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9

우리 영토에 출입허가 내주는 점령군 사령관

 [한호석의 개벽예감] (422)

자주시보 2020년 12월 07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지상작전사령관의 무단출입사건

2. 점령군 사령관의 출입허가

3. 미국이 조작해놓은 불법군사조직

4. 유엔안보리가 아닌 다른 통로 

5. 조선을 마지막 선택으로 이끌어가는 정세

 

 

1. 지상작전사령관의 무단출입사건

 

“우리는 지금까지 최대의 인내력을 발휘하여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중대조치들을 깨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

 

위의 인용문은 2019년 12월 3일 조선외무성 미국담당부상이 발표한 담화의 일부다. 그가 담화에서 말한 ‘크리스마스선물’은, 미국이 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전향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조선은 2019년 12월 25일에 대미압박공세를 가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조선의 대미압박공세는 곧 군사행동을 의미하므로, 미국군 수뇌부는 조선인민군이 2019년 12월 25일에 군사작전을 단행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했다. 미국의 신경은 곤두섰다. 

 

그래서 미국은 2019년 12월 25일 새벽 각종 정찰기를 한꺼번에 5대나 한반도 중부 상공에 출동시켜 전례 없는 대규모 정찰작전을 벌였다. 덩달아 한국군도 이지스구축함을 동해에 출동시켰고, 미사일조기경보레이더를 켜놓고 대북감시에 집중했으며, 항공통제기도 띄웠다. 트럼프 대통령도 침묵하지 않았다. 2019년 12월 24일 백악관 출입기자가 위의 인용문에 나온 ‘크리스마스선물’에 관해 질문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성공적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것은 만일 조선인민군이 미국을 위협하는 군사작전을 실행하면, 아주 강하게 대응하겠다는 엄포발언이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군이 전개한 대규모 정찰작전과 미국 대통령이 꺼내놓은 엄포발언은 그들이 상황을 얼마나 오판했는지를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소동에 불과했다. 만일 조선인민군이 미국을 위협하는 군사작전을 정말로 실행하려고 했다면, 작전날짜를 예고하지 않고, 작전준비징후도 노출하지 않고 불시에 실행했을 것인데, 상황을 오판한 미국은 강력대응이요 뭐요 하면서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선물’을 예고한 조선외무성 미국담당부상의 발언을 듣고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긴장하고 있었던 2019년 12월 5일 케네스 윌스백(Kenneth S. Wilsbach) 당시 주한미국군 부사령관은 남영신 당시 한국군 지상작전사령관과 함께 한국군 3사단 최전방부대가 주둔하는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시찰했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조국강토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비무장지대의 어느 한 구간을촬영한 사진이다. 나무와 풀이 자라난 우리 영토 위에 군사분계선 철책이 길게 이어진 모습이 보인다. 조국강토가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참을 수 없는 비극과 불행인데, 주한미국군이 조국강토를 갈라놓은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 관할하고 있으니 비극과 불행은 더 가증되었다. 유엔기를 든 주한미국군이 비무장지대남측 구역을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주한미국군은 주둔군이 아니라점령군이라는 실상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주한미국군 부사령관과 한국군 지상작전사령관이 함께 전선을 시찰한 직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2020년 1월 29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2019년 12월 당시 로벗 에이브럼스(Robert B. Abrams)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남영신 지상작전사령관이 비무장지대 출입허가를 받지 않고 드나들었다고 지적하면서, 비무장지대 출입규정을 위반했다는 통보를 한국군 합참본부에 보냈다고 한다. 한국군 군인 또는 남측 주민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 들어가거나 비무장지대를 통과하여 북측에 가려면 반드시 48시간 전에 주한미국군 사령부에 출입허가를 신청하고, 허가를 받게 되어 있다. 

 

남영신 지상작전사령관은 자기 혼자 비무장지대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주한미국군 부사령관과 함께 들어갔으므로 당연히 주한미국군 사령관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주한미국군 사령부의 판단은 달랐다. 주한미국군 사령부의 판단에 따르면, 한국군 지상작전사령관과 주한미국군 부사령관이 함께 비무장지대에 들어가는 경우, 주한미국군 부사령관은 출입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지만, 한국군 지상작전사령관은 출입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2월 3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시 에이브럼스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김종문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에게 한국군 지상작전사령관의 비무장지대 무단출입사건을 조사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한국군 지상작전사령관의 전선시찰에 조사권을 발동한 것이다. 주한미국군 사령관이 조사권을 발동한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한국군 수뇌부가 자기 허가를 받지 않고 비무장지대를 무단으로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한국군 합참본부에 보내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한국군 지상작전사령관보다 상위에 있는 한국군 합참의장이 비무장지대 감시초소를 방문하려고 해도, 48시간 전에 주한미국군 사령관에게 출입허가를 신청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을 살펴보면,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한국군 합참의장보다 상위에 있는 최고위급 사령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사건을 살펴보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은 유엔기를 든 주한미국군이 관할하는 점령지역이며, 따라서 한국 정부의 행정권은 비무장지대에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엔기를 든 주한미국군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주둔군 사령관이 아니라 점령군 사령관이며, 주한미국군은 주둔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라는 실상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군 합참의장이 주한미국군 사령관의 출입허가를 받아야 비무장지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한국군은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쓴 점령군 사령관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실상이 드러난다. 점령군 사령관의 통제를 받는 군대를 허수아비군대라고 부른다. 

 

 

2. 점령군 사령관의 출입허가

 

2019년 10월 23일 유엔사령부는 비무장지대 출입문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을 밝혔다. 유엔사령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10월까지 약 2,200건에 이르는 비무장지대 출입허가신청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서 93% 이상을 허가해주었다고 한다. 미국이 유엔군 부사령관 자리에 앉혀놓은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중장 스투어트 메이어(Stuart C. Mayer)는 2020년 11월 24일 발표문에서 유엔사령부가 2020년 1월부터 11월까지 약 3,800건에 이르는 비무장지대 출입허가신청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서 98%를 허가해주었다고 밝혔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비무장지대를 드나들기 위해 유엔사령부에 출입허가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을까? 그 의문을 풀려면, 많은 관광객들이 판문점 남측 구역에 가보려고 주한미국군 사령관의 출입허가를 받아야  했으며, 지금은 폭파되어 없어졌지만 개성에 있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 자주 드나들던 남측 인원들도 주한미국군 사령관의 출입허가를 받아야 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사실을 아는 순간, 의문이 풀리는 게 아니라, 자기 땅인데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고, 점령군 사령관의 출입허가를 받아야 하는 굴욕적인 현실에 분노하게 된다. 

 

그렇다면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쓴 점령군 사령관은 비무장지대 출입허가신청 가운데서 어떤 것을 끝내 허가하지 않았을까? 불허사례는 다음과 같다.

 

1) 2018년 8월 23일 통일부는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를 개성을 거쳐 신의주까지 운행하면서 북측 철도에 대한 남북공동조사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점령군 사령관은 열차의 비무장지대 통과를 허가하지 않았다. 

 

2) 2019년 6월 12일부터 13일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진행된 한독통일자문위원회에 참석한 도이췰란드 신련방주 특임관 겸 경제-에너지부 차관을 대표로 하는 도이췰란드 정부대표단이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 감시초소를 방문하려고 했을 때, 정경두 당시 국방장관은 주한미국군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비무장지대 출입을 허가해달라고 특별히 요청했지만,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도이췰란드 정부대표단의 비무장지대 출입을 허가하지 않았다. 

 

3) 2019년 10월 4일부터 10일까지 서울에서 진행된 제100차 전국체전을 위해 서울시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성화를 채취해 서울까지 봉송하려고 출입허가를 신청했지만,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허가하지 않았다.  

 

4) 2019년 8월 9일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은 경의선 도라산역에서 진행된 ‘파주 DMZ 평화의 길 개방행사’에 참석하는 길에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대성동 마을을 방문하려고 출입허가를 신청했는데,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통일부 장관에게만 허가를 내주고 그와 동행하는 취재진에게는 허가를 내주지 않는 바람에 통일부 장관은 대성동 마을에 가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5) 이재강 경기도 평화 부지사는 지난 2016년에 폐쇄된 개성공단을 정상화하고 남북교류를 재개하기 위해 도라전망대에 사무실을 설치하려고 했다. (도라전망대는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도라산리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 있고, 한국군 1사단이 그 지역에 주둔한다.) 경기도 평화 부지사는 2020년 10월 중순부터 한국군 1사단과 도라전망대에 사무실을 설치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해왔고, 마침내 합의를 봐서 2020년 11월 9일 도라전망대 사무실로 집기를 반입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국군 1사단이 유엔사령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집기반입을 중지시켰다. 하는 수 없이 경기도 평화 부지사와 직원들은 비무장지대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임진각에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위에 열거한 불허사례들이 말해주는 것은, 유엔기를 들고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한 주한미국군이 그 지역에서 행사하는 배타적인 관할권이 우리 영토에 대한 주권을 난폭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도가 우리 섬인 것처럼, 비무장지대도 우리 땅이다. 독도에 대한 주권은 한국 정부가 행사하고 있지만,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 대한 주권은 미국이 틀어쥐고 있다. 주한미국군이 주둔하는 군사기지들이 미국의 관할지로 넘어간 것도 치욕적인데, 주한미국군이 주둔하지도 않는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까지 미국의 관할지로 넘어갔으니 더 치욕적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이재강 경기도 평화 부지사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통일대교 남측 입구에서 개성공단 정상화를 요구하며 1인시위를 하는 장면이다. 그는 개성공단을 정상화하고 남북교류를 재개하기 위해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도라전망대에 사무실을 설치하려고 했으나, 유엔사령부가 허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그와 직원들은 비무장지대에서 멀리 남쪽으로 떨어진 임진각에 천막을 치고 그안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개성공단은 정상화될 수 없고, 남북교류도 재개될 수 없다.  

 

미국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한 것은, 일본이 독도를 점령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치욕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 관할하는 것은 조국강토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분단체제를 영구히 유지하려는 미국의 분할점령정책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와 다르게, 독도문제는 조국강토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분단체제와 무관하다.   

 

이처럼 미국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훼손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일본의 독도강탈책동에 대해서는 분노하지만 미국의 비무장지대점령에 대해서는 그저 무덤덤하다. 사람들은 미국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하고 배타적인 관할권을 행사하는 치욕스런 현실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그것을 당연한 일처럼 여기고 있다. ‘한미동맹’이라는 지독한 최면상태에 빠져 자주의식이 마비되어버린 것이 더 참을 수 없는 비극과 불행이다. 사람들이 일본의 독도강탈책동에 분노하는 것처럼 미국의 비무장지대점령에 분노할 때, 66년 동안 지속되어오는 ‘한미동맹’의 최면상태에서 깨어나 자주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쓴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된 정전협정에 규정된 자기의 고유한 권한을 행사한다고 하면서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 대한 배타적 관할권을 행사해왔다. 정전협정 제1조 8항에는 이렇게 명기되었다. “비무장지대 내의 어떠한 군인이나 사민이나 그가 들어가려고 요구하는 지역의 사령관의 특정한 허가 없이는 어느 일방의 군사통제 하에 있는 지역에도 들어감을 허가하지 않는다.” 

