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14

25년 동안 기다리며 준비해온 정치대결

변혁과 진보 (32)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방대한 첩보망과 공작망을 가동하는 미국의 선거공작

미국이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수많은 정보요원을 침투시켰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암약하는 자기들의 정보요원을 정보관리(information officer)라 부르지만, 우리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말로 표현하면 그들은 첩자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는 '지역조사과(Office of Regional Studies)'라는 위장명칭을 내걸고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수많은 첩자들을 침투시켰다. 미국 중앙정보국 첩자는 흑색첩자(black)와 백색첩자(white)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국정원이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첩자이고 후자는 국정원이 파악하고 있는 첩자다. 흑색첩자는 첩보활동과 비밀공작을 담당하고, 백색첩자는 첩보활동만 담당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중앙정보국 첩자들은 미국인들이 아니라 현지인들이다. 중앙정보국이 주는 비밀자금으로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간 각 분야 지식인들이 그들이 앞잡이로 전락하여 현지인 첩자로 암약하는 것이다.

중앙정보국만이 아니라 미국대사관도 첩보활동을 벌인다. 미국대사관에 파견된 외교관들의 중요한 임무는 첩보활동이다. 중앙정보국은 현지인을 첩자로 매수, 포섭하여 첩보활동과 공작활동을 벌이는 데 비해, 미국대사관은 현지인들과의 비밀접촉을 통해 첩보활동을 벌인다. 이를테면, 2010년 12월 2일 독일 자유민주당 총재로 외무장관이 된 고위관리의 비서실장이 독일 연립정부의 비밀정보와 자유민주당 내부문건을 현지 미국대사관에 정기적으로 빼돌려왔음이 드러났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3개 부처 장관을 겸직한 현직 상원의원이 민감한 자국 정보를 현지 미국대사관에 정기적으로 빼돌려왔음이 드러났다.

독일이나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나라에 있는 미국대사관이 주재국 고위관리들과 정기적으로 접촉하며 첩보활동을 벌여왔으니,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와 달리 대미예속성이 심화된 이 땅에서 미국대사관이 어느 수준의 고위관리들과 비밀접촉을 하며 첩보활동에 혈안이 되어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몇해 전에 있었던 두 사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6년 7월에 작성하여 미국 국무부로 보낸 기밀문서에서 주한미국대사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현직 대통령들에 대해 평가하고, 친미성향을 지닌 반기문 당시 외무장관이 유엔사무총장에 선출되는 경우 미국에게 유리할 것으로 분석하였다.

또한 한국갤럽 조사연구소 최시중 당시 회장은 대선을 1주일 앞둔 1997년 12월 10일에 실시한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한 정보자료를 이틀 뒤에 스티븐 보스워즈 당시 주한미국대사에게 넘겨주었다. 현재 최시중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참모들이 모인 '6인회의' 성원이다. 보스워즈 당시 대사는 12월 15일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3급 기밀문서로 작성하여 미국 국무부에 보냈는데, 그 기밀문서에는 김대중 당시 대선후보가 이회창 당시 대선후보보다 지지율이 약 10% 앞섰다고 분석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 서울 종로구 세종로 32번지에 위치한 주한미국대사관. 대사관의 5층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가 '지역조사과(Office of Regional Studies)'라는 위장명칭을 내걸고 암약하고 있다.

물론 위의 두 사건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와 주한미국대사관의 첩보활동을 통해 이 땅의 정계, 관계, 군부, 재계를 비롯한 상층부 동향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미국이 이 땅에 설치해놓은 각종 첩보망과 공작망이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화된 조건에서 내년 총선과 대선이 실시될 것임을 말해준다.

미국의 첩보망과 공작망이 그처럼 강화된 조건에서 선거가 실시된다는 말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적대적인 선거환경이 미국에 의해 조성된다는 뜻이다. 물론 미국의 첩보활동과 공작활동을 물증으로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미국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적대적인 선거환경을 조성하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런데 만일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미국이 자기들에게 적대적 선거환경을 조성하리라는 점을 예상하지 못하고 내년 선거에 대응한다면,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미국의 선거공작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응전략을 세우는 것은 응당한 일이다. 


