 장거리 삭도(cable car)를 대동강 물 위의 허공에 놓으면, 릉라인민체육공원, 5.1 경기장, 릉라인민유원지, 문수물놀이장이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인민의 문화휴식터’가 꾸려진다는 것이다. 

문수물놀이장이 완공되면, 이미 준공된 릉라인민유원지, 릉라인민체육공원, 개선청년공원, 평양민속공원, 그리고 최근 전면적인 개보수공사를 마친 만경대유희장, 대성산유희장과 더불어 모두 7개의 ‘인민의 문화휴식터’가 평양에 꾸려지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지금 평양 곳곳에서는 80개에 이르는 중소형 공원을 개건하거나 신설하는 중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평양에 7개의 대형 유원지 및 공원과 80개의 중소형 공원이 들어서게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00만 명 인구가 사는 도시에 7개의 대형 유원지와 80개의 중소형 공원이 들어서는 것은, 평양의 도시환경을 여가생활환경으로 꾸린다는 것을 뜻한다. 2013년 6월의 평양은 생태환경도시와 여가생활도시의 새 모습을 갖춰가는 건축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체육강국을 향한 집념의 담금질

릉라도에서 5.1 경기장 위쪽으로 새로 뚫린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가보니, 200,000평방미터의 부지에 대중체육시설로 건설된 릉라인민체육공원과 대중식당이 나오고 그 옆에 새로 준공된 평양국제축구학교와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청사가 시선을 끌어당긴다. 평양국제축구학교는 축구에 재능이 있는 청소년 인재를 북측 전역에서 선발하여 합숙하며 교육하는 전문축구학교다.

대동강 양각도에 있는 30,000석 규모의 양각도축구경기장을 국제축구경기를 진행할 전용잔디구장으로 개건하는 공사현장을 2013년 4월 29일에 시찰하였고, 같은 날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만경대상 체육경기대회 남자축구 결승경기를 관람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6월 10일에 준공된 평양국제축구학교를 시찰한 것은 북측 최고영도자의 관심과 배려가 국가적 축구발전에 돌려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기간은 북의 국가대표축구단이 세계 축구사를 다시 쓴 화려한 전성기였다. 북의 축구 전성기는 1966년에 시작되었는데, 당시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북의 국가대표축구단은 국제축구계가 알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사다리 전법’으로 유럽의 축구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아시아 최초로 8강에 진출하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북의 국가대표축구단은 그 여세를 몰아 1974년 아시아경기대회 축구연맹전에서 일약 4강에 오르더니, 1976년 하계올림픽대회 축구연맹전에서는 8강에 올랐고, 1978년 아시아경기대회 축구연맹전에서 마침내 우승배를 들어올렸다. 그처럼 1970년대에 북이 축구강국으로 등장한 것은, 그 시기 북의 국력강화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오늘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을 축구강국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것은, 북의 국력이 비상히 강화되었던 1970년대처럼 새로운 전성기를 펼치려는 국가발전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서평양은 8개 구역으로 이루어졌고, 동평양은 5개 구역으로 이루어졌는데, 서평양에서 가장 서쪽에 자리 잡은 구역이 만경대구역이다. 만경대구역에는 엑스(X)자 형으로 서로 엇갈리며 그 구역을 종단하는 두 개의 큰 길이 나 있으니, 청춘거리와 광복거리다.

▲ 청춘거리 체육촌 개건공사가 한창이다. 저 멀리 홍기와를 얹은 멋진 건물은 2012년 4월에 준공된 태권도성지중심이다.     ©한호석
청춘거리에는 축구, 송구, 탁구, 배구, 농구, 역기, 배드민턴, 수영, 태권도 등의 체육종목을 위한 10개의 대형 전용경기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피로회복관과 호텔들도 자리 잡고 있다. 한 마디로, 체육촌이다. 지금 청춘거리 체육촌에서는 오래 전에 건설된 경기장과 시설을 현대화하는 개건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 모든 경기장과 시설을 한꺼번에 개건하는 방대한 공사다.(사진)

청춘거리 체육촌은 평양에 부는 건축열풍과 체육열풍이 서로 만나는 곳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와 현지지도, 그리고 조선로동당의 정치방침에 따라 청춘거리 체육촌과 평양체육관을 개건하고, 축구전용구장을 개건하고, 국제축구학교를 설립할 뿐 아니라, 미림승마장을 건설하고, 해발고 1,360m인 마식령에 총연장 110,000m의 활강주로를 가진 세계적 규모의 스키장까지 건설하는 것은 체육강국을 향한 북의 상승열기가 얼마나 강하고 뜨거운지 말해준다.

요즈음 북의 운동선수들은 축구, 탁구, 마라톤(북에서는 마라손), 역도(북에서는 력기), 사격, 권투, 태권도, 유도(북에서는 유술), 체조 등 국제경기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쟁취하고 있고, 배구, 농구(북에서는 롱구), 양궁(북에서는 활쏘기), 빙상, 승마 등에서도 유망주를 길러내고 있다. 하지만 여러 체육종목들 가운데서 미국인이 좋아하는 야구와 골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니, 북은 체육부문에서도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게 아닐까?

지금 북은 체육강국을 향한 집념의 담금질을 두 갈래로 실행하고 있다. 하나는 세계 체육계를 제패할 우수한 운동선수를 길러내는 국가적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전체 인민들이 대중체육으로 건강을 지키고 체력을 단련하는 국가적 사업이다. 주목하는 것은, 국제경기에 나갈 운동선수를 길러내는 국가적 사업과 더불어 각계층 근로자와 청소년학생의 대중체육활동을 국가적으로 장려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평양과 다른 지방도시에 건설되는 여러 공원들에는 잔디밭과 화초만 펼쳐지는 게 아니라, 대중체육설비도 설치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의 각지에 건설된 공원은 체육열풍과 잔디열풍이 만나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릉라인민체육공원은 체육열풍과 잔디열풍이 만나 꾸려진 대표적인 시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평양에서 체육열풍을 느낄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더 있으니, 운동센터다. 북의 운동센터는 다른 나라의 헬스클럽(health club)이나 핏니스 센터(fitness center)와 같은 곳인데, 거기에 더하여 물리치료기능까지 갖추었으니 가장 발전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2012년 10월 17일 동평양 통일거리에 개업한 지상 5층, 지하 1층으로 세워진 통일거리운동센터가 바로 그런 곳이다.(사진)

▲ 통일거리운동센터 정문은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다.     © 한호석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2년 5월 3일과 9월 7일에 당시 공사 중이던 통일거리운동센터를 현지지도하였음을 알려주는 현판이 그 운동센터 정문에 걸려있다. 현관 양쪽에 장애인 출입통로가 설치된 건물에 들어서니, 현대적인 운동기재와 설비를 두루 갖춘 각종 운동실과 각종 건강회복실(물리치료실)이 각 층마다 운영되고 있었다.(사진)

▲ 통일거리운동센터 치료회복실 내부를 실례를 무릅쓰고 촬영하였다. ©한호석
통일거리운동센터에 대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관심과 배려는 각별하였다. 안내자의 해설에 따르면, 통일거리운동센터가 있는 터는 원래 채굴설비전시장을 세우려고 하였던 곳인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곳에 운동센터를 세우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또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개업 직전 통일거리운동센터를 시찰한 자리에서 이미 놓여있던 가죽소파를 나무의자로, 대형어항을 동영상화면으로, 대형식사실을 운동실로 바꾸도록 지시하였고, 운동실에 대형거울도 달아놓게 하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긴 계단에서 일곱 번째 계단이 수평으로 설치되지 않고 조금 기울어진 것을 발견하고 이를 바로잡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김정은 제1위원장이 얼마나 세심하게 현지지도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체육강국을 향한 정치적 의지가 얼마나 강렬한지 알 수 있다.(사진)
▲ 통일거리운동센터에서 운동하는 청소년 학생들. 윗층으로 오르내리는 긴 계단이 양쪽에 드리워 있다.     © 한호석
 
 


슈퍼마케트가 상업중심으로 이름을 바꾼 사연

만경대구역 북쪽에는 북에서 처음으로 개업한 대형매장(supermarket)이 있다. 그 대형매장이 바로 광복지구상업중심이다. 광복지구상업중심은 1991년 10월에 세워진 광복백화점을 헐고 그 자리에 더 큰 규모로 세워 2012년 1월 5일에 개업하였다. 광복지구상업중심에 가보니, 북의 국산품과 중국산 제품을 4 대 6 비율로 판매하고 있었다. 중국산 제품 수입은 중국회사가 담당한다. 그래서 건물 출입구 외벽에 광복지구상업중심이라고 우리글로 적고, 그 밑에 중국글자로 광복지구상업중심이라고 써넣은 것으로 보인다.(사진)

▲ 광복지구상업중심 정문 앞에 주차된 차량들 속에 모터찌클(오토바이)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 한호석
개업 직전에 그곳 실무책임자들이 광복지구슈퍼마케트라고 이름을 지으려고 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들에게 생소한 외래어를 쓰지 말고 상업중심이라고 부르면 좋겠다고 하여 오늘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광복지구상업중심은 2011년 12월 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애 마지막으로 현지지도한 단위다. 

내가 그곳을 찾아간 날, 층면적이 넓은 대형매장에 가득 찬 갖가지 상품들이 쌓여있는 상품진열대 사이를 오가는 근로자, 가정주부, 청소년학생들로 흥성거렸다. 그런데 사진촬영 금지를 알려주는 표식이 매장 출입구에 붙어 있어서 아쉽게도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건물 밖에 나와 찍어야 했다.

매장 중앙부를 위아래로 툭 터놓고 계단승강기(escalator)로 오르내리게 하였으며, 매장의 옆쪽 벽면에는 별도의 승강기(elevator)도 운행하고 있었다. 매장건물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넓이는 꽤 넓다. 광복지구상업중심은 미국에 있는 수퍼마켓과 마찬가지로, 장바구니(shopping basket)를 손에 들거나 매장밀차(shopping cart)를 미는 손님들이 넓은 매장의 각종 상품진열대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사고 싶은 상품을 골라 1층에 있는 계산대에서 지불한다.

