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4

땅속에서 하늘을 지키는 비밀병기

[한호석의 개벽예감](167)
자주시보 2015년 07월 13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34종이 넘는 조선인민군의 각종 레이더들
2. 현대화되고 요새화된 조선의 지하방공기지들
3. 2007년 조선의 방공망이 뚫렸는가?
4. 자기 모습 드러내지 않는 조선의 비밀병기

▲ <사진 1> 2010년 10월 10일 당창건 65주년 경축 군사행진에 등장한 번개-5호 자행발사대에 배속된 레이더차량이다. 크고 두꺼운 널판지처럼 생긴 위상배열레이더가 차체 위에 실려있다. 이것이 조선이 공개한 각종 레이더들 가운데 최신형 레이더이며,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진 레이더다. 이 레이더는 러시아군 지대공미사일 S-300에 배속된 30N6E와 같은 급인데, 탐지거리가 300km이며, 360도 회전하면서 비행표적 100개를 동시에 포착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제공


1. 34종이 넘는 조선인민군의 각종 레이더들
 
미국의 군사전문가 션 오코너(Sean O'Conner)는 2010년 7월 12일에 발표한 ‘조선의 방공미사일망’이라는 글에서 조선인민군이 14종의 레이더를 가동하고 있다고 하면서 레이더명칭을 열거하였다. P-8, P-10, P-12, P-15, P-15M, P-18, P-35, P-37, P-80, 5N69, 36D6, PRV-11, PRV-13, JY-8, 이것이 그가 파악한 조선인민군의 레이더들인데, 모두 소련산 레이더나 중국산 레이더들이다. 조선이 소련산 레이더와 중국산 레이더를 수입하여 사용한 적도 있지만, 오래 전부터 자체 기술로 국산 레이더를 만들어 외국산 레이더를 대체해왔는데 오코너가 조선산 레이더명칭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또한 오코너가 파악한 조선인민군 레이더들 가운데는 최신형이며,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진 30N6E가 빠졌다.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은 2010년 10월 10일 당창건 65주년 경축 군사행진에서 처음으로 30N6E 레이더를 공개하였는데, 그것은 오코너가 그 글을 발표한 때로부터 석 달 뒤에 공개된 것이므로, 그 글을 집필할 때 오코너는 30N6E 레이더가 조선에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미국의 군사전문 웹싸이트 ‘오릭스 블러그(Oryx Blog)’는 조선의 레이더에 관한 분석에서 오코너보다 한 수 위다. ‘오릭스 블러그’가 조선의 레이더에 관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조선인민군이 가동하는 레이더는 30종이다. P-8, P-10, P-12, P-14, P-18, P-20, P-35, P-37, P-80, 5N62, 30N6,  ST-68U/36D6, SNR-75, SNR-125,  PRV-11, PRV-13, PRV-17, SNAR-2, SON-4, SON-9A, MR-104, YLC-8,  JY-8, RSP-7,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6종이 ‘오릭스 블러그’가 열거한 조선인민군의 레이더들이다. 주목하는 것은, ‘오릭스 블러그’가 정체를 알 수 없다고 지적한 6종의 레이더가 조선에서 독자적으로 개발된 최신형 방공레이더들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오코너가 열거한 14종의 레이더명단과 ‘오릭스 블러그’가 열거한 30종의 레이더명단을 비교하면, 오코너의 레이더명단에는 들어있는데 ‘오릭스 블러그’의 레이더명단에 빠진 것은 P-15, P-15M, 5N69, 36D6을 포함하는 4종이다. 그러므로 오코너의 레이더명단과 ‘오릭스 블러그’의 레이더명단을 합하면, 조선의 방공망에서 가동되는 레이더가 모두 34종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오코너나 ‘오릭스 블러그’가 파악하지 못한 조선의 레이더가 분명히 더 있을 것이 있으므로 조선의 레이더는 34종 이상이라고 해야 한다. <사진 2>

▲ <사진 2> 이것은 '오릭스 블러그'에 실린,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선의 레이더 6종 가운데 어느 한 레이더가 나타난 조선중앙텔레비죤 방송화면을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에는 두 개의 커다란 위상배열레이더를 나비날개처럼 접었다 펼쳤다 할 수 있는 접이식 방공레이더가 보인다.     © 자주시보

그렇다면 조선의 방공망에는 왜 그처럼 다종다양한 레이더들이 설치된 것일까?
지대공미사일 1발을 쏘려면 조기경보레이더, 포착레이더, 추적레이더를 비롯하여 3종의 레이더를 모두 가동해야 한다. 조기경보레이더의 임무는 아주 멀리 떨어진 데서 날아가는 비행체를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이고, 포착레이더의 임무는 그 비행체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포착, 탐지하는 것이고, 추적레이더의 임무는 지대공미사일 발사에 필요한 표적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사례를 거론할 수 있다.

조선은 러시아산 지대공미사일 S-125와 유사한 지상대공중로케트 번개-3을 만들어 이미 1970년대에 실전배치하였다. 조선이 45년 전에 만든 번개-3이 S-125와 유사하므로, 사거리는 25km, 사고도는 2.5km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번개-3에 배속된 P-15 조기경보레이더의 탐지거리는 250km이고, SNR-125 포착레이더의 탐지거리는 80km이고, PRV-11 추적레이더의 탐지거리는 32km다.

또한 조선은 러시아산 지대공미사일 S-200과 유사한 지상대공중로케트 번개-4를 실전배치하였다. 번개-4의 사거리는 300km이고, 사고도는 40km다. 그런데 번개-4에 배속된 5N69 조기경보레이더의 탐지거리는 500km이고, P-35M 포착레이더의 탐지거리는 320km이며, 5N62 추적레이더의 탐지거리는 270km다.

하지만 지대공미사일에 그처럼 3종의 레이더가 따라붙는다는 사실만으로는 조선의 레이더가 34종 이상이라는 것이 전부 해명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또 다른 사연이 있는데, 그것은 조선의 방공망이 겹겹이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사거리와 사고도가 짧은 것에서부터 사거리와 사고도가 긴 것에 이르기까지 각종 지대공미사일 및 각종 고사포를 다층적으로, 조밀하게 배치한 것이다. ‘오릭스 블러그’가 파악한 조선인민군 방공무기체계를 보면, 견인고사포 14종, 자행고사포 9종, 자행발사식 지대공미사일 8종, 고정발사식 지대공미사일 3종을 합해 모두 24종이나 된다. 그처럼 다종다양한 방공무기를 겹겹이 배치하였으니, 거기에 배속된 방공레이더들이 34종 이상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알고 보면, 조선처럼 조밀하고, 다층적이고, 견고한 방공망을 구축한 나라는 전 세계에 없다. 방탄벽이라는 말이 있는데, 조선의 방공망이야말로 그 말에 어울릴 만큼 견고하다.

중동의 이스라엘이 자기 방공망을 ‘철갑지붕’이라고 자랑하지만, 조선의 방공망과 비교하면 그 나라의 방공망은 구멍이 숭숭 뚫린 ‘천막지붕’이다. 미국이 넘겨준 기술과 재정으로 구축된 이스라엘 방공망의 격추율이 90%나 된다는 소문이 한때 국제사회에 퍼졌는데, 2012년 11월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맞붙은 실전에서 드러난 ‘철갑지붕’의 실제격추율은 고작 5~10%였다.
그렇다면 조선 방공망의 격추율은 얼마나 될까? 이 물음에 해답을 줄 자료는 없지만, 전 세계에 현존하는 그 어떤 무장장비도 조선의 방공망을 뚫지 못한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이 글에서 차차 밝혀지게 된다.
 
2. 현대화되고 요새화된 조선의 지하방공기지들

션 오코너는 위에 인용한 그의 글에서 조선의 방공망이 1991년 이라크전쟁 당시 이라크의 방공망처럼 미국의 공습을 막아내지 못하고 전부 파괴될 것이라고 결론하였다.
그러나 오코너의 그런 결론은 무지, 편견, 오판이 빚어낸 허튼 소리로 들린다. 조선의 군력에 대해 무지하고, 편견적이고, 오판하는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말도 되지 않는 허튼 소리를 늘어놓곤 하는데, 오코너의 위와 같은 결론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의 방공망에 대한 오코너의 결론을 무지, 편견, 오판이 빚어낸 허튼 소리로 혹평하는 논거는 아래와 같다.

이라크전쟁에서 이라크의 방공망이 어이없이 파괴된 까닭은, 그 방공망의 위치가 미국의 정찰망에 모조리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에 고고도정찰기와 정찰위성을 동원하여 이라크 방공기지들을 샅샅이 훑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선제공습을 개시하기 직전에 정찰조들을 각지에 침투시켜 이라크 방공기지들에 대한 미국의 공습을 정확히 유도하게 하였다. 미국이 선제공습으로 이라크 방공기지들을 손쉽게 파괴할 수 있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더욱이 이라크군에게 불리했던 것은, 그들에게는 방공무기를 은폐할 지하방공기지가 없었고, 재빨리 이동하는 자행발사식 지대공미사일도 얼마 없었던 데다가, 미국이 쏜 방해전파로 방공레이더망이 졸지에 무용지물로 되고 말았으니, 미국의 선제공습을 무슨 수로 막아낼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조선의 방공기지들은 전혀 다르다. 오코너는 조선의 방공기지와 이라크의 방공기지가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했다. 
오코너는 미공군에서 항공영상자료분석관으로 복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경력 때문에 그는 미국의 상업위성영상기업인 구글어스(Google Earth)가 판매하는 조선에 대한 위성영상자료를 분석하고 나서, 조선의 방공망이 이라크의 방공망처럼 미국의 공습을 막아내지 못하고 전부 파괴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오코너가 구글어스의 위성영상자료를 분석하여 조선의 방공망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였다는 사실은 자신의 글에서 밝힌 바 있다.

오코너가 알지 못한 것은 조선의 방공망이 깊은 땅속에 은폐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오코너가 구글어스의 위성영상자료에서 찾아냈다는 조선의 방공기지들은 미국의 공중정찰을 기만하기 위한 지상의 위장기지들이고, 지상에 설치된 방공레이더들은 진짜처럼 보이게 만든 가짜방공레이더들이다. 조선의 방공기지들이 깊은 땅속에 구축되었다는 것은 내가 상상으로 지어낸 말이 아니라, 2008년 11월 말 조선을 방문한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이 현장시찰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오코너는 2008년 11월 말 조선을 방문한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이 작성한 내부보고서를 읽지 못했고, 그런 보고서가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2008년 11월 25일 조선을 방문 중이던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이 평안남도 온천군에 있는 온천지하항공기지를 방문하였을 때 기지출입구를 지나면서 승용차 안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 자주시보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의 내부보고서에는 깊은 땅속에 은폐된 조선의 방공망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다. 2008년 11월 25일 조선인민군 지하방공기지를 시찰한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의 내부보고서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수록되었다.

“남한에서 움직이는 미국군 항공기들을 레이더로 포착한 정보가 컴퓨터화된 현시대에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그 현시대에 나타난 좌표들을 여성군인들이 기록하고 있었다. 현시대 앞에 앉은 지휘관 한 사람이 면밀히 지시하고 있었다. 첫 번째로 들른 상황실에는 자동현시대와 수동현시대가 모두 설치되어 있었고, 두 번째 들른 상황실에는 수동현시대 9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모든 시설은 땅속에 건설되었는데, 갱도 안에 꾸려진 방들은 통로 쪽에 배치되었다. 이 지하시설은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약 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124km 밖에서 1km 고도로 날아가는 비행체와 167km 밖에서 3km 고도로 날아가는 비행체를 탐지하는 레이더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지하기지와 장비들은 군인들이 건설한 것이다. 그 지하기지에서 사용되는 장비들에 관해 물어보았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원래 이 지하기지는 6.25전쟁 중에 사용된 것인데, 김일성 주석이 현대화하도록 지시하여 1972년에 현대화되었다. 마을과 인접한 이 지하기지 주변에는 전기철조망이 설치되었고, 전기철조망 중간에 설치된 애자들도 보였는데,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또한 2008년 11월 26일 조선인민군 지대공미사일기지를 시찰한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의 내부보고서에는 아래와 같은 사실이 수록되었다.

“조선인민군 방공부대가 사용하는 모든 레이더는 지하에 있는데, 지하기지 위쪽에 개폐문이 두 개 나 있고, 그 문들마다 접지(earth)가 있다. 지하기지 일대에 나무를 심어 위장하였다. 그들은 임의의 시각에 전동장치로 개폐문을 열어 레이더를 지상으로 밀어 올려놓고 사용한다. 레이더를 사용한 뒤에는 다시 지하로 내리고 개폐문을 닫게 된다. 레이더는 갱도를 통해 4개의 지하공간에 각각 연결되어 있다. 그 중에는 미사일 운반차량과 병력이 드나드는 지하공간도 있다. 나머지 3개의 지하공간은 지대공미사일 4발을 동시에 발사하는 자행발사대 2대가 들어가는 곳이다. 지하기지에는 강철개폐문이 설치되었다. 지대공미사일을 발사하기 직전 전동장치로 강철개폐문을 열면, 전동장치를 사용하여 자행발사대를 지하기지 밖으로 끌어내게 된다. 미사일을 발사할 때 뒤에서 내뿜는 화염을 막기 위해 강철개폐문을 닫아놓고 미사일을 발사하게 된다. 지하기지에는 미사일발사 통제차량 1대가 배치되었다. 통제차량은 레이더를 통해 상황정보를 받아보고 발사차량들에게 명령을 내리게 된다.” <사진 4>

▲ <사진 4> 2008년 11월 27일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이 평안북도 대관군에 있는 레이더생산공장을 방문하였을 때 촬영한 사진이다. 이 레이더는 조선이 1968년에 개발한 초기형 지대공미사일 번개-1에 배속된 YLC-8 레이더인데, 탐지거리는 500km다.     © 자주시보

이라크전쟁 당시 이라크에는 위의 인용문에 묘사된 것처럼 현대화되고 요새화된 지하방공기지가 없었다. 조선의 요새화된 지하방공망을 이라크의 허술한 지상방공망과 비교해보려는 오코너의 발상 자체가 무지, 편견, 오판의 뒤범벅으로 보인다.

2012년 미공군은 조선의 지하기지들을 공격하기 위해 기존 지하관통폭탄보다 파괴력이 10배 이상 증강된 신형 지하관통폭탄을 개발하여 20여 발 실전배치하였다. B-52 전략폭격기에 싣고 적진상공에서 지상타격목표에 투하하는 이 초대형 지하관통폭탄은 길이 5.7m, 무게 13.6t인데, 땅속 61m까지 뚫고 내려가 폭발한다. 적재중량이 36t인 B-52 전략폭격기에는 그처럼 크고 무거운 초대형 지하관통폭탄을 2발밖에 싣지 못한다.

