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8

프랑스의 좌파정치와 우리의 진보정치, 뭐가 다를까?

변혁과 진보 (48)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말도 꺼내지 못할 프랑스 좌파연합의 집권 시나리오

<한겨레> 2011년 9월 26일 부에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낭보 한 편이 실렸다. 기사제목은 '프랑스 좌파 50년만에 상원 장악...격변 예고'라고 되어 있다.

설레는 심정으로 기사본문을 찬찬히 읽어보았더니, 지난 9월 25일에 프랑스 상원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대유권자 72,000여 명이 투표하여 170명을 새로 선출하는 간접선거에서 선전한 사회당-공산당-녹색당 3당 선거연합이 상원의원 348석 가운데 절반이 넘는 177석을 차지하였다는 것이다.

프랑스 대선은 2012년 4월에 실시되고, 총선도 그로부터 두 달 뒤에 실시되는데,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은 이번에 자기들의 3당 선거연합이 선전한 여세를 밀고 나가 내년 두 선거에서도 연승하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감추지 않고 있다.

위의 기사제목은 사회당-공산당-녹색당의 3당 선거연합을 분별 없이 '좌파연합'이라 불렀지만, 그것은 오류다. 프랑스 사회당과 녹색당은 좌파정당이 아니라 중도정당이고, 프랑스 공산당도 당명만 공산당일 뿐 '좌파색깔'이 퇴색한 유로꼬뮤니즘(Eurocommunism)을 당이념으로 채택하였으니 엄밀한 의미에서 좌파정당이라 하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2개 중도정당과 1개 '변색된' 좌파정당이 연합하였고, 더욱이 당세를 비교하면 프랑스공산당이 사회당에 비해 크게 약하므로, 사회당 주도의 중도연합이라 하면 더 정확할 것이다.

프랑스의 좌파정당들은 따로 있다. 2007년에 실시된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전한 4개 좌파정당들은 혁명적공산주의동맹, 프랑스공산당, 노동자투쟁, 노동자당이다. 이 4개 정당이 정치연합을 결성해야 그것을 좌파연합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프랑스공산당은 왜 다른 중도정당들과 중도연합을 실현하면서도 다른 좌파정당들과는 좌파연합을 실현하지 못한 것일까?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난 2007년 프랑스 대선결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7년 대선에서 대중운동연합 니꼴라 사르코지 후보는 31.18%, 사회당 세골렌 루아얄 후보는 25.87% 각각 얻었는데, 사르코지와 루아얄 두 후보만이 맞붙은 결선투표에서 사르코지가 이겨 결국 우파정권이 들어서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대선에서 4개 좌파정당들이 거둔 성적표는 어떠했을까? 득표율을 보면, 혁명적공산주의동맹 후보가 4.08%, 프랑스공산당 후보가 1.93%, 노동자투쟁 후보가 1.33%, 노동자당 후보가 0.34%였다. 민주노동당 2007년 대선결과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4개 좌파정당 후보들이 각각 거둔 득표율을 모두 합해도 7.68%밖에 되지 않는다.

20074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 12명이 출마, 대중운동연합 니꼴라 사르코지가 31.18%, 사회당 세골렌 루아얄이 25.87%를 획득했다. 결선투표에서는 각각 53.06%, 46.94%를 차지했다. 위의 작은 상자 사진들에서 보듯 난립한 좌파정당(후보)은 존재감 없는 득표를 기록했다. 혁명적 공산주의동맹(올리브에 브장스노우) 4.08%, 프랑스 공산당(마리-조지 뷔페) 1.93%, 노동자투쟁(아를레트 라귀에) 1.33%, 노동자당(제라르 쉬바르디) 0.34%에 불과했다. 그리고 반세계화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 1.3%, 중도정당 녹색당(도미니크 브아네)1.6%를 기록했다.

2007년 대선 득표율만 가지고 따져보면, 4개 좌파정당들이 합당하여 좌파단일정당을 건설하는 경우 득표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현 집권당인 대중운동연합, 그리고 제1야당인 사회당을 제외하고, 2007년 대선 득표율이 10%를 넘은 정당은 18.57%의 득표율을 거둔 프랑스민주연합과 10.44%의 득표율을 거둔 국민전선 뿐이다.

프랑스민주연합은 우파정당이고 국민전선은 극우정당이므로, 만일 좌파단일정당이 출현하여 대선 득표율을 10% 이상 끌어올리면, 사회당과 프랑스민주연합에 이어 제3야당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 좌파정당들은 합당하지 못했다. 좌파단일정당으로 합당하기 힘들다면, 최소한 좌파단일후보라도 선출했어야 하는데, 후보단일화마저도 시도하다가 실패로 끝났다.

만일 2007년 대선에 좌파단일정당이 출전하여 명실공히 제3야당으로 올라섰더라면, 2012년에 실시될 대선에서 좌파단일정당과 사회당이 좌파연합을 결성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하였더라면 2012년에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좌파정권이 세워졌을지 모른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2007년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가 거둔 득표율 25.87%과 4개 좌파정당 후보들이 거둔 총득표율 7.68%를 합하면 33.55%가 되는데, 이것은 사르코지가 얻은 득표율 31.18%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좌파정당이 중도정당과 힘을 합해야 우파정당을 꺾을 수 있다는 진리는 중학생들도 안다.

그러나 좌파연합의 집권 시나리오는 프랑스 정치현실에서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들 좌파정당들끼리도 네 갈래로 흩어져 합당하지 못하는 주제에, 좌파단일정당이 사회당과 연합하는 것은 아예 말도 꺼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좌파정당들은 앞으로 합당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그들이 지나온 정치경로를 살펴보면, 합당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프랑스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4개 좌파정당들은 왜소정당의 처량한 신세를 벗지 못하고, 비좁은 당 사무실을 언제까지나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4개 좌파정당과 5개 노동조합

프랑스의 4개 좌파정당들이 통합을 거부하고 분열을 고집하면서 주변화, 왜소화, 고립화되어버린 원인은 그 당들을 이끄는 당지도부의 머리 속에 들어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좌파정당 지도부가 유럽식 좌파이론의 공식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유럽식 좌파이론의 공식이란 무엇일까? 거칠게 요약하면, 그 공식은 사회의 자본주의적 발전→노동계급 다수화→노조 건설→노조에 기반을 둔 좌파정당 창당→좌파정권 수립으로 이어지는 사회변혁의 경로를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공식이 프랑스의 사회정치현실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 공식을 창안해낸 유럽식 좌파이론은 착오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자면, 그 공식에서 세 번째 단계로 나오는 노조 건설이 사회정치현실과 맞지 않는다.

