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20

이 땅의 '주산국'에는 뻬데베싸가 없다

변혁과 진보 (19)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국가경제의 30%만 국유화한 베네주엘라
 
2010428일 브라질을 방문 중이던 우고 차베스 베네주엘라 대통령이 브라질리아에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주엘라 경제 분야에 대한 국유화 목표가 30%를 넘지 않을 것이다. 국유화는 석유와 석유화학, 철강 등 전략산업 부문에만 집중되고 있다. 국유화 정책은 전략산업 부문을 장악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으며, 이를 제외한 다른 산업부문에는 민간투자 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베스 대통령이 말하는 전략산업 국유화는 주요산업 국유화이므로, 그의 말에 따르면 베네주엘라 정부는 국가경제의 30%를 국유화하고 나머지 70%는 사유화 상태로 남겨둘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국가경제의 50% 정도를 국유화해야 낡은 경제질서를 변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차베스 대통령은 왜 자국의 국유화 수준을 국가경제의 30% 이상으로 확대하지 않는 것일까? 베네주엘라 정부가 추진한 주요산업 국유화의 내막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동안 베네주엘라 정부가 추진해온 주요산업 국유화는 아래와 같다.

20071월 베네주엘라 통신회사 CANTV를 국유화하였고, 2월 미국 전기회사 에이이에스 코포레이션(AES Corporation)이 소유한 전기회사 카라카스 전력(Electricidad de Caracas)을 국유화하였고, 5월 세계 최대의 유전지대인 오리노코 유전지대(Orinoco Petroleum Belt) 개발사업을 국유화하였다.

 20084월 룩셈부르그에 본부를 둔 다국적 제련회사 테르니움(Ternium)이 주식 60%를 소유한 제련회사 씨도르(Sidor)를 국유화하였고, 6월부터 8월까지 기간에는 멕시코에 본부를 둔 다국적 건재 및 시멘트 회사 쎄멕스(Cemex), 스위스에 본부를 둔 다국적 건재 및 시멘트 회사 홀씸(Holcim), 프랑스에 본부를 둔 다국적 건재 및 시멘트 회사 라파즈(Lafarge)의 현지 기업들을 각각 국유화하였다.

20092월 미국에 본부를 둔 초국적 곡물기업 카길(Cargill)이 소유한 쌀가공기업을 국유화하였고, 3월 아일랜드 판지생산기업 스머핏 카파 그룹(Smurfit Kappa Group)이 소유한 토지 1,500 헥트아르를 국유화하였고, 5월 스페인 금융그룹 그루뽀 싼딴데르(Grupo Santander)가 소유한 베네주엘라 은행(Banco de Venezuela)을 국유화하였다.

 20101월 프랑스 식품기업 엑시또(Exito)가 소유한 대형 식료품판매장 6개소를 국유화하였고, 6월 미국 석유회사 헬머리취 앤드 페인(Helmerich & Payne)이 소유한 유정설비를 국유화하였고, 10월 미국 유리생산기업 오웬스 일리노이(Owens-Illinois)가 소유한 유리병 공장 두 곳을 국유화하였고, 같은 달 베네주엘라 제강회사 씨벤싸(Sivensa)가 소유한 제강회사 씨데투르(Sidetur)를 국유화하였다.
 

주요산업 국유화를 무상몰수 방식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베네주엘라의 주요산업 국유화에서 주목하는 것은 국유화 추진기간과 국유화 시행대상이다.

첫째, 베네주엘라 정부는 4년에 걸쳐 국유화를 추진하였다. 전격적으로 단행하지 않고, 4년동안 추진하였을까? 그 까닭은 베네주엘라 정부가 주요산업을 국유화할 때 무상몰수 방식이 아니라 유상수매 방식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유상수매 국유화란 국유화할 대상 기업의 주식을 60% 이상 사들여 경영권을 인수, 장악하는 것이다. 베네주엘라 정부가 국유화하려는 기업을 상대로 밀고 당기는 기업주식 매매협상을 벌이는 바람에 국유화 추진기간이 4년으로 늘어났다.

