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31

비공개 구두약속, 세상을 바꾸는 격변의 기폭제

[한호석의 개벽예감](308)
자주시보 2018년 07월 30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미국군 유골송환은 언제나 전승역사와 연관된다
2. 단독회담 중에 비공개 구두약속 있었다
3. 백악관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의 정체
4. 통일을 위해서라면 9억 달러짜리 시설도 아깝지 않다
5. 3단계로 도약한 조선, 2단계 진입 주저하는 미국


1. 미국군 유골송환은 언제나 전승역사와 연관된다 

2018년 7월 27일, 이 날은 조선에서 국가명절로 경축하는 전승절이고, 미국에서는 기억하기 싫은 패전일이다. 미국인들은 조미전쟁에서 조선이 승리하고 미국이 패했다는 조선의 역사인식을 이해하기 힘들지만, 조선의 표현을 빌리면, “공화국 남반부를 무력으로 강점한 미제침략군이 공화국 북반부까지 강점하려고 추종국 군대들을 거느리고 전면전을 도발하였으나, 조선의 군대와 인민은 북침공격을 저지하고 정전협정을 항복의 표시로 받아냈다”는 것이다. 

조선에서 전승 65주년을 맞은 지난 7월 27일 오전 6시경, 오산미공군기지를 이륙한 미국 제11공군 산하 제15비행단 소속 C-17 글롭매스터(Globemaster) 수송기 한 대가  원산국제비행장에 착륙하였다. 6.25전쟁 중 사망한 미국군 유골 55구가 담긴 유골함들이 수송기에 실렸다. 유골함을 실은 수송기는 곧바로 이륙하여 오전 11시경 오산미공군기지로 돌아갔다.  

지난 시기 조선은 판문점에서 육로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원산에서 항로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다. 왜 판문점이 아닌 원산에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을까? <사진 1>

▲ <사진 1> 조선에서 전승 65주년을 맞은 2018년 7월 27일 미국 제11공군 산하 제15비행단 소속 C-17 수송기는 원산국제비행장에서 6.25전쟁 중 사망한 미국군 유골 55구가 담긴 유골함 55개를 싣고 오산미공군기지로 돌아갔다. 이 사진은 오산미공군기지에 착륙한 수송기에서 유골함을 내리는 장면이다. 지난 시기 조선은 판문점에서 육로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원산에서 항공로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다. 왜 판문점이 아닌 원산에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을까?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원래 조선은 전승절 65주년을 맞아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려고 계획하였다.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정전협정은 조미전쟁에서 패한 미국에게서 받아낸 첫 번째 항복의 표시이고, 종전선언은 조미핵대결에서 패한 미국에게서 받아낼 두 번째 항복의 표시이므로, 조선은 첫 번째 항복을 받아낸 곳에서 두 번째 항복도 받아내려고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자기가 조선에게 항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너무 싫었고, 그래서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종전선언 발표를 뒤로 미루었다. 미국의 지연전술 때문에 종전선언 발표와 유골송환은 뒤로 미루어졌으나, 조선은 미국의 지연전술을 무력화시키고 오는 8월 중에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나머지 유골을 추가로 송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조미전쟁에서 패한 미국에게서 항복의 표시로 정전협정을 받아낸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미국군 유골을 송환하여야 마땅하므로, 종전선언을 발표하지 못한 채 미국군 유골만 넘겨주게 된 이번에는 판문점이 아닌 다른 곳에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고, 다음번에는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을 발표하면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은 이미 발굴된 미국군 유골 200여 구 가운데서 55구 유골만 1차로 넘겨주었고, 나머지 150여 구 유골은 판문점에서 추가로 넘겨주려고 남겨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평양국제비행장이 아닌 원산국제비행장을 송환장소로 택했을까? 원산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8년 1월 23일 조선인민군이 원산 앞바다를 침범하여 첩보활동을 벌이던 미국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하여 끌어갔던 전승기억이 남아있는 항구도시다. 조선은 30여 년 동안 원산항에 푸에블로호를 전시하였다가, 1999년에 평양 대동강변으로 옮겼고, 지금은 2013년 7월 28일에 개관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보통강변 옥외전시장에 전리품으로 전시하였다. 판문점에서도 원산에서도 조선의 유골송환은 언제나 조선의 전승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미국군 유골송환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12일 조미정상회담 확대회담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요청하여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기된 것이므로, 백악관은 송환당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조선이 미국군 유골을 송환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약속을 이행한 것이라고 지적하였지만, 그런 지적은 백악관의 일방적인 시각만 생각한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백악관의 일방적인 주장을 따르는 편중보도로 유골송환의 진실을 가렸지만, 유골을 송환한 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라 조선이므로 유골송환의 의미는 조선의 시각에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조선의 시각에서 유골송환을 바라보면,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한 조선이 그 대결에서 패한 미국에게서 항복의 표시로 종전선언을 받아내기 위해 우선 미국군 유골 55구를 1차로 송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단독회담 중에 비공개 구두약속 있었다

2018년 7월 24일 미국 쌘프랜시스코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에서 미국-오스트레일리아 외교-국방장관회담이 진행되었는데, 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국무장관이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하였다. 그는 취재기자로부터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를 시작하였다는 미국의 언론보도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을 때,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는)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약속에 완전히 부합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구두로 약속했다”고 답변했다.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한 것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이행에서 중요한 계기이므로 아래에서 자세히 논하려고 하는데, 우선 팜페오 국무장관의 답변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두로 약속하였다는 사실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공동성명 이외에 공개되지 않은 구두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두 정상이 단독회담에서 나눈 구두약속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들어있지 않은 비밀사항이어서 구두약속이 실행되기 전에는 두 정상 이외에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고, 더욱이 두 정상 간의 비공개 구두약속은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격변의 기폭제이기 때문이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쎈토사섬에서 진행된 단독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비공개 구두약속을 나누었던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도 2018년 7월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진행된 단독회담에서 비공개 구두약속을 나누었다. 비공개 구두약속의 중요성을 간파한 트럼프의 정적들은 조미정상 단독회담의 비공개 구두약속과 미러정상 단독회담의 비공개 구두약속을 모두 세상에 공개하라고 백악관에 요구하며 소란을 피웠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8년 6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폴공화국 쎈토사섬에서 진행된 조미정상 단독회담을 시작하기에 직전 취재기자들 앞에서 발언하는 장면이다. 두 정상은 단독회담에서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구두약속을 나누었다. 두 정상 간의 비공개 구두약속은 모두 10가지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 구두약속은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격변의 기폭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나는 2018년 6월 18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트럼프가 말하지 않은 조미정상회담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비공개 구두약속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였다. “단독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가 실현되는 것에 상응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의 철군조치에 상응하여 비핵화를 실현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5년 동안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진 핵대결의 내면을 파헤치면,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단독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과 나눈 비공개 구두약속, 다시 말해서, 주한미국군의 완전한 철수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단계별-동시적 행동원칙에 따라 실현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조선이 이행하려는 중대조치가 실행되기 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회담에서 나눈 구두약속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단독회담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다섯 가지 중대사안을 구두로 약속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을 이행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 
- 종전선언 발표 
- 평화협정 체결 
- 대조선 경제제재 해제 
- 주한미국군 철수

미국이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구두약속을 순차적으로 이행하면서 대조선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각 분야별 교류를 추진하게 되면, 조선과 미국은 국교수립이라는 가장 높은 단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단독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섯 가지 중대사안을 구두로 약속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을 이행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핵시험 및 중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
- 미국군 유골송환 및 발굴 
-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 녕변흑연감속로 해체 
- 핵확산금지조약 복귀 

조선이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구두약속을 순차적으로 이행하면서 대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각 분야별 교류를 추진하게 되면, 조선과 미국은 국교수립이라는 가장 높은 단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은 비공개 구두약속 가운데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기로 한 약속만 실행에 옮겼고, 종전선언을 발표하기로 한 약속은 뒤로 미루었으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공개 구두약속 가운데 핵시험 및 중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지하기로 한 약속을 이미 이행하였고, 지금은 미국군 유골을 송환, 발굴하기로 한 약속과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로 한 약속을 동시에 이행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백악관이 지연전술을 쓰는 바람에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이루어진 비공개 구두약속을 이행하는 속도가 약간 늦어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가지 구두약속을 순차적으로가 아니라 동시에 이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사정은 미국의 지연전술이 무력화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행시간표가 예정대로 실행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3. 백악관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의 정체

2018년 6월 25일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팜페오 국무장관은 “북조선이 여전히 핵분열물질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짤막한 발언이었지만, 조미관계의 깊숙한 비밀공간에서 그 발언의 의미를 건져 올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새로운 대조선정책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연방상원 외교위원회의 눈치를 살피며 발언수위를 조절해야 하였던 팜페오 국무장관이 조선에서 여전히 핵분열물질이 생산되고 있다고 말한 것은, 극도로 민감한 문제를 슬쩍 덮고 넘어간 임기응변이었다. 임기응변을 발휘한 팜페오 국무장관의 머릿속에는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차마 꺼내놓지 못한 말이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조선에서 여전히 핵무기가 생산되고 있다는 말을 차마 꺼내놓지 못했던 것이다. 

