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30

북파간첩들은 요덕과 회령에 가보았을까?

[한호석의 개벽예감] (21)
자주민보 2012년 6월 29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아오지탄광의 악몽은 세뇌증상이었다

1960년대 초에 국민학교(당시 명칭)를 다닌 세대는 반공세뇌교육을 가장 집중적으로 받은 불행한 세대다. 1961년 5월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1963년부터 국민학교에서 이른바 ‘반공도덕교육’이라는 집단세뇌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암울한 시기에 국민학교 반공도덕시간을 통해 아이들을 세뇌시킨 내용은 “강냉이죽으로 연명하는 북한에서는 이웃끼리도 서로 감시하는데, 만일 감시망에 걸려 불순분자로 붙잡히면 아오지탄광으로 끌려가서 강제노역을 당하다가 석탄더미에서 쓰러져 죽는다”는 것이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반공세뇌작업으로 이 땅의 국민들에게 아오지탄광은 공포와 죽음의 악몽이 되었다. 반공도덕이라는 광란이 벌어진 때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도 남측에서는 아오지탄광이라는 공포와 죽음의 대명사를 여전히 쓰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북측은 약 220개소나 되는 탄광을 각지에서 운영하는 세계 5대 석탄생산국이다. 북측 탄광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탄광이 아오지탄광이다. 아오지탄광은 매장량이 1억t이고, 연간 생산량이 100만t이나 되는 굴지의 대규모 탄광이기 때문에 북측에서 중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결정적인 요인은 거기에서 나오는 석탄의 고품질에 있다.

아오지탄광에서 생산되는 갈탄의 단위열량은 북측에서 생산되는 석탄열량의 평균값인 kg당 6,000kcal를 훨씬 능가하여 7,000kcal나 되는 고품질 갈탄이다. 그처럼 품질이 우수한 갈탄은 화력발전소로 보내지 않고 2.8비날론련합기업소와 7.7련합기업소로 보내 화학공업원료로 사용하며, 일부는 철길로 60km 떨어진 라진항을 통해 중국으로 수출까지 한다. 아오지탄광이 북측의 석탄산업과 화학공업에서 그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아오지탄광을 네 차례나 현지지도하였다.

1995년 5월 서울에서 발간된 월간지 <말>에 ‘아오지를 가다’라는 제목으로 재미동포 홍정자 여사의 방북기가 실렸는데, 아오지탄광을 직접 방문한 그의 탐방기록에 따르면, 아오지라는 말은 아득히 먼 옛날 그 지방에 살던 여진족이 ‘불타는 돌’이라는 뜻으로 불인 지명인데, 1968년에 아오지탄광을 6.13탄광기업소로 개칭하였고, 1977년에는 아오지라는 지명도 은덕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은덕이라는 지명은 북측에서 말하는 “수령님의 은덕”이라는 뜻이다. 그처럼 ‘수령님의 은덕’이 깃든 6.13탄광기업소 주변에는 이미 1960년대부터 화학공업대학, 고등석탄전문학교, 고등화학전문학교가 세워졌고, 병원, 도서관, 문화회관, 상점들과 각종 편의시설들이 들어섰다.

그런데 북측에서 그처럼 중시하고 아끼는 아오지탄광이 남측에서는 반북수구세력의 악질적인 모략선동으로 공포와 죽음의 대명사가 되었다. 아오지탄광에 대한 반북수구세력의 저질모략선동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제까지 남측에 알려진 북측의 모습은 저들의 모략선동으로 빚어진 허상이지 실상이 아니다.


총인구의 0.9%가 수용소에 갇혀있다는 거짓말

아오지탄광이 “강제노역으로 죽어가는 생지옥”이 아니라 북측에서 가장 중시하는 탄광인 6.13탄광기업소라는 진실이 남측에 차츰 알려지자, 반북수구세력은 아오지탄광에 관한 모략선동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모략선동자료가 궁해진 반북수구세력이 1998년부터 또 다른 모략선동으로 지옥화한 것이 이른바 정치범수용소다.

그런데 1998년부터 시작된 정치범수용소에 관한 반북모략선동은 그 이전에 있었던 아오지탄광에 관한 모략선동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아오지탄광에 관한 모략선동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반공세뇌교육을 하려고 날조해놓은 것인데 비해, 정치범수용소에 관한 모략선동은 미국이 악질 탈북자들을 앞세워 주도한 것이다.

미국이 직접 주도적으로 개입한 까닭은, 이른바 ‘북한인권실태’라는 것을 조작하고 국제사회에 유포함으로써 북측을 고립, 압박하려고 날뛰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런 대북인권소동에 끌어들인 것이 정치범수용소에 관한 탈북자들의 허위날조발언이다.

1998년 2월 25일 악질 탈북자 두 사람이 당시 미국 공화당 소속 연방상원의원 크레익 토머스(Craig L. Thomas)가 벌여놓은 의원간담회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 두 탈북자를 워싱턴 디씨에 데려가 반북모략선동에 이용한 주동자는 디펜스 포럼 파운데이션(Defense Forum Foundation)과 국제전략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다. 전자는 악질 탈북자들을 앞세워 ‘자유북한방송’을 운영하면서 지하탈북공작에 혈안이 되어 날뛰는 미국의 반북공작거점이고, 후자는 미국의 극우인사들이 모여있는 음험한 소굴이다.

악질 탈북자들의 반북모략선동에 의해 지옥보다 더 참혹하게 상상되는 정치범수용소가 날조되고, 그렇게 날조된 거짓말이 진실로 둔갑하였다. 이를테면, <조선일보>는 2001년 8월 30일 보도에서, “수용소는 이른바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낙인찍힌 정치범이나 그 가족들이 수용되는 곳”인데, “수용자들에게는 재판절차나 항변의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으며, “(수용소는) 한 번 들어가면 평생 사회로 환원될 수 없는 곳으로 수용자들은 인간 이하의 가혹한 육체노동과 인권유린을 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였다.

2003년 1월 15일 미국의 보도전문 텔레비전방송 <MSNBC>는 악질 탈북자들의 반북모략선동을 그대로 인용하여, 북측에 수용소가 10여 개소, 노동수용소와 교화소가 30여 개소 있는데, 수감자 총수는 200,000명에 이른다는 거짓말을 미국 사회에 유포하였다. 물론 북측에 침투한 간첩망이 적발되어 북측 형법에 따라 재판을 받고 수감되는 경우가 있겠지만, 2003년도 북측 인구가 약 2,200만명이었는데 당시 총인구의 0.9%가 수용소에 갇혀있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지난 시기 사회주의국가 소련을 악랄하게 헐뜯은 반소수구세력이 1940년 3월 현재 소련에 수용소가 53개소, 노동수용소가 423개소나 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적이 있었다. 반소수구세력은 정치범수용소를 굴락(Gulag)이라고 불렀는데, 1940년 현재 굴락 수감자가 무려 1,500만명이라고 하였다. 1940년 현재 소련 인구가 1억1,033만명이었으니, 소련 인구의 13.6%가 수용소에 갇혀있다는 허황하기 짝이 없는 악선전을 늘어놓은 것이다.


회령수용소는 실존하지 않는다

반북수구세력이 함경북도 회령시 행영리에 있다고 주장한 회령수용소는 북측에 있는 수용소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하였는데, 수용소 구역이 길이 50km, 폭 40km이며 면적이 1,750㎢나 되어 미국 로스앤젤레스시 면적 1,301㎢보다 크다는 것이다. 2008년 현재 회령시 인구는 15만3,000명이고, 2010년 현재 로스앤젤레스시 인구는 379만명이다.

그런데 ‘북코리아 인권을 위한 미국 위원회(U.S.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는 2003년 10월에 펴낸 보고서 ‘은폐된 굴락: 북코리아 수용소 공개(The Hidden Gulag: Exposing North Korea's Prison Camps)’에서 회령수용소에 수감자 50,000명, 경비병력 약 1,000명, 행정요원 약 500-600명이 있어서 북측 수용소들 가운데 최대 규모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였다. 인구가 15만3,000명밖에 되지 않는 도시에 수감자가 50,000명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반북수구세력의 모략선동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자유북한방송> 2009년 12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회령수용소 수감자 50,000명 가운데 인민배우 전혜영도 있다는 것이다. 전혜영은 남측 사회에까지 널리 알려진 명곡 ‘휘파람’을 부른, 북측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보천보전자악단에서 활동하였는데, 반북수구세력은 그런 화려한 경력을 가진 전혜영이 “자본주의에 물들었다”는 죄목으로 회령수용소에 끌려갔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전혜영의 회령수용소 수감설도 거짓말이다. 2012년 4월 15일 <로동신문>에는 올해 마흔 살인 인민배우 전혜영이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과 함께 ‘수령님께 기쁨 드린 꾀꼴새 소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 따르면, 지난 날 김일성 주석의 배려로 체계적인 성악교육을 받고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떨치며 북측 인민의 사랑을 받았던 인민배우 전혜영은 지금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미래의 성악가수를 키우는 지도교원으로 사업하고 있다”고 한다.

반북수구세력이 실존하지 않는 회령수용소를 날조해냈음을 말해주는 또 다른 단서는 그들이 최근에 유포한 회령수용소 폐쇄설이다. <자유아시아방송> 2012년 5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2012년 3월 중순 회령수용소가 폐쇄되고 15,000명 수감자들이 함경북도 명간군에 있는 화성수용소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몇 해 전에는 수감자가 50,000명이라고 하더니, 이제와서는 15,000명이라고 줄여놓은 것부터 앞뒤가 맞지 않고, 더욱이 15,000명을 다른 곳으로 이송하였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조선일보> 2005년 3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2003년부터 시작한 회령수용소 폐쇄작업을 2004년 말에 완료했는데, 회령수용소를 폐쇄한 까닭은 그 수용소에서 2003년 10월에 수감자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위성사진을 통해 그 수용소가 국제사회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용소 폭동설도 거짓말이지만, 위의 상충되는 두 보도내용에 따르면, 2004년 말에 폐쇄되었던 회령수용소가 갑자기 재건되었다가 2012년 3월에 또 다시 폐쇄되었다는 것이니,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정보조작이 또 어디에 있을까.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반북수구세력이 말하는 회령수용소는 원래 실존하지 않은 것인데, 그들이 반북모략선동을 벌이기 위해 날조해낸 가공의 대상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북측에 실존하는 회령시는 유서깊은 고장이다. <로동신문> 2011년 2월 6일 보도에 따르면, 국경도시 회령시에서는 “봉사망들과 음식점거리가 현대적 미감에 맞게 개건되었을 뿐 아니라, 공공건물들에 불장식(야간조명)까지 도입되어 도시 전체가 황홀한 불야경을 펼치는 예술작품처럼 변했다”고 한다.


청바지를 입는 수감자들이 있다는 황당한 거짓말

‘북코리아 인권을 위한 미국 위원회’가 2003년 10월에 펴낸 보고서 ‘은폐된 굴락: 북코리아 수용소 공개’에 따르면, 요덕수용소는 높이 3-4m의 철책으로 둘러싸였고, 일부 구간은 꼭대기에 전기철조망을 두른 높이 2-3m의 장벽으로 둘러싸였는데, 철책과 장벽을 따라 1km 구간마다 높이 7-8m의 망루가 서 있고,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맹견을 앞세운 경비병력 1,000명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상업위성이 촬영한 사진을 검색할 수 있는 누리집 ‘버츄얼 글로브트로팅(Virtual Globetrottimg)’에서 검색한, 요덕읍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위성사진에는 요덕을 끼고 흐르는 내에 다리가 4개나 놓여있는 것이 보이는데, 다리 부근에는 모략선동에서 말한 망루나 경비초소 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다리들은 이웃마을로 통하는, 이 땅의 농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다리인 것이다.

또한 위성사진을 보면, 요덕읍 한 가운데에 그리 넓지 않은 광장이 있고, 광장 중심부에 높은 탑이 서 있다. 지면에 비친 탑의 그림자를 보면 ‘영생탑’인 것이 확실해보인다. ‘영생탑’이 건립된 광장이 있는 정치범수용소도 있을까?

폭로전문 누리집 ‘위키리크스(Wikileaks)’가 게시한 비밀전문들 가운데,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 빌 스탠튼(Bill Stanton)이 작성하여 2006년 8월 25일에 본국에 보낸 ‘진짜 요덕 이야기(A REAL YODUK STORY)’라는 제목의 비밀전문이 있다. 이 비밀전문은,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요덕수용소에서 3년형을 마치고 석방된 뒤 탈북하여 남측에 들어갔다는, 2006년 당시 26살 난 탈북자 김은철을 부대사가 2006년 8월 22일에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작성한 것이다. 부대사가 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탈북자들이 들려주는 요덕수용소 이야기를 보고서라고 써냈을까.

그 비밀전문에 담긴 요덕수용소 체험담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체험담을 부대사에게 들려준 김은철 자신이 정치범이었다고 하면서도 3년형밖에 받지 않았다는 말에서 금방 알 수 있다. 부대사 스탠튼은 김은철이 요덕수용소에서 만기출소한 뒤에 또 다시 중국으로 탈출하였으나 사흘 만에 붙잡혀 북측으로 송환되었다느니, 또한 자기 가족들이 당국자에게 뇌물을 주어 자신의 탈북흔적을 기록에서 지우도록 하였다느니, 그리고 몇 달 뒤에 그의 기록이 조작되었다는 게 발각되어 다시 로동교화소에 수감되었다느니, 그리고 다섯달만에 거기서 또 탈출하여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남측에 들어갔다니 하면서 횡설수설하는 헛소리를 들었다.

김은철의 체험담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요덕수용소 수감자들 가운데 어떤 수감자는 국경지대에서 압수당한 ‘한국산 청바지’를 입고 다닌다는 말에서 드러났는데, 그런 사정을 눈치챘는지는 몰라도 스탠튼은 비밀전문 맨마지막 문장에서 “그의 견해가 전적으로 억측에서 나온 것처럼 보여 조심한다”고 썼다.


탈북자를 북파간첩으로 고용하는 국정원

반북수구세력은 악질 탈북자들의 허위발언을 ‘증언’이라고 하면서 그들이 꾸며낸 허위발언을 가지고 요덕수용소니 회령수용소니 하는 반북모략선동을 벌여놓았다. 악질 탈북자들의 입에서 거짓말밖에 나올 것이 없다는 점은, 아래의 정보를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2011년 12월 12일에 나온 <주간동아> 제816호 기사에 따르면, “국정원은 탈북자 조사과정에서 의욕 있는 사람을 골라 정보수집에 나서게” 하는데, “(대북정보를 수집해준) 대가로 (탈북자에게) 돈이나 이권을 제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정원이 일부 탈북자들을 북파간첩으로 선발, 매수하여 이용해먹고 있음을 말해준다.

기사에 따르면, 국정원은 탈북자들이 북측에 침투하여 수집해온 정보를 검토한 다음 정보가치에 따라 돈을 주는데, 국정원이 “콕 집어 요구한 특정자료를 구해오면 적어도 100만원을” 주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기관지 <조선인민군> 같은 것을 구해오면 30만-50만원을” 주고, 인민군 군사교범 같은 것도 “대가가 쏠쏠하다”고 한다. 그런데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국정원의 북파간첩으로 고용되어 “돈맛을 알게 된 일부 탈북인은 북한 정보를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정원의 북파간첩으로 고용된 탈북자들이 “가짜 자료, 엉터리 물건을 (국정원에) 넘기고 돈을 받는”다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기밀’이니 ‘조선로동당 간부부’라는 가짜도장이 찍힌 위조문서 같은 것은 두만강 국경지대에서 어렵지 않게 돈을 주고 살 수 있다고 하며, “한국 언론이 보도한 북한 내부문건의 상당수도 돈을 노리고 만든 위조품”이라고 한다.


미국 국방정보국의 탈북자 심문,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의 탈북자 고용

‘위키리크스’에 게시된 비밀전문들 가운데, 작성자 이름을 밝히지 않은채 주한미국대사관이 2007년 7월 9일에 본국에 보낸 ‘조선 탈북자 기록: 사용하지 않은 자료(DPRK DEFECTOR FILES: THE UNTAPPED SOURCE)’라는 제목의 비밀전문이 있다. 이 비밀전문은 ‘위키리크스’ 관리자가 누리집에 게시할 때 실수하여 첫 장만 게시하였고, 나머지 분량은 게시되지 않아서 비밀전문의 전체를 읽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 비밀전문의 게시된 부분에는 중요한 정보가 들어있다. 비밀전문에 따르면, 주한미국대사관은 1997년부터 2007년까지 9,180건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탈북자 구술기록을 확보하였는데, 원래 이 구술기록은 국정원과 통일부가 작성하여 미국 국방정보국(DIA) 산하 ‘코리아 야전작전기지(Field Operating Base-Korea)’에 정기적으로 넘겨준 것이다. 미국 국방정보국 산하 ‘코리아 야전작전기지’라는 것은, 서울 용산기지에 고정배치된 미국 국방정보국 분견대를 뜻한다.

또한 비밀전문은 “코리아 야전작전기지는 (탈북자를 상대하는) 초기대담(initial interview, 탈북자 심문이라는 뜻-옮긴이)에 참가하였으며, (탈북자 심문과정에서 얻은 북측의) 군사관련정보를 담은 모든 보고서를 검토하였다”고 하였다. 국정원과 통일부가 탈북자 구술을 채록하여 미국 국방정보국에 정기적으로 상납하고 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고, 미국 국방정보국 분견대 요원들이 직접 탈북자들을 심문하고 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다.

또한 비밀전문에서 주한미국대사관은 “북측 정권의 안정성을 평가하고, 붕괴나 그 밖의 급변사태를 계획하며, 인권유린에 관한 기록을 확보하기에 (탈북자 구술기록이) 아주 적절하다”고 평가하고, “미국 정부가 한국말을 잘하고 신원이 확실한 민간인들에게 용역을 주어 그 자료들을 알 카에다 관련 자료들을 집대성한 ‘하모니 데이터베이스(Harmony database)’처럼 영어로 번역하고 정리하는” 정보관리사업을 벌일 것을 제안하였다.

다른 한 편, 2011년 12월 12일에 나온 <주간동아> 제816호 기사에 따르면, 국정원에 고용되어 북파간첩으로 암약하던 악질 탈북자들 가운데 어떤 탈북자는 국정원과 관계를 끊고 일본의 정보기관인 내각정보조사실에 고용되어 일본 앞잡이 북파간첩으로 암약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들이 자기들의 간첩활동망을 국정원에서 일본 내각정보조사실로 전환하는 까닭은, “내각정보조사실은 같은 자료에 대해 (돈을) 국정원의 서너 배를 내놓”기 때문이다. 위의 기사에 따르면, 내각정보조사실은 탈북자 출신 북파간첩에게 간첩활동 착수금도 주고, 간첩활동에 쓸 ‘몰래카메라’도 사주고, 북측에 박혀있는 고정간첩이 북측 당국에 체포되면 보상금도 주고, 체포된 고정간첩을 감옥에서 빼내거나 탈북시키는 경비까지 지원해준다는 것이다.

