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5

궁지에 몰린 미국, 이젠 허구날조술책까지 꺼내들었다

[한호석의 개벽예감](224)
자주시보 2016년 10월 2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미국은 왜 박근혜 정권의 간청을 거절하였을까?
2. 미국의 대조선경제제재가 실패로 끝난 원인
3. 미국이 또 다른 교활한 술책을 꺼내든 까닭
4. 구허날조가 노리는 허위선전의 목표
5. 방현비행장 인근에 세워진 정체불명의 군사시설
▲ <사진 1> 이 사진은 2016년 10월 20일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진행된 제48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 회의 직후 한민구 국방장관과 애쉬튼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공동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사진에 나타난 한민구 국방장관의 표정은 굳어있고, 카터 국방장관의 표정은 밝아보인다. 왜냐하면 그 회의에서 한국이 미국에게 전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상시배치해달라고 간청하였으나 미국은 그것을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매체들은 미국이 전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상시배치하는 경우 중국과 러시아를 너무 자극할까봐 한국의 간청을 거절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하였지만, 그것은 빗나간 추측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미국은 왜 박근혜 정권의 간청을 거절하였을까?

한국 언론매체들은 미국이 전략핵폭격기, 전략핵잠수함, 항모타격단 같은 전략타격수단들을 동원하고 경제제재를 가중시켜 조선에게 ‘응징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지만, 그것은 상황을 거꾸로 읽는 것이다. 현실은 한국 언론매체들의 보도내용과 정반대이다. 미국이 전략타격수단과 경제제재를 들이대며 ‘응징의지’를 보이는 게 아니라, 조선이 전략핵압박을 가중시켜 미국을 힘껏 벼랑끝으로 떠밀어버리는 중이다. 

조선이 미국에게 전략핵압박을 가중시키는 목적은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켜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데 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핵우산을 철거해야 하는데, 그것은 미국이 한국을 포기한다는 뜻이므로, 선 평화협정 - 후 한반도 비핵화라는 기존 공식은 자연히 폐기되고, 선 평화협정 - 후 평화통일의 새로운 공식으로 대체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조선에게 요구하는 비핵화는 영원히 실현될 수 없다. 이런 정세전망에 대해서는 2016년 10월 17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밀사의 청와대 비밀회동과 조선의 전략핵압박’에서 논한 바 있다.

조선이 ‘세계 최강의 핵강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에게 전략핵압박을 가중시키는 것은, 조선외무성 대변인이 2016년 10월 6일에 발표한 담화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조선이 “최강의 핵공격능력을 갖춘 당당한 핵강국”이 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최강의 핵공격능력을 갖춘 당당한 핵강국”이 전략핵압박을 가중시킬수록 미국은 핵공포를 더욱 진하게 느낄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핵공포에서 벗어나려고 전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출동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전략핵폭격기, 전략핵잠수함, 항모타격단 같은 미국의 전략타격수단들이 이전보다 더 많이, 더 자주 한국에 나타나는 최근 현상은 조선에게 ‘응징의지’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전략핵압박을 받아 벼랑끝으로 떠밀린 미국이 추락위험을 피하려는 생존본능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미국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의 핵우산 아래서 보호를 받고 있다는 박근혜 정권도 핵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은 한국으로 들락날락하는 전략타격수단들을 아예 상시배치해달라고 미국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미국은 2016년 10월 20일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진행된 제48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그 간청을 거절하였다. 박근혜 정권은 미국이 전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잠깐 들이밀었다가 빼내는 일을 번거롭게 반복하는 것보다 상시배치해두는 것이 조선에게 더 큰 위협으로 될 것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간청했는데, 미국은 그 간청을 왜 거절하였을까?

한국 언론매체들은 미국이 전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상시배치하는 경우 중국과 러시아를 너무 자극할까봐 한국의 간청을 거절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하였지만, 그것은 빗나간 추측이다. 전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상시배치해달라는 한국의 간청을 미국이 거절한 까닭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첫째, 만일 전략핵폭격기, 전략핵잠수함, 항모타격단 같은 미국의 전략타격수단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한국에 상시배치되면, 미국은 그에 따른 엄청난 운영비를 지출해야 한다. 해마다 증가되는 국방예산자동삭감조치로 허덕이는 미국이 전략타격수단 상시배치에 요구되는 엄청난 운영비를 마련할 방도는 전혀 없다. 미국의 국가재정은 전략타격수단을 한국에 상시배치하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매우 궁색한 처지에 있다.

둘째, 미국의 전략타격수단들이 한국에 나타날 때, 그 전략타격수단들에는 핵탄이 장착 또는 탑재되지 않는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핵전쟁을 결정하지 않는 한, 해외작전구역으로 출동하는 미국의 전략타격수단들에는 핵탄이 장착 또는 탑재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 이따금 나타나는 미국의 전략타격수단들은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와 같다.

조선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므로, 핵탄 없는 전략타격수단들이 한국에 나타날 때마다, “미제의 도발광란”이라고 맹비난하면서도 속으로는 피식 비웃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핵탄 없는 전략타격수단은 비대하고 무거운 느림보이므로, 조선인민군이 자기의 ‘주특기’라고 말하는 불의의 기습타격을 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한국에 나타난, 핵탄 없는 전략타격수단들은 조선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조선의 비웃음을 받는 한심한 존재라는 정반대의 사실이 드러난다.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미국이 그런데도 핵탄 없는 전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자꾸 보내는 까닭은 박근혜 정권이 핵공포에 떨지 않고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미국이 한국의 간청을 받아들여 핵탄 없는 전략타격수단들을 상시배치하면, 조선은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가장 확실한 예방타격명분을 갖게 될 것이다.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은 전쟁이 임박하였을 때 적국을 먼저 공격하여 전쟁을 시작하는 군사행동이고, 예방타격(preventive strike)은 전쟁이 임박하지 않았어도 적국의 증강되는 공격능력을 미리 제거하여 전쟁을 사전에 예방하는 군사행동이다.

1994년에는 미국이 조선의 녕변핵시설을 공습으로 파괴할 것처럼 떠들썩하게 광고하면서 예방타격명분을 들고 나왔었는데, 오늘에는 미국이 핵탄 없는 전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상시배치하는 것이 조선에게 예방타격명분으로 된다. 지금 조선의 전략핵압박을 받으며 벼랑끝에 떠밀린 미국이 조선에게 그런 예방타격명분을 주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이므로, 한국이 또 다시 간청해도 미국은 그 간청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2. 미국의 대조선경제제재가 실패로 끝난 원인

핵탄 없는 전략타격수단을 한국에 출동시키는 것으로는 조선을 압박하지 못하는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압박수단은 경제제재뿐이다. 그래서 미국은 유엔안보리를 동원한 “물샐틈없는 제재”로 조선의 핵무장을 해제하겠노라고 떠들썩하게 광고하고 있다.

이를테면, 2016년 10월 14일 대니얼 크리튼브링크(Daniel J. Kritenbrink)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선임보좌관은 경제제재의 목적은 조선을 붕괴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조선을 비핵화의 길로 돌아오도록 압박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른 팔러씨(Foreign Policy)> 2016년 10월 6일부 기사에 따르면, 오바마 정부는 이란이 국제금융체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던 것과 유사한 강경한 제재조치를 조선에게 적용하는 방안을 이미 마련해놓았는데, 그것을 실행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백악관 안에서 강행론자들과 신중론자들이 요즈음 격론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 <사진 2> 이 사진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6년 2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대조선경제제재조치를 실행하기 위한 문서에 서명하는 장면이다. 오마바 정부는 이란이 국제금융체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던 것과 유사한 강경한 제재조치를 조선에게 적용하는 방안을 이미 마련해놓았는데, 그것을 실행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요즈음 백악관에서 강행론자들과 신중론자들이 격론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백악관에서 벌어진다는 그런 격론은 쓸 데 없는 말싸움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지난 66년 동안 집요하게 매달려온 대조선경제제재는 100%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문가들도 그러한 실패사실을 인정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미국의 아시아정책연구원(Asian Institute for Policy Studies)과 고등방위연구센터(Center for Advanced Defense Studies)가 2016년 8월에 공동으로 펴낸 보고서 ‘중국의 그림자 아래서: 드러난 북조선의 해외연결망(In China's Shadow: Exposing North Korea's Overseas Networks)’을 읽어보면, 요즈음 백악관 내부에서 벌어진다는 강행론자들과 신중론자들의 격론은 쓸 데 없는 말싸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보고서는 미국이 유엔안보리를 앞세운 국제공조로 대조선경제제재를 감행했으나, 중국이 유엔안보리에서는 대조선경제제재를 찬성하고 뒤돌아서는 결의안을 이행하지 않는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아무런 실효도 거둘 수 없었음을 밝혀주었다.

미국의 인터넷언론매체 <38 노스(North)> 2016년 10월 20일부에 실린 글 ‘병진 대 제재정권 - 어느 쪽이 더 잘하는가? (Byungjin vs the Sanctions Regimes: Which Works Better?)’는 조선의 경핵병진노선과 미국의 대조선경제제재가 맞붙은 대결에서 경핵병진노선이 승리하였음을 논증하였고, 미국의 인터넷언론매체 <내셔널 인터레스트(National Interest)> 2016년 10월 21일부에 실린 글 ‘이란형의 타협은 왜 북조선에 통하지 않는가(Why an Iran-Style Deal Isn't Possible with North Korea)’는 미국의 대이란경제제재가 왜 조선에게는 통하지 않는지 논증한 바 있다. 지난 20년 동안의 경험이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의 대조선경제제재는 100%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위의 보고서들은 대조선경제제재가 실패한 원인들 가운데 부차적인 원인만 거론하였을 뿐, 그것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밝혀주지 못했다. 결정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대외무역을 하기는 하되 그것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의 기술, 원료, 자재, 부품을 가지고 공업화를 안정적으로 추진하면서 자립력을 끊임없이 축적, 강화해온 사회주의자립경제, 이제껏 그 어떤 나라도 구상하지 못했고 실현하지 못했던 사회주의자립경제, 바로 이것이 미국의 대조선경제제재가 100%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원인이다.

이를테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발표한 2015년도 조선의 대외무역동향을 보면, 수출은 26.9억 달러, 수입은 35.6억 달러였는데, 수출액은 전년에 비해 15% 줄었고, 수입액은 전년에 비해 20% 줄었다. 이것은 조선의 국가경제에서 대외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다는 것을 말해주며, 더욱이 그처럼 적은 비중마저도 기술, 원료, 자재, 부품의 국산화 추세에 따라 계속 줄어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과의 무역을 차단하지 않은 중국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대조선경제제재가 실패하였다는 견해는 부차적 원인만 거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이 지난 66년 동안 집착해온 대조선경제제재가 그처럼 100% 실패했는데도, 미국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대조선경제제재에 여전히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엔안보리에서 대조선제재결의안마저 채택하지 못하고 언론성명이나 발표하는 것으로 우물쭈물 넘어가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취재기자들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언론성명이나 발표하는 것은 압박이 아니라 헛발질로 보인다.  


3. 미국이 또 다른 교활한 술책을 꺼내든 까닭

조선은 미국이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할 때까지 전략핵압박을 인정사정없이 계속 가중시킬 것이다. 물론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 오바마 행정부는 조선의 가중되는 전략핵압박을 받고서도 어떻게 할 방도가 없으므로, 핵탄 없는 전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출동시키는 무모한 행동을 반복하거나, 빈 종잇장에 지나지 않는 언론성명을 발표하는 헛발질을 반복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권력누수상태에 빠져 그처럼 속수무책이라고 해서, 조선은 오바마 행정부가 조용히 퇴임하도록 방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복수심에 불타는 조선은 권력누수의 늪에 빠진 오바마 행정부가 퇴임하는 날까지 전략핵압박을 가중시키는 ‘무자비한 보복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늪에 빠진 코뿔소처럼 허우적거리는 오바마 행정부는 조선의 전략핵압박을 그냥 얻어맞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차기 행정부에게 한시바삐 정권을 넘겨주고 꽁무니를 내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심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미국의 차기 행정부에게 돌려지게 된다. 미국 중앙정보국 정보분석담당 부국장과 오바마 대통령의 정보고문단 의장을 지낸 제이미 미쉭(Jami Miscik)은 2016년 10월 18일 미국의 유명한 기업전문지 <포천(Fortune)>과 진행한 대담에서 “북조선의 핵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미국의 차기 대통령 당선자는 이전의 어떤 미국 대통령도 직면해보지 못한 조선의 핵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크게 우려하였다.

지난 20년 동안 조선의 전술핵압박에도 견디지 못해 여러 차례 조미핵협상에 다시 끌려나오곤 하였던 미국이 지금은 압박강도가 이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강해진 전략핵압박, 끝장을 볼 때까지 계속되는 전략핵압박을 받고 있으니, 그 결말은 너무도 뻔해 보인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조선의 전략핵압박에서 발생하는 강한 압박에너지가 미국 전체에 골고루 퍼져나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전략핵압박을 가장 심하게 받는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조선의 전략핵압박을 가장 심하게 받는 대상은 조선인민군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미국 전략사령부와 태평양사령부다.
▲ <사진 3> 이 사진은 2016년 9월 1일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국군사령관(오른쪽)이 워싱턴 디씨에서 쎄실 헤이니 미국 전략사령관(왼쪽)을 만나는 장면이다. 이 사진에 나타난 두 사람은 조선의 전략핵압박을 가장 심하게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은 바로 눈앞에서 조선인민군과 대치하고 있으므로 매우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데,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미국에서 조선의 전략핵압박을 가장 심하게 받고 있는 것은 미국 전략사령부와 태평양사령부다. 그래서 그들은 각종 전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출동시키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쎄실 헤이니(Cecil D. Haney) 미국 전략사령관의 말을 들어보면, 미국 전략사령부와 예하 부대들이 조선의 전략핵압박을 얼마나 심하게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2015년 3월 24일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난 몇 해 동안 북조선의 행동을 보면 그들은 자기들의 행동에서 매우 도발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미 세 차례의 핵시험을 하였다. 분명하게도, 그들의 핵야심은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그들은 핵탄두를 소형화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나의 위치에서 아주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그들이) 그렇게 하였으리라고 보면서, 우리의 억제와 보장, 그리고 연관된 대응선택의 견지에서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해리 해리스(Harry B. Harris) 태평양사령관의 말에서는 한층 더 심한 압박감이 묻어나온다. 그는 2015년 5월 25일 미국의 유력주간지 <타임(Time)>과 회견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북조선”이라고 하면서 “북조선 때문에 나는 밤잠을 설친다”고 말했고, 2015년 10월 10일 미국 국방부 출입기자단에게는 “내가 날마다 직면하는 가장 큰 위협은 북조선으로부터 오는 위협이다. 왜냐하면 북조선과 그 군대를 완전히 통제하는, 예측할 수 없는 지도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공격능력을 개발하게 되는 날, 조선은 하와이와 미국 본토에 “매우 실제적인 위협(very real threat)”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조선의 전략핵압박을 가장 심하게 받는 미국 전략사령부와 태평양사령부는 그에 대응하기 위해 핵탄 없는 전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출동시키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그들이 핵탄 없는 전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출동시키는 진짜 목적은 핵공포를 느끼는 박근혜 정권을 안심시키는 진정효과를 얻으려는 것인데, 똑같은 일을 자꾸 반복하다보니 진정효과도 차츰 감소되기 마련이다. 미국은 핵탄 없는 전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출동시키는 것으로는 박근혜 정권을 안심시키는 데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미국은 교활한 술책을 하나 더 꺼내들었다.


4. 구허날조가 노리는 허위선전의 목표

미국이 꺼내든 교활한 술책이란 거짓말을 꾸며내는 구허날조(構虛捏造)인데, 미국 전략사령부가 그 일에 앞장섰다. 미국 전략사령부 대외홍보실은 2016년 10월 16일 (현지날짜는 15일) 다음과 같은 보도문을 발표하였다.