핵분열물질은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물질이므로, 조선에서 핵분열물질이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는 말은 핵무기가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는 뜻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조선에서 핵분열물질만 생산되고 핵무기는 생산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조선의 핵무기생산체계를 알지 못하는 착오다.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그와 동반적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완전히 실현되는 날까지, 조선이 핵분열물질 생산과 핵무기 생산을 멈춰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의무도 없다. 왜냐하면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기 이전에 조선이 핵분열물질 생산과 핵무기 생산을 점차적으로 축소한다고 합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조선에게 핵분열물질 감산과 핵무기 감산을 기대할 수도 없고, 요구하지도 못한다. 미국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점차적인 핵감산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것은 커다란 허점이었다. 미국은 조선의 점차적인 핵감산 문제를 협상에서 제기하지 않은 실수를 후회하면서, 그 무슨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느니, 영구적이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PVID)라느니, 최종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느니 하는 괴상한 개념들을 조작, 유포하면서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허상에 한 눈을 팔았다. 미국은 실책을 범했다. 조선의 핵무기생산체계에서 끊임없이 울려나오는 기계동음이 백악관의 속을 바작바작 태우고 있다. 백악관은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는 날까지, 조선의 핵무기생산체계를 생각할 때마다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갈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6년 3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병기화사업을 현지지도한 소식을 보도한 조선의 언론보도에 나오는 현장보도사진들 가운데 하나인데, 공식명칭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대륙간탄도미사일 6기가 놓여있다.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그와 동반적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는 날까지, 조선은 핵무기생산체계를 멈춰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의무도 없다. 왜냐하면 조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기 이전에 조선이 핵분열물질 생산과 핵무기 생산을 점차적으로 축소한다고 합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는 날까지, 조선의 핵무기생산체제를 생각할 때마다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갈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은 평안북도 녕변에 있는 핵시설단지에서 가동되는 흑연감속로에서 핵물질을 연소하고 그것을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하여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는데, 그 생산량은 연간 5kg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선은 녕변핵시설단지 안에 건설하여 2010년에 세상에 공개한 우라늄농축시설에서 제조되는 고농축우라늄을 가지고 대부분의 핵무기를 생산한다.  

<워싱턴포스트> 2017년 8월 8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의 핵탄두 보유량은 2017년 7월 28일을 기준으로 최대 60발에 이른다고 하는데, 2017년 6월 27일 서울에서 진행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미국의 핵과학자 씩프릿 헥커(Siegfried S. Hecker) 박사는 조선의 연간 핵탄두 생산량이 6~7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였다. 그의 추산에 따르면, 조선은 핵탄두를 2개월마다 1발씩 계속 생산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핵무기 생산을 중지시키는 것은, 백악관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를 끄는 것처럼 화급한 문제다. 백악관이 자기 발등에 떨어져 타들어가는 불덩이를 화급히 끄려면,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눈 구두약속을 꾸물거리지 말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런데도 조미고위급회담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이 지연전술을 들고 나와 종전선언 발표를 뒤로 미룬 것은 발등에 불덩이가 떨어져 타들어가는 백악관의 화급한 처지를 망각한 처사였다. 


4. 통일을 위해서라면 9억 달러짜리 시설도 아깝지 않다
  
2018년 7월 23일 미국의 온라인 언론매체 <38노스(North)>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을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자료를 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2018년 7월 20일과 22일에 각각 촬영된 그 위성사진자료들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해체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업위성이 7월 20일에 촬영한 위성사진자료에서 해체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이 보인 것은, 그 해체작업이 그보다 며칠 전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평소에 조선을 지속적으로,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미국 첩보위성이 상업위성보다 앞서, 더 세밀하게 해체작업현장을 포착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7월 24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열린 해외참전노병 전국대회에서 연설하면서 “북조선이 핵심적인 미사일시험장(서해위성발사장을 뜻함-옮긴이)을 해체하는 절차를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사진들이 나왔다. 우리는 그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그가 연설하기 전날인 7월 23일에 <38노스> 보도기사에 실린 위성사진자료를 보고나서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이 시작되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처럼 말한 것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8년 7월 23일 미국의 온라인 언론매체 <38노스>에 실린 상업위성사진자료다.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위성발사시설들이 해체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는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두로 약속한 중대조치들 가운데 하나다. 2011년 말에 완공된 서해위성발사장은 9억 달러짜리 현대식 위성발사시설이다. 지금 조선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그런 위성발사시설을 주저없이 해체하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18년 7월 6일과 7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을 마친 팜페오 국무장관은 7월 8일 일본 도꾜에서 한미일 3자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하였는데, 회담 직후에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 “북조선이 미사일시험장(서해위성발사장을 뜻함-옮긴이)을 해체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약속해온 그 문제에 관해 (조미고위급회담에서) 논의했다. 중요한 시기에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이) 시작될 것인데, 곧 시작된다니 희망적이다. 이것은 비핵화를 향한 행동에서 중요한 사건이며, 그들의 목표를 이행하는 데서 좋은 발걸음으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팜페오 국무장관의 이 발언은, 조미고위급회담 중에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재확인하고, 2018년 7월 20일 직전 어느 날부터 해체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통보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팜페오 국무장관의 조미고위급회담 결과를 보고받고 조선이 7월 20일 직전 어느 날부터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7월 24일 해외참전노병 전국대회 연설에서 마치 그 전날 처음 알게 된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었던 것이다.  

팜페오 국무장관이 지난 7월 8일 도꾜에서 진행된 3자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조선이 “미사일시험장”을 곧 해체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는 보도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서해위성발사장 경내에 있는 대륙간탄도탄엔진분사시험장이 해체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위성사진자료를 분석한 <38노스>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대륙간탄도탄엔진분사시험장과 함께 위성발사시설도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엔진분사시험장을 해체하는 것은 응당한 조치로 되지만, 서해위성발사장 전체를 해체하는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런가?

서해위성발사장은 2011년 말에 완공되었다. 250만 평방미터(76만평)에 이르는 방대한 부지에 현대식 시설들이 들어섰다. 2012년 3월 31일 <조선일보>는 서해위성발사장 건설비용이 약 8억 5,00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한국 정보당국의 추산을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완공 이후에도 조선은 서해위성발사장 시설을 더욱 확충, 보강하였으므로, 서해위성발사장 총건설비는 9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이 9억 달러를 들여 건설한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한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서해위성발사장이 9억 달러에 이르는 건설비로 산출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가치를 지닌 시설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만일 서해위성발사장이 없었다면, 1998년 8월 31일 조선이 첫 인공위성을 동해위성발사장에서 쏘아올린 때부터 오늘까지 20년 동안 막대한 자금과 노력을 기울여온 국가우주개발사업도 성과적으로 추진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우주개발은 위성발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사진 5>

▲ <사진 5> 위쪽 사진은 2016년 2월 7일 지구관측위성 광명성 4호를 탑재한 위성운반로켓 은하가 서해위성발사장 수직발사대에서 거대한 화염과 굉음을 내뿜으며 우주공간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이다. 아래쪽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구관측위성을 탑재하고 수직발사대로 이동하기 직전 조립시설 작업장에 가로놓인 위성운반로켓 은하의 동체를 손으로 쓰다듬고 있는 장면이다. 이 사진이 말해주는 것처럼, 조선이 국가우주개발사업에 기울인 노력과 열정은 대단하고, 우주강국건설의 꿈은 원대하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이 지난 2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오고 있는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스스로 중단하는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8천만 민족의 절절한 염원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국가우주개발사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로 결심하였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앞당겨 이른 시일 안에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있어서 국가우주개발보다 더 중대하고 고귀한 과업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이 국가우주개발사업에 기울인 노력과 열정은 대단하다. 조선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제1차 국가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자기의 우주과학기술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2013년 4월 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는 제12기 제7차 회의에서 국가우주개발국(NADA) 창설을 결의하였고, 우주개발법을 채택하여 우주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조선에서는 국가우주개발국 이외에도 민간단체인 조선우주협회가 2016년에 조직되어 해마다 우주과학기술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우주강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있다. 그리하여 조선은 2022년까지 정찰위성, 통신위성, 위치관측위성을 연속 쏘아올려 독자적인 위성항법체계(GPS)와 지리정보체계(GIS)를 구축하기 위한 우주개발의 길에 나섰던 것이다.  

2016년 8월 4일 미국 통신사 <AP>는 조선의 국가우주개발국 현광일 과학연구실장이 2016년 7월 28일 <AP> 특파원과 현지에서 진행한 대담을 실었다. 대담에 따르면, 조선의 우주과학자들은 제2차 국가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2020년까지 완수하고, 그 다음에는 달탐사위성을 쏘아올려 달표면에 공화국 깃발을 꽂으려고 구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이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데서 없어서는 안 될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다니, 지난 20년 동안 국력을 기울여 추진해온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이제 와서 중단하려는 것인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는 심각하고, 중대한 결정은 김정은 국무위원장만이 내릴 수 있으므로, 지난 7월 20일 직전에 시작된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정에 따른 조치인 것이다.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는 조선이 지난 2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오는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스스로 중단하는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8천만 민족의 절절한 염원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지가 얼마나 강고하고 강렬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앞당겨 이른 시일 안에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있어서 국가우주개발보다 더 중대하고, 고귀한 과업이다.    