국정원, 미국 국방정보국,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에 고용된 북파간첩으로 암약하는 탈북자가 있고, 그런 북파간첩이 가져다주는 허위정보를 돈을 주고 사가는 정보기관과 언론매체가 있고, 그런 가짜 대북정보를 보도기사로 가공하여 들려주는 수구언론 장단에 맞춰 대북인권소동에 몸을 흔들어대는 꼭두각시가 있다.(2012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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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8

한미관계를 '동맹'으로 착각한 새로나기특위

민중의 소리
2012년 6월 27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치욕스런 날 2012년 6월 18일

2012년 6월 18일은 통합진보당에게 치욕스런 날이었다. 왜냐하면 통합진보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산하 새로나기특별위원회가 수구언론매체들로부터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이 하는 일마다 무조건 비난해오던 수구언론매체들은, 그 날 새로나기특위가 발표한 ‘패권적 정파주의 청산과 노동가치 중심성 회복을 위한 새로나기 방향과 과제’(이하 발표문으로 약칭함)를 읽어보고 매우 이례적으로 찬사를 보냈다. 이를테면 “현실인식이 돋보인다”느니, “패권과 종북을 넘는다”느니, “폐쇄진보를 벗고 대중진보로 나갔다”느니 하면서 칭찬을 늘어놓았다. 통합진보당을 와해시키려는 악질적인 모략선동에 발벗고나선 수구세력의 편에 선 언론매체로부터 통합진보당이 칭찬을 받은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다.

새로나기특위가 수구언론매체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까닭은, 발표문 제목에 나와있는 것처럼 ‘패권적 정파주의를 청산하고 노동가치 중심성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고 수구언론매체들이 평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까닭은, 새로나기특위가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가치를 혁신하고, 재정립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진보적 가치를 훼손하려는 태도를 취했다고 수구언론매체들이 평가하였기 때문이다.

발표문은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가치 전반을 다루었는데, 그 내용을 전부 검토하는 것은 이 글의 지면제약으로 힘들기 때문에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라는 소제목으로 서술한 부분만 다룬다. 발표문은 “주권국가에 외국의 군대가 상시 주둔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현 시점에서 남북 간의 군사력의 측면에서는 주한미군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새로나기 방향과 과제 발표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위원장 박원석 의원)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방향과 과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박원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미일상호방위조약에 없는 조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있다

미국이 자국군을 주둔시키면서 군사동맹조약을 맺은 조약체결대상은 필리핀, 한국, 대만, 일본밖에 없다. 체결순서대로 열거하면, 1951년 8월 30일에 체결된 미국-필리핀상호방위조약, 1953년 10월 1일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 1954년 12월 2일에 체결된 미국-대만상호방위조약, 1960년 1월 19일에 체결된 미일상호방위조약이다.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시기가 1950년대에 몰려있고 그 대상이 동북아시아에 몰려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1950년대는 맥카시즘 반공광풍과 6.25전쟁으로 점철된 최악의 암흑기였다. 상호방위조약 체결이 맥카시즘 반공광풍, 6.25전쟁과 직접적으로 결부된 연속적인 사건들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것은 극우반공주의의 필연적 산물이었다.

위에 열거한 상호방위조약들 가운데서, 미국-대만상호방위조약은 1980년 1월 1일에 자동폐기되었으므로, 지금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대상은 한국, 일본, 필리핀이다.

미국이 자국군을 주둔시킨다고 해서 무조건 상호방위조약을 맺는 것은 아니다. 독일, 이탈리아, 터키, 태국에도 미국군이 상시 주둔하고 있지만, 미국은 그 나라들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지 않았다. 그러므로 미국군이 주둔하면서 상호방위조약까지 맺은 한국, 일본, 필리핀은 미국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체결한 조약의 공식명칭을 상호방위조약이라고 일률적으로 정해놓는 바람에 각 조약들 간의 차별성이 은폐되고 말았지만, 조약의 차별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체결한 같은 종류의 상호방위조약이라 해도, 조약의 유효기간에 대한 규정에서 차별성이 드러나 보인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와 미국-필리핀상호방위조약 제8조는 “본 조약은 무기한 유효하다”고 규정하였다. 국제관계에서 조약의 무기한 유효성을 규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두 나라 관계가 영구불변이라는 말은 궤변이다. 조약이 무기한으로 유효하다는 궤변이야말로 제국주의국가가 약소국의 주권을 빼앗을 때 써먹는 전형적인 주권탈취수법이 아닌가. 예컨대 1910년 8월 22일 일제가 조선국의 주권을 강탈하기 위해 조작한 이른바 ‘병합조약’에 그런 영구성 조항이 들어있다. ‘병합조약’ 제1항은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준다”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조약의 무기한 유효성을 규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대조적으로, 미일상호방위조약 제10조는 “본 조약은, 일본 지역에서 국제적 평화와 안전의 유지에 충분한 유엔의 조치가 유효하다는 견해를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가질 때까지 유효하다”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유효기간의 제한적 규정은 미일상호방위조약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말해준다. 조약의 무기한 유효성을 규정하지 않은 미일상호방위조약은 동맹조약이지만, 조약의 무기한 유효성을 규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예속조약인 것이다.


미국군 영구배치권 규정한 유일무이한 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는 “상호합의에 의하여 미국의 지상군, 공군, 해군을 대한민국 영토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이 허여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그와 대조적으로, 미일상호방위조약과 미국-필리핀상호방위조약에는 미국군 배치권 조항이 없다. 미국군 배치권을 규정한 조약은 전 세계에서 오직 한미상호방위조약밖에 없다.

조약의 무기한 유효성에 관한 조항과 미국군 배치권에 관한 조항을 연결하면, 조약의 핵심내용이 드러난다. 그 핵심내용은 미국군 배치권이 영구히 유효하다고 규정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전 세계에서 오직 이 땅에서만 미국군을 영구히 배치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미국이 자국군대를 주둔시키는 여러 나라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한국과 맺은 조약에서만 미국군 영구배치권을 명문화하였을까? 그 까닭은,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동맹관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설명해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1953년의 한반도 상황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남측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기 두 달 전에 북측과 정전협정을 체결하였다. 한반도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떼어놓을 수 없는 특수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

정전협정은 교전쌍방이 종전에 이르지 못하고 적대행위를 정지시킨 협정이다. 종전에 이르지 못한 정전상태에서 한국의 군사주권은 미국에게 넘어갔으므로, 미국이 군사주권 없는 한국과 조약을 맺으면서 주권국가들 사이의 동맹조약과 동일한 지위의 조약을 맺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조약의 국제법적 지위를 엄밀히 따져 말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주권국가인 미국이 주권을 상실한 한국과 비정상적으로 맺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조약 아닌 조약이다.

다시 말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전 세계 군사동맹조약 체결 역사에서 전무후무하게 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배를 영구히 보장하는 예속조약으로 체결된 것이다. 그런 예속조약에 의해 유지되는 한미관계야말로 주권국가들 사이에 형성되는 동맹관계가 아니라 종주국과 예속국 사이에 형성되는 특수관계다.

미국은 1953년 10월 1일에 한국을 상대로 예속조약을 체결하면서 그 조약의 명칭을 마치 동맹조약인 것처럼 ‘상호방위조약’으로 위장해놓았고, 더 중요하게는 1953년 이후 자기들의 한국지배정책을 교묘히 은폐해왔고, 이 땅에서 종미수구세력이 장기적으로 집권하면서 종주국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체질화해왔기 때문에, 한미관계를 동맹관계로 보는 착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나기특위는 엉뚱하게도 그런 착각에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한반도 군사정세 거꾸로 읽은 새로나기특위

발표문은 “현 시점에서 남북 간의 군사력의 측면에서는 주한미군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서술하였는데, 이것은 한반도 군사정세를 오판한 것이다. 이 문장은 한국군 군사력이 인민군 군사력과 비등하므로 주한미국군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서, 그 문장에는 주한미국군이 지난 시기에 한국군의 약한 군사력을 보완해주기 위해 주둔하였다고 보는 전제가 깔려있고, 그런데 지금은 한국군의 군사력이 이전보다 더 강화되어 인민군 군사력과 비등한 수준으로 올라섰기 때문에 미국군 주둔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 뜻이 내포된 것이다.

새로나기특위는 무슨 근거로 그렇게 서술하였는지 논거를 적시하지 않았지만, 주한미국군은 한국군의 부족한 전투력을 메워주는 ‘보완전력’으로 주둔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한국군이 미국군 전쟁수행력의 일부를 메워주는 ‘보완전력’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한반도는 전투종심이 매우 짧고 산악지형이 발달되어서, 드넓은 개활지 전투에 맞게 개발된 미국군 무기체계는 한반도 지상전에서는 성능제한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미국 군부는 자기들에게 불리한 지상전에는 한국군을 내보내고, 자기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해전과 공중전을 맡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 군부는 한국군을 자기들이 기피하는 지상전의 ‘보완전력’으로 전선에 앞세워 놓은 것이다.

미국 군부는 불과 28,500명밖에 되지 않는 주한미국군만 가지고 인민군을 상대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미국 군부가 인민군을 상대하는 전력은 주한미국군에게는 없는 해군력이다.

미국은 주한미국군만으로 전쟁을 하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주한미국군은 개전 초기에 인민군의 집중공격으로 궤멸되는 것이다. 순전히 전쟁전략으로만 판단하면, 미국군 28,500명을 이 땅에 고정배치한 것은 궤멸을 자초하는 바보짓이다. 이런 견해를 처음 접하고 이해하기 힘든 독자들도 있겠지만, 그 동안 내가 발표해온 한반도 군사정세에 관한 여러 글들에서 주한미국군 궤멸의 불가피성을 논증하였으므로 이 글에서 재론하지 않는다.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군사분계선 부근 미군기지인 캠프 보니파스의 오울렛 초소에서 북한 쪽을 주시하고 있다.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군사분계선 부근 미군기지인 캠프 보니파스의 오울렛 초소에서 북한 쪽을 주시하고 있다.


미국이 궤멸위험을 무릅쓰고 자국군 28,500명을 이 땅에 고정배치하는 까닭은, 그들을 고정배치해두어야 평시에 전쟁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에게 있어서 주한미국군의 존재가치는 전시 전쟁수행에 있는 게 아니라 평시의 전쟁준비에 있다. 이 땅에서 미국이 계속해온 평시의 전쟁준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전쟁을 위한 군사정보수집이다. 그래서 주한미국군은 다른 나라에 주둔하는 미국군들에 비해 군사정보기능이 기형적으로 발달하였다.

미국 군부는 인민군의 군사시설동향과 부대이동상황을 24시간 정밀감시하는 정찰위성, 고공정찰기, 통신감청장비, 정찰병력 대북침투를 통해 얻은 정보자료를 분석하여 군사상황을 판단하는 것이다.

미국 군부는 그런 대북정보를 한국군에게 넘겨주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읽고, 자기들끼리 작전계획을 작성한다. 군사정보가 없으면 작전계획을 세울 수 없고, 작전계획이 없으면 전쟁을 하지 못한다. 대북군사정보가 없는 한국군은 작전계획을 세울 수 없고, 작전계획이 없으니 전쟁을 하지 못한다. 한국군이 아무리 많은 미국산 첨단무기를 쥐고 있어도, 미국이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게 넘겨준다 해도, 미국의 군사정보와 작전계획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군은 단독으로 전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주한미국군 철군은 한반도 군사정보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고, 그에 따라 대북작전계획도 작성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결과적으로 미국이 전쟁을 도발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고공정찰기, 통신감청시설, 대북정찰부대가 다른 주한미국군 부대들과 함께 철수한 뒤에도 미국 정찰위성은 여전히 북측을 감시하겠지만, 위성사진자료만으로는 전쟁계획을 작성하지 못하고, 전쟁도발의지를 접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군이 대만에서 철군한 뒤에도 미국 정찰위성이 계속 중국을 감시하지만, 철군 이후 미국은 중국을 침략하는 전쟁계획을 작성하지 않는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는 까닭은, 전쟁을 위한 정보력 확보에 집착하면서 전쟁능력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국군이 철군하면, 한국군은 단독으로 전쟁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한국 군부가 주한미국군 철군을 완강히 반대하는 까닭은, 철군으로 한국군의 전쟁수행력이 상실되는 것을 심히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침위험설’에 속지 말고, ‘균형자설’ 믿지 말고

주한미국군이 철군하면, 인민군이 전쟁수행력을 상실한 한국군을 얕잡아보고 남침하지 않겠는가 하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철군을 반대하는 종미수구세력의 ‘남침위험설’에 속아 생겨난 것이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주한미국군은 어느 날 갑자기 이 땅을 떠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정세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그 과정에 맞물려 이 땅을 떠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한반도 정세의 근본적 변화란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 남북관계 정상화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와 남북관계 정상화가 실현되는 과정 속에서 철군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남북관계 정상화란 남북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전면 이행하는 자주적 평화통일 국면에 불가역적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철군 이후 북측이 남침할 것이라는 종미수구세력의 ‘남침위험설’은, 철군으로 남북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자주적 평화통일 국면에 불가역적으로 진입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부정하는 주장이다. 만일 북측에게 무력통일 이외에 다른 통일방도가 없는 상황에서 주한미국군이 철군하는 경우, 인민군의 ‘남침’을 우려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철군은 모든 전쟁조건을 제거하고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철군과 ‘남침’을 결부시킨 주장은 궤변이다.

다른 한 편, 발표문에는 “동북아평화안보체제의 구축과정 그리고 그 이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역할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귀기울여야 한다”고 쓰여있다. 이 문장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국군의 역할이 철군 이후 동북아시아의 ‘균형자 역할’로 전환될 것이라는 이른바 ‘균형자설’을 언급한 것이다.

원래 ‘균형자설’은 미국이 안팎에서 조성될 철군압력을 피하기 위해 미리 조작해놓은 기만논리다. 이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이 글의 지면제약상 피하지만, 새로나기특위가 그런 기만논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꺼내놓은 것은 ‘균형자설’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의 노출이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한미동맹은 동맹관계로 위장된 예속관계이고, 주한미국군은 전쟁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정배치된 것이므로, 동북아시아 평화안보체제를 수립하는 과제는 주한미국군이 철군하여야 그 과제의 실현 가능성을 논의할 수 있는 것이다.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는 제기하지 않고 ‘균형자 역할’이나 들먹이며 동북아시아 평화안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철군압력을 회피하려는 기만발언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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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민주화운동'과 연합해상훈련의 내밀한 관계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 (215)

통일뉴스
2012년 06월 2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미국 육군 특수전사령부 전략단장의 발언

미국이 자기에게 굴복하지 않는 반미국가에서 ‘급변사태’라고 부르는 대규모 유혈사태를 일으켜 정권을 붕괴시킨 최근 경험은, 2011년 2월부터 10월까지 계속된 ‘리비아 급변사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은 미국이 오래 준비한 끝에 일으킨 ‘급변사태’에 휘말려 여덟달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급변사태’를 일으켜 카다피 정권을 간단히 무너뜨렸노라고 우쭐대던 미국은 곧바로 시리아의 앗사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유시리아군’을 앞세워 또 다시 ‘급변사태’를 일으켰다. <뉴욕 타임스> 2012년 6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자유시리아군’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미국 국무부는 반란세력에게 1,500만 달러에 이르는 통신장비와 의료장비 등 각종 물자를 제공하고, 미국 군부는 ‘시리아 급변사태’를 전면적 유혈사태로 확대시켜 미국군을 시리아에 침투시킴으로써 시리아군의 대량파괴무기(WMD)를 탈취할 기회만 노리고 있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고, 시리아의 앗사드 정권을 붕괴위험에 몰아넣은 미국의 ‘급변사태 유발과정’을 3단계 시나리오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급변사태’ 유발 제1단계 - 반미국가의 친미반정부세력을 해외에서 훈련시켜 본국에 잠입시킨다.

‘급변사태’ 유발 제2단계 - 반미국가에서 암약하는 친미반정부세력에게 무기, 정보, 자금을 공급하여 반란단체로 육성하고, ‘급변사태’를 모의, 준비한다.

‘급변사태’ 유발 제3단계 - ‘급변사태’ 유발준비를 마친 반란단체가 미국의 배후조종과 지원을 받아 테러와 무장폭동을 일으킨다.

미국이 리비아에서 ‘급변사태’를 일으켜 정권을 무너뜨리고 연이어 시리아에서 정권붕괴를 노린 ‘급변사태’를 일으킨 사태는, 미국의 북침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9’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 것일까?

<신동아> 2005년 4월호 기사에 따르면, ‘작전계획 5029’는 “단순히 유사시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급변을 증폭시키거나 유도”하는 내용으로 작성된 것이다. 미국의 ‘작전계획 5029’가 북측의 ‘급변사태’를 증폭시키거나 유도하려는 계획이라고 위의 기사에 서술되었지만, 더 정확히 표현하면, ‘작전계획 5029’는 미국이 리비아와 시리아에서 그러한 것처럼 북측에서도 ‘급변사태’를 유발하려는 계획인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의 주적(primary adversary)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반미성향 이슬람국가들이 아니라, 미국에게 정면으로 맞선 정전상태 60년 전 기간에 걸쳐 미국에 굴하지 않고 정치군사적 대결을 벌이며 반제자주노선을 견지해온 동방의 사회주의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리비아의 정권붕괴와 시리아의 ‘급변사태’는 미국이 자기의 주적인 북측을 상대로 ‘급변사태’를 유발하고 정권을 붕괴시킬 ‘작전계획 5029’를 미리 ‘연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미국의 ‘작전계획 5029’가 실행에 옮겨지는 ‘급변사태’ 유발 시나리오에서 제1단계는 친미반정부세력을 해외에서 훈련시켜 북측으로 잠입시키는 단계다. 그런데 지금까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은, 리비아나 시리아와 달리 북측에는 친미반정부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친미반정부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북측에서 미국이 어떻게 ‘급변사태’를 유발하겠다는 것인가?

미국 육군 특수전사령부 전략단장 데이빗 맥스웰(David S. Maxwell)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맥스웰은 주한미국군 특수전사령부에서 전략단장으로 근무할 때 ‘작전계획 5029’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인물이다. 그는 이미 1996년에 ‘북코리아의 파국적 붕괴: 미국군에게 주는 의미(Catastrophic Collapse of north Korea: Implications for the U.S. Military)’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 그가 2010년 9월 1일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병대기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하였다.

<연합뉴스> 2010년 9월 3일 보도에 따르면, 그 토론회에서 맥스웰은 ‘북한 붕괴시 계획’이라는 제목으로 발언하면서, “김정일 체제가 무너졌을 때 권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은 군부세력에 대한 영향력을 증가시키는 캠페인을 준비하고, 비정부기구(NGO)들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발언에서 ‘군부세력에 대한 영향력을 증가시키는 캠페인’이란 말은 무슨 뜻인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지만, ‘비정부기구들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인식을 바꿔나간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그 말이 구체적으로 뜻하는 것은, 중국에 불법입국한 탈북자들을 중국에서 비밀리에 훈련시켜 북측에 다시 잠입시키고, 북측에 잠입한 그들이 비밀공작을 벌여 북측 인민들의 사상의식을 바꿔놓는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일망타진된 ‘북한민주화운동조직’

미국 육군 특수전사령부 전략단장 맥스웰의 발언은, 남측의 반북종미세력이 벌여놓은 이른바 ‘북한민주화운동’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북한민주화운동조직’을 앞세워 북측의 ‘급변사태’를 유발하고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북침음모, 그것이 바로 ‘작전계획 5029’인 것이다.

