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08

알려지지 않은 8월위기사태의 급박했던 3일

[한호석의 개벽예감] (171)
자주시보 201250907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확전위험 우려한 주한미국군사령부
2. 위기사태인데도 가동되지 않은 작전계획
3. 잠수함 50여 척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을까?
4. 한국 국방부가 쉬쉬하고 넘어간 두 가지 충격사건
5. 혁신-2 공격헬기의 대남근접비행과 한미연합비행대의 동서횡단비행
6. 코브라 공격헬기는 왜 무인정찰기를 찾아내지 못했을까?

▲ <사진 1> 2013년 3월 22일 정승조 당시 한국군 합참의장과 제임스 서먼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서명하였다. 그 대비계획은 평시국지전에 대처하는 작전계획이다. 그 문서에 서명한 날부터 주한미국군사령관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의거하여 한국군의 평시국지전 작전통제권을 장악하였다.     © 자주시보


1. 확전위험 우려한 주한미국군사령부

2013년 3월 22일 정승조 당시 한국군 합참의장과 제임스 서먼(James D. Thurman)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서명했다. 대비계획이라는 명칭을 달았지만, 사실상 작전계획이다. 이 새로운 작전계획은 전시전면전이 아니라 평시국지전에 대처하는 작전계획이다. <사진 1>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포격전이 일어났을 때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한국군 합참본부 사이에서는 평지국지전 작전통제권을 누가 행사하는가 하는 문제가 확실하게 정리되지 못한 상태였다. 평시국지전은 전시전면전과 달리 평시에 일어나는 무력충돌이므로, 이론적으로만 따진다면 평시국지전은 한국군 합참의장의 평시작전통제권 행사에 따라 한국군이 단독으로 수행하게 되는 전투인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단일지휘를 받는 연합군체제로 존재하는 조건에서 한국군이 평시국지전을 단독으로 수행하고 주한미국군은 한국군 곁에서 그들의 전투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현실과 어긋나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전시전면전 작전통제권을 장악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평시국지전 작전통제권도 행사하는 새로운 작전지휘방침이 요구되었고, 그런 요구에 따라 나온 평시국지전 작전계획이 바로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2013년 3월 22일부터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의거하여 한국군의 평시국지전 작전통제권을 장악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2013년 3월 한국 언론매체들은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한국군 합참의장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함께 서명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한국군이 작전을 주도하고 미국군은 한국군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추측하였으나 그것은 자의적인 억측이다.
<아시아경제> 2013년 3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는 자기들 마음대로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가동할 수 없고, 반드시 주한미국군사령부와 사전협의절차를 거쳐야 가동할 수 있다고 그 계획에 명문화되었다는 것이다. 사전협의절차라는 것은, 한국군이 단독으로 평시국지전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감독, 통제하고, 한국군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작전통제에 따라 평시국지전을 수행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한국군이 단독으로 평지국지전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감독, 통제하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연합뉴스> 2012년 6월 15일 보도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인용된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2012년 6월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한국군 합참본부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의 부록문서를 합의하는 것으로 하여 “북한의 국지도발 시 한미연합군의 대응이 자칫 확전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는 미측의 우려감이 해소됐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한국군이 평시국지전을 단독으로 수행하는 경우 확전될 것을 우려한 주한미국군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수립함으로써 확전위험에 대한 우려를 덜었다는 뜻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확전위험을 우려한다는 사실은 <아시아경제> 2013년 3월 24일 보도에서 알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협의 중에 한국군 합참본부는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조선인민군의 공격원점과 지원세력을 타격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휘세력까지 타격해야 한다는 자기의 작전개념을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반영하자고 요구하였으나, 주한미국군사령부는 “과도하게 보복공격을 하면 확전이 우려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당시 한국군 합참본부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조선인민군 지휘세력에 대한 보복타격은 평양타격을 뜻한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주장한 대로 평시국지전에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평양을 타격하면 미증유의 전면전이 폭발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이 명백하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협의과정에서 한국군 합참본부는 평양타격을 주장한 반면, 주한미국군사령부는 확전위험을 우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평양타격으로 미증유의 전면전이 폭발될 것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는 한국군 합참본부가 평양타격론을 주장하였다는 사실이다. 2013년 11월 5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조보근 국방정보본부장의 정보평가에 따르면, 한국군과 조선인민군이 전쟁을 벌이는 경우 한국군이 패한다고 단언했는데, 그런 사실을 아는 한국군 합참본부가 평양타격론을 주장하면서 만용을 부린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한국군 합참본부가 미국의 대북선제타격능력을 너무 과신하기 때문이다.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주한미국군이 조선인민군보다 먼저 대북선제타격을 개시하여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한국군 합참본부를 그런 만용으로 떠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믿어서는 안 되고, 믿을 수도 없는 것을 믿어버린 오판으로 보인다. 한국군 합참본부의 오판과 만용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논점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미국군의 대북전쟁계획에 대북선제타격이 포함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미국군은 조선인민군과의 전면전을 피하려고 하는데, 아래의 정보에서 그런 회피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면 조선인민군 지휘세력까지 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한국군 합참본부의 평양타격론과 확전위험을 우려한 주한미국군사령부의 평양타격자제론 사이의 견해차이가 2013년 3월 22일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한국군 합참의장의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 서명으로 해소된 줄 알았더니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한국일보> 2015년 7월 6일 보도기사에서 한국 정부 관계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4월 열린 통합국방협의체(KIDD)에서 지휘세력타격을 놓고 한미 양측 대표단 간에 설전이 벌어졌”는데, “한반도에서 국지도발이 벌어져도 어떤 식으로든 확전을 피하려는 미측과 북한을 제대로 혼내주려는 우리측 사이에 간극이 커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2015년 4월에 열린 한미통합국방협력회의에서 한국측과 미국측은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평양을 타격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한국측은 평양타격론을 주장하였고, 미국측은 평양타격자제론을 주장하였다. 이런 견해차이 때문에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서명 이후 2년이 지난 오늘도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 자주시보

