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30

조선의 회전식 연속압박, 백악관의 호흡장애

[한호석의 개벽예감](320)
자주시보 2018년 10월 29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네
2. 신뢰가 먼저고, 회담은 나중이다
3. 구심점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압박장치들


1.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네

2018년 10월 15일 <자주시보>에 실린 ‘백화원 담판, 압도적으로 우세한 조선의 협상력’이라는 제목의 글을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맺었다. 

“백화원 담판을 압도적으로 우세한 협상력으로 결속하고 단계적 핵동결과 단계적 평화체제구축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오는 11월에 개최될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룩하여 한반도 정세를 격변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우세한 협상력이 세상을 바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11월이 왔는데도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2018년 10월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한 백화원 담판에서 조미협상 교착상태가 풀리면서 제2차 조미정상회담 준비가 시작되리라고 보았던 기대감은 무색해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을 풀려면, 백화원 담판 이후 나타난 몇 가지 현상들에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다. 

(1) 2018년 10월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을 백화원영빈관에서 접견하고 담판을 진행할 때, 팜페오 국무장관 옆에는 그를 수행하던 스티브 비건(Stephen E. Biegun)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가 앉아 있었다. 2018년 8월 23일 조선정책특별대표직에 취임하였고, 10월 7일 난생 처음 평양을 방문한 비건은 앞으로 조미실무회담이 열리면 자신이 상대할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그 날 상견례를 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최선희 부상은 2018년 10월 4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여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부장 겸 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와 회담하였고, 10월 9일에는 로씨야(러시아) 모스끄바에 있는 외무부 영빈관에서 쿵쉬안유 부부장, 이고르 모르굴로브(Igor V. Morgulov) 로씨야 외무차관과 함께 조로중 3자협상을 진행하였다. 당시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조로중 차관급 3자협상 일정이 지연되는 바람에 최선희 부상이 평양을 방문한 비건 조선정책특별대표와 상견례를 할 수 없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 추측보도를 읽은 사람들은 평양에서 최선희-비건 상견례가 이루어지지 못한 원인이 조로중 3자협상 일정이 지연된 것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최선희-비건 상견례가 이루어지지 못한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그 원인을 찾아내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18년 10월 7일 백화원 담판을 보도한 조선의 언론보도기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석상에서는 제2차 조미수뇌회담준비를 위한 실무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할 데 대하여 합의하고 그와 관련한 절차적 문제들과 방법들에 대하여서도 론의되였다.” 이 인용구절과 관련하여 일본 <아사히신붕> 2018년 10월 22일 보도기사는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주었는데, 2018년 10월 7일 백화원 담판에서 합의한 사항들 가운데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스티브 비건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의 회담을 진행하는 문제도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최선희-비건 회담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차관급 실무회담이다. <사진 1>

▲ <사진 1> 왼쪽 사진의 인물은 최선희 조선 외무성 부상이고, 오른쪽 사진의 인물은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다. 비건은 2018년 8월 23일 조선정책특별대표에 취임하였다. 2018년 10월 7일 팜페오 국무장관을 수행하여 평양을 방문한 스티브 비건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는 앞으로 조미실무회담이 열리면 자신이 상대할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그 날 상견례를 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최선희 부상은 당시 베이징에서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부장 겸 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와 회담하고 로씨야 모스끄바로 출발할 참이었다. 10월 9일 모스끄바에 있는 외무부 영빈관에서 최선희 부상, 쿵쉬안유 부부장, 이고르 모르굴로브 로씨야 외무차관이 조로중 3자협상을 진행하였다.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최선희-비건 실무회담은 조선 외무성의 무응답으로 열리지 못했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2018년 10월 하순 워싱턴에서 장관급 조미실무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하였으나, 조선 외무성은 그 제의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백화원 담판에서 조미실무회담에 관련하여 위와 같이 구체적인 내용을 합의할 때, 그 자리에 배석했던 비건 조선정책특별대표는 조미실무회담이 곧 열리게 되리라고 기대하였다. 그래서 그는 2018년 10월 16일부터 10월 21일까지 로씨야, 프랑스, 벨지끄(벨기에)를 차례로 순방하면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유럽에서 만나 조미실무회담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하였다. 그러나 조선 외무성은 그에게 아무런 기별도 주지 않았다. <문화일보> 2018년 10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과 미국은 2018년 10월 2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최선희-비건 실무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조선 외무성은 그 합의를 외면하였다고 한다. 팜페오 국무장관과 비건 조선정책특별대표가 조미실무회담에 걸었던 기대는 그렇게 사라졌다.  

(2) 조선 외무성이 최선희-비건 실무회담을 외면하자,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하는 팜페오 국무장관의 처지는 난감해졌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직접 실무회담에 나서려고 하였다. 그는 2018년 10월 19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 진행한 대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에게 알맞은 (정상회담) 날짜와 시간과 장소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일주일 반쯤 뒤에 나 자신과 북측 상대자가 여기서(미국을 뜻함-옮긴이) 고위급회담을 진행하기 바란다”고 하면서, 미국에서 조미고위급회담이 성사되면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진전시킬 진정한 기회가 마련될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하였다. 이것은 최선희-비건 실무회담이 열릴 조짐이 보이지 않자 조바심이 난 팜페오 국무장관이 차관급 조미실무회담을 생략하고 장관급 조미실무회담을 2018년 10월 하순 워싱턴에서 개최하자는 제의를 조선에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팜페오 국무장관이 다급하게 보낸 장관급 실무회담 제의마저 응답하지 않고 외면하였다. 2018년 10월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한 백화원 담판에서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차관급 실무회담을 이른 시일 안에 개최하기로 합의하였고, 차관급 실무회담과 관련된 절차와 방법들까지 논의하였으며, 나중에는 팜페오 국무장관이 차관급 실무회담보다 한 급 높은 장관급 실무회담을 개최하자고 다급하게 제의했는데도, 조선은 왜 응답하지 않았을까? 조선의 무응답은 그 며칠 사이에 매우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말해준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8년 7월 6~7일 팜페오 국무장관을 수행하여 평양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에 참석하였던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가 새로 부임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에게 조미고위급회담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2018년 7월 9일 주한미국대사관을 방문하여 해리스 대사와 악수하는 장면이다. 사진에서 오른쪽이 앤드루 김이고, 왼쪽이 해리 해리스다. 그런데 팜페오 국무장관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조미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오던 앤드루 김은 2018년 10월 중순 연말에 물러나고 싶다는 사임의사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은 그의 사임을 만류하였다. 조선과의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온 핵심관료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느닷없이 사임의사를 밝힌 것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의 거듭된 무응답으로 백악관이 정신적 압박을 받는 중에 백악관에게 뜻밖의 악재가 생겼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동아일보> 2018년 10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 산하 코리아임무쎈터 앤드루 김(김성현) 총책임자가 연말에 물러나고 싶다는 사임의사를 백악관에 밝혔으나 팜페오 국무장관이 사임을 만류했고, 그래서 지금은 자신의 거취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보도기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앤드루 김이 자기 직속상관 지나 해스펄(Gina C. Haspel) 중앙정보국장에게 사임의사를 밝힌 것이 아니라, 백악관에 사임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을 뜻하므로, 앤드루 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임의사를 밝혔다는 말인데, 팜페오 국무장관이 그의 사임을 만류한 것이다. 팜페오 국무장관이 그의 사임을 만류하였다면, 트럼프 대통령도 당연히 그의 사임을 만류하였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앙정보국 산하에 코리아임무쎈터를 창설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리고, 2017년 1월 중앙정보국에서 퇴직하였던 앤드루 김을 다시 불러내 2017년 5월 초에 창설된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로 임명한 장본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2017년 5월에 창설된 코리아임무쎈터는 직원 700명이 근무하는 방대한 국가정보조직인데, 앤드루 김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보는 한반도 정세에 관한 정보보고서를 작성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왔으며, 팜페오 국무장관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제1차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에서부터 지난 10월 7일 백화원 담판까지 조미협상 전 과정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막후에서 핵심역할을 수행해왔다. 사정이 이러했으니, 트럼프 대통령이 앤드루 김의 사임을 만류할 만하다. 

그런데 조선과의 협상에서 그처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온 핵심관료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느닷없이 사임의사를 밝히다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팜페오 국무장관이 스티브 비건을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로 임명한 이후 앤드루 김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가 조미협상에서 맡아보던 실무책임이 비건에게 넘어갔으므로, 앤드루 김이 사임의사를 밝힌 것으로 생각하지만, 앤드루 김이 조미협상 실무책임을 스티브 비건에게 넘겨주었더라도 조미협상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정보판단임무까지 넘겨준 것은 아니므로, 앤드루 김이 사임의사를 밝힌 까닭이 비건의 등장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앤드루 김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는 백화원 담판 이후 조미협상이 자신이 생각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우려한 나머지 사임을 결심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2. 신뢰가 먼저고, 회담은 나중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그 회담을 준비하는 실무회담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조선이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실무회담을 개최하자는 미국의 거듭된 제의를 받고서도 계속하여 응답하지 않고 있으니,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일 조선이 미국의 제의를 받아들여 조미실무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되기까지 상당한 준비시간이 소요된다. 제1차 조미정상회담 경험을 돌이켜보면, 제2차 조미정상회담 준비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어림잡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제1차 조미정상회담이 5월 또는 6월 초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하면서 개최시점을 처음 언급하였던 날은 2018년 4월 9일이었고, 제1차 조미정상회담이 6월 12일 싱가폴공화국에서 열리게 된다고 하면서 개최날짜와 개최지를 처음 발표한 날은 2018년 5월 10일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제1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이런 경험은 조선과 미국이 두 달 동안 제1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8년 10월 23일 로씨야 모스끄바를 방문 중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현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장면이다. 그는 10월 22일 모스끄바에서 현지 라디오방송과 대담을 진행하는 도중에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2019년 1월 1일 이후에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제1차 조미정상회담 경험을 돌아보면, 조선과 미국이 약 두 달 동안 그 회담을 준비하였으므로, 볼턴이 위와 같은 발언을 하였던 2018년 10월 하순에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조미실무회담이 열렸더라도, 제2차 조미정상회담은 두 달 뒤 2019년 1월 초에나 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볼턴의 예상발언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조미협상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볼턴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예상보다 늦어져 2019년 1월 1일 이후에 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아주 쉽게 꺼내놓았지만,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의 처지는 전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거듭되는 무응답으로 조미정상회담이 자꾸 늦어지는 바람에 겉으로 내색을 하지 못하지만 속은 타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과 미국이 제1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데 두 달이 걸렸다면, 2018년 10월 말부터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한다고 가정해도, 2019년 1월 초에나 성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사정을 간파한 존 볼턴(John R. Bolto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18년 10월 22일 모스끄바를 방문하던 중 <메아리 모스끄바 라디오방송(Radio Echo Moscow)>과 진행한 대담에서 진행자의 질문과 동떨어진 답변을 늘어놓으면서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2019년 1월 1일 이후에 열릴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메아리 모스끄바 라디오방송>은 대담진행자의 질문과 동떨어진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대답을 빼놓고 다른 대담내용들만 보도하였는데, 모스끄바주재 미국 대사관이 그 발언을 집어넣은 보도자료를 공개하는 바람에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2019년 1월 1일 이후에 열릴 것이라는 볼턴의 발언이 세상에 알려졌다.  