위에 서술한 사실만 생각하면, 미공군이 초대형 지하관통폭탄을 투하하여 조선의 지하방공기지를 파괴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상황은 그렇지 않다.
B-52 전략폭격기가 투하하는 초대형 지하관통폭탄은 순전히 흙으로만 이루어진 땅속으로 61m까지 뚫고 내려가 폭발하는 것이지, 바위나 콘크리트로 덮인 땅속에서는 8m밖에 뚫고 내려가지 못한다. 그런데 조선의 지하방공기지들은 천연화강암층이나 인공콘크리트축조물을 이용하여 지하 20m 이상 깊은 곳에 건설되었으므로, B-52 전략폭격기가 투하한 초대형 지하관통폭탄에 뚫리지 않는다. 더욱이 무거운 폭탄을 잔뜩 싣고 시속 900km로 굼뜨게 날아가는 B-52 전략폭격기는 조선의 방공망을 뚫지 못한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미공군 B-52 전략폭격기가 투하한 초대형 지하관통폭탄이 지상타격목표물을 향해 강하비행을 하는 장면이다. 미국은 땅속으로 61m까지 뚫고 내려가 폭발하는 지하관통폭탄으로 조선의 지하기지를 파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허풍이다. 그 폭탄은 바위나 콘크리트로 덮인 땅속에서는 8m밖에 뚫고 내려가지 못한다. 따라서 그 폭탄은 천연화강암층이나 콘크리트축조물을 이용하여 지하 20m 이상 깊은 곳에 건설된 조선의 지하기지를 뚫지 못하는 것이다.     © 자주시보

조선에서 말하는 최후결전은 미공군 B-52 전략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에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작되는 전쟁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이 무징후선제기습타격으로 시작되는 전쟁이다. 지난 이라크전쟁에서 이라크군은 기습타격전법을 알지 못하고 선제타격력도 갖추지 못해서 미국의 선제공습에 꼼짝없이 당했지만, 조선인민군은 오직 기습타격전법만 연마해왔고 전술핵탄을 비롯한 각종 타격수단을 총집중, 총동원하는 가공할 무징후선제기습타격준비를 갖춰놓고 최고사령관의 발사명령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에서 말하는 최후결전에서 무징후선제기습타격을 받고 순식간에 궤멸하는 쪽은 미국군이 될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다.
 
 
3. 2007년 조선의 방공망이 뚫렸는가?

미공군이 발행하는 <공군시보(Air Force Times)> 2008년 4월 14일 부에 매우 충격적인 보도기사가 실렸다. 그 보도기사에는 미공군 F-117A 스텔스전투기의 퇴역을 앞두고 2008년 4월 21일에 진행되는 송별비행에 참가할 F-117A 비행대대장 마이클 드리스콜(Michael Driscoll)의 회고담이 실렸는데, 그의 회고에 따르면, 자신이 F-117A 조종사로 근무해오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미국의 힘을 조선에 과시하기 위해 2007년에 조선의 영공에서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던(buzzing) 때였다는 것이다. <사진 6>

▲ <사진 6> 박쥐처럼 생긴 이 전투기는 2008년에 퇴역한 미공군 스텔스전투기 F-117A다. 2007년 1월 미공군은 F-117A 1개 비행대대를 군산미공군기지로 전개하여 4개월 동안 머물게 하면서 대조선공습을 연습하였는데, 당시 그 공습작전연습에 참가했던 미공군 조종사 마이클 드리스콜은 2008년 4월 <공군시보>와 대담하면서 자기가 2007년에 군산미공군기지에 머물며 대조선공습을 연습할 때, F-117A를 몰고 조선의 영공에서 윙윙 날아다녔다고 회고한 바 있다.     © 자주시보

2007년 1월 미공군은 F-117A 1개 비행대대를 군산미공군기지로 전개하여 4개월 동안 머물게 하면서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RSOI)에 참가하는 등 대조선공습을 연습하였는데, 바로 그 공습작전연습에 참가했던 미공군 조종사 마이클 드리스콜은 자신이 조종한 F-117A가 조선의 방공레이더망을 뚫고 영공을 침범해 들어가 무력시위비행을 감행하였다고 회고한 것이다. 
2007년도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에 참가한 미공군 스텔스전투기가 조선의 영공을 침범하여 무력시위비행을 감행하였는데도,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이 그것을 몰랐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견고하고, 조밀하게 구축해놓은 조선의 방공망이 뚫렸다는 뜻이므로, 전시에 조선의 방공망은 미국의 스텔스전투기의 내습을 방어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군사문제가 아닐 수 없다.  

드리스콜은 취재기자 앞에서 사실을 과장한 자기의 무용담을 늘어놓은 것일까? 아니면 조선의 방공레이더망이 F-117A의 영공침범을 포착하지 못하고 실제로 뚫린 것일까?
미국은 적대적 조미관계에서 무력충돌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스텔스전투기와 스텔스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동시켜 조선을 자극하였다. 이를테면, 미국은 2009년에 스텔스전투기 F-22 36대로 편성된 3개 비행대대를 괌(Guam)에 전개하였고, 2010년 7월 25일부터 28일까지 한반도 중부지역 상공에서 감행된 ‘불굴의 의지’라는 작전명이 붙은 대조선공습연습에 F-22를 출동시켰다. 또한 2012년 7월 28일 미공군은 F-22 12대를 일본 오끼나와에 있는 가데나미공군기지에 전개하고, 대조선공습을 노린 대륙간 장거리비행연습을 감행하였다.
F-22는 미국이 항공무력의 전략적 우세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친미동맹국들로부터 판매요청을 받고서도 팔아주지 않고, 195대 이상 더 생산하지도 않는 최신예 스텔스전투기다. 

이처럼 미국이 조선을 위협해보려고 F-22 편대를 동원하여 극히 모험적인 공습작전연습을 감행하자, 2013년 3월 5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이) 핵으로 위협하면 (조선은) 그보다 더 위력한 우리 식의 정밀핵타격수단으로 맞선다”고 엄중히 경고하였다. 2013년 3월 조선의 전 지역에 공습경보가 발령되었고, 전시비상식량을 준비하기 시작하였고, 전군이 1호 전투근무태세에 진입하였고, 실전을 방불한 공격전술연습을 연속 진행하였다. 심지어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는 조선의 근로자 53,400명도 작업이 없는 야간과 주말에 방공호 보수공사에 참가하였다.

▲ <사진 7> 이것은 미공군이 '세계 최강'이라고 자랑하는 B-2A 스텔스전략폭격기다. 미국은 F-22 스텔스전투기나 B-2A 스텔스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중부지역 상공에 출동시켜 조선을 심히 자극하고, 군사적 긴장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 자주시보

그러자 미국은 2013년 3월 28일 F-22 편대 출동보다 한 술 더 떠서 B-2A 스텔스전략폭격기를 사상 처음으로 한반도 중부지역 상공에 출동시켰다. <사진 7> 이처럼 미국이 F-22 편대를 한반도에서 비행거리로 2시간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데나미공군기지에 바짝 전개해놓고, B-2A 스텔스전략폭격기까지 한반도 중부지역 상공에 출동시키는 등 모험적인 대조선공습작전을 연습하면서 조선을 심히 자극하고 있었을 때, 조선은 그에 맞서 어떤 군사대책을 취하였을까?

주목하는 것은, 2012년 5월 조선인민군이 공군이라는 기존 군종명칭을 항공 및 반항공군으로 변경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단지 명칭변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항공무력과 반항공무력이 비상히 증강되었다는 뜻이다. 특히 조선의 방공무력이 반항공군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갖게 된 것에 눈길이 멎게 되는데, 이것은 조선의 지대공미사일, 고사포, 방공레이더가 대폭 증강되었음을 의미한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몇 해 전부터 미공군 스텔스전투기와 스텔스전략폭격기가 한반도 중부지역 상공까지 북상하여 조선을 심히 자극하고 위협하는 상황에서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이 그에 맞설 방도는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anti-stealth early warning radar)를 실전배치하는 것이다.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는 탐지거리가 500km 이상이고 탐지방향이 360도를 포괄하는 고성능 레이더이고, 레이더전파를 전리층으로 사출하여 수평선 너머 날아가는 비행체까지도 포착하는 초수평선 레이더이며, 스텔스비행체의 움직임을 잡아내는 3차원 레이더다.
만약 조선이 그런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를 갖지 못했다면, 스텔스전투기와 스텔스전략폭격기를 동원하는 미국의 공습을 막아내지 못하게 된다. 조선은 과연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를 실전배치하였을까?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를 최근에 실전배치한 이란의 경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5년 7월 4일 이란은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 가디르(Ghadir)를 완공하고 준공식을 진행하였다. 가디르의 스텔스비행체 탐지거리는 600km이고, 탄도미사일 탐지거리는 1,100km이며, 탐지고도는 각각 100km다. 이란은 첫 번째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 가디르를 2014년 6월에 완공하였고, 이번에 두 번째 가디르를 완공한 것이다. 또한 이란은 가디르보다 더 강력한 성능을 지닌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 세페르(Sepehr)를 현재 건설하는 중인데, 이 조기경보레이더의 탐지거리는 3,000km이고, 탐지고도는 300km다.

▲ <사진 8> 이것은 이란의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 가디르다. 이 거대한 레이더의 스텔스비행체 탐지거리는 600km, 탐지고도는 100km다. 이 레이더 밑변의 길이는 55m이고, 높이는 30m다. 그런 거대한 직사각형 4개를 둘러놓았으니 엄청난 공간을 차지한다.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를 지하방공기지에 들여놓아야 하는 조선은 그처럼 큰 레이더를 만들 필요가 없다.     © 자주시보

이란보다 군사과학기술이 훨씬 앞선 조선은 그런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를 만들 수 있지만, 가디르나 세페르 같은 초대형 레이더는 조선의 작전환경에 적합하지 않다. 조선은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를 지하방공기지에 들여놓아야 하는데, 그런 초대형 레이더는 지하방공기지에 들여놓을 수 없다. <사진 8>에서 보는 것처럼 가디르는 밑변의 길이가 55m이고, 높이가 30m인 거대한 직사각형 레이더 4개를 둘러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하방공기지의 강철개폐문을 드나들 정도로 크기가 작고, 차량으로 이동하는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를 만들 수 없을까? 크기가 작은 차량견인식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를 개발한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 전자과학기술공사 제14연구소가 개발한 JY-26이 차량견인식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다. 이 레이더는 극초단파(UHF)를 사출하여 500km 밖에서 날아가는 스텔스비행체를 감시할 수 있다.
 
4. 자기 모습 드러내지 않는 조선의 비밀병기

미국은 공습작전을 중심으로 침략전쟁을 하는 나라다. 미국군의 항공무력이 불균형적으로 증대된 까닭이 거기에 있다. 미국과 전쟁으로 맞붙은 나라가 미국의 공습을 제압하면 승전하게 되고, 만일 그렇지 못하면 패전하게 된다. 미국과의 최후결전을 벼르는 조선이 미국의 공습을 제압할 강력한 반항공무력을 준비하는데 힘써온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미국의 공습방식이 이전과 달리 스텔스공습으로 진화하였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양상은 미국과의 최후결전을 벼르는 조선에게 미국의 스텔스공습을 제압할 새로운 방공무기체계를 요구하였다. 조선은 미국의 스텔스공습을 제압할 새로운 방공무기체계를 갖추었을까? 2013년 3월 31일 한반도 중부지역 상공에서 전개되었던 긴박한 상황에서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2013년 3월 31일은 2012년 5월 3일 조선인민군 공군이 항공 및 반항공군으로 군종명칭을 변경한 이후 처음으로 미공군 스텔스전투기가 한반도 중부지역 상공에 출동한 날이었다. 그 날 군산미공군기지에 전개된 미공군 F-22 편대는 지난 시기에 그러했던 것처럼 대조선공습을 연습하면서 조선을 심히 자극하였다. 그런데 중국의 온라인 언론매체 <관차저왕(觀察者網)> 2014년 11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2013년 3월 31일 미국이 F-22 편대를 군산미공군기지에 전개하였을 때, 중국인민해방군은 서해 건너 중국 산둥성에 배치한 최신형 레이더로 400km 떨어진 군산지역 상공에서 오가는 F-22 비행상황을 면밀히 감시하였다는 것이다. 그 최신형 레이더가 바로 JY-26 차량견인식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다. <사진 9>

▲ <사진 9> 2013년 3월 31일 미국이 F-22 편대를 군산미공군기지에 전개하였을 때, 중국은 서해 건너 산둥성에 배치한 최신형 레이더로 400km 떨어진 군산지역 상공에서 오가는 F-22 비행상황을 면밀히 감시하였는데, 당시 중국은 위의 사진에 나타난 JY-26 차량견인식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로 감시하였다.     © 자주시보

그러면 당시 조선인민군 방공레이더기지들도 중국인민해방군 방공레이더기지들처럼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로 F-22 비행상황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는 2013년 4월 4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담화에 이런 구절이 들어있다. “일본 본토와 오끼나와에서 리륙한 스텔스전투폭격기 <F-22>편대들이 오산공군기지에 전개하여 불의타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위와 같은 문장이 들어있는 담화를 발표하기 사흘 전인 2013년 4월 1일 주한미국군사령부는 미공군 F-22 2대가 ‘독수리연합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2013년 3월 31일 일본 오끼나와 가데나미공군기지에서 이륙하여 오산미공군기지로 전개하였다고 밝혔다.

F-22가 가데나미공군기지를 이륙하여 오산미공군기지에 전개하기까지 약 2시간 걸리고, 일본 본토에서 이륙하여 오산미공군기지에 전개하기까지 약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기습적인 공습작전에 유리한 비행거리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F-22가 가데나미공군기지에서 이륙하여 오산미공군기지로 전개한 비행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이 아니라 F-22가 일본 본토에서 이륙하여 오산미공군기지로 전개한 비행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당시 F-22가 일본 본토에서 이륙하여 오산미공군기지로 전개한 사실은 언론보도에 나오지 않았으므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언론보도에 나오지 않은 그런 사실을 언급한 것은 F-22 비행상황을 빠짐없이 감시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F-22의 레이더전파 반사면적은 0.01~0.001㎢밖에 되지 않으므로, 재래식 조기경보레이더는 그 기종의 비행상황을 감시하지 못한다. F-22 비행상황을 감시할 수단은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밖에 없다. 당시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이 F-22 비행상황을 빠짐없이 감시한 것은 그들이 지하방공기지에서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를 가동하였음을 말해주는 뚜렷한 방증이다.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이 미공군 스텔스전투기와 스텔스전략폭격기를 감시할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를 실전배치하였다는 놀라운 사연이 담긴 사진이 있다. <사진 10>은 2012년 5월 3일 조선인민군이 공군이라는 군종명칭을 항공 및 반항공군으로 변경한 바로 그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항공 및 반항공군 지휘부를 시찰하면서 그 지휘부 마당에 임시로 전시해놓은 최신형 번개-6 지대공미사일을 바라보는 사진이다.

▲ <사진 10> 2012년 5월 3일 조선인민군이 공군이라는 군종명칭을 항공 및 반항공군으로 변경한 바로 그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항공 및 반항공군 지휘부를 시찰하면서 지휘부 마당에 임시로 전시해놓은 최신형 번개-6 지대공미사일을 살펴보았다. 번개-6은 조선이 아직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비밀병기들 가운데 하나다. 주목하는 것은, 번개-6에 배속된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를 가동하면, 미국의 스텔스전투기, 스텔스전략폭격기, 전자전기, 탄도미사일 등을 600km 밖에서 포착할 수 있다. 번개-6은 조미관계에 조성된 항공무력전략구도를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 자주시보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은 2012년 2월 24일 강원도 안변군 깃대령에서 번개-6을 4발 쏘는 발사연습을 진행하였는데, 이에 관해서는 2014년 3월 3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최근 발사한 북 미사일은 S-400급 최첨단 지대공미사일’에서 논한 바 있다.