‘작전계획 5029’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북한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민주화운동조직’ 간부 4명이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죄로 검거된 사건이다. 중국 국가안전부 산하 랴오닝(遼寧)성 국가안전청은 원래 간부급 입국자 5명을 검거하려고 하였는데, 체포과정에서 1명은 도주하였다. 원래 ‘북한민주화운동조직’ 간부들은 2012년 3월 23일에 중국에 입국하였는데, <한겨레> 2012년 5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3월 26일 “중국 국가안전청 요원들이 다롄(大連)의 아지트를 덮”쳐 검거한 것이다.

‘북한민주화운동조직’ 간부 4명을 검거한 랴오닝성 국가안전청은 피검자들을 선양(沈陽)에 있는 국가안전청 본청으로 이송하지 않고 국경도시 단둥(丹東)에 있는 국가안전청 단둥수사국으로 이송하였다. 그렇게 한 까닭은, 간부 4명과 연계된 하부 조직원들을 단둥에서 또 체포하였기 때문이다. 위의 보도에 따르면, 랴오닝성 국가안전청 요원들은 “이들 4명 뿐 아니라 단둥의 재중(조선족)동포, 탈북자 조직원을 다수 잡아갔다”는 것이다.

국가안전위해죄로 수감된 ‘북한민주화운동조직’ 간부 4명은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조직한 뒤 북한으로 다시 들여보내 북한 민주화운동을 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들이 북한으로 보낸 탈북자들은 삐라, 찌라시 살포, 장마당(상설시상) 여론형성, 정보수집 등의 활동을 벌였”으며, “이들의 활동목적은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고 민주화하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위의 보도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다롄과 단둥 등지에서 김씨(‘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 주동자 김영환을 뜻함-옮긴이)를 중심으로 북한 민주화운동을 해온 조직”이 중국 당국의 검거로 일망타진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에 중국 랴오닝성 국가안전청이 일망타진한 ‘북한민주화운동조직’이 두만강 일대에서 탈북유인공작을 벌이는 수준도 아니고 임진강 일대에서 대북전단을 매단 풍선을 날려보내는 수준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북한민주화운동조직’은 탈북자들을 중국에서 비밀리에 훈련시키고, 북측에 잠입시켜 ‘급변사태’를 유발하려는 미국의 ‘작전계획 5029’에 따라 장기적으로 암약해온 비밀공작조직이다.

미국은 자기들이 ‘북한민주화운동조직’에 어떻게 연관되었는지를 철저히 은폐하였기 때문에 그 내밀한 관계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른 나라의 유사한 사례를 보면, 이번에 일망타진된 ‘북한민주화운동조직’도 미국의 배후조종과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를테면, 중국 랴오닝성 국가안전청 단둥수사국에 수감된 ‘북한민주화운동조직’ 간부들이 남측 총영사관에서 나온 영사를 접견할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각서까지 쓴 것은, 영사접견을 통해 자기들의 정체와 대북공작활동이 남측 정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측 정부의 석방지원활동을 스스로 거부한 그들의 특이한 행동은 미국의 석방지원활동을 기대하는 행동으로밖에 볼 수 없으므로, ‘북한민주화운동조직’ 간부들의 그런 특이한 행동은 그들이 미국의 배후조종과 지원을 받는 ‘북한민주화운동조직’을 관리해왔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미국의 ‘작전계획 5029’는 주한미국군사령부 문서고에 보관된 작전문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탈북자들을 중국에서 훈련시킨 뒤에 북측에 잠입시켜 ‘급변사태’를 유발하려는 ‘북한민주화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청와대가 반대하는 바람에 미국이 ‘작전계획 5029’ 완성작업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 ‘북한민주화운동조직’ 검거사건으로 ‘작전계획 5029’가 오래 전부터 암암리에 실행되어왔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 충격과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자위권 발동과 대북해상봉쇄 노리는 미국과 일본

리비아와 시리아의 경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 군부가 ‘작전계획 5029’에 따라 ‘급변사태’를 유발하는 제3단계는 미국의 배후조종과 지원을 받는 반란단체(insurgency)가 북측에서 테러와 무장폭동을 일으키는 상황을 뜻한다.

만일 미국의 배후조종과 지원을 받으며 북측 정권의 붕괴를 노리는 ‘북한민주화운동조직’이 북측에서 암약하다가 미국의 지령에 따라 테러를 자행하고 무장폭동을 일으키면, 미국은 그런 상황에서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일까? 미국은 북측 정권이 핵통제권을 상실할 위험이 높아졌다는 구실을 내걸고, 남측에 대한 북측의 무력침공위험이 높아졌다는 구실도 내걸면서 ‘북한민주화운동조직’이 자행하는 테러와 무장폭동을 ‘급변사태’로 규정할 것이다. 미국의 ‘급변사태’ 규정은 ‘작전계획 5029’에 따라 추진되어온 비밀공작단계가 무력침공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나라가 해외에 거주하는 자국민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위권을 발동하는 것은 국제법상 합법이므로, 미국은 ‘북한민주화운동조직’을 앞세워 유발한 북측의 ‘급변사태’에 대처하여 주한미국인 140,000명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다. 일본도 미국과의 사전모의에 따라 주한일본인 28,000명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다.

<한겨레> 2010년 12월 12일 보도에 나온 것처럼, 2010년 12월 11일 당시 일본 총리였던 간 나오토(菅直人)가 한반도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주한일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자위대를 남측에 파병하겠다고 말한 것은, 일본이 미국의 ‘작전계획 5029’에 따라 자위권을 발동할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의 ‘작전계획 5029’에 따른 자위권 발동은 미국과 일본의 합동군사행동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작전계획 5029’에 따른 미국과 일본의 자위권 발동이 주한미국인과 주한일본인의 인명 및 재산 보호에만 한정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이 북측의 ‘급변사태’에 대처한다는 구실로 자위권을 발동하는 것은 자국민 보호차원을 넘어 대북해상봉쇄로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 한반도 주변 공해상을 항해하는 북측 선박을 검색, 나포, 격침하는 대북해상봉쇄는 ‘작전계획 5029’에 들어있는 무력침공행위다.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것처럼, ‘작전계획 5029’에 따른 미국의 대북해상봉쇄는 미국 항모강습단을 주력으로 하고 일본 해상자위대와 남측 해군을 동원하는 3자 연합함대의 해상봉쇄작전으로 전개될 것이다.

2012년 6월 21일 미국 해군이 남측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를 참가시킨 가운데 실시한 3자 연합해상훈련(trilateral naval exercise)은 미국의 ‘작전계획 5029’에 따른 대북해상봉쇄를 3자 연합함대가 현장에서 연습한 것이라는 점에서 충격과 경악을 안겨주었다. <연합뉴스> 2012년 6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항모강습단과 남측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는 3자 연합해상훈련에서 “해양차단작전”을 연습했다고 한다. 해양차단작전이란 ‘작전계획 5029’에 따라 미국 항모강습단을 주력으로 편성된 3자 연합함대가 북측 선박을 검색, 나포, 격침하는 해상봉쇄작전을 뜻하는 말이다.

이번에 미국 태평양사령부 예하 제7함대 소속 항모강습단이 대북해상봉쇄연습에 주력으로 동원되었는데,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USS George Washington), 제7함대 기함(旗艦)인 블루릿지호(USS Blue Ridge), 미사일순양함들인 카우펜스호(USS Cowpens)와 샤일로호(USS Shiloh), 미사일구축함들인 래슨호(USS Lassen)와 맥캠벨호(USS McCambell)가 출동하였다.

미국 국방부가 이번 3자 연합해상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날은 2012년 6월 14일인데, 그들의 발표문에서 두 가지 내용이 눈길을 끈다.
첫째, 3자 연합해상훈련을 실시하는 해역은 “어떤 연안국의 영해에도 속하지 않은(beyond the territorial waters of any coastal nation)” 한반도 남쪽 공해상이라는 것이다.
둘째, 3자 연합해상훈련을 마친 다음날인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해에서 “관례적인 항공모함 작전(routine carrier operation)”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몇 개 문장으로 간략하게 쓰여있는 미국 국방부의 언론 발표문만 읽어서는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기 힘들다. 한반도 군사정세에 관한 전문지식과 심층적인 군사정보분석에 의거해야 그들의 발표문에 숨겨진 뜻을 들춰낼 수 있다.

첫째, 미국 국방부는 3자 연합해상훈련을 실시하면서, 그 훈련이 한반도 남쪽 공해상에서 실시된다고 밝혔다. 제주도 해안에서 370km 떨어진 바다까지 남측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속하므로, 한반도 남쪽 공해상이라면 제주도에서 남쪽으로 370km 떨어진 공해상을 뜻하는 말로 들린다.

제주도에서 남쪽으로 370km 떨어진 공해의 위치를 지도에서 찾아보면, 서쪽으로는 남측과 중국의 잠정조치수역이 있고, 동쪽으로는 남측과 일본의 공동관리수역이 있고, 남쪽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잠정조치수역이 있는 동중국해 북쪽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로써 이번 3자 연합해상훈련이 동중국해 북쪽 바다에서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미국 해군 보도자료에는 동중국해에서 3자 연합해상훈련을 실시하였다고 쓰여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왜 하필이면 동중국해 북쪽 바다에서 3자 연합해상훈련을 실시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지도를 펼쳐놓으면, 동중국해 북쪽 바다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서해와 동해를 드나들려면, 반드시 동중국해 북쪽 바다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그 해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돋보이는 것이다.

원래 항모강습단을 동원한 미국의 무력침공 시나리오는 동해에 집결한 미국과 남측의 대규모 연합함대가 북측을 집중공격하고 한미연합해병대가 북측 동해안에 상륙하여 평양으로 쳐들어간다는 내용으로 작성되었다. 그런 식의 무력침공 시나리오를 실전상황에 맞게 구체적인 전쟁계획으로 작성해놓은 것이 1974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작전계획 5027’이다.

그런데 2008년부터 미국은 동해가 아니라 동중국해 북쪽 바다에서, 그리고 남측을 참가시킨 2자 연합해상훈련이 아니라 일본까지 참가시킨 3자 연합해상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행동변화는 미국이 기존 ‘작전계획 5027’ 이외에 새로운 작전계획를 하나 더 작성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방식의 북침전쟁연습을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이 2008년에 시작한 새로운 방식의 북침전쟁연습이 새로운 북침전쟁계획에 따라 실시되고 있다는 사실인데, 그 새로운 북침전쟁계획이 바로 ‘작전계획 5029’다. ‘작전계획 5029’에 관한 아래의 정보를 읽어보면, 미국의 북침야욕이 얼마나 강하고 전쟁도발의지가 얼마나 집요한지 알 수 있다.

첫째, <신동아> 2005년 4월호 기사에 따르면, 2004년 12월 서울 용산기지에 있는 한미연합군사령부에서 비밀회의가 진행되었는데, “미국에서 날아온 고위인사들”, 주한미국군사령부 지휘관들, 한국군 지휘관들이 참석하였다. 미국이 비밀회의를 진행한 목적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2005년 말까지 끝내기로 예정하고 그 동안 작성해오던 ‘작전계획 5029’를 완료 전에 검토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2005년 말까지 끝내기로 예정하고 작성해왔던 ‘작전계획 5029’는 ‘북한 붕괴설’이 떠돌던 1990년대 후반, 북측의 붕괴가 임박한 것으로 오판하였던 미국이 북측의 임박한 붕괴에 대처하기 위해 작성한 새로운 북침전쟁계획이었다.

이를테면, 1999년 8월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존 틸럴리(John H. Tilelli)는 주한미국군사령부가 북측의 붕괴에 대처하는 북침전쟁계획 초안 다시 말해서 ‘개념계획 5029’를 이미 작성하였음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3년 11월 15일 남측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군사협의회(MCM) 제25차 회의에서 미국 군부와 남측 군부는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 5029’로 완성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처럼 미국은 1990년대 후반에 ‘개념계획 5029’를 작성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보완하여 마침내 2005년에 ‘작전계획 5029’를 완성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둘째, ‘작전계획 5029’는 군사기밀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 북측이 붕괴하는 상황에 대처할 북침전쟁계획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미국 군부가 언론에 흘려준 정보를 읽어보면, 그들이 예상한 북측의 ‘급변사태’란, 북측에서 내란이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내란발생의 원인은 인민군 일부세력이 군사정변을 일으키거나, 북측 일부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거나, 북측 최고영도자에게 변고가 발생하거나 북측 최고영도자가 급서하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8월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떠돌고 있었을 때,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오판한 미국은 ‘작전계획 5029’를 꺼내들었다. 이를테면, 미국은 2008년 10월 6일 부산 앞바다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 항모강습단을 참가시킨다는 구실을 내걸고 실제로는 10월 5일과 7일 두 차례에 걸쳐 항모강습단을 동해에 출동시켰고, 10월 16일 워싱턴 디씨에서 열린 한미군사위원회 제30차 회의에서 당시 국방장관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는 ‘작전계획 5029’를 당시 국방장관 이상희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런 설명이 있은 직후인 2008년 11월 4일부터 미국은 동중국해 북쪽 바다에서 제20차 미일 합동해상훈련을 실시하였고, 그와 동시에 11월 6일에는 경상북도 포항에서 한미연합해병대 상륙전연습을 실시하였다. 2008년 12월 22일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월터 샤프(Walter L. Sharp)는 서울에서 열린 주한미국군 초청 송년회에 참석하여 “올해 북한에 대한 전면전에 철저하게 준비했을 뿐 아니라, 북한의 불안정사태, 정권교체와 같은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대비했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가 말한 전면전 준비는 ‘작전계획 5027’을 감행할 준비를 마쳤다는 뜻이고, 그가 말한 북측의 불안정사태와 정권교체에 대한 준비는 ‘작전계획 5029’를 감행할 준비를 마쳤다는 뜻이다.

또한 <동아일보> 2008년 12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가 북한 정부가 아닌 지역 군부지도자의 손에 들어간 상황을 상정해 미국 공군과 해군의 작전계획을 가상 시행”하는, 북측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전쟁모의실험(war game)이, 2008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떠돌기 시작한 직후부터 미국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2009년 11월 23일 한국군 합참본부는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작전계획 5029’에 관해 비공개로 보고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연합뉴스> 2010년 10월 3일 보도에 따르면, 2010년 10월 북측이 후계자를 공식 추대하였을 때도 미국은 북측의 후계체제가 불안정할 것으로 오판하고 ‘작전계획 5029’에 새로운 ‘급변사태’ 유형을 추가하였다. <동아일보> 2010년 2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북측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9’ 초안을 이미 작성하고 여러 차례 도상훈련을 반복하며 그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해왔다.

미국 군부가 ‘작전계획 5029’를 통해 내다보는 것은, ‘북한민주화운동조직’이 북측에서 유발한 ‘급변사태’가 몰고 올 북측 정권의 붕괴다. 그들이 말하는, ‘급변사태’가 몰고 올 정권붕괴는 ‘파국적 붕괴(catastrophic collapse)’가 아니라 ‘일시적 붕괴(temporary collapse)’다. 북측에서 ‘일시적 붕괴’가 일어나더라도 북측이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 정상을 회복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일시적 붕괴’가 일어나는 즉시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 ‘작전계획 5029’의 추진방향이다.

‘일시적 붕괴’가 일어났을 때를 상정한 적극적 대응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작전계획 5029’에 따르면, ‘일시적 붕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조치는 해상봉쇄다. 미국이 지난 시기 동해에서 실시해오던 항모강습단 북침전쟁연습을 동중국해 북쪽에 있는 전략요충수역으로 옮긴 까닭은, 북측으로 통하는 서해와 동해의 해상수송로를 동중국해 북쪽 바다에서 봉쇄하려는 ‘작전계획 5029’를 실제로 현장에서 연습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번에 동중국해 북쪽 바다에서 실시한 3자 연합해상훈련은 항모강습단을 주력으로 한 연합함대의 ‘작전계획 5029’ 해상봉쇄연습인 것이다.

정권 붕괴 직후 합동비재래전기동군을 투입하려는 미국

만일 미국이 ‘북한민주화운동조직’을 앞세워 북측에서 ‘급변사태’를 유발하고, 그것을 구실로 연합함대를 동원하여 서해와 동해로 통하는 동중국해 북쪽 바다를 봉쇄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일까? 미국 육군 특수전사령부 전략단장 데이빗 맥스웰이 그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는 2010년 11월 30일에 발표한 글 ‘한반도의 비정규전(Irregular Warfare on the Korean Peninsula)’에서 북측 정권이 무너진 직후, 미국과 남측과 국제사회를 한편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및 조선로동당 잔류세력과 그를 따르는 북측 인민들을 다른 한편으로 하여 “폭력투쟁(violent struggle)”이 일어날 것으로 예견하였다. 그가 전쟁이라는 표현 대신 폭력투쟁이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정규전이 아니라 비정규전이 벌어질 것임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맥스웰 같은 전쟁광신자들이 예견한 비정규전이 벌어지는 경우, 미국 특수전사령부가 합동비재래전기동군(Joint Unconventional Warfare Task Force)을 북측에 급파하여 인민군이 보유한 핵무기와 대량파괴무기를 탈취한다는 것이다. 미국 특수전사령부가 핵무기와 대량파괴무기를 탈취하려면 사전에 그 무기들이 배비된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미국 특수전사령부는 주한미국군사령부 예하에 특수작전사령부를 두고, 미국군과 한국군 정찰병들을 북측에 침투, 잠입시켜 핵무기와 대량파괴무기들이 배치된 지하갱도기지 위치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2012년 6월 4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톨리의 충격발언에서 드러난 합동비재래전기동군의 정체’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미국의 합동비재래전기동군이 ‘작전계획 5029’에 따라 북측을 침공하여 인민군의 핵무기와 대량파괴무기를 탈취한다는 가상적 설정은, 미국이 사실상 북침전쟁을 도발한다는 뜻이다. 미국이 북침전쟁을 도발하려면, 동중국해 북쪽 바다에 멀리 배치한 항모강습단을 서해로 들여보내 북측을 공격하기 쉬운 위치에 재배치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이번에 동중국해 북쪽 바다에서 대북해상봉쇄 현장연습을 마친 뒤에, 곧바로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해 중부에 있는 격렬비열도 인근 해상에 올라가 제7함대 항모강습단과 남측 해군 제7기동전단을 참가시킨 가운데 실시한 한미연합해상훈련은, ‘작전계획 5029’에 따라 합동비재래전기동군이 북측을 침공하여 인민군의 핵무기와 대량파괴무기를 탈취하려는 전쟁도발연습이었다. 미국이 동중국해 북쪽 바다에서 해상봉쇄 현장연습을 감행하고, 항모강습단을 곧바로 서해로 북상시켜 북침전쟁도발을 연습한 이례적인 군사행동은, ‘작전계획 5029’를 전반적으로 연습한 것이다.