유럽식 좌파이론은 노동계급이 다수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좌파노조가 건설될 것으로 상정하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럽식 좌파이론이 예측한 것과 달리 좌파노조도 건설되고, 우파노조도 건설되었는데, 그나마 좌파노조들이 분열하여 전국적 총파업을 이끌지 못할만큼 무력화되었고, 때로 우경화되기도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프랑스 노동운동은 다섯 갈래로 분열되어 있다. 조합원 수를 비율로 하여 열거하면, 노동총연합(CGT)이 34.00%, 프랑스민주노동연합(CFDT)이 21.81%, 노동자의 힘(FO)이 15.81%, 프랑스기독교노동자연합(CFTC)이 8.69%, 프랑스관리직연합(CFE-CGC)이 8.19%다. 그 밖에도 존재감 없는 왜소노조가 세 개나 더 있다.

그 지경으로 분열되고 무력화되고 일부는 우경화된 노조에 기반을 두고 좌파정당을 창당하겠다는 발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 무용담'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런 노조에 기반을 두고 좌파정당을 창당하는 경우, 그런 좌파정당이 강화, 발전하여 나중에 집권하기는커녕 빈약한 노조 기반만 지닌 왜소정당으로 전락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오늘 프랑스의 좌파정당과 노동운동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재검토해야

좌파정당과 노동운동이 처한 그러한 현실은 프랑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이 직감하는 것처럼, 오늘 이 땅의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처지도 대동소이하다.

우리의 현실과 프랑스의 현실 사이에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면, 이 땅에서 진보정당이 두 개로 분열되었고, 프랑스에서 좌파정당은 네 개로 분열되었으며, 이 땅에서 노동운동은 두 개로 분열되었고, 프랑스에서 노동운동은 다섯 개로 분열되었다는 점이다. 이 땅과 프랑스에서 각각 드러난 그런 분열과 무력화는 양적 차이일 뿐이지 질적 차이는 아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처지가 프랑스의 좌파정당 및 노동운동의 처지와 같아진 까닭은, 이 땅의 좌파노조활동가, 좌파정치활동가, 좌파지식인들이 습득한 유럽식 좌파이론의 공식을 노조건설과 당건설에 무비판적으로 도입하였기 때문이다.

11년 전 민주노동당을 창당할 때 이 땅의 좌파노조활동가, 좌파정치활동가, 좌파지식인들이 굳게 믿었던, 그리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는 노동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유럽식 좌파이론의 공식을 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험과 현실에서 입증된 것처럼, 유럽식 좌파이론의 공식은 현실과 맞지 않는 착오를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의 좌파노조활동가, 좌파정치활동가, 좌파지식인들이 추구하는 노동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지금처럼 노조가 분열되고 무력화된 조건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조건에서 추진하는 노동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민주노동당의 주변화, 왜소화, 고립화라는 누구도 원치 않는 결말을 가져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자기 혁신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은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민주노총 지도부가 누구보다 더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자기 혁신의 출발점은 유럽식 좌파이론의 공식,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담론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우리의 계급적 현실과 정치현실에 맞게 우리의 머리로 생각하여 진보정치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요즈음 흔히 말하는 '진보의 재구성'이란 그런 방향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민주노조는 진보정당 건설의 주춧돌이다. 주춧돌을 놓지 않고 집을 지으면 쉽게 무너지고 마는 원리와 마찬가지로, 민주노조가 아무리 무력하다 하더라도 민주노조가 당건설의 주춧돌을 놓아주지 않으면 진보정당 건설은 불가능하다. 민주노동당의 당건설 과정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이미 현실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집을 지을 때 주춧돌만 놓고 마는 것이 아니라, 기둥과 벽을 세우고 대들보와 석가래를 얹고 지붕을 씌워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노조를 주춧돌로 하여 건설된 진보정당은 각계각층 대중의 참여와 지지를 확대, 강화하여 지속적으로 당발전을 추진하여야 한다.

이것은 민주노조를 기초로 삼고 건설된 진보정당이 자기 기반을 노동운동에서 대중운동으로 더욱 확장하면서 각계각층 대중 속으로 들어가 자기 주위에 각계각층 대중을 결집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유럽식 좌파이론의 공식을 굳게 믿고 있는 좌파노조활동가, 좌파정치활동가, 좌파지식인들은, 진보정당이 자기의 대중적 기반을 확대, 강화하는 것을 민주노조와 결별하는 우경화라고 왜곡하면서 당의 대중화를 거부한다.

△2011년 9월 25일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장 앞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찬반 견해를 시위하는 당원들

그들이 주장하는 당건설에서의 계급적 원칙 고수에 대해 말한다면, 장차 진보정당이 집권하여 이 땅에서도 프랑스처럼 좌파정당이 건설될 때, 바로 그 정당이 고수하여야 할 원칙이다. 사회변혁의 현 단계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계급적 원칙을 민주노동당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 합당문제에 대한 결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유럽식 좌파이론의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이 확실하다.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거부하였고, 진보신당은 한 술 더 떠서 민주노동당과의 합당마저 거부하였다.

자기들은 진보정당이고 국민참여당은 '진보의 적'이라고 보는 독선도 버려야 하고, 진보정당과 함께 하겠다고 하는 국민참여당을 진보정치의 길로 견인하기는커녕 밀쳐내는 교만도 버려야 한다.

