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9

재앙 불러온 포츠담의 검은 그림자

 [한호석의 개벽예감](407)

자주시보 2020년 08월 17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포츠담선언 발표 이전의 상황

2. 포츠담선언 발표 이후의 상황

3. 파죽지세의 진공작전

4. 딘 러스크가 날조한 거짓말

5. 민족분렬재앙은 미국이 저지른 만행 

 

 

1. 포츠담선언 발표 이전의 상황

 

75년 전, 8월 15일 일본제국은 패망했고 식민지조선은 해방되었다. 1945년 8월 15일은 수요일이었다. 그날 아침 서울 시내 곳곳에 벽보가 나붙었다. 당일 정오에 중대방송이 있을 것이므로 “1억 국민이 필청(必聽)하라”는 벽보였다. 그들이 말한 1억 국민은 당시 일본제국 인구에 더하여 일본제국이 식민지로 강점한 조선반도, 남사할린, 중국의 대만과 랴오닝반도 남부의 인구를 모두 합한 총인구를 뜻한다. 

 

벽보에서 필청하라고 했던 중대방송은 일왕 히로히또(裕仁)의 녹음방송이다. 1945년 8월 14일 밤, 히로히또는 도꾜에 있는 자기 거처에서 ‘천황의 조서(詔書)’라는 것을 육성으로 녹음했는데, 그것을 라디오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경성방송국은 히로히또의 조서낭독녹음을 방송했다. 경성방송국은 조선총독부가 1926년 11월에 설립한 라디오방송국이다. 일본제국은 서울을 경성이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들은 1945년 8월 15일 일왕이 라디오방송을 통해 항복선언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히로히또가 낭독한 것은 항복서가 아니라 조서였다. 원래 조서는 왕의 명령을 백성들에게 하달하는 왕실문서다. 그날 라디오방송을 통해 전해진 히로히또의 조서는 가와다 미즈호(川田瑞穗)가 현학적인 고어체로 작성한 약 800자의 장문이었기 때문에, 고전문장에 익숙한 일본인들이나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당시 경성방송국 취재기자였던 문제안의 회고담에 따르면, 전파송출상태가 나빠서 히로히또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히로히또의 조서를 방송으로 내보낸 직후, 경성방송국 제1보도과 계장 후꾸다(福田)가 조서를 일본말로 다시 방송했고, 조선인 방송원 이덕근이 조선말로 번역된 조서를 다시 방송했다고 한다. 문제안의 회고담에 따르면, 그날 오후 경성방송국은 히로히또의 조서를 그런 식으로 몇 차례 되풀이하여 방송했고, 조서내용에 대한 해설방송도 했다고 한다. 서울시민들은 1945년 8월 15일 오후에 방송된 해설을 듣고서야 일본제국이 패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놀라운 소식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삽시에 퍼져나갔다. 그렇게 되어 1945년 8월 16일 아침부터 조선 민중들은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다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외치는 격정의 만세소리는 삼천리금수강산에 메아리쳤다.

 

그러나 당시 우리 민족은 패망한 일본제국의 배후에 음흉한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음흉한 그림자의 정체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식민지조선을 일본제국의 식민통치에서 해방시키려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분할하려는 흉계를 일찌감치 꾸몄고, 그 흉계를 행동에 옮길 결정적인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서에서 히로히또는 항복의사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짐은 제국의 정부로 하여금 열강들의 공동선언 조항들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게 했노라”라고 언급했다. 히로히또가 조서에서 언급한 공동선언이라는 것은 1945년 7월 26일에 발표된 포츠담선언(Potsam Declaration)이다. 포츠담은 도이췰란드 베를린 근교의 지명이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진행된 포츠담회의에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 소련공산당 서기장 스딸린이 악수하는 장면이다. 포츠담회의에서 발표된 포츠담선언에서 연합국들은 일본제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촉구했다. 또한 포츠담회의에서는 종전문제와 전후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민족사적 관점에서 8.15의 의미를 파악하려면 조선인민혁명군이 8.15 직전 함경북도에서 전개한 조국해방전투상황을 고찰해야 하고, 세계사적관점에서 8.15의 의미를 파악하려면, 포츠담회의의 내막을 살펴보아야 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포츠담선언 제13항이다. 그 마지막 조항에는 “우리는 모든 일본군이 당장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그로써 적절하고 온당한 선의(good faith)를 확약할 것을 일본 정부에게 촉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에게는 즉각적이고 철저한 파괴만이 차례질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것은 일본제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촉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왕 히로히또가 조서에서 공동선언을 수락하겠다고 언급한 것에 항복의사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포츠담선언이라고 명시하지 않고 열강들의 공동선언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여 항복의사를 은폐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그런 은폐가 언술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항복문제를 놓고 찬반격론을 벌인 일본제국 전쟁지휘부의 내부분렬을 반영한 것이고, 그와 더불어 종전문제를 놓고 미국과 소련을 각각 상대한 일본제국의 막후교섭사정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항복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제국 전쟁지휘부가 내부분렬을 겪은 내막을 살펴볼 필요가 있고, 종전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제국 전쟁지휘부가 막후교섭을 벌인 내막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5년 6월 전황은 일본제국에게 매우 불리해졌다. 일본제국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소련에게 중재를 부탁하는 막후교섭을 시도했다. 당시 소련은 일본제국과 불가침협정을 맺은 중립국이었으므로, 중재를 부탁할 나라는 소련밖에 없었다. 1941년 4월 13일에 체결되어 5년 동안 효력을 유지하는 소일불가침조약이 만료되는 날은 1946년 4월 13일이었다. 

 

1945년 6월 30일 일본제국 수상 스즈끼 간따로(鈴木貫太郞)는 당시 모스크바에 주재하는 일본제국 대사 사또 나오다께(佐藤尙武)를 통해 소련에게 중재를 부탁하는 막후교섭을 제안했다. 하지만 소련은 그 제안에 즉답을 주지 않고, 지연전술로 대응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하루가 급한 일본제국은 조바심을 느꼈지만, 소련 외무상 봐쩨슬라브 몰로또브(Vyacheslav Molotov)는 열흘 동안 시간을 끌다가 사또 나오다께를 1945년 7월 11일에 만났다. 

 

소련은 일본제국의 막후교섭제안에 즉답을 피하고 시간을 끌다가 마지못해 응해주는 척하였으므로, 몰로또브와 사또가 만난 회동에서 어떤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회동에서 몰로또브는 전쟁이 일본제국에게 유리하게 끝날 수 있을 것 같은 예상을 사또에게 말해주었다. 소련의 그런 행동은 대일전쟁준비시간을 벌기 위한 기만전술이었다. 소련은 1945년 5월 8일 나치 도이췰란드가 항복한 직후 유럽전선에 전개했던 방대한 규모의 전투병력, 무장장비, 군수물자를 수송렬차편으로 약 10,000km떨어진 원동전선까지 이동시켜 대일전쟁을 준비하는 중이었으므로, 수송작전을 완료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소련의 기만전술에 넘어간 일본제국은 전쟁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끝날 수 있을 것으로 오판했다. 그런 오판에 빠진 일본제국은 항복준비가 아니라 결전준비에 더욱 미쳐 날뛰었다.  

 

미국은 일본제국 수상 스즈끼 간따로와 일본제국 대사 사또 나오다께가 주고받는 도꾜-모스크바 사이의 암호전문을 계속 도청하고 있었다. 1995년에 출판된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옥스퍼드 입문서(The Oxford Guide to World War II)’라는 제목의 책에 따르면, 미국의 암호해독요원들은 도꾜와 모스크바를 오간 일본제국의 암호전문을 해독하기까지 1주일도 걸리지 않았고, 어떤 암호전문은 입수한 당일 곧바로 해독했다고 한다. 미국은 일본제국의 암호전문을 해독하여 일본제국이 항복하지 않고 전쟁을 계속하려는 의지를 가졌음을 파악했다.   

 

 

2. 포츠담선언 발표 이후의 상황

 

미국, 일본, 소련이 제각기 급박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고, 1945년 7월 26일 일본제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는 포츠담선언이 발표되었다. 포츠담선언이 발표되자, 일본제국 최고전쟁지도회의는 긴급대책을 세워야 했다. 최고전쟁지도회의 구성원은 6명인데, 수상 스즈끼 간따로, 외무상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 전쟁상 아나미 고레지까(阿南惟幾), 해군상 요나이 미쯔마사(米內光政), 육군참모총장 우메즈 요시지로(梅津美治郞), 해군참모총장 도요다 소에무(豊田副武)가 그들이었다. 

 

일본제국 최고전쟁지도회의 6인방은 포츠담선언을 수락하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를 놓고 오랜 시간 설왕설래한 끝에 그 선언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이른바 ‘국체호지(國體護持)’를 인정하는 내용이 포츠담선언에 들어있지 않다는 해괴한 이유를 들어 포츠담선언을 거부한 것이다. ‘국체호지’라는 것은 ‘천황제’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1945년 7월 28일 일본제국은 포츠담선언을 “묵살(黙殺)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일본제국이 항복하더라도 ‘천황제’는 종전대로 유지시킨다는 조항이 미국이 제출한 포츠담선언 초안에 들어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민족과 동아시아 나라들에게 침략전쟁과 식민지강점의 만행을 저지른 최고전범 히로히또를 처벌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도는, 전범국 일본을 남북으로 분할하지 않고, 피해국 조선을 남북으로 분할하려는 간악한 흉계와 직결된 것이었다. 

 

포츠담회의에서 소련과 영국은 ‘천황제’를 종전대로 유지시키려는 미국의 의견에 반대했고, 그 조항은 삭제되었다. 그렇게 되어, 포츠담선언 제10항에는 “모든 전범들에게 준엄한 심판(Stern justice)을 내린다”라는 모호한 문장이 들어갔다. 미국은 모호하게 규정된 제10항을 근거로 최고전범 히로히또를 처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범처벌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준엄한 심판’을 적당히 끝냈다. 극형을 받았어야 마땅한 일본제국의 전범들을 끼고돌았던 미국의 간악한 전범처리정책 때문에, 7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일본은 침략전쟁과 식민지강점에 대해 사죄하지 않고, 되레 자기들의 침략전쟁과 식민지강점을 합리화하는 후속범죄를 계속 저지르고 있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미국, 소련, 영국이 포츠담회의를 진행하는 장면이다. 포츠담회의는 미국, 소련, 영국이 진행했지만, 포츠담선언에는 미국, 영국, 중국(장졔스 정부)이 서명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당시 소련은 일본제국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중립국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불가침조약이 유효한 조건에서 소련은 일본제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에 서명할 수 없었다. 소련은 나중에 포츠담선언에 서명했다.  

 

1945년 7월 30일 소련군의 전투병력, 무장장비, 군수물자를 유럽전선에서 원동전선으로 옮기는 마지막 수송렬차가 원동지역에 도착했다. 그로써 소련의 대일전쟁준비는 사실상 완료되었다. 마지막 수송렬차가 원동지역에 도착한 바로 그날, 모스크바 주재 일본제국 대사 사또는 일본제국 수상 스즈끼에게 보낸 암호전문에서 “만일 우리가 소련의 참전을 막지 못하면,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항복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을 것”이라고 썼다. 이런 사정은 일본제국에게 가장 두려운 세력이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었음을 말해준다. 일본제국의 대소공포증은 그들의 대미적대감을 완화시켰다.   

