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7

허황한 밀담 즐기는 주한미국대사

진실의 말팔매 (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수많은 미국의 국가기밀자료를 폭로하여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미국의 사설 웹싸이트 위킬릭스(Wikileaks)가 얼마 전 미국 국무부의 기밀자료를 공개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경악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 웹싸이트에 공개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각종 기밀자료들 가운데 눈길을 끄는 자료가 있다. 주한미국대사 캐슬린 스티븐스(Kathleen Stephens)가 작성하여 2010222일 미국 국무부에 보낸 서울발 기밀 제272. 그 기밀자료의 제목은 중국-북측 관계에 대한 천영우 외무차관의 발언이다.

그 기밀자료에 따르면, 2010217일 주한미국대사가 천영우 외교안보수석(당시에는 외무차관)을 대사관저로 초청하여 오찬을 함께 하며 밀담을 나누었는데, 그 자리에서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이 한반도 외교현안에 관한 고급정보를 꺼내 놓았다. 외무차관직을 맡은 고위관리가 주한미국대사로부터 점심 한 끼 얻어먹으며 나눈 밀담에서 외교기밀정보를 술술 풀어냈으니, 그 밀담 자체가 주권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티븐스-천영우 밀담에 기초하여 스티븐스 대사가 직접 작성한 그 기밀자료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각 부분에 매긴 소제목은 중국-북측 관계에 대한 외교차관 천영우의 발언’, ‘코리아 문제를 다루는 중국의 새로운 세대', '조선 붕괴 시나리오에 대처하는 중국의 행동이다. 소제목들만 읽어봐도, 그들의 밀담내용이 너무 자극적이다 못해 선정적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스티븐스-천영우 밀담 기밀자료에는 천영우 당시 외무차관이 중국 외교관리와의 밀담에서 파악한 정보와 그 정보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들어있다. 북중관계에 대한 정보를 건네준 세련된 중국 관리의 이름이 그 기밀자료 공개본에서는 지워져 있어서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세대에 속한 외교관리였음이 분명하다.

세련된 중국 외교관리는 천영우 당시 외무차관과의 밀담에서 우다웨이 조선반도사무 특별대표를 맹비난하였다. 그 외교관리는 우다웨이 특별대표를 중국 경제의 성장이 중국을 강대국의 정상적 외교로 복귀시켰다고 아무에게나 큰 소리를 치는 강경파 민족주의자로 규정하였을 뿐 아니라, 그를 가리켜 북측에 대해서나 비확산 문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영어도 할 줄 몰라 (미국인들과) 소통하기 힘들고, 마르크스나 떠들어대는 오만한 홍위병 출신이라고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이것은 천영우 당시 외무차관이 만난 사람이 우다웨이 특별대표의 관직을 넘보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의 위신을 깎아내려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세련된 외교관리였음을 말해 준다.

천영우 당시 외무차관이 스티븐스 대사가 차려준 점심을 얻어먹으며 나눈 밀담에서 넘겨준, 북중관계, 남북관계, 한일관계에 관련된 고급정보를 간추리면 이렇다.
 
첫째, ‘세련된 외교관리의 말을 들은 천영우 당시 외무차관은 스티븐스 대사와의 밀담에서 조선은 경제적으로 이미 무너졌으며, 김정일 사후 2-3년 안에 정치적으로 무너질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둘째, 천영우 당시 외무차관과의 밀담에서 세련된 외교관리남한의 통제 아래 코리아가 통일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셋째, 천영우 당시 외무차관은 스티븐스 대사와의 밀담에서 북한이 무너지는 경우, 중국은 명백하게도 군사분계선 북쪽에 미국군이 주둔하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세련된 외교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통일된 코리아가 중국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는 한, 중국은 남한이 통제하고, 미국과의 은근한 동맹관계에 안착한 통일된 코리아에 대해 편안함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넷째, 천영우 당시 외무차관은 스티븐스 대사와의 밀담에서 일본이 남한의 통제 아래 통일된 한반도를 인정하도록 만들 요인은 강력한 한일 관계일 것이라고 본 (스티븐스) 대사의 견해를 인정하였다.”
 