매장을 이곳저곳 돌아보던 내가 문득 발걸음을 멈춘 곳은 머리빈침 판매대 앞이었다. 남측에서 머리삔이라 부르는 머리빈침은 북측 여성들이 머리에 꽂는 장신구의 일종이다. 평양대성보석가공공장에서 ‘코스모스’라는 제품명으로 생산하는 머리빈침은 반짝이는 보석알갱이를 정교하게 박아 넣은 보석가공품인데, 북측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2011년 10월에 개봉된 북의 예술영화 ‘눈 속에 핀 꽃’에 나오는 ‘코스모스 보석머리빈침’이 유리진열장 안에서 영롱한 무지개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예술영화 ‘눈 속에 핀 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으로 훌륭한 인간이고 애국자”라고 높이 평가한 만포방사공장 주복순 지배인을 원형으로 하여 제작된 영화인데, ‘고난의 행군’ 시기 자강도의 국경도시 만포에 있는 만포방사공장에 처녀 지배인으로 부임하여 멈춰선 공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 주인순(배우 신영니 분)이 자기가 데려다 친자식처럼 키운 여러 고아들의 머리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내준 ‘코스모스 보석머리빈침’을 꽂아주는 장면에서 극적인 절정에 이른다. 북측 여성들에게 ‘코스모스 보석머리빈침’은 판매대에서 구매자를 기다리는 상품이 아니라, ‘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신념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광복지구상업중심 꼭대기층은 식사층이다. 계단식 승강기를 타고 거기에 올라가니 “찬료리, 더운료리, 구이, 튀기, 지짐, 청량음료”라고 각각 적혀있는 표지판이 즐비하게 걸려있고, 각각 표지판들 아래서 해당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 있는 패스트 푸드(fast food) 식당처럼 구매자가 자기 음식을 직접 선택하여 식탁으로 가져가는 제시중(self-serve)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식사층은 사람들로 흥성이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음악사랑이 깃든 곳

서평양 평천구역에서 대동강에 놓인 충성의 다리를 건너면 동평양 락랑구역에 들어서게 되는데, 락랑구역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길이 통일거리다. 도로폭이 매우 넓은 통일거리에는 궤도전차가 지나다니고, 길거리 양쪽에는 고층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전에 평양을 방문한 재미동포들로부터 들은 경험담에 따르면, 그들이 통일거리에 가곤 하는 까닭은 그 거리에 평양단고기집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고기집이란 남측에서 쓰는 말로 하면 보신탕집이다. 그런데 내가 이번에 통일거리에 찾아간 것은 평양단고기집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양단고기집 인근에 있는 하나음악정보센터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 하나음악센터 정문     © 한호석
하나음악정보센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건설되어 2012년 2월 15일에 개장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개장 당일 오전 9시에 김정은 제1위원장과 함께 생애 마지막으로 하나음악정보센터를 현지지도하였고, 자신이 오랫동안 수집해온 방대한 음악자료를 그곳에 넘겨주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음악사랑이 하나음악정보센터에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사진)

북의 자료에 의하면, 음악의 거장들만 타고 난다는 절대음감을 지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교향악단 연주용으로 작성된 총보를 읽으며 북의 음악발전을 이끌었고, 몸소 쇼팽의 피아노곡을 연주할 만큼 음악에 조예가 깊었으며, 혁명과 음악을 하나로 통일시킨 독창적인 음악사상을 자신의 정치방식으로 구현하였는데, 북에서는 그것을 음악정치라 한다.

하나음악정보센터 정문을 열고 들어서니, 정면에 ‘나의 첫사랑은 음악입니다’라고 쓰인 커다란 정지형 전광현시판이 보인다. 그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명언이다. 그 정지형 전광현시판 좌우로 변동형 전광현시판이 각각 돌아가고 있었는데, 왼쪽 전광현시판은 최근 북에서 새로 나온 노래를 소개해주고 있었고, 오른쪽 전광현시판은 최근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는 국제음악축전 및 음악경연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오늘 어떤 음악인이 그곳을 찾았는지도 전광현시판에 나타났는데, 내가 찾아간 그 날은 북의 인민배우인 리향숙 교수가 그곳에서 음악자료를 열람하였다고 알려주었다. 리향숙 교수는 2004년 제11차 주세페 디 스테파노 국제성악경연에서 특별상을 받은 뛰어난 소프라노 성악가다.

▲ 하나음악센터를 찾은 사람들은 이런 컴퓨터에서 음악정보를 검색하고 음악을 감상한다.     ©한호석
하나음악정보센터는 전산화된 음악자료를 열람하거나 전산화된 음악을 감상하는 대중봉사시설인데, 2층에는 음악공연을 수록한 DVD를 제작하는 생산시설도 갖춰져 있다. 거기서는 누구나 무료로 음악자료를 열람하고 음악을 감상을 할 수 있다.

159석마다 각각 컴퓨터 한 대씩 배치된 음악자료열람실에서는 전산화된 20,000곡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열람하고 선택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거기에서는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음악들도 들을 수 있다. 내가 시험 삼아 ‘내 나라 제일로 좋아’라는 곡목을 컴퓨터에 입력했더니, 그 노래에 관련된 각종 정보자료들이 컴퓨터 단말기 화면 위에 현시되었다.(사진)

▲ 하나음악센터 다통로감상실에 놓인 좌석에 앉아 들은 교양곡 '아리랑' 선율이 거대한 파도처럼 내게 밀려왔다.     ©한호석
음악자료열람실을 지나면 오른쪽에 30석 규모의 다통로감상실이 있다. 멀티트랙(multitrack)이라는 영어낱말을 다통로라고 번역한 것이므로, 다통로감상이란 원음에 가깝게 재생한 5.1 음향체계(surround sound speaker system)로 음악을 감상한다는 뜻이다. 다통로감상실에 들어서니, 사방벽면에 설치된 고성기(loudspeaker) 4개와 대형 동영상화면 뒤에 설치된 초저음 고성기에서 원음을 재생하는 설비가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애 마지막으로 그곳을 시찰하던 중 앉았던 다통로감상실 맨 앞줄 중앙석에 앉았다.(사진) 이윽고 실내조명이 꺼지고,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연주장면이 대형 동영상화면에 비춰지면서 교향악 ‘아리랑’의 선율이 거대한 파도처럼 내 가슴에 밀려왔다. 내게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끝모를 음악세계에 깊이 빠져 들어갔을 것이다.(2013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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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8

의도적 연출 뒤에 감춰진 미중정상회담의 내막

<민중의 소리> 2013년 06월 17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오바마-시진핑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뉴시스.신화통신

 
왜 비공식 정상회담을 서둘러야 했을까?

아시아대륙과 북미대륙 사이에는 지구 위에서 가장 넓고 큰 바다인 태평양이 가로놓여 있는데, 그 바다의 제해권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장악하였다. 오늘날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미국의 지배력은 그 바다를 배타적으로 장악, 관리하는 제해권 행사에 의해 강화된 것이다.

그런데 세계질서를 재편하려는 신흥강국이 출현하여 미국의 태평양 제해권에 도전장을 던졌으니, 그 신흥강국이 중국이다. 요즈음 미중관계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대립은, 태평양 제해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의 충돌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것이다.

지난 시기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유럽대륙을 사이에 두고 갈등과 대립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는데, 유럽대륙에 그어진 국경선들이 미소냉전의 갈등과 대립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오늘날 미중관계의 갈등과 대립은 해양경계선이 그어지지 않은 태평양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미소냉전에 비해 억제요인은 적고 충돌위험은 크다.

태평양 제해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일으키는 갈등과 대립이 무력충돌로 악화되지 않게 하는 억제요인은, 무력충돌이 두 나라에게 미증유의 국가적 손실을 안겨주게 된다는 피해의식 뿐이다. 그런 피해의식이 미중관계에서 갈등과 대립의 격화를 서로 피하게 만들고 대화에 나서게 하는 요인이다. 2013년 6월 7일부터 8일까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난 비공식 정상회담도 그런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뉴욕 타임스> 2013년 6월 8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집권절차를 각각 완료한 오바마와 시진핑은 두 나라의 갈등이 한층 더 고조되는 사태를 피하고, 좀 더 편안한 관계를 맺기 위해” 이번 회담에 나섰다는 것이다.

미중정상회담 경험을 보면, 시진핑의 선임자인 후진타오는 국가주석에 취임한 때로부터 3년이 지난 2006년 4월에 처음으로 미국 워싱턴에 가서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쉬와 정상회담을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시진핑은 국가주석에 취임한 때로부터 석 달 만에 오바마를 만나 정상회담을 한 것이다. 원래 오바마와 시진핑은 2013년 9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정상회담을 하게 되었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석 달을 기다리지 못해 이번에 회담을 서두른 것이다. 이번 회담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사막 끝자락에 있는 랜초 미라지(Rancho Mirage)시의 개인 휴양소인 써니랜즈(Sunnylands)에서 진행되었다. 왜 그처럼 서둘러야 했을까?

이번 회담을 서두른 쪽은 미국이다. 2013년 6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관리들은 시진핑이 백악관을 국빈방문하는 형식적인 겉치레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그 대신 써니랜즈에서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담을 하려고 하겠는지를 알아보려고 올해 초에 중국 정부관리들과 접촉하였”는데, 미국의 회담 제의를 “시진핑 국가주석이 아주 신속히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회담을 서둘렀고, 중국이 그에 맞장구쳤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국이 이번 회담을 서두른 까닭은 무엇일까? 미국과 중국 그 어느 쪽도 발설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이번 회담에서 노린 목표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취임하자마자 그를 미국의 ‘입맛’에 맞게 길들여보려는 데 있었고, 중국이 이번 회담에서 노린 목표는 미국에게 자기의 태도와 입장을 분명히 전하며 견제하려는 데 있었다.

오바마-시진핑 회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번 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해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나는 드넓은 태평양이 중국과 미국 두 대국에게 넉넉한 공간을 제공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지난해의 미국 방문이란 2012년 2월 14일 당시 국가부주석이었던 자신이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예정시간을 넘겨 1시간 25분 동안 회담한 것을 뜻한다. 그 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책임론’을 꺼내들고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을 몰아세웠고,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은 ‘상호존중론’으로 맞선 바 있다. 2012년 2월 14일에 진행된 오바마-시진핑 백악관 회담이 1회전이었다면, 이번에 진행된 오바마-시진핑 써니랜즈 회담은 2회전인 셈이다.

이번 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회담이 앞으로 우리가 새로운 유형의 협력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공고한 기초가 되기를 진실로 바란다”고 말했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과 미국은 지난 시기 두 나라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였던 대립과 갈등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의 인용문에서 오바마가 말한 ‘새로운 유형의 협력관계’란 중국이 미국과 맞서지 말고 미국의 요구를 따르는 관계를 뜻하며, 시진핑이 말한 ‘대립과 갈등과는 다른 새로운 길’이란 미국과 충돌을 피하면서 중국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방도를 뜻한다.

미국과 중국의 국가이익이 그처럼 상충적이므로, 이번 회담에서 오바마와 시진핑의 대립은 불가피하였다. 이번 회담이 시작되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우리 두 나라 사이에 불가피하게 긴장된 분야들(areas of tension)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회담석에 앉자마자 불가피한 긴장이란 말부터 꺼내놓은 것이야말로 이번 회담이 얼마나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는지를 잘 말해준다. 그가 말한 ‘불가피하게 긴장된 분야들’을 논하면 아래와 같다.