 

미국은 소련의 전투병력, 무장장비, 군수물자가 유럽전선에서 원동전선으로 이동배치되어 대일전쟁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소련이 대일전쟁을 개시하면, 만주를 점령하고 곧바로 조선반도로 남진할 것이고, 그와 더불어 남사할린을 탈환하고 곧바로 일본 홋까이도에 상륙할 것으로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2개월 3주 동안 미국군이 20,000여 명이나 전사하는 격전 끝에 일본 오끼나와를 간신히 점령한 미국군이 수송함을 타고 북상하여 조선반도와 일본 규슈에 상륙하려면, 작전시간이 1개월 이상 필요했지만, 소련-만주국경과 몽골-만주국경을 동시에 돌파하여 세 방면에서 총공격을 시작한 소련군은 1945년 8월 말까지 식민지조선을 해방하고 일본 홋까이도를 점령할 수 있었다. 소련군의 대일전쟁씨나리오는 일본과 조선반도를 점령하려고 벼르던 미국에게 악몽으로 다가왔다. 

 

미국이 그런 악몽을 떨쳐버리려면, 소련이 대일전쟁에 참전하기 전에 미국의 주도로 전쟁을 속결해야 했다. 그래서 미국은 핵시험 직후 실전배치를 앞둔 핵폭탄을 서둘러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국군 B-29 폭격기가 일본 히로시마에 첫 번째 핵폭탄을 떨어뜨렸다. 히로시마 전체가 핵참화로 불타고 있던 시각, 기고만장해진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은 대일협박성명을 발표했다. “만일 그들이 우리의 조건을 당장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들은 이 지구상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파멸의 비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핵폭탄으로 히로시마를 날려버리면 일본제국이 곧바로 항복할 것이라던 트루먼의 예상은 빗나갔다. 일본제국은 히로시마가 완전히 폐허로 되는 대참화를 당했으면서도 항복하지 않고 계속 버텼다. 

 

 

3. 파죽지세의 진공작전 

 

전쟁준비를 완료한 소련은 1945년 8월 9일 대일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일본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원동지역으로 집결한 소련군은 만주와 남사할린에서 파죽지세로 일본군을 격파하며 노도같이 진격했다. 이 충격적인 소식이 도꾜에 전해진 때는 당일 오전 4시였다. 

 

일본제국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만주를 소련에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남사할린이 소련군에게 점령당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남사할린을 점령한 소련군은 약 1,300km의 바다 위에 늘어선 쿠릴렬도를 징검다리처럼 건너 곧바로 일본 홋까이도 북부해안에 상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계 미국인 역사학자 하세가와 즈요시(長谷川毅)는 2005년에 출판된 ‘대적경쟁: 스딸린, 트루먼, 그리고 일본의 항복(Racing the Enemy: Stalin, Truman, and the Surrender of Japan)'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당시 소련이 홋까이도를 점령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서술했다.    

 

소련이 대일선전포고를 발표한 날, 10만명 병력으로 편성된 소련군 제16군은 남사할린으로 진격했다. 2013년 5월 30일 미국 외교전문지 ‘외교정책(Foreign Policy)’에 실린, 핵안보연구자 워드 윌슨(Ward H. Wilson)이 집필한, ‘일본을 패배시킨 것은 원폭이 아니라 스탈린’이라는 제목의 글에 따르면, 소련군 제16군은 10일 만에 남사할린을 탈환하고 곧바로 일본 홋까이도에 상륙하는 작전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소련군이 만주와 남사할린에서 파죽지세로 진격하고 있었던 1945년 8월 9일 오전 10시 30분, 공포에 빠진 도꾜에서 최고전쟁지도회의가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 그런데 비상대책회의에서 포츠담선언을 수락하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찬반격론이 벌어지고 있던 바로 그 시각, 두 번째 핵폭탄을 실은 미국군 B-29 폭격기가 일본 나가사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폭격기는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끼 상공에서 핵폭탄을 투하했다. 나가사끼도 히로시마처럼 핵참화를 입었다. 히로시마 군수공장들과 나가사끼 군수공장들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수많은 조선인들이 핵참화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소련의 대일전쟁개시와 미국의 나가사끼 핵폭탄 투하가 겹치면서 사상 최악의 위급한 상황이 조성되었는데도, 일본제국 최고전쟁지도회의 6인방은 투항파와 항전파로 3명씩 갈라져 말싸움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고전쟁지도회의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당일 오후 2시 30분 전시내각 전원회의가 진행되었으나, 그들도 투항파와 항전파로 갈라져 말싸움을 벌였다. 종내 결론을 내지 못하자, 일왕 히로히또가 직접 나서서 항복결정을 내렸다. 

 

이튿날인 1945년 8월 10일 이른 아침, 일본제국 외무성은 스위스를 통해 미국에게 긴급전문을 보냈다. 일본제국 외무성이 소련에게는 긴급전문을 보내지 않고 미국에게만 보낸 것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미국과 거래하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었다. 일본제국 외무성은 긴급전문에서 “천황의 대권을 손상시키는 어떤 조건도 없다면” 포츠담선언을 수락하겠노라고 하면서 조건부 항복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포츠담선언에서 일본제국에게 요구한 것은 조건부 항복이 아니라 무조건 항복이었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1945년 8월 만주해방전투에 참가한 소련군 전투원들이 헤이룽장성 하얼빈을 해방하고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1945년 8월 9일 소련의 대일선전포고로 시작된 만주해방전투는 8월 20일까지 계속되었다. 소련군은 만주해방전투에 전투병력157만명, 야포 27,000문, 방사포 1,150문, 전차 및 자행포 5,500대, 작전기 3,720대를 동원했다. 만주해방전투에서 소련군은 12,000여 명이 전사했고, 일제 관동군은 83,700명이 전사했으며, 약 600,000명이 포로로 잡혔다. 그로써 일제 관동군은 궤멸되었다. 만주해방전투에는 몽골군도 참전했다.  

 

숨막히는 대격변이 줄이어 일어나는 동안, 기세충천한 소련군은 만주와 남사할린에서 각각 일본군 방어선을 돌파하면서 남진했고, 김일성 사령관이 지휘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은 함경북도 각지에 대기 중이던 국내인민무장대들과 함께 일본군 군사거점들을 격파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1945년 8월 12일 조선인민혁명군은 라진인민무장대의 호응을 받으며 함경북도 라진(오늘의 라선)에 있는 일본군 거점들과 식민통치기관들을 공격했다. 라진해방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라진해방전투에 참가한 소련군 제25군 지휘관 우르쥬멜라슈월리는 <조선에서의 수기>라는 제목의 책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들은 조선빨찌산들이 일본군의 퇴로를 막고 그들이 도시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과 빨찌산들 사이에 갇힌 일본 사무라이들은 무기를 내던지고 포로로 잡히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도시외곽에서 우리쪽으로 급히 달려오는 100여 명의 무장대오와 조우했다. 그들의 지휘관은 아군 땅크부대 대령에게 ‘우리들은 김일성빨찌산 대원들입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소련군과 조선인민혁명군의 급속한 진격을 보면서 당황했지만, 일본제국에 또 다시 투하할 핵폭탄을 미처 만들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일본제국이 항복하지 않고 계속 버티는 경우,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이어 삿뽀로와 하꼬다떼에도 핵폭탄을 투하할 공격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삿뽀로와 하꼬다떼는 홋까이도의 중심도시들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은 소련군이 홋까이도에 상륙하기 전에 자기들이 먼저 홋까이도 중심도시들에 핵폭탄을 투하하여 전쟁을 끝내보려고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삿뽀로와 하꼬다떼에 투하할 핵폭탄 두 발은 약 3개월이 지난 1945년 11월에나 완성될 수 있었다.  

 

속이 타들어가던 미국은 긴급대책을 꺼내들었다. 1945년 8월 14일 미국군 B-29 폭격기 400대가 일본 각지 상공에 까마귀떼처럼 몰려들어 폭탄을 마구 쏟아부었고, 그날 밤에도 B-29 폭격기 300대가 까마귀떼처럼 몰려들어 일본 각지에 또 다시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다. 미국의 대공습으로 일본의 도시들이 거대한 화염 속에서 불타고 있는 아비규환 속에서 일왕 히로히또는 일본군 고위지휘관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 히로히또는 자신이 라디오방송을 통해 발표할 조서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전시내각은 즉각 히로히또의 최종결심에 찬동했다. 패전을 직감한 그들은 자기들의 전쟁범죄와 관련된 방대한 분량의 문서자료를 파기하기로 결정했다. 

 

1945년 8월 14일 오후 7시, 히로히또가 다음날 라디오방송을 통해 발표할 조서 문안이 완성되었다. 오후 11시 히로히또는 일본 <NHK> 방송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조서를 낭독하는 자기 육성을 레코드판에 녹음했다. 그러는 사이에 일본제국 외무성은 스위스와 스웨리예를 통해 미국에게 포츠담선언의 항복조건을 수락하겠다는 긴급전문을 발송했다.   

 

 

4. 딘 러스크가 날조한 거짓말

 

1945년 7월부터 8월까지 세계적인 대격변기에 미국은 식민지조선을 일본제국의 식민통치에서 해방시키려는 게 아니라, 조선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하는 흉계를 꾸몄다. 미국은 그런 흉계를 언제, 어떻게 꾸몄을까? 

 

조선반도분할방안을 작성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딘 러스크(D. Dean Rusk)는 1990년에 출판된 ‘내가 본대로(As I Saw It)'라는 제목의 구술회고록에서 자기들이 조선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한 정황을 극적인 장면으로 서술했다. 그가 구술한 극적인 장면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일본제국이 항복한 1945년 8월 14일(도꾜 시간으로 8월 15일은 워싱턴 시간으로 8월 14일) 백악관에서 국무성-전쟁성-해군성조절위원회(SWNCC = State/War/Navy Coordinating Committee) 전략회의가 진행되었다. 일왕 히로히또의 조서가 라디오방송을 통해 전해진 8월 15일 정오는 워싱턴 시간으로 8월 14일 밤 11시였다. 백악관은 히로히또의 조서발표소식을 듣고 급히 전략회의를 소집했으므로, 전략회의가 시작된 시각은 워싱턴 시간으로 8월 15일 0시를 넘긴 깊은 밤이었다.  

 

2) 국무성-전쟁성-해군성조절위원회는 전쟁성 작전국 정책과에서 근무하던 현역 육군 대령들인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Charles H. Bonesteel, Jr.)에게 미국군이 조선반도에 상륙하여 어느 지역을 점령할 것인지를 정하는 중대한 과업을 맡겼다. 

 

3) 과업을 받은 러스크와 본스틸은 옆방으로 가서 조선반도를 어떻게 분할, 점령할 것인지를 논의했는데, 그들은 조선문제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문외한들이었다. 자기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중압감을 느낀 러스크와 본스틸은 다급한 김에 미국국립지리학회가 발행하는 지리전문지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에 실린 조선지도를 펴놓고 살펴보다가, 서울 바로 북쪽에 그어진 북위 38도선에 눈길을 모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지도는 너무 작아서 북위 38도선이 표시되지 않았는데, 딘 러스크는 그런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되어, 그들은 미국군이 38도선 이남지역을 점령하는 분할방안을 전략회의에 제출했다. 

 

4) 38도선 분할방안을 보고받은 국무성/전쟁성/해군성조절위원회는 별로 논란을 벌이지 않고 그 분할방안을 채택했다.