 

유엔기를 든 주한미국군은 바로 이 정전협정 조항을 틀어쥐고 사상 최악의 사태를 일으켰다. 유엔기를 든 주한미국군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하고, 배타적 관할권을 행사하는 극단적인 모순은 우리 민족의 자주적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다. 우리 민족의 삶을 고통과 불행으로 몰아넣은 정전체제 한복판에 바로 그 극단적 모순이 놓여있다.  

 

현실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 대한 주권을 주한미국군 사령관에게서 되찾아올 생각은 하지 않고,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고 싶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그는 2019년 9월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19기 출범식 연설에서 “국제평화지대로 변모하는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을 국제경제특구로 만들어 본격적인 평화경제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드는 일은 북한의 행동에 화답하는 행동으로 신뢰를 쌓는 일이며 비무장지대 내의 활동에 국제사회가 참여함으로써 남북 상호 간의 안전을 보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잠꼬대 같은 소리는 2020년에도 계속 들려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월 신년사와 신년기자회견에서 제시한 남북교류협력사업 가운데는 남북철도-도로를 연결하는 사업, 남북접경지역에서 상호협력하는 사업, 비무장지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사업이 있다. 

 

유엔기를 든 주한미국군 사령부가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하고 배타적 관할권을 행사하는 극단적 모순을 그대로 두고, 남북철도-도로를 연결하고, 남북접경지역에서 상호협력을 추진하고 싶다고 했으니, 그런 잠꼬대 같은 소리가 또 어디에 있을까! 미국의 점령지역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 싶다는 말은 너무도 창피한 소리여서 더 이상 거론하기도 힘들다. 

 

미국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한 극단적인 모순을 애써 외면하면서,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고 싶다는 해괴한 발상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 표현만 약간 바뀐 채 계속 제기되어왔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함께 서명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는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되었다. 또한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당시 국방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함께 서명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는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적 대책을 강구하기로 하였다”고 명시되었다.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남측 정부가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자는 비현실적인 제안을 꺼내놓았지만, 북측 정부는 모처럼 어렵사리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를 원만히 이끌어내려는 생각에서 그런 비현실적인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문재인 정부는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고,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진전시키면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정치선전을 귀가 따가울 정도로 계속하지만, 미국이 유엔기를 든 주한미국군 사령부를 앞세워 비무장지대를 점령하고 있는 한, 그런 선전은 외국군대의 영토점령으로 주권을 훼손당한 현실을 은폐하는 허위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그런 허위선전을 늘어놓지 말아야 하며,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쓴 주한미국군 사령관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의 관할권을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모순을 세상에 폭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혹시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의 주권문제를 제기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친미예속정부는 언제나 백악관의 비위나 맞춰주려고 애쓰기 때문에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되찾아 영토주권을 확립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다. 그런 친미예속정부가 남북정치협상을 100년 동안 계속한다고 해도, 성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3. 미국이 조작해놓은 불법군사조직

 

그러면 어떻게 해야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미국이 점령한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되찾아 주권을 확립할 수 있을까? 그 방도를 모색하려면, 우선 유엔군과 유엔사령부가 출현하게 된 역사적 사실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1950년 7월 7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는 상임리사국인 소련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진행된 회의에서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성원국들의 모든 군대를 미국원동군 사령관이 지휘하는 연합사령부(Unified Command)에 배속시키고, 연합사령부가 유엔기를 사용하게 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것이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안 제84호다. 

 

당시 소련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인 대만이 ‘중화민국’이라는 국가를 참칭하면서 중국의 유엔대표권을 행사하는 부조리에 항의하여 1950년 1월 13일부터 유엔안보리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소련이 불참하는 기회를 틈탄 미국은 막후공작을 벌여 소련에게 불리한 유엔안보리 결의안들을 계속 조작해냈다. 유엔헌장 제27조에는 유엔안보리 결정이 5개 상임리사국 전체의 찬성과 7개 이상 비상임리사국의 찬성으로 채택된다고 규정되었으므로, 상임리사국인 소련이 불참한 가운데 미국의 막후공작에 의해 채택된 모든 결의안은 원천무효다. 이런 법리적 해석에 따르면,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성원국들의 모든 군대를 미국원동군 사령관이 지휘하는 연합사령부에 배속시키고, 그 연합사령부가 유엔기를 사용하게 한다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안 제84호는 원천무효다. 

 

당시 유엔을 장악한 미국은 전횡을 부리며 국제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1950년 7월 25일 소련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진행된 유엔안보리 회의에서 미국은 6.25전쟁 지휘부인 연합사령부가 작성한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그 보고서에서 미국은 연합사령부라는 명칭을 제멋대로 유엔사령부라고 바꿔놓았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보면, 유엔사령부는 유엔안보리 결정에 의해 성립된 합법군사조직이 아니라, 미국의 자의적인 명칭변경으로 조작된 불법군사조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엔사령부가 미국이 조작해놓은 불법군사조직이므로, 그 휘하에 배속된 유엔군도 유엔헌장을 짓밟고 유엔의 이름을 더럽힌 군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유엔군과 유엔평화유지군을 비교하면 그런 사실이 자명해진다. 

 

1) 유엔평화유지군은 유엔평화작전부(UN Department of Peace Operations)와 유엔작전지원부(UN Department of Operational Support)의 통제 밑에서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전선에 파견되어 확전을 막고 평화적 해결을 위해 활동한다. 그런데 유엔군은 한반도전선에서 확전을 막고 평화적 해결을 위해 활동하기는커녕 정반대로 남북내전에 불법적으로 개입하여 내전을 국제전으로 확전시켰고, 북위 38도선을 넘어 조선을 침공했으며, 야만적인 무차별폭격으로 38도선 이북의 도시들과 산업시설 전반을 파괴하고 민간인을 대량살상했으며, 조선과 중국 동북지방에 핵폭탄을 투하하려고 광분했다. 이것은 국제형사재판소의 유죄판결조건을 충족시키는 침략범죄와 전쟁범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노무현 정부는 2007년 11월 11일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을 제정했고, 박근혜 정부는 2013년 7월 26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제정했고, 문재인 정부는 2020년 3월 24일 ‘유엔참전용사의 명예선양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친미예속정권의 경거망동이 아닌가!    

 

2) 자국군대를 유엔군의 일원으로 6.25전쟁에 파병했던 친미국가들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연락장교만 남겨두고 차례로 철군했고, 1976년 7월 26일 타이군이 마지막으로 철수한 이후 미국군만 남았다. 그러므로 1976년 이후 유엔군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유엔사령부는 군대 없는 명목사령부로 전락했다. 

 

3) 유엔평화유지군 지휘권은 유엔 부사무총장이 행사한다. 그런데 유엔군 지휘권은 6.25전쟁 중에는 미국원동군 총사령관이 행사했었고,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1976년까지는 주한미국군 사령관이 행사했다. 유엔군의 마지막 일원이었던 타이군이 철수한 1976년 이후 유엔군은 없어지고 미국군만 남았는데도,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여전히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눌러쓰고 유엔군 사령관으로 행세하는 촌극을 벌이고 있다.  

 

4) 유엔평화유지군을 유지하는 재정은 유엔안보리 상임리사국 5개국과 몇몇 다른 유엔성원국들이 분담한다. 유엔군은 1976년 이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유엔사령부를 유지하는 재정만 필요한데, 유엔사령부를 유지하는 재정은 주한미국군 유지비에 포함된다. 이런 사정은 유엔사령부가 유엔과 무관하고,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6.25전쟁이 치렬하게 벌어지고 있었던 1950년 7월 14일 일본도꾜에 있는 미국원동군 총사령부 청사 옥상에서 진행된 유엔기 전달식 장면이다. 당시 유엔사무총장 트리그브 리는 6.25전쟁에 파병한 유엔성원국 군대들이 유엔기를 사용하게 허락한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에 따라 콜린스 당시 미국 육군참모총장에게 유엔기를 위탁하여 미국원동군 총사령부에 전달하게 하였다. 콜린스는 트리그브 리로부터 건네받은 유엔기를 도꾜로 가지고 가서 미국원동군 총사령관 맥아더에게 전달했다. 위의 사진은 트리그브 리의 특사인 앨프레드 카친 대령이 배석한 가운데 진행된 유엔기 전달식에서 콜린스가 맥아더에게 유엔기를 넘겨주는 장면이다. 유엔기를 건네받은 유엔군은 남북내전에 불법적으로 개입해 내전을 국제전으로 확전시켰으며, 북위 38도선을 넘어 조선을 침공했으며, 38도선이북지역의 도시들과 산업시설들을 야만적인 무차별폭격으로 파괴하고 민간인들을 대량살상했으며, 조선과 중국 동북지방에 핵공격을 가하려고 광분했다. 유엔군은 그런 전쟁범죄를 저지르면서 유엔헌장을 짓밟고, 유엔의 이름을 더럽힌 침략군대였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은 유엔사령부가 미국의 전횡에 의해 조작된 불법군사조직이며, 유엔군은 미국군이 자기의 침략적 정체를 유엔 깃발로 은폐하는 데 이용당했음을 보여준다. 1950년 당시 유엔안보리는 미국의 거수기로 전락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유엔사령부를 조작해놓은 미국의 전횡을 뻔히 보면서도 그냥 넘어갔으며, 침략군대에 유엔기를 들려주는 어처구니없는 실책을 저질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국제정세가 바뀌었다. 유엔에서 미국의 전횡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새로운 시대가 왔다. 유엔성원국들은 유엔 역사에서 최악의 실책으로 기록된 미국의 유엔사령부 조작사건을 방치한 유엔의 직무유기에 관심을 돌렸다. 그리하여 1975년 11월 18일에 진행된 유엔총회 제30차 회의에서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결의안이 동시에 채택되었다. 미국이 발의한 결의안 제3390A호는 정전체제를 관리할 수 있는 다른 장치가 마련되면 1976년 1월 1일까지 유엔사령부를 해체할 수 있다는 조건부 해체안이었고, 다른 유엔성원국들이 발의한 결의안 제3390B호는 유엔사령부를 무조건, 즉시 해체해야 한다는 무조건 해체안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다른 장치를 만들지 않았고, 다른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구실을 내세워 유엔사령부 해체결의안을 이행하지 않았다. 

 

주목되는 것은, 1975년 유엔총회 제30차 회의에서 채택된 유엔사령부 해체결의안은 강제력이 없는 권고안이라는 사실이다.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려면 강제력이 없는 유엔총회 결의안이 아니라 강제력이 있는 유엔안보리 결의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엔안보리 거부권을 행사하는 5개 상임리사국들 가운데 유엔사령부 해체를 지지하는 나라는 로씨야와 중국이고, 미국, 영국, 프랑스는 유엔사령부 해체를 반대한다. 그러므로 로씨야와 중국이 유엔사령부 해체안을 유엔안보리에 상정해도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동조하면 그 해체안은 채택되지 못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유엔안보리에서 유엔사령부 해체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유엔안보리가 아닌 다른 통로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려면 유엔안보리가 아닌 다른 통로를 이용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통로는 미국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한 국제법적 근거를 말소시키는 것이다. 미국이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을 점령한 국제법적 근거는 정전협정이다. 따라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해버리면 유엔사령부는 자동적으로 해체될 것이고, 점령군 사령관은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벗고 유엔기를 유엔사무국에 반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일찌감치 파악한 조선은 지난 60여 년 동안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을 기울였다. 조선의 끈질긴 노력이 집중된 결절점은 조미직접협상이다. 그리고 조미직접협상의 최고단계는 조미정상회담이다. 

