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2

대중은 간 데 없고 당기만 나부껴

변혁과 진보 (4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민주노동당이 걸어온 11년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전환기에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찾아오는 법이다. 지금 전환기에 들어선 민주노동당이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창당 11년 만에 민주노동당이 추진하는 진보통합당 건설은 민주노동당에게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쇠락의 위기가 될 수도 있다. 전환기에 들어선 민주노동당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고, 다시 일어서기 힘든 좌초의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이처럼 기회와 위기를 동반하는 전환기에 들어선 민주노동당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11년 동안 쌓아온 경험에서 교훈을 찾는 일이다. 무슨 교훈을 찾을 것인가?
  
창당 주역들은 민주노동당을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으로 건설하려고 하였다. 누구도 그러한 당 건설노선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을 건설하면 당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러한 믿음과 유리되었다. 창당 이후 11년이 지났으나 민주노동당의 역량은 지속적으로 강화, 증대되지 못하였다. 민주노동당 당원의 양적 증가는 일정 수준에서 멈추고 말았으며, 민주노동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율도 지속적, 점진적으로 상승하기는커녕 되레 점진적으로 감소되었다.

2008년 분당사태 이후 3년 동안 민주노동당에 대한 낮은 대중적 지지율은 장기적으로 고착되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이 이전에 전망하였던 원내 진출, 원내교섭단체 구성, 제2야당으로 부상, 대선 승리, 진보적 정권교체로 이어지는 집권 시나리오는, 원내 진출에서 멈춰버리고 분당사태로 반토막이 나는 바람에 이제는 정치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희망의 영역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누가 봐도 한계상황에 이른 것이 분명하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두 가지 문제를 짚어볼 수 있다.

첫째, 창당주역들이 설정한,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을 건설하려는 목표는 올바른 것이었으나, 그 목표에 이르는 실천방도를 찾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이 창당 과정에서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선포하였다고 해서, 그런 정당이 자동적으로 건설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의 사회정치역량이 미약한 조건에서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선포한다고 해서,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민주노동당에 총집결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전태일 정신을 따르는 노동자들보다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중산층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많다. 민주노총 기층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전태일 정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이 민주노동당이 처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넘어설 실천방도를 찾지도 못하면서,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희망적 사고에 언제까지나 젖어 있을 수는 없다.

둘째,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의 사회정치적 요구만이 아니라, 농민, 도시빈민, 중산층을 비롯한 여러 사회계층들의 정치적 요구를 수용해야 하였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대중노선에서 출발하여 계급노선으로 전화, 발전되어가는 긴 호흡이 필요하였다.

다시 말해서, 대중노선에 기초한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그 정당 내부에서 노동계급의 중심성을 차츰 보강하여 명실공히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으로 전화, 발전되어가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이고 정당한 당건설 과정이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호흡은 조급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너무 짧았다.

오늘의 전환기에 만일 민주노동당이 위의 한계상황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여 왜소해진 유럽형 좌파정당들의 정치적 고립을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다. 


변화를 요구하는 한계상황

민주노동당이 처한 한계상황은 변화를 요구한다.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 것일까?

민주노동당에 대한 대중의 객관적 평가에 귀를 기울이고, 진보정당과 대중의 결합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를 걷어내고 진정한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은 '운동권 정당' 신세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뜻한다.

계급적 원칙을 강조하는 좌파정당처럼 행세할 것이 아니라, 진보적 대중정당 답게 자기의 눈높이를 조금 낮춰서, 대중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는 유연한 전략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그런 유연한 전략은 지금 추진 중인 진보통합당 건설과업이 절실히 요구하는 것이다.

첫째, 새로 건설해야 할 진보통합당은 '운동권 정당'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지난 시기 '운동권'에서 열심히 활동하였던 당원들이 주도하는 민주노동당에 '운동권'과 정치권을 혼동하는 관행적 사고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내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이 각계각층 대중의 생활현장에 밀착된 의정활동을 펼치는 것에서 '운동권'과 정치권의 차이가 돋보인다. 항쟁국면이 아닌 평시에, 이 땅의 각계각층 대중이 민주노동당에게 바라는 것은 생활현장에 밀착된 의정활동이다. 민주노동당이 각계각층 대중의 생활현장에 밀착된 의정활동에 충실해야 대중의 지지와 신뢰를 받을 수 있고, 그런 지지와 신뢰를 바탕으로 당의 집권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각계각층 대중의 생활현장에 밀착된 의정활동에 충실하려면 대중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당의 활동영역을 전태일 정신을 따르는 소수의 선진적 대중 속에 고착시킬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다수의 개혁적 대중 속으로 더 넓혀야 한다.