세 군데 ‘발화점’을 둘러싸고 벌어진 대립

중국의 태평양 진출과 그에 맞선 미국의 아시아중시전략(Pivot-to-Asia Strategy) 추진이 오늘날 미중관계에 조성된 ‘불가피하게 긴장된 분야들’ 가운데 주된 분야다. 아니나 다를까, <뉴욕 타임스> 2013년 6월 8일 보도에 따르면, 오바마와 시진핑은 이번 회담에서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문제, 남중국해 해양영토분쟁 문제, 그리고 중국의 환율조작 문제를 놓고 견해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여기서 댜오위다오, 대만, 남중국해 해양영토는 중국의 태평양 진출과 미국의 아시아중시전략 추진이 충돌하는 세 군데 ‘발화점’들이다.

< 뉴욕 타임스> 2013년 6월 9일 보도에 따르면, 올해 초 중국이 동중국해에서 일본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남중국해에서 베트남, 필리핀과 날카롭게 대립하였을 때, “화가 난 오바마는 자기 보좌관들에게 중국에 대한 지렛대(leverage)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이번 회담을 서두른 의도는, ‘중국에 대한 지렛대’를 틀어쥐고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저지하려는 데 있었다.

< NHK >와 <아사히신붕> 2013년 6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이번 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이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를 유보하자고 일본에게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이 그 문제와 관련한 입장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으며, 주변국들이 중국의 해양진출 강화추세를 우려하고 있으므로 중국의 전략적인 자제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과 중국은 댜오위다오 문제, 대만 문제, 남중국해 해양영토 문제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갈등과 대립만 거듭할 뿐이다. 일본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 회담에서 시진핑은 “댜오위다오는 역사적으로 중국 고유의 영토이고, 중국의 영토주권이 걸린 핵심적 이익이다. 중국과 미국은 서로 상대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뉴욕 타임스> 2013년 6월 8일 보도에 따르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은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를 중지할 것을 미국에게 촉구하였고, 중국의 영토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면서 자국의 영토주권을 재차 강조하였다.

댜오위다오 문제, 대만 문제, 남중국해 해양영토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과 중국이 서로 취할 수 있는 방책은 외교적 타협이 아니라 무력충돌 자제다. 그런 점을 알고 있는 오바마와 시진핑은 이번 회담에서 무력충돌을 자제하는 방도를 합의하려고 하였다. <파이낸셜 타임스> 2013년 6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이번 회담에서 어느 정도 진전을 본 문제는 두 나라가 부쉬 정부 때부터 진행해오는 전략 및 경제대화에 더하여 정기적인 군사회담을 갖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과 중국이 정기적인 군사회담을 통해 댜오위다오, 대만, 남중국해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무력충돌을 예방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두 나라가 군사회담을 정기적으로 진행한다고 해서, 실효를 낼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댜오위다오 문제, 대만 문제, 남중국해 해양영토 문제는 태평양 제해권을 놓고 타협할 수 없는 미국과 중국의 사활적인 국가이익에 직결된 현안들이기 때문이다. 영토주권이나 해양주권과 관련된 나라들 사이의 충돌을 회담으로 예방하거나 해결한 사례는 세계정치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해도가 없는 바다’에서 벌어진 대립

이번 회담이 열리기 11일 전인 2013년 5월 27일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국방부가 준비한 보고서를 인용하여 중국 해커들이 미국 군수기업들이 개발한 첨단무기체계와 미국의 각종 첨단기술을 절취해왔다고 하면서, 해킹피해를 입은 첨단무기체계와 첨단기술을 구체적으로 열거하였다. 이러한 폭로행위는 당시 11일 뒤로 예정된 이번 회담에서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려는 미국의 사전준비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회담 첫째 날 일정을 마친 직후 열린 현지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사이버안보문제(cybersecurity issue)가 “해도가 없는 바다(uncharted waters)”와 같다고 지적하였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톰 도닐런은 그 회담 직후 취재진에게 사이버안보문제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제 두 나라 관계의 중심부에 자리 잡았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워싱턴 포스트> 2013년 6월 8일부 보도기사는 “미국에게 있어서 이번 정상회담의 최고 목표는 사이버안보와 관련하여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었다”고 하면서, 이번 회담에서 “사이버안보에 관한 논쟁적인 문제를 둘러싸고 오바마와 시진핑 사이에 가장 큰 긴장감이 조성된 듯하였다”고 썼다.

사이버안보문제는 회담 둘째 날에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는데, 시진핑은 중국이 해킹과 사이버공격을 강하게 반대한다고 하면서, 중국도 사이버공격을 받는 피해자라고 ‘해명’하였고, 오바마는 중국의 대미해킹이 계속되는 경우 두 나라의 경제관계에 매우 힘든 문제가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또한 시진핑은 미국이 이란에게 사이버공격을 가해왔다고 ‘폭로’하였고, 오바마는 <워싱턴 포스트> 2013년 5월 27일 보도에서 언급된 미국 국방부의 보고서를 들고 나와 중국 정부가 해커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우려’하였다.

이처럼 이번 회담에서 쌍방의 해명, 경고, 폭로, 우려가 서로 오갔지만, 사이버안보문제에 관해 미국과 중국은 아무런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시진핑은 사이버안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용적인 방도로” 미국과 협력하겠다는 외교적 발언만 남겼을 뿐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2013년 5월 19일 <뉴욕 타임스>가 폭로한 것처럼, 미국에 대한 중국의 사이버첩보활동이 계속되고 있으며, 얼마 전 에드워드 스노우든이 미국 정부의 사이버첩보활동인 ‘프리즘’을 폭로한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미국이 중국에 대한 사이버첩보활동을 집중적으로 벌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이 사이버안보분야에서 일어나는 사활적인 국가이익의 충돌을 회담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린다.

북의 핵문제에 관해 무슨 말이 오갔을까?

오바마와 시진핑은 회담 첫날 만찬석상에서 북의 핵문제에 관해 오랜 시간 회담하였다. 무슨 말이 오갔을까?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톰 도닐런이 이번 회담일정 중에 취재진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오바마와 시진핑이 북의 핵위협에 대해 “공동의 위협분석(shared threat analysis)”을 하였다는 것이다. 세계질서를 좌우한다는 두 대국의 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북의 핵무력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공동으로 인식하였다니, 북의 핵무력이 매우 강력하다는 점을 그들 자신이 인정한 셈이다. 또한 톰 도닐런은 취재진에게 “내 생각에 최저선은 두 나라가 북의 핵문제를 잘 조절하고, 구체적인 조치를 함께 취하겠다는 절대적인 합의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노리는 목표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그런 목표에 이르지 못한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은 북이 비핵화하여야 한다는 것과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대북압박을 통하여 북의 비핵화를 달성하기로 함께 노력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는 것만으로 논의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 회담에 배석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 정부 고위관리는 <뉴욕 타임스> 취재기자에게 이번 회담에서 오바마는 “북의 행동에 변화가 있을 때까지 그(김정은 제1위원장을 뜻함-옮긴이)와 직접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고 말했다. 또한 “만일 북이 기존 태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 한국과 일본이 각각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고, 미국의 태평양 주둔 무력이 더욱 증대될 것이라는 미국의 견해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동의하는 듯 보였다고 미국 정부관리들이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하였다.

남측 언론에서는 이번 회담에서 오바마와 시진핑이 북의 비핵화 문제에 관해 상당한 의견일치를 본 것처럼 보도하였지만, 그것은 아전인수격의 추측보도다. 미국과 중국은 북의 핵보유를 반대한다는 점에서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지만,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그 두 나라의 국가이익이 상충적이기 때문에 북의 비핵화 문제에 관한 의견일치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중국은 북이 ‘핵 없는 동맹국’으로 남아 한반도의 현재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주기 바라는 반면, 미국은 북의 체제를 붕괴시키고 핵무장을 해제하려는 극도의 불안정한 상황을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그 두 나라의 국가이익은 상충적인 것이다.

두 정상의 의도적 연출 뒤에 가려진 대립 분위기

첫째 날 회담을 마치고 시진핑 국가주석과 일행은 회담장을 빠져나가 인근 호텔에서 숙박하였고, 오바마 대통령과 일행은 써니랜드 휴양소에서 그대로 머물며 숙박하였다. 둘째 날 아침, 오바마와 시진핑은 각자 자기쪽 통역관을 한 사람씩 대동하고 휴양소 경내를 산책하면서 5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오바마가 시진핑에게 선물한 야외용 나무의자에 함께 앉아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런 친근한 장면은 이번 회담이 대립적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음을 은폐하려는 의도적인 연출이다.

< 뉴욕 타임스>가 2013년 6월 9일부 보도기사에서 “시진핑이 언급한 ‘새로운 형태의 대국관계’를 오바마와 시진핑이 실행에 옮길 아무런 담보가 없다”고 지적한 것은 이번 회담이 결실을 보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결실을 보지 못한 게 아니라, 국가이익의 충돌을 재확인하며 대립한 것이다.

이번 회담이 막을 내린 때로부터 불과 48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2013년 6월 10일 미국 태평양 연안의 최남단 해군기지가 있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 인근에서 미국 해군과 해병대가 일본 자위대 육해공군 병력 1,000명과 해상자위대 소속 호위함, 이지스함을 참가시킨 가운데 가상적국이 점령한 일본의 외딴 섬을 무력으로 탈환하는 전쟁연습을 강행하였다. 중국은 이번 회담을 앞두고 미국에게 미일동맹군의 섬탈환전 연습을 취소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번 회담이 열렸던 랜초 미라지로부터 직선거리로 재어보면 남서쪽으로 13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미일동맹군이 마치 회담종료시각을 기다렸다는 듯이 섬탈환전 연습을 강행한 것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무력으로 저지하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미국이 이번에 회담장소를 왜 랜초 미라지의 개인 휴양소로 정했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은 이번 회담 직전에 미국 국방부가 작성한 중국 해킹범죄 보고서를 언론에 공개하여 중국을 곤경에 몰아넣고, 실제로 회담 중에 사이버안보문제를 들고 나와 시진핑 국가주석을 압박하였으며, 회담 직후에는 미일동맹군의 섬탈환전 연습을 강행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 미국에게는 미중관계의 갈등과 대립을 완화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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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6

2013년 6월 평양견문록(1)



[한호석의 개벽예감] (66)
자주민보 2013년 06월 1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평양에 잔디열풍 불고 있다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달라진 평양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나는 2005년 6월에 열렸던 6.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간 적이 있으니, 8년 만에 평양과 재회한 셈이다.  