 

그러나 조선과 협상하기는커녕 조선과 연락하는 것조차 거부한 미국은 다자협상의 틀을 차려놓고 그 안에서 조선과 형식적인 협상을 벌였다. 4자회담과 6자회담 같은 다자협상은 조선과 직접적으로 협상하기 싫은 미국의 술책에 불과했으므로, 그런 다자협상에서 의미 있는 합의가 이루어지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조선은 녕변핵시설 일부를 불능화하여 6자회담 합의를 이행하는 성의를 보였으나, 미국은 6자회담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었으며, 조선에 금융제재를 가하여 6자회담을 파탄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런 험악한 사태에 대응하여 조선은 2009년 4월 14일 6자회담에 불참하고, 녕변핵시설을 원상복구하겠다고 선언했고, 5월 25일에는 제2차 핵시험을 단행했으며, 6월 13일에는 우라늄농축을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2009년부터 조선이 핵무력완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바로 그 2009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추대된 해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워놓은 핵무력완성이라는 목표가 8년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의해 달성되리라는 것은 그 당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핵무력을 완성하기 위한 8년의 투쟁에서 조선은 미국의 협박과 공갈과 방해를 물리치면서 난관을 돌파해야 했고, 핵무력을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과학기술적 난제들을 자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2017년 11월 29일 조선은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실물로 핵무력을 완성하였음을 입증했다. 그렇게 되자 미국은 어쩔 수 없이 조미정상회담에 끌려나왔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은 그런 배경에서 성사되었다.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었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회담전략은 단계적 해결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전략문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하지 않고, 미국의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는 전술문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해결의 돌파구를 열어놓았다. 미국이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면, 그 다음 단계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제기한, 미국의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즉석에서 받아들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합의였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경기도 평택에 있는 미국군기지 캠프 험프리즈 안에 건설된주한미국군 사령부 청사를 촬영한 사진이다. 청사 앞에 성조기, 태극기, 유엔기가나란히 게양되어 있다. 유엔사령부는 미국이 유엔을 장악하고 전횡을 부리던1950년에 막후공작으로 유엔안보리를 움직여 조작해놓은 불법군사조직이다. 유엔군의 마지막 구성군이었던 타이군이 철수한 1976년 이후 유엔군은 없어지고 미국군만 남았는데도, 주한미국군 사령관은 여전히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눌러쓰고유엔군 사령관으로 행세하는 촌극을 벌이고 있다.  

 

 

5. 조선을 마지막 선택으로 이끌어가는 정세

 

그러나 미국군 수뇌부는 미국의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지 않으려고 꼼수를 부렸다. 이를테면, 대조선전쟁연습에 사단급 부대들을 동원해오던 조치를 변경하여, 사단급 부대를 중대급 부대들로 잘게 쪼개어 전쟁연습을 분산적으로 진행하는가 하면,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에서 진행해오던 대조선전쟁연습을 미국 본토에서 진행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트럼프 행정부는 조미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기간에도 조선에 대한 제재강도를 더욱 높였다. 2020년 10월 21일 <미국의소리>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단독으로 조선에 가한 제재대상은 개별인사 177명과 기관 313개라고 한다. 미국이 제재대상으로 지목한 177명 개별인사들 가운데는 최룡해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위원장, 리병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있고, 제재대상으로 지목한 313개 기관들 가운데는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조선국방과학원, 조선무역은행이 있다. 이런 사정은 미국의 경제제재가 조선의 경제를 제재하는 수준을 넘어서 조선의 핵심지도부를 겨눈 노골적인 적대행위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미국군 수뇌부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미국 재무부가 조선의 핵심지도부를 겨눈 노골적인 적대행위를 자행하는 상황에서 조미정상회담은 결국 유산되고 말았다. 

 

2021년 1월 20일에 출범할 미국의 새 행정부도 대조선적대정책에 계속 집착할 것으로 예견된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는 대통령 재임 중에 대조선적대정책을 계속하면서도 조미정상회담에 관심을 두었지만, 조 바이든(Joseph R. Biden Jr.)은 대통령 재임 중에 조미정상회담을 외면하면서 대조선적대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견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조선적대정책에 집착하면서 조미정상회담을 유산시킨 것과 더불어, 동북아시아정세도 미국이 유엔사령부에 강하게 매달리는 방향으로 전변되었다. 국력을 키워온 중국이 강대국으로 일어서자, 그에 놀란 미국은 중국을 억제하는 반중군사전선을 구축하려고 혈안이 되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유엔사령부를 강화하려는 행동을 취하게 된 것이다. 2019년 9월 17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2014년부터 유엔사령부 재활성화프로그램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유엔사령부 참모진을 다국적 군사지휘관들로 확대, 개편하는 한편, 유엔군 파병국들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2019년 9월 17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국군 사령부는 2019년 8월부터 유엔군 부사령관과 한국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을 대표로 하고, 주한미국군 사령부 실무자들, 한국 국방부 실무자들, 유엔사령부 실무자들로 구성된 고위급 협의체를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은 오랜 기간 조선이 인내력을 발휘하면서 진행해온 대미협상과 대남협상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정세는 조선을 마지막 선택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조선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려는 것은 조국통일대전이다.

2020/12/02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거대한 시한폭탄

 [한호석의 개벽예감](421)

자주시보 2020년 11월 30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다량생산 시작한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

2.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은 실패작이다

3. 갱도관통폭탄으로 갱도진지를 파괴할 수 있을까?

4. 무인정찰기와 전파교란공격

5. 요새 너머에 군종합동타격력

 

 

1. 다량생산 시작한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

 

2020년 9월 4일 남측 국방과학연구소는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KTSSM)이 100km 이상 떨어진 표적에 명중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을 자기 웹싸이트에 올려놓았다. 이 사진은 2017년 7월 29일에 이미 공개된 적이 있다. 북측 국방과학원이 2017년 7월 4일에 진행한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보고 자극을 받은 남측 국방과학연구소는 그로부터 며칠 뒤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고, 명중장면을 찍은 사진을 2017년 7월 29일 세상에 공개했던 것이다. 

 

위성항법장치(GPS)로 유도되는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은 타격오차범위가 2~3m로 초정밀타격을 할 수 있고, 사거리는 120km이며, 탄체지름은 600mm이고, 500kg 열압력탄두가 장착되어 1.5m 두께의 콘크리트를 뚫을 수 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남측 국방과학연구소가 전술미사일 명중장면을 찍은 사진을 외부에 공개한 것은, 자기들이 북의 갱도진지를 파괴하는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린 행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즈음 북측 국방과학원은 미사일시험발사를 하지 않는데, 남측 국방과학연구소는 왜 그 사진을 다시 공개한 것일까? 2020년 11월 25일 서욱 국방장관이 주재한 방위사업청 화상회의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2020년 11월 2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그날 방위사업청 화상회의에서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을 다량생산하기로 의결했다고 한다. 전술미사일을 다량생산하는 문제가 국방부 내부에서 논의되고 있었던 때에 맞춰 남측 국방과학연구소는 3년 전에 찍은 사진을 다시 공개했던 것이다. 2020년 11월 25일 방위사업청 화상회의에서 의결된 사항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까지 3,200억 원을 투입하여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 200여 발을 생산하게 되는데, 2023년부터 실전배치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고 한다.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을 다량생산하는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에서 한국군 연평부대가 피격당하는 장면을 실시간 동영상으로 지켜보며 낙담한 당시 대통령 이명박은 조선인민군 갱도진지를 파괴할 미사일을 2~3년 안에 개발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지금은 횡령죄와 뇌물죄로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서울동부구치소에 갇혀있는 그는 미사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군사문외한이었으므로, 전술미사일을 2~3년 안에 개발하라는 ‘무식한 특명’을 내렸던 것이다. 

 

국방과학연구소와 한화그룹이 전술미사일을 개발하기까지 근 10년이 걸렸다. 2020년 10월 16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방과학연구소와 한화그룹이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 개발을 완료한 때는 2020년 1월이라고 한다. 그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10년이 걸린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에 장착되는 군사용 위성항법장치를 미국에서 수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2015년 5월 미국 국무부는 미국군이 사용하는 군사용 위성항법장치 300개를 한국에 수출하는 사업을 승인했고, 2016년 1월 수입계약을 체결했다. 

 

2) 2018년 5월 29일 충청남도 대전에 있는 한화대전사업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 시제품을 제작하고 있었던 그 사업장에서 로켓추진용기에 고체연료를 주입하던 근로자들이 고체연료가 잘 주입되지 않자 주입설비밸브에 나무막대기를 대고 고무망치로 내려쳤는데, 그 순간 고체연료가 폭발했다. 로켓추진제로 사용되는 고체연료는 폭발력이 엄청나게 강한 물질이므로, 잘못 다루면 폭발한다. 근로자 5명이 작업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폭발참사로 생산이 중단되자, 2020년 2월 감사원은 전술미사일개발사업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고, 그래서 생산이 더 늦어졌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남측 국방과학연구소가 2017년 7월 29일에 진행한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 시험발사 중에 미사일이 100km 이상 떨어진 표적에 명중하는 장면이다. 2020년 9월 4일 남측 국방과학연구소는 이 명중장면을 보여주는 사진을자기 웹싸이트에 또 다시 올려놓았다. 2020년 11월 25일 서욱 국방장관이 주재한방위사업청 화상회의에서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을 다량생산하기로 의결했다.이 미사일은 200여 발이 생산되는데, 2023년에 실전배치될 것이다.  


  

2.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은 실패작이다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개발되었고, 다량생산에 들어갔지만, 그 미사일은 실패작이다. 2023년에 실전배치될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과 조선인민군이 실전배치한 조종방사포를 비교하면,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이 왜 실패작인지 알 수 있다. 한국형 전술미사일과 조선인민군 조종방사포는 탄체지름이 600mm로 같고,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것도 같고, 타격오차범위를 최소화한 초정밀타격능력도 서로 같다.  

 

1) 한국군이 보유한 600mm 4관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은 지상에 고정된 발사대에 탑재되지만,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600mm 4관 조종방사포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4축8륜 포차에 탑재된다. 고정발사대에서 전술미사일을 쏘면 사격원점이 교전상대에게 노출되어 반타격을 받지만, 4축8륜 포차에서 조종방사포를 쏘고 재빨리 이동하면 사격원점이 교전상대에게 노출되지 않는다. 

 

2) 남측 방위사업청은 조선인민군 갱도진지를 파괴하기 위해 600mm 4관 전술미사일을 개발했는데, 그 미사일은 1.5m 두께의 콘크리트를 뚫는 관통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수준의 관통력으로는 조선인민군 갱도진지를 파괴하지 못한다. 다음과 같은 정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6년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Nautilus Institute)에서 펴낸 ‘조선편람: 북조선의 강화된 포진지(DPRK Briefing Book: HARTS in North Korea)'라는 제목의 논문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 서술되었다.

