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30

북, 경핵병진노선이 일으킨 놀라운 변화

[한호석의 개벽예감] (85)
자주민보 2013년 10월 28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배출구에서 온배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북의 현실을 사실대로 보도하지 않는 미국 언론과 남측 언론의 ‘시계차단’에 가려 북의 실상이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요즈음 북에서는 처음 보는 특별한 현상들이 줄지어 나타나고 있다. 그런 현상들 가운데는 2013년 8월 31일에 일어난 매우 특별한 현상도 있다. 2013년 8월 31일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지 않은 평범한 날로 지나가버렸는데, 그 평범한 날에 도대체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는 말일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연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나온 목격담에서 시작된다.

2010년 11월 16일 미국 한미경제연구소(KEI) 잭 프릿처드(Jack Pritchard) 소장은 워싱턴 주재 남측 특파원들과 만나 자신의 방북에 대해 말하면서 평안북도 녕변에 있는 핵시설단지를 방문하였을 때 보고 들은 목격담을 전해주었다. 그의 목격담에 따르면, 당시 착공한지 불과 며칠 되지 않은 경수로건설공사현장을 방문한 자신에게 북측 관계자는 “(경수로건설이) 처음 해보는 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어떤 장애물에 부닥칠지 알 수 없다. 모든 건설이 김일성 주석의 탄생 100주년인 201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북이 2010년 10월 말에 착공한 경수로건설을 초고속으로 다그쳐 2012년 말까지 완공하려는 목표를 세웠음을 말해준 것이었다. 북이 녕변경수로건설에 착공한 때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2012년 3월 26일 북측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리기성 교수는 <교도통신> 기자와 진행한 대담에서 녕변경수로가 2012년 말까지 완공될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프릿처드 소장은 3년 전 녕변경수로건설현장을 방문하고 미국에 돌아와 남측 특파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이 녕변경수로건설공사를 2012년 말까지 완공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수로를 처음 만든다는 북이 어렵고 방대한 경수로건설공사를 착공의 첫 삽을 뜬 날로부터 불과 2년 2개월 동안에 끝내겠다고 하였으니 어찌 그 말을 선뜻 믿을 수 있었겠는가. 2009년 4월 14일 북의 위성발사를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규정한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을 전면 거부한 북이 그런 부당한 조치에 맞서 자력으로 경수로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하였을 때,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박군철 교수는 “북한이 가진 원자로가 영변의 5MW급 흑연감속로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직접 경수로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하면서 회의적 전망을 꺼내놓은 적이 있다. 남측 핵과학자들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북정보에 밝다는 미국의 정부관리들과 전문가들도 북이 경수로를 2년 2개월 만에 건설하겠다고 말한 것은 북의 핵과학기술수준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희망사항’을 언급한 것뿐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원래 완공예정시점으로 정해졌던 2012년 말보다 8개월이 늦은 2013년 8월 31일 녕변경수로가 마침내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15년 전 북이 첫 자국산 인공위성을 쏘아올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던 바로 그 날, 이번에는 자국산 경수로를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은 미국상업위성이 녕변핵시설단지를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밝혀졌다. 2013년 9월 11일과 10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미국-코리아연구소(US-Korea Institute) 웹사이트 <38노스(North)>에 그 위성사진이 각각 실렸는데, 그 위성사진에서 녕변경수로 가동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위성사진은 2013년 8월 31일 녕변핵시설단지에 신축된 경수로발전시설에서부터 인근에 있는 구룡강으로 길게 뻗어나간 대형 지하배수로의 배출구에서 많은 양의 온배수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경수로발전시설에서 많은 양의 뜨거운 물이 배출되는 것은 경수로가 가동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비록 완공예상시점보다 8개월이 늦어졌지만, 북이 처음으로 건설한다는 경수로를 불과 2년 10개월 만에 완공한 것은 믿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일이다. 요즈음 북의 건설현장과 생산현장 그 어디서나 ‘마식령속도’를 강조한다는데, 경수로를 2년 10개월 만에 완공한 것을 좀 과장한다면 ‘마식령속도로 창조한 기적’이라 해야 할지 모른다. 북에서 말하는 ‘마식령속도’란 해발고가 너무 높아 말도 쉬어 넘는 높은 고개라는 뜻으로 옛날 선조들이 그 이름을 지은 마식령 정상에 “세계 일류급”이라고 하는 스키장(ski resort)을 건설하는 초대형 공사를 고속으로 진척시킨다는 뜻이다.

3년 전 녕변경수로건설현장을 방문하고 미국에 돌아와 남측 특파원들과 만났던 프릿처드 소장은, 199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채택된 북미기본합의의 경수로건설공약에 따라 미국이 지어주겠다는 말만 꺼내놓고 시간을 질질 끌다가 구덩이만 파놓은 채 결국 2003년 11월에 공사를 중단하였던 “금호지구 경수로 건설에 사용된 중장비나 자재는 (녕변경수로 건설공사에서) 사용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프릿처드 소장의 이 말을 새겨들으면, 북은 경수로를 자력으로 설계, 제작하였고, 경수로발전시설도 자력으로 설계, 시공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발전시설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장비와 자재도 자체로 마련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녕변경수로는 북이 100% 자력으로 만든 경수로이며, 북에서 쓰이는 표현을 빌리면, ‘사회주의자력갱생의 조선형 경수로’라고 할 수 있다.

   
제논 검출과 녕변흑연감속로 재가동

미국의 몇몇 분석가들은 2013년 8월 31일 녕변핵시설단지의 지하배수로 배출구에서 온배수가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보여주는 위성사진을 분석한 글에서 그 온배수가 녕변경수로에서 배출되는 게 아니라 녕변흑연감속로에서 배출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녕변흑연감속로 재가동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녕변경수로 가동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그런 주장이 미국 언론과 남측 언론에 그대로 실리는 바람에 녕변경수로가 가동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세상에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녕변흑연감속로는 2013년 8월 31일에 재가동을 시작한 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에 재가동되었다. 이 문제를 해명하려면, 2013년 4월 2일 북측 원자력총국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원자력총국 대변인은 2013년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동시에 추진하는 경핵병진노선에 따라 “원자력부문 앞에는 자립적 핵동력공업을 발전시켜 나라의 긴장한 전력문제를 푸는데 적극 이바지하며,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확대, 강화하여야 할 중대한 과업이 나서고 있다”고 하면서, “현존 핵시설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조절, 변경해나가기로” 하였는데, 우선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우라늄농축공장과 흑연감속로를 “재정비, 재가동하는 조치”부터 “지체 없이” 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위의 담화에 따르면, 북은 녕변우라늄농축공장 재정비와 녕변흑연감속로 재가동을 지체 없이 실행한다는 것이다. 녕변우라늄농축공장를 즉각 재정비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아래에서 다시 논하기로 하고, 우선 녕변흑연감속로를 즉각 재가동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측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3년 8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2013년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포집한 기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방사능핵종인 제논(Xe)이 세 차례나 검출되었다. 제논이라는 기체는 자연상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핵실험을 실시하였을 때나 원자로를 가동하였을 때만 대기 중에 방출되는 방사능핵종이다. 그러므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2013년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포집한 기체에서 제논이 세 차례나 검출된 것은 녕변흑연감속로가 6월 21일부터 재가동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사진 1>은 녕변흑연감속로가 들어있는 건물을 촬영한 것이다.
 
▲ <사진 1> 녕변흑연감속로가 들어있는 대형 건물에는 뾰족하고 높은 굴뚝이 설치되어 있다     ©이창기 기자, 한호석소장 사진제공
2013년 4월 2일 북은 녕변흑연감속로를 “지체 없이” 재가동하겠다고 원자력총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밝혔는데, 그로부터 불과 두 달 반밖에 지나지 않은 6월 21일에 녕변흑연감속로가 재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북의 건설자들이 아무리 ‘마식령속도’로 일한다고 하지만, 2007년 10월 6자회담 합의에 따라 가동을 완전 중지한 이후 5년 동안 거의 폐허처럼 방치되어 녹슬었던 흑연감속로를 2개월 반 만에 재가동한 것은 착공 3년 만에 경수로를 완공한 것만큼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것도 북미 합의 이행 차원에서 냉각탑까지 폭파시킨 상태에서 말이다. 녕변경수로만이 아니라 녕변흑연감속로에서도 어떻게 그런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을까?

남측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09년 10월 6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북미합의이행을 위해 가동을 중지했던 녕변흑연감속로를 원상복구하는 작업을 2009년 초부터 시작하였는데, 2009년 10월 5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남측 국방부와 합참본부 관계자들은 녕변흑연감속로의 원상복구 진척상황에 대해서는 기밀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바 있다. 이런 정보를 통하여 북이 2009년 초부터 녕변흑연감속로 원상복구작업을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상복구작업이 2009년 초부터 시작되었고, 녕변흑연감속로 재가동이 2013년 6월 21일에 시작되었다면 재가동을 위한 원상복구작업에 4년 6개월이 걸린 셈이다. 녕변흑연감속로 원상복구작업에 왜 그처럼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2009년 10월 5일 국정감사에서 남측 국방부와 합참본부 관계자들은 북이 녕변흑연감속로를 원상복구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원상복구가 아니라 새로운 설비로 개조하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2005년 11월 9일 <AP> 보도기사에서 미국의 저명한 핵전문가 씩프릿 헥커(Siegfried S. Hecker) 박사는 북측 관계자가 녕변흑연감속로를 재가동하기 위해 아예 “일신하겠다(refurbish)”고 자기에게 말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것은 원상을 복구하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설비로 완전히 개조한다는 뜻이다.

녕변흑연감속로를 새로운 설비로 완전히 개조하였다면, 그 발전용량은 얼마나 증대되었을까? 이 물음에 답해주는 자료는 아직 찾을 수 없지만, 북이 녕변흑연감속로를 4년 6개월 동안 새로 개조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북이 녕변흑연감속로를 새로운 설비로 개조하여 2013년 6월 21일부터 재가동을 시작하였다면, 녕변경수로와 마찬가지로 녕변흑연감속로에서도 온배수가 배출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2013년 10월 17일 헥커 박사가 미국 원자과학자협회 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에 발표한 글에 따르면, 북은 녕변흑연감속로를 개조하고 녕변경수로를 건설하면서 새로운 배수시설을 건설하였는데, 그 두 원자로에서 나오는 온배수를 한 군데로 모아 배출하는 지하배수관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38노스> 웹사이트에 게시된 위성사진이 말해주는 것처럼, 녕변경수로가 가동되기 시작한 2013년 8월 31일 이전에도 지하배수로 배출구에서는 온배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8월 31일부터 배수량이 갑자기 폭증하였다. 이러한 배수량의 갑작스러운 폭증현상은, 녕변흑연감속로가 2013년 6월 21일부터 재가동되면서 온배수를 배출하던 중 8월 31일에는 녕변경수로까지 가동되어 배수량이 폭증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북은 대형 경수로건설에 곧 착공할 것이다 

지금 녕변핵시설단지에서는 종류가 서로 다른 두 기의 원자로가 돌아가고 있다. 2013년 6월 21일 북이 재가동을 시작한 흑연감속로는 직사각형 건물 안에서 돌아가고 있고, 2013년 8월 31일 가동에 들어간 경수로는 거대한 반구형 지붕을 씌운 건물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경수로(light water reactor)의 영어머리글자를 따서 ‘LWR’이라고 써넣은 반구형 지붕의 건물이 경수로가 들어있는 건물이고, 오른 쪽에 ‘5MWe Reactor’라고 써넣은 직사각형 건물이 흑연감속로가 들어있는 건물이다.
 
▲ <사진 2> 녕변핵시설단지를 촬영한 위의 위성사진에는 경수로와 흑연감속로가 보이고, 경수로에서 구룡강으로 뻗어 나간 지하배수로가 설치된 매설공사흔적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위의 사진에서는 지하배수로를 '경수로 냉각관(cooling pipes for LWR)'이라고 표기되었다. 사진에는 온배수를 배출하기 위한 '양수장(pump house)'도 보인다. (image credit=getty images)     © 이창기 기자, 한호석 소장 사진제공

그렇다면 녕변경수로는 용량이 얼마나 큰 원자로일까? 3년 전 북측 관계자는 경수로건설공사현장을 방문한 프릿처드 소장에게 녕변경수로 용량이 100메가와트급이라고 말한 바 있다. 메가와트(MW)는 발전시설의 열출력을 표시하는 단위인데, 녕변흑연감속로 열출력은 25메가와트이고, 녕변경수로 열출력은 100메가와트다. 열출력을 전기출력으로 환산하면, 녕변흑연감속로 전기출력은 5메가와트(MWe)이고, 미국 핵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녕변경수로 전기출력은 30메가와트(MWe)다. 30메가와트는 30,000킬로와트(KWe)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3년 전 착공 당시 경수로를 처음 건설해본다고 하였던 북이 불과 2년 10개월 만에 완공한 불가사의한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 불가사의한 현상은 북이 미국 정찰위성의 감시를 벗어난 은폐공간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또 다른 경수로를 비공개로 가동해왔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은폐공간에서 소형 원자로를 가동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지방언론지인 <디머크랫 앤드 크로니클(Democrat and Chronicle)> 2012년 5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기업체 이스트먼 코닥(Eastman Kodak)이 소형 원자로를 지하실에 설치해놓고 30년 이상 가동해왔다고 하는데, 일개 민간기업체가 하는 일은 어찌 북이 할 수 없었겠는가. 그러므로 북이 녕변경수로를 그처럼 짧은 기간에 완공한 것이야말로 오래 전에 북이 비공개로 건설한 경수로가 그 동안 가동되어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북이 미국의 집요한 봉쇄, 제재,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력으로 경수로를 건설하고 가동하는 높은 기술과 풍부한 경험을 확보하였음을 말해준다.

3년 전에 녕변경수로 건설공사현장을 방문한 프릿처드 소장에게 북측 관계자는 “우리가 짓는 경수로는 실험용 경수로이며, 건설역량을 입증하기 위해 비교적 소규모의 경수로를 우리 힘으로 지으려 한다”고 말하였다. 경수로건설역량을 입증하기 위해 소형 경수로를 자력으로 건설한다는 그의 말은, 비공개경수로를 가동해오던 중에 이번에는 경수로건설역량을 외부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소형 경수로를 건설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그 북측 관계자가 프릿처드 소장에게 “녕변경수로를 완공하면 그보다 큰 대규모 경수로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세워두었다”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북이 대형 경수로 건설계획을 2010년에 세워놓았으므로 언제든지 착공할 수 있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소형 경수로를 2년 10개월 만에 완공하는 능력을 과시한 북은 이제 대형 경수로 건설공사에 곧 착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 대형 경수로는 또 얼마나 짧은 기간에 완공될 것인가?

핵은 불이다. 녕변경수로 완공은 열핵이라는 불을 다루는 첨단과학기술을 자력으로 확보한 북이 그 열핵의 불길이 솟구치는 경핵병진노선을 따라 그들이 목표로 내세운 사회주의기술강국건설에로 나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고성능 원심분리기 4,000대 돌아가는 녕변우라늄농축공장

지금 가동되고 있는 녕변경수로에는 녕변핵시설단지의 우라늄농축공장에서 생산된 저농축우라늄이 연료로 장입된다. 녕변우라늄농축공장은 2009년 4월에 착공되었고 2010년 10월 말에 완공되었는데, 북은 공장가동을 시작한 직후인 2010년 11월 12일 그 공장내부를 헥커 박사에게 보여준 바 있다. 북이 녕변우라늄농축공장 건설공사를 시작하였던 2009년 4월은 북측 외무성이 2009년 6월 13일 핵무기추가생산과 우라늄농축개시를 공개적으로 언명하면서 대미협상을 완전히 중단하였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헥커 박사가 현장에서 육안으로 확인하고 깜짝 놀랐던 것처럼, 녕변우라늄농축공장에서는 고속회전하는 초경량 원심분리기인 알멜로(Almelo) 원심분리기와 같은 급의 고성능 원심분리기들이 돌아가고 있다. 그런 고성능 원심분리기를 만들려면, 희토류로 만드는 특수자석, 초강도 마레이징강(maraging steel), 진공펌프, 고속회전동체, 분리기 고속회전을 제어하는 동력제어장치 등을 만드는 핵심기술이 필요한데, 녕변우라늄농축공장은 북이 그런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녕변우라늄농축공장의 존재가 헥커 박사의 현장방문으로 세상에 알려졌을 때, 세계 각국 전문가들은 북이 그런 첨단핵기술을 몇 해 사이에 개발할 수 없으므로 아주 오래 전부터 우라늄농축기술을 발전시켜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유엔안보리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1년 2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유엔전문가집단은 북이 우라늄농축을 이미 1990년대에 시작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런 사실들은 북이 우라늄농축부문에서 2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경험을 축적해왔음을 말해준다.