조미협상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예상보다 늦어져 2019년 1월 1일 이후에 열릴 것이라는 말을 아주 쉽게 꺼내놓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의 처지는 전혀 다르다. 특히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거듭되는 무응답으로 조미정상회담이 자꾸 늦어지는 바람에 겉으로 내색을 하지 못하지만 속은 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하고 백화원 담판을 진행한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2018년 10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 일정을 묻는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이렇게 답변하였다. 

“그것은 열릴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것(회담일정을 뜻함-옮긴이)을 조율하는 중이다. 우리는 그것(회담개최지를 뜻함-옮긴이)을 발표할 것이다. 아마도 (싱가폴이 아닌) 다른 장소가 될 것이다. 싱가폴은 훌륭했으나, 우리는 아마도 다른 장소에서 할 것 같다. 우리는 3~4곳 다른 장소를 거론하고 있다.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는) 시점은 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미협상국면은 트럼프 대통령의 낙관적 전망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조선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조미실무회담을 개최하자는 팜페오 국무장관의 제의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의 거듭되는 무응답은 의도적인 행동이다. 조선은 왜 응답하지 않는 것일까? 궁금증과 의문이 커지고 있다. 

조선이 백악관의 거듭되는 실무회담 제의에 응답하지 않는 이유를 파악하려면, 2018년 10월 7일 백화원 담판에 관해 서술한 조선의 언론보도를 다시 정독할 필요가 있다. 그 보도기사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비핵화해결을 위한 방안들과 쌍방의 우려사항들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건설적인 의견을 교환하시였”다는 구절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비핵화해결방안만이 아니라 우려사항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한 것인데, 바로 그 우려사항이라는 낱말 속에 궁금증과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가 들어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상세히 설명한 우려사항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2018년 10월 9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모스끄바에서 로씨야 외무성 부상,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함께 진행한 3자협상에서 ‘조로중 3자협상 공동보도문’을 발표하였는데, 그 공동보도문에서 우려사항의 실체가 발견된다. 공동보도문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3자는 조선반도의 비핵화실현과 평화체제수립을 위한 의지를 재확언하였다. 3자는 이러한 과정들이 신뢰조성을 선행시키면서 단계적이며 동시적인 방법으로 전진되여야 하며 관련국들의 상응한 조치가 동반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공통된 인식을 가지였다.”

위의 인용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수립을 단계적, 동시적으로 실행하는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신뢰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언명하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뢰조성이란 조선과 미국 사이의 신뢰조성을 뜻하는 것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전에 미국이 조선과 신뢰를 조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합성사진에서 왼쪽이 최선희 조선 외무성 부상이고, 가운데가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고, 오른쪽이 이고르 모르굴로브 로씨야 외무성 부상이다. 이 세 사람은 2018년 10월 9일 모스끄바에서 조로중 3자협상을 진행하고 '조로중 3자협상 공동보도문'을 발표하였다. 그 공동보도문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수립을 단계적, 동시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신뢰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언명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신뢰조성이란 조선과 미국 사이의 신뢰조성을 뜻하는 것이며,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전에 미국이 조선과 신뢰를 조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선과 미국의 신뢰조성은 백악관이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말한다. 조선은 미국에게 바로 그런 신뢰구축조치를 선행시키라는 정당한 요구를 제기하였고, 제1차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그 요구를 명기하였으나, 미국은 아직도 조선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조성하지 않고 있다.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열릴 조짐이 보이지 않는 현재 상황의 책임은 신뢰조성을 선행시키기로 약속하고서도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미국에게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돌이켜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1차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행적인 신뢰구축조치를 취할 것을 정식으로 요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18년 6월 13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1차 조미정상회담에서 “미국측이 조미관계개선을 위한 진정한 신뢰구축조치를 취해나간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게 계속 다음 단계의 추가적인 선의의 조치들을 취해나갈 수 있다는 립장을 밝히시였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1차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이 신뢰구축조치를 선행시켜야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하게 밝혔으므로, 제1차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호상신뢰구축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명기된 것이다. 

조선이 백악관에게 신뢰구축조치를 선행시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천만번 정당한 일이다. 왜냐하면, 조선이 백악관을 믿지 못하는 조건에서 단계적 비핵화가 시작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렇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요구한 선행적 신뢰구축조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백악관이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를 완화함으로써 신뢰를 조성하는 행동을 뜻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요구한 두 가지 선행적 신뢰구축조치들 가운데 하나가 종전선언을 발표하는 조치라는 사실은 조선 외무성이 2018년 7월 7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외무성은 그 담화에서 종전선언은 “조미 사이의 신뢰조성을 위한 선차적인 요소”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요구한 두 가지 선행적 신뢰구축조치들 가운데 다른 하나가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라는 사실은 조로중 3자협상 공동보도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동보도문에는 “3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의의 있는 실천적인 비핵화조치들을 취한데 대해 주목하면서 유엔안보리사회가 제때에 대조선제재의 조절과정을 가동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견해일치를 보았다”고 명기되었다. 2018년 10월 23일 유엔주재 조선대표부는 지난 10월 9일에 채택된 조로중 3자협상 공동보도문을 유엔 공식문서로 회람할 것을 유엔사무국에 공식 요청하였다.  

이제 명백해졌다. 조선은 백악관이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를 완화하는 선행적 신뢰구축조치를 취하지 않기 때문에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조미실무회담을 개최하자는 백악관의 거듭되는 제의를 받고서도 일체 응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싶으면,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를 완화하는 선행적 신뢰구축조치를 먼저 취해야 하는 것이다.  


3. 구심점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압박장치들

백악관을 상대하는 조선의 대응책은 마구 날뛰는 야생마를 길들이는 노련한 조련사의 행동처럼 능숙하고 절묘하다. 조선은 무응답으로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백악관을 남북미 3자 종전선언 발표와 유엔안보리의 대조선제재 완화로 끌어내려는 조선의 대응책을 한 마디로 말하면 회전식 연속압박이라고 할 수 있다. 회전식 연속압박의 문자적 의미는, 구심점에 연결된 압박장치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대상을 연속적으로 압박한다는 뜻이다. 아래에 서술한 몇 가지 사실들은 조선의 회전식 연속압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말해준다.  

(1) 조선이 백악관을 상대로 펼치는 회전식 연속압박에서 첫 번째로 주목되는 것은, 조중관계를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중국이 미국에게 조선과 신뢰를 조성하라고 압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붕> 2018년 7월 1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6월 19일부터 20일까지 베이징에서 조중정상회담을 하면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가 조기에 해제될 수 있도록 힘써주기 바란다는 의사를 표명하였고, 시진핑 주석은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중국은 유엔안보리에서 대조선제재를 추가로 의결하려는 미국의 시도를 저지하면서, 조선의 비핵화노력에 상응하여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가 완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8년 10월 25일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68돐’에 즈음하여 조선은 평양시 강동군과 순안구역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렬사묘를 렬사릉원으로 개건하고 준공식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실 하나만 봐도, 조선이 중국과 맺은 전략적 협력관계를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들어 미국은 중국에게 무역전쟁을 도발하면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군사대결을 벌이고 있는데, 미국이 중국을 그렇게 압박할수록 중국은 조선과 맺은 전략적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날로 첨예해지는 가운데 이루어질 시진핑 주석의 조선방문은 조선과 중국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정점에 올려세울 것이다.  

