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30

[변혁과 진보(9)] 우리식 변혁담론의 당건설 이론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당건설은 사회변혁 승리의 열쇠다

낡고 썩은 세상을 새롭고 올바른 세상으로 바꾸는 사회변혁은 누구의 과업일까? 물어보나 마나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민중의 과업이라고 나온다. 사회변혁의 주체를 민중이라고 정의한 명제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다만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그 명제를 좀 더 다듬는다면, 사회변혁의 주체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라고 재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회변혁의 주체를 민중이라고 정의한 명제만 가지고서는 우리식 변혁담론을 깊이있게 전개할 수 없어서, 그 명제에 대한 이론적 해명이 더 요구된다는 점이다. 사회변혁의 주체를 민중이라고 정의한 명제를 이론적으로 해명할 때 첫 번째로 나오는 물음은, 사회변혁의 핵심역량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만일 사회변혁의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이론적으로 해명하지 못하면, 사회변혁의 주체를 민중이라고 정의한 명제만 남게 되는데, 그 명제만 가지고서는 사회변혁은커녕 아무 것도 이뤄내지 못한다.
 
사회변혁을 밀고 나가는 핵심역량은 무엇일까? 우리식 변혁담론은 사회변혁강령을 추구하는 정당이 사회변혁의 핵심역량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다시 정리하면, 사회변혁강령을 추구하는 정당이 사회변혁을 밀고 나간다는 명제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사회변혁의 실현여부를 좌우하는 사활적 요인은 사회변혁강령을 추구하는 정당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당건설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만일 변혁담론의 당건설 이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또는 알고 있더라도 잘못 알고 있으면, 사회변혁이 요구하는 당을 건설할 수 없고, 또한 사회변혁이 요구하는 당을 건설하지 못하면, 사회변혁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당건설을 사회변혁 승리의 열쇠라고 표현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우리식 변혁담론은 민주주의변혁에 대한 담론이므로, 그 담론에서 논하는 당건설 이론은 당연히 민주주의변혁의 당건설 이론이다. 민주주의변혁의 핵심역량인 당은 어떻게 건설되는 것일까? 민주주의변혁의 당건설 문제를 새로운 눈높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변혁과 당건설 문제

민주주의변혁을 포함한 모든 유형의 사회변혁을 밀고 나가는 핵심역량은 전위정당(vanguard party)이다. 전위정당과 대중정당(mass party)은 서로 대칭되는 개념이다. 전위정당이 사회변혁의 핵심역량으로 되는 까닭은, 전위정당이야말로 사회변혁강령을 추구하는 가장 강력한 정치조직이기 때문이다. 전위라는 말 자체가 선봉, 선구, 선진이라는 뜻을 지닌다. 전위정당이 사회변혁의 핵심역량이라는 논지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여러 유형의 사회변혁들 가운데서 특정한 민주주의변혁을 밀고 나가는 핵심역량은 무엇일까? 위의 설명에 따르면, 민주주의변혁의 핵심역량도 예외가 아니므로 당연히 전위정당이 그 핵심역량으로 된다. 우리식 변혁담론은 전위정당이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한다고 단언한다. 이것은 전위정당을 건설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변혁의 실현여부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전위정당 건설인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물음은, 민주주의변혁을 밀고 나가는 전위정당이 구체적으로 어떤 당인가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변혁을 밀고 나가는 전위정당의 지위와 성격, 역할과 임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형형색색 정당을 정치성격으로 분류하면, 좌파정당, 중도정당, 우파정당으로 대별되는데, 전위정당의 지위는 좌파정당의 성격과 일치한다. 전위정당의 지위와 좌파정당의 성격을 가진 정당은 어떠한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는 것일까? 그런 정당의 역할은 사회주의강령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런 정당의 임무는 사회주의변혁을 수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위정당이란 곧 좌파 전위정당을 뜻한다.

그런데 이처럼 좌파 전위정당이 민주주의변혁을 밀고 나간다고 정의하는 경우, 민주주의변혁과 사회주의변혁의 차별성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서, 두 단계 사회변혁론이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의문에는 두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첫째, 좌파 전위정당을 용인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좌파 전위정당이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민주주의변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닐까? 또한 우리 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좌파 전위정당을 요구하지 않는 오늘의 현실에서, 좌파 전위정당이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민주주의변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닐까?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사회주의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꺼내기만 해도 잡아가는 만고의 악법 '국가보안법'이 존치되는 한, 우리 사회에서 좌파 전위정당은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장차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민주주의 질서가 공고화되어 만고의 악법이 철폐되거나 사문화된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좌파 전위정당의 출현을 여전히 외면한다면, 좌파 전위정당을 건설할 수도 없고 또 건설해서도 안 된다.

만고의 악법이 철폐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정치의식이 전위정당의 출현을 요구할만큼 급진화된 상황에서, 오직 그런 변혁적 상황에서만 좌파 전위정당은 건설되는 것이다. 그런 정세가 조성되지 않았는데도, 막무가내로 좌파 전위정당을 건설한다면 그것은 조급증에 사로잡힌 급진주의자들이 정치적 고립과 실패를 자초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만고의 악법이 존치되어 있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좌파 전위정당의 출현을 외면하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변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만고의 악법이 존치되어 있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좌파 전위정당의 출현을 외면하니까 민주주의변혁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백해무익한 패배주의에 물드는 것이다.

우리식 변혁담론은 민주주의변혁을 위해 어떠한 정당이 건설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좌파 전위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정당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정당은 전위정당의 지위가 아니라 대중정당의 지위를, 좌파정당의 성격이 아니라 중도좌파정당의 성격을 갖는다.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정당은 중도좌파 대중정당인 것이다. 우리식 변혁담론의 당건설 이론은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중도좌파 대중정당을 건설하는 정치과업을 제시한다.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중도좌파 대중정당을 흔히 진보정당이라 부르지만, 진보정당이라는 개념은 너무 통속적이어서 그런 통속적 개념만 가지고서는 중도좌파 대중정당과 중도우파 대중정당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중도좌파 대중정당이라는 특정개념을 쓰는 것이다.
   
둘째, 우리식 변혁담론의 당건설 이론에서 좌파 전위정당이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좌파 전위정당이 민주주의변혁의 핵심역량이라는 뜻일까?
 
좌파 전위정당이 사회주의변혁의 핵심역량이라는 논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 당이 민주주의변혁의 핵심역량이라는 논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좀 더 요구된다.

우리 사회에 만고의 악법이 존재하지 않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좌파 전위정당의 출현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정세가 성숙하였다고 가정할 때, 그런 조건에서도 좌파 전위정당은 사회주의변혁이 아니라 민주주의변혁을 밀고 나가야 한다.

지난 번에 쓴 나의 글들에서 논한 바 있는 두 단계 사회변혁은, 만고의 악법 존재유무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적 요구와 무관하게 오직 사회성격에 의해서 규정되기 때문에 그러하다. 물론 만고의 악법이 철폐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정치적으로 성숙한 조건에서는 민주주의변혁을 수행하는 기간이 크게 단축될 것이다.