2012년 3월 26일 중국에서 ‘북한민주화운동조직’이 일망타진된 사건, 5월 22일 주한미국군 특수작전사령관 닐 톨리(Neil Tolley)의 대북정찰활동 발언, 그리고 6월 21일에 실시된 한미일 3자 연합해상훈련과 6월 23일에 실시된 한미연합해상훈련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충격적인 사태는, 미국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북측에서 ‘급변사태’를 유발하고 북측 정권을 무너뜨리고 북측을 침공하려는 ‘작전계획 5029’를 얼마나 집요하게 연습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이 글이 <통일뉴스>에 실리는 날은 6.25 전쟁 발발 62주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의 전쟁도발야욕을 제거하지 못한 까닭에, 62년 전에 일어난 전쟁이 아직도 종전에 이르지 못한 채 정전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62년 묵은 낡은 정전체제에 의해 조성된 살벌한 군사정세가 이 땅의 국민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기어이 전쟁을 도발하려는 미국의 야욕을 직시하고, 전쟁반대와 평화협정 체결을 미국에게 촉구하는 범국민운동을 벌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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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새날이 올 때까지 애국가를 부르리라

변혁과 진보 (82)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별이 빛나는 깃발', '라 마르세이예즈', 그리고 '애국가'

'애국가'가 국가가 아니라는 이석기 국회의원의 말을 두고 수구세력이 또 다시 생트집을 잡았다. '애국가'가 국가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모략적 이념논쟁으로 몰고 가려는 수구세력의 속셈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법리적으로 따진다면,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다만 국가를 대신하여 국가처럼 관습적으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관습국가(慣習國歌)'라는 개념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처럼 명백한 사실을 두고, 수구세력은 이석기 의원의 발언이 '애국가'를 부정하는 망언이라느니, 국가(國歌)를 부정하는 망발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추잡한 소동을 피웠다.

이 땅의 수구세력이 열심히 추종하는 그들의 종주국이 국가를 어떻게 제정하였는지를 살펴보면, '애국가'의 법적 지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Star-Spangled Banner)'은 1812년에서 1815년까지 지속된 미국과 영국의 전쟁 중에 태어났다. 1814년 8월 24일에 있었던 블래든스벅 전투에서 미국군을 무찌른 영국군은 미국 수도 워싱턴 디씨를 점령하고 불태웠다. 미국 전쟁사에서 가장 참혹한 패배였다.

지금 미국은 제국주의깡패국가가 되어 전 세계를 폭력적으로 지배하려 날뛰고 있지만, 당시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나라를 세운지 불과 38년밖에 되지 않았던 미국은 신대륙의 동북부지역에 있는 15개 주들이 합중국으로 통합한 나약한 신생독립국이었다. 늙은 제국주의깡패국가 '대영제국'은 자기의 지배권에서 벗어난 신생독립국을 전복시켜 재식민지화하려고 무력침공을 개시하였으니 그것이 미국사에 '1812년 전쟁'으로 기록된 대영전쟁이다.

가을을 재촉하는 빗줄기가 쏟아지던 1814년 9월 13일 밤,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력으로 공인되던 영국 함대는 워싱턴 디씨 북쪽에 있는 항만거점 포트 맥헨리(Fort McHenry)를 맹렬한 함포사격으로 초토화하였다. 19척 전함으로 편성된 영국 함대의 함포사격은 25시간 동안 밤새도록 계속되며 포트 맥헨리를 폐허로 만들었다.

먼동이 터오는 새벽녘, 야간포격으로 폐허가 된 포트 맥헨리를 절망의 눈빛으로 멀리서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야에 놀라운 광경이 비쳐들었다. 가로 9.1m, 세로 13m나 되는 거대한 미국 국기가 파괴된 건물벽에 높이 걸려있었던 것이다. 포연과 불길 속에서 살아남은 그 깃발은 침략군의 무력공격에 굴하지 않은 투쟁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미국인 프랜시스 스캇 키(Francis Scott Key)가 격동적인 심정으로 불굴의 깃발을 칭송하는 애국시 한 편을 단숨에 써내려갔으니 그것이 바로 미국 국가로 불려지는 '별이 빛나는 깃발'의 가사다.

전화의 불길 속에서 태어난 노래 '별이 빛나는 깃발'은 미국 해군이 군가로 불렀고, 나중에는 미국 국민들 속에서 애국가로 널리 애창되었는데, 마침내 1931년 3월 3일 연방의회 의결을 거쳐 미국 국가로 제정되었다.

1792년 4월 25일 프랑스 혁명군 장교 클로드 조셉 르흐게 드 릴(Claud Joseph Rouget de Lisle)이 프랑스 혁명의 불길 속에서 지은 애국가 '린군의 전쟁노래(Chant de guerre pour l'Arm e du Rhin)'도 1795년 7월 14일 프랑스 국가회의 의결을 거쳐 프랑스 국가로 다시 태어났으니, "일어나라, 조국의 아들딸들아 영광의 날은 왔노라"로 시작되는 애국가는 그렇게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이예즈(La Marseillaise)'로 제정된 것이다.

미국의 애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이 미국 국가로 제정되기까지 무려 11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그 117년 동안 미국에는 국가가 없었다. 다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애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이 국민들 속에서, 그리고 국가행사에서 관습적으로 불려지고 있었을 뿐이다.


국가제정임무를 외면해온 직무유기

어떤 노래가 국가의 법적 지위를 가지려면 입법부 의결을 거쳐 제정되어야 한다. 어떤 노래가 국민의례에서 오래 관습적으로 불려진다고 해서 그 노래가 자동적으로 국가의 법적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땅의 국민들이 국민의례에서 부르는 '애국가'는 국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가의 법적 지위를 갖지 못하였다.

2010년 7월 27일 대통령훈령 제272호로 공표한 '국민의례 규정'은 중앙행정기관이 시행하는 국민의례 절차와 방식을 규정한 것이지 '애국가'의 법률적 지위를 규정한 것이 아니며, 그런 대통령훈령으로 '애국가'가 국가의 법적 지위를 갖는다는 주장 자체가 무식한 소리다.

수구인사들 가운데는 헌법재판소 판례를 들먹이며, '애국가'를 국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10월 21일 갑자기 '관습헌법'이라는 생뚱맞은 자의적 개념을 들고 나와, '관습헌법'에 따라 서울을 수도로 인정하고,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관습헌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그런 위헌결정은 노무현 정부의 수도이전계획을 저지하려는 정치적 판결이었다. 당시 법학자 10명 가운데 6명이 '관습헌법'을 인정하지 않았다. 설령 헌재의 그런 정치적 판결을 인정하더라도, 헌재가 '애국가'를 국가로 인정한 판례가 없다.

놀랍게도, '애국가' 저작권은 스페인 국적자에게 있었다. '애국가' 저작권을 가진 그 스페인 국적자는 '애국가' 를 작곡한 안익태의 유족이다. 그 스페인 국적자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게 신탁하여 저작권료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 유족이 묵인해주어서 넘어간 것이지, 법리적으로 따진다면 '애국가'를 국민의례에서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제창해온 것은 저작권보호법 위반행위였다.

외국인이 저작권을 행사하는 '애국가'를 이 땅의 국민들이 공식 국가로 착각하고 60년 동안이나 국가처럼 불러온 것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담한 현실이었다. 그런 참담한 현실을 60년 동안 방치해온 주범은, 국민의례를 거행할 때마다 '애국가'를 누구보다 목청 높여 잘도 부른다는 이 땅의 수구집권세력이다.

'애국가' 저작권이 외국인에게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자, '애국가' 저작권 보유자인 스페인 국적자는 2005년 3월 16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저작권을 기증하였다. 치욕스럽게도 57년 만에 '애국가' 저작권을 외국인으로부터 기증받았으면, 그 노래를 즉시 국가로 제정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국회는 2007년 1월 16일 '대한민국 국기법'을 법률 제8272호로 의결하여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하면서도, '애국가'는 국가로 제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애국가'가 국가가 아니라고 정확히 지적한 이석기 의원을 무분별하게 비난할 게 아니라, 1948년 정부수립 이후 64년 동안이나 국가를 제정하지 않은 정부와 국회에게 국가제정임무를 외면해온 직무유기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이념을 주입받고 그들의 감정에 동화된 '애국시민'

'애국가'가 국가가 아니라는 이석기 의원의 지적은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과학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고, '애국가'가 국가라고 우기는 수구세력의 억지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실체로 믿어버리는 미신에서 나온 것이다. 수구세력은 자기들의 미신을 '국민정서'라는 말로 미화하고 분식하기를 즐긴다. '애국가'가 국가가 아니라는 정당한 지적은 '국민정서'에 배치되기 때문에 비난과 배격을 받아야 한다는 게 그들의 논법이다.

수구세력은 자기들의 궤변과 억지를 '국민정서'니 '국민의 눈높이'니 하는 따위의 그럴 듯한 말들로 은폐, 치장한다. 명백하게도, 수구세력이 말하는 '국민정서'니 '국민의 눈높이'니 하는 말들은 진보정치의 기준으로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국민정서'니 '국민의 눈높이'니 하는 것은 수구집권세력이 오랜 기간에 걸쳐 교육, 언론, 홍보를 통해 국민에게 자기들의 이념을 주입시키고 국민을 자기들의 감정에 동화시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애국가'에 대한 '국민정서'와 '국민의 눈높이'도 당연히 그러한 이념주입과 감정동화의 결과물이다. 수구집권세력은 '애국가'가 국가로 제정되지 않은 진실을 감추고 그 노래를 마치 국가처럼 국민의례에서 부르는 오랜 관행을 통하여 '애국가'에 대한 자기들의 이념을 국민의 머릿속에 주입하였고, '애국가'에 대한 자기들의 감정에 국민의 감정을 동화시켰다.

이 땅의 역대 정권들 가운데서 '애국가'에 대한 그러한 이념주입과 감정동화를 가장 강하게 밀어붙인 정권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진 군사독재정권이다. 이를테면,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모든 영화관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직전 '애국가' 연주곡을 장내에 틀어놓는 관행을 강요하였다. 영화를 감상하러온 관객들은 어두컴컴한 장내에서 '애국가' 연주곡이 끝날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수구세력의 이념을 주입받고 그들의 감정에 동화되어야 비로소 '애국시민'이 될 수 있었다.

군사독재정권의 이념주입과 감정동화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날마다 오후 5시만 되면, 모든 관공서들과 각급 학교들에서 국기하강식을 하면서 '애국가' 연주곡을 확성기로 크게 틀어놓았다. '애국가' 연주곡이 확성기에서 울려나오면, 길거리를 가다가도 걸음을 멈추고 연주곡이 들리는 쪽으로 우두커니 서서 수구세력의 이념을 주입받고 그들의 감정에 동화되어야 비로소 '애국시민'이 될 수 있었다.

이석기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애국가'는 독재정권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했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애국가'의 국민적 제창이 군사독재정권의 이념주입과 감정동화의 수단으로 전락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는 왜 '애국가'를 화제에 올렸을까?

이석기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왜 하필이면 '애국가'를 화제에 올렸을까? 수구언론매체들은 전체 맥락을 잘라버리고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는 단문만 달랑 끄집어 내놓고 그를 비난공격하였지만, 이석기 의원이 '애국가'를 화제에 올린 맥락은 통합진보당의 당내 우파가 밀어붙이는 우경화 조치를 반대한 것이었다.

통합진보당 공식행사에서 왜 '애국가'를 부르지 않느냐는 말을 가장 먼저 꺼낸 사람은 유시민 전 공동대표다. 그는 2012년 5월 10일에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 회의에서 "통합진보당 공식행사에서 애국가 제창을 거부하는 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일까? 중앙당의 공식행사에서 꼭 애국가를 틀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 스스로의 주관적인 이념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문화양식 속에서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이것은 그가 '애국가' 제창문제를 '국민정서'로 이해하고, 통합진보당도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처럼 그런 정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유시민 전 공동대표가 간과한 것은, 위에서 논한 것처럼, '애국가'에 대한 '국민정서'가 수구집권세력의 이념주입과 감정동화에서 파생된 결과물이라는 역사적 사실이다. 진보적 대중정당이 그런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국민정서'를 따르는 것은 수구집권세력의 이념주입과 감정동화에 대한 용인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이 창당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과 진보적 근로대중은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해왔으며, 민중의례를 거행하면서 '애국가' 대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지금은 노래방 곡목수록집에도 들어 있는 민중가요 '님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만 해도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금지곡으로 탄압을 받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과 진보적 근로대중이 부르는 '님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투쟁가가 아니다. 그 노래에 깃들어 있는 것은, 광주민중항쟁에서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총을 들고 끝까지 싸우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4시 전남도청에 쳐들어간 파쇼게엄군의 흉탄에 쓰러진 윤상원 열사의 고귀한 투혼이다. 원래 그 노래는 광주민중항쟁에서 살아남은 윤상원 열사의 동지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지어 부른 것이다.

윤상원 열사가 총을 들었던 광주민중항쟁 현장에서는 광주시민과 시민군이 함께 부를 투쟁가가 없었고, 모두 따라 부를 만한 노래는 '애국가' 밖에 없었다. 그래서 광주시민과 시민군이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진행한 대중집회를 촬영한 기록영화에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윤상원 열사를 비롯한 시민군들과 광주시민들은 바로 그 '애국가'의 국민적 제창을 강요해온 군사독재정권의 총탄과 대검에 맞아 피를 흘리며 학살당했다. 만일 윤상원 열사와 시민군들이 희생되지 않고 살았더라면, 광주학살주범이 국민적 제창을 강요한 '애국가'를 당연히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윤상원 열사를 뒤를 이은 수많은 민주열사들이 군사독재정권 하수인들의 고문과 최루탄과 쇠파이프에 희생당했지만, 열사들의 장렬한 최후는 영원히 죽지 않는 넋으로 살아나 수구집권세력을 퇴진시키고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려는 결의와 맹세로 승화되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에 나오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가 바로 그런 참된 애국심의 발로인 것이다.

윤상원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민주열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못하는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과 진보적 근로대중이 모든 군중집회와 공식행사들에서 '애국가' 대신 '님을 위한 행진곡'을 이제껏 불러온 것은 민주열사들의 뒤를 이어 수구세력과 맞서싸우는 투쟁의 일환이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에는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진보적 근로대중의 피맺힌 열망이 담겨있으며,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사회변혁을 위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자취가 어려있는 것이다.


애국가를 부르며 흔들리지 않으리라

애국가는 어느 특정노래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들은 모두 애국가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고유명사 '애국가'를 일반명사 애국가와 구분하기 위해 따옴표를 붙였다. 일반명사 애국가와 고유명사 '애국가'를 똑같은 것으로 혼동하면서, 이 세상에 애국가는 '국민의례'에서 불려지는 '애국가'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와 오해다.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조국의 미래에 바친 민주열사들의 뒤를 이어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참된 애국자들이며, 그들이 참된 애국심으로 부르는 애국가가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이다.

유시민 전 공동대표는 지난 4.11 총선 때 선거운동현장에서 만난 몇몇 유권자들이 "당신들은 왜 '애국가'를 부르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하였는데, 통합진보당은 그런 질문에 에둘러 답하지 말고 '애국가' 대신 애국가를 부르는 사연을 대중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수구세력이 친일부역자들이 만든 '애국가'를 부를 때,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과 진보적 근로대중은 민주열사들이 넋이 깃든 애국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

수구세력이 진보적 대중정당에게 '애국가'를 부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수구세력에 맞서싸우는 정신무장을 '애국가' 제창으로 해제시키고 진보정치를 감히 길들여보겠다는 음흉한 저의를 드러낸 것이다. 다른 한 편, 통합진보당의 당내 우파가 저들의 그런 음흉한 저의를 무딘 감각으로 대하면서 '애국가'를 당내 행사에서 부르자고 제안한 것은, 통합진보당을 진보적 대중정당에서 개혁적 국민정당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통합진보당 활동가들과 당원들이 '애국가' 대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마다, 수많은 민주열사들은 그 애국가의 한 구절처럼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고 투지를 북돋아주고 있다. 수구세력의 모략과 협박이 혹심해도, 통합진보당의 당내 우파가 동요해도 통합진보당은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으리라.

오늘의 시련과 난관을 뚫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더 힘있게 부르며 변혁과 진보의 길로 나아가리라, 이 민족이 위대한 통일조국의 새 국가를 목메어 부를 새날이 올 때까지... (2012년 6월 19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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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아파치 잔치'는 최후의 만찬이다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 (214)
통일뉴스 2012년 6월 18일



주한미국군사령관의 두 가지 발언

2012년 6월 12일 서울에 있는 코리아나 호텔에서 육군협회가 주최한 조찬강연회가 열렸다. 주한미국군사령관 제임스 서먼(James D. Thurman)이 강연회에 연사로 출연하여 ‘미국의 신국방전략과 한미동맹’이라는 그럴 듯한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는 “미2사단과 35방공포여단의 인력과 전력 확충을 (미국군 지휘부에) 요청했다. 공격정찰헬기 대대 확충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는 요지로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미국군 지휘부에 주한미국군 전력증강을 요청하면서 특히 공격헬기 항공대대 증편을 강조하였음을 말해준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의 강연에서 그런 증편 요청 발언이 나오자, 남측 수구언론매체들은 일제히 그 발언을 증폭시키는 확성기 노릇을 하였다. 예컨대 <중앙일보> 2012년 6월 13일 보도기사는 “서먼 사령관이 지난 5월 미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주한미군 항공전력의 증강을 국방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주한미군의 충분치 않은 항공전력을 강조하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차출된 아파치 대대의 한국 복귀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말한 한국군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는 것은, 미국인들은 Apache라고 쓰고 어파쉬(uhpahsh)라고 발음하는데, 이 땅에서는 아파치라고 잘못 발음한 것이 언론을 통해 널리 퍼져 그대로 쓰인다는 점이다. 겨레의 넋이 깃든 소중한 우리말을 홀대하고 우리말과 영어를 마구 섞어놓은 ‘잡탕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땅의 종미주의자들은 미국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괴상한 영어를 쓰고 있으니 중증 언어장애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

위의 <중앙일보> 보도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시간감각이 엉망이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미국 연방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때는 2012년 5월이 아니라 2012년 3월 29일이었다. 시간감각만 엉망인 것이 아니라, 공간감각도 엉망이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출석한 청문회는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가 아니라, '연방하원 세출위원회 군사건설, 퇴역군인 및 관계부처 소위원회' 청문회였다.