둘째, 미국군이 확전을 피하려는 까닭은, 평시국지전이 확전되는 경우 각종 항공작전기 1,741대와 각종 군함 및 잠수함 152척을 운용하는 태평양사령부 예하 26만6천명 병력이 조선인민군의 전술핵탄공격을 받게 될 미증유의 위험, 그리고 미국 본토의 심장부가 조선인민군의 보복핵타격을 받게 될 파멸적 위험을 매우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국군과 한국군에게는 확전이고, 조선인민군에게는 최후결전이다. 평시국지전이 확전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확전위험을 우려하며 우물쭈물하는 미국군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최후결전을 벼르며 돌격명령을 기다리는 조선인민군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확전의 순간 치명적인 전술핵탄공격을 개시하는 쪽은 미국군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이다. 미국군은 이런 확전씨나리오를 예상하기 때문에 확전위험을 피하려는 것이다. 

조선인민군의 전술핵탄공격을 예상한 미국군은 그처럼 확전위험을 피하려고 조심하는 판인데, 한국군은 그런 미국군의 대북전쟁계획만 믿고 평시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평양을 타격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파멸을 자초하는 치명적인 오판이 아닐 수 없다.  


2. 위기사태인데도 가동되지 않은 작전계획

<동아일보> 2013년 8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는 30여 개에 이르는 평시국지전씨나리오가 포함되었는데, “서북도서에 대한 기습포격이나 무력강점, 북한 공기부양정이나 저속항공기의 기습침투, 특수부대의 후방침투, 잠수함의 아군 함정 공격 등”이 거기에 들어있다고 한다. 위의 보도기사에 명시되지 않았으나, 이번 8월위기사태 중에 일어날 뻔하였던 군사분계선에서의 국지적 무력충돌도 평시국지전씨나리오에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평시국지전이 터지기 일보직전에 평정된 8월위기사태 중에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당연히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를 가동하였어야 한다. 조선인민군이 2015년 8월 22일 오후 5시까지 대북확성기방송을 중단하라고 한국군에게 요구하며 이에 불응하면 군사적 행동에 나서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으므로,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적어도 8월 22일부터 가동되었어야 한다. <사진 3>
▲ <사진 3> 2015년 8월 15일 조선인민군 전선사령부는 한국군이 재개한 대북확성기방송을 8월 22일까지 전면 중단하고 그 시설을 철거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그 요구에 불응하면 군사행동을 개시하겠다는 시한부 최후통첩을 보냈고, 8월 2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긴급보도를 통해 최후통첩을 재확인하였다. 평시국지전위험이 그처럼 최고조에 이르렀는데도, 평시국지전에 대처한다는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미완성이기 때문에 가동될 리 없었다. 무력충돌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3일 동안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작전계획도 없이 갈팡질팡하며 피격위험을 자초하고 말았다.     © 자주시보

그런데 한국 언론매체들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의 가동여부에 대해 상반된 보도기사를 내놓았다. 이를테면, 2015년 8월 21일 <연합뉴스>는 8월 21일부터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사상 처음으로 가동되었다고 보도한 반면, 2015년 8월 24일 <조선일보>는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평시보다 긴밀히 협력하고 있고 있을 뿐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가동되지 않았다고 보도하였다.

