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9

2005년에 시작된 수소탄개발비사

[한호석의 개벽예감](188)
자주시보 2016년 01월 18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조선의 수소탄개발은 2005년에 시작되었다
2. 조선이 진행한 여섯 차례의 수소탄개발시험
3.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왜 만들었을까?
4. 다시 읽어보아야 할 조국통일유훈과 2016년도 신년사

▲ <사진 1> 조선은 2005년 2월 10일 외무성 성명에서 핵탄보유선언을 하면서 핵무력증강결심도 표명하였다. 당시 미국과 한국에서는 조선의 핵탄보유선언과 핵무력증강결심표명을 대미협상력을 높이려는 벼랑끝전술이니 뭐니 하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은 2005년부터 핵탄을 증산하는 것과 함께 수소탄을 개발하기 위한 극비사업에 착수하였고,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16년 1월 6일 조선의 핵과학자들이 자력으로 만든 시험용 수소탄이 거대한 폭음을 울리며 기폭하였다. 조선의 수소탄시험에 대해 알려면, 조선의 수소탄개발사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의 사진은 조선의 녕변핵시설에서 근무하는 핵기술자들이 방호복을 입고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를 운전하는 장면이다. 촬영시점은 알 수 없다. '확인 또 확인'이라고 쓴 글씨가 보인다.     © 자주시보

1. 조선의 수소탄개발은 2005년에 시작되었다

미국이 조선에 대한 적대공세를 전례 없이 강화하면서 정세를 파탄으로 몰아넣고 있었던 2005년 초, 조선은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미국의 적대공세에 상응하는 보복공세를 취하였다. 당시 조선이 취한 대미보복공세들 가운데 하나가 핵탄보유를 선언한 것이었다. 2005년 2월 10일 조선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하면서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사진 1>

조선이 그처럼 명백한 어조로 핵탄보유를 선언하고 핵무력을 더욱 증강하겠다는 결심까지 표명하였는데도, 조선에 대해 오해와 편견부터 앞세우는 미국과 한국은 조선의 핵탄보유선언에 대해 “대미협상력을 높이려는 벼랑끝전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핵탄보유사실 자체를 부정하였다. 조선의 핵탄보유사실을 부정하였으니, 핵무력을 더욱 증강하겠다는 조선의 결심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 성명이 나왔을 때, 미국과 한국의 관심은 조선의 핵탄보유가 아니라 조선의 핵물질생산에만 집중되었었다. 그 때로부터 어언 11년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지난 11년 동안 미국과 한국이 조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앞세운 전략적 오판에 빠져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조선은 11년 전 외무성 성명에서 언명한 대로 자기의 핵무력을 비약적으로 증강시켰고 마침내 수소탄까지 보유하게 되었다. 11년 전 조선이 외무성 성명에서 언명한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은 핵탄증산대책이라는 뜻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핵무력증강대책이라는 뜻을 내포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대책을 취할 것”이라는 그 말에는 핵탄증산결심 이외에 수소탄개발결심도 들어있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조선은 핵무력을 증강하겠다는 결심을 표명한 2005년 초에 수소탄개발에 착수하였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조선이 핵무력증강대책을 취하겠다고 공식 선언하였던 11년 전, 조선이 설정한 최종목표는 핵탄증산을 넘어 수소탄개발에 가닿아 있었다. 

▲ <사진 2> 조선은 2005부터 10여 년 동안 수소탄개발사업을 비밀리에 진척시켜왔는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최첨단 첩보위성을 동원하여 조선의 움직임을 24시간 감시한다는 미국은 조선의 수소탄개발사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오해와 편견을 앞세운 전략적 오판이 미국의 시야를 캄캄하게 가려놓았기 때문에 알지 못한 것이다. 조선의 수소탄개발사업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오판은 미국이 조선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사실상 패하였음 말해준다.     © 자주시보

그런데 최첨단첩보장비를 동원하여 조선의 움직임을 24시간 감시한다는 미국은 조선이 2005년부터 추진해온 수소탄개발사업에 대해 알지 못했다. 오해와 편견을 앞세운 전략적 오판이 미국의 시야를 캄캄하게 가려놓았기 때문에 알지 못한 것이다. 조선의 수소탄개발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오판은 미국이 조선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사실상 패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2>