주목하는 것은, 번개-6에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가 배속된다는 사실이다. 그 조기경보레이더의 비행체 탐지거리는 600km이고, 탄도미사일 탐지거리는 60km인데, 방해전파차단기능도 갖췄으며, 비행체 300개를 동시에 포착할 수 있다.

2013년 4월 4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데나미공군기지에서 이륙하여 오산미공군기지로 전개한 F-22 비행상황과 일본 본토에서 이륙하여 오산미공군기지로 전개한 F-22 비행상황을 면밀히 감시하였던 비밀병기는 번개-6에 배속된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였다.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이 번개-6에 배속된 반스텔스 조기경보레이더를 가동하면, F-22 스텔스전투기와 B-2A 스텔스전략폭격기를 600km밖에서 감시할 수 있고, EA-6B 전자전기가 쏘는 방해전파에도 끄덕하지 않으며, 사거리 3,500km의 탄도미사일이 날아오는 것도 포착할 수 있다.

번개-6 지대공미사일은 아직까지 자기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은 조선의 비밀병기다. 적대적인 조미관계에 조성된 항공무력전략구도는 조선의 비밀병기에 의해 2012년에 완전히 뒤집혀졌다. ‘세계 최강’이라는 스텔스전투기와 스텔스전략폭격기를 내세운 미국의 공중우세를 조선의 비밀병기가 또 다시 무너뜨린 것이다. 그런 비밀병기가 지하방공기지에서 대기 중인 줄도 모르고, 미공군이 스텔스전투기와 스텔스전략폭격기를 또 다시 한반도 상공에 출동시키면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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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7

미국의 ‘급소’는 제4작전구역에 있다

[한호석의 개벽예감] (166)
자주시보 2015년 07월 06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조선은 또 다시 위성을 쏘아올린다
2. 미국은 이번에도 미친 듯이 반발할 것이다
3. 20,000~36,000km의 고도에 떠 있는 미국의 ‘급소’
4. 위성요격미사일 시험발사를 거듭하는 중국
5. 최후결전의 시각에 위성요격미사일 발사할 조선인민군 전략군
6. 미국의 군사위성들은 무방비상태에 있다

▲ <사진 1> 이 사진은 2015년 5월 평양에 신축된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 전시된 조선의 위성들이다. 왼쪽부터 1998년 8월 31일에 쏘아올린 광명성-1호, 2009년 4월 5일에 쏘아올린 광명성-2호, 2012년 12월 12일에 쏘아올린 광명성-3호 2호기다. 조선은 당창건 70주년을 맞은 올해 10월 초에 또 다시 위성을 쏘아올릴 것인데, 이번에는 통신위성을 쏘아올릴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1. 조선은 또 다시 위성을 쏘아올린다 
 
2015년 6월 28일 한민구 국방장관은 취재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진행하면서 오는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을 전후하여 조선이 “전략적인 의도를 가진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견하였다. 군부의 수장인 그는 조선에 대해 적대감을 품고 있기 때문에 조선이 당창건 70주년이 되는 날을 전후하여 “전략적 의도를 가진 도발”을 할 것으로 예견했지만, 조선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말하면 그가 예견한 것은 조선의 ‘도발’이 아니라 인공위성발사다. <사진 1>

올해 당창건 70주년을 맞은 조선이 오는 10월 10일에 즈음하여 자기의 국력을 내외에 과시할 중대사변을 준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한민구 국방장관만이 아니라 내외언론매체들도 인정한다. 예컨대, 일본 <교도통신> 2015년 5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올해 초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당창건 70주년이 되는 2015년 10월 10일에 맞춰 인공위성을 발사하라는 지시를 국가우주개발국에 직접 내렸다고 한다. 2015년 5월 2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평양에 신축된 국가우주개발국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시찰하면서 “주체조선의 위성은 앞으로도 당중앙이 결심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련이어 우주를 향하여 날아오를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조선의 위성발사계획과 관련하여 얼마 전 국가우주개발국이 표명한 공식입장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평양에 신축된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시찰한 날로부터 엿새가 지난 2015년 5월 8일 국가우주개발국은 “불순적대세력들의 온갖 준동을 짓부시며 선군조선의 평화로운 우주개발은 더욱더 기운차게 추진될 것이다”라는 제목의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였는데, 그 담화에서 조선의 “종합적인 국가우주개발계획”에 따라 “각종 위성들”이 이미 제작되어 있다고 밝힘으로써 멀지 않아 인공위성을 발사할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였다.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위성들을 발사할 준비를 갖추었다는 사실은 2015년 7월 3일 평양에서 진행된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과의 언론대담에서 국가우주개발국 과학연구개발부 현광일 국장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한민구 국방장관의 오찬간담회 발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올해 10월 초에 있을 것으로 예견한 조선의 위성발사를 전략적인 위성발사라고 표현하였다는 점이다. 위성발사를 두고 전술적이니 전략적이니 하는 말은 일반적으로 쓰지 않지만, 한민구 국방장관은 군사용어에 익숙한 군부의 수장이라서 그런지 전술적 위성발사와 전략적 위성발사를 구분하였는데, 그 양자는 어떻게 서로 다른 것일까?

전술적 위성발사와 전략적 위성발사를 구분하는 기준은 인공위성이 어느 궤도에 진입하는가 하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 두 종류의 궤도는 저지구궤도와 정지궤도인데, 전술적 위성발사는 위성이 저지구궤도에 진입하는 것을 뜻하고, 전략적 위성발사는 위성이 정지궤도에 진입하는 것을 뜻한다. 저지구궤도는 지표면으로부터 160~2,000km 고도에 위치하고, 정지궤도는 지표면으로부터 20,000~36,000km 고도에 위치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민구 국방장관이 예견한 조선의 전략적 위성발사는 조선이 이번에 위성을 20,000~36,000km 고도의 정지궤도로 쏘아올릴 것이라는 뜻이다.

▲ <사진 2> 2015년 5월 28일 조선국가우주개발국 과학연구개발부 백창호 부국장과 윤창혁 부국장은 평양에 주재하는 미국의 에이피통신 텔레비전방송 취재기자와 언론대담을 진행하였다. 이 사진에 나온 사람은 백창호 부국장이다. 그들의 언론대담을 통해서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통신위성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자주시보

한민구 국방장관의 그런 예견은 조선국가우주개발국 관계자의 발언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조선국가우주개발국 과학연구개발부 윤창혁 부국장은 2015년 5월 28일 평양에 주재하는 <APTV(에이피통신 텔레비전방송)> 취재기자와 진행한 언론대담에서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통신위성을 개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진 2> 통신위성은 정지궤도에 떠 있는 고고도위성이며 휴대전화, 방송, 인터넷 등 민간통신에도 사용되고, 군사통신에도 사용된다.

위에서 인용한 한민구 국방장관의 오찬간담회 발언과 윤창혁 부국장의 언론대담 발언을 연결해서 읽으면, 조선은 오는 10월 초에 자기의 첫 통신위성을 정지궤도로 쏘아올릴 것으로 예견된다.
조선이 통신위성을 정지궤도로 쏘아올리려면, 지표면으로부터 20,000~36,000km 고도에 도달할 신형 위성운반로켓에 그 위성을 실어 쏘아야 한다. 2012년 12월 12일 광명성-3호 2호기를 저지구궤도에 올려놓은 위성운반로켓 은하-3호는 그렇게 먼 우주공간까지 날아갈 수 없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오는 10월 초 조선은 은하-3호보다 훨씬 더 큰 신형 위성운반로켓에 자기의 첫 통신위성을 실어 정지궤도로 쏘아올릴 것으로 예견된다.

 
2. 미국은 이번에도 미친 듯이 반발할 것이다

조선이 통신위성을 발사하면, 보나마나 미국은 미친 듯이 반발할 것이다. 조선이 2012년에 지구관측위성을 중형 위성운반로켓에 실어 저지구궤도에 쏘아올렸을 때도 미국은 미친 듯이 반발하였는데, 이번에 조선이 통신위성을 대형 위성운반로켓에 실어 정지궤도까지 쏘아올리면, 미국의 반발은 격해지다 못해 미친 듯이 폭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인공위성발사는 예사롭게 여기고, 자기와 적대관계에 있는 이란의 위성발사에 대해서도 반발하지 않는데, 유독 조선이 위성을 발사할 때만 그처럼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반발하였다. 미국은 이란의 위성발사에 대해서는 반발하지 않으면서 어째서 조선의 위성발사에 대해서만 그처럼  반발하는 것일까? 미국이 유독 조선의 위성발사에 대해 미친 듯이 반발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하는데, 두 가지 원인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우주개발능력의 수준차이가 그런 원인들 가운데 하나다. 우주개발능력에서 조선이 이란보다 크게 앞서 있기 때문에 미국은 조선의 우주개발을 저지해보려고 그처럼 미친 듯이 반발하는 것이다. 만일 조선의 우주개발능력이 이란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미국은 조선이 위성을 발사할 때마다 그처럼 미친 듯이 반발하지 않을 것이다.  

▲ <사진 3> 조선이 쏘아올릴 통신위성은 지표면으로부터 20,000-36,000km 떨어진 정지궤도에 떠 있는 고고도위성이다. 통신위성은 민간-군사겸용이다. 조선이 자기의 통신위성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조선이 자주적으로 결정할 내정문제다. 미국은 조선의 위성문제에 대한 내정간섭을 자행하여 무력충돌위기를 고조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 자주시보

둘째, 미국이 조선의 위성발사에 대해 미친 듯이 반발하는 까닭은, 인공위성이 민간-군사겸용이기 때문이다. 조선이 2012년 12월 12일에 쏘아올린 지구관측위성 광명성-3호 2호기를 보더라도, 그 위성을 국가산업발전에 사용할 수도 있고, 군사정찰활동에 사용할 수도 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통신위성도 민간-군사겸용이다. <사진 3> 물론 인공위성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생산물도 그렇다. 예컨대, 조선의 제철소들이 생산한 철강재 중에서 산업생산에 사용되는 것은 민간자재로 되고, 무장장비생산에 사용되는 것은 군수물자로 되는 것이며, 조선의 협동농장들이 생산한 양곡 중에서 인민들에게 공급되는 것은 민간식량으로 되고, 군부대에 공급되는 것은 군수물자로 되는 것이다.

어떤 나라가 자기 위성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 나라가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법이다. 조선이 자기의 위성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도 조선이 자주적으로 결정할 내정문제이지 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다른 나라의 내정간섭이라면 털끝만큼도 용납하지 않는 역사와 전통을 지닌 조선이 자기의 위성문제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을 조금이라도 허용하리라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큰 착각과 망상은 없다. 미국이 위성문제를 가지고 조선의 내정을 간섭해보려고 어리석게 행동할수록, 조선의 최후결전은 더 앞당겨질 것이다. 미국은 조미관계가 격전전야에 있다는 조선의 말을 무심히 듣지 말아야 한다. 
 
 
3. 20,000~36,000km 고도에 떠 있는 미국의 ‘급소’

지금까지 우주는 미국을 비롯한 몇몇 우주과학선진국의 독무대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을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라고 규정하고 미국과 최후결전을 벌여 우리나라를 통일하겠다고 벼르는 조선이 오는 10월 초에 바로 그 독무대에 진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조선이 정지궤도에 통신위성을 쏘아올리는 것은 지표면으로부터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궤도에 진출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조선이 최후결전을 우주공간으로까지 확대할 우주작전능력을 가졌음을 내외에 과시하는 것이다.

우주는 육지, 바다, 하늘에 이어 제4작전구역이다. 현대전에서 우주무기의 역할은 결정적이며, 우주작전능력을 가진 나라가 군사강국이다. 오는 10월 초 조선이 통신위성을 쏘아올리면, 조선은 제4작전구역에 자력으로 진출하는 우주강국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조선에서 말하는 최후결전에 대해 집필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해왔다.

첫째, 조선은 멀지 않아 반드시 최후결전을 벌일 것이라는 점.
둘째, 조선은 무징후선제기습타격으로 미국의 ‘급소’를 찔러 미국의 전쟁능력을 단숨에 마비시키고 최후결전을 72시간 안에 속결할 것이라는 점.
셋째, 조선이 최후결전을 그런 식으로 속전속결해야 전쟁 중에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미국의 항복을 신속히 받아낼 수 있다는 점.

▲ <사진 4> 정지궤도에 떠 있는 미국의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은 미국의 급소 중에서 가장 취약한 급소다. 최후결전의 시각 조선이 무징후선제기습타격으로 그 두 위성을 파괴해버리면, 미국은 더 이상 전쟁을 하지 못한다.     © 자주시보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최후결전의 시각 조선이 무징후선제기습타격으로 파괴할 미국의 ‘급소’가 제4작전구역에 있다는 사실이다. 제4작전구역은 지표면으로부터 20,000~36,000km 고도의 정지궤도를 뜻한다. 정지궤도에 떠 있는 미국의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이야말로 미국의 급소 중에서 가장 취약한 급소다. <사진 4> 최후결전의 시각 조선이 무징후선제기습타격으로 미국의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을 파괴해버리면, 미국은 더 이상 전쟁을 하지 못한다.

미국의 군사통신위성이 파괴되면, 미국군의 전략통신체계는 마비되고 전술통신체계만 작동하게 될 것이며, 미국의 미사일경보위성이 파괴되면, 미국군의 전략미사일방어망은 마비되고 국지적 전술미사일방어망만 작동될 것이다. 미국이 전술통신체계와 전술미사일방어망만 가지고 조선과 맞붙은 전쟁에서 이길 방도는 전혀 없다.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막중하기 때문에 그 두 종의 군사위성이 파괴되면, ‘급소’를 강타당한 사람이 그 자리에 맥없이 쓰러지는 것처럼 미국은 꼼짝없이 항복하게 될 것이다.
 
 
4. 위성요격미사일 시험발사를 거듭하는 중국
 
위성요격미사일은 궤도에 진입하여 적국의 위성을 요격, 파괴하는 우주무기이므로,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능력과 미사일을 요격하는 능력을 결합시키면 그런 우주무기를 가질 수 있다. 조선은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능력과 미사일을 요격하는 능력을 모두 갖추었으므로, 위성요격미사일을 쏘아올리는 우주작전능력도 가졌다. 

