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8

여운형과 레닌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진실의 말팔매 <27>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실로 상상도 못할 굉장한 환영이었다. 군악대를 앞세운 일대의 군대, 각 조직과 기관의 수많은 대표들과 노동자, 시민, 학생 등 모든 계층의 민중이 넓은 광장과 플랫홈을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 없이 뒤덮고 있었다. 멀리 극동의 피부빛 다른 동지들이 온다는 것이 이 군중의 대부분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악수의 비가 한창 우리를 습격하고나서 환영 나온 각 기관과 조직의 대표들의 환영연설이 시작되었다. (줄임) 그들의 열렬한 환영사가 끝난 다음 나는 이 거의 영광에 가까운 환영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 속으로의 감사와 기쁨을 전하기 위하여 연단에 올랐다. 정거장이 무너질 듯한 박수와 환호가 좀 진정된 틈을 타서 나는 영어로 우리들의 답사를 말하기 시작하였다. 말을 다 마치고 났을 때에는 영하 30도의 추위였으나 나는 전신에 상쾌한 땀이 촉촉이 젖은 것을 느겼다."

위의 인용문은 식민지 조선에서 발간된 <중앙> 1936년 6월호에 실린 여운형의 여행기 '모스크바의 인상'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는 1922년 1월 중순 중국 상하이를 떠나 유라시아대륙 횡단열차를 타고 원동피압박민족대표자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갔는데, 그곳에 도착한 날 겪은 일을 그렇게 술회하였다.

그가 식민지 조선을 대표하여 참가한 원동피압박민족대표자대회는 근동피압박민족대표자대회에 이어 개최된 국제대회였는데, 여운형의 표현을 빌리면, "아메리카의 수도에서 열리게 된 저 소위 워싱턴회의 곧 (줄임) 자본주의 국가의 회합에 대항하는 새로운 의미와 사명을 띄우게 된" 국제대회로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동과 약소민족의 운동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기 위한 제3인터내셔널의 실천적 사업의 하나"였다.

대회 기간 중 여운형은 레닌을 두 차례 만났다. 1936년 <중앙>에 연재한 자신의 여행기에서 여운형은 레닌과의 만남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른바 '치안유지법'을 동원하여 식민지 조선을 억누르던 일제에게 탄압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운형과 레닌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이 흥미로운 물음에 대한 답변은 1930년 4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열린 여운형에 대한 공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운형은 1929년 7월 10일 상하이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조선으로 끌려와 제국주의자들이 조작해놓은 법정에 섰던 것이다.

여운형은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직접 모스크바에서 레닌과 만났소만 만나기 전까지는 사실 러시아가 조선에다 공산주의를 그대로 선전하려 들지 않나 적이 걱정하였으나 만나본즉 그는 조선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소. 조선의 교통과 국어를 묻기에 교통은 하루에 전통될 정도, 국어는 한 개 국어라 하니까 레닌은 '매우 좋다. 조선은 전에는 문화가 발달했지만 목하는 민도가 낮으므로 곧 공산주의를 실행하려 드는 것은 잘못이다. 지금은 민주주의부터 실행함이 현명할 것이다'고 말했는데 내 소신에 합치되매 나는 매우 만족하였소."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것처럼, 여운형은 레닌과의 만남에서 '조선의 특수성'을 반영한 민주주의변혁을 수행하려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정당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의 법정발언에서 두 가지 물음을 끌어낼 수 있다. 하나는 그가 말한 '조선의 특수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생각한 민주주의변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조선의 특수성'에 대한 여운형의 생각은, 1945년 12월 7일 <조선인민보>에 실린 그의 기자회견문 '통일전선에 낙관'에 들어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8.15 전까지의 우리의 역사적 특수성은 조선인 전체가 그 계급을 편성하여 일본 제국주의 압박 하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조선에 있어서의 공산주의 운동은 국내의 계급적 대립을 중심으로 한 투쟁은 비교적 적었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이 강렬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조선의 역사적 특수성으로 노동자, 농민은 프롤레타리아적 정치의식이 박약하다. 전 농민의 75%를 점하고 있는 빈농의 대부분은 금일 공산당의 전략과는 거리가 있다. 이러한 층을 계몽하여 다음에 오는 정치적 조직화에 대한 전(前)단계적 훈련을 하는 것이 우리 당의 역할이다."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여운형은 노동자의 계급의식이 약하고, 빈농의 인구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을 '조선의 특수성'으로 인정하였다. 그로부터 66년이 지난 오늘, 여운형은 '한국의 특수성'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노동자의 계급의식이 약하고, 중산층의 인구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을 '한국의 특수성'으로 인정하였을 것이다.