베네주엘라 정부가 국유화 대상 기업의 주식을 90% 이상 사들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100%를 사들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의 소유권을 완전히 국유화한 것은 아니고 경영권만 국유화한 것이다. 베네주엘라의 주요산업 국유화는 베네주엘라 정부가 주요산업의 주식을 수매하여 경영권을 장악한 것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주식을 수매하여 경영권을 장악하였기 때문에, 베네주엘라 주식시장은 폐쇄되지 않고 여전히 온존, 가동되었다.

베네주엘라 정부는 왜 유상수매 국유화를 시행하였을까? 그 까닭은 시장붕괴에 따른 경제파국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베네주엘라 정부가 무상몰수 국유화를 시행하였다면, 주식시장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시장이 무너졌을 것이고 그에 따르는 경제파국은 상상을 초월하였을 것이다. 시장붕괴와 경제파국에 대처할 방도가 없었던 베네주엘라 정부는 무상몰수 국유화에 따르는 치명적 위험부담을 피해야 하였다.

둘째, 제강회사와 통신회사 두 곳을 제외하면, 국유화한 기업들은 거의 모두 외국계 대기업들이 소유한 현지 기업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외국계 대기업들이 소유한 베네주엘라 현지 기업들이 국유화되었는데도, 해외에 존재하는 자국 대기업 자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관련국들이 베네주엘라의 국유화에 반발하지 않았다. 그 까닭은, 베네주엘라 정부가 무상몰수 방식이 아니라 유상수매 방식으로 외국계 대기업의 현지 기업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유상수매 국유화는 일종의 국제거래이므로, 국제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베네주엘라 정부가 무상몰수 국유화를 시행하였다면, 베네주엘라에 투자한 외국계 대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미국이 해상봉쇄, 무력침공, 전복공작 등을 자행하였을 것이다. 베네주엘라의 시장이 붕괴하여 경제파국에 빠진 조건에서 미국의 해상봉쇄, 무력침공, 전복공작까지 겹친다면, 베네주엘라 정부는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였을지 모른다.

이처럼 베네주엘라 정부는 변혁주체와 변혁대상의 세력관계를 타산하고 베네주엘라가 처한 현실에 맞게 유상수매 국유화를 시행하였고, 그로써 그들의 사회변혁은 패배와 좌절의 위험을 피하여 계속 전진할 수 있었다.

 
유상수매 국유화에 필요한 재정은 어디서 조달했을까?
 
누구나 알고 있듯이, 대기업 한 두 개의 주식도 아니고 주요산업 전반의 주식을 60% 이상 사들이려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다. 베네주엘라 정부는 유상수매 국유화에 필요한 막대한 재정을 어디서 조달하였을까?

베네주엘라 정부의 유상수매 국유화에 투입된 재정은 석유자금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베네주엘라의 국영석유기업 베네주엘라 석유(Petr leos de Venezuela)의 기업수익금으로 주요산업을 국유화할 수 있었다. 기업명칭의 머릿글자를 딴 약칭으로 뻬데베싸(PDVSA)라고 부르는 이 국영기업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는 거대한 전략기업이다. 2009년 현재 자산가치가 1,372억 달러가 되는 이 기업의 2009년도 총수익은 9118,000만 달러이고, 실수익은 161,000만 달러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규모가 큰 석유기업이다. 이 석유기업은 197611일에 창설될 때부터 원래 국영기업이었다.

차베스 대통령이 룰라 당시 브라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베네주엘라 주요산업 국유화를 국가경제의 30%선까지 추진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베네주엘라 정부가 유상수매 국유화에 투입할 뻬데베싸의 자금동원력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베네주엘라 정부의 유상수매 국유화에 투입하는 자금동원력이 한계에 이른 까닭은, 뻬데베싸의 기업수익금을 모두 유상수매 국유화에만 투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네주엘라 정부는 그 기업의 수익금 가운데 상당 부분을 각종 사회복지정책에 지출해왔다. 이를테면,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년 동안 뻬데베싸가 베네주엘라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에 조달한 재정은 6114,000만 달러다.