그런데 미국이 조선의 수소탄개발에 대한 정보파악에서 그처럼 완전히 실패한 것보다 더 한심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조선이 2016년 1월 6일 수소탄시험을 단행하였는데도 미국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뒤를 따라가는 한국의 모습도 미국의 그런 모습과 마찬가지다. 지난 11년 동안 반복해온 것처럼, 이번에도 미국과 한국은 조선의 수소탄시험 자체를 부정하는 이상한 난기류에 휩쓸리고 말았다. 하지만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부정하는 난기류의 흐름을 뜯어보면, 합리적 판단은 실종되고 오해와 편견만 흐르고 있음이 드러난다. 미국과 한국은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부정하는 까닭을 거론하면서, 조선의 수소탄시험에서 발생한 인공지진의 진동에너지가 자기들이 생각한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한, 매우 약한 진동에너지로 나타났기 때문에 조선이 수소탄시험을 단행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제1차 수소탄시험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제4차 핵시험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수소탄(열핵융합탄)이 핵탄(핵분열탄)에 비해 100배, 1,000배 더 강력한 폭발에너지를 발생시킨다는 지극히 단순한 기초상식만 가지고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바라보면 오해밖에 생길 게 없다. 오늘날 복잡하게 전개되는 정세에서는 단순한 기초상식으로 해명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때로 나타나곤 하는데, 조선의 수소탄시험이야말로 단순한 기초상식으로는 해명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수소탄에 관한 기초상식을 들먹이며 조선의 수소탄시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횡설수설할 게 아니다.

수소탄은 군사과학기술의 최상위 종합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어떤 나라가 그것을 만들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몇 해 만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간단한 물건이 아니다. 따라서 조선이 수소탄시험을 단행하기까지 조선의 핵과학자들이 고심어린 탐구와 실험을 진척시켜온 기나긴 개발과정이 있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비록 언론에 공개된 관련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그 개발과정을 더듬어 가면, 불가사의하게 보이는 조선의 수소탄시험의 실상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 

2012년 3월 7일 미국의 군축문제전문지 ‘과학과 세계안보(Science and Global Security)’에 스웨덴의 기상학자 라-에릭 데예르(Lars-Erik De Geer)가 집필한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그 논문에 따르면, 한국, 일본, 러시아의 방사성핵종측정소들이 측정한 자료들을 정밀분석하였더니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는 핵시험장에서 2010년 4월 중순과 5월 11일에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한, 매우 약한 폭발에너지를 발생시킨 핵시험이 두 차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런 뜻밖의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국제핵과학계의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키자, 2013년에는 크리스토퍼 롸잇(Christopher M. Wright)이나 저하드 워타와(Gerhard Wotawa) 같은 과학자들이 데예르의 연구결과를 뒷받침하는 논문들을 ‘과학과 세계안보’ 또는 ‘방사분석 및 핵화학(Radioanalytical and Nuclear Chemistry)’ 같은 학술전문지들에 잇달아 발표하였다.

▲ <사진 3> 이 사진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만탑산에 있는 지하핵시험장을 촬영한 상업위성영상자료다. 촬영시점은 알 수 없다. 조선이 2010년 4월부터 2013년 6월까지 바로 이 지하핵시험장에서 수소탄개발시험을 여러 차례 진행하였다는 사실은 스웨덴, 미국, 중국의 과학자들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에 입증되었다.     © 자주시보

그런데 다른 학자들은 2010년 4월과 5월 중에 조선에서 인공지진파가 발생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위에 열거한 세 과학자들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대해 의혹의 물음표를 달았다. 그러나 중국과학기술대학의 지진학자들인 장먀오(張邈)와 원롄싱(溫聯星)이 2015년 1월 지진학전문지 ‘지진학 연구소식(Seismologic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0년 5월 중에 기록된 지진측정자료를 새로운 미진검측방법으로 조사하였더니 2010년 5월 11일 오전 8시 8분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는 핵시험장에서 인공지진이 발생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 3>