 

- 조선인민군 갱도진지의 강철문은 앞면이 최소 10mm 두께의 강철판으로 되어 있고, 뒷면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 갱도진지 강철문 안쪽에는 방사능과 폭탄파편을 막아주는 방호장막이 설치되었다.  

- 갱도진지는 5cm 두께로 다져놓은 토사층 아래에 15~20cm 크기의 화강석을 다져넣은 30~60cm 두께의 화강석층이 있고, 그 아래에 30~60cm 두께의 방수토사층으로 구축된 방호벽으로 둘러싸였다. 

 

위의 정보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갱도진지 방호벽은 1.45m 정도의 두께이므로, 1.5m 두께의 콘크리트를 관통하는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 직격탄을 맞으면 파괴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의 논문이 발표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6년이다. 40년 전에 나온 철지난 정보를 가지고 오늘 조선인민군 갱도진지의 견고성을 평가하는 것은 오류다. 

 

2013년 10월 25일 미국의 반사회주의언론매체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연평도 포격전에서 군공을 세운 무도방어대 갱도진지를 2년 동안 보강, 개조하여 요새화했다고 한다. 또한 그 보도에 따르면, 2013년 9월 초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보강, 개조된 무도방어대 갱도진지를 본보기로 하여 전방지대의 모든 군사시설을 2014년까지 보강, 개조하고 요새화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보면, 조선인민군 갱도진지가 갱도관통폭탄으로 파괴할 수 없는 금성철벽으로 요새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한국군이 보유한 600mm 4관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의 사거리는 120km인데,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600mm 4관 조준방사포의 사거리는 400km다.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의 사거리는 너무 짧다. 사거리가 짧으면 피격위험이 그만큼 커진다. 

 

4) 사거리가 120km인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을 쏘면 포물선에 가까운 비행궤적을 그리면서 성층권 최상층 50km 고도까지 상승했다가 지상타격목표를 향해 돌진락하비행을 한다. 그런데 비행고도가 50km로 높아지면, 조선인민군 반항공미사일의 요격을 받게 된다. 그에 비해,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600mm 조종방사포는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 비행고도보다 훨씬 낮은 25~35km 고도로 비행한다. 2020년 3월 2일 조선인민군이 동계훈련 중에 발사한 600mm 조종방사포는 35km의 저고도로 240km를 비행했다.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600mm 조종방사포는 저고도비행만 하는 게 아니라, 타격대상을 향해 날아가다가 돌발적인 변칙비행도 한다. 이처럼 저고도변칙비행을 하는 조종방사포탄은 그 어떤 반항공미사일도 요격하지 못한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조선인민군 해안포병들이 130mm 해안포를 갱도진지에서밖으로 끌어내 사격훈련을 하는 장면이다. 이 해안포를 쏘면 27km 밖에 있는 적함을 타격할 수 있다. 그보다 더 먼 거리에 있는 적함은 수평선 너머에 있어서 육안으로 관측하지 못한다. 한국군은 미국에서 수입한 갱도관통폭탄을 전투기에서 발사하여 조선인민군 장거리포병대 갱도진지를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1.5m 두께의 관통력을 가진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로는 2014년 보강개조작업을 거쳐 금성철벽으로 요새화된 조선인민군 갱도진지를 파괴하지 못한다.  

 

 

3. 갱도관통폭탄으로 갱도진지를 파괴할 수 있을까?

 

2016년 11월 28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은 백령도와 연평도에서 공정통제사훈련을 각각 두 차례씩 진행했다고 한다. 공정통제사는 적지에 침투하여 파악한 기상정보를 아군 공군기지에 알려주고, 아군 전투기의 정밀폭격을 유도하는 전문병이다. 한국군이 백령도와 연평도에서 진행한 공정통제사훈련은 황해남도에 공정통제사를 침투시킨 것으로 가정하고, 전투기 정밀폭격을 유도하는 훈련이었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 당시 초계비행을 하던 남측 공군 F-15K 전투기들이 서해 5도 남쪽 상공에 긴급히 출동했다. 그런데 2015년 10월 12일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 전투기들에는 조선인민군 장거리포병,대 갱도진지를 타격할 공대지미사일이 탑재되지 않았고, 공중전에서 사용할 공대공미사일만 탑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해 5도 상공에 출동한 남측 공군 F-15K 전투기들이 공대지순항미사일 슬램이알(SLAM-ER)을 발사하면, 조선인민군 갱도진지를 정밀타격으로 파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슬램이알의 사거리는 270km이고, 타격오차범위는 3m다. 하지만 남측 공군 F-15K 전투기가 공대지순항미사일 슬램이알을 먼 거리에서 발사하여 조선인민군 갱도진지를 파괴한다는 것은 단순논리에 불과하다. 돌발요인들이 복잡하게 발생하는 실전상황에서는 그런 단순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내막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 미국산 슬램이알은 1발에 300만 달러(약 33억 원)나 하는 아주 비싼 미사일이기 때문에 평소에 한국군 전투기는 그 미사일을 탑재하고 비행훈련을 하지 못한다. 슬램이알을 전투기에 탑재하고 비행훈련을 자주 하면, 미사일 작전수명이 단축된다. 더욱이 남측 공군은 슬램이알의 값이 너무 비싸 47발밖에 수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슬램이알을 쏘는 실탄사격훈련을 1년에 한 차례밖에 하지 못한다. 그래서 슬램이알은 항온항습장치가 가동되는 탄약고에 고이 보관되어 있다. 

 

2) 국지무력충돌이 발생하는 경우, 남측 공군이 슬램이알을 탄약고에서 꺼내 전투기에 탑재하면 즉각 이륙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 전투기에 슬램이알을 탑재하고 이륙시키려면 최소 2시간이 걸린다. 왜냐하면 한국군 합참의장은 주한미국군사령관으로부터 슬램이알을 탑재한 전투기를 출동시키는 허가를 받아야 하고, 전투기에 타격대상좌표를 입력해야 하고,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슬램이알을 사용하는 타격임무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서해 5도 수역에서 국지무력충돌이 2시간 이상 치렬하게 계속되면, 국지무력충돌은 전면전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측 공군 전투기들이 슬램이알을 탑재하고 출격을 서두르는 사이에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들은 400mm 방사포, 500mm 방사포, 600mm 방사포, 610mm 방사포를 총동원하여 한국군 공군기지와 레이더기지를 비롯한 전략거점들을 순식간에 파괴할 것이다. 

 

3) 슬램이알은 오발사고를 일으키는 치명적 결함을 가졌다. 2011년 11월 29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2011년 6월 15일 남측 공군 F-15K 전투기가 서해 상공에서 실탄사격훈련을 하면서 슬램이알 1발을 쏘았는데, 비행도중에 미사일 엔진이 오작동을 일으켜 바다에 떨어지는 바람에 잔해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2013년 3월 15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남측 공군은 3월 4일 슬램이알 사용을 잠시 중지해달라는 미국 해군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얼마 전 뛰르끼예군이 슬램이알을 시험발사하는 중에 미사일 엔진이 오작동을 일으켜 추락했기 때문에 사고원인을 규명할 때까지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통고였다. 그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이 보유한 슬램이알 40여 발 중에서 16발에 엔진결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4)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 통신위성과 항법위성을 교란하는 능력을 가졌고, 교전상대가 식별하지 못하고 그대로 수신하는 기만전파를 발신하는 기술도 가졌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그들이 교란전파와 기만전파를 동시다발로 발사하는 입체적인 전파교란전을 벌이면, 위성항법장치로 유도되는 공대지순항미사일 슬램이알, 한국형 전술지대지미사일, 합동정밀직격탄(Joint Direct Attack Munition: JDAM)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게 된다.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갱도진지를 파괴하기 위해 두 종류의 미국산 갱도관통폭탄을 실전배치했다. 위성항법장치로 유도되는 합동정밀직격탄과 레이저유도장치로 유도되는 GBU-24 폭탄이다. 스웨리예 정부기관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펴낸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에서 합동정밀직격탄 294발과 GBU-24 레이저유도폭탄 50발을 수입했다고 한다. 이 두 종류의 갱도관통폭탄은 3.4m 두께의 콘크리트를 관통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은 교란전파와 기만전파를 동시다발로 발신하여 슬램이알을 피할 수 있지만, 레이저유도장치로 유도되는 GBU-24 레이저유도폭탄에는 전파교란이 통하지 않는다. 전투기에 장착된 레이저발신기가 타격대상에 레이저광선을 쏘면, 타격대상에 맞아 반사된 광선이 비치게 되는데, 레이저유도폭탄은 바로 그 반사광선을 추적하여 타격대상에게 날아간다. 교란전파발신으로 레이저유도폭탄공격을 피하지 못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하지만 조선인민군은 레이저유도폭탄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기발한 장치를 개발했다. 2013년 10월 25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기사에서 그 기발한 장치를 확인할 수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2013년 9월 초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모든 군사시설을 요새화할 데 대한 명령을 하달했는데, 그 명령 가운데는 갱도진지 입구를 먹지로 여러 겹으로 둘러싸놓으라는 특이한 명령도 있다고 한다. 갱도진지 입구를 먹지로 여러 겹 둘러싸면, 남측 공군 전투기에 장착된 레이저발신기에서 투사되어 레이저광선을 먹지가 모조리 흡수해버려 반사광선이 비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반사광선을 추적하여 날아가는 GBU-24 레이저유도폭탄은 무용지물로 된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1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 1주년을 맞은 날, 남측 공군F-15K가 공대지순항미사일 슬램이알(SLAM-ER)을 탑재하고 이륙하는 장면이다.사진 속에서 탄체에 가느다란, 노란 띠를 두른 미사일이 슬램이알이다. 슬램이알의 사거리는 270km이고, 타격오차범위는 3m다. 슬램이알은 위성항법장치(GPS)로 유도되기 때문에 초정밀타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교란전파와 기만전파를 동시다발로 발사하는 입체적인 전파교란전으로 슬램이알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게 만들 수 있다.  

 

 

4. 무인정찰기와 전파교란공격

 

한국군이 연평도 포격전에서 패한 결정적인 원인은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의 사격징후를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한국군이 무인정찰기를 투입했더라면,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의 사격징후를 포착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한국군은 무인정찰기를 투입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한국군 무인정찰기가 조선인민군 고사포의 사격권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 85mm 고사포는 사격고도가 10.5km인데, 한국군이 보유한 이스라엘산 무인정찰기 써처(Searcher)의 비행고도는 6.1km이고, 남측에서 개발된 무인정찰기 송골매의 비행고도는 4.5km다. 그런 형편이므로, 한국군은 연평도 포격전에 무인정찰기를 투입할 수 없었다. 

