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04

114,212명에게 물어보라

진실의 말팔매 <47>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12년 1월 2일 영국의 누리집 '이라크 사망자 계수(Iraq Body Count)'에 '2003년부터 2011년까지 폭력사태에 따른 이라크 사망자들(Iraq Deaths from Violence 2003-2011)'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게시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년 동안 계속된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이라크 민간인은 114,212명이다. 그들 가운데 총기교전으로 사망한 민간인이 60,024명이고, 공중폭격이나 급조폭발물로 사망한 민간인이 37,840명이고, 미사일공격이나 공습으로 사망한 민간인이 5,648명이다. 연령을 확인한 사망자 45,779명 가운데 8.64%에 이르는 3,911명이 18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민간인이 114,212명이었으니, 부상당한 민간인은 수 십만 명에 이르렀을 것이고, 또 얼마나 많은 재산이 잿더미로 변하였을까.

그처럼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이라크 전쟁을 누가 일으켰나?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은 왜 이라크에 쳐들어갔나? 누구나 아는 것처럼, 당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비밀리에 추진 중인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이라크를 무력침공하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 무력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꺼내놓은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은 그들이 날조해낸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2009년 9월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는 영국 의회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파괴무기를 45분만에 실전에 동원할 수 있다는 충격발언으로 의회를 자극하여 영국군의 이라크 전쟁 참전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45분만에 실전에 동원한다는 '군사정보'는, 이라크 전쟁 전에 바그다드에 침투하여 암약하던 영국 비밀정보국(SIS) 소속 밀파간첩이 본부에 보고한 것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 이라크군 지휘관 두 사람이 바그다드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서 대량파괴무기를 45분만에 실전에 동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을 택시운전사가 엿들었는데, 영국 비밀정보국 간첩이 우연히 그 택시운전사를 만나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본부에 보고하였다는 것이다.

수다쟁이 택시운전사로부터 들은 뜬소문을 본부에 보고한 간첩도 처벌대상이지만, 그처럼 황당한 뜬소문을 정보자료로 작성해 영국 총리실에 상신한 영국 비밀정보국의 죄질은 더 나쁘고, 그런 정보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짜정보로 영국 의회와 영국 국민을 속이고 영국군의 이라크 전쟁 참전을 밀어붙인 당시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야말로 악질 중의 악질이다. 

2000년 당시 이라크를 탈출해 독일에 거주하고 있었던 이라크 출신 망명자 라피드 아흐데므 알완 알-자나비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비밀리에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했다는 정보를 독일 연방정보국(BND) 요원에게 제공하였는데, 알-자나비는 2011년 2월 15일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과 대담하면서 자신의 정보가 거짓이었다고 고백하였다.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스펠드는 2011년 2월 20일 <CNN>과 대담하는 자리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파괴무기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국이 알았더라면 무력침공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럼스펠드의 그 발언이 사실이라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하였다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거짓정보에 깜쪽같이 속아넘어갔다는 말인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파괴무기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기들이 알지 못해서 실수로 이라크를 쳐들어갔다는 소리야말로 세상을 또 다시 속이려드는 럼스펠드의 가증스러운 수작이다. 

미국은 거짓정보를 날조, 유포하여 세상을 속이고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하여 무고한 이라크 민간인 114,212명을 무참히 죽였다. 이것은 명백하게도, 전쟁범죄에 의한 민간인 대량학살이다.


재물을 갈취하려고 사람 1-2명을 죽인 살인범은 끝까지 추적, 검거하여 형사처벌하면서도, 민간인 114,212명을 대량학살한 전범자는 형사처벌을 받기는커녕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떵떵거리고 살도록 방치하는 것은 인류의 양심과 이성이 용납하지 않는 모순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하여 민간인 114,212명을 대량학살한 전범자들을 모조리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여 형사처벌해야 마땅하다.

이라크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대량학살을 자행한 전범자들은 11명이다. 침략전쟁도발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쉬, 부통령 딕 체니, 국무장관 콜린 파월,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합참의장 리처드 마이어스, 중앙정보국장 조지 테닛,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이고, 침략전쟁도발 당시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 국방장관 제프 훈, 합참의장 마이클 워커, 비밀정보국장 리처드 디어러브가 전범자 명단에 들어간다.