2010년 5월 12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식으로 독특하게 설계된 열핵반응장치에서 핵융합반응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는 놀라운 소식을 보도하였다. 언론보도를 통해 그 소식을 들은 한국의 핵과학자들은 조선이 핵융합반응시험에 성공하였다는 소식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하면서 믿지 않았다. 한국의 핵과학자들은 조선의 핵과학기술에 대해 오해와 편견부터 앞세우는 오랜 습관에 길들어졌으니 그런 신중하지 못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2. 조선이 진행한 여섯 차례의 수소탄개발시험

2010년 5월 12일 당시 조선은 핵융합반응시험에 성공하였다고 밝혔지만, 오늘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핵융합반응이 일어나는 수소탄을 개발하기 위한 시험, 다시 말해서 수소탄개발시험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조선의 수소탄개발시험이 성공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2010년 5월 12일 이후에도 조선의 핵시험장에서 새어나온 방사성핵종이 몇 차례 더 검출되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2011년 3월 27일 방사성핵종인 제논(Xe)을 대기 중에서 검출하였고, 2013년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기간에도 제논이 평상시 기준값을 넘어선 이상현상이 세 차례나 더 나타났다고 밝혔다. 당시 조선의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는 가동되지 않고 멈춰있었으므로, 2011년 3월과 2013년 6월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대기표본에서 검출한 방사성핵종은 녕변의 흑연감속로에서 새어나온 것이 아니라, 조선이 비밀리에 진행한 수소탄개발시험에서 새어나온 것이 확실하였다.

그런데 2013년 6월 하순 이후에는 방사성핵종이 검출되었다는 한국의 언론보도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므로, 조선의 수소탄개발시험은 2013년 6월 하순에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은 2010년 4월 중순부터 2013년 6월 하순까지 총 여섯 차례의 수소탄개발시험을 비밀리에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문제는, 조선의 수소탄개발시험에서 얼마나 강한 폭발에너지가 발생하였을까 하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데예르는 50~200톤에 이르는 폭발에너지가 발생하였다고 자기 논문에서 밝혔고, 장먀오와 원롄싱은 약 2.9톤(오차범위 0.8톤)에 이르는 폭발에너지가 발생하였다고 자기들의 논문에서 밝혔다.

그런데 양쪽에서 각각 제시한 측정값이 너무 큰 격차를 보인다. 이것은 그 두 측정값 가운데 어느 하나가 오류라는 점을 말해주는데,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장먀오와 원롄싱이 제시한 측정값이 오류인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핵탄을 기폭하여 핵융합반응을 일으킬 때, 아무리 극소형 핵탄을 기폭시킨 극소규모의 핵융합반응이 일어나더라도 폭발에너지가 3톤밖에 발생하지 않는 현상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핵융합반응시험에서 50~200톤급 폭발에너지가 발생하였다고 지적한 데예르의 견해가 이치에 맞는다.

▲ <사진 4> 2013년 6월 마침내 수소탄제조기술을 완성한 조선은 2014년 3월 3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핵시험을 진행할 것임을 예고하였는데, 새로운 형태의 핵시험이란 곧 수소탄시험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약 8개월 뒤인 2016년 1월 6일 조선은 예고한 대로 수소탄시험을 단행하였다. 위의 사진은 2016년 1월 6일 평양역 광장의 대형옥외전광판에서 조선의 수소탄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긴급소식이 전해지자 그 앞에 모여든 평양시민들이 환호성을 터뜨리는 장면이다.     © 자주시보

위에 서술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조선은 50~200톤급 폭발에너지가 발생하는 극소규모의 수소탄개발시험을 2010년 4월 중순부터 2013년 6월 하순까지 여섯 차례 진행하여 수소탄제조기술을 3년 만에 완성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소탄제조기술을 3년 만에 완성한 조선은 2014년 3월 3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수소탄시험을 예고하였다. 조선은 그 성명에서 “적들이 상상도 하기 힘든 다음 단계조치들도 다 준비되여 있다.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핵시험도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수소탄시험을 예고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예고한 때로부터 약 8개월 뒤, 조선은 마침내 수소탄시험을 단행하였다. <사진 4>

