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30

작계와 흉계의 복합체는 어떻게 파탄되었는가?

 [한호석의 개벽예감](413)

자주시보 2020년 09월 28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작전계획 5029와 6개의 급변사태 씨나리오

2. 군사정변과 참수작전은 어떻게 결부되었는가?

3. 마카오 비밀연락선으로 평양 염탐한 미국 중앙정보국

4. 후진타오의 침묵은 무슨 뜻이었을까?

5. 극비정보가 평양에 전해졌다

6. 오바마의 참수작전능력증강과 박근혜의 망상

7. 친서를 보내면서 참수작전능력 증강하는 문재인

 

 

1. 작전계획 5029와 6개의 급변사태 씨나리오

 

2010년 2월 9일 <동아일보>가 흥미로운 사실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 영관급 장교들과 주한미국군사령부 영관급 장교들이 한미연합사령부에 모여 도상훈련을 반복하면서 문제점을 수정, 보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상훈련(table-top exercise)이라는 것은 작전지도 위에 타격대상들을 표시해놓고, 마치 실제 작전을 전개하는 것처럼 전투병력과 무장장비를 출동시켜 적을 공격하는 군사행동을 뜻한다. 

 

당시 군사전문가들은 그 도상훈련이 2010년 3월 8일부터 시작될 ‘키리졸브-독수리연습’을 앞둔 준비행동이겠거니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그런 추정을 뒤집어버린 사건이 ‘키리졸브-독수리연습’을 며칠 앞두고 일본 도꾜에서 일어났다. 2010년 2월 17일 미국 태평양해병대사령관은 주일미국대사관에서 일본방위성 고위간부들에게 “오끼나와에 주둔하는 미국 해병대의 공격대상은 북조선이다. 남과 북이 충돌할 가능성보다 북조선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이 더 크다. 북조선 정권이 붕괴하면, 북조선의 핵무기를 신속하게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충격적으로 들린 까닭은 그 발언 속에 다음과 같은 엄청난 정보가 담겼기 때문이다. 

 

첫째, 2010년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조선의 정권이 붕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1990년대 말에 떠돌았던 ‘조선붕괴설’은 사회주의국제무역체제의 해체와 미국의 대조선경제제재, 그리고 거듭되는 자연재해를 겪으며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었던 조선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3개월 안에 무너질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었는데, 2010년에 떠돌았던 ‘조선붕괴설’은 다른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2010년 당시 조선은 ‘고난의 행군’을 오래 전에 결속하고 국가경제발전에 힘쓰고 있었고, 자연재해도 겪지 않았다. 그러므로 2010년에 떠돌았던 ‘조선붕괴설’은 조선의 정권이 혹심한 경제난으로 붕괴될 것이라는 소문이 아니라, 조선에서 뜻밖의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미국군이 조선을 침공하여 최고지도부를 제거하고 정권을 전복시킨다는 뜻이었다.  

 

둘째, 2010년에 오바마 행정부가 예상한 조선의 급변사태는 군사정변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오바마 행정부는 조선에서 반란조직이 출현하여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전복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서술한다.)     

 

셋째, 조선의 군사정변에 대비하여 오바마 행정부는 오끼나와에 주둔하는 미국 제3해병원정군(3rd Marine Expeditionary Force) 18,000명을 급파하여 조선을 침공하고, 반란조직의 군사정변을 지원하여 정권을 전복시키려고 획책했다.  

 

넷째, 오바마 집권기의 미국 국방부는 위와 같은 씨나리오로 구성된 북침특수전을 계획했는데, 그것이 바로 작전계획(Operation Plan) 5029다. 

 

월간지 <신동아>는 2007년 11월호에서 미국의 작전계획 5029에 6개의 급변사태씨나리오가 들어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동안 한국 언론매체들이 산만하게 보도한 내용들을 종합하면, 6개의 급변사태씨나리오는 다음과 같은 모습을 드러낸다. 

 

1) 조선에서 출현한 반란조직이 군사정변을 일으키는 급변사태 

2) 조선의 최고령도자가 급서하여 조선이 대혼란에 빠지는 급변사태

3) 조선에서 출현한 반란조직이 핵무기와 핵물질을 장악하는 급변사태 

4) 남측 주민들이 북측에서 인질로 잡히는 급변사태

5) 북측 주민들이 대량으로 탈북하는 급변사태

6) 조선이 자연재해로 대재앙에 빠지는 급변사태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0년 3월 3일 '키리졸브-독수리연습'에 참가한 미국 제3해병원정군 제3해병사단 본부 직속대대 전투원들이 기관총 실탄사격을 연습하는 장면이다.일본 오끼나와에 주둔하는 이 전투부대는 조선을 침공하고 반란조직의 군사정변을지원하여 정권을 전복시키는 북침선봉부대다. 오바마 집권기의 미국 국방부는 조선에서 반란조직이 출현하여 군사정변을 일으키는 급변사태를 기대하면서 북침특수전을 계획했는데, 그것이 바로 작전계획 5029다.  

 

 

2. 군사정변과 참수작전은 어떻게 결부되었는가?

 

 <연합뉴스> 2010년 10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군부는 작전계획 5029에 들어있는 급변사태씨나리오를 세분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작전계획 5029의 급변사태씨나리오를 세분화한다는 말은 6개의 급변사태들에 각각 대처하는 북침특수전을 더 세부적으로 계획한다는 뜻이다. 조선의 급변사태에 대처하는 작전계획 5029의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1) 조선에서 출현한 반란조직이 군사정변을 일으키면, 미국군 특수전부대는 한국군 특수전부대를 이끌고 평양에 침투하여 참수작전으로 정권을 전복시킨다. 

2) 조선의 최고령도자가 급서한 이후 조선이 극심한 정치적 불안정에 빠지면, 미국군 특수전부대는 한국군 특수전부대를 이끌고 평양에 침투하여 ‘참수작전’으로 정권을 전복시킨다.   

3) 조선에서 군사정변을 일으킨 반란조직이 핵무기고를 점거하고 핵무기와 핵물질을 장악하면, 미국은 핵무기와 핵물질과 핵기술자들이 제3국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조선을 완전히 봉쇄하고, 특수전부대를 침투시켜 핵무기와 핵물질을 탈취하고, 핵기술자들을 납치한다.   

 

미국 육군 웹싸이트 2009년 5월 1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미국 육군 제1공수특전단과 제20CBRNE사령부 예하 특수부대는 한국군 특수전부대와 함께 2009년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지리산에서 ‘밸런스 나이프(Balance Knife)’라는 작전명을 내걸고 조선의 대량파괴무기를 제거하는 북침특수전연습을 감행했는데, ‘미래지휘소(Command Post of the Future)’라고 부르는 신형 전술지휘통제체계를 사상 처음으로 특수전연습에 도입하였다고 한다. 미국 매릴랜드주에 주둔하는 제20CBRNE사령부의 명칭에 들어있는 CBRNE라는 약어는 화학(Chemical), 생물학(Biological), 방사능(Radiological), 핵(Nuclear), 폭발물(explosive)의 영문머리글자를 합친 것이다. 제20CBRNE사령부는 적국의 대량파괴무기를 제거하는 특수임무를 수행한다. 

 

이처럼 오바마 행정부는 이전보다 더 강화된 북침특수전연습을 2009년에 감행했을 뿐 아니라, 2010년도 ‘키리졸브-독수리연습’ 중에 또 다시 감행했다. 2010년 3월 11일 주한미국군사령관 월터 샤프(Walter L. Sharp)는 한미연합사령부 청사에서 취재진에게 “우리는 제20CBRNE사령부에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를 제거하는 부대를 두었는데, 이 특수전부대가 지금 키리졸브연습에 참가했고,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에도 참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2011년도 ‘키리졸브-독수리연습에 제20CBRNE사령부 예하 특수부대 전투원 500명을 또 다시 참가시켰다. 

 

<경향신문> 2015년 8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2010년 8월 16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에서 조선의 최고지도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연습했다고 한다. 이것은 오바마 집권기의 미국군이 이전보다 더 강화된 북침특수전연습에서 조선의 최고지도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사상 처음 연습하였음을 말해준다.  

 

미국군 특수전부대는 2012년도 ‘키리졸브-독수리연습’에서 한국군 특수전부대와 함께 또 다시 참수작전을 연습했으며, 2013년도 ‘키리졸브-독수리연습’에서 참수작전을 또 다시 연습했다. 미국의 군사전문 온라인매체 ’워 이즈 보어링(War Is Boring)‘ 2014년 1월 19일 분석기사에 따르면, 2013년 4월 전라북도 익산 인근과 전라남도 담양 인근에서 벌어진 북침특수전연습인 ’밸런스 나이프‘에는 미국 육군 제1공수특전단 제3대대 산하 찰리중대(Charlie Company)의 알파(Alpha) 1336소대와 알파 1333소대가 한국군 공수특전단 제11여단과 함께 참가했다는 것이다. 

 

위의 서술내용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것은, 조선에서 반란조직이 출현하여 군사정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 오바마 집권기의 미국 국방부가 그런 예상에 근거하여 작전계획 5029를 작성했으며, 작전계획 5029에 의거한 북침특수전연습을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해마다 집중적으로 실시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반란조직이 출현하여 군사정변이 일어날 것이라는 미국의 예상은 터무니없는 망상이었을까? 오바마 집권기의 미국 국방부가 조선에서 반란조직이 출현하여 군사정변을 일으키는 급변사태에 대비하여 북침특수전을 계획했을 뿐 아니라,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 북침특수전계획을 해마다 집중적으로 연습한 것을 보면, 조선에서 반란조직이 출현하여 군사정변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은 망상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미국군 특수전부대의 북침특수전연습은 조선에서 반란조직을 육성하여 군사정변을 일으키는 씨나리오에 따라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군사전문 온라인매체 ’워 이즈 보어링‘ 2014년 1월 19일 분석기사에 따르면, 미국군 특수전부대는 2013년 4월 ‘밸런스 나이프'라는 명칭의 참수작전을 연습할 때, 조선에서 “자생적인 저항조직(indigenous resistance organization)을 육성하는” 씨나리오를 사상 처음으로 도입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생적인 저항조직이라는 것은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전복시키는 반란조직을 뜻한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3년 4월 지리산에서 진행된 밸런스 나이프라는 명칭의 북침특수전연습의 한 장면이다. 미국 육군 제1공수특전단 예하 전투부대가 한국군 특수전부대를 이끌고 이런 북침특수전연습을 감행했다. 오바마 집권기의 미국 국방부는조선에서 반란조직이 출현하여 군사정변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하면서, 작전계획5029를 작성했으며,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작전계획 5029에 의거한 북침특수전연습을 해마다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대조선정책기조라고 발표한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것은 조선 정권의 핵심부에 들어간 장성택이 반란조직을 결성하여 군사정변을 일으킬 때를 기다리겠다는 뜻이었다.  

 

 

3. 마카오 비밀연락선으로 평양 염탐한 미국 중앙정보국 

 

사태가 그 정도로 심각해졌다면, 조선에서 출현한 반란조직이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작전계획 5029 속에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어떤 흉계가 들어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 흉계는 무엇이었을까?

 

오바마 집권기의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조선에서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전복시킬 반란조직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에서 반란조직이 출현할 것이라는 그들의 예상은 2007년 12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행정부장에 새로운 인물이 임명된 것으로 하여 믿음으로 바뀌었다. 그 중책에 임명된 사람이 바로 장성택이다. 장성택은 2009년 4월 조선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2010년 6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내각 부총리로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9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과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장성택은 2007년과 2010년 기간에 정권 핵심부에 들어간 것이다.   

 

장성택은 2013년 12월 8일 정권찬탈역모죄로 조선 국가안전보위부(당시 명칭)에 체포되어 특별군사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했는데, 그런 극악한 반역자가 정권 핵심부에 들어갔고, 더욱이 장성택의 둘째 형과 셋째 형은 고위급 군사지휘관 출신이었으므로, 미국 중앙정보국은 자기들과 비밀연락관계를 맺은 장성택이 정권 핵심부에 들어간 것을 보면서 그를 사주하여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조선의 정권을 전복할 기회가 찾아왔다고 판단했다.   

 

오바마 집권기의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Hillary D. R. Clinton)은 2010년 5월 26일 청와대를 찾아가 대통령 이명박에게 자기들의 대조선정책기조가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사실을 밝혔는데, 그가 말한 전략적 인내는 조선 정권의 핵심부에 들어간 장성택이 반란조직을 결성하여 군사정변을 일으킬 때를 기다리겠다는 뜻이었다.