우주작전능력을 가진 군사강국들 가운데서 위성요격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하는 중국의 움직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2007년 1월 11일 위성요격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하였는데, 그 시험발사는 자행발사대(TEL)에서 위성요격미사일을 불시에 발사하여 이미 수명이 끝난 자국의 위성 펑윈(風雲)-1C를 요격, 파괴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펑윈-1C는 지표면으로부터 865km 떨어진 저지구궤도에 떠 있던 질량 750kg의 기상관측위성이었다. 중국이 발사한 위성요격미사일은 그 기상관측위성이 비행하는 정반대 방향에서 초속 8km로 돌진하여 정면충돌하는 식으로 그 미사일을 파괴하였다. <사진 5>

▲ <사진 5> 2007년 1월 11일 중국은 자행발사대에서 위성요격미사일을 불시에 발사하여 이미 수명이 끝난 자국의 기상관측위성 펑윈-1C를 파괴하였다. 이 사진은 위성요격미사일이 펑원-1C에 명중하는 장면을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린 상상도다. 그런데 그 기상관측위성이 파괴되면서 3,000여 개가 넘는 작은 파편들이 우주쓰레기가 되어 궤도공간에 흩어졌다.     © 자주시보

그러나 그 날 중국의 위성요격미사일 시험발사는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왜냐하면, 위성요격미사일이 기상관측위성을 파괴하는 순간, 3,000여 개가 넘는 작은 파편들이 우주쓰레기가 되어 궤도공간에 흩어졌기 때문이다. 저지구궤도에는 적국의 군사위성들만 떠 있는 게 아니라 중국에 적대적이지 않은 여러 나라의 민간위성들도 많고, 중국의 민간위성도 있다. 현재 저지구궤도에 떠 있는 세계 각국의 인공위성은 670기나 되는데, 중국이 쏘아올린 위성요격미사일이 그처럼 교통량이 많은 궤도공간에 3,000여 개가 넘는 파편을 흩어놓았으니, 위성과 파편이 충돌할 위험이 조성된 것이다.
정면충돌하는 요격방식으로 적국의 군사위성을 파괴하여 수많은 파편을 흩어놓는 식으로는 우주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중국은 파편을 흩어놓지 않으면서도 적국의 군사위성을 파괴하는 새로운 개념의 위성요격미사일을 개발하게 되었다. 

2014년 7월 23일 중국이 저지구궤도에 쏘아올린 신형 위성요격미사일이 새로운 개념의 위성요격미사일인데, 이 신형 위성요격미사일의 특징은 공격대상위성에 정면충돌하는 식으로 파편을 흩어놓지 않고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정면충돌하지 않고 적국의 위성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중국의 신형 위성요격미사일의 요격방식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국방부가 그처럼 정보를 은폐한 것은 그들이 중국의 신형 위성요격미사일이 출현한 것으로 하여 상당한 불안과 우려를 느꼈음을 말해준다.

중국이 2014년 7월 23일에 쏘아올린 신형 위성요격미사일의 이름은 뚱능(動能)-1호다. 비밀전략병기인 뚱능-1호에 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는데,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그 미사일이 4단형으로 설계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런데 <워싱턴자유횃불(WFB)> 2013년 8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뚱능-1호를 쏘아올리기 1년 전인 2013년 7월 20일 소형위성들인 꺼신(革新)-3호, 쉬옌(實驗)-7호, 쉬젠(實踐)-15호를 창정(長征)-4C 위성운반로켓에 실어 발사하였는데, 그 가운데 쉬젠-15호는 뻗었다가 접을 수 있는 로봇팔이 달린 특수위성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중국의 신형 위성요격미사일 뚱능-1호에도 쉬젠-15호처럼 뻗었다가 접을 수 있는 로봇팔이 달려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것은 지구궤도에 쏘아올려져 적국의 군사위성에 접근한 뚱능-1호가 로봇팔로 그 위성을 망가뜨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적국의 군사위성을 로봇팔로 망가뜨리면, 파편을 흩어놓지 않고서도 파괴할 수 있다. 소형위성과 로봇기술을 결합시킨 중국의 신형 위성요격미사일 뚱능-1호는 전형적인 비대칭전략무기인 것이다.
 
 
5. 최후결전의 시각에 위성요격미사일 발사할 조선인민군 전략군

위성요격미사일을 누구보다 절실히 요구하는 나라는 미국과 최후결전을 앞두고 격전전야에 진입해있는 조선이다. 조선이 로봇식 위성요격미사일을 실전배치하였는지 아니면 전자기파(EMP)방출식 위성요격미사일을 실전배치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선의 로봇기술은 이미 1980년대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여 오랜 기간 동안 기술축적을 계속해왔고, 광명성-3호 2호기 발사에서 입증한 것처럼 고도의 위성조종기술도 보유하였기 때문에 조선이 로봇식 위성요격미사일을 쏘아올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또한 조선에서는 전자기파 생성기술도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되었으므로, 조선이 전자기파방출식 위성요격미사일을 쏘아올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조선에서 위성요격미사일을 운용하는 군종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라는 사실이다. 아래에 서술한 몇 가지 정보를 살펴보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위성요격미사일을 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2년 3월 3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략로케트사령부를 시찰한 소식을 전하였다. 그 소식을 통해 조선인민군에 전략로케트군이라는 제4군종이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사진 6>

▲ <사진 6> 2013년 3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작전회의실에서 미국에 대한 전략타격계획서에 서명하였다. 이 날로부터 조선인민군 전략군 대변인 담화가 발표된 2014년 3월 5일까지 1년 중 어느 날 전략로케트군은 전략군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러한 명칭변경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대륙간탄도미사일만이 아니라 위성요격미사일도 운용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변화였다.     © 자주시보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광명성-3호 1호기를 쏘아올리기 한 달 전에 전략로케트사령부를 시찰하였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조선의 위성발사를 한 달 앞두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전략로케트사령부 시찰소식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것은 미국이 조선의 위성발사를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경우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미국의 방해행위를 무력으로 제압할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 것이다. 조선은 2012년 4월 13일 광명성-3호 1호기를 탑재한 은하-3호를 쏘아올렸는데, 상승비행을 하던 이 위성운반로켓이 120km 고도에 이르러 갑자기 고장을 일으키자 조선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는 그 위성운반로켓에 장착된 자동폭파장치를 가동하여 서해에 추락시켰다.  

미국이 조선의 위성발사를 방해하려고 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 아니다. 조선이 2009년 4월 5일 인공위성 광명성-2호를 탑재한 위성운반로켓 은하-2호를 쏘아올렸을 때도 미국은 조선의 위성을 요격하겠다고 공갈한 바 있다. 미국의 공갈로 조선과 미국 사이에 일촉즉발의 무력충돌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미국의 위성요격기도를 파탄시키기 위한 조선인민군의 기습타격준비를 총지휘한 반타격사령관은 김정은 당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2012년 1월 23일 <통일뉴스>에 실린 나의 글 ‘북미 담력전 55일의 기록’과 2015년 4월 6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붉은 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에서 상세히 논한 바 있다.

위에 언급한 나의 두 글에 서술된, 2009년과 2012년에 있었던 조선의 위성발사경험이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은 조선이 위성을 쏘아올릴 때마다 위성을 요격하겠다는 공갈로 무력충돌위기를 조성하였고, 조선은 그에 대응하여 전면타격준비태세에 돌입하였다. 주목하는 것은, 2009년과 2012년에 조선이 미국의 위성요격기도를 파탄시키기 위한 전면타격전을 준비할 때, 전략로케트군이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사실이다. 

2012년 4월 15일 평양에서 성대하게 진행된 태양절 100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영용한 육해공군 및 전략로케트군 장병들과 조선인민군 내무군 장병들, 로농적위군과 붉은청년근위대 대원들, 전국의 근로자들과 평양시민 여러분, 남녘의 겨레와 해외동포 여러분, 동지들, 벗들”이라는 말로 경축연설을 시작했는데, 이것은 조선의 최고영도자가 전략로케트군의 존재를 사상 처음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경축연설 직후 진행된 열병식 분렬행진에서 전략로케트군이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 6발을 8축16륜 자행발사대 6대에 실어 공개하였는데, 그것을 본 군사전문가들은 조선의 전략로케트군의 전시작전임무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의 전시작전임무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자기의 명칭을 전략군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2014년 3월 5일 조선인민군 전략군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에서 전략로케트군이라는 기존 명칭이 전략군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바뀌어 있었다. 전략군 대변인은 담화에서 “지난 2월 21일부터 3월 4일까지의 기간에 우리의 전략군부대들은”...“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로 만든 다종다형의 첨단로케트들의 성능이 남김없이 검증된 로케트발사훈련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고 밝혔다.

조선은 왜 전략로케트군이라는 명칭에서 로케트라는 말을 빼놓은 것일까? 전략로케트라는 말은 핵탄을 장착한 탄도미사일을 뜻하므로, 전략로케트군이라는 명칭을 쓰면, 그 군종의 전시작전임무가 핵탄을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사용하는 것에 한정된다. 그런데 전략로케트군이라는 명칭에서 로케트라는 말을 빼면, 그 군종의 전시작전임무가 핵탄을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사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전략무기도 사용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전략군이 전시에 사용할 다른 전략무기가 바로 위성요격미사일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라는 기존 명칭이 전략군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바뀐 것은 그 군종이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위성요격미사일을 모두 운용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6. 미국의 군사위성들은 무방비상태에 있다

현재 미국이 운용하는 각종 군사위성은 160기인데, 전시에 조선은 그 많은 군사위성을 일일이 요격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전시에 조선은 미국의 ‘급소’라고 할 수 있는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만 요격하면 된다.
미국의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은 지표면으로부터 20,000~36,000km 떨어진 정지궤도에 떠 있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위성요격미사일을 정지궤도로 발사하여 미국의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을 요격하는 것은 제4군종이 제4작전구역에서 수행하는 필수적인 작전으로 된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에 서술한 정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정지궤도에 떠 있는 군사위성은 정해진 방향으로, 정해진 속도로 비행하고, 몸집도 매우 크다. 예컨대, 미국의 미사일경보위성은 높이 10m, 지름 6.7m, 질량 2,380kg으로 몸집이 매우 크고,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서 4억 달러나 된다. 비행방향과 비행속도가 고정된 대형 군사위성을 요격하는 것은 비행방향과 비행속도를 알기 힘든 소형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

둘째, 저지구궤도에 떠 있는 저고도위성은 초속 8km로 비행하는데 비해, 정지궤도에 떠 있는 고고도위성은 초속 3km로 비행한다. 정지궤도에 떠 있는 미국의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의 비행속도는 그처럼 상대적으로 느리므로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위성요격미사일로 요격하기가 수월하다.

셋째, 군사통신위성 3기가 남북극지역을 제외한 지구전역의 위성통신을 보장하고 있으며, 미사일경보위성 3기가 남북극지역을 제외한 지구전역을 적외선감지장치로 감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미국의 군사통신위성 3기 중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위성통신을 보장하는 군사통신위성 1기와 미국 미사일경보위성 3기 중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사일발사상황을 감시하는 미사일경보위성 1기만 요격하면 될 것이다. 

미국의 군사통신위성은 전시에 미국 본토의 전쟁지휘부, 하와이의 태평양사령부, 괌-일본-알래스카-한국을 연결하는 야전사령부들 사이의 전략적 위성통신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통신수단이다. 그런데 전시에 조선이 그처럼 중요한 군사통신위성을 파괴하면, 미국 본토의 전쟁지휘부, 하와이의 태평양사령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배치된 야전사령부들 사이의 전략통신망이 끊어져 전쟁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위성요격미사일로 미국의 미사일경보위성을 파괴하면, 미국은 조선이 발사하는 각종 탄도미사일들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많이 날아오는지 알 수 없게 되므로 그냥 앉아서 얻어맞는 수밖에 없다. <사진 7>

▲ <사진 7> 이것은 미국이 자랑하는 해상배치 X-밴드레이더다. 이 거대한 레이더는 길이 116m, 높이 85m, 배수량 50,000t이며, 가격은 자그마치 9억 달러나 된다. 미국은 이 레이더를 태평양에서 몰고 다니며 조선이 발사한 미사일을 요격하겠노라고 큰 소리를 치지만, 최후결전의 시각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불시에 위성요격미사일을 발사하여 정지궤도에 떠 있는 미국의 미사일경보위성 1기만 파괴하면, 9억 달러짜리 X-밴드레이더는 바다에 떠도는 고철덩어리로 될 것이다.     © 자주시보

아닌 게 아니라, 2014년 1월 7일 미공군 우주사령관 윌리엄 쉘튼(William Shelton)은 미국의 군사위성들이 무방비상태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적국이 미국의 군사위성을 요격하면 “미국의 첨단전쟁능력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게 될 것”이라고 심히 우려하였다. 미공군 우주사령관이 심히 우려한 ‘거대한 구멍’은 전략적 군사통신체계와 전략적 미사일경보체계가 파괴된 절망적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미공군 우주사령관이 우려한 것처럼, 최후결전의 시각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위성요격미사일 2발을 불시에 발사하여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운용되는 미국의 군사통신위성과 미사일경보위성을 파괴함으로써 우주공간에 ‘거대한 구멍’을 뚫어놓을 것이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그 ‘거대한 구멍’으로 각종 탄도미사일을 쏟아 부으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전진배치된 미국군 266,000명, 각종 작전기 1,741대, 각종 전투함선 152척은 대파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흰 기를 들고 조선에게 항복할 패전씨나리오다. 

우주안보불안정의 수준이 급속히 높아지자 미국 국방부는 자기의 군사위성을 방어하기 위한 긴급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의 온라인 언론매체 <스뿌뜨니끄(Sputnik)> 2015년 6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합동우주작전센터를 지원하는 새로운 우주작전센터를 앞으로 6개월 안에 증설할 것이고, 2016년도 미국 국방 및 정보예산 가운데 50억 달러를 우주안보강화에 배정하였는데, 거기에는 미해군 통신위성운영비 2,100만 달러, 정찰위성운영비 1억 달러, 미공군 우주경보체계운영비 3,200만 달러가 포함되었다.

하지만 미공군 우주사령부는 수많은 첨단군사장비들과 40,000명 병력을 운용하고 연간예산을 50억 달러나 쓰면서도 제4작전구역에 있는 군사위성을 방어하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냈다. 최후결전의 시각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무능에 발목이 잡혀버린 미국군의 허를 찌르는 위성요격미사일을 쏘아올려 정지궤도에 떠 있는 미국의 ‘급소’를 파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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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30

한일관계 50년의 치욕, 언제까지 방치하는가?

[한호석의 개벽예감](165)
자주시보 2015년 06월 29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2중망언 계속 내뱉는 일본 극우정권
2. ‘이미 무효’ 네 글자가 불러온 재앙
3. 을사오적 매국범죄를 능가하는 매국범죄
4. 독도영유권 침해한 한일기본협정
5. 대일청구권마저 포기한 굴욕외교의 극치

▲ <사진 1> 2015년 6월 22일 서울과 도꾜에서 각각 진행된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들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교차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하지만 치욕으로 얼룩진 한일관계 50년 역사를 직시하면, 그것은 양국 국민을 속이는 교차기만극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1. 2중망언 계속 내뱉는 일본 극우정권
 
2015년 6월 26일 일본 중의원 평화안전법제 특별위원회에 출석한 아베신조(安培晉三) 일본 총리는 “전쟁 전 일한 사이의 여러 일들에 대해서는 1965년 일한기본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그가 일본 극우정권의 흉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교묘한 어법으로 식민지조선-일제 관계와 한국-일본 관계를 압축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는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지강점을 “태평양전쟁 종전 이전에 일제와 식민지조선 사이에서 발생했던 여러 일들”이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표현함으로써 일제의 극악한 범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지강점과 관련하여 한국이 일본에 제기한 문제들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강변한 것이다. 

