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6

대파국의 서막 열어놓은 2021년 한미정상회담

[한호석의 개벽예감](445)

자주시보 2021년 05월 2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정세를 더욱 악화시킨 최악의 결과물

2. 적대정책 합의한 파국촉진회담

3. 두 개의 전쟁 앞당기는 파국촉진회담

 

 

1. 정세를 더욱 악화시킨 최악의 결과물

 

우려가 현실로 되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정세를 더욱 악화시키는 최악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었는데, 그런 우려가 급기야 현실로 되고 말았다. 2021년 5월 21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은 한 마디로 말해서 대파국의 서막을 열어놓은 회담이었다. 파국의 서막이 아니라 대파국의 서막이라는 술어를 쓰는 까닭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합의사항들이 한반도는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에 엄청난 파국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국이 아니라 대파국이다.  

 

대파국의 서막을 열어놓았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그것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이미 파탄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와 조미관계를 파국적 종말로 몰아가도록 촉진했고, 거기에 더하여 대만문제를 둘러싸고 이미 초긴장상태에 빠진 중미관계와 중일관계를 파국적 종말로 몰아가도록 촉진했다는 뜻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대파국의 서막을 열어놓은 파국촉진회담이다. 이 심각한 문제를 분석적으로 고찰해보자. 

 

이번 공동성명에 따르면, 양측은 한미동맹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양측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방도들을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1)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한국을 방어하는 기존 공약을 재확인했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한국을 제3자의 무력공격으로부터 방어한다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 강조점을 찍은 저의는 무엇인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에는 “당사국은 단독적으로나 공동으로나 자조와 상호원조에 의하여 무력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하고 강화시킬 것”이라고 쓰여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정부에 통보하지 않고 단독적으로 제3자의 무력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강화할 수 있다. 상호방위조약이라고 했으니, 응당 양측이 상호협의하면서 공동으로 군사행동을 해야 마땅한데, 미국은 그 조약에 왜 단독적인 군사행동을 포함시켰을까? 그것은 미국이 한국 정부에 통보해줄 수 없을 만큼 중대한 군사행동을 단독으로 해야 하는 특수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통보해줄 수 없을 만큼 전략적으로 중대한 군사행동은 핵공격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전시에 미국은 제3자에 대한 핵공격계획을 한국 정부에 통보해주지 않고, 비밀리에 단독으로 결정하고, 전격적으로 감행할 것이 확실하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이 “가용한 모든 역량을 사용하여 확장억제를 (한국에) 제공한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는 내용이 이번 공동성명에 들어간 까닭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용한 모든 역량을 사용한다”는 말은 핵무력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이번 공동성명에 들어간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라는 작전개념은 핵우산 제공을 구체화한 핵공격개념이다. 

 

확장억제라는 전략개념이 언제, 어떻게 출현했는지 살펴보자. 미국은 주한미국군기지에 배치했던 전술핵무기를 1991년 12월까지 전부 철수하는 대신, 한국에 대한 핵우산을 제공한다고 공약했고, 1992년에 진행된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 핵우산제공공약을 명시했다. 당시 미국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뒤떨어진 구식 전술핵무기를 주한미국군기지에서 철수하는 대신, 실전에서 사용할 신형 전술핵무기로 구성된 핵우산을 한국에 제공하겠노라고 공약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주한미국군기지에서 전술핵무기를 철수한 이후 조선에 대한 핵공격위험이 감소된 것이 아니라 되레 더 증대된 것이다. 

 

그런데 2006년에 진행된 한미안보협의회에서 노무현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미국은 핵우산제공공약을 확장억제제공공약으로 바꿔놓았다. 확장억제라는 것은 미국 본토가 적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와 동일한 수준의 핵공격을 적국에 가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전략폭격기를 비롯한 “가용한” 핵타격수단들을 총동원하여 적국에 핵공격을 한다는 뜻이다. 

 

미국이 2002년에 발표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 따르면, 확장억제는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핵공격에 더하여 타격정밀도가 높은 저위력 전술핵무기를 사용하여 선제핵공격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 2020년 2월 4일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차관은 신형 저위력 전술핵탄두가 장착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이 미국 전략잠수함에 탑재되었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은 실전에서 사용할, 폭발위력이 5킬로톤인 신형 저위력 전술핵탄두를 실전배치한 것이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2006년에 노무현 정부는 기존 핵우산제공공약을 새로운 확장억제제공공약으로 교체해달라고 미국에 “강력하게” 요청했었다. 이것은 전술핵탄두로 평양을 타격해달라는 끔찍스러운 행동이다. 무대에 나설 때면 줄곧 평화타령을 늘어놓은 노무현 정부가 무대의 막후에서는 전술핵탄두로 평양을 타격해달라는 끔찍스러운 요청을 미국에 제기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노무현 정부의 정체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준다. 세인의 시선이 집중된 무대 위에서는 평화타령을 늘어놓다가, 세인의 시선이 차단된 무대의 막후에서는 조선에 대한 핵공격력을 증강해달라고 미국에 요청하는 위선의 극치는 노무현 정부에게서 문재인 정부에게로 오롯이 계승되었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의 위선적인 평화타령에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한다. 

 

위에 서술한 내용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조선을 조준한 핵공격력을 증강하는 도발의지를 모호한 외교술어 속에 은닉해놓았음을 보여준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대파국의 서막을 열어놓은 파국촉진회담으로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21년 5월 21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 중에 문재인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얼굴을 마주하고 굳은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다. 참 다정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다정한 모습 뒤에서는 가뜩이나 긴장된 정세를 대파국으로몰아가는 어두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런데도 두 정상은 자기들이 그처럼 엄청난행동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니 태평하게 웃을 수있었다.  

 

2)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양측은 한미련합군의 북침공격력을 증강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보다 더 심하게 무력도발의지를 드러내고, 덩달아 문재인 정부도 이전에 비해 더 노골적으로 무력도발의지를 드러낸 회담이었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번 공동성명에 따르면, 양측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한미련합방위태세에 대한 공약을 재확인했고, 한미동맹의 억제태세를 강화하기로 공약했고, 합동군사준비태세 유지의 중요성을 공유했고, 싸이버분야와 우주분야 등 여타 영역에서 상호협력을 심화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연합방위태세, 억제태세, 합동군사준비태세라는 것은 모조리 북침전쟁준비태세를 모호한 외교술어 속에 은닉시킨 무력도발개념들이다. 미국 국방부의 전쟁기획자들이 작성한 한미련합군 작전계획(Operation Plan), 그리고 미국군사령관이 지휘하는 한미련합군 작전계획이 방어계획이 아니라 공격계획이라는 사실은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는데, 그런 북침공격계획에 의거하여 연합방위태세, 억제태세, 합동군사준비태세를 강화한다고 했으니 북침전쟁준비태세를 이전보다 더 강화한다는 뜻이 명백하다. 실제로 지난 몇 달 동안 한미련합군은 북침전쟁준비태세를 다음과 같이 강화해왔다.

 

- 3월 2일부터 3월 7일까지 진행된 한미련합군 위기관리참모훈련(CMTS)

 

- 3월 8일부터 3월 18일까지 진행된 한미련합군 연합지휘소훈련(CCPT) 

 

- 3월 25일 진행된 한미련합해병대 대대급 합동전술훈련 

 

- 4월 30일 한국군 합참의장, 미국군 합참의장, 일본군 통합막료장이 미국 하와이 인도-태평양사령부에서 진행한 3자 합참의장회의(Tri-CHOD) 

 

- 4월 16일부터 4월 30일까지 미국 공군 전투기 20여 대와 한국 공군 전투기 50여 대가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편대군종합훈련 

 

- 5월 3일 한국 공군 군수사령부 제60수송전대와 미국 공군 기동사령부 예하 제731공중기동대대, 제607장비물자관리대대가 진행한 연합공수화물 적재-하역훈련 

 

- 6월 10일부터 15일까지 한국 공군이 참가할, 미국 알래스카에서 진행되는 ‘붉은기 21-2’ 훈련 

 

3)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한미미사일지침을 폐기했다. 한미미사일지침은 1979년 미국이 제정하여 한국의 미사일개발을 제한해온 억제장치다. 미국은 한미미사일지침에 의거하여 한국이 제작하는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km 이내로 제한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말부터 한미미사일지침을 개정하려고 애써왔는데, 이번에 미국은 그 지침을 아예 폐기했다. 그로써 한국은 중거리탄도미사일과 장거리탄도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우주로켓기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당장 한국은 현무-4 탄도미사일의 탄두중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그 미사일을 개조하여 사거리가 1,000~2,000km인 탄도미사일을 만들어낼 수 있고, 신형 미사일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사거리가 3,000km인 중거리탄도미사일을 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군은 제주도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조선 전역과 중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미국이 한미미사일지침을 틀어쥐고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km로 제한한 것은 중국 전역을 타격할 중거리탄도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한 억제조치였는데, 그런 억제조치가 없어지면서 한국이 중국 전역을 타격할 미사일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미국은 주한미국군기지에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배치하지 않고, 한국군을 앞세워 조선과 중국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이 한미미사일지침을 폐기한 것은 조선과 중국을 극도로 자극하는 행동이다. 그런 행동이 긴장된 정세를 대파국으로 몰아가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대파국의 서막을 열어놓은 파국촉진회담으로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 적대정책 합의한 파국촉진회담

 

이번 공동성명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는 조선정책검토사업을 얼마 전에 완료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가 완성했다는 조선정책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 공동성명에 따르면, 양측은 조선정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내용을 합의했다고 한다. 

