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27

김정은위원장, 몸소 피아노에 범창까지 하며 모란봉악단 지도

[한호석의 개벽예감](114)
자주미보 2014년 05월 26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로동신문>에 실린 이 사진은 2012년 7월 6일 시범공연을 시작으로 경이적인 음악활동을 이어가는 모란봉악단의 연주실황을 촬영한 장면이다. 오른쪽에서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차영미, 첼로를 연주하는 유은정,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홍수경, 베이스기타를 연주하는 전혜련의 모습이 보이고, 뒤쪽으로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김정미, 색소폰을 연주하는 최정임의 모습이 보인다.     © 자주민보


음악과 정치는 자주적 인민의 생활에서 경계를 넘어 합일된다

어떤 사람은 자기 두뇌 속에 사전에 주입된 고정관념의 ‘비좁은 창문’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자기가 보거나 듣고 싶은 것, 자기에게 익숙한 것, 자기 이익에 부합된 것만 선택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고정관념의 ‘비좁은 창문’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은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현실과 동떨어진 고정관념만 바라보는 몽매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고정관념의 ‘비좁은 창문’을 깨뜨리고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문명의 통로’를 과학이라 하고, 허위와 착각으로 직조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세계와 단절시키는 ‘암흑의 함정’을 미신이라 한다. 

대북혐오증에 거의 중독되다시피 한 보수적 교육기관과 언론기관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주입활동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뇌 속에 축적되어 버린 북에 대한 고정관념이야말로 미신이다. 그러므로 북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이성적 판단력을 갖추지 못하는 한, 남에서 바라보는 북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미신이 불러오는 허상일 뿐이다. 미신이 불러오는 허상을 이성과 과학의 이름으로 깨뜨릴 때, 바로 그렇게 할 때 진정 북의 실체를 만나게 된다. 이 글의 주제는 대북혐오라는 이름의 미신이 불러오는 허상을 이성과 과학의 이름으로 깨뜨리고 만나는 북의 음악과 정치다.

2012년 1월 1일 김정은시대가 개막된 이후 세간의 예견을 뒤엎으며 전개되어온 북의 정치현실을 인식하는 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악정치의 실현이다. 북의 주장에 따르면, 선군정치가 북의 독창적인 사회주의정치방식인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정치도 역시 그러하다. 또한 북의 주장에 따르면, 북의 음악은 ‘인민의 음악’이고 북의 정치는 ‘인민의 정치’이므로, 음악과 정치는 인민의 생활에서 경계를 넘어 어느덧 합일되는데, 음악과 정치가 합일된 경지를 음악정치라 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자주적 인민의 사상감정이 대중음악활동을 통해 집단적으로 분출되는 북의 현실에 대해 논할 수 있다. 북의 주장에 따르면, 참된 음악에서는 자주적 인민의 충정과 신심, 열정과 투지, 기백과 긍지, 희망과 낙관, 일체감과 단결심 같은 사상감정이 분출되기 때문에, 외설과 퇴폐가 스며들 틈새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북에서 자주적 인민의 사상감정이 대중음악을 통해 집단적으로 분출되는 것은 어떤 자연발생적인 현상이 아니며, 거기에는 고도로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음악정치활동’이 요구되는 것이다. 오늘 북에서 활동하는 각양각색의 음악예술단들은 바로 그런 ‘음악정치활동’을 펼침으로써 인민의 사상감정을 집단적으로 분출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북의 음악예술단들 가운데는 2012년 7월 6일 시범공연을 시작으로 ‘음악정치활동’을 펼쳐가는 매우 특별한 음악예술단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진 1>에서 보는 모란봉악단이다.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오중흡7련대 칭호’를 수여받은 정예부대들에 대한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집중적인 지도가 그 군부대들을 ‘선군정치의 주력군’으로 일으켜 세운 것처럼, 모란봉악단에 대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력적인 지도가 그 악단을 ‘음악정치의 선봉대’로 일으켜 세웠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동안 북측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오중흡7련대 칭호’를 수여받은 정예부대들을 찾아가는 현지지도에 대해 계속 보도해왔다. 이제껏 <자주민보>에 발표해오고 있는 북의 군사부문에 관한 나의 글들은 북에서 말하는 ‘선군정치의 주력군’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북의 정치현실을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통일학연구자로서 나는 ‘선군정치의 주력군’에 대해서만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정치의 선봉대’에 대해서도 고찰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므로 기존방식을 뛰어넘은 파격적인 ‘음악정치활동’으로 북의 음악사를 새로 써가고 있는 모란봉악단에게 나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모란봉악단이 자기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시범공연 소식을 듣고 2012년 7월 23일 <통일뉴스>에 ‘모란봉악단, 파격공연으로 ‘불문율’을 깨다’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고, 2013년 1월 5일 <자주민보>에 ‘‘친솔악단’의 경축공연과 평양의 새해맞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유 투브(You Tube)> 영상자료를 통해 빠짐없이 시청해왔지만, 악단의 연주기량이 날로 발전을 거듭하여 매우 뛰어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만 감지할 수 있었을 뿐, 그 악단이 펼쳐가는 ‘음악정치활동’에 대해 설명하는 글은 쓰지 못했다. 왜냐하면 모란봉악단의 노래창작기교와 음악형상수법, 연주기교와 공연방식 등을 파악할 음악전문지식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고, 더 중요하게는 모란봉악단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진 2>지난 5월 16일과 17일 평양에 있는 4.25문화회관에서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가 진행되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대회에 '시대와 혁명발전의요구에 맞게 주체적 문학예술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서한을 보냈다. -자주민보



모란봉악단이 ‘음악정치의 선봉대’로 태어나기까지

그런데 이제껏 세상에 보여주지 않은 모란봉악단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지난 5월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평양에서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가 진행되었고, 김정은 제1위원장이 관람한 가운데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모란봉악단 공연이 평양에 있는 4.25문화회관에서 진행된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대회에 ‘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주체적 문학예술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서한을 보냈다.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가 모란봉악단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로 되었다고 말하는 까닭은, 이제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모란봉악단의 내부생활이 그 대회를 통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 참가한 모란봉악단 단원들의 토론문 여섯 편이 <로동신문>에 실렸는데, 바로 그 토론문들에서 모란봉악단의 내부생활에 관한 사연이 전해졌던 것이다.


▲ <사진 3> 오늘 북의 각계각층 남녀노소 누구나 모란봉악단이 울리는 음악선율에 자신의 사상감정을 싣고 있으며, 그 악단에 관심과 사랑을 주고 있다. <로동신문>에 실린 이 사진은 지난 3월 평양시민들을 위한 연속공연에 출연한 모란봉악단 가수들이 평양시민들로부터 축하꽃다발을 받고 있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민보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 토론자로 나선 북의 문화예술계 인사들 가운데 모란봉악단 단원이 여섯 사람이나 되었다. 대회에 출연한 토론자를 배정하는 데서 모란봉악단의 비중이 다른 문화예술단체에 비해 그처럼 압도적으로 높은 것만 보더라도, 모란봉악단이 북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직감할 수 있다.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모란봉악단은 북에서 활동하는 각양각색 음악예술단들 가운데서 각계각층 남녀노소 인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제1악단이다. 북측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모란봉악단의 주인공들은 아래와 같다.

단장 - 현송월
부단장 3명 - 김운룡, 황진영(인민예술가, 로력영웅), 장정애
창작가 2명 - 창작실 실장 우정희(공훈예술가, 로력영웅), 부실장 안정호(인민예술가, 로력영웅)
가수 8명 - 류진아(공훈배우), 라유미(공훈배우), 김설미, 김유경, 리명희, 박미경, 박선향, 정수향
기악연주자 11명 - 선우향희(바이올린), 홍수경(바이올린), 차영미(바이올린), 유은정(첼로), 강정희(전기기타), 전혜련(베이스기타), 최정임(색소폰), 리윤희(드럼), 리희경(전자건반악기), 김영미(전자건반악기), 김정미(피아노)

위의 명단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모란봉악단의 단장, 부단장, 창작가들은 북측 음악계의 쟁쟁한 음악인들인데 비해, 가수와 기악연주자 대다수는 신인들이라는 점이다. 모란봉악단 기악연주자들 가운데는 만수대예술단이나 왕재산예술단에서 활약했던 몇몇 경력자들이 있지만, 모란봉악단 가수들은 모두 음악계에 갓 입문한 젊은 신인들이다. 모란봉악단 가수들의 성악훈련을 지도하는 장정애 부단장은 토론문에서 2년 전 창단 직후 악단가수들의 노래가 “어설프고 미약했”고,  “그들은 대중가요에 대한 초보적인 개념과 인식조차 없었다”고 하면서 지난날을 회고하였다. 창단 직후 공연무대에 내세울 명가수가 없었던 모란봉악단의 고심은 컸다.

북에 명가수들이 있는데, 모란봉악단을 창단할 때 “어설프고 미약한” 젊은 신인들이 가수로 선발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란봉악단이 북에서 통용되어온 기존 음악창작방식과 음악연주형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새롭고 파격적인 자기 식의 음악창작방식과 음악연주형식을 창조하여야 하였기 때문이다.

장정애 부단장의 토론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어떻게 하면 가수들을 빠른 기간 내에 훌륭하게 키우겠는가고 걱정만 하고 있던 어느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첫 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악단에 나와 실태를 파악하고 “모란봉악단 가수들이 눈과 귀를 틔워야 한다고, 세계적인 추세가 어떤 것인지 알아야 목표를 높이 세우고 기량훈련을 힘있게 내밀 수 있다고 하시면서 세계적인 가수들의 노래형상기교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받아들이되 그대로 본딸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것으로 잘 소화시켜야 한다고, 그래서 악단가수들이 형상할 때에는 철저하게 자기 식으로 새로운 울림이 되게 하며 그것도 원래 것보다 더 멋들어지게 하여야 한다”고 지적하며 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었다는 것이다. 현송월 단장의 토론문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세계적으로 발전되였다고 하는 음악예술의 형식과 창조수법들을 다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만들도록 선을 그어”주었다고 한다.

기존 음악창작방식과 음악연주형식에서 벗어나 모란봉악단 식으로 새로운 ‘인민의 음악’을 창조하는 길은 끝없는 사색과 창작, 피나는 연습과 훈련이 요구되는 매우 험난한 과정이었다. 현송월 단장의 토론문에 따르면, “훈련과제를 못하고서는 잠자리에 들 수 없었고 멋들어진 곡상을 찾아내기 전에는 밥술을 뜰 수 없었”으며, “턱에 멍이 지고 손끝이 터져 생살로 바이올린선을 짚으면서” 연습하였다고 한다.

차영미 바이올린연주자는 그들 자신의 경험을 토론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열백밤을 패고 패여도 자꾸만 시간이 모자라는 것만 같아 하루에 2~3시간밖에 못자면서도 기량훈련을 하고 공연준비를 완성하였”으며, “생손앓이를 하면서도 바이올린을 잡았고 끝이 째져 피가 흐르는 손가락으로 신세사이저(synthesizer-옮긴이)의 건반을 짚었으며 활대를 든 채로 잠들 정도로 피곤이 몰린 속에서 잠간 차례진 휴식시간마저 소설책을 읽고 음악감상을 하는데 바쳤”다고 한다.

결심과 의지가 약한 여성들이라면 그처럼 고되고 힘든 과정 도중에 포기하거나 낙오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란봉악단의 여성들은 피나는 연습과 훈련의 나날을 이어가며 청춘의 열정을 불살랐다. 모란봉악단 가수들 가운데 가장 먼저 ‘공훈배우칭호’를 받은 류진아 가수의 토론문에 따르면, “밤새워 노래를 불러도 힘든 줄 몰랐고 마이크 앞에서 쪽잠에 들어도 그 잠이 달았고 베개잇을 코피로 적셔도 보람이 있었”다고 한다. 모란봉악단이 오늘 ‘음악정치의 선봉대’로서 모란봉악단 식의 특유한 선율을 연주하게 되기까지 남들이 모르는 피땀 어린 노력으로 앞길을 헤쳐 왔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몸소 피아노를 치고 범창까지 하며 ‘인민의 음악’을 가르친 김정은 제1위원장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모란봉악단을 ‘음악정치의 선봉대’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그 악단을 어떻게 지도해왔는지에 대해서는 북측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 참가한 모란봉악단 단원들의 토론문을 통해 그 사연이 알려졌다.

그들이 전해준 사연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모란봉악단의 음악연주기량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얼마나 정력적으로, 세심하게 지도하였는지 말해주었다. 현송월 단장의 토론문에 따르면, 모란봉악단은 “곡목선정으로부터 편곡과 배우들의 연기형상, 분장과 인사법, 무대조명과 장치, 음향조절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세심한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류진아 가수의 토론문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유명한 기성가수들의 흉내를 내며 부르는 자신의 노래를 듣고 “노래형상에서 남을 본따는 것은 자멸의 길이라고 엄하게 지적”하였고, 자신의 성격, 취미, 습관까지 파악한 성악교수안을 작성해놓고 성악지도를 집중적으로 받게 하였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밤낮으로 현지지도를 이어가는 바쁜 일과 중에도 모란봉악단의 음악연주를 녹음하여 가지고 다니면서 틈틈이 듣고 노래형상안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지난 시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악단가수들의 노래를 녹음하여 가지고 다니면서 틈틈이 듣고 노래형상안을 가르쳐주었는데, 지금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뒤를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황진영 부단장의 토론문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모란봉악단의 그 모든 작품들을 직접 구상하시고 리듬 하나, 화성기호 하나에도 천만자루의 품을 들여 완성해주신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토론문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우리 식의 새로운 리듬을 계속 창조해야 한다, 화성조직도 도식적인 틀에서 대담하게 벗어나 특색있게 해야 한다, 노래편곡에서 기본선률과 밀착된 제2의 선률을 완전히 새롭게 뽑아내야 한다”고 지도하였는데, 모란봉악단이 부른 새 노래 ‘당기여 영원히 그대와 함께’의 선율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창작가들을 지도할 때는 “전단 첫 소절은 그대로 두고 두 번째 소절부터 선률을 약박자로 들어가며 후렴선률을 더 폭발시켜 완성하라고, 너무 갑자기 선률을 비약시키지 말고 감정적으로 끌고 가다가 어느 한 대목부터 선률을 승화시켜 후렴으로 련결시켜야 한다고 리듬조직과 음의 진행에 대해서 일일이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현송월 단장의 토론문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모란봉악단을 지도한 시간은 “깊은 밤, 이른 새벽과 명절날, 일요일이 더 많았”는데, 황진영 부단장의 토론문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음악창작을 지도할 때는 “몸소 피아노를 치시며 편곡의 새로운 방법론을 실천적 모범으로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북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황진영 부단장은 1987년 평양에서 진행된 평양영화축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예술영화 ‘도라지꽃’의 주제곡을 당시 20대 젊은 나이에 작곡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이후 지금까지 180여 편이나 되는 “시대의 걸작”을 창작한, 북의 음악계를 대표하는 작곡가다. 그런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처럼 뛰어난 작곡가에게 새로운 편곡법을 알려주기 위해 몸소 피아노를 치며 지도한 것이다. 모란봉악단 작곡가들을 위해 몸소 피아노를 치며 새로운 편곡법을 가르쳐준 그 모습은, 이제껏 세상에 알려진 김정은 제1위원장의 기존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놀라운 사연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모란봉악단 가수들에게 “감정축적과 폭발, 지속음 유지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었고, 그들을 위해 “몸소 범창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나이 어린 악단가수들을 위해 몸소 노래를 범창(範唱)하며 노래형상기법을 열정적으로 지도하는 그 모습은, 이제껏 세상에 알려진 김정은 제1위원장의 기존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 <사진 4>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력적이고 세심한 지도를 집중적으로 받은 모란봉악단 가수들의 성악기량은 높은 수준으로 올라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성악의 기초부터 다시 배웠고 성악가로서 두 번 다시 태어났다고 고백하였다.     © 자주민보


북의 최고영도자가 모란봉악단 가수들을 그처럼 지도하였으니,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그들의 성악기량이 높은 수준으로 올라서지 않을 수 없었다. 류진아 가수는 토론문에서 “성악의 기초부터 다시 배웠고 성악가로서 두 번 다시 태여났”다고 고백하였다.