(2) 조선이 백악관을 상대로 펼치는 회전식 연속압박에서 두 번째로 주목되는 것은 로씨야와의 연대관계를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로씨야가 미국에게 조선과 신뢰를 조성하라고 압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안에 로씨야를 방문하여 울라지미르 뿌찐(Wulagimir W. Putzin) 대통령과 조로정상회담을 개최하게 된다는 점이다. 2018년 10월 16일 로씨야 크레믈리궁 대변인은 “올해 안에” 조로정상회담 일정이 잡혀있다고 밝혔고, 10월 22일에는 “아주 많은 도시들이 조로정상회담 개최지로 거론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조선로동당 대표단을 이끌고 모스끄바를 방문한 류명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2018년 10월 25일 안드레이 뚜르챠크 '통일로씨야' 총비서와 함께 '조선로동당과 전로씨야정당 <통일로씨야> 사이의 교류와 협조에 관한 협정'에 조인하는 장면이다. 2001년 12월 1일 창당된 '통일로씨야'는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우파집권당이다. 이제껏 조선로동당은 다른 나라 사회주의정당들과는 협력관계를 맺으면서도 다른 나라 민족주의정당들과는 협력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조선로동당은 이례적으로 '통일로씨야'와 협력관계를 맺었다. 이것은 조선이 로씨야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로동당 대표단을 이끌고 로씨야를 방문한 류명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2018년 10월 25일 모스끄바에서 안드레이 뚜르챠크(Andrey A. Turchak) ‘통일로씨야’ 총비서와 함께 ‘조선로동당과 전로씨야정당 <통일로씨야> 사이의 교류와 협조에 관한 협정’에 조인하였다고 한다. 2001년 12월 1일에 창당된 ‘통일로씨야’는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우파집권당이다. 이제껏 조선로동당은 다른 나라 사회주의정당들과는 협력관계를 맺으면서도 다른 나라 민족주의정당들과는 협력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조선로동당은 이례적으로 ‘통일로씨야’와 협력관계를 맺었다. 이것은 조선이 로씨야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로씨야의 미국 대선개입의혹을 물고 늘어지면서 대로씨야제재를 강화하고, 유럽에서 나토동맹군을 내몰아 로씨야를 압박하고 있으므로, 로씨야가 조선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요즈음 로씨야는 서쪽에서 나토군에게 공세적으로 대응하고 동쪽에서 미일동맹군에게 방어적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미일동맹군에 맞서려면 조선, 중국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미로대립관계가 날로 악화되는 가운데 이루어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로씨야방문은 조로협력관계를 강화하는 쌍방의 노력을 정점에 올려세울 것이다.   

(3) 조선이 백악관을 상대로 펼치는 세 번째 회전식 연속압박은 남북의 신뢰조성과 상호협력을 급속히 진척시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우리 민족의 기개를 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적극 추진하기로” 굳게 약속하였다. 그 약속에 따라 지금 남과 북의 상호신뢰가 급속도로 조성되고, 남과 북의 상호협력도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중이다. 

더욱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두 차례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남북미 3자 종전선언 발표와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 완화를 올해 안에 실현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선언에는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기되었다.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발표하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긴밀히 협력하기로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24일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 길에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올해 안에 발표하자고 그를 설득하였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24일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한미정상회담을 진행하는 중에 촬영한 것이다. 2018년 4월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선언에서 올해 안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구축을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9월 24일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올해 안에 발표하자고 그를 설득하였다. 또한 2018년 9월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공동선언에서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올해 안에 실현하기로 약속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10월 15~19일 유럽에서 프랑스 대통령, 이딸리아 총리, 영국 총리를 차례로 만나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가 완화되도록 프랑스, 이딸리아, 영국이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또한 2018년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에는 “북측은 미국이 6.12조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페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고 명기되었는데, 여기서 나오는 미국의 상응조치라는 말은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뜻한다.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올해 안에 실현하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긴밀히 협력하기로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 15일 프랑스 대통령과 만난 정상회담에서, 10월 17일 이딸리아 총리와 만난 정상회담에서, 10월 19일 영국 총리와 만난 정상회담에서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가 완화되도록 프랑스, 이딸리아, 영국이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미국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은 남과 북이 추진하는 군사분계선 일대의 긴장완화조치가 너무 급한 것이라느니, 남과 북이 개성공업지구를 다시 활성화하려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느니, 남과 북의 철도 및 도로 연결이 대조선제재를 흔들면 안 된다느니,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이 불만스럽다느니 뭐니 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미국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건 말건, 남과 북은 우리 민족끼리 화해하고 신뢰하며, 협력하고 단합하는 민족사적 과업을 더욱 힘있게 수행하여 삼천리강토에 통일공화국을 건설하는 날을 앞당길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 화해와 신뢰, 협력과 단합을 실현하려는 남과 북의 다양하고 지속적인 노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방문으로 최절정에 이를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방문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신뢰, 협력과 단합을 최절정에 끌어올림으로써 백악관을 남북미 3자 종전선언 발표와 유엔안보리 대조선제재 완화로 끌어낼 것이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조선은 한, 중, 로 3자를 대미공조체제에 각각 끌어들여 백악관에게 회전식 연속압박을 계속 가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중심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과 뿌찐 대통령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전후좌우에서 연속적으로 압박하는 상황에는 회전식 연속압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조선의 회전식 연속압박이야말로 백악관을 궁지에 몰아넣고, 우리 민족끼리 화해와 신뢰, 협력과 단합을 실현하며, 중국 및 로씨야와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절묘한 책략이다. 조선의 회전식 연속압박을 얻어맞으며 호흡장애를 일으킨 백악관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백악관은 남북미 3자 종전선언 발표를 지연시키고 대조선제재에 집착하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치명적인 호흡장애를 일으켰으니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판세는 조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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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3

6명의 책사들과 점령군 철수, 다시 찾아온 철군의 기회


[한호석의 개벽예감](319)
자주시보 2018년 10월 22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세계지배책략을 설계한 6명의 책사들
2. 500명만 남고 전원 철수하라는 명령
3. 미국이 태평양방어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한 이유
4. 6.25전쟁이 세계대전으로 확전되지 않은 이유
5. 7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철군의 기회


1. 세계지배책략을 설계한 6명의 책사들

미국은 79년 전 독일이 뽈스까(폴란드)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도발한 직후 핵무기개발에 달라붙었다. 1939년 10월 21일의 일이었다. 그 이후 미국은 핵무기와 원자력에 관련된 핵기술개발사업에 총 5조3천억 달러(한화 약 6,000조 원)를 쏟아부었고, 1,054회 핵시험을 하였으며, 2018년 현재 핵무기 약 4,000발을 쌓아놓았다. 

미국의 안보문제연구기관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이 2015년 10월 28일에 펴낸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을 포함하여 29개 나라, 10억 명 인구를 ‘핵우산’으로 ‘보호’해준다고 한다. 그들은 보호라는 말을 썼지만, ‘핵우산’으로 보호해준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29개 나라를 거느리고, 10억 명의 인구를 가진 아메리카핵제국(Nuclear Empire of America)은 세계 각지에서 무력침공과 내정간섭, 막후통치와 강권외교, 전쟁위협과 군사대결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다.  

그런 아메리카핵제국의 세계지배전략을 25년 동안 주물렀던 책사들이 있었다. 언론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흑막 뒤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세계지배책략을 조언해준 책사들이다. 미국의 유명한 언론인들인 월터 아이삭슨(Walter Isaacson)과 에번 토머스(Even Thomas)가 공동으로 집필한 ‘현자들: 6명의 벗들과 그들이 만든 세계(The Wise Men: Six Friends and the World They Made)’라는 제목의 책에서 그 책사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1986년에 출판된 그 책은 1945년 트루먼 행정부에서 1969년 존슨 행정부까지 장장 25년 동안 아메리카핵제국의 세계지배책략에 결정적인 영항을 미쳤던 6명의 책사들에 대해 서술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세계사적 전환기였던 1945년 4월에 자기들끼리 비공개협의체를 결성한 6명의 책사들은 갓 출범한 트루먼 행정부의 막후에서 세계지배책략수립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으로 첫 작업을 시작하였다. 6명의 책사들은 다음과 같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1947년 어느 날 트루먼 대통령이 백악관 대통령집무실에서 책사들과 토론하는 장면이다. 사진에서 왼쪽부터 트루먼, 제벌총수로 국방장관을 역임한 로벗 로벳, 소련주재 미국대사를 역임한 조지 케넌, 소련주재 미국대사를 역임한 찰스 볼런이다. 1945년부터 1969년까지 장장 25년 동안 아메리카핵제국의 세계지배책략을 설계한 6명의 책사들 가운데 사진에 나타난 사람은 3명이고, 미국 국무장관과 재무장관을 역임한 딘 애치슨, 재벌총수로 상무장관을 역임한 애버럴 해리먼, 세계은행 총재를 역임한 존 맥클로이는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다. 1945년부터 1950년까지 5년 동안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국가건설운동은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하고 트루먼 행정부가 행동에 옮긴 미국의 세계지배책략과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그 격렬한 정면충돌 이후 오늘까지 70여 년이 지났으나, 우리 민족은 분단체제와 정전체제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우리 민족은 미국의 세계지배책략을 돌파해야 분단체제와 정전체제를 극복할 수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딘 애치슨(Dean G. Acheson, 1893~1971) - 미국 국무장관과 재무장관 역임
조지 케넌 (George F. Kennan, 1904~2005) - 소련주재 미국대사 역임
찰스 볼런 (Charles E. Bohlen, 1904~1974) - 소련주재 미국대사 역임 
애버럴 해리먼(W. Averell Harriman, 1891~1986) - 재벌총수로 상무장관 역임
로벗 로벳 (Robert A. Lovett, 1895-1986) - 재벌총수로 국방장관 역임
존 맥클로이 (John J. McCloy, 1895~1989) - 세계은행 총재 역임

1945년부터 1969년까지 25년 동안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소련봉쇄와 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 일본 점령과 유엔 창설, 한반도 분단과 6.25전쟁, 중동전쟁과 베트남전쟁, 대만해협위기와 꾸바미사일위기 같은 워싱턴발 대격변들은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한 세계지배책략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1945년 조선해방 4개월 전부터 1953년 정전협정체결 6개월 전까지 8년 동안, 한반도가 해방과 점령, 분단과 전쟁을 겪었던 바로 그 기간에 제33대 미국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우리 민족에게 분단고착, 대량학살, 전쟁범죄 같은 극악한 죄악을 저질렀던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의 한반도책략수립에 6명의 책사들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1945년부터 1950년까지 5년 동안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국가건설운동은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하고, 트루먼 행정부가 행동에 옮긴 미국의 세계지배책략과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그 격렬한 정면충돌 이후 오늘까지 70여 년이 지났으나, 우리 민족은 분단체제와 정전체제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2018년 10월 현재 한반도의 정세는 우리 민족이 70여 년 전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하였던 미국의 세계지배책략을 돌파해야 분단체제와 정전체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명백한 이치를 말해준다.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한 미국의 세계지배책략은 무엇이었던가? 6명의 책사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에 맞서는 강대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한 소련을 새로운 적국으로 규정하고 소련의 팽창주의를 무력으로 봉쇄해야 한다고 믿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당시 소련봉쇄전략의 설계자가 조지 케넌이었다는 ‘정설’이 널리 퍼져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소련봉쇄전략의 설계자는 케넌을 포함한 6명의 책사들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20세기 후반부에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였던 냉전체제는 바로 그런 정치적 배경에서 성립되었다.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한 세계지배책략에서 중심적인 내용은 소련봉쇄전략이었고, 당시 트루먼 행정부는 소련봉쇄전략의 일환으로 한반도책략을 수행하였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 민족에게 말할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안겨준 분단체제와 정전체제는 바로 그런 정치적 배경에서 성립된 것이다.


