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29

컴퓨터모의전쟁에서 연전연패한 미국

[한호석의 개벽예감](174)
자주시보 2015년 09월 28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비밀리에 진행된 컴퓨터모의전쟁
2. 러시아군이 미국-나토동맹군을 제압한 발틱전쟁
3. 3인승 쾌속정이 핵추진 항공모함을 격침시킨 ‘기적’
4. 60년 된 노후기종이 최첨단 스텔스전투기 격추한다
5. 72시간 대 720시간의 대격돌, 어느 쪽이 이길 것인가?

▲ <사진 1> 침략전쟁을 계획하고 연습하는 미국 국방부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모의전쟁연습도 진행한다. 미국 국방부가 컴퓨터모의전쟁대상으로 지목해온 두 적국은 조선과 이란이었는데, 최근 우크라이나사태를 계기로 러시아가 추가되었다. 위의 사진은 미국 수도 워싱턴 디씨 외곽에 있는 미국 국방부 청사를 촬영한 것이다. 이 거대한 청사를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오각별 형태로 보이므로 펜타곤이라 부른다.     © 자주시보


1. 비밀리에 진행된 컴퓨터모의전쟁

침략전쟁을 계획하고 연습하는 미국 국방부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모의전쟁연습도 진행한다. 냉전 이후 미국 국방부가 컴퓨터모의전쟁대상으로 지목해온 두 적국은 조선과 이란이다.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사태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미국이 대립하게 되니, 미국 국방부의 새로운 컴퓨터모의전쟁대상으로 러시아가 부각되었다. <사진 1>

최근에 미국이 새로운 적국으로 지목한 러시아와 달리, 조선은 미국의 아주 오랜 적국이다. 조선에서는 미국을 백년숙적이라 부른다. 조선과 미국이 그처럼 적대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6.25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한 채 60여 년이 넘게 주한미국군을 주둔시켜온 정전상태가 존치되기 때문이다.

적대관계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다. 조선과 미국의 적대관계처럼 전쟁재발위험이 상존하는 정전상태에서 유지되는 적대관계인가 아니면 미국과 러시아의 적대관계처럼 국가적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갈등상태에서 유지되는 적대관계인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더 위험한 적대관계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전 세계에서 전쟁위험이 가장 심각해진 적대관계가 조선과 미국 사이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지역(한반도를 뜻함-옮긴이)에서의 전쟁은 가상적인 것도 아니고 먼 훗날의 일도 아니며, 상시적이고 임박하였다(ever-present and imminent)는 강한 느낌을 안고 회의장을 떠났다.” 이것은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리언 패네타(Leon Panetta)가 퇴임하고 얼마 되지 않은 2014년 10월 초에 출판된 자신의 회고록에 써넣은 문장이다. 그의 말마따나, 조선과 미국의 전쟁이 임박하였으니, 미국 국방부가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을 반복적으로 연습해오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 언론이 미국 국방부의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에 대해 보도한 적이 이제껏 한 차례도 없을 뿐 아니라, 미국 국방부가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을 연습하였다는 간략한 소식조차도 들을 수 없다. 이것은 미국 국방부가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을 지속적으로 연습해오면서도, 그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미국 국방부가 진행하는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은 그 자체가 민감한 군사기밀인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2년 6월 초 미국 펜실배니아주 칼라일에 있는 미육군대학에서 진행된 모의전쟁연습현장의 일부를 촬영한 것이다. 그 모의전쟁은 2020년에 중동과 태평양에서 두 개의 전쟁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가정한 것이었다.     © 자주시보

미국 국방부의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연습이 그처럼 비밀리에 진행되면서 일종의 정보진공상태가 발생하자,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조미컴퓨터모의전쟁을 연습하였다는 소식이 가끔 미국 언론에 보도된다. 지금 인터넷에 떠도는 조미컴퓨터모의전쟁에 관한 잡다한 글들은 미국 군사전문가들의 모의전쟁연습을 서술한 것이다.
하지만 민간인 군사전문가들이 접하는 군사정보는 한정되었기 때문에, 조미컴퓨터모의전쟁연습에 관한 그들의 서술내용은 매우 부정확하다. 이 글에서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이 진행한 조미컴퓨터모의전쟁연습에 대해 거론하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 러시아군이 미국-나토동맹군을 제압한 발틱전쟁

얼만 전 미국 국방부가 대러시아 컴퓨터모의전쟁을 연습하였다. 2015년 9월 18일 미국의 외교전문지 <대외정책(Foreign Policy)>에 실린 ‘대러시아 발틱전투의 새로운 전쟁계획 준비하는 펜타곤’이라는 제목의 단독기사가 그 모의전쟁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대러시아 컴퓨터모의전쟁은 러시아에 인접한, 발틱해 연안의 나토동맹국들인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난 직후 러시아군이 그 두 나라를 ‘침공’한 긴급상황을 가정한 모의전쟁이었다.

그 컴퓨터모의전쟁에서 주목되는 것은, 전시에 러시아군이 전술핵탄공격과 싸이버공격 같은 비재래식 전술과 미사일공격과 장거리포공격 같은 재래식 전술을 결합시킨 “혼합전술(hybrid tactics)”을 전개하였다는 점이다.

그런 러시아군에 맞선 미국군은 나토의 깃발 아래 유럽연합(EU)의 동맹군들을 규합하여 출병하였다. 발틱전선에 출전한 병력수를 비교하면, 러시아군에 비해 미국-나토동맹군이 2배나 더 많았고, 미국 본토에서 긴급공수된 제82공수특전단까지 가세하게 되니, 미국-나토동맹군이 병력수에서 러시아군을 압도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8시간 동안 진행된 제1차 컴퓨터모의전쟁에서 미국-나토동맹군이 러시아군에게 패했다. 이튿날 제2차 컴퓨터모의전쟁이 다시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미국-나토동맹군이 러시아군에게 공격태세를 취한 유리한 조건에서 진행되었지만, 제1차 컴퓨터모의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나토동맹군이 또 다시 패했다.

대러시아 컴퓨터모의전쟁에 참가한 현장책임자의 평가에 따르면, 미국-나토동맹군의 패인은 미국 본토에서 출발한 대규모 증원군이 대서양을 횡단하여 발틱전선에 투입되기까지 짧게는 1개월이 걸렸고, 길게는 2개월이나 걸린 데 있었다는 것이고, 러시아군이 승리한 요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지대공미사일을 전선에 투입하고, 장거리포를 사용한 데 있었다고 한다.

▲ <사진 3> 2015년 9월 초 미국 국방부가 진행한 대러시아 컴퓨터모의전쟁연습에서 러시아군과 미국-나토동맹군이 격돌하였다. 그 싸움에서 러시아군은 미국-나토동맹군의 공습을 강력한 지대공요격미사일로 차단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다. 위의 사진은 러시아군이 자랑하는 세계 정상급 지대공요격미사일 S-400이 발사대기상태에 들어간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S-400 자행발사대 1대는 사거리가 400km에 이르는 지대공요격미사일 4발이 탑재된다. 조선이 아직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최첨단지대공요격미사일 '번개-6'호가 S-400과 동급이다. 러시아의 S-400은 2007년부터 실전배치되었고, 조선의 '번개-6'호는 2012년부터 실전배치되었다. 현재 러시아가 실전배치한 S-400 자행발사대는 152대에 이른다     © 자주시보

▲ <사진 4> 이 사진은 러시아군이 자랑하는 지대공요격미사일-방공포종합체인 판트씨르-S1을 촬영한 것이다. 여기에는 사거리 12km의 지대공요격미사일 12발과 사거리 4km의 30mm 쌍렬 대공속사포 2문이 탑재된다. 저고도로 침투하는 비행체를 근거리에서 요격할 수 있는 우수한 성능을 지녔다.     © 자주시보

러시아군이 발틱전선에 투입한 세계 최고 수준의 지대공미사일이라는 것은, ‘승리(Triumf)’라고 불리는 지대공요격미사일 S-400, 그리고 ‘판트씨르(Pantsir)-S1’이라고 불리는 지대공요격미사일-방공포종합체다. <사진 3> S-400 자행발사대 1대에는 사거리가 400km에 이르는 지대공요격미사일 4발이 탑재되고, 판트씨르-S1 자행발사대 1대에는 사거리 12km의 지대공요격미사일 12발과 사거리 4km의 30mm 쌍렬 대공속사포 2문이 탑재된다. <사진 4>

S-400이나 판트씨르-S1의 작전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 공인되었는데, 현재 러시아군이 실전배치한 S-400는 108대이고, 실전배치한 판트씨르-S1은 36대다.

러시아군이 세계 최고 수준의 지대공미사일을 발틱전선에 투입하여 승리한 것은, 미국-나토동맹군의 공습이 러시아군의 요격미사일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미국 국방부는 이번에 연습한 대러시아 컴퓨터모의전쟁에 해군은 참가시키지 않았고, 공군과 지상군만 참가시켰다. 그래서 미국-나토동맹군은 공군력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컴퓨터모의전쟁을 진행하였는데, 미국-나토동맹군의 공습이 러시아군의 강력한 요격미사일에 걸려 저지, 패퇴당하고 말았으니, 그 모의전쟁의 승패는 처음부터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강력한 요격미사일로 미국-나토동맹군의 공습을 차단한 러시아군은 발틱전선으로 몰려드는 미국-나토동맹군 지상군을 상대로 강력한 포격전을 전개하여 그들을 패퇴시켰다. 현재 러시아군의 포병부대는 견인포, 자행포, 방사포를 포함하여 총 5,468문으로 무장하였는데, 견인포는 5종 1,670문, 자행곡사포는 6종 2,300문, 자행박격포는 2종 75문, 방사포는 5종 1,423문이다. 이처럼 러시아군은 집중포격전으로 미국-나토동맹군에게 불소나기를 퍼부었으니 그 모의전쟁의 승패는 처음부터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러시아군이 실전배치한 300mm 6관 자행방사포를 촬영한 것이다. 이 자행방사포의 이름은 9A52-4 토네이도이며, 사거리는 90km다. 현재 러시아군은 이 자행방사포 76대를 실전배치하였다. 미국 국방부가 진행한 컴퓨터모의전쟁연습에서 발틱전선으로 몰려오는 미국-나토동맹군 지상군을 불소나기로 격멸한 러시아군의 강력한 포격전에 바로 이 자행방사포가 동원되어 혁혁한 공을 세웠다.     © 자주시보

2015년 9월 18일 <대외정책>에 실린 ‘대러시아 발틱전투의 새로운 전쟁계획 준비하는 펜타곤’이라는 제목의 단독기사에 구체적으로 서술되지 않아서 러시아군이 발틱전선에서 전술핵탄을 어떻게 사용하였으며, 싸이버전을 어떻게 전개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러시아군의 전술핵타격전과 싸이버공격전은 미국 본토에서 대규모 증원군이 발틱전선에 투입될 새도 없이 단숨에 미국-나토동맹군을 제압하고 모의전쟁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인 요인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분명하다.

컴퓨터모의전쟁에서 미국 본토의 대규모 증원군이 발틱전선에 투입될 새도 없이 러시아군이 전술핵탄, 장거리포, 요격미사일, 싸이버전력을 동원하여 미국-나토동맹군을 제압한 것처럼, 조선이 벼르는 ‘최후결전’의 날이 오면 조선인민군도 미국 본토에서 대규모 증원군이 한반도전선에 투입될 새도 없이 전술핵타격전, 집중포격전, 반항공요격전, 싸이버공격전을 펼치며 미국-한국-일본연합군을 제압하려고 벼르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조선에서 태양절 100돐을 맞은 2012년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군사행진에 참가한 1990년식 240mm 22관 자행방사포를 촬영한 것이다. 이 자행방사포의 사거리는 50km이며, 살상력이 엄청난 집속탄도 발사할 수 있다. 한국군에게는 방사포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렸던 1968년에 조선은 200mm 4관 자행방사포를 자체기술로 개발하였다.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소형 승용차 포드 코티나를 모방제작한 한국 최초의 승용차 현대 코티나를 출시하였던 바로 그 해에 조선에서는 200mm 4관 자행방사포를 자체기술로 생산하였던 것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가 펴낸 2005년도 연감에 따르면, 조선은 1988년부터 이란에 240mm 자행방사포를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방사포 분야에서 일찍부터 높은 기술력을 개발하였던 조선은 300mm 6관 자행방사포를 2012년부터 실전배치하였다. 이 자행방사포의 사거리는 자그마치 200km다. 러시아의 300mm 6관 자행방사포의 사거리는 90km밖에 되지 않는데, 조선의 동급 자행방사포 사거리는 그것보다 2배 이상 길다. 오늘 조선은 자행방사포 분야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최첨단 기술력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가 300mm 6관 자행방사포를 실전배치한 때가 2014년이었으므로, 조선은 러시아보다 2년 앞서 실전배치한 것이다. 이런 놀라운 사실들은 자행방사포 분야에서 조선이 러시아를 능가하는 세계 최강국임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내가 지난 10년 동안 수집해온, 언론에 공개된 갖가지 군사정보를 종합분석하면, 전술핵타격전, 집중포격전, 반항공타격전, 싸이버공격전에서 조선인민군이 러시아군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이전에 발표한 글들에서 몇 차례 서술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 재론할 필요가 없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 국방부가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을 연습할 적마다 미국 본토의 대규모 증원군이 한반도 전선에 투입될 새도 없이 조선인민군이 미국-한국-일본연합군을 제압하고 승리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 국방부가 자기의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에 관한 정보를 외부에 전혀 유출하지 않았던 것임을 알 수 있다. 


3. 3인승 쾌속정이 핵추진 항공모함을 격침시킨 ‘기적’

미국 국방부가 이번에 진행한 대러시아 컴퓨터모의전쟁연습에서 한 가지 빠진 것은 해전이다. 컴퓨터모의해전은 없었을까?

이와 관련하여 관심을 끄는 것은, 2002년 7월 24일부터 8월 15일까지 기간에 미국 국방부가 ‘천년도전(Millennium Challenge) 2002’라는 명칭을 내걸고 연습한 대이란 컴퓨터모의전쟁이다. 이 컴퓨터모의전쟁은 13,500명의 인원이 동원되었고, 2억5,000만 달러의 경비가 투입되었고, 23일 동안 계속된 사상 최대 규모의 모의전쟁이다.

미국 국방대학교에서 펴낸 군사전문지 <계간 합동군(Joint Force Quarterly)> 2002년 여름호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천년도전 2002’에서 이란혁명수비군 역할을 맡은 군대가 사용한 전술은 두 가지였다.

첫째, 이란혁명수비군의 전술은 전투명령을 하달하는 매우 특이한 연락방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란혁명수비군은 미국군의 전파교신감청을 따돌리기 이슬람사원 첨탑에서 예배시각에 맞춰 하루에 몇 차례씩 울려나오는 확성기방송을 공격개시명령 하달 신호로 이용하였고, 모터싸이클(오토바이)을 타고 전선에서 신속하게 기동하는 연락병을 통해 전투명령을 하달하였다. <사진 7>

▲ <사진 7> 윗쪽 사진은 미국 국방부가 진행한 컴퓨터모의전쟁연습 '천년도전 2002'에서 이란혁명수비군이 미국군의 전파교신감청을 따돌리기 위해 확성기방송으로 공격신호를 전달한 이슬람사원 첨탑을 촬영한 사진이다. 아랫쪽 사진은 이란혁명수비군 모터싸이클부대가 군사행진에 참가한 장면이다. '천년도전 2002'에서 이란혁명수비군은 미국군의 전파교신감청을 따돌리기 위해 모터싸이클을 타고 전선을 신속하게 기동하는 연락병을 통해 작전명령을 하달하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첨단전자통신감청장비만 믿고 있었던 미국군은 이란혁명수비군의 무징후선제기습공격을 받고 완패를 당했다.     © 자주시보

이런 정황을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최첨단전자장비를 이용하여 이란혁명수비군의 전파교신을 감청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던 미국군은 이란혁명수비군의 공격징후와 공격시점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적진의 동향을 파악하지 못한 미국군은 이란혁명수비군의 맹렬한 기습공격으로 치명적인 손실을 입고 결국 무릎을 꿇어야 했다. 