미국이 선택할 시나리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와 주한미국대사관은 4.27 재보선을 분석, 평가한 기밀문서를 작성하여 중앙정보국 본부와 미국 국무부에 각각 보고하였을 것이다. 보나마나, 이명박 정권이 민심이반으로 치명타를 입었다는 것과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재보선에서 승리한 결정적 요인이 야권연대였다는 것이 그들이 보고한 기밀문서에 들어있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주시해야 할 것은, 4.27 재보선에 대한 그들의 분석과 평가가 아니라 내년 선거에 대한 그들의 전망과 대책이다. 그들의 전망과 대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길은 없으나, 미국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놓고, 그 가운데서 자기의 국익추구에 가장 적합한 시나리오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이 단독집권에 성공하는 제1시나리오, 한나라당이 재집권에 성공하는 제2시나리오, 민주노동당, 민주당, 국민참여당 등 주요야당들이 공동정부를 세우는 제3시나리오가 상정될 수 있는데, 그 가운데서 미국이 강한 거부감을 보일 시나리오는 제3시나리오다. 미국은 제3시나리오 실현을 저지할 것이다.

또한 미국은 제2시나리오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나라당이 재집권하는 경우, 우리 사회에서 사회계급적 모순이 점점 더 격화되고 정치적 불안정이 더욱 심화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회계급적 모순이 완화되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어야 대미예속체제가 무리없이 유지될 수 있으므로, 한나라당이 재집권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한반도에서 미국의 국익을 해치는 요인으로 된다.

미국의 견지에서 볼 때, 민심이 외면해버린 한나라당은 미국의 국익추구에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버리고 싶은 카드'인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 재집권은 미국이 북측과 대화를 재개하는 데서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런 정황을 보면, 내년 선거에서 미국이 선택할 시나리오는 민주당이 단독집권에 성공하는 제1시나리오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이반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4.27 재보선을 통해 확인되었으므로, 미국은 한나라당 재집권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둘째, 미국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이 대체정당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민주당 소속 친미성향 정치인들의 주도로 정권교체를 실현하여 민주당이 집권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미국이 선택할 제1시나리오가 실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다. 그것은 야권연대에 대한 민심의 강한 요구다. 미국이 선택할 민주당 단독집권은 야권연대가 실패로 끝났다는 뜻이고, 다른 말로 하면, 민주당이 야권연대를 바라는 민심의 요구를 저버렸다는 뜻이다. 민주당이 내년 선거에서 야권연대를 바라는 민심을 저버리는 경우 한나라당을 꺾을 가능성은 전무하므로, 제1시나리오보다 제2시나리오가 성공할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된다. 그런데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나라당이 재집권하는 제2시나리오는 미국이 선택할 만한 대안이 아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고민은 민주당이 집권하는 제1시나리오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제1시나리오가 실현되는 길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전통적 지지기반이 분열되는 것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대권주자들 가운데 여전히 수위를 지키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중심으로 새로운 수구정당을 창당하는 것이다.

△ 4. 27 재보궐선거 이후 한나라당내 친이계-쇄신소장파-친박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친박계의 중진 홍사덕 의원은  “분당이 강요되고 불가피하면 그렇게 해서라도 승부하는 거고, 그 경우에도 (박근혜가) 이길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발언, 주목을 끌고 있다.

 한나라당의 분당사태는 그 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이 분열되는 것이므로, 한나라당과 새로운 수구정당이 선거에서 대결구도를 형성하는 경우 민주당이 어부지리를 얻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에서 갈라져나간 새로운 수구정당이 창당되는 경우, 미국이 선택할 제1시나리오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민심의 강물에 띄운 대안의 배

위와 같은 선거판세 예상도를 사회변혁의 관점에서 읽어보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내년 선거전략을 한나라당 재집권 저지에 한정시키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인식한계에 갇히는 것이다. 4.27 재보선 이전에는 한나라당 재집권 저지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추진할 선거전략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이반을 확인해준 4.27 재보선 이후에는 한나라당 재집권 저지와 함께 민주당 단독집권 저지가 선거전략의 새로운 목표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제기되었다.

민주당 단독집권은 민주당 자체의 요구이며 동시에 미국의 요구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자체로 요구하는 단독집권은 정적들의 방해에 가로막혀 실현되기 힘들지만, 미국이 민주당 단독집권을 필요로 하는 경우 그것은 사실상 거의 방해를 받지 않으므로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한나라당을 분열시켜서라도 민주당 단독집권을 추진하려는 미국의 선거공작을 파탄시키는 것이야말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전력을 기울여야 할 가장 중대한 선거전략이다.