“미국 전략사령부는 2016년 10월 14일 중부시간으로 오후 10시 33분(평양시간으로는 10월 15일 오후 12시 3분-옮긴이) (조선의) 북서부에 있는 구성시 인근에서 우리가 평가(assess)하기로는 실패한 북조선의 미사일발사를 포착(detect)하였다. 그 미사일은 무수단 중거리탄도미사일인 것으로 추정(presume)된다.”

그 보도문에서 화성-10 시험발사가 실패하였음을 밝힌 대목은 위에 인용한 두 문장뿐이다. 미국 전략사령부는 그들이 화성-10 시험발사로 추정한 현상이 일어난 시각으로부터 약 16시간이 지난 뒤에 위의 보도문을 발표하였다.
▲ <사진 4> 이 사진은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풋공군기지에 있는 미국 전략사령부 내부를 촬영한 것이다. 조선의 전략핵압박을 가장 심하게 받고 있는 미국 전략사령부는 올해 들어 새로운 술책을 꺼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구허날조술책이다. 조선이 화성-10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지도 않았는데, 시험발사하였으나 실패하였다는 구허날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구허날조는 지난 4월 15일부터 10월 20일까지 무려 일곱 차례나 반복되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주목되는 것은, 위의 보도문에서 ‘평가’나 ‘추정’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미국 전략사령부가 조선의 미사일이 정말 시험발사되었는지 아니면 미사일시험발사와 흡사한 어떤 다른 현상이 일어났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추측했을 뿐이고, 그 발사체가 화성-10인지 아니면 다른 발사체인지도 확인하지 못하고 추측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미국 전략사령부가 제기한 화성-10 시험발사 실패설은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아리송한 추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 전략사령부의 그런 아리송한 추론은 한국군 합참본부의 손을 거치면서 확정적인 사실로 가공되었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미국 전략사령부의 보도문이 나온 시각으로부터 약 3시간이 지난 10월 16일 오전 7시경 “북한이 15일 오후 12시 33분께 평안북도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에서 미상의 미사일 1발을 발사했지만 발사 직후 실패했다”고 밝혔다. 그들은 화성-10이라고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탄도미사일 발사가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지 않고, 실패했다고 단정하였다. 더욱이 한국군 합참본부는 미국 전략사령부의 실패추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발사 직후 실패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였는데, 이것은 아리송한 추론을 제멋대로 가공처리한 것이다.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군 합참본부의 그런 자의적 단정이 한국 언론매체의 손을 거치면서 조선이 화성-10을 시험발사하였으나 “공중폭발로 실패하였다”는 공중폭발설로 둔갑하였다는 점이다. 
위에 서술한 내용을 살펴보면, 미국 전략사령부의 구허날조는 한국군 합참본부의 자의적 가공처리와 한국 언론매체들의 왜곡보도를 통해 ‘화성-10 시험발사 공중폭발설’로 변신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미국 전략사령부의 구허날조, 한국군 합참본부의 가공처리, 한국 언론매체들의 왜곡보도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추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구허날조를 확정된 진실로 바꿔놓는 둔갑과정이었다. 그런 둔갑술은 2016년 10월 20일에도 글자 하나 달라지지 않고 똑같은 절차와 형식으로 반복되면서 ‘화성-10 시험발사 공중폭발설’을 또 다시 제기하였다. 올해 들어 미국 전략사령부가 화성-10 시험발사실패를 발표한 사례를 날짜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4월 15일 - 1차 실패
4월 28일 - 2차, 3차 연속실패
5월 31일 - 4차 실패
6월 22일 - 5차 실패
10월 15일 - 6차 실패
10월 20일 - 7차 실패

그런데 위에 열거한, 미국 전략사령부가 발표한 화성-10 시험발사실패사례들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할 필요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 전략사령부와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1차 실패로부터 5차 실패는 모두 강원도 원산 인근에 있는 호도반도 미사일시험발사장에서 진행되었고, 6차 실패와 7차 실패는 평안북도 구성시 인근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는 안전위험이 뒤따를 수 있으므로 해안에서 바다쪽으로 발사하는 것이 관례다. 그래서 조선의 미사일시험발사장은 호도반도에 건설되었고, 거기서 탄도미사일을 동해쪽으로 시험발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평안북도 구성은 동해안에서 내륙으로 약 240km 들어간 지역이다. 거기에는 미사일시험발사장이 없다. 그런 내륙지역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이 내륙상공을 지나는 중에 자칫 오작동을 일으키면, 그 탄도미사일을 공중에서 폭발시켜야 한다. 탄도미사일이 발사된 뒤 일정시간 동안 발사통제실에서 발신하는 통제신호를 수신하지 못하고 날아가는 경우, 궤도를 이탈하여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떨어지는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탄도미사일에 내장된 자폭회로가 자동적으로 가동되어 공중에서 폭발하게 된다. 특히 화성-10 같이 동체가 큰 탄도미사일이 공중에서 폭발하는 경우 폭파된 잔해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게 되므로,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해안에서 동해쪽으로 발사하는 것이 관례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동해안에서 내륙으로 240km나 들어간 평안북도 구성 인근에서 화성-10을 발사하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로 들린다.
▲ <사진 5> 이 사진은 2015년 2월 시리아정부군 Mi-8 헬기가 반군이 쏜 지대공미사일에 피격당하는 장면이다. 피격 순간 커다란 폭발화염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탄도미사일 연료에 비해 그리 많지 않은 항공연료를 실은 무게 13톤의 Mi-8 헬기가 피격으로 폭발해도 그처럼 커다란 폭발화염이 일어나는데, 폭발력이 매우 강한 액체추진제가 가득 채워진 무게 20톤의 화성-10 탄도미사일이 만일 공중에서 폭발하면 엄청난 화염이 일어나고 폭파된 잔해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런 안전위험을 피하기 위해 조선은 미사일시험발사장을 해안에 건설해놓고 동해쪽으로 발사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동해안에서 내륙으로 240km나 들어간 평안북도 구성 인근에서 화성-10을 발사하였다는 미국 전략사령부의 발표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로 들린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둘째, 만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실패하는 경우, 실패원인을 분석, 규명해야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설계오류를 수정, 보완해야 하고, 문제가 발생한 부분을 수리해야 한다. 시험발사를 하는 목적이 거기에 있다. 그러므로 시험발사에서 실패한 경우 다음번 시험발사까지는 아무리 빨리 다그쳐도 1개월 정도 걸린다.

그런데 미국 전략사령부가 발표한 일곱 차례의 화성-10 시험발사실패사례를 보면, 조선은 문제가 발생한 부분을 수리하기는커녕 설계오류를 수정, 보완할 시간도 없이, 그리고 실패원인을 분석, 규명할 시간마저 없이 급하게 추가발사를 거듭해온 것이다. <뉴시스> 2016년 10월 20일 보도기사에서 한국군 관계자는 “북한이 첫 무수단 발사에 실패한 직후 (한국)군에서 판단하기로는 문제점을 개선해 다시 발사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지만 우리 판단과 다르게 상당히 빠른 템포(박자를 뜻하는 외래어-옮긴이)로 추가발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일 조선이 화성-10 시험발사의 실패원인을 분석, 규명하지도 않고 추가발사를 거듭해왔다면, 그것은 조선이 화성-10을 맹목적으로 일곱 차례나 계속 발사하였다는 뜻이다. <연합뉴스> 2013년 6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화성-10 한 발의 가격은 1억 달러가 넘는데, 그처럼 값비싼 탄도미사일을 맹목적으로 일곱 차례나 발사하였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뉴시스> 2016년 10월 20일 보도기사의 괴이한 추측에 따르면, “북한이 무수단 발사를 서두른 배경에 김정은 정권의 조급증이 깔려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급증에 빠진 조선이 시험발사의 실패원인을 분석, 규명하지 않고, 설계오류를 수정, 보완하지도 않아 또다시 실패할 것이 뻔해 보이는 시험발사를 계속하면서 실패를 일곱 차례나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엉터리 추론은 중학생 수준의 지능으로 생각해봐도 황당한 궤변처럼 들린다.

미국 전략사령부의 구허날조에 따르면, 조선은 화성-10 시험발사를 이제껏 여덟 차례 진행하여 단 한 차례만 성공하였고 일곱 차례는 실패한 셈이다. 이것은 시험발사 성공률이 겨우 12.5%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한국군의 경우, 새로 만든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서 합격하려면 성공률이 75% 이상이어야 하는데, 화성-10 시험발사 성공률이 12.5%라면 그 탄도미사일은 실전에서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화성-10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는 무기이므로 박근혜 정권은 핵공포를 느끼지 말고 안심해도 된다는 것, 바로 이것이 미국 전략사령부의 구허날조가 노리는 허위선전의 목표인 것이다.


5. 방현비행장 인근에 세워진 정체불명의 군사시설

미국 전략사령부가 화성-10 시험발사가 실패하였다고 구허날조한 2016년 10월 15일 오후 12시 3분에 평안북도 구성시 북서부 인근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 <사진 6> 이 사진은 평안북도 구성시 주변에 있는 각종 군사시설들을 표시한 것이다. 중요한 군사시설들이 그 지역에 밀집되어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구성시 주변에서 흰색 사람모양의 표식 5개는 군부대 위치를 표시한 것이고, 붉은 동그라미 안에 A라고 써넣은 표식 6개는 지대공미사일기지 위치 또는 고사포진지 위치를 표시한 것이고, 흰색 육각형으로 나타난 표식 4개는 다른 군사시설들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방현비행장(공군기지), 방현비행기공장, 방현직승기(헬기)공장이 구성시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사진 6>을 보면, 평안북도 구성시 주변에는 중요한 군사시설들이 밀집되어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 사진에서 흰색 사람모양의 5개 표식은 군부대 위치를 표시한 것이고, 붉은색 동그라미 안에 A라고 써넣은 6개 표식은 지대공미사일기지 위치 또는 고사포진지 위치를 표시한 것이고, 흰색 육각형으로 나타난 4개 표식은 다른 군사시설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방현비행장(공군기지), 방현비행기공장, 방현직승기(헬기)공장이 구성시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어느 위성영상분석가가 미국 상업위성이2014년 5월 27일에  촬영한 영상자료를 분석하던 중 방현비행장에서 북쪽으로 9.7km 떨어진 곳에 정체불명의 군사시설이 거의 완공단계에서 건설되고 있는 현장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 <사진 7> 이 위성영상사진은 미국의 어느 위성영상분석가가 미국 상업위성이 2014년 5월 27일에 촬영한 영상자료를 분석하던 중 방현비행장에서 북쪽으로 9.7km 떨어진 곳에 건설된 정체불명의 군사시설을 보여준다. 이 군사시설은 2014년 10월 21일에 완공되었다. 이 군사시설의 길이는 914m를 조금 넘는다. 얼핏 보면 비행장 활주로처럼 보이지만, 활주로처럼 생긴 평지 한복판에 직사각형 시설이 세워졌으니 활주로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활주로처럼 생긴 시설 아래쪽에 헬기이착륙장이 두 개나 있는 것을 보면, 이 군사시설이 매우 중요한 시설임을 직감할 수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사진 7>에서 보는 것처럼, 그 군사시설은 손잡이가 긴 기역자처럼 생겼다. 위성영상분석가의 말에 따르면, 군인건설부대가 매우 짧은 기간에 건설공사를 진척시킨 덕택에 그 군사시설은 2014년 10월 21일에 완공되었는데, 길이는 914m를 조금 넘고, 아래쪽에 두 개의 헬기이착륙장이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 군사시설은 얼핏 보면 비행장 활주로처럼 보이지만, 활주로는 아니다. 왜냐하면, 활주로처럼 생긴 평지 한복판에 직사각형 시설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활주로처럼 보이는 평지의 왼쪽 끝에는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세 개의 원형 시설도 세워졌다. 이처럼 큼지막한 직사각형 시설이 평지 한복판에 세워진 것을 보면, 그 군사시설이 활주로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또한 그 정체불명의 군사시설이 헬기이착륙장을 두 개씩이나 갖고 있는 것은 그 군사시설이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군사시설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그 정체불명의 군사시설은 어디에 쓰이는 시설일까? 위성영상분석가는 미국인 군사전문가들과 토론한 끝에, 그 정체불명의 군사시설이 무인비행기와 관련된 시설이 아니면 로켓엔진연소시험시설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하지만 그 정체불명의 군사시설은 로켓엔진연소시험시설로 보이지는 않는다. 로켓엔진연소시험시설은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 있는 데, 거기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평안북도 구성시 인근에 또 다른 로켓엔진연소시험시설이 추가로 건설될 리 없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 정체불명의 군사시설은 무인비행기 격납고를 가진 발진기지인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위의 사진에 나타난 직사각형 시설은 무인비행기들이 들어가는 격납고로 추정되고, 활주로처럼 생긴 평지는 무인비행기 발진주로로 추정되는 것이다. 인근에 있는 방현비행기공장에서 무인비행기가 생산되고 있다는 점도 그런 추정을 뒷받침해준다. <연합뉴스> 2016년 7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방현비행장 동남쪽에 있는 장군대산 지하에 방현비행기공장이 있는데, 거기서 각종 미그 전투기들에 들어가는 부품들과 여러 종의 무인비행기가 생산된다는 것이다.

이왕에 무인비행기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선의 무인비행기 생산에 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38 노스> 2016년 1월 19일부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벌써 1990년대 초부터 방현비행기공장에서 무인비행기가 생산되고 있으며, <연합뉴스> 2016년 1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2000년대 초부터는 그 공장에서 무인정찰기가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 <사진 8> 이 사진은 미국 공군이 운용하는 고고도 무인정찰공격기 MQ-9 리퍼(Reaper)가 격납고에 들어가 있는 장면이다. 대당 가격이 1,700만 달러나 하는 이 무인정찰공격기는 시속 313km의 속도로 14시간 동안 1,800km를 날아갈 수 있다. 작전고도는 7.5km이다. 공대지미사일 4발과 정밀유도폭탄 2발로 무장한다. 미공군이 운용하는 무인정찰공격기들 가운데 공대공미사일로 무장한 것은 프레더터다. 미국의 무인정찰공격기 프레더터가 공대공미사일 4발로 무장하였으니, 조선의 무인정찰공격기 '두루미'도 공대공미사일 4발로 무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방현비행장 인근에 있는 무인비행기 발진기지에서 올해 초부터 무인정찰공격기 '두루미'의 시험비행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두루미'가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여 무인표적기를 격추하는 시험비행을 진행하는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연합뉴스> 2015년 9월 2일 보도에 따르면, 2015년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중동부전선에서 한국군 “전투기 2대와 헬기 1대가 대응출격해서 (조선의) 무인기를 찾느라 허둥댔지만 실패했고, 북한 무인기는 유유히 MDL(군사분계선을 뜻하는 영문약자-옮긴이)을 넘어 북쪽으로 사라졌다”고 하는데, 이것은 조선이 무인정찰기를 운용하는 실전기술을 고도로 발전시켰음을 말해준다. 미국 신안보연구센터(CNAS)의 밴 잭슨(Van Jackson) 연구원은 2014년 10월 22일 워싱턴 디씨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 “북조선이 무인비행기부대를 대규모로 확대하면, 그 부대는 조선인민군 부대들 중에서 가장 큰 위협적인 존재로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 바 있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정보를 염두에 두고,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 전략사령부가 화성-10 시험발사가 실패하였다고 구허날조한 바로 그 현장 인근에 각종 무인비행기를 생산하는 방현비행기공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지난 20년 동안 무인비행기개발기술을 꾸준히 축적, 발전시켜온 조선은 마침내 무인비행기개발의 최고단계인 무인정찰공격기를 생산하는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 <연합뉴스> 2016년 3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방현비행기공장에서 만든 무인정찰공격기 ‘두루미’가 2016년 초에 시험비행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위에서 서술한 두 가지 정보를 종합해보면, 요즈음 방현비행장 인근에서 무인정찰공격기 ‘두루미’ 시험비행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인정찰공격기는 영상촬영으로 정찰활동도 할 수 있고, 공대공미사일 또는 공대지미사일로 공격활동도 할 수 있는데, 미국의 무인정찰공격기 프레더터(Predator)가 공대공미사일 4발로 무장하였으니, 조선의 무인정찰공격기 ‘두루미’도 공대공미사일 4발로 무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인정찰공격기 ‘두루미’가 요즈음 진행되는 시험비행 중에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여 무인표적기를 격추하면, 공중에서 폭발화염이 일어나게 된다. 