둘째, 이란수비혁명군의 전술은 비대칭무기를 사용하는 비대칭전술이었다. 이란혁명수비군이 비대칭전술을 전개한 까닭은, 대이란전선에 투입된 미국군의 군사력이 자기들에 비해 비대칭적으로 방대하였기 때문이다. 아군에 비해 비대칭적으로 방대한 군사력을 가진 적군을 제압하려면 비대칭무기를 사용하는 비대칭전술을 펼쳐야 한다는 전쟁의 ‘묘리’는 여기서도 확인된다.
모의전쟁상황이 아니라 현실상황을 살펴보면, 지금 페르시아만에 전진배치되어 이란을 위협하면서 중동지역을 군사적으로 지배하는 전선지휘부는 미중부사령부다. 그 사령부의 예하에 미해군 제5함대, 미중부공군사령부, 미공군 제379원정비행단이 있다. 그 가운데서 중추적으로 역할하는 것은 제5함대다.

미해군 제5함대는 항모강습단 1개, 원정타격단 1개, 잠수함대 1개, 해상군수지원대 1개, 항공정찰대 1개, 해상정찰대 1개, 기뢰부설 및 소해함대 1개, 위기대응원정대 1개로 편성되었다. 그들은 페르시아만에 떠있는 작은 섬나라 바레인의 북쪽에 있는 마나마항을 모항으로 하여 페르시아만, 아라비아해, 홍해를 누비며 작전한다. 
제5함대를 지휘하는 미중부사령부는 페르시아만 아라비아반도에 자리 잡은 소국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Al Udeid)공군기지에 있다. 미중부사령부 이외에도 미중부공군사령부, 미공군 제379원정비행단, 그리고 영국군 제83원정항공단이 그 공군기지에 집결해 있다.  
이처럼 방대한 규모의 해군력과 공군력에 맞서야 했던 이란혁명수비군은 쾌속정함대와 저고도침투기편대를 동원한 기습공격으로 비대칭전술을 펼쳤다. 

이란혁명수비군 쾌속정함대는 107m 12관 방사포 1문을 탑재하고 12.7mm 기관총 1정을 뱃머리에 장착한 시속 70km의 3인승 쾌속정을 주축으로 하고, 사거리 30km의 초기형 대함순항미사일 누르(Noor) 4발을 탑재한 시속 65km의 미사일고속정을 보조축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사진 8>

▲ <사진 8> 윗쪽 사진은 이란혁명수비군 쾌속정함대에 배속된 3인승 방사포쾌속정들이 고속으로 돌진하는 장면이다. 아랫쪽 사진은 그 쾌속정함대에 배속된 미사일고속정이 미사일을 발사하며 돌진하는 장면이다. 시속 65km로 돌진하는 이 미사일고속정에는 사거리 30km의 초기형 대함순항미사일 누르 4발이 탑재되었다. 이란혁명수비군 쾌속정함대는 3인승 무장쾌속정을 주축으로, 미사일고속정을 보조축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 자주시보

이렇게 편성된 쾌속정함대는 이슬람사원 첨탑에서 확성기방송을 통해 총돌격신호가 울리자 제각기 은신처들에서 쏟아져 나와 돌격대형을 이루고 고속으로 진격하면서 미해군 제5함대 항모강습단을 향해 맹렬한 해상기습공격을 퍼부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이란혁명수비군은 저고도침투기편대를 기습적으로 출격시켜 미중부사령부와 미중부공군사령부, 미공군 제379원정비행단이 집결해 있는 알 우데이드(Al Udeid)공군기지를 공습하였다.
이런 비대칭전술은 마치 벌떼 수 천 마리가 윙윙거리며 한꺼번에 달려드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군집전술(swarming tactics)이라 부른다. <사진 9>

▲ <사진 9> 위의 두 사진은 이란혁명수비군 쾌속정함대가 페르시아만에서 거대한 공격대형을 갖추고 고속으로 돌진하는 비대칭전술의 한 장면이다. 지금 이란혁명수비군은 1만여 척이나 되는 각종 무장쾌속정을 실전배치해놓고 미해군 제5함대와 맞설 최후결전에 대비하고 있다. 쾌속정함대의 비대칭전술은 마치 벌떼 수 천 마리가 윙윙거리며 한꺼번에 달려드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군집전술이라 부른다. 미국 국방부가 실시한 컴퓨터모의전쟁연습 '천년도전 2002'에서 미해군 제5함대는 바로 이 군집전술을 당하지 못해 대참패를 당했다.     © 자주시보

‘천년도전 2002’에서 공격징후와 공격시점을 노출하지 않은 채 기습적인 군집전술로 개전 초부터 승기를 잡은 이란혁명수비군은 미국군에게 집중타격을 연속 퍼부어 결국 완승을 거두었다. 이란혁명수비군을 얕잡아 보고 우쭐대던 미해군 제5함대는 핵추진 항공모함 1척과 대형 전함 15척이 순식간에 격침당했고, 그 전함들에 타고 있던 미해군 및 해병대 병력 2만여 명이 거의 전멸당했다. ‘세계 최강’이라던 항모강습단이 쾌속정함대를 당해내지 못하고 페르시아만에 수장된 것이다. <사진 10>

▲ <사진 10> '천년도전 2002'에서 이란혁명수비군을 얕잡아보면서 우쭐대던 미해군 제5함대는 핵추진 항공모함 1척과 대형 전함 15척이 순식간에 격침당했고, 그 전함들에 타고 있던 미해군 및 해병대 병력 2만여 명이 거의 전멸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세계 최강'이라던 항모강습단이 괘속정함대를 당해내지 못하고 페르시아만에 수장된 것이다. 위의 사진은 이란혁명수비군 괘속정함대가 고속으로 돌진하면서 제5함대 항공모함을 가상한 표적함에 방사포 집중사격을 퍼붓는 장면이다.     © 자주시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비교하면, 핵추진 항공모함, 이지스순양함, 이지스구축함, 초대형 상륙강습함 같은 거대전함을 거느린 제5함대가 쾌속정함대와는 대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모의전쟁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였다. 현재 이란혁명수비군 쾌속정함대에는 방사포쾌속정, 기뢰부설쾌속정 같은 각종 무장쾌속정 1만여 척이 배속되었다니, 페르시아만의 전략요충지인 호르무즈해협을 뒤덮을 만한 엄청난 수량이다.

요즈음 이란혁명수비군이 주력부대로 내세우는 잠수함대는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진행된 ‘천년도전 2002’에는 참가하지 않았고, 괘속정함대와 저고도침투기편대만 참가하였는데도 이란혁명수비군이 완승을 거두었다.

그런데 조선인민군에게는 쾌속정함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수중수상연합함대가 있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한 종합편성체계로 이루어진 그 함대에는 20여 척의 잠수함, 40련장 122mm 방사포를 장착한 연속타격고속정, 30mm 함포와 어뢰로 무장하고 시속 90km 이상 고속으로 돌진하는 파도관통형 스텔스고속정, 76mm 함포를 장착한 고속전투함, 사거리 260km의 금성-3호 대함미사일을 장착한 쌍둥선체 스텔스고속공격정, 대잠작전헬기 1대를 실은 호위함 등이 종합적으로 배속되었다.

그런데 <조선일보> 2011년 8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2011년 4월 조선에서 신형 무인어뢰정이 개발되었고, 그 해 12월 말까지 그 무인어뢰정을 80대나 생산할 것이라고 하였으니, 수중수상연합함대에 무인어뢰정도 배속된 것이다. 위와 같은 정보를 알면, 조선인민군 수중수상연합함대야말로 세계 최강의 무적함대라고 부를 만하다.

‘천년도전 2002’에서 이란혁명수비군 쾌속정함대에게 격침당했던 미해군 항모강습단은, 미국 국방부가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을 연습하는 경우 쾌속정함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위력한 조선인민군 수중수상연합함대의 고속기동, 연속타격, 집중타격을 받고 순식간에 전멸당할 것이 뻔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 국방부가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을 연습할 적마다 조선인민군 수중수상연합함대가 한반도전선에 투입된 미해군 제7함대 항모강습단과 미해병대 제3원정타격단을 단숨에 제압하고 승리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 국방부가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에 관한 정보를 외부에 전혀 유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4. 60년 된 노후기종이 최첨단 스텔스전투기 격추한다

미국 국방부의 컴퓨터모의전쟁은 아군역을 맡은 청군과 적군역을 맡은 홍군이 싸우는 모의전쟁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교전쌍방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입력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전투병력, 타격수단, 작전전술, 작전지휘, 작전정황 등에 관한 다종다양한 정보를 청군과 홍군에게 각각 입력해놓고 싸움을 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전상대에 대한 정보부족이나 정보오류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컴퓨터모의전쟁에 부정확한 정보가 입력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확한 정보가 입력되면 엉뚱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데, 그런 컴퓨터모의전쟁은 연습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미국의 첩보망, 정찰망, 감시망이 세계 곳곳에 거미줄처럼 드리워진 것처럼 상상하기 쉽지만, 그런 상상은 영화장면에나 어울리는 것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미국의 첩보, 정찰, 감시가 전혀 통하지 않아 미국정보협의체(IC)의 시야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특별한 나라가 있으니, 그 나라가 바로 조선이다. 1981년에 창설된 미국정보협의체는 16개 정보기관들이 국가정보국(DNI)을 중심으로 편성된 국가정보망의 결집체다. 미국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관, 주한미국대사를 각각 지낸 도널드 그렉(Donald Greg)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대조선 정보활동을 가리켜 “미국 정보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살아있는 실패사례”라고 지적했는데, 이런 지적은 미국의 첩보, 정찰, 감시가 조선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 국방부가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연습에 입력하는 정보가 부정확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미국 국방부는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에서 조선인민군의 전쟁준비태세와 사상정신력에 관한 정보는 아예 입력하지 않으며, 전시에 조선인민군과 조선인민이 일심동체로 함께 싸우는 군민협동작전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한다. 또한 미국 국방부는 조선인민군이 전시에 사용할 각종 무기들의 제원과 성능을 분석한 지표를 입력하지만, 모든 무기를 구식무기와 첨단무기로 갈라놓는 이분법적 단순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였다.

그런 이분법적 단순사고에서 벗어나면, 조선인민군이 실전배치한 각종 무기들의 진면모가 보인다. 그 무기들은 작전종심이 300km 안팎에 불과한 한반도의 협소한 작전환경에 맞게 새로 개발된 무기 또는 그런 작전환경에 맞춰 기존 성능을 변경, 보강한 무기들이다. 

▲ <사진 11>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5년 3월 8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1016군부대를 시찰하였다. 이 사진은 그 부대에 배속된 미그-19기를 촬영한 것이다. 조선은 내구연한을 넘겨 60년이나 된 이 추격기를 200대나 실전배치하였다. 미그-19의 상승비행속도는 초속 180m이고, 미공군 주력기 F-16의 상승비행속도는 초속 103m다. 상승비행속도가 승패를 결정하는 근접공중전에서 미그-19의 민첩성은 F-16을 능가하는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 자주시보

이와 관련하여, 조선인민군 추격기인 미그-19가 적절한 사례로 될 수 있다. 원래 1955년부터 소련군에 실전배치되었던 그 추격기는 베트남전쟁에서 맹활약을 하였던, 60년 된 구식추격기다. 내구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났으므로, 오래 전에 전쟁박물관에 ‘추억의 전투기’로 전시되었어야 할 미그-19가 조선에서는 왜 오늘도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일까? 조선이 60년 된 미그-19를 200대나 실전배치하고 있는 까닭은, 그 추격기의 민첩성이 매우 뛰어나 근접공중전에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협소한 작전범위 안에서 아군기와 적기가 뒤엉켜 혼전양상이 벌어지는 근접공중전에서는 전투비행사들이 육안으로 적기를 식별하고 비행감각으로 작전정황을 판단하면서 아군기를 재빨리 몰아 적기를 제압해야 하므로, 스텔스기능이나 첨단전자장비 같은 것은 모두 무용지물이고, 무엇보다 민첩성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손꼽힌다. <사진 11>

추격기의 민첩성을 측정하는 기준은 상승비행속도인데, 미그-19의 상승비행속도는 초속 180m다. 그러면 미국이 최첨단 스텔스전투기라고 자랑하는 F-22의 상승비행속도는 얼마일까? 그 전투기의 상승비행속도는 군사기밀이어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요즈음 인터넷에는 F-22의 상승비행속도가 초속 250m라고 밝힌 글들이 떠돌고 있는데, 그것은 제멋대로 추정한 것이다. 미공군 주력전투기인 F-16의 상승비행속도가 초속 103m라는 정보는 언론에 공개되었다. 민첩성을 비교하면, 구식추격기라는 미그-19가 미공군 주력기인 F-16을 능가한다. F-16의 상승비행속도가 초속 103m이므로, F-22의 상승비행속도는 초속 200m 정도로 추정된다. 