2. 500명만 남고 전원 철수하라는 명령

1949년 6월 21일 미국 연방하원 외교위원회가 특별한 청문회를 열었다. 미국군 합동참모본부 군사지휘관들이 그 청문회에 불려나갔다. 연방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하원의원들과 합참본부 군사지휘관들은 그 청문회에서 남조선점령군 철수문제를 놓고 다음과 같은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당시 미국은 북위 38도선 이남지역을 점령한 자기 군대를 남조선점령군(occupation forces in South Korea)이라고 불렀다.

연방하원의원 - “합참본부가 이번에 점령군 철수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건의하였다고 보는 것이 옳은가?”
합참본부 군사지휘관들 - (이구동성으로) “그렇다.”
연방하원의원 - “귀관은 육군이 한국에서 철수하는 것을 선호하였다고 하는데...”
합참본부 군사지휘관 - “확실히 그렇다. 전술부대들만 철수한 것이다.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미국군 고문단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병력이 증강된 연대급 전투부대들인 전술부대들의 철수다.” 
연방하원의원 - “미국군 고문단의 규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합참본부 군사지휘관 - “500명의 장교들과 사병들이다.”
연방하원의원 - “점령군 철수에 의해 발생한 공백을 한국 정부가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합참본부 군사지휘관 - “확실하다.”

연방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하원의원들과 합참본부 군사지휘관들 사이에서 오간 위와 같은 청문회 질의응답이 어떤 원인과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 알려면,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트루먼 행정부는 1948년 한 해 동안 남조선점령군 40,000명 가운데 7,500명만 남겨놓고 대폭 감축하였다. 그것은 계속주둔을 위한 병력감축이 아니라 완전철수를 위한 단계적 병력감축이었다. 1948년 4월 2일 트루먼 행정부는 1948년 9월 15일부터 시작한 남조선점령군의 단계적 철수를 1949년 6월 30일 이전까지 완료하기로 결정하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군 합동참모본부가 트루먼에게 남조선점령군 철수계획을 제출하였고, 트루먼은 그 철군계획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상정하여 최종적으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미국의 남조선점령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소련봉쇄정책을 수행하는 데서 중요한 요소이므로, 남조선점령군을 철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당시 연방의회의 일반적인 견해였는데, 트루먼 행정부는 그런 기존관념을 뒤집고 남조선점령군을 완전히 철수하였다. 당시 미국 연방의회는 트루먼 행정부가 왜 남조선점령군을 완전히 철수했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위와 같이 철군문제를 다루는 특별청문회를 마련했던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트루먼 행정부의 남조선점령군 철수가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한 소련봉쇄전략의 일환이라는 사실이다.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한 소련봉쇄전략에 따르면, 남조선점령군 철수는 트루먼 행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이런 사실을 보면, 6명의 책사들이 남조선점령군 철수라는 정세변화를 촉발시킨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한 세계지배책략에서 소련봉쇄전략과 남조선점령군 철수는 서로 어떻게 연관되었던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1948년 11월 23일 트루먼 행정부의 국가안보회의에서 채택된 비밀문서 ‘NSC 20/4’에서 찾을 수 있다. 6명 책사들이 작성한 세계지배책략 설계도에 의거하여 트루먼 행정부의 고위관료들이 작성한 이 비밀문서에서 미국의 전후 세계지배책략이 드러나는데, 미국군을 해외에 배치하는 우선순위가 그 문서에 명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군사비와 병력을 대폭 감축한 트루먼 행정부는 한정된 병력을 해외 각지에 효과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배분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비밀문서에 명기된 우선순위에 따르면, 영국은 1위에 올랐고, 일본은 13위로 쳐졌고, 한국은 15위로 완전히 밀려났다. 트루먼 행정부의 세계지배책략에서 서유럽이 최우선이고, 중동이 그 다음이고, 아시아는 뒤로 밀려났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트루먼 행정부가 해외배치병력 배분순위에서 한국을 최하위로 밀어놓았으니, 남조선점령군을 철수하고 군사고문단 500명만 남겨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트루먼 행정부가 남조선점령군을 철수한 것은 소련봉쇄전략을 수행하는 데서 한반도가 전략적 가치를 갖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남조선점령군 사령관으로 군림했던 존 하지 미국 육군 중장이 미국 육군 제6사단 제20연대장 로스웰 브라운 대령과 악수하는 장면이다. 1948년 5월 19일 하지는 브라운을 제주도에 군사지휘관으로 파견하여 남조선국방경비대와 경찰의 지휘권을 맡기고, 제주양민학살을 명령하였다. 미국은 1948년 9월 15일부터 남조선점령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949년 6월 30일 철수를 완료하였는데, 단계적으로 철수하면서도 그들은 제주학살, 여순학살을 지휘하였다. 나중에는 보도연맹원 학살도 지휘하였다. 당시 남조선점령군은 그처럼 잔인포악하였다. 그들은 전쟁에서 패하여 철수한 게 아니라, 자기들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철수한 것이었으므로, 그처럼 극악무도한 양민학살을 지휘하면서 철수한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남조선점령군이 철수한 뒤에 남은 군사고문단의 임무는 1948년 9월 5일에 창설된 한국군의 무력증강과 군사작전을 계획, 지휘하는 한편,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에 체류하는 미국인을 일본으로 탈출시키는 비전투원소개작전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것보다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며 광분하였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점령군 철수와 통일정부 수립을 요구하며 궐기한 진보적 민중 약 100만 명이 무참히 학살당했다. 한국군과 경찰이 자행한 제주항쟁 대량학살, 여순항쟁 대량학살, 보도연맹원 대량학살은 남조선점령군 군사고문단의 명령과 지휘에 의해 저질러진 역사상 가장 잔혹한 만행이다. 또한 남조선점령군 군사고문단은 북위 38도선 이북지역에 대한 한국군의 공격작전을 지휘하면서 북침광기를 부추겼다.    

남과 북은 북위 38도선 지역에서 1948년에 930여 차례의 무력충돌을 벌였고, 1949년에 2,617여 차례의 무력충돌을 벌였고, 1950년에는 6월 25일 직전까지 1,147 차례의 무력충돌을 벌였는데, 특히 옹진반도, 개성, 의정부, 춘천, 강릉 등에서는 사실상 내전이 벌어졌다. 그처럼 6.25전쟁의 전주곡이 울리고 있었던 긴박한 상황에서 트루먼 행정부는 남조선점령군을 증강하기는커녕 정반대로 완전히 철수해버렸다. 거기에 더하여 한국에 대한 무력증강지원도 중지하려고 하였다. 이를테면, 1950년 6월 23일 미국군 합참본부 합동전략기획위원회가 작성한 1급 비밀보고서는 “합동참모본부는 한국이 전략적 측면에서 별로 가치가 없다는 점에 동의했다. 따라서 상호방위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한국에 군사자금을 추가로 지원하는 것은 정당한 처사로 보기 어렵다”고 명기하였던 것이다. 


3. 미국이 태평양방어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한 이유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1947년 6월 16일 미국군 합참본부가 작성한 ‘문라이즈(Moonrise)’라는 명칭의 대소전쟁전략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미국군 합참본부가 작성한 대소전쟁계획의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팽창주의정책에 매달리는 소련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으며, 가까운 장래에 소련과 전쟁을 하게 될 것이다.  
(2) 미국군은 유럽전선에서 소련군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지만, 전쟁이 유럽전선과 아시아전선에서 동시에 일어나면 미국군이 그 두 전선에서 모두 이길 수 없으므로, 아시아전선에서는 공군력을 동원하여 소련군의 남진공격을 저지해야 한다. 따라서 오끼나와공군기지의 군사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다.  
(3)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남조선점령군 2개 사단과 남조선군은 패할 것이고, 소련군 5개 사단은 북조선군과 협공하여 개전 20일 안에 남조선 전역을 점령할 것이다. 
(4) 미국은 소련군의 직접적인 위협에 직면한 남조선점령군을 신속히 일본으로 철수하고 일본 방어에 집중해야 한다. 
(5) 미국은 알류산열도 - 일본 본토 - 오끼나와 -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섬들로 연결된 태평양방어선을 구축하여 소련의 태평양진출을 저지해야 한다. 

위에 서술된 대소전쟁전략에 따르면, 한반도는 전략적 가치를 잃고 태평양방어선에서 제외되었으므로, 트루먼 행정부는 당연히 남조선점령군을 일본으로 철수해야 하였다. 그렇게 되어 미국군 합참본부는 1948년 4월 2일 남조선점령군 철수계획을 문서화한 ‘SANACC 176/39’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하였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철군계획을 승인하였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1949년 2월 28일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한 극비정보평가서다. 이 비밀문서는 1976년에 기밀해제되었다. 제목은 '1949년 봄 코리아에서 미국군 철수의 영향들'이다. 미국군 합참본부는 1948년 4월 2일 남조선점령군 철수계획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하여 최종 승인을 받았다. 그리하여 남조선점령군은 1949년 6월 30일에 철수를 완료하였는데, 철수가 완료되기 전에 작성된 위의 비밀문서는 철수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예견한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1947년 9월 18일에 창설되었으므로, 위의 비밀문서를 작성하였던 1949년에는 저급한 정보력밖에 갖지 못했고, 따라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발언권도 약했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가장 강한 발언권을 가진 부서는 합동참모본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여서 군부의 발언권이 매우 강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미국군 합참본부의 철군계획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철군결정에 따라, 남조선점령군은 1948년 9월 15일부터 철수되기 시작하여 1949년 6월 30일까지 완전히 철수되었다. 미국군 합참본부는 1949년 12월 8일 ‘문라이즈’를 보강하여 ‘앞태클(Offtackle)’이라는 명칭의 대소전쟁전략을 완성하였다. 