중국 베이징을 떠난 고려항공 여객기가 순안공항에 내려앉자, 이전의 낯익은 공항역사는 보이지 않고, 임시로 건설한 공항역사가 서 있었다. 임시역사 옆에서는 공항역사 신축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새 공항역사의 일부로 보이는 훌륭한 건물이 거의 완공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2011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순안공항을 현대적으로 개건하라고 지시하였고, 2012년 7월 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개건공사 중인 순안공항을 현지지도하였다. 북측 최고영도자들의 지시와 현지지도에 따라 국제공항역사를 새로 짓는 것은, 세계로 통하는 북의 길목이 더욱 넓어진다는 뜻이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북측 구호가 어디를 지향하는지 나는 공항에 들어서면서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임시역사를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나갔을 때, 어디선가 우렁찬 합창소리가 내 귓전에 울렸다. 짙은 청색 작업복을 입고 붉은 색 안전모를 쓴 건설현장 근로자 50여 명의 대오가 작업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붉은 기를 치켜든 근로자 한 사람이 대오의 앞장에 걸어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대형트럭과 건설장비들이 길바닥에 먼지를 일으키며 분주히 오가는 가운데, 그들 근로자 대오는 ‘발걸음’이라는 노래를 합창하며 행진하고 있었다. 평양은 8년 만에 다시 찾아온 해외동포 한 사람을 그렇게 맞아주었다. 나를 맞으려 공항에 나온 해외동포사업국 안내자는, 붉은 기를 앞세우고 ‘발걸음’을 합창하며 행진하는 근로자 대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내 모습을 좀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 평양에 부는 잔디열풍. 보통강 기슭에도 나무를 심고 잔디밭을 가꾸어놓았다.     © 한호석


키 높은 나무들이 끝없이 늘어선, 순안공항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진녹색 나뭇잎들이 내게 반가운 손인사를 건넸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측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심었던 그 나무들이 어느덧 크게 자라 이제는 멋진 풍치림을 이루었다. 달리는 승용차 차창 밖으로 모내기를 막 끝낸 논배미들이 푸른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2013년 2월 9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화성-13은 왜 흰 옷으로 갈아입었을까?’(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1882)에서 나는 평양에 건립된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을 참관하고 그 글의 내용을 보완하고 싶다고 썼고, 그 때 내친 김에 북측 당국에 나의 방북의사를 전하였다. 한 달이 훨씬 지나도록 소식이 없던 어느 날, 마침내 나는 북측 당국으로부터 초청의사를 전달받았다. 나의 평양방문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이번 방북목적은 무장장비관 참관이었다.

그런데 참 아쉽게도 내게 주어진 평양체류기간은 도착하는 날과 떠나는 날을 빼면 단 사흘뿐이었다. 8년 만에 내게 주어진 소중한 사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내 생각은 잠시 깊어졌다.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나는 평양체류 중에 무장장비관 참관 이외에 내가 가보고 싶었던 다른 곳도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서 체류일정이 즉각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의향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해외동포사업국 안내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요구되었다.

순안공항에서 평양 중심부로 들어설 때, 가장 먼저 지나는 거리가 동평양 북쪽 서성구역에 있는 버드나무거리다. 버드나무거리에 척 들어서면, 왼쪽에 3대혁명전시관이 보이고, 오른쪽에 련못관이라는 식당이 나타나는데, 거기에 네거리가 있다. 그 네거리를 지나는 순간,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색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길고 푸른 주단을 길거리마다 펼쳐놓은 도로변 잔디밭이다. 나중에 평양 시내를 이곳저곳 돌아보니, 버드나무거리만 그런 게 아니라 평양 시내 곳곳에 수많은 잔디밭이 펼쳐졌다. 잔디가 푸르싱싱하게 잘 자란 거리도 있었고, 얼마 전에 뿌려놓은 잔디씨가 햇볕에 마르지 않게 잔디밭에 비닐막박을 덮어놓은 거리도 있었다.

안내자에게 물어보니, 각 직장별, 인민반별로 잔디밭 담당구역을 정하여 자발적으로 관리한다고 한다.(사진) 거리를 지날 때마다 잔디밭에 물을 주는 살수차도 보였고, 잔디밭에 물을 주는 커다란 비닐물통이 실린 손수레도 보였고, 양동이와 물조리개로 물을 주거나, 호스로 물을 뿌려주는 사람들도 보였다. 잔디밭 가꾸기를 군중운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 평양시민들이 군중운동으로 가꾸는 잔디밭과 화초. 회계과 근무자들이 가꾼다는 나무표지가 보인다.              © 한호석


평양에 펼쳐진 잔디밭들에는 잔디만이 아니라 맥문동 같은 지피식물, 키 작은 관상목, 각종 화초들도 조형미 나게 심어놓았다. 평양에 펼쳐진 잔디밭은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 친환경 잔디밭이므로 도시생태환경에 아주 적합하다. 평양 전체를 원림록화하는 거창한 사업이 진행 중인 것이다. 한 마디로, 2013년 6월의 평양은 잔디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평양은 주민 1인당 공공 잔디밭 면적이 전 세계 도시들 가운데서 가장 넓은 원림록화도시로 빠르게 변모하는 중이다. 

내가 사는 뉴욕 맨해튼에서는 도로변에 잔디밭을 조성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잔디밭을 조성할 공간이 없을 만큼 도시공간이 번잡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잔디밭 조성과 관리에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주정부나 시정부의 재정은 사실상 파산위기에 빠졌으니, 잔디밭 조성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뉴욕시 녹지대에 잡초가 무성해진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다른 한 편, 대도시 근교에 사는 미국 중산층은 자기의 단독주택 마당에 예외 없이 잔디를 심는다. 그런데 잔디밭을 일주일에 한 차례씩 계속 깎아주고, 잔디밭에 물을 주는 자동관수체계를 돌리고, 잔디밭에 때로 비료도 주고, 잡초를 제거하는 제초제도 주고, 잔디가 죽은 곳에는 새로 잔디씨를 뿌려주는 등 잔디밭 관리에 들어가는 노력과 경비는 상당하다. 휘발유를 쓰는 제초기 및 송풍청소기(blower) 사용, 전기를 쓰는 자동관수체계 가동, 그리고 비료 및 제초제 생산과 유통 등에서 많은 분량의 탄소가 발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미국의 잔디밭은 친환경적이 아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대도시의 모든 도로변에 잔디밭을 조성하는 것은 도시생태환경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업인데,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금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몸소 그 사업을 실천행동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평양의 도시생태환경을 바꾸어 가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치방식은 인민들 속에서 자신의 실천행동으로 잔디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인민들이 자발적인 군중운동으로 도시생태환경을 바꾸도록 이끄는 것이다.

북측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자신의 관저 앞마당에 잔디포전을 만들어놓고 새로운 잔디품종을 시험재배하고 있다. 또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 5월 4일 국가과학원 생물과학분원 잔디연구소를 현지지도하였는데, 그 연구소는 한반도에 자생하는 토종잔디품종인 금잔디에 우수한 유전자를 전이하여 사철 푸른 새로운 잔디품종인 ‘선들밀’을 시험재배하는 데 성공하였다. 지금 북측 도시들에서 맨땅이 드러난 곳마다 심고 가꾸는 왕꿰미풀, 김의털, 겨이삭 같은 토종잔디품종은 녹색기간이 연중 280일 이상이라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의 동부지역, 중부지역, 서부지역에 각각 잔디연구소를 세우고 각 지방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우수한 잔디품종을 육성하여 모든 지방도시들에 보급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렇게 하면, 평양에서 불러일으킨 잔디열풍이 북측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잔디열풍은 평양과 지방도시들을 ‘인민 중심의 생태환경도시’로 탈바꿈시킴으로써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나를 태운 승용차는 서성구역 버드나무거리를 벗어나 어느새 모란봉구역 개선거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60m 높이로 서 있는 웅장한 개선문이 멀리서 시야에 들어온다. 개선거리는 잊지 못할 추억 속으로 나를 끌어갔다. 8년 전 그 날, 평양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6.15 북측 위원회가 급히 마련한 비옷을 덧입고 개선거리 한 복판을 걸으며 조국통일을 염원하고 노래하고 외치는 빗물 젖은 행진대오 속에 나도 있었다. 이 민족에게 고통과 불행을 안겨준 분단시대가 60년에 접어든 2005년 6월 14일 저녁, 한반도 각지와 해외 각지에서 6.15 민족통일축전에 모여든 남북해외 동포들이 손에 손을 잡고 통일기 휘날리며 걸었던, 환성이 차 넘치던 개선거리에 8년 만에 내가 다시 왔다. 개선거리 도로변에 잘 가꾸어진 잔디밭과 화초들과 가로수들, 새로 교체된 가로등이 8년 전의 추억에 젖은 나를 어서 오라는 듯 반겨주고 있었다.

8년 전 그 날, 비 내리는 개선거리를 행진했던 민족통일축전 참가자들은 통일의 문을 함께 열자고 마음속에 다졌건만, 8년이 지난 오늘 이 민족은 남과 북을 이어주었던 하늘길과 뱃길과 땅길을 모두 끊어버린 내외 반통일세력의 집요한 방해를 6년 동안 물리치지 못한 채, 해마다 열어오던 민족통일축전도 더 이상 열지 못하는 분단의 어둠을 헤쳐 가는 중이다.

옥류교 가슴에 안은 평양의 중심가에서

창전거리에 줄지어 늘어선 현대식 고층아파트들(사진)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북측 언론의 보도사진을 통해 이미 보아왔지만, 실제 현장에 가서 보니 감흥이 한결 새롭다. 창전거리에 있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지은 낡은 아파트들을 모두 철거하고, 현대식 고층아파트 단지와 지하상가를 거기에 번듯하게 건설하였다. 해가 저물어 사위가 어둑어둑해지면, 그 고층아파트 외벽마다에는 불장식이 켜져 화려한 느낌을 한층 더 돋운다. 창전거리 고층아파트들도 다른 거리들과 마찬가지로 잔디와 화초를 잘 가꾼 푸른 주단 위에 들어앉아 있다.

▲ 창전거리에 늘어선 고층아파트와 도로변 잔디밭     ©한호석


도시건축적 시각에서 보면, 원래 평양의 도시중심은 만수대동상과 만수대의사당이 있는 만수대언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창전거리가 현대식 도시환경으로 개건되기 이전에는 도시중심은 있었지만 중심가(downtown)라고 부를 수 있는 거리는 없었다. 그런데 창전거리가 현대식 도시환경으로 훌륭히 개건되면서 평양에 중심가가 생겨났다. 푸른 물결 굽이도는 대동강을 가로지르며 서평양과 동평양을 이어주는 옥류교를 가슴에 안은 명당자리에 수도의 새로운 중심가가 자리 잡은 것이다. 

창전거리가 마주 바라보이는, 만수대의사당 광장 바로 옆에는 현대식으로 지은 거대한 원통형 건축물이 빼어난 자태를 뽐내며 만수대언덕 한 쪽에 우뚝 서 있다. 지상 6층, 지하 2층으로 지어 2012년 4월 17일에 개관한 인민극장(사진)이다. 평양에 생겨난 새로운 중심가에 음악공연을 위한 공간이 없을 리 없다.