민주노총이라는 '주춧돌' 위에 건설된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합당하는 것은 그 '주춧돌'을 파내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춧돌' 위에 더 많은 각계각층 대중이 들어올 '큰 집'을 지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주노동당의 결정은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시나리오들 가운데 최악의 선택이었다. 그러한 최악의 선택은 집을 짓겠다고 하는 사람이 주춧돌만 놓고 그 돌 위에 주저앉아 집이 세워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희망적 사고를 과감히 접고 진보정당의 대중화를 추구하지 못하는 한, 진보정당의 주변화, 왜소화, 고립화를 자초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민주노조의 주춧돌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그 위에 크고 넓은 대중의 집을 지어야 한다. 자기 혁신을 두려워말라! (2011년 9월 2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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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1

'돌개바람'으로 분출된 정치적 갈망


변혁과 진보 (47)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불현 듯 '돌개바람'이 휘몰아치다

이 땅의 수구언론매체들은 '안철수 돌개바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신비'하게도 강한 돌개바람이 휘몰아쳐 정치권 전체가 마구 흔들렸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지난 몇 해 동안 대권주자 순위에서 2위 주자를 큰 차점으로 따돌리고 부동의 1위를 지켜온 '박근혜 대세론'도 '안철수 돌개바람'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그 '돌개바람'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정치분석가들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 특이한 정치현상을 논하면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새로운 정치적 대안인물로 등장하였음을 이구동성으로 인정하였다. 지난 몇 해 동안 안철수 원장이 대중들에게 보여준 전문성, 소통성, 도덕성, 진정성이 강력한 정치적 위력을 발휘하면서, 민주당-한나라당 양당구도를 위협하였다는 것이 정치분석가들의 대체적인 관전평이다.

'안철수 돌개바람'이 일어나기 오래 전부터 누구나 느끼고 있었던 것처럼, 이 땅의 각계각층 대중들이 낡아빠진 민주당-한나라당 양당구도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은 강했다. 민주당-한나라당 양당구도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은 양당구도를 넘어 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과 환멸로 확산되었다.

이를테면, 정당 지지도를 알아보기 위해 실시하는 각종 설문조사에서 '모르겠다'는 대답으로 일관하는 이른바 '무당파'를 정치적 무관심에 빠진 사회집단으로 분류할 것이 아니라, 민주당-한나라당 양당구도를 외면하는 사회집단으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선거국면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투표대상을 쉽게 정하지 못하는 이른바 '부동층'도 민주당-한나라당 양당구도를 벗어난 새로운 정치적 대안인물을 찾고 있는 사회집단인 것이다.


△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2011년 9월 5일- 9월 9일 사이 여론조사 결과,  지지정당이 없다는 부동층 무당파 비율이 전 주 대비 7.5%p 상승한 33.8%를 기록했다. 한나라당은 31.8%, 민주당은 24.5%, 민주노동당이 3.3%, 국민참여당 2.6%, 자유선진당 2.0%, 진보신당이 1.7%를 기록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 없이, '안철수 돌개바람'은 이 땅의 각계각층 대중이 새로운 제3정당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준 정치현상이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안철수 돌개바람'이라는 정치현상을 관찰하면, 각계각층 대중이 갈망하는 새로운 제3정당이 지녀야 할 생김새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땅의 대중은 안철수 원장의 전문성, 소통성, 도덕성, 진정성에 매혹되어 그의 정치적 진출을 열광적으로 요구하였다.

따라서 대중이 갈망하는 새로운 제3정당의 생김새도 그가 보여준 매력적인 요소들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새로운 제3정당은 전문성, 소통성, 도덕성, 진정성을 대중 앞에서 실물로 입증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하기 위한 과정에서 이제껏 간직해온 고정관념은 이념성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과 달리 이념성과 대중성의 균형적 강화와 발전을 강조하고 추구하였다.

그렇지만 진보성과 균형적으로 강화, 발전시켜야 할 대중성의 구체적인 내용은 불투명하게 남아있었다. 이번에 휩쓸고 지나간 '안철수 돌개바람'은 이제껏 민주노동당 안에서 논의는 무성했으나 불투명하게 남아있었던 대중성의 공간을 전문성, 소통성, 도덕성, 진정성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가득 채워주었다.


네 가지 요소와 한 가지 요소의 조합

민주노동당이 '안철수 돌개바람'이 보여준 전문성, 도덕성, 소통성, 진정성을 중시해야 한다고 해서, 자기의 이념성을 버리거나 소홀히 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전문성, 도덕성, 소통성, 진정성과 이념성을 상치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오류다. 그 다섯 가지 요소들은 상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 안에서 절묘하게 조합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중시하는 이념성과 대중이 요구하는 전문성, 소통성, 도덕성, 진정성이 일체감 있게 조합된 진보적 대중정당, 바로 그런 정당이 대중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게 될 새로운 제3정당이며, 민주노동당이 건설하려는 통합진보당이다.

대중이 요구하는 전문성, 소통성, 도덕성, 진정성 가운데서 민주노동당은 도덕성과 진정성을 확보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누구도 민주노동당을 가리켜 도덕성 없는 부패정당이라 욕할 수 없으며, 진정성 없이 헛된 소리만 남발하는 비리정당이라 비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이 극복해야 할 결함은 전문성과 소통성의 부재다.

△민주노동당은 도덕성과 진정성을 확보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 극복해야 할 결함은 전문성과 소통성의 부재다.  (민주노동당 <진보정치> 보도사진)
 
'안철수 돌개바람'이 지나간 이후 민주노동당이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는, 각계각층 대중이 전문성, 소통성, 도덕성, 진정성을 지닌 새로운 제3정당의 출현을 갈망하는 데, 기존 진보정당들은 이념성에 집중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현실이다.

대중의 정치적 요구와 동떨어진, 자기들끼리만 소통하는 고정관념에 따라 통합진보당을 건설해봐야 이전과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운동권 정당'은 중심에 진입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소수정당의 슬픈 운명을 언제까지나 벗어날 수 없다.