▲ <사진 12> 미국이 최첨단 스텔스전투기라고 자랑하는 F-22의 상승비행속도는 200m로 추정된다. 조선인민군의 미그-19와 미국군의 F-22가 혼전양상으로 전개되는 근접공중전에서 맞붙으면, 근접공중전 비행술을 고도로 연마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미그-19를 몰고 출전하여 F-22를 격추할 수 있다. 위의 사진은 F-22가 적외선추적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섬광탄을 발사하며 날아가는 장면인데, 공대공미사일이 아니라 속사포를 발사하며 달려드는 격렬한 근접공중전에서 섬광탄은 무용지물이다.     © 자주시보

피아가 혼전양상을 벌이는 근접공중전에서 적기의 꼬리를 잡기 위해 초속 180m로 솟구치는 미그-19와 초속 200m로 솟구치는 F-22가 맞붙으면 어느 쪽이 이길까? 평소에 근접공중전을 열심히 연습하여 민첩한 비행술을 습득한 쪽이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추격기를 모는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평소에 근접공중전에서 이기기 위한 비행술연습에 열중한다. 이것은 한반도 상공에서 조선인민군의 미그-19와 미국군의 F-22가 다른 기종들과 뒤엉켜 혼전양상의 근접공중전을 벌이는 경우 F-22가 미그-19에게 격추당할 위험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 12>

2014년 4월 15일 조선에서 ‘태양절’을 맞은 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가 성대하게 진행되었는데, 1969년 4월 15일 동해 상공에서 미공군 정찰기 EC-121을 격추한 사적비행기 미그-19 제339호기가 주석단 한 쪽에 전시되었다. 현장사진을 확대해보면, 그 추격기에는 공대공미사일 2발, 8련장 속사포 2문이 장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혼전양상으로 전개되는 근접공중전에 적합한 맞춤형 무장을 갖춘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조선인민군이 실전배치한 미그-19를 촬영한 보도사진들을 살펴보면, 그 기종이 두 부류로 구분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근접공중전에 출전하는 미그-21이 있을 뿐 아니라, 종심타격전에 출전하는 미그-21이 따로 있다. 이를테면, 조선인민군은 연료통을 4개에서 2개로 줄이는 대신 폭탄을 1톤 이상 많이 탑재하도록 개조한 미그-19를 종심타격전에 출전시키는 것이다.
미국군이 60년 된 노후기종이라고 얕보는 미그-19는 조선의 ‘주체전법’에 의해서 그처럼 근접공중전과 종심타격전에 출전하는 뛰어난 기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사진 13> 

▲ <사진 13> 이 사진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2014년 4월 15일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를 촬영한 것이다. 1969년 4월 15일 동해 상공에서 미공군 정찰기 EC-121을 격추한 사적비행기 미그-19 제339호기가 대회 주석단 한 쪽에 전시되었다. 그 추격기에는 공대공미사일 2발, 8련장 속사포 2문이 장착되었다. 혼전양상으로 전개되는 근접공중전에 적합한 맞춤형 무장을 갖춘 것이다. 미국군이 60년 된 노후기종이라고 얕보는 미그-19는 조선의 '주체전법'에 의해서 근접공중전과 종심타격전에 출전하는 뛰어난 기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 자주시보

관광객이나 낚시꾼이 타는 3인승 쾌속정으로 핵추진 항공모함을 격침하는 이란혁명수비군의 놀라운 전술에 대해 사람들이 알지 못한 것처럼, 60년 된 노후기종이 근접공중전에서 최첨단 스텔스전투기를 격추하고, 종심타격전에서 적진을 파괴하는 조선인민군의 놀라운 전술에 대해도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6. 72시간 대 720시간의 대격돌, 어느 쪽이 이길 것인가?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은 미국의 대조선 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15’를 작성, 보완하는 기본자료로 사용된다. 그런데 미국 국방부는 사실과 다른 정보를 입력해놓고 대조선 컴퓨터모의전쟁을 연습하고 있으니, ‘작계 5015’가 제대로 작성되었을 리 만무하다.
‘작계 5015’에 관련하여 언론매체들이 분석한 몇몇 기사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중대한 오류가 발견된다.  

첫째 오류는 조선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미국이 선제공격으로 전면전을 개시한다는 것이다. 조선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미국의 기대는 허망한 공상이다. 조선의 건국 이래 최대 시련기였던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조선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시련을 자력으로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 조선이 군력강화와 경제발전에 매진하는 오늘 그 무슨 ‘급변사태’를 운운하는 것은 헛소리로 들린다. ‘급변사태’를 거론하는 꼴이 오죽 한심했으면, 이명박 정부 시기 안보책임자마저 <신동아> 2013년 4월호 기사에서 “전쟁을 하겠다고 펄펄 뛰는 북한을 보고 북한 급변사태를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입니다. 전형적인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입니다”라고 비판하였겠는가.

둘째 오류는 미국이 전시에 전술핵타격으로 조선의 전쟁능력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전시에 조선에 대한 전술핵타격을 감행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조선은 미국 본토의 심장부를 초토화할 열핵융합탄을 보유하였고, 그것을 발사할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전략잠수함까지 실전배치해놓았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전술핵탄으로 조선을 공격하면, 조선은 열핵융합탄으로 미국 본토의 심장부를 날려버릴 것이므로,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두려워하는 미국은 전술핵탄을 감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열핵융합탄은 가장 강력한 억지력이다.

셋째 오류는 전시에 한국군이 방어전을 벌여 조선인민군의 남진공격을 저지하면, 미국이 한반도 전선에 대규모 증원군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증원군이 미국 본토를 출발하기도 전에 전쟁은 끝날 것이다. 미국이 대규모 증원군을 한반도 전선에 투입하려면, 위에서 언급한 미국 국방부의 대러시아 컴퓨터모의전쟁에서 드러난 것처럼, 짧게 잡아도 30일이 걸린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의 대조선 전쟁계획인 ‘작계 5015’가 30일전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넷째 오류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교전쌍방이 대량살상을 당하는 참혹한 장기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조선에서 말하는 ‘최후결전’은 치열한 격전을 전방지역에 국한시켜 전쟁피해를 최소화하는 72시간전쟁으로 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는 참혹한 전쟁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은 조선의 72시간전쟁계획에 대해 알지 못하는 무지의 발로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갈라놓고 그 절반을 지배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장장 70년 동안 겹쌓인 모순이 격화될대로 격화된 오늘 조미협상은 완전히 파탄되었고, 조미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조선은 72시간전쟁계획(3일전쟁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하고, 미국은 30일전쟁계획(‘작계 5015’)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조선인민군은 자기의 전쟁계획에 따라 72시간 안에 최후결전을 결속하려는 공격준비를 이미 끝냈고, 미국군은 ‘작계 5015’에 따라 조선과의 전쟁을 720시간만에 결속하려는 준비를 갖추었다. <사진 14>

▲ <사진 14> 지금 조선은 개전시각으로부터 72시간 안에 최후결전을 결속하려는 모든 준비를 끝냈다. 72시간전쟁계획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미국군보다 10배나 더 빠른 속도로 진격하여 적진을 격파할 것으로 예견된다. 위의 사진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2015년 1월 26일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서부전선 기계화타격집단 장갑보병구분대들의 겨울철 도하공격연습을 촬영한 것이다. 한 쪽에서는 전차와 장갑차를 도하시킬 뜬다리(부교)를 가설하였고, 다른 한 쪽에서는 꽁꽁 얼어붙은 얼음장을 폭파하였다. 폭파 순간 거대한 물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얼음장이 폭파된 곳에서는 수륙양용도하차량과 수륙양용장갑차들이 신속하게 강을 건너 진격하였다. 진격속도에서 미국군보다 10배나 더 빠른 조선인민군의 고속기동전은 그렇게 전개되었다.     © 자주시보

그런 전쟁계획에 따라 전면전이 일어나면, 그것은 조선과 미국이 각자 국운을 걸고 맞붙는 세계전쟁사의 전무후무한 대격돌이 될 것이다. 전쟁시간을 대비하면, 72시간 대 720시간의 대격돌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최후결전의 날 조선인민군이 미국군보다 10배나 더 빠른 초고속으로 진격하여 적진을 신속하게 격파할 것임을 예고한다.

타격수단과 작전방식이 고도로 발전된 현대전은 시간이 전쟁승패를 결정하는 속도전쟁이다. 고속진격과 신속격파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될 것이므로, 72시간 대 720시간의 대격돌에서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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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2

증폭과 열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최상위 핵기술

[한호석의 개벽예감](173)
자주시보 2015년 09월 21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녕변핵시설의 용도가 조절변경되었다  
2. 수송열차 드나드는 동위원소생산시설
3. 초정밀측정장비가 검출한 방사성핵종
4. 3톤급 소당량 핵실험은 핵융합실험이었다
5. 핵기술의 도약, 증폭핵분열탄에서 열핵융합탄으로
6. 증폭과 열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선의 놀라운 핵기술

▲ <사진 1> 이 사진은 평안북도 녕변의 핵시설단지 안에 있는 5메가와트급 흑연감소로 건물을 촬영한 것이다. 뾰족한 고깔모자처럼 생긴 키높은 증기배출구가 보이고, '자력갱생'이라고 쓴 커다란 구호가 옥상에 세워진 것이 보인다. 6.25전쟁 때부터 미국의 끊임없는 핵위협을 받아온,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핵위협피해국인 조선은 미국의 핵위협에 맞설 핵억제력을 보유하기 위해 자력갱생의 투쟁을 벌인 끝에 마침내 강위력한 핵억제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 지난 냉전시기 중국과 소련은 자기들이 조선의 동맹국이라고 하면서도, 조선의 핵억제력 보유를 반대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의 핵개발은 미국의 끊임없는 핵위협과 봉쇄와 감시, 그리고 중국과 소련의 반대를 뚫고 오직 자기의 힘만으로 최첨단을 돌파하여야 했던 자력갱생의 간고한 투쟁이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의 핵억제력은 자력갱생의 핵억제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자주시보


1. 녕변핵시설의 용도가 조절변경되었다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기사가 2015년 9월 15일 <조선중앙통신>에 실렸다. 그의 답변을 전한 언론보도는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무분별한 적대시정책에 계속 매여달리면서 못되게 나온다면 언제든지 핵뢰성으로 대답할 만단의 준비가 되여 있다”고 경고하는 문장으로 끝난다. 바로 이 문장에 시선을 집중시킨 한국과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이 제4차 핵실험을 예고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하지만 핵뢰성이라는 말은 핵실험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핵타격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함경북도 길주군에 높이 솟은 만탑산의 화강암층을 1km 정도 파고 들어가 굴설된 갱도식 지하핵실험장에는 10개의 강철문으로 겹겹이 밀폐된 지하갱도가 있는데, 그 갱도의 맨 끝에 자리 잡은 기폭실에서 핵폭발이 일어나도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지상에서는 핵뢰성이 들리지 않는다. 조선에서 말하는 ‘최후결전’에서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발사한 핵탄이 타격목표에 명중하여 폭발할 때 천지를 진동하는 핵뢰성이 울리게 될 것이다.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의 답변을 전한 언론보도에서 정작 주목해야 하는 문장은 따로 있다. 그는 “우리 원자력부문의 과학자, 기술자들과 로동계급은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각종 핵무기들의 질량적 수준을 끊임없이 높여 핵억제력의 신뢰성을 백방으로 담보하기 위한 연구와 생산에서 련일 혁신을 창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지금 조선에서 핵억제력을 질적으로 강화하는 기술연구와 핵억제력을 양적으로 확대하는 생산활동이 적극적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진 1>

조선에서 핵억제력을 질적으로 강화하는 기술연구와 핵억제력을 양적으로 확대하는 생산활동이 적극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파악하려면,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의 답변을 전한 언론보도에 들어있는 또 다른 문장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지난 2013년 4월 당시 우리의 원자력총국 대변인이 밝힌 바와 같이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로선에 따라 우라니움농축공장을 비롯한 녕변의 모든 핵시설들과 5MW흑연감속로의 용도가 조절변경되였으며 재정비되여 정상가동을 시작하였다”고 말했다.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조선원자력총국 대변인의 2013년 4월 발언을 다시 찾아볼 필요가 있는데, 2013년 4월 2일 당시 조선원자력총국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였다.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전략적인 로선에 따라 우리 원자력부문 앞에는 (줄임)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확대강화하여야 할 중대한 과업이 나서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자력총국은 당면하여 우선 현존 핵시설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조절변경해나가기로 하였다.”

위에 인용한, 조선원자력총국 대변인의 2013년 4월 2일 발언과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의 2015년 9월 15일 발언에서 공히 지적된 것은, 조선이 자기의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확대강화하기 위해 모든 녕변핵시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전면적으로 조절변경하였다는 사실이다.

▲ <사진 2> 이 사진은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며칠 전 자기의 웹싸이트에 올려놓은 논문에 들어있는 것인데, 녕변핵시설단지 안에 새로 건설되어 완공을 앞둔 대규모 동위원소생산시설을 2015년 8월 초에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이다. 조선은 핵융합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이후 모든 녕변핵시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조절변경하여 핵융합에 필요한 동위원소를 생산하게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조선의 핵억제력이 핵융합기술로 더욱 강화되어 최정점에 도달하였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2. 수송열차 드나드는 동위원소생산시설

모든 녕변핵시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조절변경하였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미국의 유명한 안보문제연구기관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nstitute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Security)가 2015년 9월 15일에 발표한 글 ‘북조선의 녕변핵시설단지에 관한 최신 정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글에서 특별히 언급된 것은 녕변핵시설단지 안에 지난 40여 년 동안 있었는데도 그 존재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아 이름도 생소하게 들리는 어느 특정시설인데, 그것이 바로 동위원소생산연구소다. 조선은 녕변핵시설단지 경내의 북쪽에 위치한 이 연구소에서 방사능치료에 사용될 약 300mg의 의료용 동위원소를 1975년에 생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1992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게 밝힌 바 있다.

위에서 언급한 과학국제안보연구소의 글에 따르면, 원래 동위원소생산연구소가 자리를 잡았던 터에는 1970년대에 건설된 작은 건물 두 채가 있었는데, 그 작은 건물들은 헐렸고, 2009년부터 새로운 건설공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착공 이후 6년이 지난 2015년 8월 현재 큰 건물 한 채, 서로 연결된 중간 크기의 건물 두 채, 그리고 작은 건물 한 채가 새로 들어섰는데, 시공이 거의 끝나가는 이 시설들은 조선에서 당창건 70주년을 맞는 오는 10월 10일에 즈음하여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2>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아무리 방대한 공사라도 “평양속도”로 밀고 나가 2~3년 안에 “불이 번쩍 나게 해제끼는” 조선에서 그리 크지 않은 건축공사를 6년 동안 계속해왔다는 사실이다. 이런 유별난 사정은, 그 건축공사가 고난도 시공기술을 요구하는 공사였을 뿐 아니라, 그 신축건물에 들여놓을 각종 설비들도 간단히 만들지 못하는 특수설비들이었음을 말해준다. 

위에서 언급한 과학국제안보연구소의 글에 따르면, 이 새 건물들의 특징은 건물내부가 여러 개의 격폐실(hot cell)들로 나누어졌다는 점, 지붕에 대형 환기시설과 가스배출구가 설치되었다는 점, 그리고 수송열차가 건물 안으로 직접 드나들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점 등인데, 이런 설계적 특징을 주목한 미국 전문가들은 그 새 건물들을 동위원소생산시설이라고 지목했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던 기존 동위원소생산연구소 건물을 들어내고 생산설비가 현대화되고 생산능력이 확장된 새로운 동위원소생산시설을 신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원자력총국 대변인의 2013년 4월 2일 발언과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의 2015년 9월 15일 발언이 공히 지적한 것처럼, 조선이 모든 녕변핵시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조절변경한 목적이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확대강화하기 위한 것이므로, 새로 건설된 동위원소생산시설에서는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확대강화하기 위한 동위원소를 생산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방사능치료에 필요한 의료용 동위원소를 소량 생산하던 기존 연구소가 없어지고, 핵억제력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용도로 신축된 대규모 동위원소생산시설이 완공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핵억제력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동위원소라는 것은 핵분열(nuclear fission)과는 차원이 다른 핵융합(nuclear fusion)에 필요한 동위원소를 말한다. 원래 핵융합에는 삼중수소(Tritium), 중수소화 리튬(Lithium Deuteride), 리튬-6, 우라늄-238, 플루토늄-235 같은 동위원소들이 필요하므로, 녕변핵시설단지에 신축되어 완공을 눈앞에 둔 동위원소생산시설에서는 위에 열거한 핵융합용 동위원소들이 생산될 것이다. “우리식의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고 밝힌 조선이 핵융합에 필요한 동위원소를 생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3. 초정밀측정장비가 검출한 방사성핵종 

조선이 “우리식의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한 때는 제3차 핵실험을 진행하기 3년 전인 2010년 5월이다. 2010년 5월 12일 <조선중앙통신>은 “우리의 과학자들은 최첨단을 돌파할 데 대한 당의 사상과 의도를 결사관철할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핵융합기술을 우리식으로 개발하기 위한 줄기찬 투쟁을 벌려왔다. 부족하고 어려운 것이 많은 속에서도 우리의 과학자들은 사소한 주저와 동요도 없이 제기되는 수많은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100% 자체의 힘으로 해결함으로써 마침내 핵융합반응에 성공하였다. 이 과정에 우리식의 독특한 열핵반응장치가 설계제작되고 핵융합반응과 관련한 기초연구가 끝났으며 열핵기술을 우리 힘으로 완성해나갈 수 있는 강력한 과학기술력량이 마련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조선은 “우리식의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고 밝혔지만, 조선에서 진행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의심하고 깎아내리는 습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그 보도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이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는 사실은 방사성핵종검출에 의해 입증되었다.