1950년 1월 12일 애치슨 국무장관이 미국 워싱턴에 있는 전국언론인협회(NPC)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한반도를 제외한 미국의 태평양방어선에 대해 설명한 것은,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하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채택한 소련봉쇄전략에 따른 발언이었다. 또한 1950년 6월 루이스 존슨(Louis A. Johnson) 미국 국방장관과 오마 브래들리(Omar N. Bradley) 미국군 합참의장이 하와이, 필리핀, 일본, 알래스카를 순방, 시찰하면서, 한국만 빼놓았던 것도,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하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채택한 소련봉쇄전략에 따른 행동이었다. 

그런데 1949년 6월 30일 남조선점령군을 철수하였던 트루먼 행정부는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군을 급파하여 3년 동안 격전을 벌였다. 그 전쟁이 정전상태로 전환된 이후 오늘까지 65년 동안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계속 유지해왔다. 


4. 6.25전쟁이 세계대전으로 확전되지 않은 이유

의문이 생긴다. 한반도가 전략적 가치를 상실하였다고 판단하고 점령군을 철수하였던 미국은 왜 미국군을 다시 한국에 파병하였고, 정전 이후에도 65년 동안 유지하는 것일까? 이 의문을 풀어주는 해답은 다음과 같다.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하고, 트루먼 행정부가 집행한 소련봉쇄전략에서 말하는 미국과 소련의 전쟁은 유럽전선과 아시아전선에서 일어나는 제3차 세계대전을 의미하였다. 당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가졌던 미국은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도 핵무기로 소련군을 궤멸시키면 자기들이 이길 것으로 타산했다. 

그런데 트루먼 행정부가 예상했던 소련이 도발한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소련이 참전하지 않은 6.25전쟁이 일어났다. 미국은 동아시아의 신생독립국 조선과 국지전을 벌였다. 핵무기를 가진 미국은 창건된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조선을 전쟁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이 조선에 대해 크게 오판한 것이었다. 미국의 예상을 뒤엎고, 조선인민군은 개전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하였고, 개전 두 달 뒤에는 38도선 이남지역을 거의 점령하였다. 애초에 전쟁상대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았던 신생독립국과 맞붙은 전쟁에서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이며 세계 유일의 핵보유국이 패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치욕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그런 치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3년 동안 격전을 벌였으나, 결국 패하였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6.25전쟁 중에 조선인민군의 공격을 받고 패주하던 미국군 병사들이 어느 산비탈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괴로워하는 장면이다. 철모가 옆에 나뒹구는 것을 보면 매우 큰 심리적 충격을 받은 듯하다. 아마도 전투 중에 사망한 전우들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그 곁에 앉아 있는 한국군 병사는 종이쪽지에 무엇인가 쓰고 있다. 애초에 전쟁상대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았던 신생독립국 조선과 맞붙은 전쟁에서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이며 세계 유일의 핵보유국인 미국이 패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치욕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그런 치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3년 동안 격전을 벌였으나, 결국 패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10년 6월 16일 미국 미주리주에 있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Harry S. Truman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에서 ‘코리아전쟁 60주년 토론회’가 개최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워싱턴D.C.에 있는 윌슨 쎈터(Wilson Center)가 공개한 소련의 비밀문서를 분석한 ‘코리아전쟁 중 조선과 중국의 갈등’이라는 제목의 특이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그 논문은 6.25전쟁 개전일로부터 석 달 동안 조선이 소련의 군사지원제의와 중국의 파병제의를 모두 거절하면서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주었다. 당시 조선은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조국해방전쟁’을 주체역량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자기들의 원칙을 지켰던 것이다. 조선이 주체적 전쟁수행원칙에 얼마나 철저했으면,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이 프랑스 통신사 <AFP>의 긴급보도에서 6.25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알고 깜짝 놀랐겠는가. 조선은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뒤에야 연락장교 한 사람을 베이징에 파견하여 전황을 처음 통보했다. 1950년 7월 초 마오쩌둥 주석은 평양주재 중국대사에게 조선측과 중국의 파병문제를 협의하라고 지시하였으나, 조선은 파병문제를 협의하기는커녕 중국대사에게 전황정보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이것은 ‘조국해방전쟁’에 중국이 개입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전황을 알지 못해 잔뜩 답답해진 중국은 군사고문단을 조선전선에 파견하여 전황을 알아보고 싶다고 요청했으나, 조선은 그 요청도 거절하였다. 미국의 대규모 파병으로 전쟁정세가 바뀌자, 1950년 8월 11일 마오쩌둥 주석은 조선전선에 파병하겠다고 직접 제의했으나, 김일성 주석은 파병제의를 또 다시 거절하였다. 

1950년 9월 15일 미국군이 인천에 상륙하여 전황이 조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마오쩌둥 주석은 김일성 주석에게 중국의 파병을 다시 제안하였고, 9월 21일에는 소련까지 나서서 중국의 파병제의를 받아들이라고 조선에게 간곡히 권고하였다. 조선로동당 정치국이 소련의 군사지원제의와 중국의 파병제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날은 1950년 9월 28일이었다. 

만일 소련이 중국과 함께 6.25전쟁에 파병하였더라면, 미국은 대소전쟁계획에 따라 공군력을 동원하여 소련 연해주와 중국 동북지방을 폭격하여 전선을 한반도 밖으로 확대하였을 것이며, 미국과 소련의 전쟁은 대만해협으로, 일본 홋까이도(北海道)로, 동유럽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서술한 것처럼, 조선은 6.25전쟁 초기에 소련의 군사지원과 중국의 파병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미국군 합참본부는 한반도에서 국지전에 대처하는 전쟁계획만 수행하였고, 6.25전쟁은 세계대전으로 확전되지 않았던 것이다.  


5. 7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철군의 기회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한 소련봉쇄전략을 행동에 옮긴 트루먼 행정부가 그 전략에 따라 남조선점령군을 철수한 때로부터 어언 70년 세월이 흘렀다. 2018년도 기울어가고 있는 지금 우리 민족은 지난 70년 동안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정세와 한반도정세의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올해 들어 일어난 세계정세와 한반도정세의 급격한 변화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1) 70년 전,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한 트루먼 행정부의 소련봉쇄전략은 오늘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봉쇄전략과 러시아봉쇄전략으로 대체되고, 확대되었다. 70년 전 트루먼 행정부는 소련만 상대하면 되었지만, 오늘 트럼프 행정부는 아시아에서 중국과 맞서야 하고, 유럽에서 러시아와 맞서야 하는 매우 불리한 처지에 빠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불리한 처지에서 벗어나보려고 집착하는 중국봉쇄전략과 러시아봉쇄전략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중심내용은 미국의 핵무력증강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핵군축조약들을 줄줄이 파기하면서 핵무력을 증강하려고 광분하고 있다. 이를테면,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에 러시아와 체결하였던 ‘탄도탄요격미사일조약(ABM)’에서 이미 탈퇴하였고, ‘중거리핵무력조약(INF)’을 곧 파기하겠다고 선언하였고, ‘신전략무기감축협정(NSART)’까지 파기할 기세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트럼프 행정부의 핵무력증강은 한반도 비핵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행정부가 핵무력을 증강할수록 조선에게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이것은 한반도 비핵화가 조선의 단계적 핵동결과 미국의 단계적 철군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 

(2) 1949년 8월 29일 소련이 자국의 첫 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함으로써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렸던 상황은 2017년 11월 29일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여 미국의 국가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으로 대체되었다. 이것은 지난 70년 동안 미국이 유지해오는 태평양방어선 전체가 조선의 핵공격권 안에 들어갔을 뿐 아니라, 미국 본토 전역도 조선의 핵공격권 안에 들어가고 말았음을 의미한다. 소련이 조선의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처럼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가 11,000km가 넘는 R-16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성공한 날이 1961년 2월 2일이었으므로, 소련은 1960년까지는 미국 본토를 직접적으로 위협하지 못하였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70여 년 전 트루먼 행정부가 소련의 핵시험 성공 직후에 직면했던 국가안보파탄위기보다 오늘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의 화성-15 시험발사 성공 직후에 직면한 국가안보파탄위기가 훨씬 더 심각하고 위급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진 5> 
  
▲ <사진 5> 요즈음 트럼프 대통령은 고민에 빠졌다. 70여 년 전, 6명의 책사들이 설계하였고, 트루먼 행정부가 구축해놓은 태평양방어선을 자기 임기 동안만이라도 지켜야 하겠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중국은 현대화되고 증강된 해군력과 공군력을 동원하여 태평양방어선을 돌파하는 군사작전을 수시로 연습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서유럽 전역에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강력한 미사일부대들을 자꾸 서쪽으로 이동시키며 전진배치하고 있다. 더욱이 조선은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기세로 백악관을 전방위로 압박하면서 조미협상을 주도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수리아(씨리아)에서 패한 미국군은 조만간 철수하지 않을 수 없는 궁지에 몰렸다. 미국의 힘으로는 유지하기 힘든 세계지배체제를 유지하려고 버티다보니, 트럼프의 고민인들 오죽하겠나. 더 심각한 문제는 트루먼에게는 6명의 책사들이 있었지만, 트럼프에게는 유능한 책사가 없다는 것이다. 팜페오와 볼턴은 책사로서는 수준이 낮은 실무관료에 가깝다. 책사가 없는 백악관에서는 전략적 판단이 자꾸 흐려져 툭하면 고위관료들끼리 고성이 오가는 싸움질이나 하고 있으니,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곤경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이 찾아야 할 비상탈출구는 우선 조미협상을 진척시켜 한반도 비핵화문제와 철군문제를 동시적, 단계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 길밖에 없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3) 70년 전, 미국군 합참본부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소련군 5개 사단이 북조선군과 협공하여 개전 20일 안에 남조선을 점령할 것으로 예견했고, 1945년 9월 8일 인천에 상륙하여 남조선을 점령했던 미국군 2개 사단과 미국군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남조선군이 참패할 것으로 예견하였지만, 오늘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조선인민군은 초단기속결전으로 개전 72시간 만에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에게 패배를 안겨줄 것으로 예견된다. 70년 전, 트루먼 행정부가 소련군의 직접적인 위협에 직면한 남조선점령군을 신속히 일본으로 철수하고 일본 방어에 집중하였던 것처럼, 오늘 트럼프 행정부는 조선인민군의 직접적인 위협에 직면한 주한미국군을 신속히 일본으로 철수하고 일본 방어에 집중해야 한다.  