창단 석 달 뒤 군복 입고 공연무대에 오른 모란봉악단 

창단 직후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애쓰던 모란봉악단을 이끌어준 것은 최고영도자의 손길이었다. 김운룡 부단장의 토론문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모란봉악단) 일군들에게 예술인들을 부단히 각성시키고 혁명화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력적인 지도에 따라 ‘혁명정신’을 깨우치는 길에 들어선 그들은 뜨거운 충정과 열정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김운룡 부단장의 토론문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악단의 전체 성원들이 군복을 입도록 은정 어린 조치까지 취해주”었고, 그런 지침을 받은 것으로 하여 “악단의 예술창조활동을 혁명화과정으로 되게 하는데 모든 것을 지향시켜나가게 되였”다고 한다.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모란봉악단 단원들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배려에 의해 입은 군복은 군인이라면 누구나 입는 평범한 군복이 아니라 ‘음악정치의 선봉대’가 입는 ‘혁명의 군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사진 5> 전투적 기상이 어린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공연무대에 나선 모란봉악단. 모란봉악단 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처럼, 그들이 입은 군복은 평범한 군복이 아니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에 따라 전개된 모란봉악단 혁명화과정에서 입은 '혁명의 군복'이다.     © 자주민보



▲ <사진 6> 모란봉악단은 항일무장투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 여성전사들이 입었던 옛 군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이 사진은 지난 4월 북변의 량강도 삼지연군과 대홍단군에서 순회공연하는 장면들 가운데 하나다. 오른쪽으로부터 가수 김설미, 정수향, 박미경의 모습이 보인다.     © 자주민보


모란봉악단은 시범공연에 나섰던 때로부터 석 달이 지난 2012년 10월 10일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67주년 경축공연에서 처음으로 ‘혁명의 군복’을 입고 공연무대에 올랐다. 그 때부터 그들은 공연무대에 나설 때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군복을 입고 등장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곤 하였는데, 공연상황에 따라 흰색 군복도 입었고, <사진 5>에서 보는 것처럼 전투적 기상이 어린 얼룩무늬 전투복도 입었고, <사진 6>에서 보는 것처럼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조선인민혁명군 여성전사들이 입었던 야전복도 입었고,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비행사가 입는 비행복도 입었다.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 토론자로 나선 모란봉악단 단원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끌어준 대로 ‘혁명의 군복’을 입고 ‘혁명화과정’을 거치면서 자기들의 공연이 단순한 음악연주활동이 아니라 북에서 말하는 ‘선군혁명’을 ‘인민의 음악’으로 추동하는 ‘음악정치활동’으로 변모되었다고 말하였다. 그 변모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현송월 단장의 토론문에 따르면, 자기들에게 ‘혁명의 군복’을 입혀주고 ‘혁명의 길’로 이끌어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은정에 보답하려는 “이런 량심, 이런 충정으로 한나절에 한곡을 편곡하고, 하루 동안에 하나의 음악을 완성하였으며, 3~4일 동안에 하나의 새 공연을 준비하”는 충정과 열정으로 불탔다고 한다.

또한 김운룡 부단장의 토론문에 따르면, “정세가 극도로 긴장한” 2012년 8월 김정은 제1위원장으로부터 화선공연과업을 받았을 때 “48시간 동안에 23종목의 작품을 새로 창조형상하여야 하였는데 이것은 보통의 계산방법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밤과 낮을 이어 “창작전투”를 벌였고, 공연현지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도 연습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그처럼 전투적 분위기 속에서 준비와 연습을 강행한 모란봉악단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2년 8월 25일 조선인민군 고위지휘관들이 참석한 ‘선군절’ 경축모임에서 ‘조국통일대전’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언급한 중대한 연설을 한 직후 ‘8.25 경축 화선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그런 충정과 열정의 세계에서 모란봉악단이 지향하고 추구해온 것은 ‘인민의 음악’이다. 현송월 단장의 토론문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우리 인민이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음악을 창조”해야 한다는 진리를 모란봉악단에게 깨우쳐주었으며, 창단 이후 지난 2년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깨우쳐준 진리를 따라 “참다운 인민의 음악”을 창조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현송월 단장의 발언을 들어보면, 모란봉악단은 ‘인민음악’이라는 새로운 음악장르를 창조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황진영 부단장의 토론문에 나온 표현을 인용하면, 모란봉악단이 새로운 형식으로 창조한 ‘인민음악’은 “세계가 부러워하고, 시대가 바라고, 인민이 바라는 조선식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오늘도 ‘인민음악의 포성’을 울려간다

북의 주장에 따르면, 북의 최고영도자는 어느 한 단위를 정력적으로, 집중적으로 지도하여 혁명적 원칙과 시대적 요구와 인민의 이익에 가장 충실한 단위로 개조하고 내세워, 그 단위의 개조경험과 투쟁경험을 다른 단위들이 모두 따라 배우는 대중운동으로 확대시키는데, 이것이 ‘령도예술’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위에서 인용한 모란봉악단 단원들의 토론문은 대회장에서 읽은 평범한 토론문이 아니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령도예술’을 직접 체험한 고백문으로 읽힌다.

그들의 ‘고백문’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령도예술’이 어느 특정단위를 돌아보는 현장시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서로 통하게 하여 마침내 생사운명을 나누는 ‘일심단결’의 경지로 향한다는 점이다. 차영미 바이올린연주자의 토론문이 그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의 토론문에 따르면, 모란봉악단이 노래 ‘매혹과 흠모’를 연습할 때, 연습장을 몸소 찾은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자기들의 연주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구체적으로 지도하였다고 한다. 오래 전에 창작된 노래 ‘매혹과 흠모’는 북측 인민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흠모하며 따르는 마음으로 널리 불렀는데, 서거 이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4월 16일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모란봉악단 축하공연에서 기악연주곡으로 편곡된 노래 ‘매혹과 흠모’가 연주되었는데, 선우향희의 바이올린선율과 유은정의 첼로선율이 감동적으로 어우러진 ‘앙상블(ensemble, 북에서는 안삼불로 발음)’에서 북측 인민들의 절절한 심정이 울려나오는 느낌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차영미 바이올린연주자의 토론문에 따르면, 노래 ‘매혹과 흠모’를 연습하던 모란봉악단 연습장에서 “사색에 잠긴 모습으로 노래의 절절한 선률을 듣고 계시던” 김정은 제1위원장의 두 눈이 젖어들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본 모란봉악단 가수들과 기악연주자들은 자신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잊고 끝내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고, “장내가 그리움의 감정으로 숨막히는 속에 소리내여 울면서 연주를 계속하였”다고 한다. 이런 극적인 체험담을 들어보면, 북에서 말하는 ‘일심단결’이 어떤 추상관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다.

▲ <사진 7> 이 사진은 지난 5월 19일 평양에 있는 4.25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모란봉악단 축하공연이 끝난 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출연자들을 모두 무대 아래로 불러 그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공연성과를 축하해주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모란봉악단 가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보인다.     © 자주민보


노래 ‘매혹과 흠모’를 연습하면서 최고영도자의 마음과 모란봉악단 단원들의 마음이 일심단결로 승화되는 격정적인 체험을 하였던 차영미 바이올린연주가는 그런 체험을 통하여 “손끝으로가 아니라 심장으로 인간과 그 생활을 노래하는 혁명적인 음악가로 새롭게 태여나게 되였”다고 자기의 토론문에서 고백하였다. <사진 7>에서 보는 것처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5월 19일 4.25문화회관에서 공연무대를 펼친 모란봉악단 출연자들을 무대 아래로 불러 그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공연성과를 축하해주었는데, 북의 최고영도자가 이처럼 음악공연출연자들을 무대 아래로 불러 공연성과를 축하해준 파격적인 사례는 북의 건국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 정치계에서는 음악적 재능을 지닌 국가수반들을 간혹 만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 대통령이 그런 국가수반이다.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지닌 그는 2004년 대선유세에서 뛰어난 노래실력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덕택에 당선되었다. 2009년 1월 11일 자카르타에서 저명한 지휘자 요키 수료 프라요고(Yoki Suryo Prayogo)가 지휘한 신년음악회에서는 이전에 유도요노 대통령이 작곡했던 밸럿(ballad)풍 노래 10곡이 대통령 자신의 손에 의해 기악곡으로 편곡되어 연주되었다.

그러나 음악적 재능을 지닌 극소수 국가수반들의 음악애호활동과 달리,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음악정치’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북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 ‘음악정치’는 모란봉악단의 ‘음악정치활동’을 통해 북의 군대와 인민에게 충정과 신심, 열정과 투지, 기백과 긍지, 희망과 낙관, 일체감과 단결심을 불러일으켜준다는 것이다. 북에서는 자주적 인민의 사상감정을 일심단결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음악정치’가 노래 한 곡으로 수많은 연설과 호소를 대신하는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차영미 바이올린연주자는 모란봉악단 단원들이 함께 생활하는 자기들의 방마다 써 붙인 ‘절대로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구호를 “생활과 연주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토론문에서 말하였다. 이런 의지를 지닌 모란봉 악단의 내일이 어떨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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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주목해야 할 북의 항공군강화사업

[한호석의 개벽예감](131)
자주민보 2014년 05월 19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이 사진은 2014년 5월 9일에 성대히 진행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 개막식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에서는 주석단 중앙부 전면에 청회색이 칠해진 가림막 같은 것이 보이는데, 그것은 가림막이 아니라 그 대회에 참가한 항공작전기들의 전투비행술과 공습타격술을 시행하는 장면을 근접촬영하여 실시간으로 주석단에 중계하는 여러 대의 대형 현시대(monitor)를 일렬횡대로 배열한 것이다. 비행복을 입고 주석단 앞에 도열한 대회참가자들은 30대, 40대의 전투비행사들이 아니라 60세 이상의 장령급(장성급) 항공군지휘관들이다.     © 자주민보


전투비행술경기대회로 박차를 가한 북의 항공군강화사업    

요즈음 몇 해 동안 북의 군사부문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2014년 5월 9일에 진행된 전투비행술경기대회도 특별한 일들 가운데 하나다.

전투비행술경기대회는 지난 4월 15일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와 연관된 것이다. 사상 처음으로 비행사대회와 전투비행술경기대회를 서로 연관시켜 진행한 것은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올해 특히 항공군강화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 동안 군사부문에 관해 서술한 북측 언론보도내용을 종합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2년 1월부터 전략군강화사업, 특수군강화사업, 포무력강화사업, 기갑무력강화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해오는 가운데 이번에는 항공군강화사업을 집중적으로 지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북측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나,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핵무력강화사업도 정력적으로 지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머지않아 해군강화사업을 지도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번에 열린 전투비행술경기대회의 정식명칭은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다. 그런 명칭은 이번에 처음 사용되었다.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명칭을 새로 정한 것만 보더라도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든다. 전투비행술경기대회라는 명칭은 전투비행술을 연마하는 훈련이라는 뜻인가 아니면 전투비행술을 겨루는 경기라는 뜻인가? <조선중앙통신> 2014년 5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사령관 리병철 항공군 대장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 개막사에서 그 대회가 “주체의 항공군건설사에 특기할 력사적 사변”으로 된다고 언급하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적인 발기에 따라 건군력사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뜻깊은 훈련경기”라고 지적하였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전투비행술경기대회는 전투비행술을 훈련하고 겨루는 훈련경기인 것이다. 이것은 전투비행술을 훈련하고 겨루는 새로운 분야가 창시되었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투비행술경기대회 명칭을 몸소 제정하였고, 대회준비과정을 여러 차례 지도하였으며, 대회준비과정에서 제기된 모든 문제들을 풀어주었다고 밝힌 리병철 항공군 사령관의 개막사 발언을 들으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도에 의해 전투비행술경기대회가 성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 투브(You Tube)>에 게시된 상영시간 19분 13초 길이의 기록영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를 지도하시였다 주체103(2014). 5. 9.’를 시청하면,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그 대회가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성대하게 진행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 2014년 5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부인과 함께 탑승한 비행기가 5월 9일 오전 9시 서부지구 작전비행장에 착륙하였다. 군악대가 환영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부인과 함께 비행기 승강대에서 내려 항공군 사령관의 영접보고를 받았고, 애국가 주악의례를 마친 다음 항공군 명예위병대(남측에서는 공군 의장대)를 사열하였다. 곧이어 시작된 전투비행술경기대회는 항공군 사령관의 개막사, 최고사령관의 출격명령하달, 오전 훈련경기, 야전식사 및 군협주단과 군악단 약식공연, 오후 훈련경기, 시상식, 폐막선언 순으로 진행되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부인과 함께 항공편으로 이동하고, 붉은 주단이 깔린 환영식장에서 명예위병대를 사열한 특별한 의전절차는 북의 건국 이래 처음 시행된 것이다. 북의 최고영도자가 이처럼 특별한 의전절차를 갖춘 성대한 행사에 참석한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올해 중점적으로 지도하는 항공군강화사업이 전투비행술경기대회를 계기로 더욱 박진감 있게 추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 <사진 2>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탑승한 전용기는 지난 시기 소련에서 생산된 IL-62M 특별기다. 이 기종은 소련-러시아를 비롯한 14개 나라에서 국가수반 전용기나 정부 전용기 또는 공중작전통제기로 사용되었고, 현재 러시아의 로씨야항공이 러시아정부 전용기로 6대를 운항하고 있는 우수기종이다. 최고영도자의 신변안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북에서 안전운항이 보장되는 우수기종이 아니라면 절대로 전용기로 사용하지 않는다.  ©자주민보

 
자태를 처음 드러낸 최고영도자 전용기 IL-62M    

지난 5월 12일 통일부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용한 비행기에 대해 언급하면서 “안전성 문제로 관련 국제기구가 해외운항을 금지시킨 모델(여기서는 기종이라는 뜻으로 번역되는 외래어-옮긴이)”이라고 주장하였다. 북이 행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나쁜 짓’이 아니면 ‘한심한 짓’이라고 헐뜯는 통일부의 습관적 대북험담이 이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용하는 비행기에까지 무차별적으로 확대된 꼴이다. 험담의 껍데기를 걷어내고 진실의 알맹이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날 탑승한 비행기는 지난 시기 소련에서 생산되어 1974년부터 운항된 IL-62M이라는 기종이다. 소련은 1967년 이후 IL-62 기본형 94대를 생산하였고, 그 이후에는 IL-62M 개량형 193대를 생산하였다.