위에 인용한 아베의 발언에서 드러난 것처럼, 식민지조선-일제 관계와 한국-일본 관계에 대한 일본 극우정권의 망언은 반복적이며 2중적이다. 이를테면, 그들의 1차 망언은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강점하고 수탈한 범죄가 애초에 있지도 않았고, 일제는 일제와 조선이 합법적으로 체결한 조약들에 의거하여 조선에 정당하게 진출하여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것이며, 그들의 2차 망언은 자기들의 1차 망언이 한일기본조약에 의해 망언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이 국제법적으로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망언이 법적 근거와 결부되는 경우 망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치군사적 행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일본 극우정권이 반복적으로 내뱉어온, 식민지조선-일제 관계 및 한국-일본 관계에 관한 온갖 망언들을 용인해준 괴이한 행사가 2015년 6월 22일 서울과 도꾜에서 각각 진행되었다. 반세기 전에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된 것을 기념하는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행사가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진행된 것이다.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그 날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서울에서 주최한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했고, 아베 일본 총리는 한국 정부가 도쿄에서 주최한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했다.

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 체결부터 1945년 8.15 해방까지 40년 동안 이어진 식민지조선-일제 관계, 그리고 1948년 분단정부수립부터 오늘까지 67년 동안 전개된 한국-일본 관계를 올바로 아는 사람들은 그 두 정상이 기념식에 교차참석하여 축사를 한 것이 양국 국민을 속이는 교차기만극이라고 여길 터다. 무엇보다도 한일국교정상화라는 말부터 기만적이다. 50년 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으로 한일관계가 정상화되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한국-일본 관계가 기형화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소급하여 식민지조선-일제의 관계까지 왜곡되고 말았다. 한일기본조약에 얽혀있는 치욕적인 사연들은 올해가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이 아니라 한일관계기형화 50주년임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왜 한일관계정상화라는 말을 접고 한일관계기형화라고 말해야 하는가? 그 까닭은, 한국에서 정권을 잡은 친일세력이 일본에서 정권을 잡은 일제전범들의 강압과 회유에 굴복하여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지강점을 합법화, 정당화해준 것이 한일기본조약 체결의 내막이기 때문이다. 50년 전 한국과 일본이 대등하고, 정당하게 관계정상화를 실현하려고 하였다면, 한국에서는 친일세력이 아니라 항일세력이 나섰어야 했고, 일본에서는 일제전범들이 아니라 전범청산세력이 나섰어야 했다. 당시 한국의 친일세력과 일본의 일제전범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사법적 심판을 받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어야 하였는데, 그런 청산대상이 양국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나서서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였으니 그야말로 희대의 사기극을 공연한 것이다.

▲ <사진 2> 1963년 3월초부터 불붙기 시작한 대일굴욕외교반대투쟁은 마침내 6월 3일에 이르러 각계각층 대중이 총궐기한 범국민적 항쟁으로 폭발하였다. 4.19항쟁이 일어난 때로부터 불과 3년 뒤에 일어난 대중항쟁이었다. 위의 사진은 당시 시청앞 광장에 진출한 시위대의 투쟁모습이다. 박정희 친일정권은 6.3항쟁을 경찰력으로 막지 못하게 되자 위수령을 발동하고 군대를 내몰아 국민의 정치적 요구를 짓밟는 폭거를 자행하였다.     © 자주시보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1963년 3월 초부터 한국에서는 대일굴욕외교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를 중심으로 각계각층 대중이 궐기하여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배격하고 박정희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격렬한 대중항쟁을 벌였는데, 박정희 친일정권은 대일굴욕외교를 중단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위수령으로 짓누르고,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였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가해범행에 대해 사죄해야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는 것처럼, 일본이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지강점에 대해 사죄한다는 조항이 한일기본조약에 들어갔어야 한일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조약에는 사죄라는 말은커녕 반성이라는 말도 들어있지 않다. 한일기본조약을 인정해서는 안 되는 까닭, 그리고 한일관계가 정상화되었다고 볼 수 없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박정희 친일정권이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총칼로 짓누르고 일본으로부터 사죄는커녕 강압과 회유를 받으며 굴욕적으로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한 50주년을 ‘기념’하고 ‘축하’한다는 정부행사를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진행하면서, 그 자리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까지 교차참석하여 ‘축사’를 한 것은 역사와 국민에 대한 우롱이 아닌가.

2. ‘이미 무효’ 네 글자가 불러온 재앙

한일기본조약 제2조는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미 무효”라는 네 글자는 박정희 친일정권이 일본의 강압과 회유에 굴복하였기 때문에 그 조약에 들어간 것이다. “원천 무효”라는 말을 넣자던 박정희 친일정권의 요구는 일본의 강압에 짓눌렸고 일본의 회유로 말살되고 말았다. <동아일보> 2015년 6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박정희 친일정권 하에서 한일회담에 참석했던 외교관 출신자들은 “일본이 워낙 강경하게 ‘이미(already)’를 주장해 이를 받지 않고는 협정체결이 불가능했다”고 회고하였다. <사진 3>

▲ <사진 3> 젊은 시절 다까끼 마사오로 일제의 만주괴뢰군에 복무하기 위해 일왕에게 바치는 혈서까지 쓰며 충성을 맹약했던 박정희가 1965년 12월 17일 청와대에서 한일기본조약문에 서명하는 장면이다. 이후락(비서실장), 정일권(국무총리), 이동원(외무장관), 김동조(주일대사) 등 친일관리들의 모습이 보인다.     © 자주시보

일본이 “이미 무효”라는 네 글자를 한일기본조약에 기어이 집어넣은 까닭은 무엇일까? “이미 무효”라는 말은 일제가 조선을 상대로 체결한 식민지강점조약들이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한 1965년 6월 22일 이전의 어느 시점에 이미 무효화되었다는 것인데, 거기에 담긴 두 가지 뜻은 아래와 같다.

첫째,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 들어있는 “이미 무효”라는 말은 일제의 식민지강점조약들이 국제법상 합법적으로 체결된 조약들인데, 과거 어느 시점에 이미 무효화되었다는 뜻이다. 그와 달리, “원천 무효”라는 말은, 일제의 식민지강점조약들이 국제법상 불법적으로 체결된 것들이므로, 애초에 조약으로 성립될 수 없었고 따라서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뜻이다. 이처럼 “이미 무효”라는 말과 “원천 무효”라는 말 가운데 어떤 말을 택하는가 하는 문제는 식민지강점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결정적으로 중대한 문제였다.

그런데 박정희 친일정권은 일본의 강압과 회유에 굴복하여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 “이미 무효”라는 말이 들어가도록 용인함으로써 식민지강점조약의 불법성을 부정하려는 일본의 흉계를 국제법적으로 인정해주고 말았다. 사죄조항이 들어가기는커녕 흉계조항이 한일기본조약에 들어가고 말았으니, 그것을 어찌 조약으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둘째, “이미 무효”라는 말은, 일제의 식민지강점조약들이 1965년 6월 22일 이전의 어느 시점에 이미 무효화되었다는 뜻인데, 무효화된 시점은 구체적으로 언제인가? 한일기본조약에는 무효화시점이 명시되지 않았는데, 그 조약의 제3조가 무효화시점을 암시하고 있다.

한일기본조약 제3조는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연합총회의 결의 제195(III)호에 명시된 바와 같이 한반도에 있어서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확인한다”고 규정하였는데, 이 조항은 박정희 친일정권의 요구로 그 조약에 들어간 것이다.

한일기본조약에 왜 정권의 합법성에 관한 조항이 뚱딴지 같이 들어갔을까? 박정희 친일정권은 정권의 합법성이 대한민국 정부에게만 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게는 없다는 자기들의 반북대결정책을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정당화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 친일정권이 정권의 합법성에 관한 조항을 한일기본조약 제3조에 집어넣음으로써 일제의 식민지강점조약들이 1948년 8월 15일에 무효화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법리적 근거가 생겨났다. 

그러므로 한일기본조약의 제1조와 제2조를 연결해서 읽으면, 일제의 식민지강점조약들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 11월 17일부터 이승만 정권이 등장한 1948년 8월 15일까지 43년 동안 유효하였는데, 1948년 8월 15일에 무효화되었고, 1965년 6월 22일에 이르러 무효가 국제법적으로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위에 서술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박정희 친일정권이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지강점을 합법화,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범죄적 책동을 굴욕적으로 용인함으로써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지강점을 범죄로 규정할 수 없게 만들어놓았음을 알 수 있다.

▲ <사진 4> 이 사진은 KBS 일요스페셜에 방영된 화면들 가운데 한 장면이다. 그 화면에 나타난, 미국 중앙정보국이 1966년 3월 18일에 작성한 내부보고서는 일본의 6개 대기업들이 박정희 친일정권에게 6,660만 달러에 이르는 비밀자금을 제공하였음을 말해준다. 그 불법자금을 직접 수령한 사람은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이었다. 그 금액은 당시 민주공화당 예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는데, 이것은 박정희 친일정권이 일본기업들이 제공하는 불법자금으로 유지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박정희 친일정권이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지강점을 합법화,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범죄적 책동을 굴욕적으로 용인한 까닭은 무엇일까?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1966년 3월 18일에 작성한 ‘한일관계의 미래’라는 제목의 내부보고서에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사진 4>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굴하였고, 2004년 8월 12일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공개된 그 보고서에 따르면, 박정희 친일정권은 5.16병란을 일으킨 1961년부터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한 1965년까지 일본의 6개 대기업들로부터 6,600만 달러에 이르는 비밀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비밀자금을 직접 수령한 사람은 5.16병란의 주동자이며, 당시 한일회담의 막후실권자인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이었다. 놀랍게도, 박정희 친일정권은 일본기업이 제공하는 불법자금으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3. 을사오적 매국범죄를 능가하는 매국범죄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미국의 배후조종과 비밀지원을 받으며 재기하여 정권을 잡은 일본 극우세력은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지강점에 대해 사죄하기는커녕 그 범죄를 정당화할 흉계를 품고 있었다. 예컨대, 6.25전쟁 직후인 1953년 10월 6일에 진행된 제3차 한일회담에서 일본측 대표 구보다 간이찌로(久保田貫一朗)는 “일본이 (식민지강점) 36년 동안 한국인들에게 많은 이익을 주었다. 일본이 (조선에) 진출하지 않았더라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조선을) 점령하여 더욱 비참한 상태에 놓였을 것”이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고, 당시 일본 외상 오까자끼 가쓰오(岡崎勝男)는 “구보다의 발언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말한 것일 뿐”이라는 망언을 늘어놓았다.

이처럼 조선침략과 식민지강점을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흉계를 국제법적으로 인정해준 한일기본조약이 발효됨으로써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이 발생하게 되었다. 재앙의 내막을 밝히면 다음과 같다.

일제의 식민지강점조약들을 합법화해준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지난날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지강점에 반대하여 피흘려 싸운 우리 민족의 반일항쟁사가 통째로 부정당하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반일항쟁사가 부정되면, 항일선렬들을 ‘폭도’ 또는 ‘불령선인’이라고 모독해온 일본 극우세력의 극악무도한 역사파괴만행이 국제법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사진 5>
 
▲ <사진 5> 조선을 강점한 일본군이 칼로 벤 사람의 머리를 손에 들고 웃으면서 찍은 살육만행사진이다. 무참히 살육당한 희생자들은 일제침략에 반대하여 싸운 항일투사들이었을 것이다. 일제는 악마 중의 악마였다. 그처럼 흉악한 일제에게 면죄부를 준 한일기본조약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 자주시보

박정희 친일정권이 저지른 반민족적이고, 반민중적이고, 반인권적인 범죄들이 숱하게 많지만, 식민지강점조약들을 합법화하려는 일본의 역사파괴만행에 굴복함으로써 천추만대 씻을 수 없는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지강점을 국제법적으로 인정해준 박정희 친일정권의 굴욕행위야말로 을사오적 매국범죄를 능가하는 극악한 매국범죄가 아닐 수 없다.

일제의 식민지강점조약들을 합법화한 한일기본조약을 존치시킨 상태에서 한국 민중이 일본에게 조선침략범죄와 식민지강점범죄를 사죄하라고 요구해도 그것은 저항적 의미만 지닐 뿐 정치적, 법리적 의미는 갖지 못한다. 
 
4. 독도영유권 침해한 한일기본조약

일제의 식민지강점조약들이 한일기본조약에 의해 합법화됨으로써, 일제의 한반도점령이 합법화되었는데, 일제의 한반도점령에 대한 합법화는 특히 독도영유권을 침해하는 계기로 되었다. 우리 민족성원이라면 누구나 독도가 우리나라의 고유한 영토라는 사실을 예나 지금이나 전혀 의심하지 않지만, 한일기본조약은 독도영유권에 대한 그런 확신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 심각한 문제를 파악하려면 아래와 같은 구체적인 설명이 요구된다.

일본이 ‘한일관계정상화’에 나설 수 있었던 국제적 환경은 1951년 9월 8일 미국 쌘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된 대일강화조약에 의해 조성되었다. 패전국 일본을 점령했던 미국이 일본에게서 전범의 멍에를 벗겨준 것이 쌘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다. 쌘프란시스코강화조약 체결로 전범국 신세에서 벗어난 일본은 ‘한일관계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 제1차 한일회담이 1952년 2월 15일에 열린 까닭이 거기에 있다. 

쌘프란시스코강화조약은 태평양전쟁 승전국인 미국이 군정을 실시하였던 점령지역의 영토주권을 원상대로 복구하는 문제를 국제법적으로 확정하였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조약이다. 미국이 군정을 실시하였던 점령지역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였다. 

미국은 쌘프란시스코조약을 체결하면서 이전에 자기들이 군정을 실시하였던 점령지역 가운데 한반도의 영유권이 한국에게 있음을 확인하였고, 일본 열도의 영유권이 일본에게 있음을 확인하였는데, 유독 두 섬의 영유권만은 예외로 처리하였다. 동해의 전략요충지인 독도의 영유권과 동중국해의 전략요충지인 오키나와의 영유권은 예외로 처리한 것이다. 미국은 오키나와를 일본에게 넘겨주지 않고 계속 점령지로 남겨두는 대신,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독도영유권이 일본에게 있음을 인정해준 것이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1945년 9월 9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미국의 점령지역에 속했던 독도의 영유권이 일본에게 있다는 내용의 독도밀약을 체결하였고, 그 밀약은 쌘프란시스코강화조약의 점령지귀속조항에 반영되었다. <사진 6>

▲ <사진 6> 1951년 9월 8일 미국 쌘프란시스코에서 진행된 대일강화조약 조인식에서 당시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가 조약문에 서명하는 장면이다. 이 조약에는 독도영유권이 일본에게 있음을 인정한 미국과 일본의 독도밀약이 반영되었다.     © 자주시보

미국과 일본의 공모로 쌘프란시스코강화조약의 점령지귀속조항에 독도밀약이 반영된 이후 일본은 한일회담과정 내내 독도강탈음모를 노골화, 행동화하였다. 2005년 8월 26일 외교통상부가 공개한, 한일회담에 관련된 36,000쪽 분량의 방대한 외교문서를 분석한 <신동아> 2005년 11월호 기사에 따르면, 1952년 2월 15일 제1차 한일회담이 진행된 때부터 1964년 12월 3일 마지막으로 제7차 한일회담이 진행된 때까지 회담 전기간에 걸쳐 일본은 독도를 강탈하려는 범죄적 의도를 지속적으로 드러냈다. 일본은 한일회담이 진행될 때마다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느니, “독도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국교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느니 하면서 박정희 친일정권을 압박하였다. 예컨대, 1962년 9월 3일에 진행된 제6차 한일회담 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4차 회의 회의록은 당시 상황을 아래와 같이 전해준다.