그 청문회에 출석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무슨 말을 하였을까? 그가 청문회에서 하원 의원들과 주고받은 발언을 적어놓은 속기록을 찾을 수 없지만, 그가 청문회에 제출한 문건이 남아있다. 그 문건에는 ‘연방하원 세출위원회 군사건설, 퇴역군인 및 관계부처 소위원회에 제출하는 유엔군사령관, 미한연합군사령관, 주한미국군사령관 제임스 서먼 대장의 발언록’이라는 긴 제목이 붙어있다. 그런데 그 발언록에는 주한미국군 전력증강을 미국군 지휘부에 요청하였다는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

2012년 3월 29일 미국군 소식지 <성조지(Stars and Stripes)>는 그 날 청문회에서 서먼이 발언한 대목 가운데 어느 특정대목을 의도적으로 골라 인용보도하였다. 그 인용보도에 따르면, 서먼은 “미국은 오판을 불러올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위태로운 불확실성의 기간(dangerously uncertain period)을 한반도에서 맞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현재 북측의 불안정 또는 극단적인 경우 대량파괴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갈등을 고조시키는 도발이 가장 커다란 위협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인용보도를 읽으면,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한반도 군사정세를 매우 위태롭다고 판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의 인용보도는 전체 문맥을 벗어나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서먼의 청문회 발언 가운데 인용된 문제의 두 문장을 원문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첫째 문장은 “나는 한반도가 오판을 불러올 예상치 못할 사건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매우 불확실한 시기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문장은 “북측의 침공으로부터 미국과 한국을 방어할 준비를 갖추고 정전협정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는, 이러한 변화들에 연동되는 불확실성 때문에 위태로운 불확실성의 시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문장에 불확실한 시기라는 말이 공통적으로 들어있지만, 그가 말한 불확실성이란, 그의 발언록에서 명백히 지적된 것처럼 북측, 남측, 중국, 일본, 러시아, 대만에서 올해 실시되는 정권교체 선거에 따른 동북아시아 전반의 정치적 변화가 불확실하다는 뜻이다. 그는 동북아시아에서 올해에 진행되는 각국 선거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서 역내 정치정세가 불확실하다고 말한 것이지, 한반도 전쟁위험이 비상히 고조되고 있어서 군사정세가 위태롭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6월 12일 조찬강연회에서 주한미국군 전력증강을 미국군 지휘부에 요청하였다고 밝힌 것과 그가 3월 29일 연방하원 세출위원회 소위원회 청문회에서 동북아시아 정치정세의 변화를 예측하기 힘들다고 발언한 것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의미맥락이 아니다.

피격위험도가 전투기보다 세 배 높은 공격헬기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미국군 지휘부에 주한미국군 공격헬기 증파를 요청한 배경은 무엇일까? 세상에 알려진 대로, 지난 시기에 주한미국군은 아파치 공격헬기 72대를 보유한 3개 항공대대를 배치하고 있었는데, 2004년 8월에 1개 항공대대를 철수하였고, 2009년 3월에 1개 항공대대를 또 철수하였으며, 지금은 아파치 공격헬기 24대를 운용하는 1개 항공대대밖에 남겨두지 않았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증파를 요청한 아파치 공격헬기는, 전차, 장갑차, 자행포 같은 인민군 기갑전력의 고속진격을 저지하고, 육상, 해상, 공중에서 전개되는 인민군 특수전 병력의 기습작전을 차단하려고 배치하였다고 선전해온 첨단무기다. 아파치 공격헬기가 첨단무기라는 사실은, 그 공격헬기 판매가격이 F-16 최신형 전투기 판매가격과 맞먹는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한반도 전쟁상황을 예상한다면, 인민군 기갑전력이 군사분계선을 돌파하여 고속으로 진격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난 상황이고, 인민군 특수전 병력이 기습작전을 벌이는 것은 한국군이 방어하기 힘든 취약지역에서 국지전이 일어난 상황이다. 이 두 가지 예상상황 가운데서 인민군 기갑전력이 군사분계선을 돌파하고 고속으로 진격하는 전면전 상황을 가상하면,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방측 군사전문가들은 미국군이 작전배치한 아파치 공격헬기가 전차를 파괴하는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과대평가하였고, 친미언론매체들이 그런 과대평가를 ‘정설’로 가공하여 유포하기 때문에,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들은 정말 그런 줄로 믿고 있다. 더욱이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미국군이 이라크군 기갑부대를 궤멸시켰다는 소문이 떠도는 바람에 아파치 공격헬기의 ‘최강 신화’가 진실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을 분석하면 전혀 다른 전황이 나타난다. 이를테면, 미국은 이라크 무력침공을 개시하기 전에 이라크군 내부에 ‘간첩단’을 침투시켜 첩보전과 심리전을 전개함으로써 이라크군 정신무장을 해제시켰으며, 무력침공을 개시하면서 강력한 전자전으로 이라크군 방공레이더망을 무력화하고, 토마호크 순항미사일로 군사전략거점을 파괴하였다. 그런 다음, 뒤늦게 침공에 나선 아파치 공격헬기가 파괴한 이라크군 전차와 장갑차들은, 이미 전투의지를 상실한 이라크군이 도주하면서 내버린 전차와 장갑차들을 파괴한 것이지, 치열한 교전 중에 파괴한 것이 아니었다.

한반도에서는 이라크 전쟁과 같은 교전상황이 재연되지 않을 것이므로, 아파치 공격헬기가 인민군 전차, 장갑차, 자행포를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전황은 한반도 전쟁상황을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려낸 엉터리 만화다.

그런 엉터리 만화의 중심부에는 아파치 공격헬기가 무장한 AGM-114 헬파이어(Hellfire) 공대지 전술미사일이 놓여 있다. 아파치 공격헬기가 최단 사거리 500m, 최장 사거리 8km인 헬파이어 미사일을 쏘면 전차, 장갑차, 자행포에 명중한다는 것이 엉터리 만화의 전개에서 절정을 이룬다. 초등학생 수준의 단순논법으로 말하자면, 아파치 공격헬기는 8km밖에 있는 전차를 공격할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한 반면에, 8km밖에서 비행하는 아파치 공격헬기를 공격할 지대공미사일을 장착한 전차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아파치 공격헬기와 전차가 1 대 1로 맞붙으면 아파치 공격헬기가 이긴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 군부가 아파치 공격헬기야말로 ‘전차 잡는 무기(tank killer)’라고 큰 소리를 치는 까닭은, 레이저유도장치와 전파추적유도장치를 이중으로 내장한 헬파이어 미사일이 그 공격헬기에 장착되었기 때문이다. 레이저유도장치 작동원리는, 아파치 공격헬기에 장착된 레이저발사기가 타격목표를 향해 레이저를 쏘면, 타격목표에 닿은 뒤에 반사된 레이저반사광(sparkle)을 헬파이어 미사일 탄두부에 내장된 레이저탐지기가 추적하여 타격목표를 맞춘다는 것이다. 또한 전파추적유도장치 작동원리는, 아파치 공격헬기에 장착된 발신 안테나(transit antenna)가 타격목표를 향해 전파를 쏘면, 타격목표에 닿은 뒤에 반사된 반사파를 헬파이어 미사일에 내장된 수신 안테나(receive antenna)가 추적하여 타격목표를 맞춘다는 것이다. 그처럼 유력한 유도장치를 헬파이어 미사일에 이중으로 달아놓았으니 첨단성능을 가졌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아파치 공격헬기가 레이저유도장치를 가동하기에 적합한 고도는 지상으로부터 6-9km 상공인데, 그 고도는 지대공미사일에 피격당하기에 딱 알맞은 고도다. 그래서 이스라엘 공군 F-16 전투기가 1981년 6월 7일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를 2.1km 저고도에서 기습폭격할 때, 이라크군 지대공미사일에 피격당하지 않으려고 레이저유도폭탄을 쓰지 못하고 비유도 재래식 폭탄 마크 84(Mark 84)를 쓸 수밖에 없었다. F-16 전투기가 그러한데, 전투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느린 속도로 비행하는 아파치 공격헬기가 저고도에서 느릿느릿 레이저유도장치를 가동하는 것은 적의 지대공미사일에 피격당하려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지대공미사일에 피격당할 위험도를 측정한 자료에 따르면, 무인공격기 70%, 공격헬기 60%, 전투기 20%, 폭격기 12%, 전략폭격기 10%다. 첨단무기라는 공격헬기야말로 지대공미사일에 피격당할 위험이 가장 큰 취약무기다.

아파치 공격헬기를 향해 레이저를 쏜 인민군
아파치 공격헬기를 ‘전차 잡는 무기’라고 한때 자랑했던 미국 군부가 주한미국군에 배치한 아파치 공격헬기를 2004년부터 갑자기 철수하기 시작한 말 못할 사연이 있다. <워싱턴 타임스> 2003년 5월 13일 보도가 그 사연을 전해주었는데 사연은 이러하였다. 2003년 3월 초 어느 날 주한미국군 아파치 공격헬기 2대가 비무장지대(DMZ)에서 남쪽으로 3.2km 떨어진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아파치 공격헬기가 그처럼 북측 상공에 바짝 근접하여 비행한 것은, 아파치 공격헬기를 공격할 첨단무기가 인민군에게 없을 것으로 주한미국군이 판단하고 안심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행 중인 아파치 공격헬기에서 레이저탐지장치에 갑자기 경보신호가 켜졌다. 인민군이 아파치 공격헬기 2대를 향해 레이저를 쏜 것이다. 그 보고를 받은 미국 정보기관들은 인민군이 아파치 공격헬기를 향해 ZM-87 대인레이저총(antipersonnel laser gun)을 쏜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렇게 판단한 까닭은, 아파치 공격헬기의 비행위치가 비무장지대에서 3.2km 떨어진 남측 상공이고, 비무장지대 폭이 4km이고, 인민군이 비무장지대에서 북쪽으로 2-3km 쯤 떨어진 곳에서 레이저를 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2003년 당시 미국 군부는 10km나 멀리 떨어진 곳까지 레이저를 쏠 수 있는 무기가 대인레이저총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추정할 만도 하였다. 대인레이저총은 개인화기와 매우 흡사하게 생겼는데, 유효사거리 3km 안에 있는 사람에게 레이저를 쏘아 눈을 멀게 만드는 무기다.

그런데 시속 265km로 날아가는 아파치 공격헬기는 10km 밖에서 육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인민군이 그런 대인레이저총으로 아파치 공격헬기에 맞서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인레이저총은 평시에 테러진압작전에서 테러범을 향해 쏘는 단거리 대인무기이지, 전면전이 벌어진 격렬한 교전상황에서 공격헬기를 향해 쏘는 장거리 대공무기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워싱턴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주한미국군 대변인 새뮤얼 테일러(Samuel T. Taylor)는 레이저발사장비가 인민군에게 “널리 보급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 것이다. 미국군의 ‘최강 신화’를 선전 그대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곧이들리지 않겠지만, 인민군은 레이저 무기화에서 미국군보다 한 발 앞섰던 것이다. 미국군 레이저발사차량이 비행 중인 무인표적기를 파괴하는 실험에 성공한 때는 2009년 11월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인민군은 미국군 아파치 공격헬기를 향해 대인레이저총을 쏘는 것이 아니라 레이저발사차량에서 레이저를 쏠 것이다. 인민군 레이저발사차량은 아파치 공격헬기의 헬파이어 미사일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군 전투기의 레이저 유도미사일과 레이저 유도폭탄을 모조리 무력화할 강력한 레이저를 쏠 것이다.

예상되는 한반도 전쟁상황은 인민군 폭풍호 전차와 미국군 아파치 공격헬기가 1 대 1로 맞붙는 무기성능시험장 같은 조용한 상황이 아니라, 각종 무기와 군사장비가 동원되어 융합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격동적인 전면전이다. 그런 격동상황에서 인민군은 헬파이어 미사일 사거리 8km 밖에서 레이저발사차량과 방해전파발사차량을 동원해 레이저와 방해전파를 아파치 공격헬기를 향해 쏠 것이고, 비유도무기인 방사포를 집중사격하여 아파치 공격헬기의 미사일 탐지장치를 교란시킨 다음, 적외선 유도무기인 지대공미사일을 쏠 것이다. 아파치 공격헬기는 그것으로 끝이다.

달 없는 그믐밤 서해안 갯벌에서 물골을 타고

주한미국군사령관 제임스 서먼이 미국군 지휘부에게 증파를 요청한 아파치 공격헬기는, 전면전에서 인민군 기갑전력의 고속진격만 저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국지전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인민군 특수전 병력의 기습작전도 차단할 수 있다고 널리 선전해온 첨단무기다.

역대 주한미국군사령관들이 이구동성으로 실토해온 것처럼, 미국 군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인민군의 특수전 공격이다. 한국군이 방어하기에 어렵고 무력충돌위험이 높은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국지전이 벌어지는 경우, 인민군이 반드시 특수전 공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미국 군부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의 정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 2011년 2월 1일 보도와 <조선일보> 2011년 8월 22일 보도를 종합하면, 북측은 백령도에서 50km 떨어진 곳에 공기부양정 70척을 배치할 대규모 발진기지를 건설하였다. 공기부양정 발진기지 위치는 황해남도 장산반도 고암포다. 또한 백령도에서 약 80km 떨어진 황해남도 과일군 비파곶 해군기지에는 인민군 해상저격여단 병력 3,000명이 배치되어 있다.

인민군이 독자기술로 건조한 공기부양정은 특수전 병력 50명을 태우고 해수면 위에 살짝 떠서 시속 90km 이상으로 항해할 수 있는 20t급과 35t급 두 종류인데, 인민군은 그런 공기부양정을 서해에 140척이나 전진배치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인민군은 고속상륙정 90척도 서해에 전진배치하였다.

<조선일보> 2007년 4월 2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시속 110km로 항해할 수 있는 170t급 신형 공기부양전투함을 개발하였다. 이 신형 공기부양전투함에는 57mm 기관포와 30mm 기관포가 각각 1문씩 장착되었는데, 특수전 병력 150명이 탈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170t급 신형 공기부양전투함까지 개발하였으니, 2012년 6월 현재 인민군의 기습상륙작전능력은 엄청나게 강화되었다. 인민군이 작전배치한 공기부양정 140척은 전차 40대와 병력 8,000명을 한꺼번에 실어나를 수 있는데, 거기에 고속상륙정 90척과 신형 공기부양전투함 수 십 척까지 더하면 전차 및 장갑차 100대와 특수전 병력 10,000명을 한꺼번에 기습상륙작전에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인민군은 그처럼 강력한 상륙장비들을 서해에 전진배치한 것만이 아니라, 2011년 4월 초와 8월 말에 기습상륙훈련을 서해에서 실시하였다.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기록영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인민군 륙해공군합동타격훈련을 지도하시였다’는, 서해로 흘러나가는 대동강 하류에 건설된 서해갑문 일대에서 2012년 3월 14일에 진행된 육해공군 합동타격훈련 현장을 보여주는데, 그 훈련장면 가운데는 인민군 특수전 병력이 공기부양정을 타고 해안에 기습상륙하는 장면도 있다.

인민군 특수전 병력과 전차와 장갑차를 실은 공기부양정, 고속상륙정, 공기부양전투함들이 달 없는 그믐밤에 한국군 레이더 사각지대인 서해안 갯벌에서 물골(미세기[潮水]가 세차게 흐르는 곳)을 타고 진격하면, 한국군 해군과 해병대는 속수무책이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민군 공기부양정, 고속상륙정, 공기부양전투함이 질풍처럼 고속으로 항해하기 때문에 서해 5도 인근에 배치된 한국군 해군이 함포를 아무리 쏘아대고, 서해 5도에 배치된 한국군 해병대가 해안포를 아무리 쏘아대도 격침시키지 못한다.

둘째, 한국군이 훈련기 KT-1에 로켓포와 기관총을 달아 개조한 KA-1 경공격기를 동원하고, 한국군이 보유한 공격헬기 기종들인 AH-1 코브라와 500MD를 동원해도 인민군 공기부양정, 고속상륙정, 공기부양전투함의 진격을 저지하기 힘들다. 한국군이 보유한 코브라 공격헬기는 야간작전 중에는 미사일을 쏘지 못하는 ‘야맹증’에 걸렸고, 염분과 안개에 취약해서 해상에서는 작전하지 못하며, 엔진동력이 너무 약해서 완전무장을 하고 항공연료를 가득 채우면 이륙하지도 못한다. 더욱이 그런 노후기종들이 육지에서 출격하여 서해 5도 상공에 도착하기도 전에, 인민군의 신형 공기부양전투함이 20분만에 서해 5도에 기습적으로 상륙할 수 있다.

셋째, 인민군의 기습상륙을 저지하려면 한국군 전투기들이 출격하는 수밖에 없는데, 황해남도 곳곳에 배치된 지대공미사일, 레이저발사차량, 방해전파발사차량들이 가동하면 한국군 전투기들은 격추위험이 두려워 황급히 3km로 저고도 회피비행을 하면서 남쪽으로 멀리 물러나야 한다.

<조선일보> 2009년 1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국군은 1996년 10월 ‘독수리 연습’에서 처음으로 아파치 공격헬기를 동원하여 공기부양정을 공격하는 실험을 실시하였는데, 그 실험결과에 따라 아파치 공격헬기를 공기부양정 차단작전에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996년에는 아파치 공격헬기의 성능만 믿고 자만하던 미국 군부가 2004년에는 인민군의 강력한 무장장비 전진배치에 밀려 아파치 공격헬기를 속속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미국 군부의 알량한 위안행동, 남측 군부의 무력한 자구책

미국이 주한미국군 아파치 공격헬기를 철수하자, 그 공격헬기를 대신할 무기를 갖지 못한 한국 군부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본 미국은 F-16 전투기로 대체전력을 보강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연합뉴스> 2009년 1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군 지휘부는 아파치 공격헬기를 남측에서 철수하는 대신 F-16 12대를 배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2008년 12월 워싱턴 디씨에서 열린 제20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합의된 것처럼 발표되었다.

그런데 미국 군부는 2008년 4월 주한 미7공군에 배치된 F-16 3개 비행대대 가운데 1개 비행대대를 2008년 연말까지 철수하겠다고 남측 군부에 통보하였다. 원래 아파치 공격헬기 철수는 예정된 것이었으나, F-16 전투기 철수는 예정에 없었던 것인데 2008년 말에 갑자기 F-16까지 철수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 아파치 공격헬기 1개 항공대대와 F-16 1개 비행대대를 한꺼번에 철수하자 한국 군부의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F-16 12대를 대체전력으로 긴급배치한다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 합의는 한국 군부의 불안감을 잠시나마 덜어주기 위한 미국 군부의 알량한 위안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은 F-16 12대를 주한미공군기지에 고정배치한 것이 아니라 순환배치하였던 것이다. 고정배치나 순환배치나 배치는 배치이므로 그게 그거가 아니겠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전혀 다르다.