66년 전 여운형이 '조선의 특수성'에서 사회변혁의 길을 찾았던 것처럼, 오늘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은 '한국의 특수성'에서 사회변혁의 길을 찾아야 한다. 노동자의 계급의식이 약하고 빈농의 인구비율이 매우 높았던 66년 전 조선에서 급진적 사회변혁을 수행할 수 없었던 것처럼, 노동자의 계급의식이 약하고 중산층의 인구비율이 매우 높은 오늘 이 땅에서 급진적 사회변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두 단계 사회변혁론을 더 깊이 연구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여운형이 레닌을 만난 자리에서 의견일치를 보았던 식민지 조선에서의 민주주의는 무엇이었던가? 여운형은 1945년 12월 8일 <조선인민보>에 발표한 자신의 글 '인민당의 신념'에서 건국노선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그 전제로 하는 정치형태를 말함이니 즉 국민이 대다수의 노동층의 경제적 해방을 위하여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정치방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정치형태의 형식과정이 반드시 대중으로부터 조직되어 올라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대중에 뿌리박지 않고 위에서 형성된 정치의식을 민중의 이름을 빌어서 합리화하려는 일개 수단으로서의 민주주의는 이번 연합국의 힘으로 타도된 가면 쓴 파시즘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운형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 새로운 해방세상을 꿈꾸었다. 그가 말한 진정한 민주주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경제적 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민주주의를 뜻한다. 그러면 그가 말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경제적 해방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1946년 신문화연구소 출판부에서 출판한 책 '인민당의 노선'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경제적 해방에 대해 여운형은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첫째, 그는 "우리는 개로공영(皆勞共榮)하고 무이독존(無而獨存)하여야 할 것이다"고 하였다. 개로공영이란 모두 노력하여 함께 번영한다는 뜻이므로, 오늘 우리가 쓰는 표현법으로 바꾸면 빈부격차가 없는 평등하고 협동적인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다. 무이독존이란 외부의 도움 없이 홀로 선다는 뜻이므로, 오늘 우리가 쓰는 표현법으로 바꾸면 대외종속에서 탈피하여 경제자립을 실현하는 것이다. 오늘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추구하는 평등과 협동에 기초한 경제자립을 이미 66년 전에 여운형이 설파하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달리 표현하면, 66년 전 여운형이 제시한 그 목표는 아직도 실현되지고 진보정치의 과업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둘째, 그는 "현재 제일 중요한 것은 섬유공업, 화학공업, 식료품공업, 제약 비료공업 등이며 현재 시설 중에 대(大)는 국영으로 소(小)는 민영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그는 중요산업 국유화와 중소기업 민영화를 새로운 경제건설노선으로 제시하였던 것이다. 여운형이 제시한 중요산업 국유화와 중소기업 민영화는 66년이 지난 오늘에도 아직 실현되지 못하였다. 중요산업 국유화와 중소기업 민영화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주어진 진보정치의 과업이다.

셋째, 그는 "동척(일제 침략거점인 동양척식주식회사라는 뜻-옮긴이) 기타 일본 재벌 또는 군 등이 소유관리하였는데 그것을 몰수하야 농민에게 적정 분배하고 대농장은 국가가 경영하고 과학적 지도 하에 질과 양을 향상시킬 것이다"고 말했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그는 대농장 국영화와 민주적 토지개혁을 새로운 경제건설노선으로 제시한 것이다. 여운형이 제시한 대농장 국영화와 민주적 토지개혁은 66년이 지난 오늘에도 아직 실현되지 못하였다. 대농장 국영화와 민주적 토지개혁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주어진 진보정치의 과업이다.

빈부격차 없는 평등하고 협동적인 세상, 대외종속에서 탈피한 경제자립, 중요산업 국유화와 중소기업 민영화, 대농장 국영화와 민주적 토지개혁, 바로 이것이 최근 수정, 채택한 민주노동당 강령이 지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경제건설목표다. (2011년 6월 2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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