이처럼 상반된 보도내용 가운데 어느 것이 사실일까?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의 가동여부를 파악하려면, 아래에 열거한 두 가지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뉴시스> 2015년 8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는 8월 20일 육군 28사단 예하부대에 발령했던 ‘진돗개 하나’를 8월 21일 전군으로 확대하였다. 셋에서부터 하나까지 3단계로 구분되는 ‘진돗개’는 낮은 숫자일수록 위험이 더 높은데, ‘진돗개 하나’는 평시국지전에 대처하기 위해 발령되는 전투동원태세다. 평시국지전에 대처하는 ‘진돗개 하나’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이중으로 발령되지 않으므로 한국군 합참본부가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것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발령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미국군은 데프콘(DEFCON, Defense Readiness Condition)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의 전투동원태세를 구분한다. 데프콘은 5단계로 구분되는데, 낮은 숫자일수록 위험이 더 높은 것을 의미하며, 데프콘 5에서부터 데프콘 3까지는 평시상태에 해당하고, 데프콘 2와 데프콘 1은 전시상태에 해당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평시국지전이 일어날 위험에 근접하였던 8월위기사태 중에 당연히 데프콘 3이 발령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주한미국군사령부는 데프콘 3을 발령하지 않았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평시국지전위험에 대처하는 데프콘 3을 발령하지 않았으므로, 평시국지전 작전계획인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가동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둘째, <문화일보> 2015년 8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2사단은 8월 20일 오후부터 예하 모든 부대들에서 장병들의 외출과 외박을 금지시키고, 1개 소대마다 5분 대기조를 편성해 전투동원태세를 갖추었으며, 예하 210포병여단 3개 대대 가운데 1개 대대를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경기도 파주시 인근에 있는 사격훈련장으로 이동시켜 다련장로켓포 사격을 준비시키고 야간작전을 연습하였다고 한다. 

▲ <사진 4> 다련장로켓포,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가동되지 못했기 때문에, 주한미국군의 전투동원태세는 평시보다 약간 더 긴장된 상태에 머물렀다. 최전방에 전진배치된, 주한미국군의 주력부대인 210포병여단 예하 3개 대대 가운데 1개 대대만이 사격위치가 아니라 훈련장으로 이동하여 사격준비를 갖추었다. 위의 사진은 주한미2사단 210포병여단에 배속된 다련장로켓포의 발사훈련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시보

위의 보도기사에서 주목하는 것은, 주한미2사단 210포병여단 3개 대대 가운데 전투동원태세에 진입한 것은 1개 대대뿐이고, 그것도 사격위치로 이동하여 사격준비를 갖춘 것이 아니라 훈련장에 가서 사격준비를 갖추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격준비태세는 평상시보다 약간 더 긴장된 상태로 전환한 것이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발령된 긴박한 상황에서 취하는 태세가 아니다.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이 발령되지 않았으므로, 주한미2사단의 전투동원태세는 그런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다. <사진 4>

8월위기사태 중에 평시국지전위험이 고조되었는데도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왜 가동되지 않았을까? 이 의문을 풀어주는 단서는 <한국일보> 2015년 7월 6일 보도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인용된 한국 정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한미작전계획에는 자위권 행사를 제외하곤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한 구체적 대응방식이 빠져있”기 때문에 “연평도포격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면 어떻게 대처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2013년 3월 22일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한국군합참의장이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에 서명하였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한국군합참본부의 평양타격론과 주한미국군사령부의 평양타격자제론 사이에서 발생한 견해차이가 해소되고 않았기 때문에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은 아직 미완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2015년 8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8월위기사태 당시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한국군 합참본부는 작전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공동작전기획단(OPT, Operation Planning Team)을 가동하였다. 이것은 8월위기사태가 일어났을 때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가동할 수는 없었으므로 공동작전기획단을 서둘러 결성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8월위기사태 당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대응작전계획도 없이 평시국지전위험에 빠져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처럼 한심한 형편이었으므로, 그들은 8월위기사태 당시 급박하게 전개되는 수시로 변동되는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였다.  