헥커 박사가 2011년 1월 24일 <연합뉴스> 기자와 대담한 기사에 따르면, 그가 녕변우라늄농축공장에서 목격한 것은 고성능 원심분리기 2,000대다. 그런데 미국 국무부에서 대북제재조정관 기술보좌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스캇 켐프(R. Scott Kemp) 교수는 2012년 3월 22일 <동아일보> 기자와 대담하면서 북의 원심분리기가 2,000대가 아니라 6,700대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한 바 있다. 그런 추산을 뒷받침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2013년 8월 7일 미국의 핵군축연구소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녕변우라늄농축공장이 불과 6개월 만에 두 배 이상 확장되었고, 그로서 고성능 원심분리기 4,000대가 가동되고 있다고 밝혔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2013년 8월 초 녕변우라늄농축공장 능력확장공사를 끝낸 북은 그 공장에서 4,000대에 이르는 고성능 원심분리기를 가동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런데 2010년 11월 19일 과학국제안보연구소는 북이 25∼30메가와트급 녕변경수로를 가동하려면 저농축우라늄을 해마다 약 1t씩 추가로 장입해야 하며, 저농축우라늄을 해마다 1t씩 생산하려면 원심분리기 1,000대를 돌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고성능 원심분리기 1,000대만 있으면 녕변경수로에 장입할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데, 북은 고성능 원심분리기를 왜 4,000대로 증설한 것일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북은 고성능 원심분리기 1,000대에서 나오는 저농축우라늄을 녕변경수로 장입연료로 사용하고, 나머지 3,000대의 고성능 원심분리기에서 나오는 저농축우라늄을 고농축하여 무기급 핵물질인 고농축우라늄(HEU)을 대량생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녕변우라늄농축공장에서 돌아가는 고성능 원심분리기 4,000대 가운데 녕변경수로에 장입할 연료를 생산하기 위한 원심분리기 1,000대 이외에 3,000대의 원심분리기에서 생산되는 저농축우라늄을 순도 90% 이상으로 고농축하면 연간 60kg의 고농축우라늄이 나온다. 그것만이 아니라, 녕변흑연감속로에서 나오는 폐연료를 재처리하면 연간 6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이 나온다. 이러한 정황은 올해 하반기부터 북이 무기급 핵물질을 대폭 증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북의 무기급 핵물질 대량증산과 지하핵실험 준비

녕변경수로 완공과 녕변흑연감속로 재가동을 바라보는 미국은 무거운 침묵에 빠져있다. 하지만 미국의 무거운 침묵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미국을 무거운 침묵으로 몰아넣은 물체는 녕변경수로와 녕변흑연감속로 이외에도 두 개가 더 있다. 그에 대한 사연은 아래와 같다.

<교도통신> 2005년 6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1985년에 착공하였다가 1994년 북미기본합의에 따라 건설공사를 중단했던 녕변핵시설단지의 50메가와트(MWe)급 흑연감속로 건설공사를 재개하였을 뿐 아니라, 1989년에 착공하였다가 역시 북미기본합의에 따라 건설공사를 중단했던 평안북도 태천의 200메가와트(MWe)급 흑연감속로 건설공사도 재개하였다. 이처럼 녕변과 태천에서 대형 흑연감속로 두 기를 건설하는 공사가 동시에 재개되었다는 정보는, 2005년 5월에 방북하였던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존 루이스(John W. Lewis) 교수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당시 미국 국무장관에게 자신의 방북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언급한 것이다.

대형 원자로를 건설하는 데 걸리는 공사기간은 6∼7년이므로, 북이 2005년에 녕변과 태천에서 대형 흑연감속로 두 기를 건설하는 공사를 동시에 재개하였으므로, 2013년 10월 말 현재 거의 완공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정찰위성을 동원하여 녕변과 태천의 대형 흑연감속로 건설공사현장을 지난 7년 동안 줄곧 감시해왔으면서도 사안이 너무 심각한 까닭에 그 두 곳의 공사진척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완공을 앞두고 있는 50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와 200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가 공사를 완료하고 가동되면, 그 두 곳에서만 연간 300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므로 5메가와트급 녕변흑연감속로와 30메가와트급 녕변경수로에 이어 50메가와트급 녕변흑연감속로와 200메가와트급 태천흑연감속로까지 모두 가동되는 경우, 북은 연간 366kg의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미국 정찰위성이 포착하지 못하는 다른 비공개시설에서 생산되는 무기급 핵물질까지 더하면 북은 연간 약 400kg의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게 된다고 예상할 수 있다.

북이 대량생산하는 무기급 핵물질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각종 핵탄을 만드는 데 사용할 것이다. 북이 생산하는 연간 약 400kg의 무기급 핵물질을 전량 핵무력증강에 투입하면, 핵탄두, 핵어뢰, 핵가방 같은 각종 핵탄을 연간 약 50기씩 증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증산추세를 보면, 북이 세계의 비핵화를 위한 핵군축회담을 미국에게 제의한 까닭을 알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북이 이전에는 무기급 핵물질을 지하시설에서 비공개로 생산해왔는데, 지금은 미국 정찰위성이 감시하는 지상시설에서 보란듯이 공개적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3년 8월 북이 녕변우라늄농축공장을 두 배 이상 늘리는 능력확장공사를 끝내고 곧이어 녕변경수로를 완공한 것은, 2013년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핵병진노선에 따라, 그리고 2013년 4월 1일에 제정된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에 따라 각종 핵탄을 기하급수적으로 증산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그 법에 따르면, 북은 “가중되는 적대세력의 침략과 공격위험의 엄중성에 대비하여 핵억제력과 핵보복타격력을 질량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운다”는 것이다.

북이 경핵병진노선과 핵보유국지위 공고화 법령에 따라 급속도로 밀고 나가는 핵무력증강사업은 무기급 핵물질 증산과 핵탄 증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하핵실험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북의 핵무력증강과 지하핵실험의 직접적 연관성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2013년 6월 25일 <38노스>가 발표한 위성사진 분석결과에 따르면, 북은 이미 2013년 4월 말부터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지하핵실험장에서 새로 갱도굴착공사를 시작했고, 2013년 10월 23일 <38노스>가 발표한 위성사진 분석결과에 따르면, 그 지하핵실험장 서쪽과 남쪽에 각각 새로 뚫어놓은 두 개의 갱도입구가 보이고, 갱도굴착과정에서 파낸 거대한 흙더미가 갱도입구 밖에 쌓여 있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이 불시에 제4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북이 제4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는 목적은 미국을 북미협상으로 다시 끌어내는 초강경한 압박을 가하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경핵병진노선에 따라 핵무력을 증강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면, 9.19공동성명 등 북미 사이에 합의한 미국의 자기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북을 핵포기로 유인하려는 데만 집착하였던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의 경핵병진노선 추진에 의해 완전히 파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핵병진노선 추진은 미국이 자기에게 제기된 북의 평화협정 체결요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하지 않으면서 북의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요구해온 대북협상전략이 결국 어떻게 파산되고 말았는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파산된 대북정책을 복구하지 못하게 된 미국은 침묵에 빠졌고, 대미협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북은 사회주의기술강국을 건설하기 위한 경핵병진노선을 선포하고 인민생활향상과 핵무력증강을 ‘마식령속도’로 병진시키고 있다. 북과 미국이 이처럼 극적으로 대비되는 모습을 각각 보이고 있는 가운데,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전면전을 촉발할 무력충돌위험이 전례 없이 고조되었고, 미국은 일본자위대의 교전권을 인정해주면서 3자연합 대북전쟁체계 수립을 급속히 추진하고 있고, 그에 맞서 북은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잠시 유보한 채 제4차 지하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 한반도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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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4

북, 협상중단유예 끝내고 급진경로로?

[한호석의 개벽예감](84)
자주민보 2013년 10월 22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북의 협상중단유예기간은 언제, 어떻게 끝났는가?

외교정책이나 군사전략에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라는 개념이 쓰인다. 전략적 모호성이란 어떤 중대현안에 대해 의도적으로 모호한 책략을 펼친다는 뜻이다. 예컨대, 어떤 핵보유국이 자기의 핵보유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책략을 펼칠 때, 그러한 책략을 공식화하고 그것을 전략적 모호성 정책이라 부른다.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실행하는 까닭은, 어떤 외교문제나 군사문제에 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때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대외협상의지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만일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오던 어떤 나라가 그것을 폐기하는 경우, 그런 폐기행동은 대외협상의지를 거두었음을 뜻한다. 전략적 모호성 폐기는 대외협상의지포기와 직결되는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북미관계에 제기된 ‘핵문제’를 다시 읽어보면, 대미협상에 관한 북의 견해와 의사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5년 2월 10일 북측 외무성이 세상을 놀라게 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 성명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면 이렇다.

“미국이 핵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우리 제도를 기어이 없애버리겠다는 기도를 명백히 드러낸 이상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취할 것이다. (줄임) 우리는 이미 부쉬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고립압살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하였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우리의 핵무기는 어디까지나 자위적 핵억제력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위의 인용문이 말해주는 것처럼, 북은 이미 8년 전에 자기의 핵보유에 관한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폐기하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것은 북이 그 때 이미 대미협상의지를 사실상 거두었음을 뜻한다.

북측 외무성이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폐기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날로부터 4년 열엿새가 지난 2009년 2월 26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가 전체 당원들에게 보내는 내부문서를 배포하였다. 당시 일본 언론을 통해 보도된 그 내부문서에서 북의 당중앙위원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나라(북을 뜻함-옮긴이)를 누구도 싸움을 걸지 못할 핵강국으로 올려세웠다”고 칭송하면서, “선진국만이 독점한 최첨단기술(최첨단핵기술이라는 뜻-옮긴이)을 우리식으로 개발”하였고, “세계가 전혀 알지 못하고, 우리가 아직 밝히지 않은, 우리 인민도 본 적이 없는” “우리식의 첨단무기(첨단핵무기라는 뜻-옮긴이)”가 “우리에게 있다”고 밝혔다.

북측 외무성이 북의 핵보유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폐기하고, 북의 당중앙위원회가 북의 강력한 핵무력에 관해 전체 당원들에게 알려준 것을 보면서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2009년 2월 현재 증폭핵분열탄 개발을 끝낸 북은 강력한 핵무력을 틀어쥐고 대미협상을 사실상 중단하는 전략전환단계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런데 위의 외무성 성명 전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당시 북은 자기의 핵보유에 관한 전략적 모호성 정책 폐기를 공식화하면서도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성명에는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립장과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최종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언명한 일종의 유예단서(moratorium proviso)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북이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은 위의 성명이 발표된 이후 4년 동안 이어졌다. 2005년 2월에 외무성 성명발표와 당중앙위원회 내부문서 배포로 시작된 4년에 걸친 유예기간 중에 북은 2006년 10월 9일 제1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고, 2009년 5월 25일 제2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유예조치는 일정기간 동안만 지속되는 법이다.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은 2009년 6월 13일 북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추가생산과 우라늄농축개시를 공개적으로 언명함으로써 결국 막을 내렸다. 2009년 6월 13일 북이 대미협상중단 유예조치를 결국 마감한 까닭은, 2009년 5월 25일에 북이 실시한 제2차 지하핵실험을 두고 미국이 유엔안보리를 사주하여 그 핵실험을 범죄행위로 규정하는 한편 추가제재결의를 2009년 6월 12일에 채택하는 대북적대행위를 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당시에 미국이 그런 적대행위를 하지 않고 대북협상으로 돌아섰더라면, 북이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은 2009년 6월 이후에도 좀 더 연장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예기간이 몇 해 더 연장되었더라도 그것은 무의미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자기의 대북핵위협을 중단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북을 핵포기로 유인하기 위해 대통령친서를 보내는 등 시간끌기에 골몰하면서, 실제로는 추가제재와 적대행위에 집착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북이 2013년 2월 12일에 실시한 제3차 지하핵실험은 그 전에 실시한 두 차례 지하핵실험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북이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에 각각 실시한 지하핵실험은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에 미국을 협상으로 끌어내려는 초강경한 압박이었지만, 2013년 2월에 실시한 지하핵실험은 미국을 협상으로 끌어내려는 압박이 아니라 미국에 맞서 핵전쟁도 불사한다는 핵무력시위였다. 미국을 협상에 끌어내려는 의도로 실시한 핵실험과 미국과의 전면전을 불사하는 핵무력을 시위한 핵실험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북이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이 이처럼 2009년 6월 13일에 끝난 것은,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미협상전략을 접고 무력사용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반미전쟁전략으로 선회하였음을 말해준다. 요즈음 언론에 보도되는 ‘조국통일반미대전’에 관한 북의 공개언급과 군사활동은, 미국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반미전쟁전략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 북의 대미협상전략이 협상타결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면, 오늘 북의 반미전쟁전략은 무력사용으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북의 무력사용에서 핵무력사용이 중심으로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2013년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한 것은, 핵무력건설을 지금부터 시작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건설한 핵무력을 최강수준에서 완비하면서 전쟁수행력을 핵무력중심체계로 개편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맥락을 이해하면, 2013년 2월 중순부터 4월초까지 이르는 기간에 폭발점에 거의 다가선 전쟁위기상황에서 북이 핵무력동원태세에 돌입한 것은 미국을 압박하는 군사행동이 아니라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수행하려는 결전행동이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13년 10월 9일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논평에는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립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구절이 들어있다. 이 구절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5년 2월 10일 북측 외무성이 발표한 성명에 들어 있었던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립장과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최종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언명한 유예단서와 일맥상통한다. 북이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이 이미 4년 전에 끝났는데, 왜 유예기간에 쓰였던 유예단서가 오늘 또 다시 나온 것일까?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는 길이 완전히 막혀버린 현 상황에서, 대화와 협상에 관한 북의 언급은 대외명분 이상의 의의를 갖지 못한다.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에 대해서만 계속 반복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으므로, 대화와 협상에 관한 대외명분도 가끔 언급하는 것이다.

북측 언론에서만 대외명분을 언급하는 게 아니라, 최근 북측 외무성도 미국에게 “조건 없는 대화”를 제기하였다. 이를테면, 2013년 9월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주최로 열린 반관반민 형식의 국제토론회에 참석한 북측 외무성 고위인사들의 발언, 9월 2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북과 미국의 반관반민 형식의 토론회에 참석한 북측 외무성 고위인사들의 발언, 그리고 10월 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북과 미국의 반관반민 형식의 토론회에 참석한 북측 외무성 고위인사들의 발언에서 조건 없는 대화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정책적 본의와 대외적 명분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북의 정책적 본의와 대외적 명분을 혼동할 만큼 우매하지 않다. 예컨대, 2013년 10월 10일 브루나이에서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과 존 케리(John F. Kerry) 미국 국무장관의 회담에서 두 사람은 “최근 조건 없는 협상재개를 주장하고 있는 북한의 유화공세”를 “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는” 전술이라고 인정하는 데서 “완벽한 의견일치를 보았다”는 것이다.

 
2013년 2월 12일에 지축을 뒤흔든 정치파장이 증폭되고 있다 

2013년 2월 12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산악지대의 지하핵실험장에서 북이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실시하였다. 강력한 인공지진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풍계리핵실험장에서 직선거리로 78km 떨어진 양강도 혜산에 있는 아파트들이 통째로 흔들릴 만큼 엄청난 진동이었다.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은, 북이 많은 핵탄을 보유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차세대 핵탄인 증폭핵분열탄까지 보유하였음을 물리적으로 입증한 놀라운 사변이었다. 미국이 동해 상공에 급파한 특수정찰기가 기류를 타고 퍼졌을 방사능핵종을 포집해보려고 허둥대다가 결국 실패하여 매우 난감한 처지에 놓여있었을 때, 북은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성공시킨 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군인건설자, 당간부 11,592명을 대거 표창하였다.

증폭핵분열탄을 만드는 최첨단핵기술을 확보한 북은 핵탄을 다종화하는 첨단기술과 여러 종류의 핵탄을 제조하는 대량생산능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핵동력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핵융합기술 완성에 바짝 다가섬으로써 명실공히 핵강국 지위에 올라선 것이다. 그런 놀라운 정보를 자기들만 알고 감춰버린 미국은 핵강국이 보유한 다종화된 핵탄을 제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과연 그게 가능하겠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북이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실시하였던 당시 그 실험을 범죄행위로 규정한 미국의 반발소동이 언론보도를 온통 뒤덮어버리는 바람에, 핵폭발지진만큼 강력한 정치파장이 북미관계를 뒤흔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북의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에서 발생한 강력한 인공지진파는 세계 각국의 지진계를 흔들고 이내 잠잠해졌지만, 그 실험에서 발생한 강력한 정치파장의 위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폭되고 있다.

북의 협상중단유예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북이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실시하기 전까지 한반도 비핵화가 북과 미국의 협상타결로 실현될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 이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협상타결전망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북미협상 자체가 불가능한데, 한반도 비핵화를 북미협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영영 실현될 수 없다는 말인가? 2013년 10월 9일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논평은 “전조선반도 비핵화는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유훈이며 우리 공화국정부의 일관한 정책적 목표”라고 언명하였다. 이것은 북이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변함없이 한반도 비핵화를 기어이 실현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며, 또한 한반도 비핵화가 역사적 필연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협상타결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던 전망이 사라진 오늘에 와서도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변함없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며, 한반도 비핵화의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의지표명과 강조언술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대화와 협상으로는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없게 된 현재 상황에서 북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은 무력사용밖에 남지 않았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지금 북은 오직 ‘조국통일반미대전’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북의 이러한 전략전환은 한반도 비핵화를 대화와 협상으로 실현하려던 시대가 지난 뒤에 ‘조국통일반미대전’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어떤 확고한 전망이 북에게 열렸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북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의 핵무력을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북을 겨냥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한다는 뜻이므로, ‘조국통일반미대전’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말은 전쟁승리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에서 ‘선군혁명의 철갑군단’으로 알려진 최정예전차부대를 2012년 1월 1일에 시찰하는 것으로 개막된 김정은시대에 북이 추구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의 표현을 빌리면, ‘조국통일반미대전’ 승리와 미국의 항복으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는 ‘선군혁명의 비핵화’인 것이다.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북의 핵무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경제건설에 보내주어야 할 막대한 국가자원을 핵개발사업에로 돌리면서 필생의 노고로 마련하여 후대에게 물려준 ‘선군의 보검’으로 보일 것이고, 반면에 미국의 핵무력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면서 북의 국가적 자주권까지 빼앗으려는 ‘약탈의 흉기’로 보일 것이다. 북의 논리에 따르면, ‘선군의 보검’은 그들의 자위적 핵무력이고, ‘약탈의 흉기’는 미국의 침략적 핵무력이다. 따라서 북은 ‘선군의 보검’을 치켜들고 세계 최대의 강적과 최후결전을 벌여 ‘약탈의 흉기’를 없애버리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의 현실인식을 이해하면,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에서 발생한 강력한 정치파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벼린 ‘선군의 보검’으로 ‘약탈의 흉기’를 없애버리는 ‘정의의 무력행사’를 재촉하고 있으며, ‘조국통일반미대전’의 날을 앞당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북의 역사적 전망에 따르면, 한반도 비핵화가 역사적 필연인 것처럼, ‘조국통일반미대전’도 역시 그러하다.

