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31

사회주의국가에는 사회주의의 고유한 기준이 있다

변혁과 진보 (60)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사회주의국가의 국상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

전 세계에 방영되는 미국의 보도전문 텔레비전방송 CNN은 2011년 12월 28일 <조선중앙텔레비죤>이 실시간 송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 현장을 '긴급보도(breaking news)'로 장시간 중계하였다. 중국 국영 텔레비전방송 CCTV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 현장을 중국 전역에 생방송으로 중계하였다. 미국과 중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자본주의국가들의 주요언론매체들도 국상을 당한 북측 인민들이 비통한 심정으로 오열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자본주의국가들의 주요언론매체들은 국상을 당한 북측 인민들이 왜 그처럼 비통한 심정으로 오열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반사회주의 선동가들이 토해내는 억측과 비방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도하기도 하였다. 북측을 헐뜯는 갖가지 비방과 중상만 들려오는 자본주의국가에서 북측의 국상기간에 인민들이 오열하는 슬픔의 의미를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북측의 국상기간에 인민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며 상기하게 된 것이지만, 인민들이 자기 영도자의 서거를 애도하는 것은 사회주의국가의 국상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를테면, 1953년 4월 5일 스탈린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서거하였을 때 소련 인민들이 애도하였고, 1969년 9월 2일 호치민 베트남 국가주석이 서거하였을 때 베트남 인민들이 애도하였고, 1976년 9월 9일 마오쩌뚱 중국공산당 주석이 서거하였을 때 중국 인민들이 애도하였고, 1980년 5월 4일 티토 유고슬라비아공산당 위원장이 서거하였을 때 유고연방 인민들이 애도하였다.


마오쩌뚱 중국공산당 주석의 서거를 애도하는 중국 인민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자본주의국가의 통치자가 재임 중 서거하였을 때는 그의 유가족들만 슬퍼하지만, 사회주의국가의 영도자가 서거하였을 때는 전체 인민이 애도한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국가의 국상과 자본주의국가의 국상에서 슬픔의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왜 그처럼 커다란 의미격차가 생기는 것일까?

그런 격차가 생기는 까닭은, 자본주의국가에서는 상상하기 힘들고 사회주의국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영도자와 인민의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4-5년 정도 지나면 선거를 통해 다른 통치자로 갈아치우는 자본주의국가의 임기제 정치제도에서는 통치자가 국민들과 어떤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자본주의국가의 통치자는 짧은 재임기간 동안 국무회의나 주재하고 비서실에서 보내오는 문건에 결재나 하고 때로 외국방문이나 하다가 임기를 채우면 조용히 퇴임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사회주의국가에서는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사회주의국가는 건설되기 이전부터 간고한 혁명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런 혁명과정을 거쳐오는 동안 혁명을 이끄는 영도자와 혁명을 지지하는 인민들 사이에 강한 결속관계가 형성된다.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간고한 혁명과정에서 영도자와 인민들 사이에 필연적으로 형성된 동지적 결속관계, 바로 그 관계 위에 사회주의국가가 건설되는 것이다.

혁명에서 퇴장이라는 말을 쓸 수 없는 것처럼, 혁명영도에서도 퇴임이라는 말을 쓸 수 없다. 사회주의국가의 영도자는 생전에 혁명을 영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거 이후에도 유훈을 통해 혁명을 지속적으로 추동한다. 혁명은 어떤 임기 안에 결코 가둘 수 없는 영속적인 운동과정이다. 현실이 그러한 데도, 반사회주의 선동가들은 사회주의국가의 영도자가 장기집권으로 '철권통치'를 한다느니 또는 '일인독재'를 한다느니 하는 악담과 모욕을 늘어놓는다.