 

한국군이 보유한 무인정찰기 써처와 무인정찰기 송골매는 실전에서 사용하기 힘들 만큼 너무 낡았다. 2020년 10월 22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써처와 송골매의 작전수명년한은 각각 15년인데, 2020년 현재 작전수명년한을 1~3년 넘긴 것도 있고, 6년이나 넘긴 ‘고물’도 있으며, 부품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아 주간 7회씩 해오던 무인정찰비행을 주간 1~2회로 축소했다고 한다. 

 

작전수명년한을 넘긴 무인정찰기는 정비를 해도 사고를 피하기 힘들다. 2020년 11월 현재 무인정찰기 460여 대를 운용하는 한국군에게 무인정찰기 사고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20년 10월 10일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무인정찰기가 실전배치된 2001년 이후 지금까지 각종 사고가 106건이나 발생했다고 한다.  

 

사태가 이처럼 심각해지자, 한국군 수뇌부는 차세대 무인정찰기를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2019년 10월 24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은 작전수명년한이 2017년에 끝난 무인정찰기 송골매를 대체할 차세대 무인정찰기를 1,180억 원의 비용을 들여 개발했는데, 2019년 10월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따르면, 차세대 무인정찰기의 비행고도가 9km밖에 되지 않아 조선인민군 85mm 고사포의 사격권을 벗어나지 못하므로, 실전용으로 배치하지 말고 훈련용으로나 사용하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한국군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개발한 차세대 무인정찰기는 실패작이었다.  

 

무인정찰기운용이 부실해지자 한국군은 미국산 고고도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Global Hawk)를 수입했다. 한국군은 2019년 12월부터 2020년 9월까지 기간에 글로벌 호크 4대를 인수했는데, 2021년 하반기에 실전배치된다. 글로벌 호크의 비행고도는 18km이므로, 조선인민군 고사포의 사격권을 벗어나 비행한다. 

 

그런데 한국군이 글로벌 호크를 실전에 배치하기도 전에 고장이 났다. 2020년 10월 2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이 인수한 글로벌 호크 1대의 착륙장치에서 기름이 새는 치명적 결함이 나타났다고 한다. 

 

한국군이 고고도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를 보유했으므로, 조선인민군은 그것을 상대하는 작전방안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인민군이 글로벌 호크를 상대하는 여러 가지 작전방안들 중에서 전파교란이 손꼽힌다. 

 

20,200km 상공의 궤도에 떠 있는 항법위성은 항법신호를 25와트 출력으로 발신하고, 그것을 수신한 지상기지국은 10~16와트 출력으로 항법신호를 재발신하는데,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가 쏘는 교란전파의 출력은 1,000와트다.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가 위성항법장치의 주파수 대역으로 출력이 1,000와트인 교란전파를 쏘면 항법신호는 교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위성항법체계에서 사용되는 상업용 주파수 대역은 1,575.42메가헬쯔이고, 군사용 주파수 대역은 1,227.6메가헬쯔다. 

 

2012년 5월 17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의 전파교란이 계속되는 기간에 무인정찰기 송골매를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2012년 5월 8일 미국의 반사회주의선전매체 <미국의소리> 보도에 따르면, 2011년 3월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진행되는 기간에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가 위성항법장치를 교란하는 전파를 발신하였더니 주한미국군 정찰기가 이륙 후 40여 분 뒤에 정찰을 포기하고 출격기지로 돌아갔다고 한다. 2012년 5월 11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보도당일 인천에서 시험비행을 하던 무인정찰헬기 1대가 이륙한지 30분 만에 위성항법장치에서 오작동을 일으켜 조종차량에 추락하면서 불이 나는 바람에 조종차량에 타고 있던 외국인 무인항공기 기술자 1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다른 직원 2명은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 무인정찰헬기는 남측 해군이 서해 5도 수역에서 대북정찰활동을 하기 위해 개발한 것인데, 추락사고가 일어난 시간에 조선인민군 전파교란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 남측을 향해 교란전파를 발신하는 작전을 계속해왔다. 2016년 4월 1일 <뉴시스> 보도와 <연합뉴스> 보도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들어있다. 

 

1) 2016년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진행되는 기간에 맞춰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가 남측을 향해 교란전파를 쏘았는데, 이것은 네 번째 전파교란전이었다.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 2016년 2월 말부터 교란전파를 시험적으로 발사해오다가 3월 31일에는 교란전파의 출력을 최고로 높여 본격적인 전파교란전을 벌였다.

 

2) 2016년 3월 31일 당시 교란전파강도는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났는데, 철원군과 화천군 경계에 있는 대성산 일대에서는 100데시벨이었고, 강화도에서는 70데시벨이었다. 교란전파는 서해 5도 수역의 섬들, 수도권, 철원군 등에 두루 영향을 미쳤다.  

 

3)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 상업용 위성항법주파수 대역과 군사용 위성항법주파수 대역으로 동시에 교란전파를 쏘았다. 

 

4)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 2011년 3월 4일부터 14일까지, 그리고 2012년 4월 28일부터 5월 13일까지 진행한 전파교란전에서 군사용 위성항법주파수 대역으로 교란전파를 발신했다. 그렇게 되자, 한국군의 함선과 항공기에 장착된 위성항법장치가 교란당했다. <사진 4> 

 

▲ <사진 4> 한국군은 2019년 12월부터 2020년 9월까지 기간에 미국산 고고도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 4대를 수입했다. 글로벌 호크는 2021년 하반기에 실전배치된다. 글로벌 호크의 비행고도는 18km이므로, 지상에서 육안으로 관측하기 힘들고,조선인민군 고사포의 사격권을 벗어나 비행한다. 하지만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가 위성항법신호와 유사한, 신호파형이 다양한 기만전파를 발신하면 글로벌 호크는 기만전파를 정상전파로 오인하고 수신하게 된다. 2011년 12월 4일 이란혁명수비군은 기만전파를 발신하여 미국의 스텔스무인정찰기 RQ-170을 공중에서 유인, 착륙시켜 나포했다.  

 

2008년 11월 조선을 방문한 미얀마 고위급 군사대표단이 군부대들과 군사시설을 시찰하고 귀국하여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의 전파발신거리는 300km라고 한다. 2012년 9월 14일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가 사용하는, 차량탑재형 교란전파발신기는 전파출력이 매우 강해서 남측 전역을 영향권 안에 두고 있으며, 신속하게 이동하면서 교란전파를 발신하기 때문에 발신위치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의 작전능력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 교란전파를 발신하는 수준을 넘어서 기만전파를 발신하는 능력을 가졌다. 2012년 9월 14일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 위성항법장치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교란전파를 발신하는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하여 위성항법신호와 유사한 기만전파를 발신하는 기술, 이른바 기만기술(spoofing)을 보유했다고 한다. 한국군은 교란전파를 식별할 수 있지만, 신호파형이 다양한 기만전파는 식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기만전파를 발신하면, 위성항법장치가 기만전파를 정상전파로 오인하고 수신하게 된다. 2011년 12월 4일 이란혁명수비군은 기만전파를 발신하여 미국의 스텔스무인정찰기 RQ-170을 공중에서 유인, 착륙시켜 나포했다. 

 

2)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 항법위성을 교란하는 기술을 가졌다. 2012년 11월 14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평양 남쪽에 설치된 거대한 안테나에서 통신위성 무궁화 5호를 향해 강력한 교란전파가 발신되었다고 한다. 통신위성 무궁화 5호는 한국군과 민간인이 공동으로 사용한다.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 남측 통신위성만이 아니라 미국 항법위성도 교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 평시에 미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 미국 항법위성에는 교란전파를 발신하지 않는다.  

 

3)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 침투교란능력을 가졌다. 위성항법체계에서 사용되는 전파와 그 체계에 오작동을 일으키는 교란전파는 모두 직진파이므로, 송신기와 수신기 사이에 장애물이 있으면 직진파는 차단된다. 그러므로 위성항법장치를 달고 장애물 없는 공중을 비행하는 항공기나 미사일은 교란전파를 피하지 못하지만, 지상에서 사용하는 위성항법장치는 산이나 건물 같은 장애물에 가로막혀 교란전파강도가 약해지거나 아예 차단되기도 한다. 따라서 지상에서 사용하는 위성항법장치를 교란하려면, 전파교란장비를 대상에 바짝 접근시켜야 한다.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참가한 전파교란부대는 배낭형 전파교란장비를 메고 적지에 침투한 다음, 교전상대에 접근하여 가까운 곳에서 교란전파를 발신하는 작전능력을 가졌음을 보여주었다.  

 

 

5. 요새 너머에 군종합동타격력

 

연평도 포격전 이후 지난 10년 동안 주목되는 것은, 조선인민군이 서해 5도 수역의 섬들과 황해남도 해안지대에 있는 군사기지들을 요새화하고, 전투병력과 군사장비를 증강배치해왔다는 사실이다. 2019년 11월 6일 남측 국방정보본부는 ‘북한의 서해도서 요새화작업실태’라는 제목의 자료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 제출했다. 그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2015년 이전부터 연평도 북쪽에 있는 계도, 대수압도, 소수압도, 용매도에 포진지를 구축했고, 백령도 동남쪽에 있는 마합도, 기린도, 창린도, 어화도, 비압도, 순위도에도 포진지를 구축했다고 한다. 또한 2015년에는 연평도 서북쪽에서 가장 가까운 무인도들인 장재도, 무도, 갈도에 122mm 방사포 4문, 해안포 10문, 병력 100여 명을 각각 배치했고, 2016년에는 연평도 동북쪽에서 가장 가까운 무인도인 아리도에 포진지를 구축했으며, 2017년 5월에는 강화도에서 가장 가까운 무인도인 함박도에 감시소와 레이더시설을 설치했다고 한다. 

 

2019년 11월 27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한강 하구에 있는, 남측이 관할하는 섬인 교동도에서 북쪽으로 약 3km 떨어진 황해남도 연백지역에 여러 개의 대남감시초소를 증설함으로써 5년에 걸쳐 진행된 서해 5도 지역의 요새구축사업을 완료했다고 한다. <사진 5>

 

▲ <사진 5> 2017년 4월 2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밑에 강원도 원산 바닷가에서 진행된 군종합동타격시위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장거리포병대가 각종 장거리포와 방사포 300여 문을 도열하고 사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3월 11일 서부전선 월래도방어대를 시찰하면서 "적들이 예민한 수역에서 우리를 또 다시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망동질을 해댄다면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전 전선에서 정의의 조국통일대진군을 개시할 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인민군은 서해 5도 수역에서 우발적 무력충돌로 거대한 시한폭탄이 폭발하는 날이 곧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할 결정적인 시기라고 믿고 있다.