2016년 1월 11일 <자주시보>에 실린 ‘경이로운 50킬로톤급 시험용 수소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는 조선이 1메가톤급 수소탄의 폭발에너지를 2만분의 1로 축소시킨 50킬로톤급 시험용 수소탄을 2016년 1월 6일에 성공적으로 기폭시켰음을 논증하였다. 그 날 진행된 조선의 수소탄시험에서 50킬로톤(50,000톤)의 폭발에너지가 발생하였다면, 이전에 진행된 수소탄개발시험들에서 발생하였던 폭발에너지의 최대값인 200톤보다 250배나 더 강한 폭발에너지가 발생한 것이다. 2016년 1월 6일에 진행된 수소탄시험에서 성공하였다는 것은, 이전의 수소탄개발시험에서 발생한 폭발에너지보다 250배나 더 강한 폭발에너지를 발생시켰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6년 1월 6일에 진행된 조선의 수소탄시험에서 1킬로톤급(1,000톤급) 핵탄이 기폭제로 사용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조선이 2006년 10월 9일에 진행한 제1차 핵시험에서 사용한 핵탄이 1킬로톤급 핵탄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3.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왜 만들었을까?

조선이 50~200톤급 폭발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극소규모의 수소탄개발시험을 진행하였다는 말은, 20톤급 폭발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극소형 핵탄을 핵융합반응 기폭제로 사용하여 그 시험을 진행하였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극소형 핵탄은 그 폭발에너지가 최소 1킬로톤에 이르는데, 조선은 20톤급밖에 되지 않는 극소형 핵탄을 핵융합반응 기폭제로 만든 것이다. 이것 또한 핵탄에 관한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일이다. 조선의 핵과학자들은 핵융합반응 기폭제로 쓰는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과연 만들 수 있었을까? 

▲ <사진 5> 이 사진은 1962년 7월 17일 미국이 네바다 핵시험장에서 터뜨린 극소형 핵탄의 폭발시험장면이다. 그 시험에서 발생한 폭발에너지는 18톤밖에 되지 않았다. 20톤급 극소형 핵탄이 실제로 존재한 것이다. 수소탄개발에 힘쓴 조선의 핵과학자들도 핵융합반응 기폭제로 쓰기 위해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만들었다.     © 자주시보

이 의문을 풀려면,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극소형 핵탄을 만들어낸 미국의 선행경험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1962년 7월 17일 미국이 네바다 핵시험장에서 극소형 핵탄을 시험하였는데, 그 시험에서 발생한 폭발에너지는 18톤이었다. 핵탄에 관한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폭발에너지가 18톤밖에 되지 않는 극소형 핵탄이 실제로 존재한 것이다. <사진 5>

그렇다면 조선은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핵융합반응시험의 기폭제로만 사용하려고 만들었을까?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의 핵탄개발선례를 살펴보아도, 극소형 핵탄이 핵융합반응시험에서 기폭제로 사용된 것만이 아니라 실전무기로도 배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그런 선행경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도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만들어 핵융합반응시험 기폭제로 사용하였을 뿐 아니라, 그 핵탄으로 두 종의 실전무기를 만들어냈다. 조선은 지난 6.25전쟁 시기부터 미국에게 피맺힌 원한을 갖게 되었으므로, 오늘날 조선의 핵과학자들이 첨단군사과학기술로 만들어내는 실전무기들은 미국에게 복수하려는 최후결전에서 사용할 첨단무기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20톤급 극소형 핵탄으로 만든 두 종의 실전무기도 그런 최후결전무기들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지난 시기 미국의 핵과학자들이 밟아왔던 핵탄개발경험을 살펴보면, 1960년대 초에 그들은 20톤급 극소형 핵탄으로 전술무기와 전략무기를 각각 만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첫째, 1960년대 초 미국의 핵과학자들은 20톤급 극소형 핵탄으로 전술무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Mk-54 핵배낭과 Mk-54 핵포탄이다. 1961년부터 1962년 초에 이르는 기간에 미국군이 실전배치한 Mk-54 핵배낭은 400개에 이르렀다. 