명백하게도, 사회주의국가의 영도자는 어떤 공식직책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라 혁명과정에서 형성된 인민들과의 관계를 뜻하는 개념이므로, 영도자는 선거를 통해서 선출될 수도 없고, 임기제로 복무할 수도 없다. 따라서 사회주의국가의 영도자는 간고한 혁명과정을 함께 걸어온 인민들에 의해 추대되고, 인민들이 추대한 영도자는 사회주의국가건설의 완성을 위해 무임기로 복무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스탈린은 1922년부터 1953년에 서거할 때까지 31년 동안 소련공산당 서기장으로 사회주의국가건설을 완성해나가는 혁명과정을 영도하였고, 호치민은 1945년부터 1969년에 서거할 때까지 24년 동안 베트남 국가주석으로 그 과정을 영도하였고, 마오쩌뚱은 1943년부터 1976년에 서거할 때까지 33년 동안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그 과정을 영도하였고, 티토는 1936년부터 1980년에 서거할 때까지 44년 동안 유고슬라비아공산당 위원장으로 그 과정을 영도하였다.


마오쩌뚱과 후계자 화궈펑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 겸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초상을 담은 포스터 (1976년 12월)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간고한 혁명과정에서 영도자와 인민들 사이에 필연적으로 동지적 결속관계가 형성된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러한 동지적 결속관계 위에 사회주의국가가 건설되고 그것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 진척된다는 것을 이해하여야 사회주의국가의 영도자가 서거하였을 때, 그 나라 인민들이 왜 그처럼 애도하는지를 알 수 있다. 못된 통치자의 감언이설에 속아 대선투표를 잘못하는 바람에, 계속해서 고생만 하는 자본주의국가의 국민들은 북측 인민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에 왜 그처럼 오열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반사회주의 선동가들이 떠드는 것처럼 만일 사회주의국가의 인민들이 '철권통치'와 '일인독재' 아래서 억눌려왔다면, 자기 영도자가 서거하였을 때 애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주의국가에서 영도자의 서거에 대한 인민들의 애도는 진실한 감정표현이다. 그 슬픔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민들이 평소에 자기 영도자를 얼마나 믿고 따랐는지를 알지 못한다. 사회주의국가의 국상기간에 나타나는 인민들의 슬픔의 깊이는 그들의 영도자에 대한 인민들의 사랑과 신뢰의 깊이다. 


슬픔의 깊이가 다르다

사회주의국가의 국상에서 인민들이 애도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는 있지만, 국상기간에 북측 인민들처럼 비통한 심정으로 오열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사회주의국가의 국상은 전체 인민이 애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으나, 북측의 국상은 전체 인민의 오열과 통곡 속에서 진행되었다.

△ 2011년 12월 28일 평양 시내에서 진행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결식. 평양시민들은 오열과 통곡을 하기도 하고, 도로로 나와 운구차량을 에워싸기도 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 사진)


슬픔의 깊이가 다른 것이다. 같은 사회주의국가의 국상인 데도, 왜 그처럼 슬픔의 깊이가 다른 것일까? 그것은 사회주의국가의 건설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북측의 사회주의국가 건설방식이 다른 나라의 사회주의국가 건설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근본적 차이는, 사회주의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며, 사회주의국가의 발전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의 차이다. 이 문제에 대해 아래와 같이 논할 수 있다.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에서는 사회주의를 경제체제로만 이해하고, 인간관계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국가가 사회주의경제체제 위에 건설된다는 생각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해는 사회주의국가에 대해 절반만 아는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국가는 새로운 경제체제 위에 건설되지만, 사회주의국가가 새로운 경제체제만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관계 위에서도 건설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경제체제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인간관계가 무엇인지 알아야 사회주의국가의 본질을 전면적으로 이해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소련식 사회주의국가와 유고식 사회주의국가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중국식 사회주의국가와 베트남식 사회주의국가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도입으로 상당부분 변질되었다. 왜 그런 소멸과 변질이 있었을까? 그것은 사회주의의 본질을 사회주의경제체제로만 좁혀서 이해하고, 사회주의인간관계로까지 넓혀서 이해하지 못한 사상적 한계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그 나라들은 사회주의경제체제를 세워놓으면 사회주의국가건설을 완성한 것으로 생각하는 토대-상부구조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회주의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과업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다. 사회주의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사회주의국가에서 사회주의경제체제가 정상 작동할 수 없었고, 사회주의경제체제가 오랫동안 정상 작동하지 못하면 결국 사회주의국가가 무너지거나 변질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사에 등장하였던 여러 사회주의국가들 가운데 북측은 달랐다. 북측에서는 사회주의경제체제 성립과 더불어 사회주의인간관계 형성을 매우 중시하였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사회주의경제체제보다 사회주의인간관계를 훨씬 더 중시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이 창시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식화한 주체사상은 사회주의국가 건설과정에서 사회주의인간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그 관계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하는 혁명의 새로운 운명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였다.