 

<월간조선> 2014년 1월호에 실린 심층보도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1997년에 황장엽의 소개로 장성택과 연락하는 비밀연락선을 만들었는데, 남측 대북경제사업가 두 사람이 국정원과 장성택 사이를 연결하였다고 한다. 또한 국정원은 장성택과 비밀리에 연락하는 과정에서 그가 “전쟁(조국통일대전을 뜻함-옮긴이)을 반대하는 인물”이며,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1997년 당시 장성택은 남측 대북경제사업가를 통해 국정원과 비밀연락을 주고받았지만, 그것은 장성택이 자기의 이권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행위에 불과했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남측 대북경제사업가를 통해 장성택과 연락하던 국정원의 비밀연락선을 폐기시키고, 자기들이 장성택과 직통하는 새로운 비밀연락선을 만들었다. 미국 중앙정보국과 장성택을 연결하는 비밀연락임무를 맡은 사람이 바로 김정남이다. 김정남은 중국 마카오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장성택과 직통하는 비밀연락책으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영국 언론매체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 2019년 6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남은 자신이 중국에서 미국 중앙정보국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일본인 취재기자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미국 언론매체 <월스트릿저널(Wall Street Journal)>도 2019년 6월 10일 보도기사에서 김정남이 미국 중앙정보국과 “연계(nexus)"를 가졌다고 했다.    

 

장성택이 정권찬탈역모죄로 사형을 당한 직후인 2013년 12월 13일 한국 텔레비전방송 <YTN>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한 탈북자 강명도는 “장성택과 연계해서 체제변화를 도모하려고 했다. 장성택이 실권을 잡으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남북관계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서 연계까지 했었다. 우리가 실제로 ‘네가 김정은을 치지 않으면, 장성택 네가 다친다’고 알렸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장성택이 정권찬탈역모를 꾸미고 있었음을 말해준 확실한 증언이다. 

 

2013년 12월 12일 평양에서 진행된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의 판결문에 따르면, 장성택은 2009년 한 해 동안 도박장을 돌아다니며 460여만 유로(미국화폐로 약 400만 달러)를 탕진했다고 한다. 그가 그런 거금을 도박으로 탕진한 것은 중국과 거래하는 대외경제사업으로 벌어들인 엄청난 자금을 비자금으로 빼돌린 부정축재범죄를 저질렀음을 말해주는데, 장성택은 라선경제특구에 있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도박장에 출입하면서 비자금을 탕진했을 뿐 아니라, 김정남과 함께 마카오 도박장도 출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은 부정축재와 도박으로 타락과 방탕에 빠진 범죄자였다.  

 

그처럼 타락과 방탕에 빠진 장성택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노리는 좋은 먹이감으로 되었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김정남을 통해 장성택에게 접근하여 그를 포섭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미국 중앙정보국과 비밀리에 연락하면서 정권찬탈을 역모한 장성택이 조선 국가안전보위부에게 체포되어 2013년 12월 12일 특별군사재판에 끌려나온 장면이다. 그는 특별군사재판에서 정권찬탈역모죄로 사형을 언도받고 처단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미국 중앙정보국은 한국 국정원이 남측 대북경제사업가를 통해 장성택과 연락해온 기존 비밀연락선을 폐기시키고, 자기들이 장성택과직통하는 새로운 비밀연락선을 만들었다.  

 

 

4. 후진타오의 침묵은 무슨 뜻이었을까?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거하였고, 조선 인민은 슬픔에 잠겼다. 그런데 미국의 작전계획 5029에 따르면, 조선의 최고령도자가 서거했을 때 반란조직이 군사정변을 일으키면, 미국군 특수전부대가 한국군 특수전부대를 이끌고 평양에 침투하여 참수작전으로 정권을 전복시키는 씨나리오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 씨나리오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거한 이후 조선에서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되는 틈을 타서 장성택이 반란조직을 결성하여 군사정변을 일으킬 결정적인 기회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조선에서 정치적 불안정은 발생하지 않았고, 장성택은 반란조직을 결성하지 못했다.      

 

2012년 8월 13일부터 18일까지 장성택은 대표단을 이끌고 조선과 중국의 경제협력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다. 장성택은 8월 15일 시찰명목으로 중국 남부에 갔는데, 중국 남부에 있는 마카오에서 김정남을 만난 것이 확실하다. 장성택은 8월 17일 베이징으로 다시 돌아가서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와 회담했다. 그런데 장성택은 조선 대표단과 함께 후진타오를 면담한 직후, 조선 대표단을 밖으로 내보냈고, 심지어 자기 통역관도 배석시키지 않은 채 후진타오와 단독회담을 진행했다. 단독회담에는 중국측 통역관 한 사람만 배석했다. 이런 이상한 행동은 장성택-후진타오 단독회담에서 장성택이 극비정보를 꺼내놓았음을 말해준다. 

 

<연합뉴스> 2015년 2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장성택은 단독회담 중에 후진타오에게 “김정남이 최고지도자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장성택은 후진타오에게 자신이 김정남을 최고령도자로 내세워 중국식 개혁개방을 추진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던 것이 분명하다. <연합뉴스> 2015년 2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후진타오는 장성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은 후진타오가 중국식 개혁개방을 따르는 친중정권을 세우겠다는 장성택의 말을 듣고 한편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 기뻐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후진타오의 침묵은 장성택의 정권찬탈역모에 무언의 동의를 표시한 것이었다. 

 

2013년 12월 12일 조선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에서 발표된 판결문에 따르면, 장성택은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외부세계에 <개혁가>로 인식된 제 놈의 추악한 몰골을 리용하여 짧은 기간에 <신 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망상하였다”고 한다. 장성택이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탈취하여 인정을 받으려고 망상한 외국은 후진타오 집권기의 중국이었다. 

 

장성택이 후진타오와 단독회담을 진행했다는 소식은 미국에게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장성택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는 계략을 쓰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만일 장성택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면, 미국은 작전계획 5029를 수행하는 데서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이 뻔했다. 불안감을 느낀 미국은 작전계획 5029를 더욱 보강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미국 언론매체 <월스트릿저널> 2013년 3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국군사령관 제임스 서먼(James D. Thurman)은 2013년 3월 23일 한국군 합참의장 정승조와 함께 급변사태계획문서에 서명했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이 장성택을 사주하여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작전계획 5029를 더욱 보강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조선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장성택이 2012년 9월 17일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와 회담하는 장면이다. 장성택은 후진타오를 면담하기에 앞서 시찰명목으로 중국 남부에 갔는데, 중국 남부에 있는 마카오에서 김정남을 만났던 것이 확실하다. 장성택은 김정남을 만나고 다시 베이징으로가서 후진타오를 만났는데, 조선 대표단을 이끌고 후진타오를 면담한 직후 후진타오와 단독으로 만나 회담했다. 그 단독회담에서 장성택은 "김정남이 최고지도자로 될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되어 후진타오는 장성택의 정권찬탈역모를 알게 되었지만,그에 관한 정보를 조선측에 알려주지 않았다.  

 

 

5. 극비정보가 평양에 전해졌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조선 국가안전보위부가 장성택의 일거일동을 은밀히 감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3년 12월 13일 <YTN>이 방영한 대담프로그램에 따르면, 북측 사법당국은 장성택이 특별군사재판을 받고 사형당하기 약 1년 전부터 그를 감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것은 장성택이 베이징에서 후진타오와 단독회담을 하고 평양으로 돌아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국가안전보위부 감시망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떻게 그런 놀라운 일이 벌어졌을까? 의문을 풀어줄 결정적인 정보는 찾을 수 없지만, 장성택이 특별군사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한 때로부터 약 5년이 지난 2018년 2월 13일 일본 텔레비전방송 <NHK>의 보도내용이 눈길을 끈다. 보도에 따르면, 2012년 8월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되었던 장성택-후진타오 단독회담의 극비정보가 2013년 1월 평양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은 장성택이 특별군사재판을 받고 사형당하기 약 1년 전부터 국가안전보위부 감시망에 걸려들었다는 <YTN> 대담프로그램의 내용과 부합한다. 

 

세상에서 오직 장성택과 후진타오 두 사람만이 알고 있었던 단독회담의 극비정보를 조선측에 전한 사람은, 2018년 2월 13일 <NHK> 보도에 따르면, 저우융캉(周永康)이다. 2007년부터 10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원회 서기를 지낸 저우융캉은 장성택-후진타오 단독회담에 관한 극비정보를 접할 수 있는 최고위급 인사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우융캉이 중국식 개혁개방로선보다는 정통사회주의로선에 가까운 좌파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식 개혁개방로선을 거부하고 정통사회주의로선을 견지하는 조선이 장성택의 정권찬탈흉계로 위험지경에 다가서고 있음을 직감한 저우융캉이 장성택-후진타오 단독회담에 관한 극비정보를 조선에 전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장성택이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되기 직전인 2013년 12월 1일 저우융캉도 중국 사법당국에 체포되었다. 그는 국가기밀루설죄, 직권남용죄, 뇌물수수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지금도 복역 중이다. 

 

장성택이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rack H. Obama)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이 파탄되었음을 직감하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긴급히 소집하여 대책을 논의했다. 백악관은 장성택이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때로부터 불과 1시간 만에 이례적으로, 매우 신속하게 조선의 사법처리를 맹비난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장성택이 사형을 당하자, 그의 정권찬탈역모도 파탄되었고, 미국의 비밀공작과 북침특수전도발음모도 파탄되었다. 장성택을 사주하여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전복시키고, 핵무기와 핵물질을 탈취하려던 작전계획 5029는 장성택의 사형과 함께 파탄되었다. 미국의 북침특수전계획과 장성택의 정권찬탈역모가 빚어낸 흉악한 복합체가 깨져나간 것이다. 

 

그러나 정권찬탈역모와 북침특수전도발음모가 모두 파탄되었는데도 미국은 산산이 깨진 복합체의 파편을 버리지 않았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본성은 집요하다. 미국 국방부와 중앙정보국은 복합체의 깨진 파편들을 집요하게 움켜쥐었는데,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오바마 집권기의 미국 국방부는 장성택의 사형으로 파탄된 작전계획 5029를 내버리지 않고, 다른 작전계획들과 혼합하여 새로운 통합전쟁계획을 만들어냈다. <아시아경제> 2015년 2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작전계획 5029, 작전계획 5027, 국지전 작전계획을 통합한 새로운 작전계획 5015가 2015년 3월 중에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전계획 5015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통합전쟁계획으로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 오바마 집권기의 미국 중앙정보국은 장성택이 사형을 당한 이후에도 김정남과 비밀접촉을 유지하였다. <월스트릿저널> 2019년 6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남은 2017년 2월 9일 말레이시아의 휴양지인 랑카위섬에 있는 어느 호텔에서 며칠 머무르면서 한국계 미국인을 만났는데, 말레이시아 사법당국은 김정남이 만난 그 미국인이 중앙정보국 비밀요원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미국 중앙정보국에게 매수되어 자기 조국을 배반하고 장성택의 정권찬탈역모에 가담한 김정남은 장성택이 사형을 당한 후에도 중앙정보국과 비밀접촉을 유지하다가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말레이시아 사법당국은 사망한 김정남의 가방 속에 미화 124,000달러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런 정황은 미국 중앙정보국과 김정남이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사진 5>

 

▲ <사진 5> 위의 사진에 나타난 사람은 김정남이다. 그는 중국 마카오에 거주하면서 미국 중앙정보국과 장성택을 연결하는 비밀연락책으로 암약했고, 장성택의 정권찬탈역모에 가담했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장성택이 사형을 당한 뒤에도, 김정남과 비밀접촉을 유지하였다. 김정남은 2017년 2월 9일 말레이시아의 휴양지인 랑카위섬에 있는어느 호텔에 며칠 머무르면서 미국 중앙정보국 비밀요원과 접촉했다. 미국 중앙정보국에게 매수되어 자기 조국을 배반하고 장성택의 정권찬탈역모에 가담한 그는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말레이시아 사법당국은 사망한 김정남의 가방 속에 미화 124,000달러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런 정황은 미국 중앙정보국과 김정남이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6. 오바마의 참수작전능력증강과 박근혜의 망상

 

조선이 장성택을 제거하고 미국의 대조선비밀공작과 작전계획 5029를 파탄시키자, 그에 앙심을 품은 오바마 행정부는 북침전쟁계획을 더욱 보강하면서 광분했다. 위에서 서술한 대로, 미국 국방부는 작전계획 5029, 작전계획 5027, 국지전 작전계획을 긁어모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통합전쟁계획을 완성했다.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한국군 합참의장은 2015년 6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통합전쟁계획으로 완성된 작전계획 5015 문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미국군은 2015년 8월 17일부터 28일까지 벌어진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에서 새로 완성된 작전계획 5015를 처음으로 연습했다. 

 

2015년 8월 27일 서울에서 개최된 안보학술쎄미나에 발언자로 출연한 국방부 군구조개혁추진관 조상호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통합전쟁계획으로 완성된 작전계획 5015의 일부내용에 대해 언급했다. 그의 발언에 따르면, 한미연합군은 조선인민군의 공격징후를 포착하는 즉시 30분 안에 선제타격을 개시하고 참수작전에 돌입할 것이며, 조선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는 즉시 참수작전에 돌입할 것이라고 한다. 반란조직을 사주하여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전복하려던 흉계가 장성택의 사형으로 파탄되었기 때문에, 오바마 집권기의 미국 국방부는 선제타격과 참수작전으로 조선의 정권을 전복하려는 작전계획 5015를 만들어낸 것이다. 