 

1) 양측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약속을 강조”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정부가 공히 거론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란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지 않은 채 조선의 핵억제력만 일방적으로 제거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번 공동성명에서 양측은 “북조선의 핵-탄도미사일프로그램을 다루어나가고자 하는 공동의 의지를 강조”했다고만 밝혔을 뿐, 그에 상응하여 미국이 이행해야 할 비핵화 의무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 조선이 제시한 미국의 비핵화 의무는 무엇인가? 2016년 7월 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대변인 성명에서 미국의 비핵화 의무를 제시한 바 있다. 원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남조선에 끌어들여놓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미국의 핵무기들부터 모두 공개하여야 한다.”

- “남조선에서 모든 핵무기와 그 기지들을 철페하고 세계 앞에 검증받아야 한다.”

- “미국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수시로 전개하는 핵타격수단들을 다시는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것을 담보하여야 한다.“

- “그 어떤 경우에도 핵으로, 핵이 동원되는 전쟁행위로 우리를 위협공갈하거나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여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약하여야 한다.”

- “남조선에서 핵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선포하여야 한다.“

 

미국이 거론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조선이 거론하는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극과 극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극과 극 사이에서 어떤 타협점을 찾아내어 비핵화를 실현할 가능성은 없을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9월 6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타협방안을 제시했다. 2020년 9월 15일에 출판된,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밥 우드워드(Robert U. Woodward)의 책 ‘격노(Rage)’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타협방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 책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친서에서 “우리는 핵무기연구소나 위성발사구역의 완전한 폐쇄, 또는 핵물질생산시설의 불가역적 폐쇄와 같이 단계적으로, 한 번에 하나씩,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합리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2월 29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타협방안을 외면하고 ‘강도적 요구’만 늘어놓았다. 2019년 4월 6일 일본 <요미우리신붕>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의미를 합의하자고 하면서, 자기들이 주장하는 비핵화의 의미를 거론했는데, 그것은 조선의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에 반출하고, 조선의 핵시설 전반을 완전히 해체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미국이 자기의 비핵화 의무를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조선의 핵억제력만 일방적으로 제거하려는 것이야말로 ‘강도적 요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와 똑같이 자기의 비핵화 의무를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조선의 핵억제력만 제거하려는 ‘강도적 요구’를 그 무슨 새로운 정책인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에게 꺼내놓았고, 미국을 추종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무턱대고 그 ‘강도적 요구’에 맞장구를 쳤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한미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직전,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진행한 훈장수여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훈장수여자와 함께 찍은 매우 이상한 기념사진이다. 그 자리에서 훈장을 수여받은 노인은 6.25전쟁 시기에 중국인민지원군전투원들을 상대로 용감하게 싸웠다는 참전로병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된지도 70년이 가까운데, 왜 이제 와서 참전로병에게 훈장을 수여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주목되는 것은, 백악관이 중국인민지원군과 싸운 참전로병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문재인 대통령을 불러들여 미국과 한국이 공동으로 중국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반중감정이 드러나는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왜 얼굴을 내밀어 중국을 자극했는가 하는 것이다.  


2)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양측은 조선에 대한 정책공조를 계속하겠다고 합의했다. 미국의 대조선접근법과 한국의 대조선접근법이 “완전히 일치되도록 조율해나가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것은 양측이 공조체제로 조선정책을 추진할 의사를 표명한 것인데, 지금 미국의 조선정책과 한국의 조선정책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므로 앞으로 조율하여 완전히 일치된 정책공조를 수행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양측은 지난 시기 조선이 한미정책공조를 전면 거부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조선은 트럼프 정부가 2018년 11월 20일 정책공조라는 허울 밑에 조작해놓았던 ‘한미실무단(working group)’을 배격했다. 2020년 6월 17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북남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상전이 강박하는 <한미실무그룹>이라는 것을 덥석 받아물고 사사건건 북남관계의 모든 문제를 백악관에 섬겨받쳐온 것이 오늘의 참혹한 후과로 되돌아왔다”고 지적했었다. 여기서 말하는 참혹한 후과는 북이 2020년 6월 16일 개성공업지구에 있는 남북공동련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이다. 

 

한미정책공조는 기만술어다. 실제로는 한국이 미국의 조선정책을 추종하면서 정책공조라고 세상을 속이는 것이다. 미국이 개성공업지구를 재가동하지 말고, 금강산관광을 재개하지 말라고 금지하면, 문재인 정부는 찍 소리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라야 한다. 자주권을 상실하고 미국의 지배에 굴종하는 것은 남북관계개선을 저해하는 최악의 장애물이다. 

 

3) 바이든 정부는 자기의 조선정책을 완성한 직후, 백악관에서 진행된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양측이 조선을 더욱 압박하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다시 말해서, 바이든 정부가 완성했다는 조선정책은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을 기조로 하는 구태의연한 정책인 것이다.  

 

이번 공동성명은 “판문점선언과 싱가폴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간, 조미간 공약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임을 재확인했다”고 밝혔지만, 판문점선언은 문재인 정부가 그 선언에 배치되는 조선적대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이미 2019년에 백지화되었고, 싱가폴공동성명은 트럼프 정부가 그 성명에 배치되는 조선적대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이미 2019년에 백지화되었는데, 이제 와서 그 선언과 성명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를 추진하겠다니 그런 소리를 누가 신뢰하겠는가!    

 

2021년 3월 17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에서 조선은 “이미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조미접촉이나 대화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립장을 밝혔으며,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미국의 접촉시도를 무시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4) 이번 공동성명에서 양측은 조선을 더욱 압박하기 위한 방도를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 양측은 유엔안보리의 조선제재결의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조선과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미국의 조선제재는 북침전쟁연습, 정권전복공작과 더불어 조선적대정책의 3대 요소 가운데 하나다. 미국의 적대행위는 제재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조선의 술어를 빌리면, 그것은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감행한 최악의 야만적인 제재봉쇄책동”이다. 조선이 나사못 한 개도 해외에서 수입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석탄 한 줌도 해외에 수출하지 못하게 봉쇄했으니, 이를 어찌 최악의 야만적인 제재봉쇄책동이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녕변핵시설을 해체할 용의를 표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2016년과 2017년에 결정한 조선제재조치 5건을 우선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합리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그 요구를 외면했다. 조선제재를 일거에 전부 해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5건을 우선적으로 해제하라는 요구도 외면했으니, 회담이 결렬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지금 바이든 정부는 조선제재문제와 관련하여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전혀 아니다. 유연하기는커녕 더 강경하다. 2021년 미국 국무부는 조선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조선제재를 계속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서, 조선의 핵억제력이 제거될 때까지 조선제재를 해제하지 않는 것은 물론 부분적으로 완화하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무슨 수를 써서도 조선의 핵억제력을 절대로 제거하지 못할 것이므로, 바이든 정부는 조선제재를 항구적으로 계속하게 된다. 

 

이처럼 바이든 정부가 ‘최악의 야만적인 제재봉쇄책동’을 항구적으로 계속하고 있으니, 그들이 바라는 조미협상이 재개되기는커녕 조미관계와 남북관계의 대파국을 불러오게 될 것이 뻔하다.  

 

조선은 바이든 정부의 흉심을 이미 간파했다. 2021년 3월 17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에서 “미국이 즐겨 써먹는 제재장난질도 우리는 기꺼이 받아줄 것”이라고 언명했다. 미국의 제재장난질을 기꺼이 받아준다는 말은 제재장난질을 용인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력갱생전략으로 제재장난질을 돌파한다는 뜻이다. 2021년 1월 8일 김정은 조선로동당 총비서는 당 제8차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우리 당의 자력갱생전략은 적들의 비렬한 제재책동을 자강력 증대, 내적 동력 강화의 절호의 기회로 반전시키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사회주의건설에서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정치로선으로 심화발전되였다”고 언명했다. 

 

조선의 자력갱생전략이 미국의 제재장난질을 돌파하는 현상은 요즈음 조선 각지에서 동시다발로 추진되는 대규모 건설사업들과 산업생산력 증대 및 과학기술도입 성과, 그리고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이후 어렵고 힘든 부문으로 탄원하는 수 천 명 청년들의 집단적 진출로 나타났다. 조선이 그런 멸사복무정신과 집단주의적 단결력과 혁명적 열의를 가졌다면, 미국의 제재장난질을 능히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이번 공동성명에 따르면, 양측은 조선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상호협력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조선이 혐오하고 배격는 조선의 ‘인권문제’까지 들먹인 그 회담이 대파국의 서막을 열어놓은 파국촉진회담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2021년 5월 2일 조선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에서 “미국이 떠들어대는 <인권문제>란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말살하기 위하여 꾸며낸 정치적 모략”이라고 규정하고, “미국이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부인하고 <인권>을 내정간섭의 도구로, 제도전복을 위한 정치적 무기로 악용하면서 <단호한 억제>로 우리를 압살하려는 기도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이상 우리는 부득불 그에 상응한 조치들을 강구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였다”고 하면서, “미국은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경거망동한 데 대하여 반드시,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언명했다. 

 

그런데 그런 엄중한 경고를 무시하고 양측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조선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겠다고 덜컥 합의해버렸다. 그 합의가 조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대파국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 분명하다.  

 

 

3. 두 개의 전쟁 앞당기는 파국촉진회담

 

이번 공동성명에 따르면, 양측은 “국제질서를 저해하고, 불안정하게 하며, 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하며, 포용적이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지역을 유지할 것을 공약했다”고 한다. “국제질서를 저해하고 불안정하게 하며, 위협하는 행위자”는 중국이고, “포용적이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지역을 유지하는 행위자”는 미국이다. 한미정상회담의 판단기준에 따르면, 중국은 악이고, 미국은 선이다. 