둘째, 1960년대 초 미국의 핵과학자들은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내장한 전략무기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폴라리스(Polaris) A-1 잠대지탄도미사일(SLBM)이다. 조선에서는 잠대지탄도미사일을 수중대지상로케트라고 부른다. 1960년 7월 미해군은 폴라리스 A-1 잠대지탄도미사일 1차분 16발을 제조사에서 인도받아 실전배치하였는데, 바로 그 미사일 탄두부에 장입된 것이 W-47 수소탄이다. W-47은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기폭제로 사용하여 600킬로톤의 핵융합에너지를 발생시키도록 설계된 탄두화된 수소탄이었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1960년대 초 미국의 첫 잠대지탄도미사일 폴라리스 A-1이 발사된 장면이다. 1960년 7월 미해군은 이 미사일 1차분 16발을 제조사에서 인도받아 실전배치하였는데, 그 미사일 탄두부에 장입된 것이 W-47 수소탄이다. W-47은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핵융합반응 기폭제로 사용하여 600킬로톤의 핵융합에너지를 발생시키도록 설계된 탄두화된 수소탄이었다.     © 자주시보

조선의 핵과학자들이 미국 핵과학자들의 핵탄개발선례를 그대로 반복한다고 볼 수 없지만, 최근 조선이 세상에 공개한 두 종의 위력적인 전술무기와 전략무기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조선에서 전승절로 경축한 2013년 7월 27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인민군 열병행진에 이름도 생소하게 들리는 핵배낭부대가 처음 등장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핵배낭부대를 열병행진에 등장시킨 나라는 전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다. 조선인민군 핵배낭부대는 2015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 열병행진에 또 다시 등장하여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였다. 열병행진에 등장한 조선인민군 핵배낭부대를 보고 충격을 받은 한국군 관계자는 그 배낭 속에 방사능방호복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였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전시에 조선인민군 핵배낭부대는 20톤급 극소형 핵탄이 장입된 핵배낭을 메고 남진갱도를 통해 돌격명령이 내린지 1~2시간만에 적진에 은밀히 침투하여 핵배낭을 설치한 뒤 그것을 원격조종으로 기폭하는 전술핵공격을 전개할 것으로 예견된다. <사진 7> 

▲ <사진 7> 조선의 핵과학자들은 핵융합반응 기폭제로 사용하는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가지고 핵배낭도 만들었다. 조선인민군 핵배낭부대는 2013년 7월 27일 전승절 열병행진에 등장한 데 이어 2015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 열병행진에도 등장하였다. 위의 사진은 당창건 70주년 열병행진에 등장한 핵배낭부대의 행진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핵배낭부대를 열병행진에 등장시킨 나라는 조선밖에 없다. 핵배낭 속에는 20톤급 극소형 핵탄이 장입되는데, 전시에 핵배낭을 멘 특수전병력은 남진갱도를 통해 적진에 은밀히 침투하여 핵배낭을 설치한 뒤 원격조종으로 기폭하는 전술핵공격을 전개할 것으로 예견된다. 원격조종으로 기폭하므로 자폭공격이 아니다.     © 자주시보