▲ <사진 5> 평시국지전위험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15년 8월 22일, 시한부 최후통첩의 정해진 시각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동해와 서해에서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들이 압도적인 수중수상합동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위용을 정찰위성을 통해 주시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힌 미국 국방부와 합참본부는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을 황급히 중단하는 전무후무한 비상조치를 취하며 갈팡질팡하였다. 위의 사진은 2014년 1월 30일에 진행된 항모격침연습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동해함대 소속 잠수함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에서 잠수함 3척이 보인다. 이 잠수함들은 남하해류를 타고 습격항로를 따라 저소음침투항해술로 스텔스잠항을 하여 수중매복구역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 자주시보


3. 잠수함 50여 척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을까?

조선은 잠수함을 독자적인 기술로 건조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잠수함을 가장 많이 보유한 잠수함강국이다. 그런 잠수함강국이 8월위기사태 당시 전례 없는 위력을 과시하였는데, 2015년 8월 22일 오전부터 동해와 서해에서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함함대가 전개한 압도적인 수중수상합동작전이 미국 국방부와 합참본부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들은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을 황급히 중단시키는 전무후무한 비상조치를 취하며 갈팡질팡하였다. <사진 5> 

2015년 8월 23일 한국 국방부는 조선인민군 잠수함이 평소보다 10배나 더 많이 출동하였다고 밝혔다. 조선인민군 잠수함은 평시에 4~5척 출동하고 있으므로, 그보다 10배가 더 많은 잠수함들이 출동하였으니 50여 척이나 되는 잠수함이 대거 출동한 것이다. 다른 나라 해군의 경우,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기껏해야 2~3척으로 편성된 잠수함대가 출동하는 것이 상례인데, 무려 50여 척에 이르는 조선인민군 잠수함이 한꺼번에 출동하였으니 그 상황을 정찰위성을 통해 관측한 미국 국방부와 합참본부는 아연실색하였을 것이다. 그 많은 잠수함들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2015년 9월 2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진행된 강연회에 출연한 미국의 조선인민군연구가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 Jr.)는 조선인민군 잠수함 50여 척이 한꺼번에 수중작전에 투입된 사실에 대해 거론하면서 그 동안 조선인민군이 잠수함의 훈련, 유지, 보수에 기울인 노력이 이번에 “분명한 성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평하였는데, 그 많은 잠수함이 들어가는 거대한 지하해군기지들이 조선에 건설된 것도 놀랍지만, 그 많은 잠수함들을 혼잡 없이 한꺼번에 출동시키는 수중작전투입능력은 더 놀랍다. 이러한 수중작전투입능력은 조선인민군 잠수함이 고도화된 기습공격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 <사진 6> 서호급 호위함, 이것은 미국 상업위성이 2004년 4월 20일에 촬영한, 조선인민군의 서호급 호위함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나타난 사진이다. 조선이 1983년에 건조한 서호급 호위함은 길이 74m, 배수량 1,845t이다. 함대함미사일 4발을 장착하고, 대잠작전헬기 1대를 비행갑판에 탑재한다. 서호급 호위함은 30년이 지난 함선이므로, 그 이후 신형 호위함이 건조되었는데 외부에 그 실물이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인민군이 발표한 시한부 최후통첩의 정해진 시각이 다가오기 몇 시간 전에 동해와 서해에서 동시다발로 전개된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의 압도적인 수중수상합동작전에 그 신형 호위함도 참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주목하는 것은, 8월위기사태 당시 조선의 동서해에서 출동한 것이 잠수함대가 아니라 잠수함련합함대라는 사실이다.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는, 적어도 20척 이상의 잠수함들이 선봉에 서고 그 뒤로 40련장 122mm 방사포를 장착한 연속타격고속정, 76mm 함포를 장착한 파도관통형 고속정, 사거리 260km의 금성-3호 대함미사일을 장착한 쌍동선체 스텔스 고속공격정, 대잠작전헬기 1대를 실은 호위함 등 최신형 함선들로 종합편성된 초강력한 수중수상연합함대다. <사진 6> 그런 잠수함련합함대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하였으면, 2015년 8월 24일 <CNN> 방송취재에 응한 미국 국방부 관리가 “우리는 북조선 해군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이전에 본 적이 없다”고 실토하면서 자기들이 충격을 받았음을 인정하였을까.