(2)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앞당겨 이른 시일 안에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조선이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 있지만,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머지 않은 장래에 한반도에 통일공화국이 세워지면, 분단체제 아래서 남과 북이 각각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온 우주개발사업이 하나로 통합될 것이며, 통일공화국의 국가우주개발사업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추진력과 추진속도로 비약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가우주개발전략은 통일공화국에서 실현될 원대한 우주개발전략으로 확대되었다. 통일공화국의 우주과학자들은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보다 지리적으로 훨씬 더 유리한,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에 있는 나로우주센터에서 최첨단 위성들을 우주공간으로 연속 쏘아올리며 신흥우주강국의 위용을 떨칠 것이다. 8천만 우리 민족에게 조국통일은 다른 모든 분야들에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우주개발분야에서 경이로운 신기원을 이루는 대사변을 일으킬 것이다.   


5. 3단계로 도약한 조선, 2단계 진입 주저하는 미국 
  
2018년 7월 24일 미국 쌘프랜시스코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에서 진행된 미국-오스트레일리아 외교-국방장관 직후 공동기자회견장에 나타난 팜페오 국무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의 약속에 따라 미사일엔진시험장(서해위성발사장을 뜻함-옮긴이)이 해체되는 경우, 미국은 해체작업현장에 사찰원들을(inspectors) 보내게 해달라고 (조선에게) 요구해왔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위에 인용된 팜페오 국무장관의 발언에 따르면, 미국은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할 때, 사찰단을 현장에 파견하는 검증문제를 조선에 제기했으나, 조선은 그런 검증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강도적인 검증요구”는 조선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체험적으로 잘 아는 미국은 통하지도 않을 검증요구를 그만 제기하고,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눈 구두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회담에서 나눈 구두약속은 단계별-동시적 행동원칙에 따라 이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두 정상의 구두약속 이행과정이 어느 단계까지 진전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공화국 쎈토사섬에서 진행된 조미정상 확대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 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중대한 구두약속을 나누었고, 역사적인 공동성명을 채택, 발표하였다. 그런데 그 구두약속을 이행하는 조선의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미국의 속도는 한참 느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은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된 때로부터 6개월 안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협정이 체결된 때로부터 1년 뒤에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대격변의 시간표는 온갖 장애를 넘어 힘있게 실행되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시험 및 중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지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이미 조미정상회담 직전에 이행하였고, 그에 상응하여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조미정상회담 직후에 이행하였다. 이것은 조선과 미국이 비공개 구두약속을 이행하는 1단계를 이미 넘어섰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에 미국군 유골을 송환하기로 한 구두약속과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동시에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비공개 구두약속을 이행하는 2단계와 3단계에 각각 순차적으로 진입하지 않고, 한꺼번에 동시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 것만큼 이행시간이 크게 단축될 것이고, 목표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은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된 때로부터 6개월 안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협정이 체결된 때로부터 1년 뒤에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간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안에 조미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대격변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발표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2단계에 진입하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조선은 2단계와 3단계에 동시에 진입하였는데, 미국은 2단계에 아직 진입하지 못하였으니 조선의 이행속도와 미국의 이행속도는 격차를 보인다. 피동에 빠진 미국이 조선의 주동적인 조치를 따라가려면, 종전선언을 발표하기로 한 구두약속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동시에 이행할 필요가 있다. 조선의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은 일정한 시간을 요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해체작업이 끝날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조선의 핵무기생산체계는 오늘도 여전히, 지속적으로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조선의 핵무기 생산을 중단시켜 한반도 비핵화를 하루빨리 실현하려면,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종전선언을 발표하기로 한 구두약속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동시에 이행하여 추진속도를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추진속도를 높여 비공개 구두약속을 신속히 이행하는 것은 조미 양국의 공동이익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일이므로,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용단을 내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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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4

유골송환만 서두르고 종전선언 미루면 협상은 진전되지 않는다

[한호석의 개벽예감](307)
자주시보 2018년 07월 23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진부한 협상술 꺼내든 팜페오
2. 조선이 미국에게 제기한 네 가지 의제
3. 사상 처음 북측에서 열린 조미장성급군사회담
4. 미국은 왜 ‘페품처리’를 꺼리고 있을까?
5. 트럼프가 직통전화 걸어야 매듭 풀린다


1. 진부한 협상술 꺼내든 팜페오

2018년 7월 7일 조선외무성이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였다. 담화에 들어있는 한 구절에 눈길이 멎는다. “미국은 저들의 강도적 심리가 반영된 요구조건들까지도 우리가 인내심으로부터 받아들이리라고 여길 정도로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이 구절은 미국이 조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조미고위급회담에서 꺼내놓았으니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조선외무성이 대변인 담화에서 지적한 비판대상은 2018년 7월 6일과 7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에 미국 대표로 참석한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국무장관이다. 

<연합뉴스> 2018년 7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의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을 미국 국무부 청사에서 면담한 스티븐 물(Stephen D. Mull) 국무부 정무차관보 대행은 조미고위급회담 중에 팜페오 국무장관이 “핵-탄도미사일 소재지를 포함한 북한 핵프로그램 전체 리스트, 비핵화 시간표, 싱가포르에서 약속한 사항의 이행”을 협상상대인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요구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고 한다. 국무부 정무차관보 대행이 언급한 “핵-탄도미사일 소재지”라는 것은 조선의 최고보안시설들인 핵탄두보관시설과 대륙간탄도미사일보관시설의 위치를 뜻한다. 그러므로 조미고위급회담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이 조선의 비밀핵시설들 위치를 신고하라는 “강도적인 요구”를 제기하였다는 사실이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보 대행의 발언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이 글을 시작하면서 인용한 조선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나오는 그 구절은 팜페오 국무장관이 조선의 비밀핵시설 위치를 신고하라는 강도적인 요구까지도 조선이 인내심을 가지고 받아들이리라고 여길 정도로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정세분석가들이나 핵전문가들 가운데 조선이 비밀핵시설 위치를 미국에게 신고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팜페오 국무장관만 조선이 비밀핵시설 위치를 미국에게 신고할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21일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조미정상회담 성과를 설명하면서 마익 파페오 국무장관의 공로를 치하하고 악수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조미정상회담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열린 조미고위급회담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밖에 내지 못했다. 그렇게 된 까닭은, 팜페오 국무장관이 조미고위급회담에서 조선의 비밀핵시설 위치를 신고하라는 "강도적인 요구"를 제기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팜페오 국무장관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을 요구하는 조선과 조미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미국 극우세력의 비좁은 틈바구니에 끼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뉴욕타임스> 2018년 7월 7일 보도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팜페오 국무장관은 “사석에서 이야기할 때 북조선의 영도자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의심한다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공식적으로는 조선에게 비밀핵시설 검증을 요구하는 것처럼 발언하고 있지만, 속마음이 드러나는 사석에서는 비밀핵시설 검증은 고사하고 조선의 핵포기 가능성마저 믿지 못한다고 실토한 것이다. 

공식발언과 속마음이 그처럼 서로 다른 팜페오 국무장관이야말로 표리부동의 전형이다. 물론 그런 표리부동은 밀고 당기는 협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할 수 있는, 별로 특별하지 않은 협상술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협상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뻔히 알면서도 협상초기에 고강도 요구를 꺼내들고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여 협상후기에 협상상대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는 진부한 협상술인 것이다. 

하지만 협상상대의 속셈까지 꿰뚫어보는 절묘한 협상술로 상대를 제압해온 조선에게 그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진부한 협상술을 꺼내든 팜페오 국무장관의 모습은 좀 초라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조선을 상대로 힘겨운 협상을 벌여야 하는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만일 팜페오 국무장관이 조미고위급회담에서 조선의 요구를 처음부터 덥석 받아들이면, 조미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미국의 극우세력으로부터 집중공세를 받아 국무장관직에서 물러날 위험이 생길 수 있으므로, 그로서는 진부한 협상술이라도 꺼내들고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은 지난 25년 동안 조미회담에 나섰던 미국 대표들이 예외 없이 빠져들었던 곤혹스러운 처지에 팜페오 국무장관도 빠져들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선은 팜페오 국무장관의 곤혹스런 처지를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조선은 조미고위급회담을 중단하지 않고,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경고만 주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하라고 부탁한 친서와 선물을 가지고 조미고위급회담에 참석한 팜페오 국무장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접견을 받지 못한 채 평양을 떠나야 했던 사연이 바로 그것이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을 요구하는 조선과 조미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미국 극우세력의 비좁은 틈바구니에 끼었다. 조미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미국 극우세력의 반발과 방해가 우심해진 현재 상황에서 조선은 미국 극우세력의 눈치를 살피며 잔뜩 몸을 사리는 팜페오 국무장관의 처지를 생각하여 ‘속도조절’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공동성명의 조항들을 완전하고 신속하게 리행하기로 하였다”고 명기되었는데, 미국 정치권의 복잡한 내부갈등 때문에 이행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조선의 ‘속도조절’은 조미고위급회담 추진속도를 원래 예정했던 것보다 조금 늦춘다는 뜻이다. 조미고위급회담에서 조선이 합의하려던 의제들은 바뀌지 않지만, 회담에서 여러 가지 의제들을 현안들을 한꺼번에 합의하지 않고, 몇 차례 회담을 진행하면서 점차적으로 합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도 ‘속도조절’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7월 17일 백악관에서 공화당 하원의원들을 접견하면서 조미협상에는 “시간제한이나 속도제한이 없다. 그저 과정을 밟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2018년 7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최고회의에서 조미협상과 관련하여 발언하면서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우리가 가야 할 곳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2. 조선이 미국에게 제기한 네 가지 의제