 

모호한 외교술어로 채색된 위의 공약을 뜯어보면, 미국과 한국은 인도-태평양지역에서 공동의 반중국전선을 구축하려고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좀 더 명확히 표현하면, 미국은 이번에 한국을 반중국전선에 깊숙이 끌어들인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지금 미국은 반중국전선에 무력도발책동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 해군은 일본해상자위대와 함께 동중국해, 대만해협, 남중국해에 수시로 출동하여 중국을 심히 자극하고, 미국 육군은 대만군의 전쟁연습을 지도한다고 하면서 중국 영토인 대만에 안보지원려단(SFAB) 지휘관들을 파견했으며, 미국 공군은 B-1B 장거리전략폭격기 편대를 괌(Guam)의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해놓고 각종 정찰기를 출동시켜 중국 공습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항공정찰을 감행하고 있다.    

 

이처럼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서 미국과 한국은 조선적대정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아, 이제는 중국적대정책까지 공동으로 추진할 판이다. 이런 현상은 한미동맹이 조선과 중국을 적대하며 무력도발을 획책하는 침략동맹이라는 진면모를 드러낸 것이다. 이를 어찌 대파국의 서막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번 공동성명에서 양측은 중국적대정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들을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1) 양측은 미국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구상과 한국의 신남방정책을 연계하기 위해 상호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이 추진하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구상”이란 인디아양과 태평양에서 중국의 해양진출을 가로막는 적대정책이다. 미국은 ‘자유’니 ‘개방’이니, ‘구상’이니 하는 외교술어로 분칠해놓았지만, 실상은 중국적대정책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그런데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자기의 중국적대정책과 한국의 신남방정책을 연계시켰다. 원래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중국을 적대하는 정책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중국적대정책에 끌려 들어가면 중국적대정책으로 변질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미국의 강요를 뿌리치지 못하고 반중국전선에 끌려들어가는 것은 한중관계의 대파국을 자초하는 행동이다.

 

2) 미국이 구축해놓은 반중국전선의 중심에 쿼드(Quad)가 있다. 쿼드란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인디아가 참가한 4개국 안보대화(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의 영어 줄임말이다. 이번 공동성명에 따르면, 미국과 한국은 쿼드를 비롯한 인도-태평양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한다. 양측이 쿼드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것은 미국이 한국을 쿼드의 동조자로 끌어들인다는 뜻이다. 

 

미국은 한국을 쿼드에 공식적으로 참가시키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한국이 쿼드에 공식적으로 참가하는 것은 중국을 극도로 자극하여 중국의 보복을 불러올 것이므로, 한국은 중국의 보복이 두려워 쿼드에 참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미국은 한국을 쿼드의 동조자로 끌어들인 것이다. 둘째, 일본이 한국의 쿼드참가를 반대한다.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인디아 같은 ‘대국’들이 참가한 쿼드에 미국의 지배를 받는 한국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의 입장이다. 그처럼 시건방진 태도로 한국을 깔보는 일본의 태도는 일제식민지배의 추잡한 유산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미국의 강요를 뿌리치지 못하고 쿼드의 동조자로 끌려 들어갔으므로, 중국은 자극을 받았다. 중국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계획을 취소할 것이고, ‘금한령(禁韓令)’이라고 부르는 경제제재를 추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한미동맹이라는 허울을 쓰고 자행되는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의 지속적인 보복과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이 주변 강대국들의 충돌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서든지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중립화로선을 택해야 한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한미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5월 20일 알링턴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장면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워싱턴 방문에서 돋보이는 것은 그의 방문일정이 전쟁문제와 결부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모로 보나,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파국촉진회담이었다.  

 

3) 2020년 12월 6일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미국 연방의회는 2021회계년도 국방예산에 태평양억지구상(Pacific Deterrence Initiative) 항목을 신설하고, 거기에 22억 달러(약 2조4,000억원)를 배정했다고 한다. 2014년 연방의회가 신설한 유럽억지구상은 로씨야적대정책을 위한 국방예산항목이고, 이번에 신설된 태평양억지구상은 중국적대정책을 위한 국방예산항목이다. 태평양억지구상이라는 국방예산항목에 배정된 22억 달러의 대부분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사령부가 반중군사전선을 강화하는 데 소비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20년 11월 17일부터 4일 동안 미국 해군은 일본해상자위대,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인디아 해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항모타격단을 동원한 쿼드 합동군사훈련을 인디아양에서 진행했고, 2021년 4월 5일부터 7일까지 쿼드 4개국에 프랑스를 참가시킨 해상합동훈련을 인디아양에서 진행했다. 태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가 태평양에 구축된 반중군사전선에 머리를 들이민 까닭은 프랑스가 점령한 태평양의 섬들인 타히티, 뉴칼레도니아, 월리스, 푸투나가 중국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번 공동성명에서 양측은 “남중국해를 비롯한 다른 지역들에서 항해의 자유와 항공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을 존중하기로 공약”했으며, “대만해협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국방예산 22억 달러를 배정받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사령부는 반중군사전선을 강화하기 위해 서해, 동중국해, 대만해협, 남중국해에서 중국적대행위를 끊임없이 자행하고 있는데, 중국적대행위가 가장 심하게 자행되는 곳은 대만해협이다. 이것은 미국이 중국의 내전(대만통일전쟁)에 개입하려는 무력침공의사를 드러내는 것이다.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이 미국의 사촉을 받아 대만을 중국 영토에서 분리시키고, 이른바 ‘대만공화국’을 수립하려고 광분하기 때문에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은 불가피하다.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을 수행하는 경우, 한미련합군이 그 전쟁에 개입하려는 징후가 보이면, 중국인민해방군은 주한미국군기지들을 제외한 한국군 전략거점들만 골라서 선제공격할 것이다. 중국인민해방군은 강적인 미국군을 선제공격하지 않고, 전투력이 약한 한국군을 선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6.25전쟁 시기에도 중국인민지원군은 미국군을 상대하는 전투를 되도록 피하면서, 전투력이 약한 한국군만 집중적으로 공격했었다. 

 

만일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하여 대만군과 한국군을 동시에 공격하면, 조선인민군이 통일전쟁을 주저할 이유는 전혀 없을 것이다. 이전에 내가 <자주시보>에 발표한 몇몇 글들에서 자세히 논한 것처럼, 중국의 대만통일전쟁과 조선의 조국통일전쟁은 거의 동시에 일어날 것이 확실하며, 그 두 전쟁에서 조선과 중국이 각각 승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조선과 중국을 동시에 자극함으로써 두 개의 전쟁을 앞당기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미동맹을 대파국으로 몰아넣을 조선의 조국통일전쟁과 미일동맹을 대파국으로 몰아넣을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을 앞당기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대파국의 서막을 열어놓은 파국촉진회담으로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21/05/19

침략자를 공포에 떨게 하는 아이야쉬-250

[한호석의 개벽예감](444)

자주시보 2021년 05월 17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무력충돌의 근원

2. 격돌하는 알카쌈려단과 이스라엘군

3. 하마스의 군민단결력과 이스라엘의 군민이간책동

4. 지하무기공장에서 조립한 파즈르-5 방사포탄

5. 침략자를 공포에 떨게 하는 아이야쉬-250

 

 

1.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무력충돌의 근원

 

인류가 철기문명을 건설하던 초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지중해 동쪽 바다와 홍해가 만나는 땅에서 두 민족이 싸우고 있었다. 필리스티아(Philistia)족과 히브루(Hebrew)족이다. 필리스티아족의 후손은 오늘의 팔레스티나 사람들이고, 히브루족의 후손은 오늘의 유대인들이다. 기독교경전인 구약성서에는 필리스티아족이 블레셋족이라고 표기되었다.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그 땅에서 히브루족이 반로마독립전쟁을 일으켰으니, 그것이 66년부터 73년까지 지속된 유대-로마전쟁(Jewish-Roman War)이다. 그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히브루족은 여러 차례 반로마항쟁을 일으켰는데, 기독교경전인 신약성서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John the Baptist)과 그의 친척이자 후계자였던 나자렛 예수(Jesus of Nazareth)도 반로마항쟁을 이끌다가 로마제국 침략군에게 붙잡혀 사형을 당했다. 당시 반로마항쟁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예수는 침략군에게 붙잡혀 사형을 당했는데, 예수와 함께 항쟁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배신한 덕분에 처형을 면한 예수의 제자들은 그에게서 반로마항쟁 지도자의 모습을 지워버리고, 히브루족의 신 야훼(Yahweh)가 세상에 내려 보내 히브루족을 구원할 신의 아들 메싸야(Messiah)로 추앙했다. 피압박 민중의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다가 압제자들에게 붙잡혀 희생된 역사적 인물을 탈정치화-신비화하는 종교현상은 인류사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다. 기독교의 역사적 기원도 그런 종교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66년부터 73년까지 지속되었던 히브루족의 반로마독립전쟁은 히브루족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예루살렘 사원(Holy Temple)이 로마제국 침략군에게 무참히 파괴되고, 히브루족의 마지막 남은 독립투사들이 마사다 전투(Masada Battle)에서 전원 자결한 것으로 하여 종식되었다. 

 

반로마독립전쟁에서 패한 히브루족은 망국의 한을 안고 유럽,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등지로 뿔뿔이 흩어져 유랑했는데, 이것이 그들을 다이애스포라(diaspora)로 부르게 된 역사적 기원이다. 

 

히브루족은 그 땅을 떠나 해외 각지로 흩어졌으나, 필리스티아족은 그 땅에 남았다. 무슬림제국, 몽골제국, 에짚트 맘룩왕조가 차례로 필리스티아족의 땅을 점령하고 지배했다. 1516년에는 오토만제국이 필리스티아족의 땅을 점령했다. 그로부터 400년 동안 필리스티아족은 오토만제국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20세기 초 오토만제국의 식민통치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대영제국, 프랑스제국, 아메리카제국, 로씨야제국, 대일본제국은 세계적 범위에서 식민지영토를 재분할하여 자기들끼리 나눠먹으려는 야욕을 품고 도이췰란드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오토만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는데, 그것이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제국주의국가들끼리 싸운 제1차 세계대전이다.  