미국 군부가 말하는 ‘항공우주원정군 전환부대(AEF)’의 순환배치란 F-16 비행대대를 남측에 고정배치하여 주한미7공군사령부의 작전통제를 받게 하는 게 아니라 넉 달 동안만 임시로 배치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쇼공군기지(Shaw AFB)에서 미국 동부지역 방위임무를 맡고 있는 제9공군 제20전투비행단 예하 제79비행대대 소속 F-16 12대가 군산공군기지에 순환배치될 때, F-16 12대와 지원요원 300명이 나타난 것은 물론이고, 이례적으로 제20전투비행단 지휘소까지 따라갔다. 원래 군산공군기지에는 주한미7공군사령부 예하 제8전투비행단 지휘소가 있는 데도, 제20전투비행단 지휘소를 그 공군기지에 추가로 배치한 것은 제79비행대대가 주한미7공군사령부의 작전통제를 받지 않고 잠깐 머물다가 떠난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군산공군기지에 나타난 제79비행대대는 2009년 3월부터 9월까지 넉 달 동안 잠깐 머물더니 어느 날 조용히 떠나버렸다. 미국은 2008년 6월에도 이탈리아 북동부의 아비아노공군기지(Aviano AFB)에 배치된 F-16 1개 비행대대와 지원병력 300명을 군산공군기지에 잠깐 배치하였다가 넉 달 뒤에 슬그머니 철수하였다. 이처럼 미국 군부는 아파치 공격헬기와 F-16 전투기를 일부 철수하면서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반환하기 위해 이른바 ‘보완전력(bridging capability)’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그 신조어에 걸맞는 알량한 위안행동만 보여주었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한국 군부는 서둘러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연합뉴스> 2011년 6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군부가 외국산 대형 공격헬기 36대를 수입하여 그 가운데 일부를 백령도에 배치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령도에서 이미 진행 중인 공격헬기 격납고 공사는 2011년 말까지 끝날 것이라고 보도하였으니, 이제는 이미 완공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인민군 특수전 병력의 기습상륙을 두려워하는 남측 군부가 아파치 공격헬기를 백령도에 배치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아파치 공격헬기를 백령도에 배치하려는 자구책은 자구책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아파치 공격헬기 1대 값은 1,800만 달러다. 36대를 수입하려면 6억4,800만 달러를 쏟아부어야 하며, 아파치 공격헬기 3개 항공대대를 운영하려면 엄청난 유지비를 해마다 계속 쏟아부어야 한다. F-16 최신형 전투기 1대 값은 1,880만 달러이므로, 전투기만큼 비싼 고가무기인 아파치 공격헬기를 인민군의 대구경 장거리포 사정권 안에 놓아두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은 짓이다.

그들의 어리석음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남측 군부가 아파치 공격헬기를 수입하여 작전배치하려면 15년 정도 사업추진기간이 요구된다. 그 15년 동안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바뀔지 남측 군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가 한반도 군사정세에 얼마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는지 남측 군부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변화를 전망하지 못하는 것은 주한미국군사령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미국군 지휘부에 주한미국군 전력증강을 요청하면서 특히 아파치 공격헬기 항공대대 증편을 강조한 것이다. 지금 미국과 남측은 똑같이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는데, 그처럼 엄청난 경비를 잡아먹으면서도 실전효과는 미지수로 남아있는 아파치 공격헬기 항공대대를 크게 증편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로 보인다. 시력이 매우 나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내다보지 못하는 미국 군부와 남측 군부가 빚더미에 함께 올라앉아 ‘아파치 잔치’를 차려놓으면, 그것은 곧 최후의 만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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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8

미 항공모함은 왜 동해에 들어가지 못할까?

<>[한호석의 개벽예감](20) “해저매복”“스텔스잠항”중인 북 잠수함들<> <>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2/06/17 [22:41] 최종편집: ⓒ 자주민보
 
북측이 공개하지 않은 잠수함 건조기술과 잠수함 작전능력

독자기술로 잠수함을 건조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 잠수함 건조기술은 아무 나라나 개발할 수 있을 만큼 손쉬운 기술이 아니다. 잠수함을 건조하는 원천기술을 가진 나라를 열거하면, 동양에서는 북측, 중국, 일본이 손꼽히고, 서양에서는 미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스웨덴이 손꼽힌다. 그 밖의 몇몇 나라들도 잠수함을 건조하기는 하지만, 독자기술로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잠수함 건조기술을 도입해서 잠수함을 만든다. 잠수함을 건조하는 고도의 군사공학기술이 있으면, 다른 모든 무기들도 마음만 먹으면 자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전략무기인 잠수함에 관한 군사정보는 어느 나라에서나 최고기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잠수함 건조기술과 잠수함 작전능력에 관한 민감한 정보는 좀처럼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다. 특히 북측은 미국과 정면대결을 계속해온 특수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자국의 군사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며, 따라서 다른 잠수함 건조국들보다 더 비밀리에 잠수함 건조기술을 개발하고 잠수함 작전능력을 강화, 발전시켰다. 그래서 북측의 잠수함 건조기술과 잠수함 작전능력에 관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단편적인 정보나 추정자료들 뿐이다.

남측 언론매체들이 북측 잠수함에 관해 최근에 보도한 기사내용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 2012년 4월 5일 보도에 따르면, 동해안에 있는 인민군 잠수함기지 두 곳에서 잠수함 3,4척이 출항하였는데, 미국군 정찰위성이 더 이상 추적하지 못하였다. 또한 <중앙일보> 2012년 5월 1일 보도에 따르면, 동해안에 있는 인민군 잠수함 기지들에서 잠수함 8,9척이 출항하였는데, 이번에도 미국군 정찰위성이 더 이상 추적하지 못하였다. 위의 두 보도기사에서 인민군 잠수함 척수를 4척 또는 9척이라고 정확히 지적하지 못하고 3,4척 또는 8,9척으로 어림잡은 까닭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포착한 인민군 잠수함 척수가 정찰위성의 촬영시간대에 따라 바뀌는 통에 헷갈렸기 때문이다.

북측의 해군기지는 두 종류다. 하나는 방파제가 있는 해군기지이고, 다른 하나는 방파제가 없는 해군기지다. 그 가운데서 방파제가 있는 해군기지를 드나드는 인민군 잠수함은 잠수함대에 배치된 신병들의 훈련에 운용되는 오래된 잠수함들이다. 그와 달리, 실제작전에 동원되는 인민군 잠수함은 신형 잠수함들이다.

서방측 군사전문가들은 인민군 잠수함대에 낡은 잠수함들만 배치되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전혀 다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국방정보국(DIA)이 1997년에 발간한 ‘북코리아 국가편람(North Korea Country Handbook)’에 서술된 정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정보에 따르면, 북측은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중국에서 로미오급(Romeo-class) 잠수함을 7척 수입하였고, 1976년부터 로미오급 잠수함을 자력으로 건조하였다.

주목하는 것은, 북측이 1976년부터 로미오급 잠수함을 면허건조(license-build)하면서 잠수함 건조기술을 축적, 발전시키다가 나중에는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여 로미오급 잠수함보다 성능이 더 우수한 신형 잠수함을 자력으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중국도 1969년부터 소련산 로미오급 잠수함을 면허건조하다가, 1971년부터는 독자기술로 신형 잠수함을 만들었는데, 중국이 초기에 면허건조한 로미오급 잠수함을 우한급(Wuhan-class) 잠수함이라 부르고, 나중에 독자기술로 만든 개량형 잠수함을 밍급(Ming-class) 잠수함이라고 부른다. 중국은 1971년부터 2000년까지 밍급 잠수함을 21척 건조하였는데, 밍급 잠수함 성능도 지속적으로 개량되었다.

중국의 잠수함 건조기술발전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북측도 처음에는 로미오급 잠수함을 면허건조하다가 나중에는 독자기술을 개발하여 동급의 신형 잠수함을 건조하였다. 그런데 북측과 중국의 잠수함 건조기술발전사를 비교하면, 다른 점이 보인다. 중국과 달리, 북측이 면허건조한 로미오급 잠수함을 무슨 급 잠수함으로 부르는지, 또한 북측이 독자기술로 만든 개량형 잠수함을 무슨 급 잠수함으로 부르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리고 동급의 개량형 잠수함을 몇 척이나 건조하였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미국 국방정보국이 1997년에 발간한 ‘북코리아 국가편람’에는 북측이 1990년대 중반까지 로미오급 잠수함 22척을 보유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미국 국방정보국의 부정확한 대북군사정보를 읽은 서방측 군사전문가들은 다른 나라들에서는 이미 퇴역하여 훈련용으로나 쓰이는 1970년대의 낡은 로미오급 잠수함 22척을 북측이 이제껏 운용하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 국방정보국의 부정확한 대북군사정보가 불러일으킨 착오다.

중국이 소련산 로미오급 잠수함에 기초하여 우한급 잠수함을 면허건조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불과 2년만에 독자기술로 신형 밍급 잠수함을 만들었던 경험을 살펴보면, 북측도 로미오급 잠수함을 면허건조하기 시작한 1976년으로부터 몇 해 지난 1970년대 말에 독자기술로 2,000t급 신형 잠수함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 밍급 잠수함 21척을 건조하였으므로, 북측도 2,000t급 신형 잠수함을 20척 이상 건조하였을 것이다.

원래 소련에서 만든 로미오급 잠수함은 수중배수량 1,830t, 길이 76.6m, 폭 6.7m, 잠항속도 시속 23km, 작전거리 14,484km인데, 54명이 탈 수 있고, 533mm 어뢰발사관 8문이 장착되었으며, 사거리 20km의 533mm 어뢰 14발과 기뢰 28발을 싣는다. 북측이 1970년대 말에 자력으로 건조한 2,000t급 신형 잠수함은 그 이전에 소련에서 만든 로미오급 잠수함보다 성능이 더 우수한 잠수함이었으며, 그 뒤에 지속적으로 성능개량을 하였으므로 지금 북측이 운용하는 2,000t급 잠수함은 첨단성능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남측 국방부가 작성한 국정감사자료 ‘북한의 비대칭전력 현황’을 인용한 <조선일보> 2010년 10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 잠수함이 2년만에 10여 척이나 더 늘었다. 또한 한국군 소식통이 전한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0년 5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2010년 당시 능력확장공사를 마친, 함경남도 신포에 있는 륙대리 조선소에서는 잠수함을 연간 4,5척씩 건조한다고 한다. 이것은 북측의 잠수함 건조능력이 2000년대 이후 이전보다 더 강화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2006년 3월 9일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버월 벨(Burwell B. Bell)은 북측이 “세계 최대 잠수함 전단(the world's largest submarine fleet)”을 보유하였다고 말한 바 있다.

인민군 잠수함은 미국군 정찰위성을 따돌리기 위해 거대한 해안동굴처럼 생긴 해군기지에서 바다밑으로 은밀히 드나들기 때문에 미국군 정찰위성이 전혀 포착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한국군 소식통이 전한 정보를 인용한 <연합뉴스> 2010년 5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함경남도 리원군에 있는 차호 잠수함기지와 함경남도 신포시 앞바다에 있는 마양도 잠수함기지는 “대규모 지하화된 잠수함기지”라고 한다.

<미주 중앙일보> 2010년 4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상업위성이 촬영한 황해남도 과일군 비파곶과 황해남도 옹진군 사곶에 있는 해군기지 두 곳은 바닷가에 있는 산을 통째로 뚫어 건설하였는데, 산 양쪽에 바다로 통하는 해안동굴형 출입구를 낸 해군기지들이다. 비파곶 해군기지에 있는 두 개 출입구의 직선거리는 592m이고, 사곶 해군기지에 있는 두 개 출입구의 직선거리는 272m다. 이처럼 요새화된 해군기지에는 잠수함과 군함이 한꺼번에 여러 척 들어갈 수 있다. 북측의 요새화된 해군기지에는 방파제가 없는데, 해안동굴형 출입구에 큰 강철 차폐문을 설치해두었기 때문에 방파제를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민군 잠수함이 그처럼 요새화된 해군기지를 은밀히 드나들고 있으니, 대북군사정보에 밝다고 자처하는 미국 국방정보국마저도 인민군 잠수함이 정확히 몇 종류이고, 몇 척인지 파악하지 못하였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인민군 잠수함 전단이 양키급(수중배수량 9,200t) 같은 대형 잠수함과 골프급(수중배수량 2,800t) 및 로미오급(수중배수량 1,830t) 같은 중형 잠수함과 상어급(수중배수량 370t)이나 연어급(수중배수량 130t)이나 유고급(수중배수량 110t) 같은 소형 잠수정을 작전환경에 맞게 배합,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만 세상에 알려졌을 뿐이다.


해저매복에 나선 진록색 소형 잠수함

2012년 5월 29일 <이란이슬람공화국방송(IRIB)>의 보도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이란 해군 기술진이 6개월 동안 3,200t급 중형 잠수함 부품 18,000여 개 이상을 자체 기술로 새로 만들어 교체하는 잠수함 성능개량에 성공하였다는 보도였다. 이란이 개조한 잠수함은 지난 시기 러시아에서 척당 6억 달러나 주고 수입한 킬로급(Kilo-class) 잠수함이다. 이란은 1991년부터 1996년 사이에 러시아에서 킬로급 잠수함 3척을 수입하고, 각각 타레크(Tareq) 901, 누르(Noor) 902, 유누스(Younus) 903이라는 함명을 붙였는데, 이미 잠수함 수명연한 30년을 넘기는 바람에 이번에 전면개조할 수밖에 없었는데, 전면개조로 다시 태어난 잠수함이 타레크 901이다.

이란의 <파즈 통신사(Fars News Agency)> 2012년 6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란은 이번에 킬로급 잠수함을 전면개조한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핵추진 잠수함까지 자력으로 건조하려는 아름찬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 이란 해군이 자체 건조한 가디르급 잠수함. 함체가 진록색이며, 함체 상판에 수중침투운반체를 탑재한다. [사진= IRNA]


이처럼 잠수함 건조국 반열에 올라선 이란은 얼마나 강한 잠수함 작전능력을 가졌을까? 현재 이란은 잠수함 20척을 작전배치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12척이 가디르급(Ghadir-class) 잠수함이다. 이란이 가디르급 잠수함을 자력으로 개발하기까지 10년이 걸렸는데, 2009년 11월 28일 이후 자국산 120t급 가디르급 잠수함을 수심이 얕은 페르시아만 곳곳에 작전배치하여 미국 해군 제5함대 항모강습단의 무력침공에 대비한 연안방어작전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 의회연구소(CRS) 정보를 인용한 <인더스트리얼 뉴스(Industrial News)> 2009년 11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이란이 북측으로부터 소형 잠수함 여러 척을 수입하고, 잠수함 건조사업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 서방세계에 처음으로 알려진 때는 2004년이다. 북측이 신형 잠수함 여러 척을 이란에 수출한 때는 2003년이다. 미국 군부는 북측이 이란에 수출한 신형 잠수함을 연어급(Salmon-class) 잠수함이라고 부른다. 한국군 정보당국 관계자가 전한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0년 5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의 연어급 잠수함은 수출용으로 개발된 것이어서 국내에서 운용되지는 않는다고 하였고, <조선일보> 2010년 5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연어급 잠수함 10척을 작전배치하였다고 한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이란의 가디르급 잠수함은 북측의 연어급 잠수함을 면허건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승조원 18명이 탑승하는 연어급 잠수함은 수중배수량 130t, 길이 29m, 폭 3m, 잠항속도 시속 20km이며, 533mm 어뢰 2발과 기뢰를 장착한다.

이란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가디르급 잠수함에 관한 정보를 읽어보면, 세 가지 특징이 눈길을 끈다.

첫째, 가디르급 잠수함의 특징은 정찰병을 은밀히 수중침투시키는 소형 잠수정인 수중침투운반체(Swimmer Delivery Vehicle) 알 사베핫(Al Sabehat)-15 1척을 함체 상판에 탑재할 수 있게 설계된 것이다. 위성항법장치가 있는 알 사베핫-15는 2명이 탈 수 있고, 수중에서 분리된다. 가디르급 잠수함과 마찬가지로 북측의 연어급 잠수함도 인민군 해상저격여단 병력이 탈 수중침투운반체(SDV)를 함체 상판에 탑재한다.

둘째, 가디르급 잠수함의 특징은 함체 전체에 진록색 도료가 칠해진 것이다. 세계에서 진록색 잠수함을 운용하는 나라는 북측과 이란밖에 없다. 북측은 자체로 생산하는, 미그-29처럼 생긴 익명의 자국산 전투기에도 진록색 도료를 칠했고, 각종 자국산 잠수함들에도 진록색 도료를 칠했다. 북측 언론매체는 2011년 3월 14일 서해에서 실시한 인민군 합동타격훈련에 참가한 잠수함 1척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도하였는데, 그 잠수함 함체에 바다색깔과 같은 진록색 도료가 칠해져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잠수함 함체에 칠한 진록색 도료는 적의 음파탐지망을 뚫는 스텔스 기능성 특수도료다.

인민군이 작전배치한 신형 잠수함들은 스텔스 기능을 가진 진록색 도료를 함체에 칠하였을 뿐 아니라, 함체 자체가 음파탐지기를 피할 수 있는 섬유강화합성수지(FRP)로 만들어졌고, 소음을 줄이기 위해 특수제작한 초승달형 이중 스크류를 달았으니 적의 음파탐지망을 뚫을 수 있다. 더욱이 인민군이 작전배치한 소형 잠수함은 엔진을 끈채,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동해 해류를 타고 아주 조용히 이동할 수도 있으니 적의 음파탐지망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셋째, 가디르급 잠수함의 특징은 매복작전을 벌인다는 데 있다. 이란의 <파즈 통신사> 2012년 2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가디르급 잠수함은 페르시아만 바다 밑바닥(seabed)에 내려앉아 착지매복하다가 미국군 항모강습단이 인근 해상에 출몰하면 해저에서 기습하는 기발한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디르급 잠수함이 페르시아만 바다 밑바닥에 내려앉아 해저매복하다가 미국군 항공모함을 향해 533mm 어뢰를 기습 발사하면, 유난히 몸집에 커서 매우 느리게 움직이는 항공모함이 그 어뢰를 피할 길은 없을 것이다. 항공모함 격침에는 소형 잠수함의 해저착지 매복기습전이 위력적이다. 바레인에 전진배치된 미국 해군 제5함대 항모강습단은 이란 잠수함의 해저착지매복에 두려움을 느끼고, 이전처럼 페르시아만을 제멋대로 들락날락하지 못하고 매우 조심하고 있다.

원래 소형 잠수함의 해저착지 매복기습전은 북측에서 개발한 ‘주체전법’의 일환이다. 한국군 정보당국의 비공개 문건을 인용한 <월간중앙> 2010년 4월호 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종류 불상의 폭탄을 대량 장착한 폭탄화된” 10명이 탈 수 있는 소형 잠수함을 동해에 작전배치하였는데, 동해안 잠수함기지에서 출항하여 동해 공해상에 매복하다가 약 1개월 뒤에 다른 잠수함과 교대한다고 한다.