중도좌파 대중정당은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예비한다.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는 것은 좌파 전위정당의 임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중도좌파 대중정당이 좌파 전위정당 같은 인상을 대중에게 줄 필요는 없다.

만고의 악법이 존치되어 있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좌파 전위정당을 요구하지 않는 오늘의 정치현실에서, 중도좌파 대중정당은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면서 사회주의적 지향(socialist orientation)을 내포하게 된다. 사회주의적 지향을 내포하는 공간은 중도좌파 대중정당 안에 마련된다. 중도좌파 대중정당은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면서, 자기 안에 사회주의적 지향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도좌파 대중정당이 자기 안에 사회주의적 지향을 내포한다고 해서, 사회주의강령을 표방하는 정치활동에 나서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당의 내포적 지향과 당의 정치활동은 서로 구분된다. 사회주의강령을 추구하는 좌파 전위정당과 다르게, 중도좌파 대중정당은 민주주의강령을 제시하고 그것을 일관되게 추구하여야 한다.

그런데 만일 중도좌파 대중정당이 사회주의적 지향을 내포하지 않는 경우, 그런 대중정당은 중도우파 대중정당과의 차별성을 잃어버리고, 사회민주주의정당으로 전락하게 된다.


단 하나 뿐인 중도좌파 대중정당

전세계 정당분포를 살펴보면, 중도좌파 대중정당이 있는 곳은 우리 사회가 유일하다. 유럽 각국에 좌파 전위정당이나 중도우파 대중정당은 있지만, 중도좌파 대중정당은 없다. 우리 사회에 중도좌파 대중정당이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유럽 각국의 좌파 전위정당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졌으면서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한 채 약체정당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대규모 총파업투쟁을 격렬하게 일으켰는 데도, 그 세 나라 좌파정당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며, 좌파정당들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면, 유럽 각국에서 좌파 전위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인다.

다른 한 편, 유럽 각국의 중도우파 대중정당들은 단독집권은 하지 못해도 녹색당 등과 손잡고 연립정부를 세우는 집권성공사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정당들은 태생적으로 사회민주주의에 묶여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변혁에는 관심이 없다. 이처럼 유럽 각국에서 사회변혁의 길이 너무 멀게 느껴지는 까닭은,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중도좌파 대중정당을 건설하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그 당을 중심으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단결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유럽 각국의 좌파정당들은 민주주의변혁의 당건설 이론을 알지 못하는 한계에 놓여있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 데도, 유럽식 좌파 전위정당을 모방한 당을 건설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유럽식 중도우파 대중정당을 모방한 당을 건설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다. 당건설 문제를 주체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우리의 사회정치현실에 잘 맞지도 않는 남의 경험과 이론을 수입하여 모방하려는 것은 실패를 자초하는 무모한 짓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회성격에 기초한 우리식 변혁담론을 논해야 하며, 우리식 당건설 이론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식 변혁담론이 말하는,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중도좌파 대중정당의 실체는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져 나간 진보신당도 있지만, 우리식 변혁담론을 판단기준으로 삼고 바라보면, 진보신당을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중도좌파 대중정당이라고 인정하기 힘들다. 유럽식 좌파 전위정당을 모방하거나 또는 유럽식 중도우파 대중정당을 모방하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풍조가 그 당 안에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다른 한편,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중도우파 대중정당의 전형이다.

우리 사회에서 유일무이한 중도좌파 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올해로 창당 10주년을 맞았다. 당의 역사에 10년 연륜이 쌓였는데도,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어제를 반성하고, 오늘을 분석하고, 내일을 전망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안정적이지 못하다. 민주노동당의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갖가지 물음이 꼬리를 문다. 

10년 전, 창당주역들은 과연 민주주의변혁의 당건설 이론을 생각하며 당을 건설하였을까? 지난 10년 동안 민주노동당은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임무에 얼마나 충실하였을까? 민주노동당이 사회주의적 지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민주노동당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2010년 10월 29일 작성)

2010/10/25

[변혁과 진보(8)] 평화체제수립과 민주주의변혁의 시나리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사회변혁과 평화실현은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

사회변혁 시나리오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있다. 연구를 심화할수록 더 많은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변혁의 미래를 전망하는 방향이 어느 한 쪽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고, 역동적으로 변화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에 사회변혁 시나리오가 많은 것이다.

2010년 10월 14일에 작성한 나의 글 '대공황, 세계대전, 사회변혁 시나리오'가 제1시나리오라면, 이 글에서 논하는 것은 제2시나리오다. 제1시나리오가 세계정세의 급격한 변화에 의해, 우리의 주체적 의지와는 무관하게 엄습할 대파국을 전망한 것이라면, 이 글에서 논하는 제2시나리오는 한반도 정세의 급격한 변화를 전망한 것이다. 제1시나리오는 대공황과 세계대전의 폭발로 전개되는 것인데 비해, 제2시나리오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평화실현과 사회변혁은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 평화문제만 편향적으로 생각하는 평화주의자들은 평화실현과 사회변혁이 무관하다는 착각에 빠진 반면, 사회변혁만 편향적으로 생각하는 급진주의자들은 평화문제가 빠진 공허한 변혁담론을 논한다. 정세변화의 한 측면만 바라보는 우편향 또는 좌편향에 매몰되면, 평화체제도 수립할 수 없고 사회변혁도 실현할 수 없다.

우리식 변혁담론은 민주주의변혁이 평화실현과 직결된다고 말한다. 우리식 변혁담론의 그러한 관점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우선, 한반도 평화문제를 세계분쟁지역의 평화문제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세계분쟁지역의 평화문제와 달리, 한반도의 평화문제는 단지 전쟁위험에서 벗어나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평화문제는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미국의 제국주의 군사지배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그 의미지평을 확장한다. 그 까닭은 아래와 같다.

2010년 9월 15일에 작성한 나의 글 '제국주의세계체제론과 식민지반자본주의론'에서 논한 것처럼, 미국이 제국주의세계체제를 장악유지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그들이 틀어쥔 강한 군사력이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력은 정치, 경제, 문화, 사상 등 각 부문에 걸쳐 총체적으로 작용하는데, 특히 군사부문에 그 지배력의 중심이 놓여있다. 미국의 군사력이 쇠퇴하면, 제국주의세계체제도 급속히 쇠퇴할 것이다.

제국주의세계체제의 군사부문은 대미독자관계와 대미의존관계로 뒤엉켰는데, 예컨대,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은 대미독자관계에 있고, 일본, 독일, 이탈리아는 대미의존관계에 있다. 제국주의세계체제의 군사부문에서 위의 두 종류에 해당하지 않는 별종이 있으니, 그것이 대미예속관계다. 65년 동안 핵우산을 설치해 놓은 것은 것도 부족해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한국군을 지휘통제하면서 북침작전연습을 끊임없이 벌이는 것이야말로, 군사부문에서 대미예속관계가 완전히 고착된, 매우 특이한 현실이다. 이 땅의 식민지반자본주의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력은 일차적으로 군사부문에서 작용하며, 우리 사회의 식민지적 예속성은 일차적으로 군사부문에서 생성된다.