 

5) 미국은 소련이 38도선보다 더 남쪽에 분할선을 획정하자고 주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소련은 38도선 분할방안을 즉각 수락했다. (당시 소련의 관심은 조선반도가 아니라 일본 홋까이도에 쏠려있었다.)  

 

딘 러스크가 구술회고록에서 38도선 획정사건을 묘사한 장면은 너무 충격적이다. 장장 75년 동안 우리 민족을 헤아릴 수 없는 불행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38도선 분할이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 두 사람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었다니, 충격적이다 못해 격분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사진은 6.25전쟁 중에 미국군 장병들과 한국군 장병들이 38도선에 표지판을 세우는 장면이다. 사진 속의 그들은 한국군 제3사단 관할구역에 38도선 표지판을세우면서 웃고 있다. 신성한 우리 강토를 38도선으로 갈라놓은 미국의 만행 때문에 우리민족은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겪어야 했는데, 사진 속의 그들은 웃고 있다. 총포성이 울리고 피가 흐르는 6.25전쟁이 미국의 38도선 분할점령으로 일어났는데도, 사진속의 그들은 그저 웃고 있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저들만이 아니라, 오늘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도 아직 미국의 분할점령만행이 얼마나 극악한 반인륜적 범죄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딘 러스크가 구술회고록에서 위와 같이 극적인 장면을 서술해놓는 바람에, 사람들은 1945년 8월 15일 히로히또의 조서낭독방송 소식을 들은 미국의 전쟁지휘부가 백악관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지도를 펴놓고 30분 만에 38도선 분할을 확정한 줄로 믿었다. 

 

하지만 딘 러스크가 구술회고록에서 서술한, 38도선 분할방안확정에 관한 서술내용은 커다란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백악관이 전후세계질서를 재편하는 중대한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허송세월하다가, 일왕의 조서낭독방송을 듣고 나서 허겁지겁 심야전략회의를 소집하여 그 문제를 결정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945년 7월 26일에 발표된 포츠담선언 제8항에는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까이도, 규슈, 시고꾸와 우리가 정하는 그 밖의 작은 섬들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었다. 이것은 포츠담회의에서 전후세계질서를 재편하는 문제가 구체적으로, 심도 있게 논의되었음을 말해준다. 전후세계질서를 재편하는 문제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점령문제와 영토귀속문제였다. 다시 말해서, 일본제국이 식민지로 강점한 조선반도, 남사할린, 중국의 대만과 랴오닝반도 남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진행된 포츠담회의에서 조선반도, 남사할린, 중국의 대만과 랴오닝반도 남부를 처리하는 문제를 논의하지 않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포츠담회의에 수행단 일원으로 참석한 딘 러스크는 회의기간 중에 진행된 38도선 분할방안결정과정에 실무자로 관여한 것이 분명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38도선 분할방안이 1945년 8월 15일 백악관 심야회의에서 황급히 결정되었다는 딘 러스크의 회고담은 날조된 거짓말인 것을 알 수 있다. 

 

 

5. 민족분렬의 재앙은 미국이 저지른 만행 

 

38도선 획정사건에 관한 딘 러스크의 회고담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완범 교수가 집필했고, 2013년 서울에서 출판된, ‘한반도 분할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에서 확인된다. 그 책에서 이완범 교수는 1949년 6월 17일 미국군 해리스 대령이 당시 미국 전쟁성 작전국장이었던 존 헐(John E. Hull)과 진행한 전화통화대담기록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하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다. 

 

포츠담회의에서 미국 국무장관 제임스 번스(James F. Byrnes)는 미국 군대가 조선반도에 상륙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소련과 함께 조선반도를 분할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 전략가들은 3개의 주요항구(원산, 인천, 부산)를 주목했고, 이 중 2개의 항구(인천과 부산)을 우리 쪽에 포함시키고, 서울 바로 북쪽에 (분할)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어) 38선을 따라 (분할)선을 긋는 것이 가장 좋은 위치라고 판단했다.”  

 

1945년 7월 포츠담회의에서 일본점령계획을 수립하는 작업에 참여한 에드워드 로우니(Edward L. Rowny)는 노환으로 사망하기 3년 전인 2014년 서울에서 ‘운명의 1도’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출판했는데, 그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다. 로우니의 회고록에 따르면, 식민지조선을 분할점령하는 전략회의에서 딘 러스크와 앤드루 굿패스터(Andrew J. Goodpaster)는 남북을 39도선으로 분할하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39도선은 평양과 원산을 잇는 선이다. 그런데 그들의 직속상관 조오지 링컨(George A. Lincoln)은 남북을 38도선으로 분할하자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조오지 링컨은 당시 미국 예일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였던 니컬러스 스피크만(Nicholas J. Spykman)이 제시한 이론에 근거하여 38도선으로 분할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스피크만은 1944년에 펴낸 ‘평화의 지리학(The Geography of the Peace)’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지구 북반부가 38도선을 경계로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미국의 국익이 지정학적으로 결정된다는 이론을 제시했는데, 그런 이론에 귀가 솔깃해진 조오지 링컨은 스피크만의 이론을 근거를 내세우면서, 남북을 39도선으로 분할하자는 참모들의 주장을 꺾고 자신의 38도선 분할방안을 밀어부쳤다는 것이다. <사진 5> 

 

▲ <사진 5> 위의 사진은 한미연합군이 북침전쟁연습을 벌이는 장면이다. 미국군이 주도하고 한국군이 참가하는 북침전쟁연습이다. 평화협정체결을 거부하고 침략무력증강과 북침전쟁연습을 끊임없이 감행하는 미국은 이 글을 집필하고 있는 2020년 8월 16일 오늘도 북침전쟁연습에 여전히 광분하고 있다. 미국의 광기어린 전쟁책동을 물리치고 미국의 집요한 지배관리책동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민족자주를 쟁취하고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고 조국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  

 

위에 인용한 회고담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은 포츠담회의에서 전후 세계질서를 자기들의 제국주의적 이익에 맞게 재편하기 위한 방편으로 38도선 분할점령안을 확정했다. 1945년 8월 15일 직후 해방의 기쁨으로 들끓는 삼천리강토 위에 하루빨리 민주주의통일공화국을 건설하려는 우리 민족의 열망과 투쟁이 고조되고 있었을 때, 미국은 우리 강토를 38도선으로 갈라놓고 그 남부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역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의 38도선 분할점령은 우리 민족에게 재앙의 근원이었다. 1,000년 동안 한 나라 강토에서 함께 살아온 우리 민족이 미국의 38도선 분할점령 때문에 남북으로 갈라지는 재앙에 빠졌고, 그로부터 5년 뒤에는 6.25전쟁이 일어났다. 미국의 38도선 분할점령으로 시작된 민족분렬의 재앙이 75년 동안 지속되는 바람에 우리 민족은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겪어야 했다. 지금도 미국은 평화협정체결을 거부하고 침략무력증강과 북침전쟁연습을 끊임없이 감행하면서 우리 민족의 통일국가건설운동을 악랄하게 반대하고 있다. 우리 강토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미국은 천추에 용납 못할 분단원흉이다.


2020/08/05

백두산권총은 언제 쓰이는가?

[한호석의 개벽예감](406)

자주시보 2020년 08월 03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백두산기념권총수여식

2. 6분 동안 포탄 17만발 쏜다 

3. 40분 동안 미사일 600발 쏜다

4. 절묘한 비행술로 시작되는 대공습

5. 전선대련합부대들과 기갑부대들의 협공

6. 전방남진공격과 후방기습공격의 배합

7. 수중-수상연합함대의 전투력

8. 청와대로 가는 길

 

 

1. 백두산기념권총수여식

 

2020년 7월 26일 오후 평양에 있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백두산기념권총수여식’이 진행되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위대한 전승의 날을 맞으며 공화국무력의 주요지휘성원들에게.....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뜻깊은 <백두산>기념권총을 직접 수여하시였다”고 한다. 

 

조선에서 권총을 생산한 역사를 살펴보면, 1960년대에 소련산 떼떼(TT)권총을 모방하여 64식 권총과 68식 권총을 생산했고, 1980년대에 체코산 CZ-75권총을 모방하여 백두산권총을 생산했다. 체코산 CZ-75권총은 성능이 우수해서 조선만이 아니라 미국, 로씨야, 중국, 영국, 이딸리아, 이스라엘, 스위스를 비롯한 무기생산국들이 모방생산했으며, 지금도 미국, 로씨야, 이스라엘, 뽈스까, 뛰르끼예, 에스빠냐, 브라질을 비롯한 27개국에서 CZ-75권총을 모방생산한 권총을 사용하고 있다. 조선이 1980년대에 생산한 백두산권총은 구경이 9mm이고, 사거리가 40m이며, 15발 탄창이 들어가는 자동사격권총이다. 

 

그런데 올해 조선에서 신형 백두산권총이 생산되었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수여식에 참석한 군사지휘관들에게 “우리 군수로동계급이 새로 개발생산한 <백두산>권총을 기념으로 수여”했다고 보도했다. 신형 백두산권총은 기존 백두산권총보다 더 우수한 성능을 지녔다. 

 

백두산권총은 두 종류인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에게 직접 수여하는 백두산기념권총이 있고, 일반 군사지휘관들에게 널리 지급되는 백두산권총이 있다. 일반 군사지휘관들에게 지급되는 백두산권총에는 장식이 없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수여하는 백두산기념권총은 특별히 제작되었다. 최고령도자의 존함이 권총 손잡이 윗부분에 금박으로 새겨졌고, 총신에는 밀림 속의 백두산 정상이 금박으로 새겨졌고, 손잡이 중앙부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장이 금박으로 새겨졌으며, 방아쇠가 금색으로 도금되었다. 

 

수여식 연설을 마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군사지휘관들을 한 사람씩 연단 위로 불러 백두산기념권총 수여증서와 권총이 들어있는 보관함을 수여했다. 백두산기념권총을 수여받은 군사지휘관은 31명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백두산기념권총은 “준엄한 결전의 길에서 생사운명을 같이하게 될 혁명의 무기”라고 한다. 이것은 백두산기념권총이 제식권총이 아니라, 실전무기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조선인민군 군사훈련현장을 촬영한 보도사진들을 보면, 군사지휘관이 백두산권총을 높이 추켜들고 병사들과 함께 전투구호를 외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백두산권총이 실전무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전의 날이 오면, 조선인민군 고위급 군사지휘관 31명은 최고령도자가 자기들에게 친히 수여한 백두산기념권총을 높이 추겨들고 전투를 지휘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여식에서 “<백두산>기념권총을 높이 추켜들고 김정은 동지를 위하여 한 목숨 바쳐 싸워나갈 심장의 결의를 열광적으로 터쳐올렸”던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수여식을 마치고 군사지휘관들과 함께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를 찾아 인민군렬사들에게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평양 석박산 기슭에 있는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역에는 6.25전쟁 중에 전사한 ‘전시공화국영웅’ 579위의 묘비가 있다. 

 

지난 7월 27일은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때로부터 67주년을 맞은 날이다. 7월 27일이 정전협정체결일이라는 사실을 아는 남측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지만, 북측에서는 그날을 전승의 날로 성대히 기념한다. 전승의 날은 조국해방전쟁승리를 기념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남측에서는 그 전쟁을 한국전쟁이라고 부르지만, 북측에서는 그 전쟁을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60주년 또는 70주년 같은 정주년에 특별한 행사를 개최하는 북에서 올해는 전승의 날 정주년이 아닌데도 백두산기념권총 수여식,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 참배, 제6차 전국로병대회를 진행했다. 이런 사정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근래에 조성된 군사상황에 대처하여 지난 5월 23일 확대회의를 소집했고, 6월 23일에 예비회의를 소집했고, 7월 18일에 확대회의를 소집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은 이 세 차례 회의들에서 “군사적 대책에 관한 명령서들”에 서명하였다고 한다.  