 
단계적 발전경로에서 무단계 급진경로로 전환하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유훈들 가운데는 한반도 통일만이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도 있다. 북에서 통일과 비핵화는 ‘선대수령들의 유훈’이다. 북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선대수령들의 유훈’을 반드시, 하루빨리 실현해야 하므로, 유훈실현은 북의 당과 국가와 군대와 인민에게 첫째가는 임무로 된다.

그런데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 두 유훈을 실현하는 방도는 협상타결이 아니라 무력사용 곧 ‘조국통일반미대전’이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북은 ‘조국통일반미대전’ 승리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한반도 통일도 그와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얼마 전 김정은 제1위원장이 앞으로 3년 안에 무력통일을 실현하겠다고 북측 내부에서 여러 차례 공언하였다는 정보가 남측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는데, 적어도 2016년 안에 ‘조국통일반미대전’ 승리로 비핵화와 통일을 한꺼번에 실현하려는 것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결심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하던 기간에 북은 대미협상으로 끌어낸 미국을 최후담판으로 굴복시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함으로써 북을 겨냥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고, 주한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군시키고, 그러한 정세변화과정에서 자주적 진보정권이 남측에 수립되면 그 정권과의 정치협상을 통해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단계적 발전경로를 추구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비핵화→철군→남북정치협상→통일정부수립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발전경로이며, 일찍이 1948년 4월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연석회의에서 채택한 철군→남북정치협상→통일정부수립으로 나아가는 자주독립국가건설의 단계적 발전경로와 겹쳐지는 것이다. 북을 겨냥한 미국의 핵위협이 발생하기 전인 1948년에 진행된 남북연석회의에서는 비핵화단계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북이 2013년 2월 12일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실시하고 곧이어 3월 31일에 경핵병진노선을 채택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단계적 발전경로 대신에 무단계 급진경로를 택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북이 단계적 발전경로를 접고 무단계 급진경로를 택하였음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북측 자료가 외부에 알려진 적은 없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그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미국과 이승만정권이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에서 채택된 철군→남북정치협상→통일정부수립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발전경로를 차단하였을 때 6.25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오늘 미국과 박근혜정권이 비핵화→철군→남북정치협상→통일정부수립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발전경로를 차단하였으므로 북으로서는 ‘조국통일반미대전’ 이외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남북연석회의에서 표출된 자주독립국가건설을 향한 전민족적 지향과 의지가 미국과 이승만의 5.10 단선강행으로 좌절된 이후 북위 38도선에서 무력충돌위험이 격화되다가 전면전이 터지기까지 기간은 불과 2년이었다. 그런데 대화와 협상으로 한반도의 비핵화와 통일을 실현하려던 북의 노력이 미국과 박근혜정권의 대북적대행위로 차단된 이후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지금 무력충돌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에 고조되는 무력충돌위험은 서해교전이나 연평도포격전 수준이 아니다. 왜냐하면 올해 2013년에 들어와서 ‘국지도발대비계획’을 작성한 미국군과 한국군은 실전급 전쟁연습을 연이어 실시하고 있으며, 그에 대응하여 인민군도 서해5도 분쟁수역에 인접한 황해남도 각 군사기지들의 해군력, 공군력, 포병력을 대폭 증강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국방부와 국정원 최고위 간부가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내용이다.

65년 전 북위 38도선에서 무력충돌위험이 격화되다가 전면전이 터지기까지 위기상황이 2년 동안 지속되었으므로, 올해 2013년부터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무력충돌위험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고조되는 것은 전면전이 2∼3년 앞으로 다가왔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최근 박근혜정부 고위 관료가 발표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3년 안에 무력통일을 실현하겠다고 북측 내부에서 여러 차례 공언하였다는 정보는, 북이 비핵화와 통일을 한꺼번에 실현하는 무단계 급진경로를 택하였고 그로써 전면전이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북이 택한 무단계 급진경로에서는 대미협상단계만 생략되는 게 아니라, 남북협상단계도 당연히 생략된다. 이처럼 북이 한반도 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남북협상에 대한 기대를 접은 까닭은, 박근혜정권이 이전 남북정상이 합의한 평화적 남북관계개선안인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전면 부정하였고, 더욱이 국정원, 국방부, 경찰청, 선관위 등등 국가기관이 전면 개입한 부정선거가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이를 규명하고 처벌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이대로 가면 2017년 12월에 실시될 대선에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이행할 진보적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전혀 없고 새누리당의 연속적 재집권하여 평화적 남북관계 개선은 요원한 일이라고 북이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엔안보리를 사주한 미국의 대북적대행위가 그러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새누리당 재집권의 영속화 가능성도 북이 비핵화와 통일을 한꺼번에 실현할 무단계 급진경로를 택하게 된 또 다른 요인이 아닐까 추측된다.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유보한 가운데 분단 70년이 다가오고 있다
2013년 2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기간에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에 돌입하려고 하였던 직접적인 동기는 미국의 대북적대행위가 극도로 격화된 데 있었다. 미국은 북의 위성발사와 지하핵실험을 무조건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유엔안보리를 사주하여 추가제재를 결의하였을 뿐 아니라 스텔스전투기와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대북전쟁연습까지 감행한 것이다.

북은 자기의 위성발사와 지하핵실험이 미국에 의해 범죄행위로 규정당하고, 미국이 유엔안보리를 사주하여 추가제재를 결의하고, 스텔스전투기와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대북전쟁연습까지 감행하는 경우를 가리켜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그런 극단적인 적대행위는 북의 ‘전시사업세칙’에 명기된 것처럼 북은 “미제의 침략전쟁의도가 확정된” 전쟁발발요인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기간에 그러한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이 발생한 엄중한 상황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인민군과 로농적위군에 전투태세돌입을 명령하고, 미국의 ‘급소’를 정조준한 목성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화성계열 핵타격미사일까지 동원하는 최후결전대기명령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은 2013년 3월 8일 인민무력부 부부장 강표영 상장(남측에서는 중장)의 평양시 군민대회 연설에 반영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타격은 일단 시작되면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완수할 때까지, 이 땅에서 침략과 악의 근원이 완전히 청산될 때까지 중단 없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조국통일대전의 출발진지를 차지한 인민군 장병들은 방아쇠에 손을 걸고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미 타격목표를 확정한 대륙간탄도미싸일을 비롯한 각종 미싸일들은 경량화, 소형화되고 다종화된 핵탄두들을 장착하고 대기상태에 있습니다. 누르면 발사되게 되어있고 퍼부으면 미제국주의의 아성이며 악의 본거지인 워싱톤은 물론 그 추종세력들의 소굴까지도 불바다로 타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조국통일반미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군에 최후결전을 대기하라고 명령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마지막으로 내려야 할 개전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왜 개전명령을 내리지 않았을까? 정확한 사정이야 외부에서 알 수 없지만, 2013년 2월 중순부터 급속히 격화된 전쟁위기상황은 원래 북의 위성발사와 지하핵실험을 범죄행위로 규정한 미국의 대북적대행위에 의해 일어난 것이므로 북의 의사와 상관없이 북의 전쟁징후가 미국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처럼 미국이 북의 전쟁징후를 주시하는 조건에서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을 개전하면, 미국으로부터 즉시반격을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 북의 전쟁징후를 간파한 미국은 북의 총공격에 맞서 즉시 반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처럼 전쟁징후가 노출된 조건에서 ‘조국통일반미대전’을 개전하는 것은 북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개전명령을 내리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김정은 제1위원장이 개전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서 ‘조국통일반미대전’ 철회결정을 내린 것은 결코 아니며, 다만 유보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 한반도정세는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잠시 유보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잠시 유보한 상태에서 녕변핵시설을 재가동하고 핵시설능력확장공사를 다그칠 뿐 아니라, 서해위성발사장에서 강력한 로켓엔진연소실험을 실시하는 등 위성발사준비를 밀고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최근 미국상업위성이 녕변핵시설단지와 서해위성발사장을 촬영한 위성사진들에 피어오르는 감속로 굴뚝 연기만 봐도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기존 녕변핵시설을 재가동하고 핵시설능력확장공사를 다그치는 북이 대형원자로건설을 완공하고, 또 다시 위성까지 발사하는 날, 미국은 극단적인 대북적대행위를 재개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북적대행위 감행→전면전 발발위기 고조→전쟁징후 노출→북의 개전유보로 이어진 지난 봄의 위기상황이 앞으로도 자꾸 되풀이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상황은 앞으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민군과 로농적위군이 전쟁징후를 노출하지 않은 평시분위기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불시에 개전명령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조국통일반미대전’은 ‘전시사업세칙’에 명기된 전쟁발발요인들이 발생하는 급박한 위기상황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비위기상황에서도 불시에 일어날 수 있다. 2013년 3월 8일 인민무력부 부부장 강표영 상장은 평양시 군민대회 연설에서 “우리 인민군대는 그 어디에도 구속됨이 없이, 그 무슨 경고나 사전통고 없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대상에 대하여 무자비한 정의의 타격을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비위기상황에서 불시에 ‘조국통일반미대전’을 개전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처럼 북의 불시개전의지가 확고한 상황에서는 전쟁징후가 나타난 위기상황보다 전쟁징후가 보이지 않는 비위기상황이 미국에게 훨씬 더 위험하다.

미국도 그런 상황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북이 아무런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은 요즈음 같은 비위기상황에서도 북의 불시개전 가능성을 우려하여 불안에 떨면서 각종 대북전쟁연습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으며, 한국군은 물론 일본자위대까지 끌어들인 3자연합 전쟁체계수립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위기상황에서 불시에 일어날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우려하면서 불안에 떠는 미국이 대북전쟁연습으로 그것을 막으려는 것은 실전을 연습으로 막으려는 것만큼 불가능해 보인다.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을 “폭풍처럼 단숨에” 끝내고 미국의 항복을 받겠다고 공언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6.25전쟁 당시 북은 전쟁을 속결하고 분단 5년이 되는 1950년 8월 15일 통일정부수립을 선포할 계획을 밀고 나갔지만, 7월 4일부터 미국이 방대한 증원무력을 한반도 전선에 투입하자 전쟁속결이 불가능해졌고 통일정부도 구성할 수 없었다. 그런 경험을 겪었던 북은 오늘 전쟁징후가 보이지 않는 비위기상황에서 ‘조국통일반미대전’을 불시에 개전하고 미국의 증원무력이 출발하기도 전에 ‘급소타격’으로 미국의 항복을 받아내어 전쟁을 속결하고,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 8월 15일 통일정부수립을 선포하려는 무력통일계획을 세운 것은 아닐까? 그래서 고요할수록 더욱 전쟁 우려를 금할 수 없는 살얼음 시각을 보내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북미대화와 남북관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단순 위기 무마용 대화가 아닌 근본적으로 북미관계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호전시킬 결단이 절박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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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6

전시사업세칙 개정이 말해주는 충격적인 사실

[한호석의 개벽예감](83)
자주민보 2013년 10월 1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북의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3년 내 무력통일을 이루겠는 의지를 밝혔다는 한나라당 조원진 국회의원의 증언     © 이창기 기자, 13년 10월 9일 kbs 뉴스 화면복사

 
✦ 365개 항목 중 187개 항목이 삭제된 상태로 전해진 전시사업세칙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2013년 10월 8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국회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여 발언하는 중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3년 안에 무력통일을 실현하겠다고 북측 내부에서 여러 차례 공언하였다고 밝혔다. 국정원장의 그 발언을 전해들은 국회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의 반응을 2013년 10월 9일 <뉴스1>이 보도하였는데, 취재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국회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3년 안에 무력통일을 실현하겠다고 북측 내부에서 공언한 것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느니,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키면 북한이라는 나라가 멸망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느니, “과연 그들이 가진 무기체계로 무력통일이 가능하겠느냐”느니, “국방력에서 한국군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느니, “올 초에 북한과 우리가 험악한 말을 주고받았지만 북한의 실질적인 군사동향은 없었다”느니 하는 등의 주장을 꺼내놓았다. 국정원장 발언을 들은 정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별로 말이 없는데, 그 발언을 듣지도 못한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뭐가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꺼내놓은 것이다.

국회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정신을 차리고 들어야 할 정보는 국회정보위원회 간사인 조원진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언론에 전해졌다. 그의 말을 인용한 <조선일보> 2013년 10월 8일 보도에 따르면, 국회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정원장은 북이 전시사업세칙을 개정하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원래 전시사업세칙 개정 소식은 2013년 8월 22일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이미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그처럼 지난 8월 22일에 전시사업세칙 개정에 관한 보도가 나왔는데, 그로부터 한 달 반이 지난 10월 8일에 와서 국정원장이 국회정보위원회에 출석하여 마치 새로 입수한 정보인 것처럼 말했다면, 신문사보다 뒤떨어진 국정원의 무능을 드러낸 꼴이다.

북에서 전시사업세칙을 작성하고 발표하고 개정하는 주체는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다.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전시사업세칙을 개정한 것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전시사업세칙 개정이 ‘조국통일반미대전 작전계획’ 최종승인과 직결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국통일반미대전 작전계획’을 최종승인한 것과 당중앙군사위원회가 전시사업세칙을 개정한 것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었는지를 생각해야 세칙개정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남측의 언론매체들과 정세분석가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연관성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국통일반미대전 작전계획’을 최종승인하였다는 사실은 2012년 8월 2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선군절 경축연설에 관한 북측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전시사업세칙을 개정한 때는, <동아일보> 2013년 8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2012년 9월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2년 8월 25일 선군절 경축연설에서 자신의 ‘조국통일반미대전 작전계획’ 최종승인에 대해 언급한 대목을 인용하면 이렇다. “나는 이미 서남전선의 최전방부대들에 나가 적들의 무분별한 추태를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예리하게 살피며 만약 적들이 신성한 우리의 령토와 령해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튕긴다면 즉시적인 섬멸적 반타격을 안기고 전군이 산악같이 일떠서 조국통일대업을 성취하기 위한 전면적 반공격전에로 이행할 데 대한 명령을 전군에 하달하였으며, 이를 위한 작전계획을 검토하고 최종 수표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각 나의 명령을 받은 영용한 인민군장병들은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의 무모한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전투진지를 차지하고 적들과의 판가리결전을 위한 최후돌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목하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선군절 경축연설에서 자신의 ‘조국통일반미대전 작전계획’ 최종승인에 대해 언급한 직후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전시사업세칙을 개정하였다는 사실이다.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전면전 작전계획 최종승인에 대해 언급한 것에 이어 북의 최고군사지도기관이 전시사업세칙을 개정하였다는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조국통일반미대전’에 대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전략이 확고부동하고, 그 전략을 실현하려는 인민군 지휘부의 의지가 강하다는 점이다.

원래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2004년 4월 7일에 전시사업세칙을 각급 기관들에 하달하였는데, 이에 관해서는 2005년 1월 5일 <경향신문> 단독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당시 <경향신문>이 그 문서를 입수하였을 때 세칙을 구성한 총 365개 항 중에서 이미 제56∼60항, 제168∼177항, 제183∼355항이 삭제되어 있어서 총 365개 항 중에서 인민군 전시사업에 관한 187개 항은 볼 수 없었고 178개 항만 볼 수 있었으며, 더욱이 <경향신문>측은 자기들이 입수한 전시사업세칙 중에서 ‘민감한 부분’을 제외하고 일부만 보도하였다. 따라서 이 글에서 전시사업세칙 전반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시사업세칙은 ‘조국통일반미대전’이 일어나는 경우 북의 각급 당조직, 행정기관, 군대, 민간부문에서 수행해야 할 전시사업지침을 밝혀준 문서다. 전시사업과 전시작전은 전혀 다른 개념이므로 전시사업세칙과 전시작전계획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물론 전시사업세칙에는 전시에 인민군이 수행할 사업지침도 포함되었지만,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경향신문>이 입수한 문서에는 인민군 전시사업에 관한 187개 항이 입수하기 전부터 삭제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경향신문>에서 보도한 내용은 당조직, 행정기관, 민간부문 등 군대 밖에서 수행되어야 할 178개 항의 전시사업지침인 것이다. 당시 <경향신문>이 전시사업세칙에 관해 보도하면서 “(전시사업세칙이) 적의 공격에 대한 방어를 강조하고 있다”고 논평한 것은, 군대 밖에서 수행될 전시사업세칙 178개 항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인식착오다. 만일 <경향신문>측이 삭제된 부분을 보았다면, 전시사업세칙이 방어를 강조한다는 식의 논평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이 하나 더 추가된 전시사업세칙

원래 전시사업세칙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작성하였고, 김정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의 명의로 2004년 4월 7일에 하달된 지시문건이다. 그러므로 북의 각급 당조직, 행정기관, 군대, 민간부문에서는 전시사업세칙을 무조건 집행해야 한다. “전시사업세칙을 대충 적용하거나 태만하게 하여 전쟁준비에 지장을 주는 현상에 대해서는 당적, 행정적, 법적으로 엄격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전시사업세칙에 명기된 것은, 그 세칙을 무조건 집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전시사업세칙은 왜 2004년 4월 7일에 하달되었을까?