진보신당에 속한 일부 정파처럼, 그런 슬픈 운명도 마다하지 않고 진보의 깃발만 들고 '황량한 들판'에서 바람을 맞겠노라고 결심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니 어쩔 도리가 없지만, 민주노동당은 대중 없는 빈들에서 진보의 깃발만 들고 바람이나 맞고 있는 한심한 주변정당으로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이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양대 강령은 대중 속에서, 대중과 함께, 대중의 힘으로 실현해야 하는 역사적 과업이지, 주변정당 안에서만 소통되는 어떤 정파적 사업목표가 아니다. 대중의 정치적 갈망을 분별하지 못하고 정파의 협소한 이익에 집착하는 진보정당은, 그들이 말하는 사회변혁을 전진시키기는커녕 자기들이 들어앉은 당사나 지키고 있을 뿐이다.


삼당구도가 아니라 새로운 양당구도다

민주노동당 안에서 귀가 아플 정도로 계속 반복하여 강조하는 당면과업은, 어떻게 해야 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 강화할 것인가 하는 것에 집중된다. 누가 뭐래도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대문을 여는 열쇠가 대중에게 있다는 진리를 체감하고 하루라도 빨리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 강화하는 사업에, 오직 그 사업에 전심전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토론과 회의만 계속할 것이 아니라 대중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제3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건설하려는 통합진보당은 정파들끼리 단합하여 민주노동당보다 외연을 좀 더 확장한 또 다른 '운동권 정당'이 아니라, 각계각층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새로운 제3정당이다.

새로운 제3정당의 출현은 제3정당이 등장하여 민주당-한나라당 양당구도 속에 끼어드는 식으로 2강1약의 불안정한 삼당구도를 형성하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제3정당의 출현은, 민주당-한나라당 양당구도를 허물고, 제3정당이 민주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올라섬으로써 한나라당과 1 대 1로 맞서는 새로운 양당구도를 세우는 것이다.

이처럼 제3정당이 낡은 정치판을 뒤집어버리는 비약과 혁신을 돌개바람처럼 불러일으켜야 2017년의 집권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다. 그렇지 못하고, 대중이 외면하는 민주당-한나라당의 양당구도 틈을 비집고 끼어드는 식으로 삼당구도를 형성하면 케케묵은 정치판을 혁신할 수 없는 것이다.

각계각층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제3정당을 건설하여 케케묵은 정치판을 뒤집어버리는 정치혁신 과업을 수행하는 데서 '돌개바람' 효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돌개바람'을 일으켜야 할 주체는 안철수 원장이 아니라 앞으로 건설될 제3정당이다.

만일 제3정당이 장쾌하게 '진보의 돌개바람'을 일으키며 출현하지 못하고, 이전처럼 여러 정파들끼리 집합하는 식으로 출현한다면, 민주당-한나라당 양당구도가 고착된 케케묵은 정치판을 혁신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소원한 관계에는 원인이 있다

민주노동당은 왜 전문성 없는 정당처럼 일반 대중에게 인식된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대중이 보기에 안철수 원장처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 민주노동당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들이 대선기간에 지식인들을 자기들의 선거본부에 끌어들이거나, 또는 대선에서 이겨 정권인수위원회를 구성할 때 지식인들을 영입하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 전문성을 갖추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당원들 가운데 지식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 유명세를 타는 지식인들 가운데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지식인은 없다. 민주노동당과 지식계층은 소원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민주노동당에 일어나는 것일까? 두 가지 원인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원인은, 민주노동당이 지식인 정책을 홀시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민중의 변혁역량을 중시하는 만큼 지식인의 변혁역량도 중시해야 한다.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이 실현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회변혁에서 지식계층의 역할과 임무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지식정보시대의 사회변혁이 이전 시기의 사회변혁과 구분되는 특징은 지식계층이 사회변혁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임무를 어떻게 인식하고 보장하는가 하는 것에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 지식정보시대의 사회변혁에 참가하는 지식계층은 이전의 사회변혁론에서 말하는, 사회변혁의 지도핵심역량을 구성하는 '소수의 혁명적 인텔리겐차'가 아니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지식계층은 사회의 모든 부문에 진출하여 각 부문의 발전을 이끄는 집단으로 되었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지식계층을 배제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만으로 사회변혁을 실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각계각층에 광범위하게 형성된 지식계층은, 지식정보시대 사회변혁의 대중적 기반이며, 민중을 따라가는 보조역량이 아니라 민중과 더불어 사회변혁을 밀고 나가는 동력이다.

둘째 원인은, 민주노동당이 정파들끼리 집합한 '운동권 정당'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유명세를 타는 지식인은 그만두고 대학교수들도 그런 '운동권 정당'에 대해 호감을 가질 리 만무하다.

'운동권 정당'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대중과 소통하는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지식인들의 입당을 기대하기 힘들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합당하여 대중과 소통하는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해야 지식계층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지식계층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새로운 제3정당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전문성을 갖추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제3정당의 전문성은 그 정당에 입당한 당원들의 요구이기 전에 각계각층 대중의 요구다.


대중은 어떤 정당과 소통하고 싶어하는가?

민주노동당이 건설하려는 제3정당이 대중과 소통하는 정당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다 못해, 불통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명박 대통령마저도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판인데, 진보적 대중정당이 대중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여기서 나서는 실천적인 문제는, 진보적 대중정당과 대중의 소통이라는 명제 그 자체의 정당성을 논하는 목적론이 아니라, 진보적 대중정당이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을 검토할 때 필요한 것은 전환적 발상이다.

전환적 발상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발상에서 벗어나 대중의 입장에 자신을 세워보는 것을 뜻한다. 

△대중은 어떤 정당과 소통하고 싶어하는가? (2011년 6월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 <진보정치>보도사진)

구체적으로 말하면, 진보적 대중정당이 대중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묻기 전에, 대중은 어떤 정당과 소통하고 싶어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러한 전환적 발상이 요구되는 까닭은, 민주노동당이 모든 정치문제를 대중 자신의 관점에 놓고 인식해야 하며, 모든 사업방식을 대중 자신의 요구에 맞게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어떤 정당과 소통하고 싶어하는가? 대중이 '운동권 정당'과 소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은 명백하고, 대중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대중정당과 소통하고 싶어한다는 점도 명백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중이 소통하고 싶어하는 대중정당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통합파, 그리고 일부 좌파성향의 노조활동가들 및 지식인들이 집결한 '운동권 정당'이 아니다.