미국군이 운용하는 조기경보위성은 조선 영공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발화염을 포착할 수 있지만, 한국군이 운용하는 탐지레이더는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수 백 km 떨어진 상공에서 1km 이하의 낮은 고도에서 일어난 폭발화염을 포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서부전선 군사분계선에서 직선거리로 약 300km 떨어진 방현비행장 인근 상공의 낮은 고도에서 시험비행 중인 ‘두루미’가 공대공미사일로 무인표적기를 격추하는 경우, 발생되는 폭발화염을 포착할 수 있는 탐지수단은 오직 미국의 조기경보위성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 전략사령부가 조기경보위성이 촬영한 영상자료를 보고, 무인정찰공격기가 무인표적기를 격추할 때 생기는 화염과 탄도미사일이 공중에서 폭발할 때 생기는 화염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조기경보위성에 실린 적외선영상촬영기에는 비행체형태는 나타나지 않고 화염형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미국 전략사령부가 화염형태만 나타난 조기경보위성 영상자료를 가지고 화성-10 시험발사가 실패하였다고 분석한 것이 허구날조였음을 말해준다. 한국군 합참본부와 한국 언론매체들은 그 허구날조를 단계적으로 가공처리하여 화성-10 공중폭발설을 꾸며낸 것이다.

미국은 그런 허구날조술책으로 박근혜 정권을 당분간 안심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허구와 날조는 정세오판을 낳고, 정세오판이 거듭되면 벼랑끝에 몰린 미국은 어느 날 벼랑 아래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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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8

밀사의 청와대 비밀회동과 조선의 전략핵압박

[한호석의 개벽예감](223)
자주시보 2016년 10월 17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6월 이후 갑자기 강도가 높아진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
2. 미국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에 나타난 밀사
3.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꾸는 전환계기
4. 전술핵압박을 전략핵압박으로 전환시킨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
5. 미국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6. 조선의 대미전략은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어떻게 다른가?


▲ <사진 1> 한국의 인터넷언론매체 <오마이뉴스>에 실린 이 사진은 2016년 8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광복절 제71주년 경축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축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기는 장면이다. 그 날의 축사에서도 그는 공격적이고 극렬한 대북발언을 꺼내놓았다. 그의 대북발언은 특히 2016년 6월 이후 강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고립이니 자멸이니 응징이니 하는 매우 자극적인 말을 사용하는 공격성과 과격성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6월 이후 갑자기 강도가 높아진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

대북발언의 강도를 비교할 때,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은 이전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발언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격해졌다. 지난 몇 달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공격적이며 극렬한 대북발언을 연신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을 보도한 언론기사들을 분석하면, 한 가지 변화양상이 돋보인다. 원래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은 취임 직후부터 험하게 들려오기는 했지만, 특히 2016년 6월 이후 대북발언강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발언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립이니 자멸이니 응징이니 하는 매우 자극적인 말까지 사용하여 공격성과 과격성을 드러내었다. 2016년 6월 1일부터 이 글을 탈고한 10월  16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6월 6일 - 북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고집할수록 고립과 자멸에 빠질 것이라는 발언
6월 13일 - 비핵화 없는 북의 대화제의는 기만일 뿐이라는 발언 
7월 11일 북의 도발위협을 방치하는 것은 수많은 인명피해를 방치하는 것과 같다는 발언
8월 15일 - 북의 간부들과 주민들에게 행복을 추구할 새로운 기회를 안겨주겠다는 발언 
8월 23일 - 북측 체제가 균열조짐을 보이며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발언
8월 24일 - 북의 무력도발이 임박하였다는 발언
9월 6일 - 북의 무력도발은 북의 자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발언
9월 12일 - 북이 핵개발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발언
10월 1일 - 공포정치와 인권유린으로 고통 받는 북의 주민들이 탈북하여 남으로 오기 바란다는 발언
10월 11일 - 폭정에 신음하는 북에서 대량탈북이 있을 것을 예상해 대량탈북을 수용 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발언
10월 13일 - 북의 가혹한 공포정치가 북측 주민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으니, 탈북하여 남으로 오기 바란다는 발언
10월 16일 - 북에서 사회지도층 탈북이 증가하는 것은 폭압적인 공포정치를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발언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이 지난 6월 이후 더욱 공격적이고 극렬하게 바뀐 원인은 무엇일까?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비공개로 서울을 방문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얼핏 봐서는 서로 무관하게 그 두 현상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었는지 인과관계를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2016년 5월 4일부터 1박2일 비공개로 서울을 방문하고 워싱턴 디씨로 돌아갔다.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1,750명 요원들이 근무하는 국가정보국장실(ODNI)을 이끌면서, 16개에 이르는 각종 국가정보기관들의 수장으로서 국가정보사업 전반을 감독, 지휘하며, 국가안보문제에 관한 극비정보를 작성하여 대통령에게 매일 직보하는 고위직이다.

그런 고위직에 있는 ‘거물’이 왜 갑자기 서울에 나타난 것일까? 그는 서울에서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협의한 것일까? 이 흥미진진한 물음에 해답의 실마리를 준 것은,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부와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부에 각각 실린 보도기사들이다. 그 두 보도기사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2. 미국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에 나타난 밀사

한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 나타난 클래퍼 국장은 한민구 국방장관, 빈센트 브룩스(Vincent K. Brooks) 주한미국군사령관, 청와대 고위당국자, 국가정보원 고위당국자를 줄줄이 만났다고 한다. 그러면 그는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만나지 않은 것일까?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 보도기사에서 한국 정부 “핵심 소식통”은 클래퍼 국장이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느냐고 묻는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자, 그 문제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잡아뗐다. 만일 클래퍼 국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다”고 명백히 답변 하면 되는데, “확인해줄 수 없다”는 아리송한 답변을 꺼내놓은 것은, 그 두 사람의 비밀회동사실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 <사진 2> 이 사진은 2011년 2월 3일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백악관 대통령집무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어떤 정보사항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다. 국가정보사업 전반을 감독, 지휘하는 클래퍼 국장은 매일 대통령집무실에 들어가 극비정보를 대통령에게 직보한다. 그런데 그런 '거물'이 2016년 5월 4일 갑자기 서울에 나타났다. 여러 정황들을 분석해보면, 미국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서울에 밀사로 급파된 클래퍼 국장은 언론 취재망을 따돌리고 은밀히 청와대에 들어가 박근혜 대통령과 비밀회동을 가졌다. 미국 대통령 밀사와 한국 대통령의 비밀회동은 당시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클래퍼 국장의 이전 서울방문사례를 들춰보면, 그는 2011년 5월 30일 서울방문 중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만났고, 2014년 5월 13일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드러난다. 이전에 있었던 두 차례 회동사례를 보면, 그가 2016년 5월 4일 서울방문 중에도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클래퍼 국장이 2011년 5월과 2014년 5월에 각각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그가 한국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고, 당시 체류일정도 2박3일로 잡혔었는데, 2016년 5월 그가 서울을 세 번째로 방문했을 때는 한국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며 체류일정도 1박2일로 짧아졌다. 이것은 2016년 5월 세 번째 서울방문이 이전에 있었던 두 차례 서울방문과 달리, 뭔가 급하고, 더 중대한 임무를 갖고 방문한 것이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2016년 5월 4일 클래퍼 국장을 서울에 보낸 사람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이다. 국가정보국장이 대통령의 지시나 허락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다른 나라를 비공개로 방문해서 그 나라 수뇌를 만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6년 5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은 클래퍼 국장을 서울에 급파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중대한 문제를 협의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백악관이 다른 나라에 대통령 특사(presidential envoy)를 파견하게 되면, 일정한 외교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준비시간이 요구된다. 하지만 매우 중대한 국가안보문제가 불거져 시간이 촉박한 경우에는 외교절차를 생략하고 밀사(secret emissary)에게 특명을 주어 급히 파견하는 관례가 있다. 그런 특별관례를 생각하면, 2016년 5월 4일 서울을 비공개로 방문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비밀리에 만난 클래퍼 국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급파된 밀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 대통령 밀사와 한국 대통령의 비밀회동은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음을 말해준다.   

클래퍼 국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까?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 보도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외교안보부문 고위당국자”가 전한 말을 인용한 그 보도기사에는 “클래퍼 국장과의 대화 내용 중에는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과 관련한 논의를 할 경우 한국이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문의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인용문은 클래퍼 국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에서 조미평화협정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준다. 만일 그 충격적인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면, 청와대는 자기에게 몰아친 일파만파를 수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밀사를 보냈는지, 그리고 왜 과거사례들과 달리 청와대 비밀회동이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는지, 이제야 분명해진다.

“한미동맹은 영원무궁하다”고 외치는 미국의 선전을 티끌만한 의심도 없이 믿어온 열렬한 동맹예찬론자이며, 주한미국군과 핵우산이 한국과 자신을 지켜준다는 미국의 선전을 신봉하는 정통파 친미주의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밀사가 자신에게 느닷없이 조미평화협정문제를 꺼내놓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꽤 컸을 것이다. 조미평화협정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핵우산을 철거하는 지름길이고,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의 폭발뇌관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어찌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았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아니 그로서는 종내 생각하기 싫은 조미평화협정문제가 미국 대통령 밀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충격적인 장면은, 비밀회동 직후인 2016년 6월 초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공격적이고, 극렬한 대북발언을 계속 쏟아내고 있는 원인을 밝혀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대북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클래퍼 국장과 만난 비밀회동에서 받은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심리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꾸는 전환계기

지난 40여 년 동안 조선은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제의를 수없이 보냈으나, 미국은 성의 있는 답변을 보내기는커녕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며, 되레 각종 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여 조선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실전급 대북공격연습으로 대답하였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밀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은 그처럼 오만방자한 미국이 이제는 자기 입으로 조미평화협정문제를 거론할 만큼 태도를 바꾸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미국의 오만방자한 태도가 그 만큼이라도 바뀐 것일까? ‘세계의 지배자’로 자처하는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꿔놓을 극적인 전환계기는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적국이 힘을 집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확 떠밀어버릴 때, 바로 그럴 때 파멸공포에 전율하는 ‘거대한 공룡’은 황망히 꼬리를 내리며 적국에게 “우리 더 이상 싸우지 말자”고 간청하게 되는 것이다.

“날강도 미제와는 반드시 피의 결산을 보아야 한다”며 적개심과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조선이 핵무장을 완성하여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핵타격력을 갖춘 여세를 몰아 미국을 벼랑끝으로 힘껏 떠밀어 백악관을 파멸공포로 전율하게 만들었을 때, 바로 그럴 때 미국은 이제껏 40여 년 동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평화협정문제를 황망히 꺼내들며 “우리 더 이상 싸우지 말자”고 간청하게 되는 것이다.
▲ ▲ <사진 3> 이 사진은 1953년 7월 27일 김일성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하는 장면이다. 6.25전쟁은 3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교전쌍방이 정전협정문에 각각 조인한 시간은 불과 3시간이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포성은 멎었으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언제 전쟁이 재발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무력대치상태가 63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 동안 조선은 미국에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을 바꾸어 평화를 실현하자고 수없이 제의해왔으나, 미국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며 되레 온갖 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는 핵위협으로 대답하였다. 그런데 2016년 5월 4일 비록 세상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 대통령 밀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조미평화협정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주목하는 것은, 미국 대통령 밀사가 조미평화협정이라는 사상 최대의 안보문제를 가지고 박근혜 대통령 앞에 나타나기 11일 전인 2016년 4월 23일 조선에서 일어난 사변이다. 그 날 조선은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초강력한 핵타격수단의 위력을 세상에 보여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전략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을 수중발사하는 시험에 성공한 것이었다.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극성’ 수중발사시험을 지도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제는 남조선괴뢰들과 미제의 뒤통수에 아무 때나 마음먹은 대로 멸적의 비수를 꽂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시뻘건 불줄기를 내뿜으며 동해 바다 속에서 솟구쳐 올라 포물선 비행운을 하늘가에 수놓으며 날아간 ‘북극성’이 예리한 비수가 되어 자기 뒤통수에 꽂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 미국은 지난 40여 년 동안 입 밖에 전혀 꺼내지 않던 조미평화협정문제를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비밀회동에서 꺼내놓았던 것이다.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서울에 나타난 클래퍼 국장은 청와대로 가기 전 국방부에 들러 한민구 국방장관과 담화하면서 “북한이 지난달 23일 함경남도 신포 앞바다에서 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북극성, KN-11)의 위협능력과 개발실태도 공동평가”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대통령 밀사를 청와대에 급파한 미국의 관심이 조선의 ‘북극성’ 수중시험발사에 온통 집중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청와대 비밀회동을 거론하면서 그냥 스쳐갈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미국이 조선에게 평화협정을 먼저 간청하는 게 아니라, 조선이 미국에게 그 문제를 제의해오면 그에 응하겠다는 단서가 미국의 손에 들려있었다는 점이다.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 보도기사에서 한국의 외교안보부문 당국자는 “중국이 평화협정 논의의 필요성을 워낙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데다 북한도 당대회 이후 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클래퍼 국장이 평화협정을 거론한 것은 그런 국면에 대비하는 차원 같다”고 말했는데,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미국은 청와대 비밀회동이 있은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2016년 5월 6일부터 나흘 동안 평양에 있는 4.25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이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공식 제의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 제의에 응답할 긴급준비가 요구되었기에 대통령 밀사를 청와대에 급파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사진 4> 미국 대통령 밀사 클래퍼 국장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비밀회동을 가진 날로부터 이틀 뒤인 2016년 5월 6일 평양에 있는 4.25문화회관에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가 개최되었다. 위의 사진은 당대회 둘째날 김정은 당위원장이 사업총화보고를 하는 장면이다. 미국은 김정은 당위원장이 사업총화보고에서 평화협정을 제의할 것으로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기 위해 대통령 밀사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급히 보냈지만, 미국의 그런 섣부른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제의하지 않았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미국의 그런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미국의 섣부른 예측과 달리,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제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미국은 핵강국의 전렬에 들어선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여야 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조선에서 침략군대와 전쟁장비들을 철수시켜야 합니다.”


4. 전술핵압박을 전략핵압박으로 전환시킨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

과거에는 조선이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수없이 제의했으나 요즈음에는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제의하지 않는 까닭은,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이 대미핵협상을 영구히 중지하고 대미핵압박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지난날 조미핵협상이 진행되던 시기에, 미국이 억지와 전횡을 부려 협상이 중단되면 조선은 핵시험이나 탄도미사일발사연습을 단행하는 핵압박으로 미국을 몰아세워 핵협상을 재개시키곤 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핵무장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던 지난날 조선의 대미핵압박은 전술핵압박이었다. 조선의 전술핵압박은 미국의 억지와 전횡으로 중단된 핵협상을 다시 재개시키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 오늘 조선은 핵무장을 완성하여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전략적 핵공격력을 가졌으므로, 조선의 대미핵압박은 전술핵압박에서 전략핵압박으로 전환되었다. 조선의 전략핵압박은 미국의 억지와 전횡으로 중단된 핵협상으로 미국을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조선의 강력한 핵압박으로 벼랑끝에 떠밀린 미국이 벼랑에서 떨어져 파멸하든지 하는 최후의 양자택일로 미국을 끌어가는 것이다.