2010년 10월 19일 <연합뉴스>에 국정감사발언을 인용한 흥미로운 보도기사가 실렸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이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고 발표한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2010년 5월 15일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있는 최북단 방사능측정소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거진측정소의 방사성핵종검출장비에서 제논-135가 검출되었다. 이것은 그 핵종검출장비가 2007년에 그곳에 설치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가 나타난 것이었는데, 평소에 검출되는 제논 농도는 0~0.55였으나 2010년 5월 15일 오전 2시 7분에 갑자기 4.085로 솟구쳤다고 한다. 제논은 자연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인공적 핵분열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기체상태의 방사능물질이다. 

<노컷뉴스> 2011년 3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거진측정소에 설치된 방사성핵종검출장비는 한국의 다른 70여 개 측정소들에 설치된 유사한 핵종검출장비들에 비해 검출감도가 70만 배 정도 더 높은 초정밀검출장비이므로 다른 측정소들에서 검출하지 못하는 극미량의 제논도 검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강릉대학교 안에 있는 방사능측정소를 촬영한 것이다. 한국 각지에 있는 방사능측정소들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관리하고 있다. 이 측정소들은 대기 중에 포함된 방사능핵종을 검출하는 대기측정장비를 가동한다. 조선의 핵실험과 핵융합실험에서 방출된 방사능핵종도 그 측정소들에서 검출되었다.     © 자주시보

2012년 2월 3일 과학전문지 <네이처(Nature)>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스웨덴 국방연구원 소속 대기과학자 라스 에릭 데예르(Lars-Erik De Geer)는 2010년 4월과 5월 한반도 상공에서 포집된 대기표본들에서 평소보다 매우 높은 농도의 제논과 바륨이 검출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런 현상은 당시 조선이 핵실험을 진행하였음을 말해준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선의 핵억제력 발전추세를 알지 못하는 그는 핵실험이라는 모호한 말을 썼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핵융합실험이었다.

<조선일보> 2011년 3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거진측정소에서는 2010년 5월 15일에 이어 2011년 3월 27일에도 제논이 검출되었다. 당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일본 후꾸시마 원전 사고로 방출된 제논이 바람을 타고 러시아 캄차카반도로 북상한 뒤 북극을 한 바퀴 돌아 저 멀리 시베리아를 거쳐 한반도 상공으로 남하했다는 말이 되지 않는 억측을 늘어놓았는데, 기상청은 그 날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었는지 등을 역추적하는 식으로 검증한 결과, 후꾸시마 원전 사고로 유출된 제논이 바람을 타고 북극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한반도로 내려왔다고 볼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없다고 하면서, 제논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으로 논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조선의 핵억지력에 관한 심층정보를 알지 못하는 기상청은 그 제논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거진측정소에서 2011년 3월 27일에 검출된 제논도 2010년 5월 15일에 검출된 제논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핵융합실험에 의해 발생한 것이 확실하다.

▲ <사진 4> 2009년 후반 조선에서 상영된 다부작 예술영화 '내가 본 나라' 제4부에는 만탑산 지하핵실험장 입구를 형상한 위와 같은 장면이 나온다. 만탑산 허리의 견고한 화강암층을 뚫고 굴설된 갱도식 핵실험장 입구에는 전기장치로 여닫는 거대한 강철문이 설치되었다. 2010년과 2011년에 있었던 조선의 핵융합실험들도 바로 이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에서 진행되었다.     © 자주시보


4. 3톤급 소당량 핵실험은 핵융합실험이었다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은 2014년 11월 20일 자기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논문에서 2010년 5월 12일 오전 9시 8분께 북위 41.2863도, 동경 129.0790도의 좌표에서 소당량(소규모) 핵실험이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 핵실험장의 좌표는 북위 41.28도, 동경 129.13도이므로, 2010년 5월 12일 오전 9시 8분께 조선의 만탑산 핵실험장에서 소규모 핵실험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사진 4>

그런데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의 논문에서 밝혀진 더 중요한 사실은, 2010년 5월 12일 만탑산 핵실험장에서 진행된 소당량 핵실험이 “핵융합과 관련된” 실험이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조선이 진행한 소당량 핵실험이 핵융합실험이었음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은 2010년 4월과 5월, 그리고 2011년 3월에 만탑산 핵실험장에서 핵융합실험을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핵융합실험에서도 핵폭발이 일어나므로 인공지진파도 발생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 각지의 지진측정소들은 조선이 세 차례 핵융합실험을 진행할 때마다 인공지진파를 전혀 측정하지 못했다. 이런 불일치 현상에 주목한 국제핵과학계의 일부 전문가들은 당시 조선이 핵실험을 진행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그런 의혹은 정보부족으로 생긴 것이었다. 위에 인용한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조선이 2010년 5월 12일에 진행한 소당량 핵실험, 더 정확하게 말해서 핵융합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약 2.9톤이고 오차율은 0.8톤이라는 것이다. 

2006년 10월 9일 조선이 진행한 제1차 핵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약 1킬로톤이었는데, 2010년 5월 12일 소당량 핵실험(핵융합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그것의 333분의 1 수준인 약 3톤밖에 되지 않았다. 이처럼 강도가 매우 낮은 폭발에서 미약한 인공지진파가 발생되었으므로, 한국 각지의 지진측정소들은 그 파장을 측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5. 핵기술의 도약, 증폭핵분열탄에서 열핵융합탄으로

2013년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을 진행한 때로부터 약 석 달이 지난 5월 21일 <로동신문>에 중요한 보도기사가 실렸다. 그 보도기사는 “오늘 우리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핵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제3차 핵실험은 핵탄의 다종화를 물리적으로 입증한 실험이었다고 밝혔다. 그 문장을 옮기면, “이전과 달리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하여 높은 수준에서 안전하고 완벽하게 진행된 제3차 지하핵시험은 작용특성, 폭발위력을 비롯한 모든 측정결과들이 설계값과 완전히 일치됨으로써 다종화된 우리 핵억제력의 우수한 성능을 물리적으로 과시하고 적들을 전률케 하였다”는 것이다. 이 인용문은 주의 깊게 읽어야 그것이 암시하는 뜻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서술된 문장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우선 시선을 끄는 것은 “이전과 달리”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제3차 핵실험이 제1차 핵실험이나 제2차 핵실험과는 다른 유형의 핵실험이었음을 뜻한다. 제3차 핵실험이 이전 핵실험들과 다른 유형의 핵실험이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조선은 제1차 핵실험 직후 언론보도를 통해 “주체95(2006) 10월 9일 지하핵시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과학적 타산과 면밀한 계산에 의하여 진행된 이번 핵시험은 방사능 류출과 같은 위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제1차 핵실험이 핵분열탄(원자탄)실험이었음을 밝힌 것이다. 제1차 핵실험의 폭발력은 약 1킬로톤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제2차 핵실험을 진행한 조선은 언론보도를 통해 “주체98(2009) 5월 25일 또 한 차례의 지하핵시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이번 핵시험은 폭발력과 조종기술에 있어서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안전하게 진행되였으며 시험결과 핵무기의 위력을 더욱 높이고 핵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인용문에서 “폭발력과 조종기술에 있어서 새로운 높은 단계”에 도달하였다는 표현은 제2차 핵실험이 제1차 핵실험에 이어 핵분열탄실험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기폭과정을 조종하여 폭발력을 증폭시킨 새로운 유형의 핵실험을 진행하였음을 뜻한다. 기폭과정을 조종하여 핵분열탄보다 폭발력을 몇 배 더 증폭시킨 핵분열탄이 바로 증폭핵분열탄(boosted nuclear fission bomb)이다.

조선의 제2차 핵실험은 증폭핵분열탄실험이었다. 1953년 8월 23일에 있었던 소련의 증폭핵분열탄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28킬로톤이었는데, 조선의 제2차 핵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약 5킬로톤이었으므로, 조선은 소련의 증폭핵분열탄보다 폭발력을 6분의 1 정도로 줄인 증폭핵분열탄을 실험한 것이다. <사진 5>

▲ <사진 5> 조선예술영화 '내가 본 나라' 제4부는 2009년 5월 25일 제2차 핵실험을 정면에서 다룬 화제작이다. 조선에서 이름을 날리는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하고, 컴퓨터영상합성기술로 화면을 구성하여 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위의 사진은 제2차 핵실험 진행과정 중에 만탑산 핵실험장 지하갱도의 9번째 강철문이 차단되는 순간, 통제실의 컴퓨터에 나타난 화면을 보여준 장면이다. 구불구불한 형태로 굴설된 갱도는 기폭실에 가까와지면서 달팽이모양으로 감돌며 구부러졌다. 핵폭발이 갱도 밖으로 터져나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지하갱도 곳곳에 설치된 강철문은 모두 10개다. 조선이 이런 갱도식 핵실험장에서 진행한 제2차 핵실험은 제1차 핵분열탄실험보다 한 급 높은 증폭핵분열탄실험이었다.     © 자주시보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의 제3차 핵실험이 이전의 핵실험들과 다른 유형의 핵실험이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제3차 핵실험이 핵탄의 다종화를 물리적으로 입증한 실험이었다고 밝힌 <로동신문> 2013년 5월 21일 보도기사에 나오는 두 개의 문구에 시선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전과 달리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하였다는 문구와 “다종화된 우리 핵억제력의 우수한 성능을 물리적으로 과시”하였다는 문구다.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했다는 표현은, 크기를 소형화하고, 무게를 경량화하였으면서도 핵폭발강도를 높인 증폭핵분열탄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조선이 제2차 핵실험에서 사용한 증폭핵분열탄은 핵분열장치를 소형화하고, 그 장치에 소량의 무기급 핵물질만 넣어 무게를 경량화하면서도 폭발력을 핵분열탄보다 5~6배 증폭시킨 것이었다. 

크기가 작고, 무게가 가벼우며, 폭발력을 증폭시킨 증폭핵분열탄이 있어야 탄도미사일에 장착하는 고성능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미국,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5대 핵강국들이 보유한 핵탄두는 전량 증폭핵분열탄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제3차 핵실험은 제2차 핵실험과 마찬가지로 증폭핵분열탄실험이었던 것일까? 만일 조선이 제2차 핵실험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제3차 핵실험에서도 증폭핵분열탄을 실험하였다면, “이전과 달리”라는 말을 쓸 수 없다.

원래 증폭핵분열탄은 핵분열을 증폭시킨 강화원자탄이므로, 핵분열탄의 일종이지 다른 종류의 핵무기는 아니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두 번째 문구는 조선의 제3차 핵실험에서 “다종화된 핵억제력의 우수한 성능이 물리적으로 과시”되었다고 표현하였다. 다시 말해서, 제3차 핵실험은 증폭핵분열탄을 사용하면서도, 증폭핵분열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핵무기를 폭발시킨 실험이었던 것이다.

증폭핵분열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핵무기는 무엇일까? 증폭핵분열탄을 기폭제로 사용하는 새로운 핵무기는 열핵융합탄(thermonuclear fusion bomb)이다. 수소탄이라고 부르는 열핵융합탄은, 원자탄이라고 부르는 핵분열탄과는 종류가 다른 핵무기다. 핵분열탄은 고폭장약을 기폭제로 사용하여 연쇄핵분열을 일으키는 고전적 무기이고, 열핵융합탄은 증폭핵분열탄을 기폭제로 사용하여 다단계 핵융합을 일으키는 고차원 무기다. 열핵융합탄보다 폭발력이 더 강한 무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 6>

▲ <사진 6> 1954년 3월 1일 미국은 남태평양 마샬제도의 비키니환초에서 열핵융합탄실험을 진행하였다. 위의 사진은 열핵융합탄이 폭발하는 순간 거대한 핵화염이 구름 위로 솟구치는 장면이다. 그 날 미국이 실험한 열핵융합탄의 폭발력은 히로시마 원폭보다 약 100만배나 더 강한 15메가톤이었지만, 그 열핵융합탄은 실전에서 쓸 수 없는 실험용 열핵융합탄이었다.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열핵융합탄을 세계 최초로 만든 나라는 소련이다     © 자주시보

핵융합은 핵분열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하면서도 방사능은 방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선이 제3차 핵실험에서 열핵융합탄을 실험하였다면, 당연히 방사능이 방출되지 않았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실제로 조선이 진행한 제3차 핵실험에서 제논이나 크립톤 같은 방사성핵종이 방출되지 않았다. 조선이 제3차 핵실험을 진행하였을 때, 한국은 12억 원을 주고 스웨덴에서 수입한 고성능 제논포집기(SAUNA)를 동원하였고, 미국은 방사능측정정찰기(WC-135)를 동원하여 여러 날 동안 샅샅이 훑었으나, 방사성핵종은 검출되지 않았다. 조선의 만탑산 핵실험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중국의 동북3성 변경지역에는 26개의 감측소가 있는데, 조선의 제3차 핵실험 직후 그 감측소들에서도 방사성핵종이 검출되지 않았다. 방사성핵종을 방출하지 않는 핵실험은 열핵융합탄실험밖에 없다.