대중이 소통하고 싶어하는 대중정당은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합당을 중심으로 각계각층 대중단체들이 결집한 정당이다. 이처럼 명명백백한 진리를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운운하면서 부정하려는 짓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은 행위다.

결론은 명백하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중시해야 하는 까닭은, 대중이 소통하고 싶어하는 대중정당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쟁점도 명백하다. 대중이 소통하고 싶어하는 대중정당을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과 불통하는 '운동권 정당'을 건설할 것인가 하는 것이 쟁점이다.

대중이 소통하고 싶어하는 대중정당을 건설하는 것을 두고 진보정치를 소멸시키는 우경적 오류라고 강변하는 것은 명백한 논점을 혼란에 빠뜨리는 선동술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진보신당 통합파가 국민참여당을 배제하고 자기들과 민주노동당이 통합한 진보정당을 건설하려는 것은, '안철수 돌개바람'을 맞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운동권 정당 안주론'에 빠져 있는 꼴이다. 
 
다른 한 편, 대중이 소통하고 싶어하는 대중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하면서, 통합대상을 민주당으로까지 넓히려는 이른바 단일야당론을 주장하는 것도 '운동권 정당 안주론'과는 정반대 위치에서 발생하는 오류다. 그런 주장은 민주당-한나라당 양당구도에 불신과 환멸을 느끼는 대중이 '안철수 돌개바람'을 불러일으킨 눈 앞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각계각층 대중이 '안철수 돌개바람'을 일으키며 민주당을 거부한 마당에 민주당을 중심으로 야권통합당을 건설하려 한다니, '묻지마 통합'의 함정에 빠져 정치적 '동반자살'을 기도하는 치명적 오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야권통합당을 건설하려는 발상과 노력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이 통합한 새로운 야당을 건설할 때, 낡은 민주당-한나라당 양당구도를 깨뜨리고 새로운 제3정당-한나라당 양당구도를 세울 수 있으며, 그러한 새로운 제3정당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


주변에서 맴돌지 말고 중심으로 진입하라!

민주노동당이 '운동권 정당'으로 창당된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원내진출에 성공하고, 진보적 대중들 속에서 지지기반을 구축하는 성과를 이룩하였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민주노동당이 이룩한 그 성과만으로는 집권할 수 없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는 그 성과를 토대로 삼고 비약과 혁신의 '돌개바람'을 불러일으켜야 집권에 접근할 수 있으며, 그렇게 집권해야 사회변혁의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을 수 있다.

△ 2011년 가을에는 주변에서 맴돌지 말고 중심으로 진입하라! (<진보정치> 보도사진)
  
민주노동당이 불러일으키는 '돌개바람'은 의도와 구상이 없이 어쩌다가 우연히 일어나는 일시적 정치현상이 아니다.

'돌개바람'은 강력한 운동 에너지가 있어야 일어나는 법인데, 정치현실에서도 그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주체역량이 있어야 비약과 혁신의 '돌개바람'이 일어난다.

정파들끼리 집합한 정파적 진보정당이 아니라, 대중이 소통하고 싶어하는 진보적 대중정당이 그러한 비약과 혁신의 '돌개바람'을 일으킬 주체역량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는 당면과업을 2012년 총선과 대선의 대응방침으로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그 당면과업은 민주당-한나라당 양당구도가 고착된 케케묵은 정치판을 뒤엎어버리고, 일대 비약과 혁신의 '돌개바람'을 대중 속에서 불러일으키는 사회변혁의 전진이다. 두 단계 사회변혁론의 관점에서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과업을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은 비록 원내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룩하였지만 대중적 지지율이 5% 이상으로 오르지 못하는 주변정당이었다. 이제 주변에서 맴돌던 과거를 접고 중심으로 진입하는 미래의 진보를 기회로 붙잡아야 할 때다. 그런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면, 대중과 불통하는 주변정당 신세에서 언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전망 자체가 어둡게 된다. 2011년 가을에는 주변에서 맴돌지 말고 중심으로 진입하라! (2011년 9월 2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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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4

42기의 미사일과 겁쟁이들

진실의 말팔매 <3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의 부인이었던 재클린(Jacqueline L. B. Kennedy, 1929-1994)이 케네디 대통령의 보좌관이었던 역사학자 아서 쉴레진저(Arthur M. Schlesinger)에게 구술하였던 녹음자료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1964년 초에 8시간 30분 동안 녹음한 것인데, 47년만에 햇빛을 본 것이다. 그 녹음자료는 정치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하였던 대통령 부인의 수다스런 이야기로 가득 차있지만, 눈길을 끄는 대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1961년 4월 말 어느 날 케네디가 백악관 침실에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울었다는 대목이다. 그는 왜 정신적 고통을 느꼈을까? 1961년 4월 17일 쿠바를 침공하여 신생 혁명정부를 전복하려고 기도하였던 군사작전이 완전히 실패로 끝났으니 케네디가 괴로워한 것은 당연하였다.

미국 중앙정보국 침투요원들과 그들이 훈련시킨 쿠바망명자로 편성된 '2506여단(Brigade 2506)' 병력 1,400명은 '쿠바원정군(Cuban Expeditionaty Force)'이라는 깃발을 들고 쿠바 남쪽에 있는 피그만에 기습상륙을 하다가 참패하였다. 1,400명 가운데 114명이 죽고, 1,202명이 쿠바혁명군에게 포로로 잡혔으며, 작전기를 타고 근접지원작전을 하던 미국군 공군조종사 4명, 미국군 공수부대원 1명도 피격, 사망하였다.

포로들 가운데 쿠바 침공 전에 쿠바에서 고문과 학살을 자행한 전과가 있는 중범죄자 5명은 사형에, 나머지는 30년 징역형에 처해졌다. 미국은 5,300만 달러에 이르는 식량과 의약품을 쿠바에 넘겨주고 포로들을 데려갔다.