 

작전계획 5015에 따라, 미국군과 한국군은 고도로 발전된 정밀타격미사일을 평양에 발사하여 조선의 최고지도부를 제거하는 선제타격을 더욱 광란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했고, 고도로 훈련된 특수전부대를 평양에 침투시켜 조선의 최고지도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더욱 광란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집권기의 미국 국방부는 2015년 11월 2일 한미안보협의회 제47차 회의에서 조선의 최고지도부를 제거하는 정밀타격능력과 선제타격능력을 증강하기 위한 4D이행지침을 승인했고, 2016년 3월 ‘키리졸브연습’에 처음으로 4D작전개념을 도입했다. 여기서 말하는 4D라는 것은 탐지(detect), 교란(disrupt), 파괴(destroy), 방어(defense)의 영문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약어다. 또한 미국은 작전계획 5015에 의거한 새로운 북침전쟁씨나리오를 2016년 8월 22일에 시작된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오바마 집권기의 미국 국방부는 참수작전능력도 더욱 증강했다. 2016년 3월 8일 미국 특수전사령관 조섭 보틀(Joseph L. Votel)은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인준청문회에서 지금 한국에는 미국 특수전병력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배치되었고, 공중과 해상과 지상의 유능한 특수전 전투원들이 당당히 주둔하고 있다고 하면서, 미국 특수전사령부가 수행할 책임 가운데 하나는 적국이 비밀리에 보관하는 핵무기를 압류(seize)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오바마 행정부가 선제타격능력과 참수작전능력을 증강하며 광분하는 것을 보고 고무된 대통령 박근혜는 조선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 정권이 전복될 것이라는 망상에 빠졌다. 국정롱단의 주범 최순실이 그런 망상을 더욱 부채질했다. 급변사태와 정권전복을 전제로 하는 흡수통일을 망상한 박근혜는 통일준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창설하고 자신이 위원장직을 맡았다. 박근혜는 2015년 8월 10일 청와대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통일은 내년이라도 될 수 있으니 여러분이 준비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보다 앞서 2015년 3월 10일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 정종욱은 서울에서 진행된 강연회에 출연하여 통일준비위원회 산하에는 체제통일을 준비하는 실무진이 있고, 정부 내 다른 조직에서도 체제통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하면서 “제체흡수통일은 하기 싫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라는 망언을 내뱉었다. 

 

국정원은 박근혜의 승인을 받은 폭탄테러를 은밀히 준비했다. 그것은 제2장성택을 매수하여 조선의 최고수뇌부를 폭탄테러로 제거하려는 흉계였다. 2017년 5월 5일 조선 국가보위성 대변인이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국정원은 로씨야 하바롭스크변강 림업지부 로동자였던 김 아무개를 매수하여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진행되는 국가행사 또는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되는 열병식에서 최고수뇌부를 노린 폭탄테러계획을 준비시키고, 그를 조선에 침투시켰다고 한다. 국가보위성은 국정원에 매수된 폭탄테러범을 2017년에 체포했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2020년 9월 25일 특수전사령부에서 개최된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고공락하훈련을 진행한 특수전 전투원들의 훈련성과를 치하하면서 주먹악수를 하는 장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제타격능력과 참수작전능력을 대폭 증강하는 미국의 북침전쟁준비에 부화뢰동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선제타격능력을 증강하기 위해 대량응징보복체계를 강화했고, 특수전사령부에 특임여단(참수부대)을 창설했으며, 참수부대 전투원들을 평양에 침투시킬 미국산 수송기를수입했고, 기존 작전헬기들을 참수작전용 침투헬기로 개조했으며, 미국군 특수전부대와 한국군 특수전부대의 합동공중강습훈련을 계속 벌여놓았다.  

 

 

7. 친서를 보내면서 참수작전능력 증강하는 문재인

 

촛불시위와 탄핵판결로 박근혜 정부는 퇴진했고, 남북대화와 평화번영을 주장하는 문재인 정부가 2017년 5월 10일에 출범했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모든 것이 좋게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고, 남북합의사항을 담은 공동선언도 발표되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여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었고, 조미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과 대화를 시작하고, 문재인 정부가 북과 대화를 시작한 것과 전혀 무관하게, 미국군과 한국군은 선제타격능력과 참수작전능력을 대폭 증강하면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통합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15를 광란적으로 연습하고 있다. 

 

작전계획 5015에 따라 평양에 침투하여 참수작전을 벌이려는 미국군 특수전부대들은 2020년 6월 15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요꼬다공군기지에서 특수작전용 수송기를 타고 공중침투훈련을 벌였다. 또한 2020년 7월 28일 미국 특수전사령부는 요꼬다공군기지에서 이륙한 특수작전용 수송기를 경상북도 포항 인근 해상으로 접근시키는 침투비행훈련을 벌였다.   

 

청년시절 특수전부대 전투원으로 복무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선제타격능력과 참수작전능력을 대폭 증강하는 미국의 북침전쟁준비에 부화뢰동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즉시 평양에 침투하여 조선의 최고지도부를 제거하는 한국군 특수전부대의 작전능력을 박근혜 정부보다 더욱 증강시켰다. 이를테면, 문재인 정부는 대북선제타격능력을 증강하기 위해 대량응징보복체계(KMPR)를 강화했고, 특수전사령부에 특임여단(참수부대)을 창설했으며, 참수부대 전투원들을 평양에 침투시킬 미국산 수송기 C-130H를 수입했고, 기존 작전헬기들을 참수작전용 침투헬기로 개조했으며, 미국군 특수전부대와 한국군 특수전부대의 합동공중강습훈련을 계속 벌여놓았다. 

 

문재인 정부는 참수작전임무를 맡은 특수전사령부에서 사상 처음으로 국군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2020년 9월 25일 경기도 이천에 있는 특수전사령부 연병장에서 개최된 국군의 날 행사에 나타난 문재인 대통령은 전투차량을 타고 행사장에 입장했고, 참수작전에 동원될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의 고공락하훈련과 무술시범을 참관하며 박수를 보냈으며, 평양으로 침투할 때 사용되는 참수작전용 헬기들의 전술비행을 참관했고, “단호한 대응”을 역설했다. 참수작전으로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9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국무위원장님과 가족분들께서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정중히 인사했다. 그런 그가 9월 25일에는 조선의 최고지도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격려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미국을 추종하여 부화뢰동하면서 참수작전능력을 대폭 증강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북에게 대화를 제의해도 그것은 진정성이 없는 제의이며, 북의 경계심을 풀어놓게 만들려는 술책으로 보인다.

2020/09/23

조선은 왜 발사순서를 바꾸었을까?

 [한호석의 개벽예감] (412)

자주시보 2020년 09월 21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전쟁추모예배당을 찾아간 백발노인

2. 조선은 왜 발사순서를 바꾸었을까?

3. 화성-14형을 요격하겠다는 미국

4.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채택한 제2선택안

5. 미국 전략사령부가 개정한 작전계획 5027

6. 미국 특수전사령부가 보완한 작전계획 5015

7. 미국 특수전사령부가 그려놓은 만화 같은 씨나리오

 

 

1. 전쟁추모예배당을 찾아간 백발노인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매사츄세츠거리와 위스컨신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웅장화려한 석조건물이 있다. 1907년에 착공한 이후 83년 동안 시간을 질질 끌면서 건축공사를 계속하더니 1990년에 완공된 워싱턴국립성당(Washington National Cathedral)이다. 그곳에서는 취임식을 마친 미국 대통령을 위한 예배가 진행되기도 하고, 별세한 미국 대통령의 국장이 진행되기도 한다. 해마다 약 25만 명이 넘는 관광인파가 몰려드는 관광명소로도 유명하다.   

 

2017년 10월 중순, 날이 어둑어둑해진 시각에 60대 후반 백발노인 한 사람이 워싱턴국립성당 경내로 들어섰다. 본당 뒤에 있는 전쟁추모예배당(War Memorial Chapel)으로 들어간 백발노인은 아무도 없는 예배당 안에서 머리를 숙인 채 두 눈을 감고 오랜 시간 조용히 앉아있었다. 얼핏 봐서는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백발노인은 말하지 못할 고민을 안고 그곳을 찾은 것이었다. 그 백발노인이 바로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다.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Robert U. Woodward)는 최근 발간된 자신의 책 ‘격노(Rage)’에서, 2017년 10월 중순 어느 날 저녁 경호원들을 밖에 남겨두고 홀로 전쟁추모예배당에 들어간 매티스가 당시 전쟁위험에 빠진 미국의 처지를 두고 고뇌하였다고 하면서, 훗날 매티스가 자기에게 털어놓은 회고담의 한 토막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 문제(전쟁위험을 뜻함-옮긴이)가 매일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그것은 기우가 아니었다. (중략) 최악의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전쟁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지,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신속하게 중단시킬 수 있겠는지 고민했다.”    

 

국방장관 매티스를 짓누른 전쟁위험은 조선과 미국이 전쟁일보직전에 다가섰던 급박한 상황이었다. 우드워드의 책 ‘격노’에 따르면, 2017년 10월 중순 조선과 미국의 대결상황이 위험계선을 넘어섰다고 판단한 매티스는 한때 군복을 입고 잠을 자야 할 정도로 긴장했고, 자신을 짓누르는 전쟁위험의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다 못해 전쟁추모예배당을 여러 차례 찾아가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원래 매티스는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에 참전하여 미친 개(mad dog)라는 별명을 얻은 제1해병원정군 지휘관 출신이다. 침략전쟁의 선봉에서 광포하게 날뛰는 해병대를 마치 ’미친 개‘처럼 지휘하며 포연탄우 속을 누볐다는 매티스가 전쟁위험이 닥쳐온 위급한 때에 군부대를 시찰한 것이 아니라 종교시설을 찾아가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7년 10월 27일 제임스 매티스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 송영무당시 국방장관의 안내를 받으며 판문점을 방문하여 미국군 경비대장의 설명을 듣는장면이다. 2017년 2월부터 11월까지 9개월 동안 조선은 미사일시험발사를 무려 23차례나 계속하면서 미국을 벼랑끝으로 몰아갔다. 침략전쟁의 선봉에서 광포하게 날뛰는 미국 해병대를 '미친 개'처럼 지휘하며 포연탄우 속을 누볐다는 매티스는 전쟁위험이 닥쳐온 위급한 때에 군부대를 시찰한 것이 아니라 종교시설을 찾아가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전쟁위험의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2. 조선은 왜 발사순서를 바꾸었을까?

 

조선은 2017년 2월부터 11월까지 9개월 동안 미사일시험발사를 무려 23차례나 계속하면서 미국을 벼랑끝으로 몰아갔고, 사상 최대의 압박을 받은 미국은 광란적으로 반발했다. 2017년 당시 미국을 결정적으로 압박한 것은 화성-12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였다. 화성-12형의 사거리는 8,400km로 추정되고, 화성-14형의 사거리는 11,200km로 추정된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조선은 사거리가 8,400km인 화성-12형을 먼저 쏜 다음에 사거리가 11,200km인 화성-14형을 쏘았어야 한다. 그런데 발사순서가 바뀌었다. 이상하게도, 조선은 사거리가 긴 화성-14형을 먼저 쏘고, 사거리가 짧은 화성-12형을 나중에 쏜 것이다. 왜 발사순서를 그렇게 바꾼 것일까?

 

조선은 당시 전쟁일보직전의 상황을 면밀히 타산하여 그처럼 발사순서를 바꾼 것인데, 그 사연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이 자기의 최대 강적인 미국과 맞붙은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미국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기습전법으로 매우 짧은 시간에 전쟁을 결속해야 하는데, 2017년의 상황은 그런 기습전법을 사용할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당시 조선은 각종 탄도미사일을 계속 시험발사하면서 대미압박강도를 점증시키고 있었고, 사상 최대의 압박을 받은 미국은 광란적으로 반발하고 있었다. 미국의 광란적 반발은 조선에 대한 무력도발위협과 침략전쟁준비로 직결되었다. 미국이 방심하기는커녕 극도의 경계심과 긴장감 속에서 무력도발위협과 침략전쟁준비에 광란하던 2017년의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조선은 기습전법으로 전쟁을 신속히 결속할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조선은 미국을 벼랑끝으로 몰아가면서도 미국이 상황을 오판하여 전쟁을 도발하지 않게 하는 절묘한 책략을 써야 했다. 