 

대영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오토만제국을 팔레스티나에서 몰아내고 그 땅을 점령했다. 1800년 동안 해외 각지에 흩어져 살던 히브루민족 가운데 유대복고주의자(Zionist)들은 팔레스티나를 점령한 영국의 비호 아래 그 땅으로 이주하여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필리스티아민족은 대영제국 침략자들과 유대복고주의자들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제국주의국가들끼리 세계적 범위에서 식민지영토를 점령하고 재분할하려고 격돌한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8월에 종식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도이췰란드, 일본, 이딸리아를 제압하고 승리한 제국주의국가들은 이른바 ‘전후처리’라는 명분을 내걸고 세계적 범위에서 식민지영토를 제멋대로 점령하고 재분할했다. 그런 흐름에 편승한 유대복고주의자들은 1948년 5월 14일 필리스티아민족의 땅 팔레스티나를 분할점령하고 이스라엘을 세웠다. 미국은 팔레스타인 분할점령이 시작된 그날 이스라엘을 신생국가로 공인했다. 만일 영국이 팔레스티나를 점령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미국은 우리 민족의 땅 한반도를 분할점령하고 대한민국을 세웠다. 미국은 한반도 분할점령이 시작된 그날 대한민국을 신생국가로 공인했다. 만일 미국이 38도선 이남을 점령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이 각각 제국주의분할점령정책의 산물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군사주권을 자율적으로 행사하는 이스라엘은 미국의 동맹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군사주권을 미국에게 넘겨준 대한민국은 명색이 미국의 동맹국일 뿐 사실상 미국의 점령지로 전락했다. 주한미국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합법적으로 주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기한 주둔을 규정한 대미예속조약이 미국군의 주둔을 합법화해줄 수 없다. 지난 시기 일제침략군이 스스로를 조선주차군이라고 부르며 합법화했던 것처럼, 오늘 미국군도 스스로를 한국주둔군이라고 부르며 합법화하려고 하지만, 명백하게도 그들은 주둔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다.      

 

미국과 영국의 비호 아래 팔레스티나를 분할점령하고 출현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티나를 물리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높이가 8m이고, 길이가 810km인 거대한 분단장벽을 건설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대복고주의자들이 분할강점한 땅을 되찾아 분단장벽을 철거하고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필리스티나족의 정의로운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종미우익세력이 분할강점한 땅을 되찾아 분단장벽을 철거하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 민족의 정의로운 투쟁도 계속될 것이다. <사진 1>

 

▲ <사진 1> 2021년 5월 10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재발했다. 이스라엘 경찰의 유혈진압으로 촉발된 무력충돌이다. 역사자료에 따르면, 필리스티아족과 히브루족은3,000년 전부터 그 땅에서 싸워왔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과 영국의 비호 아래팔레스티나를 강점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티나의 주인인 필리스티아민족을 압살하려는 극악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2017년부터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집권당 하마스는 무장투쟁으로 이스라엘 침략자들에 맞서 싸우며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전력하고 있다.  



 

2. 격돌하는 알카쌈려단과 이스라엘군

 

2021년 5월 10일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하여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다른 나라 영토를 침공하고 점령한 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해놓고, 침략범죄를 미화, 찬양하는 이스라엘의 망동을 보고 팔레스티나 인민은 격분을 금치 못했다. 며칠 전부터 산발적으로 진행되어오던 팔레스티나 인민의 반이스라엘시위투쟁은 그것을 계기로 하여 격렬하게 폭발했다. 화들짝 놀란 이스라엘 경찰은 최루탄, 고무탄, 섬광탄을 난사하면서 팔레스티나 시위군중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시위군중 305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반이스라엘시위투쟁은 걷잡을 수 없이 더욱 격화될 것이고, 위험을 직감한 이스라엘 경찰은 시위군중에게 실탄사격을 퍼붓는 광란적 유혈진압을 자행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이스라엘 경찰은 2018년에 팔레스티나 시위군중에게 실탄사격을 퍼붓는 유혈진압을 자행한 바 있다. 2019년 2월 28일 유엔 산하 팔레스티나시위사태조사위원회는 이스라엘군이 2018년 3월 30일부터 12월 31일까지 가자지구(Gaza Strip)에서 시위군중에게 실탄사격을 퍼부어 189명의 사망자와 6,100여 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전쟁범죄, 반인도주의범죄를 자행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팔레스티나 시위군중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옥죄는 살인적인 봉쇄조치를 완화해줄 것과 이스라엘로 밀려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였다. 너무도 정당한 요구였다. 하지만 입에 피를 물고 날뛰는 이스라엘 집권세력은 팔레스티나 시위군중의 타인 민중의 정당한 요구를 짓밟고, 폭력경찰을 내몰아 광란적 유혈진압을 자행했던 것이다. 

 

반이스라엘무장투쟁을 이끌면서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티나 인민의 집권정당인 하마스(Hamas)는 지난 시기 그런 유혈사태를 여러 번 일어났던 것을 상기하면서 가자지구 시위군중이 이스라엘 경찰의 광란적 유혈진압으로 이번에 또 다시 큰 인명피해를 입게 될 것을 우려했다. 이스라엘 경찰의 폭력진압을 저지할 비상대책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하마스는 당일 오후 6시까지 시위현장에서 이스라엘 경찰병력을 철수할 것과 만일 철수하지 않으면 물리적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내용의 통첩을 보냈다. 그러나 입에 피를 물고 날뛰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통첩에 귀를 기울일 리 만무했다. 

 

2021년 5월 10일 오후 6시 하마스 산하 군사조직인 알카쌈려단(Al-Qassam Brigade)은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을 갈라놓은 분단장벽 너머로 로켓포탄을 100발 이상 쏘았다. 그러자 이스라엘군은 전투기를 출격시켜 가자지구에 있는 하마스 군사기지들을 공습했다. 2021년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무력충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알카쌈려단은 1987년 12월에 창설되었는데, 지금은 10개 이상의 여단으로 증강되었다. 총병력은 30,000~50,000명이다. 그들은 납치와 암살을 노리는 이스라엘 국가정보기관 모싸드(Mossad)에 자기 신원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두 눈만 남기고 얼굴 전체를 천으로 가린 채 군사활동을 벌인다. 

 

알카쌈려단의 주적은 이스라엘군이다. 이스라엘군은 현역이 170,000명이고, 예비역이 465,000명이므로, 총병력수는 635,000명이다. 알카쌈려단은 병력수에서 이스라엘군의 1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알카쌈려단은 이스라엘의 살인적인 봉쇄조치로 군사장비를 외부에서 반입하기 힘들다. 그래서 손으로 조립해 만든 원시적인 무기밖에 갖지 못했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군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최신 무기를 장비했을 뿐 아니라, 핵무기까지 보유했고,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도 보유했다. 

 

알카쌈려단과 이스라엘군의 무력격차가 그처럼 크게 벌어진 까닭은, 미국이 이스라엘에 마구 퍼주는 군사지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에 퍼주는 미국의 군사지원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를테면, 2016년 9월 13일 미국 국무부는 2019년부터 10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연간 38억 달러의 군사비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2018년까지 연간 31억 달러의 군사비를 원조해오다가 2019년부터는 연간 38억 달러로 증액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미사일방어체계 ‘철갑지붕(Iron Dome)’을 개발하는 데 들어간 2억500만 달러도 미국의 재정지원과 기술지원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퍼주고도 더 퍼주고 싶어 안달하는 미국은 이스라엘 영토에 미국군이 전시에 사용할 미사일, 전차, 장갑차, 포탄을 비롯한 8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비축해놓았다. 또한 미국군은 이스라엘군과 함께 ‘주니퍼 코브라(Juniper Cobra)’라는 작전명칭을 내걸고 격년제로 합동군사훈련을 계속해오고 있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하마스 산하 군사조직인 알카쌈려단 전투원들이 갱도진지에서 무기를 점검하는 장면이다. 알카쌈려단은 이스라엘군에 비해 너무 빈약해보이는무장력을 가졌지만, 가자지구 인민들과 함께 결사항전으로 이스라엘군을 물리치고있다. 그들의 갱도전법은 이스라엘군을 공포에 떨게 할 만큼 위력적이다.  



 

3. 하마스의 군민단결력과 이스라엘의 군민이간책동

 

위에 열거한 사실을 보면, 알카쌈려단의 무장력은 이스라엘군의 무장력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다. 그런 알카쌈려단이 이스라엘군과 맞붙으면, 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으나, 정반대의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시기 무력충돌이 일어났을 때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용맹스럽게 싸워 이스라엘을 번번이 죽음의 공포에 몰아넣었다. 승리의 비결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정당한 요구를 제기한 데 있다. 그들의 정당한 요구는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5일부터 6월 10일까지 지속된 제3차 중동전쟁에서 동예루살렘,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지구, 싸이나이반도, 골란고원을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1973년 10월 6일부터 10월 25일까지 지속된 제4차 중동전쟁에서 패하여 싸이나이반도에서 철군했지만, 동예루살렘, 가자지구, 요르당간 서안지구, 골란고원은 오늘도 여전히 점령하고 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요구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철군하여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에 설정되었던 국경을 복원하라는 것이다. 

 

2)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요구하는 것은, 팔레스티나 영토에서 자유선거를 허용하라는 것이다.  