이세끼 아시아국장 - “사실상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공원(도꾜에 있는 일본 최초의 서양식 공원-옮긴이) 정도인데 폭파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최영택 참사관 - “회담 도중에 그 문제를 내놓겠다는 말인가?”
이세끼 아시아국장 - “그렇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기로 결정해야겠다.”

▲ <사진 7> 왼쪽은 1965년 당시 자민당 부총재 고노 이찌로의 밀사로 서울에 파견된 우노 소스께이고, 오른쪽은 당시 박정희 친일정권의 국무총리였던 정일권이다. 이 두 사람은 1965년 1월 11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범양상선 회장 박건석의 집에서 독도밀약을 합의하였다. 우노가 가져온 밀약서에는 한국이 독도영유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박정희는 정일권-우노 밀담 다음날 독도밀약에 서명하였다.     © 자주시보

일본의 강압과 회유에 굴복한 박정희 친일정권은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기 6개월 전인 1965년 1월 11일 서울에서 정일권-우노 밀약을 체결하였다. <사진 7> 정일권은 당시 국무총리였고, 우노 소스께(宇野宗佑)는 당시 자민당 부총재 고노 이찌로(河野一朗)의 밀사였다. <월간중앙> 2007년 4월호 기사에 따르면, 4개항으로 된 정일권-우노 밀약은 “독도는 한국과 일본이 모두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서로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장차 어업구역을 설정할 경우 양국이 독도를 각각 자국영토로 하여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현재 한국이 (독도를) 점거한 현상을 유지하지만, 경비원 증강이나 새로운 시설의 건축, 증축은 하지 않는다. 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나간다”는 것이었다. 정일권-우노 밀담 이튿날 박정희가 정일권-우노 밀약에 서명함으로써 독도는 한국의 영토도 아니고 일본의 영토도 아닌 무국적섬으로 되었고, 한국은 자기 영토가 아닌 무국적섬을 점거한 것으로 되었으며, 일본은 그 무국적섬을 탈취할 기회를 노리게 된 것이다. 

일본은 한일기본조약에 체결되기 직전인 1965년 4월 ‘다케시마의 불법점거에 관하여 엄중 항의한다’는 외교서한을 박정희 친일정권에게 보내 또 다시 압박하였고,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 조인식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당시 일본 총리 사또 에이사꾸(佐藤榮作)가 조인식에 참석하러 도꾜에 간 당시 외무장관 이동원을 자기 집무실로 부르더니 “다께시마는 일본 영토라는 것과 다께시마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기로 합의한다”는 내용으로 작성된 밀약서를 꺼내놓고 서명을 요구하였다. <사진 8>
▲ <사진 8> 1965년 6월 22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진행된 한일기본조약 조인식 장면이다. 조인식이 시작되기 직전 당시 일본 총리 사또 에이사꾸는 외무장관 이동원을 자기 집무실로 불러 독도영유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밀약서를 꺼내놓고 서명을 요구하였다.   ©자주시보

이동원은 그 밀약서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하였다지만,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체결된 부속협정인 한일어업협정에 정일권-우노 밀약이 반영되었다. 그 협정에 의해 독도 영해가 한일공동어로구역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독도 영해를 한일공동어로구역 안으로 집어넣고, 독도 근해를 한일공동어로구역으로 바꿔놓은 협정을 체결한 것은, 독도영유권을 포기한 정일권-우노 밀약을 국제법적으로 확정한 것이었다. 박정희 친일정권이 일본의 강압과 회유에 굴복하여 독도영유권을 포기한 것이야말로 을사오적 매국범죄를 능가하는 극악한 매국범죄가 아닐 수 없다.
 
 
5. 대일청구권마저 포기한 굴욕외교의 극치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체결된 또 다른 부속협정은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다. 청구권이란 일제가 식민지조선에서 강탈, 침해한 재산, 권리, 이익에 대해 일본이 국가적으로 배상하며, 개인적으로도 보상하는 것을 일본에 청구하는 권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협정 명칭부터 이상하다.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협정’이라고 해야 정상인데,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라는 이상한 명칭을 달아놓았다. 한국의 대일청구권을 규정한 협정에 왜 일본의 대한경제협력에 관한 조항까지 들어간 것일까?
1961년 11월 11일 도꾜에서 진행된 박정희-이께다 밀담에서 그렇게 된 내막을 알 수 있다.

▲ <사진 9> 1961년 11월 11일 일본총리관저에서 박정희-이께다 밀담이 진행되었다. 박정희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고, 이께다 하야또는 당시 일본 총리였다. 사진은 박정희의 방일을 환영하는 만찬에서 박정희와 이께다가 통역 없이 일본말로 대화화며 웃는 장면이다. 당시 박정희는 한국의 대일청구권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하야또는     ©자주시보

 박정희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고, 이께다 하야또(池田勇人)는 당시 일본 총리였다. <연합뉴스> 2012년 11월 5일 보도에 따르면, 밀담에서 박정희는 청구권을 주장하였고, 이께다는 경제협력을 주장하였는데, 결국 청구권이라는 말과 경제협력이라는 말을 함께 쓰기로 타협하였다. 밀담 다음날 진행된 한일정상회담에서 박정희는 “우리는 자유당 정권(이승만 친미정권을 뜻함-옮긴이)처럼 많은 청구권 자금을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고 말했다. <사진 9> 일본의 마음에 드는 말만 골라서 꺼내놓으며 아부한 박정희를 그 이튿날 만나준 사람은 일본 정계의 거물 기시 노부스께(岸信介)였다. 그 날 박정희-기시 밀담에서 박정희는 “우리는 메이지유신 지사들의 마음과 같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한국을 건설하기 위한 좋은 의견을 주십시오”라고 말하며 아부하였는데, 그 밀담을 계기로 기시는 박정희 친일정권에게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든든한 후원자로 나서게 되었다.

이께다는 박정희와 밀담 중에 앞으로 청구권이라는 말과 경제협력이라는 말을 함께 쓰기로 타협하는 척하였지만, 그것은 속임수였다. 밀담 이후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청구권이라는 말과 경제협력이라는 말을 함께 쓰면서도 실제 회담 중에는 한국이 대일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강변하면서 대일청구권 자체를 부정하였던 것이다. 

1965년 5월 14일에 진행된 ‘청구권 및 경제협력위원회 제6차 회의록’에서 발췌한 일본측 발언이 2013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 실렸다. 그들은 “한국에 대한 우리측의 제공은 어디까지나 배상과 같이 의무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협력이라는 기본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종래부터 한국의 경제개발을 위해 제공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일본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경제협력이라는 입장에서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이것은 일본이 한국의 대일청구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박정희 친일정권은 한국의 대일청구권을 부정한 일본에게 굴욕적으로 애걸하였는데, 그 애걸발언은 이렇다. “이동원-시이나 외무장관 합의사항을 보면 청구권 및 경제협력으로 돼 있어 경제협력이라는 것도 있으나 청구권적인 성격이 엄연히 포함돼 있다. 문제는 청구권과 경제협력을 같이 협정문에 집어넣는 것인데 단순히 경제협력만을 한다는 것은 안 된다.” 

1965년 5월 당시 일본이 그처럼 한국의 대일청구권을 부정한 까닭은, 1962년 11월 12일 김종필-오히라 2차 밀담에서 한국의 대일청구권에 관한 밀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종필은 중앙정보부장이었고,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는 일본 외상이었다. <사진 10>
▲ <사진 10> 1962년 11월 12일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은 도꾜에서 당시 일본 외상 오히라 마사요시를 만나 2차 밀담을 진행하였다. 그 밀담 직전에 작성된 김종필-오히라 비망록은 청구권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채 일본으로부터 무상원조, 해외경제협력기금, 수출입은행차관을 받겠다는 내용으로 작성되었다. 이것은 박정희 친일정권이 일본에게 고작 3억 달러만 구걸하여 무상원조 명목으로 받아내면서 한국의 대일청구권마저 스스로 포기하였음을 말해준다. 굴욕외교의 극치였다.     © 자주시보

2차 밀담 직전에 작성된 김종필-오히라 비망록에는 다음과 같은 3개항이 들어있었다. “(일본이 한국에 공여하는) 무상원조와 관련하여 한국은 3억5천만 달러, 일본은 2억5천만 달러를 각각 주장하였는데, 일본이 3억 달러를 10년에 걸쳐 한국에 공여하기로 양측 수뇌에 건의한다. (일본이 한국에 빌려주는) 해외경제협력기금과 관련하여 한국은 2억5천만 달러, 일본은 1억 달러를 각각 주장하였는데, 일본이 2억 달러(이자율 3.5%, 7년 거치 20년 상환)를 10년에 걸쳐 제공하기로 양측 수뇌에 건의한다. (일본이 한국에 빌려주는) 수출입은행차관과 관련하여 한국은 별개로 취급하자고 주장했고, 일본은 1억 달러 이상을 프로젝트에 따라 늘릴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하였는데, 국교정상화 이전이라도 협력할 수 있도록 추진하기로 양측 수뇌에 건의한다.”

김종필-오히라 밀약과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김종필-오히라 밀약에는 청구권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고, 무상원조, 해외경제협력기금, 수출입은행차관이라는 말만 들어갔다. 이것은 박정희 친일정권이 한국의 대일청구권을 포기하였음을 의미한다. 박정희 친일정권이 대일청구권을 스스로 포기하기 훨씬 이전에 이승만 친미정권도 대일청구권을 스스로 포기하였다. 이동준 교수의 연구결과를 인용한 <연합뉴스> 2012년 9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1952년 2월 20일에 진행된 제1차 재산 및 청구권 문제 분과위원회에서 이승만 친미정권은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지강점에 대한 피해보상청구를 포기할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는데, 이런 태도는 이승만 친미정권이 수립 직후부터 추진한 대일정책이었다고 한다.  

둘째, <연합뉴스> 2012년 11월 5일 보도에 따르면, 1961년 11월 11일 박정희-이께다 밀담에서 이께다는 박정희에게 일본이 무상원조 5천만 달러를 한국에게 공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3년에 공개된 일본의 외교문서를 인용한 <도꾜신붕> 2013년 2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김종필-오히라 밀약이 체결된 1962년에 오히라는 외무성과 대장성(재무성의 전신)에 한국에게 공여할 무상원조금이 얼마인지 계산하라고 지시했는데, 외무성은 7,000만 달러로, 대장성은 1,600만 달러로 계산하였다고 한다.

<연합뉴스> 2012년 11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이 한국에게 공여할 무상원조금을 그처럼 적게 계산한 까닭은 일제가 패망한 직후 식민지조선에 남겨두고 떠난 재산을 돌려받는 금액을 제외하고 한국에 공여할 무상원조금을 계산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김종필-오히라 밀담 중에 오히라는 김종필에게 “회담에서 합의해도 (합의사항을 언론에) 나타내면 안 되고, 정치회담(한일회담을 뜻함-옮긴이)에서 결정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박정희 친일정권이 한국의 대일청구권을 스스로 포기한 김종필-오히라 밀약을 언론에 공개해서는 안 되고, 나중에 열리게 될 한일회담에서 결정하는 것처럼 위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종필-오히라 밀약이 체결된 때로부터 약 2년 6개월 뒤에 체결된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 1항은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함으로써 한국의 대일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김종필-오히라 밀약에서 합의한 대로 일본이 무상원조 3억 달러를 한국에 공여하는 것으로 이미 해결되었음을 공식화하였다.

일제식민지강점기 40년 동안 일제가 조선에서 수탈, 침해한 재산, 권리, 이익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일 것이다. 또한 2013년 11월 대일항쟁기조사지원위원회가 펴낸 자료에 근거하여 추산하면, 일제식민지강점기에 강제노역에 끌려간 조선인징용자는 모두 755만4,764명이었고, 일본의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끼(高見義明)의 추산에 따르면, 일제식민지강점기에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조선여성은 약 20만 명이었는데, 약 775만 명에 이르는 피해자들이 일본에게서 받아내야 할 보상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그것도 상상을 초월한 천문학적인 액수일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침략과 식민지강점을 합법화한 한일기본조약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침략과 식민지강점에 대한 배상문제와 보상문제를 규정하는 청구권협정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었다. 그래서 박정희 친일정권은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는 것을 포기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게 마땅히 행사하여야 할 청구권마저 스스로 포기하면서 고작 3억 달러만 구걸하여 받고 말았으니, 이것이야말로 을사오적 매국범죄를 능가하는 매국범죄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에게 형언할 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일제의 침략범죄와 식민지강점범죄는 영원히 망각될 수 없으며, 그런 범죄를 부정하려는 일본 극우정권의 난동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그런 난동을 불러일으킨 한일기본조약을 폐기하지 못하고 50년이나 방치해온 것은 민족사와 항일선렬들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없는 치욕이다. 일제를 타도하고 조국을 되찾기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우리 항일선렬들이 후대에 위대한 유산으로 남긴 자주정신을 받들어 한일기본조약 폐기를 단행하는 것만이 지난 50년 동안 일본에게 당해온 수모와 치욕을 씻어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고 자주권을 수호할 최후의 방책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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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6

습격기가 투하한 지뢰폭탄, 고속정이 발사한 금성-3호 대함미사일

[한호석의 개벽예감](163)
자주시보 2015년 06월 1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복엽습격기가 투하한 항공지뢰폭탄의 정체
2. 1킬로톤급 핵탄의 피폭구역
3. 군사대표단의 시선을 집중시킨 금성-2호
4. 최신형 고속공격정에 장착된 금성-3호 

▲ <사진 1> 조선이 100% 국산화한 복엽습격기가 비행장 활주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은 초음속 스텔스 전투기들이 날아다니는 오늘날 내연엔진을 장착한 경비행기를 비대칭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실전환경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머리를 쓰면, 반세기 전에 퇴역된 구식 경비행기를 강력한 비대칭무기로 전변시킬 수 있는 것이다.     © 자주시보
 

1. 복엽습격기가 투하한 항공지뢰폭탄의 정체
 
2015년 3월 20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의 비행장타격 및 복구훈련에 대해 보도하였다. 3월 19일에 진행된 그 훈련은 “<적>비행장타격에 인입되는 비행대 력량할당과 타격순차와 방법, 전투비행사들의 폭격술과 사격술, 각종 항공무장의 성능, 파괴된 비행장복구능력을 실전환경 속에서 검열, 확정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되였다”고 한다. 3.19훈련에는 근위 제1항공 및 반항공사단과 제5비행사단 관하 추격기, 습격기 폭격기련대들이 참가하였다.