그러므로 식민지적 사회성격을 제거하고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군사지배체제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곧 미국의 제국주의적 군사지배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 자체가 식민지적 사회성격을 제거하고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과 동일하게 보인다. 우리식 변혁담론에 따르면, 식민지적 사회성격을 제거하고 자주성을 실현하는 과업이 민주주의변혁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이므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여 미국의 제국주의적 군사지배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식민지적 사회성격을 제거하고 자주성을 실현하는 민주주의변혁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지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변혁은 평화체제수립과 더불어 동반적으로 실현된다고 말할 수 있다.


3단계로 전개되는 제2시나리오

평화체제를 수립하여 미국의 제국주의적 군사지배체제에서 벗어나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북측이 반제군사전선에서 승리하여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남측의 중도좌파정당이 집권하여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길이다. 이 글에서 논하는 제2시나리오는 전자인데, 후자는 이 글 다음에 집필할 제3시나리오에서 논한다.

제2시나리오의 3단계는 북측의 반제군사전선 승리→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종미우파 몰락과 민주주의변혁 실현이다. 3단계 시나리오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반제군사전선이라는 개념이다. 반미군사전선이라 하지 않고 왜 반제군사전선이라고 했을까? 그 까닭은, 미국군만이 아니라 일본자위대까지 상대하는 군사전선이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국군이 '창'이라면, 일본자위대는 '방패'다. 미국은 일본 열도의 중요거점들을 군사전략기지와 북침발진기지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미국군 지휘부는 '창'과 '방패'를 모두 쓸 것이기 때문에 반미군사전선이 아니라 반제군사전선이라 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북측이 과연 반제군사전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북측은 "대화에도 전쟁에도 모두 준비되어 있다"고 공언한다. 북측의 그 공언은 반제군사전선의 양면을 보여준다. 북측의 반제군사전선에는 미국이 정치적으로 굴복할 때까지 끊임없이 핵압박공세를 가하는 측면도 있고, 대미전쟁에 철저히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

북측이 반제군사전선에서 핵압박공세를 가해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킨다는 말은, 미국 대통령을 북미 정상회담으로 끌어내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의제를 담판으로 해결한다는 뜻이다. 핵개발, 핵실험, 핵확산으로 전개되어온 핵압박공세의 목표는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키는 담판이다. 북측은 1993년 이래 17년 동안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북미 정상회담으로 미국 대통령을 끌어내기 위해 핵압박공세의 강도를 계속 높여왔다. 미국은 북측의 핵압박공세에 아직 굴복하지 않고, 버티기 전술, 되돌리기 전술, 반발 전술(북침작전연습 강행과 대북제재 조치 남발)로 대응해 왔지만, 북측의 공세강도가 높아질수록 그들의 버팀목은 힘을 잃고 결국 꺾이고 말 것이다.

북측이 반제군사전선에서 대미전쟁 준비태세를 확립하였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인민군이 고속기동전과 군민총력전으로 72시간 안에 전쟁을 끝낼 준비를 갖추었다는 뜻이고, 식량, 유류, 탄약 같은 전쟁물자와 잘 훈련된 방대한 예비병력을 동원하는 전쟁수행체계를 모두 갖추었다는 뜻이다. 네 가지 관련정보가 있다.

첫째, 북측은 100만 대군을 '일당백 정신'과 '총폭탄 정신'으로 무장시키는 정신력 강화에 힘써왔다. 100만 대군의 정신력은 핵폭발보다 더 무서운 에너지로 폭발할 것이다.

둘째, 북측은 미사일전력을 기본으로 하여 잠수함전, 전차전, 특수전, 갱도전을 절묘하게 배합한 매우 특이한 전투방식을 개발하였다. '주체전법'이라고 부르는 이 전투방식을 미국군의 전투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즉시 미국군은 '급소'를 찔릴 것이다.

셋째, 북측은 '주체의 령군술'이라 부르는 독특한 지휘통제술을 개발하였다. 원래 전쟁은 무기가 아니라 체계(system)으로 하는 것이다. 한국군은 3군 사령부들이 각개통제하는 합동군체제이고, 미국군은 합동참모본부와 전역별 통합군사령부가 분할통제하는 통합군체제이고, 인민군은 최고사령관이 총참모부를 통해 총괄통제하는 단일군체제다. 어떤 영군체제가 가장 위력적인지는 불문가지다. 이를테면 '주체의 령군술'은 최고사령관→총참모부→대연합부대→구분대(약 160명 병력으로 이루어진 중대 또는 독립소대)로 편제된 100만 대군의 작전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통제하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 단일군체제의 기본전투단위인 구분대 약 6,500개가 전방위 작전에 돌입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것이다.

넷째, 북측은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중거리 및 장거리 전략미사일, 세계 최고 수준의 요격미사일 종합체, 적의 지휘통제와 통신연락을 차단하는 전자기파 무기, 신출귀몰하는 무인전투기 같은 이른바 '비대칭 무기'를 개발하여 미국군 항모강습단, 원정강습단, 공습비행단의 공격을 꺾을 전투력을 보유하였다.
위와 같은 각종 정보를 종합하면, 북측이 핵압박공세로 승리할 가능성 또는 72시간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뜻한다. 우리식 변혁담론은 그러한 가능성을 주목하면서 제2시나리오를 논한다.   


급격하고 근본적인 정세변화와 그 이후

급격하고 근본적인 정세변화를 몰고 올 평화체제 수립과정은 평화협정 체결에서 그 첫 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협정은 미국이 핵우산 철거, 주한미국군 철군, 한미동맹 철폐를 연쇄적으로 이행하도록 강제할 것이다. 철거-철군-철폐의 연쇄적 이행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다섯 가지 변화를 예견할 수 있다.

첫째, 적대적 대북정책과 예속적 한미동맹에 의존해온 종미우파의 쇠퇴와 몰락이 불가피할 것이다. 정권을 잡은 종미우파가 쇠퇴몰락하면 정권을 내놓아야 한다. 이것은 과도기를 예고한다. 종미우파가 쇠퇴몰락한 과도기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민주주의변혁과업을 제시하여 그들의 지지를 얻어낼 결정적인 기회를 중도좌파정당에게 안겨줄 것이다.

둘째, 대북관계가 급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대북관계의 급진적 개선은, 한미동맹 철폐로 우리 사회에 엄습할 '안보불안감'을 해소해 줄 유일한 길이다. 남측 정부가 대북관계를 급진적으로 개선하면, 남북 정상회담도 실현될 것이고, '국가보안법'도 사문화된다.