 

여기서 말하는 미국의 상황오판은, 미국이 북태평양 상공으로 날아가는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사일방어체계로 요격한다는 뜻이다. 만일 미국이 요격탄을 쏘아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격추하면, 조선은 그에 대한 보복공격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선과 미국은 전쟁에 돌입하게 될 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조선은 기습전법으로 전쟁을 신속히 결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선은 사거리가 긴 것으로 하여 미국의 상황오판을 유발할 수 있는 화성-14형을 사거리를 대폭 단축시킨 고각발사방식으로 쏘아올렸다. 열핵탄두를 장착하고 워싱턴까지 날아갈 수 있는 화성-14형은 2017년 7월 4일과 7월 28일 북태평양이 아닌 동해로 발사되었고, 핵탄두를 장착하고 미국 본토 서부지역까지 날아갈 수 있는 화성-12형은 2017년 8월 29일과 9월 15일 동해가 아닌 북태평양으로 발사되었던 것이다. 

 

2017년 9월 15일에 발사된 화성-12형의 모의핵탄두는 일본 홋까이도 동쪽 해안에서 2,700km 떨어진 북태평양에 떨어졌다. 그런데 만일 화성-12형보다 사거리가 훨씬 더 긴 화성-14형을 쏘았다면, 알래스카 근해까지 날아갔을 것이 분명하다. 만일 화성-14형이 알래스카 근해까지 날아가면, 미국은 알래스카의 미사일방어체계로 화성-14형을 요격했을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7년 7월 4일 조선에서 발사된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창공으로 솟구쳐오르는 장면이다. 로켓엔진에서 뿜어나온 거대한 후폭풍이 주위를 덮었으니, 엄청난 추력이다. 당시 조선은 사거리가 11,200km인 화성-14형을 먼저시험발사한 다음 사거리가 8,400km인 화성-12형을 시험발사했다. 발사순서를 바꾼것이다. 그렇게 한 까닭은 미국의 상황오판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발간된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의 책 '격노'를 읽어보면, 2017년 당시 조선이 그처럼 발사순서를 바꾼 것은 미국의 상황오판을 예방하기 위한 매우 적절하고 절묘한 책락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화성-14형을 요격하겠다는 미국

 

화성-12형이 북태평양까지 날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8월 29일에 발표한 특별성명에서 화성-12형을 시험발사한 조선을 비난하면서 “모든 선택은 탁자 위에 놓여있다”고 협박조로 말했다. 그가 말한, 탁자 위에 놓여있는 선택은 조선의 미사일이 알래스카 근해로 날아오면 알래스카의 미사일방어체계로 요격하겠다는 뜻이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7년 9월 8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9월 3일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과 조섭 던포드(Joseph F. Dunford) 당시 합참의장을 비롯한 고위참모 6명을 백악관으로 불러 오찬을 겸한 회의를 진행하면서 조선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관한 대응방침을 논의했고, 고위참모 6명은 트럼프 대통령과 대응방침을 논의한 직후 백악관 상황실로 가서 조선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응하는 실행방도를 더 논의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을 보면, 2017년 9월 3일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참모 6명은 화성-14형이 알래스카 근해로 날아오면 알래스카의 미사일방어체계로 요격하려는 대응책을 논의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당시 미국 북부사령관 겸 북미우주항공사령관이었던 로리 로빈슨(Lori J. Robinson)의 회고담은 미국이 화성-14형을 요격할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2019년 12월 18일 워싱턴의 민간연구기관 브루킹스연구원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한 로빈슨은 조선이 미사일시험발사를 23차례 계속했던 2017년 한 해 동안, 조선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매번 미국은 그 미사일이 미국 본토로 날아올 수 있다고 가정했었다고 회고했다. 이것은 알래스카의 미사일방어체계로 요격할 준비를 갖추었다는 뜻이다. 

 

2017년 9월 3일 알래스카 근해로 날아오는 조선의 미사일을 요격하려는 실행방도를 검토한 매티스 국방장관은 그로부터 보름 뒤인 9월 18일 국방성 청사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서울을 큰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조선에게 취할 군사적 선택안이 있는가라는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은 화성-14형을 요격하면서도 조선의 보복공격을 받지 않을 묘책이 있는지를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 질문을 받은 매티스는 “그렇다. 있다. 하지만 자세한 말은 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매티스는 취재기자들에게 군사작전계획을 말해줄 수 없었지만, 당시 미국의 군사행동을 추적해보면, 매티스가 말해줄 수 없었던 군사작전계획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 윤곽은 다음과 같다.  

 

2017년 9월 18일 B-1B 전략폭격기 2대와 F-35B 스텔스전투기 4대가 태백산에 있는 필승훈련장으로 날아와 폭격훈련을 감행했다. 2017년 9월 23일에는 괌(Guam)의 앤더슨공군기지(Andersen Air Force Base)에서 이륙한 B-1B 전략폭격기 편대가 F-15C 전투기 6대의 호위를 받으며 오후 11시 30분경 동해 해상분계선을 넘어 약 150km까지 북상하더니 함경남도에서 멀리 떨어진 공해 상공에서 북침공격연습을 감행했다. 원산 인근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지대공미사일부대는 탐지레이더로 동해 해상분계선을 넘어선 B-1B 전략폭격기 편대를 추적하면서 번개-4 지대공미사일을 즉시발사태세로 전환시켰다. 번개-4의 사거리는 300km이고, 요격고도는 40km이므로, 만일 B-1B 전략폭격기 편대가 조선 영공 가까이 접근하였으면 번개-4에 맞아 격추되었을 것이다. 

 

위에 서술한 내용을 종합하면, 2017년 9월 당시 미국이 준비한 화성-14형 요격작전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것은 미국이 위성감시망을 통해 화성-14형 시험발사징후를 포착하는 즉시 동해 상공으로 전략폭격기 편대를 출동시키는 것이며, 전략폭격기 편대를 출동시켜 위협했는데도 조선이 그것을 무시하고 화성-14형을 알래스카 근해로 발사하면, 미국은 알래스카의 미사일방어체계로 화성-14형을 요격한다는 것이었다. 우드워드의 책 ‘격노’에 따르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매티스 국방장관에게 미국을 향해 날아오는 조선의 미사일을 요격할 권한을 주었다고 한다. 

 

우드워드의 책 ‘격노’에 따르면, 백악관과 미국 국방성의 핵심참모들은 2017년에 조선이 진행한 23차례의 미사일시험발사들 가운데서 6차례의 시험발사를 실시간으로 감시했다고 한다. 이것은 백악관과 국방성의 핵심참모들이 5월 14일의 화성-12형 시험발사, 7월 4일의 화성-14형 시험발사, 7월 28일의 화성-14형 시험발사, 8월 29일의 화성-12형 시험발사, 9월 15일의 화성-12형 시험발사, 11월 29일의 화성-15형 시험발사를 위성감시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9년 9월 9일 조섭 던포드 미국 합참의장이 북미항공우주방어사령부 및 미국 북부사령부를 방문하여 테런스 오쇼너시 사령관의 설명을 듣는 장면이다. 화성-12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북태평양까지 날아갔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은워싱턴은 정신적 충격으로 발칵 뒤집혔다. 백악관에서는 긴급대책회의가 진행되었다. 그 자리에서 조선의 미사일시험발사에 대한 대응방침과 실행방도가 논의되었다.그들은 위성감시망을 통해 화성-14형 시험발사징후를 포착하는 즉시 동해 상공으로전략폭격기 편대를 출동시켜 조선을 위협하고, 그런데도 조선이 미국의 위협을 무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를 강행하면 알래스카의 미사일방어체계로 요격한다는 대응책을 결정했다.  

 

 

4.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채택한 제2선택안

 

미국 국방성이 작성한 화성-14형 요격작전계획서를 검토한 매티스는 고뇌에 빠져들었다. 왜냐하면 화성-14형 요격작전계획에 두 가지 심각한 사연이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1) 알래스카의 미사일방어체계는 실전에서 요격성능을 검증하지 못한 군사장비다. 요격시험을 여러 차례 했다지만,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매티스는 요격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만일 알래스카의 미사일방어체계가 알래스카 근해로 날아오는 화성-14형을 향해 요격탄을 발사했으나 빗나가서 요격에 실패하는 경우, 미국은 세계 앞에서 만회하기 힘든 ‘개망신’을 당할 것이고 조선은 미국과의 대결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 동안 엄청난 시간과 천문학적인 경비와 노력을 기울여 구축해놓은 미사일방어체계는 무용지물로 전락할 것이다. 사연이 이처럼 심각했으므로, 매티스는 요격작전계획서를 앞에 놓고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2) 만일 알래스카의 미사일방어체계가 알래스카 근해로 날아오는 화성-14형을 요격하면, 조선은 미국의 요격도발에 상응한 보복을 가할 것이 분명하였다. 조선의 보복은 화성-12형을 불시에 발사하여 B-1B 전략폭격기가 배치된 괌의 앤더슨공군기지를 공격하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2017년 8월 10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사령관은 화성-12형 4발을 괌 주변해상에 떨어뜨리는 위력시위사격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것은 화성-14형이 요격당하는 경우 괌의 앤더슨공군기지를 화성-12형으로 공격하려는 조선의 보복조치를 예고한 발언이었다. 이처럼 미국이 미사일방어체계로 화성-14형을 요격하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조선이 괌의 앤더슨공군기지를 화성-12형으로 공격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 분명하였다. 사연이 그처럼 심각했으므로, 매티스는 요격작전계획서를 앞에 놓고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고뇌에 빠진 매티스는 2017년 10월 27일 적진이 눈앞에 보이는 판문점에 나타나 “우리의 목표는 전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대재앙을 입을 수 있는 전쟁을 피하고 싶다는 솔직한 심정이 그 발언에서 묻어난다. 화성-14형을 요격할 수도 없고, 요격하지 않을 수도 없는 최악의 난국에 빠진 매티스 국방장관은 고뇌 속에 빠져들었건만, 무심한 트럼프 대통령은 핵공격으로 조선을 파괴할 수 있다는 극언을 토하면서 분위기를 한층 더 악화시켰다. 그는 2017년 9월 19일 유엔총회 제72차 회의에서 연설하면서 “미국과 동맹국들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조선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도발적 폭언으로 조선을 격노하게 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리용호 당시 조선외무상은 유엔총회 제72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서 머물던 중에 트럼프의 도발적 폭언을 듣고 격분했다. 그래서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9월 21일 특별성명에서 트럼프의 도발적 폭언에 대해 “사상 최고의 초강경대응조치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언급한 사정을 취재기자들에게 설명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결정할 사상 최고의 초강경대응조치는 태평양에서 수소탄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용호 외무상의 발언이 보도되자, 워싱턴은 발칵 뒤집어졌다. 왜냐하면, 태평양에서 수소탄을 시험한다는 말은 조선이 열핵탄두(수소탄)를 장착한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북태평양 상공에서 그 열핵탄두를 폭발시킨다는 뜻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2016년 10월 한국 국방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분석자료에 따르면, 열핵탄두가 100km 상공에서 폭발하는 경우 초강력한 전자기파(electro-magnetic pulse)가 방사되어 반경 1,000km에 있는 전자장비와 전기설비가 모두 마비되는 대재앙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만일 화성-14형에 장착된 열핵탄두가 북태평양 상공에서 폭발하면, 열핵폭발로 방사된 초강력한 전자기파가 알래스카와 하와이에 있는 모든 전자장비와 전기설비를 마비시킬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와이에 있는 인도태평양사령부가 폐쇄되고, 북태평양에 배치된 미국 해군 항공모함과 전함들이 마비되어 움직임을 멈추고, 알래스카의 미사일방어체계는 물론이고, 알래스카에 배치된 F-22 스텔스전투기를 비롯한 모든 전투장비들이 모조리 마비상태에 빠지는 대재앙이 일어나는 것이다.     

 

리용호 외무상의 발언을 듣고 충격을 받은 백악관은 긴급히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여 비상대책을 논의했다. 그 자리에서 결정된 비상대책은, 만일 북태평양으로 날아온 화성-14형의 열핵탄두가 고공에서 폭발하여 미국이 대재앙을 입으면, 미국은 조선에 보복핵공격을 가한다는 이른바 제2선택안(second option)이었다. 2017년 9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워싱턴을 방문한 에스빠냐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치고 공동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중에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선택안이지만 제2선택안을 전적으로 준비했다. 우리가 그 선택안을 실행하면, (조선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주게 될 것”이라는 협박발언을 늘어놓았다. 

 

2017년 10월 5일 머지않아 전선에 투입될지도 모르는 고위급 야전지휘관들을 백악관으로 초대하여 제2선택안이 준비되었음을 확인한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주위에 몰려든 취재기자들에게 “지금은 폭풍전야의 고요함과 같다”고 말하여 묘한 여운을 남겼다. 폭풍전야의 고요함이라는 비유는 조선이 열핵탄두를 장착한 화성-14형을 언제 북태평양으로 쏘아올릴지 몰라서 매우 긴장된 상황을 뜻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국제정치전문가 대니얼 드레즈너(Daniel W. Drezner)는 2017년 12월 14일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자신의 글에서 자기가 12월 초순에 만난 트럼프의 참모들은 미국이 조선을 더 이상 억제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음을 확신하는 듯하다고 썼다.   