새로 건설해야 할 진보통합당이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개혁적 대중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출 때, 그 때 비로소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개혁적 대중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났다고 자평하는 것은 착각이다.

대중의 눈높이에 자신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나자는 것, 그리고 당의 활동영역을 전태일 정신을 따르는 소수의 선진적 대중 속에 고착시킬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다수의 개혁적 대중 속으로 더 넓히자는 것, 바로 이것이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민주노동당이 추구하고 견지하고 관철하여야 할 대중노선이다.

둘째, 새로 건설해야 할 진보통합당이 전태일 정신을 따르는 소수의 선진적 대중에게서만이 아니라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다수의 개혁적 대중들에게서도 지지와 신뢰를 받으려면,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국민참여당과도 통합하여 진보통합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장해야 한다.

이러한 이치는 너무도 명백한 것이어서 누구나 금방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처럼 명백한 이치가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통하지 않고 있다. 대중노선의 견지에 보면,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참여당을 배제하려는 것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민주노동당의 정치이념은 진보적 민주주의이고, 참여당의 정치이념은 진보적 자유주의다. 민주주의변혁을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개혁을 추구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와 구별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자를 대치시키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오류다.

민주주의개혁을 배제한 민주주의변혁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진보적 민주주의가 진보적 자유주의와 대치된다고 말할 수 없다. 사회계급관계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민주주의변혁을 추구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민주주의개혁을 추구하는 중산층 및 자영업자들과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연합하여 폭넓은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이치가 이처럼 명백한데도 참여당을 배제하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만 통합하여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려는 것은, '도로 민노당'의 질곡에 스스로 빠지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만 통합하여 진보통합당을 건설할 경우, 잃을 것은 다수의 개혁적 대중이요 얻을 것은 불명예스러운 '도로 민노당' 간판 뿐이다.

 원래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도로 민노당'으로 건설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한 쪽은 진보신당인데, 이제 와서 진보신당이 참여당을 배제하고 민주노동당과 통합하려 함으로써 '도로 민노당'을 건설하려는 것은 누가 봐도 자가당착이다. 민주노동당은 '도로 민노당'을 건설하려는 억지논리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심사숙고해야 할 세 가지 시나리오

전환기에 들어선 민주노동당 앞에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놓여있다. 상황변화에 따라 실현방식에서 일정한 변형이 있을 수 있지만, 아래의 세 가지 시나리오가 진보통합당 건설의 기본방향인 것은 분명하다. 올해 여름에 아래의 세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서 어느 한 가지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심사숙고가 요구된다.
   
첫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밀고 당기기만 반복하다가 결국 진보통합당 건설이 좌초되는 시나리오다. 이것은 변혁과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이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1년 7월 20일 <한겨레>가 진보통합당 건설문제를 보도하는 기사에서 "시간은 재깍재깍 가는데, 국민들이 보기엔 무엇 하나 뚜렷이 이뤄진 게 없다"고 지적하면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지루한 밀고 당기기가 반복되다 보니, 구경꾼들이 늘고 관심이 커지기는커녕 지지층의 실망만 커지고 있다"고 혹평한 것은 과장보도가 아니다.
 
진보통합당 건설이 좌초한 뒤에, 민주노동당이 다시 일어나 정상항해를 계속할 수 있을까?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좌초 이후에 대한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 진보통합당 건설이 좌초한 것은, 민주노동당이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그나마 유지해오던 소폭의 지지기반마저 잃어버리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통합당 건설의 좌초는 민주노동당이 당의 명운을 걸고 거부해야 할 시나리오다.