둘째, 2013년에 핵배낭부대를 처음 세상에 공개한 조선은 2014년 10월부터 잠대지탄도미사일을 수중발사대에서 발사하는 사출시험을 진행하더니, 마침내 2015년 5월 8일 그 미사일을 전략잠수함에서 쏘아올리는 수중발사시험에 성공하였고, 2015년 12월 21일에도 또 다시 전략잠수함에서 그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수중발사하였다. 2015년 11월 28일에도 그 미사일을 전략잠수함에서 수중발사하였으나 실패하였다는 미국과 한국의 언론보도는 오보였다. 이에 대해서는 2015년 12월 7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나의 글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는 없었다’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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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8> 이 사진은 2015년 12월 21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관측선박에 탑승하여 참관하는 가운데 함경남도 신포 앞바다에서 진행된 잠대지탄도미사일 수중발사시험 중에 전략잠수함이 수중에서 발사한 북극성-1호가 화염을 뿜으며 하늘 높이 솟구쳐오르는 상승비행장면이다. 미국 군부는 2015년 5월 8일에 진행된 수중발사시험에서 북극성-1호를 발사한 잠수함을 신포급 잠수함이라고 지적했었는데, 2015년 12월 21일에 진행된 수중발사시험에서는 고래급 잠수함이 그 미사일을 발사하였다고 밝혔다. 고래급 잠수함은 이번에 처음 그 이름이 알려진 잠수함이다. 조선에서는 신포급이니 고래급이니 하는 분류명칭을 쓰지 않으므로, 미국 군부가 자의적 분류명칭을 달아놓은 신포급 잠수함과 고래급 잠수함이 어떻게 다른지 알기 힘들다. 미국 군부는 북극성-1호를 수중에서 발사한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신포급 잠수함인지 고래급 잠수함인지 헷갈리고 있다.     © 자주시보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20톤급 핵탄을 기폭제로 사용하는 수소탄두가 그 잠대지탄도미사일에 장착된다는 사실이다. 조선이 개발한 잠대지탄도미사일의 이름은 북극성인데, 그 이름은 미국이 1960년 7월에 처음 실전배치하였던 잠대지탄도미사일의 이름인 폴라리스와 같다. 북극성을 영어로 폴라리스라고 한다. 조선이 자기의 첫 잠대지탄도미사일에 붙인 이름을 미국의 첫 잠대지탄도미사일 이름과 똑같이 지은 것은 우연한 일치현상이 아니라, 폴라리스 A-1에 600킬로톤급 W-47 수소탄두가 장착되었던 것처럼, 북극성-1호에도 그에 상응하거나 또는 그보다 더 강한 파괴력을 가진 1메가톤급 수소탄두가 장착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2016년 1월 12일 <조선중앙통신사>는 ‘병진에 터쳐올린 정의의 폭음’이라는 제목의 논평기사에서 “우리는 소형화, 표준화, 규격화된 탄도로케트장착용 수소탄까지 완전무결하게 장비하게 되었으며 다종의 핵탄들을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제한없이 운반할 수 있는 최첨단타격수단들을 그쯘히 갖추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사진 8>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핵배낭이나 북극성-1호는 전형적인 비대칭무기들이다. 전시에 전개될 작전상황을 예상하면, 남진갱도를 통해 은밀히 침투한 조선인민군 특수전병력이 주한미국군기지들을 폭파하는 비대칭전에서 핵배낭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고, 수중에서 은밀히 접근한 전략잠수함이 주한미국군기지 폭파에 보복하려는 미국의 핵공격을 억제할 때 북극성-1호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조선이 2010년 5월 12일 20톤급 극소형 핵탄을 기폭제로 사용한 수소탄개발시험에 성공하고, 2013년 7월 27일 20톤급 전술핵탄으로 무장한 핵배낭부대를 세상에 처음 공개하고, 2015년 5월 8일 20톤급 핵탄을 기폭제로 내장한 수소탄두를 장착한 잠대지탄도미사일을 전략잠수함에서 쏘아올린 수중발사시험에 성공하고, 2016년 1월 6일 50킬로톤급 수소탄시험에 성공한 일련의 과정은 지난 5년 동안 조선의 수소탄개발사업이 얼마나 비약적으로 발전되어왔는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조선의 핵과학기술에 대해 오해와 편견부터 앞세우는 미국과 한국의 핵과학자들, 군사전문가들은 조선이 수소탄개발시험에 성공하였을 때 그것을 부정하였고, 조선이 핵배낭부대를 공개하였을 때 그것도 부정하였고, 조선이 북극성-1호 수중발사시험에 성공하였을 때 그것도 부정하였고, 조선이 수소탄시험에 성공하였을 때 그것도 부정하였다. 조선이 핵무력증강사업에서 이룩한 성과들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처럼 무조건 부정으로 일관해온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동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로 시작된 조선의 수소탄개발사업이 지난 10여 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마침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도로 완성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한반도 군사정세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다.