그런데 동해 공해상까지 나가 약 1개월 동안 수중작전을 벌이기에 적합한 인민군 잠수함은 신형 연어급 잠수함(이란에서는 가디르급 잠수함)이 아니라 상어급(Shark-class) 잠수함이다. 승조원 25명이 탑승하는 상어급 잠수함은 수중배수량 325t, 길이 35.5m, 폭 3.8m이며, 사거리 20km의 533mm 어뢰 4기와 기뢰 16발을 장착하고 수심 150m까지 내려가고 시속 10km 속도로 잠항하며, 특히 바다 밑바닥에 내려앉는 해저착지기능(bottoming function)이 있다. 미국 군부가 그 잠수함을 ‘상어급’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해저착지 매복기습으로 미국군 항모강습단에게 마치 상어의 기습공격처럼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텔스 잠항에 나선 신형 400t급 잠수함

서방측 군사전문가들은 이란의 가디르급 잠수함만이 아니라 나항급(Nahang-class) 잠수함도 북측이 이란에 제공한 잠수함 건조기술로 면허건조되었다고 본다. 이란의 나항급 잠수함은 400t급 잠수함이므로, 북측이 신형 400t급 잠수함 건조기술을 이란에 제공하여 면허건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항’이란 말은 현지어로 고래라는 뜻이다.

▲ 이란 해군에 1척밖에 없는 나항급 잠수함. 스텔스 잠항으로 수중매복작전을 펼칠 수 있다. [사진= navyrecognition.com]


이란 해군에는 나항급 잠수함이 1척밖에 없다. 이란 해군이 2006년 3월에 작전배치한 나항급 잠수함은 해상탐지레이더와 거의 완벽한 스텔스 기능을 갖추고, 시속 25km의 속도로 잠항한다.

이란 해군에 나항급 잠수함이 1척밖에 없어서 그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없었는데, 2009년 6월 28일 이란의 군항 반다르 압바스(Bandar-e-Abbas)를 촬영한 위성사진에 마침 나항급 잠수함의 모습이 처음으로 포착되었다.

<연합뉴스> 2011년 4월 6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기존 상어급 잠수함을 개량한 신형 잠수함을 작전배치하였는데, 기존 상어급 잠수함 길이는 35.5m인데 비해, 신형 잠수함 길이는 40m다. 잠수함 길이가 4.5m 더 길어진 신형 잠수함이 400t급 스텔스 잠항 잠수함이다. 바로 이 400t급 신형 잠수함이 이란의 나항급 잠수함의 ‘원조’다.

인민군의 연어급 잠수함이 얕은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았다가 불의의 기습을 가하는 해저매복 잠수함이라면, 인민군의 신형 400t급 잠수함은 바닷속을 조용히 잠항하는 스텔스 잠항 잠수함이다.

이란 해군이 운용하는 나항급 잠수함의 특징은 후트(Hoot)라 부르는 초공동어뢰(supercavitating torpedo)를 장착한 것이다. 이란이 제작한 초공동어뢰 후트는, VA-111 쉬크발(Shkval)이라 부르는 러시아산 초공동어뢰를 모방생산한 것이다. 원래 쉬크발은 길이 8.2m, 지름 533mm, 무게 2.7t, 탄두무게 210kg이며, 액체연료로켓으로 강한 추진력을 내기 때문에 시속 370km 이상 초고속으로 13km 밖에 있는 적함을 치명적으로 타격한다.

이런 초공동어뢰를 작전배치한 나라는 러시아, 미국, 독일, 이란으로 알려졌는데, 이란의 나항급 잠수함처럼 북측의 신형 400t급 잠수함도 당연히 초공동어뢰를 장착하였다. 초공동어뢰를 발사하는 강력한 대함공격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인민군의 신형 400t급 잠수함은 미국군 항모강습단을 공격하기에 알맞게 설계된 잠수함인 것이다.

<조선일보> 2011년 3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현재 북측은 상어급 잠수함을 40척 이상 작전배치하였는데, 그것은 기존 상어급 잠수함과 신형 400t급 잠수함을 모두 합해 40척 이상 작전배치하였다는 뜻이다. 신형 연어급 잠수함들이 연안 해저에 조용히 내려앉아 미국군 항공모함을 기다리고, 400t급 신형 잠수함들이 바닷속에서 조용히 잠항하며 미국군 항공모함을 기다리고 있으니, 한때 ‘무적함대’라고 우쭐대던 미국 해군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인민군 잠수함대의 매복작전이 두려워 동해로 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미국군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동해에서 벌어진 북침전쟁연습에 참가하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으며, 북침작전을 서해 남쪽 해상과 동중국해 북쪽 해상이 만나는 먼바다로 옮길 수밖에 없었던 말못할 퇴각사연이 거기에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민군이 펼치는 신형 연어급 잠수함의 해저착지매복과 신형 400t급 잠수함의 스텔스잠항매복은 미국 해군 항모강습단의 동해 진입을 막아주는 위력적인 접근차단전략(access-denial strategy)이다.(2012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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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3

위킬릭스 비밀전문에 드러난 종미수구 증후군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 (213)
통일뉴스 2012년 6월 11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2009년 10월까지 작통권 이양하겠다던 미국

이 땅의 수구세력이 자행하는 종북모략과 사상검증협박으로 세상이 너무 어지럽다. 결국 대통령까지 대국민 라디오연설에서 종북모략 발언을 꺼내놓았으니 갈 데까지 다 간 것이다.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종북모략과 사상검증위협이 튀어나온 것은, 그것이 대선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올해 대선에서 이겨 재집권하려는 수구세력의 욕구가 종북모략과 사상검증협박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종북모략과 사상검증협박을 자행한 수구세력이 자기들의 종미적 정체는 감추고, 자기들의 정적들에게는 ‘종북딱지’를 붙여대며 ‘사상검증’을 하겠노라고 을러댄다는 점이다. 수구세력의 종북모략과 사상검증협박에 맞서려면, 그들이 감추고 있는 종미적 정체를 국민들에게 폭로해야 한다. 이 땅의 수구세력은 미국을 추종하다 못해 미국에게 철저히 종속되었다는 뜻에서 종미세력이다.

수구세력의 종미적 정체를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도는 언론보도밖에 없는데, 이 땅의 주요언론매체들은 예외없이 종미언론매체들이므로 수구세력의 종미적 정체를 미화하거나 은폐해주기에 바쁘고 자발적으로 종북모략선동에 앞장을 섰다. 이처럼 수구세력의 종미행위가 국민들의 시야 밖에서 은밀히 벌어지고 있으므로, 그들의 종미적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하게도, 폭로전문 누리집 ‘위킬릭스(Wikileaks)’에 실린, 주한미국대사관의 비밀전문들이 이 땅의 수구세력이 감추고 있는 종미적 정체를 폭로해주었다. ‘위킬릭스’에는 주한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방대한 분량의 비밀전문들이 실려있어서 그것을 한꺼번에 다룰 수는 없으므로, 이 글에서는 이 땅의 수구세력이 한국군 작전통제권 이양문제와 주한미국군 재배치 경비부담문제에 관련하여 각각 취했던 종미행위에 대해서만 폭로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작전통제권은 군사주권의 실체이며, 군사주권은 국가주권의 핵이다. 따라서 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한 것은 군사주권이 없다는 뜻이며, 군사주권이 없다는 말은 국가주권이 없다는 뜻이다. 국가주권이 없으면 정상국가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군사작전통제권 문제야말로 국가관의 핵심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땅의 수구세력은 자기들의 정적들에게 ‘국가관’을 검증하겠노라고 협박하지만, ‘위킬릭스’에 폭로된 비밀전문들을 읽어보면, 그런 협박을 꺼내놓은 수구세력이야말로 ‘국가관’을 검증받아야 한다.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조기에 이양하겠다고 결정한 미국에게 굴욕적으로 하소연하면서 작전통제권을 어떻게 해서든지 넘겨받지 않으려고 버텨온 수구세력의 병리적 행동, 바로 이것이 한국군 작전통제권 이양문제에 관련된 비밀전문들에서 드러난 종미의 추악한 몰골이다.

국가주권의 핵심인 작전통제권을 반환하겠다고 하는 데도 그것을 받지 않겠다고 버티는 해괴망측한 사태는, ‘국가관’에 관한 사상검증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서 척결되어야 할 대상이 수구세력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위킬릭스’에 드러난, 수구세력의 추악한 종미몰골은 이러하였다.

2007년 3월 6일 주한미국대사관 정치참사 조셉 윤(Joseph Y. Yun)이 작성하여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 ‘미국-한국 안보정책구상 제11차 회담(SPI 11: U.S.-ROK SECURITY POLICY INITIATIVE TALKS)’에 따르면, 연합이행실무단(Combined Implementation Working Group)은 2007년 1월 31일부터 한국군 작전통제권 이양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하였고, 2007년 3월 현재 한국군 전역 전투사령부 창설문제를 논의하는 중이었는데, 2006년에 진행된 한미안보협의회에서 미국 군부와 한국 군부는 2009년 10월부터 2012년 3월 사이에 작전통제권 이양을 마무리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 비밀전문에 나오는, 2006년에 진행된 한미안보협의회란 2006년 10월 20일 워싱턴 디씨에서 진행된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제38차 회의를 말한다. 바로 그 회의에서 당시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와 당시 한국 국장장관 윤광웅이 한국군 작전통제권 이양을 2009년 10월부터 2012년 3월 사이에 마무리하자고 합의했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작전통제권 이양을 마무리하는 시기를 특정하지 않고 2009년 10월부터 2012년 3월 사이라고 모호하게 정했다는 사실이다. 위의 비밀전문은 마무리 시기를 그처럼 모호하게 정한 내막을 말해주지 않지만, 다른 비밀전문들을 읽어보면 2006년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한국 군부와 미국 군부가 마무리 시기에 대한 의견이 갈려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 군부는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2009년 10월까지 이양하려고 계획하였던 반면, 한국 군부는 2012년 3월까지 반환받겠다고 우겼던 것이다.

위의 비밀전문에 따르면, 작전통제권 이양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3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전문적 판단이며, 따라서 작전통제권 이양은 2012년보다 “훨씬 이전에” 완료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07년 1월 22일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 빌 스탠튼(Bill Stanton)이 작성하여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 ‘벨 사령관과 청와대 국가안보회의 정책담당자 백의 회동(GENERAL BELL MEETS KOREAN NSC POLICY CHIEF BAEK)’에 따르면, 2007년 1월 17일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버월 벨(Burwell B. BELL)은 당시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김병관을 대동하고 당시 신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수석 백종천과 만난 자리에서 작전통제권 이양에 3년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지적을 보면, 2007년 1월 31일부터 작전통제권을 이미 이양하기 시작한 미국은 이르면 2009년 10월 말에, 늦어도 2010년 1월 말에 이양작업을 모두 마칠 것으로 예견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06년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미국은 가장 이른 시기인 2009년 10월 말까지 이양작업을 끝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미국이 이양을 매우 서두르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한국군 작전통제권 이양작업이 당시 미국의 계획대로 서둘러 추진되었더라면, 한국 군부는 벌써 2009년 10월 말에 작전통제권을 반환받았을 것이다.

그들은 피터 팬 증후군에 걸렸다

그런데 한국 군부가 자기의 작전통제권을 반환받는 시기를 뒤로 늦춰달라고 미국에게 간청하였다. 2006년 10월 20일에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 제38차 회의에서 미국이 2009년 10월까지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이양한다고 못박으리라고 예상한 한국 군부는 그 회의 직전에 황망히 연기간청에 매달렸다.

2006년 9월 8일 당시 주한미국대사였던 알렉산더 버쉬바우(Alexander Vershbow)가 작성하여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 ‘대사와 윤 국방장관의 9월 6일 회동(AMBASSADOR'S SEP 6 MEETING WITH DEFENSE MINISTER YOON)’에 따르면, 버쉬바우를 만나 미국의 한국군 작전통제권 이양시기를 2012년으로 늦춰달라고 간청한 사람은 당시 국방장관 윤광웅이다.

작전통제권 이양시기를 결정할 한미안보협의회를 얼마 앞두고 한국 군부가 미국에게 그처럼 연기간청을 하자, 미국 국방부는 국방장관실 동북아시아 국장 존 힐(John Hill)을 서울에 급파하여 실태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게 하였다.

2006년 9월 18일 주한미국대사관 정치참사 조셉 윤이 작성하여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 ‘국방장관실 동북아 국장 힐의 서울 방문 중 불거진 작통권 이양 문제(OPCON TRANSFER ISSUE DOMINANT DURING OSD NORTHEAST ASIA DIRECTOR HILL'S VISIT TO SEOUL)’에 따르면, 남측 군부가 작전통제권 이양시기를 2012년으로 연기해달라고 미국에게 간청하면서 열거한 아홉 가지 사유는 아래와 같다.

작전통제권 이양문제에 관한 남측 정치권 분열이 한미동맹을 손상시킬 것으로 보는 우려, 조기이양이 한반도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우려, 미국이 한국을 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보 문제 처리방식에 대한 불신, 기존 한국군 지휘구조를 전투지휘부로 변경하는 데 필요한 시간,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연간 9%씩 증액하는 국방비지출계획을 국회에서 승인받는 것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 미국이 제공할 “공백 메우기 능력(bridging capabilities)”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들어야 할 필요성, 정전협정 유지권한을 이양하는 문제와의 연계, 남측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효과적인 대국민 홍보전략을 개발할 필요성 등이다.

서울에 나타난 미국 국방장관실 동북아시아 국장 존 힐에게 한국 군부는 연기간청사유를 아홉가지나 늘어놓았지만, 그 사유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사유는 미국이 작전통제권을 이양한다는 핑계를 대고 실제로는 “한국을 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극도의 의구심과 안보불안감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06년 9월 25일 당시 주한미국대사 버쉬바우가 작성하여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 ‘안보정책구상 10: 작통권과 그 이상의 작통권(SECURITY POLICY INITIATIVE 10: OPCON AND MORE OPCON )’에서 버쉬바우는 국방부 정책차관 권안도를 단장으로 한 남측 정부 대표단은 미국이 작전통제권 이양시기를 2009년으로 정하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경우 한미 지휘관계연구(ROK-U.S. Command Relations Study)가 작성한 보고서에 대한 서명을 거부할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작전통제권 조기이양에 반대하는 7개 반대파를 열거하였는데, 그가 열거한 조기이양 반대파는 전직 국방장관들, 퇴역 장성들, 육사 졸업생 동문회, 재향군인회, 전직 외교관리들,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희망 21 그룹 등이다. 비밀전문에 따르면, 7개 반대파들이 조기이양을 반대하는 까닭은 미국이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남측에 이양하는 것을 미국이 남측을 “내버리는 것(abandonment)”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미국으로부터 군사주권을 반환받으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게 된다고 벌벌 떠는 해괴망측한 태도야말로 ‘종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한국 군부만 그런 게 아니었다. 2006년 11월 20일 당시 주한미국대사 버쉬바우가 작성하여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 ‘작통권 문제에 관해 의견을 밝힌 야당 의장(OPPOSITOIN CHAIRMAN CLARIFIES OPCON REMARKS)’에 따르면, 2006년 11월 16일 당시 한나라당 대표 강재섭은 버쉬바우에게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작전통제권이 이양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07년 2월 27일 당시 주한미국대사 버쉬바우가 작성하여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 ‘전시작통권 이양 이전에 조선을 비핵화한다고 제의한 국회의원들(LAWMAKERS PROPOSE DENUCLEARIZED DPRK BEDORE WARTIME OPCON TRANSDER)’에 따르면, 2007년 2월 16일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황진하와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 김송자, 그리고 전직 국방장관 조성태가 버쉬바우를 만나 미국이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이양하기 전에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남북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남북 사이의 군사적 신뢰를 강화해야 한다는 세 가지 선결조건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남측 수구정객들은 남측 군부보다 한 술 더 떠서 작전통제권 반환시기를 아예 무한정하게 늦춰보려고 하였다. 남측 군부와 수구정객들의 집요한 연기간청을 받은 미국은 작전통제권 이양시기를 결국 2012년 4월 17일로 늦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기부터 또 다시 작전통제권 이양시기 연기간청을 재개하였다. 2008년 10월 7일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들 가운데는 “작전통제권 전환의 적정성 평가와 보완”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노무현 정부 말기에 남측 군부와 수구정객들에 의해 2009년 10월 말에서 2012년 4월 17일로 연기된 반환시기를 이명박 정부가 또 다시 연기하려는 것이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그 반환시기를 2015년 12월로 또 다시 연기하였다. 2010년 9월에 완성된 이른바 ‘전략동맹(Strategic Alliance) 2015’에서 미국과 남측은 한국군 작전능력을 강화하는 문제, 주한미국군을 후방으로 재배치하고 가족동반 근무제를 실시하는 문제, 미8군사령부를 전투사령부로 개편하는 문제 등을 재검토한 끝에 원래 2012년 4월까지 이양하기로 하였던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2015년 12월로 연기하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을까봐 걱정하면서 어머니에게 꼭 붙어 졸졸 따라 다니는 정신적 병리현상을 피터 팬 증후군(Peter Pan syndrome)이라 한다. 스코틀랜드 작가 배리(J. M. Barrie)가 1902년에 발표한 소설 ‘작고 하얀 새(The Little White Bird)’에 나오는 피터 팬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라지 않는 소년’의 모습에서 연유한 병명이다. ‘위킬릭스’가 폭로한 비밀전문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땅의 수구세력은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을까봐 걱정하면서 미국에게 꼭 붙어 사는 피터 팬 증후군에 걸려 있는 종미세력이다.

100억 달러에서 130억 달러로 늘어난 사연

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국군 전원에게 가족동반 근무제를 실시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한 때는 2008년이다. 가족을 동반하지 못하고 홀로 근무하는 주한미국군은 1년 단위의 단기근무에 따라 자주 교체되는데, 앞으로 가족동반 근무제를 실시하는 경우 가족을 동반하는 3년 단위의 장기근무로 대체되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2010년 2월 1일에 발표한 ‘2010년도 4개년 국방검토(QDR) 보고서’에서 “주한미국군은 전진배치에서 가족을 동반한 전진주둔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하면서, 가족동반 근무제를 시행하면, 주한미국군을 급변사태가 일어난 다른 나라로 차출하였다가 다시 복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였다.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개념에 따라 주한미국군을 다른 나라로 차출하고 복귀시키는 것은 미국이 남측을 ‘비전투지역’으로 전환시킨다는 뜻이다.