셋째, 한미동맹에 의존해온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중도우파정당은 종미우파처럼 쇠퇴몰락하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위축될 것이고, 자기에게 닥친 정치적 위기를 피하려고 변신을 꾀할 것이다. 중도우파정당은 중도좌파적 요소를 수용하는 쪽으로 변신할 것이므로, 그러한 변신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정치연합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넷째, 남측 시장에 투자한 미국계 자본이 철수함으로써 경제부문에서 대미예속성이 청산될 것이고, 그 대신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의존도와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급속히 높아질 것이다. 특히 경제부문에서 대일예속성을 청산하는 문제가 제기될 것인데, 이 문제는 남북경제협력을 확대하여 해결할 수 있다. 중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해소하는 문제도 남북경제협력을 확대하여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경제부문에서 대외예속성의 청산과 외국자본의 일방적 철수는 가뜩이나 불안정한 시장경제를 더 위태롭게 만드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변혁의 경제자립강령을 실현할 기회이기도 하다.

다섯째, 낡은 질서가 무너지는 사회정치적 혼란기에는 계급계층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여 갈등과 투쟁이 확산격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예상치 못한 대중항쟁이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급격하고 근본적인 정세변화를 겪으며 정권교체기에 들어서는 경우, 민주주의변혁의 최선책은 중도좌파정당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지지를 받아 독자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그런 최선책이 통하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변혁의 차선책은 중도좌파정당이 중도우파정당과 연합하여 공동정부(연립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독자정부냐 공동정부냐 하는 문제는, 중도좌파정당의 정치역량이 결정할 것이다. 다만 중도우파정당의 독자정부 수립은 우리식 변혁담론이 예상하는 최악의 경우이므로 피해야 할 것이다.

중도좌파정당이 독자정부를 수립하는 최선책은 민주주의변혁의 추진속도를 빠르게 할 것이고, 그 정당이 중도우파정당과 연합하여 공동정부를 수립하는 차선책은 민주주의변혁의 추진속도를 상대적으로 느리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민주주의변혁의 실현은 확정적이다.
  
정권교체기는 2012년이다. 위에서 언급한, 급격하고 근본적인 정세변화가 2012년까지 일어날 것인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설령 2012년까지 위에서 언급한 정세변화가 일어나지 않아도, 제2시나리오는 2012년 이후 상황에서도 유효할 것이다. (2010년 10월 24일 작성)


2010/10/15

[변혁과 진보(7)] 대공황, 세계대전, 사회변혁 시나리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대침체가 아니라 대공황이다

2010년 9월 30일 '지구적 금융·재정 위기와 한국 시민사회의 과제'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거기에 참석한 캐나다인 학자 조너던 닛전(Jonathan Nitzan) 교수의 발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토론토에 있는 요크 대학교의 정치경제학 교수인 그는 쉼션 비클러(Shimshon Bichler)와 함께 2009년에 펴낸 책 '권력으로서의 자본: 질서와 재편에 대한 연구(Capital as Power: A Study of Order and Creorder)'로 유명해졌다.

기자가 그에게 "이번 위기, 정말 그토록 심각한가?"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까지의 다른 위기 국면에서 투자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존속'을 우려한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자본주의의 지배층들이 자신감을 잃고 체제의 존속 자체를 걱정하는 시스템 차원의 위기 상황이다."

<월스트릿 저널> 2010년 9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2008년 8월 15일 미국의 국제금융회사 리먼 브라더스 홀딩스가 파산하자 유럽연합 주요국들은 부랴부랴 11월에 비공개 실무대책반을 설치하였다. 비공개 실무대책반이 설치된 뒤로,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나라들이 파산위기에 몰렸고,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나라들도 파산위기에 빠져들었다.

2009년 2월 4일 세계은행 수석분석가 저스틴 린(Justin Lynn)은 2008년 여름에 발생한 국제금융위기로 국제증시가 30-35조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국제부동산 부문도 비슷한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고 하면서, 전세계의 1년 GDP에 이르는 60조 달러가 '증발'하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정세는 조너던 닛전 교수가 지적한 자본주의세계시장의 붕괴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준다.

2008년 이후 자본주의세계시장을 연속 강타하고 있는 붕괴위기에 대한 정보자료를 이 글에서 장황하게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면, 자본주의세계시장은 존속 여부가 불확실한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자본주의세계시장을 옹호하는 친자본 이론가들은 이른바 대침체(great recession)라는 신조어까지 들고 나오면서 대공황(great depression)은 아니므로 안심하라고 선동하지만, 자본주의세계시장이 차츰 대공황으로 근접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현실이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세계시장을 지탱하는 요인들은 각국 정부들이 마구잡이식 재정지출로 금융자본의 전면파산을 간신히 저지하는 것, 그리고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재정기구를 가동한 돌려막기식 긴급처방으로 재정파탄을 간신히 저지하는 것, 그리고 환율조작과 국채남발로 시장붕괴를 간신히 저지하는 것, 그리고 신흥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기대심리가 작동하는 것 등이다. 그렇지만 대공황을 피하려는 저들의 능력에는 명백하게도 한계가 있다.
   
오늘 대공황에 대한 공포가 엄습한 자본주의세계시장에서는 경기회복에 관한 정보조작과 기만선전으로 공포스러운 현실을 은폐하려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주요 20개국이 긴급회의를 연속하여 개최하는 것도 그런 소동 가운데 하나다. 오죽 급했으면 서울에 몰려가 긴급회의를 또 진행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들의 소동은 위기극복대책이 아니라 임박한 파탄시기를 뒤로 미루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으며, 대공황으로 접근하는 자본주의세계시장의 위기상황을 반전시킬 능력은 그들에게 없다. 


어디서 폭발음이 들려올까?

자본주의세계시장의 대공황이 세계대전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경고가 있다. 위의 언론대담에서 조너던 닛전 교수는 "자본주의 지배층이 현재의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른바 '계급투쟁'이 치열해지고 1, 2차 세계대전 같은 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다.

자본주의세계시장이 대공황에 근접할수록 위기상황에서 살아남으려는 강대국들의 대립각은 예리해질 것이다. 오늘 세계 정세에서는 강대국들의 첨예한 대립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강대국들의 대립관계가 과열되면, 상대를 짓눌러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적대적 환경이 조성될 것이고, 그런 환경에서 자본과 권력의 자제력은 무의미해진다. 이것은 어떤 강대국이 자기의 생존을 위해 다른 강대국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는 미증유의 사태를 예고한다. 국제관계에서 자본과 권력의 강제력 행사는 곧 세계대전의 시작이다.
  
세계대전의 폭발음은 동북아시아와 중동에서 들려올 것이다. 최근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된 미국과 일본의 심각한 갈등, 그 와중에 해양주권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중국과 일본의 정면충돌, 대만문제와 천안함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진 중국과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립 등은, 동북아시아에서 적대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최근 중국이 북측과의 관계강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까닭은, 미국과 일본의 연합공세에 맞설 중국을 도와줄 나라는 북측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중동에서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결이 격화되었고, 이란 핵문제를 빌미로 삼은 미국과 대미추종국들의 이란 압박공세가 중동의 적대적 환경을 한층 더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스라엘군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습하는 날, 중동 정세는 대규모 무력충돌을 피할 수 없다.