차베스 대통령이 사전에 예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베네주엘라의 사회변혁은 때를 잘 만나 '성공운'을 타고 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주요산업을 국유화하고 사회복지정책을 추진하는 기간 동안 국제석유시장에서 유가가 급등하는 바람에 뻬데베싸의 수입이 크게 늘었고, 그에 따라 주요산업 국유화와 사회복지 제도화에 요구되는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뻬데베싸가 없었다면, 베네주엘라 사회변혁은 어떤 운명에 처하였을까? 베네주엘라 정부는 주요산업을 불가피하게 무상몰수 방식으로 국유화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시장붕괴와 외세침공의 엄청난 시련에 처한 사회변혁은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좌절과 실패를 겪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뻬데베싸는 베네주엘라의 주요산업 국유화와 사회복지 제도화의 성공적 안착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사회변혁의 '일등공신'인 것이다.
 

뻬데베싸가 없는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식 사회변혁담론은 이 땅의 주요산업 국유화를 어떻게 예상할 수 있을까? 우리식 사회변혁이 베네주엘라의 사회변혁과 구별되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뻬데베싸 같이 국유화된 대규모 전략기업이 우리 사회에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추진될 주요산업 국유화가 불가피하게 무상몰수 국유화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무상몰수 국유화는 베네주엘라처럼 장기간에 걸쳐 차근차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전격적으로 단번에 단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의지와 능력, 전망과 준비를 갖춘 진보정권(자주적 민주정부와 자주적 민주국회의 결합체)만이 주요산업 국유화를 전격적으로 단행할 수 있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주요산업 규모는 베네주엘라 주요산업 규모보다 더 크고, 그처럼 규모가 큰 만큼 대외예속성이 더 심화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미국, 일본, 유럽연합의 국제독점자본들이 이 땅의 주요산업을 집중적으로 장악, 수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주요산업을 무상몰수 방식으로 국유화하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전면적인 시장붕괴와 경제파국, 그리고 미국의 해상봉쇄, 무력침공, 전복공작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해도 남측 국민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여 지지기반이 취약한 진보정권이 전면적인 시장붕괴와 경제파국을 과연 견딜 수 있으며, 미국의 해상봉쇄, 무력침공, 전복공작에 맞서 과연 몇일 동안 버틸 수 있을까? 따져볼 필요도 없이,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세력은 이 땅의 주요산업 국유화 가능성을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베네주엘라의 사회변혁은 진보정권 수립주요산업 국유화로 이어지는 일직선적인 단선경로를 밟아왔지만, 우리의 사회변혁은 매우 복잡한 복선경로를 밝아갈 것이다. 우리식 사회변혁과정에서 진보정권 수립주요산업 국유화의 경로는 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국군 철군의 경로와 서로 분리되지 않고 겹쳐진다. 시간적 배열을 상정하면, 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국군 철군의 경로가 앞서고, 그와 연동되어 진보정권 수립주요산업 국유화의 경로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군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하나는 한반도에서 무력충돌 위험이 현저히 제거된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주한미국군 철군이 외래자본 철수를 동반한다는 뜻이다.

이 땅의 주요산업을 장악하고 막대한 이윤을 수탈해온 외래자본이 주한미국군과 함께 동반철수한 뒤에 진보정권이 주요산업을 무상몰수 방식으로 국유화한다면, 미국의 해상봉쇄, 무력침공, 전복공작은 피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요구되는데, 지면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그런데 주한미국군 철군과 외래자본 철수 이후 주요산업을 무상몰수 방식으로 국유화하는 경우, 미국의 해상봉쇄, 무력침공, 전복공작은 피할 수 있어도 무상몰수 국유화에 수반될 시장붕괴와 경제파국까지 피하기는 힘들다. 시장붕괴와 경제파국은 주요산업을 국유화하기 전에 외래자본이 철수하는 것과 함께 이미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주요산업을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시장붕괴와 경제파국은 어떤 경우에도 불가피하다.

시장붕괴와 경제파국에 처한 남측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방도는 남북경제협력밖에 없다.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민족공동경제만이 주요산업 국유화에 따르는 시장붕괴와 경제파국을 막아줄 수 있다. 외래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시장이 무너지고 경제파국에 휩쓸린다 해도, 남북경제협력으로 형성된 민족공동경제가 남측에 몰아친 시장붕괴와 경제파국의 격랑을 막아줄 수 있을 방파제로 탄탄하게 구축되었다면 진보정권이 주요산업 국유화를 무상몰수 방식으로 추진할 전망이 가능한 것이다.