 

서해 5도 지역의 섬들과 황해남도 해안지대에 수많이 구축된 요새들에는 장거리포병대가 주둔하는데, 조선인민군 전투력은 장거리포병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조선인민군은 여러 군종의 전투력을 배합하는 합동타격능력을 키우고 있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밑에 2020년 2월 28일, 3월 2일, 3월 9일에 연이어 합동타격훈련을 진행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이 합동타격전을 수행하는 작전범위는 지상과 지하, 해상과 해저, 대기권과 외기권을 전부 포괄한다. 이런 사정을 보면, 조선인민군은 국지무력충돌이 몇 시간 만에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여 합동타격능력을 키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3월 11일 서부전선 월래도방어대를 시찰하면서 “전선부대들을 비롯한 륙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전략로케트군 장병들이 우리식의 전면전을 개시할 만단의 준비가 되여있다. 적들이 예민한 수역에서 우리를 또 다시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망동질을 해댄다면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전 전선에서 정의의 조국통일대진군을 개시할 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겠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5년 1월 26일 서부전선 기계화타격집단 장갑보병구분대들의 겨울철 도하공격연습을 지도하면서 “우리의 타격은 일단 시작되면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완수할 때까지, 이 땅에서 침략과 악의 근원이 완전히 청산될 때까지 중단 없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미해군사령관이 한강 하구에서 백령도 서쪽 해상에 이르는 278km 구간에 제멋대로 그어놓은 ‘북방한계선’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거대한 시한폭탄이다. 조선인민군은 서해 5도 수역에서 우발적 무력충돌이 일어나 거대한 시한폭탄이 폭발하는 그날이 곧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할 결정적 시기라고 믿고 있다.

2020/11/25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호석의 개벽예감](420)

자주시보 2020년 11월 23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전쟁관념 바꿔놓은 포격전

2. 서서남방 4.8km 해상은 어느 쪽이 관할하는가?

3. 전파교란으로 시작된 선제타격

4. 경고사격 120발, 응징사격 240발

5. 155mm 자주포와 85mm 고사포가 충돌한 격전

6. 국지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

 

 

1. 전쟁관념 바꿔놓은 포격전

 

오늘 2020년 11월 23일은 연평도 포격전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연평도 포격전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조선인민군이 한국군 전투부대에 선제화력타격을 가한 사건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일어났던 연평도 포격전을 다시 고찰하는 까닭은, 그 포격전 경험에서 한국군의 전투준비태세와 조선인민군의 전투준비태세가 각각 어떠한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나타난 작전적 우월성과 결함을 분석한 조선인민군은 지난 10년 동안 작전적 우월성을 발전시키고, 작전적 결함을 극복하면서 전투준비태세를 강화해왔다. 그리하여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야간열병식에서 과시한 것처럼, 오늘 조선인민군의 전투준비태세는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그에 비해, 연평도 포격전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 한국군은 지난 10년 동안 전투준비태세를 그닥 강화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연평도 포격전에서 한국군이 사용했던 K-9 자주포가 지난 10년 동안 각종 크고 적은 사고를 일으켰고, 결국 인명손실참사까지 불러왔다. 2015년 8월 13일 한국국방과학연구소가 안흥시험장에서 K-9 자주포 시험발사를 진행하는 중에 K-9 자주포 폐쇄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불기둥이 10m 상공으로 치솟는 화재가 발생했다. 그러나 한국국방과학연구소는 사고원인을 부실하게 조사하고, 사고 자체를 은폐하고 넘어갔다. 부실조사는 2년 뒤 참사를 불러왔다. 2017년 8월 18일 강원도 철원군 사격장에서 실탄사격훈련을 하던 K-9 자주포 포탑에서 폭발이 일어나 자주포에 탑승한 포병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폭발사고로 K-9 자주포 실탄사격훈련이 전면 중지되었는데, 폭발사고 이후 다섯 달이 지난 2018년 1월 18일 실탄사격훈련을 재개하기에 앞서 시험사격을 해보았으나 약실에서 화약이 타고 남은 찌꺼기가 발견되는 바람에 시험사격을 중지했다.

 

연평도 포격전이 가르쳐주는 또 다른 교훈은, 평소에 전투준비태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군대는 실전에서 패배하는 반면, 전투준비태세를 잘 갖춘 군대는 실전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나타난 남측과 북측의 대비적인 결과가 그런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남측은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북측은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남측이 입은 인명피해는 군인 사망자 2명, 군인 중경상자 16명, 민간인 사망자 2명, 민간인 중경상자 44명이었다. 또한 남측 민간부문이 입은 물적 피해를 보면, 주택 159동과 시설 31동이 파손되었고, 주민거주지역 하수도시설 1,150m가 파손되었고, 연평도 전체 임야의 4.5%에 이르는 25ha가 불탔다. 연평부대도 엄청난 물적 피해를 입었지만, 국방부는 군사장비 및 군사시설 피해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북측도 피해상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상업위성사진을 분석하면 인명피해는 없었고, 경미한 물적 피해만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논한다. 

 

조선외무성은 연평도 포격전 다음 날인 2010년 11월 24일 대변인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며칠 전부터 북측은 남측에 “우리측 령해에 한 발의 포탄이라도 떨어지는 경우 즉시 대응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하였”으며, 연평도 포격전 당일 오전 8시에는 “예민한 지점인 연평도 일대에서 포사격계획을 중지할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하는 전화통지문을 보내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군 수뇌부는 상황을 오판했다. 2010년 12월 29일 <프레시안>에 실린 대담기사에 따르면, 한민구 당시 한국군 합참의장은 연평도 포격전 당일 오전 9시에 연평부대 부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있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명령하고, 실탄사격훈련을 예정대로 강행했다고 한다. 무력충돌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한국군 합참의장은 연평부대에 대비명령을 내린 것인데, 그의 대비명령은 연평부대가 보유한 K-9 자주포 6문 가운데서 4문만 실탄사격훈련에 동원하고, 나머지 2문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사격준비태세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사격준비태세를 취하고 있던 K-9 자주포 2문은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의 선제타격을 받고 무용지물로 되었다. <사진 1> 

 

▲ <사진 1> 2010년 11월 23일에 일어난 연평도 포격전은 한국군 연평부대가 실탄사격훈련을 강행하고 그에 대응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선제타격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위의 사진은 집중포격을 당해 불타는 연평도의 모습이다.  



2. 서서남방 4.8km 해상은 어느 쪽이 관할하는가?

 

오전 10시 연평부대는 합참의장의 명령에 따라 실탄사격훈련을 시작했다. K-9 155mm 자주포가 등장했다. 이 포는 사거리가 약 45km에 이르는 곡사포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K-9 자주포의 탄착구역은 연평도 서서남방 4.8km 해상이었다고 한다. 서서남방은 정서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휘어진 방위를 뜻하므로, 연평도 서쪽 4.8km 해상에 탄착구역이 정해진 셈이다. 탄착구역으로 정해진 해상은 남측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해역으로 주장하는 곳이지만, 북측은 1953년 정전 직후 미국군사령관이 북측과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북방한계선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전협정 제2조 13항에 따르면, 북측 관할구역은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경계선 북쪽과 서쪽에서 정전 당시 미국군이 점령하고 있었던 백령도와 연평도를 비롯한 5개 섬을 제외한 나머지 섬들과 주변 해역이다. 그러므로 이 조항에 따르면, 연평도 주변해역은 전부 북측 관할구역에 속한다. 북측은 정전협정에 따라 자기의 관할구역을 표시하는 해상군사분계선을 그어놓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한국군이 탄착구역으로 정한 연평도 서쪽 4.8km 해상은 북측 해상군사분계선 안쪽에 위치하는 것이며, 연평부대는 북측이 그어놓은 해상군사분계선 안쪽으로 K-9 자주포를 사격했던 것이다.  

 

정전협정이 뭔지 모르고, 북측 해상군사분계선도 뭔지 모르는 연평부대 부대장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사격명령을 내렸다. 2010년 12월 29일 <프레시안>에 실린 대담기사에 따르면, 연평부대 포병들이 쏜 155mm 포탄들이 탄착구역에 떨어져 바닷물이 튀는 것이 (북측에서도) 보일 정도로 근접사격을 했다고 한다. 북은 격노했다.  

 

포격전이 끝난 직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우리 군대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긴급보도문을 발표했다. 보도문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우리측 령해에 쏘아댄 괴뢰들의 포탄은 무려 수십발에 달한다”고 지적하면서 “조선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언명했다. 

 

만일 한국군 수뇌부가 북측에서 관측할 수 없는 연평도 남쪽 해상에 탄착구역을 정하고, 그곳으로 K-9 자주포를 쏘라고 명령했더라면, 연평도 포격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을 오판한 한국군 수뇌부는 북측에서 육안으로 뻔히 보이는 연평도 서쪽 해상으로 사격해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안이하게 판단했다. 한국군 수뇌부의 오판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2012년 12월 14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정보참모부는 연평도 포격전이 시작되기 3시간 전인 당일 오전 11시 30분 “접적해역 일대에 화력도발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북의 탄약차량 움직임을 포착했고, 레이더와 필수통신망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휘관이 현장에서 지휘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고했지만, 한국군 수뇌부는 그것을 통상적인 활동으로 여기고 무시해버렸다고 한다. 한국군 수뇌부는 선제타격징후에 관한 긴급보고를 받고서도, 그 징후를 통상적인 군사활동으로 오판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군 수뇌부가 저지른 두 가지 상황오판은 한국군의 전투준비태세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군 수뇌부가 연평도 포격전 이후 10년이 지난 오늘에도 상황오판을 계속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하지 못해 안달하던 한국군 수뇌부는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좋은 기회로 여기고 엄청나게 큰 규모의 한미연합군사훈련을 2021년 3월 초에 강행할 것이 분명하다. 남북대화와 조미대화가 모두 끊어지고, 정치군사대결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상황을 오판한 한국군 수뇌부가 북을 극도로 자극하는 대규모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면 연평도 포격전보다 더 큰 무력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 무력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면, 조선인민군은 주저 없이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할 것으로 예견된다.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나기 이전 남측에는 한국군이 보유한 미국산 무기가 질적으로 매우 우수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군이 이길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었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전은 그런 전쟁관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우쳐주었다. <사진 2> 

 

▲ <사진 2> 연평도 포격전 당일 연평부대 포병들은 K-9 155mm 자주포 4문을 동원한실탄사격훈련을 하고 있었다. 북측에서 자기들의 관할수역으로 낙탄할 것을 우려한나머지 여러 차례 실탄사격훈련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고, 포격전 당일 오전에도 경고했지만, 한국군 수뇌부는 북의 경고를 무시하고 실탄사격훈련을 강행했다. 위의사진은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사격한 122mm 방사포탄에 맞은 연평부대 군사시설이 불타고 있는 장면이다. K-9 자주포로 실탄사격훈련을 하던 포병들은 선제타격을 받고 당황망조하여 방호시설 안으로 긴급대피했다. 그러는 사이에 포탄을 계속날아왔고, 불은 더 크게 번졌다. 이 사진은 연평부대 소속 정훈장교가 실탄사격훈련모습을 기록에 남기려고 사진촬영을 하는 중에 갑자기 포탄이 날아온 순간을 촬영한것이다.  



3. 전파교란으로 시작된 선제타격 

 

2010년 11월 23일 연평부대 실탄사격훈련은 당일 오후 2시 45분에 끝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연평부대 포사격훈련이 끝나는 시각을 21분 앞둔 오후 2시 24분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연평도 전역에 설치된 방범용 폐쇄회로화면(CCTV)이 갑자기 꺼진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전역에 있는 무선통신기지국들이 갑자기 마비되었다고 한다. 방범용 폐쇄회로화면이 꺼지고, 무선통신기지국이 마비된 것은, 조선인민군이 연평도에 강력한 교란전파를 발사한 것으로 하여 일어난 전파교란전 현상이었다. 