 

3)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요구하는 것은, 팔레스티나 난민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생활할 귀환의 권리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이 위와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고 이행하면,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행사를 중지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욱이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는 미국, 일본, 유럽련합은 정당한 요구를 제기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규정하는 망동을 저질렀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침략자들을 상대로 정의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고, 이스라엘침략자들은 하마스를 상대로 불의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의로운 반침략전쟁은 반드시 승리하고, 불의한 침략전쟁은 반드시 패하는 것은 사회력사발전의 법칙이다. 정의로운 반침략전쟁에서 하마스와 가자지구 인민은 힘을 집중시킨 단결력으로 결사항전을 벌이지만, 불의한 침략전쟁에서 이스라엘군과 이스라엘 인민은 각자 제 살 궁리만 하는 바람에 단결하지 못하고 힘을 분산시킨다. 그래서 하마스는 승리하고, 이스라엘은 패한다. 

 

이런 내막을 알게 된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가자지구 인민을 분리시키는 이간책동을 자행했는데, 그것이 곧 가자지구에 대한 살인적인 봉쇄조치다. 하마스가 가자지구 인민의 지지를 받으며 2007년 6월 가자지구 집권당으로 등장했을 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완전히 봉쇄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군사장비반입을 금지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민간부문에서 사용하는 각종 물자들은 물론 심지어 생활필수품까지 반입을 금지시킨 야만적인 봉쇄다. 그런 야만적인 봉쇄 때문에 가자지구에 사는 인구 200만명은 기아와 궁핍에 빠지게 되었다. 가자지구에는 8개의 난민촌이 형성되었다. 가자지구 총인구 200만명 가운데 난민촌에 들어간 인구는 무려 140만명이다.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완전봉쇄는 가자지구 인민을 오랜 기간에 걸쳐 소리 없이 집단학살하는 살륙만행이다. 

 

2010년 5월 31일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비롯한 700여 명의 국제구호활동가들은 완전봉쇄로 고통을 겪는 가자지구 인민들에게 전달할 구호물품을 실은 수송선 6척에 나눠 타고 가자지구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헬기에 탑승한 이스라엘 특공대는 가자지구 해안으로부터 약 130km 떨어진 공해 상까지 날아가 구호품 수송선을 기습공격했다. 이스라엘 특공대의 살륙만행으로 국제구호활동가 15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30여 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오판했다. 이스라엘이 살인적인 봉쇄로 가자지구를 옥죌수록 하마스에 대한 가자지구 인민의 지지와 성원은 더욱 커졌고, 그들의 단결력은 더욱 견고해졌다. 죽음과 고통도 하마스와 가자지구 인민을 갈라놓지 못했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가자지구에서 각계각층 인민들이 하마스를 지지하는 시위를벌이는 장면이다. 시위군중 속에는 어린아이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것은 하마스가가자지구 인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완전봉쇄하여 가자지구 인민들을 기아와 빈궁에 몰아넣으면 그들이 하마스에 등을 돌릴 것으로 어리석게 타산하고 이간책동을 감행했지만, 하마스와 가자지구 인민의 단결력은 시련 속에서 더욱 견고해졌다.  

 

 

4. 지하무기공장에서 조립한 파즈르-5 방사포탄

 

2021년 5월 14일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알카쌈려단은 로켓포탄, 방사포탄, 탄도미사일 8,000~10,000발을 지하무기고들에 분산, 비축해놓았다고 한다. 이것은 알카쌈려단이 엄청난 양의 화력을 보유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이스라엘의 살인적인 봉쇄로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자지구에서 알카쌈려단은 어떻게 그처럼 엄청난 화력을 보유할 수 있었을까? 구체적인 사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알카쌈려단은 카쌈 로켓포를 보유했다. 이 로켓포는 사거리가 16km이고, 탄두중량이 20kg이다. 카쌈 로켓포는 알카쌈려단 무기생산기지들에서 자체로 만든 무기다. 로켓포라고 하지만, 질소비료, 설탕, 질산칼륨을 적당한 비률로 섞은 혼합물을 가지고 로켓추진연료를 만들고, 상용폭약(TNT)과 질소비료의 혼합물에 파편으로 쓰이는 못이나 베어링을 박아 넣은 작은 탄두를 장착한 원시적인 무기다. 카쌈 로켓포는 사거리도 짧고, 폭발력도 약하고, 비행속도도 느리고, 유도비행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격대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발사현장을 촬영한 영상자료를 보면, 카쌈 로켓포탄은 카메라 받침대(tripod)처럼 엉성하게 생긴 세발 받침대에 세워놓고 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요즈음 이스라엘군은 이스라엘로 날아오는 로켓포탄을 반항공망으로 거의 모두 요격했다고 떠들어대지만, 그들은 원시적인 무기인 카쌈 로켓포로 요격해놓고 대단한 반항공망을 가동한 것처럼 큰 소리를 치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이 발사하는 타미르 요격미사일(Tamir interceptor)의 비행속도는 초당 750m인데, 카쌈 로켓포탄은 초당 600m의 비행속도로 날아가므로, 이스라엘군은 카쌈 로켓포탄을 요격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을 보면, 카쌈 로켓포는 이스라엘에 그리 위협적인 무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2) 알카쌈려단은 로씨야산 122mm 40관 그래드(Grad) 방사포탄을 보유했다. 이 방사포는 원래 3축6륜 발사대차에 탑재되는데, 사거리가 20km이고, 초당 2발씩 40발을 짧은 시간에 연발로 사격할 수 있다. 탄두중량은 25kg이다. 2010년 11월 23일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그래드 방사포의 조선식 개량형을 연평도포격전에서 사용했다. 연평도포격전보다 2년 앞선 2008년 12월 알카쌈려단은 사상 처음으로 122mm 그래드 방사포탄 2발을 이스라엘 남부 도시 브에르 쉐바로 발사했었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알카쌈려단이 40발을 연발로 사격할 수 있는 그래드 방사포탄를 왜 2발만 발사했을까 하는 것이다. 발사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자료를 보면, 알카쌈려단은 평시에 방사포탄을 갱도진지에  숨겨놓았다가 발사명령을 받으면, 포병 7명이 동아줄로 방사포탄을 들어 올려 사격지점까지 운반한다. 사격지점에는 약 60도 각도로 땅을 파고 묻어놓은 발사관이 있는데, 그 발사관 속에 들어있는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방사포탄을 발사관 안에 들여놓으면 잠시 후 폭약이 터지면서 방사포탄에 점화되고, 방사포탄이 폭약의 폭발력으로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면서 타격대상을 향해 날아가게 된다. 포병들은 방사포탄을 발사한 뒤에 신속히 다른 곳으로 회피한다. 

 

그런데 방사포탄을 그런 식으로 발사하면, 연발사격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방사포탄 40발을 발사대차에 탑재해놓고 연발사격을 하지 못하고, 위에 서술한 식으로 2발만 쏜 것이다. 

 

알카쌈려단이 발사한 그래드 방사포탄은 초당 690m의 비행속도로 날아가므로, 비행속도가 초당 750m인 타미르 요격미사일을 이스라엘군이 쏘면 이론상 요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전상황에서는 이론적으로 규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돌발적인 요인들 때문에 요격률이 떨어진다.  

 

2021년 5월 1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알카쌈려단과 이스라엘군의 무력충돌이 시작된 5월 10일부터 알카쌈려단은 이스라엘의 타격대상들을 향해 2,900여 발을 발사했는데, 이스라엘군의 반항공망은 그 가운데서 1,150여 발을 요격했고, 450발은 가자지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추락했다고 밝혔다. 이런 발표내용을 보면, 알카쌈려단이 쏜 각종 발사체들 가운데 450발은 가자지구에 추락했고, 1,150여 발은 이스라엘군 반항공망에 걸려 요격되었고, 1,300여 발은 이스라엘군 반항공망을 뚫고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3) 2012년 11월 17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알카쌈려단은 이란에서 생산한 파즈르(Fajr)-5 방사포탄을 보유했다고 한다. 파즈르-5 방사포는 구경이 333mm이고, 사거리가 75km이며, 탄두중량은 175kg이다. 원래 이란에서는 3축6륜 발사대차에 파즈르-5 방사포 4문을 탑재한다. 

 

2012년 11월 27일 <CNN> 보도에 따르면, 이란에서 생산된 파즈르-5 방사포탄이 이란에서 아주 멀리 떨어졌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살인적인 봉쇄에 갇혀있는 가자지구로 반입되었는데, 그 반입경로는 다음과 같다. 이란이 방사포탄 부품을 수단으로 보내면, 거기서 수송차량에 실어 에짚트 사막지대를 거쳐 싸이나이반도 북쪽 국경지대에 있는 갱도를 통해 가자지구로 반입한다. 그러면 다른 경로로 은밀히 가자지구에 들어간 이란의 미사일기술자들이 가자지구의 지하무기공장에서 반입부품들을 조립하여 파즈르-5 방사포탄을 완성한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이스라엘군은 이란이 파즈르-5 방사포탄 부품을 가자지구로 운반하는 수송로를 차단하려고 광분했다. 2009년 3월 29일 영국 일간지 <썬데이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2009년 1월 무인타격기를 수단 동북부 영공으로 불법침입시켜 가자지구로 방사포탄 부품을 수송하는 차량 17대를 파괴했고, 수송차량에 타고 있던 50여 명을 살해했다고 한다. 원래 그 수송차량은 홍해를 통해 수단으로 들어간 방사포탄 부품을 싣고 에짚트 사막지대를 거쳐 가자지구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차단작전에 광분한다고 해서 방사포탄 부품 수송로가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방사포탄 부품은 그런 식으로 가자지구에 반입될 수 있지만, 이스라엘의 감시망과 봉쇄망을 뚫고 3축6륜 발사대차를 가자지구에 반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알카쌈려단은 파즈르-5 방사포를 싣고 사격점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발사대차를 보유하지 못했다. 발사대차가 없으면, 4발을 연속사격하지 못하기 때문에, 파즈르-5 방사포의 성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알카쌈려단은 2012년 11월 처음으로 파즈르-5 방사포탄 14발을 발사하여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 외곽지대를 타격했다.    