▲ 만수대언덕에 있는 인민극장. 사진에는 옆문이 찍혔고, 정문은 오른쪽에 보인다.     © 한호석


인민극장을 개관할 당시 은하수관현악단이 개관공연을 하였다. 1,500석 규모의 원형극장이 있고, 지하층에는 500석 규모의 극장이 있으며, 음악공연과 무대예술에 필요한 각종 현대적 시설을 두루 갖추었다고 한다. 요즈음 북측 인민들 속에서 최상의 인기를 누리는 모란봉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의 수준 높은 음악공연이 바로 그 인민극장무대에서 화려하게 펼쳐지곤 한다. 내가 거기에 간 날에는 공연이 없어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음악공연을 볼 수 없었다. 

날마다 해가 저물 무렵이면 인민극장도 주변의 다른 고층건물들과 함께 평양의 밤을 수놓는 멋진 불장식으로 몸단장을 하고 나선다. 개관 당시 북측 언론매체들은 인민극장을 ‘현대적 건축미의 절정’이라고 격찬하였는데, 현장에 가서 실물을 보니 과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사각형 건축물인 만수대의사당, 원통형 건축물인 인민극장, 높이가 서로 다른 직입면체 건축물인 창전거리 고층아파트들이 한 데 어울려 평양의 새로운 중심가를 형성한 것이다.

인민극장 정문에서 내려다보면 오른쪽 길 건너편에 금성제2중학교가 보인다. 마침 학과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인지, 그 학교 재학생들이 교정에 나와 웃고 떠드는 모습이 정겹게 안겨온다. 그 학교 옆으로 난 길 건너편에서도 대규모 건축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무슨 공사인가 살펴보았더니, ‘만수대 화초, 분수공원 및 지하편의상점 공사’라는 커다란 간판이 붙어 있다. 화원과 분수대가 어우러진 큰 공원을 만들고, 그 공원 밑에 지하편의상점들이 들어선다는 뜻이다. 이전부터 녹지대가 많은 평양을 이제는 공원 속의 도시로 개건하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나를 태운 승용차가 창전거리 지하도로에 들어서니, 북에서 봉사망이라 부르는 식당, 청량음료점(cafe), 편의점(convenient store)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창전해맞이식당으로 갔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해 여름에 시찰하였던 식당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에서 최고영도자가 시찰한 단위는 그 부문에서 본보기로 되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단위들이다.


▲ 창전해맞이식당의 커피점과 빵집 간판들. 우리말 밑에 국제공용어(영어)가 쓰여 있다.  © 한호석
 

창전해맞이식당에는 현대적 미감이 나게 실내를 장식한 방들이 주런히 있는데, ‘김정은 원수님께서 2012년 8월 31일에 다녀가신 방’이라는 현판이 있는, 10명이 들어가는 식사실도 있다. 미국에서 핫덕(hotdog)이라 부르고 북에서는 쏘세지구이라 부르는 간식은 한 개에 북측 돈으로 250원이고, 미국에서 팝콘(pop corn)이라 부르고 북에서는 강냉이튀기라 부르는 간식은 한 봉지에 북측 돈으로 300원이다.

창전해맞이식당 바로 옆에는 커피, 맥주, 칵테일, 각종 청량음료,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해맞이커피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다. 미국에 있는 스타벅스, 레드맹고, 칵테일 바를 하나로 합쳐놓은 곳이다. 카페를 북에서 우리말로 어떻게 부르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아직 적당한 우리말을 찾아내지 못한 듯하다.

해맞이커피는 고급화된 실내장식으로 꾸며졌다. 둥근 벽시계를 머리에 인 커다란 선녀상이 한 쪽에 다소곳이 서서 손님을 맞아주고, 그 옆에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는데, 내가 거기에 앉아 있는 동안 ‘소녀의 기도’나 ‘뻐꾹왈츠’ 같은 귀에 익은 서양음악들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그 곳을 찾은 몇몇 손님들의 손전화에서 울리는 착신음이 간간이 들렸고, 옆자리에서는 여자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세 사람이 시원한 병맥주를 한 병씩 앞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자니, 뉴욕 맨해튼에 있는 어느 카페에 앉아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 거기서 나는 북측 돈으로 350원 하는 오렌지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안내자는 360원 하는 커피를 마셨다. 

옥류교에서 바라본 대동강은 눈부신 6월의 햇살이 반짝이는 물결을 껴안고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수수천년 기나긴 세월을 그렇게 흘러온 잔잔한 강물 위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실려 추억의 세계로 떠나갔을까. 창전거리와 승리거리가 사귀는 길목에서 청기와를 합각지붕에 곱게 얹은 옥류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민족의 음식문화사에 명품국수로 첫 자리를 차지하는 평양냉면을 맛볼 수 있는 유명한 식당이다. 자극적인 조미료에 길들여진 미각으로 맛보면 옥류관의 평양냉면은 좀 싱겁다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냉면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미각을 되살리면 옥류관의 평양냉면에서는 깊고 은은한 맛이 난다.

평양의 기념비적 건축물 류경원, 평양의 고급식당 해당화관

서평양에서 옥류교를 건너면 동평양으로 들어서는데, 그 다리를 건너 대동강 기슭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 조금 내려가면 주체사상탑이 있고, 그 다리를 건너 대동강 기슭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밀려오는 바다파도를 연상케 하는 파상형 지붕을 머리에 얹은 커다란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섯 개 굵은 기둥이 그 거대한 파상형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북에서 ‘선군시대의 기념비적 건축물’이라 부르는 시설들 가운데 하나인 류경원(사진)이다. 하루에 7,200명이 목욕, 한증, 사우나, 미용, 미안, 이발, 안마, 치료체육을 할 수 있고, 오락장과 탁구장, 식당과 청량음료실도 갖춰놓은 지상 4층, 지하 1층의 현대식 종합문화후생시설이다. 2012년 11월 9일에 준공식을 하였으니, 개장한지 7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류경원에 간 날은 마침 휴장일이어서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 류경원의 파상형 지붕. 명품가방(샤넬)을 어깨에 메고 바지를 입고 걸어가는 북측 여성의 모습이 우연히 카메라에 잡혔다.     ©한호석


류경원 뒤쪽에 붙어있는 시설이 인민야외빙상장이다. 보도사진에서는 야외빙상장이 아니라 실내빙상장으로 보이는데, 어째서 야외빙상장이라고 부를까? 빙상장 건물 안에 들어가서 눈여겨보니, 벽체에 지붕을 살짝 얹어놓은 형태로 설계되어 외부와 실내가 서로 통하게 지어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내가 그곳에 간 날은 기온이 섭씨 30도까지 올라간 무척 더운 날씨였으므로, 외부의 더운 공기가 건물 안으로 몰려들어올 텐데 아주 말끔한 빙질을 유지하고 있었다. 외부와 통하는 그처럼 넓은 빙상장을 무더운 여름철에 관리하려면 강력한 냉동설비를 가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그곳에 간 시각, 인민야외빙상장 은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가운데는 미국에서 온 백인 할머니도 있었다.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은반 위를 계속 돌아다니는 통에 그 백인 할머니에게 더 이상 말을 걸기 힘들었다.
 
▲ 평양의 고급식당 해당화관     ©한호석
 
류경원 옆쪽으로 나 있는 주체사상탑거리를 가로질러 건너면, 금릉운동원과 평양보링관이 줄지어 있는데, 바로 그 곁에서 지상 6층, 지하 1층으로 지어진 해당화관(사진)이 나를 맞았다. 밀짚모자처럼 생긴 거대한 철제구조물을 앞머리에 눌러쓴 그 건물은 외모부터 특색이 있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지열수로 여름철 냉방과 겨울철 난방을 보장하는 친환경 첨단설비가 갖춰진 것만 봐도, 해당화관이 평양의 현대적 건축물을 대표할 만한 시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해당화관에는 식당, 연회방(banquet room), 커피점, 상점, 실내물놀이장(indoor swimming pool), 운동실, 당구장, 요리견습실 등이 들어있는데, 모두 고급화된 설비와 내장재를 썼다.

승강기에서 나오니, ‘료리는 과학이며 예술입니다 김정일’이라고 쓰인 글발 아래, 어느 주방에서 하얀색 요리모자를 쓰고 튀김을 조리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소탈한 풍모가 담긴 천연색 사진이 걸려 있고, 그 밑에 누가 놓았는지 꽃다발들이 주런히 놓여 있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 4월 27일 개업을 앞둔 해당화관을 부인과 함께 시찰하였다.

1층에 들어서니, 상점도 있고 연회방도 있다. 상점에서는 외국산 고급상품을 팔고 있었고, 연회방은 각 주제별로 실내를 장식한 송학방, 해당화방, 봉선화방, 코스모스방으로 나뉘어졌다. 실내장식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주는 연회방에서는 손님들이 요리를 즐기면서 해당화관 전속 여성공연조가 출연하는 30분짜리 음악공연을 감상한다고 한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는 점심시간이 지난 뒤라서 여성공연조가 음악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공연연습을 하고 있었다.
 
▲ 해당화관 2층에 있는 철판구이집. 반원형으로 설계된 실내공간 곳곳에 10개의 철판식사대가 늘어서 있다.     © 한호석


2층에는 철판구이를 봉사하는 철판구이집(사진)이 있다. 미국 식당의 철판구이는 일본사람들이 보급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말을 그대로 써서 테판야키(teppanyaki) 또는 히바치(hibachi)라 부른다. 원래 철판구이란, 요리사가 손님들이 둘러앉은 널따란 철판 위에 식용유를 두르고 맛있는 식재료를 구워내는 동안, 불을 지펴 올리는 묘기동작이나 요리도구를 가지고 부리는 묘기동작으로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해당화관 연회방에서 요리와 음악공연을 즐기려면 한 사람 당 50달러에서 70달러까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미국 뉴욕에 있는 고급식당 연회방에서는 음악공연을 위해 별도로 많은 비용을 내야하고 요리를 즐길 수 있는데, 해당화관 연회방 비용보다 훨씬 더 비싸다.

3층과 4층에는 실내물놀이장, 당구장, 운동실, 탁구장이 있고, 5층에는 전자도서실을 갖춘 요리견습실이 있다. 또한 6층에는 실내공간을 반원형으로 만들어놓은 멋진 커피점이 있는데, 거기서 봉사하는 에쓰쁘레쏘(espresso) 한 잔은 북측 돈으로 420원이다. 평양의 다른 식당들이 따라오지 못할 고급식당이므로 좀 비싸지만 그 정도 비용은 내야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현대적인 생태환경도시로 탈바꿈하는 건축열풍

지난해에 새로 세워진 류경원과 해당화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금 평양에는 건축열풍이 불고 있다. 곳곳에서 건축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시 전체가 뜨거운 건축열풍에 휩싸여 있는 듯이 보였다. 평양의 건축열풍은 흔히 외부에서 생각하는 도시재개발 같은 게 아니라, 현대적으로 개건된 생태환경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안에 평양의 오래된 아파트들을 철거하고, 현대식 아파트로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그처럼 방대한 도시환경 개조사업을 추진하자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갈 텐데, 어디서 그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까?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과제이지만, 해결해야 할 다른 과제도 있다. 이번 방문 중에 내 눈에 띈 것이 외장도료다. 건축물을 잘 지었어도, 볼품없는 외장재를 쓰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외장재 중에서도 특히 외장도료가 중요하다.