조선이 조미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하려는 의제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2018년 7월 7일 조선외무성이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 따르면, 조미고위급회담에 조선 대표로 참석한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미국 대표로 참석한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중요한 의제들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대변인 담화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측은 조미수뇌상봉과 회담의 정신과 합의사항을 성실하게 리행할 변함없는 의지로부터 이번 회담에서 공동성명의 모든 조항들의 균형적인 리행을 위한 건설적인 방도들을 제기하였다. 조미관계개선을 위한 다방면적인 교류를 실현할 데 대한 문제와 조선반도에서의 평화체제구축을 위하여 우선 조선정전협정체결 65돐을 계기로 종전선언을 발표할 데 대한 문제, 비핵화조치의 일환으로 ICBM의 생산중단을 물리적으로 확증하기 위하여 대출력발동기시험장을 페기하는 문제, 미군유골발굴을 위한 실무협상을 조속히 시작할 데 대한 문제 등 광범위한 행동조치들을 각기 동시적으로 취하는 문제를 토의할 것을 제기하였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8년 7월 7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1박2일 동안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을 마친 팜페오 국무장관 일행이 조선을 떠나기 위해 평양국제공항에 도착하였을 때, 팜페오 국무장관이 외신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장면이다. 조미고위급회담에서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네 가지 중요한 의제를 제기하면서 특히 정전협정체결 65주년이 되는 2018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을 발표하자고 제의하였으나, 팜페오 국무장관이 정당한 사유 없이 뒤로 미루자고 제동을 거는 바람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조선의 의제를 열거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조미관계개선을 위한 다방면적인 교류를 실현하는 의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두 나라 인민들의 념원에 맞게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해나가기로 하였다”고 명기된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제1항을 이행하려면, 조선과 미국은 다방면적인 교류부터 실현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다방면적인 교류는 정치, 경제, 학술, 문화예술, 체육 등 여러 부문에서 조선과 미국이 상호교류를 추진한다는 뜻이다. 상호교류는 우선 손쉽게 추진될 수 있는 문화예술부문과 체육부문에서 시작될 것이고, 나중에 정치부문, 경제부문, 학술부문으로 확대될 것이다. 다방면적인 상호교류의 최종목표는 조미국교수립이다. 

(2) 정전협정체결 65주년이 되는 2018년 7월 27일에 종전선언을 발표하는 의제 - 이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논한다. 

(3) 대륙간탄도미사일 대출력발동기시험장을 폐기하는 의제
여기서 말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대출력발동기시험장은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엔진분사시험장을 뜻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그 시험장에서 2016년 4월 7일, 2016년 9월 19일, 2017년 3월 17일에 각각 대출력미사일엔진지상분출시험이 진행되었다. 조선이 그 시험장을 폐기하는 것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이것은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또 한 가지 중대조치로 된다. 

(4) 6.25전쟁 중에 행방불명된 미국군 실종자 유골을 발굴하기 위한 조미실무협상을 시작하는 의제 - 이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논한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의제들 가운데 조선이 가장 먼저 추진하려는 것은 종전선언 발표다. 조선외무성은 위에 인용된 대변인 담화에서 “종전선언을 하루빨리 발표할 데 대한 문제로 말하면 조선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공고한 평화보장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첫 공정인 동시에 조미 사이의 신뢰조성을 위한 선차적인 요소이며 근 70년 간 지속되여온 조선반도의 전쟁상태를 종결짓는 력사적 과제”라고 지적하였다.  

종전선언 발표는 65년 동안 정전상태에 있는 6.25전쟁이 공식적으로, 완전히 끝나고 조선과 미국의 평화공존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명기된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제2항을 이행하는 첫걸음은 종전선언 발표인 것이다. 

그런데 2018년 7월 7일 조미고위급회담을 마친 팜페오 국무장관 일행이 조선을 떠나기 위해 평양국제공항에 나타났을 때, 팜페오 국무장관이 주목할 만한 발언을 꺼내놓았다. 그를 수행한 외신기자들이 회담성과가 궁금하다며 그에게 질문하였을 때, 그는 6.25전쟁에서 행방불명된 미국군 실종자 유골을 송환하기 위한 조미군사회담을 2018년 7월 12일 판문점에서 열기로 합의하였으며,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엔진시험장을 폐쇄하는 방도를 논의하기 위한 조미실무회담도 열기로 합의하였다고 답변하였으나, 종전선언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은 조미고위급회담에서 종전선언문제가 논의되었지만, 팜페오 국무장관이 뒤로 미루자고 제동을 거는 바람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3. 사상 처음 북측에서 열린 조미장성급군사회담

조미고위급회담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이 뒤로 미루자고 우겨대는 바람에 시급히 실현되어야 할 종전선언문제가 합의되지 못하였지만, 조선은 물러서지 않았다. 언제나 그러했지만, 조선의 협상술은 교착상태에서 놀라운 진가를 발휘한다. 조미고위급회담 이후에 전개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미고위급회담 합의에 따라 미국군 유골을 송환하기 위한 조미군사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릴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주한미국군사령부는 2018년 7월 12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있는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로 회담대표를 보냈다. 그러나 조선인민군 회담대표는 약속시간에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제4항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전쟁포로 및 행방불명자들의 유골발굴을 진행하며 이미 발굴확인된 유골들을 즉시 송환할 것을 확약하였다”고 명기되었다. 유골송환문제는 이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이고, 김영철 부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고위급회담에서도 그 이행을 합의한 것인데, 조선인민군 회담대표가 회담장에 나오지 않았으니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미국군 회담대표는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이제나 저제나 조선인민군 회담대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7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측은 약 3시간 뒤에 주한미국군측에 전화를 걸어 오늘 조미군사회담이 취소되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고 한다. 

3시간 동안 멍하니 기다리다가 회담이 취소되었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진 주한미국군측에게 조선인민군측은 회담취소통보와 함께 세 가지 새로운 요구조건을 기습적으로 제기하였다. 그것은 조미군사회담을 장성급군사회담으로 격상할 것, 회담을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진행하지 말고 통일각에서 진행할 것, 무산된 회담을 7월 15일에 재개할 것 등이다. 

협상상대를 다급한 처지에 몰아넣고 자기 요구를 기습적으로 관철시키는 조선의 협상술은 언제 봐도 노련하다. ‘기습공세’를 받고 정신이 얼얼해진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조선인민군측이 제기한 세 가지 요구를 덥석 받아들였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측 지역에 있는 통일각을 촬영한 것이다. 2018년 7월 15일 통일각에서 사상 처음으로 조미장성급군사회담이 열렸다. 주한미국군사령부 참모장이며 주한미공군사령관인 마이클 미니핸 공군소장이 군복을 입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통일각에 들어섰다. 조미장성급군사회담이 통일각에서 열린 것은, 미국이 유골송환문제를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논의하지 못하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가 북측 지역에서 논의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유엔과는 전혀 무관한데도 유엔사령부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정전상태를 유지하려고 수작해온 주한미국군사령부에게서 그 낡아빠진 허울이 훌렁 벗겨졌음을 의미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18년 7월 15일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정에서 전환점이 또 하나 마련된 날이다. 그 날 판문점 북측 지역에 있는 통일각에서 사상 처음으로 조미장성급군사회담이 열렸다. 주한미국군사령부 참모장이며 주한미공군사령관인 마이클 미니핸(Michael A. Minihan) 공군 소장은 어깨에 은색별 두 개를 얹어놓은 군복을 입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통일각에 들어섰다. 이튿날 통일각에서는 조미장성급군사회담 후속실무회담이 진행되었는데, 버크 해밀턴(Burke Hamilton) 주한미국군 대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가 회담에 참석하였다. 미국군 유골을 송환하기 위한 조미군사회담은 2009년 3월에 마지막으로 열렸는데, 당시에는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에서 대령급군사회담으로 진행된 바 있다.  

조미장성급군사회담이 통일각에서 열린 것은, 미국이 유골송환문제를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논의하지 못하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가 북측 지역에서 논의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유엔과는 전혀 무관한데도 유엔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정전상태를 유지하려고 수작해온 주한미국군사령부에게서 그 낡아빠진 허울이 훌렁 벗겨졌음을 의미한다. 