 

▲ <사진 4> 위의 사진은 알카쌈려단 전투원들이 발사한 카쌈 로켓포탄이 이스라엘을향해 날아가는 장면이다. 카쌈 로켓포탄은 완전봉쇄를 받는 가자지구에서 알카쌈려단이 자체로 만든 원시적인 무기다. 그래서 이스라엘군은 반항공망으로 카쌈 로켓포탄을 요격했다고 떠들어대지만, 알카쌈려단은 그들이 요격하지 못하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5. 침략자를 공포에 떨게 하는 아이야쉬-250

 

2021년 5월 16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알카쌈려단이 쏜 발사체 가운데 120발이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를 타격했다고 한다. 가자지구 북측 지역에서 텔아비브 중심부까지 직선거리는 70km이므로, 알카쌈려단이 가자지구에서 쏜 발사체 120발이 텔아비브를 타격한 것은 알카쌈려단이 사거리가 70km인 무기를 보유하였음을 말해준다. 카쌈려단이 보유한 파즈르-5 방사포의 사거리가 75km다. 그러므로 카쌈려단은 파즈르-5 방사포탄 120발을 발사하여 텔아비브를 타격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파즈르-5 방사포탄 120발이 떨어진 텔아비브에서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이스라엘 인민들은 반항공대피훈련이 잘 되어 있고, 지하대피소들도 곳곳에 구축되어 있으므로 파즈르-5 방사포탄 120발을 맞았어도 텔아비브에서 큰 인명피해를 입지는 않고, 건물손괴피해만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스라엘군은 텔아비브가 방사포탄 공격을 받은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2021년 5월 15일과 16일 전투기를 연속 출격시켜 가자지구를 공습했다.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들은 5월 15일 외국언론기관들이 입주해 있는 건물을 공습, 파괴하고, 가자지구 난민촌을 공습, 파괴했으며, 5월 16일에는 하마스 최고지도자 야히야 신와르(Yahya Sinwar)의 살림집과 그의 동생 무함마드 신와르(Muhammad Sinwar)의 살림집을 공습, 파괴했다. 

 

이스라엘군이 그처럼 군사기지를 파괴하지 않고 민간시설을 공습, 파괴한 것은 그들이 공습대상을 더 이상 찾아내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알카쌈려단은 이스라엘군의 공습위험을 피해 땅속에 갱도진지를 건설해놓았으므로, 이스라엘 정찰위성과 무인정찰기가 땅속에 있는 갱도진지를 찾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군은 민간시설을 공습, 파괴하는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런데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7일째로 접어든 2021년 5월 16일 뜻밖에도 세인의 시선을 집중시킨 두 가지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1) 2021년 5월 16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공습을 계속해야 하는지 아니면 공습을 중단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 국가안보회의를 긴급히 소집했다. 만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습을 계속할 생각을 하고 있다면, 국가안보회의를 긴급히 소집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공습을 계속해야 하는지 아니면 중단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국가안보회의가 소집된 것은 그들 속에서 공습중단을 주장하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2021년 5월 1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공습을 당분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지배세력은 공습중단론과 공습연장론으로 갈라져 논쟁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습중단은 곧 정전을 의미하므로, 이스라엘 지배세력 내부에서 정전론이 제기된 것이 확실하다.   

 

2) 2021년 5월 16일 미국은 이스라엘에 파견한 미국 연방정부 관리 120명을 군용 수송기에 태워 도이췰란드에 있는 람슈테인 공군기지로 긴급히 소개시켰다. 미국이 자국인들을 전선에서 해외의 안전비대로 긴급히 소개시키는 것은 패전위험이 조성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내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무력충돌이 발생한 이후 가자지구에 1,000회 이상의 공격을 퍼부었고, 그와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이 완전봉쇄한 가자지구에서는 화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중유마저 떨어지는 바람에 5월 16일 중으로 전기공급이 중단되었다. 전쟁이 그처럼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느닷없이 정전론이 제기되고, 미국인들이 긴급히 다른 나라로 소개된 것은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왜 그런 돌발현상이 나타났을까? 

 

의문을 풀어줄 결정적인 단서는 2021년 5월 13일에 일어난 놀라운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21년 5월 13일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보도에 따르면, 알카쌈려단은 ‘대형 로켓’을 이스라엘의 라몬국제공항으로 발사했는데, 이스라엘군은 그 ‘대형 로켓’이 200km를 날아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라몬국제공항은 홍해에 접한 최남단 항구도시 에일랏(Eilat) 외곽지대에 있다. 가자지구 남측 지역에서 그 국제공항까지 직선거리는 약 200km다. 2021년 5월 14일 알카쌈려단 대변인은 사거리가 250km인 아이야쉬(Ayash)-250 '신형 로켓‘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사거리가 250km이고 비행거리가 200km이면, 로켓이 아니라 단거리탄도미사일이다. 다시 말해서, 알카쌈려단은 사거리가 250km인 아이야쉬-250 신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이스라엘의 라몬국제공항 활주로를 파괴한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아이야쉬-250 탄도미사일의 사거리가 250km에 이른다는 사실은 알카쌈려단이 그 미사일로 이스라엘 전역을 마음먹은 대로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공격할 결정적인 화력타격수단을 보유한 것이다. 

 

2) 사거리가 250km인 아이야쉬-250 탄도미사일은 사거리가 210~300km인 이란의 파테(Fateh)-110 미사일과 성능이 유사하다. 파테-110 미사일의 탄두중량은 500kg이므로, 아이야쉬-250 탄도미사일의 탄두중량도 500kg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알카쌈려단은 탄두중량이 175kg밖에 되지 않는 방사포탄을 쏘았지만, 이제는 탄두중량이 500kg이나 되는 강력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게 된 것이다.

 

3) 알카쌈려단은 아이야쉬-250 탄도미사일로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도 타격할 수 있고, 이스라엘 네게브사막지대에 있는 다이모나(Dimona) 원자력발전소도 타격할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전략적 타격수단을 보유했음을 의미한다. 이번에 알카쌈려단이 아이야쉬-250 탄도미사일로 가자지구 북쪽에 있는 텔아비브를 타격하지 않고, 가자지구 남쪽에 있는 라몬국제공항을 타격한 까닭은, 그들이 전략적 타격수단을 사용할 결정적인 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카쌈려단이 발사한 아이야쉬-250 탄도미사일이 라몬국제공항 활주로를 파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고위관리들은 전률했다. 그래서 그들은 황급히 정전론을 제기했고,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또한 그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미국도 이스라엘에 파견한 관리들을 도이췰란드로 황급히 소개시킨 것이다.  

 

위와 같은 사실을 보면, 하마스는 이번 전쟁에서 또 다시 전술적 승리를 쟁취하고 정전복귀성과를 얻게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정의의 전쟁은 반드시 승리한다.

2021/05/12

정전상태와 준전시상태가 교차되어온 역사

[한호석의 개벽예감](443)

자주시보 2021년 05월 10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1.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로 전환되었던 급박한 상황들

 

2015년 9월 1일 애쉬튼 카터(Ashton B. Carter)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세계 각국에 배치된 미국군 병사들과 화상담화를 진행했다. 화상담화에 참가한 해외 미국군 병사들 가운데는 판문점에서 군사복무를 하는 육군 일병 조너던 쏘머스(Jonathan Somers)도 있었다. 화상담화 중에 애쉬튼 카터는 쏘머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반도는 언제든지 쉽게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지역이다. (중략) 우리는 언제든지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미국 국방장관이 판문점에서 군사복무를 하는 미국 육군 일병에게 그런 말을 꺼내놓은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 화상담화가 진행되기 열흘 전인 2015년 8월 20일 군사분계선에서 일촉즉발 무력충돌위험이 조성되었다. 2015년 8월 말에 전개되었던 급박한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군 합참본부는 2015년 8월 20일 오후 3시 52분경 조선인민군 비무장지대 민경초소에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총탄 1발이 한국군 비무장지대 감시초소로 날아왔다고 하면서 한국군 포병부대에 사격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에 따라 한국군 포병부대는 조선인민군 민경초소 4개소 주변을 향해 155mm 자주포 36발을 집중사격했다. 주변을 향해 쏘았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없었다. 

 

북은 자기 지역으로 자주포를 사격한 한국군의 도발행동에 격분했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앞으로 48시간 안에 대북확성기방송을 중단하고 방송기재들을 전부 철거하지 않으면 “즉시 강력한 군사적 행동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최후통첩”을 한국군 군방부에 보냈다.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비상확대회의를 긴급히 소집하여 대남공격작전계획을 검토, 비준했다. 2015년 8월 21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준전시상태를 선포함에 대한 최고사령관 명령을 각 전투부대들에 하달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한국군도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를 취했다. 

 

초긴장상태에 빠진 미국도 부산하게 움직였다. 2015년 8월 24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군 고위사령관들과 전쟁기획자들은 북의 공격징후에 대처하기 위한 전쟁계획을 며칠 동안 검토했다고 한다. 2015년 8월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한국군 합참본부는 전쟁계획을 검토하기 위한 공동작전기획단을 가동하였다고 한다.  

 

주목되는 것은, 2015년 8월 20일 무력충돌위험이 조성된 이튿날 북에서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었다는 사실이다. 준전시상태는 전쟁이 임박한 상태를 뜻한다.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로 전환되면, 조선인민군 지휘관들은 비상소집되고, 전투원들은 임의의 시각에 전투를 개시할 수 있도록 완전무장을 하고 갱도진지로 들어가 공격준비를 완료하게 된다. 또한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로 전환되면, 로농적위군과 붉은청년근위대는 완전무장을 하고 결전태세에 돌입하고, 전체 인민들은 공습대피훈련과 등화관제훈련에 참가하고, 모든 차량은 징발된다.  