미국의 쿠바 침공이 참패로 끝난 때로부터 약 넉 달이 지난 1961년 8월 우루과이 푼타 데 에스테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경제회의에 참석한 쿠바혁명가 에르네스토 체 케바라(Ernesto Che Guevara, 1928-1967)는 회담장에서 만난 케네디 보좌관 리처드 굿윈(Richard N. Goodwin)에게 불쑥 쪽지 한 장을 건넸다. 케네디에게 전해주라는 그 쪽지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침공을 당하기 이전에 쿠바혁명은 약했으나, 지금은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고맙다."

재클린이 남긴 구술녹음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1962년 10월 어느 날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대통령 별장에 머물고 있던 재클린은 케네디의 전화를 받았다. "왜 워싱턴으로 돌아오지 않느냐?"는 평소와 다른 남편의 목소리를 들은 재클린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하였다.

소련 미사일이 쿠바에 배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된 재클린은 케네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는 당신과 함께 여기에 남겠어요. 나는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당신 없이 사느니 차라리 당신과 함께 죽고 싶어요. 우리 애들도 함께..."라고 말했다. 구술녹음에서 재클린은 "그 순간부터 비몽사몽에 빠진 듯하였다"고 술회하였다.
'쿠바 미사일 위기'로 역사에 기록된 그 사건이 일어났던 1962년 당시 미국은 전략미사일 377기를 보유하였고, 1,000기를 추가로 생산하는 중이었다. 그에 비해 소련은 대륙간탄도미사일 44기, 중거리 미사일 17기, 준중거리 미사일 373기를 보유하였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시작됐다.
미국이 터키와 이탈리아에 전진배치한 전략미사일은 15분만에 모스크바를 타격할 수 있었으나, 소련이 자국 영토에 배치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워싱턴을 타격하는 데는 25분이 걸렸다. 그러한 전략적 불균형을 깨기 위해 소련이 생각한 군사적 방안은, 중거리 미사일과 준중거리 미사일 42기를 쿠바에 전진배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소련의 그러한 군사적 방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쿠바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쿠바 혁명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Fidel A. Castro Ruz)는 쿠바에 소련 미사일 42기를 전진배치하는 것이 소련의 전쟁억제력 강화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반제군사전선을 강화하는 것이라 여겼고, 그런 생각으로 그는 쿠바와 미국이 전면전을 벌일 위험을 무릅쓰고 소련의 미사일 전진배치 제안을 받아들였다.
 
△1962년 당시 소련이 보유했던 중거리 미사일.
미국은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반제군사전선을 강화하려는 쿠바의 전략적 선택에 격렬히 반발하였다. 케네디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전체 미국군에게 최고 수위의 경계태세명령을 내리고, 쿠바에 대한 해상봉쇄를 강행하였다. 20,980t급 중순양함 뉴포트 뉴스호(USS Newport News)와 3,460t급 구축함 리어리호(USS Leary)가 쿠바 해역으로 급파되었다. 미국의 그러한 전쟁위협에도 물러서지 않은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혁명군과 쿠바인민들에게 전시동원태세를 명령하고 미국에 맞선 결사항전을 결의하였다.

 케네디는 쿠바에 소련 미사일을 전진배치하는 작업을 중지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위협하였으나, 사실 그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케네디의 군사보좌관들은 쿠바 폭격계획을 제출하였으나, 죽음의 공포 앞에서 전쟁을 결심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던 겁쟁이 케네디는 폭격작전계획을 승인하지 않고 해상봉쇄계획만 승인하였다. 시시각각 몰려오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비몽사몽에 빠진 자기 아내 재클린의 모습을 보면서 케네디 자신의 공포심이 더 커졌는지 모른다.



부카레스트호에 근접비행을 하고 있는 미국 초계기
 그런데 겁쟁이는 워싱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스크바에도 있었다. 케네디가 27,100t급 항공모함 에쎅스호(USS Essex)와 2,616t급 구축함 기어링호(USS Gearing)를 쿠바 해역에 추가로 파견하여 소련 미사일을 싣고 쿠바로 향하던 화물선 부카레스트호를 나포할 것처럼 위협하자, 지레 겁부터 집어먹은 니키타 후르시쵸브(NIkita Khrushchev, 1894-1971)는 케네디에게 미국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고 쿠바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겠노라고 통보하였다.
 
 미국의 전쟁위협에 맞설 담력이 없었던 소련의 초라한 항복이었다. 워싱턴의 겁쟁이와 모스크바의 겁쟁이는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을 그렇게 끝내고 말았고,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반제군사전선을 강화할 결정적인 기회는 겁쟁이 후르시쵸브의 정치적 항복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쿠바에게 미안함을 느낀 소련 지도부는 쿠바대표단을 초청하였다. 피델 카스트로는 1963년 4월 29일 아직 잔설이 덮힌 무르만스크 해군기지에서 당시 소련 부수상 아나스타스 미코얀(Anastas Mikoyan, 1895-1978)의 영접을 받았다. 미코얀이 그에게 보여준 것은 무르만스크 해군기지에 정박된 핵추진 전략잠수함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에게 첨단군사장비를 보여주면, 그가 소련 지도부를 겁쟁이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타산한 것일까?

이튿날 미코얀과 함께 항공편으로 모스크바에 간 피델 카스트로는 소련 지도부가 차린 성대한 환영만찬에 초대되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피델 카스트로가 쏟아내는 카랑카랑한 음성이 만찬장 공기를 뒤흔들었다. "나는 소련 미사일들을 쿠바에서 철수시킨 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가 핵전쟁 위기를 겪고 있을 때, (소련은) 우리와는 아무런 협의도 하지 않고, 우리의 등 뒤에서 (미국과) 타협하였습니다."
   