그런데 남측에서 ‘에나멜’이라 부르는 유성도료(oil-based paint)인 이내멀 페인트(enamel paint)가 북에서 대량생산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석유화학공업제품인 이내멀 페인트를 대량생산하려면, 막대한 양의 석유를 다른 산유국에서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북은 제한된 자원으로 수입한 석유를 공업원료나 차량연료로 우선 배정해야 하므로, 도시 전체를 칠할 외장도료를 대량생산할 만큼 많은 석유를 수입하지 못한다. 그래서 북에서는 자기 땅에 나는 천연광물에서 추출한 무기화합물로 만든 무기질 도료 ‘현무’를 개발하여 외장도료로 쓴다. 하지만 무기질 도료는 광택이 나지 않고 색상이 다채롭지 못하고 선명하지 않으며 햇빛에 오랜 기간 노출되면 변색되는 일련의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북에서는 세계적 수준으로 건설된 대동강타일공장이 대량생산하는 각종 타일(사진)이나 인조대리석으로 건축물 외장을 마감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도색으로 마감하는 것이 훨씬 더 밝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 도시환경을 질적으로 개선하는 데서 외장도료는 매우 중요한 요인인데, 북에서는 아직 그 문제를 자원부족 때문에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 평양에 부는 건축열풍. 대동강타일공장에서 생산하는 돋을무니 타일이 카메라에 잡혔다.     © 한호석


북에서 외장도료와 더불어 해결해야 할 것이 또 있으니, 도로표지판과 간판이다. 뉴욕 맨해튼 같은 자본주의도시환경에는 형형색색 상품광고판이 뒤덮여 있는 데 비해, 평양 같은 사회주의도시환경에는 당연히 상품광고판이 없다. 자본주의도시환경에서 생활하는 외부인들이 평양에 가서 도시환경이 왠지 좀 썰렁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현란한 자본주의상품광고판에 익숙해진 고정시선을 평양에까지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평양에 상품광고판은 있을 필요가 없지만, 도로표지판과 간판은 긴요하다. 이번에 평양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나와 함께 다니는 안내자도 평양의 거리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해 행인들에게 이리저리 물어보았다. 그런데 도로표지판과 간판도 외장도료처럼 석유화학공업제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청춘남녀 타고 달리는 ‘모터찌클’

8년 만에 다시 찾아간 평양 거리를 돌아보던 중에 내 시선을 끌어당긴 유별난 광경은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 유별난 광경들 가운데 하나는 러시아말로 ‘모터찌클’이라 부르는 교통수단이 눈에 띈다는 것이었다. 러시아말로 ‘모터찌클’이라 부르는 교통수단은 영어로는 모터싸이클이라 부르고, 남측에서 쓰는 국적불명의 이상한 말로는 ‘오토바이’라 한다. 평양에는 차량교통량이 이전보다 늘었고, 그에 따라 ‘모터찌클’도 많아졌다. 얼마 전 ‘유투브’에서 우연히 찾아낸 북측 영화에서 주인공이 ‘모터찌클’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영화적 설정인가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평양에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젊은 남녀 한 쌍이 탄 ‘청춘남녀 모터찌클’이 평양 거리에서 눈에 뜨인다는 점이다. 헬멧을 쓴 남자가 앞에 타고 운전하는 ‘모터찌클’ 뒷자리에 헬멧을 쓴 여자가 타고 가는 정다운 모습(사진)은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러운 일상사로 된 듯하였다.
 
▲ 도로변 잔디밭을 가꾸는 평양시민들, 그리고 거리를 달리는 '청춘남녀 모터찌클'     © 한호석


그러고 보니, 평양 거리를 오가는 북측 여성들이 거의 모두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도 시선을 끌었다. 지난 시기에는 여성들이 작업장에서나 바지를 입었고, 나들이할 때는 대체로 치마를 입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서 활동하기에 편리한 바지를 거의 모두 입고 다닌다. 여성들이 바지를 입었으니 ‘청춘남녀 모터찌클’도 탈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북측 여성들은 직장에서 작업화를 신고 일하다가 하루일과를 마치면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귀갓길에 나선다. 원래 남이나 북에 사는 우리 여성들이 전 세계에서 비만유전자 보유율이 가장 낮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데, 그처럼 바지를 입고 굽 높은 신발을 신고 나서니 다리가 길어 보이고 더 날씬하게 보이는 실효를 거두게 된다.(2013년 6월 15일)

*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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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2

호도반도 뒤흔든 발사폭음의 정체

[한호석의 개벽예감] (65)
자주민보 2013년 06월 01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미국의 대북정찰을 3중 차단한 북의 치밀한 교란전술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은 2013년 5월 18일 오전 8∼11시 사이에 정체불명의 발사체를 두 발 쏘았고, 오후 2∼3시 사이에 또 한 발을 쏘았고, 5월 19일 오후에 정체불명의 발사체 한 발을 쏘았고, 5월 20일 오전 11∼12시 사이에 정체불명의 발사체 한 발을 쏘았고, 오후 4∼5시 사이에 또 한 발을 쏘았다고 한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위의 언론보도는 발사시각이 언제이고 발사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모호하기 짝이 없다. 북의 미사일 발사상황을 감시하는 것은 미국 정찰위성밖에 없으므로, 위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찰위성은 발사시각이 언제인지 알지 못했고, 발사체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에 미국 정찰위성이 북의 발사상황을 탐지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과거 경험과 대조해보면 더 뚜렷이 드러난다. 북이 2009년 5월과 7월에 각각 미사일 여러 발을 쏘았을 때 남측 언론매체는 북의 미사일 발사시각을 분단위로 보도하였는데, 이것은 미국 정찰위성이 미사일 발사시각을 정확히 파악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2009년 5월 26일과 5월 27일 <연합뉴스>는 북이 5월 26일 낮 12시 8분께 미사일 한 발을 동해 쪽으로 쏘았고, 오후 5시 3분께 미사일 두 발을 쏘았고, 밤 9시 10분께 미사일 한 발을 쏘았다고 보도하였다. 또한 2009년 7월 4일 <연합뉴스>는 북이 7월 4일 오전 8시부터 8시 30분 사이에 미사일 두 발을 동해 쪽으로 쏘았고, 오전 10시 45분과 정오, 오후 2시 50분과 5시 40분께 각각 미사일 한 발씩 추가로 쏘았다고 보도하였다.

이처럼 2009년에 북의 미사일 발사시각을 분단위로 파악하였던 미국이 이번에 발사시각을 2∼3시간 단위로 파악한 것은, 미국 정찰위성이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정찰위성이 아닌 다른 탐지수단을 통해 발사시각을 대충 어림잡았음을 뜻하는 것이다. 고성능 정찰위성을 동원해 북의 미사일 발사상황을 감시한다던 미국이 왜 아무 것도 탐지하지 못하였을까? 관련 언론보도를 정밀분석하면 아래와 같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원래 미국 정찰위성은 전자광학촬영장비를 탑재하고 북의 미사일 발사현장을 촬영하는데, 이번에는 한반도 상공에 구름이 덮여 있어서 전자광학촬영장비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 장비는 구름이나 안개가 낀 날에도 무용지물이고 밤에도 무용지물이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2013년 5월 20일 국방부 출입기자단에게 북의 발사체에 관해 설명하던 중 “지금 한반도 전체에 구름이 끼어 있다”고 언급한 것은, 구름 낀 날씨 때문에 미국 정찰위성의 전자광학촬영장비가 무용지물이 되었음을 뜻하는 말이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2013년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북이 미사일을 발사한 함경남도 상공에는 줄곧 구름과 안개가 끼어 있었다.

미국 정찰위성은 전자광학촬영장비를 사용할 수 없는 궂은 날씨에 대비하여 적외선촬영장비와 영상레이더촬영장비(SAR)도 함께 탑재하였는데, 적외선촬영장비는 감시대상이 발산하는 열을 포착하여 이를 영상화하는 것이고, 영상레이더촬영장비는 지상에 쏜 마이크로파가 정찰위성을 향해 반사되는 신호의 시간차를 측정하여 영상화하는 것이므로 구름이나 안개가 낀 날에도 촬영할 수 있고 밤에도 촬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전자광학촬영장비, 적외선촬영장비, 영상레이더촬영장비를 모두 탑재한 고성능 정찰위성 KH-11을 다섯 대밖에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북측 상공을 미국 정찰위성이 지나가는 시간대를 레이저 탐지기를 사용하여 정확히 파악한 북이 미국 정찰위성에 노출해서는 안 되는 군사활동을 전개할 때는 위성정찰 시간대를 피하기 때문에 미국 정찰위성의 대북정찰활동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남측 언론매체들은 마치 미국 정찰위성이 북의 모든 군사활동을 속속들이 촬영하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허풍보도가 아닐 수 없다.

미국 정찰위성이 그처럼 매우 제한된 능력밖에 없으므로, 미국은 정찰위성의 능력한계를 보완해주기 위해 고고도 정찰기 U-2 두 대를 군사분계선 가까운 상공 27km 높이에 12시간 교대로 띄워놓고 북측 상공을 측면감시공중레이더(SLAR)로 정찰하는 수밖에 없다. 고고도 정찰기에 탑재된 측면감시공중레이더는 162km 밖에서 날아가는 비행물체를 탐지할 수 있지만, 북측 전역을 한꺼번에 전면 감시하는 능력은 갖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미국은 북이 미사일을 발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특정지점을 예측하고 그 일대를 고고도 정찰기로 24시간 감시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이 미사일을 발사할 지점이 어디인지 예측하는 정보판단인데, 그런 고도의 정보판단력이 미국에게 없다는 점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북은 미사일을 쏘기 전에 교란전술로 미국의 ‘시야’를 가려버리는 것이다. 이번에 있었던 북의 미사일 발사가 그런 교란전술을 동반하였다. 미국의 ‘시야’를 가린 북의 교란전술은 아래와 같이 펼쳐졌다.

남측 언론에 보도된 미국의 정보판단에 따르면, 2013년 4월 초에 북은 미국이 ‘무수단’이라고 부르는 화성-10 중거리 미사일 두 기를 특별수송열차에 실어 강원도 원산 인근 군사시설로 옮겼고, 함경남도 함흥시 북쪽에 있는 덕산비행장(인민군 항공군 비행기지)에 다른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실은 자행발사대(미사일 발사차량) 일곱 대를 전개하였다. 강원도와 함경남도에 각종 미사일을 탑재한 자행발사대 아홉 대가 출현한 것이다. 또한 북은 덕산비행장 활주로에 각종 자행발사대 일곱 대를 전개한 이후 무선통신과 레이더전파를 지속적으로 날려 보냈다고 한다. 이런 이례적인 움직임을 미국이 포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북이 화성-10 중거리 미사일을 원산 인근 군사기지에서, 그리고 다른 미사일들을 덕산비행장에서 연속 발사하려고 준비하는 줄로 판단한 미국은, 정찰위성과 고고도 정찰기를 동원하여 그 두 지점을 집중 감시하기 시작하였고, 나중에는 미사일 추적함까지 동해로 급파하였다.