둘째, 좌초 위험을 피하기 위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먼저 통합하고 나서 나중에 참여당을 끌어들이는 시나리오다.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절충안으로 합의한 단계적 통합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단계적 통합론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왜냐하면, 참여당을 끝내 배제하려는 진보신당이 진보통합당 안에 들어가서도 계속 반대할 것이 뻔한데, 무슨 수로 그들의 반대의사를 꺾고 참여당을 진보통합당에 끌어들이겠다는 말인가. 단계적 통합론이 '도로 민노당' 건설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도로 민노당'이 해답이 아닌 것처럼, 단계적 통합론도 해결책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의 반대를 의식하여 일단 단계적 통합론을 제기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단계적 통합론에 의존하는 모험은 피해야 한다. 진보통합당을 모험으로 건설할 수는 없다.

셋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참여당이 정치적으로 타협하여 폭넓은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는 시나리오다. 두 말할 나위 없이, 3당 통합이야말로 '운동권 정당'과 '도로 민노당'에서 벗어나 대중노선을 관철할 가장 바람직한 당건설 시나리오이며 오늘의 정치현실이 허락하는 유일한 당건설 시나리오다. 그러므로 대중노선에 따라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민주노동당은 3당 통합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의 3당 통합이야말로 '운동권 정당'과 '도로 민노당'에서 벗어나 대중노선을 관철할 가장 바람직한 당건설 시나리오다. (<연합뉴스> 2011년 6월26일 보도사진)

그런데 3당 통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3당의 정치적 타협이다. 정견이 서로 다른 3당이 통합하려면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는데, 한 가지 문제는 유연한 전술에서 정치적 타협이 나온다는 점이고, 다른 한 가지 문제는 원칙 없는 타협은 자신을 스스로 배반하는 패착이라는 점이다.

진보통합당 건설과 관련하여 유연한 전술을 취하고 있는 쪽은 뜻밖에도 참여당이다. 당대표가 '과거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발언을 하고 대선 불출마를 거론한 것이나, 참여당이 연석회의에 참가하지 않았으면서도 연석회의 합의문을 승인한 것은 예상을 뛰어넘은 유연한 전술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비해, 진보신당과 좌파는 앞뒤가 꽉 막힌 경직된 전술밖에 모르고 있다. 대중들의 눈으로 보면, 어느 쪽이 참신하고 어느 쪽이 한심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3당이 누가 보아도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설정해놓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정치적으로 타협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객관적 기준을 설정해놓지 않고 무턱대고 타협한다면 그것은 야합이지 타협이 아니다. 객관적 기준이 없는 통합은, 아무런 원칙이 없이 오직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몰리는 '송사리떼 야합'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진보진영 대표자들이  2011년 6월 1일 국회 정론관에서 연석회의 합의문
타결 소식을 발표하고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것처럼, 3당 통합에서 정치적 타협을 실현할 객관적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 연석회의 합의문이다. 연석회의 합의문에 대한 수용 여부를 떠나서 어떤 다른 기준을 제기하는 것은, 연석회의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단행위로 된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진보신당과 좌파가 연석회의에서 합의한 객관적인 기준과 다른 어떤 자의적인 기준을 꺼내들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참여당을 배제하는 것은 연석회의 합의정신에 배치되는 것이다.
 
지금 민주노동당에게 주어진 선택은 참신한 통합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진부한 통합을 추구하는가 하는 것이다. 말로는 진보통합당을 건설한다고 하면서 참여당을 배제한 채, '운동권 정당', '도로 민노당'으로 되어버리는 것이 진부한 통합이다. 그에 반해, 연석회의 합의문에 의거한 정치적 타협으로 3당 통합을 실현하고, 3당 통합을 중심으로 폭넓은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는 것이 참신한 통합이다. 

만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참여당을 배제한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면, 그 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패할 것이며, 고립과 침체의 연륜만 쌓여갈 것이다. 반대로, 만일 정치적 타협으로 3당 통합을 실현하면, 진보통합당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첫 단계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65년 전의 비극을 재연하려는가?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고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던 65년 전에도 3당 통합을 실현하기 위한 객관적 기준이 제시되었다.