(4) 70년 전, 트루먼 행정부는 알류산열도 - 일본 본토 - 오끼나와 -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섬들로 연결된 태평양방어선을 구축하여 소련의 태평양진출을 저지할 수 있었지만, 오늘 트럼프 행정부는 알류산열도 - 일본 본토 - 오끼나와 - 필리핀 - 괌으로 이어지는 태평양방어선을 돌파하려는 중국의 해군력과 공군력을 저지하기 힘들다.   

미국은 태평양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첨예한 군사대결을 벌이고 있다. 쌍방이 공군력과 해군력을 각각 동원하는 군사대결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과 중국이 장거리전략폭격기를 동중국해 상공과 남중국해 상공에 각각 출동시켜 군사대결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2018년 8월 13일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52 장거리전략폭격기 2대가 동중국해 상공에 나타났고, 8월 23일에도 같은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52 장거리전략폭격기 1대가 동중국해 상공에 나타났으며, 9월 24일에도 같은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52 장거리전략폭격기 여러 대가 남중국해 상공에 나타났고, 10월 16일에도 같은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52 장거리전략폭격기 2대가 남중국해 상공에 나타났다. 2018년 9월 하순, 중국은 미국의 장거리전략폭격기 출동에 대응하여 중국 남부에 있는 해군항공기지에 최신형 H-6J 장거리전략폭격기 4대를 전진배치하였다. 중국의 항공모함 함대와 장거리전략폭격기 편대들은 수시로 미국의 태평양방어선을 돌파하는 장거리기동훈련을 반복함으로써 그 방어선을 무너뜨리려고 하는데, 태평양방어선을 지키려는 미국의 공군력과 해군력은 제한적이다.    

(5) 미국의 온라인 군사전문지 <브레이킹 디펜스(Breaking Defense)> 2015년 2월 24일 보도와 미국의 온라인 안보전문지 <워싱턴자유횃불(Washington Free Beacon)> 2015년 2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1-4-2-1 전쟁전략’을 대폭 축소하였다고 한다. 구체적인 사정은 다음과 같다.

ㄱ. 미국 본토 방어력을 유지하는 기존 방침을 변함없이 계속 유지한다.
ㄴ. 미국군이 전진배치된 유럽, 동북아시아, 중동, 서남아시아 등 4대 해외작전구역 전체에서 군사력을 유지하는 기존 방침을 폐기하고, 해외군사력을 재배치한다.
ㄷ. 2개 지역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작전능력을 유지하는 기존 방침을 폐기하고, 1개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작전능력만 유지한다.
ㄹ. 다른 나라에서 갑자기 발생하는 급변사태에 대비하는 작전능력을 유지하는 기존 방침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사항들은 미국이 ‘1-4-2-1 전쟁전략’을 대폭 축소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미국의 전시증원군을 급파하는 능력이 감소된 반면, 미국과 맞선 조선, 러시아, 중국의 군사력이 급속히 증강되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전시증원군을 급파하는 능력이 감소되었을 뿐 아니라, 미국 본토 전역이 조선의 핵공격위험 속에 빠지는 바람에 전시증원군을 파견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 오늘, 주한미국군은 존재가치를 완전히 상실하였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종합하면, 70년 전 트루먼 행정부가 남조선점령군을 철수했던 것처럼 오늘 트럼프 행정부도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지 않을 수 없는 곤경에 빠졌음을 알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은 복잡한 정세변화를 파악할 만한 지적 능력은 갖지 못했으나, 자기의 직관력으로 주한미국군 철수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가 백악관 고위관리들에게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여러 차례 제기한 것은 그런 사정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1969년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기하였으나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 국가안보보좌관이 반대하는 바람에 흐지부지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79년 지미 카터(Jimmy E. Carter) 대통령도 주한미국군 철수를 검토하였으나 백악관 고위관리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흐지부지되었다. 하지만 오늘 세계정세와 한반도정세의 급격한 변화는 백악관 고위관리들이 주한미국군 철수를 반대할 수 없는 여러 조건들을 만들어주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 미국과 중국의 대결,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 그리고 이미 일정에 오른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하게 된 상황 등이 바로 그런 조건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의사는 그런 조건들에 전적으로 부합한다. 그가 자기의 철군의사를 관철시킬 것으로 예상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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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백화원 담판, 압도적으로 우세한 조선의 협상력

[한호석의 개벽예감](318)
자주시보 2018년 10월 1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교착상태를 넘어 담판이 성사되기까지
2. 취재기자가 이해하지 못한 이상한 모습
3. 난제는 어떻게 풀렸는가? 
4. 단계적 핵동결과 단계적 평화체제구축


1. 교착상태를 넘어 담판이 성사되기까지

2018년 10월 7일 평양 대성구역에 있는 풍치수려한 백화원영빈관에서 뜻깊은 오찬이 진행되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을 네 번째로 방문한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미국 국무장관과 수행원들을 위해 오찬을 마련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팜페오 국무장관이 지난 7월 6일 평양을 방문했을 때 오찬은커녕 접견도 하지 않고 돌려보냈는데, 그로부터 3개월 뒤에 다시 찾아온 그를 위해 오찬을 마련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오찬 직전 2시간 동안 진행된 담판에서 매우 중대한 진전이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만일 그런 진전이 없었다면, 김영철 조선로동당 부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과 오찬을 하였거나, 최악의 경우 팜페오 국무장관과 수행원들끼리 오찬을 하고 평양을 떠났을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말쓰임새부터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2018년 10월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화원영빈관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하고 담화한 것을 담판이라 한다. 조선에서는 접견과 담화라고 했고, 미국에서는 회담(meeting)이라고 했지만, 이 글에서는 담판이라고 한다. 담판이라는 말을 쓰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김영철 부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대등한 지위로 만나 진행한 회담은 고위급회담이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하고 담화한 것은 대등한 지위로 만나 진행한 회담이 아니므로 고위급회담이라고 할 수 없다. 외교관례에 따르면, 국가수반이 다른 나라 고위관료를 만나는 것을 접견이라 하고, 고위관료가 다른 나라 국가수반을 예방하는 것을 의례방문이라 한다. 접견은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여 만난다는 뜻이고, 의례방문은 손님이 주인을 찾아가 만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접견 또는 의례방문에서는 중대한 의제를 다루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이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런 외교관례를 깨고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매우 중대한 의제들을 논의하였다. 좀 더 정확한 용어를 쓰면, 논의가 아니라 담판이다. 논의라는 것은 어떤 문제를 놓고 토론한다는 뜻이고, 담판이라는 것은 상호대립관계에 있는 쌍방이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회담한다는 뜻이다. 그런 말뜻에 따르면, 2018년 10월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화원영빈관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하고 담화한 것은 일반적인 회담이 아니라 중요하고 특별한 담판이었다. <사진 1>  

▲ <사진 1> 2018년 10월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 대성구역에 있는 풍치수려한 백화원영빈관에서 마익 팜페오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하고 담화하였다. 3개월 동안 지속되어온 조미협상 교착상태를 해소한 중대한 담판이었다. 위쪽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화원 담판을 시작하기에 앞서 팜페오 국무장관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담소하는 장면이다. 호탕하게 웃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두 손을 마주잡은 팜페오 국무장관의 공손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아래쪽 사진은 백화원영빈관에서 진행된 담판 중에 팜페오 국무장관이 발언하는 장면이다. 왼쪽에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가 앉았고, 오른쪽에 스티븐 비건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가 앉았다. 팜페오 국무장관과 수행원들이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였을 때, 마중 나간 김영철 조선로동당 부위원장은 담판장에 3명만 들어갈 수 있다고 미리 통보하였는데, 그런 조건에 따라 팜페오 국무장관, 스티븐 비건 조선정책특별대표, 앤드루 김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만 담판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무릇 담판은 정치적 비중과 중요도에 따라 본담판과 예비담판으로 분류되는데, 현재 진행 중인 조미협상을 두고 말한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과 상봉하고 진행한 정상회담은 본담판이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하고 진행한 회담은 예비담판이다. 

무엇을 위한 담판인가? 본담판을 예비하기 위한 담판이다. 다시 말해서, 백화원 담판은 다가오는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최종적으로 합의할 중대사안들을 논의한 담판이었다.  

2018년 7월 6일과 7일 김영철 부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은 평양에서 회담하였으나, 의견충돌이 너무 심하여 성과를 거두지 못한 바람에 조미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흘러도 교착상태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했듯이, 조선은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주동적인 조치를 취했다. 2018년 8월 21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조미실무회담에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해리 해리스(Harry B. Harris, Jr.) 주한미국대사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의 평양방문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공화국 창건 70주년이 되는 9월 9일 전에 평양을 방문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초청의사를 받은 팜페오 국무장관은 평양방문을 급하게 서둘렀다. 그는 초청의사를 받은 날로부터 불과 4일 뒤인 2018년 8월 25일 평양을 방문하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8월 24일 아침 백악관 대통령집무실로 헐레벌떡 달려온 팜페오 국무장관이 자신에게 보여준 김영철 부위원장의 비밀편지를 읽어 보고 팜페오 국무장관의 평양방문을 출발 몇 시간 전에 전격적으로 취소시켰다. 그 비밀편지에는 미국이 조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팜페오 국무장관의 평양방문은 헛걸음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풀릴 듯이 보였던 교착상태는 여전히 지속되었다. 