2016년에 조선의 대미관계에서 발생한 여러 현상들은 조선이 전략핵압박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이며 미국을 최후의 양자택일로 끌어가고 있으며, 조선의 연속적인 전략핵압박을 받는 미국은 양자택일의 아슬아슬한 벼랑끝으로 떠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정치사를 새로 쓰게 만들 사회주의핵강국과 제국주의핵강국의 숨 막히는 마지막 대결이 바야흐로 우리 눈앞에서 왕왕 벌어지는 중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올해 2016년에 들어와서 조선은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미는 전략핵압박강도를 높이기 위해 핵무기병기화 완성단계를 하나씩 세상에 공개해오고 있으며, 벼랑끝에 떠밀린 미국은 전략폭격기, 전략잠수함, 항모타격단 같은 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출동시키고,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 인권공세, 악선전, 정보유입 등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조선의 전략핵압박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의 핵무장 완성으로 조미관계의 전략균형이 깨져버린 것을 생각하면, 미국의 그런 군사적 움직임은 벼랑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모질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 <사진 5> 이 사진은 2015년 11월 4일 남해 해상작전구역에서 전쟁연습을 마치고 부산해군작전기지를 떠나는 미해군 제7함대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비행갑판에 미해군 병사들이 도열한 장면이다. 부산항 앞바다에 한 폭의 수채화처럼 떠있는 오륙도의 아름다운 풍치가 그들 어깨 넘어 멀리 보인다. 미해군 제7함대 항모타격단은 이 글을 집필하던 2016년 10월 중순에도 남해에 출동하여 전쟁연습을 감행하였다. 하지만 조선은 핵무장을 완성하여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핵타격력을 갖추었고, 그 힘으로 미국에게 전략핵압박을 가중시키며 미국을 벼랑끝으로 힘껏 떠밀고 있는 중이다. 요즈음 미국이 전략폭격기, 전략잠수함, 항모타격단을 한국에 출동시키고,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 인권공세, 악선전, 정보유입 등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은 조선의 강력한 전략핵압박에 떠밀린 벼랑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모질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지난날 조선의 전술핵압박은 핵협상궤도에서 이탈한 미국을 다시 끌어들기를 반복하면서 무려 10년 이상 지루하게 이어졌지만, 조선이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밀어버리고 있는 오늘 사회주의핵강국과 제국주의핵강국의 마지막 대결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날 것이다. 그 마지막 대결은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조선의 최후결전으로 미국이 파멸하든지 둘 중의 하나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이다.

예견하건대, 미국이 정세를 오판하지 않으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게 될 것이고, 미국이 정세를 오판하여 조선에게 덤벼들면 조선은 최후결전으로 미국을 파멸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016년 5월 4일 청와대의 문을 열고 들어선 미국 대통령 밀사의 입에서 조미평화협정문제가 나온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핵강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 못한 ‘겁쟁이’ 미국의 초라한 경력에 따르면,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5. 미국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면, 조선은 그 간청을 받아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미평화협정은 급속히 체결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과 미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밀고 당기는 장기적인 평화회담을 진행할 처지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조미평화회담이 지난날 진행되었던 조미핵협상처럼 장기화되면, 안보위험에 빠진 한국이 자기의 생존방도로 핵무기개발을 택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선과 미국에게 모두 매우 불리한 정세가 조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과 미국은 평화회담을 신속하게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조선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미국은 한국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미평화협정이 주한미국군 철수와 핵우산 철거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지 않고 핵우산을 철거하지 않으면서 평화협정을 체결할 길은 없다. 조선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목적은 미국이 아무 때나 휴지조각처럼 내던질 수 있는 평화협정문이나 받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켜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고 핵우산을 철거시켜 평화통일을 실현할 결정적인 정세변화를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다.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핵우산을 철거하는 날은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최후의 날이 될 것으로 예견된다. 다시 말해서, 조미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것과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의 대격변 속에서 벌어질 두 갈래의 사변들인 것이다. 

위와 같은 전망과 예측에 따르면, 2016년 5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이 밀사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기 전에 백악관 내부에서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을 포기하는 문제까지 폭넓게 논의된 것으로 추론된다. 이런 추론은 미국이 한국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온 동맹예찬론자들과 친미주의자들의 믿음이 몽매하고 허망한 환상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급격한 정세변화에 휘말린 미국이 태도를 갑작스럽게 180도 바꿔버린 충격적인 경험은 세계정치사에서 흔하다.

최근 한국의 일부 언론매체들이 정세변화에 휘말린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분석기사를 내보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문화일보> 2016년 9월 21일부에 실린, “미, 한국 떠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 중과 수교하면서 대만 ‘헌신짝’처럼 버려”라는 제목의 분석기사에 시선이 멎는다. 그 기사에서 한국의 어느 국제정치학자는 “우리 국민 중 상당수가 한미동맹은 아무런 문제없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우리는 미국이 지켜주기에 별 걱정할 것 없다고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에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은 결코 한국에서 떠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지적하였다.
▲ <사진 6> 이 사진은 1960년 6월 대만 타이뻬이를 공식 방문한 드와잇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이 장제스 당시 대만 총통과 그의 부인 쑹메이링과 함께 환영식장에서 걸어가는 장면이다. 아이젠하워는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유일하게 대만을 공식방문한 대통령이다. 대만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미국은 한때 대만에 미국군을 주둔시켰고, 대만방위사령부를 설치하였고, 대만을 미해군 제7함대 작전구역에 포함시켰고, 그로써 대만을 자기의 반공거점, 군사기지로 만들었지만, 미국과 대만의 그런 관계는 중미관계정상화라는 거대한 정세변화에 떠밀려 오래 가지 못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또한 그 기사에서는 지난날 미국과 대만의 관계변화를 거론하면서 “미국은 1972년(1979년을 착오함-옮긴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우방국인 대만을 버렸고, 대만은 유엔회원국 지위에서도 헌신짝처럼 내던져졌다”는 경험을 상기시키고, 미국이 대만을 포기한 것처럼 한국도 포기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였다.

하지만 그 보도기사를 쓴 기자는 미국-대만관계의 심층정보를 알지 못한 것 같다. 왜냐하면 미국은 대만을 포기하는 척하였으면서도, 실제로는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 지배권 안에 붙들어두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중국이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의 정치적 굴복을 받아내지 못했고, 되레 미국의 계략에 끌려 다니며 수교회담을 오랫동안 지루하게 진행하였던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날 중국, 미국, 대만 3자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는 오늘 조선, 미국, 한국 3자관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예측할 시사점을 준다는 점에서 살펴볼 만하다. 


6. 조선의 대미전략은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어떻게 다른가?

1954년 12월 2일 미국은 대만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고, 1955년 3월 3일 그 조약을 발효시켰다. 그로써 대만은 미국에게 안보를 내맡기고 미국의 지배를 받는 미국의 반공거점, 군사기지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그런 미국-대만관계가 언제까지나 원상대로 유지된 것은 아니었다. 

중국, 미국, 대만 3자관계에 변화를 불러일으킨 계기는 중미관계정상화였다. 1971년 7월 9일 당시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가 대통령 밀사로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하였는데, 그로부터 6일 뒤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son) 당시 미국 대통령은 중국 정부의 방중초청을 수락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로써 중국과 미국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중미수교회담이 시작된 배경과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은 핵무기와 위성운반로켓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자기의 전략적 지위를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이를테면, 중국은 1964년 10월 16일 자기의 첫 핵시험을 진행하였고, 1966년 10월 27일에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으며, 1967년 6월 17일에는 수소탄시험을 진행하였다. 중국은 핵무장에 성공한 이후에도 1990년대 중반까지 핵시험을 45차례나 진행하면서 자기의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강화, 발전시켰다.

그것만이 아니라, 중국은 1970년 4월 24일 자기의 첫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고, 1971년 3월 3일 두 번째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다.

중국이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하면서 중미관계의 전략균형은 깨져나갔는데, 그런 근본적인 정세변화가 시작되자 미국은 중국과 적대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1971년에 미국이 중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게 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둘째, 1960년대 중반부터 중국은 소련을 사회제국주의라고 헐뜯으며 타도대상으로 규정하였고, 미제국주의보다 사회제국주의가 더 위험한 존재라고 하면서 새로운 대소전략을 추진하였다. 그것은 중국이 소련을 고립시키기 위해 소련의 적국인 미국과 손을 잡는 전략이었다. 1971년에 중국이 미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게 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중국이 핵보유국, 인공위성발사국의 전략적 지위에 올라서자 유엔에서 중국의 지위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이를테면, 1971년 10월 25일 유엔총회는 “중국 대표를 유엔의 유일한 합법적인 대표”로 인정하면서, “장제스(蔣介石)의 대표들이 유엔에서 불법적으로 차지하였던 자리에서 그들을 축출”한다고 규정한 유엔총회 결의안 2758호를 채택하였다. 그로써 유엔은 대만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을 박탈하고 그 자리에 중국을 영입한 것은 물론이고, 대만의 유엔회원국 자격도 박탈하고 유엔 밖으로 완전히 축출해버렸다. 이것은 중화민국이라고 참칭해온 대만이 하루아침에 국가지위를 잃어버리고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었음을 말해준다.
▲ <사진 7> 위쪽 사진은 1971년 10월 25일 유엔총회에서 대만을 축출하고 중국을 받아들이는 결의안이 압도적인 다수로 통과되자 저우수카이 당시 대만 외무장관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퇴장하는 장면이다. 아래쪽 사진은 대만을 유엔에서 축출하고 중국을 유엔에 가입시킨다는 유엔총회 결의안이 통과된 순간, 현장에 있던 중국 정부대표들인 교관화와 황화가 기쁨에 넘쳐 활짝 웃는 장면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대만은 그런 최악의 안보위험 속에서도 붕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미국은 중국과 수교회담을 진행하면서도 대만과 단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대만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을 여전히 유지하였고, 대만방위사령부(Taiwan Defense Command)를 대만에 여전히 존치시키면서 대만을 미해군 제7함대 작전구역에 포함시켜놓았으며, 대만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공약을 재확인하였고, 미국산 무기수출과 군사교류를 통해 대만군을 강화시켰고, 대만과 무역 및 투자를 지속하였다. 
 
그런데 대만에게 또 한 차례 치명적인 안보위험이 닥쳐왔다. 그것은 1979년 1월 1일 중국과 수교한 미국이 대만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을 종결(terminate)하겠다고 대만에게 통고한 것이다. 그에 따라 1979년 4월 28일 미국은 대만방위사령부를 해체하고, 대만에 주둔하던 미국군 병력을 전원 철수하였다.

그러나 대만은 그런 최악의 안보위험 속에 두 번째로 빠졌는데도 붕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대만방위사령부를 해체하고, 대만에 주둔하던 미국군 병력을 철수하기 18일 전에 미국-대만 상호방위조약을 대체할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을 채택하였다. 대만관계법에서 미국은 만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경우 미국은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무력개입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해놓았다.

미국-대만 상호방위조약이 종결된 이후 미국군이 대만에 주둔할 수 없고, 미국군이 대만군과 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할 수도 없지만, 미국군은 여전히 대만군과 고위급 군사회담을 계속 진행하였고, 대만군 고위지휘관들을 미국에 불러와 군사교육을 계속하였으며, 미국산 무기들을 해외수출경로를 통해 대만군에게 끊임없이 제공하였다. 이런 사정은, 미국이 중미수교 이후 대만을 포기할 것으로 예상한 중국의 대미전략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음을 말해준다.

미국은 대만을 자기 지배권 안에 계속 붙들어두기 위해 중국과 대만을 각각 상대하는 노회한 책략을 펼쳤던 반면, 중국은 미국의 책략을 저지, 파탄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대만을 귀속시키는 통일위업을 성취하지 못하였다. 중미수교로 대만을 미국의 지배권에서 분리시켜 자기에게 귀속시키려던 중국은 아메리카제국의 음험한 본성을 간과하였기에 전략핵압박으로 그 제국을 강박하지 못한 것이다.
▲ <사진 8> 2016년 8월 24일 조선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를 받으며 전략잠수함 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그 소식을 대서특필한 보도기사에 "주체조선의 핵공격능력의 일대 과시"라는 표제를 달았다. 위의 사진은 그 날 동해 바다속에서 발사되어 해수면 위로 출수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이 시뻘건 불줄기를 내뿜으며 하늘로 솟구쳐오르는 장면이다. 초강력 전자기파(EMP)탄두를 장착한 '북극성' 한 방이면, 미국 본토 전역은 불과 5초 만에 죽음의 전신마비상태에 빠질 것이다. 미국군이 운용하는 군사위성감시체계와 미사일방어체계가 제아무리 발전된 탐지능력, 요격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북극성'을 탐지할 수도, 요격할 수도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극성'을 가리켜 미국의 뒤통수를 아무때나 마음먹은 대로 찔러버릴 '멸적의 비수'라고 표현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지금 조선이 바로 그런 '멸적의 비수'를 꺼내들고 전략핵압박을 가중시키고 있으므로,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도 어쩔 수 없이 양자택일의 벼랑끝에 떠밀려, 평화협정 간청이냐 미국의 멸망이냐를 택해야 하는 참으로 가긍한 신세가 된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주목되는 것은, 오늘 조선의 대미전략이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1970년대 초 중국은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의 지위에 올라 중미관계의 전략균형을 깨뜨렸으면서도 전략핵압박을 가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밀어버리지 못한 채 미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였고, 그래서 그 수교회담이 장기화되었고, 그런 틈에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오늘 조선의 태도는 전혀 다르다. ‘동방의 핵강국’, 위성발사국의 전략적 지위에 오른 조선은 조미관계의 전략균형을 깨뜨리고, 전략핵압박을 단계적으로 가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힘껏 떠밀어버리고 있으며,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미국이 조선의 최후결전으로 파멸하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최후의 양자택일을 강박하는 것이다.

지금 조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제의 뒤통수를 아무 때나 마음먹은 대로 찔러버릴 멸적의 비수”라고 표현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을 꺼내들고 전략핵압박을 단계적으로 가중시키고 있으므로,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도 어쩔 수 없이 양자택일의 벼랑끝에 떠밀려, 평화협정 간청이냐 미국의 멸망이냐를 택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만일 조선의 전략핵압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날에는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이 일어나게 될 것이며, 그로써 남과 북은 평화통일을 급속히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경우 급속히 실현될 통일씨나리오에 대해서는 2016년 10월 10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격동시대에 생각하는 평화협정, 핵무장, 평화통일’에서 논한 바 있다.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지금 조선은 중국도 손대지 못한 사상 최대의 경국대업,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을 굴복시킬 사상 최대의 경국대업을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고 오직 자력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구는 중국에 비해 55분의 1밖에 되지 않고, 영토는 중국에 비해 8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조선이 이런 이유로 스스로를 ‘천하제일강국’이라 자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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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1

격동시대에 생각하는 평화협정, 핵무장, 평화통일

[한호석의 개벽예감](222)
자주시보 2016년 10월 10일


<차례>
1. 2012년 3월 9일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일
2. 미국 일각에서 동결협상우선론이 제기된 배경
3. 조선의 핵무장 완성은 무엇을 뜻하는가?
4. 격동시대가 예고하는 통일씨나리오


▲ <사진 1> 2012년 3월 7일부터 9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조선과 미국이 대화를 진행하였다. 그 자리에 조선측에서 리용호 당시 외무성 부상과 최선희 당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 그리고 미국국 소속 인사 3명이 참석하였고, 미국측에서 연방정부 전직 관리들이 참석하였으며, 대화 마지막 날 존 케리 당시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이 기조연설자로 참석하였다. 그 대화에 참석한 최선희 당시 미국국 부국장은 만일 미국이 평화협정을 통해 안전보장을 약속한다면, 조선은 그에 상응하여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제기하였다. 그 제안을 들은 존 케리 외교위원장은 우리에게는 영원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이 곧 평양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그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미국은 조선이 제기한 마지막 제안을 받지 않는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다. 그 이후 조미관계에서는 대화, 협상, 연락이 모두 단절되었고, 적대감과 전쟁재발위험만 감돌게 되었다. 위의 사진은 2016년 9월 23일 리용호 조선외무상이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면서 조선의 핵무장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장면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2012년 3월 9일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일

1989년 9월부터 1993년 2월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렉(Donald P. Gregg)은 2014년 9월 23일 미국 워싱턴 디씨에 있는 브루킹스연구원(Brookings Institution)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준 바 있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2012년 3월 7일부터 9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조선과 미국이 대화를 진행하였는데, 그 자리에 조선측에서 리용호 당시 외무성 부상과 최선희 당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 그리고 미국국 소속 인사 3명이 참석하였고, 미국측에서 연방정부 전직 관리들이 참석하였으며, 대화 마지막 날인 3월 9일에는 존 케리(John F. Kerry) 당시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이 기조연설자로 참석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선희 당시 미국국 부국장은 “만일 미국이 평화협정을 통해 안전보장을 약속한다면, 우리는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조선은 그에 상응하여 핵무기를 포기하겠노라고 말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말로 들린다.