 

열핵탄두를 장착한 화성-14형 시험발사에 대응하기 위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채택한 제2선택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에 발간된 우드워드의 책 ‘격노’에서 그 선택안의 윤곽이 드러나 세상을 경악케 했다. 그 책에 나오는 매티스의 회고담에 따르면, 2017년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조선을 공격하기 위한 두 가지 전쟁계획을 준비했다고 한다. 매티스가 회고담에서 밝힌 두 가지 전쟁계획은 미국 전략사령부(Strategic Command)가 “주의 깊게 검토하고 연구한(carefully reviewed and studied)” 작전계획 5027과 "보완된(updated)" 작전계획 5015다. 

 

2017년 10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매티스 국방장관과 던포드 합참의장을 백악관 대통령집무실로 불러 숙의했는데, 그 자리에서 작전계획 5027과 작전계획 5015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미국 알래스카주 포트 그릴리에 있는 미사일방어체계 통제실 내부를 촬영한 것이다. 2017년 당시 조선이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알래스카근해로 쏘아올리는 시험발사를 하면, 미국은 포트 그릴리에 있는 미사일방어체계를가동하여 화성-14형을 요격하려고 했다. 2017년 9월 유엔총회 제72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 머물고 있었던 리용호 당시 조선외무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면서 조선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는 도발적 폭언을 늘어놓은 것에 격노하여 취재기자들에게 열핵탄두를 장착한 화성-14형을 북태평양으로 쏘아올려 그 열핵탄두를 폭발시킬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충격적인 발언으로 워싱턴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리용호 외무상의 발언대로라면, 하와이와 알래스카, 그리고 북태평양 작전구역에 배치된 미국의 각종 군사장비들은 열핵탄두가 고공에서 폭발할 때 방사되는 초강력한 전자기파로 전부 마비되는 대재앙을 빠지게 된다.  

 

 

5. 미국 전략사령부가 개정한 작전계획 5027

 

2017년 당시 미국 전략사령부가 작전계획 5027을 주의 깊게 검토하고 연구했었다는 매티스의 회고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작전계획 5027은 미국 전략사령부가 수립한 북침전쟁계획이 아니었다. 그 작전계획은 신속억제전력(FDO), 전투력증강전력(FMP), 시차별 부대전개전력(TPFDD)을 순차적으로 투입하는 북침전쟁계획이다. 작전계획 5027에 따르면, 미국은 전투병력 69만명, 전투함선 160척, 작전기 2,000대를 전시증원무력으로 편성하여 3개월 동안 북침전선에 투입하게 된다. 하지만 그처럼 방대한 전시증원무력을 장장 3개월 동안 북침전선에 투입하는 작전계획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므로, 미국은 전시증원무력에 관한 내용을 이미 오래 전에 삭제했다.   

 

그런데 매티스의 회고발언에 나온 것처럼, 2017년 9월 하순 미국 전략사령부가 작전계획 5027을 주의 깊게 검토하고 연구한 것은 전시증원무력을 3개월 동안 순차적으로 북침전선에 투입하는 비현실적인 작전계획이 아니라, 핵무력을 신속하게 북침전선에 투입하는 현실적인 작전계획을 주의 깊게 검토하고 연구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 전략사령부는 핵무력을 신속하고 전격적으로 사용할 핵타격계획을 준비했다는 뜻이다. 우드워드의 책 ‘격노’에 나오는 매티스의 회고발언에 따르면, 2017년 당시 미국 전략사령부가 주의 깊게 검토하고 연구한 작전계획 5027 개정본(revised version)에는 핵무기 80개로 조선의 전략거점들을 파괴하는 핵타격계획이 들어있었다. 다시 말해서, 조선이 열핵탄두를 장착한 화성-14형을 북태평양으로 쏘아올릴 확실한 징후가 포착되면, 미국은 전략사령부가 지휘하는 스텔스전략폭격기 편대를 긴급히 출격시켜 조선의 전략거점들에 핵폭탄 80발을 투하한다는 것이다.

  

핵폭탄 80발을 투하하면 조선 전역이 초토화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만일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이 폭발위력이 5킬로톤인 전술핵폭탄 80발을 조선의 전략거점 80개소에 투하하면, 전략거점들만 선별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 

 

미국은 B-61 전술핵폭탄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다. 폭격대상의 견고함에 따라 폭발위력을 조절할 수 있는 B-61 전술핵폭탄은 B-2 스텔스전략폭격기에 16발 탑재된다. 그러므로 미국 전략사령부가 폭발위력을 5킬로톤급으로 조절한 B-61 전술핵폭탄 80발을 북침공격에 사용하려면, B-2 스텔스전략폭격기 5대를 한반도 상공으로 출격시키면 될 것이다. 

 

B-2 스텔스전략폭격기가 배치된 곳은 미국 미주리주에 있는 화이트먼공군기지(Whiteman Air Force Base)인데, 2017년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그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3대가 조선의 지형과 유사한 지역으로 날아가 매우 낮은 고도로 비행하면서 폭탄을 투하하는 야간공습을 연습했다. 이것은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이 조선의 전략거점들을 전술핵폭탄으로 파괴하려는 핵타격연습이었다.

 

이 북침핵타격연습은 미국 본토에서 비공개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알 길이 없었지만,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조종사들과 지상관제소 사이에 오가는 무선교신을 우연히 감청한 현지의 민간인 무선사가 미국 항공전문지에 감청내용을 폭로하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졌다. 민간인 무선사의 폭로에 따르면, 그날 밤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조종사들과 지상관제소는 “조선의 지도부가 있는 사령부 위치”라는 말을 쓰면서 교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위에 서술한 내용은 일방적인 것에 불과하다. 2017년 9월부터 10월 사이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채택했던 북침전쟁계획과 그에 따른 북침공격연습은 얼핏 보면 굉장한 것 같지만, 실전상황을 고찰하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1) 조선은 미국의 태평양작전구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12형에 핵탄두를 장착했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화성-14형에 열핵탄두를 장착했다. 시험발사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2017년 11월 29일에는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성공했다. 이것은 조선이 강력한 보복핵공격력을 보유하였음을 의미한다. 조선의 보복핵공격을 두려워하는 미국은 감히 북침전쟁을 도발하지 못한다. 

  

2) 조선에게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를 탐지하고 격추할 요격능력이 있다. 스텔스비행체의 레이더회피능력이 과장되었기 때문에, 스텔스비행체를 전혀 요격할 수 없는 신비한 비행체처럼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되었지만, 실전상황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조선은 이미 오래 전에 스텔스비행체를 먼 거리에서 탐지하는 특수레이더를 보유했고, B-2 스텔스전략폭격기를 비롯한 각종 스텔스비행체를 먼 거리에서 요격할 번개 계렬의 장거리지대공미사일을 실전배치했다. 조선의 다층방공망은 전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게 구축되었다. 그러므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편대는 그처럼 조밀하고, 강력한 조선의 다층방공망을 뚫지 못한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미국이 자랑하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의 비행장면이다. 2017년 당시 미국 전략사령부는 조선이 열핵탄두를 장착한 화성-14형을 북태평양으로 쏘아올릴 확실한 징후가 포착되는 경우, B-2 스텔스전략폭격기 편대를 긴급히 출격시켜 조선의 전략거점들에 전술핵폭탄 80발을 투하한다는 북침공격계획을 수립했다.그리고 미국 미주리주에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3대를 동원하여 조선의 지형과 유사한 지역의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야간공습을 연습했다. 하지만 조선이 이미 미국 본토를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했으므로, 조선의 보복핵공격을 두려워하는 미국은 감히 북침전쟁을 도발하지 못한다. 더욱이 미국의 스텔스전략폭격기 편대는 조선이 전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게 구축한 강력한 방공망을 뚫을 수도 없다.  

 

 

6. 미국 특수전사령부가 보완한 작전계획 5015

 

매티스가 회고담에서 언급한 두 가지 전쟁계획 가운데 다른 하나는 "보완된(updated)" 작전계획 5015다. 우드워드는 자기의 책 ‘격노’에서 작전계획 5015가 보완되었다고 서술했을 뿐, 미국 특수전사령부가 그 작전계획을 보완했다는 사실은 서술하지 않았다. 

 

원래 작전계획 5015는 정밀타격으로 조선의 전쟁지휘체계를 마비시키고, 특수전부대를 평양에 침투시켜 조선의 전쟁지도부를 제거한다는 이른바 ‘참수작전’을 중심내용으로 하는 북침전쟁계획이다. 2015년 6월 한국군 합참의장과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작전계획 5015에 서명했다. 

 

<동아일보> 2017년 1월 8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특수전부대와 한국 특수전부대는 2017년부터 연합훈련을 대폭 확대하여 참수작전능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2017년 12월 1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 국방부는 ‘참수부대’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특수임무여단을 12월 1일에 창설했는데, 특수임무여단은 유사시 평양에 침투해 조선의 전쟁지도부를 제거하고 전쟁지휘체계를 마비시키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고 한다. 미국 언론매체 <워싱턴자유횃불> 2017년 5월 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특수전부대가 조선에 침투하여 수행할 전투임무는 조선의 핵무기와 미사일발사대차(TEL)를 파괴하는 것이고, 조선의 핵무기와 화학무기가 보관된 전략무기고들의 위치를 파악하여 전략폭격기 편대의 정밀폭격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연합뉴스> 2017년 1월 8일 보도에 따르면, 매년 진행되는 한미연합북침전쟁연습에 참가하는 미국 특수전부대 병력은 1,000명이라고 한다. 한국 국방부가 2017년 12월 1일에 창설한 특수임무여단 병력도 1,000명이다. 그러므로 유사시 평양에 침투하여 ‘참수작전’을 수행할 한미연합특수전부대는 2,000명으로 편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사시 특수전 병력 2,000명은 어떻게 평양에 침투할 수 있을까? 평양까지 걸어서 갈 수 없고, 수송차량을 타고서도 갈 수 없으므로, 수송기를 타고 날아가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앉는 수밖에 없다. 한미연합군 특수전 병력이 유사시에 사용할 공중수송수단은 MC-130 수송기 또는 MV-22 수직이착륙기다. 이 두 종의 수송기는 프로펠러 엔진을 달고 시속 480~500km로 매우 느리게 날아가는 ‘굼벵이 비행체’들이다. 수송기는 기체가 퉁퉁하고 커서 스텔스기술을 적용할 수도 없다. 시속 1,000km로 날아가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도 뚫지 못하는 조선의 조밀하고, 강력한 다층방공망을 시속 480~500km로 날아가는 ‘굼벵이 비행체’가 뚫는다는 것은 만화 같은 이야기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조선로농적위군 고사총부대 여성병사들이 군사행진에 참가한장면이다. 1959년에 창설된 조선로농적위군은 전체 인구의 4분의 1인 572만명으로편성되었다. 그 중에서도 핵심조직은 160만명으로 편성된 교도대다. 교도대 160만명은 조선인민군 보병사단 무장력의 70~80%를 보유했고, 조선인민군과 합동훈련도한다. 매우 강한 전투력을 가진 것이다. 2017년 9월 미국 특수전사령부는 유사시 한미연합특수전부대를 평양에 침투시켜 조선의 전쟁지휘부를 제거하고 전쟁지휘체계를 마비시킨다는 북침공격계획을 수립했지만, 그들을 평양으로 실어나를 수송기들은 조선의 조밀하고, 강력한 다층방공망에 걸려 군사분계선 상공에서 모조리 격추될것이다. 설령 그들을 태운 수송기가 조선의 다층방공망을 뚫고 후방에 침투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들은 조선로농적위군 교도대 160만명과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참수작전계획'은 만화 같은 씨나리오다.  

 

 

7. 미국 특수전사령부가 그려놓은 만화 같은 씨나리오

 

2017년 1월 29일 미국 특수전부대들 가운데서도 최정예부대라는 해군 특수전부대(Navy SEAL) 전투원 48명이 MV-22 수직이착륙기 2대에 나눠 타고 중동국가 예먼(Yemen)에 있는, 알카에다 전투원들이 은신한 야클라 마을을 습격했다. 이 습격전에는 미국 해병대가 출동시킨 코브라 공격헬기들과 미국 해군 항공모함에서 이함한 해리어 함재기들도 참가했다. <워싱턴포스트> 2017년 1월 31일 보도에 실린 미국군 지휘관의 말에 따르면, 그날 미국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인 야클라 마을의 알카에다 전투원들 가운데는 여성전투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마을을 지키는 민병대원들 다수가 전투에 참가했음을 말해준다. 