대공황의 적대적 환경에서 일어날 세계대전은 군사강국들의 핵교전이 될 것이다.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전략핵무기와 수소폭탄이 터져 인류가 전멸하고 지구가 종말에 이르게 된다는 우려도 있지만, 그런 우려는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이다. 전략핵무기와 수소폭탄이 터져 인류가 전멸하고 지구가 종말에 이르면, 우선 군사강국들부터 멸망할 판인데, 군사강국들은 자멸을 자초할만큼 어리석지 않다.
  
21세기에 일어날 세계대전은 20세기에 일어났던 두 차례 세계대전과는 전혀 다른 전쟁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핵참화를 동반한 대량파괴전쟁이 아니라 전술핵탄두와 전자무기로 상대의 '급소' 몇 군데를 정밀타격하여 전쟁수행력을 마비시켜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혹심한 전쟁피해 없이 속전속결식으로 끝나는 핵교전이 될 것이다.

속전속결식 핵교전이 벌어지는 경우, 핵무장을 하지 못한 나라는 망하고, 군사강국들 가운데서도 핵전쟁 대비태세가 확고한 핵보유국이 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에서 핵무장을 하지 못한 일본이 세계대전으로 망할 가능성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다른 한편, 군사강국들 가운데서도 가장 강고한 핵전쟁 대비태세를 갖춘 핵보유국인 북측이 미국에 맞선 중국과의 협공으로 대미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보인다.


전쟁이라기 보다 급변사태에 가깝다

동북아시아에서 적대적 환경이 격화되는 경우, 중국은 남측, 일본, 대만의 '생명줄'인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식량 및 석유수송로를 예고 없이 봉쇄할 것이다. 그럴 경우, 남측과 일본과 대만에서는 급변사태가 일어나고, 그들의 전쟁수행력은 급속히 감퇴될 것이다. 급변사태로 갈등이 고조된 중국과 일본이 우발적이건 고의적이건 무력충돌을 벌이면, 미국은 미일안보조약에 따라 무력개입을 할 수 밖에 없다.

만일 미국이 태평양사령부 휘하 무력으로 중국을 공격하면, 중국은 물론 북측도 대미전쟁에 나서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북측이 벌일 대미전쟁의 전장이 한반도 밖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인민군은 일본 열도와 괌에 전진배치된 미국군기지들을 각종 고성능 미사일과 잠수함으로 기습공격하여 미국군의 '급소'를 찌를 것이며, '급소'를 타격받은 태평양사령부 휘하 항모강습단, 잠수함대, 원정강습단, 전투비행단들은 무력화될 것이다. 인민군에게 과연 그러한 급소공격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명하는 것은 간단치 않으므로 이 글에서 생략한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할 만한 사실은, 201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대규모 열병식에서 북측이 처음 공개한 각종 최첨단 미사일의 위력을 생각하면 인민군이 미국군의 '급소'를 찌를 기습공격력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한반도에서도 무력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인민군이 대구경 장사정포와 방사포, 단거리 미사일, 요격미사일 종합체를 동원하여 한미연합군 기지들을 기습공격하는 경우, 남측에서 전투기, 민간항공기, 헬기는 이륙할 수 없게 되고, 군항에 정박 중인 전함들도 출동하지 못하게 된다.

한국군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인민군을 상대로 지상전을 벌이는 동안, 방어선을 우회하여 고속침투한 인민군 특수부대는 제공권을 상실한 채 기지 안에서 우왕좌왕하는 주한미국군 2만8,000명을 포위할 것이고, 남측에 체류하는 미국인 10만여 명은 미처 일본으로 대피하지 못하고 아비규환 속에서 억류될 것이다. 미국군 2만8,000명이 적군에게 포위되고, 미국인 10만여 명이 전투지역에 억류되면 미국은 전쟁을 지속하지 못한다. 미국이 항복하면, 한국군도 전투를 중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전면전이라기 보다 급변사태에 더 가깝다. 최근 한국군이 열중하는 테러진압훈련은, 인민군 특수부대의 기습공격으로 일어날 급변사태를 상정한 대응작전연습이다. 이런 대응작전연습이 진행되는 것은, 위에 나온 전쟁 시나리오가 터무니 없는 상상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민주주의변혁은 전후처리과정에서 일어난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경험한 것처럼, 세계대전은 제국주의세계체제를 내분과 파열에 몰아넣을 것이며, 그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변혁운동이 급격히 고양될 것이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으로 사회변혁이 촉발된다는 공식이 성립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대공황의 아우성과 세계대전의 폭발음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사회변혁을 불러내는 '전주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에서 논한 대로, 세계대전은 순식간에 끝날 것이므로, 전쟁 중에 사회변혁이 일어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종전 직후 전후처리과정에서 사회변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의 사회변혁이 동북아시아 전후처리과정과 어떻게 연동되는지를 예상한 시나리오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시아 전후처리과정을 상정한 시나리오는, 승전국인 북측과 중국이 패전국인 미국과 일본을 상대하는 과정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후처리 주요과제는 승전국의 영토주권 확립, 패전국의 무장해제, 전쟁포로 및 억류자 송환, 전쟁배상 및 피해보상 등이다. 이러한 일반적 사례에 따르면, 시나리오에서 승전국으로 나오는 북측은 패전국인 미국에게 한미동맹 파기를 요구할 것이다.

시나리오에서 주한미국군은 인민군에게 전쟁포로로 잡혀있으므로 그들의 철군문제는 포로송환문제로 대체된다. 또한 북측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에게 한국군의 무장해제를 명령할 것을 미국에게 요구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북측과 중국은 미일동맹 파기, 주일미국군기지 폐쇄, 일본 자위대 무력감축을 공동으로 요구할 것이다.

전후처리 시나리오에 따르면, 위에 열거한 요구를 미국이 들어주어야 북측은 미국군 포로 2만8,000명과 미국인 억류자 10만여 명을 송환할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시나리오에 나오는 패전국들인 미국과 일본은 막대한 전쟁배상금과 피해보상금을 북측과 중국에 각각 지불할 것이다. 일본의 독도강탈 야욕도 전후처리과정에서 자동적으로 해소된다.

이러한 격변으로 미국의 보호를 상실한 남측 정부는 해체되고, 임시정부가 수립될 것이다. 길게 논할 필요 없이, 그 동안 민주주의 변혁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해온 남측의 진보정당이 임시정부 수립의 주역이 될 것이다. 남측에 세워질 임시정부의 역사적 임무는 민주주의변혁의 실현이다.

그러나 남측 유권자 가운데 10%도 되지 않는 저조한 지지밖에 받지 못하는 민주노동당이 임시정부의 주역으로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는 것은 힘에 부칠 것이다. 진보정당은 대공황, 세계대전, 사회변혁의 시나리오를 상상력의 발동이라고 경시할 것이 아니라 연구과제로 중시하면서 대비해야 할 것이다. (2010년 10월 14일 작성)

2010/10/10

[변혁과 진보(6)] 도시중산층, 우리식 변혁담론에 나타나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누가 사회계급구조의 중간부를 차지했을까?

민중이라는 말은 북측이나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는 잘 쓰이지 않고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많이 쓰인다. 

