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21

오바마 방한이 승리? 대일외교 실패 자초한 청와대의 오판

<민중의 소리> 2014년 02월 20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1978년부터 28년 동안 미국 국무부 통역관으로 한미정상회담 통역을 맡았던 김동현 고려대 연구교수가 지난해 5월 9일 ‘조선일보’ 취재기자에게 들려준 한미정상회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이틀 전 백악관에서 진행된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의 숨겨진 내막을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미국에서 정상회담 성공의 기준은 그 회담에 참석한 대통령의 기분이 좋으냐 나쁘냐로 갈립니다. 오바마는 일부러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상체를 구부리고, 같이 로즈가든(백악관 정원-옮긴이)을 걷고, 등을 얼싸안는 포즈를 취해요. 다 준비한 행동이지요.”

김동현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초청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리 짜놓은 각본에 따라 준비한 행동을 보여주었으니, 한미정상회담은 미국이 펼쳐놓은 ‘화려한 정치쇼’인 것이며, 그런 내막을 모르는 한국 국민들은 ‘화려한 정치쇼’를 바라보며 한미동맹의 환상에 젖어들었던 것이다.

이처럼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한미정상회담을 ‘정치쇼’로 여겨왔지만, 그런 내막을 알면서도 속아주는 척했는지 아니면 그런 내막을 알지 못했는지 알 수 없으나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한미정상회담을 최상의 외교공적으로 여겨왔다.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 한미정상회담을 몇 차례나 성사시켰는가 하는 것이 역대 한국 대통령들의 외교공적을 평가하는 기준처럼 되고 말았으니, 이것은 미국 대통령들이 펼쳐놓은 ‘정치쇼’에 상대역으로 몇 번 출연하였는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외교공적을 평가해온 것이나 다르지 않다.

역대 한국 대통령, 한미정상회담 횟수로 외교성과 평가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2년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공식환영행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2년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공식환영행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오바마 대통령이 펼치는 그런 ‘정치쇼’에 자꾸만 더 출연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아시아순방 일정을 변경시켜 한국도 방문해달라고 간청하여 원래 백악관이 계획하지 않았던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일정을 받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지난 13일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필리핀 4개국을 오는 4월에 순방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같은 날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이 오는 4월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면서 “이번 방한이 한미동맹 발전과 한반도, 동북아시아, 범세계적 문제를 양국 정상 간에 심도 있게 논의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순방 일정 중에서 일본방문 일정을 하루 축소시키고 그 대신 원래 예정하지 않았던 한국방문일정 하루를 추가하도록 만든 것에 대해서 박근혜 정부는 외교적 승리라고 자축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방문 일정을 하루 축소시키는 대신 한국방문일정을 새로 잡게 만든 순방일정 변경을 외교적 승리라고 자축하는 것은 한미일 3각 관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왜 그러한가?

이번에 백악관이 발표한,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순방 일정에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이 포함된 것은, 지난해 10월 연방정부의 업무정지사태로 그 두 나라를 방문하려던 일정을 뒤로 연기한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에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문제는, 백악관이 오바마 대통령의 말레이시아-필리핀 방문일정에 일본 방문일정을 추가하였을 뿐 아니라, 방문의 격도 실무방문이 아니라 국빈방문으로 한껏 격상시켜놓았다는 점이다.

아베는 왜 오바마를 초청했을까?

지난해에 미국 내부 사정으로 연기되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말레이시아-필리핀 방문을 다시 추진하는 동안에 일본이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일정을 추가시킨 것은 아베 내각의 외교적 승리라고 부를 만하다.

아베 내각은 왜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을 백악관에 요청하였으며, 백악관은 왜 아베 내각의 국빈방문 요청을 들어주었을까?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한일 외교 갈등이라는 걸림돌에 걸린 한미일 3각 관계를 원상복구하려는 데서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은 한일 외교 갈등이라는 걸림돌을 하루빨리 제거하여 한미일 3각 관계가 원상복구 되기를 바라고 있고, 일본은 박근혜 정부에게 한일정상회담을 하루빨리 개최하자고 졸라대고 있다. 올해 오바마 행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외교과제는 한미일 3각 관계의 원상복구를 위한 한일관계개선이고, 아베 내각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외교과제도 한국에 조성된 반일감정을 해소시키기 위한 한일정상회담 개최다.