 

조선인민군이 불시에 발사한 강력한 교란전파는 연평부대의 ‘시신경’도 마비시켰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부대는 포격전 당일 오전 9시부터 대포병레이더 AN/TPQ-37을 가동했는데, 정작 포격전이 일어났을 때 북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전혀 탐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2010년 12월 3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직전 황해남도 해안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가 교란전파를 발사하여 연평부대의 대포병레이더가 ‘먹통’으로 되었다고 한다. 물론 대포병레이더만이 아니라 연평부대의 무선통신장비들도 ‘먹통’으로 되었다. 전시에 전투부대의 눈(레이더)과 귀(무선통신)가 마비되면, 전쟁은 그것으로 끝난다. 

 

이런 놀라운 경험은, 조선인민군이 조국통일대전을 개시하는 경우 전파교란전부터 시작할 것임을 예고한다. 연평도 포격전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 크고 무거운 전자교란장비를 차량에 탑재하고 황해남도 해안으로 이동하여 교란전파를 발사했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야간열병식에 참가한 전파교란부대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는 전혀 다른 양상의 전파교란작전이 전개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다. 그날 야간열병식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 전문병들은 자동보총을 들고, 위장무늬전투복과 방탄조끼를 입었으며, 방탄모를 썼는데, 전문병 전원이 검은색 접시처럼 생긴 안테나가 부착된 특수야전배낭을 메고 있었다. 특수야전배낭에 휴대형 전파교란장비가 들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전시에 그들은 달빛 없는 무월광 심야시간에 한미연합군의 반항공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저고도습격기를 타고 남측 후방 곳곳에 침투하여 교전대상에 바짝 접근할 것이고, 침투지점에서 특수야전배낭에 들어있는 전파교란장비를 켜는 순간 한미연합군의 레이더, 무선통신장비, 위성항법체계는 마비될 것이다. <신동아> 2020년 1월호 분석기사에 실린, 한국군이 청와대에 보고한 2014년도 대외비문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휴대형 전파교란장비를 무려 12종이나 실전배치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동시다발로 전파교란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중앙전파관리소 보고서를 인용한 2017년 9월 24일 <뉴스1>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 동안 조선인민군은 전파교란작전연습을 네 차례 진행했는데, 남측의 무선통신기지국 2,229개소, 항공기 2,143대, 선박 980척이 전파교란을 당했다고 한다. 

 

최전방 9곳에 설치된 한국군 전파교란감시소들은 항상 북쪽만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저고도습격기를 타고 남하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 전문병들이 남측 후방 곳곳에 침투하여 휴대형 전파교란장비를 사용하면, 최전방에 배치된 한국군 전파교란감시소들은 자기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서 전파교란작전이 진행되는지 알지 못하고 북쪽만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근 한국군 수뇌부는 삼성전자가 시판하는 지능전화 ‘갤럭시 S20’을 개조한 군사작전용 지능전화 180대를 2021년 상반기에 한국군 전투원들에 보급하여 작전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전투지휘체계를 구축하려고 한다. 한국군 수뇌부의 상황오판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사진 3>

 

▲ <사진 3>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부대는 조선인민군 포병들이 쏜 포탄을 추적할 수있는 대포병레이더 AN/TPQ-37을 보유하고 있었다. 연평도 포격전이 시작되기 직전연평부대는 자기들의 실탄사격훈련 중에 대포병레이더를 가동하고 있었다. 위의 사진은 미국군이 운용하는 대포병레이더 AN/TPQ-37을 촬영한 것이다. 그런데 포격전이 일어났을 때, 연평부대 대포병레이더는 북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전혀 탐지하지못했다. 왜냐하면,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가 강력한 교란전파를 발사하여 연평부대의 모든 전자장비들을 '먹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4. 경고사격 120발, 응징사격 240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연평도 포격전 당일 오후 2시 34분부터 2시 55분까지 21분 동안 1차 사격을 계속했다. 그들은 황해남도 강령군 개머리해안에 있는 진지에서 방사포를 쐈다. 개머리해안에서 연평도까지 거리는 약 12km다.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나기 약 1개월 전인 201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열병행진에 1990년식 122mm 40관 방사포가 등장했는데, 바로 그 방사포가 연평도 포격전에 동원되었다. 4축8륜 차량에 탑재된 이 방사포의 사거리는 20.4km다. 122mm 방사포탄 1발의 탄체중량은 66.3kg이고, 장약중량은 27kg다. 122mm 일반포탄의 장약중량은 3.6kg인데, 122mm 방사포탄의 장약중량은 그보다 8배나 더 무겁다. 이것은 방사포탄의 파괴력이 일반포탄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는 연평도 포격전에 참가한 한국군 연평부대 장병들의 상황진술이 실렸는데,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K-9 자주포 4문을 사격위치로부터 서서남방 4.8km 해상으로 쏘는 실탄사격훈련을 했는데, 1문당 15발씩 모두 60발을 쏘았다.  

2) 4번포가 마지막 포탄을 쏘려고 장전했는데, 불발탄이 포신에 끼어 빠지지 않아 당황한 사이에 북에서 포탄들이 날아왔다. 처음에는 포신에 끼어있는 불발탄이 터진 줄로 알았는데, 나중에 그것이 북에서 날아온 포탄인 것을 알았다.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1차 사격에서 몇 발을 쏘았을까?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북에서 포탄을 몇 발 쏘았는지 계산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밤새 분석하고 평가해 현재까지 판단하고 있는 것은 170발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0년 11월 24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소방방재청은 상황보고에서 “북이 200여 발을 쐈다”고 밝혔고, 연평도 주민들의 체험담에 따르면, 포탄 200여 발이 “비오듯 쏟아졌다”고 한다.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위급한 순간에 낙탄수를 계산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200여 발이 쏟아졌다는 말은 대피소에 들어간 연평도 주민들이 밖에서 들리는 폭음을 듣고 대충 추산한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조선인민군 방사포중대는 122mm 40관 방사포를 9문씩 보유하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기본전투단위는 중대이므로, 연평도 포격전에 1개 방사포중대가 참가한 것이 분명하다. 1개 방사포중대가 122mm 40관 방사포 9문을 모두 쏘았으므로, 대피소에 들어간 연평도 주민들은 300여 발의 폭음을 들었다고 말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200여 발의 폭음을 들었다고 했으니, 약 100여 발의 폭음을 듣지 못한 것이다. 왜 폭음을 듣지 못한 것일까?

 

이 의문을 풀어줄 단서는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 들어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연평도 앞바다에 포탄 90여 발이 떨어졌다고 한다. 포탄이 바다에 떨어지면 폭발하지 않기 때문에 폭음이 들리지 않는다.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쏜 122mm 방사포탄 90여 발이 연평도까지 오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진 것을 보고, 당시 남측 언론매체들은 122mm 방사포가 너무 낡아서 오발탄이 90여 발이나 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방사포가 아무리 낡았다고 해도 면적이 6.14㎢나 되는 연평도를 맞추지 못하고, 90여 발을 연속 오발하는 방사포는 있을 수 없다. 더욱이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연평도 포격전에서 사용한 방사포는 포격전이 일어나기 약 1개월 전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열병행진에 등장한 1990년식 122mm 40관 방사포가 아닌가.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100여 발을 연평도로 쏘지 않고, 의도적으로 연평도 앞바다로 쏘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연평도를 타격하기 전에 앞바다에 120발을 낙탄하는 경고사격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연평부대에게 그런 경고사격이 통할 리 없었다. 연평부대는 실탄사격을 계속했다. 경고사격이 전혀 통하지 않자,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연평도를 향해 응징사격을 시작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122mm 40관 방사포 3문을 동원하여 연평도 앞바다로 120발을 쏘는 경고사격을 한 다음에, 나머지 방사포 6문을 동원하여 연평도로 240발을 쏘는 응징사격을 했던 것이다. 

 

2010년 10월 23일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제1탄은 연평부대 병사생활관에 떨어졌고, 곧이어 연평부대 사무실, 창고, 훈련장, 탄약고 주변 등에 떨어졌다고 한다. 방사포탄 200여 발을 맞은 한국군 연평부대는 오후 2시 49분에 K-9 자주포로 1차 대응사격을 했다. 선제타격을 받고 15분이 지나서 대응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원래 한국군 군사교범에는 선제타격을 받으면 4분 안에 즉각 대응사격을 하도록 규정되었다. K-9 자주포는 사격명령이 떨어지면, 30초 만에 제1탄을 쏠 수 있다. 하지만 방사포탄 200여 발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선제타격을 받은 상황에서는 군사교범의 사격규정이나 자주포의 사격성능 같은 것은 무의미했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는 연평포 포격전에 참가한 한국군 연평부대 장병들의 상황진술이 들어있는데 그 진술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 뒤 약 5초 만에 굉음과 함께 파편과 돌이 튀었다. 포(K-9 자주포를 뜻함-옮긴이)에 파편이 부딪히는 소리가 비오듯 들렸고, 포 안에까지 돌덩이가 튀었다. 슝 소리와 함께 굉음이 귀를 울리더니 주변에 포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고, 땅을 뒤흔드는 진동이 느껴졌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고 모두가 경황이 없었다.”

2) 부대 안에 떨어진 포탄 중에서 1발은 1번포가 위치한 포대 안을 직격했고, 다른 1발은 3번포 포대외벽을 직격했다. 3번포에 붙은 불은 “간신히” 껐지만, 1번포는 화재가 너무 심해 사격하지 못했다.  

3) 피격으로 불이 나면서 K-9 자주포 사격통제장치가 고장이 나서, 하는 수 없이 수동식으로 사격해야 했다.  

4) K-9 자주포 뒤쪽에 놓아둔 잔여장약들에 불이 붙어 폭발하는 바람에 K-9 자주포 2문은 사용하지 못했다. <사진 4>

 

▲ <사진 4> 위쪽 사진은 한국군 연평부대가 보유한 K-9 155mm 자주포가 이동하는 모습이고, 아래쪽 사진은 평양에서 진행된 열병식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의122mm 40관 방사포가 행진하는 모습이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122mm 40관 방사포 3문을 동원하여 연평도 앞바다로 120발을 쏘는 경고사격을 한 다음에, 나머지 방사포 6문을 동원하여 연평도로 240발을 쏘는 응징사격을 했다.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의 교란전파발사로 대포병레이더가 마비되는 바람에방사포 사격원점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던 한국군 연평부대는 미리 입력된 타격좌표에 따라 무도를 향해 K-9 자주포 3문을 쏘았다.  