2003년 9월 9일 공화국 창건 55주년 군사행진을 며칠 앞두고 평양 외곽에 있는 미림비행장에 초강력전략무기들인 목성-3호 5기와 화성-10호 5기가 나타났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거리가 15,000km에 이르는 목성-3호는 인민군이 수직갱발사대에서 발사하는 다발탄두 장착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고, 사거리가 4,000km에 이르는 화성-10호는 인민군이 전략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다발탄두 장착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이다. 북이 목성-3호와 화성-10호 같은 초강력전략무기들을 2003년 9월에 세상에 공개하려고 한 것은 인민군의 ‘조국통일반미대전’ 준비가 이미 2003년에 완료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북의 전쟁개념은 군대와 인민이 단합된 ‘군민일치의 위력’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총력전개념이므로, 인민군이 ‘조국통일반미대전’ 준비를 완료한 것과 더불어 북의 인민들도 인민군과 보조를 맞춰 군대 밖에서 자기들의 전시임무를 수행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바로 그런 ‘군민일치 총력전’ 준비를 지시한 것이 2004년 4월에 북측 전역에 하달된 전시사업세칙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전시사업세칙 제1장 총칙에는 “조국을 통일하는 것은 우리 인민의 념원이며 나의 의지입니다. 조국통일은 우리 대에 하여야지 다음 대에 넘겨줄 수 없습니다. 조국을 통일하는 것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임무이며 민족적 과업입니다”고 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명언(明言)이 수록되어 있다. 그 명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국통일을 자신의 대에 실현하여야 하지 후대에 넘겨줄 수 없다고 말하면서 강렬한 통일의지를 표명하였는데, 2011년 12월 17일 급서로 조국통일과업은 다음 대에 넘겨졌고, 생전의 통일의지는 통일유훈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2012년 여름에 전시사업세칙을 개정하기 위해 세칙문안을 검토하던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국통일과업을 생전에 반드시 실현하여야 하며 다음 대에는 넘겨줄 수는 없다고 말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유훈을 다시 읽으며 심사숙고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국통일을 당장이라도 실현해야 할 과업으로 인정하고, 인민군의 전쟁준비를 정력적으로 지도하였던 것이며, 그런 계기를 통해 ‘조국통일반미대전’을 결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3년 안에 무력통일을 실현하겠다고 북측 내부에서 여러 차례 공언하였다는 정보는 오늘 북에서 전개되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앞으로 3년 안에 무력통일을 실현한다는 말은 ‘조국통일반미대전’이 2016년 안에 일어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조국통일반미대전’이 과연 일어나느냐 아니면 일어나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논할 필요도 없게 되었고, ‘조국통일반미대전’이 앞으로 언제 일어나느냐 하는 문제도 논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오직 ‘조국통일반미대전’이 2016년 안에, 어떤 조건에서 일어나느냐 하는 문제를 논할 필요만 남게 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시사업세칙에는 2016년 안에 일어날 것으로 예견되는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들이 명료하게 수록되어 있다. <동아일보> 2013년 8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전시사업세칙에 명기된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은 아래와 같다. 첫 번째 발발요인은 “미제와 남조선의 침략전쟁의도가 확정되거나 공화국 북반부에 무력침공을 하였을 때”다. 두 번째 발발요인은 “남조선 애국역량의 지원요구가 있거나 국내외에서 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마련될 경우”다. 그리고 세 번째 발발요인은 “미제와 남조선이 국부지역에서 일으킨 군사적 도발행위가 확대될 때”다.

이러한 세 가지 발발요인들 가운데서 첫 번째 요인과 세 번째 요인은 개정되기 전의 전시사업세칙에도 수록되었던 것인데, 개정하면서 두 번째 요인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축적된 순간충격력을 한꺼번에 총폭발시킨다는 작전개념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미제와 남조선의 침략전쟁의도가 확정되었을 때” 또는 “미제와 남조선이 공화국 북반부를 무력침공하였을 때” 북은 ‘조국통일반미대전’에 즉시 돌입한다는 것이다. 미국군과 한국군이 전쟁을 개시하였는데도 인민군이 전쟁에 돌입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경우는 있을 수 없으므로, 위의 인용문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군과 한국군의 전쟁의도가 확정되었을 때 인민군이 전쟁에 돌입한다고 언명한 부분이다. 여기서 전쟁의도 확정이라는 말은 전쟁징후를 사전에 포착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인민군이 미국군과 한국군의 전쟁징후를 사전에 포착하였을 때 선제공격으로 ‘조국통일반미대전’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물론 선제공격에 대한 언급은 북에서만 나온 게 아니다. 미국군과 한국군도 인민군의 전쟁징후를 포착하는 경우 선제공격을 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이처럼 적대쌍방이 똑같이 선제공격을 공언한 마당에, 어느 쪽의 공언이 진실에 더 가까운 것일까?

인민군은 전쟁징후를 사전에 노출하지 않고 전쟁에 돌입할 수 있지만, 미국군과 한국군이 전쟁에 돌입하려면 전쟁징후를 사전에 노출할 수밖에 없다. 전방지역에 공격대형으로 배치된 인민군 대연합부대들은 밤에 취침 중이라도 최고사령관의 공격명령을 받으면 30분 만에 총공격을 개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인민군 전술교리가 그런 만반의 준비에 대해 말해준다.

이를테면, 인민군 전술교리에서 중심내용은 돌파공격, 양익포위, 연속타격인데, 여기서 돌파공격이란 축적된 순간충격력을 한꺼번에 총폭발시켜 단숨에 적을 쓰러뜨리는 작전개념이다. 밀도가 높고 파괴력이 강한 타격수단을 24시간 격발상태로 유지하고 있어야 결정적인 순간에 순간충격력을 총폭발시킬 수 있다. 인민군의 화력배치상태와 작전지휘체계는 순간충격력을 불시에 총폭발시킬 수 있도록 준비되었으며, 또한 그런 순간충격력을 총폭발시키기 위한 실전기술을 지난 60년 동안 연마해왔으니 오늘 그들의 전투준비태세가 어느 경지에 이르렀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군과 한국군은 일본에 주둔하는 미국 해군 7함대 항모강습단이 한반도에 긴급출동해야 총공격을 개시할 수 있다. 긴급출동이라고는 하지만, 항모강습단이 워싱턴 전쟁지휘부의 공격명령을 받고 교전준비를 마치고 한반도로 이동하여 전투에 돌입하려면 30시간이나 걸린다. 분초를 다투며 전세를 결정짓는 숨 막히는 개전시각에 항모강습단이 30시간 동안 부산을 떨어야 하는 것은, 항모강습단에 대한 미국군과 한국군의 의존이 그들의 전쟁수행력을 결정적으로 제약하게 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세계 최강의 타격력’을 갖추었노라고 큰 소리를 치는 항모강습단이 되레 미국군과 한국군의 전쟁수행력을 결정적으로 제약하게 된다는 충격적인 사실이야말로 전쟁전략의 치명적인 실패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인민군은 30분 만에 개전할 수 있고, 미국군과 한국군은 30시간 뒤에야 개전할 수 있는 것은, 미국군과 한국군이 선제공격준비를 갖추었다고 말은 하지만, 그들의 선제공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대규모 화력전으로 진행되는 현대전쟁에서는 밀도가 높고 파괴력이 강한 타격수단을 총동원하여 선제공격을 개시하는 쪽이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다. 최고사령관이 공격명령을 하달하면 30분 만에 엄청난 순간충격력을 총폭발시킬 선제공격준비를 완료하고 대기 중인 인민군이 ‘조국통일반미대전’에서 이길 것으로 자신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선제공격을 위한 미국군과 한국군의 전투준비태세가 상당히 미흡한 상황에서 미국군이 한국군을 동원하여 인민군을 자극하는 대북전쟁연습을 실시하거나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 같은 타격수단을 남측에 들여보내는 대북무력시위를 감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인민군이 그러한 대북전쟁연습과 대북무력시위를 전쟁징후라고 판단하는 경우, 즉각 ‘조국통일반미대전’에 돌입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군이 한반도에서 벌이는 대북전쟁연습과 대북무력시위야말로 ‘한국의 안보’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밟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반정부대중항쟁을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으로 명기한 전시사업세칙

주목하는 것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전시사업세칙을 개정하면서 새로 추가한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을 세 번째에 수록하지 않고 두 번째로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새로 추가한 요인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조선일보> 2013년 10월 8일 보도기사에 인용된, 전시사업세칙에 새로 추가된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은 “공화국 남반부의 민주애국역량이 들고 일어나 우리 북에 지원을 요구할 경우 전쟁을 선포한다”는 것이다. 이 인용문에서 “공화국 남반부의 민주애국역량이 들고 일어난다”는 말은 남측에서 4.19 민주항쟁, 5.18민주항쟁, 6.10민주항쟁 같은 반정부대중항쟁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지금 남측에서 반정부대중항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까? 이 문제를 놓고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2008년에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자본파산이 세계 각국 금융계에 ‘직격탄’을 날린 이후 세계자본주의시장경제는 점차적으로 조락하고 있으며, 그 조락사태에서 발생되는 엄청난 피해는 모조리 근로대중에게 떠넘겨지는 판이다. 2008년 이후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같은 나라들에서 불시에 일어난 반정부대중항쟁은, 점차적으로 조락하는 세계자본주의시장경제에서 발생한 막대한 피해가 집권세력의 계략에 의해 근로대중에게 마구 떠넘겨지면서 빈부격차, 실업, 빈궁이 극에 이르고, 그에 분노한 근로대중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거리와 광장으로 물밀듯이 쏟아져 나와 일으킨 대중저항운동의 폭발이었다.

그런데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에서 일어난 격렬한 대중항쟁이 왜 남측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최근 언론보도에 나오는 각종 경제지표들은 남측 근로대중이 겪는 민생파탄고통이 유럽 근로대중이 겪는 민생파탄고통보다 더 혹독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남측 근로대중 속에 축적된 분노에너지가 언제 폭발하여 반정부대중항쟁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들지만, 연속적인 대국민기만발언과 대선공약파기에 따른 민생정책실종, ‘NLL 포기발언’ 조작에 의한 민주당 고립시키기, ‘종북혐의씌우기’에서 ‘내란혐의씌우기’로 한층 더 악화된 통합진보당 탄압 등에서 드러난 박근혜정권의 악정과 무능은 축적된 분노에너지를 폭발시킬 대형뇌관을 근로대중 속에 밀어 넣어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어떤 충격파가 그 대형뇌관을 조금이라도 흔들기만 하면, 근로대중 속에 축적된 분노에너지는 반정부대중항쟁으로 폭발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남측에서 반정부대중항쟁이 일어나 북에 지원을 요구할 경우 ‘조국통일반미대전’이 일어난다고 전시사업세칙에 명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북은 자기의 ‘조국통일반미대전’과 남측의 반정부대중항쟁을 결부시켜놓은 것이다.

전시사업세칙은 남측에서 반정부대중항쟁이 일어나 북에 지원을 요구할 경우 ‘조국통일반미대전’을 벌인다고 하였지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남측의 항쟁지도부는 북에게 지원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일어나지도 않을 상황이 전시사업세칙에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으로 명기된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시기 남측에서 일어난 반정부대중항쟁경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항쟁이 일어나면 박근혜정권은 경찰을 총동원하여 진압할 것이다. 최근 이집트에서 벌어진 시위군중진압이 말해주는 것처럼, 항쟁진압은 유혈사태를 수반하게 되는데, 유혈사태를 목격한 시위군중의 분노로 항쟁의 폭발력이 한층 더 커지게 되고, 그에 따라 항쟁진압도 더욱 폭력화되어 유혈사태가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항쟁진압과 유혈사태의 악순환이 급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반정부대중항쟁 중에 남측의 민주애국역량이 북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전시사업세칙에 명시된 것은, 실제로 그런 지원요청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유혈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뜻으로 다시 읽어야 문맥이 통한다. 다시 말해서, 전시사업세칙은 남측에서 일어날 반정부대중항쟁이 박근혜정권의 폭력진압에 의해 유혈사태로 전변되는 경우 ‘조국통일반미대전’이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박근혜정권도 근로대중의 분노폭발→반정부대중항쟁→유혈사태로 이어질 대사변의 가능성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박근혜정권이 통합진보당에게 내란음모혐의를 뒤집어씌워 탄압하는 것은, 국정원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시위가 반정부대중항쟁으로 격화되기 전에 촛불시위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한 통합진보당을 꺾어놓으려는 예방적 탄압으로 보인다. <동아일보>가 반정부대중항쟁을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으로 명기한 전시사업세칙 개정에 관해 보도한 날이 2013년 8월 22일이었고, 국정원 수사요원들이 통합진보당 인사들에게 내란음모혐의를 씌워 그들의 자택과 사무실을 급습한 날이 2013년 8월 28일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년 안에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일어날 가능성

전시사업세칙에 명기된 ‘조국통일반미대전’의 세 번째 발발요인은 “미제와 남조선이 국부지역에서 일으킨 군사적 도발행위가 확대될 때”다. 이것을 남측에서 통용되는 서술방식으로 바꾸면, 한국군과 인민군이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우발적으로 일으킨 무력충돌이 확대될 때다. 다시 말해서, 이전에 여러 차례 일어났던 서해교전과 같은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앞으로 또 다시 일어나면, 인민군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국통일반미대전’을 개시하겠다고 명시한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서해5도 분쟁수역은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화약고’다. 10.4공동선언에 명기된 서해평화협력지대 건설구상이 만일 2008년부터 실현되기 시작하였더라면, 5년이 지난 지금쯤 서해5도 분쟁수역은 서해평화협력지대로 전변되었을 것이고, 남과 북은 평화통일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정권은 10.4공동선언을 부정하면서 북과 대결하는 일만 벌였고, 오늘 박근혜정권도 이명박정권의 전철을 밟아가는 중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앞으로 3년 안에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서해5도 분쟁수역에 대한 인민군의 전투준비태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2013년 10월 8일 국회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국정원장은 인민군이 신형 240mm 방사포를 서북지역에 배치하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3년 6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은 신형 240mm 방사포를 서북지역만이 아니라 전 전선에 걸쳐 배치하고 있는데, 국정원장은 서북지역에만 배치한 것처럼 잘못 말했다. 그가 특정한 서북지역은 서해5도 분쟁수역의 한국군을 공격할 황해남도 해안지역이다.

지금 인민군은 백령도와 연평도를 조준한 신형 240mm 방사포만 증강배치하는 게 아니다. 최근에 나온 내외신 관련보도를 종합하면, 연평도와 마주한 황해남도 강령군에서 4개의 군사기지와 20개의 포진지를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가 2011년 초에 시작되어 2013년 1월 하순에 끝났고, 백령도와 마주한 황해남도 태탄군의 태탄비행장(인민군 최남단 공군기지)에서 36개의 포진지 구축을 포함한 대규모 기지확장공사가 완공되었고, 백령도와 마주한 황해남도 룡연군에서 진행된 해군기지 신설공사도 완공되었다.

위에 열거한 정보들은 인민군이 백령도와 연평도를 겨냥한 전투준비태세를 증강, 완료하였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백령도 및 연평도 공격준비가 완료된 직후인 2013년 9월 2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병영시설과 주민시설을 새로 건축한, 서해5도 분쟁수역 최전선의 장재도와 무도를 시찰하였을 때, 북의 언론에는 최고사령관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인민군 장병들과 주민들의 모습이 보도되었다.
▲ 미주 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소장     ©자주민보
위에서 서술한 내용을 요약하면, 지금 인민군의 화력밀도는 엄청나고, 연속타격준비는 완성되었고, 사기는 충천하다. 인민군이 불시의 일제사격으로 발사한 미사일과 방사포탄과 대구경 포탄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날아오는 거대한 ‘불벼락’을 한국군과 주한미국군이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미국 <자유아시아방송> 2013년 10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북에서는 이전에 전시예비물자를 3년 동안 비축해두었는데, 올해 2013년부터 비축기간을 3개월로 단축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북의 ‘조국통일반미대전’이 단기속결전으로 끝나게 될 것임을 말해준다. 북의 ‘조국통일반미대전’이 단기속결전으로 끝나게 되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2013년 3월 16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3일 만에 끝날 단기속결전’에서 논한 바 있다. 북의 3일 단기속결전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분석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북은 그런 시나리오를 언급한 적이 없으며, 2013년 3월 30일 발표된 북측 정부, 정당, 단체 특별성명에서는 “우리의 조국통일대전은 3일 대전도 아니라”고 하였다.

그런데 2013년 10월 9일 국회국방위원회에서 최윤희 합참의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진행할 때 “북의 3일 단기속결전 시나리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답변에 나선 합참의장 후보자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우리의 방위태세로 볼 때 (북의 3일 단기속결전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국회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최윤희 합참의장 후보자는 2009년부터 2013년 9월 8일까지 골프를 총 248회나 즐겼으며, 군사정세가 극도로 긴장된 시기에 실시된 한미연합군 대북전쟁연습 직전과 직후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골프장을 찾았다”고 한다. 비단 합참의장 후보자만 그런 게 아니라, 육해공군 장성급 지휘관 450여 명이 2011년부터 2년 동안 군부대 골프장을 출입한 회수는 무려 22,000여 회나 되는데, 이것은 장성급 지휘관 한 사람당 골프장 출입회수가 연평균 24.5회에 이른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골프채를 흔들면서 방위태세가 든든하다고 내뱉은 말을 곧이들을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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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5

한일관계에 떠도는 ‘쇼와 요괴’의 전쟁의지

민중의 소리 2013년 10월 13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장)


전후 일본 정치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로 손꼽히는 사람이 쇼와의 요괴(昭和の妖怪)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기시 노부스케(岸 信介, 1896-1987)다. 쇼와라는 말은 조선침략원흉이며 전범우두머리인 히로히토(裕仁)가 일본 국왕으로 재임한 1926년부터 1989년까지 기간을 뜻한다.