미국의 배후조종을 받은 칠레의 극우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가 쌀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대통령이 이끈 진보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유혈참극의 군사반란을 일으키기 불과 몇 시간 전인 1973년 9월 10일 밤, 사태의 위험성을 감지한 소련이 칠레 주재 쿠바대사관 소속 외교관과 직원 147명을 쿠바로 긴급대피시킬 때 칠레 수도의 산티아고 국제공항에 비상착륙시킨 항공기가 바로 IL-62다.

IL-62의 개량형 후속기종인 IL-62M은 소련-러시아를 비롯한 14개 나라에서 국가수반 전용기나 정부 전용기 또는 공중작전통제기로 사용되었다. 현재 러시아의 로씨야항공(Rossiya Airlines)은 IL-62M 6대를 러시아정부 전용기로 운항하는 중이다. 북의 고려항공과 러시아 최대 민간항공사 에어로플롯(Aeroflot)을 비롯한 전 세계 43개 민간항공사들이 그 기종을 운항하였거나 운항하는 중이다. 지난 시기 미국의 델타에어(Delta Air), 프랑스의 에어프랑스(Air France), 일본의 니혼고쿠(JAL), 네덜란드의 로열더취에얼라인스(KLM) 같이 세계적으로 이름난 민간항공사들도 그 기종을 운항하였는데, 델타에어는 2013년까지 그 기종을 운항하였다. IL-62M이 세계 각국에서 그처럼 널리 운항된 까닭은, 비행 중 난기류를 만나도 비행안정성을 유지할 뿐 아니라 비행 중에 소음과 흔들림이 적은 우수기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민간항공기 운항이 감소되는 바람에 2006년에 88대가 운항되던 IL-62M은 세계금융위기를 겪은 직후인 2009년에는 38대로 급감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 IL-62M의 운항이 급감된 또 다른 원인은 그 기종의 원생산국인 러시아가 1995년부터 그 기종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러시아정부가 오늘도 여전히 IL-62M 6대를 전용기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 기종의 우수성을 알 수 있다.

민간항공기 생산에서 쌍벽을 이루는 두 나라 미국과 러시아가 대통령 전용기를 운항해온 경험을 보면, 미국이 ‘공군 1호기(Air Force One)’라 부르며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하는 미국 보잉(Boeing)사의 B747-200은 1971년에 생산된 기종이고, 러시아가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하는 러시아 카포(KAPO)사의 IL-96PU는 1992년에 생산된 기종이다. 그리고 이번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탑승한 전용기 IL-62M은 1974년에 생산된 기종이다. 이런 사정을 비교하면, 생산년도가 오래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고물 항공기’라고 깎아내리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고, 오래된 기종의 성능을 개량하고 깔끔하게 수리-정비하는 문제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IL-62M에 관한 위와 같은 진실을 알게 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5월 9일에 탑승한 전용기가 무슨 안전문제가 생겨 국제기구에 의해 운항금지를 당한 ‘고물 항공기’라는 통일부의 주장이야말로 사실을 왜곡한 대북험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북은 1982년에 IL-62M 4대를 소련에서 수입하였는데, 현재 북의 고려항공은 그 기종을 국제선 여객기로 운항하고 있다. IL-62M 생산국인 러시아가 그 기종의 생산을 1995년에 중단하였는데도 북이 그 기종을 여전히 국제선 여객기로 계속 운항해오는 것만 아니라 이번에 최고영도자 전용기로 운항한 것은, 북이 항공기 부품을 자체로 생산하는 기술, 항공기 성능을 개량하는 기술, 항공기를 수리-정비하는 기술을 종합적으로 보유하였음을 말해준다. 항공기 한 대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은 약 10만 개나 되는데, 북이 항공기 부품을 자체로 생산하여 자급자족하는 것은 기계공업부문과 항공정비부문에서 자력갱생의 공학기술체계와 생산설비를 가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시기 북이 소련에서 수입한 IL-62M 4대 가운데 2대는 여객기로 제작된 것이고, 나머지 2대는 국가수반이나 정부대표단이 사용하는 특별기로 제작된 것이다. 북은 특별기로 제작된 IL-62M 2대 가운데 1대를 최고영도자 전용기로 개조하여 이번에 운항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북측 언론의 보도사진에 자태를 드러낸 IL-62M의 흰색 기체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와 북의 국기가 새겨졌다.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수반이 이용하는 전용기에는 국호와 국기를 새겨 넣는 법이다. 또한 파란색과 붉은색 이중원 안에 붉은 별을 넣고, 이중원 주위에 파란색 날개형상을 두른 커다란 휘장을 IL-62M 꼬리날개에 새겨 넣은 것은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그 전용기 운항을 책임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IL-62M 전용기 외부를 새로 도장하였을 뿐 아니라, 내부도 최고영도자 전용기답게 개조하였으며, 특히 안전운항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첨단기재를 설치하여 비행안정성을 결정적으로 보강한 것으로 보인다. 최고영도자의 신변안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북에서 안전운항이 보장되지 않는 노후한 전용기는 절대로 운용하지 않는다.

둘째, 북이 소련에서 특별기로 제작된 Il-62M 2대를 1982년에 도입한 뒤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그 특별기를 사용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지난 시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국내 장거리 시찰 또는 외국방문에 나설 때 거의 전용열차만 이용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전용기를 이용하였다.

만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이 북측 공역에서 비행안전을 철저하게 보장하지 못한다면, 한미연합군의 지대공미사일들과 요격기들이 24시간 북측 항공기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며 대기하는 긴장된 상황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IL-62M에 탑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최고영도자의 신변안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북에서 비행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최고영도자 전용기 운항은 생각할 수 없다. 이번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탑승한 전용기가 군사분계선 남측 최전방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70km 정도 떨어진 지역의 상공을 비행한 것은, 북측 공역의 비행안전이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에 의해 철저하게 보장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탑승한 전용기는 평양 북쪽에 있는 순안국제공항을 이륙하여 평안남도 온천군 서해안에 가까운 온천비행장에 착륙하였다고 한다. 북측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탑승한 비행기가 착륙한 곳이 서부지구 작전비행장이라고 보도하였는데, 남측 언론매체들은 군소식통이 전해준 정보를 인용하여 그 비행장을 온천비행장이라고 특정하였다. 조선인민군 항공군 가운데 최정예비행대로 평가받는 제1항공사단 제57비행련대가 바로 그 온천비행장에 주둔한다. 순안국제공항에서 온천비행장까지 직선거리는 약 54km인데, 제트항공기로 이동하기에는 좀 짧은 거리로 보인다. 전용기는 평안남도 상공을 몇 차례 선회한 뒤 온천비행장에 착륙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측 시각에서 바라보면, “력사적인 사변”으로 되는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사상 처음으로 전용기를 타고 참석한 것은 그 ‘역사적인 대회’에 더 큰 의의를 안겨준 사변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용기를 타고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석한 것은, 평양에서 멀리 떨러진 지역을 시찰할 때 전용기를 사용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앞으로 중국이나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도 전용기를 사용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사진 3> 이 사진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참모장인 오금철 항공군 상장(중장)이 MiG-21 전투기 제703호를 직접 조종하기 위해 조종석에 탑승한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올해 67세인 그는 지난 시기 김일성 주석의 지휘 밑에 보천보전투를 비롯한 항일전쟁에 참전하였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군사부장과 로농적위대 사령관을 맡아보았던 오백룡 항일투사의 장남인데, 1995년부터 13년 동안 항공군사령관으로 복무하였다. 항공군 고위지휘관이 전투기를 직접 몰고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것은 다른 나라 군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군풍이 조선인민군에 정착되었음을 말해준다.  ©자주민보

  
각종 항공작전기들이 전투비행술과 공습타격술을 겨룬 경기대회    

<조선중앙통신> 2014년 5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각종 항공작전기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출격명령을 받은 즉시 연속하여 하늘로 날아올라 평소에 연마한 전투비행술과 공습타격술을 서로 겨루었는데, 그 항공작전기들을 조종한 비행사들은 전투비행사들이 아니라 항공군 연합부대장들과 군부대장들이었다. 그래서 그 대회의 명칭이 전투비행사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가 아니라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로 정해진 것이다.

비행지휘성원이란 항공군 연합부대장 또는 군부대장에 해당한 고위군직을 맡은 항공군지휘관을 뜻하는데, 별 두 개를 어깨에 단 60세 이상의 중장급(남측에서는 소장급)이 그들이다. 특히 이번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서는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참모장인 오금철 항공군 상장(남측에서는 공군 중장)이 MiG-21 전투기 제703호를 직접 몰고 전투비행술경기에 참가하였다. 올해 67세인 오금철 상장은 지난 시기 김일성 주석의 지휘 밑에 보천보전투를 비롯한 항일전쟁에 참전하였고 나중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군사부장과 로농적위대 사령관을 맡아보았던 오백룡 항일투사의 장남인데, 1995년부터 13년 동안 항공군 사령관으로 복무하였다.

다른 나라에서 고령의 공군 소장이나 공군 중장이 전투기를 직접 몰고 전투비행술을 겨루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오직 북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러한 놀라운 정황은 군사지휘관들이 “나를 따라 앞으로!”라는 돌격구호를 외치며 전투행동에서 언제나 맨 앞장에 서는 특유의 군풍이 조선인민군에 정착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전투비행술경기대회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북측의 언론보도기사와 기록영화에서는 펼쳐진 장면들은 아래와 같다.

첫째,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서 펼쳐진 장면은,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른 각종 항공작전기들이 평소에 연마한 전투비행술을 발휘하며 겨루는 모습이다. 전투비행술을 겨룬 각종 항공작전기들은 자국산 무장헬기(MD-500E 개량형), MiG-29 전투기 제553호, MiG-21 전투기, MiG-29 전투기, SU-25UBK 전폭기 등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록영화에는 위의 네 기종만 모습을 보였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기종이 참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 <사진 4> 이 사진은 조선인민군 항공군 '사적비행기'들 가운데 하나인 MiG-29 전투기 제553호 동체에 새겨진 사적표시판을 촬영한 것이다. 다른 기종의 전투기들에도 사적비행기가 있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사적비행기를 평소에 잘 관리하면서 비행훈련에서 맨 앞장에 세우고 있으며, 언제나 출격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 자주민보


특히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MiG-29 전투기 제553호는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지난 시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시찰한 ‘사적비행기’다. 지난 4월 15일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 주석단 왼쪽에 전시된 MiG-21 전투기 제415호도 ‘사적비행기’이고, 이튿날 비행사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모란봉악단의 축하공연무대 위에 전시된 MiG-19 전투기 제339호도 ‘사적비행기’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5월 13일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군부대를 시찰하는 중에 그 부대의 ‘사적비행기’를 돌아보면서 “사적비행기관리를 잘하고 만단의 출격태세를 갖추어 놓음으로써 언제나 비행훈련의 맨 앞장에 세우고 있는데 대하여 치하하시였다”고 한다. 항공군 지휘관들이 전투행동에서 맨 앞장에 서는 것처럼, ‘사적비행기’들이 실전에서 맨 앞장에 서게 되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회에 참가한 항공작전기들은 “급상승 반전, 전투선회비행, 정지비행, 18,000m 상승한도비행, 30m 초저공비행, 공중기교비행” 등의 전투비행술을 겨루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들이 펼쳐 보인 전투비행술은 고도의 숙련도와 담력이 없으면 흉내를 낼 수 없는, 묘기비행에 가까운 것들이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전투비행술이 어느 경지에 올랐는지를 말해주는 경험적 사례는 2003년 3월 2일에 있었다. 그 날 오전 10시 경 일본 오키나와의 가데나(賀須納) 주일미국공군기지에서 이륙한 미국 공군 소속 전략전자정찰기 RC-135S와 일본의 어느 해상항공작전기지에서 이륙한 해상자위대 소속 전자전첩보기 EP3이 동해 상공을 비행하고 있을 때, 조선인민군 항공군 소속 MiG-29 전투기 2대와 MiG-23ML 전투기 2대가 갑자기 나타났다. 당시에 언론매체들은 미국 공군 RC-135S의 동해 상공 출현에 대해서만 보도했으나, 일본 해상자위대 EP3도 RC-135S의 뒤를 따라 동해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처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MiG-29와 MiG-23ML은 RC-135S를 공중나포하여 북으로 끌어가려고 20여 분 동안 15m 초근접거리에서 부딪치기(thumping) 비행술로 위협비행을 하였고, EP3을 공대공미사일로 격추하려고 사격통제레이더를 조준하며 위협비행을 하였다. 만일 그 때 격추명령이 내려졌다면, 미국 전략전자정찰기와 일본 전자전첩보기는 모두 격추되어 동해에 쳐박혔을 것이다.