좀처럼 해소될 조짐을 보이지 않던 교착상태는 2018년 9월 26일 리용호 조선외무상이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 길에 팜페오 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마침내 풀렸다. 리용호 외무상은 2018년 10월 중에 평양을 방문하면 좋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의사를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전했던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을 학수고대하던 팜페오 국무장관이 초청의사를 받았을 때, 한 편으로는 매우 반가웠고 다른 한 편으로는 매우 걱정스러웠다. 평양에 가서 진행할 담판에서 무슨 의제를 꺼내놓고 어떻게 담판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던 것이다. 지난 8월 하순에는 초청의사를 받은 날로부터 불과 4일 만에 평양에 급히 가려고 서둘렀던 팜페오 국무장관이 이번에는 초청의사를 받고 무려 12일 동안 시간을 끌었던 까닭은 미국의 대조선협상전략을 재검토하는 시간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팜페오 국무장관이 미국의 대조선협상전략을 재검토하였다는 말은 김영철-팜페오 회담의 전철을 밟지 않고 백화원 담판이 결렬되지 않도록 준비하였다는 뜻이다. 그런 준비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음을 물론이다. 

2018년 11월 6일 중간선거와 2020년 11월 3일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드센 도전을 물리치고 이겨야 정치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은 미국의 요구를 종전대로 계속 고집하여 조미협상 교착상태가 장기화되면 자기들의 정치생명도 단축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백화원 담판을 앞두고 팜페오 국무장관이 교착상태를 타개할 방도를 찾아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국의 대조선협상전략을 재검토하였던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2018년 7월 6일 김영철-팜페오 회담에서 조선에게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들”을 제기하여 회담을 결렬시키고 조미협상을 교착상태에 빠뜨린 미국은 이번에 대조선협상전략을 재검토하면서 백화원 담판에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들”을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미국의 대조선협상전략은 대폭 수정되었다. 이런 중대한 정보를 알아야, 조미협상 교착상태가 백화원 담판에서 어떻게 해소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2. 취재기자가 이해하지 못한 이상한 모습

팜페오 국무장관과 수행원들이 탄 전용기는 2018년 10월 7일 일요일 이른 아침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였다. 수행원들 가운데는 미국 <CBS> 텔레비전방송 소속 취재기자 카일리 앳우드(Kylie Atwood)도 있었다. 그녀는 이번에 팜페오 국무장관의 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한 유일한 취재기자였는데, 그녀의 평양체험이 수록된 목격담은 자못 흥미롭다. 2018년 10월 11일 <CBS> 인터넷판에 실린 그녀의 목격담에 따르면, 김영철 부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을 맞이하기 위해 평양국제비행장에 나왔다고 한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활주로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을 만나 인사를 나눈 직후, 그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접견을 받는 조건을 통보했는데, 통역관과 경호원은 접견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팜페오 국무장관의 수행원들 가운데는 헤더 노어트(Heather A. Nauert) 국무부 대변인, 사진사, 앳우드 취재기자도 있었는데, 그들도 접견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되어 팜페오 국무장관, 스티븐 비건(Stephen E. Biegun)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 코리아임무쎈터 책임자만 접견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팜페오 국무장관의 통역관이 접견장에 들어가지 못했으므로, 우리말을 잘 하는 앤드루 김 코리아임무쎈터 책임자가 미국측 통역을 맡았다.      

그런데 김영철 부위원장은 왜 접견인원을 3명으로 제한하였던 것일까? 2018년 5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평양을 방문한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하였는데, 그 때도 세 사람만 접견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2018년 5월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을 접견하였을 때는 4명이 접견장에 들어갔고, 5월 3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한 쎄르게이 라브로브(Sergey V. Lavrov) 러시아 외무상을 접견하였을 때는 7명이 접견장에 들어갔다. 

이런 선례를 살펴보면, 조선은 미국 국무장관에게만 까다로운 접견조건을 적용하여 접견인원을 3명으로 제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이 그렇게 하는 까닭은, 미국 국무부가 외교비밀을 유지하지 못하는 취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들이 외교비밀을 미국 언론에 발설하여 혼란이 조성된 사례들이 있다. 그래서 조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몸소 참석하는 백화원 담판의 내막이 미국 언론에 유출되는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여야 하였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백화원 담판을 마친 직후 백화원에서 오찬을 시작하기 직전 팜페오 국무장관이 현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두 손을 앞에 모은 채 현관에 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착할 때까지 정중히 기다렸다. 그런 유다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당신은 마치 제단 앞에 서 있는 것 같군요"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 자존심이 강하다고 소문난 미국 국무장관이 공손한 자세로 예를 갖추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기다린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화원 담판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협상력으로 팜페오 국무장관의 기를 꺾어놓았고, 기가 꺾인 팜페오 국무장관은 공손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앳우드 취재기자는 담판장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담판 직후 백화원영빈관에 마련된 오찬장에서 뜻밖의 색다른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그녀의 목격담에 따르면, 팜페오 국무장관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맞이하기 위해 백화원영빈관 현관에 나갔는데, “무표정한 얼굴로 두 손을 앞에 모은 채 (현관에) 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착할 때까지 정중히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 유다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나워트 대변인은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당신은 마치 제단 앞에 서 있는 것 같군요”라고 말했는데, 팜페오 국무장관은 나워트 대변인에게 얼굴을 돌려 슬며시 미소만 지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자존심이 강하다고 소문난 미국 국무장관이 그처럼 공손한 자세로 예를 갖추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기다린 것은, 조미관계의 심층정보를 알지 못하는 미국인 취재기자의 기존관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장면이었다. 그래서 그 취재기자는 목격담에 이런 글을 남겼다.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제단 앞에 선 사람 같다고 말한 나워트 대변인의) 지적은 북조선이 팜페오 국무장관의 방문을 전적으로 통제하였음을 보여주는 힘의 역학(power dynamic)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 날 백화원 담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취재기자의 눈에는 팜페오 국무장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왜 그처럼 공손한 자세로 예를 갖추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백화원 담판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협상력으로 팜페오 국무장관의 기를 꺾어놓았고, 기가 꺾인 팜페오 국무장관은 공손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 난제는 어떻게 풀렸는가? 

앳우드 취재기자의 흥미로운 목격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오찬석상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오늘은 두 나라의 훌륭한 미래를 약속하는 매우 좋은 날입니다.” 
팜페오 국무장관 - “우리 일행의 오늘 아침 방문일정은 훌륭하고, 훌륭하였습니다. 저희들을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럼프 대통령께서도 안부인사를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매우 성공적인 아침시간을 보낸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저는 오찬을 나누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앳우드 취재기자의 목격담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찬석상에서 팜페오 국무장관과 위와 같은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녀와 미국측 사진사는 잠깐 동안의 현장취재를 마치고 오찬장에서 나와 옆방에 별도로 마련된 다른 오찬장으로 가야 했다고 한다. 취재기자는 위와 같은 짧은 대화밖에 들을 수 없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늘은 매우 좋은 날이라고 대만족을 표시한 것은 백화원 담판에서 중대한 진전이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과 매우 생산적이고 훌륭한 담화를 진행하면서 서로의 립장을 충분히 리해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게 된 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며 만족을 표시하시였다”고 한다. 백화원 담판을 마치고 평양에서 서울로 직행한 팜페오 국무장관도 취재진에게 백화원 담판에서 “중대한 진전(significant progress)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중대한 진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백화원 담판을 마친 직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화원에서 마련한 오찬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왼쪽에 팜페오 국무장관이 앉았고, 미국측 통역관, 김여정 조선로동당 제1부부장, 앤드루 김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 김영철 조선로동당 부위원장, 스티븐 비건 조선정책특별대표, 조선측 통역관이 자리를 잡았다. 팜페오 국무장관과 동행한 다른 수행원들은 옆방에 별도로 마련된 오찬장에서 조선측 인사들과 함께 오찬을 나누었다. 오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오늘은 매우 좋은 날이라고 대만족을 표시하였는데, 이것은 백화원 담판에서 중대한 진전이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백화원 담판을 마치고 평양에서 서울로 직행한 팜페오 국무장관도 취재진에게 백화원 담판에서 중대한 진전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백화원 담판에서 중대한 진전이 이루어졌다는 말은, 7월 6일에 진행되었던 김영철-팜페오 회담에서 심한 의견충돌을 불러왔던 난제들이 해결되었다는 뜻이다. 당시 쌍방이 심하게 의견충돌을 일으켰던 난제들은 비핵화 방안이었다. 김영철 부위원장이 제기한 비핵화 방안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제기한 비핵화 방안이 격돌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협상력으로 그 난제를 풀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백화원 담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핵화해결을 위한 방안들과 쌍방의 우려사항들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건설적인 의견을 교환하시였다”고 한다. 이 인용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영철-팜페오 회담에서 미국이 제기했던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조건들”을 철회시키게 하고, 그 대신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비핵화 해법을 받아들이게 하였다는 뜻이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협상력이 없으면 그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이 철회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조건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미국이 받아들인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비핵화 해법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스티븐 멀(Stephen D. Mull)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보 대행은 2018년 7월 20일 국무부를 방문한 한국의 여야 5당 원내대표들에게 김영철-팜페오 회담에서 미국은 조선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을 요구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1) “핵, 탄도미사일 소재지를 포함한 북한 핵프로그램 전체 리스트” 
(2) “비핵화시간표” 
(3) “싱가포르에서 약속한 사항의 이행” 