원래 기시 노부스케는 일제가 조작한 ‘대일본 만주제국’의 최고실권자였는데, 일제가 패망하자 1급 전범으로 체포되어 도쿄에 있는 스가모형무소에 3년 동안 수감되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사업실(Office of Strategic Services) 요원들이 스가모형무소에 수감된 1급 전범들을 조사하다가 눈독을 들인 전범 재소자가 기시 노부스케였다. 나중에 미국 중앙정보국이 작성한 신상조사서에는 기시가 “열렬한 반공주의자”이고,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쓰여 있었다.

1948년 12월 23일 1급 전범 7명을 교수형에 처한 미국은 이튿날 기시 노부스케를 슬그머니 석방하였다. 미국은 자기들에게 이용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 그를 살려놓은 것이며, 그로써 기시는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추종하는 친미주의자로 탈바꿈하였다. 미국은 자기들이 살려놓은 전범을 어떻게 이용하였을까?

‘쇼와의 요괴’를 살려주고 길러준 미국의 비밀공작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총리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총리ⓒ일본 자료사진
 
 
‘뉴욕 타임스’ 1994년 10월 9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서 미국인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나중에 미국 국무부 일본담당관을 지낸 유진 두먼(Eugene F. Dooman)은 무기생산필수품인 텅스텐을 6.25전쟁 시기에 일본에서 밀수하여 미국 군부에 판매하는 수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머쥐었는데, 그의 텅스텐 불법거래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은밀한 보장조치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텅스텐 불법거래의 뒤를 봐주며 챙긴 비자금을 일본의 친미극우세력을 정치세력화하는 비밀공작에 쏟아 부었는데,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자금을 받으면서 정치세력화한 일본 극우세력의 핵심인물이 바로 기시 노부스케다. 그는 ‘만주인맥’을 동원하였고, 미국 중앙정보국은 ‘만주인맥’에게 비밀자금을 퍼주었다. ‘대일본 만주제국’ 고위관료 출신자와 만주군관학교 출신자들이 결집한 극우세력이 바로 ‘만주인맥’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일본에서 비밀자금으로 육성한 극우정당이 1955년 11월 15일에 출현하였으니, 그것이 일본의 현 집권당인 자민당이다. 위에서 언급한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은 자민당 창당자금을 제공하였을 뿐 아니라 창당 이후에도 그 당에 비밀자금을 계속 제공하였고, 일본정부 고위관리들에게도 비밀자금을 제공하여 일본내각 안에 중앙정보국 ‘끄나풀’을 박아 두었다.

미국의 비밀공작으로 교수형을 면하고, 미국의 비밀자금으로 정치적 재기에 성공한 기시는 1957년 2월 25일 일본총리가 되었다. ‘뉴욕 타임스’ 특파원 팀 와이너(Tim Weiner)가 방대한 비밀문서를 분석하고 많은 관련자들과 대담하는 노력으로 집필한 역작 ‘잿더미로 남은 유산:CIA의 역사(Legacy of Ashes:The History of the CIA)’가 2008년 5월 미국에서 출판되었는데, 그 책에 따르면 한때 전범으로 몰락했던 기시 노부스케를 자민당 총재로, 일본총리로 화려하게 재기시킨 극적인 반전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연출한 작품이었다.

미국은 일본총리가 된 기시를 1957년 6월 워싱턴으로 불러 연방의회합동연설에 출연시켰고, 뉴욕에 있는 야구전용경기장인 양키스타디움(Yankee Stadium)에서 미국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구(始球)의 기회도 안겨주었고, 드와잇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골프회동을 갖게 만들었다.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은 흉악한 전범을 일약 저명한 정치인으로 둔갑시켜 국제 정치무대에 세워준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전후 일본정치를 그처럼 마음대로 주물렀으니, 그들의 눈에 일본정치보다 한 급 아래로 보인 한국정치가 그들의 비밀공작에 의해 얼마나 변태적으로 가공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뉴욕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기시는 일본총리가 된 뒤에도 여전히 미국의 비밀자금을 받아 챙겼는데, 그는 1958년 6월 29일 사토 에이사쿠(佐藤英作) 당시 일본재무상을 더글러스 맥아더 2세(Douglas MacArthur II) 당시 주일미국대사에게 보내 비밀자금을 또 다시 달라고 요청하였다. 사토 에이사쿠는 기시의 친동생이며, 나중에 총리가 된 인물이다.

‘요시다 독트린’ 폐기하고 핵무장까지 노린 ‘요괴’의 망동

교수형으로 사라졌어야 할 전범이 미국의 비밀공작에 의해 일본정계의 최고실력자로 변신한 기괴하기 짝이 없는 흑막은 전후 일본 정치사에 은닉된 비극에서 멈추지 않았다. 기시 노부스케는 총리가 되자마자 ‘요시다 독트린(Yoshida Doctrine)’ 폐기문제를 들고 나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망동을 저질렀다.

미국에서 ‘요시다 독트린’이라 부르는 일본의 전후 정치외교노선은 무엇인가? 미일상호방위조약의 핵심내용은, 미국이 일본의 안전을 지켜주는 대가로 일본은 자국 영토를 미국의 군사기지로 무상제공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조약에 따르면, 만일 북과 미국이 전쟁을 벌이는 경우에도 일본은 자국 영토를 미국의 군사기지로 제공하는 것뿐이고 일본자위대는 북미전쟁에 동원되지 않는다. 이러한 일본자위대의 교전불가원칙은 일본의 교전권을 포기한 일본헌법 제9조와 부합된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미국은 ‘창’의 역할을, 일본은 ‘방패’의 역할을 각각 맡겠다는 것인데, ‘방패’의 역할을 맡은 일본의 정치외교노선을 미국에서 ‘요시다 독트린’이라 부른다. 1946년부터 1954년까지 일본총리를 지낸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 1878-1967)가 1954년 11월 10일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과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그러한 정치외교노선을 천명하였기 때문에 ‘요시다 독트린’이라 부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수상
1961년 11월 일본 수상 관저 만찬회에서 이케다 하야토 수상과 담소하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사진 왼쪽은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민족문제연구소 자료집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
 

그런데 아이젠하워-요시다 공동성명은 채택된 지 불과 3년 만에 휴지조각으로 되었다. 아이젠하워-요시다 공동성명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장본인은 기시 노부스케다. 그는 1957년 6월 21일 당시 백악관에서 아이젠하워와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미일공동코뮈니케를 발표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미국은 일본의 방위력 증강계획을 환영하고, 모든 주일미국지상군의 즉각적인 철군을 포함하여 주일미국군 병력을 대폭 축소할 것이며 일본의 방위력이 증강되는 데 따라 더 축소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 공동코뮈니케는 주일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군시키고 일본을 재무장시켜 대외침략의 길을 열어놓으려는 ‘만주인맥’의 전략구상을 외교문서화한 것이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기시가 추구한 일본의 재무장이 결국 핵무장까지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1958년 9월 9일에 작성된 미국 국무부-국방부 회의록이 2013년 3월 16일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되었는데, “기시 총리는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믿고 있다”는 맥아더 2세 당시 주일미국대사의 발언이 그 회의록에 적혀 있다. 또한 1958년 6월 20일 맥아더 2세 당시 주일미국대사가 존 덜레스(John F. Dulles) 당시 국무장관에게 보낸 비밀전문이 2013년 3월 16일에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되었는데, 당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 야마다 히사나리(山田久就)가 맥아더 2세와 담화하면서 지금 일본 외무성이 핵무기를 보유할 것인지 말 것인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그 비밀전문에 나온다.

기시 노부스케가 총리재임기간에 미국의 은밀한 사주를 받으며 다그친 일본의 재무장은 대외침략을 위한 사전준비였다. 1960년 6월 23일 맥아더 2세 당시 주일미국대사와 후지야마 아이이치로(藤山愛一郞) 당시 일본외상이 서명한 ‘조선유사의사록’이라는 제목의 문서가 2008년 2월 말 미국 미시간대학교 포드대통령도서관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후지야마 외상이 기시 총리로부터 권한위임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주한유엔군에 대한 (북의) 공격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긴급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국은 일본과 사전협의를 하지 않고 주일미국군기지를 즉각 사용할 수 있다”고 밀약한 비밀문서였다. 후지야마가 미일동맹군의 대북공격구상을 담은 밀약문서에 서명한 바로 그 날, 그 밀약의 장본인이었던 기시는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사의를 표명하였다. ‘쇼와의 요괴’가 연출한 정치촌극이었다.
 
일본총리 아베 신조의 쇼인신사 참배 위에서 언급한 자료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자위대의 교전권을 확보하고 더 나아가서 핵무장까지 갖춘 다음, 미국군의 뒤를 따라 대북침공을 준비하려고 획책하였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살려준 1급 전범 출신의 열렬한 반공주의자이며,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자금으로 정치적 재기에 성공한 일본정계의 최고실력자인 기시의 전쟁의지는 그처럼 집요하였다.

그러나 기시의 전쟁의지는 일본의 재무장을 부분적으로 실현하였을 뿐이다. 부분적 실현이라는 말은 일본이 북을 침공할 수 있는 독자적인 공격력을 확보하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또한 일본자위대의 교전권 확보는 일본 야당의 저지, 일본 국민의 반대여론, 일본 진보세력의 저항에 밀려 지난 50년 동안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기시가 전쟁의지를 드러냈던 때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 일본에서는 더욱 경악할 만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일본 재무장의 실현과 독자적인 대북공격력 획득을 획책하다가 미완으로 남긴 기시의 전쟁의지를 오늘에 와서 기어이 실현하려는 ‘요괴의 후예’들이 거의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채 준동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일본의 극우세력은 일제가 식민지강점기에 조선에서 저지른 죄악을 청산하라는 정당한 요구를 거부하면서 망언을 일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독도강탈책동과 역사왜곡사태로 소란을 피우더니 결국 기시의 전쟁의지를 실현해보려고 광란하는 중이다. 그러한 정치적 광란을 부채질하는 선동가가 등장하였으니, 그가 바로 2012년 9월 26일 자민당 총재로 선출되었고, 12월 26일 일본총리로 선출된 아베 신조(安培晋三)다. 아베 신조야말로 기시의 전쟁의지를 가장 충실하게 계승한 ‘요괴의 후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뉴시스/AP
 

2013년 8월 13일 아베는 쇼인신사를 참배하고 나서 “나는 처음 중의원 의원에 입후보하기로 뜻을 세웠을 때도 (쇼인신사를) 참배하였다. 올바른 판단을 하기로 맹세하였다”고 중얼거렸는데, 쇼인신사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비롯한 조선침략원흉들을 자기 사숙(私塾)에서 직접 가르치며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설계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을 기리는 장소다. 그러므로 아베의 쇼인신사 참배는 그가 ‘정한론(征韓論)’을 부르짖으며 광란하던 조선침략론자들로부터 정신적 계보를 이어받았음을 말해주는 증거다.

아베는 2006년 9월 26일부터 2007년 9월 26일까지 1년 동안 총리를 짧게 역임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은 재임기간에 그가 추진한 일은 기시가 미완으로 남긴 일본 재무장의 완성이었다. 당시 아베는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시키고, 수륙양용부대(해병대)를 창설해야 한다고 하면서 일본 재무장의 완성을 다그치는 한편, 교육기본법을 개정하여 우익국가주의교육의 길을 열어놓았으며, 종군위안부 강제연행범죄를 부인하는 등 일제의 범죄사를 부정하는 망발을 늘어놓았다.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 아베는 자신이 총리직에 있을 때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이 “통한”이라고 하면서 버젓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였다.

그런 그가 또 다시 총리가 되어 ‘요괴’의 전쟁의지를 실현하려고 광란하는 중이다. 아베가 실현하려는 ‘요괴’의 전쟁의지를 정리하면, 일본헌법 및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 미일동맹 강화에 의거한 자위대 역할 확대, 일본의 집단적 교전권 확보다.

다카키 마사오를 첫 눈에 알아본 ‘쇼와의 요괴’

1970년 6월 18일 ‘동아일보’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한 기시 노부스케에게 수교훈장 ‘광화장’을 수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박정희는 왜 기시에게 수교훈장을 달아주었을까?

한국의 ‘만주인맥’을 대표하는 사람이 일제에게 충성을 맹세한 ‘대일본 만주제국’ 육군 중위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박정희의 일본 이름)이고, 일본의 ‘만주인맥’을 대표하는 사람이 ‘대일본 만주제국’을 주물렀던 기시 노부스케다. 일제에게 충성한 그 두 사람이 일제의 패전과 만주국의 멸망 이후 ‘만주인맥’을 되살리며 의기투합한 첫 사건은 5.16군사반란으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난 1961년 8월에 있었다. 총칼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라는 직함으로 밀서 한 통을 도쿄에 보냈는데, 2001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찾아낸 그 밀서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귀하가 귀국의 어느 위정자들보다 한일 양국의 견고한 유대를 주장하며 그 실현에 많은 노력을 하는 분이라는 것을 금번 귀하가 파견한 신영민 씨를 통하여 잘 알게 되었습니다. 양국의 강인한 유대는 역사적 필연이라 주장하는 귀하의 뜻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장차 재개될 국교정상화 교섭에 서 귀하의 각별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박정희가 작성한 밀서의 수신인은 기시 노부스케였다. 박정희의 밀서를 읽어보면, 기시가 박정희의 중학교 동창인 신영민을 자신의 밀사로 서울에 파견하여 한일수교문제에 관한 박정희의 의도를 파악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일수교회담 과정에서 언론에 오르내린 사람은 기시 노부스케의 후임총리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1899-1965)였지만, 그 과정에서 막후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은 기시 자신이었다.

박정희는 1961년 11월 14일 백악관을 방문하여 존 케네디(John F. Kennedy)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났는데, 워싱턴에 가는 길에 도쿄에 들러 이케다 총리부터 만났다. ‘연합뉴스’ 2012년 11월 5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당시 케네디는 미국에 오는 길에 도쿄에 들러 이케다 총리부터 먼저 만나라고 박정희에게 요구하였다. 케네디가 박정희에게 제시한 방미조건은 한일유착이었고, 박정희를 지지해주는 대가로 한일국교정상화를 추진할 것을 박정희에게 요구했던 것이다.

1961년 11월 11일 일본총리관저에서 열린 박정희 방일 환영만찬회에서 기시 노부스케는 그 동안 밀사파견을 통해 서로 연락해오던 박정희와 처음 대면하였다.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극적인 만남에 대해 기시는 “박정희 씨가 군사혁명을 일으킬 때 메이지유신의 지사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고 나에게 말하였다”고 회고록에 서술하였다. 기시는 회고록에서 박정희와 자신의 만남에 대해 그 이상 자세히 서술하지 않았지만, 박정희를 초청한 일본의 최대 관심사는 한일수교회담 재개에 있었으므로, 기시가 박정희에게 한일수교회담 재개를 요구한 것은 당연하였다.

기시의 막후공작에 의해 재개된 한일수교회담은 1963년에 교착상태에 빠졌는데, ‘경향신문’ 2001년 11월 3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그때도 박정희는 기시에게 밀서를 보냈다. 밀서에서 박정희는 “박흥식 씨 편으로 귀하의 서신을 접하고 다시 그 편으로 답신을 보냅니다. 한일회담의 조기타결을 위해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고 썼다. 이 밀서에 따르면, 기시는 한일수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거물급 친일파인 박흥식을 자신의 밀사로 박정희에게 파견하여 막후조정을 꾀하였던 것이다. 결국 한일수교회담은 일제의 식민지죄악청산은 고사하고 되레 독도영유권까지 일본에게 양보한 채 1965년 6월 22일 굴욕적으로 결속되고 말았는데, 그렇게 된 까닭은 ‘대일본 만주제국’ 육군 중위 출신 박정희가 ‘만주인맥’을 틀어쥔 ‘요괴’의 계략에 굴종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만주인맥’의 후손들이 손을 잡는 날

박정희-기시 노부스케의 첫 만남이 있었던 때로부터 38년이 지난 1999년 8월 2일 해상구조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사상 최초의 한일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되었다. 한일합동군사훈련은 기시에게 보낸 박정희의 밀서에 쓰여 있는 것처럼, ‘만주인맥’의 강인한 유대를 역사적 필연이라고 강조했던 전범의 전쟁의지가 38년 뒤에 실현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첫 한일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된 때로부터 14년이 지난 오늘 한일관계는 어디까지 왔을까?

박정희에게 보낸 밀서에서 ‘만주인맥’의 강인한 유대가 역사적 필연이라고 썼던 기시의 뜻을 이어받은 일본총리 아베 신조는 지금 집단적 교전권을 확보하려고 광란하는 중이다. 아베가 말하는 집단적 교전권이란 미국이 공격을 받는 경우 일본자위대가 미국군과 함께 집단적으로 전쟁을 벌인다는 뜻인데, 미국을 공격하겠다고 공언한 나라는 지구 위에서 북한 밖에 없으므로, 집단적 교전권이란 집단적 대북교전권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일본자위대의 집단적 대북교전권을 확보하기 위한 첫 공정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로 전개되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교환하려는 군사정보는 대북군사정보인데, 대북정보자산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으며, 일본은 미국의 대북정보자산에 의존하는 처지다. 일본이 운용하는 정찰위성체계는 미국이 운용하는 정찰위성체계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졌기 때문에 미국의 대북정보자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정보가치가 있는 대북군사정보를 받기 힘들고, 더욱이 해마다 두 차례씩 진행되는 한일정보교류회의에서 대북정보를 상호교환하고 있으므로, 군사정보에 관한 협정을 따로 체결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과 일본은 이미 2008년부터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문제를 실무자급에서 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2011년 1월에 진행된 한일 국방장관-방위상회담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하였으며, 2012년 6월 26일 이명박 집권기의 청와대 국무회의는 즉석안건으로 상정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밀실처리하였다. 밀실처리에 대한 국민의 비난과 반대가 거세지자, 그들은 협정서명을 연기하는 ‘꼼수’를 부리면서 반대여론을 무마하고 슬그머니 넘어갔지만, 협정서명은 시간문제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에 숨겨진 의도를 두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 협정문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한국과 일본이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여 상호교환하려는 정보는 대북군사정보가 아니라 한국군과 일본자위대에 관한 군사정보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면, 한국군은 일본자위대에 관한 군사정보를 받게 될 것이고, 일본자위대는 한국군에 관한 군사정보를 받게 될 것이다.