둘째,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서 펼쳐진 장면은,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른 각종 항공작전기들이 로켓포나 폭탄으로 지상표적을 맞추는 공습타격술을 겨루는 모습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자국산 무장헬기(Mi-2 개량형), MiG-21 전투기, MiG-19 전투기, MiG-23ML 전투기, SU-25UBK 전폭기가 차례로 하늘에 날아올라 지상표적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하는 공습타격술을 겨루었고, IL-28 경폭격기가 초저공으로 비행하며 지상표적에 폭탄을 투하하는 공습타격술을 펼쳐 보였다. MiG-29 전투기의 공습타격술 장면은 기록영화에 방영되지 않았다.
▲ <사진 5> 이 사진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MiG-23ML 전투기가 로켓포 공중타격술을 시행한 뒤 활주로에 착륙하는 장면이다. 북이 MiG-23ML 전투기 비행모습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주민보


▲ <사진 6> 이 사진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SU-25UBK 전폭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장면이다. 이 기종은 한미연합군 기갑부대와 공격헬기를 격파할 수 있는 강력한 화력을 지녔다     © 자주민보


▲ <사진 7> 이 사진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저공침투기 AN-2 복엽기가 지상표적을 향해 로켓포를 연속 발사하는 장면이다. 이제껏 그 복엽기는 조선인민군 특수군이 항공륙전병 공수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그 기종을 로켓포 공습에 사용한다는 것이 이번에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 자주민보


<사진 5>는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로켓포 공습타격술을 시행한 뒤 활주로에 착륙하는 장면이고, <사진 6>은 대회에 참가한 SU-25UBK 전폭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장면이다.

또한 이번 대회에서는 저공침투기들인 AN-2 복엽기와 PT-6 단엽기가 지상표적을 향해 로켓포를 각각 발사하며 공습타격술을 겨루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사진 7>에서 보는 것처럼 AN-2 저공침투기가 지상표적을 향해 로켓포를 연속발사하는 장면이다. 이제껏 그 복엽기는 조선인민군 특수군이 항공륙전병 공수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그 기종을 로켓포 공습에 사용한다는 것이 이번에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위에 열거한 여러 기종을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한반도 작전환경에 적합한 각종 항공작전기들을 적재적소에 맞춤형으로 배치하여 동반상승효과(synergy effect)를 극대화하는 특유의 항공전략을 채택하였음을 말해준다.

주목하는 것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항공작전기들 가운데 원생산국에서 오래 전에 단종되어 부품을 구할 수 없는 기종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이다. 부품을 구할 수 없는 기종을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운용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에 대해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운용하는 MiG-21 전투기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은 원생산국에서 단종된 각종 항공작전기 부품을 자체로 생산하여 자급자족하면서 수리-정비를 계속해왔고, 게다가 성능개량까지 거듭하여 원래 전투기보다 더 우수한 전투기로 개조하였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운용하는 MiG-21 전투기는 부품부족으로 고장이 생길 위험을 안고 있는 노후기종이 아니라 성능개량을 거듭하며 다시 태어난 우수기종인 것이다.

둘째,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다른 나라에서 사온 수입기종을 운용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한반도 작전환경에 맞게 개량한 자국산 항공작전기를 독자적으로 생산하여 운용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운용하는 무장헬기 MD-500E와 무장헬기 Mi-2의 경우가 그것이다. 원래 MD-500E는 미국산 수입기종이고 Mi-2는 러시아산 수입기종이다. 그런데 미국의 군사전문 웹사이트 <글로벌 씨큐리티(Global Security)>에 게시된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MD-500 보유량은 2005년까지 27대를 계속 유지하였다가 2010년에 80대로 급증하였다. 또한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Mi-2 보유량은 1990년까지 100대를 계속 유지하였다가 1995년에 140대로 급증하였다. 이러한 급증현상은 북이 그 두 종의 헬기를 각각 추가로 수입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 작전환경에 맞춰 성능을 개량한 자국산 무장헬기 두 종을 자체로 생산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북이 무장헬기만 국산화한 게 아니라, 전투기도 국산화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연합뉴스> 1995년 7월 8일 보도와 <동아일보> 1997년 1월 3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1994년부터 러시아에서 기술도입형식으로 최신예 전투기 MiG-29를 연간 15대씩 자체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고, 1995년 현재 MiG-29 전투기 40여 대를 보유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평안북도 구성시 인근에 있는 방현로동자구에 자리 잡은 ‘4월4일공장’에서 MiG-29 전투기를 생산한다고 한다.
    
▲ <사진 8>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를 마친 직후인 지난 5월 13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군부대를 시찰하고 현지 군사지휘관들과 담화하였다. 이 군부대는 공화국영웅 1명과 육탄용사 13명을 한꺼번에 배출한 항공군부대다.     © 자주민보


공화국영웅 1명과 육탄용사 13명을 한꺼번에 배출한 항공군부대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각종 항공작전기들의 전투비행술과 공습타격술에 대해 “첨단감시기재로 평가한 점수가 종합되고 등수가 결정되였”고 성적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우승자들의 목에 직접 메달을 걸어주며 시상하였고,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국가수반이 공군대회 준비과정을 직접 지도하고 참석한 것만이 아니라 대회에서 입상한 공군지휘관들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고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매우 특별한 군풍은 북 이외에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조선인민군의 그러한 군풍은 장병들의 사기를 최고조로 높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최고사령관과 장병들의 사상정신적 일체감을 형성시켜주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이러한 군풍 또는 사회적 기풍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영도자의 정치사업을 북에서는 ‘령도예술’이라 한다.

<사진 8>에서 보는 것처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5월 13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군부대를 시찰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 직전인 지난 4월 21일 항공 및 반항공군 제188군부대를 지도하였고, 5월 9일 전투비행술경기대회를 지도하였고, 그로부터 나흘 뒤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군부대를 시찰한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항공군을 얼마나 집중적으로 지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제188군부대와 제447군부대는 ‘오중흡7련대 칭호’를 수여받은 정예부대들이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날 시찰한 제447군부대를 가리켜 “선군조선의 영용한 붉은 매들의 영웅정신, 희생정신, 자폭정신이 탄생한 고향부대”라고 평가하였다. 그 부대가 그러한 최상의 평가를 받은 것은 그 부대에서 14명의 육탄용사가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북에서는 조국을 수호하는 전투 중에 또는 전투임무수행 중에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장병이나 목숨 걸고 결사전을 벌인 용감한 장병을 육탄용사라 부른다. 그런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군부대에서는 그런 육탄용사가 한꺼번에 14명이나 배출되었다. 북측 언론매체들이 배출사연을 보도하지 않아서 육탄용사 14명이 언제 어디서 결사전을 벌였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 중 휴식시간에 “어려운 비행전투임무를 수행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군부대의 육탄용사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위훈을 다시금 높이 평가”하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영웅칭호를 “전투임무수행 중에 희생된 정철주 비행사”를 대신하여 그의 아내에게 수여하였고, 13명에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의 시계표창을 수여하였다고 한다.

북에서 ‘공화국영웅칭호’는 사고로 희생된 장병에게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결사전에서 위훈을 세우고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장병에게 수여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제447군부대의 육탄용사 14명이 “어려운 비행전투임무를 수행”하는 결사전을 벌이던 도중 정철주 비행사가 장렬하게 희생되었고, 다른 육탄용사 13명은 생사계선을 넘나드는 위험한 상황을 뚫고 기적적으로 생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447군부대에서 공화국영웅 1명과 육탄용사 13명이 한꺼번에 배출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전체 전투비행사들은 스스로를 육탄정신으로 무장하는 사상정신훈련에 힘쓰고 있다. 그들의 육탄정신이 실전에서 강인한 전투력을 발휘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사례는 2009년 7월 27일 <조선중앙방송> 록음실황에 출연한 어느 한 군사지휘관의 회고담을 인용한 <연합뉴스> 2009년 9월 10일 보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용된 회고담에 따르면, 2009년 4월 5일 북이 인공위성을 발사하기 직전 미국과 일본이 ‘요격설’을 언론에 흘리며 긴장을 고조시켰을 때,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비행사들은 “최고사령관 동지께 올리는 맹세문을 가슴에 품고 결사전에로” 나갔는데, 그들이 “한자 한자 서약”한 맹세문은 “성스러운 이 길에서 비록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조국이 준 임무를 기어이 수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처럼 육탄정신으로 무장한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스스로를 ‘김정은붉은비행대’라 부른다. 자기 부대를 자기들의 최고사령관 이름과 결부시킨 고유명칭으로 부르며 전투적 운명공동체를 건설해온 ‘하늘의 육탄결사대’가 지금 북에서 출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 공군, 한국 공군, 일본 항공자위대가 자기들의 공중우세신화만 믿고 ‘김정은붉은비행대’를 얕보면 실전에서 대패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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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4

한반도 전쟁위기는 왜 불가항력적인가?

[한호석의 개벽예감](112)
자주민보 2014년 05월 12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사진 1>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월과 4월 북에게 전레 없이 극렬한 악담을 퍼부었다. 북을 악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북의 정권을 히틀러의 나치정권에비유하며 대북적대감을 선동하였다. 그의 그런 비이성적인 행동에는 그럴 만한 원인이 있었다.   ©자주민보


덫에 걸린 들짐승이 미친 듯이 울부짖는 소리
    
2014년 2월 26일 존 케리(John F. Kerry) 미국 국무장관은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 텔레비전 방송 <MSNBC>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악담을 늘어놓았다. “북은 지구 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잔인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 나라에서는 우리 모두 걱정해야 하는 사악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북의 부패와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북에서는 122mm 포로 사람들을 처형하면서 그런 처형현장을 보라고 주민들에게 강요한다. 북은 악(惡)이고 사악한 곳이다. (그런 북에게)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전 세계의 관심이 요구된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 국무장관이 북을 헐뜯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사로운 일처럼 되어 버렸지만, 올해 들어와 케리 국무장관이 북에 퍼부은 악담은 전례 없이 더욱 극렬하였는데, 그는 그 날만 대북악담을 늘어놓은 게 아니었다.

케리 장관은 2014년 4월 8일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가서도 “북측 정권의 인권침해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또 다시 헐뜯으면서 “북은 세계에서 최악의 인권탄압국”이며 “히틀러의 나치정권 이후 최악”이라고 더욱 심한 악담을 늘어놓으며 적대감을 드러내었다. 미국인들에게 히틀러의 나치정권은 가장 흉악한 악마로 기억되는데, 케리 장관의 위와 같은 악담은 미국인들에게 대북적개심을 부추긴 선동발언으로 들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케리 장관은 그처럼 북에게 악담을 퍼붓는 것도 모자라 대북적개심을 선동하기까지 하였던 것일까?

그 의문에 대한 답변은 <뉴욕 타임스> 2014년 4월 24일 보도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북에서 김정은 시대가 개막되었을 때, 미국은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미국이 바라는 ‘개혁과 개방’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이게 될 것으로 예측하였으나, 2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그런 예측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오늘 김정은 시대의 북측 현실이 잘 말해주는 것처럼, <뉴욕 타임스>의 그런 분석은 사실에 부합되는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미국이 바라는 ‘개혁과 개방’으로 조금이나마 나아가기는커녕 그와는 정반대로 사회주의적 발전을 지향한 전략노선을 제시하고 북을 그 전략노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속도감 있게 이끌어 갔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에게 제시한 전략노선은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키는 자주적 발전노선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에 제시한 병진노선은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전략노선을 계승하고 더욱 심화시킨 것인데,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한 미국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전략노선을 다소 변경시킬 것으로 예상하는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최근 북측 언론매체들은 지금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자위적 핵무력을 더 높은 수준으로 증강하고 자립적 인민경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선군의 길, 자주의 길, 사회주의의 길”로 북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계속 보도하고 있다. 이런 언론보도와 관련하여 직시해야 할 북의 현실은, 북의 제4차 지하핵실험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북의 철강공업, 기계공업, 석탄공업, 화학공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경공업, 농축산업, 수산업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인민들이 이용할 현대식 시설과 설비들이 곳곳에 건설되는 활기찬 모습이다.

이러한 북의 현실은 미국의 대북경제제재가 북의 인민경제를 파탄시키려고 하다가 되레 그 스스로 파탄되고 말았음을 뜻하며, 미국의 대북핵정책이 북의 핵포기를 노리다가 되레 그 스스로 포기상태에 빠져들었음을 뜻한다. 이러한 미국의 대북정책파탄과 관련하여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담당 관리로 근무한 경력을 가진 에반스 리비어(Evans J. Revere)는 <뉴욕 타임스> 2014년 4월 24일 보도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실패하였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북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실시해왔다. 하지만 지금 분명한 것은, 우리가 북에 어떤 경제제재를 가하느냐 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우리가 북에 무엇을 제공하느냐 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북의 핵무기를 포기시킬 길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제는 뭔가?”