<연합뉴스> 2015년 8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 해군은 동해와 서해에 각각 출동한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의 그 많은 잠수함들이 어디에 있는지 잠항위치를 식별하지 못한 까닭에 당시 상황을 “심각한 위협으로 판단하고 (동해, 서해, 남해를 포괄하는) 광역초계활동에 돌입”하였는데, “북한의 잠수함위협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지만 실제 그 위협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하면서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8월위기사태 당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잠수함 50여 척이 대잠탐색망을 뚫고 어디까지 남하잠항하여 수중매복구역에 들어가 있었는지 알지 못해서 전전긍긍하였다. 

이전부터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에 맞설 방어능력이 자기에게 없다는 점을 우려해왔는데, 이번에 그런 우려가 현실로 전개되었다. 만일 8월위기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어 평시국지전이 터졌더라면, 동해, 서해, 남해에 배치된 한국 해군 함대들은 조선인민군 잠수함련합함대들의 기습공격을 받고 대파, 격침되었을지 모른다.


4. 한국 국방부가 쉬쉬하고 넘어간 두 가지 충격사건

2015년 9월 2일 한국 언론매체들은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 동안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정찰비행을 하고 돌아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보도하였다. 이런 놀라운 사실이 뒤늦게 보도된 까닭은, 한국 국방부가 그 사실을 숨겼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들이 남하하여 정찰비행을 하자 한국 육군이 전술체계망(ATCIS)을 가동하였는데, 그 전술체계망 가동상황이 나타난 컴퓨터 현시화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에 유포한 혐의로 한국군 해병대 현역 중위가 군당국의 수사를 받은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는 바람에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의 정찰비행까지 언론보도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전술체계망이 급박하게 가동되는 상황화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유포한 해병대 중위가 <일베저장소>라는 웹싸이트의 게시판에 올려놓았으나 얼마 뒤 삭제된 자료를 보면, 한국 국방부가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의 정찰비행만이 아니라 또 다른 사건도 숨겼음을 알 수 있다. 유출된 자료를 인용한 <조선일보> 2015년 8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8월 22일 오후 조선인민군 Ml-2 공격헬기가 서해 상공에 출현하였고, 조금 뒤에는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강원도 인제군 현리 상공에 출현하였다고 한다. 한국 국방부는 조선인민군 공격헬기가 서부전선에 출현하고, 그 직후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동부전선에 출현한 사실을 모두 감추었던 것이다. 

유출된 자료와 언론보도를 종합하여 당시 조선인민군의 무력전개상황을 재구성하면, 동해와 서해에 잠수함련합함대들이 출동하여 남진공격태세를 갖추었고, 중부전선에서는 평소보다 2배나 더 증강된 포병무력이 사격위치로 이동하여 즉시사격태세를 갖추고, 그 가운데 일부 포병부대들은 실탄사격을 연습하였고, 서부전선에서는 고속침투공기부양정들이 전전배치되고 공격헬기가 남하비행을 하였고, 동부전선에서는 무인정찰기가 남하비행을 하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당시 조선인민군이 전체 전선에서 압도적인 무력시위를 전개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전체 전선에서 동시다발로 전개된 압도적인 무력시위는 평시국지전이 터지는 순간, 조선인민군의 공격전술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미리 말해주는 ‘예고편’이었다. 8월위기사태 중에 무력충돌위험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 동안 쌍방의 전투동원태세를 분석하면 매우 급박했던 상황이 드러나는데,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아래와 같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사진 7> 북 공격헬기 혁신-2, 시한부 최후통첩의 정해진 시각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혁신-2 공격헬기를 황해남도 태탄비행장에서 출격시켜 백령도 상공으로 근접비행하게 하였다. 이 공격헬기가 최남단 출격기지를 이륙하면 2-3분 안에 백령도 상공에 들어서게 된다. 위의 사진은 조선에서 전승절을 맞은 2015년 7월 29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5》에 참가한 혁신-2 공격헬기가 대회장에 운집한 장병들의 머리 위로 낮게 비행하는 장면이다.     © 자주시보