 

북의 준전시상태는 2015년 8월 21일에 처음 선포된 것이 아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오늘까지 북에서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가 전환되었던 급박한 상황을 시대별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968년 1월 

북은 조선 영해를 침범한 미국 첩보선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직후, 미국의 북침전쟁위협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1976년 8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조선인민군과 미국군이 유혈충돌한 판문점사건이 일어난 직후, 북은 미국의 북침전쟁위협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1983년 3월

북은 평양점령을 상정한 새로운 공중-지상전 전략에 따라 미국이 감행한 북침전쟁연습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1993년 3월 

북은 새로운 선제핵타격계획에 따라 미국이 감행한 북침전쟁연습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2015년 8월 

군사분계선에서 한국군의 포격으로 촉발된 무력충돌위험에 대처하여 북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준전시상태보다 더 엄중한 상황은 전시상태다. 북이 전시를 선포하는 것은 전쟁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전시선포를 하는 것은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다르다. 선전포고를 하고 개전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통용되었던 낡은 전쟁방식이다. 현대전쟁에서는 선제타격을 하는 쪽이 승리하게 되어 있으므로, 어떤 나라도 의회에서 선전포고를 의결하고 나서 개전하지 않는다. 당연히 북도 전쟁을 결심하는 경우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 개전할 것인데, 적의 전략거점들에 대한 선제타격을 개시하는 것과 동시에 전시를 선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은 북측 외부에 전시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북측 내부에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부에서는 북이 전시를 선포했다는 사실을 즉각 알 수 없다.  

 

 

2.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

 

북은 어떤 상황에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어떤 상황에서 전시를 선포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2013년 8월 22일 <동아일보>가 입수해 보도한 북의 ‘전시사업세칙’ 요약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의 ‘전시사업세칙’은 2004년 4월에 제정되었고, 2012년 9월에 개정되었다. 북은 ‘전시사업세칙’에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과 전시를 선포하는 상황을 각각 규정했다.  

 

우선 북은 어떤 상황에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지 살펴보자.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적대세력이 최고존엄을 모독하였을 때 

 

2) 적대세력이 전선과 해상에서 군사도발을 감행했을 때 

 

3) 적대세력이 북의 최고리익을 침해하는 도발을 감행했을 때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적대세력이 북의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것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여 대처해야 하는 엄중한 상황이다.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충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북의 시각에서 보면, 수령을 모독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악독한 적대행위로 된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면, 탈북자단체가 미국의 지령에 따라 북의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대북전단을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으로 날려보내는 것은 북의 격분을 유발하는 적대행위가 아닐 수 없다. 2021년 4월 25일부터 29일까지 기간에 경기도 북측 지역과 강원도 북측 지역에서 반북전단 50만장을 대형 풍선 10개에 매달아 북으로 날려보낸 탈북자 박상학의 행동은 북의 격분을 유발한 적대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남측의 실정법을 공공연히 위반하면서 반북전단살포를 감행하여 남북무력충돌을 불러일으키려고 광분하는 악질범들을 엄벌에 처하고, 그들의 대북적대행위를 근절해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킬 수 있다.   

 

또한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두 번째로 엄중한 상황은 미국군사령관이 지휘하는 한미련합군이 ‘평양점령’과 ‘참수작전’을 상정한 도발적인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군은 2021년 3월 8일부터 19일까지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북의 거듭되는 경고와 반대를 무시하고 북침전쟁연습을 또 다시 감행했다. 그것은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을 유발하는 대북적대행위였다. 그러므로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하여 전쟁위험을 고조시키는 한미련합군의 대북적대행위를 근절시켜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위와 같은 맥락을 살펴보면, 올해 들어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을 유발하는 대북적대행위가 벌써 두 차례나 감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북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고 해서, 무력충돌위험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요즈음 한반도 정세는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상황에 버금갈 만큼 무력충돌위험이 조성되었다. 북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이후 무력충돌위험이 단계적으로 고조되는 과정에 전시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미처 알지 못한 시각에 전시를 선포할 수 있다. 현재 한반도에 조성된 심각한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3. 북이 전시를 선포하는 상황

 

북이 전시를 선포하는 것은 개전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개전은 무력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군사행동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북이 통일방도의 하나로 제시한 무력통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누구나 아는 것처럼, 국가분렬을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두 가지 방도는 평화통일과 무력통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분단국가는 이 두 가지 통일방도를 추구한다. 이를테면, 조선과 중국은 평화통일과 무력통일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분단국가들이다. 예맨과 기쁘로스도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분단국가들이다. 

 

평화통일은 통일협상에 의해 실현되고, 무력통일은 통일전쟁에 의해 실현된다. 분단국가에서 통일세력과 분렬세력이 통일협상을 성사시키는 경우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지만, 분렬세력이 통일협상을 끝내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사의 경험을 보면, 분렬세력이 분단고착화책동을 자진하여 포기하고 통일협상에 호응한 사례는 없으므로, 평화통일은 비현실적인 방도이고 무력통일은 현실적인 방도라고 말할 수 있다.  

 

분렬세력이 통일협상을 거부하고 분단고착화책동에 광분하면, 통일세력이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협상을 성사시키는 수밖에 없다. 통일협상을 거부하고 분단고착화책동에 광분하는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협상을 성사시키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조국통일의 길이다. 평화통일을 반대하면서 전쟁위험을 고조시키는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무력통일은 통일협상에 의거한 평화통일을 실현할 통일국가건설의 방도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통일협상에 의거한 평화통일과 분렬세력을 제압하는 무력통일이 상호모순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1953년 정전 이후, 북은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협상에 의거하여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통일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북의 시각으로 보면, 무력통일과 평화통일은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하나의 연속적인 진전과정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의 시각으로 보면, 전시를 선포하는 것은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협상을 성사시켜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되는 것이다. 

 

그러면 북은 어떤 상황에서 전시를 선포하게 되는지 살펴보자.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북이 전시를 선포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미국과 남측의 침략전쟁의도가 확정되거나, 북에 무력침공을 감행했을 때 

 

2) 남측의 애국력량이 북에 지원을 요구했을 때 

 

3) 국내외에서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을 때 

 

4) 미국과 남측이 국부지역에서 일으킨 군사도발행위가 확대되었을 때 

 

위에 열거한, 전시를 선포하는 상황들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국내외에서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을 때 북이 무력통일을 실현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전시사업세칙’에 서술된 바에 따르면, 국내에서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다는 말은 남측에서 그런 국면이 조성된다는 뜻이고, 국외에서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다는 말은 국제정세에서 그런 국면이 조성된다는 뜻이다. 양자를 구분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4. 1965년과 1975년,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북이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다고 판단한 적이 있었던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미국의 우드로우 윌슨 국제학술쎈터(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가 발굴하여 2012년 5월 16일에 공개한 역사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역사자료는 평양 주재 도이췰란드민주공화국 대사 브리(Brie)가 동베를린에 있는 사회주의통일당(SED) 외교담당 비서 겸 도이췰란드민주공화국 제1외무상 헤겐(hegen)에게 1967년 12월 8일에 보낸 비밀전문이다. 비밀전문에 따르면, “조선의 지도부가 생각하는 세 가지 민족문제해결방안”은 “남조선 인민들이 대규모 혁명봉기를 일으키는 것”과 “박정희를 반대하는 군부세력이 군사정변을 일으키는 것”과 “미국이 남조선정권을 지원해주지 못할 만큼 국제정세가 악화되는 것”인데, 첫 번째 해결방안과 두 번째 해결방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북은 세 번째 해결방안에 노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비밀전문에 서술된 세 번째 해결방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비밀전문이 작성되었던 1967년은 북이 세 번째 해결방안을 실현할 수 있는 국제정세가 조성되었던 시기였다. 당시 국제정세를 보면, 미국은 남측 정권을 지원해주지 못할 만큼 깊은 수렁 속에 빠져있었다. 그것은 윁남전쟁이라는 깊은 수렁이었다. (베트남이라는 말은 미국식 국명인 비엣남을 제멋대로 발음한 것이므로, 현지에서 사용되는 윁남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 

 

상황을 오판하고 윁남전쟁에 무력개입을 감행하였던 미국이 패전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1965년 어느 날 김일성 주석은 평양 주재 중국대사 하오더칭(郝德靑)을 접견하였다. 중국 인민대학 교수 청샤오허(成曉河)가 2013년 10월 23일 서울에서 진행된 국제학술회의에서 인용한 중국 외교부 기밀해제문서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하오더칭 대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남조선 인민의 계급투쟁이 고조되었고, 갈등이 증대되었으므로 우리는 조만간 (통일)전쟁을 할 것이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전쟁을 하지 않고서 이 문제(통일문제를 뜻함-옮긴이)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생각해두었고 준비했으므로 그대로만 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가 (통일)전쟁을 하면, 중국이 파병해주기 바란다.”

 

한국외교협회가 발행한 전문지 <외교> 2008년 7월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1965년 어느 날 김일성 주석은 6.25전쟁 시기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관으로 참전했으며, 1965년 당시에는 중국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이었던 양융(楊勇)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더 늙기 전에 (미국과) 한 번 더 겨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짐(통일전쟁을 뜻함-옮긴이)을 후대에 물려주면, 그들이 우리보다 반드시 더 잘 싸운다는 법도 없다. 전쟁경험이 있는 우리가 이 무거운 짐을 져야하겠는데, 당신들이 우리와 함께 (미국을 상대로) 싸워보는 것이 어떤가?”

 

1961년 7월 11일 조선과 중국이 체결한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에 따르면, 체약 일방이 전쟁상태에 처하는 경우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1965년 당시 중국은 조선의 무력통일의사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사정은 다음과 같다. 