6. 증폭과 열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선의 놀라운 핵기술

제3차 핵실험에서 발생된 폭발력은 조선이 이전에 진행한 두 차례의 핵실험들에서 각각 발생된 폭발력에 비해 상당히 강해졌지만, 이전에 미국과 소련이 진행했던 열핵융합탄실험들에서 발생한 폭발력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였다.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핵선진국의 전문기관들이 조선의 제3차 핵실험에서 발생된 폭발력을 측정한 결과를 보면, 최소 6킬로톤에서 최대 16킬로톤에 이르는 상당한 편차를 드러냈다. 측정조건과 측정장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런 편차를 드러낸 것이다. 핵실험에서 발생하는 폭발력의 강도를 정확히 측정하려면 측정위치를 핵실험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두어야 유리한데, 그런 점에서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의 측정결과가 가장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제3차 핵실험 직후 그에 대한 연구를 가장 먼저 시작한 중국과학기술대는 폭발진앙지를 정확하게 탐지한 뒤에 위성영상자료들을 분석하여 폭발심도까지 정밀하게 계산함으로써 미국지질조사국이나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의 측정결과들보다 오차범위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이 그렇게 측정한 조선의 제3차 핵실험의 폭발력은 12.2킬로톤으로 나왔다. 이것은 상용폭약(TNT) 12,200톤에 해당하는 엄청난 폭발력이 발생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7>

▲ <사진 7> 1953년 8월 12일 소련은 첫 열핵융합탄실험을 진행하였다. 기폭순간에 엄청난 핵뢰성이 진동하면서 핵화염이 하늘을 뒤덮고, 핵폭풍이 땅을 휩쓸고, 핵진동이 지축을 뒤흔들었으며, 400킬로톤급 폭발력을 발생시켰다. 증폭핵분열탄을 기폭제로 사용하여 다단계 핵융합을 일으키는 열핵융합탄보다 폭발력이 더 강한 무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열핵융합탄은 그야말로 최상위 종결자인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2013년 2월 12일 조선에서 진행된 핵실험이 폭발력을 12.2킬로톤으로 크게 줄인 열화열핵융합탄실험이었다. 조선은 약 25년 동안 핵개발분야에서 자력갱생의 간고한 투쟁을 밀고나간 끝에 마침내 열핵융합탄실험에 성공하여 세계 최강의 핵강국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조선은 미국이 상상하지 못하는 최첨단 핵기술과 초강력한 핵억제력을 보유한 것이다. 조선이 말하는 '최후결전'은 그런 초강력 핵억제력으로 미국의 핵공격을 원천봉쇄한 상태에서 단 3일만에 끝나는 초단기속결전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조선에게 열핵융합탄이 없다면 3일전쟁은 불가능할 것이다.     © 자주시보

1953년 8월 12일에 있었던 소련의 첫 열핵융합탄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400킬로톤이었는데, 조선이 제3차 핵실험에서 열핵융합탄실험을 하였다면, 그 폭발력이 어째서 12.2킬로톤밖에 나오지 않은 것일까? 열핵융합탄이 전략핵분열탄보다 1,000배 이상 초강력한 폭발력을 발생시킨다는 것만 아는 사람들은 열핵융합탄의 폭발력을 필요에 따라 전술핵분열탄 수준으로 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자연지리적 공간이 협소한 조선에서는 메가톤급 열핵융합탄을 실험할 수 없다. 1메가톤은 1,000킬로톤이고, 1,000킬로톤은 상용폭약 1,000톤이므로, 1메가톤급 열핵융합탄은 상용폭약 100만톤의 폭발력을 가진다. 만일 조선이 1메가톤급 열핵융합탄을 실험하면, 혜산, 청진, 라선, 김책 등 북변도시들은 물론 국경을 넘어 중국의 훈춘, 옌지, 투먼 등 도시들에 엄청난 피해를 줄 초강력 인공지진파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은 핵실험에서 발생하는 폭발력을 극도로 억제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조선이 메가톤급 열핵융합탄의 폭발력을 전술핵분열탄 수준의 매우 낮은 폭발력으로 열화(劣化)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이 제3차 핵실험에서 열핵융합탄을 실험하였는데도 그 폭발력이 고작 12.2킬로톤밖에 되지 않았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소련도 폭발력을 3.5킬로톤으로 줄인 열핵융합탄실험을 1955년 9월 21일에 진행한 적이 있다. 메가톤급 폭발력을 킬로톤급 폭발력으로 열화시킨 열핵융합탄을 열화열핵융합탄(depleted thermonuclear fusion bomb)이라고 부른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이 2013년 2월 12일에 진행한 제3차 핵실험은 열화열핵융합탄실험이었음이 자명해진다. 열핵융합탄실험에서 성공하여 크게 고무된 조선에서는 자기의 핵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더욱 발전시키려는 국가적인 조치를 취하였는데, 그 조치가 바로 원자력공업성을 신설한 것이다. 2013년 4월 1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조선의 원자력공업을 현대화, 과학화하며 최첨단 과학기술의 토대 우에 확고히 올려세워 핵물질의 생산을 늘이고 제품의 질을 높이며 자립적인 핵동력공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원자력공업성을 내오기로 결정”한 정령을 발표하였다. 1985년 12월 조선과 소련은 ‘경제 및 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고, 이듬해부터 녕변핵시설단지에서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가 가동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29일에는 원자력공업부가 신설되었는데, 그로부터 27년 만에 기존 원자력공업부를 원자력공업성으로 교체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이 열핵융합탄을 만드는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기까지 약 25년이 걸린 셈이다.

2015년 9월 19일 <로동신문>에 실린 논평기사는 “우리의 핵억제력은 미국이 예측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으리만큼 질량적으로 장성강화되였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조선이 2013년 2월 12일 마침내 열핵융합탄실험에 성공함으로써 핵분열탄→증폭핵분열탄→열핵융합탄으로 상승발전하는 핵억제력강화과정의 최정점에 도달하였음을 암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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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5

'작계 5015'의 위험한 비밀

[한호석의 개벽예감](172)
자주시보 2015년 09월 1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스캐퍼로티 사령관의 보안조사지시
2. 5년에 걸쳐 작성된 ‘작계 5015’
3. ‘작계 5015’의 핵심내용 세 가지
4. ‘작계 5015’에 들어간 작전지침 다섯 가지

▲ <사진 1> 2015년 9월 11일 국회 국방위원회 합참본부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과 합참본부 관계자들이 말싸움을 벌였다. 말싸움이 벌어진 까닭은 최윤희 합참의장이 '작계 5015'에 관한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위의 사진은 말싸움이 벌어진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최윤희 합참의장이 엄기학 작전본부장으로부터 쪽지를 건네받으며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제공


1. 스캐퍼로티 사령관의 보안조사 지시

2015년 9월 11일 국회 국방위원회 합참본부 국정감사에서 예기치 않은 말싸움이 벌어졌다. <뉴시스> 2015년 9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당일 그 국정감사에 참가한 김광진 국회의원은 “합참이 작계 5015란 단어조차 거론하지 못하는 신성불가침 단어로 인식하고 있다”고 불평하면서 “작계 5015가 특별한 군사작전이면 몰라도 기본적으로 한반도 전시작전개념을 전환한 것인데 이름조차 거론하지 말라는 것이냐”고 “거칠게 항의”했고, 정미경 의원은 “국회의원에게 보고하지 못하는 국가기밀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어떤 조건이 성취되면 (합참의장이) 그 국가기밀을 국회의원에게 보고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서면으로 답변을 달라”고 목청을 높였다고 한다. <사진 1> 그런 불평이 쏟아져 나온 까닭은, 국감에 출석한 최윤희 합참의장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작계 5015’에 관한 국감질의에 답변할 수 없으니 양해해주기 바란다고 하면서 답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국감에서 말싸움을 불러일으킨 ‘작계 5015’는 미국의 대북전쟁계획인 ‘작전계획(OPLAN) 5015’를 뜻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회 국방위원회와 합참본부는 옥신각신한 끝에 결국 ‘작계 5015’ 국감보고를 오는 10월 2일에 진행하기로 타협하였다고 한다. 합참의장이 10월 2일에 ‘작계 5015’ 국감보고를 다시 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보면, 21일 뒤에 보고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최윤희 합참의장은 ‘작계 5015’ 국감보고 재개날짜를 왜 그처럼 늦춰 잡았을까? 그 까닭은 ‘작계 5015’ 국감보고에서 군사기밀 공개수위를 조절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군 합참본부가 주한미국군사령관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작계 5015’ 국감보고문제를 놓고 국회 국방위원회와 합참본부가 한바탕 말싸움을 벌인 현장에서 진성준 국회의원은 <뉴시스> 취재기자에게  “합참 설명으로 작계 5015는 한미연합의 작계인데, 동의를 하고 있지 않아서 기회를 주면 자세히 보고하겠다고 해서 여야간사가 수용했다”고 귀띔을 했는데, 그의 귀띔을 문맥이 매끄럽게 통하게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합참본부의 설명에 따르면, ‘작계 5015’는 미국군의 작전계획이다. 그래서 주한미국군사령부는 한국군 합참본부가 국정감사에서 미국군 작전계획을 보고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주한미국군사령관의 허락을 받으면 나중에 국감보고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여야간사가 수용하였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작계 5015’가 한국군과 미국군이 대등한 자격으로 마련한 공동작전계획이라고 착각하였고, 그래서 그들은 합참본부가 국정감사에서 당연히 ‘작계 5015’를 보고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한미군사관계의 종속적 본질을 알지 못한 무지의 소산으로 보인다. 

원래 전쟁계획은 전쟁을 기획하고 지휘할 능력과 권한을 가진 전쟁주체가 수립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기획하고 지휘할 능력과 권한은 조선과 미국이 각각 대척점에서 행사하는데, 한국에게는 그런 능력과 권한이 없다.
전쟁계획을 수립하려면 고급한 정찰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한국군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정찰위성이나 고고도정찰기 같은 정찰수단을 갖지 못한 한국군에게는 저급한 정찰능력밖에 없는 실정이다. 또한 전쟁계획을 수립하려면 전쟁을 지휘할 권한, 곧 전시작전통제권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군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 고급한 정찰능력도 없고, 전시작전통제권도 없는 한국군은 전쟁계획을 세우고 싶어도 세울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작계 5015’가  한미공동전쟁계획이 아니라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의 전쟁계획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미국의 견지에서 보면, 자국의 최고국가기밀인 전쟁계획을 다른 나라 군지휘관들이 다른 나라 국회의원들에게 보고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 <사진 2> 주한미국군사령관 커티스 스캐퍼로티는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장악한 최고지휘관이다. 그런 그가 '작계 5015' 언론유출사건에 발끈하여 안보조사를 직접 지시했다. 2015년 8월 27일 <중앙일보>의 '작계 5015' 관련보도로 일어난 언론유출사건과 그에 대한 안보조사는 한국군 지휘부를 불안에 떨게 하였고, 국회 국방위원회 합참본부 국정감사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군권을 장악한 주한미국군사령관의 말 한 마디가 군부와 정치권에 연속파장을 일으킨 것은 초유의 사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제공

국회 국방위원회 합참본부 국정감사에서 ‘작계 5015’ 보고문제가 말싸움으로 번진 또 다른 원인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국군 고위관계자가 ‘작계 5015’에 관한 정보를 취재기자에게 전달한 언론유출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작계 5015’에 관한 <중앙일보> 2015년 8월 27일부 보도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군 고위관계자”가 전해준 정보를 인용한 그 보도기사는 ‘작계 5015’의 위험한 비밀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세상에 알려주었다. 

그런데 커티스 스캐퍼로티(Curtis M. Scaparrotti)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작계 5015’에 관한 정보가 언론에 공개된 것을 군사기밀누설로 규정하고 발끈하였다. <조선일보> 2015년 9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작계 5015’에 관한 정보를 누가 언론에 누설했는지를 밝혀내는 보안조사를 실시할 것을 한국군 당국에게 ‘요청’하였다고 한다. <사진 2>

2015년 9월 10일 국방부에서 진행된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조현천 국군기무사령관은 스캐퍼로티 사령관이 ‘작계 5015’ 언론유출사건에 대한 보안조사를 요청했느냐는 국회의원의 질문을 받고 “공조조사요청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답변하였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스캐퍼로티 사령관이 ‘작계 5015’ 언론유출사건에 대해 한미공조보안조사를 진행할 것을 한국군 당국에게 ‘요청’하였다는 사실이다.
한국 언론매체들은 위의 사실을 보도하면서 ‘요청’과 ‘공조’라는 부정확한 용어를 썼지만,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최고지휘관이므로 그런 최고지휘관이 한국군 당국에게 무엇을 ‘요청’하였다면 그것은 군령체계상 지시한 것이고, 연합군체제로 결합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보안조사는 공조형식이 아니라 합동형식이라고 표현해야 정확하다. 스캐퍼로티 사령관이 직접 나서서 ‘작계 5015’ 언론유출사건에 대한 한미합동보안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작계 5015’ 언론유출사건으로 매우 난처하게 된 한국 국방부는 2015년 9월 10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작계 5015 관련 보도에 대한 기무사령부의 보안조사는 지난 9월 28일 한민구 국방장관의 지시로 먼저 실시됐다. 이후 연합사령관이 UFG(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연합전쟁연습의 영문약자-옮긴이) 사후 검토과정에서 기밀유출에 대한 문제의견을 제시했다”고 회피성 해명을 늘어놓았고, <연합뉴스> 2015년 9월 10일 보도는 ‘작계 5015’ 언론유출사건과 관련하여 국군기무사령부가 단독으로 국방부와 합참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는 것처럼 오보하였지만, 위에 인용한 국군기무사령관의 답변에 기초하여 전후맥락을 살펴보면, 스캐퍼로티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한미합동보안조사가 진행되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상황이 ‘작계 5015’ 언론유출사건으로 복잡해진 판인데, 그런 상황에 둔감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작계 5015’를 왜 자기들에게 보고하지 않느냐고 합참의장에게 성화를 부렸으니 상황은 더욱 꼬이고 말았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의 성화에 떠밀린 합참의장은 10월 2일에 ‘작계 5015’에 대한 국감보고를 재개하겠노라고 약속하였지만, 정작 그 날 진행될 국감보고에서는 ‘작계 5015’의 핵심내용을 빼놓은 채 형식적으로 보고하고 넘어갈 것으로 예견된다. ‘작계 5015’는 최윤희 합참의장이 언급하지 못하는 ‘위험한 비밀’인 것이다.  


2. 5년에 걸쳐 작성된 ‘작계 5015’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작계 5015’의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여 언론유출사건에 대한 한미합동보안조사를 직접 지시할 만큼 예민하게 처신하였지만, 조미군사관계를 중심으로 조성된 적대적 군사상황의 변화추세를 분석하고, ‘작계 5015’에 관한 지난 시기의 보도기사들을 추적하면, ‘작계 5015’의 윤곽을 포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계 5015’의 윤곽을 포착하기 위한 언론보도분석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0년 7월 21일에 진행된 한미외교국방장관회의에서 논의한 ‘전략동맹 2015’에 관한 보도기사로부터 시작된다. <연합뉴스> 2010년 7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2007년부터 ‘전략적 이행계획(STP)’을 작성해왔는데, 장광일 국방정책실장의 말을 빌리면, ‘전략적 이행계획’은 “전구작전지휘체계, 한미군사협조체계, 신작전계획수립, 전구작전수행체계, 전작권전환기반, 연합연습체계 등 모두 6개 분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이 보도기사에 따르면, ‘작계 5015’ 작성은 2007년부터 추진되었던 ‘전략적 이행계획’의 일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서울신문> 2010년 7월 23일 보도가 비교적 상세히 알려주었는데, 그 보도기사의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다.

“신작전계획 수립도 전작권 전환이 늦춰진 만큼 기간이 3년여 연기된다. 특히 2012년까지 미국 주도의 ‘작계 5027’을 한국군 주도의 ‘신작계 5015’로 대체할 예정인데, 이 내용도 전환계획의 변화를 반영해 전략동맹 2015에 담을 예정이다. 기존의 작계 5027에는 미군 69만명과 5개 항공모함 전투전단 등이 한반도에 투입돼 미국이 연합작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돼 있었다. 하지만 2015년에 전작권이 전환되면 한국군이 한반도 방어를 주도하고 미군은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양국은 이에 따라 지상전은 한국군이 책임지고 미국은 해공군 위주의 지원을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작전계획을 짜 왔다.”

5년 전에는 미국이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올해 2015년 12월 1일에 한국군 합참의장에게 반환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2014년 10월 23일에 진행된 한미안보협의회 회의에서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처럼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을 무기한 연기하였으므로, 새로운 전쟁계획인 ‘작계 5015’를 반환시점에 맞춰 작성하면서 기존 작전계획들을 대체하려던 추진작업도 무기한 연기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 <사진 3> 2015년 6월 최윤희 합참의장과 스캐퍼로티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작계 5015'에 서명하고 즉각 발효시켰다. 그 소식을 들은 김무성 당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소속 국방위원회 위원들은 7월 2일 주한미국군사령부를 찾아갔다. 위의 사진은 미국이 침략적인 대북전쟁계획을 완성해준 것이 너무 고맙고 감격하여 스캐퍼로티를 등에 엎어주며 활짝 웃는 김무성 당대표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종미사대주의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제공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은 무기한 연기되었지만, ‘작계 5015’ 수립은 애초에 정한 일정에 따라 변함없이 추진되었는데, <중앙일보> 2015년 8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2010년 10월에 결정한 ‘전략기획기침(SPG)’에 따라 ‘작계 5015’ 작성작업을 계속 진척시켜왔다고 한다.
미국이 2010년부터 5년 동안 ‘전략기획지침’에 따라 진척시켜온 ‘작계 5015’ 작성작업은 올해 상반기에 마침내 완료되었고, 2015년 6월 최윤희 합참의장과 스캐퍼로티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작계 5015’에 서명하였다. <사진 3>

<중앙일보> 2015년 8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작계 5015’는 최윤희 합참의장과 스캐퍼로티 사령관이 서명하는 순간부터 발효되었고, 지난 8월 말에 실시된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연합전쟁연습에 적용되었으며, 각 전투단위들이 ‘작계 5015’에 따라 작성하는 세부작전계획은 오는 2015년 말까지 끝난다고 한다.