 

항공지원사격을 받은 미국군 최정예부대 전투원들과 민병대 수준의 알카에다 전투원들이 맞붙은 전투에서 당연히 미국군이 일방적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교전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 전투에서 미국 해군 특수전부대 전투원 1명이 전사했고, 3명이 부상당했으며, 대당 7,000만 달러짜리 MV-22 수직이착륙기 1대를 잃어버렸다. 알카에다 전투원들은 14명이 전사했다. 코브라 공격헬기들과 해리어 함재기들이 전투 중에 수세에 몰린 미국 해군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을 지원해준다고 하면서 야클라 마을에 무차별 사격을 퍼붓는 바람에 여성 8명과 어린이 9명을 비롯한 주민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만일 항공지원사격이 없었다면, 미국 해군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은 참패를 당했을 것이다. 

 

그보다 앞서 2011년 8월 5일 미국 해군 특수전부대 전투원 25명은 헬기를 타고 아프가니스탄 동부지역에서 공중침투작전을 수행하다가 탈레반의 기습공격을 받고 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몰살당한 사건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정식 군사훈련을 받은 정규군이 아니라 자기 마을을 지키는 민병대원들인데,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 해군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은 그런 민병대원들과 싸워서도 이기지 못한다. 

 

만일 미국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을 태운 수송기가 조선의 다층방공망을 뚫고 후방에 침투하는 ‘기적’이 일어나면, 조선로농적위군 전투원들이 그들을 상대하게 될 것이다. 민병대처럼 조선로농적위군도 군사훈련이 허술하고 무장력이 약하다고 과소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완전한 착오다. 

 

조선로농적위군은 1959년 1월 14일에 창설되었다. 2020년 7월 24일 미국 육군성이 펴낸 ‘북조선의 전술(North Korean Tactics)’이라는 제목의 자료에 따르면, 조선로농적위군 병력은 전체 인구의 4분의 1인 572만명이고, 연간군사훈련시간은 160시간이라고 한다. 조선로농적위군에는 제대군인을 중심으로 1963년에 편성된 핵심조직이 있는데, 그 핵심조직이 바로 160만명으로 편성된 교도대다. 교도사단병력은 32만명, 교도려단병력은 78만명, 교도대학생 병력은 50만명이다. 조선로농적위군은 조선인민군 보병사단 무장력의 70~80%를 보유했기 때문에, 웬만한 나라 정규군의 무장력에 버금갈 만큼 강하다. 조선로농적위군은 한미연합군의 북침전쟁연습기간에 그에 대응하여 조선인민군과의 합동훈련, 독자적인 야외전술훈련과 병과훈련을 받는다. <자유아시아방송> 2014년 10월 27일 대담기사에 따르면, 해마다 10월말부터 11월초에는 조선로농적위군이 조선인민군을 상대로 쌍방실동훈련을 진행한다고 한다. 쌍방실동훈련은 조선로농적위군 전투원들이 자기들이 사는 도시, 공장, 마을을 방어하고,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이 도시, 공장, 마을을 공격하는, 실전을 방불케 하는 전투훈련이다. 

 

여성대원들이 포함된 알카에다 민병대나 탈레반 민병대와 싸워서도 이기지 못한 미국 특수전부대는 강한 전투력을 가진 조선로농적위군 교도대 160만명과 싸우는 전투에서 이길 수 없다. 설령 미국 특수전사령부가 70,000명 병력 전체를 북침공격에 동원해도, 조선로동적위군 572만명과 싸워 이길 수 없다. 한미연합특수전부대의 ‘참수작전계획’은 만화 같은 씨나리오다.

2020/09/16

크로마이트작전과 월미도방어전 70주년

 [한호석의 개벽예감](411)

자주시보 2020년 09월 1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1950년 6월 19일 미국의 북침작전계획

2. ‘작전계획 크로마이트’에 담긴 네 가지 씨나리오

3. 맥아더의 극비작전계획 빼돌린 조선인민군 정찰병 

4. 75,000명 대 400명의 싸움

5. 월미도의 마지막 혈전

6. 금성-4 순항미사일과 익명의 탄도미사일

 

 

1. 1950년 6월 19일 미국의 북침작전계획 

 

1950년 6월 25일 38도선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고속기동전으로 한국군 방어선을 돌파한 조선인민군은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공격을 중지했다. 남북무력충돌은 조선인민군의 서울점령으로 3일 만에 종식되었다.  

 

그런데 남북무력충돌이 종식된 이튿날인 1950년 6월 29일부터 미국 원동군 소속 폭격기들이 일본에서 바다를 건너와 폭격을 감행하면서 전쟁을 도발했다. 남북무력충돌은 사상자를 많이 내지 않고 3일 만에 종식되었는데, 미국의 전쟁도발로 조선은 새로운 전면전에 돌입해야 했다. 만일 미국이 무력침공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6.25전쟁은 3일 만에 끝났을 것이다. 

 

1950년 6월 당시 일본을 점령하고 있었던 미국 원동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원동사령부 산하 합동전략기획단에게 조선을 침공할 작전계획을 수립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맥아더는 3일 만에 끝난 6.25전쟁을 재발시키고 확전시킨 전쟁도발의 주범이다. 1950년 7월 4일 합동전략기획단은 자기들이 완성한, ‘블루하츠(Bluehearts)’라는 제목의 작전계획을 맥아더에게 보고했다. 그 작전계획에 따르면, 미국 해병대가 1950년 7월 22일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을 점령하고, 미8군은 남부전선에서 북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떠오른다. 1950년에는 컴퓨터도 없었는데, 합동전략기획단은 어떻게 그처럼 짧은 시간에 ‘작전계획 블루하츠’를 후닥닥 완성할 수 있었을까? 누구나 아는 것처럼, 작전계획을 완성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개념계획을 작성한 다음, 세부적인 작전씨나리오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시켜 작전계획을 완성하려면 몇 달이 걸린다. 그런데 합동전략기획단은 불과 5일 만에 작전계획을 완성했다. 졸속작업이었을까?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1940년대 말 일본 도꾜 치요다구 유라구초에 있는 미국 원동사령부 청사의 모습이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점령지였으므로, 그 건물에서 일본을 지배하는 최고권력이 행사되었다. 이 석조건물은 1938년에 건립되었는데,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고, 1945년부터 1952년까지 원동사령부 청사로사용했다. 태평양전쟁 이후 원동사령부의 공식명칭은 연합국 최고사령부였고, 더글러스 맥아더가 총사령관이었다. 그 건물에 맥아더의 집무실이 있었다. 1950년 6월25일 38도선에서 남북무력충돌이 일어나자, 맥아더는 특별기획참모단을 조직하고그들에게 조선을 침공할 작전계획을 수립하라고 명령했다. 남북무력충돌은 사상자를 많이 내지 않고 3일 만에 종식되었는데, 미국은 바다를 건너와 무력침공을 감행하면서 전쟁을 도발했다.  

 

몇 달 걸리는 작전계획수립을 5일 만에 완성한 이변의 내막은 미국 역사학자 스탠리 웨인트롭(Stanley Weintraub)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2000년 미국에서 출판된 ‘맥아더의 전쟁: 코리아와 미국 영웅의 파멸(MacArthur's War: Korea and the Undoing of an American Hero)'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그는 미국 국방부가 6.25전쟁 직전에 ’SL-17‘이라는 제목의 작전계획을 마련해두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작전계획 SL-17'에 따르면, 38도선에서 일어난 남북무력충돌에서 패한 한국군이 남쪽으로 후퇴하여 부산방어선을 구축하면, 미국군은 인천에 상륙하여 북진한다는 것이다. 이 작전계획을 일정별로 정리하면, 미국군 1개 군단이 1950년 9월 30일까지 인천을 점령하고, 10월 15일까지 서울을 점령하고, 1951년 1월 31일까지 남포와 원산에 동시상륙하여 평양을 점령한 다음, 1951년 6월까지 38도선 이북 전역을 점령하는 것이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6일 전인 1950년 6월 19일, 미국 국방부는 이 작전계획을 승인했다.   

 

이처럼 미국 국방부가 6.25전쟁 직전에 작전계획을 완성해놓았기 때문에, 미국 원동사령부 산하 합동전략기획단은 6.25 전쟁 직후 맥아더의 명령을 받은 때로부터 5일 만에 ‘작전계획 SL-17'의 재판인 ‘작전계획 블루하츠’를 맥아더에게 보고했던 것이다. 

 

그런데 1950년 7월 당시 조선인민군은 고속기동전을 벌이며 부산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고, 미국군은 참패를 거듭하며 낙동강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1950년 7월 3일 한강을 도하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는 7월 5일 오산전투에서 미국군 제24보병사단 선견대를 궤멸시켰고, 7월 14일부터 16일까지 금강을 도하했고, 7월 20일에는 미국군 제24보병사단을 궤멸시키고 대전을 점령했다. 

 

맥아더는 합동전략기획단이 자기에게 보고한 ‘작전계획 블루하츠’가 ‘작전계획 SL-17’의 재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작전계획 블루하츠’를 폐기하고 새로운 작전계획을 수립하라고 명령했다. 맥아더의 명령을 받은 합동전략기획단이 ‘크로마이트(Chromite)’라는 제목의 개념계획(conceptual plan)을 완성한 날은 1950년 7월 23일이다.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이 경상북도 포항으로 진격하고 있었던 1950년 8월 15일 맥아더는 개념계획을 작전계획으로 완성하기 위한 사업을 극비리에 추진할 것을 합동전략기획단에 명령했다. 그런 명령에 따라 개념계획을 작전계획으로 완성할 특별기획참모단(Special Planning Staff)이 조직되었다. 

 

 

2. ‘작전계획 크로마이트’에 담긴 네 가지 씨나리오

 

1950년 8월 23일 일본 도꾜에 있는 미국 원동사령부 청사에서 중요한 전략회의가 진행되었다. 맥아더가 소집한 전략회의에는 육군참모총장 육군 대장 조섭 콜린스(Joseph L. Collins), 원동군 참모장 육군 소장 에드워드 알몬드(Edward L. Almond), 해군참모총장 해군 대장 포레스트 셔먼(Forrest P. Sherman), 원동군 해군사령관 해군 중장 터너 조이(C. Turner Joy), 상륙전단사령관 해군 중장 제임스 도일(James H. Doyle), 제7함대사령관 해군 중장 아서 스트러블(Arthur D. Struble), 공군사령부 작전국장 공군 중장 아이드월 에드워드(Idwal H. Edward)가 참석했다. 맥아더는 합동전략기획단이 작성한 개념계획을 꺼내놓고 인천상륙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바꿔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은 인천 앞바다의 수로가 함대가 들어가기에 비좁다는 점,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세계 최고 수준이므로 함선이 개펄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점, 인천항 해안에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방조제가 있어서 상륙하기에 매우 불리하다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맥아더의 의견에 반대했다. 그런데도 맥아더는 고집을 부리며 45분 동안 그들을 설득하더니 이런 해괴한 말도 했다.

 

“나는 제2운명의 손길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 만일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을지 모른다. 인천(상륙전)은 성공할 것이고, 100,000명의 목숨을 구할 것이다. 우리는 인천에 상륙할 것이고, 나는 적들을 짓밟을 것이다.”

 

맥아더와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이 인천상륙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낙동강 전선에서는 조선인민군의 격렬한 공격을 받은 미국군 방어선이 무너질 위험에 빠졌다. 낙동강 방어전을 지휘하던 미8군사령관 육군 중장 월튼 워커(Walton H. Walker)는 맥아더에게 미국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지만, 맥아더는 인천상륙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더욱이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맥아더에게 인천지역 이외에 다른 지역에 상륙하는 것을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는데도, 맥아더는 그런 지시를 따르지 않고 인천상륙을 고집했다.  

 

▲ <사진 2> 이 사진에 나타난 사람들은 왼쪽부터 미국 육군참모총장 육군 대장 조섭 콜린스, 미국 원동군 총사령관 육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 미국 해군참모총장 해군 대장 포레스트 셔먼이다. 6.25전쟁이 지속되고 있었던 1950년 8월 23일 일본 도꾜에있는 미국 원동사령부 작전회의실에서 중요한 전략회의가 열렸다. 그 전략회의에는위의 사진에 나온 콜린스, 맥아더, 셔먼을 비롯하여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이 참석했다. 맥아더는 그 자리에서 인천상륙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바꿔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은 인천의 자연지리적 조건이 상륙에 불리하다고지적하면서 반대했지만, 맥아더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맥아더의 명령에 따라 특별기획참모단이 작성한 '작전계획 크로마이트'는 1950년 8월 28일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승인을 거쳐 당시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최종승인을 받았다.  


1950년 9월 1일 맥아더는 인천상륙전의 공식명칭을 크로마이트작전(Operation Chromite)으로 정했다. 크로마이트라는 말은 황연(Chrome)원광석을 뜻한다. 맥아더의 특별기획참모단이 작성한 ‘작전계획 크로마이트’는 1950년 8월 28일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승인을 거쳐 당시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의 최종승인을 받았다. ‘작전계획 크로마이트’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작전씨나리오로 구성되었다.   

 

1) 100-A: 미국 해병대가 전라북도 군산에 상륙하여 금강계선에서 조선인민군을 공격하는 작전씨나리오.