에반스 리비어가 보도기사에서 잘 지적한 것처럼, 미국은 대북정책의 실패와 파탄을 겪은 미국은 지금 최악의 곤경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 2014년 4월 24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최근 자기의 대북정책을 진지하게 재검토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설령 기존 대북정책의 추진방향을 바꾼다 해도 어떤 좋은 대안도 나올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회의에 참가한 어떤 백악관 관리가 “우리는 꼼짝 못하게 됐다(We're stuck)”고 탄식한 것은 조선국방위원회와의 전면 대결에서 완패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최악의 곤경에 빠져 허덕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처럼 대북관계에서 최악의 곤경에 빠진 미국은 극렬한 대북악담을 늘어놓으며 대북적개심을 선동하고 있는데, 그런 행동은 마치 덫에 걸린 들짐승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날뛰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위에서 언급한 케리 장관의 극렬한 대북악담은 바로 그런 상황에서 나온 여러 현상들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정작 더 심각한 것은 대북관계에서 최악의 곤경에 빠진 미국이 극렬한 대북악담에서 행동을 멈추지 않고 그 곤경에서 빠져나갈 ‘비상출구’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미국이 찾는 대북관계의 ‘비상출구’는 무엇일까?
▲<사진 2> 2014년 1월 7일 미국 국무부 청사에서 윤병세-케리 회담이 진행되었다. 이 사진은 그 회담이 끝난 직후 공동기자회견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그 회담에서는 미국과 남측이 6자회담을 포기하는 대신 북측 정세를 분석하는 한미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다. 그 협의체는 북의 급속붕괴를 유도하기 위한 문제를 논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주민보


미국과 남측의 진짜 속셈 논의한 윤병세-케리 회담

2014년 1월 9일 당시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를 방문 중이던 윤병세 외교장관은 현지에 주재하는 남측 특파원들과 만난 비공식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측과 미국) 양국은 북한 핵문제를 넘어서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전략적 협력도 하기로 했다.” 이 발언을 그냥 스쳐지나갈 수 없는 까닭은, 그가 케리 국무장관을 약 1시간 동안 만나 회담한 직후에 그런 발언을 꺼내놓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윤병세 외교장관이 특파원들 앞에서 꺼내놓은 위의 발언은 윤병세-케리 회담의 합의사항을 모호하게 에둘러 언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의 인용발언에서 주목하는 것은, “북한 핵문제를 넘어서”라는 특이한 표현이다. 이 특이한 표현은 윤병세 장관이 자기의 의사를 드러낸 말이 아니라, 윤병세-케리 회담의 합의사항을 드러낸 말이라는 점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북의 핵문제를 넘어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북의 핵문제를 이른바 선핵포기 방식으로 ‘해결’해보겠다고 하면서 지난 시기에 그토록 집착해온 6자회담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뜻일까? 북의 핵문제를 애초에 국제사회에 제기하였을 뿐 아니라, 북의 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큰 소리를 쳐온 미국은 지난 20년 동안 북미양자회담을 회피하기 위해 3자회담, 4자회담, 6자회담 같은 다자회담을 벌여놓았는데, 그런 미국이 이제 와서 6자회담마저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지난 20년 동안 어렵사리 이뤄낸 북미합의를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것도 모자라 합의를 파기한 책임을 북에게 넘겨씌우고, 북에게 핵포기를 끈질기게 강요하며 온갖 비난과 압박을 가하는 한편, 대북전쟁연습까지 감행하는 통에 정세를 일촉즉발 위험으로 끌어간 미국이 이제 와서 6자회담마저 관심을 두지 않겠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이런 의문에 대한 답변은 바로 위에서 인용한 윤병세 장관의 발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답변은 남측과 미국이 6자회담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 대신,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전략적 협력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요즈음 미국과 남측의 대북적대정책이 얼마나 극단적인 지경에 이르렀는지 아는 사람은, 윤병세-케리 회담 직후에 윤병세 장관의 입에서 남측과 미국이 6자회담을 포기하는 대신 앞으로 ‘북한 붕괴’를 위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식의 말이 나왔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윤병세 장관은 그런 예상과는 정반대로 한반도의 평화와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남측과 미국이 전략적 협력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으니, 예상을 깨는 충격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윤병세 장관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식의 충격발언이 나온 것일까?

외교발언이라는 게 있다. 중대사안을 언급할 때 직설적 표현을 피하고 두루뭉술한 말로 적당히 ‘포장’하는 발언을 두고 외교발언이라 하는데, 위에 인용한 윤병세 장관의 발언은 도무지 외교발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외교발언 이외에 위장발언도 있다. 속셈을 감추려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이 위장발언이다. 윤병세 장관의 발언은 미국과 남측의 속셈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늘어놓은 위장발언으로 들린다. 외교관들은 위장발언에 대체로 능한 편인데, 위의 위장발언을 들어보니 윤병세 장관이야말로 위장발언에 능숙한 달인의 경지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윤병세 장관의 위장발언은,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윤병세-케리 회담에서 논의한 자기들의 속셈을 감추려고 의도적으로 늘어놓은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그 위장발언 뒤에 감춰진 미국과 남측의 진짜 속셈은 무엇일까? <중앙일보> 2014년 1월 9일부 관련기사가 그 의문에 답변을 주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윤병세-케리 회담에서 “북한의 정치상황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신(新)협의체를 만드는데 합의했다”는 것이다. 그 회담에서 합의하였다는 새로운 협의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윤병세 장관은 윤병세-케리 회담 직후 특파원들과 만난 비공식 간담회에서 “(한미) 양국은 핵문제를 넘어 북한 정세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양자 및 소다자 등 다양한 형태의 대화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짤막한 언급에 따르면, 윤병세-케리 회담의 합의사항은 북측 정세를 논의하는 양자협의체 및 소다자협의체를 구성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여기서 양자협의체란 미국과 남측이 참가하는 한미협의체를 뜻하고, 소다자협의체란 미국, 남측, 일본이 참가하는 한미일협의체를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무엇보다 중시되는 것은 북측 정세를 논의하는 한미협의체이므로, 윤병세-케리 회담에서 논의한 가장 중요한 의제는 북측 정세를 논의하는 한미협의체를 구성하는 사안이었다.

이 합의사항과 관련하여 남측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북한 정세를 논의하기 위한 한미협의의 체계화가 필수적이고 시급하다. 빈도도 높이고, 레벨(수준이라는 뜻의 외래어-옮긴이)도 다양하게 해서 깊이 있게 북한 정세만 분석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이런 양자논의를 확대해가면 어느 시점에서는 중국 참여도 가능할 것이고, 일본과 러시아 등 5자체제가 될 수도 있다는데 양국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사안에 따라 6자회담 수석대표나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보다 고위급이 나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위에 인용한 몇 가지 발언을 정리하면, 윤병세-케리 회담에서 미국과 남측은 6자회담을 포기하는 대신 북측 정세를 분석하는 한미협의체를 구성하자고 합의한 것이다.

 
중국에게 ‘비상계획’ 논의하자고 제안한 미국과 남측

이제껏 미국과 남측이 대북정세분석에 소홀하였던 것은 결코 아닌데, 대북정세를 분석하는 한미협의회를 새삼스럽게 구성하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그들이 품은 속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은 <동아일보> 2014년 1월 9일부에 실린 관련기사다. 그 보도기사는 대북정세분석 한미협의회 구성문제와 관련하여 남측 외교부 고위당국자가 “전략적이고 주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북한 정세를 논의하자는 것은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자는 정책방향과도 연결된다”고 말했음을 지적하면서 그 협의회에서 논의하게 될 몇 가지 ‘정책대안’을 아래와 같이 열거하였다.

첫째, 북의 붕괴 이후 북측 인민들이 남측과 통일되기를 바랄 수 있도록 그들에 대한 남측의 지도력을 확대하는 정책대안이다.

둘째, 이란의 핵포기를 이끌어낸 경제제재를 북에게도 적용하여 기존 대북경제제재를 더욱 강화하는 정책대안이다.

셋째, 미국과 남측이 북의 급변사태에 대비하여 위기대응방안을 마련하는 정책대안이다.

이 보도기사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윤병세-케리 회담에서는 “불안한 북한 정세 관측→북한 변화 유도→급변사태 대비 등의 단계를 통해 북한 체제를 사실상 정리하는 수순을 염두에” 두고 대북정세분석 한미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다는 것이다. 대북정세분석 한미협의회 구성문제와 관련하여 <뉴스1>은 2014년 1월 9일부에 실린 관련기사에서 “북한 내부정세를 논의하기 위한 또 다른 한미 간 혹은 다자간 협의체가 필요하다면, 이는 한미가 북한 내 급변사태를 대비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는 뜻”이라고 지적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분석기사들을 읽어보면, 대북정세분석 한미협의회를 구성하는 목적은 북의 변화를 이끌어내어 북을 급속히 붕괴시키는 급변사태 유발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대북정세분석 한미협의회의 실체는 북을 급속붕괴로 유도하기 위한 전략을 협의하는 상설협의체인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을 급속붕괴로 유도하기 위한 미국의 대북정책은 무력으로 평양을 점령하여 북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북을 예속시키려는 극단적인 적대정책이다. 미국은 그런 대북적대정책을 이번에 처음으로 실행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기존 대북적대정책이 이번에 더욱 보강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의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연방의회가 작성한 ‘2014회계년도 세출법안(H.R. 3457)’ 가운데 미국 국무부의 대외운영 및 관련사업 예산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4년 1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이른바 ‘민주주의 기금(Democracy Fund)’을 투입하여 ‘북의 감옥과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정보자료를 축적하면서 수용자 명단을 공개하는 등의 활동으로 ‘북의 인권실태’를 전 세계에 알리고, 대북라디오방송을 운영하는 데 약 900만 달러를 지출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최근 미국이 북의 변화를 노리는 대북선전선동사업을 더욱 보강하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선전선동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중국청년보> 2014년 5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 조선반도사무판공실 주임을 역임한 양시위(楊希雨)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중국기자협회가 주최한 언론간담회에서 발언하면서 미국과 남측이 비상계획에 대해 논의하자고 중국에게 여러 차례 제안하였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비상계획이라는 것은 북의 급속붕괴로 일어날 급변사태에 대비한 비상계획이라는 뜻이다. 위에 인용한 양시위 연구원의 발언을 들어보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을 급속붕괴로 유도하려는 미국과 남측의 적대적 의지가 얼마나 집요한지 확인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사실들에서 명백히 드러난 것처럼, 미국과 남측의 대북정책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전면 부정하고 북의 변화와 그에 따르는 북의 급속붕괴를 추구하는 극단적인 적대정책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것은 북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적대정책 추진과정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그가 스스로 준비위원장직을 맡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립하려는 이른바 ‘통일준비위원회’라는 것도 북의 급속붕괴와 그에 따른 대북흡수통합을 준비하는 흡수통합준비위원회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또한 2014년 3월 28일 독일을 공식방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공과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연설하면서 언급한 이른바 ‘한반도 통일을 위한 구상’이라는 것도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추종하여 북을 급속붕괴로 유도하려는 자신의 적대정책을 ‘한반도 통일’이라는 위장언어로 포장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사진 3> 2014년 2월 1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에 있는 인민대회당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케리 장관은 북     ©자주민보


‘작전계획 5029’를 수정, 보완하여 실전연습 계속하는 미국 

<미국의 소리> 2014년 2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을 방문 중인 케리 국무장관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비롯한 고위 당국자들을 만나 “북한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다”고 한다. 북의 핵문제를 논의한 게 아니라 ‘북의 문제’를 논의했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방문을 며칠 앞둔 2014일 2월 1일 케리 장관은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회의 도중 취재기자들에게 자신이 곧 중국을 방문하면 ‘한반도 통일문제’와 ‘북의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케리 장관이 ‘한반도 통일문제’와 ‘북의 문제’를 중국 방문 중에 논의하겠다는 말은 그가 북의 급속붕괴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자는 의사를 중국 고위당국자들에게 꺼내놓겠다는 뜻이다.

물론 중국 고위당국자들은 북의 급속붕괴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자는 케리 장관의 제의를 거부하고, 6자회담을 재개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뜻을 거듭하여 밝혔다.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케리 장관은 2014년 2월 14일 시진핑 주석을 면담하였는데, 그 면담 직후에 나온 중국 <신화통신> 2014년 2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케리 장관에게 ‘북의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하였는 것이다. 이것은 북의 급속붕괴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자는 미국의 제의를 중국이 거부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중국 고위당국자들이 케리 장관의 제안을 거부한 것에 관해서는 2014년 2월 24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왕이-케리 협상 실패, 격화되는 한반도 위기’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5118

2014년 2월 17일 <연합뉴스> 취재기자와 단독대담을 진행한 대니얼 러셀(Daniel R. Russel)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며칠 뒤에 있을 케리 장관의 중국 방문에 관해 언급하면서 “중요한 것은, (미국 대북정책의) 목표가 북한을 협상테이블(탁자라는 뜻의 외래어-옮긴이)로 끌어내는 게 아니라 핵프로그램을 포기해 비핵화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이라고 하면서 “일부는 북한이 핵무기프로그램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그렇게 (포기)해야만 한다.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6자회담 5개국이 협력해 북한이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실천하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노골적인 발언은 미국이 자기의 대북적대정책 추진과정에 중국을 끌어들여 북핵 강제포기를 추구하려는 자기의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이로써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추구하는 목적이 북의 급속붕괴만이 아니라 북핵 강제포기까지 포함되었다는 것, 그리고 북의 급변사태라는 개념을 북의 급속붕괴와 북핵 강제포기를 모두 포함한 뜻으로 사용한다는 것, 그리고 미국의 노림수가 바로 그러한 북의 급변사태를 유발하려는 것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추구하는 북핵 강제포기라는 목적이 미국의 대북전쟁연습에 직결된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기존 대북전쟁연습의 내용을 북핵 강제포기라는 목적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수정, 보완한 것이다. <뉴욕 타임스> 2014년 4월 24일 보도기사가 그에 관해 말해주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으로 “핵능력을 가진 적(nuclear-capable adversary)”과 한반도에서 맞서게 된 정세변화에 따라 미국은 자기의 전쟁계획인 급변사태계획(contingency plan) 곧 ‘작전계획 5029’의 내용을 변경하였다고 한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미국이 오래 전에 작성하였고, 최근에 그 내용을 수정, 보완한 ‘작전계획 5029’는 북의 급변사태를 유발하고 그 와중에 상륙전과 특수전을 벌여 평양을 점령하고 북의 핵무기를 탈취함으로써 북의 급속붕괴와 북핵 강제포기를 한꺼번에 실현하겠다는 대북전쟁계획이다. 올해 사상 최대 규모로 실시된 ‘키 리졸브-독수리’ 대북전쟁연습이 바로 그렇게 ‘작전계획 5029’의 내용을 수정, 변경하고, 상륙전연습과 특수전연습을 증강한 전쟁연습이었다. 이것은 미국이 이미 ‘작전계획 5029’를 실제 작전으로 전개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 <사진 4> 이 사진은 2014년 5월 10일 서울 도심의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대규모 촛불집회를 자주민보에서 촬영한 것이다. 세월호 대참사를 보면서도 단 한 명도 살려내지 못한 박근혜 정권에 데한 국민들의 절망과 분노는 지금 '박근혜 퇴진요구'로 분출되고 있다. 오랜 기간 누적된 민중의 사회정치적 불만이 폭발하면, 촛불집회가 격렬한 반정부투쟁으로 전개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격렬한 반정부투쟁과 유혈사태가 한반도 전쟁으로 즉각 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전쟁위기는 불가항력적이다.   ©자주민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중첩된 모순으로 격화된 한반도 전쟁위기
북의 급변사태를 노리는 미국은 북의 급속붕괴와 북핵 강제포기를 상정한 시나리오에 따라 올해 크게 증강된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하여 북을 극도로 자극하였다. 그런 대북전쟁연습을 보고 북은 격분하였다. 격분한 북은 3일 안에 ‘조국통일대전’을 끝내려는 초단기속결전 준비를 갖추고 최후 공격명령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에 관해서는 2014년 3월 31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선제타격권은 어느 쪽에 있는가?’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5555

그런데 만일 미국이 북핵 강제포기를 상정한 시나리오를 들고 나와 ‘을지-프리덤’ 대북전쟁연습을 오는 8월에 감행하여 북을 또 다시 자극하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의의 시각에 한반도 전쟁이 폭발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원래 북이 주장해온 바에 따르면 “남반부의 민주애국력량이 들고 일어나 우리 북에 지원을 요구할 경우 전쟁을 선포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남측에서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격렬한 반정부투쟁이 일어나면 지원요구와 상관없이 북이 ‘조국통일대전’에 즉각 돌입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관해서는 2013년 10월 15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전시사업세칙 개정이 말해주는 충격적인 사실’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관련 글의 해당 내용은 이렇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시사업세칙에는 2016년 안에 일어날 것으로 예견되는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들이 명료하게 수록되어 있다. <동아일보> 2013년 8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전시사업세칙에 명기된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은 아래와 같다. 첫 번째 발발요인은 “미제와 남조선의 침략전쟁의도가 확정되거나 공화국 북반부에 무력침공을 하였을 때”다. 두 번째 발발요인은 “남조선 애국역량의 지원요구가 있거나 국내외에서 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마련될 경우”다. 그리고 세 번째 발발요인은 “미제와 남조선이 국부지역에서 일으킨 군사적 도발행위가 확대될 때”다.

