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18

새해 첫날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진실의 말팔매 <6>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1111일에 발행된 <로동신문>을 받아본 북측 인민들은, 1면에 전면 가득 노래 악보가 실린 것을 보고 놀라움을 느꼈을 것이다. <로동신문>은 해마다 11일에 발행되는 제1면에 언제나 '로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공동사설'을 실었는데, 올해는 관례와 예상을 뛰어넘어 노래 악보를 실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로동신문>에 발표되는 새해 공동사설은 다른 언론매체들에 발표되는 사설과 전혀 다른 것이다. 그 공동사설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책구상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영도방침, 그리고 한 해를 관통하는 국정운영방향이 정연하게 제시되어 있다. 당중앙위원회 기관지 <로동신문>에 발표되는 새해 공동사설은 당 총서기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초안과 제목을 직접 검토한 뒤에 발표된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로동신문>은 제1면에 새해 공동사설을 실어온 기존 관례에서 과감히 벗어나 노래 악보를 제1면에 싣고, 공동사설을 제2면에 실었다. <로동신문>에는 가끔 노래 악보가 실리지만, 이번처럼 공동사설이 실려야 할 자리에 실린 경우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렇게 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파격적인 조치로 생각된다. "나의 첫 사랑은 음악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음악을 뜨겁게 사랑하고 음악에 정통한 김정일 국방위원장만이 그러한 조치를 단행할 수 있다.
 
남측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피아노 음악의 거장 프레드릭 쇼팽이 작곡한 피아노곡을 몸소 연주한다고 한다. 음악가들 가운데서 절대음감을 지닌 사람은 5%가 되지 않는데, 세계음악사에 나오는 거장들이 그러한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선천적으로 절대음감을 지녔다고 한다. 절대음감이란 여러 악기들이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음이름을 파악하고, 각종 음악연주를 듣고 조이름을 파악할 뿐 아니라, 화음을 듣고 구성음을 모두 파악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자동차 경적음이나 코 푸는 소리 등 일상생활에서 들려오는 각종 소음을 듣고서도 음이름을 짚어낸다.
 
북측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있어서 음악과 혁명은 동의어이며, 그가 창시한 선군정치는 곧 음악정치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1970년대에 5대 혁명가극 창작을 직접 지도하였으며,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합창단, 관현악단, 협주단, 예술단, 가극단 공연만이 아니라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각급 단위 예술소조 공연을 자주 관람하고 음악가와 예술인들을 격려하고 이끌어주었다.
 
지도자가 음악을 사랑하므로, 음악연주 수준이 매우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테면, 20082월 세계 3대 교향악단으로 손꼽히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연주하였을 때, 당시 그 교향악단 상임지휘자였던 세계적인 지휘자 로린 마젤은 북측의 국립교향악단 앞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일부러 악보와 달리 빠른 속도로 지휘하면서 국립교향악단의 연주실력을 시험해보고 나서, "완벽하게 준비되었다(impeccably prepared)"는 찬사를 보냈다. 북측 국립교향악단 단원들은 차이코프스키 곡을 악보 없이도 연주하는 탄탄한 실력을 갖췄다고 한다. 20008월 국립교향악단이 서울에서 공연하였을 때, 그 공연에 출연한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씨는 "오케스트라와 성악가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고 호흡도 잘 맞아 리허설할 때 말이 필요 없었다. 100%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파격적인 조치에 따라 <로동신문> 1면에 실린 노래의 제목은 '승리의 길'이다. 3절로 된 노랫말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머나먼 혁명의 길에 흘린 피 붉은 기에 있고
승리의 천만리 우에 영광의 자욱이 있다
우리는 자기를 믿듯 승리를 굳게 믿고 산다
고난의 천리를 가면 행복의 만리가 온다
폭풍이 사납다 해도 이 땅에 다른 길은 없다
백두의 붉은 기 높이 끝까지 가야 할 이 길...
 
이 노래는 공동사설에 다 담지 못한, 혹은 공동사설에서 글로 표현하기 힘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감정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노래 제목이 '승리의 길'이니, 승리의 예감을 북측 인민들에게 전해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201111일에 발행된 <로동신문> 1면에 노래 '승리의 길' 악보가 실렸고, 2면에 공동사설이 실렸는데, 3면에 실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새해 첫 현지시찰 보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새해에 처음으로 시찰한 단위는 조선인민군 근위서울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이다. 그 부대는 인민군 기갑부대들 가운데서 최정예부대로 알려졌다. 첨단성능을 갖춘 최신형 전차 '폭풍호' 대오가 검은 연기 치솟는 기동훈련장에서 진격하는 훈련장면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작전통제실에서 바라보는 현장사진이 실렸다. 105땅크사단의 '폭풍호' 전차는 201010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인민군 열병행진에 등장하여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주목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105땅크사단을 반제군사노선의 전위대로 여긴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그 전차사단은 반제군사전선의 선봉에서 주한미국군을 격퇴할 전투단위라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중앙위원회 기관지 제1면에 노래 '승리의 길' 악보를 싣도록 파격적으로 조치하고, 반제군사노선 전위대의 기동훈련에서 자신의 새해 첫 현지시찰을 시작한 것은, 반제군사노선이 승리의 길에 들어섰음을 예감한다는 뜻이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111일 중국 베이징에 나타난 로벗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북미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꺼내놓았다. 그 제안은 게이츠의 개인의견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사항인 것이 분명하다. 게이츠 국방장관의 베이징 발언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의 "직접적인 위협(direct threat)"을 받고 있는 미국이 앞으로 "5년 안에(within 5 years)" 그 위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게이츠의 베이징 발언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북측의 군사적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상응적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점이다. 그들이 치를 수밖에 없는 '상응적 대가', 북측이 미국에게 60년 동안 지속적으로 요구해오는 주한미국군 철군이다. 이러한 정황을 살펴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앞으로 5년 안에 주한미국군 철군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북측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는 '승리의 길'이 가까운 미래에 열릴 것임을 예감하고 노래 '승리의 길' 악보를 새해 첫 날 <로동신문> 1면에 싣도록 조치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구상이 읽혀진다.
 
다른 나라에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새해맞이 정치사업이 북측에서 연례적으로 진행되는데, 새해에 인민들이 공동사설 내용을 숙지하기 위해 각급 단위들마다 집체학습을 진행할 뿐 아니라, 공동사설에 천명된 구상과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대규모 군중 결의대회를 각 도시들에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다른 나라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새해맞이 정치사업이 하나 더 있었다. 새해를 맞은 인민들이 노래 '승리의 길'을 함께 부른 것이다. 그들이 부른 노래에도 있듯이, "자기를 믿듯 승리를 굳게 믿으며" 그들은 새해 첫날 노래를 불렀다. (2011117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