베네주엘라의 주요산업 국유화를 위해 뻬데베싸가 있다면, 이 땅의 주요산업 국유화를 위해서는 민족공동경제가 있다. 뻬데베싸가 베네주엘라의 사회변혁을 계속 전진시킨 '일등공신'이 된 것처럼,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민족공동경제는 우리식 사회변혁을 계속 전진시킬 '일등공신'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온 남북경제협력을 전면 중단하고 민족공동경제발전을 가로막았다. 경제체제가 완전히 다르고 상충적인 남북이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민족공동경제를 발전시키는 일은 몇 해 사이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밀고 나가야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012년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남북경제협력을 재개하고 민족공동경제를 발전시키는 과업은 단지 경제발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변혁에까지 연장되는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군을 실현할 시나리오를 전망한다면, 2012년에 반드시 정권교체를 실현해야 할 이유가 자명해진다. 만일 2012년에 정권교체에 실패하여 한나라당이 재집권하는 경우, 남북경제협력과 민족공동경제발전은 또 다시 가로막힐 것이며, 그에 따라 주요산업 국유화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한 재정조달준비를 전혀 갖추지 못한 채 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국군 철군의 경로를 밟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식 사회변혁은 주요산업 국유화를 단행할 결정적인 기회를 잃어버리고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세력의 집권역량이 미흡하기 때문에 2012년 단독집권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단독집권 대신 공동집권을 추진하여 연립정부를 수립하고 남북경제협력을 재개하고 민족공동경제를 발전시키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만일 공동집권 추진에 실패하여 민주당이 단독으로 집권하는 경우 남북경제협력은 재개되겠지만, 정권을 탈환한 민주당이 추진할 남북경제협력은 평화통일을 지향한 것이 아니고, 주요산업 국유화를 준비하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012년에 왜 민주당 단독집권을 저지해야 하고, 공동집권으로 연립정부를 수립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자명해진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세력은 '주미철''주산국'을 실현하는 사회변혁의 긴 안목으로 2012년의 선거정국을 내다보고 지금부터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2011119일 작성)

2011/01/18

새해 첫날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진실의 말팔매 <6>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1111일에 발행된 <로동신문>을 받아본 북측 인민들은, 1면에 전면 가득 노래 악보가 실린 것을 보고 놀라움을 느꼈을 것이다. <로동신문>은 해마다 11일에 발행되는 제1면에 언제나 '로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공동사설'을 실었는데, 올해는 관례와 예상을 뛰어넘어 노래 악보를 실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로동신문>에 발표되는 새해 공동사설은 다른 언론매체들에 발표되는 사설과 전혀 다른 것이다. 그 공동사설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책구상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영도방침, 그리고 한 해를 관통하는 국정운영방향이 정연하게 제시되어 있다. 당중앙위원회 기관지 <로동신문>에 발표되는 새해 공동사설은 당 총서기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초안과 제목을 직접 검토한 뒤에 발표된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로동신문>은 제1면에 새해 공동사설을 실어온 기존 관례에서 과감히 벗어나 노래 악보를 제1면에 싣고, 공동사설을 제2면에 실었다. <로동신문>에는 가끔 노래 악보가 실리지만, 이번처럼 공동사설이 실려야 할 자리에 실린 경우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렇게 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파격적인 조치로 생각된다. "나의 첫 사랑은 음악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음악을 뜨겁게 사랑하고 음악에 정통한 김정일 국방위원장만이 그러한 조치를 단행할 수 있다.
 
남측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피아노 음악의 거장 프레드릭 쇼팽이 작곡한 피아노곡을 몸소 연주한다고 한다. 음악가들 가운데서 절대음감을 지닌 사람은 5%가 되지 않는데, 세계음악사에 나오는 거장들이 그러한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선천적으로 절대음감을 지녔다고 한다. 절대음감이란 여러 악기들이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음이름을 파악하고, 각종 음악연주를 듣고 조이름을 파악할 뿐 아니라, 화음을 듣고 구성음을 모두 파악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자동차 경적음이나 코 푸는 소리 등 일상생활에서 들려오는 각종 소음을 듣고서도 음이름을 짚어낸다.
 