2) 100-B: 미국 해병대가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을 점령하고,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여 북진하는 미국 육군과 합세하여 38도선 이남지역에서 조선인민군을 공격하는 작전씨나리오.

3) 100-C: 미국 해병대가 인천에 상륙하였으나, 미국 육군이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지 못하는 경우 미국 해병대가 군산에 상륙하여 대전을 점령하는 작전씨나리오.

4) 100-D: 강릉-주문진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가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고 북진하는 미국 육군과 합세하여 조선인민군을 공격하는 작전씨나리오.   

 

 

3. 맥아더의 극비작전계획 빼돌린 조선인민군 정찰병 

 

맥아더가 인천상륙전 준비를 다그치던 1950년 8월 30일 평양에 있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무전실로 한 장의 무전통신문이 날아들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정보가 담겨있었다. 

 

“최고사령부 앞. 

미 극동사령부 비상련락회의에서 대규모 상륙작전으로 아군의 배후를 타격하고 압록강 계선까지 북진하기 위한 작전이 결정되였음. 

상륙개시날자는 9월 13일. 

상륙지점은 인천.”

 

맥아더가 극비 중의 극비라고 하면서 철저한 정보보안조치로 은폐하였던 인천상륙전 극비정보를 빼돌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한 사람은 당시 일본 도꾜에 있는 미국 원동사령부 비상련락회의에 침투한 조선인민군 정찰병이었다. 조선은 그로부터 67년이 지난 2017년 12월 5일 온라인매체 <조선의 오늘>에 실린 ‘특집 - 전쟁과 녀인’에서 6.25전쟁 중에 배출된 여성영웅 14명을 소개하면서 맥아더의 극비정보를 빼돌린 여성정찰병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그 여성정찰병의 이름은 로남교다. 특집방송에 따르면, 1950년 8월 30일 로남교가 무선통신으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한 것은 ‘작전계획 크로마이트’ 중에서 인천상륙전씨나리오인 ‘100-B’였다고 한다. 

 

특집방송에서는 평양에 있는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영웅의 묘비를 방송화면을 통해 보여주었는데, 네 줄로 새겨진 묘비명에 영웅이 걸어온 한생이 비껴있었다. 

 

로남교 동지

남조선혁명가, 공화국 영웅

1907년 3월 3일 생 

2006년 1월 25일 서거

 

이 짤막한 묘비명만 읽어보면, 6.25전쟁의 운명을 바꿔놓은 극비정보를 빼돌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하기까지 로남교 영웅이 걸어온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지난 날 김일성상 계관인 허문길 작가는 로남교의 영웅적 투쟁을 형상한 장편소설 ‘포성 없는 전구’를 창작했고, ‘눈보라 창작단’은 그녀의 영웅적 투쟁을 형상한 다부작 영화 ‘포성 없는 전구’를 2014년에 창작했다. 조선의 특집방송에서 해설자는 일본 도꾜에 있는 미국 원동사령부 비상련락회의에 침투한 로남교 영웅이 “사랑하는 자식을 멀리 떼어두고 피눈물을 삼키며 적후활동을 벌였다”고 하면서, “몇 글자 안 되는 그 무전문에서 그가 넘어야 했던 아슬아슬한 순간들, 뛰여난 지략과 용감성으로 헤쳐야 했던 나날들과 죽음의 고비들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1950년 8월 30일 맥아더의 인천상륙전 극비정보를 평양에 있는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한 조선인민군 정찰병 로남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그녀는 미국 원동사령부 비상련락회의에 침투하여 극적인 정찰활동을 벌였다. 그녀가 무전통신으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한 것은 맥아더의 '작전계획 크로마이트' 중에서 인천상륙전씨나리오인 '100-B'였다. 그런 공로로 로남교는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았다. 그녀의 극적인 정찰보고를 통해 '크로마이트작전'에 관한 정보를파악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미국군이 1950년 9월 13일 인천상륙전을 개시할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로남교 영웅의 극적인 정찰보고를 통해 ‘크로마이트작전’에 관한 정보를 파악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미국군이 1950년 9월 13일 인천상륙전을 개시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두 가지 해결하기 힘든 작전적 난제를 안고 있었다.  

 

첫째, 조선인민군 주력부대를 낙동강 전선에 집결시켜 부산으로 진격하는 마지막 고비를 넘어서고 있었던 결정적인 시기에 주력부대 일부를 차출하여 인천으로 급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주력부대 일부를 인천으로 급파하면, 미국군은 조선인민군의 공격이 약화된 틈을 타서 낙동강 전선에서 총반격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었고, 조선인민군 주력부대 일부가 인천으로 이동하는 중에 미국군의 공습을 받아 인명손실을 입을 위험도 있었다. 

 

둘째, 조선인민군 주력부대 일부가 인천으로 이동하여 방어선을 구축한다고 해도, 미국군은 계획을 바꿔 인천이 아닌 다른 지역에 기습적으로 상륙할 수 있었다. 만일 미국군이 인천상륙-서울점령계획을 포기하고 남포상륙-평양점령계획을 실행에 옮기면, 조선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난제들이 가로놓였기 때문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미국군이 인천에 상륙할 것이라는 정보를 알았으면서도 주력부대 일부를 인천에 증파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바야흐로 결전의 시각은 다가오고 있었다. 

 

4. 75,000명 대 400명의 싸움

 

지도에서 월미도를 찾아보면, 그 섬을 중심으로 사방에 펼쳐진 묘한 지형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원래 월미도는 면적이 0.7㎢밖에 되지 않은 작은 섬이었다. 그 섬의 가운데에는 해발고가 108m인 월미산이 있다. 1950년 9월 당시 월미도에는 주민 600여 명이 살고 있었다. 월미도에서 마주보이는, 면적이 104㎢인 영종도는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다. 영종도에는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섰고, 영종대교와 인천대교가 영종도와 육지를 연결해주었지만, 1950년 9월에는 영종도와 월미도는 월미수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다. 6.25전쟁 당시 미국군은 월미수로를 날치수로(Flying Fish Channel)라고 불렀다. 미국군이 인천을 점령하고 서울로 진격하려면 반드시 월미수로를 통해 월미도에 상륙해야 한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에게 월미도는 인천과 서울을 방어하는 전략요충지였고, 미국군에게 그 섬은 인천과 서울을 점령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상륙지점이었다. 

 

미국과 한국에서는 인천상륙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그들의 상륙지점은 인천이 아니라 월미도였다. 조선에서는 인천방어전이 아니라 월미도방어전이라고 부른다. 이 글에서는 인천상륙전을 월미도상륙전으로 고쳐 부른다.   

 

미국 해군 제7함대사령관 아서 스트러블이 월미도상륙전 지휘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럽의 노르망디상륙전에 지휘관으로 참전했고, 필리핀의 레이트상륙전에도 지휘관으로 참전한 경력이 있어서 ‘상륙전의 백전로장’으로 자처했다. 

 

그는 1950년 8월 18일과 8월 20일 인천 앞바다에 있는 덕적도와 영흥도에 정찰병들을 침투시켜 조선인민군의 해안방어태세를 파악했다. 그는 정찰보고를 통해 월미도에 소수의 조선인민군 방어대가 주둔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월미도상륙전에 참가한 제7합동타격단은 제77항모타격단, 제91해상봉쇄단, 제99해상정찰단, 제79전투비행단, 제90상륙공격단, 해상수송단, 한국군 해군부대로 편성되었다. 

 

제7합동타격단은 1950년 9월 4일부터 인천지역을 폭격하면서 동시에 군산지역과 남포지역도 함께 폭격했다. 월미도가 상륙지점이라는 정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군산과 남포도 함께 폭격한 것이다. 그들은 매일 같이 B-29 폭격기를 출격시켜 인천 중심부로부터 반경 50km 안에 있는 모든 대상물을 파괴했다. 

 

제7합동타격단은 월미도상륙전 직전인 1950년 9월 10일 항공모함에서 이함한 함재기 43대를 출격시켜 주민 600여명이 사는 월미도에 소이탄(napalm tank) 93발을 투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미국 해병대 여단장으로 월미도상륙전에 참전한 에드윈 씨몬즈(Edwin Simmons)는 2013년에 출판된, ‘해안벽을 너머(Over the Seawall)’라는 제목의 책에서 그날 소이탄 폭격으로 월미도에 있는 집들이 모두 완파되었다고 회고했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1950년 9월 초 미국군 항공정찰기가 촬영한 월미도 사진이다. 당시 월미도는 육지와 연결되지 않은 작은 섬이었다. 그 섬의 가운데에는 월미산이 있다. 월미도는 월미수로를 사이에 두고 영종도와 마주보고 있다. 6.25전쟁 중에 조선인민군에게 월미도는 인천과 서울을 방어하는 전략요충지였고, 미국군에게 그 섬은인천과 서울을 점령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상륙지점이었다. 1950년 9월 13일 미국제7합동타격단 75,000명과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400명이 싸운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인민군 월미도 방어대에게는 물리력으로 싸울 수 없는 전투였고, 죽음을 각오한 정신력으로 싸워야 하는 혈전이었다.  

 

결전의 날, 월미도상륙전에 참가할 제7합동타격단의 총병력은 75,000명이었다. 그들의 무장력은 다음과 같다.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 상륙정, 상륙함, 보급함 - 261척 

함포, 견인포, 기관포 - 1,600문 

전차 - 500대 

함재기 - 500대

 

제7합동타격단의 상륙을 저지할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는 제918포병련대 일부병력, 제3보병대대 일부병력, 제226륙전대 일부병력을 합쳐 400명으로 편성되었다. 그들의 무장력은 다음과 같다.

 

76mm 견인포 - 5문

37mm 견인고사포 - 2문

37mm 박격포 - 소량

 

1950년 9월 13일 마침내 결전의 날은 왔다. 바다를 건너와 남의 땅을 침공하는 ‘미제침략군’ 제7합동타격단 75,000명과 조국의 작은 섬을 피로써 사수하는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400명이 싸운 전투였다. 항공모함을 비롯한 방대한 규모의 최신식 무장장비로 중무장한 제7합동타격단 75,000명과 견인포 7문밖에 갖지 못한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400명은 세계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피의 결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에게 그것은 물리력으로는 싸울 수 없는 전투였고, 죽음을 각오한 정신력으로 싸워야 하는 혈전이었다. 

 

1950년 9월 13일 오전 10시 10분, 전운이 감도는 월미수로에 순양함 4척과 구축함 6척으로 편성된 함대가 나타났다. 10척의 거함들은 40mm 기관포를 쏘아 월미수로의 부유기뢰를 하나씩 폭파하면서 서서히 월미도로 접근했다. 

 

오후 12시 20분, 순양함 4척은 월미도에서 11~16km 떨어진 먼 바다에서 기동을 멈췄고, 구축함 6척은 월미도에서 730m 떨어진 해상까지 바짝 접근했다. 그러는 사이에 수평선 넘어 항공모함에서 이함한 함재기들이 까마귀떼처럼 하늘을 뒤덮으며 월미도 상공으로 몰려들어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이미 9월 4일부터 계속되어온 9일 동안의 연속폭격으로 월미도는 폐허로 변했건만, 함재기들은 폐허 위에 또 다시 폭탄을 투하했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가 보유한 37mm 견인고사포 2문은 포신을 85도 각도로 세워 공중으로 사격하는 방공무기인데, 유효사고도는 3km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월미도상륙전에 출격한 코쎄어(Corsair) 함재기의 비행고도는 10km 정도였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는 37mm 견인고사포로 코쎄어 함재기를 격추할 수 없었다. 미국 해군 항공모함 한 척에는 날개가 접히는 코쎄어 함재기를 100대나 실을 수 있었는데, 그 함재기에는 20mm 기관포 4문이 장착되었고, 127mm 로켓탄 8발 또는 1,800kg의 폭탄을 탑재할 수 있었다.  

 

코쎄어 함재기의 집중폭격이 끝나자, 구축함 6척이 1시간 동안 월미도를 향해 127mm 함포를 집중사격했다. 폭격과 포격이 끝났을 때, 타래치는 포연과 불길 속에서 희미한 모습을 드러낸 월미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제7합동타격단 지휘관들은 완전히 파괴된 월미도에서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으로 여겼다. 포연과 불길 속에서 희미한 모습을 드러낸 월미도는 죽음의 침묵을 말해주는 듯했다.   