북측이 자국의 사회주의를 다른 나라의 사회주의와 구별하여 '주체의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북측에서 말하는 주체라는 개념은 사람과 세계의 관계문제를 해명한 철학적 세계관의 핵심개념이기도 하지만, 기성 인간학이 결코 해명하지 못하는 사회주의인간관계를 규정하는 새로운 철학개념이기도 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사회주의국가의 본질적 특성은 사회주의계획경제에서 나타난다. 국가경제 계획화는 사회주의와 비사회주의를 가르는 명백한 기준이다. 그런데 국가경제를 계획화하였다고 해서 사회주의국가건설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경제를 계획화할 뿐 아니라 인간관계를 주체화하여야 사회주의국가건설이 완성된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와 비사회주의를 가르는 또 다른 중요한 기준은 주체화된 인간관계다.


아무도 먹지 못한 초코파이 한 개

주체화된 인간관계는 무슨 뜻일까? 주체화된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개념이 집단주의(collectivism)다. 반사회주의 선동가들은 집단주의를 가리켜 개인을 잃어버리고 개성을 파괴한 전체주의라고 왜곡하고 비난하지만, 집단주의는 사회주의국가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인간관계의 총체다.

주체화된 인간관계는 서로 떨어질 수 없고 누가 나눌 수도 없는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된 새로운 인간관계다. 그러한 인간관계는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는 혁명과정에서 생성되고, 사회주의국가건설을 완성해나가는 더 높은 혁명과정에서 더욱 공고화되고 지속적으로 발전된다. 그러므로 주체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집단이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1980년대 후반 학생운동 사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 반독재민주화투쟁에 앞장선 대학생들을 체포하려고 대학 교정 안으로 쳐들어온 난폭한 진압경찰과 격렬한 전투를 벌이다가 대학건물 안으로 밀려들어가 농성투쟁에 돌입한 대학생들이 있었다.

진압경찰은 농성투쟁이 벌어진 건물를 완전포위하고 전기와 물을 끊었다. 먹을 것은 고사하고 마실 물조차 없는 농성투쟁현장에서 어떤 대학생의 책가방에 우연하게도 초코파이 한 개가 있었다. 진압경찰의 공격을 막아내는 최후 결전을 앞둔 긴장된 시각, 농성투쟁현장에서는 마지막 식량으로 남은 초코파이 한 개를 나누어 먹기로 하였다. 평소에는 한 입에 들어갈 조그만 초코파이였지만,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분배원점으로 돌아온 초코파이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자신도 허기와 갈증으로 쓰러질 지경이었건만, 곁에서 함께 싸우는 동지를 위해 차마 입에 대지 못한 것이다. 나누어 먹기로 하고서도 아무도 먹지 못한 초코파이 한 개, 바로 그 조그만 물체야말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투쟁 속에서 서로 떨어질 수 없고 누가 나눌 수도 없는 하나의 집단으로 존재하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들이 먹지 못한 초코파이는 순결한 사랑과 믿음의 결정체였다.
  