북측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있어서 음악과 혁명은 동의어이며, 그가 창시한 선군정치는 곧 음악정치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1970년대에 5대 혁명가극 창작을 직접 지도하였으며,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합창단, 관현악단, 협주단, 예술단, 가극단 공연만이 아니라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각급 단위 예술소조 공연을 자주 관람하고 음악가와 예술인들을 격려하고 이끌어주었다.
 
지도자가 음악을 사랑하므로, 음악연주 수준이 매우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테면, 20082월 세계 3대 교향악단으로 손꼽히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연주하였을 때, 당시 그 교향악단 상임지휘자였던 세계적인 지휘자 로린 마젤은 북측의 국립교향악단 앞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일부러 악보와 달리 빠른 속도로 지휘하면서 국립교향악단의 연주실력을 시험해보고 나서, "완벽하게 준비되었다(impeccably prepared)"는 찬사를 보냈다. 북측 국립교향악단 단원들은 차이코프스키 곡을 악보 없이도 연주하는 탄탄한 실력을 갖췄다고 한다. 20008월 국립교향악단이 서울에서 공연하였을 때, 그 공연에 출연한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씨는 "오케스트라와 성악가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고 호흡도 잘 맞아 리허설할 때 말이 필요 없었다. 100%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파격적인 조치에 따라 <로동신문> 1면에 실린 노래의 제목은 '승리의 길'이다. 3절로 된 노랫말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머나먼 혁명의 길에 흘린 피 붉은 기에 있고
승리의 천만리 우에 영광의 자욱이 있다
우리는 자기를 믿듯 승리를 굳게 믿고 산다
고난의 천리를 가면 행복의 만리가 온다
폭풍이 사납다 해도 이 땅에 다른 길은 없다
백두의 붉은 기 높이 끝까지 가야 할 이 길...
 
이 노래는 공동사설에 다 담지 못한, 혹은 공동사설에서 글로 표현하기 힘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감정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노래 제목이 '승리의 길'이니, 승리의 예감을 북측 인민들에게 전해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201111일에 발행된 <로동신문> 1면에 노래 '승리의 길' 악보가 실렸고, 2면에 공동사설이 실렸는데, 3면에 실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새해 첫 현지시찰 보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새해에 처음으로 시찰한 단위는 조선인민군 근위서울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이다. 그 부대는 인민군 기갑부대들 가운데서 최정예부대로 알려졌다. 첨단성능을 갖춘 최신형 전차 '폭풍호' 대오가 검은 연기 치솟는 기동훈련장에서 진격하는 훈련장면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작전통제실에서 바라보는 현장사진이 실렸다. 105땅크사단의 '폭풍호' 전차는 201010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인민군 열병행진에 등장하여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주목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105땅크사단을 반제군사노선의 전위대로 여긴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그 전차사단은 반제군사전선의 선봉에서 주한미국군을 격퇴할 전투단위라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중앙위원회 기관지 제1면에 노래 '승리의 길' 악보를 싣도록 파격적으로 조치하고, 반제군사노선 전위대의 기동훈련에서 자신의 새해 첫 현지시찰을 시작한 것은, 반제군사노선이 승리의 길에 들어섰음을 예감한다는 뜻이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111일 중국 베이징에 나타난 로벗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북미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꺼내놓았다. 그 제안은 게이츠의 개인의견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사항인 것이 분명하다. 게이츠 국방장관의 베이징 발언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의 "직접적인 위협(direct threat)"을 받고 있는 미국이 앞으로 "5년 안에(within 5 years)" 그 위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게이츠의 베이징 발언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북측의 군사적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상응적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점이다. 그들이 치를 수밖에 없는 '상응적 대가', 북측이 미국에게 60년 동안 지속적으로 요구해오는 주한미국군 철군이다. 이러한 정황을 살펴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앞으로 5년 안에 주한미국군 철군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북측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는 '승리의 길'이 가까운 미래에 열릴 것임을 예감하고 노래 '승리의 길' 악보를 새해 첫 날 <로동신문> 1면에 싣도록 조치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구상이 읽혀진다.
 