카스트로의 입에서 비겁한 소련 지도부를 질타하는 발언이 튀어나오자 기겁한 후르시쵸브는 그의 발언을 중간에 끊으면서 "우리는 쿠바에 대한 공격을 회피하도록 그렇게 하였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피델의 노기어린 목소리가 겁쟁이의 비겁한 변명을 압도하였다. "헌신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정한 평화를 얻었을 뿐입니다. 만일 (소련이) 우리와 협의하였더라면 더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참된 평화를 비롯한 많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피델 카스트로가 갈파한 것처럼, 비겁한 소련 지도부는 반제군사전선을 강화할 결정적인 기회를 포기하고 미국에게 정치적으로 항복함으로써 불안정한 평화를 얻었지만, 그 불안정한 평화는 그로부터 28년 뒤에 소련을 몰락시켰고, 세계 사회주의 진영을 해체시켰다. 그로써 전 세계는 제국주의전쟁위험에 직접 노출되고 말았으며, 코소보전쟁,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이 연속적으로 일어나 인류를 전쟁공포 속으로 몰아갔다. 세계 사회주의 진영이 해체된 이후 북측과 쿠바는 단독으로 사회주의 수호전을 벌어야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의 제국주의전쟁위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중무장 병력이 준전시상태 속에서 대치한 한반도로 몰려들었다. 1990년대에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사회주의 수호전을 벌여야 하였던 북측의 인민군과 인민들은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기에 불려졌던 노래 '적기가'를 다시 불렀다.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2011년 9월 14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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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4

선거, 정당, 변혁의 3자 관계를 보는 시각

변혁과 진보 (46)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선거문제와 관련한 좌우경적 오류

한나라당은 자기들이 5년 더 집권하려는 집권연장의 관점에서 2012년 선거를 바라보고 있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한나라당에게 빼앗긴 정권을 되찾으려는 정권탈환의 관점에서 2012년 선거를 바라보고 있다. 그와 달리,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결집한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진보적 정권교체를 지향하는 선거전략의 관점에서 2012년 선거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2012년 선거를 바라보는 민주노동당의 관점과 진보신당의 관점이 서로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다. 넓은 의미에서 똑같은 진보정당이라 해도,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민주노동당이 그렇지 않은 진보신당과 똑같은 관점을 갖고 2012년 선거를 바라볼 수는 없다. 서로 다른 강령을 가진 두 정당이 어떻게 똑같은 관점을 가질 수 있겠는가.

2012년 선거를 바라보는 민주노동당의 관점은 진보신당의 관점과 어떻게 다를까? 명백하게도, 민주노동당은 2012년 선거를 민주주의변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실천하고 대응한다는 점이 다르다. 민주주의변혁의 관점에서 선거라는 객관적 현실을 바라본다는 것, 바로 이것이 이 땅에 존재하는 각양각색 여러 정당들 가운데서 오직 민주노동당만이 가지는 전략적 차별성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이중과업이 무엇이고, 그 이중과업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지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 진보신당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변혁의 관점에서 2012년 선거를 바라보지 못할 수 있다.

△ '통합과 연대, 2012 진보적 정권교체'를 구호로 내걸고  2011년 6월 열렸던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  당대회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담은 새 강령이 채택됐다. 

지금까지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민주주의변혁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은 선거가 아니라 항쟁이다. 선거혁명론을 정치적 환상으로 규정하면서 1987년 6월 민주항쟁 경험을 분석, 검토한 것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혁명론을 부정하면서 선거무용론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오류다.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선거혁명론을 부정하는 까닭은, 항쟁을 선거로 대치해 버리고, 오직 선거만으로 민주주의변혁을 수행하려는 사민주의자들의 우경적 오류를 비판,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거혁명론이 사민주의자들의 우경적 오류라면, 선거 자체를 무조건 부정하면서 오직 항쟁만으로 민주주의변혁을 수행하려는 선거무용론은 급진주의자들의 좌경적 오류다. 급진주의자들의 선거무용론에 빠지면, 진보적 대중정당의 선거참여가 무의미한 관습행위로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런 관습행위나 되풀이하는 진보적 대중정당 자체가 무의미한 존재로 된다.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선거문제와 관련한 좌우경적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하며, 민주주의변혁 과정에서 선거의 의의와 역할이 무엇인지, 선거와 항쟁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밝힌 올바른 선거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올바른 선거관은 선거, 정당, 변혁의 3자 관계를 합리적으로 규정한다.


민주주의변혁을 수행하는 두 유형의 변혁역량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민주주의변혁을 포함하는 모든 유형의 사회변혁을 추진하려면 반드시 주체역량이 형성되어야 한다. 물질이 운동 에너지를 가져야 운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혁주체도 역량을 가져야 사회변혁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

물질의 운동 에너지가 단일유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유형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변혁역량도 단일유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변혁의 발전단계에 따라 복합유형으로 존재한다.

이 글에서 논하는 민주주의변혁의 발전단계에서는 어떠한 유형의 변혁역량이 존재하는가? 민주주의변혁의 발전단계에서는 민주적 대중역량과 진보적 변혁역량이라는 두 가지 변혁역량이 존재한다. 민주적 대중역량은 무엇이며, 진보적 변혁역량은 또 무엇인가?

민주주의변혁의 발전단계에 따르면, 지금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 국민참여당과 합당하여 건설하려는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은 민주적 대중역량을 정당형태로 조직한 것이다. 민주주의변혁의 발전단계에서 정당형태로 조직된 민주적 대중역량은 민주주의변혁의 주체역량이다.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이 민주주의변혁을 수행할 주체역량으로 되는 까닭은,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을 수행하는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그 새로운 정당에 적극 참여하여 그 정당을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로 이끌어 가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그 새로운 정당이 민주주의변혁의 대중적 기반을 구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은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을 수행하는 단일한 정치세력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진보정치세력들이 모두 참여하는 연합전선 형태의 대중정당으로 건설될 것이다. 연합전선 형태의 대중정당에 참여한 넓은 의미의 진보정치세력들은 각계각층 각당각파의 민주적 대중역량을 그 정당의 자체역량으로 구축하게 되고, 그 정당의 공고한 지지기반으로 확대하게 된다.

이처럼 민주주의변혁은 각계각층 각당각파 민주적 대중역량으로 수행하는 사회변혁이지만, 만일 민주적 대중역량만 존재한다면 민주주의변혁은 완성될 수 없다. 민주주의변혁을 끝까지 완성하려면, 민주적 대중역량과 함께 진보적 변혁역량도 있어야 한다.