원래 유골송환문제는 종전 이후에 실현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외교관례에 따르면, 전쟁이 종식된 뒤에 유골을 송환하게 된다. 그런데 미국은 종전선언을 7월 27일에 발표하자는 조선의 제의를 정당한 사유 없이 뒤로 미루고, 유골송환을 서둘렀다.  

그러나 미국이 마음먹은 대로 판이 돌아가는 건 아니다. 통일각에서 열린 조미장성급군사회담에서 조선인민군 회담대표는 미국군 유골을 가져가려면 종전선언을 발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한국 통신사 <뉴시스> 2018년 7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통일각에서 진행된 조미장성급군사회담에서 조선측은 종전선언을 발표하는 의제를 제기하였다고 한다. 

유골송환문제를 합의하는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통일각에 들어선 주한미국군사령부 참모장은 조선인민군 회담대표가 유골송환문제와 종전선언문제를 결부시키자 당황하였다. 주한미국군사령부 참모장은 종전선언문제에 대해 책임적인 답변을 꺼내놓을 권한을 갖지 못했으므로, 그는 상부에 보고하겠다는 식으로 답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보고는 미국 국방부를 통해 백악관에 전달되었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7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통일각에서 진행된 조미장성급군사회담에서 양측은 두 가지를 합의하였다고 한다. 하나는 조선이 미국 국방부 유골발굴단 입국을 허용하여 조미가 공동으로 발굴작업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이 이미 발굴한 미국군 유골 55구를 오는 7월 27일 미국으로 송환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6.25전쟁 중에 행방불명된 미국군 실종자는 5,300여 명이나 되고, 그 가운데 조선이 발굴한 유골은 약 200구인데, 조선은 일차적으로 유골 55구만 미국에 송환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위에 인용한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조선이 유골 55구를 오는 7월 27일에 송환하겠다는 약속을 실제로 이행할는지 아니면 취소할는지 우려한다는 것이다.   


4. 미국은 왜 ‘페품처리’를 꺼리고 있을까? 

조선이 유골송환문제와 종전선언문제를 결부시키고, 유골 200구 가운데 55구만 일차적으로 송환하겠다고 약속하자, 모든 유골을 송환하는 줄 알고 기대했던 백악관은 속이 버쩍 달아올랐다. 지금 백악관은 종전선언 발표문제를 결정하지 못하고 좌불안석이다.  

백악관이 종전선언 발표요구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종전선언이 발표되면, 정전협정은 자동폐기되고, 6.25전쟁은 공식적으로 끝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6.25전쟁을 위해 조작해놓았고, 65년 동안 정전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해온 유엔사령부는 존재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종전선언 발표는 유엔사령부 해체를 불러오는 것이다. 

유엔사령부는 미국 언론에서 오랜 세월동안 거론되지 않아 망각 속에 묻힌 폐품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미국이 유골송환문제를 순조롭게 풀려면, ‘페품처리’를 할 수 있는 종전선언을 발표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에는 복잡한 내막이 얽혀있다.     

미국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소련의 대표가 참가하지 않은 유엔안보리에서 조작한 결의 제84호를 구실로 내걸고, 1950년 7월 7일 일본 도꾜에 유엔사령부를 설치하였고,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유엔군사령관 모자를 씌워주었다. 또한 미국은 유엔사령부 이름으로 일본과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체결하였고, 그 협정에 따라 일본 각지에 7개소의 대규모 군사기지를 설치, 운영해오고 있다. 그 7개 군사기지들은 요꼬다공군기지, 요꼬스까해군기지, 자마육군기지, 사세보해군기지, 가데나공군기지, 후뗀마해병대항공기지, 화이트비치해군기지다. <사진 4> 

▲ <사진 4> 위쪽 사진은 주일유엔군기지에 미국 성조기, 일본 일장기, 유엔기가 게양된 해괴한 모습이다. 미국은 유엔사령부 이름으로 일본과 주둔군지휘협정을 체결하였고, 일본 각지에 대규모 유엔군기지 7개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주일유엔군기지들은 유엔군사령관 모자를 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유엔후방사령부가 형식적으로 관리한다. 유엔후방사령부는 도꾜 인근 요꼬다공군기지 안에 있다. 아래쪽 사진은 2018년 1월 29일 유엔후방사령부에서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국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이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유엔후방사령관으로 임명된 오스트레일리아공군 대령 애덤 윌리엄스에게 유엔기를 넘겨주는 해괴한 장면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미국이 유엔사령부 이름으로 일본과 주둔군지위협정을 체결하였기 때문에 위에 열거한 7개 군사기지들에는 미국 성조기, 일본 일장기와 함께 유엔기가 게양된다. 이 해괴한 현상은 7개 군사기지가 주일미국군기지이며 동시에 주일유엔군기지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유엔사령부는 1957년에 도꾜에서 서울로 옮겨왔으나, 유엔군기지들은 여전히 일본에 있다. 미국은 주일유엔군기지들을 장악, 통제하기 위해 유엔군사령관 모자를 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유엔후방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Rear)라는 것을 조작하였다. 유엔후방사령부는 도꾜 인근 요꼬다미국공군기지 안에 있다.  

일본 통신사 <지지통신> 2018년 7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조미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던 2017년 한 해 동안 유엔후방사령부가 주일유엔군기지들에서 전쟁장비를 사용한다고 일본 정부에 통보한 횟수는 모두 27회였는데, 그 가운데 14회는 작전기를 사용한다고 통보한 횟수이고, 나머지 13회는 군함을 사용한다고 통보한 횟수였다고 한다. 이전에는 12~15회밖에 되지 않았는데, 조미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2017년에는 27회로 급증하였다. 이것은 미국군이 유엔사령부라는 허울을 쓰고 대조선전쟁위험을 고조시켰음을 말해주는 사례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오스트레일리아공군 대령 애덤 윌리엄스(Adam Williams)를 유엔후방사령부 사령관에, 캐나다공군 대령 태미 히스콕(Tammy Hiscock) 부사령관에 각각 허수아비로 앉혀놓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자국의 장성급 지휘관들을 앉혀놓았어야 할 군직에 다른 나라 군대의 대령급 지휘관들을 앉혀놓은 것은, 유엔군이 다국적군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술책이다. 미국은 유엔군이 미국군, 영국군, 프랑스군, 오스트레일리아군, 캐나다군, 뉴질랜드군, 필리핀군, 태국군, 터키군으로 구성된 다국적군이라고 하면서, 실제로 오스트레일리아군 잠수함, 프랑스군 정보수집함, 영국군 전투함, 캐나다 전투함 등을 주일유엔군기지들에 끌어들이고 대조선전쟁연습에 참가시켰다. 

이처럼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물론이고, 유엔기를 든 9개국 증원부대를 동원할 수 있는데, 유엔사령부가 해체되면 9개국 증원부대를 동원하지 못한다. 미국이 유엔사령부 해체문제와 결부되어 있는 종전선언 발표요구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5. 트럼프가 직통전화를 걸어야 매듭 풀린다

미국 국방부는 유골함 200개가 실린 운송차량들을 이미 2018년 6월 하순부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주한미국군 경비대대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로 이동시켜놓고 이제나 저제나 목이 빠지게 송환을 기다리는 중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유골송환문제가 조미정상회담에서 자신이 거둔 외교성과라고 하면서, 미국군 유골송환이 곧 실현될 것처럼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에 널리 광고하였다. 미국군 유골함들이 도착될, 워싱턴 인근에 있는 앤드루스공군기지에서 유골봉환의식이 진행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 의식에 직접 참석하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그 현장을 텔레비전 실황방송으로 생중계하여 미국인들과 참전노병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씨나리오도 이미 준비되었다. <사진 5>

▲ <사진 5> 맨 위쪽 사진은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조선인민군 병사들이 조선에서 발굴된, 6.25전쟁 중에 행방불명되었던 미국군 실종자 유골이 든 유골함을 미국군에게 인계하는 장면이다. 가운데 사진은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유골함을 인계받은 미국군이 유골함 위에 유엔기를 덮고 유골봉환의식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맨 아래쪽 사진은 유골함이 미국땅에 도착하기 전 유골함에서 유엔기를 성조기로 바꾸고 유골봉환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이동하는 장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인근에 있는 앤드루스공군기지에서 진행될 유골봉환의식에 직접 참석하여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그 현장을 텔레비전 실황방송으로 생중계하여 미국인들과 참전노병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씨나리오를 준비해놓았다. 하지만 그 씨나리오를 실행에 옮기려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매듭을 풀어야 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지금 미국은 준비된 씨나리오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조선이 요구하는 종전선언 발표가 지연되면, 유골송환도 그만큼 지연되기 때문이다. 복잡한 매듭이 얽혀있는 유골송환문제는 팜페오 국무장관의 힘으로는 풀 수 없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매듭을 풀고 유골송환을 실현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조선이 신뢰하는 유일한 상대는 트럼프 대통령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선과 미국의 신뢰조성문제와 관련하여 <워싱턴포스트> 2018년 7월 21일 보도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주었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측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이 참석하였고, 미국측에서 성 킴 필리핀주재미국대사와 앤드루 킴 중앙정보국 코리아임무쎈터 책임자가 참석한 조미비공개회담이 2018년 7월 초 판문점에서 열렸는데, 그 회담에서 성 킴 대사는 팜페오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여 조미고위급회담을 개최하는 문제와 미국군 유골을 송환하는 문제를 토의하려고 하였으나, 김영철 부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지 않으면 어떤 의제도 토의하지 않겠다고 딱 잡아떼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부터 받아올 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고 한다. 판문점 비공개회담에서 백악관으로 날아온 긴급요청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친서를 급히 작성하였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성 킴 대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받고 나서 비공개회담을 일사천리로 진척시켜 1시간 만에 후딱 끝냈다고 한다.    