일반대중과 소통하는 진보담론에서는 노동계급 개념과 근로대중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민중이라는 통칭개념을 쓰지만, 진보적 정치활동가들 사이에서 논하는 변혁담론에서는 그 두 개념을 엄밀히 구분하여 쓸 필요가 있다. 노동계급도 넓은 의미에서 근로대중(working mass)에 속하지만, 노동계급 개념과 근로대중 개념을 엄밀히 구분하여 쓰는 까닭은, 노동계급이 사회변혁에서 특유한 지위와 역할을 지니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미래에도 특유한 사명과 임무를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이 사회변혁에서 어떤 지위와 역할을 지니는지, 그리고 장차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때 어떤 사명과 임무를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한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민중 개념이 이전보다 드물게 쓰이게 되었고, 그 대신 시민 개념이 더 많이 쓰인다는 점이다. 시민 개념의 사회적 용도가 민중 개념의 사회적 용도를 능가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언어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민 개념을 쓰는 중도성향의 사회운동가들이 우리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진보적 사회운동가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넘어섰음을 뜻한다.

원래 민중 개념에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통칭하는 사회계급적 의미가 담겨있는 데 비해, 시민 개념은 사회계급적 의미를 배제한 몰계급적 개념이다. 시민 개념을 가지고 사회계급관계를 바라보면, 노동자 위에서 지배자와 착취자로 군림하는 자본가도 시민으로 보이고, 자본가 밑에서 지배와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도 자본가와 똑같은 시민으로 보인다.

이처럼 시민 개념을 가지고서는 사회계급관계를 전혀 인식할 수 없는 데도, 중도성향의 사회운동가들이 그 개념을 널리 쓰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사회계급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민중 개념의 사회적 용도보다 시민 개념의 사회적 용도가 훨씬 더 많아진 것은, 사회계급구조가 변화하였음을 말해주는 현상이다.

사회계급구조의 변화란, 자본가계급에 속하지도 않고 노동계급이나 근로대중에도 속하지 않은 신흥 사회계층이 사회계급구조의 중간부를 차지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우리 사회는 위아래로 양 끝이 뾰족하고 허리가 매우 굵은 방추형으로 변모되었다. 사회계급구조의 중간부를 차지한 신흥 사회계층을 도시중산층이라 부른다.


두 가지 현상이 말해주는 것

한국개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소득분포에 따른 도시중산층 가구수는 1982년 66.7%에서 1987년 70.4%로 늘었고, 1992년에 75.2%로 정점을 찍었다가, 금융위기를 겪은 1998년에 66.8%로 격감하더니, 그 이후 70%로 회복되지 못하였는데, 2008년 현재 63.3%를 기록하였다.

도시중산층이 급증한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은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인구가 도시로 집중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산업구조가 바뀌었다는 말은, 이전 시기에 공업과 농업으로 양분되었던 산업구조에 서비스업이 출현하여 크게 팽창하였다는 뜻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서비스업 업종은 336개를 헤아린다. 이것은 서비스업이 비대해졌음을 뜻한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도시화 추세는 1960년 39.1%, 1970년 50.1%, 1980년 68.7%, 1990년 79.6%, 2000년 88.3%, 2009년 90.8%로 나타났다. 농촌 인구가 도시로 흘러들면서 도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서비스업의 비대화와 도시화 폭증추세는 도시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도시중산층 인구가 급증하였음을 말해준다.

서울시가 조사용역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서울시 인구 가운데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76.6%, 상위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3.7%, 하위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19.7%로 나타났다. 그런데 2010년 10월에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자료에 따르면, 자신을 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 응답자 가운데 85.9%, 서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12.1%로 나타났다. 서민이란 도시중산층보다 소득과 자산이 적은 사회계층을 뜻하므로, 서민은 곧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통속적으로 일컫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위의 두 가지 조사결과는, 도시중산층 귀속감의 비율이 75.6%에 이르고, 서민층 귀속감의 비율도 85.9%에 이른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조사결과다. 도시중산층 귀속감과 서민 귀속감이 이처럼 서로 엇갈린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실제로는 서민이면서도 자기가 도시중산층에 속한다고 보는 현실이탈적 귀속감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속에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 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서비스업 노동계급은 정신노동, 기술노동, 지능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다. 지식정보와 과학기술의 발달이 생산노동의 방식과 노동계급의 처지를 바꿔놓았다. 그런 환경에서 서비스업 노동계급은 도시중산층 귀속감을 지닌다. 이를테면, 출퇴근 시간에 쏟아져나오는 수많은 직장인들은 도시중산층 귀속감을 가진 노동계급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8월 현재 직장인 계층은 경제활동인구 2,483만6,000명 가운데 63.5%를 차지하는 1,420만1,000명이다.

둘째, 서비스업 업종이 336개로 세분화된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활에 미치는 서비스업의 사회경제적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서비스업에 접촉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활공간이 크게 확장되고, 서비스업에서 창출된 사회적 재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활에서 결정적으로 높아질수록,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도시중산층에 대한 자발적 귀속감을 갖게 된다.


직장인, 자영업자, 중소기업가

각종 통계를 살펴보면, 도시중산층이 절대다수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내부 실상에 해부학적으로 접근하면 도시중산층 귀속감을 지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 드러난다. 경제활동인구에서 절대다수는 여전히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인 것이다.

그러므로 변혁담론에 제기되는 도시중산층 문제를 해명하려면, 각종 통계에 나타난 도시중산층 가운데서 고유한 도시중산층과 도시중산층 귀속감을 가진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구분법에 따르면, 도시중산층은 직장인, 자영업자, 중소기업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역은 이렇다.

첫째, 직장인 계층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정신노동자, 기술노동자, 지능노동자들이므로, 이들은 노동계급에 속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0년 8월 현재 직장인 계층은 1,420만1,000명이다. 그 가운데서 판매·봉사직 노동자는 529만1,000명, 전문·기술·관리직 노동자는 514만3,000명, 사무직 노동자는 376만7,000명이다. 그에 비해, 원래 노동계급이라 부르는 생산직 노동자는 817만2,000명이다. 따라서 직장인 계층으로 분류되는 노동계급은 64%이고, 생산직 노동자로 분류되는 노동계급은 36%다.
  