그런데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조선은 그에 상응하여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파격적인 그 발언은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 개인의 발언이 아니다. 당시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뜻을 미국에 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평화협정 체결과 핵무기 포기를 맞바꾸자는 발언을 들은 존 케리 당시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도널드 그렉의 회고는 이렇게 이어진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존 케리 외교위원장은 리용호 부상에게 “우리에게는 영원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이 곧 평양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미국의 대외관계부문에서 국무장관 다음으로 유력하다는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이 조선 외무성 부상에게 적대관계를 청산할 뜻을 표명하면서 평양을 곧 방문하겠노라고 화답하였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 또한 믿기 어려운 이야기로 들린다. 

조선과 미국의 대화에서 그런 파격적인 발언들이 오간 때로부터 어언 4년 6개월이 지났다. 그 기간에 리용호 외무성 부상은 외무상으로 되었고, 존 케리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은 국무장관으로 되었는데, 주목하는 것은 그런 직위상승보다도, 현재 상황이 4년 6개월 전에 대비하여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조선과 미국의 대화통로는 물론이고 기존 연락통로마저 끊어졌고, 조미관계에서는 격심한 적대감과 전쟁재발위험만 감돌고 있다.

4년 6개월 전, 조선은 평화협정 체결과 핵무기 포기를 맞바꿀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미국에게 전한 바 있었으나, 얼마 전 2016년 9월 23일 유엔총회에 참석한 리용호 외무상은 연설에서 “우리의 핵무장은 국가로선입니다.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는 핵보유국이 존재하는 한, 우리 국가의 안전과 조선반도의 평화는 오직 믿음직한 핵억제력으로서만 지킬 수 있습니다”라고 지적하면서, 조선은 미국의 핵위협에 맞서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한편, 4년 6개월 전 미국과 조선은 영원한 적이 아니라고 하면서 평양을 곧 방문하겠다고 하였던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몇 달 전인 2016년 5월 24일 베트남 호찌민시를 방문하던 중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가장 큰 위협은 조선이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며, 조선의 핵증강활동이라고 지적하면서 조선을 맹비난하였고, 또한 2016년 6월 초에는 미국 국무부가 연방의회에 제출한 ‘인권제재명단’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포함시킨 극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4년 6개월 시차를 두고 조선과 미국에서 각각 그처럼 180도로 뒤바뀐 인식전환과 태도변화가 일어난 것을 생각하면, 2012년 3월 초 뉴욕에서 진행된 조미대화가 사실상 마지막 대화였음을 알 수 있다. 1993년부터 20여 년 동안 부침을 거듭하며 어렵게 진행되어온 조미대화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2. 미국 일각에서 동결협상우선론이 제기된 배경 

최근 미국 일각에서 조미협상재개론이 들린다. 이를테면, 제인 하먼(Jane Harman)과 제임스 퍼슨(James Person)이 <워싱턴포스트> 2016년 9월 30일부에 공동으로 발표한 글이 손꼽을 만한 사례다. 제인 하먼은 1993년부터 2011년까지 연방하원을 지냈고, 지금은 우드로우 윌슨 국제학술쎈터(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 총책임자이며, 제임스 퍼슨은 그 쎈터의 코리아 역사 및 공공정책부문 연구책임자다. ‘미국은 조선과 협상할 필요가 있다(The U.S. Needs to Negotiate with North Korea)’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그 글의 골자는, 미국이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한반도 비핵화를 뒤로 미뤄두는 대신에, 조선의 핵시험, 장거리미사일발사, 핵물질생산을 동결시키는 문제부터 먼저 조선과 협상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그 글이 나온 때로부터 며칠 뒤, 이번에는 리언 씨걸(Leon V. Sigal) 미국 사회과학연구위원회 동북아안보협력 담당국장이 2016년 10월 3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토론회에서 미국이 조선과 협상은 하지 않고 압박만 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할 때 조선의 핵시험, 장거리미사일발사, 핵물질생산을 동결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말했다.

조선과 미국이 1994년 10월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본합의를 채택하였을 때 미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그 이후 미국 국무부 대조선특사로 일했던 로벗 갈루치(Robert L. Gallucci)도 조미협상재개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2016년 10월 4일 존스 합킨스 대학교 부설 한미연구소와 한국의 통일준비위원회가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 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선과 미국의 직접협상이 재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 2> 최근 미국 일각에서 조미협상재개론이 들린다. 전직 외교관리들과 전문가들이 조미협상재개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한반도 비핵화를 장기적인 목표로 두고, 미국이 우선 조선의 핵시험, 장거리미사일발사, 핵물질생산부터 동결시키기 위한 협상을 조선과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위의 사진은 2013년 2월 19일 아산정책연구원이 서울에서 개최한 2013 아산핵포럼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한 로벗 갈루치가 연설하는 장면인데, 그도 최근 조미협상재재론을 제기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최근 미국의 전직 관리들과 전문가들이 제기한 조미협상재개론은 조선이 아직 핵무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핵무장 완성이 임박한 것으로 보는 오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지만, 조선의 핵시험, 장거리미사일발사, 핵물질생산부터 우선 동결시키기 위한 협상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조선과 소통해온 대화통로를 끊어버리고 오로지 압박에만 집착해온 ‘전략적 인내’ 정책이 파산된 가운데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게 되는 오바마 행정부의 뒤를 이어 2017년에 등장할 새로운 행정부에게 정책대안을 미리 귀띔해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미협상재개론은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여 조선이 핵무장을 스스로 해제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므로, 미국이 조선의 핵시험, 장거리미사일발사, 핵물질생산부터 먼저 동결시키기 위해 조선과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는 점에서 동결협상우선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의 핵시험, 장거리탄도미사일발사, 핵물질생산을 우선 동결시키기 위한 협상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나온 정책대안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미국이 몇 번 시도해보았으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실패작이다.

경험과 현실은 미국이 조선과 대화를 재개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음을 말해준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2012년 3월 초 뉴욕에서 진행된 대화에서 조선이 미국에게 마지막으로 전하였던 평화협정 체결과 핵무기 포기를 맞바꾸자는 제안을 그 때 미국이 받아들였어야 했다. 만일 미국이 그 때 조선의 마지막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면, 조미관계는 지금처럼 파국에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국주의지배야욕에 사로잡혀 오만방자와 무지몽매의 벽에 갇혀버린 미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조선의 핵무장 수준을 너무 과소평가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조선의 파격적인 제안에 응답할 마지막 기회마저 저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만회할 수 없는 결정적인 실책이었다.

2016년 10월 6일 조선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에서 “미국은 핵시험과 탄도로케트발사활동이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된다고 규제한 것이 없는 유엔헌장을 어기고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서 우리의 핵시험과 탄도로케트발사활동을 금지하는 <결의>들을 조작해냄으로써 이미 국제법을 위반한 죄”를 범했다고 단죄하면서, “전대미문의 정치경제적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가하다 못해 핵참화까지 들씌우려고 발광하는 날강도무리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핵무장을 국가로선으로 정하고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억척같이 다져왔으며 이제는 고도의 핵공격능력을 갖춘 핵강국이 되었다”고 명백히 밝혔다. 이것은 핵무기를 포기할 생각이 조선에게 티끌만큼도 없으며, 조선의 핵시험, 장거리미사일발사, 핵물질생산이 앞으로도 중단 없이 계속될 것임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핵강국으로 자인하는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은 아침해가 서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인다.


3. 조선의 핵무장 완성은 무엇을 뜻하는가?

평화협정 체결과 핵무기 포기를 맞바꾸자는 조선의 마지막 제안을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은 이후 조선이 미국에게 더 이상 아무 것도 제의하지 않는 현실은, 조선이 미국에게 평화협정체결도 제의하지 않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면 평화협정 체결은 영영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는 말인가? 평화협정 체결이 불가능하게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평화협정 포기는 조선이 민족의 평화염원을 포기하는 것으로 되므로 절대로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평화협정 포기는 선대수령들의 유훈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수령의 유훈을 관철하려는 조선으로서는 평화협정 포기를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평화협정 포기는 조선이 자기 미래를 전쟁재발위험 속에 계속 남겨두는 것이므로, 조선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조선에게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과업이라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다. 명백하게도, 조선은 미국과의 평화협정도, 자기의 핵무장도 모두 포기하지 않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면 지금 조선은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조미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새로운 정책을 내오고, 그것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조선의 새로운 정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이 물음의 답을 찾으려면, 조선이 이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던 다른 나라의 선행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기 식으로 추진하는 평화협정 체결방식이 어떤 것인지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나라의 선행경험이란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전쟁을 끝낸 베트남의 경험이다. 1960년대 말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어쩔 수 없이 북베트남과 평화회담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평화회담을 진행하면서도 협상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회담의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질질 끄는 한편, 무차별 폭격으로 북베트남의 대도시들을 파괴하는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 <사진 3> 베트남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평화회담이 장기화되고, 험난하게 전개된 까닭은, 베트남인민군 전투력과 미국군 전투력이 팽팽히 맞서면서 전선이 장기교착상태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베트남인민군이 강한 전투력을 발휘하여 미국군을 제압하였더라면, 평화협정은 신속히 체결되었을 것이다. 위의 사진은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빠리에서 진행된 베트남 평화회담에서 당시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 외무상이었던 구엔 티 빈이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를 대표하여 평화협정문에 서명하는 장면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통일된 후, 그 여성혁명가는 베트남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교육상, 부주석을 지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베트남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평화회담이 그처럼 장기화되고, 험난하게 전개된 까닭은, 베트남인민군 전투력과 미국군 전투력이 팽팽히 맞서면서 전선이 장기교착상태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베트남인민군 전투력이 강했고, 그래서 미국군을 조기에 제압하였더라면, 평화협정은 아주 신속히 체결되었을 것이다.

그런 선행경험을 살펴보면, 북베트남과 미국의 평화회담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의 핵심은 강한 군력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교전상대를 평화회담으로 끌어내어 평화협정을 신속히 체결할 만큼 군력이 강해야 전쟁을 일찍 끝내고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데, 만일 그렇지 못하면 평화를 실현하기는커녕 무력공격을 받아 혹심한 전쟁피해만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를 1,340번이나 몰살시킬 핵무기를 쌓아놓은 미국은 자기가 ‘세계 최강’이라고 큰 소리를 치면서 조선에게 핵공갈과 핵위협을 하루가 멀다 하고 벌려놓는 제국주의핵강국이다. 조선이 그런 미국을 제압할 만큼 막강한 군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선은 미국이 가로막아놓은 핵확산저지선을 뚫고 나가 핵무장을 완성하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길을 택하였다. 

조선이 자기의 전략적 지위를 핵강국의 높이로 끌어올려 기존 조미대결구도를 사회주의핵강국 대 제국주의핵강국의 새로운 대결구도로 대체하고,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막강한 핵타격력을 실물로 입증, 과시하여 미국을 핵공포로 몰아넣는 날, 제국주의핵강국은 사회주의핵강국에게 평화협정체결을 굴욕적으로 요청하게 되리라는 것, 바로 이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새로운 대미전략이다. 그러므로 조선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무장을 완성하는 것으로 평화협정체결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새로운 대미전략이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핵무장을 완성하여 조선의 전략적 지위를 ‘동방의 핵강국’으로 끌어올리도록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적극 추동하였고, 그에 따라 조선은 핵무기병기화사업에 박차를 가한 끝에 마침내 핵무장을 완성하였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2016년 9월 9일 조선이 핵탄두기폭시험을 진행한 그 날, 조선핵무기연구소는 성명에서 핵탄두기폭시험의 의의를 이렇게 해설하였다. “핵탄두가 표준화, 규격화됨으로써 우리는 여러 가지 분렬물질에 대한 생산과 그 리용기술을 확고히 틀어쥐고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보다 타격력이 높은 각종 핵탄두들을 마음먹은 대로 필요한 만큼 생산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의 핵무기병기화는 보다 높은 수준에 확고히 올라서게 되었다.”
▲ <사진 4> 2016년 9월 9일 조선은 핵탄두기폭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위의 사진은 핵탄두기폭시험 직후 텔레비전방송 특별보도를 통해 조선핵무기연구소 성명이 발표되는 장면이다. 그 날 진행된 핵탄두기폭시험은 조선이 첫 핵시험을 진행한 때로부터 꼭 10년 만에 핵무장을 완성하였음을 말해주는 사변이었다. 조선에서 말하는 핵무장 완성이란, 핵탄두, 핵폭탄, 핵어뢰, 핵기뢰, 핵가방으로 사용방식을 표준화한 5종의 핵탄을 생산하고, 특대형, 대형, 중형, 소형, 극소형으로 폭발위력을 규격화한 5종의 핵탄을 생산하며, 모든 핵탄들을 각종 타격수단들에 장착 또는 탑재하는 것을 뜻한다. 지금 미국은 조선의 핵무장 완성을 부정하지만, 핵무장을 완성한 조선은 자기의 지위를 핵강국의 높이로 끌어올림으로써 사회주의핵강국 대 제국주의핵강국의 새로운 대결구도를 형성한 것으로 인정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의 핵탄생산에 관련된 각종 공개자료를 종합, 분석하면, 조선은 핵탄의 사용방식을 표준화함으로써 핵탄두, 핵폭탄, 핵어뢰, 핵기뢰, 핵가방으로 표준화된 5종의 핵탄을 생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은 핵탄의 폭발위력을 규격화함으로써 특대형, 대형, 중형 소형, 극소형으로 규격화된 5종의 핵탄을 생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표준화, 규격화된 핵탄을 마음먹은 대로 생산하여 각종 타격수단들에 널리 장착 또는 탑재하는 것이 조선에서 말하는 핵무장 완성이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의 핵무장 완성을 부정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있다. 그들은 처음에 조선이 아직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지 못했다고 하였다가, 그 다음에는 조선이 소형화된 핵탄두를 만들었으나 아직 미사일에 장착하지 못했다고 슬그머니 말을 바꾸었다가, 요즈음에는 조선이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였으나, 아직 실전배치는 하지 못했고 실전배치가 임박하였다고 또 다시 슬그머니 말을 바꾸었다. 그들이 아무런 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그처럼 여러 차례 말바꾸기를 거듭해온 것은 상투적인 왜곡보도라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조선의 핵무장 완성으로 미국이 핵공포에 사로잡히고, 그에 따라 미국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 평화협정체결을 굴욕적으로 요청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겠으나, 요즈음 조미관계는 그런 예상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조선에게 평화협정체결을 요청하려는 조짐을 보이기는커녕, 더욱 격심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핵공갈과 핵위협을 멈추지 않고 위험한 국면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국면이 조성된 것을 보면,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이 실현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아래에 서술한 두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그 의문은 풀린다. 