위에 인용한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조미협상에 “사로잡힌(captivated)”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참모들에게 조미협상 진행상황에 관한 “일일보고(daily updates)”를 요구하면서 직접 챙겨왔는데, 즉각적인 협상성과가 나오지 않자, 지난주에는 백악관 참모들에게 “벌컥 화를 냈다(bristled)”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다리는 유골송환이 실현되려면,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종전선언 날짜를 잡는 수밖에 없다. 그는 조미정상회담 단독회담에서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부터 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성전화번호를 갖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관계개선이 장애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직통전화를 사용하라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그에게 주었다.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은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도날드 제이.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은 새로운 조미관계발전과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 안전을 추동하기 위하여 협력하기로 하였다”는 문장으로 끝나는데, 이 마지막 문장은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길에서 양국 정상이 의사를 소통하며 협력할 것을 공약한 것이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그 공약을 실행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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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7

트럼프는 2017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한호석의 개벽예감](306)
자주시보 2018년 07월 16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CD음반을 선물로 준비한 사연
2. 강도적인 요구는 FFVD-DPRK
3. 졸렬한 기피전술
4. 또 다시 자행된 방해공작
5. 빗발치는 공세를 친서공개로 저지하다  


1. CD음반을 선물로 준비한 사연

2018년 7월 5일 마익 팜페오(Mike R. Pompeo)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열리는 조미고위급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수행원들과 취재기자들을 이끌고 워싱턴을 출발하였다. 그들이 탄 전용기는 일본 도꾜 인근에 있는 요꼬다주일미공군기지를 거쳐 7월 6일 오전 10시 54분 평양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이번에 조선을 세 번째 방문하였는데, 영접분위기는 이전과 달리 좀 썰렁했다. 팜페오 국무장관의 세 번째 평양방문에 동행한 미국 통신사 <블룸벅 뉴스(Bloomberg News)> 취재기자가 전한 바에 따르면, 조선은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회담일정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회담장소와 숙소도 어디인지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조미고위급회담은 평양 대성구역 임흥동에 있는 풍치수려한 백화원 영빈관에서 7월 6일부터 1박2일 동안 진행되었다. 조선외무성은 2018년 7월 7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고위급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정상적인 외교관례대로 진행되었다면, 조미고위급회담이 끝난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친서를 직접 그에게 전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김영철 부위원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대신 전했다. 이런 정황을 보면, 원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하여 친서를 전하는 일정이 잡혀있었으나, 조미고위급회담이 시작되기 직전 그 중요한 일정이 갑자기 취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1> 

▲ <사진 1> 2018년 7월 6일부터 1박2일 동안 평양 대성구역 임흥동에 있는 풍치수려한 백화원 영빈관에서 조미고위급회담이 진행되었다. 위의 사진은 조미고위급회담 현장을 촬영한 외신보도사진이다. 오른쪽에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다른 배석자들과 함께 앉았고, 왼쪽에 마익 팜페오 미국 국무장관이 다른 배석자들과 함께 앉았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전하였고, 팜페오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친서를 김영철 부위원장에게 전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팜페오 국무장관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접견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접견일정이 취소되었다는 것을 알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만 김영철 부위원장에게 전하였을 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물은 전하지 않았고, 조미고위급회담을 마친 뒤 통상적으로 진행되는 기자회견마저 생략한 채 평양을 조용히 떠났다.   

그처럼 기대에 미치지 못한 회담결과가 나온 것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고위급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품었다. 그래서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와 함께 특별선물도 보내려고 준비하였다. 하지만, 팜페오 국무장관은 그 선물을 꺼내놓지도 못한 채 다시 백악관으로 가져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달되지 못한 특별선물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얽혀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폴공화국 쎈토사섬에서 진행된 조미정상회담 단독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의견을 나누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 15일 백악관 정원에서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Fox News)>와 진행한 즉석대담 중에 사흘 전에 있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상봉을 회상하면서 “우리는 아주 잘 어울렸고, 마음이 잘 통했다(We get along very well, we have a good chemistry)”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2018년 7월 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진행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을 마친 직후 기자회견에서 조미정상회담을 회상하는 대목에서도 “정말 놀라운 상봉이었다. 나는 우리가 매우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 그였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와 함께 특별선물을 보내려고 준비하였던 것이다. 

<조선일보> 2018년 7월 6일 보도기사와 <CNN> 2018년 7월 10일 보도기사를 읽어보면, 2018년 6월 12일 조미정상회담 오찬석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의 오해를 푸는 대화를 나누었음을 알 수 있다. 통역을 통해 나눈 대화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해 조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나를 가리켜 ‘로케트맨’이라고 불렀지요?” 
“그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뭐,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그 별명을 어떻게 생각해냈는지 아십니까?”
“그건 모르겠군요.”
“엘튼 존이 부른 노래 ‘로켓맨’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런 노래는 듣지 못했는데, 엘튼 존은 누굽니까?”
“그 가수가 부른 노래가 정말 좋습니다. 다음 기회에 그의 노래가 수록된 CD음반을 드리겠습니다.”

엘튼 존(Elton H. John)은 지난 50여 년 동안 대중음악가수, 피아노연주가, 작곡가로 활동해오고 있는 영국의 저명한 연예인이다. 그는 미국의 극작가 레이 브래드베리(Ray D. Bradbury)가 1951년에 발표한 공상과학단편소설집 ‘삽화인(The Illustrated Man)’에서 창작적 영감을 받아 ‘로켓인(Rocket Man)’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1972년에 작곡하고 불렀다. 1970년대에 청춘시절을 보낸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엘튼 존의 유행가를 즐겨들었는데,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오늘도 ‘로켓인’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잊지 않고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로켓인’이라는 말은 나쁜 뜻이 아니라, 엘튼 존의 노래와 함께 흘러간 자신의 청춘시절에 대한 잊지 못할 추억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해 그가 자기와 대결하는 조선의 젊은 영도자를 ‘로켓인’이라는 별명으로 부른 사연에는 그런 청춘시절의 추억이 들어있었다. <사진 2> 

▲ <사진 2> 위쪽 사진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공화국 쎈토사섬에서 진행된 역사적인 조미정상회담 중에 실무오찬을 시작하려는 장면이다. 오찬장에 도착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덕담을 나누고 있다. 오찬석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청춘시절에 즐겨 들었던 영국 가수 엘튼 존의 노래 '로켓맨'이 수록된 CD음반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선물로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하였다. 아래쪽 사진은 실무오찬을 마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호텔 경내를 산책하는 장면이다. 두 정상은 첫 상봉에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의견을 나누었는데,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첫 상봉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호의와 신뢰를 갖게 되었다는 '고백'을 여러 차례 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트럼프 대통령은 쎈토사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약속한 대로, 이번에 팜페오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면서, 엘튼 존의 노래 ‘로켓인’이 수록된 CD음반을 구하여 그 겉면에 인사말을 쓰고 자신의 이름을 서명한 뒤에 그 특별선물을 친서와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의 접견일정을 취소하는 바람에 팜페오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만 김영철 부위원장에게 전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선물은 꺼내놓지 못했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이 2018년 7월 10일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보도당일 오전 백악관 정원에서 진행된 즉석기자회견에서 팜페오 국무장관 편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CD음반선물을 보냈는가고 묻는 질문을 받고 “그들은 선물을 (내게) 보내지 않았으나, 나는 그(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지칭-옮긴이)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그들은 선물을 보내지 않았으나, (내가 준비한) 선물은 언젠가 전해질 것이다. 사실 나는 그를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했는데, 내가 그 선물을 전할 때 그것이 어떤 선물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만 보내고 선물은 보내지는 않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와 함께 선물까지 보내려고 준비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 접견일정을 갑자기 취소하는 바람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하지 못했는데도, 앞으로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열리면 자신이 직접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하기 위해 CD음반 이외에 또 다른 선물을 준비하였다.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 수반에게 선물을 보낸 사례는 거의 없으며, 더욱이 적대국 수반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런데 놀랍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의 전통과 관례를 깨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위해 선물을 한 차례도 아니고 두 차례나 준비한 것은,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호의와 신뢰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징표다. 요즈음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관계이건 적대관계이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갈등과 혼란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유독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만은 호의와 신뢰를 보이고 있다. 이런 대조적임 모습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음을 말해준다. 국제사회에서 오만방자하다고 소문난 아메리카핵제국의 최고통치자의 마음을 단 한 번의 상봉으로 사로잡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범한 외교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 강도적인 요구는 FFVD-DPRK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 동안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접견하고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었던 팜페오 국무장관을 이번에 접견하지 않고 그냥 돌려보낸 까닭은, 조미고위급회담이 열리기 직전, 그 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협의가 결렬되었고, 그에 따라 조미고위급회담도 기대했던 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렬내막은 다음과 같다.