△ 좌우합작운동을 이끌었던 여운형과 김규식 
1946년 10월 7일에 발표된 좌우합작 7원칙이 바로 그 기준이다. 좌우합작 7원칙은 좌익이 제시한 5원칙과 우익이 제시한 8원칙을 여운형과 김규식이 절충하여 마련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65년 전에는 좌우합작 7원칙을 수용한 모든 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이 총결집하여 진보통합당을 건설하여야 하였고, 오늘날에는 연석회의 합의문을 수용한 모든 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이 총결집하여 진보통합당을 건설하여야 한다.

통합의 객관적 기준에 들어있는 내용은 65년의 시간적 격차에 따라 달라졌어도, 통합의 객관적 기준이 가지는 정치적 의의는 65년 전이나 오늘이나 똑같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1946년의 좌우합작 7원칙과 2011년의 연석회의 합의문이 똑같은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65년 전에 3당 통합의 객관적 기준으로 제시된 좌우합작 7원칙은 이렇다.

1. 조선의 민주독립을 보장한 삼상회의 결정에 의하여 남북을 통한 좌우합작으로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수립할 것.
2. 미소공동위원회 속개를 요청하는 공동성명을 발할 것.
3. 토지개혁에 있어 몰수, 유조건 몰수, 등수를 따라서 차례로 감하는 매상 등으로 토지를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하며, 시가지의 기지 및 대건물을 적정처리하며, 중요산업을 국유화하며, 사회노동법령 및 정치적 자유를 기본으로 지방자치제의 확립을 속히 실시하며, 통화 및 민생문제 등을 급속히 처리하여 민주주의 건국과업 완수에 매진할 것.
4.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처리할 조례를 본 합작위원회에서 입법기구에 제안하여 입법기구로 하여금 심리, 결정케 하여 실시케 할 것.
5. 남북을 통하여 현 정권 하에 검거된 정치운동자의 석방에 노력하고, 아울러 남북 좌우의 테러적 행동을 일체 즉시 자체토록 할 것.
6. 입법기구에 있어서는 일체 그 권능과 구성방법, 운영 등에 대한 대안을 본 합작위원회에서 작성하여 적극적으로 실행을 기도할 것.
7. 전국적으로 언론, 집회, 결사, 출판, 교통, 투표 등의 자유가 절대 보장되도록 노력할 것.

역사적으로 평가하면, 1946년의 좌우합작 7원칙은 1927년에 결성되어 1931년까지 활동하였던 신간회의 좌우합작정신을 8.15 해방 직후의 시대적 요구에 맞게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명명백백한 통합의 객관적 기준을 조선공산당 지도부가 계급노선의 이름으로 부정하고 나섰다. 1946년 10월 26일과 27일 박헌영은 <독립신보>에 연재한 '좌우합작 7원칙 비판'이라는 제목의 기명논설에 이렇게 썼다.

 "우익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또 좌익적인 언사에도 관계없이 본질에 있어서 우익반동성을 내포하고 있는 7원칙은 의연 우익노선인 것이며 좌우합작의 가면 하에 우익노선을 원활하게 집행하자는 기도에 불과하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좌우합작의 7원칙은 그것이 어떠한 언사를 농하고 있더라도 아무리 간교한 가면으로 장식되었더라도 그 정체를 은폐할 수 없는 것이다. 대중을 기만하여 반동진영으로 몰고 입법기관을 권위화하여 군정을 유지, 연장하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이 통합을 방해하고 분열을 획책하기 위해 비판을 가장하고 꾸며낸 악질적인 음해모략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여기서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땅의 진보정치세력이 그처럼 말이 되지 않는 음해모략을 저지, 파탄시키지 못하고, 결국 3당 통합에 실패하였다는 점이다.

만일 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이 좌우합작 7원칙을 수용한 3당의 통합을 중심으로 폭넓은 진보통합당을 건설하고, 그 강력한 힘으로 미소 양군 동시철군과 민주주의변혁을 추진하였더라면, 우리는 지금 전쟁과 분단도 없고 계급적 지배와 착취도 없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불행하게도, 박헌영의 사기행각에 속고, 조선공산당 지도부의 좌경적 오류에 휘말린 이 땅의 진보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테러와 탄압, 학살과 전쟁으로 파멸적 손실을 입고 말았다. 대중은 간 데 없고 당기만 나부끼는 비극을 지금 누가 재연하려는가? (2011년 7월 2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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