 

“군사적 대책에 관한 명령서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2020년 7월 18일 당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 비공개회의에서 15명 핵심위원들이 토의, 의결했고,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서명한 대남군사행동에 관한 명령서이다. 대남군사행동을 북측 용어로 표현하면 “정의의 조국통일대전”이므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7월 18일 비공개회의에서 조국통일대전에 관한 명령서에 서명했고, 지난 7월 26일에는 그 명령서를 실행에 옮길 고위급 군사지휘관 31명에게 백두산기념권총을 수여한 것이다. 

 

백두산기념권총을 수여받고 충성을 맹세한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은 조국통일대전에 관한 명령서를 실행에 옮길 결전의 날에 대비하여 임전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7월 26일 백두산기념권총 수여식에서 “철저한 림전태세에서 우리 당의 대업을 굳건히 받들어나갈 불같은 맹세를 다짐하였”던 것이다.  

 

결전의 날이 오면, 그들은 조국통일대전의 전투임무들을 각자 실행할 것으로 예견된다. 나는 2013년과 2015년에 네 차례에 걸쳐 <자주시보>에 결전씨나리오를 발표했는데, 그 이후 군사정세가 많이 변해서 새로운 정보들을 가지고 수정, 보완한 다섯 번째 결전씨나리오를 이번에 작성했다. 글의 길이가 제한되어, 싸이버전에 관한 서술은 이번 결전씨나리오에서 생략되었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20년 7월 26일 오후 평양에 있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진행된 백두산권총수여식 장면이다. 북에서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승리의날'로 기념하는 7월 27일을 하루 앞두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고위급 군사지휘관 31명에게 백두산기념권총과 수여증서를 친히 수여했다. 백두산기념권총은 최고령도자의 믿음의 징표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백두산기념권총을 수여받은 군사지휘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두리에 모여 수여증서를 손에 들고 최고령도자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백두산기념권총은 "준엄한 결전의 길에서생사운명을 같이하게 될 혁명의 무기"라고한다. 백두산권총은 제식권총이 아니라 실전무기다. 결전의 날이 오면, 조선인민군 고위급 군사지휘관 31명은 백두산기념권총을 높이 추켜들고 전선으로 달려나갈 것이다.  

 

 

2. 6분 동안 포탄 17만발 쏜다 

 

2016년 4월 10일 당시 미국 육군 태평양사령관이었던 빈센트 브룩스는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그의 발언에 따르면, “북조선은 116,000문의 포를 보유했는데, 그 중 대부분은 군사분계선에서 60km 안에 배치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언급한 116,000문은 방사포, 자행포, 견인포, 비반충포, 박격포를 모두 합친 총보유량이다. 그런데 한국군사과학기술학회지 2013년 4월호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포병전력의 74%가 군사분계선에서 10km 안에 전진배치되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이 보유한 각종 포 116,000문 중에서 74%가 군사분계선에서 10km 안에 배치되었으면, 전방지대에 전진배치된 포는 85,840문이다. 결전의 시각, 조선인민군 포병들은 초탄 약 85,000발을 일제사격으로 퍼붓는다.  

 

한국군 포병들이 대포병탐지레이더로 조선인민군의 포사격원점을 포착하고 자주포를 조준하여 대응사격을 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과 격발된 포탄이 타격대상까지 날아가는 시간을 합하면, 한국군에게 주어진 반격시간은 약 6분이다. 그런데 바로 그 6분 동안 조선인민군 포병들은 포탄 17만 발을 거대한 불우박처럼 퍼붓는다. 

 

2014년 6월 6일 미국의 반사회주의언론매체 <자유아시아방송>은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에게 새로운 전시사격수칙이 하달되었다고 보도했다. 새로운 전시사격수칙에 따르면,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마지막 전쟁으로 되기 때문에 포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므로, 조준사격을 하지 말고 포탄창고에 있는 포탄을 모두 퍼붓는 밀집사격, 면적사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은 압도적인 불우박 화력타격으로 한국군 전투부대들을 제압하고, 개전 30분 만에 승기를 잡는 것이다. 불우박 화력타격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의 전쟁전략을 모르는 사람들은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이 무차별 포사격으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지 않을까 우려하지만, 그것은 기우다.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의 불우박 화력타격은 서울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2016년 3월 24일 조선인민군 전선대련합부대 장거리포병부대들은 강원도 원산 인근 바닷가에서 집중화력타격을 연습했는데, 그들을 현지지도한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포병들에게 “고도의 격동상태를 유지하여 일단 공격명령이 내리면 원쑤들이 배겨있는 악의 소굴인 서울시 안의 반동통치기관들을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리며 진군하여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지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인민군 포병들 중에서 서울타격임무를 맡은 포병들은 정밀조준사격으로 서울의 반동통치기관들을 파괴하는 것이지, 무차별사격으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둘째,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에서 경험한 것처럼, 조선인민군 포병부대의 선제타격이 시작되면 한국군 전투원들은 방호시설 안으로 황급히 대피해야 한다. 따라서 조선인민군 포병부대의 불우박 화력타격은 방호시설 밖에 있는 한국군 무장장비들과 비방호 군사시설들을 파괴하여 한국군의 전투능력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한국군 방호시설을 파괴할 조선인민군의 타격수단은 따로 있다.   

 

 

3. 40분 동안 미사일 600발 쏜다

 

2017년 8월 15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전략군사령부 지휘소를 시찰하는 사진을 보도했는데, ‘남조선작전지대’라는 제목이 적힌, 미사일타격권을 표시한 지도가 그 지휘소에 걸려있었다. 그 작전지도에는 군사분계선 이남 전역을 가로로 4등분한 미사일타격선 네 줄이 그어졌는데, 각 미사일타격권마다 미사일로 타격할 한국군 전투부대들 및 전략거점들의 위치가 표시되었고, 화력타격에 사용할 미사일 종류가 표기되었다. 작전지도에 표시된 미사일타격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연합뉴스> 2013년 3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각종 미사일 2,000여 발을 이미 실전배치했고, 1990년대 말을 기준으로 각종 미사일을 매년 100발씩 추가로 생산해왔는데, 미사일생산능력은 2013년 당시에 더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런 계산법에 따르면, 2020년 8월초 현재 조선인민군은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약 4,000발을 갱도진지들에 비축한 것이다.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각종 미사일 약 4,000발 중에는 주일미국군기지들을 타격하는 준중거리탄도미사일도 있고, 괌과 알래스카와 하와이에 있는 전략거점들을 타격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도 있고, 미국 본토 전략거점들을 타격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도 있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각종 미사일 약 4,000발 중에서 한국군과 주한미국군을 공격할 단거리탄도미사일과 단거리순항미사일은 약 3,000발로 추산된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ABC>의 2017년 3월 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조선인민군이 미사일발사대차 약 200대를 보유한 것으로 추산했다고 한다. 미국 언론매체 <디플로맷> 2018년 6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군사정보기관은 조선이 미사일발사대차를 매년 지속적으로 생산한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하면, 2020년 8월초 현재, 조선인민군은 미사일발사대차 약 400대를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발사대차 400대 중에서 약 100대는 미국군 태평양작전구역과 미국 본토의 전략거점들을 타격할 때 사용할 것이고, 나머지 약 300대는 한국군과 주한미국군을 타격할 때 사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결전의 시각,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들은 초탄 약 300발을 일제히 발사하는 것이다. 그들이 초탄을 발사하고 제2탄을 발사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이다. 결전의 시각, 그들은 미사일 600발을 40분 동안 발사하는 것이다. 

 

둘째,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이 불우박 화력타격으로 한국군 방어선을 무너뜨릴 때,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들은 포탄으로 파괴되지 않는 한국군의 견고한 방호시설들과 전략거점들을 향해 정밀타격미사일을 발사한다.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들은 40분 동안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약 600발을 발사하여 한국군과 주한미국군의 전쟁지휘소, 레이더, 지대공미사일기지, 공군기지, 해군기지, 무기고, 유류저장소, 통신망, 전력공급망을 비롯한 1차 타격대상 600개를 파괴한다. 

 

셋째,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들은 발사징후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갱도진지에서 발사지점까지 이동하여 미사일을 수직으로 세우는 발사준비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훈련을 해왔다. 미사일발사대차가 갱도진지에서 밖으로 나온 뒤 발사준비시간이 5분을 넘으면, 미국군과 한국군의 미사일감시망이 발사징후를 포착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들은 갱도진지에서 밖으로 나와 5분 안에 재빨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무징후신속발사술을 훈련해왔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2017년 6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 관리는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들이 갱도진지에서 미사일발사대차를 밖으로 꺼내 신속히 이동하여 발사하고, 발사지점도 자주 변경하는 바람에 미국 정찰위성이 발사징후를 포착할 시간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넷째, 한국군은 조선인민군의 미사일공격에 대비하여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해놓았지만, 실전에서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정황이 발생할 것이다. 한국군 미사일방어체계는 한 번에 미사일 2~3발을 요격하는 제한적인 능력밖에 없는데,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은 초탄 85,000발을 사격하고,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들은 초탄 300발을 발사한다. 이처럼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과 미사일부대들이 미사일, 방사포, 장거리포가 혼합된 거대한 불우박을 퍼부으면, 한국군의 미사일방어체계는 무용지물이다. 한국군 미사일부대도 미사일공격체계를 구축했지만,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들이 발사한 초탄 300발을 맞으면 미사일공격체계는 반격능력을 상실한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2020년 2월 28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현지지도 밑에 진행된합동타격훈련에서 포병들이 불우박 화력타격을 연습하는 장면이다. 합동타격훈련이므로 포병부대들만 훈련에 참가한 것이 아니라 해군부대들, 항공 및 반항공부대들도참가했다. 자료에 의하면,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은 방사포, 자행포, 견인포, 비반충포, 박격포 등 약 85,000문을 군사분계선으로부터 10km 안에 전진배치했다고 한다.이것은 결전의 시각, 조선인민군 포병들이 초탄 약 85,000발을 일제사격으로 퍼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압도적인 불우박 화력타격으로 한국군 전투부대들을 제압하고, 개전 30분 만에 승기를 잡을 것이다.  