다섯째, 천영우 당시 외무차관은 스티븐스 대사와의 밀담에서 일본이 선호하는 것은 한반도 분단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조선이 무너지는 경우 일본은 통일을 중단시킬 수단을 갖지 못하였다고 말했다.
 
스티븐스 대사와 천영우 당시 외무차관이 밀담에서 북측의 붕괴와 남측 주도의 통일에 관한 고급정보를 나눈 것은 실로 충격적이다. 1990년대 후반기에 북측이 고난의 행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북측이 무너지고 남측 주도로 한반도가 통일될 것으로 내다보았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전망이 결국 허황된 정보에 따른 전략적 오판으로 밝혀진 때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주한미국대사와 남측 외무차관이 여전히 북한 붕괴설남한 주도 통일설을 밀담에서 주고받은 것은, 해괴한 일이다. 너무 해괴한 나머지, 주한미국대사와 남측 외무차관이 정말로 그런 밀담을 나누었을까 하는 의심이 생길 정도다. 그러나 위킬릭스가 폭로한 그 기밀자료는 제3자가 조작한 허위문건이 아니라, 스티븐스 대사 자신이 작성하여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상신한 공식 정보보고다.

우다웨이 특별대표와 맞서 치열한 관직쟁탈경쟁을 벌이는 어떤 중국 외교관리가 꺼내놓은 허무맹랑한 북한 붕괴설남한 주도 통일설을 무슨 고급정보인 것처럼 주한미국대사에게 알려주는 남측 외무차관의 모습이나, 그와의 오찬밀담 내용을 무슨 고급정보인 것처럼 기밀문건으로 작성하여 국무장관에게 상신하는 주한미국대사의 모습이야말로 눈을 뜨고 차마 볼 수 없는 저질촌극이다. 그 저질촌극이 얼마나 한심하였으면, <연합뉴스> 2010121일 관련보도에서 만찬에서 오가는 잡담 수준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고 혹평하였을까.
 
그런데 더욱 심각한 사태는, 저질촌극이 스티븐스-천영우 밀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워싱턴 포스트> 20101219일 보도에 따르면, 통일부는 이른바 북한 상황 지수(North Korea Situation Index)’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북한 붕괴남한 주도의 통일을 전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방문 중에 그 나라에 사는 남측 출신 해외동포들과 만난 간담회에서 머지않아 (남측이 주도하는) 통일이 가까운 것을 느낀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최근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주 주지사를 동행하여 방북하였던 미국 CNN 텔레비전 방송의 유명한 시사해설 전문 방송인 월프 블리쩌는 자신의 첫 방문인상을 20101222CNN 웹싸이트에 발표하면서 외부인들은 지난 60년 동안 북측의 붕괴를 예상해오고 있으나, 나는 이 나라가 붕괴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하였다고 썼다.

이처럼 그 동안 북한 붕괴설을 수없이 들어왔을 미국의 방송인마저 자신의 방북체험담에서 북한 붕괴설을 부인하는 판인데,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관리들과 주한미국대사가 북한 붕괴설남한 주도 통일설에 열광하고 집착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현실과 정반대인 허황된 밀담을 즐기며 환상에 도취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로 충격적인 것은, 그들이 아무런 객관적 근거를 갖지 못하였는데도 북한 붕괴설남한 주도 통일설에 열광하고 집착한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워싱턴 포스트> 관련기사마저 북한 붕괴설남한 주도 통일설에 대해 입증할 만한 정보의 결여(lack of verifiable information)”라고 지적한, 익명을 요구한 남측 정부관리의 말을 인용하였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남측 고위관리들과 주한미국대사가 북한 붕괴설남한 주도 통일설에 열광하고 집착하는 원인은 정세분석가들이 밝히지 못할 것이므로, 아마도 정신과 의사들이 그 병리적 원인을 밝혀낼 수 있을지 모른다. (20101226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