첫째, 2016년 10월 현재 미국은 정권교체기에 들어섰다. 퇴임을 앞둔 오바마 행정부는 권력누수로 어려움을 겪으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책을 내오지 못할 지경이며, 2017년 1월에 등장할 새로운 행정부에게 정권을 인계하고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컨대, 퇴임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심지어 미국의 하위동맹국인 필리핀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대통령으로부터도 “개자식”이라느니 “지옥에나 가라”느니 하는 욕설과 악담을 듣고 있다. 그처럼 처량한 신세로 굴러떨어진 오바마 행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내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은 미국에서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하는 2017년 1월 이후를 조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1973년 1월 17일 북베트남과 미국은 프랑스 빠리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는데, 미국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20여 일 전인 1972년 12월 18일부터 29일까지 B-52 전략폭격기 편대를 대거 출동시켜 폭탄 20,000톤 이상을 수도 하노이를 비롯한 북베트남 주요도시들에 마구 퍼부었다. 이것이 베트남 민간인 1,624명을 무차별 폭격으로 살육한 제2차 라인백커작전(Operation Linebacker II)이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북베트남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직전에, 다시 말해서 베트남전쟁에서 패하기 직전에, 패전에 보복하려는 앙심을 품고 무차별 폭격을 자행하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북베트남의 견지에서 보면,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 직전에 자행한 도시폭격만행은 패전을 앞둔 ‘최후 발악’ 이외에 다른 게 아니었다.

▲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5> 베트남 전쟁 중인 1972년 12월 18일부터 29일까지 미국은 B-52 전략폭격기 편대를 대거 출동시켜 폭탄 20,000 톤 이상을 수도 하노이를 비롯한 북베트남 주요도시들에 마구 퍼부었다. 위쪽 사진은 당시 B-52 전략폭격기에 대형폭탄을 탑재하는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미국의 무차별 도시폭격으로 파괴된 피해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베트남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불과 20여 일 전에 자행된 미국의 북베트남 도시폭격만행은, 북베트남의 견지에서 보면, 패전을 앞둔 미국의 '최후 발악'으로 보였다. 2016년 10월 6일 조선외무성은 대변인 담화에서 최근 격심해지는 미국의 핵공갈과 핵위협을 "우리와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련전련패한 패배자의 단말마적 발악에 불과하다"고 비난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과 미국의 대결상황을 지난날 북베트남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한 경험에 빗대어 말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지금 조선에게 격심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핵공갈과 핵위협을 멈추지 않는 미국의 행동을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북베트남의 전면공세에 밀려 패전을 앞둔 미국의 ‘최후 발악’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2016년 10월 6일 조선외무성은 대변인 담화에서 최근 격심해지는 미국의 핵공갈과 핵위협을 “우리와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련전련패한 패배자의 단말마적 발악에 불과하다”고 비난하였던 것이다.

조선과 미국의 대결상황을 북베트남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던 경험에 빗대어 다시 말하면, 미국이 조선에게 핵공갈과 핵위협을 격심하게 벌일수록 조선은 미국이 자기에게 평화협정체결을 굴욕적으로 요청할 날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하는 것이다. 밤하늘에 어둠이 짙어질수록 동트는 첫새벽은 더 가까이 다가오는 법이 아닌가.   


4. 격동시대가 예고하는 통일씨나리오

만일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한국에게 작전통제권을 반환하고, 핵우산을 철거하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평화협정 체결, 작전통제권 반환, 핵우산 철거, 주한미국군 철수로 이어지는 일련의 격동적인 과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조미관계에서 적대감과 전쟁재발위험이 고조될 적마다 미국이 한국과 맺은 “철석같은 동맹공약”을 재확인하고 있다는 식의 언론보도만 들어온 사람들은,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그 무슨 당치 않은 소리냐고 받아칠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철석같은 동맹공약”을 끝까지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국의 생사존망이 걸린 문제다. 그런 엄청난 문제를 몇 줄 문장으로 간단히 서술할 수 없으며, 심층적으로, 정밀하게 분석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지면이 제약된 이 글에서는 그 문제에 대한 거론을 다음 기회로 미루면서, 한 가지 사실만 지적한다. 그것은 2016년 9월 9일 조선이 핵무장을 완성한 날부터 미국이 한국을 포기해야 할 요건이 드러나기 시작한 반면, “철석같은 동맹공약”을 지키는 움직임은 가라앉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조짐은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을 예고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대격변씨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만일 근본적인 정세변화에 휘말린 미국이 안간힘을 쓰며 버티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이 일어나는 날,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금융자산이 한꺼번에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다. 주한미국군이 철수하면 조선인민군이 즉각 공격해올 것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기에, 한국의 금융자산은 해외안전지대로 황망히 도피할 수밖에 없다. 

금융자산이 거대한 썰물처럼 해외로 빠져나가면, 그 빈자리를 외환보유액이나 통화스와프자금으로 메우지 못하므로, 한국의 금융시장은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무너질 것이다. 금융자산의 해외이탈과 금융시장의 급속붕괴는, 2016년 5월 18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지금 “사상 초유의 늪지형 불황”에 빠져있는 한국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것으로 우려된다. 성장엔진이 멈춰버려 막대한 빚더미에 짓눌리는 한국 경제가 약한 외부충격만 받아도 금방 쓰러질 정도로 허약해졌다는 경제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진단이 들려오는 판에, 그런 치명상을 입으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무역중단과 원화가치폭락을 예상할 수 있다. 무역이 중단되면, 수출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에서는 식량수입, 원유수입, 원자재 및 부품수입, 연료수입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또한 원화가치가 폭락하면, 실물경제가 파탄되어 고액권 화폐를 한 뭉치 싸들고 가야 쌀 1kg을 겨우 살 수 있고, 정부예산집행마저 중지되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생필품, 식량, 연료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전력공급중단으로 교통망과 통신망이 끊어지고, 불빛 꺼진 도시마다 실업대란과 굶주림, 폭동과 약탈이 일어날 것이며, 해외로 탈출하려는 피란민들이 몰려들어 모든 공항과 항만이 마비될 것이다.
▲ <사진 6>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이 일어나면, 한국에서는 금융자산의 해외유출과 금융시장의 완전붕괴가 동시에 일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위의 사진은 금융자산의 해외유출과 시장경제의 붕괴위기로 혹독한 고난을 겪는 아르헨티나에서 폭동이 일어나 시가지가 폐허로 변한 모습이다. 다른 나라들의 선행경험에서 보는 것처럼, 한국의 금융시장이 붕괴되면 무역이 중단되고 원화가치가 폭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수출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에서는 식량수입, 원유수입, 원자재 및 부품수입, 연료수입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또한 원화가치가 폭락하면, 실물경제가 파탄되고, 정부예산집행마저 중지되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생필품, 식량, 연료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전력공급중단으로 교통망과 통신망이 끊어지고, 불빛 꺼진 도시마다 실업대란과 굶주림, 폭동과 약탈이 일어날 것이며, 해외로 탈출하려는 피란민들이 몰려들어 모든 공항과 항만이 마비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재앙을 예견할 수 있다면, 재앙으로 입게 될 피해를 극복할 방도도 예견할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이 불러올 재앙을 막을 수는 없어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무너진 경제를 재건할 생존방도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생존방도는 북의 긴급경제지원을 받아 남북경제협력을 전면화하는 것밖에 없다. 유엔국제기구 또는 다른 나라의 경제지원은 우리 민족끼리 상부상조하는 노력을 대신할 수 없다.

남과 북이 상부상조하고 유무상통하는 경제협력원칙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각각 명시되었다. 그 선언들에서 남과 북이 상부상조와 유무상통을 합의하고 민족 앞에 서약하였으므로, 남측 경제가 무너졌을 때 북이 경제지원을 보내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돕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북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산, 비축해놓은 막대한 분량의 생필품, 식량, 유류 등이 전기철조망과 콘크리트장벽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땅길, 하늘길, 바닷길로 수송되어 남측 각지에 도착하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만일 이런 광경을 상상하기 힘들면, 아래에 서술한 내용에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남측 정부 고위당국자의 말을 인용한 <조선일보> 1997년 10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고난의 행군’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던 당시에도 120만t의 식량과 146만t의 유류를 비축하고 있었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북이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겪고 있다는 왜곡보도를 내보내지만, <조선일보> 2014년 10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2014년도 대중국식량수출을 전년에 비해 35%나 증가시킨 식량수출국이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북이 만성적인 유류부족을 겪고 있다는 왜곡보도를 내보내지만, 북측 경제부문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중앙일보> 2015년 3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북의 원유매장량은 세계 8위다. <조선일보> 2001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북에서는 1999년부터 원유가 연간 30만톤씩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지난 17년 동안 북의 원유생산량이 해마다 꾸준히 늘어났으니, 지금은 막대한 분량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본격적인 원유생산으로 크게 고무된 북은 지난 5년 동안 석유화학공업과 경공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생산설비를 개조, 현대화하고, 원료와 자재를 국산화함으로써 생필품생산능력을 비약적으로 장성시켰다. 북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며 축성해놓은 자립경제토대가 매우 든든하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하면, 북의 경제지원능력은 충분해 보인다.

주목되는 것은, 경제붕괴가 정치파국으로 전이, 확대되어 정권을 마비시킬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렇게 되면, 남측 정치권에서는 경제붕괴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정부가 퇴진하고 국회가 해산되어 임시정부가 수립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남측 임시정부와 북측 정부가 무너진 남측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남북경제협력을 전면화하는 것과 더불어 평화통일의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을 것이다. 그 국면을 빛나게 장식하는 것이 바로 전민족연석회의 소집이다.
▲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7> 위의 두 사진은 2005년 8월 14일 서울에서 진행된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 장면들이다. 그날 행사장에 구름처럼 모인 남측의 각계각층 동포들은 거대한 통일기를 펼쳐보였고, 북에서 내려온 각계각층 인사들은 통일구호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행사장을 향해 행진하였다. 그로부터 11년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통일정세의 급변조짐들을 직시하면서 통일씨나리오를 예상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평화통일의 결정적 국면은 어떻게 열리게 될 것인가? 북의 동포애를 싣고 남으로 향하는 막대한 분량의 지원물자가 분단장벽을 무너뜨리며 땅길, 하늘길, 바닷길로 수송될 것이다. 경제붕괴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남측 정부가 퇴진하고, 국회가 해산되어 임시정부가 수립될 것으로 예상된다. 남측 임시정부와 북측 정부가 남북경제협력을 전면화하여 무너진 남측 경제를 재건하기 시작하면, 평화통일의 결정적 국면이 열릴 것이다. 남북으로 갈라져 살아오면서 어느 한 순간도 잊지 못해 그토록 열렬히 갈망해온 자주통일강국은 힘과 위엄 넘치는 발걸음으로 승리와 번영의 장엄한 역사를 빛내며 금수강산 창공 높이 통일국기를 휘날릴 것이다. 정녕 생각만 해도 격정이 느껴지는 통일씨나리오를 가슴에 안고 지금 우리는 격동시대 한복판에 성큼 들어서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남측 임시정부와 북측 정부는 남, 북, 해외의 각계각층 각당각파를 정치적으로, 조직적으로 대표하는 인사들이 총결집하는 전민족연석회의를 소집하여 평화통일의 실현방향 및 실행방도를 토의, 결정할 것으로 예견된다. 마침 이 글을 집필하던 2016년 10월 7일 중국 선양에서 만난 남, 북, 해외 대표단은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남, 북, 해외 제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를 2017년 3월 1일에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금은 비록 정당, 단체, 개별인사만 참가하는 미완성 연석회의이지만, 앞으로 머지않아 정부, 정당, 단체, 개별인사가 총결집하는 전민족연석회의로 격상될 것이다. 이것은 꿈이야기가 아니라,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다. 전민족연석회의가 소집되면, 통일의회를 구성하는 실행방도 및 선거일정가 토의,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후에 펼쳐질 격동적인 정치일정을 예상하면 이렇다. 함경북도 최북단 온성땅에서 제주도 최남단 마라도까지 삼천리강산 전역에서 민주선거를 통해 구성된 통일의회는 역사적인 통일헌법을 제정할 것이고, 통일헌법에 따라 통일정부가 수립될 것이다. 통일정부가 통일국 창건을 세계만방에 선포하는 역사적인 날, 전 세계는 막강한 자위적 핵무력을 가진, 어떤 외세도 감히 넘보지 못하는 자주통일강국의 위대한 탄생을 경탄의 눈길로 우러러볼 것이다.

남, 북, 해외가 오랜 기간 동안 조국통일운동을 벌여오며 축척해온 정치역량을 평화통일과정에 총집중시키면, 전민족연석회의가 소집된 날부터 통일국 창건을 선포하는 날까지 이어질 정치일정은 급진전을 거듭하며 석 달 만에 결속될 것으로 예견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민족이 70년을 염원해온 평화통일은 100일 안에 실현되는 것이다. 

남북으로 갈라져 살아오면서 어느 한 순간도 잊지 못해 그토록 열렬히 갈망해온 자주통일강국이 아니더냐. 통일선열들이 숨지는 마지막 순간 가슴에 간직하고 떠난 자주통일강국이 아니더냐. 탄압에 물러서지 않고 싸워온 통일운동가들의 심장마다 사무치는 그리움 안겨준 자주통일강국이 아니더냐. 통일국 수도에서 통일국 창건을 선포하는 감격의 순간, 남, 북, 해외 동포들이 경축광장에 구름처럼 모여 “사랑하는 겨레여, 위대한 조국이여”라고 목놓아 부를 자주통일강국이 아니더냐.

온 겨레의 통일염원 속에 다가오는 우리나라 자주통일강국은 위엄 넘치는 힘찬 발걸음으로 승리와 번영의 장엄한 역사를 빛내며 금수강산 창공 높이 통일국기를 휘날릴 것이다. 정녕 생각만 해도 격정이 느껴지는 통일씨나리오를 가슴에 안고 지금 우리는 격동시대 한복판에 성큼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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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4

핵광란증 드러낸 미국, 핵무장 완성한 조선

[한호석의 개벽예감](221)
자주시보 2016년 10월 03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전 인류를 1,340번 몰살시킬 ‘핵3원체계’의 위험성과 야만성
2. ‘작전계획 8010’ 움켜쥔 미국 전략사령부의 핵공갈과 핵위협
3. 제한핵전쟁 타격시간표까지 작성해놓은 미국
5. 미국의 광란적인 핵위협에 맞선 조선의 핵선택권
6. 40년 만에 완성된 조선의 핵무장

▲ <사진 1> 이 사진은 미국 국가핵안보국 청사를 촬영한 것이다. 지금 미국 국방부와 국가핵안보국은 미국의 핵무력을 대폭 증강시키기 위한 핵현대화프로그램을 진척시키는 중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략폭격기, 전략핵잠수함과 거기에 탑재 또는 장착되는 각종 핵탄들을 전반적으로 현대화하는 이 거대한 핵증강사업에는 1조 달러의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간다. 미국이 보유한 기존 핵무력으로도 인류를 1,340번 몰살시킬 수 있는데, 그것도 성차지 않아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여 핵무력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이성을 잃은 핵광란증이 아니면 무엇인가.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전 인류를 1,340번 몰살시킬 ‘핵3원체계’의 위험성과 야만성

2009년 4월 5일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체코공화국 수도 프라하(Prague)에 있는 하라차니광장(Hradcany Square)에 모인 군중들 앞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거론하며 핵감축을 향한 의지를 천명하였다. 그의 연설은 미국의 핵정책이 증강에서 감축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핵무기 없는 세계’를 거론하면서 핵감축 의지를 천명한 그의 연설이 세계를 기만하는 희대의 사기극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핵무기 없는 세계’니, 핵감축이니 하는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은 때로부터 넉 달이 지난 2009년 8월 6일 미국 연방정부의 과학자문기구인 제이슨(JASON) 소속 핵과학자들이 미국의 비축해탄의 작전수명을 연장시키는 과학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발표회를 진행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연구결과는 2009년 9월 9일 비축핵탄의 작전수명을 연장시키는 방도를 설명한 ‘수명연장프로그램 실무요약(Lifetime Extension Program Executive Summary)’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로 발표되었다.