백악관이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순방일정에 일본 국빈방문 일정을 추가한 것은 오바마-아베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일 3각 관계를 원상복구하려는 강한 의욕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우성향을 남김없이 드러낸 아베 내각이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을 계기로 독도강탈 야욕을 포기할 리 없으며, 일본군 성노예 범죄를 인정하고 피해보상에 나설 리 없으므로, 오바마 대통령은 미일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에게 한일외교 갈등 해결을 위해 일본이 먼저 한국에게 ‘양보’하라고 설득할 리도 만무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방문 목적이 한국과 외교적 갈등을 빚는 일본에게 ‘양보’하라고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미국은 왜 미일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미국의 대한관계와 대일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지난 시기 복잡하게 전개되어온 한미일 3각 관계의 외교경험을 들춰보면, 한일외교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미국은 중립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언제나 일본을 일방적으로 지지, 두둔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정책이 미일관계를 중심으로 편성되었으며, 따라서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에 부속된 것이기 때문이다.

미일 압박에 박근혜 대통령, 한일정상회담 받아들일 것

이런 3각 관계의 맥락을 살펴보면, 미국이 이번에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방문과 미일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목적은 한일외교 갈등구도에서 한국에게 유리하게 일본을 설득해보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공조하여 한일외교 갈등구도를 넘어서려는 데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과 공조하여 한일외교 갈등구도를 넘어선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미국이 서로 외교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게 각각 ‘자제’를 요구하는 한편, 일본은 미국의 ‘자제요구’를 받아들여 독도강탈야욕을 뒤로 숨겨놓고, 일본군 성노예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척하면서 박근혜 정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는 뜻이다. 그러한 견인외교의 당면목표는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한일정상회담 개최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뉴시스/AP


그런데 박근혜 정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아베 내각의 견인외교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강한 요구를 제기할 것이라는 점이다. 예상컨대 오바마 대통령은 도쿄에서 서울로 직행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이번에 미국이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 순방일정을 하루 축소하여 한국을 방문하고 한미정상회담까지 성사시키는 성의를 보였으니, 이제는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차례”라고 하면서, “내가 이번에 미일정상회담을 하면서 한국에 대한 자극발언을 자제하겠다는 아베의 약속을 받았으니, 이제는 박근혜 당신이 한일정상회담에 나서야 할 차례”라는 식의 논리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의 그런 요구를 물리칠 수 없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은 오직 하나 뿐이다. 아베 총리의 한일정상회담 개최 요구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의 요구를 물리칠 수 없어 아베 총리의 한일정상회담 개최 요구를 받아들이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 미국은 한미일 3각 관계를 원상복구하여 자국의 안보이익을 챙길 것이고, 일본은 독도강탈 야욕을 품고 일본군 성노예 범죄사실 부인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한일정상회담으로 끌어당겨 자국의 외교성과를 챙길 것이며, 한국만 미일공조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외교적 손실과 타격을 입을 것이다.

미국이 일본과 공조하여 한일정상회담에 나서라고 한국을 압박하면, 한국은 단 며칠도 버티지 못한다. 한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의 요구를 따라가야 한다. 올해 4월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일본 방문에 감춰진 의도는 일본과 공조하여 한국을 압박함으로써 한일외교 갈등이라는 걸림돌을 제거하고 한미일 3각 관계를 원상복구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오판한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국방문과 한미정상회담을 구걸함으로써 미일공조로 한국을 압박하려는 오바마-아베의 외교술책을 결정적으로 강화시켜주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방문일정을 하루 축소하고 한국방문일정을 하루 추가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성과가 아니라 미일공조 앞에서 자승자박한 외교적 실책이다. 박근혜 정부의 친미사대외교가 불러온 불행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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