5. 혁신-2 공격헬기의 대남근접비행과 한미연합비행대의 동서횡단비행

2015년 8월 22일 서해 상공에서 대남근접비행을 하였던 조선인민군 공격헬기는 지난 시기 소련에서 생산된 Ml-2라는 수입기종이 아니라 조선에서 1980년 중반부터 자체로 생산하는 혁신-2라는 자국산 기종이다. 순항속도가 시속 440km인 혁신-2 공격헬기는 사거리가 5km인 57mm 철갑관통 로켓포 16발, 2련장 23mm 속사포 1문, 최대 500kg의 항공폭탄, 대전차미사일, 공대공미사일로 중무장하였다. 미국의 군사전문 웹싸이트 <글로벌 씨큐리티(Global Security)>에 현시된 자료에 따르면, 2005년을 기준으로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혁신-2 공격헬기는 140대에 이르는데, 그로부터 오늘까지 10년 동안 생산이 계속되었으므로 2015년 현재 그 기종의 보유수량은 200대 정도로 추산된다. <사진 7> 

그런데 <연합뉴스> 2012년 7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2012년 5월부터 백령도에서 불과 수 십km밖에 떨어지지 않은 황해남도의 태탄비행장과 누천비행장에 혁신-2를 포함한 각종 작전헬기 50여 대를 전진배치하고 대지공격훈련과 고속기동훈련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기자는 작전헬기 50여 대가 배치되었다고 썼지만, 실제로는 조선인민군 항공군 예하 2개 직승기 대대에 배속된 작전헬기 70대가 전진배치된 것이다. 미국의 위성사진분석가 커티스 멜빈(Curtis Melvin)이 2013년 1월 14일 웹싸이트 <노스 코리언 이커노미 웟취(North Korean Economy Watch)>에 올려놓은 글에 따르면, 황해남도 태탄군 기암리에 있는 태탄비행장에 공격헬기격납고 36개소가 새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태탄비행장은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최남단 출격기지인데, 여기에 상시배치된 공격헬기들은 출격 이후 불과 2~3분 안에 백령도 상공에 들어서게 된다. 백령도에는 한국 해병대 제6여단과 해군 고속정기지가 있다.    

조선인민군 공격헬기는 태탄비행장에서 출격하여 2~3분 안에 백령도를 기습할 수 있는데 비해, 한국 공군 전투기들은 경기도에 있는 공군기지들에서 출격하여 백령도 상공에 도달하기까지 30분 이상 걸린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항공군 공격헬기들은 백령도 상공에서 한국 공군 전투기들과 조우하기 전에 백령도의 군사기지들을 파괴하고 황해남도 출격기지로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공격헬기가 태단비행장에서 출격하여 대남근접비행을 시작하자, 화들짝 놀란 한국군 합참본부는 ‘고슴도치’라는 이름의 대공경계태세를 긴급히 발령하였다. 그에 따라 한국 공군은 F-15K 전투기 4대를 긴급출격시켰고, 주한미공군도 덩달아 F-16 전투기 4대를 긴급출격시켰다. 그러나 그 전투기들의 항로는 백령도 상공으로 이어진 게 아니었다. 그 전투기들이 출격하였을 때는 조선인민군 공격헬기가 대남근접비행을 마치고 출격기지로 복귀한 뒤였으므로, 요격대상이 이미 사라져버린 서북5도 상공으로 조선인민군 지대공미사일의 요격위험을 무릅쓰고 뒤늦게 날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전투기들은 2015년 8월 22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무력시위비행에 나섰다.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경상북도 예천공군기지에서 이륙한 한국 공군 F-15K 4대와 경기도 오산공군기지에서 이륙한 주한미공군 F-16 4대가 동해 상공에서 만나 한미연합비행대를 구성한 뒤에 한반도 중부지역 상공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는 무력시위비행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요격대상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현장에는 가보지도 못한 맥빠진 무력시위비행이었다. <사진 8>

▲ <사진 8> 조선인민군의 혁신-2 공격헬기가 백령도 상공 가까이 근접비행을 하자, 화들짝 놀란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전투기 8대를 긴급출격시켰다. 하지만 그 전투기들은 백령도쪽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동해 상공에서 만나 연합비행대를 구성한 뒤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동서횡단비행을 하였다. 현장에는 가보지도 못한 맥빠진 무력시위비행이었다     © 자주시보


6. 코브라 공격헬기는 왜 무인정찰기를 찾아내지 못했을까?