▲ <사진 4> 미국은 2014년 2월에 실시한 '키리졸브' 한미연합전쟁연습과 같은 해 8월에 실시한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연합전쟁연습에서 '맞춤형 억제전략'이 실전상황에 적합한지를 연속 검증하였다. 위의 사진은 2014년 3월 31일 경상북도 포항 인근에서 실시된, 평양점령을 상정한 상륙전연습 '쌍룡훈련'에 참가한 한미해병대 전투원들이 임의의 지점에 착륙한 수직이착륙기 아스프리에서 쏟아져나와 전투위치로 달려가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작계 5015'에는 평양점령을 노리는 '맞춤형 억제전략'이 포함되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제공


3. ‘작계 5015’의 핵심내용 세 가지

‘작계 5015’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있는 것일까? 한국군 고위관계자들이 전해준 정보를 인용한 <아시아경제> 2015년 2월 11일 보도와 <중앙일보> 2015년 8월 27일 보도를 종합하면, ‘작계 5015’의 비밀이 아래와 같은 윤곽을 드러낸다.

첫째, ‘작계 5015’는 ‘맞춤형 억제전략’에 의거하여 작성된 대북전쟁계획이다.
<연합뉴스> 2013년 9월 8일 보도기사에서 한국 정부 고위당국자는 “지난 10여 개월간 (미국군과 한국군이) 공동으로 연구한, 북한 핵위협에 대응한 ‘맞춤형 억제전략’을 최근 완성했다. 완성된 맞춤형 억제전략은 사실상 작전계획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이해하면 된다. 내달(2013년 10월을 뜻함-옮긴이) 서울에서 개최되는 한미안보협의회(SCM) 회의에서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미국방장관들이 2013년 10월 한미안보협의회에서 ‘맞춤형 억제전략’에 서명하기 훨씬 전부터 미국군은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확장억제전략’을 연습해왔다. <연합뉴스> 2011년 11월 4일 보도에 따르면, 2011년 10월 서울에서 진행된 한미안보협의회의 결정에 따라 확장억제정책위원회(EDPC)가 결성되었고, 그 위원회가 조직한 확장억제전략 도상훈련(TTX)이 2011년 11월 미전략사령부에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처럼 ‘확장억제전략’을 연습해오던 미국은 2014년 2~3월에 실시한 ‘키리졸브/독수리’ 한미연합전쟁연습과 같은 해 8월에 실시한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연합전쟁연습에서 ‘맞춤형 억제전략’이 실전상황에 적합한지를 연속 검증하였다. <사진 4>

주목하는 것은, 미국이 한반도 군사상황의 변화에 맞춰 ‘확장억제전략’을 보완하여 ‘맞춤형 억제전략’을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확장억제전략’과 ‘맞춤형 억제전략’의 차이는 ‘맞춤형’이라는 개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인민군 군사거점들을 파괴하기 위한 이른바 ‘맞춤형’ 정밀타격능력을 보강하였다는데 있다.

전시에 ‘맞춤형’ 정밀타격임무는 전시증원군이 맡는 것이 아니라 긴급증파부대가 맡는 것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2014년 8월 미공군지구권타격사령부(AFGSC) 예하 제509폭격비행단에 소속된 B-2 스텔스 전략폭격기 3대를 괌(Guam)으로 이동배치하여 대북공습작전을 연습하는 한편, 전시에 적국의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한다는 미국 육군 제20CBRNE사령부(화학, 생물학, 방사능, 핵, 폭발물사령부) 예하 전투부대를 미국 본토에서 긴급공수하여 2014년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연합전쟁연습에 참가시켰으며, 미국 국방부 부장관이 현장에 나타나 새로운 방식의 전쟁연습을 직접 참관하였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2014년 말 미국은 조선인민군 군사거점 700여 개소를 선정하고 이를 ‘합동타격지정지점(Joint Designated Point of Impact)’으로 목록화하였으며, 그 대상들을 실제 타격할 수 있는지 검증하였다.

▲ <사진 5> '작계 5015'의 작전목표는 핵무력을 중추로 하여 구성된 조선인민군의 전투력을 공습정밀타격으로 신속히 제거하고 평양을 점령하겠다는 것이다. 위의 사진은 공습정밀타격에 동원되는 미공군 B-2 스텔스 전략폭격기의 이륙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방공망을 뚫고 적진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는 이 박쥐형 전략폭격기의 주요무기는 전술핵탄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작계 5015'가 한반도의 평화를 파괴하려는 가장 극악한 형태의 북침전쟁계획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제공

‘맞춤형 억제전략’은 700여 개로 목록화된 조선인민군 군사거점들을 공습정밀타격으로 파괴하려는 전략인데, 바로 그런 전략이 ‘작계 5015’에 핵심내용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작계 5015’의 작전목표가 핵무력을 중추로 하여 구성된 조선인민군의 전투력을 공습정밀타격으로 신속히 제거하고 평양을 점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진 5>

둘째, ‘작계 5015’에는 ‘작계 5029’가 포함되었다. 원래 ‘작계 5029’는 미국이 조선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 미증유의 급변사태에 대처하는 대북전쟁계획이다. <연합뉴스> 2010년 10월 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예상한 조선의 급변사태는 조선에서 내전이 일어나거나, 정권이 교체되거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하거나,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대량이탈하거나, 조선인민군의 ‘대량살상무기’가 외국으로 유출되는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었는데, 새로운 급변사태유형으로 불안정한 권력승계를 하나 더 첨가한다는 것이다. 2009년 7월 22일 티머시 키팅(Timothy J. Keating) 당시 미태평양사령관은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주한미군 등과 함께 북한에서 불확실한 권력승계가 이뤄질 경우 미국 대통령이 명령만 내리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전쟁)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자기들이 예상한 급변사태가 조선에서 일어나는 갑작스러운 비상사태에 대처하여 대규모 전시증원군을 한반도전선에 파병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더라도 조선에 대한 즉시적인 무력침공을 감행한다는 것이 ‘작계 5029’의 핵심내용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작계 5029’에 들어있는 그처럼 위험천만한 북침공격계획이 ‘작계 5015’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셋째, 군사분계선에서 우발적인 총격사건이 격화되어 일어난 평시국지전에 대응한다는 ‘국지도발대비계획’도 ‘작계 5015’에 포함되었다. 평시국지전은 미국의 전시증원군이 한반도전선에 미처 투입될 사이도 없이 일어나는 저강도전쟁이다.

미국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국지도발대비계획’을 2011년 2월 28일에 시작되어 3월 말까지 지속된 ‘키리졸브/독수리’ 대북전쟁연습에 처음 시험적으로 적용하였고, 2013년 3월 22일 정승조 당시 합참의장과 제임스 서먼(James D. Thurman)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그 대비계획에 서명하였다.
평시국지전에 대응하는 ‘국지도발대비계획’이 전면전에 대응하는 ‘작계 5015’에 들어간 것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그것은 불가피하게 전면전으로 확전될 것임을 예견하였다는 뜻이다.

위에 열거한 세 가지 요점을 살펴보면, 미국이 전시증원군을 한반도전선에 투입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해 자기들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해진 전쟁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작성된 새로운 대북전쟁계획이 ‘작계 5015’임을 알 수 있다.

▲ <사진 6> 미국의 전쟁방식은 공군력과 해군력에 의존한다. 미국이 2006년 6월 서태평양에서 진행한 '용감한 방패' 전쟁연습현장을 담은 위의 사진은 B-2 스텔스 전략폭격기와 호위전투기편대를 앞세우고 함재기편대가 뒤따르는 가운데 키티호크 항모강습단, 로널드 레이건 항모강습단,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강습단이 항진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제공


4. ‘작계 5015’에 들어간 작전지침 다섯 가지

전시에 미국이 대규모 증원군을 한반도전선에 투입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를테면, 2014년 3월 25일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유사시 증원병력의 준비태세가 걱정스럽다. 후속전투력(follow-on forces)의 준비태세를 우려한다”고 거듭 말하면서 전시에 증원군이 한반도전선에 투입되지 못할 것임을 솔직히 인정한 바 있다.

전시증원군을 한반도전선에 투입할 수 없게 된 미국은 어쩔 수 없이 주한미국군과 긴급증파부대, 그리고 한국군과 일본해상자위대를 동원하여 전면전을 해야 한다. 긴급증파라는 것은 전시에 미공군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전선에 투입하거나 또는 군수송기와 대한항공 여객기를 긴급히 동원하여 특수병종을 신속하게 한반도전선으로 이동시킨다는 뜻인데, 이를 위해 2004년에 한미상호공수지원협정이 체결되었고, 해마다 두 차례씩 대북전쟁연습을 실시할 때마다 긴급증파훈련을 반복해왔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69만 명 대병력과 5개 항모강습단으로 구성된, 세계전쟁사에서 최대 규모로 편성되는 전시증원군을 한반도전선에 투입하지 못하고, 결국 주한미국군과 긴급증파부대, 그리고 한국군과 일본해상자위대로 구성된 전투력만 동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전시증원군을 동원하지 못하면 조선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고, 설령 전시증원군을 동원하더라도 이길 수 없다. 이 곤혹스러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작계 5015’에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 작전지침을 도입하였다. ‘작계 5015’에 아래와 같은 작전지침이 도입되었다는 사실은 미국이 지난 몇 해 동안 한반도와 그 주변의 작전구역에서 보여준 각종 대북전쟁연습행태를 종합, 분석하면 알 수 있다. 

첫째, 전시작전임무분담지침이 ‘작계 5015’에 포함되었다. 한국군의 전시작전임무는 지상전투에 집중되고, 미국군의 전시작전임무는 공중해상전투(Air Sea Battle)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2010년 2월 3일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 당시 국방장관은 “우리는 거기(한반도전선이라는 뜻-옮긴이)에 신속하게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에 가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군과 공군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미국 합참본부가 2015년 1월 8일 이후 공중해상전투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공군과 해군에 의존하는 미국의 전쟁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사진 6>

미국이 지상전투임무를 한국군에게 맡기려는 까닭은, 전면전이 일어나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최전방에서 대치한 한국 육군 20만 명과 조선인민군 육군 70만 명이 격전을 벌이면서 엄청난 화력을 비좁은 작전구역에 집중시킬 것이므로 지상전투에서 혹심한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미국의 우려가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이 지상전투임무를 한국군에게 맡기려는 것은 지상전투에서 발생할 인명피해를 한국군에게 떠넘기려는 수작임을 알 수 있다. 사정이 그런데도 한국 언론매체들은 위와 같은 미국의 파렴치한 수작에 대해서는 눈감아주고,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국군이 지원하는 식으로 전시작전임무가 분담될 것이라고 설명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둘째, 전략정찰작전과 비밀첩보전이 ‘작계 5015’에 포함되었다. 조선인민군은 무징후선제기습타격으로 ‘최후결전’에 돌입할 것이므로, 그에 대응하려는 미국군은 조선인민군의 공격징후를 사전에 포착하기 위한 정찰감시능력과 군사첩보능력을 대폭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국방비밀국과 지리공간정보사령부를 새로 창설한 것이 그런 강화추세의 일환인 것이다.

<연합뉴스> 2012년 4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아시아지역에 집중되는 비밀첩보전에 투입할 국방비밀국(DCS)을 곧 창설할 것인데, 이 새로운 군사첩보조직은 중앙정보국(CIA)과 공조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연합뉴스> 2014년 10월 7일 보도기사에서 한국군 관계자는 “한미는 북한지역의 핵심표적지형과 영상자료를 표준화해 상호공유하는 등 24시간 핵과 미사일 감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영상지형정보를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지리공간정보(GEOINT)사령부 창설을 추진 중”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정찰감시능력과 군사첩보능력이 대폭 강화되는 추세에 따라, 미국군은 대북전쟁연습 중에는 물론이고 일상적으로 정찰위성, 조기경보위성, 공중조기경보통제기, 고고도유인정찰기, 고고도무인정찰기, 이지스구축함 감시레이더 등을 총동원하는 대북정찰감시망을 24시간 가동하는 것이다. 

셋째, 동시반타격전이 ‘작계 5015’에 포함되었다. 동시반타격전이라는 것은, 조선인민군이 무징후선제기습타격으로 ‘최후결전’에 돌입하는 순간, 한국군도 지대지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대북공격을 개시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에 따라 미국은 이른바 4D작전개념을 도입하거나 한미미사일지침을 개정하는 등 일련의 상응조치를 취했다.

2013년 11월 스캐퍼로티 군사령관이 언급한 4D작전개념은 조선인민군의 미사일공격에 맞서기 위한 탐지(Detect), 방어(Defense), 교란(Disrupt), 파괴(Destroy)를 포괄하는 반격작전개념이다. 또한 미국은 탄두중량을 종전대로 500kg으로 제한하지만 사거리를 300km에서 800km로 늘린 지대지탄도미사일을 한국군이 개발, 보유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고, 청와대는 2012년 10월 7일 그와 같이 개정된 한미미사일지침을 전격 발표하였다.

▲ <사진 7> 2014년 10월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된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는 조선인민군의 공격징후가 포착되는 경우 한국군이 단독으로 사거리 500km, 800km급 지대지탄도미사일을 동원하는 반타격작전에 나서기로 결정하였다. 한국군은 한미미사일지침을 위반하였는데도 미국이 묵인해준 덕택에 2009년에 사거리 500km의 현무-2B 지대지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하였다. 한국군은 2012년에 미국이 한미미사일협정을 개정하여 사거리를 늘릴 수 있도록 조치해준 덕택에 현재 사거리 800km의 지대지탄도미사일 개발을 거의 완료하였다. 위의 사진은 한국군이 2015년 6월 3일 현무-2B를 시험발사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현재 한국군은 이 미사일을 100발 정도 실전배치하였다고 한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제공

미국이 한국군에게 사거리 800km의 지대지탄도미사일을 보유하도록 허락한 것은, 전시에 조선인민군의 화력타격을 받은 한국군이 미사일을 동원하여 조선의 후방지대를 타격하는 동시반타격전을 전개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한겨레> 2014년 10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2014년 10월 23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진행된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는 조선인민군의 공격징후가 포착되는 경우 한국군이 단독으로 사거리 500km, 800km급 지대지탄도미사일을 동원하는 반타격전에 나서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사진 7>

넷째, 미사일방어전이 ‘작계 5015’에 포함되었다.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한국군은 탄도유도탄작전통제소(AMD-Cell)을 창설하였고, 미국은 한국군에게 페이트리엇 방공미사일(PAC-2)을 판매하였으며, 최신형 PAC-3도 판매하려 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사드(THAAD)’라고 부르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주한미국군기지에 배치하려고 적기를 노리는 중이다.