 

 

4. 절묘한 비행술로 시작되는 대공습 

 

최근 조선인민군은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고, 공산원형오차가 5m 이내인 초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저고도비행활공도약미사일과 저고도비행조종방사포를 실전배치하는 중이다. 저고도비행활동도약미사일은 2019년 8월 16일 제1차 시험발사를 진행했고, 2020년 3월 21일 제2차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계렬생산에 들어갔다.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400km다. 다른 한편, 계렬생산에 들어간 저고도비행조종방사포는 2020년 3월 2일 화력타격훈련에서 사용되었는데, 구경이 600mm인 이 거대한 조종방사포의 사거리도 400km다. 조선인민군이 한국군과 주한미국군의 방공기지, 공군기지들을 향해 저고도비행활공도약미사일과 저고도비행조종방사포를 연속발사하여 초정밀타격으로 파괴한 직후, 조선인민군 항공군부대들이 대공습을 시작한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다종다양한 기종을 대량으로 보유했는데,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 적기와 공중전을 벌이고, 적진을 공습하는 추격습격기들인 미그-21(180대), 미그-23(56대), 미그-29(40대) 

- 지상에 고정된 대상을 공격하는 폭격기(80대), 지상공격기로 개조된 구형 추격기(198대)

- 지상에서 이동하는 대상을 공격하는 각종 지상공격기(64대), 각종 저공비행지상공격기(170대), 

- 경무장헬기(80대), 혁신-2 중무장공격헬기(140대)

 

북측 내부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보유한 작전기들 가운데 미그-29 이외의 다른 작전기들은 내구년한이 지나고 낡아서 쓸모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조선인민군은 각종 작전기 부품들을 자체로 생산하기 때문에, 돌려막기식 부품교체를 하지 않고, 정비와 수리를 잘해서 언제든지 성능을 최대로 발휘할 상태를 유지할 뿐 아니라, 작전종심이 매우 짧은 한반도 공역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하게 작전기들을 개조해놓았다. <연합뉴스> 2016년 7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평안북도 구성에 있는 방현비행기공장에서는 이미 1960년대부터 미그 전투기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가장 중시하는 추격습격기의 성능은 날쌘 회전비행을 하는 민첩성(agility)과 기동성(maneuverability)이다. 이것은 근접공중전과 공습작전에 필요한 성능이다. 미그-21, 미그-23, 미그-29가 날쌘 회전비행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기종들이다. 

 

<중앙일보> 2014년 4월 7일 보도에 따르면, 2014년 3월 31일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근접공중전이 벌어질 위험한 상황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날 오후 12시 40분경 조선인민군 미그 전투기로 추정되는 비행체 한 대가 한국군 레이더 상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남하하더니 ‘북방한계선(NLL)'을 넘었다. 백령도에 주둔한 한국군 전투원들은 속사포 300여 발을 쏘는 경고사격을 했고, 백령도 남쪽 상공에서 초계비행을 하던 한국군 F-15K 전투기 2대와 F-16 전투기 1대가 현장 상공에 날아갔다. 조선인민군 항공군도 미그-29 2대와 다른 기종 전투기 2대를 긴급히 출격시켰다. 긴장된 상황에서 한국군 F-15K 조종사에게 그 비행체를 격추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그런데 F-15K 조종사가 공대공미사일 발사단추를 누르려는 순간, 비행체가 갑자기 레이더에서 사라지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레이더에서 사라진 비행체를 육안으로 식별하기 위해 F-15K가 백령도 상공에 접근했지만, 비행체를 찾지 못했다. 

 

미그-23은 평소에도 서해5도 분쟁수역 상공에서 초계비행을 하고 있으므로, 레이더에서 갑자기 사라진 비행체는 미그-23인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한국 공군은 비행체가 갑자기 레이더에서 사라진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지만, 그 현상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전투기에서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려면, 표적비행체를 향해 레이더(line-of-sight beam riding)를 비춰야 하는데, 미그-23은 F-15K가 자기에게 공대공미사일을 쏘기 위해 레이더를 비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정황에서는 긴급히 회피기동을 해야 하는데, 미그-23은 무전파초저공비행으로 회피기동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그-23 전투비행사는 전파를 발신하는 모든 장치를 끄고, 해수면 쪽으로 급강하하여 F-15K의 레이더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고도로 숙련된 비행술과 담력이 있어야 무전파초저공비행을 할 수 있는데,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근접공중전과 공습작전에서 사용하는 무전파초저공비행술을 연마했다.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들이 발사한 미사일 약 600발을 맞은 한국군과 주한미국군의 방공기지들, 공군기지들이 반격능력을 상실했을 때, 조선인민군 항공군부대들은 위에 열거한 각종 작전기들 가운데 약 300대를 출격시켜 대공습을 시작한다. 최첨단 항법장치와 최첨단 레이더를 장착했다는 스텔스전투기가 따라올 수 없는 절묘한 비행술로 시작되는 대공습이다. 

 

 

5. 전선대련합부대들과 기갑부대들의 협공

 

불우박 화력타격을 맞은 한국군 전투부대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조선인민군 전선대련합부대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진한다. 전선대련합부대들은 제1군단, 제2군단, 제4군단, 제5군단이다. 조선인민군 군단은 보병사단(5개), 땅크려단(1개), 자행포려단(1개), 방사포려단(1개), 고사총련대(1개), 박격포련대(1개), 공병련대(1개), 경전차대대(2개), 반땅크미사일대대(1개), 정찰대대(1개), 포병정찰대대(1개), 기술공병대대(1개), 통신대대(1개), 화학대대(1개), 도로건설공병대대(1개)로 편성되었다. 

 

조선인민군 전선대련합부대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으려면 콘크리트장벽과 차단물을 제거해야 한다. 콘크리트장벽과 차단물을 제거하는 임무는 조선인민군 전선대련합부대 전진보장구분대 소속 폭파전문병들이 수행한다. 그들은 군사분계선으로 접근하여 콘크리트장벽과 차단물을 폭파한다. 전진보장구분대가 차단물을 폭파하여 진격로를 열어놓는다는 사실은, 2017년 1월 28일에 진행된 땅크장갑보병련대 겨울철도하공격전술훈련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전진보장구분대가 콘크리트장벽과 차단물을 폭파하여 진격로를 열어놓으면, 4개 전선대련합부대들, 1개 땅크군단, 4개 기계화군단들, 2개 도하기계화보병려단들이 무장헬기들의 공중엄호사격을 받으며 총공격을 개시하여 남진한다.   

- 제820땅크군단은 한국군 방어선 가운데 가장 약한 부분을 돌파하여 고속으로 남진한다. 제820땅크군단이 보유한 신형 땅크는 1,650대다.  

- 제806기계화군단, 제815기계화군단, 제425기계화군단, 제108기계화군단에 배속된 땅크, 장갑차, 자행포들도 고속으로 남진한다. 서부전선 기계화군단은 서부방어선을 돌파하여 경기도 연천, 동두천, 의정부로 진격하는 고속기동전을 벌인다. 중서부전선 기계화군단은 중부방어선을 돌파하여 서남부방향으로 우회진격하여 수도권의 퇴로를 차단하는 고속기동전을 벌인다. 중동부전선 기계화군단과 동부전선 기계화군단은 중동부방어선과 동부방어선을 각각 돌파하여 대전, 군산, 광주, 목포로 진격하는 고속기동전과 대구, 울산, 진주, 부산으로 진격하는 고속기동전을 벌인다. 

- 1개 도하기계화보병려단은 수륙양용장갑차와 수륙양용경전차를 타고 한강 하구를 건너 강화도, 김포반도, 인천에 상륙하고, 수도권 동남부방향으로 우회진격하여 수원을 점령하고 수도권의 퇴로를 차단한다. 다른 1개 도하기계화보병려단은 남한강을 건너 양평, 여주, 이천을 점령하고 수도권의 퇴로를 차단한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근위서울류경수105땅크사단 소속 땅크병들이 실전과 유사한 환경에서 땅크기동전을 연습하는 장면이다. 땅크 포탑 위에 휘날리는 붉은 기는 최고사령관기다.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전투훈련 중에 공화국기와 최고사령관기를 대오 앞에 휘날리며 진격한다. 근위서울류경수105땅크사단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장 중시하는 제820땅크군단이다. 제820땅크군단이 보유한 신형 땅크는 1,650대다. 그 군단에는 땅크 이외에 자행포와 장갑차도 배속되었다. 결전의 날이 오면, 그들은 무장헬기들의 공중엄호사격을 받으며 한국군 방어선 가운데 가장 약한 부분을 돌파하여 고속으로 남진할 것이다. 기갑부대들이 남진하는 고속기동전의 선봉에 제820땅크군단이설 것이다. 결전의 날이 오면, 제820땅크군단은 고속기동전으로 진격하여 남측 각지에 구축된 한국군 후방방어선을 돌파하고, 대도시들에 가장 먼저 진입할 것으로 예견된다.  

 

 

6. 전방남진공격과 후방기습공격의 배합

 

조선인민군 4개 전선대련합부대들, 1개 땅크군단, 4개 기계화군단들, 2개 도하기계화보병려단들이 무장헬기들의 공중엄호사격을 받으며 남진하는 때에 맞춰 조선인민군 경보병부대들은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뚫린 길이가 40~50km인 남하갱도를 통해 후방침투기동을 시작한다. 조선인민군 공병부대들이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40~50km를 뚫은 16개의 남하갱도를 완성했다는 사실은 <뉴시스> 2017년 5월 24일 보도에 나온 한국군 당국의 정보자료에서 알 수 있는데, 조선인민군 공병부대들의 뛰어난 갱도굴착능력과 50년에 이르는 오랜 갱도건설기간을 생각하면, 20개의 남하갱도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민군 경보병부대들에 배속된 총병력수는 14만명이다. <연합뉴스> 2011년 2월 9일 보도에 따르면, 2011년 2월 8일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었던 월터 샤프는 한국 국회 국방위원들이 참석한 비공개 간담회에서 조선인민군 경보병부대들에 배속된 총병력수가 14만명이라고 밝혔다. 미국군 소식지 <성조지> 2017년 6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시간당 무장병력 약 3,000명이 남하갱도를 통해 이동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사분계선 남쪽 전방지대에 은폐된 수많은 갱도출구들에서 조선인민군 경보병부대 전투원들이 시간당 60,000명씩 물밀 듯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갱도출구에서 쏟아져 나온 그들은 불우박 화력타격을 맞아 정신을 잃은 한국군 전투부대 뒤쪽으로 신속히 접근하여 후방기습공격을 시작한다. 

 

2020년 7월 18일 강화도에서 일어난 월북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국군 전투부대들은 전방만 감시하기 때문에 후방은 무방비상태다. 전방에서 밀려드는 조선인민군의 압도적인 공격에 맞서 힘겨운 전투를 벌이는 한국군 전투부대의 후방을 조선인민군 경보병부대들이 기습적으로 공격하면, 한국군 전투부대들은 완전히 포위된다. 

 

조선인민군이 전방남진공격과 후방기습공격을 배합한 작전으로 한국군 전투부대들을 포위하는 까닭은, 한국군 전투원들을 되도록 살상하지 않고, 그들의 항복을 받아내 무장을 해제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북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군은 비록 적이지만, 앞으로 통일공화국에서 함께 살아야 할 동포청년들이므로, 그들을 대량살상하는 것은 조국통일대전의 목적에 어긋난다.  

 

그래서 조선인민군 경보병부대들에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에서 파견한 함화공작반이 배속되는 것이다. 함화공작은 포위당한 한국군 장병들을 투항시키는 대적정치사업이다. 이런 사실은 2004년 4월 7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지시로 작성된 ‘전시사업세칙’에 명시되었다. 이 문서는 2005년 1월 5일 <경향신문>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7. 수중-수상연합함대의 전투력

 

<문화일보> 2015년 8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무력충돌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당시 조선인민군 해군 잠수함 약 50척이 동시에 출항하여 “수상전투단의 선두에 전개”되었고, 잠수함의 뒤를 따라 “고속정⟶미사일고속정⟶호위함 순서로” 출동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을 보면, 잠수함이 선봉에 서고, 고속정, 미사일고속정, 호위함 등이 뒤따르는 거대한 수중-수상연합함대가 동해와 서해에서 동시에 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 2015년 8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무력충돌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당시 조선인민군 잠수함 약 50척이 미국의 위성감시망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미국의 위성감시망에서 사라진 조선인민군 잠수함 약 50척은 지하기지가 아닌 군항에 정박된 잠수함들이다. 그러므로 지하기지에서 미국의 위성감시망에 노출되지 않고 출항한 전략잠수함들도 있었을 것이다. <조선일보> 2015년 8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잠수함 약 50척이 동시에 출동한 것은 “선진국보다도 높은 가동률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었다”고 한다.   