 

1) 1965년 당시 중국은 소련과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이른바 중소분쟁이다. 중국은 미제국주의보다 ‘소련제국주의’를 더 위험한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과 전쟁을 하고 있는 윁남민주공화국에 소련과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했다. 1966년 9월 조선은 윁남민주공화국과 파병협정을 맺고,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 고사포부대, 공병부대를 윁남전선에 파병했으나, 중국은 윁남민주공화국이 소련과 관계를 끊지 않는 것을 비난하면서 웰남전선에 파병했던 중국인민해방군을 철수했다. 그런 태도를 가진 중국은 조선의 무력통일의사를 지지할 수 없었다.      

 

2) 중국은 자기들이 조선의 무력통일을 지원하는 경우 미국의 핵공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65년 당시 미국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각종 전술핵탄 950발을 주한미국군기지에 배치해놓고 있었다. 특히 전라북도 군산공군기지에 주둔한 미국 공군 제8전술비행단은 일본 오끼나와 가데나공군기지에 주둔한 제18전술비행단, 필리핀 클락공군기지에 주둔한 제3전술비행단과 함께 조선과 중국을 상대로 핵폭탄투하를 연습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중국은 1964년 10월 16일 자국의 첫 핵시험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은 실전에서 사용하기 힘든 원시적인 핵폭탄이었고, 미국 본토까지 핵탄두를 운반할 대륙간탄도미사일도 없었다. 이런 상황은 1965년 당시 중국이 미국의 핵공격을 막아낼 핵억제력을 갖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핵억제력을 갖지 못한 중국이 미국의 핵공격위험을 무릅쓰고 조선의 무력통일의사를 지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알제리독립전쟁(1962년)과 제3차 중동전쟁(1967년)으로 국제정세가 매우 복잡하게 돌아가던 1960년대가 지나고 마침내 윁남전쟁이 종식단계에 접어들었다. 윁남전쟁에서 패한 미국은 1973년에 윁남전선에서 미국군을 전부 철수했다. 1975년 4월 30일 당시 남윁남 주재 미국 대사 그레이엄 마틴(Graham Martin)은 새벽에 헬기를 타고 비상탈출했고, 당시 남윁남 대통령 두옹반민(Duong Van Minh)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통일세력은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여 윁남전쟁을 승리로 결속했다. 그보다 앞서 1973년 10월 조선인민군의 지원을 받은 에짚트군은 제4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하여 이스라엘군을 점령지에서 내쫓고 시나이반도를 되찾았다.   

 

이처럼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김일성 주석은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였다. 김일성 주석의 중국방문은 윁남전쟁이 통일세력의 승리로 결속되기 직전인 1975년 4월 19일부터 4월 26일까지 이루어졌다. 1975년 5월 6일 베이징 주재 도이췰란드민주공화국 대사가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 따르면, 1975년 4월 19일 김일성 주석은 중국이 마련한 국가환영연회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연설하였다고 한다.

 

(전략) “분단된 나라를 통일하기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은 세계 반제민족해방투쟁에서 중요한 고리로 됩니다. (중략) 만일 남조선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경우, 우리는 같은 민족성원으로서 팔짱을 끼고 구경하지 않을 것이며, 남조선 인민들을 힘있게 지원할 것입니다. 만일 적들이 무모하게 (침략)전쟁을 시작한다면, 우리는 (통일)전쟁으로 결정적인 대답을 줄 것이며 침략자들을 완전히 소멸할 것입니다. 전쟁에서 우리가 잃을 것은 군사분계선이요, 우리가 얻을 것은 조국통일입니다.” (하략) 

 

평양 주재 도이췰란드민주공화국 대사관이 1975년 5월 12일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 따르면, 당시 베이징에서 진행된 조중정상회담에서는 “윁남과 캄보쟈에서 전개되는 (전쟁종식)상황과 그것이 남조선의 정세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김일성 주석은 조중정상회담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에게 윁남전쟁의 승리로 국제정세가 조선의 무력통일을 실현하기에 유리하게 전변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조선의 무력통일의사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요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당시 마오쩌둥 주석은 그런 중대한 문제를 검토할 수 없을 만큼 노쇠했다. 그래서 마오쩌둥 주석은 조중정상회담에 배석한 덩샤오핑(鄧小平) 부주석과 그 문제를 논의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972년 2월 21일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이 사상 처음 중국을 방문한 것으로 하여 해빙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한 중미관계를 중시한 덩샤오핑 부주석은 조선의 평화통일은 지지하면서도 조선의 무력통일에 대한 지지는 유보했다.     

 

 

5. 조선인민군에 ‘폭풍 5호’가 발령되었던 1979년

 

웰남전쟁의 승리로 조선의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제정세가 조성된 때로부터 4년이 지난 1979년 10월 한반도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났다. 한반도는 북이 무력통일에 유리한 정세라고 판단할 만큼 돌변적인 정세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1979년 10월 26일 국가분렬을 고착화하려고 획책하던 독재자 박정희가 자기 심복의 손에 암살당했고,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을 우두머리로 하는 극우군부세력이 위헌적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찬탈했고, 1980년 5월 18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광주민중항쟁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진압명령을 받은 한국군 계엄부대의 유혈탄압으로 좌절되었다. 북의 시각에서 보면, 그러한 돌변적인 정세변화는 무력통일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정세를 조성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월간조선> 2021년 1월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당시 북은 무력통일의 결정적 시기가 도래했다고 판단하고 다음과 같은 긴급행동을 취했다고 한다.

 

1) 박정희 암살사건이 일어난 이튿날 조선인민군 전군에 ‘폭풍 5호’가 발령되었다. (북에서 ‘폭풍’은 비상소집명령이다.)  

 

2) 당시 동유럽 사회주의나라들을 순방하고 있었던 오극렬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 방문일정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했고,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가 긴급히 소집되었다.

 

3) 최전선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대련합부대들은 전투동원태세를 갖추었다. 이를테면, 곡산군과 세포군에서는 땅크, 장갑차, 자행포, 방사포 등 무장장비 1,000여 대를 동원한 실전훈련이 진행되었다. 

 

4)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조선인민군과 미국군이 총격전을 벌였다.

 

5) 조선인민군 정찰병들이 경기도 한강하구와 경상남도 포항만으로 각각 침투했다.  

 

6) 조선인민군 수송부대는 대규모 전쟁물자를 전방지역으로 수송했다.

 

<월간조선> 2021년 1월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1980년 당시 김일성 주석은 소련을 비공개로 방문하여 레오니트 브레즈네브(Leonid Brezhnev)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는데, 정상회담 중에 김일성 주석은 브레즈네브 서기장에게 “남반부 인민들의 영웅적 투쟁에 의해 금년 내에 반드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반부 인민들의 영웅적 투쟁”은 1980년 5월 18일에 일어난 광주민중항쟁을 뜻한다. 김일성 주석은 1980년 5월 7일 조시프 브로즈 찌또(Josip Broz Tito)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베오그라드를 방문하였을 때 장례식에 참석하러 그곳에 온 브레즈네브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정상회담을 하였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을 비공개로 방문하여 브레즈네브 서기장을 또 다시 만난 것이다. 이런 정황을 보면, 당시 김일성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브레즈네브 서기장에게 무력통일의사를 통보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북은 무력통일을 실현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무력통일을 실현할 주객관적 조건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로부터 어느덧 40년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시대는 바뀌었고, 세대는 교체되었으나,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북의 통일의지는 변하지 않았다. 

 

북의 통일의지는 무력통일과 평화통일을 순차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군사적 준비를 완료하는 길로 북을 이끌어갔다. 그리하여 북은 연방제통일방안과 무력통일작전계획을 각각 완성했다. 

 

2000년 10월 6일 안경호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의 발언을 들어보면, 북이 완성한 연방제통일방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이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설방안을 제시한 20주년에 즈음하여 진행된 평양시 보고대회에서 안경호 서기국장은 “우리의 낮은 단계의 련방제안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 개 정부가 정치권, 군사권, 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갖게 하고,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법으로 북남관계를 민족공동의 리익에 맞게 통일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평화통일방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른 한편, 북이 무력통일작전계획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2015년에 한국군 합참본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대외비 문건을 보도한 <신동아> 2020년 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2012년에 새로운 작전계획과 지휘체계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은 연방제통일방안을 실현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개선에 힘쓰는 한편, 무력통일작전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군사훈련에도 주력했다. 북은 15일 작전계획을 수정보완하여 7일 작전계획을 수립했고, 7일 작전계획을 수정보완하여 3일 작전계획을 최종적으로 완성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북은 무력통일에 개입하려는 미국의 침략적 군사행동을 핵억제력으로 저지하고, 고속기동전과 전략갱도전을 벌여 인명손실과 전쟁피해를 최소화하는 3일 작전계획을 완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2015년 청와대에 보고한 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완성한 ‘전격적 개념의 기습공격계획’은 “방사포 등 화력으로 단시간 내 서울과 전략지대를 타격하고, 기동전으로 3~5일 내 부산을 점령한 후, 핵-미사일로 위협해 미국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협상으로 전쟁을 종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군의 방어력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 허술하다. <신동아> 2014년 1월호에 실린 전면전 씨나리오에 따르면, 한국군에게는 조선인민군의 비대칭전력인 탄도미사일을 막을 미사일방어체계가 없고, 조선인민군의 대규모 포병화력에 맞설 포병전력과 비축탄약이 없고, 조선인민군의 반항공망을 뚫고 들어갈 첨단공군전력이 없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핵심전력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고, 전략거점들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평화통일준비와 무력통일준비를 완료한 북은 오늘 중국과 미국이 대만문제를 놓고 무력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된 급박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동중국해, 대만해협, 남중국해에서 고조되는 중미전쟁위기는 한반도에서 무력통일의 결정적 시기를 앞당기는 외적 요인으로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