2012년 5월 15일 미국 의회연구소(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가 펴낸 ‘미국-남코리아 관계(U.S.-South Korea Relations)’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주한미국군 재배치라는 것은 서울 용산기지에 배치된 병력 9,000명 가운데 상당 부분을 평택기지로 재배치하고, 전방에 배치된 제2사단 병력 10,000명을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한다는 뜻이며, 그에 따라 기존 주한미국군기지 104개소를 48개소로 축소하여 오산공군기지 및 평택육군기지와 대구후방기지로 통합하고, 전방에는 전투훈련기지들만 남겨놓는다는 뜻이다. 이런 정보를 종합하면, 오산공군기지 및 평택육군기지에 수용해야 할 인원은 주한미국군 병력과 그 가족을 포함하여 50,000명이 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미국 연방의회는 주한미국군 가족동반 근무제 실시에 따른 막대한 경비문제에 우려를 표하고, 그 계획을 재검토할 것을 미국 국방부에 요구하였다. 이를테면, 2011년 6월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는 ‘2012년도 국방법안 수정안’을 채택하였는데, 수정안 내용은, 미국 군부가 주한미국군 가족동반 근무제를 실시하려는 계획을 다시 검토하고, 의회에 완성된 계획안을 제출하기 전까지 그 계획 실행에 연방정부의 재정지출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2012년 5월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에 제출된 ‘2013회계연도 국방법안’에도 주한미국군 가족동반 근무제를 실시하기 위한 재정지출을 계속 금지시키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이처럼 미국 연방의회가 주한미국군 가족동반 근무제에 대해 제동을 건 까닭은 지금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파산상태로 밀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 마크 리퍼트(Mark Lippert)는 주한미국군 가족동반 근무제가 바람직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에 따른 재정문제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고, 주한미국군사령관 제임스 서먼(James D. Thurman)도 2012년 3월 하순 연방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하여, 현재 주한미국군 가족동반 근무제를 실시할만한 재정이 없다고 하면서 현상유지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주한미국군 가족동반 근무제를 실시하느냐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문제는, 서울 용산에 있는 미국군기지를 평택 미국군기지로 옮기는 데 드는 이전경비, 그리고 평택기지를 건설하는 데 드는 건설경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전경비만이 아니라, 오산공군기지에 배치된 기존 병력 이외에 50,000명이나 더 불어난 인구가 살아갈 평택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큰 도시를 통째로 건설하는 것과 같으므로, 거기에 천문학적인 건설비용이 들어간다. 그러한 이전경비와 건설경비를 모두 합쳐 주한미국군 재배치 경비라고 통칭한다.

그러면 주한미국군 재배치 경비는 모두 얼마나 될까? 2008년 3월 12일 미국 연방하원 세출위원회에 출석한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바월 벨은 주한미군군 재배치 경비가 괌(Guam)에 있는 미국군기지를 옮기는 경비와 맞먹는 규모로 약 100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2012년 5월 15일 미국 의회연구소가 펴낸 ‘미국-남코리아 관계’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원래 미국 군부가 계상한 재배치 경비총액은 100억 달러 정도였는데, 2010년에 와서 재배치 경비가 130억 달러로 늘어났다고 지적하였다. 이처럼 경비가 30억 달러 더 늘어난 까닭은, 미국이 평택기지의 방호시설을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위협감소국(DTRA)이 정한 까다로운 설계기준에 맞춰 핵공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강화하라고 추가로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렸다

그러면 주한미국군 재배치에 들어갈 경비 130억 달러는 누가 부담하는 것일까? 2008년 3월 12일 미국 연방하원 세출위원회에 출석한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바월 벨은 “지난 2004년에 미국과 남측이 합의한 용산기지 재배치 계획에서 남측은 용산기지를 평택기지로 옮기는 이전경비 ‘대부분(vast majority)’을 부담하기로 합의했다”고 하면서, “그들(남측 정부를 뜻함-옮긴이)이 우리에게 이전을 요구했고, 그들이 이전경비 대부분을 지불하겠다고 말했으며 지금도 그렇다”고 말했다.

2007년 4월 2일 주한미국대사관 정치참사 조셉 윤이 작성하여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 ‘주한미국군 재배치에 이바지하는 한국: 잔에는 절반 이상 물이 찼다(ROK CONTRIBUTION TO USFK RELOCATION: A GLASS MORE THAN HALF FULL)’에 따르면, 2007년 3월 20일 남측 국방부의 주한미국군 재배치 문제 담당관인 육군 중장 권행근은 남측 정부가 주한미국군 재배치에 요구되는 예상 총경비 가운데 대략 절반(approximately half of the total estimated cost)을 지불할 계획이라고 발표하지만, 실제로는 약 93%를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지금까지 남측 국방부는 주한미국군 재배치 경비를 남측과 미국이 각각 절반씩 부담할 것처럼 말해왔으나, 그것은 국민을 속인 거짓말이었다. 남측은 주한미국군 재배치 경비 가운데 무려 93%를 부담하기로 밀약한 것이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남측 정부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0년 8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주한미국군 재배치 경비 가운데 미국이 부담할 7%마저도 남측이 내놓은 주한미국군 유지비를 전용한다는 것이며, 그로써 미국은 사실상 한 푼도 내지 않고 주한미국군을 재배치하고 평택기지를 공짜로 가져가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지금 미국은 남측이 내놓은 주한미국군 유지비 가운데 상당액을 쓰지 않고 미국 은행에 예치하는 중이다.

미국은 이처럼 주한미국군 유지비 가운데 상당액을 쓰지 않게 되니, 당연히 유지비가 모자라게 되고, 따라서 남측에게 유지비를 무리하게 증액하라고 강요하는 수밖에 없다. 2012년 5월 15일 미국 의회연구소가 펴낸 ‘미국-남코리아 관계’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남측과 미국이 채택한 이른바 ‘특별조치합의(Special Measures Agreement)’는 남측이 2011년에 주한미국군 유지비의 42%에 이르는 7억4,300만 달러를 분담하도록 정했는데, 최근 남측과 미국이 진행한 협상에서 미국은 남측에게 유지비 분담금을 최소 50%까지 증액하라고 요구하였다. 미국은 남측이 해마다 4% 이상 증액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특별조치합의’마저 깨고, 분담금 증액을 무리하게 강요하는 것이다. 지금 국가재정파산으로 밀려가고 있는 미국 연방정부의 국가재정으로는 주한미국군 재배치 경비 가운데 미국이 맡은 분담금을 충당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미국 군부는 남측 정부에게 모든 경비를 떠넘겨버린는 것이다.

2007년 4월 2일 주한미국대사관 정치참사 조셉 윤이 작성하여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 ‘주한미국군 재배치에 이바지하는 한국: 잔에는 절반 이상 물이 찼다’에 붙어있는 ‘논평(COMMENT)’에 따르면, 남측 국방부는 주한미국군 재배치 경비 가운데 93%를 남측 정부가 부담하는 방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에서 거부논란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한 나머지 그 방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 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남측 정부가 주한미국군 재배치 경비부담에 관한 진실을 국회에 알리더라도 미국의 사전허락을 받고 알리도록 규정한 밀약까지 맺었다는 사실이다. 2007년 3월 6일 주한미국대사관 정치참사 조셉 윤이 작성하여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 ‘미국-한국 안보정책구상 제11차 회담’에는 2007년 2월 7일 한미안보정책구상 제11차 회의에서 남측 국방부 국제정책국장 김규현과 주한미국군사령부 부참모장 두웨인 타이슨(Duane Thiessen)이 서명한 양해각서(MOU)가 나오는데, 그 양해각서에는 “한국 국방부는 평택기지 건설계획의 주요내용을 한국 국회에 보고하기 전에 미국에게 제공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 땅의 수구세력은 미국으로부터 주한미국군 재배치 경비를 전액 부담하라는 강요를 당하고, 주한미국군 유지비를 대폭 증액하라는 강요를 당하는 데도 미국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기는커녕 되레 미국을 더 좋아하고 굳게 신뢰하고 자발적으로 추종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증오하고 배척하지 않고 거꾸로 자해자를 신뢰하고 옹호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병리현상인데, 그것을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이라 한다. 1973년 8월 23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 있는 은행을 털려고 난입한 무장강도에게 사로잡힌 인질 네 사람이 자기를 인질로 잡아 죽이려는 무장강도를 신뢰하고 옹호하는 병리적 행동을 분석한 심리학자들이 그런 새로운 병명을 붙였다.

이 땅의 종미수구세력은 피터 팬 증후군과 스톡홀름 증후군의 합병증에 걸려 있다. 정신심리학에서는 그런 합병증을 종미수구 증후군이라는 신종 정신병리현상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합병증에 걸린 종미수구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으니, 이 땅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모조리 거꾸로 뒤집혀 돌아가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자행되는 종북모략과 사상검증협박이야말로 피터 팬 증후군과 스톡홀름 증후군의 합병증에 걸린 종미수구세력이 재집권을 노리고 저지르는 광기어린 소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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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9

설계도를 움켜쥐고 다시 일어서라

변혁과 진보 (8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피와 땀과 눈물로 설계도를 작성한 사람들

통합진보당에게는 다른 정당이 갖지 못한 설계도가 있다. 진보정치 설계도가 그것이다. 수구우파정당이나 중도우파정당은 당내 파벌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지만, 통합진보당은 진보정치 설계도에 따라 성장발전한다. 통합진보당 창당 자체가 진보정치 설계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

진보정치 설계도란 무엇인가?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 강령에 의거하여 사회변혁을 실현하는 전략, 방도, 경로를 이론적으로 해명한 것이 진보정치 설계도다. 그 설계도는 온갖 억압과 예속에서 벗어나 자주로, 온갖 차별과 착취에서 벗어나 평등으로 나아가는 사회역사적 발전전망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과학적인 설계도다. 진보정치의 양대 강령에 의거한 사회변혁의 추진전략, 실현방도, 발전경로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여러 차례 논한 바 있다.

진보정치 설계도는 오랜 세월 동안 수구우파 정적들의 탄압과 모략에 굴하지 않고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 강령을 일관되게 추구해온 간고한 투쟁과 헌신적 노력에 의해 작성될 수 있었다. 양대 강령에 의거한 진보정치 설계도를 작성한 정치세력을 세칭 '자주파'라 부른다.

자주파라는 것은 그 양대 강령을 추구하고 지지하는 모든 정치활동가들과 당원들을 그렇지 않은 정치활동가들 및 당원들과 편의상 구분하여 부르는 통칭적 개념이지, 어떤 특정한 당내 조직체의 고유명칭이 아니다.

오늘날 통합진보당이 가지고 있는 진보정치 설계도는 자주파 활동가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작성된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기는커녕 정적들로부터 '종북파'로 몰려 구속과 배척과 비방을 받아야 하는 험하디 험한 길 위에 흘린 자주파 활동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진보정치 설계도를 다시 읽어보면, 두 단계 사회변혁론의 여러 구성부분이 들어있어서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그 설계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여 정권교체를 실현함으로써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는 집권과정을 설계한 것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자주적 진보정권이 세워진 이후 더 높은 단계의 사회역사적 발전과정을 설계한 설계도는 진보정치 설계도보다 더 복잡해서 앞으로 별도로 연구하고 작성해야 할 것이다.

진보적 대중정당이라는 개념도, 자주적 진보정권이라는 개념도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 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해온 자주파 활동가들이 이 땅의 진보적 근로대중에게 제시하여 인정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주파 활동가들이 진보적 근로대중에게 제시하여 인정 받은 진보적 민주주의는 자주파의 이념적 전유물이 아니라 참된 민주주의를 갈망해온 근로대중의 정치적 지향이며 당면한 요구다. 진보적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주적 평화통일도 자주파의 이념적 전유물이 아니라 나라의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 구성원 전체의 최상의 역사적 과업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은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과 진보적 정권교체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그 이외에 다른 추진전략과 실현방도는 지금으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한 것도 그 양대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고, 진보적 대중정당이 진보적 정권교체로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려는 것도 그 양대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근본으로 돌아가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가 있다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과 진보적 정권교체 실현은, 이미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한 통합진보당 당원대중과 지지대중에게 익숙한 개념이지만, 통합진보당이 예상치 못한 위기에 빠진 현 상황에서 그 의미를 심사숙고해야 할 요구가 제기되었다. 근본으로 돌아가 심사숙고해야 난국을 타개할 방도를 찾을 수 있는 법이다.

통합진보당 당원대중과 지지대중이 근본으로 돌아가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는, 어떤 조건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였고 또 어떤 조건에서 통합진보당이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건설과정에서 직접 체험한 것처럼, 정파들끼리 결집하는 정파연합체 건설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지지기반 위에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한 조건에서, 바로 그런 조건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이 건설되는 것이고, 또한 바로 그런 조건에서 건설된 진보적 대중정당이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살펴보면,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위의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자주파와 다른 정파들이 통합하여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지지기반을 확장하고, 그 확장된 지지기반 위에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고, 진보적 대중정당의 정치역량이 강할 때는 단독집권으로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역량이 그렇지 못할 때는 우선 중도우파정당과 야권연대를 실현하여 수구우파정당의 집권을 저지함으로써 진보적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마련한 뒤에 진보적 정권교체로 나아가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실현하려는 새로운 민주주의는 진보적 민주주의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수구우파의 자유민주주의, 중도우파의 사회민주주의와 질적으로 다른 새롭고 참된 민주주의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외래독점자본이 사유화한 이 땅의 전략산업을 사회화함으로써 근로대중을 사회역사발전의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새로운 민주주의이며, 또한 진보적 민주주의는 핵전쟁 도화선으로 존재하는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킴으로써 근로대중을 자주적 평화통일의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새로운 민주주의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진보연합전선의 단합된 역량으로 실현할 새로운 사회체제이며, 진보적 대중정당의 집권으로 실현할 새로운 사회체제다.

8.15 해방정국에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구축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변혁사상이 남북에서 각각 제시되었던 때로부터 어느덧 6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이 땅의 사회체제는 분단과 전쟁, 예속과 착취를 겪으며 차츰 질적으로 변화되어 왔다. 사회체제가 질적으로 변화된 오늘 자주파가 구축한 진보연합전선은 67년 전에 구축되었던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과 똑같은 것이 아니고, 오늘 자주파가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67년 전 남북에서 각각 제시된 진보적 민주주의와 똑같은 것이 아니다.

67년 전과 달리 이 땅의 사회체제가 질적 변화를 일으켜 대외예속적 자본주의체제가 고착된 오늘, 진보연합전선의 사상과 전략은 그런 사회체제의 질적 변화에 조응하여 더욱 발전되고 풍부화되었고, 진보적 민주주의의 사상과 이념도 그런 사회체제의 질적 변화에 조응하여 더욱 발전되고 풍부화되었다. 진보연합전선과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사회체제의 질적 변화에 조응하여 어떻게 발전되고 풍부화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한다.


전선의 구심체, 그리고 전선구축의 구심력

지금 안으로는 분당위험에 빠지고, 밖으로는 와해위험에 노출된 통합진보당이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는 진보연합전선 문제다. 진보연합전선 구축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여러 정파들이 통합하여 진보연합전선의 구심체를 형성하였던 소중한 경험이다.

정파통합이라는 구심체를 형성하고 구심력을 가동하여 각계각층 근로대중을 구심체 주위에 든든히 결합함으로써 통합진보당을 건설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정파연합체는 그것이 각계각층 근로대중을 결집시키는 구심력을 발휘할 때, 바로 그러한 때에 정파통합이라는 당의 구심체로 전변되는 것이다.

만일 정파통합이라는 통합진보당의 구심체가 없었다면, 확장된 대중적 지지기반 위에 통합진보당을 건설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진보연합전선은 정파통합이라는 구심체가 구심력을 발휘하여 크게 확장된 대중적 지지기반 위에 구축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 통합진보당은 신당권파가 쇄신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폭로와 선동과 제명으로 통합진보당의 구심체를 깨지기 직전의 매우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정파통합이라는 구심체에서 발생하는 당의 구심력이 분산되고 약화되었기 때문에 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은 확장운동을 멈춰버렸고, 만일 최악의 경우 당의 구심체가 깨지면, 통합진보당은 당의 간판을 유지하고 있어도 '식물정당'이 될 것이며 결국 와해되고 말 것이다.

신당권파는 통합진보당 지도부를 당원투표로 교체하는 합리적인 방도를 외면하고 폭로와 선동과 제명으로 자주파 당활동가들을 당지도부에서 밀어내고 당지도부를 장악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당을 쇄신하려는 행동이 아니라 당의 구심체를 깨려는 행동으로 보인다. 자주파에 대한 신당권파의 집중공세로 정파통합이라는 당의 구심력이 분산되고 말았으며, 그에 따라 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은 확장운동을 멈추고 훼손당했고, 수구우파세력의 '종북모략소동'을 불러일으켰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당지도부 교체는 당원대중의 투표로 결정하는 것이지 정파적 공세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신당권파가 정파적 공세로 당지도부를 교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까닭은, 자기들이 받을 당원대중의 지지표로는 당지도부를 교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신당권파가 내건, 당지도부를 교체한다는 명분은 당지도부를 장악했던 자주파의 패권주의를 쇄신하겠다는 것이다. 당지도부를 장악한 자주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패권주의적 행동을 보였는지에 대해서 신당권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패권주의 쇄신만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신당권파가 당지도부를 장악하면 그들은 패권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이번에 혁신비대위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신당권파의 행동을 살펴보면, 신당권파가 당지도부를 장악하는 경우 패권주의를 넘어서기는커녕 더 심하게 패권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돋보인다. 패권주의를 쇄신하겠다는 신당권파의 명분은 당지도부를 장악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며 당의 쇄신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정적들이 압수하지 못한 진보정치 설계도

자주파와 다른 정파들이 통합하여 당의 구심체를 형성하고 그 구심력으로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장하고 그 기반 위에 통합진보당을 건설하였을 뿐 아니라, 그렇게 강화된 당의 지위와 역량을 가지고 민주통합당과 연대하여 이명박 정권에 맞서 싸운 것은, 진보연합전선 구축이라는 당면정치방침이 정당하였음을 현실로 입증한 것이다.

그에 비해, 급진적 정치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노동자당을 건설하려는 좌파들이 정치적 고립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그들의 투쟁과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정파들과 통합하여 당의 구심체를 형성하는 당건설전략을 외면하기 때문이고,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확장된 지지기반 위에 진보연합전선을 세우는 전선구축전략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 연대하는 진보연합전선 구축은 통합진보당의 자의적인 행동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세칭 야권연대라 부르는 진보연합전선 구축은 오직 통합진보당의 구심체 형성과 그 당의 대중적 지지기반 확장이라는 특정조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당면한 정치정세에서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실현하고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하는 까닭은, 그렇게 하여야 올해 12월 대선에서 새누리당 재집권기도를 저지하고 미국의 대선개입공작을 파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재집권기도를 저지하고 미국의 대선개입공작을 파탄시키는 길은 야권연대라 부르는 진보연합전선 구축 이외에 다른 방도는 없다.

그런데 당지도부를 당원대중의 민주적 의사에 따라 교체하지 않고 폭로와 선동과 제명으로 교체하려는 신당권파의 행동 때문에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할 조건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으며, 이처럼 개탄할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통합진보당에 결집한 자주파 당활동가들과 자주파 당원들은 야권연대라고 부르는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조건을 다시 살려내는 투쟁에 나서야 할 것이며, 통합진보당 지도부를 당원대중의 민주적 의사에 따라 교체해야 할 것이다.

정적들은 폭력을 동원하여 통합진보당 당원명부를 강제로 압수하였으나, 자주파 활동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어린 진보정치 설계도는 압수하지 못하였다. 통합진보당에 결집한 자주파 활동가들과 자주파 당원들의 가슴 속에 간직한 진보정치 설계도는 그 어떤 정적도 빼앗을 수 없다.

길바닥에 쓰러진 통합진보당을 다시 일으켜 세워 기어이 야권연대의 길로 나아가는 자주파의 강인한 모습을 보고 싶다. 진보정치 설계도를 손에 움켜쥐고 일어나 사회변혁의 승리의 길로 주저없이 나아가는 자주파의 힘찬 발걸음 소리를 듣고 싶다. (2012년 6월 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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