 

<나우뉴스> 2014년 7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2013년에 비공개로 진행된 컴퓨터모의실험에서 한국 해군이 최신형 대잠수함작전장비를 모두 동원했어도 조선인민군 잠수함 1척을 탐색하고 격침할 가능성은 25% 이하로 나왔다고 한다. 잠수함 1척을 탐색할 능력도 갖지 못한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잠수함 50척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그냥 손을 놓고 바라만 보아야 한다. 조선인민군 잠수함 50척은 동해와 서해에서 남하하여 부산 앞바다에서 제주도 서귀포 앞바다를 거쳐 목포 앞바다에 이르는 남해 전역을 완전히 봉쇄한다. 그러면 미국 항모타격단과 상륙강습집단은 한반도 근해에 아예 얼씬하지 못한다.  

 

또한 위에 언급한 비공개 컴퓨터모의실험에서 한국 해군 수상함들은 조선인민군 잠수함의 어뢰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수중-수상연합함대가 남하하여 수중과 수상에서 동시에 공격하면, 잠수함과 수상함이 분산되어 작전하는 한국 해군 함대는 살아남기 힘들다. 

 

조선인민군 잠수함들 중에서 수중배수량이 3,000t 이상인 대형 잠수함들은 일본 요꼬스까 앞바다, 사세보 앞바다, 오끼나와 앞바다에 미리 도착해 수중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상황을 오판한 미국이 스텔스전투기와 장거리전략폭격기를 동원하여 조선을 공습할 징후를 보이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일본에 있는 미국군기지들을 파괴한다. <사진 4> 

 

▲ <사진 4> 이 위성사진은 함경남도 리원군에 있는 차호 잠수함기지를 촬영한 것이다.리원만 전역을 잠수함기지로 전변시켜 거대한 잠수함기지를 건설한 것을 한 눈에 알수 있다. 사진 중앙부에는 잠수함과 수상함이 정박하는 부두가 곳곳에 보이고, 사진 중앙부 맨 아래쪽에는 해안동굴식 잠수함기지 출입구가 보이고, 사진에서 맨 오른쪽 아래에는 잠수함이 해안동굴식 잠수함기지에서 출항하여 동해로 나아가는 물길직통로가 보인다. 결전의 날이 오면, 잠수함들이 선봉에 서고, 그 뒤에 고속정, 미사일고속정,호위함 등이 따르는 거대한 수중-수상연합함대가 동해와 서해에서 동시에 출동할 것으로 보인다.  

 

 

8. 청와대로 가는 길

 

수원-원주-삼척 제1공격선 이남의 후방지역에는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 중에서도 최정예부대로 알려진 특수작전군이 불시에 출현한다. 그들은 저공비행습격기(AN-2), 수송기, 기동헬기, 동력활공기(powered paraglider), 잠수정, 공기부양정 등 다종다양한 침투수단을 사용하여 수원-원주-삼척 제1공격선 이남의 후방지역에 깊숙이 침투하여 전략거점들을 점령한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7년 8월 25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들의 대상물타격경기를 현지지도하면서 특수작전부대 전투원들에게 “오직 총대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공중, 해상, 수상, 지하에서 다종다양한 침투수단을 타고 남측 후방 곳곳에 침투하여 불시에 동시다발로 기습공격을 시작하면, 한국군 후방방어선은 무너지고 전략거점들은 점령된다.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은 2017년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태양절 경축 군사행진에서 자기 존재를 처음 세상에 알렸다.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은 육군, 해군, 항공군 및 반항공군, 전략군에 이어 제5군종으로 창설되었는데, 총병력수는 10만명으로 추산된다. 

 

특수작전군 전투원들을 후방으로 공수할 수송기는 9대, 기동헬기는 100대다. 특수작전군이 공중침투작전에 사용할 30인승 저공비행습격기는 2015년 당시 약 500대였는데, 2015년부터 자체로 생산하여 2020년 8월초 현재 약 700대로 증가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특수작전군 전투원 21,000명이 저공비행습격기를 타고 공중침투전을 벌이는 것이다. 황해남도 태탄비행장에서 이륙한 저공비행습격기는 약 40분 만에 수원-원주-삼척 제1공격선 이남으로 남하한다. 저공비행습격기는 지상으로부터 30m 상공에서 초저공비행을 한다. 

 

특수작전군이 수중침투작전에 사용할 잠수정은 45척이다. 18인승 잠수정이 36척, 6인승 잠수정이 8척이다. <자유아시아방송> 2015년 12월 8일 보도에 따르면, 청진조선소에서 2015년부터 30인승 수중침투용 잠수함을 건조한다고 한다. 청진조선소의 잠수함건조능력은 연간 5척이므로, 2015년부터 4년 동안 30인승 수중침투용 잠수함을 최소 20척 건조했다. 또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은 8인승 반잠수정 10척을 보유했다. 특수작전군은 위에 열거한 잠수정, 수중침투용 잠수함, 반잠수정 74척을 동원하여 전투원 2,160명이 참가하는 수중침투전을 벌인다. 

 

저공비행습격기를 타고 경기도 평택 상공으로 공중침투한 특수작전군 전투원 21,000명과 잠수정, 수중침투용 잠수함, 반잠수정 등을 타고 평택항으로 수중침투한 특수작전군 전투원 2,160명은 평택시 팽성읍에 있는 K-6 미국군기지(캠프 험프리스)와 평택시 신장동에 있는 K-55 오산공군기지를 완전히 포위하고, 그 두 기지에 있는 주한미국군 장병 및 미국인 민간인 62,000여 명을 생포한다. <자유아시아방송> 2012년 3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전투원들은 주한미국군기지를 습격하여 미국군 장병들을 생포할 때 사용할 간단한 영어회화문장 100개를 암기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은 수상침투작전에 공기부양정을 사용한다. 서해에 있는 공기부양정기지들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기지는 황해남도 옹진군 련봉리에 있는 공기부양정기지다. 미국의 군사전문 온라인매체 <평행선 너머(Beyond Parallel)> 2018년 2월 5일 기사에 따르면, 련봉리 기지에는 공기부양정 54척이 배치되었다고 한다. <조선일보> 2011년 8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에서 생산하는 신형 공기부양정은 전투원 60명을 태우고 시속 110km로 나는 듯이 항해한다고 한다. 련봉리 기지에서 인천항까지 거리는 약 250km다. 결전의 날이 오면, 신형 공기부양정 54척에 승선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전투원 3,240명은 련봉리 기지를 출발하여 인천 앞바다를 거쳐 김포반도를 관통하는 18km의 아라뱃길(경인운하)과 한강을 고속으로 질주하여 인천국제공항을 점령하고, 서울 중심부에 진입하여 청와대, 국회, 국방부, 주한미국대사관, 국정원, 경찰서, 방송언론기관, 통신소, 한국은행, 서울역 등을 점령한다.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은 2016년 12월 10일 활공낙하산, 기동헬기, 저공비행습격기를 타고 공중침투하여 평양 외곽에 있는 청와대 모형건물을 습격하는 훈련을 했는데, 당시 북측 언론매체들은 전투원들이 “심판대에 꿇어앉힐 악당들을 (청와대 모형건물 안에서) 생포하여” 밖으로 끌어내 기동헬기에 태우고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하면서, “최고사령관 동지께서 언제든 명령만 내리신다면 단숨에 괴뢰들을 쓸어버리고 청와대로 가는 길을 믿음직하게 열어드릴 불같은 맹세를 다짐하였다”고 보도했다. 

2020/07/29

무력충돌위기는 재발된다

[한호석의 개벽예감](405)

자주시보 2020년 07월 27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충돌하는 대남군사훈련과 대북군사훈련

2. 위험한 도발사격 뒤에는 음흉한 정치음모

3. 2015년 8월 20일 ‘남조선해방전쟁계획’이 비준되었다

4. 2015년 8월 21일 전면공격태세 갖춘 조선인민군

 

 

1. 충돌하는 대남군사훈련과 대북군사훈련

 

2020년 7월 20일 <자주시보>에 실린 ‘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 결정한 비공개회의’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는 여러 객관적 사실들에 근거로 하여 다음과 같이 추론했다. 

 

1) 2020년 7월 18일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 비공개회의에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제출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이 승인되었다. 

2)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은 당중앙군사위원회가 승인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비준했다. 

3)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은 교전상대의 저항정도에 따라 한 단계씩 높여가는 식으로 전개될 3단계 군사행동계획이다. 

4) 대남군사행동계획 제1단계는 군사분계선에서 우발적 무력충돌이 일어났을 때 조선인민군의 전투행동을 규정하는 것이고, 제2단계는 우발적 무력충돌이 국지전으로 확대되었을 때 조선인민군의 전투행동을 규정하는 것이고, 제3단계는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전되었을 때 조선인민군의 전투행동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2020년 6월 17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작성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이 검토되고 있다고 하면서, 그 군사행동계획들 가운데 일부내용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가 언급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연대급 부대들과 화력구분대들을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에 전개한다.

2) 민경초소들을 비무장지대에 다시 진출, 전개시킨다.

3) 전 전선에 배치된 포병부대들의 전투직일근무를 증강하고 전반적 전선에서 전선경계근무급수를 1호전투근무체계로 격상시키며 접경지역에서 정상적인 군사훈련들을 재개한다.

4) 전 전선에서 대남삐라살포에 유리한 지역(구역)들을 개방하고, 인민들의 대남전단살포투쟁을 군사적으로 보장하는 안전대책을 세운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사항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 사항이다. 세 번째 사항을 중시하는 까닭은, 그것이 2020년 7월 18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 비공개회의에서 승인되고,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의 비준을 받은 대남군사행동계획 제1단계와 직접 결부된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된, 접경지역에서 재개되는 정상적인 군사훈련들은 연례적인 군사훈련이 아니라 군사분계선에서 우발적 무력충돌이 일어날 것에 대비한 특별한 대남군사훈련이다. 

 

그런데 내가 이 글이 집필하고 있는 2020년 7월 하순 현재 조선인민군은 대남군사훈련을 진행하는 중이다. 미국의 반사회주의선전매체 <자유아시아방송> 2020년 7월 9일 보도에 따르면, 2020년 7월 1일부터 조선인민군은 대남군사훈련을 시작했고,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은 대남군사훈련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전체부대에게 “적과 평화에 대한 사소한 환상도 가지지 말고 언제나 격동상태를 견지하자”라는 내용의 선동자료 제6호를 배포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이 대남군사훈련을 시작한 날은 2020년 7월 1일이었고,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비공개회의에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승인한 날은 2020년 7월 18일이었으므로, 현재 진행되는 대남군사훈련은 이번에 승인된 대남군사행동계획에 따른 특별한 군사훈련이 아니라 연례적인 군사훈련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때라도 김정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 명령하면,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은 즉시 연례적인 군사훈련을 특별한 군사훈련으로 전환시켜 우발적 무력충돌에 대처할 대비태세를 갖출 것이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우발적 무력충돌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대남군사훈련계획을 이미 마련해놓았으므로, 연례적인 군사훈련을 특별한 군사훈련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인민군의 군사훈련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1> 

 

▲ <사진 1> 위의 사진은 2020년 7월 26일 오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진행된 '백두산기념권총' 수여식 장면이다. 조선에서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67주년을 맞이하기 하루 전날, 김정은 당중앙위원회 위원장은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에게'백두산기념권총'을 수여하였다. 이 권총은 조선에서 새로 개발생산한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날 수여식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백두산기념권총'을 수여받은 군사지휘관들이 "전군을 최정예화, 최강군화하는 데힘을 기울이며 철저한 림전태세에서 우리 당의 대업을 굳건히 받들어 나갈 불같은맹세를 다짐하였다"고 보도했다.  