주목되는 것은, 비축핵탄의 작전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그들의 연구가 미국 국방부와 미국 국가핵안보국(National Nuclear Security Administration)이 추진하는 ‘핵현대화프로그램(Nuclear Modernization Program)’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국가핵안보국은 새로운 핵무기를 연구, 개발하기 위해 2000년에 신설되었는데, 거기서 근무하는 인원은 25,300명이며, 연간예산은 126억 달러다.

미국의 군비통제연구기관 <군비통제협회(Arms Control Association)>가 2016년 8월 15일에 발표한 보고서 ‘미국의 핵현대화프로그램’에서 밝힌 핵현대화프로그램의 추진방향은 다음과 같다.

(1) 미닛맨(Minuteman)-3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트라이던트(Trident)-2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현대화하고, 오하이오급(Ohio-class) 전략핵잠수함을 현대화하며, 신형 전략핵잠수함 SSBN(X)를 개발한다. 전략핵폭격기들인 B-2와 B-52H를 현대화하고, 신형 전략핵폭격기 B-21과 거기에 탑재할 신형 장거리순항핵미사일(LRSO)을 개발한다.
(2) 미국이 보유한 각종 핵탄의 작전수명을 연장한다.
(3) 미국 각지의 핵무기생산시설을 현대화한다.
(4) 핵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지휘통제체계를 현대화한다.
(5) 핵무력을 담당한 군부대들에 대한 지휘관리체계를 개선한다.

미국군 소식지 <성조(Stars & Stripes)> 2016년 9월 26일부는 핵현대화프로그램에 1조 달러의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예견하였다.

미국과학자연맹(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5월 26일을 기준으로 미국은 핵탄(핵탄두와 핵폭탄)을 7,000발이나 보유하였다. 그 가운데 실전배치된 것은 1,930발이고, 핵무기고에 비축된 것은 4,500발이고, 퇴역시킨 것은 2,500발이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실전배치한 핵탄 1,930발 가운데 전략핵탄은 1,750발이고, 전술핵탄은 180발이다. 전술핵탄 180발은 모두 유럽의 미국군기지들에 분산, 배치되었다.

1,750발에 이르는 미국의 전략핵탄은 전략핵타격수단들인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략핵폭격기, 전략핵잠수함에 장착 또는 탑재된다. 미국은 전략핵탄을 장착 또는 탑재하는 3종의 전략핵타격수단을 ‘핵3원체계(nuclear triad)’로 통칭한다.

미국 공군은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전략핵폭격기를 운용하고, 미국 해군은 전략핵잠수함을 운용한다. 미국은 전략군을 편제하지 않은 대신에 공군과 해군에게 전략핵타격수단들을 배속시켰으며, 육군에게는 전술핵타격수단만 배속시켰다. ‘핵3원체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직갱발사대에 장착된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닛맨-3은 530발이다. 이 대륙간탄도미사일에는 폭발위력이 350킬로톤인 열핵탄두 W-78이 3발씩 들어간 각개발사식 다탄두가 장착된다. 그러므로 미닛맨-3을 단 1발만 쏴도 1,050킬로톤의 파괴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 실전배치된 미닛맨-3은 530발이므로, 미국이 운용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의 파괴력 총량은 556.5메가톤(556,500킬로톤)이다.

▲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2> 위쪽 사진은 수직갱발사대에 들어있는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닛맨-3을 촬영한 것이고, 아래쪽 사진은 2016년 2월 25일 밤 11시 1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밴든벅공군기지에서 미닛맨-3을 시험발사하는 장면이다.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닛맨-3을 530발이나 실전배치해놓고, 때로 시험발사를 진행한다. 자기들은 그처럼 많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쌓아놓고, 시험발사를 마음대로 하면서도, 조선이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처음 시험발사한 것을 빌미로 하여 조선에 대한 정치군사적 압박을 가중시켰다. 미국의 그런 행위는 국제사회에서 정의가 통하지 않고, 국제법이라는 것도 무의미하며, 오직 강권과 전횡만이 통한다는 참담한 현실을 보여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둘째, 공중핵타격수단으로 사용되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와 B-52H 전략폭격기는 모두 94대이다. 이 2종의 전략폭격기들에는 미국이 보유한 핵탄들 가운데 폭발위력이 가장 큰 B83 핵폭탄이 탑재된다. 이 핵폭탄의 폭발위력은 1.2메가톤(1,200킬로톤)이다. B-2 스텔스전략폭격기에는 B83 핵폭탄 16발이 탑재되므로, B-2 1대의 공중핵타격에서 발생하는 파괴력은 19.2메가톤(19,200킬로톤)이다. B-52H 전략폭격기에는 B83 핵폭탄 29발이 탑재되므로, B-52H 1대의 공중핵타격에서 발생하는 파괴력은 34.8메가톤(34,800킬로톤)이다. B-2는 21대가 실전배치되었고, B-52H는 76대가 실전배치되었으므로, 미국이 운용하는 B-2 및 B-52H의 파괴력 총량은 116.4메가톤(116,400킬로톤)이다.

셋째, 각개발사식 다탄두인 트라이던트-2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24발을 탑재한 오하이오급(Ohio-class) 전략핵잠수함은 18척이다. 트라이던트-2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1발에는 폭발위력이 100킬로톤인 열핵탄두 8발이 각개발사식 다탄두로 들어있다. 그러므로 트라이던트-2를 단 1발만 쏴도 800킬로톤의 파괴력이 발생하게 된다.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 1척에 탑재된 각개발사식 다탄두 24발의 총폭발위력은 19.2메가톤(19,200킬로톤)이므로,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 18척의 파괴력 총량은 345.6메가톤(345,600킬로톤)이다.

주목되는 것은, 위에 열거한 3종의 전략핵타격수단들의 파괴력 총량이 1,018.5메가톤(10억 1,850만킬로톤)에 이른다는 점이다. 71년 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廣島)를 초토화한 핵폭탄 1발의 파괴력이 15킬로톤이었는데, 오늘날 ‘핵3원체계’의 파괴력 총량은 345.6메가톤이므로, 미국의 핵무력은 히로시마 핵폭탄보다 무려 6,790만 배나 더 강한 파괴력을 가진 것이다.

미국이 71년 전에 히로시마 핵폭탄 1발을 투하하여 146,000명을 대량살육하였는데, ‘핵3원체계’의 파괴력으로 일어날 상상을 초월한 핵참사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미국은 9조 9,134억 명을 몰살시킬 수 있다. 2016년 8월 현재 인류는 74억명이므로, 미국은 인류를 1,340번 몰살시킬 가공할 ‘핵3원체계’를 겨누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핵무력이 교전상대를 제압하는 정상수준에서 이탈하여 인류를 1,340번 몰살시킬 극악무도한 지경에 이른 것은 이성을 잃은 광란증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핵광란증이 들린 미국이 만일 정세를 오판하여 핵전쟁을 도발하거나 미국의 전략핵타격수단이 갑자기 오작동을 일으켜 발사되는 경우 인류문명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바라보면, 핵광란증이 들린 미국은 인류의 적이라는 규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2. ‘작전계획 8010’ 움켜쥔 미국 전략사령부의 핵공갈과 핵위협

미국은 조선, 러시아, 중국, 이란, 시리아를 자기의 5대 적국이라고 하지만, 그 적국들을 모두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2016년 9월 26일 미국 노스 대코다(North Dakota)주에 있는 미놋공군기지(Minot AFB)를 방문한 애쉬튼 카터(Ashton B. Carter) 미국 국방장관이 연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의 전쟁상대는 조선과 러시아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선제핵타격으로 파괴하려는 전쟁상대 1순위로 조선을 지정하였다는 사실이다.


▲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3> 위쪽 사진은 2016년 9월 26일 미국 노스 대코다주에 있는 미놋핵전략기지를 방문한 애쉬튼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B-52H 전략폭격기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그가 현장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배치현황에 관한 해설판을 살펴보는 장면이다. 그는 연설에서 미국의 전쟁상대가 조선과 러시아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다. 미국 국방장관이 핵전략기지를 방문한 것은 미국 국방부가 핵현대화프로그램에 큰 힘을 넣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의 핵현대화프로그램은 미국이 전쟁상대에 대한 선제핵타격능럭과 보복핵타격능력을 한층 더 강화하려는 전략사업인데, 미국은 자기가 선제핵타격으로 파괴하려는 전쟁상대 제1순위를 조선으로 지정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미국은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부터 지금까지 66년 동안 줄곧 조선에 대한 선제핵타격기회를 노려왔다. 이를테면, 미국 본토에 실전배치된 미닛맨-3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타격좌표는 언제나 조선에 맞춰져 있고, 조미대결의 긴장파고가 높아질 때면 미국의 전략핵폭격기들인 B-2나 B-52H가 군사분계선 상공에 근접한 작전공역에 출현하여 선제핵타격위협을 들이대고 있으며,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이 동해작전수역에 은밀히 진입하여 조선에 대한 수중선제핵타격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국의 핵무력연구자 핸스 크리스텐슨(Hans M. Kristensen)이 미국과학자연맹 회보 2010년 2월호에 발표한 글 ‘오바마와 핵전쟁계획(Obama and the Nuclear War Plan)’에 따르면, 미국은 1992년부터 2009년까지 자기의 핵전쟁계획을 17차례나 수정, 보완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것이 ‘전략적 억제와 지구적 타격(Strategic Deterrence and Global Strike)’이라고 부르는 ‘작전계획 8010(OPLAN 8010)’이다.

‘작전계획 8010’에는 ‘비상반응선택권(Emergency Response Options)’, ‘선별공격선택권(Selective Attack Options)’, ‘기본공격선택권(Basic Attack Options)’, ‘지시 및 적응기회능력선택권(Directed/Adaptive Planning Capability Options)’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 30%는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는 선제타격씨나리오들이고, 나머지 70%는 핵무기를 사용하는 선제타격씨나리오들이다. 그런 선제타격씨나리오를 실행하려는 위험인자가 바로 미국 전략사령부다. 미국 전략사령부는 조선이 핵시험을 하거나, 인공위성을 발사하거나,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할 때마다 그에 대한 논평으로 반응한다.

미국 전략사령부는 조선에 대한 핵공갈과 핵위협을 전문으로 하는 위험인자이며,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공갈과 핵위협은 2,500만명에 이르는 조선 인구를 396,536번 이나 몰살시킬 ‘핵3원체계’를 겨눈 핵광란증의 발로이다. 조선 인구를  396,536번이나 몰살시킬 방대한 핵무력을 겨누고 핵공갈과 핵위협을 계속해오는 ‘핵3원체계’의 위험성과 야만성을 직시할 때, 조선이 왜, 미국에게 평화협정 체결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는지 이해할 수 있고, 조선이 왜 자기의 국력을 군사부문에 집중시켜야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3. 제한핵전쟁 타격시간표까지 작성해놓은 미국
  
50,000년을 헤아리는 인류역사에 수많은 나라들이 출몰부침하였으나, 오늘 조선처럼 강대한 적국의 전쟁위협을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당해온 나라는 없었으며,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조선을 선제핵타격 제1순위로 지정해놓은 미국이 핵공갈과 핵위협을 66년 동안 계속해온 참담한 사연은 다음과 같다.

6.25전쟁 당시 미국은 약 300발의 마크(Mark)-4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1951년 4월 그 가운데 9발과 그것을 탑재할 B-29 폭격기들을 대조선공격거점인 오끼나와(沖繩)에 배치하였고, 조선에 대한 핵폭격을 지휘할 지휘통제반을 도꾜(東京)에 설치하였다. 

스탠리 웨인트럽(Stanley Weintraub),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피터 헤이즈(Peter Hayes) 같은 미국인 학자들이 여러 저술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6.25전쟁 중인 1950년 12월 9일 당시 연합군총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핵무기를 사용할 재량권을 자기에게 달라고 미국 국방부에 요청하였으며, 1950년 12월 24일에는 핵폭탄 34발을 투하하여 ‘만주의 목덜미’에 방사능코발트지대(belt of radioactive cobalt)를 설치하기 위한 핵폭격대상목록이 수록된 작전문서를 미국 국방부에 제출하였다. ‘만주의 목덜미’란 한반도와 중국 동북3성이 접한 지역, 다시 말해서 압록강과 두만강을 잇는 조중국경지역을 뜻한다. 그 작전문서에서 더글러스 맥아더는 미국이 핵폭탄 34발을 투하하여 조중국경지역을 방사능코발트로 오염시키면, “적어도 60년 동안은 중국이 한반도를 지상으로 침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 <사진 4> 이 사진은 6.25전쟁 중 일본 오끼나와에 주둔하던 미공군 제98폭격비행단의 출동준비장면이다. 그 폭격비행단 정보장교였던 해리 베일리 대령이 조선의 신의주를 폭격하기 위해 출동할 B-29 폭격기 조종사들에게 폭격대상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1951년 9월과 10월 '헛슨하버작전'이라는 작전명칭을 내건 미전략공군사령부 소속 B-29 폭격기 편대가 평양 상공에 까마귀떼처럼 몰려들어 모의핵폭탄과 재래식 폭탄을 섞어 마구 투하하는 핵폭견연습을 계속 진행하였다. 미국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에 조선에 대한 핵공격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미국 전략사령부는 조선에 대한 핵공갈과 핵위협을 전문으로 하는 위험인자로 되었으며,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공갈과 핵위협은 2,500만명에 이르는 조선 인구를 396,536번 이나 몰살시킬 '핵3원체계'를 겨눈 핵광란증의 발로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951년 9월과 10월에는 ‘헛슨하버작전(Operation Hudson Harbor)’이라는 작전명칭을 내건 미전략공군사령부 소속 B-29 폭격기 편대가 평양 상공에 나타나 모의핵폭탄과 재래식 폭탄을 섞어 투하하는 핵폭격연습을 여러 차례 진행하였다.

정전협정이 체결되었건만, 미국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선에 대한 핵공격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미국은 1956년에 괌(Guam), 오끼나와, 하와이(Hawaii)에 각종 핵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하였고, 1957년 8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주한미국군기지에 핵무기를 배치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에 따라 1958년 1월부터 핵포탄, 핵폭탄, 핵폭발물, 핵탄두 장착 탄도미사일, 핵탄두 장착 순항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핵무기 약 600기가 주한미국군기지들에 밀려들었고, 1959년 1월 29일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주한미국군기지에 핵무기가 배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하였다.

2007년 11월 21일 미국의 우드로우 윌슨 국제학연구소(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 산하 국가안보문서고(National Security Archive)의 선임연구원 윌리엄 버(William Burr)의 글 “과잉살해기원에 관한 새로운 증거(New Evidence on the Origin of Overkill)”에서 미국의 핵전쟁계획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가 서술한 미국의 핵전쟁계획은 1960년대 초에 작성되었다가 오랜 시간이 흘러 기밀해제된 것들이다. 

그 글에 따르면, 지난 냉전시기 미국의 핵전쟁계획은 ‘국가전략목표선정 및 공격정책(National Strategic Targeting and Attack Policy)’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되었는데, 그것을 작성하는 극비임무는 ‘합동전략목표기획단(Joint Strategic Target Planning Staff)’이 수행하였다고 한다. 당시 작성된 핵전쟁계획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선제타격 또는 보복타격의 실행가능성을 확인한다.
(2) 핵타격으로 발생할 피해범위를 파악한다. 특히 핵타격대상으로 지정된 나라 인근의 동맹국들에 주둔하는 미국군과 민간인에게 얼마나 큰 피해가 발생하게 되는지를 파악한다.
(3) 적국의 군사력을 파괴하거나 무력화시키기 위한 목적에 부합하도록 핵타격목표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4) 도시와 산업지구에 대한 핵타격을 피하고, 핵전쟁의 파괴범위를 한정시키기 위한 “대안타격(alternative strike)”을 기획한다.
(5) 동일한 작전공간에 전략폭격기들과 탄도미사일들이 집중되더라도 서 서로 충돌하지 않고 핵타격을 원만히 수행할 수 있도록 “타격시간표(strike timing sheets)”를 작성한다.