2018년 7월 3일 미국 국무부 청사에서 국무부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헤더 노엇(Heather A. Nauert) 국무부 대변인이 말한 바에 따르면, 성 킴(Sung Kim, 김성용) 필리핀주재 미국대사가 팜페오 국무장관보다 한 발 앞서 평양에 들어가 실무협의를 진행하였다. 또한 미국 텔레비전방송 <ABC> 2018년 7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성 킴 대사와 앤드루 킴(Andrew Kim, 김성현) 미국 중앙정보국 코리아임무쎈터 책임자가 판문점을 거쳐 평양에 먼저 들어가 팜페오 국무장관과 일행이 도착하기 전까지 실무협의를 진행하였다. 정상회담 또는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실무협의가 진행되는 것은 통상적인 외교관례이므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실무협의에서 성 킴 대사가 해괴망측한 발언을 꺼내놓았다. 조선외무성이 2018년 7월 7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실무협의에서 성 킴 대사는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를 들고 나왔다고 한다. 조선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그런 요구가 “실무적인 전문가급에서” 나왔다고 지적하였는데, 팜페오 국무장관은 실무적인 전문가가 아니므로, 실무적인 전문가급인 성 킴 대사가 실무협의에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를 들고 나온 것이 분명하다. 성 킴 대사는 조미정상회담에 앞서 진행된 실무협의에서도 “비핵화의 범위”를 확정하는 문제를 놓고 천만부당한 요구를 꺼내놓았다가, 그의 협상상대였던 최선희 조선 외무성 부상으로부터 단호한 배격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한 술 더 떠서 아주 노골적으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를 들고 나온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2018년 7월 6일부터 1박2일 동안 평양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팜페오 국무장관이 수행원들을 이끌고 회담장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팜페오 국무장관 바로 뒤에 성 킴(김성용) 필리핀주재미국대사가 따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성 킴 대사는 조미고위급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판문점을 거쳐 평양에 한 발 먼저 들어가 최선희 조선외무성 부상과 실무협의를 진행하였는데, 실무협의에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를 들고 나와 실무협의를 결렬시켰다. 실무협의가 결렬되었으므로, 조미고위급회담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밖에 거둘 수 없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외무성이 2018년 7월 7일에 발표한 담화에 따르면, 성 킴 대사가 실무협의에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를 들고 나온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에서 제시한, “조미관계와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를 풀어나가는 새로운 방식”, 다시 말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새로운 방식을 실무적인 전문가급에서 줴버리고 낡은 방식에로 되돌아간” 것이며, 조미정상회담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망발이다. 

실무협의가 이처럼 성 킴 대사의 망발로 결렬되었으므로, 조미고위급회담 분위기는 처음부터 냉랭할 수밖에 없었고, 기대했던 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조선외무성이 2018년 7월 7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 따르면, “이번 첫 조미고위급회담을 통하여 조미 사이의 신뢰는 더 공고화되기는커녕 오히려 확고부동했던 우리의 비핵화 의지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한 국면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CNN> 2018년 7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조미고위급회담에 대해 평가한 백악관의 분위기는 “매우 나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 킴 대사가 실무협의에서 들고 나온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2018년 7월 2일 미국 국무부는 7월 5일부터 12일까지 조선을 포함한 5개국을 차례로 방문하는 팜페오 국무장관의 해외순방일정을 알려주는 언론발표문을 내놓았는데, 거기에 나오는 한 구절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싱가폴에서 이룩한 새로운 진전(forward progress)을 이행하고 협의를 계속하기 위해 7월 5일부터 7일까지 평양을 방문할 것이다. 국무장관은 7월 7일부터 8일까지 도꾜에서 일본, 한국의 지도자들과 만나 조선의 최종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를 향한 우리의 공통된 노력을 비롯하여 양자문제 및 지역문제를 토의할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의 최종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of the DPRK)”라는 낯선 개념이다. 위에 인용한 두 문장의 문맥을 살피면, 조선외무성이 2018년 7월 7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 나오는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는 미국 국무부 언론발표문에 나오는 “조선의 최종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에 대한 요구였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거듭 합의한 개념은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CD-KP)”인데, 그 공동성명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열린 조미고위급회담 실무협의에서 성 킴 대사는 “조선의 최종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of the DPRK=FFVD-DPRK)”라는 합의되지 않은 낯선 개념을 들고 나왔다. CD-KP와 FFVD-DPRK는 서로 양립할 수 없으며, 정면충돌이 불가피한 상극개념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비핵화의 범위를 조선반도로 확정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실무협의에서 성 킴 대사는 두 정상의 합의와 어긋나게 비핵화의 범위를 조선으로 축소하려고 하였다. 비핵화의 범위를 조선으로 축소해놓으면, 미국의 대조선핵공격력은 그대로 두고, 조선의 대미핵공격력만 일방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극단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조선외무성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라고 비난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2)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에서 검증문제를 거론하지 않았고, 따라서 공동성명에는 검증이라는 말 자체가 들어있지 않다. 그런데도 실무협의에서 성 킴 대사는 생뚱맞게 검증문제를 꺼내놓고 생트집을 잡았다. 그가 말한 검증이라는 것은, 조선이 비핵화를 제대로 실행했는지 현장조사를 벌이기 위해 미국의 사찰단이 조선에 들어가 공개된 핵시설을 사찰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밀핵시설까지 사찰한다는 뜻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조선을 비롯한 핵보유국들은 세상에 공개할 수 없는 비밀핵시설을 저마다 운영하고 있는데, 그런 시설들은 국가수반과 극소수 책임자들만 그 존재를 아는 국가기밀시설이며, 국가보안시설이다. 그런데 실무협의에서 성 킴 대사는 그런 비밀핵시설들까지 사찰해야 한다고 생트집을 잡았으니, 이것이야말로 강도적인 검증요구가 아니면 무엇인가! 

조선외무성은 7월 7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미국측이 회담에서 끝까지 고집한 문제들은 과거 이전 행정부들이 고집하다가 대화과정을 다 말아먹고 불신과 전쟁위험만을 증폭시킨 암적 존재”라고 비난하였는데, 그런 비난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하려면, 조미핵대결 25년의 흐름을 살펴보아야 한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03년 1월 11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지지하는 군중대회 장면이다. 1993년 클린턴 행정부는 조선의 핵시설에 대한 불시사찰을 요구하였고, 조선은 불시사찰 강박에 대응하여 핵확산금지조약에서 전격 탈퇴하였다. 1994년 10월 제네바기본합의가 채택되자, 조선은 자국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효력발생을 임시 정지시켰다. 그런데 부쉬 행정부가 제네바기본합의를 위반하면서 조선의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였고,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핵계획을 포기할 것을 조선에게 요구하자, 조선은 검증요구 강박에 대응하여 2003년 1월 10일 핵확산금지조약에서 완전히 탈퇴하였다. 이처럼 미국이 조선에게 요구한 불시사찰과 검증은 지난 25년 동안 지속되어온 조미핵대결의 화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조미고위급회담 실무협의에서 성 킴 대사는 조미핵대결의 화근이었던 검증요구를 또 다시 제기하는 망발을 저질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클린턴 행정부는 조선의 핵시설에 대한 불시사찰을 요구하였다. 그들이 요구한 불시사찰은 미국이 조선의 어느 특정대상을 사찰하겠다는 의사를 조선에게 통보하면, 조선은 24시간 안에 현장사찰을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조선에게 불시사찰을 요구하자, 조선은 그런 강도적인 요구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배격하였고, 불시사찰 강박에 대응하여 1993년 3월 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전격 탈퇴하였다. 명백하게도, 미국의 강도적인 불시사찰 요구는 조미핵대결을 촉발시킨 화근이었다. 그 이후 클린턴 행정부는 조선과 협상하여 1994년 10월 제네바기본합의를 채택하였고, 조선은 자국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효력발생을 임시 정지시켰다.  

그런데 클린턴 행정부에 뒤이어 등장한 부쉬 행정부는 제네바기본합의를 위반하면서 조선의 새로운 핵의혹을 제기하였으며, 조선이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핵계획을 포기하는 검증을 요구하였다. 부쉬 행정부가 조선에게 비핵화 검증을 요구하자, 조선은 그런 강도적인 요구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배격하였고, 검증요구 강박에 대응하여 2003년 1월 10일 핵확산금지조약에서 완전히 탈퇴하였다. 이처럼 1993년에 시작된 조미핵대결은 10년 세월이 흐른 2003년에 또 다시 격화되었던 것이다.  