 

1) <로동신문> 2014년 1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5년 1월 1일부터 2011년 12월 14일까지 군사부문을 총 2,490여 차례 현지지도했는데, 이를 연평균 회수로 계산하면 155차례다. 그런데 조선의 언론에 보도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사부문 현지지도는 연평균 50여 차례가 채 되지 않는다. 이런 정황은 군사부문에 대한 비공개현지지도가 공개현지지도보다 3배 이상 많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사부문 현지지도방침을 계승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군사부문에 대한 비공개현지지도를 공개현지지도보다 3배 이상 더 많이 진행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2020년 7월 16일 남측 통일연구원이 ‘김정은 위원장의 2020년 상반기 공개활동 평가와 분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6개월 동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개활동을 진행한 회수는 19차례였는데, 이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과 국가를 영도하기 시작한 2012년 1월 이후 가장 적은 회수라고 한다. 2013년 상반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개활동을 진행한 회수는 근 100차례나 되었고, 2017년부터 2019년까지를 보더라도 매 상반기에 공개활동을 진행한 회수가 평균 40~50차례씩이었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공개활동을 진행한 회수가 19차례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상반기에 진행한 19차례 공개활동 중에서 52.6%에 이르는 10차례가 군사부문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정치부문 공개활동은 4차례, 사회부문 공개활동은 3차례, 경제부문 공개활동은 2차례를 진행했고, 대외부문 공개활동은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지난 6개월 동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공개현지지도를 거의 하지 않고, 군사부문에 대한 비공개현지지도를 집중적으로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2020년 상반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인민군의 군사훈련상태를 점검하는 비공개현지지도와 전략무기개발사업에 대한 비공개현지지도에 집중한 것으로 생각된다. 

 

2) <자유아시아방송> 2020년 6월 1일 보도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이 새로운 훈련방침에 따라 훈련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전에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간부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간부들, 인민무력성 간부들로 구성된 훈련판정검열단이 전투부대들에 내려가 훈련상태를 판정하고 점수를 산출하여 우수, 양호, 합격, 낙제로 순위를 매겼지만, 올해부터는 훈련판정검열단이 전투훈련정황을 해당부대들에 불시에 통보하면, 통보를 받은 부대들이 실전환경에서 훈련하게 되는데, 어느 부대가 실전에 가장 근접한 전투훈련을 벌이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하여 부대별 순위는 물론이고 개별 군사지휘관들의 순위도 매기고, 훈련판정검열에서 뒤떨어진 부대의 지휘관은 엄중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군은 대북군사훈련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2020년 6월 10일 정경두 국방장관은 국방부에서 진행된 ‘2020년 전반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전반기에 한미연합공군전투준비태세훈련과 한미미사일방어체계통합연동훈련 등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20년 6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은 조선인민군의 “육해공 도발시나리오 20여 개에 대한 방어적 차원의 군별, 제대별 대응태세를 집중 점검하고” 있다고 한다. 

 

2020년 7월 1일 주한미국군사령관 로벗 에이브럼스는 서울에서 개최된 한미동맹포럼에서 “전구급 연합훈련은 연합준비태세에 필수적”이라고 하면서 “강도 높은 훈련을 지상과 공중에서 해야 한다. 우리는 상시전투태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상시전투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대북군사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하기 위해 예정된 군사훈련, 다시 말해서 ‘미래연합사령부의 완전한 운용능력(FOC)’을 검증하는 군사훈련을 접어두고, 한미연합군의 전투준비태세를 점검하는 군사훈련에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표명한 것이다. 

 

2020년 7월 21일 정경두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전화회담에서 2020년 8월 중순에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의 목적을 놓고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받기 위한 ‘미래연합사령부의 완전한 운용능력’을 검증하는 한미연합훈련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에스퍼 국방장관은 한미연합군의 전투준비태세를 점검하는 군사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연합뉴스> 2020년 7월 26일 보도를 읽어보면, 한국 국방부와 미국 국방부는 정경두-에스퍼 전화회담 이후 후속협의를 진행하면서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미래연합사령부의 완전한 운용능력’을 검증하는 군사훈련을 진행하면서 한미연합군의 전투준비태세를 점검하는 군사훈련도 병행하는 식으로 절충한 것이다. 올해는 대유행전염병 때문에 군사훈련을 축소할 것이라고 했지만, 미래연합군사령부의 운용능력을 검증하는 군사훈련과 한미연합군의 전투준비태세를 점검하는 군사훈련은 모두 조선을 침공하기 위한 군사훈련이므로,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양자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한미연합군이 지금처럼 긴장이 고조된 군사상황에 아랑곳하지 하지 않고, 2020년 8월 중순부터 조선을 침공하기 위한 대북군사훈련을 강행하면, 조선인민군은 그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인민군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연례적인 대남군사훈련을 접고, 무력충돌이 일어날 것에 대비한 대남군사훈련을 시작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로써 군사적 긴장상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면, 무력충돌위험이 극도로 증대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2. 위험한 도발사격 뒤에는 음흉한 정치음모

 

무력충돌위험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불의의 사태는 2015년 8월에 실제로 일어났는데,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올해 8월에 또 다시 무력충돌위험이 최고조에 이를 수 있는 충분조건이 마련되었다. 이런 형편에서 2015년 8월에 일어난 무력충돌위험의 진상을 돌이켜볼 필요가 생긴다.  

 

2015년 8월 20일 한국군 자주포부대가 군사분계선 북쪽을 향해 연발로 포사격을 감행했다. 당시 한국군 합동참모본부는 조선인민군 포병부대가 고사총 1발과 견인포 3발을 남쪽으로 사격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군 자주포부대에게 대응사격을 명령했다. 그 명령에 따라, 한국군 자주포부대는 조선인민군 포병부대가 사격했다는 시각으로부터 1시간 11분이 지난 뒤에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155mm 자주포를 연발로 사격했다. 당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발표한 긴급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자주포부대가 사격한 포탄은 36발이었는데, 그 가운데 6발은 조선인민군 542민경초소와 543민경초소 부근에 떨어졌고, 15발은 조선인민군 250민경초소와 251민경초소 부근에 떨어졌다고 한다. 나머지 15발은 어디에 떨어졌는지 탄착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한미국군사령부 특별조사반이 8월 20일의 포격사건진상을 조사했더니, 조선인민군 포병부대가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사격한 물증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국 국방부는 조선인민군 포병부대가 고사총 1발과 견인포 3발을 남쪽으로 사격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포탄들이 떨어졌다는 탄착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군 감시초소의 병사는 폭음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고, 탄착점에서 먼 곳에 있는 다른 한국군 감시초소의 병사는 “폭음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고 아리송하게 말했다. 또한 한국군 최전방초소에 설치된, 열영상관측장비(TOD)에 촬영된 영상자료에는 포연이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한국 국방부가 탄착점으로 지목한 곳에서 주한미국군사령부 특별조사반이 정밀조사를 진행했지만, 아무런 물증도 찾지 못했다. 

 

이처럼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는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사격하지 않았는데도, 한국군 합참본부는 조선인민군 포병부대가 사격했다고 우기면서 자주포부대에게 대응사격을 명령했고, 그 명령을 받은 한국군 자주포부대는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자주포 36발을 연발로 사격했던 것이다. 한국군 자주포부대가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연발사격을 감행한 것은 무력충돌을 불러올 도발행위였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한국군 합동참모본부는 왜 무력충돌을 불러올 도발사격을 명령한 것일까? 이 의문을 풀려면, 당시 군사분계선 최전방에 주둔하는 한국군 자주포부대가 조선인민군 포병부대의 사격에 대응한다고 하면서 도발사격을 감행하기까지 1시간 11분이 걸렸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시간 11분은 국방장관이 대통령에게 도발사격을 건의하고, 청와대에서 그 건의를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지시를 받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시 말해서, 2015년 8월 20일에 일어난 한국군 자주포부대의 도발사격은 박근혜의 지시에 따른 행동이었던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7년 8월 하순 한미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에 참가한 한국군 해병대 전투원들이 상륙전을 훈련하는 장면이다. 한미연합군은 2015년8월에도 '을지프리덤가디언'이라는 간판을 내건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했다. 미국군30,000명과 한국군 50,000명이 참가한 대규모 북침전쟁연습이었다. 그런데 2015년8월 북침전쟁연습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시점에 한국군 자주포부대가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자주포를 사격하는 뜻밖의 사태가 일어났다. 도발사격은 이미 조성된군사적 긴장을 걷잡을 수 없이 격화시켰고, 한반도 정세를 무력충돌위험 속에 밀어넣었다. 대북적대감에 사로잡힌 박근혜는 한미연합군이 대규모 전쟁연습을 진행하는 중에 한국군 자주포부대가 도발사격을 감행하더라도 조선인민군이 물리적으로대응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국방장관에게 도발사격을 지시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의문은 더 커진다. 박근혜는 왜 무력충돌을 불러올 도발사격을 국방장관에게 지시한 것일까? 이 의문을 푸는 열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1) 한국군 자주포부대가 포격도발을 감행한 2015년 8월 20일, 한미연합군은 ‘을지프리덤가디언’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북침전쟁연습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한미연합군은 2015년 8월 17일부터 28일까지 미국군 30,000명과 한국군 50,000명이 참가한 ‘을지프리덤가디언’을 진행했다. 대북적대감에 사로잡힌 박근혜는 한미연합군이 대규모 전쟁연습을 진행하는 중에 한국군 자주포부대가 포격도발을 감행하더라도 조선인민군이 물리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국방장관에게 도발사격을 지시했던 것이다. 