다른 나라에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새해맞이 정치사업이 북측에서 연례적으로 진행되는데, 새해에 인민들이 공동사설 내용을 숙지하기 위해 각급 단위들마다 집체학습을 진행할 뿐 아니라, 공동사설에 천명된 구상과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대규모 군중 결의대회를 각 도시들에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다른 나라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새해맞이 정치사업이 하나 더 있었다. 새해를 맞은 인민들이 노래 '승리의 길'을 함께 부른 것이다. 그들이 부른 노래에도 있듯이, "자기를 믿듯 승리를 굳게 믿으며" 그들은 새해 첫날 노래를 불렀다. (2011117일 작성)

2011/01/13

사라진 꽈배기, 도약하는 꽈배기

진실의 말팔매 <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50대 이상 연령층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간식 꽈배기. 밀가루를 반죽하여 두 가락으로 꼬아 타래를 만든 다음, 기름에 튀겨내 엿물을 바르고 볶은 참깨를 뿌려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설탕이 수입되면서 볶은 참깨 대신 설탕을 뿌린 꽈배기가 나왔다.

지금 남측에서 꽈배기를 간식으로 즐겨 먹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꽈배기는 시골 장터에서나 가끔 모습을 드러낼 뿐, 사실상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도 꽈배기를 찾지 않는다.
꽈배기는 왜 사라졌을까?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에서나 그러한 것처럼, 원래 토종은 외래종의 압도적인 침습에 밀려 차츰 자취를 감추고 결국 멸종되는 것이 흔한 일이다. 예전에 즐겨 먹던 꽈배기도 그런 슬픈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누구나 짐작하듯이, 우리의 토종 꽈배기를 멸종시킨 외래종 간식은 미국에서 밀려든 도넛이다. 도넛의 종주국은 미국이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군 병사들에게 공급되었던 탄산음료 '코크'가 종전 직후 제대 군인들의 귀향길에 편승해 미국 전역에 퍼진 것처럼, 도넛도 그러하였다. '코카콜라'에서 만든 '코크''크리스피 크림'에서 만든 도넛은 원래 전쟁에 나간 미국군에게 공급되던 군용간식이었다.
 
참전 군인들에게 공급되어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을 발판으로 삼고 소비시장을 급속히 확대하여 막대한 이윤을 거머쥐는 것은, 미국의 자본가들에게 익숙한 수법이다. 지금 미국의 소비시장에는 해마다 100억개가 넘는 도넛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미국에서 가장 큰 도넛생산기업인 '던킨 도너츠'의 미국 내 매출액은 2006년 현재 43억 달러다. 2002년에는 28억 달러였는데, 불과 4년 만에 53%나 늘었다.
 
미국 자본가들이 자국 시장에서 막대한 이윤을 거둔 뒤에 저지르는 짓은 이른바 해외시장 개척이다. 그들의 해외시장 개척은, 미국을 숭상하고 미국에게 의존하고 미국 상품을 최고로 여기는 친미예속국들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그런 3대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두루 갖춘 곳이 남측이다.

미국 최대의 도넛생산기업 '던킨 도너츠'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1호점을 열었던 때는 1994년이다. 남측 전역에 5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던킨 도너츠'는 남측 도넛시장 판매량의 80-90%를 장악하였다. 꽈배기를 멸종시킨 뒤에 거의 독점적 지위를 차지한 것이다. 2005년 남측 도넛시장 규모는 1,530억원이었는데, 2007년에는 2,930억원이었으며, 해마다 30% 이상 성장해왔다.

북측 인민들도 도넛을 먹을까? 북측에서 도넛을 생긴 모양대로 가락지빵이라고 부른다 하니, 즐겨 먹는 것은 아니어도 먹기는 먹는 것 같다. 남측에서는 미국의 거대자본이 들어가 생산시설을 내오고 판매시장을 확장하는 바람에 미국에서 쓰는 이름 그대로 도넛이라는 어색하고 불량한 외래어를 쓸 수밖에 없지만, 북측에서는 간식도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자기 인민들의 요구에 맞춰 생산하기 때문에 도넛이라는 외래어를 버리고 가락지빵이라는 정겨운 우리말로 부른다. 북측에서는 비스켓을 바삭과자라 부르고, 햄버거를 고기겹빵이라 부르고, 라면을 즉석국수라 부른다.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실생활에서 마주치는 간식과 같은 사물 하나를 대할 때도 주체적으로 대하는지 아니면 외세추종적으로 대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던킨 도너츠'를 사 먹는 무수한 남측 국민들 가운데, 그 간식이 미국 가공식품자본의 막대한 이윤수탈로 만들어지고 있는 대미예속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