그런데 전범자 11명의 신원이 명백히 드러나 있고, 전쟁범죄를 처벌하는 국제형사재판소가 있는데도,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전범자들을 고소하는 나라가 없다는 사실이다. 만일 어떤 나라가 그 전범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고소하면, 그 나라는 미국으로부터 즉각 보복공격을 받을 것이므로 아무도 고소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복공격에 대한 공포가 정의로운 형사처벌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조직폭력배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것을 목격한 서민들이 그들의 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설령 전범자 11명을 국제형사재판소 법정에 세워 처벌한다고 해도, 전쟁범죄 자체를 뿌리뽑지 못할 것이다. 전쟁범죄의 근원은 전범자를 만들어내는 제국주의깡패국가다. 중동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하여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한 주범국은 미국이고 종범국은 영국이다. 제국주의깡패국가를 정상국가로 변혁, 개조하고, 제국주의진영을 해체, 소멸시켜야 전쟁범죄와 대량학살범죄를 뿌리뽑을 수 있다.

현실이 이처럼 명백한 데도, 제국주의깡패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졌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제국주의침략전쟁으로 무참히 학살당한 이라크 민간인 114,212명에게 제국주의깡패국가의 실존 여부를 물어보아야 한다. 이라크 침략전쟁의 끔찍스러운 참상을 알게 되었으면서도 제국주의깡패국가의 존재를 의심한다면, 그것은 지능지수가 정상에 못미치는 지적 장애현상일 것이다. 

제국주의깡패국가는 60여 년 전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침략전쟁과 이윤수탈에 광분하며 인류에게 재앙과 고통과 죽음을 강요하고 있다. 이라크 침략전쟁에 의한 민간인 대량학살은 그런 참상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참혹한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도, 리비아 무력침공도, 시리아 내란도발도, 이란 전쟁위협도 모두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깡패국가들의 집단적 범죄다.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진영이 지구 위에 남아있는 한, 인류의 자주와 평화, 약소국의 주권과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 제국주의깡패국가들이 미쳐날뛰는 국제사회에는 정의와 법치 같은 것은 통하지 않고, 제국주의깡패국가가 무고한 약소국을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포악과 야만이 넘실거린다.

제국주의깡패국가를 정상국가로 변혁, 개조하고, 제국주의진영을 해체, 소멸시킬 때까지 제국주의침략자들과 끝까지 비타협적으로 맞서싸우는 반제자주화투쟁이 인류의 자주와 평화를 지키는 길이고, 약소민족의 주권과 생존을 지키는 길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라크를 무력침공하여 민간인 114,212명을 죽인 바로 그 제국주의군대가 이 땅에도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국주의깡패국가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은 주한미국군이 없으면, "북한이 남침하여 전쟁이 일어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이른바 '남침위험설'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파괴무기를 45분만에 실전에 동원한다는 택시운전사의 가짜정보처럼 세상을 속이는 거짓말이다.


북침전쟁훈련을 전개하기 위해 한반도 해역에 출몰한 미국해군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

남북이 전쟁을 벌이는 경우 남북 전체가 파괴될 판인데 주한미국군이 철군했다고 해서 왜 동족끼리 전쟁으로 서로 죽이겠는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통해 남북이 정치적으로 화해하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평화통일로 나아가자고 두 차례씩이나 합의하였는데, 주한미국군이 철군했다고 해서 왜 동족끼리 전쟁으로 서로 죽이겠는가.

한반도 전쟁위험은 주한미국군 철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주한미국군 주둔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제국주의깡패국가들 가운데 우두머리인 미국이 항모강습단 침공무력을 동원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북침전쟁연습을 뻔질나게 벌여놓으니 한반도 전쟁위험이 고조되지 않을 수 없다. 이라크에서 그처럼 극악무도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미국군이 한반도에서는 갑자기 온순해져서 이 땅의 평화를 지켜줄 것이라는 착각이야말로 친미반북선전에 세뇌당한 정신도착증이다.

철군은 평화통일의 지름길이고, 주둔은 전쟁위험의 발화점이다. 주한미국군 주둔으로 한반도 평화가 유지된다는 거짓말에 아직도 속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미국군에게 무참히 학살당한 이라크의 원혼들에게 물어보라. 미국군이 정말 이 땅의 평화를 지켜주는지를... (2012년 1월 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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