4. 다시 읽어보아야 할 조국통일유훈과 2016년도 신년사

조선에서는 자주적 평화통일을 강조한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조선에서는 자주적 평화통일을 말로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조선이 국가적 과업으로 추진하는 자주적 평화통일의 구체적인 의미는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고, 남북해외 각계각층 대표들이 참가하는 전민족적인 통일회담을 열어 평화통일방도를 합의하고 그것을 즉각 실행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주한미국군이 철수하면, 조선이 ‘남침’하여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크게 우려하지만, 그것은 철군반대론자들이 꾸며낸 기만에 우롱당한 결과다. 현실은 그런 우려와는 정반대로 전개될 것이다. 이를테면,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주한미국군이 철수하는 것이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공고화될 것이므로 주한미국군 철수 이후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외세의 개입과 간섭을 배제한 전민족적인 통일회담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시기 조선은 미국을 상대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핵협상도 진행하였고,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남북정상회담과 민족통일대회도 진행하였다. 그러나 조미핵협상의 성과로 나온 제네바 기본합의와 9.19공동성명,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나온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일방적인 파기행위에 의해 실행될 수 없게 되었다.   

▲ <사진 9> 이 사진은 2013년 7월 27일 전승절 열병행진에 등장한 조선인민군 전차의 앞쪽을 확대한 사진이다. 이 사진에 보이는 전차는 조선에서 1992년식 중땅크 <천마-92>라고 부르는 전차다. 그 전차의 앞쪽에 '일당백'이라는 구호와 함께 '조선인민의 철전치원쑤인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구호가 나란히 적혀있다. 이 전투구호는 조선인민군이 운용하는 모든 군사장비들에 적혀있다. 조선의 조국통일통일전략에 따르면,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을 소멸하는 조국통일대전"과 "북과 남이 우리 민족끼리 정신으로 실현하는 자주적 평화통일"은 상호모순되는 대립물이 아니라, 짧은 기간에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한반도 정세에 미증유의 대변혁을 일으키는 정세변화의 폭발적 전개과정이라고 한다.     © 자주시보

이처럼 극도로 악화된 정세는 조선에서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쑤”라고 극렬히 비난하며 적대시하는 미국군이 한국(조선에서는 남조선)에 주둔하는 한 자주적 평화통일이 실현될 수 없으므로, “최후결전을 벌여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을 소멸해야” 남과 북이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그들의 기존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어주었다. 오늘날 그런 확신을 지닌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을 소멸하는 조국통일대전”과 “북과 남이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으로 실현하는 자주적 평화통일”은 상호모순되는 대립물이 아니라, 짧은 기간에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한반도 정세에 미증유의 대변혁을 일으키는 정세변화의 폭발적 전개과정으로 보이게 된다. 조국통일문제에 대한 조선의 그런 관점과 견해를 파악할 때,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하여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라는 유훈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사진 9>