 

 

5. 155mm 자주포와 85mm 고사포가 충돌한 격전 

 

2010년 11월 2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오후 2시 49분부터 시작된 1차 대응사격에서 연평부대는 타격좌표가 미리 입력된 무도를 향해 K-9 자주포를 쏘았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황해남도 강령군 개머리해안에서 방사포를 쏘았는데, 대포병레이더가 마비되는 바람에 방사포 사격원점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한국군 연평부대는 미리 입력된 타격좌표에 따라 무도를 향해 K-9 자주포를 쏜 것이다. 당시 연평부대가 무도를 향해 사격한 K-9 자주포는 3문이다. 연평부대는 K-9 자주포 6문 중에서 3문은 선제타격을 받고 무용지물로 된 것이다. 그들은 K-9 자주포 3문을 동원하여 무도를 향해 50여 발을 쏘았다. 2010년 12월 2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연평부대 포병들이 쏜 K-9 자주포 15발이 무도방어대 안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미리 갱도진지에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인명피해가 전혀 없었다. 2010년 11월 26일 <KBS> 텔레비전방송 보도에 따르면, 당일 연평도에서 망원렌즈 촬영기로 무도방어대를 촬영했더니, “북측 해안포는 포신을 연평도 쪽으로 계속 열어놓고 있었고, 포신상태도 멀쩡한 상태였다. 동굴(갱도진지를 뜻함-옮긴이) 곳곳에 배치된 북측 포신들도 똑같이 멀쩡했다. 특히 해안포 근처로 북한군이 한가롭게 돌아다니거나 떼를 지어 어디론가 천천히 향하는 등 긴박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2010년 11월 26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K-9 자주포는 최대발사속도로 1분당 6발을 쏠 수 있지만, 최대발사속도로 계속 쏘면 포신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포탄이 포신 안에서 터질 수 있고, 뜨겁게 달아오른 포신에서 포탄을 쏘면 오발되기 때문에, 처음 6발을 쏜 다음에는 포신의 열을 식히기 위해 일정한 시차를 두고 지속발사속도로 쏘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속발사속도는 이론적으로 분당 2발이라고 하지만, 실전상황에서는 분당 1발밖에 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평부대 포병들은 K-9 자주포를 분당 1발씩 쏘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연평부대 포병들이 K-9 자주포 50여 발을 사격하기까지 약 12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갱도진지에서 사격준비를 갖추고 대기 중이던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한국군 연평부대로부터 불의의 기습타격을 받았으나, 동요하지 않고 연평부대의 사격이 뜸해질 때를 기다리며 반격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연평부대 포병들의 사격은 오후 3시 5분경에 끝났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그로부터 5분이 지난 오후 3시 10분 반격에 나섰다. 이것을 2차 사격이라고 부른다. 

 

무도방어대에는 방사포가 없고 85mm 견인고사포만 있다. 사고도가 10.5km인 85mm 견인고사포는 공중으로 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상목표를 향해 쏘는 곡사포로도 사용하는 2중용도의 포다. 곡사포로 사격할 때, 사거리는 15.65km다. 그러므로 무도방어대에 배치된 85mm 견인고사포는 황해남도 상공으로 내습하는 적기를 격추할 수도 하고, 연평도를 공격할 수도 있다. 85mm 견인고사포는 분당 12발씩 사격하는 매우 빠른 사격속도를 자랑한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평소에 타격좌표를 외우고 조준사격연습을 해왔으므로, 즉시 85mm 고사포를 갱도진지에서 끌어내 조준사격을 시작했다.  

 

그런데 연평도 포격전 당일 현장에는 초속 4.4m의 바람이 불었다. 그런 환경에서는 포병들이 탄도를 정확하게 계산해 포를 쏘더라도, 포탄이 비행하는 중에 측풍을 맞으면 풍향에 따른 오차가 발생하므로, 명중사격을 하기 힘들다. 그러나 무도방어대 포병들의 조준사격실력은 놀라웠다. 그들이 쏜 85mm 포탄은 마치 두 눈이 달린 것처럼 연평도 타격대상들에 명중했다. 2010년 11월 24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해안포부대(무도방어대)는 2차 사격에서 연평부대 레이더에 포를 쏘았다고 한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밝히지 않았으나, 연평부대 레이더는 무도방어대 포병들이 쏜 명중탄에 맞아 파괴되었다. 2010년 11월 26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해안포부대(무도방어대)가 쏜 포탄은 유류 20,000리터가 저장된 연평부대 유류저장시설과 연평부대 피복창고에 각각 명중했고, 이전에 헌병대가 쓰던 우체국, 이전에 군사시설로 사용되던 상점, 보건소 등에 각각 명중했다고 한다.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부대 유류저장시설이 폭발하여 산불로 번졌다고 한다. 산불로 연평도 숲의 70%가 불탔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오후 3시 10분부터 4시 42분까지 계속된 2차 사격에서 85mm 곡사포 80발을 조준사격하여 연평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2010년 11월 30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무도방어대 포병들이 2차 사격에 사용한 포탄 1발의 장약중량은 700g인데, 장약에 알류미늄분말을 혼합하여 폭발력을 강화한 포탄이라고 한다. 또한 그들이 쏜 포탄은 표적에 충돌하여 폭발하는 직격탄이 아니라, 근접신관을 장착하고 타격대상 4~7m 앞에서 공중폭발하여 타격효과를 극대화하는 포탄이라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8월 17일 무도방어대를 시찰하면서 연평도 포격전에서 명중탄을 날린 무도방어대에 영웅방어대 칭호를 수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9월 2일과 2017년 5월 4일에도 무도방어대를 시찰하면서 무도방어대 포병들의 전투준비태세에 만족을 표시했다. 

 

연평부대 포병들도 오후 3시 25분부터 K-9 자주포 사격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사격대상을 바꿔, 무도가 아니라 개머리해안을 향해 쏘았다. 연평부대 포병들은 개머리해안진지로 K-9 155mm 자주포를 쏘고,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연평부대로 85mm 고사포를 쏘는 치렬한 교전이 오후 3시 25분부터 3시 41분까지 계속되었다. 

 

2010년 12월 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부대 포병들은 개머리해안에 있는 포진지를 향해 K-9 자주포 30발을 쏘았다고 한다.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조선인민군 해안포는 갱도진지에 들어있기 때문에 K-9 자주포로는 타격하기 어려워, 해안포 중대 막사를 타격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2010년 12월 2일 <한겨레> 보도와 2013년 11월 21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으로부터 사흘이 지난 11월 26일에 촬영된 상업위성사진에는 연평부대가 쏜 K-9 자주포 14발이 개머리해안 포진지를 맞추지 못하고 엉뚱하게 포진지 후방으로 90~100m 떨어진 논밭에 떨어진 낙탄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2010년 12월 2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상업위성사진을 자세히 판독하였더니, 개머리해안 포진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K-9 자주포 6발의 낙탄흔적을 추가로 찾아냈다고 한다. 이처럼 어지럽게 흩어진 낙탄흔적은 연평부대 포병들이 개머리해안 포진지를 향해 K-9 자주포 20발을 쏘았으나, 1발도 타격대상을 맞추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무도방어대에서 그러한 것처럼, 개머리해안 포진지에서도 선제타격을 마치고 재빨리 갱도진지 안으로 대피했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없었고, 경미한 물적 피해만 발생했다. 

 

누가 봐도, 무도방어대 85mm 고사포는 연평부대 155mm 자주포의 상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85mm 고사포의 포구경은 155mm 자주포에 비해 70mm나 짧을 뿐 아니라, 85mm 고사포는 수동사격장치로 쏘고, 155mm 자주포는 자동사격장치로 쏘기 때문이다. 또한 85mm 고사포의 사거리는 155mm 자주포에 비해 30km나 짧다. 그러나 실전상황에서는 뜻밖에도 85mm 고사포가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 85mm 고사포는 사격속도가 155mm 자주포에 비해 10배 이상 빨랐다. 연평도 포격전은 현대전의 승패가 공격속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진리를 입증했다.

둘째, 무도방어대 포병들의 높은 사격명중률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되었다. 평소에 명중사격을 연습해온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실전상황에서 사격능력을 남김없이 발휘했다. 연평도 포격전은 현대전의 승패가 정밀타격에 의해 결정된다는 진리를 입증했다. <사진 5> 

 

▲ <사진 5> 위쪽 사진은 2017년 5월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평도 포격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무도방어대를 시찰하는 장면이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연평도 포격전에서 경미한 피해만 입었고, 연평부대에 명중탄을 퍼부어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무도방어대에 영웅방어대 칭호를 수여했다. 위쪽 사진에 보이는 견인포는 연평도 포격전에서 맹활약하여 영웅포 칭호를 수여받은 85mm 견인고사포다. 아래쪽 사진은 로씨야의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85mm 견인고사포 실물이다.85mm 견인고사포의 두 가지 특징은 공중을 방어하는 고사포로도 쓸 수 있고, 적진을 타격하는 곡사포로도 쓸 수 있다는 것과 사격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6. 국지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

 

연평도 포격전이 계속되자 조선인민군 수뇌부는 황해남도에 배치된 전투부대들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총공격태세로 전환했다. <연합뉴스> 2020년 11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당일 백령도가 마주보이는 북측 해안포 갱도진지들이 차폐문을 열고 사격준비를 갖추었다고 한다. 2010년 11월 24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해 5도 분쟁수역 인근의 북측 해안과 섬들에 밀집배치된 해안포는 약 1,000문이라고 한다. 해안포 1,000문이 연평도와 백령도를 조준하여 사격준비태세를 갖춘 것이다. 

 

2010년 11월 27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중에 조선인민군 서해함대사령부는 황해남도 옹진군 사곶에 배치된 해군 8전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고, 그에 따라 8전대에 소속된 모든 전투함선들과 전투병력이 총공격태세에 돌입했다고 한다. 당시 해군 8전대가 보유한 고속정과 경비정은 70여 척 이상이었다.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그-23기 5대가 황해남도 황주비행장에서 출격대기상태에 있고, 황해남도 과일비행장과 온천비행장에서도 미그-19기들과 미그-23기들이 출격대기상태에 있다고 한다. 또한 황해남도에 배치된 금성-1 지대함순항미사일들이 발사태세를 취했다고 한다. 금성-1 지대함순항미사일의 사거리는 160km다. 2010년 11월 28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황해남도에 번개-1 지대공미사일이 전진배치되었다고 한다. 번개-1 지대공미사일은 사거리가 45km이고, 요격고도가 25km다. 2014년 2월 24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태영은 포격전 중에 조선인민군 반항공부대가 SA-5 장거리대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그가 언급한 SA-5 장거리대공미사일은 사거리가 250km에 이르는 번개-5 반항공미사일이다. 

 

우발적인 국지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이 극도로 높아졌다. 그런 사태를 우려한 한국군은 당일 오후 5시 55분 조선인민군에게 사격중지를 촉구하는 전화통지문을 발송했다. 만일 한국군이 사격중지를 촉구하지 않았더라면, 국지충돌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전면전이 일어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조선인민군 해안포 1,000문이 연평도와 백령도를 향해 불을 뿜었을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도에는 한국군 1,200명이 주둔하였고, 백령도에는 한국군 4,000명이 주둔하였는데, 그들은 조선인민군의 집중사격을 받을 급박한 위험에 빠졌던 것이다. 

 

남북대화와 조미대화가 완전히 중단되고 군사대결상태에 들어선 오늘, 한국군 수뇌부는 연평도 포격전에서 뼈아픈 교훈을 찾고, 현 상황을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기 전에, 북침전쟁연습을 재개하려는 경거망동을 중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