다섯째, 장거리전략공습이 ‘작계 5015’에 포함하였다. 장거리전략공습이라는 것은 전술핵탄을 사용하는 공습정밀타격을 뜻한다. 미국은 2007년부터 B-2 스텔스 전략폭격기를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 이동배치해놓고 한반도 중부지역 상공에 출동시키는 장거리폭격연습을 감행해왔다. 2013년 초 조미관계가 충돌 직전으로 치달았을 때 미국은 미국 본토에서 B-2 스텔스 전략폭격기 2대를 한반도 중부지역 상공으로 출동시켜 폭탄을 투하하는 연습을 감행하였으며, 2015년 8월위기사태 중에도 B-2 스텔스 전략폭격기 3대를 괌에 이동배치하였다.

방공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다는 B-2 스텔스 전략폭격기는 적진의 방공망을 뚫고 작전종심 깊숙이 들어가 전술핵탄으로 공습정밀타격을 할 수 있다. 미국이 그런 전략폭격기를 대북무력위협에 반복적으로 동원하는 것은, 전시에 전술핵탄을 사용하는 공습정밀타격을 감행할 ‘작계 5015’에 따른 대북장거리전략공습의 예행연습인 것이다. 

위에 열거한 것처럼 ‘작계 5015’에 포함된 다섯 가지 전시작전지침을 살펴보면, 미국의 대북전쟁준비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다. 2015년 9월 1일 애쉬튼 카터(Ashton B. Carter) 미국 국방장관은 미국군 병사들과의 동영상대화 중에 “한반도는 아마도 아차하는 찰나에(at the snap of finger) 전쟁이 일어날, 지구상에서 유일한 곳”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작계 5015’의 위험한 비밀이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이 대북전쟁준비를 갖추고 전술핵탄을 사용하는 위험천만한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하면서 조선을 계속 자극하고 있으니 조미전쟁이 아차하는 찰나에 일어날 위험이 날로 확대되는 것이다. 미국 국방장관의 말마따나, 조미전쟁은 아차하는 찰나에 폭발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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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8

알려지지 않은 8월위기사태의 급박했던 3일

[한호석의 개벽예감] (171)
자주시보 201250907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확전위험 우려한 주한미국군사령부
2. 위기사태인데도 가동되지 않은 작전계획
3. 잠수함 50여 척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을까?
4. 한국 국방부가 쉬쉬하고 넘어간 두 가지 충격사건
5. 혁신-2 공격헬기의 대남근접비행과 한미연합비행대의 동서횡단비행
6. 코브라 공격헬기는 왜 무인정찰기를 찾아내지 못했을까?

▲ <사진 1> 2013년 3월 22일 정승조 당시 한국군 합참의장과 제임스 서먼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서명하였다. 그 대비계획은 평시국지전에 대처하는 작전계획이다. 그 문서에 서명한 날부터 주한미국군사령관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의거하여 한국군의 평시국지전 작전통제권을 장악하였다.     © 자주시보


1. 확전위험 우려한 주한미국군사령부

2013년 3월 22일 정승조 당시 한국군 합참의장과 제임스 서먼(James D. Thurman)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서명했다. 대비계획이라는 명칭을 달았지만, 사실상 작전계획이다. 이 새로운 작전계획은 전시전면전이 아니라 평시국지전에 대처하는 작전계획이다. <사진 1>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포격전이 일어났을 때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한국군 합참본부 사이에서는 평지국지전 작전통제권을 누가 행사하는가 하는 문제가 확실하게 정리되지 못한 상태였다. 평시국지전은 전시전면전과 달리 평시에 일어나는 무력충돌이므로, 이론적으로만 따진다면 평시국지전은 한국군 합참의장의 평시작전통제권 행사에 따라 한국군이 단독으로 수행하게 되는 전투인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단일지휘를 받는 연합군체제로 존재하는 조건에서 한국군이 평시국지전을 단독으로 수행하고 주한미국군은 한국군 곁에서 그들의 전투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현실과 어긋나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전시전면전 작전통제권을 장악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평시국지전 작전통제권도 행사하는 새로운 작전지휘방침이 요구되었고, 그런 요구에 따라 나온 평시국지전 작전계획이 바로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2013년 3월 22일부터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의거하여 한국군의 평시국지전 작전통제권을 장악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2013년 3월 한국 언론매체들은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한국군 합참의장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함께 서명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한국군이 작전을 주도하고 미국군은 한국군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추측하였으나 그것은 자의적인 억측이다.
<아시아경제> 2013년 3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는 자기들 마음대로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가동할 수 없고, 반드시 주한미국군사령부와 사전협의절차를 거쳐야 가동할 수 있다고 그 계획에 명문화되었다는 것이다. 사전협의절차라는 것은, 한국군이 단독으로 평시국지전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감독, 통제하고, 한국군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작전통제에 따라 평시국지전을 수행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한국군이 단독으로 평지국지전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감독, 통제하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연합뉴스> 2012년 6월 15일 보도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인용된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2012년 6월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한국군 합참본부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의 부록문서를 합의하는 것으로 하여 “북한의 국지도발 시 한미연합군의 대응이 자칫 확전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는 미측의 우려감이 해소됐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한국군이 평시국지전을 단독으로 수행하는 경우 확전될 것을 우려한 주한미국군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수립함으로써 확전위험에 대한 우려를 덜었다는 뜻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확전위험을 우려한다는 사실은 <아시아경제> 2013년 3월 24일 보도에서 알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협의 중에 한국군 합참본부는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조선인민군의 공격원점과 지원세력을 타격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휘세력까지 타격해야 한다는 자기의 작전개념을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반영하자고 요구하였으나, 주한미국군사령부는 “과도하게 보복공격을 하면 확전이 우려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당시 한국군 합참본부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조선인민군 지휘세력에 대한 보복타격은 평양타격을 뜻한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주장한 대로 평시국지전에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평양을 타격하면 미증유의 전면전이 폭발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이 명백하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협의과정에서 한국군 합참본부는 평양타격을 주장한 반면, 주한미국군사령부는 확전위험을 우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평양타격으로 미증유의 전면전이 폭발될 것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는 한국군 합참본부가 평양타격론을 주장하였다는 사실이다. 2013년 11월 5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조보근 국방정보본부장의 정보평가에 따르면, 한국군과 조선인민군이 전쟁을 벌이는 경우 한국군이 패한다고 단언했는데, 그런 사실을 아는 한국군 합참본부가 평양타격론을 주장하면서 만용을 부린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한국군 합참본부가 미국의 대북선제타격능력을 너무 과신하기 때문이다.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주한미국군이 조선인민군보다 먼저 대북선제타격을 개시하여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한국군 합참본부를 그런 만용으로 떠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믿어서는 안 되고, 믿을 수도 없는 것을 믿어버린 오판으로 보인다. 한국군 합참본부의 오판과 만용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논점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미국군의 대북전쟁계획에 대북선제타격이 포함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미국군은 조선인민군과의 전면전을 피하려고 하는데, 아래의 정보에서 그런 회피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면 조선인민군 지휘세력까지 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한국군 합참본부의 평양타격론과 확전위험을 우려한 주한미국군사령부의 평양타격자제론 사이의 견해차이가 2013년 3월 22일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한국군 합참의장의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 서명으로 해소된 줄 알았더니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한국일보> 2015년 7월 6일 보도기사에서 한국 정부 관계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4월 열린 통합국방협의체(KIDD)에서 지휘세력타격을 놓고 한미 양측 대표단 간에 설전이 벌어졌”는데, “한반도에서 국지도발이 벌어져도 어떤 식으로든 확전을 피하려는 미측과 북한을 제대로 혼내주려는 우리측 사이에 간극이 커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2015년 4월에 열린 한미통합국방협력회의에서 한국측과 미국측은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평양을 타격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한국측은 평양타격론을 주장하였고, 미국측은 평양타격자제론을 주장하였다. 이런 견해차이 때문에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서명 이후 2년이 지난 오늘도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 자주시보

둘째, 미국군이 확전을 피하려는 까닭은, 평시국지전이 확전되는 경우 각종 항공작전기 1,741대와 각종 군함 및 잠수함 152척을 운용하는 태평양사령부 예하 26만6천명 병력이 조선인민군의 전술핵탄공격을 받게 될 미증유의 위험, 그리고 미국 본토의 심장부가 조선인민군의 보복핵타격을 받게 될 파멸적 위험을 매우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국군과 한국군에게는 확전이고, 조선인민군에게는 최후결전이다. 평시국지전이 확전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확전위험을 우려하며 우물쭈물하는 미국군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최후결전을 벼르며 돌격명령을 기다리는 조선인민군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확전의 순간 치명적인 전술핵탄공격을 개시하는 쪽은 미국군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이다. 미국군은 이런 확전씨나리오를 예상하기 때문에 확전위험을 피하려는 것이다. 

조선인민군의 전술핵탄공격을 예상한 미국군은 그처럼 확전위험을 피하려고 조심하는 판인데, 한국군은 그런 미국군의 대북전쟁계획만 믿고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평양을 타격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파멸을 자초하는 치명적인 오판이 아닐 수 없다.  


2. 위기사태인데도 가동되지 않은 작전계획

<동아일보> 2013년 8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는 30여 개에 이르는 평시국지전씨나리오가 포함되었는데, “서북도서에 대한 기습포격이나 무력강점, 북한 공기부양정이나 저속항공기의 기습침투, 특수부대의 후방침투, 잠수함의 아군 함정 공격 등”이 거기에 들어있다고 한다. 위의 보도기사에 명시되지 않았으나, 이번 8월위기사태 중에 일어날 뻔하였던 군사분계선에서의 국지적 무력충돌도 평시국지전씨나리오에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평시국지전이 터지기 일보직전에 평정된 8월위기사태 중에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당연히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를 가동하였어야 한다. 조선인민군이 2015년 8월 22일 오후 5시까지 대북확성기방송을 중단하라고 한국군에게 요구하며 이에 불응하면 군사적 행동에 나서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으므로,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적어도 8월 22일부터 가동되었어야 한다. <사진 3>
▲ <사진 3> 2015년 8월 15일 조선인민군 전선사령부는 한국군이 재개한 대북확성기방송을 8월 22일까지 전면 중단하고 그 시설을 철거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그 요구에 불응하면 군사행동을 개시하겠다는 시한부 최후통첩을 보냈고, 8월 2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긴급보도를 통해 최후통첩을 재확인하였다. 평시국지전위험이 그처럼 최고조에 이르렀는데도, 평시국지전에 대처한다는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미완성이기 때문에 가동될 리 없었다. 무력충돌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3일 동안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작전계획도 없이 갈팡질팡하며 피격위험을 자초하고 말았다.     © 자주시보

그런데 한국 언론매체들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의 가동여부에 대해 상반된 보도기사를 내놓았다. 이를테면, 2015년 8월 21일 <연합뉴스>는 8월 21일부터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사상 처음으로 가동되었다고 보도한 반면, 2015년 8월 24일 <조선일보>는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평시보다 긴밀히 협력하고 있고 있을 뿐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가동되지 않았다고 보도하였다.

이처럼 상반된 보도내용 가운데 어느 것이 사실일까?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의 가동여부를 파악하려면, 아래에 열거한 두 가지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뉴시스> 2015년 8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는 8월 20일 육군 28사단 예하부대에 발령했던 ‘진돗개 하나’를 8월 21일 전군으로 확대하였다. 셋에서부터 하나까지 3단계로 구분되는 ‘진돗개’는 낮은 숫자일수록 위험이 더 높은데, ‘진돗개 하나’는 평시국지전에 대처하기 위해 발령되는 전투동원태세다. 평시국지전에 대처하는 ‘진돗개 하나’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이중으로 발령되지 않으므로 한국군 합참본부가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것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발령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미국군은 데프콘(DEFCON, Defense Readiness Condition)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의 전투동원태세를 구분한다. 데프콘은 5단계로 구분되는데, 낮은 숫자일수록 위험이 더 높은 것을 의미하며, 데프콘 5에서부터 데프콘 3까지는 평시상태에 해당하고, 데프콘 2와 데프콘 1은 전시상태에 해당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평시국지전이 일어날 위험에 근접하였던 8월위기사태 중에 당연히 데프콘 3이 발령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주한미국군사령부는 데프콘 3을 발령하지 않았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평시국지전위험에 대처하는 데프콘 3을 발령하지 않았으므로, 평시국지전 작전계획인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가동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둘째, <문화일보> 2015년 8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2사단은 8월 20일 오후부터 예하 모든 부대들에서 장병들의 외출과 외박을 금지시키고, 1개 소대마다 5분 대기조를 편성해 전투동원태세를 갖추었으며, 예하 210포병여단 3개 대대 가운데 1개 대대를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경기도 파주시 인근에 있는 사격훈련장으로 이동시켜 다련장로켓포 사격을 준비시키고 야간작전을 연습하였다고 한다. 

▲ <사진 4> 다련장로켓포,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가동되지 못했기 때문에, 주한미국군의 전투동원태세는 평시보다 약간 더 긴장된 상태에 머물렀다. 최전방에 전진배치된, 주한미국군의 주력부대인 210포병여단 예하 3개 대대 가운데 1개 대대만이 사격위치가 아니라 훈련장으로 이동하여 사격준비를 갖추었다. 위의 사진은 주한미2사단 210포병여단에 배속된 다련장로켓포의 발사훈련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시보

위의 보도기사에서 주목하는 것은, 주한미2사단 210포병여단 3개 대대 가운데 전투동원태세에 진입한 것은 1개 대대뿐이고, 그것도 사격위치로 이동하여 사격준비를 갖춘 것이 아니라 훈련장에 가서 사격준비를 갖추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격준비태세는 평상시보다 약간 더 긴장된 상태로 전환한 것이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발령된 긴박한 상황에서 취하는 태세가 아니다.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발령되지 않았으므로, 주한미2사단의 전투동원태세는 그런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다. <사진 4>

8월위기사태 중에 평시국지전위험이 고조되었는데도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왜 가동되지 않았을까? 이 의문을 풀어주는 단서는 <한국일보> 2015년 7월 6일 보도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인용된 한국 정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한미작전계획에는 자위권 행사를 제외하곤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한 구체적 대응방식이 빠져있”기 때문에 “연평도포격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면 어떻게 대처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2013년 3월 22일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한국군합참의장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서명하였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한국군합참본부의 평양타격론과 주한미국군사령부의 평양타격자제론 사이에서 발생한 견해차이가 해소되고 않았기 때문에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아직 미완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2015년 8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8월위기사태 당시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한국군 합참본부는 작전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공동작전기획단(OPT, Operation Planning Team)을 가동하였다. 이것은 8월위기사태가 일어났을 때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가동할 수는 없었으므로 공동작전기획단을 서둘러 결성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8월위기사태 당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대응작전계획도 없이 평시국지전위험에 빠져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처럼 한심한 형편이었으므로, 그들은 8월위기사태 당시 급박하게 전개되는 수시로 변동되는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였다.  

▲ <사진 5> 평시국지전위험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15년 8월 22일, 시한부 최후통첩의 정해진 시각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동해와 서해에서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들이 압도적인 수중수상합동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위용을 정찰위성을 통해 주시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힌 미국 국방부와 합참본부는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을 황급히 중단하는 전무후무한 비상조치를 취하며 갈팡질팡하였다. 위의 사진은 2014년 1월 30일에 진행된 항모격침연습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동해함대 소속 잠수함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에서 잠수함 3척이 보인다. 이 잠수함들은 남하해류를 타고 습격항로를 따라 저소음침투항해술로 스텔스잠항을 하여 수중매복구역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 자주시보


3. 잠수함 50여 척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을까?