조선의 언론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조선에서 선대수령들의 조국통일유훈은 어떤 정치선언이나 결의표명이 아니라, 국력을 집중하여 하루빨리 관철해야 할 최고당면과업이다. 예컨대 일본의 시사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2003년 1월호에 보도된 ‘조선인민군 학습제강’이나 2013년 8월 <동아일보>에 보도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전시사업세칙’ 요약본을 읽어보면, 그런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조선에서 선군절을 맞은 2012년 8월 25일부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국통일대전에 대해 때때로 공언하는 것은 어떤 정치선언이나 결의표명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통일대전으로 선대수령들의 조국통일유훈을 하루빨리 관철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은 조선이 미국의 무력침공을 받았을 때 피동적으로 전개할 반침략전쟁이 아니라, 선대수령들의 조국통일유훈을 실현하기 위해 ‘결정적인 시기’에 주동적으로 전개할 유훈관철전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에서 조국통일대전이 하루빨리 관철해야 할 유훈과업으로 제시되었어도, 그 전쟁에서 승리할 조건이 갖춰져야 유훈과업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과 미국이 피차 국운을 걸고 격돌하게 될 전쟁은 재래식 전쟁이 아니라 핵전쟁으로 될 것이므로, 조선은 핵전쟁으로 전개될 자기의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할 확실한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문제를 군사학적 견지에서 살펴보면, 조선이 갖춰야 할 조건은 두 가지로 생각된다. 첫째 조건은 공격징후를 교전상대에게 노출하지 않으면서 전술핵탄을 사용하는 선제기습타격, 초정밀타격을 벼락 같이 집중하여 교전상대를 단숨에 제압할 초단기속결전 준비를 완료하는 것이고, 둘째 조건은 주한미국군이 조선인민군의 기습적인 포위공격을 받아 궤멸되는 경우 그에 격노한 미국이 본토에서 대규모 증원군을 파병하고 보복핵타격을 감행하게 되는 확전상황을 즉각적으로 차단, 억제할 전략적 타격수단을 보유하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내가 발표한, 군사정세를 분석한 많은 글들에서 거듭 논해온 것처럼, 지금 조선은 위에서 언급한 그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이를테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초정밀타격력을 지닌 핵탄장착미사일을 발사하는 훈련을 진행하고, 조선인민군 핵배낭부대가 자기의 존재를 세상에 공개하고, 조선인민군 잠수함부대가 수소탄두를 장착하는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에 성공하고, 조선의 군수공업부가 만든 시험용 수소탄의 폭발시험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그 두 가지 조건이 마침내 완비되었음을 실증해준 사변들이었다. 이런 사정을 간파하면, 지금 조선에게는 그들이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의 결정적 기회”를 택하는 일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길게 서술한 내용을 이해한 뒤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6년 1월 1일에 발표한 신년사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침략자, 도발자들이 조금이라도 우리를 건드린다면 추호도 용납하지 않고 무자비한 정의의 성전, 조국통일대전으로 단호히 대답해나설 것”이라고 단언하였고, 그로부터 이틀 뒤 수소탄시험 최종명령서에 수표하였고, 다시 그로부터 사흘 뒤 인민무력부에서 “강령적인 연설”을 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6년 1월 9일 인민무력부 회의실에서 “강령적인 연설”을 하였을 때, 현장에서 연설을 경청한 사람들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인민무력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지휘성원들”이었다. <사진 10>

▲ <사진 10>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6년 1월 9일 인민무력부를 방문하고 "강령적인 연설"을 하였다. 그 자리에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인민무력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지휘성원들"이 참석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수소탄시험을 단행한 직후, 인민무력부를 방문하여 중대한 연설을 한 것은 미국을 비롯한 조선의 적대세력들이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구실로 조선을 자극하면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나게 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 자주시보

다른 나라 대통령들이 새해벽두에 발표하는 의례적인 연두교서는 추상적인 언사로 장식되지만, 조선의 최고영도자가 새해 첫날 발표하는 신년사에는 해당년도에 조선이 반드시 실행해야 할 방침과 과업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전군과 전민이 신년사를 학습하고, 거기에 제시된 방침과 과업을 실행하기 위해 한 해 동안 힘쓰는 것이다. 더욱이 조선에서 ‘시대를 구분하는 역사적인 정치회합’으로 크게 기대하고 있는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가 열리는 올해에 발표된 신년사는 그 대회를 맞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침과 과업이 제시된 것으로 하여 특별하다.

그런데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처럼 특별한 신년사에서 조국통일대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나서 곧바로 수소탄시험을 명령하고, 계속하여 인민무력부에서 중요한 연설을 한 것은, 미국을 비롯한 조선의 적대세력들이 조선의 수소탄시험을 구실로 조선을 자극하면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나게 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도 지금 미국과 한국은 조선의 수소탄시험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조선에 대한 물리적, 심리적 자극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여가는 중이다. 조선이 그러한 물리적, 심리적 자극을 도발행위와 적대행위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래서 조선외무성은 2016년 1월 15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이러한 도발행위들과 적대행위들은 조선반도에서 정세를 격화시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필연코 불꽃이 튀게 할 것이다. 일단 화약고에 불이 당겨 폭발하게 되면 그 후과에 대한 책임은 도화선을 늘이고 불을 단 자들이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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