둘째, 협정문에는 군사정보만이 아니라 군사장비들도 교환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일본자위대가 자기 군사장비를 한국군에게 넘겨주게 된다는 것을 뜻하며, 군사정보와 군사장비의 상호교환은 한국군과 일본자위대가 미국군의 작전계획에 따른 대북전쟁연습을 공동으로 준비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일본자위대의 집단적 대북교전권을 확보하기 위한 첫 공정은 2008년에 시작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논의와 더불어 같은 해에 시작된 한미일 3자군사훈련이다. 한미일 3자군사훈련은 2008년 8월 5일 하와이 근해에서 처음 실시되었고, 2012년부터 규모가 확대되어 해마다 두 차례씩 실시하고 있다. 3자군사훈련은 2012년 6월 21일 동중국해 북방해역에서, 그리고 8월 7일 하와이 근해에서 각각 실시되었고, 올해 2013년에는 5월 15일과 10월 10일에 동중국해 북방해역에서 각각 실시되었다. 특히 올해 10월 10일에 실시된 3자군사훈련에는 미국 제7함대 핵추진항공모함, 일본해상자위대 항모급 헬기호위함, 한국해군 구축함을 비롯한 방대한 해상타격수단이 동원되었다.
지난해 6월 청와대 앞에서 한국청년연대 윤희숙 대표가 1인 시위를 하며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체결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청와대 앞에서 한국청년연대 윤희숙 대표가 1인 시위를 하며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체결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한일군사관계가 이처럼 미국의 전략구상에 따라 밀착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일제식민지시기 조선인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망발 때문에 한일정상회담을 뒤로 미루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유예행동은 오래 가지 못한다. ‘한겨레’ 2013년 2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2013년 2월 22일 워싱턴에 있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연설한 아베 신조 일본총리는 한일관계에 관한 참석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나의 외할아버지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아주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과 매우 가까운 관계였습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만나는 날, 두 정상은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반세기 전 밀약하였던 ‘만주인맥의 강인한 유대’를 계승할 것이다. 그것은 일본자위대가 집단적 대북교전권을 확보하고, 미국이 지휘하는 한미일 대북전쟁연습을 본격화함으로써 ‘요괴’의 전쟁의지를 실현하려는 계승이다. ‘만주인맥’의 후손들인 독재자의 딸과 전범의 외손자가 손을 잡는 정상회담에서는 ‘요괴’의 전쟁의지를 되살리는 군가가 울려나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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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8

실체 드러낸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제

[한호석의 개벽예감] (82)
자주민보 2013년 10월 08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자위대의 한반도 접근에 반대하는 우리 국민들, 하지만 미국은 기어이 대북 군사력 강화를 이해 자위대를 끌어들여 한미일 삼각공조를 확립하려 하고 있다.  한호석 소장은 이 글에서 유엔사를 중심으로 한미일군사공조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진: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 글, 이창기 기자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가 언급한 유엔군사령부 존치문제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60년을 맞은 ‘국군의 날’ 행사에 군수뇌부를 참석시키고, 제38차 한미군사위원회(Military Committee)와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Security Consultative Meeting)와 미일안보협의위원회(Security Consultative Committee)를 잇달아 진행하더니,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USS George Washington)를 부산항으로 출동시켰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군수뇌부는 2013년 9월 30일 서울에서 한미군사위원회를 진행하였고, 10월 1일 서울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60년을 맞은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하였고, 10월 2일 서울에서 한미안보협의회를 진행하였고, 10월 3일 일본 도쿄로 건너가 미일안보협의위원회를 진행하였고, 10월 4일에는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부산항에 입항시켰다.

그런데 미국군수뇌부가 ‘국군의 날’ 행사만 참석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게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미국군수뇌부는 2013년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서울-도쿄-부산으로 이어진 일련의 심상치 않은 행동을 연속적으로 취하였다.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일련의 연속행동은 미국이 사전에 작성한 시나리오에 따라 남측과 일본을 각각 동원하여 연출한 것이다.

이제껏 미국군수뇌부는 서울과 도쿄를 뻔질나게 오가며 ‘안보협의’를 진행해왔지만, 이번처럼 서울-도쿄-부산으로 이어지는 신종 시나리오에 따라 ‘안보협의’를 부산하게 진행한 적은 없었다. 사상 처음으로 서울-도쿄-부산을 연결하는 신종 시나리오에 따라 ‘안보협의’를 진행한 미국의 의도는 무엇일까? 미국군수뇌부가 서울과 도쿄에서 비공개로 각각 진행한 ‘안보협의’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이 글에서는 ‘안보협의’ 직후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발표된 두 개의 중요한 문서를 분석한다.

2013년 10월 2일에 발표된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서 주목해야 할 내용을 추려내어 해설하면 아래와 같다. 한미안보협의회 10.2 공동성명은 “양 장관은 정전협정과 유엔사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재확인하였다”고 밝혔다.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이 인용문에는 미국의 대북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 메시지는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고,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는 것은,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고, 불안정하고 위험한 현 정전상태를 유지하면서 대북적대행위를 계속하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지 않는 것은,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하기로 예정된 2015년 12월 1일 이후에도 유엔군사령부를 계속 존치시키려는 것이다.

한미연합사령부는 해체해도 유엔군사령부는 계속 존치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는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전략에 직결된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전략이 드리운 ‘그림자’

 
미국군수뇌부가 발표한 몇몇 문서들에서 어른거리는 새로운 대북전쟁전략의 ‘그림자’를 목격할 수 있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전략이 드리운 ‘그림자’는 한미안보협의회 10.2 공동성명에서도 어른거린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전략이 드리운 ‘그림자’가 집중적으로 투영된 곳은, 지금 미국이 열을 올리고 있는 대북미사일방어체계 구축사업이다. 한미안보협의회 10.2 공동성명은 “양 장관은 미사일위협에 대한 탐지, 방어, 교란 및 파괴를 위한 포괄적인 동맹의 미사일 대응전략을 지속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미국군수뇌부가 말하는 미사일위협이란 인민군 미사일에서 오는 위협이다.

미국이 지난 60년 동안 북을 미사일로 위협해오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고, 북이 미국의 미사일위협에 대응하는 억제력으로 구축한 미사일타격력에 대해서만 위협이라고 말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왜곡이다. 북이 일본, 알래스카, 괌, 하와이를 타격할 뿐 아니라 미국 본토의 심장부까지 타격할 강력한 미사일능력을 보유한 것은 미국의 대북미사일위협에 대응한 조치다. 미국은 2002년 1월 8일 언론에 그 존재가 알려진 국가기밀문서 ‘핵태세검토보고(Nuclear Posture Review)’에서 북을 일차적인 핵타격대상으로 규정해놓았고, 몇 척이나 출동하는지 알기 힘든 핵추진 전략핵잠수함들을 동원한 대북핵타격준비태세를 상시적으로 유지해오고 있다. 이를테면, 주일미국부대사 제임스 줌월트(James P. Zumwalt)가 작성하여 2010년 2월 24일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이 ‘위킬릭스(Wikileaks)’에 폭로되었는데, 그 비밀전문에 따르면, 2010년 2월 2일 도쿄에서 진행된 미일안보소위원회(SSC)에서 수전 버살라(Suzanne Basalla) 당시 미국 국방부 일본국장은 “미국의 ‘핵태세검토보고’에 들어있는 핵심문제는 미국 해군 전략잠수함에서 발사되는, 핵탄두를 장착한 토마호크 지상공격미사일(TLAM-N)”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전략은, 미국이 북의 미사일타격력을 미사일방어체계로 약화시키고 자기의 대북미사일타격력만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이 실패를 무릅쓰고 요격미사일발사실험을 계속 강행하면서 대북미사일방어체계의 강화와 확장에 열을 올리는 까닭이 거기에 있으며, 2013년 10월 1일 미국군수뇌부가 참석한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미사일방어체계인 ‘킬 체인(Kill Chain)’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를 “조기에 확보”하겠다고 공언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미국의 새로운 전쟁전략이 북보다는 중국을 직접 겨냥한 대중전쟁전략이라고 생각하거나, 북과 중국을 동시에 겨냥한 2중전쟁전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래의 정보를 살펴보면, 그런 생각이 왜 오판인지 알 수 있다.

2013년 10월 3일 미일안보협의위원회가 발표한 공동성명 ‘더욱 든든한 동맹과 더욱 증대된 책임분담을 향하여(Toward a More Robust Alliance and a Greater Shared Responsibilities)’에서 미국과 일본은 자기들이 직면한 다섯 가지 위협요인을 열거하였는데, “북의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과 인도주의적 관심, 해양영토에서 강제적이고 불안정한 행동, 우주와 사이버공간에서 일어나는 파괴행동, 대량파괴무기 확산, 인위적으로 또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재난”이 그것이다. 미일안보협의위원회 10.3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북의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은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북의 강력한 핵타격수단을 뜻하는 것이고, ‘북에 대한 인도주의적 관심’이란 북에서 발생하는 재난을 상정한 인도주의적 관심을 뜻하는 것이므로 미국과 일본은 ‘북의 붕괴’라는 급변사태를 예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해양영토에서 강제적이고 불안정한 행동’이란 중국이 동중국해에 있는 댜오위다오(釣魚島)를 탈환하려는 군사활동을 뜻하는 것이다.

미일안보협의위원회 10.3 공동성명은 중국의 댜오위다오 무력탈환을 위협요인들 가운데 하나로 지적하였지만, 미국과 일본에게 있어서 중국의 댜오위다오 무력탈환은 북의 강력한 핵타격수단보다는 ‘안보위협’의 우선순위에서 뒤진다. 미국은 중국과의 전면전을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오직 북과의 전면전만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게 있어서, 북은 실제적인 적국이고, 중국은 잠재적인 적국이다. 미국이 자기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국을 중국이 아니라 북이라고 파악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문서가 2013년도에 두 개나 나왔다. 하나는 2013년 3월 22일 미국 연방상원 정보소위원회가 공개한 ‘2011년 1월 5일부터 2013년 1월 3일까지 기간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상원 정보소위원회 보고서(Report of the Select Committee on Intelligence United State Senate Covering the Period January 5, 2011 to January 3, 2013)’인데, 이 문서는 최근 미국의 정보역량이 대북정보활동에 집중되고 있음을 밝혀주었다. 다른 한 문서는 2013년 5월 2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미국 연방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연관된 군사 및 안보 발생사태(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인데, 이 문서는 “북의 지속적인 도발 앞에서 미국은 방심하지 않고 있으며, 역내 동맹국들에 대한 확고부동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미사일방어체계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제


한미안보협의회 10.2 공동성명은 ‘북의 미사일위협’에 대응하여 “포괄적인 동맹의 미사일대응전략”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명시하였다. 미국군수뇌부는 왜 한미동맹의 미사일대응전략이라 하지 않고 포괄적인 동맹의 미사일대응전략이라고 하였을까? 한미안보협의회 10.2 공동성명이 미사일방어체계 구축문제를 언급한 대목에서 ‘포괄적인 동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한미연합군과 미일동맹군을 모두 포괄하는 방대한 미사일방어체계를 수립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사일방어체계는 각종 군사정찰위성들 가운데서도 최첨단성능을 지닌 미사일탐지위성을 운용하는 미국이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지휘하는 특수작전체계다. 미사일탐지위성을 갖지 못한 한국군과 일본자위대는 독자적인 미사일방어체계를 세울 수 없으며,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하위종속단위로 편입당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미사일방어체계를 강화하는 사업에서 미국군은 한국군과 일본자위대를 각각 하위종속단위로 편입시키려는 것이며, ‘북의 미사일위협’에 대응하는 미사일방어체계는 미국이 지휘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서 한미일 3자연합 미사일방어체계로 강화되는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이 3자연합 미사일방어체계를 미사일방어부문을 넘어 전쟁체계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2013년 6월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일 3자회의가 진행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이 워싱턴 3자회의 당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미국, 일본, 한국이 6월 1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관련된 광범위한 문제들을 놓고 의견을 교환하는 성과적인 3자회의를 진행하였다”고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긴밀한 양자 및 3자 조율을 지속적인 기조 위에서 유지하도록 노력하였다”고 자평하였다.

한미안보협의회 10.2 공동성명이 워싱턴 3자회의의 기조에 맞춰 “양 장관은 3자 또는 다자협력을 통한 (줄임) 긴밀한 동맹의 협력을 계속 증진시켜 나가기로 약속하였다”고 밝힌 것은, 전방위로 확대되는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의 임박한 출현을 예고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제는 3자연합 대북미사일방어체계를 중심에 두고 수립되는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다.

한미안보협의회 10.2 공동성명은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일안보협의위원회 10.3 공동성명은 그 체제를 언급하였다. 미일안보협의위원회 10.3 공동성명은 “3자협력(trilateral cooperation)”이라는 소제목을 앉힌 다음, “양국 장관은 역내 동맹국들과 협력국들 사이에서 안보 및 방위의 협력이 가지는 중요성을 확인하였고, 특히 호주와 대한민국과 더불어 진행해온 정기적인 3자대화가 성공적이었음을 주목하였다. 이러한 3자대화는 안보이익을 함께 나누고, 공동의 가치를 증진시키며,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보환경을 향상시킨다”고 지적하고, “양국 장관은 3자협력을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지역동맹국들이 작전, 계획, 능력에 관한 정보를 비롯한 각종 정보의 상호교류가 확대되기를 촉구하였다”고 언급하였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일본자위대를 지휘하지 못하고, 주일미국군사령관은 한국군을 지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국이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수립하려면 미국군사령관이 한국군과 일본자위대를 동시에 지휘하는 새로운 작전지휘체계가 필요하다. 미국이 노리는 새로운 작전지휘체계의 실체가 바로 유엔군사령부다. 미국군사령관이 타고 앉은 유엔군사령부는 한국군과 일본자위대를 한꺼번에 지휘할 수 있는 권능을 미국군사령관에게 부여한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계와 유엔군사령부 존치문제가 직결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서 확대되는 일본자위대의 역할


미국이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세우려면, 미일동맹체제가 규정해놓은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미일안보협의위원회 10.3 공동성명에서 “일본은 미일동맹의 틀 안에서 자기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미국과의 긴밀한 조율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은,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서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는 일본이 미국과 긴밀히 조율하면서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한다고 서술되었으나,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일본의 개별작업이 아니라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세워가는 미국과 일본의 공동작업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언론매체들은 일본이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을 미국이 지지해준다는 식으로 보도하였지만, 미국과 일본이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여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공동작업을 함께 벌인다고 표현해야 옳다.

또한 미일안보협의위원회 10.3 공동성명은 “일본은 국가안보회의를 창설하고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하기 위해 준비하는 중이다. 그와 더불어,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문제, 방위비를 증대하는 문제, 국가방위프로그램지침을 검토하는 문제, 영토주권을 수호하는 능력을 강화하는 문제, 역내활동을 확대하는 문제, 그리고 남아시아나라들을 상대로 능력을 확대하는 문제를 포함한 안보의 법적 근거를 재검토하는 중이다. 미국은 그러한 노력을 환영하고, 일본과 긴밀히 협력할 것임을 강조하였다”고 밝혔다. 이 인용문이 말해주는 것처럼,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 맞게 확대하는 미국과 일본의 공동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 맞게 확대하는 미국과 일본의 공동작업이 언론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때는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2년이다. <아사히신붕> 2004년 12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군과 일본자위대는 한반도전쟁상황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대북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55’를 2002년에 채택하였다. ‘작전계획 5055’는 대북전쟁을 수행하는 미국군을 일본자위대가 일본에서 후방지원하고, 일본에 상륙한 인민군 특수전병력을 상대로 일본자위대가 단독작전을 벌인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국과 일본은 2005년 2월에 이르러 북의 핵개발, 중국-대만 분쟁, 국제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공통전략목표’를 합의하였다.

미국과 일본은 이처럼 공동의 전쟁계획을 세우고, 공동의 전쟁목표를 설정하면서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차츰 확대하더니, 2009년부터는 그 확대작업을 더욱 빠른 속도로 다그치기 시작하였다. <아사히신붕> 2009년 5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월러스 그렉슨(Wallace C. Gregson) 당시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차관보는 일본이 적국의 기지를 공격할 능력을 보유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미국은 모든 방면에서 그 결정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말한 ‘적국의 기지’는 북의 군사기지를 뜻하므로, 미국은 일본자위대의 대북공격력 확보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2002년에 미국과 일본이 공동채택한 대북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55’에서 일본자위대의 역할은 미국군의 후방지원과 일본 영토 안에서의 작전에 한정되었지만, 2009년부터는 일본자위대의 역할이 대북공격으로 확대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일미국부대사 제임스 줌월트가 작성하여 2010년 2월 24일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 따르면, 2010년 2월 2일 도쿄에서 진행된 미일안보소위원회(SSC)에서 월러스 그렉슨 당시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차관보는 “미국은 일본자위대가 괌(Guam)과 아시아에서 주둔과 작전을 확대하기를 고무한다”고 하면서 “미국정부는 미국군과 일본자위대가 괌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하는 기회를 더욱 확대”하고 “일본자위대가 미일합동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괌에 영구주둔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렉슨의 발언은 미국군과 일본자위대가 연합작전으로 대북전쟁연습을 강행하려는 정책적 의사를 반영한 것이다.