둘째, 자영업자 계층은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거나 5명 미만을 고용하고 영업하는 사회계층이므로, 이들은 사실상 근로대중에 속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현재 자영업자는 597만명인데, 그 가운데서 5명 미만의 노동자를 고용한 자영업자는 152만7,000명,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은 자영업자는 444만3,000명이다. 2008년 현재 자영업자는 전체 취업자 가운데 31.3%를 차지한다. 한국노동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자영업자 1인당 연평균 소득은 1,370만원인데, 이것은 임금노동자 1인당 연평균 소득 2,569만원의 53.5%밖에 되지 않는다. 2007년 현재, 월평균 실질소득이 200만원을 밑도는 자영업자는 60%다. 이것은 자영업자 계층 가운데 대다수가 가난한 영세자영업자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셋째, 중소기업가 계층은 5명 이상 300명 미만의 노동자를 고용한 중소기업을 소유하고 경영하는 사회계층이므로, 이들은 자본가계급의 중하층에 속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현재 중소기업이 304만4,000개이므로, 중소기업가 계층은 대략 304만명 정도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중소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대기업에 기생하는 하층계열사로 편입되었으므로, 중소기업가 계층은 자본가계급에게 친화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가 계층의 일반적 성향이 그렇다 해도,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개별적 중소기업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식 변혁담론과 도시중산층

도시중산층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생겨난 산물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오늘처럼 발달하지 못했던 지난 시기에 나온 고전적 변혁담론은 도시중산층이 생겨나기 이전의 사회계급관계를 논하였으므로, 도시중산층 문제를 인식할 여지가 없었다. 고전적 변혁담론에서 중시한 것은 노동계급이었고,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계급과 농민의 전략동맹이었다. 노농동맹을 중시하던 시기에는 도시중산층이 아직 생겨나기 이전이었으므로 근로인텔리(working intellectuals)라는 개념을 썼는데, 도시중산층의 맹아라고 볼 수 있는 근로인텔리도 노동계급과 동맹관계를 맺는 사회계층으로 인식되었다.

고전적 변혁담론에 나오는 노농동맹전략은 당시 중간계급으로 지칭한 중농(中農)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명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노농동맹전략에서 중농 문제가 중시된 까닭은, 공업화 수준이 아직 높지 않고 농업생산이 지배적이었던 당시에 농민계층에서 중농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노농동맹전략에 따르면, 부농과 대지주는 사회계급적으로 청산할 배격대상으로 인식되었고, 빈농과 소작농은 사회변혁운동으로 끌어들일 포용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면 중농은 어떤 대상으로 인식되었을까?

노농동맹전략에서는 중농 전체를 싸잡아서 포용대상 또는 배격대상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포용대상, 중립화대상, 배격대상으로 나누어 세심하게 대하였다. 사회변혁운동 고양기에 사회변혁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중농은 적극 포용하였고, 사회변혁운동 준비기에 중농이 사회변혁을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을 때는 그들을 중립화시켰고, 사회변혁을 반대하는 중농은 배격한 것이다. 그와 다르게, 중농 전체를 싸잡아서 일괄적으로 사회변혁의 걸림돌로 매도하고, 중농의 토지를 강제로 몰수하였던 급진주의자들의 좌경적 오류는 중농을 자본가, 지주, 부농의 편으로 밀쳐내어 사회변혁의 동력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정치적 자해로 되었다.

지난 시기 노농동맹전략에서 제기된 중농 정책을 이해하면, 오늘날 변혁담론에서 도시중산층을 어떻게 인식하여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변혁담론은, 사회변혁운동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힘으로만 밀고 나갈 수 없으며, 반드시 도시중산층으로부터 추진동력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회변혁운동이 도시중산층으로부터 추진동력을 공급받는다는 말은 도시중산층 전체를 일괄적으로 사회변혁운동에 참가시킨다는 뜻이 아니다. 원래 노동계급인데도 도시중산층 귀속감을 가진 직장인 계층은 사회변혁운동으로 끌어들여야 할 포용대상이다. 임금노동자보다 평균적으로 더 가난한 자영업자 계층도 사회변혁운동으로 끌어들여야 할 포용대상이다. 중소기업가 계층은 사회변혁을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 중간지점에 묶어두어야 할 중립화대상이다.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제기한 도시중산층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중도좌파정당이 도시중산층의 중도우파정당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를 밝혀준다.

2010/10/01

[변혁과 진보(5)] 사회개조와 헌법개정은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사회개조와 헌법개정

낡고 썩은 세상을 바꾸는 것을 사회변혁이라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사회개조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사회변혁과 사회개조는 어떻게 구분되는 개념일까?

무릇 사회개조에는 급진적이고 강제적인 개조과정도 있고, 점진적이고 자발적인 개조과정도 있다. 급진적이고 강제적인 사회개조과정을 특정하여 사회변혁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회개조라는 넓은 개념 안에 사회변혁이라는 개념이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개조에서 급진적이고 강제적인 개조과정은 무엇이고, 점진적이고 자발적인 개조과정은 무엇인가를 정확히 구별하는 것은, 사회개조과정에서 좌우편향을 피하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중대한 문제다.

사회개조는 집권세력이 임의로 처리하는 여러 정치과업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수행하는 최고 정치과업이다. 최고 정치과업인 사회개조를 수행하는 법적 근거는 헌법이다. 따라서 사회를 개조하려면, 사회성격과 사회체제를 규정한 최상위법인 헌법부터 바꿔야 한다. 헌법을 바꾸는 것 이외에 사회개조의 법적 근거를 획득할 방도는 없다.

헌법을 바꾸는 방도는 헌법개정과 헌법제정 두 가지다. 두 단계 변혁담론에서 개헌과 제헌을 논하자면, 민주주의변혁단계에서는 개헌을 해야 하고, 개헌 이후 더 높은 변혁단계에 들어서면 제헌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변혁에서 말하는 개헌은 우리 사회의 예속성을 없애 자주성을 실현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개헌을 뜻한다. 민주주의변혁의 요구에 따라 헌법을 개정한 이후, 한 층 더 높은 변혁단계에서 제기될 제헌론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그에 대해 논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실현되는 두 단계 사회변혁은 이처럼 개헌에서 제헌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발전경로를 밟게 되지만, 우리의 경우는 분단체제를 타파하고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는 특별과업을 사회변혁과업과 함께 동반적으로 수행해야 하므로 통일헌법을 제정하는 과정도 반드시 거치게 된다.

통일헌법은 남과 북의 두 정부가 나라의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통일회담을 진행하게 되면, 그 회담에서 합의한 바에 따라 구성될 통일의회에서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은 그러한 통일회담으로의 지향을 제시한 정치적 합의였다.

위에서 논한 맥락에서 민주주의변혁의 실현경로를 전망하면, 대미예속성에서 벗어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진보적 정권이 민주주의변혁의 요구를 명문화한 개정헌법에 의거해 세워질 것으로 전망되고, 그렇게 세워진 진보적 정권은 통일의회가 제정하는 통일헌법에 의거해 세워질 전민족적 통일정부 수립에 참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시기문제를 전망하면, 민주주의변혁단계에서 개헌이 이루어진 직후에 그와 연동되어 통일헌법이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확인하는 사실은, 진보적 민주주의와 한반도 통일이 서로 분리된 채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조건을 바꿔놓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헌법은 국회에서 개정한다. 민주주의변혁단계에서 요구되는 개헌을 직접적으로 담당할 주체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에 적합하게 개변된 국회다. 그러므로 낡은 국회가 새로운 국회로 개변되어야 민주주의변혁의 요구에 따른 헌법개정을 시행할 수 있으며,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법적으로 확고히 보장할 수 있다.

그런데 현행 헌법 제10장에 따르면, 헌법개정은 아래의 절차를 밟게 된다.

첫째,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개헌을 제안한다.
둘째, 헌법개정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 의결한다.
셋째, 국회 의결을 거친 헌법개정안은 국민투표에 붙여져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 확정된다.