한국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는 8월 22일 오전 11시 59분쯤 군사분계선을 월선하여 한국군 일반전초(GOP) 상공까지 남하하였는데, 그 날부터 8월 24일까지 사흘 동안 하루에 한 두 차례 1~2분씩 군사분계선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매우 대담한 정찰비행을 하였다는 것이다. <사진 8>

한국군의 저고도방공레이더와 중앙방공통제소(MCRC) 레이더에 간헐적으로 포착된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의 희미한 항적은 한번에 30초 이상 식별된 적이 없었고,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일정한 속도로 비행하였다.

▲ <사진 9> 시한부 최후통첩의 정해진 시각을 몇 시간 앞두고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강원도 인제군 군사분계선을 넘어 정찰비행을 시작하였다. 그 무인정찰기는 그 날부터 3일 동안 하루에 한 두 차례씩 동일한 지역상공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매우 대담한 정찰비행을 계속하였다. 한국군 정보당국은 당시 동부전선에 출현하였던 무인정찰기가 조선인민군이 운용하고 있는 기종인 '방현'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위의 사진은 '방현'의 비행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시보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출현하자, 바짝 긴장한 한국군 합참본부는 ‘고슴도치’라는 이름의 대공경계태세를 발령하였다. 그에 따라  한국 육군은 미국에서 들여온 수입기종인 AH-1 코브라 공격헬기를 긴급출격시켰다. 무인항공기를 격추하는 데는 공격헬기가 적격인데, 현장에 도착한 코브라 공격헬기는 비무장지대로부터 남쪽으로 9km 떨어진 지역상공에 설정된 북방비행금지선에 근접하여 탐색비행을 하면서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를 찾으려고 애썼지만 실패하였다.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는 하루에 한 두 차례씩 동일한 지역상공에 나타나 사흘 동안 정찰비행을 계속하였는데도, 한국군 코브라 공격헬기는 그 무인정찰기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사진 9>

▲ <사진 10>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동부전선에 출현하자 한국군 합참본부는 대공경계태세를 발령하고, 육군 항공대가 운용하는 코브라 공격헬기를 현장에 긴급출동시켰다. 위의 사진은 미국산 공격헬기 코브라의 비행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코브라 공격헬기는 현장 상공에 출동하였지만 3일 동안 계속 동일지역상공에 나타난 무인정찰기를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무인정찰기 탐색작전실패는 한국군이 조선인민군의 저고도침투전술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나타난 강원도 인제군은 해발고가 1,304m나 되는 대암산을 비롯한 높은 산들이 들어찬 동부전선 산악지대인데,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그런 산악지대 상공을 저고도로 비행하였으므로, 그 항적이 한국군 방공레이더망에 희미하게 나타났고, 코브라 공격헬기의 시야에서도 벗어났던 것이다.

원래 무인정찰기는 공중에서 지상관측대상을 촬영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항공정찰수단이기 때문에, 초저공으로는 비행하지 않고 지상으로부터 3km 정도의 고도를 유지하면서 비행하게 된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한국군 공격헬기가 3km 정도의 고도를 유지하면서 동일한 지역상공을 여러 차례 비행하는 무인정찰기를 찾아내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3km의 고도로 날아가는 무인정찰기도 발견하지 못했으니, 조선인민군 항공륙전병을 태우고 달빛도 없는 무월광 심야에 산과 산 사이의 협곡을 타고 지상으로부터 500m 정도의 초저공으로 비행하는 저고도침투비행기(일명 우뚜바)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8월위기사태 당시 한국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비행한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를 찾아내지 못한 것은, 조선인민군의 저고도침투전술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되었다는 우려가 현실로 입증된 사례가 되었다.

비무장지대에서 가까운 최전방에 산재한 한국군 작전거점들에는 고위험 전투병력이라 부르는 전투원 10만 명이 배치되었는데, 만일 8월위기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어 평시국지전이 터졌더라면 저고도침투전술에 무방비로 노출된 그들 10만 명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8월위기사태 당시 남과 북에서 각각 전개된 전투동원태세를 비교해보면, 전쟁의 승자와 패자를 예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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