3.19훈련에 참가한 작전기종들 가운데 눈길이 멎는 것은 습격기다.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의 습격기는 내연엔진을 장착한 경비행기다.
조선의 습격기는 단엽기와 복엽기 두 종인데, 다른 나라들은 그 두 종의 군용 경비행기를 20세기 중반까지 사용하다가 제트엔진을 장착한 초음속 전투기가 등장하자 퇴역시켰고, 지금은 전쟁박물관에 전시하였다. 이런 사실 하나만 알고 조선의 기상천외한 공중전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초음속 스텔스 전투기들이 날아다니고, 지구 어디든 2시간이면 날아가는 극초음속 비행기의 출현을 앞둔 오늘날 반세기 전에 퇴역한 경비행기를 골동품으로 여기지만, 경비행기를 대하는 조선의 태도는 전연 딴판이다.
조선은 초음속 추격기 못지않게 경비행기를 중시한다. 왜 그럴까? 조선인민군은 교전상대가 갖지 못했거나 교전상대가 무시하는 특이한 무장장비를 독자적으로 개발함으로써 압도적인 비대칭무력을 건설하였는데, 경비행기도 그런 무장장비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3.19훈련에 참가한 습격기는 복엽기인데, 복엽습격기라고 부를 수 있다. 조선의 복엽습격기에 대한 미국 군사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인식은 조선이 항공륙전대를 후방구역에 기습적으로 침투시키기 위해 그 기종을 운용한다는 것이지만, 그런 기존 인식은 3.19훈련 이후 크게 수정되었다. 왜냐하면, 기습침투장비로 인식되어온 복엽습격기가 3.19훈련에서 폭격연습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엽습격기가 침투비행과 폭격비행에 두루 출전하는 다재다능한 기종임을 말해준다.  

▲ <사진 2> 3.19훈련에 참가한 복엽습격기들이 지상의 타격목표를 향해 공대지로켓탄을 발사하는 장면이다. 공습훈련에서 값이 매우 비싼 공대지미사일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우에 한정되고, 비유도무기들인 공대지로켓탄이나 폭탄을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조선에서는 공대지로켓탄을 항공비조종로케트라고 부른다.     © 자주시보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항공타격연습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타격수단은 유도조종기능이 없는 공대지로켓탄이다. 조선에서는 공대지로켓탄을 항공비조종로케트라고 부른다. 그런데 3.19훈련에서는 공대지로켓탄을 발사한 뒤에 연속적으로 항공지뢰폭탄을 투하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적>비행장의 정류장, 지휘소, 활주로들에 대한 항공기관포와 항공비조종로케트 사격에 이어 각종 항공지뢰폭탄 투하가 짧은 시간 안에 련속적으로 진행되였다”는 것이다.

3.19훈련 중에 복엽습격기가 사격한 항공기관포와 항공비조종로케트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데, 항공지뢰폭탄은 생소한 타격수단이다. 원래 지뢰는 대인지뢰, 대전차지뢰, 대차량지뢰로 구분되는데, 그런 지뢰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널리 사용되는 통상무기들이다. 그에 비해, 항공지뢰폭탄을 사용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조선뿐이다. 조선의 항공지뢰폭탄은 전형적인 비대칭무기다.
항공지뢰폭탄은 지뢰와 폭탄을 하나로 합친 융합개념으로 설계된 폭탄인데, 일반폭탄과 달리 지상에 떨어지는 순간 자동폭발하지 않고, 복엽습격기의 원격조종으로 폭발하는 조종지뢰폭탄이다. 시한폭탄은 투하된 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폭발하지만, 항공지뢰폭탄은 원격조종으로 폭발하게 되므로 살상력이 시한폭탄을 훨씬 능가한다.

그런데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항공지뢰폭탄이라 하지 않고 “각종 항공지뢰폭탄”이라 하였으니, 3.19훈련 중에 여러 종류의 항공지뢰폭탄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보유한 항공지뢰폭탄은 두 종류인데, 하나는 고성능폭탄을 장착한 항공지뢰폭탄이고, 다른 하나는 소형전술핵탄을 장착한 항공핵지뢰폭탄이다. 3.19훈련에서는 모양과 무게가 항공핵지뢰폭탄과 똑같은 모의탄을 사용하였는데, 사안의 민감성을 의식한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핵’이라는 글자를 생략하고 항공지뢰폭탄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로동신문> 2013년 5월 21일부 기사는 핵탄의 소형화에 대해 설명한 대목에서 1킬로톤급 소형핵탄을 언급하였고, 핵탄의 다종화에 대해 설명한 대목에서 핵조종지뢰를 언급하였다. 그런 언급은 조선이 1킬로톤급 핵조종지뢰를 보유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인데,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3.19훈련 중에 복엽습격기가 투하한 항공지뢰폭탄이 바로 핵조종지뢰를 항공폭탄으로 변환시킨 항공핵지뢰폭탄 모의탄인 것이다.

▲ <사진 3> 3.19훈련에 참가한 복엽습격기 1대가 타격대상으로 정해진 비행장 활주로를 저공으로 날아가면서 항공지뢰폭탄을 투하하는 장면이다. 그 훈련에서 항공핵지뢰폭탄과 모양과 무게가 똑같은 모의탄을 투하하였는데, 사안의 민감성을 의식한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핵'이라는 글자를 생략하고 항공지뢰폭탄이라고 보도하였다. 전 세계에서 조선만 가지고 있는 항공핵지뢰폭탄은 핵조종지뢰를 항공폭탄으로 변환시킨 비대칭무기다.     © 자주시보

핵보유국들의 핵탄제조기술은 작게 만들고 가볍게 만드는 소형화-경량화추세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전되어왔다. 예컨대, 핵탄의 소형화-경량화기술에서 가장 앞섰다는 미국이 핵탄을 소형화하기 시작한 때는 1953년 12월이다. 그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핵탄소형화기술을 축적해온 미국이 1980년대 중반에 만든 B90은 그 나라에서 맨 마지막으로 만든 핵폭탄인데, 폭격기에서 낙하산에 매달아 투하하는 이 항공핵폭탄은 지름 33cm, 길이 3m, 무게 353kg, 폭발력 200킬로톤이다.

조선이 보유한 각종 핵폭탄의 성능기술지표는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투종심이 매우 짧은 한반도에서 대형핵탄으로 분류되는 200킬로톤급 핵폭탄을 사용하면 상상을 초월한 참화를 입게 되므로, 조선은 한반도에서 그런 대형핵탄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1945년 8월 초 미국은 15킬로톤급 핵폭탄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하고, 21킬로톤급 핵폭탄을 일본 나가사끼에 투하하여 비전투원을 대량살육하였지만, 조선이 전시에 사용할 핵탄은 그런 대량살육과는 인연이 없다.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은 민간피해를 최소화하고 교전상대만 족집게 식으로 선별, 파괴하여 항복을 받아내려는 전쟁이므로, 대량살육을 자행하는 제국주의침략전쟁과는 전쟁목적과 전쟁수행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조선은 1킬로톤급 소형전술핵탄을 사용하여 자기의 통일전쟁을 속결할 것으로 예견된다.

위와 같이 예견하는 근거는 조선의 지하핵실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조선은 1998년 5월 30일 파키스탄에서 진행한 지하핵실험에서 2~6킬로톤급으로 추정되는 소형전술핵탄을 사용하였고, 2006년 10월 9일에 진행한 지하핵실험에서는 2킬로톤급으로 추정되는 소형전술핵탄을 사용하였고, 2009년 5월 25일에 진행한 지하핵실험에서는 1킬로톤급으로 추정되는 소형전술핵탄을 사용하였다. 그보다 앞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에 조선이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진행한 비공개 지하핵실험들에서도 그런 소형전술핵탄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은 1킬로톤급 항공핵지뢰폭탄을 이미 오래 전에 작전배치하였을 뿐 아니라, 전시에 그것을 사용할 것으로 예견할 수 있다.  

조선의 1킬로톤급 항공핵지뢰폭탄은 얼마나 크고 무거운가? 미국이 만든 1킬로톤급 핵포탄의 크기와 무게를 알아보면 조선의 1킬로톤급 항공핵지뢰폭탄의 크기와 무게도 짐작할 수 있다. 미국 군부가 8인치 핵포탄이라 부르는 1킬로톤급 핵포탄 W79는 길이 111cm, 폭 20cm, 무게 90kg이다. <사진 4> 미국이 W79를 만든 때는 1981년인데, 그보다 훨씬 뒤에 조선은 소형화-경량화기술을 이용하여 1킬로톤급 항공핵지뢰폭탄을 만들었다. 따라서 조선의 항공핵지뢰폭탄은 미국의 W79 핵포탄보다 더 소형화, 경량화된 핵탄이므로 복엽습격기가 투하하기에 적당하다. 

▲ <사진 4> 미국에서 8인치 핵포탄이라 부르는 1킬로톤급 핵포탄 W79는 이렇게 생겼다. 대구경 장거리포에서 발사하는 핵포탄으로 만든 것이다. 조선이 만든 1킬로톤급 항공핵지뢰폭탄도 저런 모양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조선은 투발오차가 너무 심해 민간피해를 가중시킬 핵포탄은 만들지 않는다. 그 대신 조선은 전시에 민간피해를 전혀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타격대상만 선별, 파괴하는 정밀타격수단인 항공핵지뢰폭탄을 사용할 것으로 예견된다.     © 자주시보

 
2. 1킬로톤급 핵탄의 피폭구역

미국 보건부 산하 환경보건국 방사능방호실이 2002년 7월에 펴낸 자료 ‘핵무기 폭발(Nuclear Weapon Detonations)’은 1킬로톤급 핵폭발의 파괴력을 이렇게 예상하였다. 1킬로톤급 핵탄이 폭발하는 순간, 폭심점으로부터 직경 275m의 피폭구역이 핵폭풍으로 날아가고, 폭심점으로부터 직경 610m의 피폭구역이 핵화염으로 타버리고, 폭심점으로부터 직경 790m의 피폭구역이 방사능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열거한 피폭구역들은 완전히 소멸되는 완파범위에 해당하는데, 그보다 덜 파괴되는 반파범위도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전시에 조선의 복엽습격기가 1킬로톤급 항공핵지뢰폭탄을 투하하여 파괴할 피폭구역은 폭심점으로부터 직경 1.5km에 이르는 범위로 확대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진 5> 

▲ <사진 5> 미국 서부 네바다주 사막지대의 핵실험장에서 1킬로톤급 핵탄이 폭발하는 장면이다. 군인들과 핵과학자들이 마치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것처럼 핵폭발현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것은 1킬로톤급 전술핵탄의 피폭범위가 한정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전시에 교전상대의 군사기지를 단숨에 날려버리려는 조선이 복엽습격기를 동원하여 1킬로톤급 항공핵지뢰폭탄을 투하하는 것은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1킬로톤급 항공핵지뢰폭탄을 사용하는 경우 용산기지에 2발, 군산기지에 3발, 오산기지에 7발, 평택기지에 10발을 투하할 것으로 예견된다.     © 자주시보

그런데 주한미국군기지 부지면적을 보면, 용산기지 2.7㎢, 군산기지 3.8㎢, 오산기지 9.6㎢, 평택기지 15.1㎢다. 따라서 전시에 조선이 1킬로톤급 항공핵지뢰폭탄을 사용하는 경우 용산기지에 2발, 군산기지에 3발, 오산기지에 7발, 평택기지에 10발을 투하할 것으로 예견된다. 전시에 조선이 1킬로톤급 항공핵지뢰폭탄을 투하하여 교전상대의 ‘급소’를 강타해야 민간피해를 최소화하고 단숨에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이다.

복엽습격기가 3.29훈련에 참가한 것은, 달빛도 없는 캄캄한 밤에 엔진과 비행등을 모두 꺼버린 무소음-무조명 초저공 야간활강비행으로 교전상대의 방공레이더망을 뚫고 은밀히 침투한 복엽습격기들이 1킬로톤급 항공핵지뢰폭탄을 교전상대의 군사기지들에 투하하고 일정한 거리 밖으로 물러나서 원격조종으로 터뜨리는 핵폭격전을 연습한 것이다. 조선의 화력타격은 초정밀전술미사일, 무인타격기, 대구경 방사포, 대구경 장사정포를 총동원하는 무징후집중발사로 교전상대의 거점들을 1차 타격, 2차 타격, 3차 타격으로 파괴하는 연속타격으로 전개될 것이므로, 그런 연속타격에 복엽습격기의 항공핵지뢰폭탄 투하가 포함되는 것이다.   
3.19훈련 중에 추격기, 폭격기, 습격기가 투하한 고성능폭탄을 맞은 비행장 활주로에는 <사진 6>에서 보는 것처럼 거대한 분화구가 패였다. 전시에 1킬로톤급 항공핵지뢰폭탄을 맞은 피폭구역에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거대한 분화구보다 20배나 더 크고 깊은 분화구가 생길 것이다. 
 
▲ <사진 6> 3.19훈련 중에 추격기, 폭격기, 습격기가 투하한 고성능폭탄을 맞은 비행장 활주로에 거대한 분화구가 패였다. 전시에 1킬로톤급 항공핵지뢰폭탄을 맞은 피폭구역에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거대한 분화구보다 20배나 더 크고 깊은 분화구가 생길 것이다.     © 자주시보


3. 군사대표단의 시선을 집중시킨 금성-2호

육해공군 고위급 지휘관들로 구성된 미얀마 군사대표단이 2008년 11월 21일부터 12월 2일까지 조선과 중국을 순방하였다. 미얀마 군사대표단은 조선과 중국을 순방하면서 야전부대, 군사시설, 군수공장, 군사대학 등 여러 대상들을 참관한 경험을 장문의 보고서로 작성하였다. 미얀마 군사대표단을 맞은 조선과 중국은 자기들의 군사기지와 무장장비를 보여주었으므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군사정보가 그 보고서에 들어 있다. 보고서에서 이 글의 주제와 직접 관련된 부분은 군사대표단이 조선의 호위함과 중국의 호위함을 돌아보고 기록한 대목이다. <사진 7>

▲ <사진 7> 2008년 11월 26일 평양에서 김격식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 당시 조선을 방문한 미얀마 군사대표단 단장 수라 쉬웨 만 미얀마군 총참모장과 함께 군사협력양해각서에 서명하는 장면이다. 미얀마는 조선에서 생산된 우수한 무장장비들을 많이 수입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아웅제야급 호위함에 장착된 첨단 함대함미사일 금성-2호도 있다.     © 자주시보

미얀마 군사대표단이 조선의 호위함과 중국의 호위함을 돌아볼 때 관심을 보인 것은 함대함미사일이다. 그들이 함대함미사일에 관심을 보인 까닭은, 당시 자기 나라에서 처음으로 건조된 호위함에 외국산 함대함미사일을 장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얀마에서 처음 건조된 호위함인 아웅제야급(Aung Zeya-class) 호위함은 배수량이 2,500t, 길이가 108m이며, 해상작전헬기 1대를 탑재한다. 그런데 2008년 당시 미얀마는 그 호위함에 장착할 함대함미사일을 어느 나라에서 수입할 것인지 알아보고 있었다.