주체화된 인간관계는 바로 그런 것이다. 사회주의국가건설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영도자와 인민들이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하는 사회주의인간관계이며, 또한 그 과정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인민들 상호 간에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되는 사회주의인간관계다. 그러한 새로운 인간관계 속에는 당연히 사랑과 믿음이 흐른다. 만일 그러한 사회적 집단 속에 사랑과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간고한 혁명과정을 거쳐올 수 있겠는가.

북측에서 쓰는 표현을 빌리면, 영도자가 인민을 하늘처럼 위하는 이민위천의 인간관계, 그리고 인민들이 영도자를 하늘처럼 믿고 사는 혼연일체의 인간관계, 바로 이것이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된 사회주의인간관계다. 북측에서 말하는 이민위천과 혼연일체는 집단주의의 실체인 것이다. 또한 북측에서 쓰는 표현을 빌리면, 인민들이 형제자매처럼 협동하며 살아가는 대가정의 인간관계, 바로 이것이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된 사회주의인간관계다. 이민위천, 혼연일체와 함께 대가정도 집단주의의 실체다.

사회주의국가건설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영도자와 인민들 사이에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된 사회주의인간관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인민들 상호 간에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된 사회주의인간관계 가운데서 전자가 후자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영도자와 인민들의 관계가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되어야 인민들의 상호관계도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측에서 왜 이민위천과 혼연일체를 그처럼 중시하고 강조하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유산으로 남긴 야전열차와 야전복

사회주의국가건설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영도자와 인민들 사이의 사회주의인간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위에서 사례로 든 초코파이에 얽힌 사연은 불과 10여 명의 대학생들이 짧은 기간 동안 농성투쟁현장에서 겪은 일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사회주의인간관계는 수 천만 명에 이르는 인민들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 벌이는 혁명과정에서 형성해야 하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과업이다. 그 혁명과업의 성패는 전적으로 영도자에게 달렸다. 영도자가 집무실에서 문건을 결재하고 전략회의를 주재하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고, 집무실에서 나와 인민의 생산현장과 생활현장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진정 사랑과 믿음으로 아끼며 보살필 때, 바로 그렇게 할 때만이 사회주의인간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서거 이틀전인 2011년 12월 15일발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 광복지구상업중심 현지지도 모습.

김일성 주석이 그러한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인민들의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을 찾아가 방방곡곡에서 현지지도를 끊임없이 이어간 것은, 영도자가 인민들과 사상과 감정이 통하는 하나의 집단으로 사회주의인간관계를 형성하고 그것을 더욱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필생의 혁명과업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유산으로 남긴 야전열차와 야전복은 그가 생전에 인민들과 사상과 감정이 통하는 하나의 공고한 집단을 형성하고 그것을 더욱 강화발전시키기 위해 얼마나 큰 노고를 바쳐왔는가를 말해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로 국상을 당한 북측 인민들이 마치 자기의 친부모를 여읜 것처럼 오열과 통곡을 터뜨린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들과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하고 더욱 강화발전시켜온 사회주의인간관계가 얼마나 진실하고 공고한 관계였는지를 말해준다.

국가경제 계획화만 실현해놓았던 다른 사회주의국가들과 비교할 때 북측이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까닭은, 국가경제 계획화만이 아니라 인간관계 주체화를 더 중시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부단히 애써왔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국가의 발전단계를 논할 때, 국가경제 계획화를 사회주의국가건설의 1단계라 한다면 인간관계 주체화는 사회주의국가건설의 2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주의계획경제만 알고 사회주의인간관계를 알지 못한 사회주의국가는 사회주의국가건설의 1단계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좌절하였지만, 북측은 사회주의계획경제보다 사회주의인간관계를 더 중시하였기 때문에 사회주의국가건설의 2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북측에 건설된 '주체의 사회주의'는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높은 단계의 사회주의다. (2011년 12월 3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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