2014년 4월 28일 미국 부르킹스연구원(Brookings Institution)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냉전시기 주한미국군기지에 핵탄이 가장 많이 배치되었을 때, 그 수량은 950발에 이르렀다. 그런데 미국은 주한미국군기지들에 배치된 핵탄을 1991년 12월까지 모두 철수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왜 그렇게 하였을까? 그 까닭은 미국이 1990년 3월에 정밀타격능력을 크게 향상시킨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트라이던트-2를 실전배치하기 시작한 것, 1992년 6월 1일에 전략사령부를 창설한 것, 그리고 B-2 스텔스전략폭격기를 개발한 것과 직접 연관되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트라이던트-2를 실전배치하고, 전략사령부를 창설하고, B-2 스텔스전략폭격기를 개발한 것은 미국의 핵전쟁방식이 전반적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 전략사령부는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전략폭격기를 지구 위 모든 지역에 신속하고 은밀하게 침투시켜 선제핵타격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 해군은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전략핵잠수함을 지구 위 모든 수역에 신속하고 은밀하게 침투시켜 선제핵타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은 그처럼 지구적 범위의 신속정밀타격능력을 갖게 되었으므로, 굳이 주한미국군기지에 핵무기를 남겨둘 필요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위에 인용한 윌리엄 버의 글에서 언급된 미국의 ‘국가전략목표선정 및 공격정책’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인 1960년대 초에 작성된 핵타격씨나리오인데, 군사위성체계와 컴퓨터모의시험기술이 고도로 발전된 1990년대 이후에는 매우 복잡하게 배열된 여러 가지 작전정황을 정밀하게 분석, 종합하여 비군사부문에 피해를 주지 않고 군사거점들만 타격하는 새로운 형식의 핵타격씨나리오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위에 인용한 윌리엄 버의 글에 따르면, 그런 정밀핵타격씨나리오에 따라 전개되는 새로운 양상의 핵전쟁을 ‘제한핵전쟁(limited nuclear war)’이라 한다.

그리하여 미국의 전쟁기획자들과 전쟁결정권자들은 대량살상위험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덜고 임의의 시각에 선제핵타격으로 제한핵전쟁을 도발할 수 있는 매우 위험천만한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의 제한핵전쟁 도발위험은 지난 냉전시기보다 오히려 오늘에 와서 훨씬 더 높아졌으며, 미국의 전쟁기획자들과 전쟁결정권자들은 제한핵전쟁도발위험을 최고도로 집중시킨 선제핵타격대상 제1순위로 조선을 지정해놓은 것이다.

미국 전략사령관 출신 조지 버틀러(George Butler)의 지적에 따르면, 미국의 핵타격계획은 대통령에게도 세부적인 내용이 보고되지 않고 전략사령부의 극소수 전쟁기획자들만 아는 극비계획이므로, 미국 대통령은 핵타격계획에 대해 매우 피상적인 인식밖에 갖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에 대한 미국의 선제핵타격은 미국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결정하지만, 핵타격계획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미국 대통령은 전쟁기획자들이 제출한 씨나리오를 얼떨결에 승인하게 되는 것이다.

▲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5> 위쪽 사진은 미공군의 선제핵타격수단인 B-2 스텔스전략폭격기의 모습이고, 아래쪽 사진은 미해군의 선제핵타격수단인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의 모습이다. 미국이 스텔스전략폭격기와 전략핵잠수함을 출동시키는 것은 전쟁기획자들이 작성한 선제핵타격씨나리오를 행동에 옮길 수 있음을 예고하는 극도로 위험한 행동이며, 핵전쟁도발징후이다. 그런데 2016년 6월 30일 미국의 전략핵잠수함 1척이 대조선공격거점인 일본 요꼬스까 미해군기지에 출현하였고, 그 뒤를 이어 8월 9일에는 B-2 3대가 대조선공격거점인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 출현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런 내막을 살펴보면, 미국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와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을 출동시키는 것은 전쟁기획자들이 작성한 선제핵타격씨나리오를 행동에 옮길 수 있음을 예고하는 극도로 위험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B-2와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이 동시에 출현하는 것이야말로 미국의 핵전쟁도발징후로 되는 것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2016년 6월 30일 18,700톤급 오하이오 전략핵잠수함 1척이 대조선공격거점인 일본 요꼬스까(橫須賀) 미해군기지에 출현하였고, 그 뒤를 이어 8월 9일에는 B-2 3대가 대조선공격거점인 괌의 앤더슨공군기지(Andersen AFB)에 출현한 것이다. 미국은 오하이오 전략핵수함 1척과 B-2 3대가 대조선공격거점들에 각각 전진배치되었다고 밝혔지만, 얼마나 더 많은 오하이오급 전략핵수함들과 B-2들이 대조선전략거점들에 전진배치되어 선제핵타격명령을 대기하고 있는지 외부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 미국의 전략핵잠수함과 스텔스전략폭격기의 이동경로는 군사기밀이므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다. 

얼마 전 미국의 전략핵잠수함과 스텔스전략폭격기가 거의 동시에 대조선공격거점들에 전진배치된 위험한 군사동향은 요즈음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전쟁도발위험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격화되었음을 말해준다. 이 글을 집필하는 이 시각에도 미국의 전쟁기획자들과 전쟁결정권자들은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도발하려는 씨나리오를 들고 선제핵타격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5. 미국의 광란적인 핵위협에 맞선 조선의 핵선택권

조선이 정전상태를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미국에게 그처럼 수없이 제안하였지만, 미국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되레 핵공갈로 대답하였으며, 전략핵잠수함과 스텔스전략폭격기 같은 선제핵타격수단을 동원하는 핵위협으로 대답하였다.  

위에서 거론한 것처럼,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은 조선 인구를 396,536번이나 몰살시킬 방대한 핵무력을 거머쥐고 핵광란증을 드러냈다. 이를테면, 얼마 전 대조선공격거점들에 전략핵잠수함과 스텔스전략폭격기를 전진배치하는 핵위협으로 조선을 자극하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수출입제재에도 성차지 않아 금융제재까지 들먹이며 조선에게 굴복을 요구하고 있다.

▲ <사진 6> 이 사진은 2016년 2월 1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중시키는 문서에 서명하는 장면이다.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은 조선 인구를 396,536번 이나 몰살시킬 방대한 핵무력을 거머쥐고 핵광란증을 드러내면서 조선을 압살하려는 경제제재를 연속적으로 가중시켰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임의의 시각에 선제핵타격을 개시할 수 있는 위기상황을 조성해놓고 경제제재를 가중시키며 굴복을 요구하는 미국의 핵광란 앞에서 조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조선에게는 광란적인 핵위협에 자위적인 핵대응으로 맞서는 길밖에 없다. 조선의 자위적인 핵대응은 세계전쟁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어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핵위협에 무릎을 꿇지 않고 끝까지 싸워 이기리라는 각오와 결심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핵광란에 맞서 싸우는 대결에서 한 걸음이라도 뒤로 밀리면 그걸로 끝이라는 긴장감이 조선의 대미적개심과 대미공격의지를 강렬하고 강인하게 만들었다. 미국과의 대결에서 수세적인 방어는 곧 패배와 죽음에 이르는 길이며, 오직 공세적인 진공만이 승리와 생존을 보장한다는 것, 이것은 지난 70년 동안 조선이 미국의 핵광란에 단독으로 맞서 싸우며 체득한 자주적 생존법칙이다. 그리하여 조선의 핵선택권은 미국의 핵광란에 맞서 싸우는 자주적 생존법칙의 귀결로 되었다. 

조선이 언제 핵무기개발에 착수하였는지를 말해주는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조선의 핵무기개발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논할 필요가 있다.

조선은 1977년 초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적인 발기와 지도로 핵무기개발을 본격화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1976년 8월 19일 ‘판문점사건’으로 조선과 미국이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미국이 선제핵타격준비를 갖추고 즉각 조선을 공격할 것처럼 위협하였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1976년 당시 주한미국군기지들에는 각종 핵탄이 950발이나 배치되어 있었으나, 조선에게는 핵탄이 1발도 없었다. 세계 최대 핵보유국과 비핵국은 그처럼 불균형한 조건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동해에서는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주축으로 편성된 강력한 항모강습단이 핵타격명령을 대기하고 있었고, 오산미공군기지와 군산미공군기지에서는 B-52 전략폭격기들과 F-111 전폭기들이 핵타격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다. ‘판문점사건’을 빌미로 핵광란증을 드러낸 미국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총동원령을 받은 조선인민군, 로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는 즉각 전투태세에 돌입하였고, 조선의 대도시 주민들은 핵공습대피연습을 진행하였다.

한반도 상공이 전쟁구름으로 뒤덮인 가운데 결전의 시각이 왔다. 1976년 8월 21일 오전 6시 48분, 선제핵타격수단들을 대기시킨 미국은 자기들이 자르려다가 자르지 못한 판문점 미루나무를 잘라버리는 ‘폴번연작전(Operation Paul Bunyan)’에 돌입하였다. 저격수들이 탑승한 기동헬기 20대와 중무장한 코브라 공격헬기 7대의 공중엄호를 받으며 지상에서 ‘폴번연작전’이 시작되었다. 그 작전을 지휘하는 야전사령관으로 임명된 모리스 브래디(Morris Brady) 미육군 소장이 기동헬기를 타고 판문점 상공에 나타났다. 전 세계가 숨을 죽이며 판문점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판문점 상공에서 요란한 총성이 연발로 울렸다. 판문점 인근에서 매복하던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의 기관총이 모리스 브래디가 탄 기동헬기를 향해 불줄기를 뿜은 연발사격이었다. 기관총탄 2발이 그 기동헬기에 명중하였다. 모리스 브래디는 그만 아연실색하였고, 그가 탄 기동헬기는 황망히 기수를 돌려 남쪽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

▲ <사진 7> 1976년 8월 19일 '판문점사건'으로 조선과 미국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직면하였다. 미국은 선제핵타격준비를 갖추고 즉각 조선을 공격할 것처럼 위협하였다. 당시 주한미국군기지들에는 각종 핵탄이 950발이나 배치되었으나, 조선에게는 핵탄이 1발도 없었다. 세계 최대 핵보유국과 비핵국은 그처럼 불균형한 조건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위의 사진은 당시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주축으로 편성된 강력한 항모강습단이 동해에 출동하여 고속항진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그런 핵위협 속에서도 조선은 굴하지 않고 미국군 야전사령관이 탑승한 기동헬기가 판문점 상공에 나타나자 기관총으로 사격하여 쫓아보내는 대담무쌍한 행동을 취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은 ‘판문점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핵광란에 맞서 싸우는 길은 자위적 핵무장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그래서 조선은 1977년부터 핵무기개발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던 것이니,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일이다.

1977년부터 올해 2016년까지 꼭 40년이다. 그 기간에 조선이 핵무기개발사업을 추진해오면서 미국의 집요한 정치군사적 압박을 단독으로 돌파하기 위해, 그리고 앞길을 가로막는 숱한 과학기술적 난제들을 자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였는지를 말해주는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조선은 죽과 강냉이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1990년대 후반의 혹독한 시련기에도 핵무기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추지 않은 게 아니라, 그 혹독한 시련 속에서 조선의 핵무기개발의지는 한층 더 강렬해졌으며, ‘고난의 행군’ 시기에 조선의 핵무기개발사업은 오히려 비약적으로 진전되었다. 지난 경험을 돌이켜보면, 미국이 핵위협의 고삐를 틀어쥘수록 조선의 핵무력은 한층 더 증강되었고, 미국이 핵공갈로 협박할수록 조선에서는 혁명승리의 노래가 더 높이 울려나왔음을 알 수 있다. 


6. 40년 만에 완성된 조선의 핵무장

‘판문점사건’ 직후 조선의 핵무기개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적인 발기와 지도로 본격화되었고, 올해 2016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로 조선의 핵무기개발은 완성되었다. 장장 40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힘써온 조선의 핵무기개발이 마침내 완성된 것이다.

40년 동안 추진되어온 조선의 핵무기개발이 올해 완성되었다는 말은 핵무장을 완성하였다는 뜻이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선제핵타격능력과 보복핵타격능력을 완전무결하게 갖추었다는 뜻이다. 조선이 올해 핵무장을 완성하였다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첫째, 핵무장은 군사사업이지만, 군사사업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사업에 직결된다. 핵무장을 포함한 모든 군사활동은 언제나 정치활동의 물리적 연장이다. 그리하여 조선은 핵무장을 완성하기 직전, 핵무장 완성에 필요한 정치사업을 선행시켰다. 이와 관련된 정치일정은 이미 2013년에 펼쳐진 바 있다. 

2013년 3월 3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발표하였고, 2013년 4월 1일 조선 최고인민회의는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을 채택하였다.

▲ <사진 8> 조선은 1977년부터 장장 40년에 걸쳐 진행한 핵무기개발을 올해 2016년에 마침내 완성하였다. 조선은 핵무장을 완성하기 직전, 핵무장 완성에 필요한 정치사업을 선행시켰다. 2013년 3월 3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발표하였고, 2013년 4월 1일에는 조선 최고인민회의는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을 채택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둘째, 조선은 핵무기개발에서 제기된 숱한 과학기술적 난제들을 완벽하게 해결하였음을 실물로 또는 실제행동으로 입증하였다. 그 내역을 시차 순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조선은 2016년 1월 6일 수소탄 기폭시험에 성공함으로써 핵탄기폭기술개발에서 제기된 과학기술적 난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였다.
(2) 조선은 2016년 3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무기병기화사업 지도현장에서 소형화된 핵탄두 실물과 핵탄격발기 실물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핵탄두의 소형화, 경량화에 제기된 과학기술적 난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였음을 과시하였다.
(3) 조선은 2016년 3월 14일 재진입체환경모의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함으로써 대륙간탄도미사일 재진입체를 만드는 과학기술적 난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였다.
(4) 조선은 2016년 4월 8일 대출력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에 성공함으로써 대륙간탄도미사일 로켓엔진을 만드는 과학기술적 난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였다.
(5) 조선은 2016년 6월 22일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0 고각발사에 성공하고, 8월 3일 준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7 시험발사에 성공하고, 9월 5일 준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6 개량형 연속발사에 성공함으로써 탄도미사일의 타격정밀도를 보장하는 과학기술적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였다.

셋째, 조선이 선제핵타격능력과 보복핵타격능력을 완성하였다는 사실은  2016년 9월 9일에 진행된 핵탄두기폭시험과 2016년 8월 24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을 전략잠수함에서 수중발사한 시험에서 입증되었다. 9월 9일의 핵탄두기폭시험은 선제핵타격능력을 완성하였음을 보여준 것이고, 8월 24일의 ‘북극성’ 수중발사시험은 보복핵타격능력을 완성하였음을 보여준 것이다.

조선이 핵무장을 완성한 것은 미국이 조선에게 일방적인 핵공격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은 핵무장을 완성함으로써 미국의 핵보복을 완전히 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선이 미국의 핵보복을 완전히 억제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조선인민군이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을 공격해도 미국의 핵보복을 받을 우려가 없어졌다. 이것은 미국의 핵우산이 찢어지고 말았음을 의미한다. 찢어진 핵우산으로는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조선이 핵무장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던 지난날에는 미국의 핵공격위험을 우려해야 하였지만, 미국의 핵우산이 찢겨진 오늘에는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자기들의 생사문제를 걱정하게 되었다. 

40년 만에 핵무장을 완성한 조선의 당당한 모습, 그리고 찢어진 핵우산을 펴든 미국의 불안한 모습, 이 극적인 대조는 뜻밖의 대격변이 일어날 것임을 예고해주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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