진보적 변혁역량이 없는데, 민주적 대중역량만으로 민주주의변혁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착오다. 각계각층 각당각파 민주적 대중역량은 민주주의변혁을 수행하는 변혁역량의 한 구성요소이지만, 그런 연합전선역량만으로는 민주주의변혁을 완성할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변혁의 발전단계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진보적 변혁역량은 민주적 대중역량처럼 연합전선 형태의 대중정당으로 조직되는 것이 아니다. 진보적 변혁역량은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 강령을 배타적으로 수용한 독자전선 형태의 변혁정당으로 조직된다.

양자의 양적 부피를 산술적으로 상호비교한다면, 민주적 대중역량은 다수대중정당으로 조직될 것이고 진보적 변혁역량은 소수정예정당으로 조직될 것이다. 진보적 대중정당은 각계각층 각당각파 민주적 대중역량을 조직한 것이고, 진보적 변혁정당은 변혁적 소수정예역량을 조직한 것이다.

민주주의변혁의 발전단계에서 변혁역량의 조직은 민주적 대중역량 확대에서 시작하여 진보적 변혁역량 구축으로 심화된다. 그러므로 지금 진행 중인 새로운 진보통합정당 건설과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당연히 진보적 변혁정당 건설과업이 제기될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을 이른바 ‘종북정당’이라고 비난, 공격하며 와해시키려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한, 진보적 변혁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일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기간에 진보적 변혁정당을 건설하면, 우파집권세력은 그 정당을 ‘국가보안법’의 수사대상에 올려놓고 사회여론을 조작, 동원하여 집중공격하면서 정치적으로 완전히 고립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이 집권해야 진보적 변혁정당을 건설할 수 있다. 진보적 변혁정당은 새로운 진보통합정당 집권기에 민주주의변혁을 주도적으로 수행하여 그것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의 집권은 진보적 변혁정당 건설을 강력히 추동할 것이다.


민주주의변혁의 발전단계에서 바라본 2012년 선거의 의의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민주노동당은, 다가오는 2012년 선거를 당리당략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당연히 민주주의변혁의 발전단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러한 선거관 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요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민주적 대중역량과 진보적 변혁역량을 구분하지 못한 까닭에, 각계각층 각당각파 민주적 대중역량으로 조직해야 할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을 진보적 변혁정파들끼리 결집한 ‘운동권 정당’ 또는 유럽식 좌파정당으로 건설하려는 좌경적 오류는 시급히 청산되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민참여당을 배제하는 운동권 정당 건설론은 명백한 좌경적 오류다. 유럽식 좌파정당으로 집권하여 사회변혁을 실현하려는 것은 공상에 가까운 생각인데, 이 땅의 특정정파가 그런 공상에 가까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좌경적 오류를 불러오는 불행이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유일한 진보정당 후보를 내세웠으나,  여야 후보들에게 밀려 3.0%의 득표율(712,121 표)을 기록하는데 머물고 말았다.


둘째, 민주주의변혁의 발전단계에서 바라보면 진보적 변혁정당과 진보적 대중정당의 지위와 역할이 서로 다르므로, 민주주의변혁 역량편성에서 진보적 변혁정당은 진보적 대중정당과 구분하여 별도로 건설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진보적 변혁정당을 진보적 대중정당과 구분하여 별도로 건설한다고 해서, 양자가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적 변혁정당이 독자적으로 건설된다고 해도, 그 정당은 진보적 대중정당과 결합한 형태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진보적 변혁정당과 진보적 대중정당이 결합하는 형태는 어떤 기성관념에 따라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장차 진보적 대중정당 집권기의 내외정세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한 가지 명백한 것은, 진보적 대중정당과 진보적 변혁정당이 상호결합할 때, 그 때 비로소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할 위력적인 변혁역량이 구축된다는 점이다.

셋째,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의 집권 가능성이 아직 확정적이지 않은 현 시기에 민주노동당은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을 건설하여 각계각층 각당각파 민주적 대중역량을 그 정당의 자체역량으로 구축하고, 그 정당의 공고한 지지기반으로 확대하는 당 건설사업에 전력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이 나서서 각계각층 각당각파 민주적 대중역량을 구축, 확대하는 사업을 지금처럼 한나라당이 집권한 조건에서 추진하는 것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을 건설해도, 만일 2012년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재집권하는 경우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이 각계각층 각당각파 민주적 대중역량을 구축, 확대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변혁의 추진국면을 열어놓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이 각계각층 각당각파 민주적 대중역량을 구축, 확대하려면 2012년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집권연장을 반드시 저지하여야 하며,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이 반드시 제1야당의 지위에 올라서야 한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8월 24~25일 전국 19세 이상 국민 1500명(유선전화 1200명, 80%+휴대전화 300명, 20%; 일간 750*2일)을 대상으로, 전화번호부 미등재가구 포함 임의걸기( RDD, Random Digit Dialing) 방식으로 진행한 2012년 대선후보지지 여론조사 결과.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2.5%) 한편 <리얼미터>가 8월 22일~ 26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30.3%), 문재인(11.5%), 유시민(6.8%), 손학규 (6.0%), 한명숙(5.4%)의 순으로 집계됐다.

한나라당의 집권연장을 저지하고 제1야당의 지위에 올라선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이라야 각계각층 각당각파 민주적 대중역량을 구축, 확대할 수 있다. ‘운동권 정당’으로 건설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설령 양당 통합에 성공한다 해도, 한나라당의 집권연장을 저지하기 힘들며, 제1야당의 지위에 올라서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이 2012년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집권연장을 저지하고, 제1야당으로 등장하는 것은 새로운 진보통합정당 자체의 과업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변혁의 추진국면을 열어놓기 위한 중대한 과업이다.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국민참여당을 배제하려는 좌경적 오류를 청산하고 각계각층 각당각파 민주적 대중역량을 구축, 확대하는 것은, 단순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이에서 발생한 논쟁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변혁의 추진국면을 열어놓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변혁전략문제다.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을 건설하는 과업을 위해 더욱 분투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10년 9월 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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