그러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미국이 추진하게 될 민주당 단독집권을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까? 참으로 다행하게도, 4.27 재보선에서 현실로 입증된 것처럼 야권연대를 강하게 요구하는 민심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강력한 지원역량을 공급해주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야권연대를 요구하는 민심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민주당 단독집권을 저지해야 하며, 또 저지할 수 있다. 실제로 민주당이 자기들의 당리당략을 앞세워 야권연대를 외면하고 단독집권에 집착할 때, 민심은 그들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민심의 지지를 받을 때 민주당 단독집권을 저지할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추진할 민주당 단독집권 저지가, 그들의 단독집권을 무조건 반대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민주당 단독집권을 대체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그것을 관철하는 것이다. 민주당 단독집권을 대체할 합리적 대안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전술적 야권연대를 뛰어넘은 전략적 야권연합에 의한 공동정부 수립이다. 전략적 야권연합에 의한 공동정부 수립만이 민주당 단독집권을 저지할 대안인 것이다.

야권연대라는 모호한 개념 이외에 어떤 구체적인 대안이 아직 떠오르지 않은 민심의 강물에 전략적 야권연합에 의한 공동정부 수립이라는 대안의 배를 띄우는 정치활동, 바로 이것이 선거국면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추진해야 할 당면과업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민심의 강물에 대안의 배를 띄우면, 승리의 순풍이 불어오게 되어 있다. 그 대안은 그야말로 승산 있는 대안인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미국과 맞붙는 정치대결 
  
전략적 야권연합에 의한 공동정부 수립이라는 대안에 대해 미국도 그들 나름대로 분석할 것이다. 그들의 분석결과를 예상하면, 미국은 민주노동당이 다른 야당들과 전략적 야권연합을 실현하여 공동정부를 세우는 시나리오를 미국의 국익을 해칠 위험요인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전략적 야권연합에 의한 공동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한나라당 분당을 전제로 하는 민주당 단독집권을 적극 지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미국은 한반도에서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략적 야권연합을 저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미국이 전략적 야권연합을 저지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추진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들의 대책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 민주당, 국민참여당 등 주요야당을 분산상태에 계속 묶어두는 것, 바로 이것이 미국이 취할 대책인 것이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전략적 야권연합에 의한 공동정부 수립의 의의를 바라보는 관점은 이 땅의 정치세력관계에 국한되었다. 그렇지만 위에서 논한 내용을 생각하면, 전략적 야권연합에 의한 공동정부 수립의 의의는 이 땅의 정치세력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의의를 한미관계로까지 확대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전략적 야권연합에 의한 공동정부 수립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미국을 상대로 벌이는 정치대결인 것이다. 물론 그 정치대결은 언론보도에 나타나지 않는 불가시적 정치대결이다. 전략적 야권연합에 의한 공동정부를 수립하는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민주노동당과 미국의 정치대결에서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 2012년 이후 우리 정치권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반미자주화운동은 주한미국군 철군을 요구하는 반미투쟁으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며, 미국이 이 땅의 선거에서 노리는 전략적 이익추구에 치명타를 가하는 정치투쟁도 위력적인 반미자주화운동으로 된다. 그러므로 전략적 야권연합에 의한 공동정부 수립은 선거국면에서 제기되는 반미자주화운동의 중대한 과업이며,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으로 다가서는 지름길이다. 

민주노동당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반미성향의 정치조직이지만, 지금까지 민주노동당 이 미국과 정치대결을 벌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 민주노동당의 정치역량이 미국과의 정치대결을 벌일 만큼 아직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정치역량이 약한 까닭은 각계각층 국민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민심의 정치적 요구에 부합하는 정치활동을 전개할 때, 당의 정치역량이 비상히 강화될 수 있다.

야권연대를 요구하는 민심의 거대한 흐름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강력한 역량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자신을 그 강력한 역량에 일치시킬 때, 민주노동당은 더 이상 소수정당이 아니다. 민심을 따르고 민심의 지지를 받는 소수정당은 비록 원내 소수정당이라 해도 원외 다수정당으로 급성장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야권연대를 요구하는 민심의 지지를 얻어 야권연합에 의한 공동정부 수립을 추진할 때, 그 때 비로소 미국과 정면으로 맞붙는 정치대결을 시작하는 것이며, 민주노동당이 야권연대를 요구하는 민심의 거대한 흐름에 자신을 일치시킬 때, 오직 그러할 때만이 미국과 맞붙는 정치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과 정치대결로 맞붙는 결전의 날이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25년 동안 미국과 맞붙는 결전의 날을 기다리며 싸울 준비를 해왔다. 민주노동당에 결집한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미국과 맞붙는 정치대결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필승불패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전열을 정비해야 할 때를 맞이하였다. (2011년 5월 14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