 

 

5. 월미도의 마지막 혈전

 

그런데 상상을 초월한 ‘기적’이 일어났다. 집중타격을 받고 전멸한 줄 알았던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의 75mm 견인포 5문이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불을 뿜었다. 수백 발의 포탄과 폭탄을 맞아 산산이 부서지고 불타버린 작은 섬에서 불사조처럼 살아남은 월미도방어대가 75mm 견인포를 지하진지 밖으로 끌어내 미국 구축함에게 기습타격을 시작한 것이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의 반격은 어떤 전과를 가져왔을까? 미국 역사학자 로이 애플먼(Roy E. Appleman)이 집필했고, 미국육군군사연구소가 1961년 워싱턴에서 초판을 발행한 ‘남으로는 낙동강, 북으로는 압록강(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 책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가 포탄 9발을 명중시킨 2,200t급 미국 구축함 콜렛함(USS Collett)은 화력통제장치가 파괴되었고 승조원 5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또한 포탄 3발이 명중한 3,400t급 구축함 걸크함(USS Gurke)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었고, 승조원 3명이 부상당했으며, 2,200t급 구축함 스웬슨함(USS Swenson)은 포탄이 함체에 스치면서 승조원 1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당했으며, 2,000t급 구축함 드 헤이븐함(USS De Haven)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가 사용한 76mm 견인포의 사거리는 13km다. 주목되는 것은, 그 견인포가 BR-350A 철갑탄을 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철갑탄을 쏘면 2km 밖에 있는 타격대상을 60도 각도로 직격하는 경우 43mm 두께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부대가 쏜 76mm 철갑탄이 명중했어도 거대한 미국 구축함은 부분적으로 파손되었을 뿐 격침되지는 않았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의 기습반격을 받고 놀란 미국 구축함들은 오후 1시 47분 견인포 사거리 밖으로 달아났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미국 순양함들은 오후 1시 52분부터 월미도를 향해 1시간 30분 동안 203mm 함포를 미친 듯이 쏘아댔고, 함포사격의 뒤를 이어 함재기들이 까마귀떼처럼 또 다시 날아와 월미도를 맹폭했다. 폭격이 끝나자 미국 순양함들은 오후 4시 10분부터 30분 동안 또 다시 함포를 쏘아댔고, 오후 4시 40분이 되어서야 수평선 너머로 물러갔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1950년 9월 15일 월미도 전투가 끝난 직후 촬영된 월미도의 모습이다. 상상을 초월한 격전이 3일 동안 벌어진 월미산에는 온전한 나무가 한 그루도남아있지 않았다. 그날 아침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는 76mm 견인포를 지하진지에서 끌어내 해안으로 몰려드는 미국 해병대 상륙정들을 향해 마지막 남은 철갑탄을쏘았다. 해안으로 밀려든 상륙정들에서는 미국 해병대원들이 긴 사다리를 해안방조제 곳곳에 걸쳐놓고 개미떼처럼 기어올랐다. 사흘 간의 격전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300여 명은 해안방조제를 기어오른 미국 해병대원 수 천 명에 맞서마지막 순간까지 혈전을 벌였다.  

 

이튿날인 1950년 9월 14일 오전 11시경 제7합동타격단 함대가 다시 월미수로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전날과 달리 순양함들이 먼저 월미도를 향해 203mm 함포를 집중사격했고, 그 다음에 함재기들이 날아와 월미도를 맹폭했고, 마지막으로 구축함들이 월미도를 향해 127mm 함포를 집중사격했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는 반격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철갑탄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950년 9월 15일은 월미도 전투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오전 5시 함재기들이 날아와 월미도를 폭격했고, 순양함과 구축함들이 포격했고, 203mm 로켓포를 탑재한 군함 3척이 월미도 해안으로 접근하여 로켓포탄 1,000여 발을 난사했다. 오전 6시 25분, 월미도 해안에서 약 2km 떨어진 해상에 집결한 상륙정 17척과 상륙함 3척이 연막탄을 터뜨리며 일제히 해안으로 돌진했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부대는 76mm 견인포를 지하진지에서 끌어내 해안으로 몰려드는 상륙정들을 향해 마지막 남은 철갑탄을 쏘았다. 마지막 철갑탄은 벌떼처럼 몰려드는 상륙정 3척에 명중했다. 

 

이제 월미도방어대에게는 소총과 수류탄 같은 개인화기들, 그리고 37mm 박격포밖에 남지 않았다. 미국군 상륙정들은 해안방조제에 접근했다. 해병대원들은 꼭대기에 갈고리가 달린 긴 사다리를 해안방조제 곳곳에 걸쳐놓고 개미떼처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포연이 자욱한 월미도 해안에 운명의 시각이 왔다. 지난 사흘 동안 맥아더의 75,000명 대군을 상대로 벌인 격렬한 방어전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300여 명은 미국 해병대원 수 천 명을 상대로 마지막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미국 역사학자들이 서술한 많은 기록들은 월미도방어대의 마지막 전투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날 해병대원들과 함께 월미도에 상륙한, 미국의 저명한 여성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Marguerite Higgins)가 남긴 목격담이 월미도방어대의 마지막 전투를 증언해주는 유일한 역사기록이다. 

 

“우리가 사다리를 타고 수직에 가까운 해안방조제에 기어올랐을 때, 치명적인 함포사격과 폭격 속에서 살아남은 북조선 병사들이 해안 가까이에서 소총과 박격포로 쉴 새 없이 공격하며 우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히긴스의 목격담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300여 명은 해안방조제를 기어오른 미국 해병대원 수 천 명에 맞서 마지막 순간까지 혈전을 벌였다. 미국측 기록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210여 명은 끝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했고, 나머지 136명은 부상당하거나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6. 금성-4 순항미사일과 익명의 탄도미사일

 

월미도가 피로 물들었던 그날로부터 세월은 흘러 7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월미도에서 혈전의 흔적은 사라졌고, 포탄화염이 작열했던 바닷가에는 유원지가 들어섰다. 

 

그러나 조선은 월미도 혈전을 잊지 않고 있다. 2014년 7월 23일과 7월 26일 <로동신문>은 “조국해방전쟁시기 47개 주요전투들”을 간략하게 해설한 기사를 실었는데, 거기에는 월미도방어전이 들어있다. 1982년 조선에서 첫 상영의 막을 올린 영화 ‘월미도’는 월미도방어대 400명이 제7합동타격단 75,000명과 맞서 혈전을 벌이며 최후를 맞는 이야기를 담은 명작인데, 요즈음도 그 영화는 가끔 <조선중앙텔레비죤> 전파를 타고 방영된다. 

 

월미도 혈전은 조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만이 아니다. 조선은 미국과 또 다시 결전을 벌여 그들을 기어이 꺾어버릴 강한 힘을 키워왔다. 월미도방어전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강한 힘이다. 70년 전 조선인민군에게는 눈앞의 적함을 격침시키지 못한 72mm 견인포와 철갑탄밖에 없었지만, 70년이 지난 오늘에는 수평선 너머 보이지 않는 적함을 격침시킬 타격력이 있다. 금성이라고 불리는 순항미사일이다. 

 

조선인민군은 금성-1 지대함순항미사일, 금성-2 공대함순항미사일, 금성-3 함대함순항미사일, 금성-4 지대함순항미사일을 해안지대 지하기지들 안에 대량으로 실전배치했다. 2017년 6월 8일 강원도 원산 인근 해안에서 동북방향으로 시험발사된 금성-4 지대함순항미사일은 레이더망을 피하여 낮은 고도로 200km를 날아가더니 표적에 가까운 상공에 이르러 공중에서 1~2차례 선회비행을 하고 아주 작은 표적에 명중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도화된 정밀타격력이다. 이런 적아식별능력과 선회비행능력은 섬 뒤쪽에 숨은 적함까지 쫒아가 타격한다는 뜻이다. 금성-4 지대함순항미사일은 2020년 4월 14일과 7월 4일에도 시험발사되었다.  

 

그런데 미국이 자랑하는 100,000t급 핵추진항공모함은 함체길이가 332m인 거함이므로, 금성 계렬 순항미사일로는 격침하지 못한다. 조선인민군의 항모격침미사일은 따로 있다.

 

2017년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군사행진 중에 세계 군사전문가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특이한 모양의 탄도미사일이 등장했다. 조선은 그 탄도미사일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미국은 ‘KN-18’이라는 자의적 명칭으로 부른다.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2017년 5월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로 진행된 시험발사에 다시 등장했다. 비행거리가 450km이었으므로, 실제 사거리는 500km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다음과 같은 절묘한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2017년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군사행진에 등장한 특이한 모양의 탄도미사일이다. 이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2017년 5월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로 진행된 시험발사에 다시 등장했다.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초정밀타격력을 지난 항모타격미사일이며,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항모타격미사일이며,500km 밖에 있는 거대한 핵추진항공모함을 단 한 방에 격침시킬 수 있는 고체연료탄도미사일이다. 70년 전 월미도에서 견인포와 철갑탄을 쏘며 혈전을 벌였던 조선인민군은 70년이 지난 오늘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항모타격미사일을 보유했다.  

 

1) “적함선을 비롯한 해상과 지상의 임의의 바늘귀 같은 개별적 목표들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정밀조종유도체계가 도입되었다. 중간비행구간에서 소형 열분사발동기에 의한 속도교정 및 자세안정화계통의 정확성이 재확증되였고, 보다 정밀화된 말기유도체계에 의한 재돌입구간에서의 초정밀유도정확성이 확증되였다.” 그리고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예정목표점을 7m의 편차로 정확히 명중하였다.” 

 

(해설 -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대기권을 벗어나 120km 고도에서 중간비행을 하는 동안, 미사일 탄체에 장착된 여러 개의 소형 열분사발동기로 비행속도와 비행방향을 조절했다. 또한 대기권 밖에서 대기권 안으로 재돌입할 때, 말기유도장치로 비행방향을 조절했다. 그리하여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450km 밖에 있는 작은 해상표적을 7m의 편차로 맞추는 초정밀타격능력을 과시했다.)

 

2) 시험발사에서는 “조종전투부의 말기유도단계까지 세밀한 원격관측”을 할 수 있었다. 

(해설 -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대기권 밖 120km 고도에서 해상표적을 향해 극초음속으로 낙하돌진비행을 했는데, 조선국방과학원 과학자들은 낙하돌진비행을 원격관측했다. 이것은 450km 밖에 있는 해상표적 인근 상공에 무인전략정찰기를 날려보내 원격관측을 했다는 뜻이다. 450km 밖에 있는 작은 해상표적은 레이더로 포착할 수 없으므로, 무인전략정찰기를 날려 보내야 포착할 수 있다. 이로써 익명의 탄도미사일과 무인전략정찰기가 연동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인민군이 운용하는 방현-5 무인전략정찰기는 시속 200km의 속도로 10시간 동안 비행하는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다. 이런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를 날려 보내 원격관측을 하지 않으면, 익명의 탄도미사일로 450km 밖에 있는 작은 표적을 맞추기는커녕 포착할 수도 없다. 조선은 2016년에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를 개발했고, 2017년에 그것과 연동되는 익명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

 

3) “발사 전 준비공정이 고도로 자동화되여 발사시간을 훨씬 단축하도록 체계가 완성”되었다. 

(해설 - 발사준비공정이 고도로 자동화되었다는 말은 고체연료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탄도미사일은 액체연료를 주입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발사준비시간이 대폭 단축된다.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탄도미사일이다.)

 

4)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에 탑재되었다. 

(해설 -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는 차륜식 자행발사대와 달리 길이 없는 산악지대로 들어갈 수 있다. 미국의 위성감시는 도로망을 따라 진행되므로, 익명의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가 도로를 멀리 벗어나 산악지대로 들어가면 미국의 위성감시망은 ‘먹통’이 된다. 또한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는 모래사장에서 익명의 탄도미사일을 쏠 수 있다. 차륜식 자행발사대가 모래사장에 들어가면 차체 중량으로 발사대가 기울어져 미사일을 쏠 수 없지만,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는 모래사장에서도 탄도미사일을 쏠 수 있다.)  

 

2018년 2월 12일 미국의 안보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National Interest)>는 2017년 7월 중국에서 발행된 해군전문지에 실린 분석기사를 인용하면서, 2016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화성-9 탄도미사일이 적함을 정밀타격하기 위한 무기로 생산되었는데, 이 탄도미사일은 중국의 둥펑(東風)-21D처럼 고도화된 정밀타격력을 지닌 탄도미사일이며,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항공모함을 격침시킬 수 있다고 해설했다. 그런데 그 분석기사의 필자는 미국이 'KN-17'이라고 부르는 탄도미사일, 다시 말해서 조선에서 2017년 5월 29일에 시험발사된 익명의 탄도미사일을 화성-9로 착각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익명의 탄도미사일이 중국의 둥펑-21D처럼 초정밀타격력을 지닌 항모타격미사일이며,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항모타격미사일이며,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탄도미사일이라는 사실이다.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조선의 항모타격미사일은 500km 밖에 있는 핵추진항공모함을 단 한 방에 격침시킬 수 있다.

 

70년 전 월미도에서 사거리가 13km밖에 되지 않는 견인포로 철갑탄을 쏘며 혈전을 벌였던 조선인민군은 70년이 지난 오늘 사거리가 500km인 항모타격미사일에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했다. 그런 엄청난 위력 앞에서 미국의 핵추진항공모함은 무용지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