오늘날 북측 인민들이 즐겨 먹는 간식은 가락지빵이 아니라 꽈배기다. 꽈배기는 우리 땅에서 밀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 우리 조상들이 간식으로 개발한 전통음식들 가운데 하나다. 옛날에는 황해도 장연 지방과 경기도 개성 지방에서 지방전통음식으로 만들어 먹었던 꽈배기가 유명하였다.

그런데 북측에서 요즈음 가장 인기를 끄는 간식 가운데 하나가 꽈배기다. 북측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밀가루가공제품 생산기지인 평양밀가루가공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꽈배기가 각지의 급양봉사망들에서 호평 속에 팔리고 있다. 소수 자본가들이 식품유통업을 장악한 자본주의사회에서 도넛은 시장에서 이윤획득을 위해 거래되는 '자본가의 상품'이지만,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식품유통업을 운영하는 사회주의사회에서 꽈배기는 급양봉사망에서 이윤을 따지지 않고 저가로 공급되는 '인민의 간식'이다.
 
미국에서 만드는 도넛에 유래가 있다면, 북측에서 만드는 꽈배기에도 당연히 유래가 있다. 그 유래는 이렇다. 2010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밀가루가공공장을 시찰하는 도중, 꽈배기를 시식하고 "맛이 좋다. 인민들이 좋아하겠다"고 하면서 생산자들을 격려하였다. 그 격려에 힘입어 평양밀가루가공공장에서는 김책공업종합대학,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등 전문기관의 기술지원을 받아 생산공정을 전면 개조하였다. 2010129<조선중앙통신>"과자직장, 밀가루직장, 효모직장 등의 생산건물들이 개건되고 꽈배기직장, 통합자동화실이 새로 꾸려졌으며 대규모 련속생산공정의 CNC화가 실현되였다"고 보도하였다. 마침내 2010129일 평양밀가루가공공장 준공식이 진행되었다. 개건, 확장된 그 공장에서는 '칠골표 꽈배기'를 비롯하여 과자 10여 종, 즉석국수 2, 각종 빵 등을 대량생산한다.
 
20101212<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밀가루가공공장에서 갓 나온 꽈배기를 생산기계 앞에서 시식하면서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영상을 현장사진으로 보도하였다. 그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밀가루가공공장 앞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은 생산공정의 기술개건사업을 보다 높은 수준에서 힘있게 추진하여 무인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CNC생산체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인생산체계를 개발하는 계속적인 기술혁신을 강조하며 생산자들을 격려한 것이다.

남측에서는 오래 전에 '던킨 도너츠'의 침습에 밀려 멸종된 꽈배기가 북측에서는 인민들에게 간식으로 널리 공급되고 있다. '칠골표 꽈배기'는 단순히 꽈배기의 부활이 아니라, 생산설비와 제조기술의 현대화를 통하여 이룩된 꽈배기의 도약이다.
 
극렬한 반북론자들은 북측에 식량이 부족하여 인민들이 굶고 있다는 식의 거짓말로 세상을 속이려 들지만, 그처럼 허황된 악선전은 꽈배기의 도약 앞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북측에서 강성대국 건설의 중요한 목표로 내건 '먹는 문제를 푸는 일'이란 기아를 퇴치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민들에게 맛과 영양을 지닌 다종다양한 식료품을 개발, 생산하여 풍족하게 공급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식료품 생산의 비약적 발전을 '먹는 문제를 푼다'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미국 자본의 이윤수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서울 시민들이 아무 생각 없이 '던킨 도너츠'를 사 먹고 있을 때, 평양 시민들은 북측에서 나는 밀가루와 북측에서 개발한 현대적인 제조기술로 생산된 '칠골표 꽈배기'를 먹고 있다. (201111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