위에 열거한 세 가지 요구사항들 가운데 조선으로부터 전면적인 배격을 받은 것은 핵신고서와 비핵화시간표다. 김영철-팜페오 회담에서 미국이 조선에게 요구한 핵신고서는 핵탄두 비밀저장소들의 위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지하기지들의 위치를 포함하는 조선의 국가핵무력에 관한 극비정보를 통째로 넘겨달라는 뜻이다. 또한 미국이 조선에게 요구한 비핵화시간표는 조선의 국가핵무력을 폐기하는 경로와 기한을 정하여 알려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핵신고서와 비핵화시간표는 철없는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말이 되지 않는 생억지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지난 9월 26일 리용호 외무상으로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의사를 전달받고 나서,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라 대조선협상전략을 재검토하고 수정함으로써 조선에게 핵신고서와 비핵화시간표를 달라고 하였던 생억지를 내려놓기로 결정한 것이다. 조선에게 핵신고서와 비핵화시간표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평양을 방문한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런 생억지가 왜 조선에게 통하지 않는지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일본 <아사히신붕> 2018년 10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백화원 담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조선에게 핵신고서와 비핵화시간표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평양을 방문한 터였으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그런 설명에 공감을 표시하였다. 그렇게 되어 핵신고서와 비핵화시간표를 넘겨달라던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미국이 핵신고서와 비핵화시간표에 관한 요구를 철회한 것은, 자기들이 주장했던 일방적-일괄적 해법을 포기하고 조선이 제시한 동시적-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조선외무성은 2018년 7월 7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신뢰조성을 앞세우면서 단계적으로 동시행동원칙에서 풀 수 있는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 조선반도 비핵화실현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언명한 바 있다. 

조선이 제시한 동시적-단계적 해법에서 조선이 이행할 비핵화 해법은 단계적 핵동결이다. 단계적 핵동결이란 조선의 핵능력을 단계적으로 폐기한다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풍계리 지하핵시험장 폐기→서해위성발사장 폐기→녕변핵시설단지 폐기를 단계적으로 실행한다는 뜻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완전한 비핵화는 조선이 자기의 핵능력을 완전히 폐기하는 핵동결을 단계적으로 실행한다는 뜻이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화원 담판 중에 발언하는 장면이다. 백화원 담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3개월 동안 조미협상을 교착상태에 묶어두었던 난제를 풀었다. 백화원 담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7월 6일 평양에서 진행된 김영철-팜페오 회담에서 미국이 제기했던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조건들"을 철회시키게 하였고, 그 대신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비핵화 해법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협상력이 없으면 그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백화원 담판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이 핵신고서와 비핵화시간표를 요구하는 기존 의제를 관철시키지 않을까 하는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한국의 전문가들과 언론매체들은 자기들의 망상과는 정반대의 담판결과가 나온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였다. 그들은 백화원 담판결과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단계적 핵동결은 백화원 담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하고, 팜페오 국무장관이 받아들인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비핵화 해법으로 구체화되었다. 조미관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아사히신붕> 2018년 10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백화원 담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 사찰단이 지난 5월에 폭파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있는 지하핵시험장을 방문하여 검증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 사찰단의 현장방문 및 검증을 허용하는 것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길로 미국을 끌어당겨 되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주동적이고, 결정적인 조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을 불가역적인 이행의 길로 끌어들이는 것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협상력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아사히신붕> 보도기사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조선외무성이 2018년 7월 7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 따르면 당시 김영철-팜페오 회담에서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한 비핵화 해법들 가운데는 “비핵화조치의 일환으로 ICBM의 생산중단을 물리적으로 확증하기 위하여 대출력발동기시험장을 페기하는 문제”도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백화원 담판에서 그 해법을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제시했던 것이 확실하다. 백화원 담판에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공동선언에서 “동창리발동기시험장과 로케트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페기하기로 하였”다.

백화원 담판을 마치고 평양에서 서울로 직행한 팜페오 국무장관은 취재진에게 사찰단이 조선의 미사일엔진시험장과 풍계리 지하핵시험장을 사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 두 곳에 대한 현장사찰을 허용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아사히신붕> 2018년 10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백화원 담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평안북도 녕변군에 있는 녕변핵시설단지에서 가동되는 플루토늄생산시설만이 아니라 거기서 가동되는 우라늄농축시설까지 포함한 전체 시설을 폐기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백화원 담판에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공동선언에서 “미국이 6.12 조미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페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한 바 있다.  

나는 이전에 발표한 글에서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에서 플루토늄생산시설만 폐기하고, 우라늄농축시설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일반사찰을 받으며 계속 가동할 것으로 예측한 적이 있는데, 그런 예측은 빗나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녕변핵시설단지 전체를 폐기하는 매우 파격적인 조치를 예고한 것이다. 이런 사실만 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미협상전략이 얼마나 원대하고 심오한지를 알 수 있다.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 전체를 폐기하면,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4. 단계적 핵동결과 단계적 평화체제구축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화원 담판에서 제시한 파격적인 조치에 맞춰 팜페오 국무장관이 제시한 미국의 상응조치들은 무엇인가? <동아일보> 2018년 10월 7일 보도에 따르면, 백화원 담판을 마치고 평양에서 서울로 직행한 팜페오 국무장관은 청와대를 예방하여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하면서 “(백화원 담판에서)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해 논의했다”고 하면서도 그 상응조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비록 언론보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미국이 취해야 할 상응조치는 분명하다. 조선외무성이 2018년 7월 7일에 발표한 대변인담화는 미국이 취해야 할 상응조치를 다음과 같이 우회적으로 밝힌 바 있다. 김영철-팜페오 회담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은 “조선반도 평화체제구축문제에 대하여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이미 합의된 종전선언문제까지 이러저러한 조건과 구실을 대면서 멀리 뒤로 미루어놓으려는 립장을 취하”였다. 이 인용구를 읽어보면, 조선은 김영철-팜페오 회담에서 종전선언문제만 합의하려고 하였던 것이 아니라 종전선언문제보다 더 중요한 평화체제구축문제 곧 평화협정문제도 합의하려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팜페오 국무장관이 종전선언문제를 합의하려고 하지 않는 바람에 평화협정문제는 논의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백화원 담판에서 종전선언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한 것은 물론이고, 평화협정문제도 해결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사히신붕> 2018년 7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김영철-팜페오 회담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은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미국이 종전선언에 응하지 않으면 비핵화를 진행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면서, “비핵화의 선결조건으로 종전선언을 요구했다”고 한다. 조선에게 있어서 종전선언은 조선이 비핵화를 실행하기 전에 먼저 해결되어야 할 선결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백화원 담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선결문제(종전선언문제)만 해결하기로 합의하였을 리 없으며, 선결문제와 더불어 해결되어야 할 더 중요한 문제(평화협정문제)도 해결하기로 합의하였다고 생각된다. 물론 평화협정문제는 본담판이 벌어질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최종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조미관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아사히신붕> 2018년 10월 7일 보도에 따르면, 백화원 담판에서는 녕변핵시설 폐기에 상응하여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는 거점”을 설치하는 문제도 논의되었는데,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는 거점을 설치하는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한다. <동아일보> 2018년 4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조미실무회담에서 평양과 워싱턴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문제가 논의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연락사무소문제는 이미 조미실무회담에서 논의되었으므로, 백화원 담판에서 그 문제를 다시 확인하면 되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백화원 담판에서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는 거점”을 설치하는 문제, 다시 말해서 이익대표부를 설치하는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문제도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최종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백화원영빈관에서 진행된 담판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오른쪽에 김여정 조선로동당 제1부부장이 앉았고, 왼쪽에는 조선측 통역관이 앉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화원 담판에서 제시한 대미협상전략 곧 동시적-단계적 해법은 조선과 미국이 단계적 핵동결과 단계적 평화체제구축을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추진하는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해법이다. 다른 해법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미국도 그 해법을 받아들인 것이다. 백화원 담판이 말해주는 것처럼, 지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협상력으로 단계적 핵동결과 단계적 평화체제구축을 동시에 추진하는 중이다. 우세한 협상력이 세상을 바꾼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종전선언→평화협정→주한미국군 철수로 이어지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총괄개념이 바로 단계적 평화체제구축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대미협상전략 곧 동시적-단계적 해법은 조선과 미국이 단계적 핵동결과 단계적 평화체제구축을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추진하는 해법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백화원 담판이 말해주는 것처럼, 지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협상력으로 단계적 핵동결과 단계적 평화체제구축을 동시에 추진하는 중이다.    

백화원 담판에서 주목되는 것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준비사항을 논의한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석상에서는 제2차 조미수뇌회담준비를 위한 실무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할 데 대하여 합의하고 그와 관련한 절차적 문제들과 방법들에 대하여서도 론의되였다”고 한다. 조선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이른 시일 안에 개최되기를 바라고, 미국은 그 회담이 2018년 11월 6일 중간선거 직후에 개최되기를 바란다. 원래는 미국도 중간선거 이전에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되기를 바랐었는데, 생각을 바꿨다. 거기에 얽힌 사연은 다음과 같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백화원 담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협상력으로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들”을 철회하게 하고, 조선의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요구를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그런 담판결과에 따라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자신의 외교치적으로 내세울 수 없게 될 것이고, 워싱턴에 포진한 트럼프 반대파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조선외교에서 무능하다느니, 대조선협상에서 너무 양보하였다느니 뭐니 하면서 집중공세를 퍼부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간선거 직전에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하여 공화당의 득표율을 되레 떨어뜨릴 것이다. 이런 점을 우려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중간선거 직후에 개최하려고 하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협상의 추진동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백화원 담판을 압도적으로 우세한 협상력으로 결속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2차 조미수뇌회담을 계기로 전 세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되는 문제해결과 지난 회담에서 제시한 목표달성에서 반드시 큰 진전이 이룩될 것이라는 의지와 확신 표명하시였다”고 한다. 

백화원 담판을 압도적으로 우세한 협상력으로 결속하고 단계적 핵동결과 단계적 평화체제구축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오는 11월에 개최될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룩하여 한반도 정세를 격변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우세한 협상력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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