그런데 원산 인근 군사기지와 덕산비행장에 각각 출현하였던 자행발사대들이 2013년 4월 20일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고, 전날까지 북이 지속적으로 날려 보내던 무선통신과 레이더전파도 갑자기 끊어지더니 잠잠해졌다. 그런 상황변동을 파악한 미국은 북이 미사일 발사준비를 중지하고 현장에서 철수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뉴스 1> 2013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북의 미사일들이 사라진 것에 대해 “주한미군측은 철수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동해에 전진배치해두었던 미사일 추적함도 4월 26일에 일본으로 철수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북의 미사일 발사준비가 중지된 것으로 판단하고 미사일 추적함을 철수한 것은 북의 교란전술에 말려들기 시작한 첫 걸음이었다. 만일 북의 교란전술이 거기서 멈추었다면, 북은 미국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놀랍게도, 이번에 북은 3중 교란전술을 연속 펼치면서 미국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였다.

북이 두 번째로 펼친 교란전술은 <연합뉴스> 2013년 4월 28일 보도기사에서 엿볼 수 있다. 남측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보도기사에 따르면, 북은 개성 송악산 후방에서 실시해오던 포사격 훈련과 북측 각지에서 실시해오던 전투기 비행훈련을 미국군 미사일 추적함이 동해에서 철수한 다음날인 4월 27일에 갑자기 중지하고, 서해안 남포 인근지역에서 항공군과 포병전력이 참가하는 대규모 합동화력훈련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원산 인근 군사기지와 덕산비행장에서 각각 미사일이 발사될 것으로 판단하고 그 두 지역을 집중 감시해오던 미국의 정찰활동을 서해안 남포 인근지역으로 유인하기 위해 북이 펼친 두 번째 교란전술이었다. 그로써 미국은 북의 교란전술에 더 깊숙이 말려들게 되었는데, 북의 교란전술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지난 시기 북이 동해 또는 서해 쪽으로 미사일을 쏠 때는 사전에 선박항해금지구역을 일정기간 동안 설정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통보하는 관례를 지켜왔다. 그런 관례가 있었으므로, 미국 정찰위성은 해당기간에 선박항해금지구역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다가 북이 발사한 미사일을 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북은 미국의 감시와 정찰을 따돌리기 위해 그런 기존 관례를 깨고 선박항해금지구역을 설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북이 펼친 세 번째 교란전술이었다.

<연합뉴스> 2013년 5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정부 소식통이 “북한은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한 지난 10일부터 오늘(5월 21일을 뜻함-옮긴이)까지 동해 상에 항해금지구역을 선포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 사무관은 세계항해경보제도 지침에 따라 국제해사기구(IMO)로부터 북이 설정한 선박항해금지구역과 시행기간에 관한 정보를 주변나라들이 통보를 받게 되어 있는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하였다고 밝혔다. 이것은 북이 이번에 이례적으로 선박항해금지구역을 설정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선박항해금지구역을 설정하지 않았으니, 발사체가 탄착할 해상을 지나는 선박들이 피격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어찌된 일이었을까? 아래에서 자세히 논하겠지만, 이번에 북이 쏜 발사체는 해상에 탄착하지 않았고, 그처럼 탄착점이 없기 때문에 선박항해금지구역을 설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동아일보>가 2013년 5월 21일 기사에서 “한미 정보당국은 발사체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영상정보(IMINT)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북의 3중 교란전술에 말려든 미국의 대북정찰활동이 완전히 실패로 끝났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북은 치밀하게 짜인 3중 교란전술로 미국의 정보판단을 교란하고 미국의 감시와 정찰을 완벽하게 따돌리고 나서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서 발사체를 사흘 연속 발사할 수 있었다. 

북의 3중 교란전술에 말려든 미국이 엉뚱하게 서해안 남포 인근을 감시하는 사이에 북은 함경남도 호도반도에서 사흘 동안 연속적으로 발사체를 쏘았다. 지난 시기에 북이 동해 쪽으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과거경험을 돌아보면, 북은 강원도 안변군 깃대령, 또는 함경남도 정평군 신상리, 또는 함경남도 금야군 삼봉리에서 단거리 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함경남도 최남단에 있는 호도반도에서 발사체를 쏘았다.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자행발사대들이 호도반도에 출현하여 사흘 동안 발사체 여섯 발을 쏘았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발사과정에 나오는 두 곳이 눈길을 끈다. 한 곳은 미사일 자행발사대 일곱 대가 출현하였던 함경남도 덕산비행장이고, 다른 한 곳은 자행발사대가 사흘 동안 발사체 여섯 발을 쏜 함경남도 호도반도다. 왜 북은 덕산비행장에 자행발사대들을 출현시켰다가, 호도반도에서 발사체를 쏘았을까? 이 수수께끼 같은 의문을 풀어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실상에 접근할 수 있다. 

북이 호도반도에서 쏜 발사체는 300mm 방사포가 아니다 

북이 호도반도에서 쏜 발사체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은 정찰위성이 발사현장을 촬영하지 못해 영상정보가 없으므로, 고고도 정찰기의 측면감시공중레이더가 포착한 희미한 영상정보를 놓고 추측하는 수밖에 없었다.

<연합뉴스> 2013년 5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정보당국은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를 KN-02 단거리 미사일의 개량형으로 추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북이 쏜 발사체를 KN-02 단거리 미사일 개량형으로 한국군 정보당국이 추측한 것은, 그 발사체의 비행거리가 120km 정도이었음을 측정하고 그렇게 추측한 것이었다. 이전부터 미국군 정보당국은 북의 KN-02 미사일 사거리가 110∼130km인 것으로 보았다.

미국 군부가 ‘독사’ 또는 KN-02라고 부르는 북측 미사일의 공식명칭은 금성-2다. 금성-2 미사일 실전배치를 이미 10여 년 전에 완료한 북은 지난 시기 통상적인 발사훈련을 실시할 때마다 그 미사일을 한꺼번에 여러 발 쏘았다. 북이 금성-2 미사일을 가장 최근에 발사한 사례는 제3차 지하핵실험 이틀 전인 2013년 2월 10일에 실시한 미사일 발사훈련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북이 쏜 발사체의 비행거리는 서로 달랐다.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이 2013년 5월 18일과 19일에 각각 쏜 발사체 네 발은 120km 정도 날아갔고, 5월 20일에 쏜 발사체 두 발은 150km 정도 날아갔다고 한다. 한국군 정보당국은 120km 정도 날아간 발사체 네 발이 단거리 미사일 금성-2라고 추측하였지만, 150km 정도 날아간 발사체가 어떤 미사일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군 정보당국과 한국군 정보당국이 이제껏 파악해놓은 북의 미사일 목록에는 사거리가 150km인 단거리 미사일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150km 정도를 날아간 발사체는 무엇이었을까? 처음에 한국군 정보당국은 북이 금성-2의 사거리를 늘린 금성-2 개량형을 쏜 것으로 추측하였는데, 과연 그러했을까? 어떤 미사일의 성능을 향상시킬 때, 사거리를 30km 정도 늘리는 경우는 없고, 대체로 200∼500km 정도 크게 늘리는 법이다. 그런데 이번에 북이 발사한 비행거리 150km 정도의 발사체는 금성-2 사거리보다 30km 정도밖에 더 멀리 날아가지 못했으니 그 발사체가 금성-2 개량형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단거리 미사일 금성-3의 사거리를 일부러 단축하여 쏜 것일까? 금성-3의 사거리는 400km인데, 발사각을 조절하여 저탄도 발사를 한다고 해도 사거리가 400km인 미사일의 비행거리를 150km로 줄여서 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비행거리 150km 정도의 발사체는 금성-3도 아니다. 150km 정도 날아간 발사체가 금성-2 개량형도 아니고 금성-3도 아니므로, 미국군 정보당국과 한국군 정보당국은 그 발사체의 정체를 알지 못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남측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동아일보> 2013년 5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정보당국은 북이 단거리 미사일을 쏘았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고, 미국군 정보당국은 북이 신형 방사포를 쏘았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는데, 양측의 정보판단이 그처럼 엇갈리기 때문에 “당분간 판단을 유보하기로 양측이 합의를 봤다는 것이다.”

미국군 정보당국과 한국군 정보당국이 알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발사체를 북이 쏘았으니, 대북정보판단을 주도하는 미국군 정보당국이 그에 대한 최종적인 정보판단을 내리게 된 것은 당연하였다. 미국군 정보당국의 판단을 한국군 정보당국이 추종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북 군사정보판단의 현실이다. 북이 2013년 5월 20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한 발씩 모두 두 발을 발사한 비행거리 150km 정도의 발사체가 미사일이 아니라 300mm 방사포탄이라는 것이 미국군 정보당국의 최종 정보판단이었다. <연합뉴스> 2013년 5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정부 소식통은 “어제(5월 20일을 뜻함-옮긴이) 150km 정도 날아간 발사체는 300mm 대구경 방사포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북이 쏜 발사체의 정체에 관하여 기존 언론보도내용과 다른 새로운 언론보도가 나왔다. 남측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JTBC> 2013년 5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북이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쏜 발사체 여섯 발이 모두 300mm 신형 방사포라는 것이다. 그 보도기사에서는 “궤도와 속도 등을 정밀 분석한 결과 미사일이 아닌 방사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단정하였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5월 23일 남측 정부 고위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는 북이 쏜 발사체가 발사관 4개를 장착한 이동식 발사차량에서 쏜 300mm 신형 방사포인 것으로 “식별됐다”고 하면서, 북이 쏜 여섯 발 가운데 네 발은 150km 정도 날아갔고, 두 발은 130km 정도 날아간 것으로 “분석됐다”고 보도하였다.

북이 쏜 발사체 가운데 네 발이 120km 정도 날아갔고, 두 발이 150km 정도 날아갔다고 보도한 것이 이틀 전에 나온 <연합뉴스> 보도내용이었는데, 이틀 만에 <연합뉴스> 보도내용은 네 발이 150km 정도 날아갔고, 두 발이 130km 정도 날아간 것으로 바꿔졌다. 이것은 어느 보도내용이 정확한지 알 수 없을 만큼 오락가락한 것이다.  