이처럼 현행 헌법에 규정된 개헌절차에 따르면, 국회 재적의원 299명 가운데 199명이 찬성해야 헌법을 민주주의변혁의 요구에 맞게 개정할 수 있는 것이다. 개헌절차를 규정한 현행 헌법조항과 정당별 국회의석분포를 살펴보면, 현행 헌법을 민주주의변혁의 요구에 따라 개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변혁강령을 가진 중도좌파정당이 현재 국회에서 다섯 석밖에 갖지 못했는데, 2012년 4월에 실시될 총선에서 199석을 차지할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2017년에도 그런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고, 2022년에도 없으며, 그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사회변혁운동의 역사가 우리보다 100년 이상 앞선 유럽의 경험을 살펴봐도, 유럽 각국의 좌파정당들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다수의석을 확보한 사례는 전무하다. 

1998년 대선에서 승리한 베네주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취임하자마자 제헌의회를 소집하기 위해 실시한 국민투표, 그리고 제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모두 압도적으로 연승하여 낡은 헌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베네주엘라식 제헌경로가 우리 사회에서도 재연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희망적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더우기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국회해산권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민주주의변혁을 추진하는 중도좌파정당의 대선후보가 설령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가정해도 국회를 해산하고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변혁의 요구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처럼 총선이나 대선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변혁 자체가 실현될 수 없으니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패배주의자들의 넋두리다. 현재 조건에서는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불가능하게 보이는 조건을 바꾸면 불가능을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가 열리게 된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그리하여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조건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어떠한 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 유권자층을 형성하고 있거나 또는 자기들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일하는 중도좌파정당을 외면하고 엉뚱하게 중도우파정당이나 우파정당을 지지해주는 것, 바로 이것이 불가능하게 보이는 조건이다.

이 조건을 반대방향으로 바꿔놓으면, 다시 말해서 무당파 유권자층을 형성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중도좌파정당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고, 그들이 중도좌파정당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정세를 바꿀 수만 있다면 현행 헌법을 민주주의변혁의 요구에 맞게 개정할 수 있는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두 가지 정세변화와 한 가지 전술운용

역시 문제는 방법론이다. 어떻게 정세를 바꿀 것인가? 선거철에만 반짝하는 선거운동으로는 냉랭한 민심을 돌려세울 수 없고 정세를 바꾸지 못한다. 선거운동은 여섯 달 동안 불어오다가 선거가 끝나는 날 홀연히 사라지는 회오리 같은 것이다.

모든 정당에게 선거가 중요한 정치과제로 제기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도좌파정당이 '선거돌풍'의 한계를 직시하지 못하고 거기에 몰두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수구우파세력의 적대적 여론환경에 포위된 중도좌파정당이 아무리 선거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199석을 쟁취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4.19 혁명 또는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던 것처럼, 언젠가 대중항쟁이 일어나면 정권을 교체하고 민주주의변혁을 급진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중항쟁이 일어나 민주주의변혁이 급진전되는 것은 사회역사발전의 합법칙성을 밝혀주는 진리인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대중항쟁의 발전과정에 미국이 직접 개입하기 때문에 대중항쟁이 민주주의변혁으로 급진전되기 힘들다. 실제로, 4.19 혁명이나 87년 6월 민주항쟁이 민주주의변혁으로 진전되는 길을 가로막은 결정적인 요인은 미국의 개입공작이었다. 

더욱이 4.19 혁명이나 87년 6월 민주항쟁 같은 대중항쟁이 10년 안에 또는 그 이후에라도 재발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시나리오를 구상하기 힘든 불확정적인 미래를 기다리며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대중항쟁으로 민주주의변혁이 급진전하는 정세급변을 한 가지 가능성으로 인식하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 민주주의변혁을 진전시킬 두 가지 정세변화와 한 가지 전술운용이 작용하는 별도의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정치정세가 변화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구우파 집권세력의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본질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시야에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소수 부유층을 위한 현존 경제정책이 민생경제를 완전파탄에 몰아넣어 인구비율 20 대 80의 극단적 빈부격차가 전면화되는 상황에 빠질 때, 그리하여 수구우파 집권세력이 은폐해온 무능과 부패의 실상이 계속 폭로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중도좌파정당의 호소에 귀를 기울일 때, 정치정세는 민주주의변혁에 유리하게 전변되는 것이다. 2010년 10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위에 열거한 몇 가지 현상들이 전면적으로 나타났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와 유사한 지경에 근접하고 있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둘째, 한반도 정세가 평화체제로 급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반도 비핵화가 진전되는 것에 상응하여 북측과 미국의 평화회담이 실현되고, 결국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세급변은 수구우파 집권세력이 고집해온 대북 적대정책이 완전히 파탄되고, 그 세력이 정치적으로 고립된다는 것을 뜻한다. 1953년 7월 북측, 중국, 미국이 판문점 정전회담에서 정전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합의를 이끌어냈을 때, '북진통일'을 외치며 정전협정 체결을 완강히 반대하였던 이승만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완전히 고립되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 재연되는 것이다. 

수구우파 집권세력이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한반도 안보환경'이 평화협정 체결에 의해 급변하여 그들에게 마치 칼을 겨누는 형국처럼 매우 불리해질 때, 정치정세는 민주주의변혁에 유리하게 전변될 것이다. 2010년 10월 현재, 한반도 평화회담이 열릴 뚜렷한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머지 않아 북측과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양자회담을 재개하면 한반도 평화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커지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우리 사회에서 대중항쟁이 일어날 가능성보다 한반도 평화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셋째,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연합정치를 실현하는 전술이다. 정당 이름을 꼭 찍어서 말하자면, 중도좌파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중도우파정당들인 민주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과 5당 공동전선을 형성하여 한나라당에 맞서는 것이다.

국회에서 다섯 석밖에 차지하지 못한 중도좌파정당이 독자역량으로는 도저히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할 만한 정세를 조성할 수 없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실현 가망이 전무한 독자발전론을 막연히 붙들고 앉아있을 것이 아니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민주주의변혁으로 나아갈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그런 돌파전술을 연합정치라 부른다.

그러므로 중도좌파정당이 중도우파정당과 손잡고 연합정치를 실현하는 것은, 일각에서 터무니 없이 말하는 식으로 중도좌파정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자해행위 따위가 아니라, 중도좌파정당이 과도기에 진입하는 돌파전술이다. 두 단계 변혁론에서 말하는 과도기란 민주주의변혁에 유리한 정세로 돌파해 나가기 위한 역량축적기다. 역량준비가 부족해서 정세를 돌파하지 못하는 중도좌파정당이 주동적인 노력으로 역량축적기에 진입하는 것이야말로 과도기 돌파전술이 아닌가!

과도기 돌파전술은 5당 공동전선이 이루어내는 연합정치의 유력한 전술이며, 두 단계 변혁론의 공동전선전략이 운용하는 여러 전술들 가운데 하나다. 명백하게도, 과도기 돌파전술은 민주주의변혁으로 나아가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것은 현 정세를 바꿔놓을 유일한 전술일지 모른다. (2010년 9월 3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