조선은 잠수함을 독자적인 기술로 건조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잠수함을 가장 많이 보유한 잠수함강국이다. 그런 잠수함강국이 8월위기사태 당시 전례 없는 위력을 과시하였는데, 2015년 8월 22일 오전부터 동해와 서해에서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함함대가 전개한 압도적인 수중수상합동작전이 미국 국방부와 합참본부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들은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을 황급히 중단시키는 전무후무한 비상조치를 취하며 갈팡질팡하였다. <사진 5> 

2015년 8월 23일 한국 국방부는 조선인민군 잠수함이 평소보다 10배나 더 많이 출동하였다고 밝혔다. 조선인민군 잠수함은 평시에 4~5척 출동하고 있으므로, 그보다 10배가 더 많은 잠수함들이 출동하였으니 50여 척이나 되는 잠수함이 대거 출동한 것이다. 다른 나라 해군의 경우,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기껏해야 2~3척으로 편성된 잠수함대가 출동하는 것이 상례인데, 무려 50여 척에 이르는 조선인민군 잠수함이 한꺼번에 출동하였으니 그 상황을 정찰위성을 통해 관측한 미국 국방부와 합참본부는 아연실색하였을 것이다. 그 많은 잠수함들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2015년 9월 2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진행된 강연회에 출연한 미국의 조선인민군연구가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 Jr.)는 조선인민군 잠수함 50여 척이 한꺼번에 수중작전에 투입된 사실에 대해 거론하면서 그 동안 조선인민군이 잠수함의 훈련, 유지, 보수에 기울인 노력이 이번에 “분명한 성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평하였는데, 그 많은 잠수함이 들어가는 거대한 지하해군기지들이 조선에 건설된 것도 놀랍지만, 그 많은 잠수함들을 혼잡 없이 한꺼번에 출동시키는 수중작전투입능력은 더 놀랍다. 이러한 수중작전투입능력은 조선인민군 잠수함이 고도화된 기습공격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 <사진 6> 서호급 호위함, 이것은 미국 상업위성이 2004년 4월 20일에 촬영한, 조선인민군의 서호급 호위함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나타난 사진이다. 조선이 1983년에 건조한 서호급 호위함은 길이 74m, 배수량 1,845t이다. 함대함미사일 4발을 장착하고, 대잠작전헬기 1대를 비행갑판에 탑재한다. 서호급 호위함은 30년이 지난 함선이므로, 그 이후 신형 호위함이 건조되었는데 외부에 그 실물이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인민군이 발표한 시한부 최후통첩의 정해진 시각이 다가오기 몇 시간 전에 동해와 서해에서 동시다발로 전개된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의 압도적인 수중수상합동작전에 그 신형 호위함도 참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주목하는 것은, 8월위기사태 당시 조선의 동서해에서 출동한 것이 잠수함대가 아니라 잠수함련합함대라는 사실이다.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는, 적어도 20척 이상의 잠수함들이 선봉에 서고 그 뒤로 40련장 122mm 방사포를 장착한 연속타격고속정, 76mm 함포를 장착한 파도관통형 고속정, 사거리 260km의 금성-3호 대함미사일을 장착한 쌍동선체 스텔스 고속공격정, 대잠작전헬기 1대를 실은 호위함 등 최신형 함선들로 종합편성된 초강력한 수중수상연합함대다. <사진 6> 그런 잠수함련합함대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하였으면, 2015년 8월 24일 <CNN> 방송취재에 응한 미국 국방부 관리가 “우리는 북조선 해군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이전에 본 적이 없다”고 실토하면서 자기들이 충격을 받았음을 인정하였을까.

<연합뉴스> 2015년 8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 해군은 동해와 서해에 각각 출동한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의 그 많은 잠수함들이 어디에 있는지 잠항위치를 식별하지 못한 까닭에 당시 상황을 “심각한 위협으로 판단하고 (동해, 서해, 남해를 포괄하는) 광역초계활동에 돌입”하였는데, “북한의 잠수함위협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지만 실제 그 위협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하면서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8월위기사태 당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잠수함 50여 척이 대잠탐색망을 뚫고 어디까지 남하잠항하여 수중매복구역에 들어가 있었는지 알지 못해서 전전긍긍하였다. 

이전부터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에 맞설 방어능력이 자기에게 없다는 점을 우려해왔는데, 이번에 그런 우려가 현실로 전개되었다. 만일 8월위기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어 평시국지전이 터졌더라면, 동해, 서해, 남해에 배치된 한국 해군 함대들은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들의 기습공격을 받고 대파, 격침되었을지 모른다.


4. 한국 국방부가 쉬쉬하고 넘어간 두 가지 충격사건

2015년 9월 2일 한국 언론매체들은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 동안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정찰비행을 하고 돌아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보도하였다. 이런 놀라운 사실이 뒤늦게 보도된 까닭은, 한국 국방부가 그 사실을 숨겼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들이 남하하여 정찰비행을 하자 한국 육군이 전술체계망(ATCIS)을 가동하였는데, 그 전술체계망 가동상황이 나타난 컴퓨터 현시화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에 유포한 혐의로 한국군 해병대 현역 중위가 군당국의 수사를 받은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는 바람에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의 정찰비행까지 언론보도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전술체계망이 급박하게 가동되는 상황화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유포한 해병대 중위가 <일베저장소>라는 웹싸이트의 게시판에 올려놓았으나 얼마 뒤 삭제된 자료를 보면, 한국 국방부가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의 정찰비행만이 아니라 또 다른 사건도 숨겼음을 알 수 있다. 유출된 자료를 인용한 <조선일보> 2015년 8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8월 22일 오후 조선인민군 Ml-2 공격헬기가 서해 상공에 출현하였고, 조금 뒤에는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강원도 인제군 현리 상공에 출현하였다고 한다. 한국 국방부는 조선인민군 공격헬기가 서부전선에 출현하고, 그 직후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동부전선에 출현한 사실을 모두 감추었던 것이다. 

유출된 자료와 언론보도를 종합하여 당시 조선인민군의 무력전개상황을 재구성하면, 동해와 서해에 잠수함련합함대들이 출동하여 남진공격태세를 갖추었고, 중부전선에서는 평소보다 2배나 더 증강된 포병무력이 사격위치로 이동하여 즉시사격태세를 갖추고, 그 가운데 일부 포병부대들은 실탄사격을 연습하였고, 서부전선에서는 고속침투공기부양정들이 전전배치되고 공격헬기가 남하비행을 하였고, 동부전선에서는 무인정찰기가 남하비행을 하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당시 조선인민군이 전체 전선에서 압도적인 무력시위를 전개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전체 전선에서 동시다발로 전개된 압도적인 무력시위는 평시국지전이 터지는 순간, 조선인민군의 공격전술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미리 말해주는 ‘예고편’이었다. 8월위기사태 중에 무력충돌위험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 동안 쌍방의 전투동원태세를 분석하면 매우 급박했던 상황이 드러나는데,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아래와 같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사진 7> 북 공격헬기 혁신-2, 시한부 최후통첩의 정해진 시각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혁신-2 공격헬기를 황해남도 태탄비행장에서 출격시켜 백령도 상공으로 근접비행하게 하였다. 이 공격헬기가 최남단 출격기지를 이륙하면 2-3분 안에 백령도 상공에 들어서게 된다. 위의 사진은 조선에서 전승절을 맞은 2015년 7월 29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5》에 참가한 혁신-2 공격헬기가 대회장에 운집한 장병들의 머리 위로 낮게 비행하는 장면이다.     © 자주시보


5. 혁신-2 공격헬기의 대남근접비행과 한미연합비행대의 동서횡단비행

2015년 8월 22일 서해 상공에서 대남근접비행을 하였던 조선인민군 공격헬기는 지난 시기 소련에서 생산된 Ml-2라는 수입기종이 아니라 조선에서 1980년 중반부터 자체로 생산하는 혁신-2라는 자국산 기종이다. 순항속도가 시속 440km인 혁신-2 공격헬기는 사거리가 5km인 57mm 철갑관통 로켓포 16발, 2련장 23mm 속사포 1문, 최대 500kg의 항공폭탄, 대전차미사일, 공대공미사일로 중무장하였다. 미국의 군사전문 웹싸이트 <글로벌 씨큐리티(Global Security)>에 현시된 자료에 따르면, 2005년을 기준으로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혁신-2 공격헬기는 140대에 이르는데, 그로부터 오늘까지 10년 동안 생산이 계속되었으므로 2015년 현재 그 기종의 보유수량은 200대 정도로 추산된다. <사진 7> 

그런데 <연합뉴스> 2012년 7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2012년 5월부터 백령도에서 불과 수 십km밖에 떨어지지 않은 황해남도의 태탄비행장과 누천비행장에 혁신-2를 포함한 각종 작전헬기 50여 대를 전진배치하고 대지공격훈련과 고속기동훈련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기자는 작전헬기 50여 대가 배치되었다고 썼지만, 실제로는 조선인민군 항공군 예하 2개 직승기 대대에 배속된 작전헬기 70대가 전진배치된 것이다. 미국의 위성사진분석가 커티스 멜빈(Curtis Melvin)이 2013년 1월 14일 웹싸이트 <노스 코리언 이커노미 웟취(North Korean Economy Watch)>에 올려놓은 글에 따르면, 황해남도 태탄군 기암리에 있는 태탄비행장에 공격헬기격납고 36개소가 새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태탄비행장은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최남단 출격기지인데, 여기에 상시배치된 공격헬기들은 출격 이후 불과 2~3분 안에 백령도 상공에 들어서게 된다. 백령도에는 한국 해병대 제6여단과 해군 고속정기지가 있다.    

조선인민군 공격헬기는 태탄비행장에서 출격하여 2~3분 안에 백령도를 기습할 수 있는데 비해, 한국 공군 전투기들은 경기도에 있는 공군기지들에서 출격하여 백령도 상공에 도달하기까지 30분 이상 걸린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항공군 공격헬기들은 백령도 상공에서 한국 공군 전투기들과 조우하기 전에 백령도의 군사기지들을 파괴하고 황해남도 출격기지로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공격헬기가 태단비행장에서 출격하여 대남근접비행을 시작하자, 화들짝 놀란 한국군 합참본부는 ‘고슴도치’라는 이름의 대공경계태세를 긴급히 발령하였다. 그에 따라 한국 공군은 F-15K 전투기 4대를 긴급출격시켰고, 주한미공군도 덩달아 F-16 전투기 4대를 긴급출격시켰다. 그러나 그 전투기들의 항로는 백령도 상공으로 이어진 게 아니었다. 그 전투기들이 출격하였을 때는 조선인민군 공격헬기가 대남근접비행을 마치고 출격기지로 복귀한 뒤였으므로, 요격대상이 이미 사라져버린 서북5도 상공으로 조선인민군 지대공미사일의 요격위험을 무릅쓰고 뒤늦게 날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전투기들은 2015년 8월 22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무력시위비행에 나섰다.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경상북도 예천공군기지에서 이륙한 한국 공군 F-15K 4대와 경기도 오산공군기지에서 이륙한 주한미공군 F-16 4대가 동해 상공에서 만나 한미연합비행대를 구성한 뒤에 한반도 중부지역 상공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는 무력시위비행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요격대상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현장에는 가보지도 못한 맥빠진 무력시위비행이었다. <사진 8>

▲ <사진 8> 조선인민군의 혁신-2 공격헬기가 백령도 상공 가까이 근접비행을 하자, 화들짝 놀란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전투기 8대를 긴급출격시켰다. 하지만 그 전투기들은 백령도쪽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동해 상공에서 만나 연합비행대를 구성한 뒤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동서횡단비행을 하였다. 현장에는 가보지도 못한 맥빠진 무력시위비행이었다     © 자주시보


6. 코브라 공격헬기는 왜 무인정찰기를 찾아내지 못했을까?

한국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는 8월 22일 오전 11시 59분쯤 군사분계선을 월선하여 한국군 일반전초(GOP) 상공까지 남하하였는데, 그 날부터 8월 24일까지 사흘 동안 하루에 한 두 차례 1~2분씩 군사분계선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매우 대담한 정찰비행을 하였다는 것이다. <사진 8>

한국군의 저고도방공레이더와 중앙방공통제소(MCRC) 레이더에 간헐적으로 포착된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의 희미한 항적은 한번에 30초 이상 식별된 적이 없었고,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일정한 속도로 비행하였다.

▲ <사진 9> 시한부 최후통첩의 정해진 시각을 몇 시간 앞두고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강원도 인제군 군사분계선을 넘어 정찰비행을 시작하였다. 그 무인정찰기는 그 날부터 3일 동안 하루에 한 두 차례씩 동일한 지역상공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매우 대담한 정찰비행을 계속하였다. 한국군 정보당국은 당시 동부전선에 출현하였던 무인정찰기가 조선인민군이 운용하고 있는 기종인 '방현'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위의 사진은 '방현'의 비행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시보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출현하자, 바짝 긴장한 한국군 합참본부는 ‘고슴도치’라는 이름의 대공경계태세를 발령하였다. 그에 따라  한국 육군은 미국에서 들여온 수입기종인 AH-1 코브라 공격헬기를 긴급출격시켰다. 무인항공기를 격추하는 데는 공격헬기가 적격인데, 현장에 도착한 코브라 공격헬기는 비무장지대로부터 남쪽으로 9km 떨어진 지역상공에 설정된 북방비행금지선에 근접하여 탐색비행을 하면서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를 찾으려고 애썼지만 실패하였다.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는 하루에 한 두 차례씩 동일한 지역상공에 나타나 사흘 동안 정찰비행을 계속하였는데도, 한국군 코브라 공격헬기는 그 무인정찰기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사진 9>

▲ <사진 10>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동부전선에 출현하자 한국군 합참본부는 대공경계태세를 발령하고, 육군 항공대가 운용하는 코브라 공격헬기를 현장에 긴급출동시켰다. 위의 사진은 미국산 공격헬기 코브라의 비행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코브라 공격헬기는 현장 상공에 출동하였지만 3일 동안 계속 동일지역상공에 나타난 무인정찰기를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무인정찰기 탐색작전실패는 한국군이 조선인민군의 저고도침투전술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나타난 강원도 인제군은 해발고가 1,304m나 되는 대암산을 비롯한 높은 산들이 들어찬 동부전선 산악지대인데,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그런 산악지대 상공을 저고도로 비행하였으므로, 그 항적이 한국군 방공레이더망에 희미하게 나타났고, 코브라 공격헬기의 시야에서도 벗어났던 것이다.

원래 무인정찰기는 공중에서 지상관측대상을 촬영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항공정찰수단이기 때문에, 초저공으로는 비행하지 않고 지상으로부터 3km 정도의 고도를 유지하면서 비행하게 된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한국군 공격헬기가 3km 정도의 고도를 유지하면서 동일한 지역상공을 여러 차례 비행하는 무인정찰기를 찾아내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3km의 고도로 날아가는 무인정찰기도 발견하지 못했으니, 조선인민군 항공륙전병을 태우고 달빛도 없는 무월광 심야에 산과 산 사이의 협곡을 타고 지상으로부터 500m 정도의 초저공으로 비행하는 저고도침투비행기(일명 우뚜바)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8월위기사태 당시 한국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비행한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를 찾아내지 못한 것은, 조선인민군의 저고도침투전술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되었다는 우려가 현실로 입증된 사례가 되었다.

비무장지대에서 가까운 최전방에 산재한 한국군 작전거점들에는 고위험 전투병력이라 부르는 전투원 10만 명이 배치되었는데, 만일 8월위기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어 평시국지전이 터졌더라면 저고도침투전술에 무방비로 노출된 그들 10만 명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8월위기사태 당시 남과 북에서 각각 전개된 전투동원태세를 비교해보면, 전쟁의 승자와 패자를 예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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