북이 쏜 정체불명의 발사체에 관한 남측 언론보도가 오락가락한 것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3년 5월 20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은 대구경 로켓을 실전배치하는 단계에 있지 않고, 개발 중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는데, 이튿날 한국군 정보기관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이미 개발 단계를 마치고 최근 300mm 방사포를 실전배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상충적인 보도가 하루 사이에 나온 것은 남측 군부 관계자들이 대북군사정보를 제멋대로 가공하여 언론에 흘려주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생각해보면, 북이 이번에 300mm 방사포 여섯 발을 쏘았다는 언론보도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2013년 5월 23일 <경향신문>은 “단거리 미사일과 신형 방사포탄의 궤적과 꽁무니 불꽃 등은 큰 차이가 없어 문제의 발사체를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3일 동안 동일한 위치에서 비슷한 궤도로 6발을 쏜 것으로 보아 미사일보다는 방사포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한국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하였다. 북이 쏜 발사체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 발사체가 방사포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위의 <경향신문> 보도내용은 위에 열거한 다른 보도내용들보다 진실에 훨씬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명백하게도, 북이 300mm 방사포 여섯 발을 쏘았다는 언론보도는 매우 무리한 추측보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북이 300mm 방사포 여섯 발을 쏘았다는 추측보도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 추측보도는 사실과 전혀 다른 엉터리다. 그렇게 판단하는 몇 가지 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원래 방사포란 한꺼번에 십 여 발 이상 쏘는 일제사격무기다. 몇 시간 간격을 두고 한 발씩 띄엄띄엄 쏘는 것은 방사포가 아니다. 그런데 북은 5월 18일 오전에 두 발, 오후에 한 발 쏘고, 5월 19일 오후에 한 발 쏘고, 5월 20일 오전에 한 발, 오후에 한 발을 쏘았으니, 이것은 방사포를 쏜 게 아니라 미사일을 쏜 것이 분명하다. 만일 그처럼 며칠에 걸쳐 띄엄띄엄 쏘는 이상한 방사포가 있다면, 그것은 실전에서 사실상 무용지물이므로 어느 나라에서도 그런 방사포는 만들지 않는다. 미국군 정보당국과 한국군 정보당국이 언론에 퍼뜨린 방사포 발사설을 사실왜곡이라고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둘째, 원래 북이 실전배치한 300mm 방사포는 발사관이 12개 달린 12련장 방사포인데, 미국군 정보당국과 한국군 정보당국은 이번에 북이 발사한 300mm 방사포가 4련장 방사포라고 하였다. 그들이 언론에 퍼뜨린 4련장 방사포설이 사실왜곡이라는 점은 아래의 정보를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북의 300mm 방사포에 관한 정보는 2012년 2월 22일 <중앙일보>가 처음 보도하였다. 보도기사에서 한국군 정보당국 관계자는 북이 “300mm 방사포 개발을 마치고 실전배치하였다는 첩보를 입수하였다”고 하면서, 300mm 방사포는 12련장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300mm 방사포의 사거리는 170∼200km로 추정되며, “러시아제 위성위치정보시스템인 글로나스(GLONASS) 기술을 적용해 유도기능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남측 언론매체들이 2012년 2월 하순에 북의 300mm 방사포에 관해 보도한 것은, 평양에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이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명명된 직후 그 광장에서 진행된 인민군 열병행진에 처음 등장한 신형 방사포를 한국군 정보당국이 보고 그에 관한 정보를 언론에 흘려준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2012년 2월 16일 <조선중앙통신> 온라인 보도사진에는 신형 3축6륜 발사차량에 탑재된 대구경 12련장 방사포가 열병행진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12련장 방사포가 신형 300mm 방사포인 것이다. 

러시아군이 실전배치한, BM-30 스머취(Smerch)라 부르는 300mm 방사포도 북이 실전배치한 300mm 방사포처럼 12련장 방사포인데, 러시아군의 300mm 방사포의 사거리는 90km다. 또한 중국인민해방군이 실전배치한, A-100이라 부르는 300mm 방사포는 10련장 방사포인데, 사거리는 120km다. 이처럼 러시아나 중국의 경우를 보면, 300mm 방사포에 발사관을 겨우 4개만 얹어놓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위의 정보를 살펴보면, 북이 이번에 300mm 방사포를 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한데, 미국군 정보당국은 어째서 북이 방사포를 쏘았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것일까? 거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북이 쏜 발사체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 미국 군부에게 매우 불리해지기 때문에 미국군 정보당국은 방사포 발사설을 날조하여 유포하였다고 볼 수 있다.

호도반도 뒤흔든 발사폭음의 정체를 알면 세계가 놀란다 

북이 호도반도에서 쏜 발사체가 무엇인지 파악하려면, 아래와 같은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동아일보> 2009년 10월 6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2008년부터 신형 단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데, 미국군 정보당국과 한국군 정보당국은 그 신형 단거리 미사일을 KN-06이라 부르고, 사거리를 150∼200km로 추정하였다고 한다. 또한 <연합뉴스>와 <AP통신> 2011년 6월 8일 보도를 보면, 북이 2011년 6월 1일 평안북도 서해안에서 한 발 발사한 KN-06 미사일은 비행 중인 미사일이나 항공기를 공중격파하는 지대공 미사일이었다.

미국이 KN-06이라 부른 지대공 미사일은, 201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경축 열병행진에 등장한 ‘주체식 요격미사일종합체’의 지대공 미사일이었다. 남측 국방부가 2010년 12월 30일에 펴낸 ‘국방백서’에는 2010년 10월 10일 당창건 경축 열병행진에 등장한 북의 지대공 미사일이 “KN-06 지대공 미사일”이라고 수록되었다.

열병행진 현장보도사진에 나타난 KN-06 지대공 미사일의 원통형 수직발사관은 세 개였다. 그런데 이번에 호도반도에 출현한 자행발사대에는 발사관이 네 개 실려 있었다. 이것은 북이 원통형 수직발사관 네 개를 실은 자행발사대를 동원하여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하였음을 말해준다. 러시아군이 2020년까지 실전배치하게 될 신형 요격미사일 S-400 트라이움프(Triumf)도 발사관이 네 개다. 놀랍게도, 북은 ‘주체식 요격미사일종합체’를 열병행진에 공개한 때로부터 3년 만에 또 다른 신형 요격미사일 체계를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누구나 아는 것처럼, 공군기지 활주로는 전투기가 이착륙하는 공간이지 미사일 자행발사대가 전개되는 공간이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 함경남도 덕산비행장 활주로에는 각종 미사일을 탑재한 자행발사대 일곱 대가 출현하였다. 북이 이례적으로 미사일 자행발사대를 덕산비행장 활주로에 전개한 것은, 거기서 표적미사일을 쏘았고, 호도반도에서는 지대공 미사일을 쏘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덕산비행장 활주로에 전개한 미사일 자행발사대에서 각종 표적미사일을 동해 쪽으로 쏘고, 그와 거의 동시에 함경남도 최남단에 있는 호도반도에 전개한 지대공 미사일 자행발사대들이 신형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하여 표적미사일을 공중격파하는 탄도미사일 요격훈련을 실시한 것이다. 이번에 북이 신형 지대공 미사일을 호도반도에서 동쪽으로 쏘지 않고 북동쪽으로 쏜 까닭은, 덕산비행장 활주로에서 동남쪽으로 발사되어 날아오는 표적미사일을 공중격파하여야 하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북은 표적미사일 여섯 발과 지대공 미사일 여섯 발을 합해 모두 열두 발을 쏘았다.

이런 사실을 살펴보면, 북이 이번에 호도반도에서 사흘에 걸쳐 쏘았던 지대공 미사일 여섯 발은 미국이 KN-06이라 부르는 기존 지대공 미사일보다 성능을 더 향상시킨 강력한 신형 지대공 미사일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2012년 5월 3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지휘부를 시찰할 때, 지휘부 청사 앞마당에서 원통형 수직발사관이 발사대기태세로 곧추 세워진 신형 지대공 미사일 자행발사대를 살펴보는 모습이 북측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었는데, 바로 그 신형 지대공 미사일이 이번에 북이 발사한 지대공 미사일이다. 이 신형 지대공 미사일은 오는 7월 27일 평양에서 진행될 전승 60주년(남측에서는 정전 60주년) 인민군 열병행진에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발사폭음으로 호도반도를 뒤흔들며 극초음속(hypersonic)으로 날아가 표적미사일을 공중격파한 신형 지대공 미사일의 성능은 어떠할까? 미국이 KN-06이라 부르는, 북의 기존 지대공 미사일은 현재 러시아군이 운용하는 지대공 미사일 S-300에 필적하는 고성능 미사일이라고 알려진 바 있다. 러시아군이 운용하는 S-300의 요격거리를 알아보면, 전투기를 요격하는 경우는 140km이고,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경우는 90km이며, 요격고도는 27km에 이른다.

그런데 요격능력이 S-300에 비해 크게 향상된 최첨단 지대공 미사일 S-400은 600km 밖에서 날아가는 공중이동표적 36개를 동시에 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데, 240km 밖에서 날아가는 스텔스 전투기, 무인기, 순항미사일을 공중격파할 수 있고, 그보다 훨씬 더 빨리 비행하는 탄도미사일을 120km 밖에서 공중격파할 수 있다. S-400의 비행속도는 다른 요격미사일보다 두 배 이상 빠른 마하(Mach) 12에 이른다. 이처럼 러시아군의 S-400은 미국군의 페이트리엇(Patriot) 요격미사일을 상대하지 않을 만큼 뛰어난 성능을 지녔다. 2010년까지 러시아에서 S-300을 수입하였던 중국은 S-400을 2015년에 수입하려고 최근 러시아와 구매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북이 이번에 쏜 신형 지대공 미사일들 가운데 네 발의 비행거리가 150km 정도였고, 다른 두 발의 비행거리가 130km 정도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북의 신형 지대공 미사일이 150km 밖에서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을 공중격파하는 강력한 요격능력을 발휘하였음을 말해준다. 러시아가 세상에 현존하는 각종 지대공 미사일들 가운데 최강이라고 자랑하는 S-400은 탄도미사일 요격거리가 120km인데 비해, 북이 이번에 쏜 신형 지대공 미사일의 탄도미사일 요격거리가 150km에 이른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북은 이번에 150km 밖에서 날아가는 표적미사일을 신형 지대공 미사일로 공중격파함으로써 최첨단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였음을 실증하였다. 세상에 현존하는 어떤 미사일로도 뚫지 못할 세계 최강 미사일 방어망이 북에 구축되었으므로, 한미연합군 미사일은 실전에서 공중격파될 운명에 처했고, 한미연합군 전투기는 군사분계선이나 북측 해안선으로부터 300km 바깥에서 비행해야 마음이 놓이게 되었다. 이것은 한미연합군과 조선인민군 사이에 조성된 기존 공중전력 전략균형이 이번에 북의 신형 지대공 미사일이 보여준 군사기술적 우세로 깨져나갔음을 뜻한다. 이에 당황망조한 미국군 정보당국은 북이 300mm 방사포를 쏘았다는 헛소문을 언론에 유포함으로써 세계 각국의 경탄 어린 시선이 북의 최첨단 미사일 방어망에 쏠리지 않도록 차단하였던 것이다.(2013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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