2011년 6월 21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안보협의위원회에서 미국과 일본은 2005년 2월에 만들었던 ‘공통전략목표’를 변화된 군사정세에 맞춰 ‘북의 도발’을 저지하는 내용으로 개정하기로 합의하였고, 2012년 8월 3일 리언 패네타(Leon E. Panetta) 당시 미국 국방장관과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당시 일본 방위상은 도쿄에서 회담을 갖고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번에 발표된 미일안보협의위원회 10.3 공동성명은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검토하고, 두 나라의 탄도미사일방어능력을 확장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한반도전쟁상황에 대처하는 내용으로 1997년에 한 차례 개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을 16년 만에 또 다시 개정하려는 목적은,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미국군 후방지원에서 대북무력공격으로 확대하여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완성하려는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대북무력공격으로 확대하려면, 일본은 전범국의 교전권 포기를 규정한 일본 평화헌법 제9조를 폐기하고 교전권의 헌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일본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일본자위대의 교전권을 이른바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말로 슬그머니 대체하였는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집단적 교전권이라고 해야 한다. 개정된 일본헌법에 일본자위대의 집단적 교전권이 명시되면, 일본자위대는 개별적 교전권을 행사하려는 게 아니라 미국군, 한국군과 함께 3자연합 대북전쟁에서 집단적으로 대북교전권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군 전작권 반환과 일본헌법 개정의 상관성

미국이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완성하려면, 일본자위대의 역할만 확대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한국군의 역할도 그 체제에 맞게 확대해야 한다. 미국의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이 바로 그런 확대작업의 핵심내용이다. 미국이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게 반환하려는 것은, 이전에 노무현정권이 주장한 ‘자주국방’을 미국이 용인해주는 게 아니라 미국이 지휘하는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 맞게 한국군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다.

미국이 지휘하는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는 한미연합군과 미일동맹군을 평면적으로 접합시키는 것이 아니다. 미일동맹군을 중심에 두고, 한미연합군을 그 주변에 두는 2중배치구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2중배치구도는 미국이 해군력과 공군력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전략을 수립하였고, 미일동맹군 전력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해군력과 공군력을 중심으로 강화, 확대되어온 사정에 직결된다. 다시 말해서, 인민군의 강력한 지상전력을 상대하여 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승리하지 못할 대북지상전은 미국군과 일본자위대가 극구 기피하는 것인데, 그런 ‘과다출혈 기피영역’을 한국군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면 ‘자주국방’이 실현되는 게 아니라,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 편입된 한국군이 미일동맹군의 하위종속단위로 전락하는 또 다른 굴욕을 겪게 되는 것이다.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되고 주한미국군이 철군하기 전에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아무런 의미가 없고, 한국군에게 되레 굴욕을 안겨줄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13년 6월 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2차 아시아안보회의에 참석한 김관진 국방장관이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에게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시점을 예정된 2015년 12월 1일 이후로 또 다시 연기해달라고 ‘간청’한 것은, 2006년 9월 16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하기로 합의한 이후 남측 정부가 두 차례나 연기하려는 것인데, 그렇게 된 까닭은 한국군이 자기 역할을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 맞게 확대할 준비를 아직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준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은, 무슨 군사장비를 아직 준비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군수뇌부가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서 미일동맹군의 하위종속단위로 편입되는 굴욕을 감수할 심리적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며, 일본의 독도강탈책동과 식민지죄악청산거부로 반일감정이 조성된 조건에서 한국군과 일본자위대의 군사협력이 남측 민중의 저항을 받게 될 우려를 해소할 정치적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2년 6월 26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몰래 통과시킨 것은 국민의 눈을 피해 한국군과 일본자위대의 군사협력이 은밀히 추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예정대로 반환하느냐 아니면 반환시점을 두 번째 연기하느냐 하는 결정은 어디까지나 미국이 내리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 맞게 확대하는 준비가 끝나는 대로, 다시 말해서 일본자위대의 집단적 교전권을 위한 일본헌법개정이 완료되는 대로, 한국군의 연기간청과 상관없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할 것이다. 예정된 반환인가 아니면 반환시점 연기인가 하는 문제를 결정할 미국의 판단기준은,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 맞게 확대하는 미국과 일본의 공동작업이 언제 완료되는가 하는 데 설정되어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동중국해 북방해역에서 맴도는 미국 항공모함


미국이 지휘하는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서 미국군의 역할은 핵타격전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붕> 2013년 7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2012년 5월과 2013년 4월에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 소속 관리들을 미국으로 조용히 불러 대북핵타격전을 수행할 전략군사령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지령실, 핵추진 전략잠수함을 각각 보여주었다. 이러한 핵무력 공개활동은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서 미국군의 역할이 핵타격전에 집중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대북핵타격전에서 미국 항모강습단은 ‘북침돌격대’로 나설 것이다. 도쿄에서 미일안보협의위원회가 진행된 이튿날인 2013년 10월 4일 미국 해군 제7함대 소속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부산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대북핵타격전 돌격대의 임무를 수행할 항공모함이 2013년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실시되는 대북전쟁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항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조지 워싱턴호가 동원된 대북전쟁연습관 관련하여 한국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3년 10월 2일 보도기사에서 두 가지 정보가 눈길을 끈다.

첫째, <연합뉴스> 2013년 10월 2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이번 대북전쟁연습이 남해에서 실시된다는 것이다. 지난 시기 미국 항공모함은 동해 또는 서해로 북상하여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하면서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북을 자극하였지만, 요즈음에는 동해나 서해까지 북상하지 못한다. 전략폭격기의 항모격침용 첨단미사일과 전략잠수함의 항모격침용 핵어뢰로 무장한 인민군의 강력한 타격수단과 공격의지를 두려워하는 미국 항공모함이 북상을 포기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위의 보도기사에는 이번에 조지 워싱턴호가 남해에서 훈련을 실시하게 된다고 쓰여 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주도 동남쪽 수역과 일본 규슈(九州) 서쪽 수역이 만나는 동중국해 북방해역에서 대북전쟁연습을 실시하는 것이다. 남측 국방부 발표내용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3년 5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항공모함 니미츠호(USS Nimitz)를 긴급동원한 대북전쟁연습이 2013년 5월 15일 “제주 동남쪽(일본 규슈 서쪽) 공해상에서 비공개”로 실시되었는데, “미국 항공모함은 훈련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주변해상에서 대기했다”고 한다.

둘째, <연합뉴스> 2013년 10월 2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이번에 조지 워싱턴호를 동원하여 10월 8일부터 사흘 동안 실시되는 대북전쟁연습은 “한미일 해상전력이 참여하는 연합훈련”이다. 이것은 미국 항모강습단을 주력으로 하는 3자연합 대북전쟁연습이 실시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연합뉴스> 2013년 5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동중국해 북방해역에서 항공모함 니미츠호가 대기한 가운데 5월 15일에 실시된 대북전쟁연습도 이번 대북전쟁연습처럼 3자연합 대북전쟁연습이었다. 3자연합 대북전쟁연습은 2012년에도 6월 21일부터 이틀 동안 동중국해 북방해역에서 실시되었고, 8월 7일부터 이틀 동안 하와이 근해에서 또 다시 실시되었다.

3자연합 대북전쟁연습이 처음 실시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8년이다. 미국 <해군보도국(NNS)> 2008년 8월 7일 보도에 따르면, 2008년 8월 5일 미국 미사일순양함을 주축으로 미국 해안경비대 경비함, 일본자위대 구축함, 한국군 구축함이 참가한 가운데 3자연합 해상기동훈련이 하와이 근해에서 실시되었다. 미국은 2008년에 실시한 3자연합 해상기동훈련을 3자연합 대북전쟁연습으로 확대, 강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3자연합 대북전쟁연습을 계속 강행하면서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수립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다. 두 가지 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북은 미국의 심장부와 군사전략거점들을 날려버릴 각종 핵타격수단들을 실전배치하였다. 미국이 대북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북이 한 발 먼저 ‘조국통일반미대전’에 돌입할 것이다. 북과 미국의 핵무력 대치상황은 결국 미국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미국은 새로운 대북전쟁체제를 미완성으로 남겨두고 핵전쟁공포에 휘말려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한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제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둘째, 중국이 자기 앞바다로 여기는 동중국해에서 미국이 지휘하는 3자연합 대북전쟁연습이 자꾸 벌어지는 것은 중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하는 심각한 도발행위로 중국의 눈에 비쳐진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제는 중국을 불가피하게 자극하여 북과 중국의 정치적 공조를 더욱 강화시켜줄 것이다. 핵강국들인 북과 중국의 대미공조는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제를 무력화시킬 억제요인으로 된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로 끝난 것처럼, 미국의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도 실패로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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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3

4대에 걸쳐 진보한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한호석의 개벽예감](81)
자주민보 2013년 10월 1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북이 보유한 2종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사거리에 관한 미국 군부의 ‘말바꾸기’

미국군 정보기관들이 북의 핵무력에 관해 자기들이 파악한 정보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지만, 면밀히 관찰하면 공개와 비공개의 ‘틈새’가 보인다. 북의 핵무력에 대한 미국 군부의 정보판단을 그 ‘틈새’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2013년 7월 미국 국가항공우주정보센터(National Air and Space Intelligence Center)가 펴낸 ‘탄도미사일 및 순항미사일 위협(Ballistic & Cruise Missile Threat)’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북의 핵무력에 대한 미국 군부의 정보판단을 엿볼 수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서부지역의 롸잇패터슨공군기지(Wright-Patterson AFB)에 있는 국가항공우주정보센터는 1940년에 육군 정보기관으로 창설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공군이 창설되어 편제가 바뀌면서 공군 정보기관으로 전환되었다.

국가항공우주정보센터가 미국 국방정보국(DIA), 우주정보센터(SIC), 해군정보실(ONI)로부터 관련정보를 제공받아 그 보고서를 작성하였으므로, 사실상 미국 군부의 정보판단을 충실하게 담은 보고서라고 말할 수 있다.

 
▲ <사진 1> 2013년 7월 미국 국가항공우주정보센터(NASIC)가 펴낸 보고서 '탄도미사일 및 순항미사일 위협'의 표지. 북의 핵무력에 대한 미국 군부의 비상한 관심이 드러나 보인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에 관해 보도할 때마다, 미국 언론매체들은 미국 군부가 제멋대로 부르는 ‘KN-08’이라는 자의적 별칭을 그대로 쓰는데, 위의 보고서에 Hwasong-13이라는 공식명칭 올바르게 표기된 것이 눈길을 끈다.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보고서는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군사행진 중에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실려 등장한 화성-13호 사진을 표지정면에 크게 실어놓음으로써 북의 핵무력에 대한 미국 군부의 비상한 관심을 드러냈다.

그 보고서에는 북의 핵무력에 대한 미국 군부의 정보판단이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놀랍게도, 보고서에는 북이 두 종류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였다고 기록되었다. 보고서는 북이 화성-13호를 보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 군부가 대포동(Taepodong)-2호라고 부르는 또 다른 대륙간탄도미사일도 보유하였음을 명시한 것이다.

위의 보고서 발표시점보다 약 두 달 앞선 2013년 5월에 미국 공군 지구타격사령부(Global Strike Command)가 펴낸 해설자료(Briefing)가 있다. 해설자료에서 몇몇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국들에 대해 언급한 대목을 보면, 2013년 현재 북이 화성-13호(원문에는 ‘KN-08’로 표기)와 대포동-2호를 보유하였음을 명시하였다. 국가항공우주정보센터와 마찬가지로 지구타격사령부도 북이 두 종류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였다는 정보를 자기들의 공식문서에 수록한 것이다.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힌 몇몇 나라의 민간인 군사전문가들이 화성-13호는 ‘가짜미사일’이라는 황당한 헛소문과 아직 소형화되지 못한 북의 핵무기는 너무 크고 무거워 실전에서 쓰지 못한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언론매체에 퍼뜨리고 있을 때, 미국 군부는 북이 두 종류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였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위에서 언급한 국가항공우주정보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화성-13호는 “도로이동식(road-mobile)” 대륙간탄도미사일이고, 대포동-2호는 “고정식(fixed)”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도로이동식이라는 말은 자행발사대에서 발사한다는 뜻이고, 고정식이라는 말은 수직갱발사대에서 발사한다는 뜻이다. 또한 국가항공우주정보센터 보고서에는 화성-13호의 사거리와 대포동-2호의 사거리가 똑같이 “5,500마일 이상”이라고 쓰여 있다. 5,500마일을 세계표준도량형 단위로 환산하면 8,851km이므로, 미국 군부는 그 두 종류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사거리를 각각 9,000km 이상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그 보고서에 나타난 이상한 점은, 대포동-2호의 “추진체 수(number of stages)”가 “2단 또는 3단”이라고 표기되었고, 화성-13호의 추진체 수에 대해서도 “미확인(undetermined)”이라고 표기된 것이다. 자기들이 작성한 보고서 표지에 화성-13호 실물사진을 큼지막하게 실어놓고서도, 화성-13호가 몇 단 추진체로 구성되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는 소리는 한심한 말장난으로 들린다. 화성-13호가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사실은 세상이 다 아는데, 국가항공우주정보센터는 그처럼 명백한 사실에 왜 ‘미확인 딱지’를 붙여놓은 것일까? 또한 국가항공우주정보센터는 대포동-2호에 대해서도 그 미사일이 2단형인지 3단형인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표기해놓았는데, 이것 역시 ‘미확인’이라는 뜻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사일이 몇 단 추진체로 구성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그 미사일의 성능, 특히 사거리와 직결되는 것이므로, 미국군 정보기관이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추진체 수에 대해 ‘미확인’이라고 표기한 것은 그 미사일의 사거리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외부에 밝히지 않고 모호하게 놔두어야 하는 미국 군부의 내부사정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 군부는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사거리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매우 꺼리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사거리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자기들끼리만 알고, 외부에 공개하지 않으려는 미국 국가항공우주정보센터의 오래된 ‘꼼수’를 추적할 필요가 생긴다. 원래 국가항공우주정보센터는 ‘탄도미사일 및 순항미사일 위협’이라는 똑같은 제목의 보고서를 몇 해에 한 차례씩 펴내왔는데, 지금으로부터 4년 전에 나온 2009년판 보고서에서는 화성-13호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대포동-2호에 대해서만 언급하였다. 북이 화성-13호를 세상에 처음 공개한 때가 2012년 4월 15일이므로, 2009년판 보고서에서 화성-13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해되는 일이다.

그런데 2009년판 보고서에는 대포동-2호가 2단 추진체로 구성되었으며, 사거리는 “3,400마일 이상”이라고 표기되었다. 3,400마일을 환산하면 5,471km이므로, 4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군부는 대포동-2호가 사거리 5,500km 이상의 2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정보를 공개하였던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2009년판 보고서에서 대포동-2호 사거리를 5,500km 이상이라고 표기하였던 국가항공우주정보센터가 2013년판 보고서에서는 대포동-2호 사거리를 9,000km 이상이라고 표기하였다는 사실이다. 명백한 ‘말바꾸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국가항공우주정보센터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펴낸 1998년판 보고서 ‘탄도미사일 및 순항미사일 위협’에는 대포동-2호가 대륙간탄도미사일보다 한 급 낮은 중거리미사일(IRBM)로 분류되었고, 따라서 북은 당시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지 못한 것처럼 기록되었다.

주목하는 것은, 1998년판 보고서에서 2단형 중거리미사일로 분류된 대포동-2호의 사거리가 “2,500∼3,700마일 이상”이라고 표기되었다는 점이다. 2,500∼3,700마일을 환산하면 4,023∼5,954km가 되므로, 15년 전 미국 군부는 대포동-2호 사거리를 4,000∼6,000km 이상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대포동-2호 사거리에 관한 미국 군부의 말바꾸기식 정보공개행태를 추적해보면, 그들이 15년 전이나 오늘이나 여전히 대포동-2호의 정확한 사거리를 밝히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1998년에는 대포동-2호를 2단형 중거리미사일로 분류했고, 2009년에는 2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변경했고, 2013년에는 2단형 또는 3단형인지 알 수 없는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또 다시 변경함으로써 대포동-2호의 정확한 사거리를 외부에 밝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말바꾸기’는 대포동-2호가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사실을 미국 군부가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지난 15년 동안 대포동-2호의 정확한 사거리를 외부에 밝히지 않는 ‘꼼수’를 부린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수직갱배치 대륙간탄도미사일 목성-2호

2012년 4월 14일에 개관된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에 전시된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대포동-2호가 아니라 화성-13호다. 무장장비관에 전시된 화성-13호에 관해서는 2013년 7월 30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무장장비관 견문록(5) 내 손 끝에 전해진 화성-13의 짜릿한 금속감촉’에서 논한 바 있다. 나는 그 글에서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이 제기한 ‘대포동미사일’ 추론을 비판하면서, 대포동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에 배치된 적이 없다고 썼지만, 그런 서술내용은 아래와 같은 수정을 요구한다.

북은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기 전에 수직갱배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먼저 만들었는데, 수직갱배치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이름은 목성이다. 미국 군사전문가들이 펴낸 몇몇 자료들은 대포동이라는 미국의 자의적 별칭과 목성(Moksong)이라는 북의 공식명칭을 병기하였는데, 대포동이라는 이름은 미국 군부가 제멋대로 부르는 비공식별칭이고, 대포동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공식명칭은 목성이다. 다시 말해서, 화성-13호는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이고, 목성-2호는 수직갱배치 대륙간탄도미사일인 것이다. 이 글에서는 대포동이라는 미국 군부의 자의적 별칭을 접고, 목성이라는 북의 공식명칭을 쓴다.