이러한 세 가지 발발요인들 가운데서 첫 번째 요인과 세 번째 요인은 개정되기 전의 전시사업세칙에도 수록되었던 것인데, 개정하면서 두 번째 요인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편집자 주]
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4048

이처럼 지금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모순이 중첩되면서 숨 막힐 듯 긴박한 상황이 조성되었건만, 이에 대해 알지 못하는 미국과 남측의 언론매체들은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보도하지 않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 땅의 국민들은 위태로운 상황이 어느 방향으로 밀려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하지만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중첩된 모순은 최근 유례없이 동반적으로 격화되었고, 그에 따라 한반도 전쟁위기는 예방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 일촉즉발 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중첩된 모순이 격화되어 발생한 현재의 한반도 전쟁위기는 불가항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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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6

[보론 추가] 불가사의한 현상,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을까?

[한호석의 개벽예감](111)
자주민보 2014년 05월 0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이것은 조선인민군 항공군 제4세대 전투기를 촬영한 것이다. 미국 군부는 북이 소련산 미그-29를 수입하여 작전배치하였다고 보지만, 북은 미그-29를 자체 기술로 개량하여 미그-29의 외형을 닯은 자국산 제4세대 전투기를 대량생산하였다.     © 자주민보


 
일촉즉발 긴박한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불가사의한 현상

기존 상식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타났다. 일촉즉발 긴박한 상황이 조성되었던 지난 3월 31일 백령도 상공에서 나타난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남측 국방부와 합참은 그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당시 백령도에 추락한 무인항공기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언급하였다. 남측 언론매체들도 무인항공기 추락사건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하였기 때문에, 백령도 상공에 나타난 불가사의한 현상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묻혀버렸다. 

그 불가사의한 현상을 파악하려는 이 글의 서술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그 위원회에 출석한 국방정보본부 관계자들로부터 듣고 <연합뉴스> 취재기자에게 전해준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연합뉴스> 2014년 4월 4일 보도에 따르면, 4월 3일에 진행된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국방정보본부 관계자들은 지난 3월 31일 미그-29 2대와 다른 기종의 전투기 2대로 편성된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가 ‘전술조치선(TAL)’을 넘어 백령도 북쪽 상공으로 접근하였다고 한다. <사진 1>은 그 날 백령도 상공에 나타난 것과 같은 기종의 조선인민군 항공군 미그-29 전투기다.

북의 전방지역 비행장들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들은 이륙한 뒤 3∼5분 안에 남측 수도권 상공에 곧바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공군은 군사분계선(MDL)과 서해 ‘북방한계선(NLL)’으로부터 북쪽으로 20∼50km 떨어진 북측 상공에 가상의 ‘전술조치선’을 그어놓고,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가 그 선에 접근하면 즉각 전투기 대응출격을 명령하게 된다.

그런데 지난 3월 31일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가 ‘전술조치선’을 넘어 백령도 북쪽 상공으로 접근하였고, 그에 맞서 한국 공군은 F-15K를 비롯한 전투기 3대를 대응출격시켰다. 그런데 ‘전술조치선’을 넘은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 중 전투기 한 대가 ‘북방한계선’도 넘어 백령도 상공으로 접근하였다. 한국 공군이 전혀 예상치 못한 비상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백령도에 주둔하는 한국군 해병6여단에는 전투기를 격추할 요격무기가 없고, 저고도 비행체를 상대할 벌컨포밖에 없다. 너무 다급해진 한국군 해병6여단은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가 날아오는 백령도 북쪽 상공을 향해 벌컨포 300발을 쏘며 경고사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유효사격고도가 900m밖에 되지 않는 벌컨포로는 전투기를 상대할 수 없으므로, 허공을 향해 포성이나 울렸을 뿐 속수무책이었다. 만일 당시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가 백령도 기지들을 공습하였더라면, 방호력이 약한 그 기지들은 화염 속에 사라졌을지 모른다. 미그-29는 로켓폭탄과 공대지미사일로 중무장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최장사거리가 30km이며, 무게가 320kg이나 나가는 강력한 고폭-장갑관통탄두가 장착된 Kh-29 공대지미사일 한 발이면 웬만한 기지를 날려버릴 수 있다.

지난 4월 3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국방정보본부 관계자들의 보고내용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1차 서술은 여기서 끝난다. 왜냐하면 당시 백령도 북쪽 상공을 향해 접근하던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가 그 뒤로 어느 항로를 따라 비행하였는지에 대해 그들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방정보본부 관계자들이 언급하지 않은 당시 백령도 상공의 긴박한 상황은 공군 핵심관계자가 사흘 뒤 <중앙일보> 취재기자에게 들려준 더 자세한 이야기에서 알려졌다. 공군 핵심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중앙일보> 2014년 4월 7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31일 낮 12시 40분경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가 ‘전술조치선’을 넘어 백령도 상공으로 접근하자 한국 공군도 서해에서 초계비행 중이던 F-15K와 F-16 전투기들에 “대기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백령도를 향해 남하비행을 하던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는 ‘북방한계선’도 넘었다.

백령도에서 황해남도 장산곶까지 직선거리는 17km밖에 되지 않으므로, 그 수역의 ‘북방한계선’은 백령도에서 북쪽으로 약 9km 떨어진 해상에 그어졌는데, 고속으로 비행하는 전투기가 9km의 거리를 통과하는 시간은 약 13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공군 핵심관계자는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가 ‘북방한계선’을 넘었다고만 언급했으나, 위에 언급한 지리공간적 조건을 살펴보면 당시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 가운데 전투기 한 대는 ‘북방한계선’ 남측 공역을 통과하여 곧바로 백령도 북쪽 상공에 진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가 인용보도한 기사에서 국방부 핵심관계자는 당시 “레이더 상에 나타난 물체는 분명 미그기였다. 초계비행을 하던 우리 전투기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E-737 피스아이)에서도 잡혔다”고 지적하였다.

비상상황을 주시하던 한국군 공군작전사령부는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 한 대가 ‘북방한계선’ 남측 공역을 쏜살같이 통과하여 백령도 북쪽 상공에 진입하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곧바로 격추명령을 하달했다.” 여기서 말하는 격추명령이란 서해 상공에서 대기 중이던 한국 공군 전투기에서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여 격추하라는 뜻이다. 그 전투기에 탑재된 공대공미사일 AIM-120D의 사거리는 180km다.

만일 한국 공군 전투기가 백령도 북쪽 상공에 진입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를 향해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은 한국 공군 전투기가 발사한 공대공미사일은 물론 한국 공군 전투기 편대를 향해 황해남도에 배치된 지대공미사일을 각각 발사하였을 것이다. 그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그런데 한국군 공군작전사령부가 전투기 격추명령을 내린 바로 그 시각,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놀랍고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사격통제레이더에 나타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를 향해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순간, 그 전투기의 항적이 갑자기 사라졌다. 공군 핵심관계자가 <중앙일보> 취재기자에게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미그기로 추정되는 물체에 공대공미사일로 격추를 시도했으나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이 물체가 레이더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3월 31일 낮 12시 40분부터 2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벌어졌던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레이더에 나타난 비행체 항적이 갑자기 레이더에서 사라지는 경우는 아래와 같이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비행체가 추락하는 경우 그 비행체의 항적이 레이더에서 갑자기 사라지는데, 당시 백령도 상공에 진입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가 추락하지 않았던 것은 명백하다.
둘째, 레이더 오작동이 일어나는 경우 비행체의 항적이 레이더에서 갑자기 사라지는데, 당시 서해 상공에서 대기 중이던 한국 공군 전투기들의 레이더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의 레이더에서 동시에 오작동이 일어났을 리 만무하다. 레이더에서 오작동이 일어난 전투기는 작전임무수행을 중지하고 즉시 공군기지로 돌아가야 하는데, 당시 한국 공군 전투기들 가운데 공군기지로 급히 돌아간 전투기는 없었다.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를 향해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순간 그 전투기의 항적이 레이더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진 한국 공군작전사령부는 아군 전투기의 레이더에서 혹시 오작동이 일어나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의 항적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F-15K를 백령도 남쪽 상공에까지 접근시켜 전투기조종사가 육안으로 정찰하게 하였으나, 항적이 사라진 그 전투기는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중앙일보>가 인용보도한 기사에서 국방부 핵심관계자는 항적이 감쪽같이 사라진 그 전투기에 스텔스도료가 칠해졌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취재기자에게 말하였다. 물론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적의 레이더전파를 흡수하는 전파흡수도료(Radar Absorbent Material, RAM)를 기체에 칠한 스텔스전투기를 운용하고 있는데, 적의 레이더가 그런 스텔스전투기를 포착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전파흡수도료를 기체에 칠한 미그-29를 운용하는 러시아 항공군의 사례를 보면, 그 도료를 칠한 미그-29는 실제보다 4∼5배 더 작은 0.60∼0.75㎡의 아주 작은 물체로 레이더에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3월 31일 백령도 상공에서 항적이 갑자기 사라진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가 만일 전파흡수도료를 칠한 스텔스전투기라면, ‘전술조치선’을 넘기 이전부터 한국군 레이더가 포착하지 못했거나, 실제보다 4∼5배 더 작은 물체로 한국군 레이더에 나타났어야 한다. 그러나 전투기가 적진 상공에 진입한 순간 갑자기 레이더에서 그 항적이 사라졌으니, 이것이야말로 설명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 현상에 대해 말해주는 추가정보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지만,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에서 서술된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당시 전투기 4대로 편성된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가 백령도 북쪽 상공에서 돌발사태를 대비하고 있는 가운데 전투기 한 대가 고속으로 남하비행을 하여 백령도 상공에 진입하였다. 그 시각 한국 공군 전투기가 사격통제레이더를 켜고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할 준비를 갖추었다. 일반적으로, 공중전에 참가한 전투기는 적기가 자기를 향해 사격통제레이더를 켜는 순간, 그 레이더전파를 포착하여 공대공미사일이 곧 날아올 상황이 조성되었음을 알게 된다. 당시 백령도 상공에 진입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도 한국 공군 전투기가 자기를 향해 사격통제레이더를 켜고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상황을 포착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전투기는 한국 공군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따돌리기 위해 기상천외한 불가시(不可視) 비행상태로 갑자기 전환하였고, 그에 따라 한국 공군 전투기 레이더에서 그 항적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비행 중에 불가시 비행상태로 갑자기 전환되는 전투기가 있을까? 이제껏 언론에 실물이 공개된 적이 없는, 레이더 감시망을 감쪽같이 뚫어버린다는 ‘전설 속의 전투기’가 혹시 그 날 백령도 상공에 나타났던 것일까?

백령도 상공에 나타난 불가사의한 현상을 파악하려면, ‘전설 속의 전투기’에 적용되었다는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plasma stealth technology) 개발에 얽힌 사연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소련-러시아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해온 사연들

미국의 전기전자공학연구소(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 Engineers)는 1963년에 펴낸 논문 ‘절연체의 레이더 교차면 또는 플라즈마를 칠한 활동영역과 원형 실린더’에서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쏘아올린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의 지구궤도비행  중에 나타난 특이한 현상에 대해 서술한 바 있다. 그것은 지구궤도에 형성된 전리층을 고속으로 통과하며 비행 중인 스푸트니크가 우주공간에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플라즈마 기류막(plasma screen)에 둘러싸이는 현상이었다. 만일 플라즈마 기류막이 스푸트니크를 완전히 둘러싸면, 그 순간 스푸트니크는 레이더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게 된다.

57년 전 소련의 우주과학자들이 지구궤도를 비행하는 스푸트니크를 관찰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이 흥미로운 현상은 당시 소련 과학계의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그리하여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소련에서 일찌감치 시작되었고, 오늘날 러시아는 그 분야에서 다른 나라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다.  

소련의 우주과학자들이 스푸트니크의 지구궤도비행을 관찰하던 중에 자연발생적인 플라즈마 기류막에 둘러싸인 현상을 발견한 때로부터 42년 긴 세월이 흐른 1999년 1월 20일 러시아의 <이타르-타스(ITAR-TASS)통신>에 주목할 만한 대담기사가 실렸다. 그 통신사의 취재기자 니콜라이 노비취코브(Nicholai Novichkov)가 러시아의 켈디쉬연구소(M. V. Keldysh Research Center) 소장이며 러시아과학원 원사인 아나톨리 코르테에브(Anatoliy Korteev) 박사와 대담한 기사다. 대담에서 코르테에브는 “인공적으로 발생시킨 플라즈마 구름(plasma cloud)에 둘러싸인 비행체는 (적의 레이더에) 탐지될 가능성을 수 백 배 이상 확실히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플라즈마 기류막을 플라즈마 구름이라고 불렀는데, 원래 플라즈마라는 것은 이온, 전자, 중성자의 유사중성적 혼합물(quasi-neutral mix)로서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와 강하게 반응하는 성질을 지녔다. 바로 이런 성질을 이용하면 레이더전파를 흡수하고 그것을 열에너지로 전환시키는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은 적의 레이더전파를 피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적의 전자기파(EMP) 공격도 막아낼 수 있다.