조미핵대결 25년 역사가 입증하는 것처럼, 조선의 비밀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불시사찰과 비핵화 검증이라는 강도적인 요구가 조미핵대결을 촉발, 격화시킨 화근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미국 국무부가 이번에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 실무협의에서 비핵화 범위축소와 비핵화 검증요구를 들고 나와 조미핵대결의 화근을 또 다시 건드렸으니, 이보다 더 위험한 망동이 어디 있겠는가!    


3. 졸렬한 기피전술

실무협의에서 성 킴 대사가 비핵화의 범위를 조선반도로 확정한 조미정상회담 합의사항을 제멋대로 변경시켜 비핵화의 범위를 조선으로 축소시키고, 조미핵대결의 화근인 검증요구를 들고 나오자, 그의 협상상대인 최선희 조선외무성 부상은 그의 망발을 단호히 배격하였다. 실무협의에서 발생된 긴급한 사정은 곧바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고되었다. 보고를 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하지 않은 채 그냥 돌려보냈다. 

다른 한 편, 성 킴 대사는 팜페오 국무장관이 평양에 도착하자, 자기들이 실무협의에서 제기한 비핵화 범위축소와 비핵화 검증요구가 배격당했다는 사실을 그에게 보고하였다. 보고를 받은 팜페오 국무장관은 당황하였다. 그는 실무협의에서 배격당한 비핵화 범위축소와 비핵화 검증요구를 조미고위급회담에서 또 다시 꺼내놓을 수 없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조미고위급회담에서 기피전술로 일관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기피전술이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실행하지 않는 행동을 말한다. 조선외무성이 2018년 7월 7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 따르면, 조미고위급회담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은 “조선반도 평화체제구축문제에 대하여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이미 합의된 종전선언문제까지 이러저러한 조건과 구실을 대면서 멀리 미루어놓으려는” 기피전술에 매달렸던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할 것”을 합의했는데도, 조미고위급회담에 나온 팜페오 국무장관은 말이 되지 않는 핑계를 늘어놓으면서 합의이행을 뒤로 미루었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18년 7월 6일부터 1박2일 동안 평양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에 참석한 팜페오 국무장관이 수행원들인 성 킴 필리핀주재미국대사와 앤드루 킴(김성현) 중앙정보국 산하 코리아임무쎈터 책임자와 함께 회담장소인 백화원 영빈관 구내에서 걸어가는 장면이다. 조미고위급회담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은 말이 되지 않는 핑계를 늘어놓으면서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한반도 평화체제구축문제를 뒤로 미루는 기피전술로 일관하였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한반도 평화체제구축문제를 뒤로 미룬 기피전술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의 합의이행을 기피한 졸렬한 행동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미고위급회담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은 조선이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자기들도 조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겠다는 식의 기피전술로 일관하였지만, 그의 기피전술은 조선의 요구를 기피한 대응행동이 아니라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의 합의이행을 기피한 졸렬한 행동이었다.  

조선외무성은 2018년 7월 7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이 조미정상회담의 정신에 “부합되게 건설적인 방안을 가지고 오리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기대와 희망은 어리석다고 말할 정도로 순진한 것”이었다고 하면서, “(조미고위급)회담결과는 극히 우려스러운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개탄하였다. 

실무협의에서 성 킴 대사가 비핵화 범위축소와 비핵화 검증요구를 꺼내든 것은 그의 독자적인 판단과 결심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다. 위에 인용된 미국 국무부 언론발표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실무협의에서 성 킴 대사는 미국 국무부의 결정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실무협의에서 성 킴 대사가 비핵화 범위축소와 비핵화 검증요구를 꺼내든 것은 팜페오 국무장관의 지시를 집행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실무협의에서 비핵화 범위축소와 비핵화 검증요구를 꺼내놓으라는 지시는 팜페오 국무장관의 최종 결정으로 내려진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그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조선외무성은 2018년 7월 7일에 발표한 담화에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심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비핵화 범위축소와 비핵화 검증요구를 실무협의에서 제기하라고 지시한 장본인이 팜페오 국무장관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조미고위급회담은 팜페오 국무장관의 졸렬한 기피전술 때문에 기대하였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났지만,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실무집단(working group)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성과는 있었다. 


4. 또 다시 자행된 방해공작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왜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과 어긋나는 비핵화 범위축소와 비핵화 검증요구를 조선에게 제기하라는 지시를 성 킴 대사에게 내린 것일까? 이 의문을 풀려면, 조미고위급회담이 성사되기 직전, 미국에서 어떤 상황이 조성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2018년 7월 6일부터 7일까지 평양에서 조미고위급회담이 열리기 직전,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이 비밀핵시설들에서 핵물질, 핵무기, 탄도미사일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느니, 조선에게는 비핵화 의지가 전혀 없다느니, 조선은 비핵화 공약으로 미국을 속였다느니 뭐니 하는 헛소문을 퍼뜨리는 여론조작에 열을 올렸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여론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주요언론매체들 가운데 그런 여론조작보도를 내보낸 사례들을 추려내면,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8년 6월 29일 보도,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2018년 6월 30일 보도,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 2018년 7월 1일 보도, 미국 일간지 <월스트릿저널(Wall Street Journal)> 2018년 7월 1일 보도,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2018년 7월 2일 보도 등이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미국의 언론매체들이 조선의 의심스러운 비밀핵시설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공개한 상업위성사진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위성사진에 나타난 공장은 남포시 천리마구역에 있다는 '강선우라늄농축공장'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주요언론매체들은 팜페오 국무장관이 조미고위급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으로 출발하기 직전 조선에 비밀핵시설들에서 핵물질, 핵무기, 탄도미사일이 증산되고 있다느니, 조선에 비핵화 의지가 전혀 없다느니, 조선의 비핵화 공약은 미국을 기만하는 속임수라느니 하는 온갖 헛소문을 조작, 유포하였다. 이것은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강한 여론압력을 가하여 조미고위급회담에서 검증요구를 관철하려는 미국 극우세력의 여론압력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런 여론조작보도들이 조미고위급회담 직전에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은 결코 우연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미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 범위축소와 비핵화 검증요구를 제기하도록 팜페오 국무장관을 몰아세운 강한 여론압력이었다.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이행을 방해하려고 음으로 양으로 악랄하게 책동하는 미국의 극우세력이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그런 여론압력을 가했다는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 미국의 극우세력은 언론매체들을 통해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압력을 넣었고, 차차기 대권야망을 품은 팜페오 국무장관은 극우세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비핵화 범위축소와 비핵화 검증요구를 조선에게 제기하라는 지시를 성 킴 대사에게 내렸다. 

얼마 전 극우관료인 존 볼턴(John R. Bolto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앞세워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게 만들었던 미국의 극우세력은 이번에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여론압력을 가하여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이행을 방해하려는 책동을 또 다시 감행한 것이다. 


5. 빗발치는 공세를 친서공개로 저지하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대권야망에 눈이 어두워 극우세력의 비위를 맞추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국의 극우세력이 조미고위급회담은 완전히 실패하였다느니, 조선에게 비핵화 의지가 없다느니 하고 떠들어대던 2018년 7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팜페오 국무장관을 통해 전달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세상에 공개하였다. 원래 국가정상들이 주고받은 친서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외교관례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극우세력의 빗발치는 공세를 저지하기 위한 비상조치로 친서공개를 결심했던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7월 6일에 작성하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 이렇게 썼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2018년 7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다. 팜페오 국무장관이 미국의 극우세력이 자행한 방해공작에 말려들어 조미고위급회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밖에 거두지 못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자, 미국의 극우세력은 조미고위급회담이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느니, 조선에게 비핵화 의지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느니 하는 여론공세로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이행을 방해하려고 광분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여론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격 공개하였다. 미국의 극우세력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이행을 방해하려고 온갖 책동을 계속 자행하고 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공동성명의 앞길을 지켜주고 있기에 극우세력의 방해책동은 파탄될 것이며, 공동성명은 이행의 길로 전진하게 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4일 전 싱가포르에서 있은 각하와의 뜻깊은 첫 상봉과 우리가 함께 서명한 공동성명은 참으로 의의 깊은 려정의 시작으로 되었습니다. 나는 두 나라의 관계개선과 공동성명의 충실한 리행을 위하여 기울이고 있는 대통령 각하의 열정적이며 남다른 노력에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조미 사이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는 나와 대통령 각하의 확고한 의지와 진지한 노력, 독특한 방식은 반드시 훌륭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대통령 각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과 신뢰가 앞으로의 실천과정에 더욱 공고해지기를 바라며 조미관계개선의 획기적인 진전이 우리들의 다음번 상봉을 앞당겨 주리라고 확신합니다.”  

미국의 극우세력은 우리 8천만 민족과 전 세계 인류가 한결같이 지지, 찬동하는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이행을 방해하려는 악랄한 책동을 자행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친서에서 밝힌 것처럼, “조미 사이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 진지한 노력, 독특한 방식”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앞길을 지켜주고 있기에 극우세력의 방해책동은 반드시 파탄되고 말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변함없는 믿음과 신뢰”가 트럼프 대통령을 조미관계개선과 공동성명이행의 길로 이끌고 있기에, 그는 2017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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