미얀마 군사대표단이 관찰한 조선의 호위함은 배수량 2,500t, 길이 108m, 폭 13.3m, 높이 8.2m인 호위함이다. 그들은 보고서에서 그 호위함의 공식명칭을 명시하지 않았고, 남포선박설계연구소에서 건조한 “2,500t급 연안경비함”이라고만 밝혔다. 주목하는 것은, 조선의 호위함과 미얀마의 호위함이 배수량, 길이가 똑같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미얀마의 아웅제야급 호위함이 조선의 기술지원으로 건조되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한다.
외부에 알려진 조선의 호위함들은 배수량이 1,500t인 라진급(Rajin-class), 배수량이 1,845t이며 해상작전헬기 1대를 탑재한 서호급(Soho-class), 배수량이 3,300t이며 해상작전헬기 1대를 탑재한 크라이박급(Krivak-class)인데, 미얀마 군사대표단이 돌아본 2,500t급 호위함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호위함인 것이다. <사진 8>

▲ <사진 8> 2015년 6월 8일 라진조선소를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에서 조선의 호위함 1척을 찾아냈다. 호위함의 함미쪽에 둥그런 표식을 한 공간이 해상작전헬기가 이착륙하는 비행갑판이다. 조선인민군 해군은 5종의 호위함을 운용하고 있는데, 위의 사진에 나타난 호위함이 5종 가운데 어떤 종인지는 사진으로 식별하기 힘들다.     © 자주시보

또한 2014년 5월 15일 미국의 조선인민군 연구가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가 <38 노스(North)>에 발표한 글에 따르면, 배수량이 1,300t이고, 해상작전헬기 1대를 탑재하는 신형 호위함이 남포항과 라진항에 각각 정박된 모습을 상업위성이 촬영했다고 한다. 버뮤디즈는 남포항에서 촬영된 신형 호위함이 2011년 10월에 진수되었고, 라진항에서 촬영된 신형 호위함이 2012년 6월에 진수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지만, 그 두 신형 호위함은 이미 취역식을 마치고 실전배치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위와 같은 정보를 파악하면, 현재 조선인민군 해군이 5종의 호위함을 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얀마 군사대표단이 중국에서 돌아본 호위함은 053형 호위함이다. 이 호위함은 배수량 2,000t, 길이 112m, 폭 12m, 승선인원 200명이다.
그런데 미얀마 군사대표단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053형 호위함에 두 가지 결함이 있었다. 구식 함대함미사일이 장착된 것과 현대화된 수중무기가 없는 것이 결함이었다. 중국의 053형 호위함에는 미국 군부가 비단벌레(Silkworm)라고 자의적 명칭으로 부르는, 하이잉(海鷹)-1 함대함미사일이 장착되었는데, 이 미사일은 1980년대 초에 생산된 구식 미사일이다. 중국 측은 하이잉-1 함대함미사일이 C-802 함대함미사일로 대체될 것이라고 미얀마 군사대표단에게 말했다지만, C-802 함대함미사일도 1989년에 생산된 구식 함대함미사일이다.

미얀마 군사대표단은 조선의 2,500t급 호위함이 현대적인 무장장비를 갖춘 전투함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미얀마 군사대표단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의 2,500t급 호위함에 장착된 현대적인 무장장비는 정보수집장비, 함대함미사일, 사격통제장치로 작동하는 76mm 함포, 사격통제장치로 작동하는 30mm 6렬 고사포와 14.5mm 6렬 고사포, 533mm 중어뢰, 252mm 폭뢰발사기, 대형폭뢰와 기뢰, 82mm 기만탄발사기, 전자전장비 등이다. 중요한 것은, 위에 열거한 무장장비들이 모두 조선산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미얀마 군사대표단은 조선의 2,500t급 호위함에 장착된 각종 무장장비들의 조선식 명칭을 보고서에 기록하지 않았다. 그 까닭은, 당시 조선 측에서 미얀마 군사대표단에게 조선의 무장장비명칭을 외부에 공개하지 말라고 요청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사진 9> 미얀마가 건조한 자국산 첫 호위함인 아웅제야급 호위함이다. 이 호위함은 2010년에 취역하였는데, 미얀마 군사대표단이 2008년 11월 조선을 방문하였을 때 돌아본 조선의 2,500t급 호위함과 배수량과 길이가 똑같다. 아웅제야급 호위함에는 조선이 미얀마에 수출한 첨단 함대함미사일 금성-2호 8문이 장착되었다.     © 자주시보

<사진 9>에서 보는 것처럼, 미얀마가 건조한 아웅제야급 호위함은 2010년에 취역하였는데, 취역식에 모습을 드러낸 그 호위함에는 함대함미사일 8문이 어엿이 장착되어 있었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아웅제야급 호위함에 장착된 함대함미사일을 보더니 대뜸 러시아산 함대함미사일 Kh-35라고 지적하였다. 
우란(Uran)이라고 부르는 Kh-35 함대함미사일은 러시아 해군이 자랑하는 무장장비인데, 미얀마는 러시아에서 그 함대함미사일을 수입하여 아웅제야급 호위함에 장착한 것일까? 2008년에 조선을 방문하였을 때 2,500t급 호위함을 주의 깊게 돌아보면서 조선산 함대함미사일에 시선을 집중시켰던 미얀마 군사대표단이 러시아산 함대함미사일을 수입하였을 리 없다. 아웅제야급 호위함에 조선산 함대함미사일이 장착되었다는 사실은 2014년 6월 12일 미국의 온라인 군사평론매체 ‘오릭스 블럭(Oryx Blog)’에 현시된 분석기사에서 밝혀졌다. 분석기사에 따르면, 1990년대에 조선은 러시아산 Kh-35 함대함미사일을 수입하여 그 미사일과 성능이 비슷한 자국산 함대함미사일을 개발했고, 미얀마에 수출도 하였는데, 미얀마가 수입한 조선산 함대함미사일이 아웅제야급 호위함에 장착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이 만든 각종 함대함미사일들에는 금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조선은 1997년경 독자적인 기술로 자국산 첫 함대함미사일을 개발하였는데, 그것이 금성-1호다. 미국 군부는 금성-1호를 AG-1이라는 자의적 명칭으로 부르다가 몇 해 전부터는 KN-01이라는 자의적 명칭으로 바꾸어 부른다. 사거리가 260km인 금성-1호는 저공비행으로 날아가다가 타격목표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도달하는 순간,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초음속으로 내리꽂히는 종말단계의 하강비행으로 타격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사진 10>

▲ <사진 10> 조선이 지대함미사일, 함대함미사일로 사용하는 금성-1호가 발사대에서 대기하는 장면이다. 조선은 사거리가 260km인 이 미사일을 1997년경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하였다. 미국 군부는 이 미사일을 KN-01이라는 자의적 명칭으로 부른다.     © 자주시보

2014년 5월 31일 조선중앙텔레비죤이 방영한 기록영화 ‘백두산훈련열풍으로 무적의 강군을 키우시여’에는 금성-1호와 다른 신형 함대함미사일이 등장하였는데, 그것이 금성-2호다. <사진 11>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금성-2호가 러시아의 Kh-35 우란 함대함미사일과 비슷한 성능을 가진 것으로 추정한다. 2008년 11월 조선을 방문한 미얀마 군사대표단이 2,500t급 호위함을 돌아보면서 시선을 집중시킨 함대함미사일, 그래서 미얀마가 조선에서 직수입하여 아웅제야급 호위함에 8문을 장착한 함대함미사일이 금성-2호다.

▲ <사진 11> 위쪽 사진은 2014년 5월 31일 조선중앙텔레비죤이 방영한 기록영화 ‘백두산훈련열풍으로 무적의 강군을 키우시여’에 나온 금성-2호 발사장면이다. 아래쪽 사진은 러시아의 Kh-35 우란 함대함미사일이 해수면 위로 저공비행을 하는 장면이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금성-2호가 러시아의 Kh-35 우란 함대함미사일과 비슷한 성능을 가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조선은 금성-2호를 설계할 때 러시아의 함대함미사일을 모방하지 않았고, 독자적으로 설계하였다. 그리하여 금성-2호의 사거리는 200km로 연장되었고, 엔진과 외형도 다르다. 2008년 11월 조선을 방문한 미얀마 군사대표단은 Kh-35 우란보다 우수한 금성-2호를 수입하기로 결정하였다.     © 자주시보

금성-2호의 특징은 지상에서 적함을 향해 발사하는 지대함미사일로, 함상에서 적함을 향해 발사하는 함대함미사일로, 그리고 전투기, 폭격기, 작전헬기, 무인항공기가 공중에서 적함을 향해 발사하는 공대함미사일로 다양하게 사용된다는 점이다. 조선이 폭격기를 동원하여 금성-2호 공중발사연습을 진행한 사실은 한국 언론에 몇 차례 보도되었다. 그와 달리, 금성-1호는 지대함미사일과 함대함미사일로 사용되지만, 너무 크고 무거워서 공대함미사일로 사용하지 못한다.

러시아산 함대함미사일 Kh-35 우란의 사거리는 130km이므로,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금성-2호의 사거리도 그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하였다. 하지만 자존심이 매우 강한 조선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무기를 모방생산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기 때문에, 금성-2호를 설계할 때도 Kh-35 우란의 설계를 모방하지 않았다. 2014년 6월 12일 <오릭스 블럭>에 현시된 글은 금성-2호와 Kh-35 우란의 차이를 이렇게 밝혀주었다. Kh-35 엔진분사구와 달리 금성-2호 엔진분사구는 원뿔형이고, 금성-2호 발사관은 Kh-35 발사관보다 더 크고, 발사관 거치대도 다르게 생겼다는 것이다. 엔진분사구가 다르게 생겼다는 것은 금성-2호 로켓엔진이 Kh-35 로켓엔진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설계로 제조되었음을 뜻한다. 또한 발사관이 크다는 말은 미사일동체가 크다는 뜻이므로, 금성-2호의 사거리는 Kh-35보다 더 긴 200km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주요성능지표에서 금성-2호가 Kh-35보다 앞섰으니, 미얀마가 아웅제야급 호위함에 장착하는 함대함미사일을 금성-2호로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4. 최신형 고속공격정에 장착된 금성-3호

2015년 2월 7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된 신형 반함선로케트 시험발사에 대해 보도하였다. 조선에서는 반함선로케트라 하고, 한국에서는 함대함미사일이라 한다.
2015년 2월 7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신형 함대함미사일 시험발사를 보도하였을 때,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그 미사일이 러시아산 함대함미사일 Kh-35 우란을 복제한 것이라고 추정하였지만, 그것은 조선의 함대함미사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억측에 불과하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이 Kh-35와 성능이 비슷한 것으로 추정한 조선산 함대함미사일은 조선이 2000년대 중반에 실전배치한 금성-2호인데, 이 미사일은 2009년에 미얀마에 수출되어 아웅제야급 호위함에 장착되었다. 그런 금성-2호가 2015년 2월에 신형 함대함미사일으로 둔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2015년 2월 6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된 신형 반함선로케트 시험발사에 등장한 것은, 금성-2호보다 더 앞선 고도의 성능을 지닌 최첨단 함대함미사일 금성-3호인 것이다. <사진 12>

▲ <사진 12> 2015년 2월 6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된 신형 반함선로케트 시험발사현장에서 금성-3호를 발사한 장면이다. 금성-3호는 초정밀화, 지능화된 최첨단 함대함미사일이다. 5,000t급 구축함 정도는 금성-3호 한 발로 격침시킬 수 있다.     © 자주시보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금성-3호가 “최첨단 수준에서 개발”되었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초정밀화”되고 “지능화”된 함대함미사일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2.6시험발사현장을 보도하면서, 초정밀화-지능화된 함대함미사일 금성-3호가 타격목표를 향해 “먼 거리”를 “안전하게 비행한 후 <적>함선을 정확히 탐색, 식별하여 명중하였다”고 묘사하였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금성-3호는 위성항법장치로 날아가다가 타격목표로부터 20km 떨어진 상공에서 해수면 가까이 강하하여 해수면에서 15m 높이로 비행고도를 낮춰 저공비행을 하게 되는데, 타격목표로부터 7km 떨어진 상공에 이르러서는 추적레이더를 켜고 비행고도를 해수면에서 3~4m 높이로 더 낮춰 해수면밀착비행을 한다. 이것이 지능화되었다는 뜻이다. 지능화된 금성-3호는 적함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으며, 적함이 쏘는 교란전파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고 안전하게 비행한다. 금성-3호가 종말단계에서 해수면밀착비행으로 7km를 날아가는 시간은 약 25초밖에 걸리지 않으므로, 적함은 미처 대응할 시간이 없이 피격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금성-3호의 타격정밀도는 4~5m로 추정되는데, 이것이 초정밀화되었다는 뜻이다. 초정밀화-지능화된 금성-3호는 5,000t급 구축함 정도는 한 방에 격침시킬 수 있다.

▲ <사진 13> 금성-3호를 발사하는 농어급 수면효과고속공격정을 촬영한 장면이다. 조선이 최첨단 함대함미사일과 최신형 수면효과고속공격정을 결합시킨 것은 해상타격력을 최강수준으로 끌어올렸음을 의미한다. 조선은 이 고속공격정을 10척 이상 실전배치하였다.     © 자주시보

주목하는 것은, 금성-3호가 스텔스 기술을 적용한 조선의 농어급(Nongo-class) 수면효과고속공격정(surface-effect fast attack craft)에 장착되었다는 점이다. <사진 13>에서 보는 것처럼, 농어급 수면효과고속공격정은 배수량 300t, 길이 40m, 폭 12m인데, 바다 위를 나는 듯이 시속 90km로 항해한다. 이 최신형 공격정은 76mm 함포 1문, 30mm 속사포 1문, 14.5mm 속사포 2문, 최첨단 함대함미사일 금성-3호 4발, 함대공미사일로 무장하였다. 크기는 작아도, 매우 강력한 무장력을 갖춘 것이다. 조선이 최첨단 함대함미사일과 최신형 수면효과고속공격정을 결합시킨 것은 해상타격력을 최강수준으로 끌어올렸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조선의 군항들을 촬영한 상업위성사진들에서 농어급 수면효과고속공격정 6척을 식별하였다. 위성사진에 노출된 것만 6척이므로 실제는 10척이 넘는다. 작고 날렵한 선체, 날아가는 듯이 빠른 항해속도, 막강한 타격력, 위력적인 스텔스성능, 높은 타격정밀도를 두루 갖추었다는 점에서, 농어급 수면효과고속공격정은 세계 최강의 해상타격수단으로 인정받을 만하다. 이런 사실을 보면, 조선인민군 해군이 매우 강한 해상전투력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최첨단 함대함미사일 금성-3호를 장착한 최신형 수면효과고속공격정이 10척 이상 실전배치된 것은, 몸집이 비대하고 움직임이 굼뜬 항공모함과 순양함을 주축으로 편성한 항모타격단을 침략돌격대로 앞세워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곤 하던 미국의 낡은 전법이 조선과 맞붙을 전쟁에서 패인으로 전락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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