위의 대담에서 코르테에브 박사는 인공적으로 생성된 플라즈마 기류막에는 전자기에너지(electromagnetic energy)를 흡수하는 성질도 있고, 전자기파를 반사하지 않고 자기 주위에로 통과시키는 성질도 있는데, 이런 두 가지 성질을 이용하여 적의 레이더전파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그는 이러한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을 지상에서 실험하였고, 비행체에 적용하여 실험하였는데, 스텔스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소장으로 근무하는 켈디쉬연구소에서 제1세대 플라즈마 장치를 이미 오래 전에 개발하였고, 레이더전파를 반사하면서 그 파장을 변동시킬 뿐 아니라 교란전파까지 발신할 수 있는 제2세대 플라즈마 장치를 개발하였고, 최근에는 제3세대 플라스마 장치를 개발하였는데, 이전에 만든 제1세대 플라즈마 장치와 제2세대 플라즈마 장치는 이미 다른 나라에 수출하였다고 밝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999년 당시 켈디쉬연구소가 개발한 제3세대 플라즈마 장치는 무게가 100kg을 넘지 않고, 10킬로와트 안팎의 전력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무게가 100kg을 넘지 않고 10킬로와트 안팎의 전력을 소비하는 플라즈마 장치가 개발되었다면, 그것을 전투기에 장착할 수 있다.

코르테에브 박사의 대담기사를 통해 러시아가 제3세대 플라즈마 장치를 개발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때로부터 3년이 지난 2002년 6월 미국의 군사과학월간지 <전자국방저널(Journal of Electronic Defense)>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러시아 항공군은 자국에서 개발된 플라즈마 장치를 수호이-27B 전폭기에 장착하고 성능시험을 이미 실시하였다고 한다.

2005년 10월 21일 러시아 일간지 <노브예 이즈베스티야(Novye Izvestia)>는 코르테에브 박사의 말을 인용하여 켈디쉬연구소가 플라즈마 기류막을 방사하는 작고 가벼운 이동식 플라즈마 방사기(mobile plasma generator)를 개발하였다고 보도하면서, “이 장치는 비행체 주위의 공기를 이온화(ionize)하는 강력한 전자파를 방사함으로써 비행체 주위에 플라즈마 구름을 효과적으로 형성한다”고 하였다. 그 보도기사에서 코르테에브 박사는 비행체에 장착된 플라즈마 방사기가 작동할 때 비행체에 내장된 전자장비와 교신장치에서 전자장애가 일어나 불통되는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였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만든 플라즈마 방사기는 러시아 정부당국으로부터 성능검사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비행 중인 전투기 맨 앞의 원뿔꼴 두부(nose cone)에 장착된 플라즈마 방사기에서 방사한 플라즈마 기류막이 고속으로 날아가는 전투기를 전체적으로 완전히 감싸지 못하는 결함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런 결함은 2003년에 러시아과학원 산하 전자기 이론 및 실용연구소(Institute for Theoretical and Applied Electromagnetics)가 실시한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의 시험비행에서 나타났다. 그 시험비행에서는 지름이 88.9cm이고 접시처럼 둥그렇게 생긴 플라즈마 방사기를 수호이-35 기체 맨 앞의 원뿔꼴 두부에 장착하고 고속으로 비행하면서 플라즈마 기류막을 방사하였는데, 플라즈마 기류막은 기체 전부를 완전히 감싸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 실험은 러시아가 2003년에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 제작에서 부분적 성공을 거두었음을 말해준다.  

그런 결함이 나타났다면, 플라즈마 방사기를 전투기의 원뿔꼴 두부에 한 개만 장착할 게 아니라 두 날개에도 장착하면 플라즈마 기류막으로 기체 전부를 감쌀 수 있지 않을까? 러시아 항공군은 군사기밀에 속하는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의 존재에 대해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플라즈마 방사기를 한 군데 이상 장착하여 완성시킨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가 그 나라에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아직 개발하는 중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 <사진 2> 이것은 지금 러시아가 개발 중인 제5세대 전투기인 수호이 T-50(PAk FA) 시제기의 비행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러시아는 이 전투기에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을 적용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 전투기는 오는 2016년에 작전배치될 예정이다.     © 자주민보


웹사이트 ‘세계안전관찰’은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 러시아가 개발 중인 제5세대 전투기 수호이 T-50(PAK FA)에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이 적용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러시아는 수호이 T-50의 첫 시험비행을 2010년 1월 29일에 실시하였는데, 오는 2016년에 작전배치할 예정이다.


‘전설 속의 전투기’를 만들기 위해 힘써온 북과 중국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999년 1월 20일 <이타르-타스통신> 대담기사에서 아나톨리 코르테에브 박사는 켈디쉬연구소가 개발한 제1세대 플라즈마 방사기와 제2세대 플라즈마 방사기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였다고 말한 바 있는데, 1990년대에 러시아로부터 플라즈마 방사기를 수입할 수 있는 나라는 북과 중국밖에 없다.

2010년 11월 19일 웹사이트 ‘러시아 밀리터리 포럼(Russia Military Forum)’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중국은 여러 개의 플라즈마 방사기를 기체 곳곳에 장착한 제5세대 전투기를 개발하는 중이라고 한다. 지금 중국이 개발하고 있는 제5세대 전투기의 명칭은 J-20이다. 중국은 J-20의 첫 시험비행을 2011년 1월 11일에 실시하였는데, 오는 2017년부터 2019년 사이에 작전배치될 예정이다. 여러 개의 플라즈마 방사기를 J-20 기체 곳곳에 장착하게 된다는 것은, 중국이 플라즈마 방사기를 소형화하고 경량화하는 고도의 기술을 개발하였음을 의미한다.  

▲ <사진 3> 이것은 최근 체코공화국에서 만든 플라즈마 발생기다. 이 장치의 크기는 60cmX30cmX20cm이며, 무게는 25kg인데, 실내공기를 정화하는 데 사용한다.     © 자주민보


이러한 정보를 살펴보면,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을 거의 완성하는 단계에 이른 러시아와 중국은 적의 레이더망을 감쪽같이 뚫는다는 ‘전설 속의 전투기’ 시제품을 이미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러시아와 중국처럼 북도 플라즈마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힘써왔다. 이를테면, 북의 과학자들이 플라즈마 분야에서 각종 산업장비를 개발하는 성과를 지적할 수 있다.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오늘날 플라즈마 기술은 각 산업부문에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지난 시기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조선국가과학원 레이자연구소(남측에서는 레이저로 표기함)가 플라즈마 분야에서 기술개발에 힘써왔는데, 그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2005년 5월 플라즈마 전원장치와 플라즈마 절단 및 용접기를 개발하였고, 2006년 1월 주사식 공기플라즈마 열처리장치를 개발하였고, 2011년 1월 새로운 플라즈마 열처리기술을 개발하였다. 조선국가과학원 산하 레이자연구소가 개발한 주사식 공기플라즈마 열처리장치는 아르곤 같은 불활성기체를 쓰지 않고 공기를 쓰면서 플라즈마의 전기적 특성을 이용하여 플라즈마를 생성시키는 장치라고 한다. 

북에서 각종 첨단산업장비는 국가과학원에서 개발하고, 각종 첨단군사장비는 국방과학원에서 개발한다. 그렇다면 국방과학원 과학자들은 전투기 기체 곳곳에 장착할 수 있을 만큼 소형화, 경량화된 최첨단 플라즈마 방사기를 만들어냈을까?


▲ <사진 4>2010년 9월 17일 오후 3시경 중국 랴오닝성 푸순현 라구향 쑹강마을 사탕수수밭 인근에 조선인민군 항공군 미그 전투기가 불시착하였다. 비행 중에 생긴 기계고장으로 정상항로를 벗어난 사고기가 중국 영공으로 약 160km나 들어갔는데도, 중국인민해방군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았다. 이것은 그 사고기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 자주민보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2010년 8월 17일 중국 정부당국은 당일 오후 3시경 ‘국적불명의 비행기’ 한 대가 중국 랴오닝(遼寧)성 푸순(撫順)현 라구(拉古)향 쑹강(松崗)마을에 불시착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튿날 중국 <신화통신>은 “사고기가 기계고장을 일으켜 방향을 상실하고, 중국 영공에 잘못 진입한 뒤 추락했다. 조선측이 중국측에 사과를 표명했다”고 보도하였다. 불시착한 그 비행기는 조선인민군 항공군 소속 전투기였던 것이다. 현장사진에 나타난 전투기는 미그-21인 것으로 보인다. 불시착 지점은 중국 선양(瀋陽)에서 동남쪽으로 약 45km 떨어진 곳이며, 신의주로부터는 약 160km 떨어진 곳이다.

주목하는 것은, 비행 중에 기계고장이 생겨 정상항로를 벗어난 전투기가 중국 영공으로 160km 정도 진입하여 약 5분 동안 비행했는데도, 중국인민해방군 레이더망이 포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 푸순 외곽에 불시착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비행 중 기계고장으로 정상항로에서 벗어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가 중국인민해방군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고 중국 영공 깊숙이 비행하다가 불시착한 사건이 일어나기 40일 전에 중국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 이었다.


▲ <사진 5> 이 사진은 2010년 7월 7일 오후 8시 40분경 중국 항저우의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출현한 정체불명의 섬광비행체를 지역주민이 촬영한 것이다. 매우 밝은 빛을 발하는 섬광체가 날아가는 장면처럼 보인다. 이것은 중국이 개발 중인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시험비행한 상황으로 보인다.     © 자주민보

<사진 5>에서 보는 것처럼, 2010년 7월 7일 오후 8시 40분경 중국 샹하이(上海)에서 서남쪽으로 약 180km 떨어진 항저우(杭州)의 샤오산(肅山)국제공항 상공에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섬광을 내며 날아가는 놀라운 장면을 지역주민들이 보았다. 당시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갑자기 출현한 정체불명의 섬광비행체를 보고 놀란 샤오산국제공항 당국은 오후 8시 45분부터 9시 41분까지 항공기 이착륙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이 정체불명의 섬광비행체가 출현한 것을 두고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이러저러한 추측이 무성하였는데, 그것은 중국이 개발 중인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시험비행한 상황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의 항적이 레이더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지상에서 그 전투기를 육안으로 보면 섬광을 발하는 비행체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투기에 장착된 플라즈마 방사기가 작동하여 기체를 플라즈마 기류막으로 감싸면, 레이더에서는 그 전투기의 항적이 갑자기 사라지지만, 플라즈마 기류막에 감싸여 날아가는 전투기를 지상에서 육안으로 바라보면 눈부신 형광성 발광체로 보이게 된다. 전파흡수도료를 칠한 스텔스 전투기와 달리,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는 섬광을 발하는 전설 속의 미확인비행체(UFO)처럼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나는 것이다.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가 레이더로는 물론 육안으로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오다. 

▲ <사진 6>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을 적용한 '전설 속의 전투기'는 섬광을 발하는 형광성 발광체로 보인다. 만일 지난 3월 31일 낮 12시 40분경 백령도에 주둔하는 한국군 해병6여단 병사들이 이 사진에 나타난 것과 같은 섬광체가 날아가는 것을 목격하였다면,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전설 속의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다고 확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목격담은 없었다.     © 자주민보


지난 3월 31일 낮 12시 40분경 백령도에 주둔하는 한국군 해병6여단 소속 병사들이 <사진 6>에서 보는 것처럼 형광성 발광체가 날아가는 비행장면을 목격하였다면, 그 목격사실이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로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각에 백령도 상공에서 형광성 발광체를 목격하였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백령도 상공에 진입한 전투기의 항적이 레이더에서 사라진 불가사의한 현상은 북에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가 존재할 가능성을 말해주는 유력한 증거이지만, 비행하는 형광성 발광체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나오지 않은 이상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다고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북에서 말하는 ‘붉은 비행대’의 전투기들이 형광성 발광체의 모습으로 한반도 상공에 거대한 불보라처럼 출현하는 날, ‘전설 속의 전투기’가 실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보론] 섬광비행체의 정체가 밝혀졌다 (자주민보 2014년 05월 06일)


▲ 이 사진은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이 중국의 동영상 사이트 유쿠(Youku)에 오른 동영상을 퍼날라 2010년 7월 20일에 게시한 동영상에서 잡아낸 것이다. CNN은 미국 군사전문가의 논평을 인용하면서 섬광비행체를 촬영한 이 동영상은 합성사진으로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그러나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는 바로 저렇게 흰색 섬광처럼 보이는 거대한 플라즈마 기류막을 방사하면서 날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 자주민보, 한홋석 소장 제공


문제의 사진에 나타난 비행체는 여객기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분량의 각종 정보가 해류처럼 밀려다니는 인터넷에는 믿을 수 있는 정보도 있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생겨난 착오정보도 있고, 사실을 과장 또는 축소한 왜곡정보도 있고, 없는 일을 상상하여 꾸며낸 날조정보도 있다. 컴퓨터 합성사진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널리 보급되면서 그럴 듯하게 조작된 사진자료도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와 외계비행접시를 혼동하는 경우는 착오정보다. 기괴한 몰골을 한 외계인들이 타고 지구에 가끔 내려온다는 외계비행접시에 관한 흥미로운 전설은 소련이 플라즈미 스텔스 기술을 개발하기 훨씬 이전인 1940년대부터 세간에 떠돌며 공상과학소설의 좋은 소재로 되었다. 외계비행접시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정교하게 다듬은 이온추진체에 관한 이야기도 작가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존재이지 국제과학계에서 거론되는 과학적 실체는 아니다.

외계비행접시나 이온추진체와 달리, 플라즈마 방사기는 무슨 신묘한 무기가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하는 군사장비다. 나는 지난 5월 5일 <자주민보>에 ‘불가사의한 현상,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을까?’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는데, 그 글에서 플라즈마 방사기와 그것을 장착한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에 관해 서술한 내용은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러시아, 중국, 미국에서 과학자들의 공식 언급 또는 유력한 언론매체의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객관적 사실이다. 다만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하였거나 거의 완성한 것으로 보이는 북, 러시아, 중국은 그 특별한 전투기에 관한 군사기밀이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으므로, 그 특별한 전투기의 실체가 언론에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모호하게 보이는 것뿐이다.


▲5일 기고한 '불가사의한 현상,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을까? '라는 기사에 첨부한 사진으로 [<사진 5> 이 사진은 2010년 7월 7일 오후 8시 40분경 중국 항저우의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출현한 정체불명의 섬광비행체를 지역주민이 촬영한 것이다. 매우 밝은 빛을 발하는 섬광체가 날아가는 장면처럼 보인다. 이것은 중국이 개발 중인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시험비행한 상황으로 보인다. ]라고 필자가 설명글을 달았는데 다시 자료를 찾아 확인해 보니 이는 전투기가 아니라 여객기임을 중국 보도를 통해 확인하였다.  ©한호석 소장 


그러한 정보차단으로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의 실체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에 떠도는 그 전투기에 관한 정보들 가운데는 사실관계에 맞지 않게 혼동된 정보도 있다. 이번에 발표된 나의 글 ‘불가사의한 현상,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을까?’에 들어간 <사진 5>가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 그 사진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촬영한 것이 아니다.
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5962

나는 그 글에서 2010년 7월 7일 오후 8시 40분경 중국 항저우의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나타난 섬광비행체에 관해 서술하면서 그와 관련된 사진자료의 신빙성에 관해 더 치밀하게 조사하지 못하였다. 사진자료의 신빙성에 관한 불철저한 조사가 착오로 촬영된 사진자료를 싣는 실수로 이어지고 말았다. 문제의 사진이 중국 언론에 보도되었던 내막은 아래와 같다. 