그렇다면 미국 군부가 자기들끼리만 알고 외부에는 알려주지 않는 목성-2호의 실제 사거리는 얼마나 긴가? 미국 군부가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사거리를 파악할 수 있는 방도는 정찰위성이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하는 길밖에 없는데, 미국의 언론인 바바라 스타(Barbara Starr)가 1994년 3월 12일 영국의 군사정보전문지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에 발표한 글 ‘북이 중요하게 부각시킨 대포동-2호(N. Korea Casts a Long Shadow with TD-2)’에 따르면, 미국 정찰위성이 목성-2호를 처음 촬영한 때는 1994년 2월 어느 날이다. 바바라 스타의 그 글에 따르면, 미국 정찰위성이 그 날 촬영한 목성-2호 동체길이는 32m인데, 1단 추진체는 길이가 18m이고, 지름이 2.4m이며, 2단 추진체는 길이가 14m이고, 지름이 1.3m라는 것이다.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의 길이는 22m인데, 수직갱배치 대륙간탄도미사일 목성-2호의 길이는 그보다 10m나 더 긴 32m다.

미국 정찰위성이 목성-2호를 처음 촬영하였던 무렵,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목성-2호 위성사진을 가지고 컴퓨터모의실험(simulation)을 실시한 적이 있는데, <서울신문> 1995년 9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그 실험결과에 나타난 목성-2호 사거리는 4,300∼6,000km라고 한다.

미국의 인민군연구가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가 1999년 12월에 펴낸 긴 논문 ‘조선의 탄도미사일개발사(A History of Ballistic Missile Development in the DPRK)’에서 밝힌 목성-2호의 무게와 사거리에 관한 정보도 위성사진에 근거한 추산정보인데, 그는 목성-2호가 64.3t의 무게를 지녔으며, 700∼1,000kg짜리 탄두 한 발을 싣고 6,700km를 날아간다고 추산하였다.

그러나 목성-2호를 중국의 초기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둥펑(東風)-4호와 비교하면, 목성-2호의 무게와 사거리에 관한 그런 추산이 저평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난다. 중국이 1970년대에 만든 길이 28.05m, 지름 2.24m의 둥펑-4호는 무게가 82t이나 나가고, 사거리도 7,000km나 되는데, 길이가 32m이고, 지름이 2.4m인 목성-2호는 무게가 64.3t밖에 나가지 않고 사거리도 6,700km밖에 되지 않는다고 추산한 것은 저평가가 아닐 수 없다.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이 목성-2호 사거리를 그처럼 낮게 평가한 까닭은, 목성-2호를 2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버뮤디즈는 자기의 1999년 12월 논문에서 북이 “새로 설계한 미사일”을 목성-2호의 1단 추진체로 사용하였고, 노동-2호 미사일을 2단 추진체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지만, 그것 역시 빗나간 추정이다. 그가 ‘새로 설계한 미사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미사일인지 밝히지 못했다는 점만 봐도, 그가 막연한 상상에 의존하여 목성-2호를 2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추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사진 2> 미국의 컴퓨터그래픽전문가 스테펀 프로컵(Stepan Prokop)이 상상하여 그린 목성-2호 3차원 상상도. 상상도에 나타난 목성-2호는 2단 추진체로 잘못 그려진 까닭에 동체길이가 너무 짧아 보인다. 3단 추진체로 구성된 목성-2호 길이는 화성-13호보다 10m가 더 긴 32m다.     © 자주민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국방정책 및 군비통제 선임보좌관 로벗 벨(Robert G. Bell)이 1996년 5월 9일 미국의 <항공우주일보(Aerospace Daily)> 보도기사에서 솔직히 인정한 것처럼,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이 북의 목성-2호에 대해 파악한 정보는 모두 “불충분(incomplete)”하였다. 목성-2호에 관한 그들의 정보는 <사진-2>에서 보는 것처럼 불충분한 상상에 지나지 않았다.

목성-2호의 실제 사거리에 관한 미국 군부의 좀 더 정확한 정보판단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워싱턴타임스> 2007년 1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그 날 미국 워싱턴에 있는 조지마샬연구원(George Marshall Institute)이 주최한 토론회에 연사로 참석한 당시 미사일방어국(MDA) 부국장 패트릭 오레일리(Patrick O'Reilly)는 목성-2호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이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만들어졌을 경우 무게 250kg짜리 탄두를 싣고 15,000km를 날아갈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명백하게도, 수직갱배치 대륙간탄도미사일 목성-2호는 사거리 15,000km의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목성-1호 위성사진은 없다

북이 목성-2호를 만들어 수직갱발사대에 장착하였으므로, 목성-2호를 만들기에 앞서 목성-1호를 만든 것이 분명하다. 미국 정찰위성이 목성-2호를 처음 촬영한 때가 1994년 2월이면, 목성-1호는 언제 처음 촬영하였을까? 어떤 자료에도 미국 정찰위성이 목성-1호를 촬영하였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정보부재현상은 미국 정찰위성이 목성-1호를 촬영하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목성-1호 위성사진은 없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버뮤디즈의 1999년 12월 논문에 따르면, 목성-1호의 제원과 성능에 관해 두 가지 정보가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에게 알려졌다. 한 가지 정보는, 길이 25.5m, 무게 20.7t, 700∼1,000kg짜리 탄두 한 발을 싣고 1,500∼2,500km를 날아간다는 것이고, 다른 정보는, 길이 27m, 무게 22t, 800kg짜리 탄두 한 발을 싣고 2,200km를 날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정보는 실측정보가 아니라 추측정보인데, 목성-1호에 대한 추측정보가 그처럼 서로 다르게 나온 까닭은 미국 정찰위성이 목성-1호를 촬영한 위성사진이 없어서 군사전문가들이 순전히 추산에만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성-1호 사거리를 2,200km라고 추산한 버뮤디즈의 논문이 발표되기 1년 2개월 전인 1998년 9월 16일 <워싱턴타임스>에 실린 보도기사에 따르면, 당시 미국 국방부 대변인 케네스 베이컨(Kenneth Bacon)은 목성-1호 사거리를 당초에 1,600km로 보았지만, 4,000∼6,000km로 재평가하였다고 말했다. 그 대변인이 말한 것처럼, 미국 군부가 목성-1호 사거리를 당초에 1,600km로 아주 낮게 평가한 까닭은, 북이 화성-7호(미국 군부의 자의적 별칭은 노동-1호)를 목성-1호 1단 추진체로 사용하였고, 화성-6호를 2단 추진체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하였기 때문이다. 미국 군부는 화성-7호 사거리(900km)와 화성-6호 사거리(700km)를 합산하여 그 두 미사일을 접합한 목성-1호 사거리가 1,600km일 것이라고 추측하였지만, 그것은 너무 엉터리 같은 추측이었다. 이에 관해 아래의 정확한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은 화성-7호와 화성-6호를 2개의 추진체로 사용하여 서로 접합하는 방식으로 목성-1호를 만든 것이 아니라, 화성-7호와 화성-6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추력을 내는 새로운 추진체를 사용하여 목성-1호를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목성-1호의 1단 추진체는 북이 소련의 기술을 도입하여 자체로 만든 R-27급 중거리미사일이다. 원래 중거리미사일 R-27은 도로이동식 미사일과 잠수함발사식 미사일로 구분되는데, 목성-1호의 1단 추진체로 사용된 도로이동식 R-27급 중거리미사일은 사거리가 4,000km다. 북이 R-27급 중거리미사일을 추진체로 사용하여 목성-1호를 만든 뒤에, 독자적으로 설계하여 다시 만든 중거리미사일이 6축12륜 자행발사대에 실린 화성-10호다.

 
▲ <사진 3> 위의 두 사진 가운데 위쪽 사진은 1998년 8월 31일 동해위성발사장 발사대에서 발사대기상태에 들어간 북의 첫 위성운반로켓 백두산-1호를 촬영한 것이다. 아래쪽 사진은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이 목성-2호 모형을 촬영한 사진이라고 하지만, 백두산-1호 모형(위의 실물과 동체도색이 완전히 다르다)을 촬영한 사진이다. 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한 화성-10호나 화성-13호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의 미사일 동체에는 국기를 그려넣거나 '조선'이라는 국호를 써넣지 않고 미사일 고유번호만 큰 글씨체로 써넣는다. 북의 국기와 국호는 북의 위성운반로켓에서만 보인다.     © 자주민보


둘째,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북은 목성-1호 설계를 변경하여 위성운반로켓 백두산-1호를 만들었다. 북의 첫 위성운반로켓 백두산-1호는 1998년 8월 31일 북의 첫 시험용 인공위성 광명성-1호를 싣고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북이 그처럼 목성-1호 설계를 변경하여 3단형 위성운반로켓 백두산-1호를 만든 것을 보면, 목성-1호가 2단형이 아니라 백두산-1호와 마찬가지로 3단형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미국 군부가 목성-1호를 2단형 미사일이라고 주장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다.

셋째, 미국 국방부 대변인 케네스 베이컨이 목성-1호 사거리에 대한 미국 군부의 재평가를 언론에 밝히면서 그 사거리가 4,000∼6,000km라고 추산폭을 넓게 잡은 것은,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최단 사거리가 5,500km라는 점을 의식하면서 목성-1호 사거리를 최단 사거리 이하로 끌어내리려고 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미국 군부는 목성-1호가 사거리 5,500km 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아니라 사거리 5,500km 미만의 중거리미사일이라는 억지를 부린 것이다. 그러나 R-27급 중거리미사일을 1단 추진체로 사용하여 3단형으로 설계된 목성-1호 사거리는 4,000∼6,000km를 훨씬 뛰어넘은 8,000km다.

넷째, 목성-1호의 최장 사거리를 6,000km로 가정하는 경우, 북은 사거리 900km의 화성-7호를 개발하고 나서 중거리미사일 개발단계를 뛰어넘어 사거리 6,000km의 목성-1호를 만들었다는 말인데, 1990년대에 북의 미사일개발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미사일 사거리가 단번에 5,100km나 늘어나는 기술공학적 비약은 불가능해 보인다. 또한 목성-1호의 최장 사거리를 6,000km로 가정하는 경우, 북은 사거리 6,000km의 목성-1호를 개발하고 나서 사거리 15,000km의 목성-2호를 만들었다는 말인데, 1990년대에 북의 미사일개발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미사일 사거리가 단번에 9,000km나 늘어나는 기술공학적 비약은 불가능해 보인다.

사거리 4,000km의 R-27급 중거리미사일을 개발하고 나서,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사거리 8,000km의 목성-1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였고, 목성-1호의 성능을 더욱 향상시켜 사거리 15,000km의 목성-2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였다고 보아야 이치에 맞는다.

목성-1호는 사거리 8,000km의 1세대 경량급 대륙간탄도미사일이고, 목성-2호는 사거리 15,000km의 2세대 중량급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10년 전 미림비행장에 나타난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 5기

미국 군부는 목성-1호와 2호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왜 목성-3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일까? 그들은 목성-3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목성-3호라 하지 않고 ‘대포동-X’라고 언급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한 ‘대포동-X’는 목성-3호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미국 군부는 그들이 ‘대포동-X’라고 부르는 목성-3호의 존재를 언제, 어떻게 파악한 것일까? 미국의 인민군연구가 조셉 버뮤디즈가 2004년 8월 4일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에 발표한 글 ‘북, 새로운 미사일을 배치하다(North Korea Deploys New Missiles)’에 따르면, 2003년 9월 9일 공화국 창건 55주년 군사행진을 며칠 앞두고 미국 정찰위성이 평양 외곽에 있는 미림비행장을 촬영하였는데, 미사일 10기와 자행발사대 5대가 위성사진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평양에서 진행되는 군사행진에 참가하는 병력과 장비가 미림비행장에 집결하여 일정기간 동안 행진을 연습하는 것은 인민군 군사행진대오의 오랜 관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당시 미림비행장에 나타난 미사일은 10기나 되었는데, 자행발사대는 5대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미림비행장에 나타난 미사일 10기 가운데서 5기가 자행발사대에 실려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나머지 미사일 5기는 어디에 실렸던 것일까? 그 미사일 5기는 미림비행장 활주로에 놓여있었던 게 아니라, 대형트럭에 연결된 차량견인운반대에 실려 있었다.

그렇다면 자행발사대에 실린 미사일 5기는 어떤 미사일이고, 차량견인운반대에 실린 미사일 5기는 또 어떤 미사일인가? 2003년 10월 1일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펴낸, 군사전문가 앤드류 페이커트(Andrew Feickert)의 긴 논문 ‘미국에 대한 북의 탄도미사일 위협(North Korean Ballistic Missile Threat to the United States)’에 따르면, 북이 2003년 9월 9일 군사행진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중거리미사일”과 더불어 ‘대포동-X’라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공개하려고 하였다가 군사행진 시작 직전에 갑자기 공개방침을 철회하였다고 한다. 이 논문에 나온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중거리미사일’이란 화성-10호이므로, 2003년 9월 초 미림비행장에서 행진을 연습하고 있었던 6축12륜 자행발사대 5대에는 중거리미사일 화성-10호 5기가 실려 있었고, 차량견인운반대 5대에는 미국 군부가 ‘대포동-X’라고 부르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5기가 실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성-10호 동체길이는 12m이고,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동체길이는 그보다 세 배 정도 더 길어서 그 두 미사일은 위성사진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그 위성사진에 나타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5기가 바로 목성-3호다.

2012년 4월 15일과 2013년 7월 27일에 각각 진행된 인민군 군사행진에서 화성-13호는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실려 등장하였는데, 2003년 9월 초 미림비행장에 나타난 목성-3호는 왜 자행발사대가 아니라 차량견인운반대에 실렸던 것일까? 그 까닭은, 목성-3호가 목성계열의 다른 대륙간탄도미사일들처럼 수직갱발사대에 장착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기 때문이다. 수직갱발사대에 장착되는 목성-3호는 자행발사대에 장착되는 화성-13호보다 훨씬 더 크고 무겁기 때문에, 자행발사대에 싣지 못하고 대형트럭이 끄는 차량견인운반대에 실려 미림비행장에 나갔던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관리가 전해준 정보를 인용한 <AP통신> 2003년 9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사거리가 9,400마일(15,127km)로 추산되는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였고, 그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2003년 9월 9일 군사행진에 참가시키기 위해 미림비행장에 동원하였다가 군사행진 시작 직전에 갑자기 참가방침이 철회되어 군사행진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 보도에 따르면, 북이 사거리 15,000km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러시아 정부관리들에게 알려주었더니 그들은 “깜짝 놀라며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였다”고 한다. 대북군사정보부문에서 러시아는 미국보다 한참 뒤쳐졌으니,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북이 중거리미사일 화성-10호와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목성-3호를 2003년 9월 9일 군사행진에서 모두 공개하려고 하면서 미국에게 초강경한 압박을 가한 까닭은, 북미대결상황이 2003년에 이르러 폭발 직전에 다가섰기 때문이다. 2003년에 조성된 북미대결상황에 관해서는 2011년 2월 21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2003년의 위기, 재발할까?’에서 논한 바 있다.

북이 화성-13호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운 목성-3호를 2003년 이전에 이미 실전배치하였다는 정보를 알지 못한 미국 언론매체들은 2003년 9월 초 미림비행장에서 군사행진을 연습하던 미사일 10기가 모두 화성-10호인 것처럼 오보하였고, 목성-3호에 관해서는 보도하지 못하였다.

2003년 9월 초 미림비행장에서 목성-3호 5기가 화성-10호 5기와 함께 군사행진을 연습하였다는 정보를 알지 못한 민간 군사전문가들은 북이 목성-3호를 아직 개발하는 중일 것이라고 착오하였다. 이를테면, 미국과 유럽의 민간 군사전문가들이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한 <요미우리신붕> 2006년 6월 26일부 기사는 북이 목성-2호(원문에는 대포동-2호로 표기)보다 파괴력이 훨씬 더 강한, 사거리가 10,000km가 넘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목성-3호(원문에는 대포동-X로 표기)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보도한 바 있는데, 그런 보도는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이 목성-3호의 실전배치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미국 군부가 ‘대포동-X’라고 부른 목성-3호는 사거리 15,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며, 2003년 이전에 실전배치된 북의 3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크기와 중량을 따져보면, 목성-3호는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싣지 못할 만큼 크고 무거운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남측 정부 소식통이 전해준 정보를 인용한 <조선일보> 2012년 4월 3일 보도에 따르면, 그 무렵 미국 정찰위성이 북에서 목성-2호보다 훨씬 더 큰 길이 40m의 초대형 미사일을 포착하였다는데, 그 초대형 미사일이 목성-3호인 것으로 보인다.

사거리가 15,000km로 똑같은 수직갱배치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인 목성-2호와 목성-3호의 차이는 단일탄두 장착인가 아니면 다발탄두 장착인가 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목성-2호는 단일탄두 장착형이고, 목성-3호는 다발탄두 장착형인 것이다.

미국 군부가 자의적 별칭으로 부르는 대포동-1호, 대포동-2호, 대포동-X가 북에 실존하는 것은, 북의 목성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목성-1호, 목성-2호, 목성-3호에 이르는 3대에 걸쳐 기술공학적 진보를 거듭해왔음을 말해준다. 거기에 더하여, 2012년에 화성-13호까지 등장한 것은 목성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과는 다른 기술공학적 경로로 진보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실전배치되었음을 말해준다. 화성-13호는 3대에 걸쳐 기술공학적 진보를 거듭해온 목성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보다 한 급 더 진보한 4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인 것이다.

화성-13호보다 한 급 더 진보한 5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지금 북에 있는데도, 북이 군사기밀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까지 외부에서 실물로 확인한 것은 북이 긴 세월 동안 단계적으로 개발해온 대륙간탄도미사일 4종이다. 북의 핵무력에 관련하여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힌 언론매체들이 쏟아내는 왜곡보도를 물리고, 북이 보유한 핵무력의 놀라운 실상을 접할 때 한반도 군사정세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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