중국 <신화통신> 2010년 7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사진을 촬영하여 언론에 제공한 사람은 마쉬준이라는 지역주민인데, 그는 아내와 함께 밤에 산책을 나갔다가 붉은 섬광과 흰 섬광을 발하는 비행체가 자기들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을 목격하고 카메라로 촬영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촬영한 섬광비행체는 샤오산국제공항 활주로에 착륙하기 위해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던 평범한 여객기였다.

일반적으로, 여객기 기체에는 안전운항을 위한 섬광등이 여러 개 장착되었는데, 착륙하기 위해 저공비행을 할 때는 그 섬광등을 모두 켜게 되고, 따라서 야간에는 여객기 기체가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고 섬광등 불빛만 매우 환하게 보인다. 문제의 사진을 촬영한 마쉬준은 여객기 섬광등이 발하는 눈부신 빛을 ‘이상한 빛’이라고 착각하고 촬영하였던 것이다. 문제의 사진에 나타난 섬광비행체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가 아니라 섬광등을 켠 여객기였다는 점은 아래와 같은 사실에서 입증된다.

첫째, 그 날 샤오산국제공항 인근 상공에 섬광비행체가 나타난 시각은 오후 8시 40분경인데, 문제의 사진이 촬영된 시각은 마쉬준의 카메라에 오후 8시 26분으로 표시되었다. 이러한 시차는 문제의 사진이 섬광비행체가 나타나기 이전에 여객기를 촬영한 것임을 말해준다.

둘째, 비행 중인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에서 방사되는 플라즈마 기류막은 언제나 흰 섬광만 발할 뿐이고 다른 색 섬광은 발하지 않는다. 반면에 착륙하기 위해 저공비행 중인 여객기는 흰색 섬광등과 붉은 섬광등을 모두 켠다. 문제의 사진에는 흰 섬광과 붉은 섬광이 모두 나타났으므로, 문제의 사진에 촬영된 것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가 아니라 여객기인 것이다.  

셋째, 비행 중인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에서 방사되는 플라즈마 기류막은 전투기 기체 전부를 감싸는 것이기 때문에, 전투기 크기보다 훨씬 더 큰 거대한 비눗방울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제의 사진에 나타난 섬광은 일렬로 장착된 섬광등 몇 개가 빛을 발하는 모습이므로, 문제의 사진에 촬영된 것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가 아니라 여객기인 것이다.  


섬광비행체에 대한 중국 당국의 조사결과

미국 텔레비전방송 <ABC 뉴스> 2010년 7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민용항공국(CAAC) 대변인은 그 텔레비전방송 취재기자에게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섬광비행체가 나타난 사건에 대해 중국 당국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나중에 중국 당국은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은 <베이징시보> 2010년 7월 26일부에 실렸다. 중국 당국의 조사결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그 날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나타난 섬광비행체를 촬영한 것이라고 하면서 언론에 보도된 사진과 동영상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과 동영상들은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나타난 섬광비행체와 무관한 것들이며, 여객기를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들이다.

둘째, 그 날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나타난 섬광비행체가 외계비행접시와 연관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그 섬광비행체가 외계비행접시처럼 비행하다가 공중에 멈춰있었다는 당시 언론보도 내용은 오보다.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섬광비행체가 나타난 사건을 보도한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2010년 7월 16일 보도기사에서 유씨 성을 가진 목격자인 버스운전사는 “그 물체가 마치 도망치듯이 서쪽으로 매우 빠르게 날아갔다”고 말했다. 

셋째, 샤오산국제공항 지상관제소는 그 섬광비행체를 레이더로 포착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섬광비행체의 항적이 지상관제소 레이더에 나타났다는 당시 언론보도는 오보다.

주목하는 것은, 중국 당국이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나타난 섬광비행체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섬광비행체가 비행한 것과 그것을 레이더로 포착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레이더 사각지대에 자가용 항공기 또는 군용기가 나타난 것일 수 있다고 얼버무렸다는 점이다.

섬광비행체는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으므로 당연히 레이더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고,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가 비행하였다는 사실은 중국인민해방군의 군사기밀이므로 중국 당국은 레이더 사각지대에 나타난 자가용 항공기 또는 군용기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섬광비행체가 나타난 그 다음날인 2010년 7월 8일 <중국일보>는 익명의 소식통이 전한 말을 인용하여 중국 당국이 이미 그 섬광비행체의 정체를 확인하였지만, 군사문제에 관련된 일이라서 관련정보를 언론에 공개하지 못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중국 당국은 그 섬광비행체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군사기밀 노출을 꺼려하기 때문에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ABC 뉴스> 2010년 1월 6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이전에 계속된 섬광비행체의 출현이 군사훈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고 한다.


대도시 상공에도 출현하고, 국경지대 상공에도 출현하는 섬광비행체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 이외에 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섬광비행체가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나타난 이후에도 섬광비행체의 출현은 심심치 않게 언론보도를 탔다. 이를테면, 샹하이 상공과 베이징 상공에 거의 같은 시각에 섬광비행체가 나타난 적도 있다. <샹하이일보> 2011년 8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8월 20일 오후 9시경 샹하이 상공을 비행하던 여객기 조종사들이 거대한 빛을 발하는 섬광비행체를 목격하고 이를 당국에 신고하였다고 한다. 조종사의 목격담에 따르면, 그 섬광비행체는 샹하이 상공 10,700m의 고공에서 비행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조종한 항공기가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올라갔을 때, “거대한 공처럼 생긴 흰색 비행체가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이다. 목격자가 거대한 공처럼 생긴 흰색 섬광비행체를 보았다고 말한 것으로 봐서, 그 비행체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인 것은 분명하다. 목격담에 따르면, 그 비행체는 약 20분이 지난 뒤에, 흰색 섬광이 어두워지면서 차츰 사라졌다고 한다. 목격자는 그 섬광의 길이가 92km나 된다고 추정하였지만, 그것은 육안으로 거리측정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일어난 착시현상이 아니면 오보로 보인다.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에서 방사하는 플라즈마 기류막의 길이가 그처럼 길 수는 없다.

샹하이 상공에 섬광비행체가 나타난 때와 거의 같은 시각에 베이징에서도 섬광비행체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나왔다. 과학지 편집인 경력이 있는 천체관측 동호인 유준의 목격담에 따르면, “흰색 비눗방울처럼 생긴 비행체가 베이징 상공에 나타났다가 5분 만에 사라졌다”고 한다. 

섬광비행체는 2012년에도 계속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중국 대도시 상공이 아니라 중국-인도 국경지대 상공에 나타났다. <인디아 투데이> 2012년 11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인도 육군부대와 인도-티벳 국경지대에 배치된 인도 국경경비대는 2012년 8월 1일부터 10월 15일까지 자무(Jammu)와 카쉬미르(Kashmir)의 라닥(Ladakh)지역 중국-인도 국경지대 상공에 섬광비행체가 100회 이상 낮과 밤에 계속 출현하였음을 상부에 보고하였다. 인도 육군부대는 산의 정상에 이동식 레이더를 끌어다 올려놓고 섬광비행체를 탐지하려고 하였으나, 육안으로 보이는 그 비행체의 항적은 레이더에 나타나지 않았고, 나중에는 무인정찰기까지 띄웠으나 아무 것도 탐색하지 못했다. 또한 인도 천문대의 천문학자들이 사흘 동안 그 섬광비행체를 관측하였으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였고, 인도 국가기술연구원과 국방연구개발원의 전문가들도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였다. 인도의 군사정보기관 관계자들은 그 섬광비행체가 중국이 심리전에 동원한 장비 또는 인도군 상황을 탐지하기 위해 정교하게 만든 섬광등을 비춘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위에서 서술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중국인민해방군의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 개발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러 시험비행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완성하여 작전배치한 뒤에 비행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에서 중국에 뒤떨어지지 않는 북도 그런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섬광비행체를 육안으로 보았다는 여러 지역의 목격담이 언론에 몇 차례 보도된 것과 달리, 지난 3월 31일 백령도 상공에서 섬광비행체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그 날 백령도 상공에 나타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의 항적이 한국군 레이더에 나타났다가 갑가지 사라진 불가사의한 현상은 북이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북이 만약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 시제기를 시험비행하였다면, 적아가 살벌하게 대치 중인 백령도 상공으로는 출동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레이더에서 항적이 갑자기 사라지는 북의 전투기는 올해 안에 또다시 나타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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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만 하기엔 너무 큰 슬픔

<민중의 소리> 2014년 05월 0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비탄과 절망의 시간이 길다. 너무 길다. 세월호 대참사로 사람들의 가슴에 깊게 패인 상처가 견딜 수 없이 아프다.
 
불러도 대답 없는 아들딸의 이름을 부르며 며칠 밤 며칠 낮을 통곡하다가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린 실종자 가족들.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고 팽목항에 찾아간 광주의 어머니들이 있다. 그 어머니들은 “함께 울겠습니다. 함께 분노하겠습니다”라는 글이 적힌 팻말을 들고 취재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자식을 살릴 수만 있다면, 이 바닷물을 다 마셔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 엄마다.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귀로는 들을 수 없고 가슴으로 들어야 하는 어머니의 뜨거운 목소리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바닷물을 다 마셔버릴 수 있다고 말하는 어머니에게서 망망대해보다 넓고 큰 사랑의 바다를 목격한다.
 
그런 심성을 가진 이 땅의 어머니들은 바람 부는 팽목항 부두에 서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누가 우리 아이들을 저 차디찬 바다 속에 밀어 넣었나?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은 따로 있다
 
정권에 대한 비판력을 거세당하고 아첨쟁이로 전락한 보수언론은 선장과 선주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세상의 이목을 그 두 사람의 죄행으로만 끌어내리려 한다. 물론 그 두 사람은 응당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죄인이다. 사경에 처한 세월호 탑승객들을 버리고 자신만 살겠다고 배에서 탈출한 선장도 직무유기범으로 처벌을 받아야 하고, 돈벌이에 눈이 멀어 선박안전규칙을 위반하고 선박안전운항을 포기하며 경영비리까지 저지른 선주도 배임수재범으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야당 공동대표의 말을 빌면, 이번 세월호 대참사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인은 따로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침몰한 배에 갇혀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는데도 구조대책 긴급명령을 내리지 않고 방치한 죄인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세월호 침몰 같은 대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끔찍한 사회체제, 위부터 아래까지 모조리 썩고 병든 이 더러운 사회체제를 나 몰라라 방치한 죄인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할 국정최고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서도 책임전가 발언으로 시간을 끌며 사태를 지나치려는 파렴치한 죄인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이 땅의 최고권력자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야당 공동대표가 지목한 바로 그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아닌가! 비탄과 절망의 상처를 안고 괴로워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박근혜 정권은 어머니의 통곡이 듣기 싫은 듯 두 귀를 막고 부실대응과 책임회피의 독소를 재난의 상처 위에 뿌리고 있으니 원성이 하늘에 닿았다. 이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대참사에서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고 말하는 까닭은, 무슨 대책본부가 10개가 넘게 난립하여 우왕좌왕하면서 침몰선박에서 탑승객을 살리는 긴급구조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자기의 직권으로 대책본부를 통폐합하여 단일지휘체계를 세우고 강력한 구조대와 구조장비를 사고현장에 급파하였어야 할 최고책임자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월호 대참사 같은 위기상황에서 자기의 직권으로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최고권력자에게 주어진 법적 책임이요 정치적 의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의 그런 책임과 의무에 대해 손을 털고 청와대 집무실에서 맴돌다가, 들끓는 여론을 의식하여 마지못해 사고현장을 한 차례 둘러보았고, 분향소에 나타나 엉뚱하게도 추모객 할머니와 손을 잡고 사진 한 장 찍었을 뿐이다.
 
이 땅의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허락한 권력은 민생파탄으로 울부짖는 노동자, 농민, 서민의 생존권투쟁을 짓누르라는 독재권력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이 땅의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허락한 권력은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하여 진보정당을 강제로 해산하라는 폭압권력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이 땅의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허락한 권력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데 사용하라는 권력이다. 민심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책무이행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내려야 할 준엄한 심판
 
세월호 대참사와 관련하여 이 땅에 조성된 민심의 흐름은 심상치 않다. 이를테면, <한겨레21>과 여론조사기관이 최근 합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73.8%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정부 발표를 신뢰할 수 없다고 답했고, 응답자의 84.7%는 세월호 침몰 같은 대참사가 또 다시 일어날 것으로 우려하였다고 한다. 이 여론조사결과는 박근혜 정권이 민심을 저버렸음을 명백히 말해준다.
 
이번에 세월호 침몰사고로 전대미문의 대참사를 겪으면서 이 땅의 국민들은 박근혜 정권이 민심을 저버린 독재정권이라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원래 부정선거, 관권선거로 불법당선되었다는 국민적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박근혜 정권은 결국 독재정권의 정체를 세상에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다.
 
노동자, 농민, 서민을 민생파탄의 고통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이들마저 죽음과 공포로 내몬 용서 받지 못할 독재정권은 반드시 이 땅의 어머니들이 내리는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집에서 걱정하며 울기만 하면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거리로 나왔다.” 이것은 유모차를 끌고 거리행진에 나선 어머니가 취재기자에게 들려준 말이다.
  
지난 2일 어느 일간지에 실린 짤막한 두 문장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너무 늦어 미안하다. 이제라도 엄마가 싸울게.” 비탄과 절망을 눈물을 씻고 침묵의 자리에서 일어서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이 죽음과 공포의 사회체제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눈물 젖은 음성이라서, 죽음과 공포의 사회체제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결연한 음성이라서 듣는 이의 가슴에 더욱 크게 울린다.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이 땅의 어머니들이여, 문을 열고 촛불의 광장으로, 공분의 거리로 나오시라. 용서하지 못할 독재정권을 어머니의 이름으로 심판하시라. 우리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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