 

2) 2015년 6월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한국군 합참의장은 새로운 북침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15’에 서명했다. ‘작전계획 5015’는 조선인민군의 대남공격징후가 나타나면 30분 안에 조선의 전략거점들을 선제타격으로 파괴하고, 미국군 특수부대와 한국군 특수부대가 합동작전으로 조선에 침투하여 수뇌부를 제거하는 이른바 ‘참수작전’을 전개하면서 조선의 대량파괴무기들을 탈취한다는 북침전쟁계획이다. 이런 ‘참수작전계획’을 보고받은 박근혜는 한미연합군이 ‘참수작전계획’을 실행하여 조선의 수뇌부를 제거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무력충돌이 일어나더라도 한미연합군이 이길 것으로 예상하고 국방장관에게 도발사격을 지시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 중앙정보국의 실패한 대북비밀공작을 대체하기 위해 한미연합군의 ‘참수작전계획’이 수립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장성택 일당과 은밀히 연계하여 조선의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비밀공작계획을 추진했었는데, 중앙정보국과 장성택 일당의 연결고리는 당시 중국 마카오에 거주하던 김정남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의 대북비밀공작은 김정남과 장성택으로 연결된 역모집단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조선의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것이었으나, 그들의 정권전복음모는 조선의 국가안전보위부에게 발각되었다. 장성택 일당은 2013년 12월에 제거되었고, 김정남도 2017년 2월에 제거되었다. 조선의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이 완전히 파탄되자, 미국 국방부는 조선의 수뇌부를 제거하려는 ‘참수작전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3. 2015년 8월 20일 ‘남조선해방전쟁계획’이 비준되었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조선의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비밀공작을 추진하다 실패했고, 미국 국방부는 정권전복음모보다 더 악질적인 ‘참수작전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선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조선의 대응은 무력응징이었다. 미국의 전쟁기획자들이 ‘참수작전계획’을 거의 완성해가던 2015년 2월 22일 평양에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가 소집되었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은 그날 확대회의에서 진행한 “력사적인 연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군사전략”을 제시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군사전략은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라는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군사전략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남조선해방전쟁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은 2015년 2월 22일 확대회의 연설에서 “임의의 시각에 최고사령부의 전략적 기도를 실현할 수 있게 기구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제시했다고 한다. 이것은 김정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임의의 시각에 총공격을 명령하면 조선인민군은 즉시 ‘남조선해방전쟁’을 개시할 수 있도록 조선인민군의 지휘통제체계가 개편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은 2015년 2월 22일 확대회의 연설에서 “앞으로 미제와 반드시 치르게 될 전쟁수행방식과 그에 따르는 작전전술적 문제들을 밝혀주시고 인민군대의 정치, 군사, 후방, 보위사업을 비롯한 모든 사업을 전시환경에 접근시켜 진행할 데 대하여 강조”했다. 이것은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남조선해방전쟁’을 수행하는 방식과 그에 따른 작전전술적 문제들을 제시했고, 조선인민군에게 결전준비를 명령했음을 의미한다. 

 

<중앙일보> 2015년 1월 8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조선해방전쟁’을 7일 안에 끝내는 속전속결작전계획을 비준했고, 2015년을 ‘조국통일대전의 해’로 선포했다고 한다. <신동아> 2020년 1월호에는 한국 국방부가 2015년에 작성하여 박근혜의 청와대에게 보고한 대외비 문건의 내용이 실렸는데, 그 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2015년 당시 조선인민군은 “새롭게 마련한 공격전술에 따라 주요부대들의 훈련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은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이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명령이 하달되면 즉각 ‘남조선해방전쟁’을 개시할 결전준비를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그처럼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있었던 2015년 8월 20일 오후 5시 4분 한국군 자주포부대가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도발사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도발사격에 관한 보고를 받은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은 당일 오후 10시 당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긴급히 소집했다. 비상확대회의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5년 8월 20일 밤 김정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한국군의 도발사격으로 격화된 위기상황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진행하는 장면이다. 그날 당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에서는 '남조선해방전쟁'을 위한 공격작전계획을 비준했고,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그에 따라 조선의 정규무력과 민간무력은 완전무장한 전시상태에 돌입했으며,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은 사상 처음으로 전투수단과 군사장비를 총동원한 공격태세를갖추었다. 2015년 8월 무력충돌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1) “8월 20일 오후 전선 중서부지역에서 발생한 적들의 군사적 도발행위의 경위와 진상, 전반적 적정에 대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정찰총국 보고에 대한 청취가 있었다.”

 

2) “조선인민군 전선대련합부대들의 작전진입준비실태를 점검하고 적들의 전쟁도발책동을 진압하기 위한 정치군사적 대응계획이 토의되었”고,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타격, 반공격에로 이행하기 위한 조선인민군 전선사령부 공격작전계획이 검토, 비준되었다.”

 

3) “남조선괴뢰국방부가 48시간 안으로 대북심리전방송을 중지하고 모든 심리전수단들을 전면 철거하지 않으면 강력한 군사적 행동으로 넘어간다는 최후통첩을 보낸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결심을 승인하였다.”

 

4)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8월 21일 17시부터 조선인민군 전선대련합부대들이 불시에 작전에 진입할 수 있도록 완전무장한 전시상태로 이전하고, 전선지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한다는 명령을 하달했다.” 

 

5) “적들이 48시간 안에 심리모략방송을 중지하지 않는 경우 심리전수단들을 격파사격하기 위한 군사적 행동과 있을 수 있는 적들의 반작용을 진압하기 위한 지역의 군사작전을 지휘할 지휘관들이 임명되여 해당전선으로 급파되었다.” <조선일보> 2015년 8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연락군관들이 전투부대들에 급파되었는데, 연락군관들은 전투원들에게 “제국주의침략자들을 몰아내고 남반부를 해방하는 정의의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지금부터 모든 부대의 지휘는 최고사령부에서 파견된 연락군관들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을 보면,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은 전시상황에서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직접적인 지휘통제에 따라 작전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만대군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강력한 단일지휘통제체계가 확립된 것이다. 

 

6) “전선지대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된 데 맞게 해당 지역 안의 당 및 정권기관, 근로단체, 안전보위, 인민보안, 사법검찰기관,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들을 비롯한 모든 단위들을 준전시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대책적 문제들이 토의되었다.” <조선일보> 2015년 8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8월 21일 오후 5시부터 로농적위대(지금은 로농적위군)와 붉은청년근위대는 실탄을 지급받고 철갑모와 위장막을 착용하는 등 완전무장을 갖추고 진지로 이동하여 전투태세에 돌입했다고 한다. 

 

7) “적들의 로골적이고 불의적인 침략으로 인한 현 사태의 진상을 낱낱이 까밝히고 폭로하기 위한 대외부문일군들의 임무와 과업이 제시되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에 주재하는 각국 외교대표들, 국제기구 대표들, 무관들, 대사관 성원들, 외신기자들에게 무력충돌위기사태에 관해 통보하는 긴급모임이 2015년 8월 21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겸 정찰총국장인 김영철 육군대장이 전쟁위기사태와 한국군의 “파렴치한 모략소동의 진상”에 대해 통보했다고 한다. <로동신문> 편집국은 종군기자들로 구성된 종군보도반을 전선지대에 급파했다.

 

 

4. 2015년 8월 21일 전면공격태세 갖춘 조선인민군

 

2015년 8월 21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조선인민군에게 전투동원명령을 하달하자, 전군이 완전무장을 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공격태세를 갖추었다. 2015년 8월 당시 남측 언론매체들이 조선인민군의 공격태세에 관한 보도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무인정찰기의 공중정찰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는 8월 22일 오전 11시 59분경 강원도 인제군 동부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한국군 일반전초(GOP) 상공까지 남하했는데, 그날부터 8월 24일까지 사흘 동안 매일 1~2차례씩 동부전선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면서 공중정찰을 했다. 한국군의 저고도방공레이더와 중앙방공통제소(MCRC) 레이더는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희미한 항적을 30초 이상 식별하지 못했다. (<조선일보> 2015년 8월 25일 보도) 

 

2017년 3월 28일 통일연구원 소속 연구자는 보고서에서 조선인민군이 각종 무인항공기 1,000여 대를 보유하였다고 밝혔다. 무인항공기 1,000여 대 가운데 무인정찰기는 500여 대로 추산된다. 조선인민군 정찰총국이 운용하는 무인정찰기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제트엔진을 장착한 스텔스무인전략정찰공격기 ‘방현-5’이다. 이 스텔스무인전략정찰공격기는 한반도 전역을 정찰할 수 있고, 지상목표물을 공격할 수도 있다. 스텔스기능을 지닌 무인정찰기를 그처럼 많이 운용하는 조선인민군 정찰총국이 2015년 8월 당시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를 동부전선 상공에만 보낸 것이 아니라, 중부전선과 서부전선에도 보내 공중정찰을 했는데, 한국국 방공레이더망이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2) 포병부대들의 사격준비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은 갱도진지에 들어있던 각종 포들을 즉시 사격할 수 있는 사격진지로 이동, 배치했다. (<조선일보> 2015년 8월 22일 보도)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는 전 전선에서 포병화력을 2배 넘게 증강했다. (<신동아> 2020년 1월호 보도) 황해북도 신계군에 주둔하는 620포병군단이 전선지대로 남하배치되었다. (<문화일보> 2015년 8월 26일 보도) 

 

조선인민군의 포화력은 엄청나다. 미국측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방사포 6,000문, 자행포 3,200문, 견인포 3,500문, 박격포를 7,500문 보유했는데, 그 중에서 70%에 이르는 23,000문이 전방지대에 전진배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이 전방에 배치된 23,000문의 포를 평균 1분에 1발씩만 사격해도, 개전시각부터 30분 동안 69만발을 사격하게 된다.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의 압도적인 화력타격은 한국군 방어선을 무너뜨릴 수 있다. 

 

3) 미사일부대들의 발사준비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각종 미사일을 발사할 태세를 갖추었다. (<연합뉴스> 2015년 8월 24일 보도)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은 압도적인 화력타격이 전방에 있는 한국군 방어선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들의 압도적인 화력타격은 후방에 있는 한국군 전략거점들을 파괴할 수 있다. 남측 언론보도에 나온 추산에 따르면, 2020년 7월 현재 조선인민군이 실전배치한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은 약 2,700발이다. 조선인민군이 2019년부터 실전배치하고 있는 저고도비행활공도약미사일을 한미연합군의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족집게식 정밀타격으로 한국군 전략거점들을 파괴할 수 있다.    

  

4) 전투기들의 남하배치

조선인민군 전투기들이 이륙태세를 갖췄고, 후방지역에 있는 비행기지에서 이륙한 전투기들이 전방지역에 있는 비행기지로 남하배치되었다. (<연합뉴스> 2015년 8월 24일 보도) 미국측 자료와 남측 자료를 종합하여 추산하면,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추격기, 습격기, 지상공격기를 약 800대를 실전배치했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실전배치한 약 800대의 각종 작전기들 가운데 상당수는 작전수명을 넘긴 노후기종이므로 실전에서 쓸모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군사전문가들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이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미그-29를 조립생산하는 능력을 가졌으므로, 노후기종의 각종 부품들을 자체로 생산하여 작전기의 성능을 최고상태로 유지할 뿐 아니라, 작전기를 한반도 작전환경에 맞게 개조하여 최적화된 성능을 발휘한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20년 4월 1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부지구 항공 및 반항공사단 관하 추격습격기련대를 시찰하는 장면이다. 사진 속에 보이는 기종은 미그-29이다. 그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추격습격기련대를 시찰하는 중에 최우수비행사들과 담화했고, 그들이 진행한 공중전투훈련을 참관했다. 전투비행사들은 평소에 연마한 전투비행술을 하늘에 펼쳤다. 2015년 8월 무력충돌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후방지역에 있는 전투기들을 몰고 전방지역에 있는 비행기지로 남하했었다.  

 

5) 공격헬기의 출동

조선인민군 소속 Mi-2 공격헬기가 서해 상공에 나타나 대남근접비행을 했다. (<조선일보> 2015년 8월 25일 보도) 조선인민군은 소련산 Mi-2 헬기를 모방한 혁신-2 공격헬기를 생산하여 약 140대를 실전배치했다. H-500 경무장헬기 80대도 실전배치했다. 혁신-2 공격헬기가 서해 상공에 나타났다는 말은 서해 백령도 인근 상공에 나타났다는 뜻이다. 백령도에서 아주 가까운 황해남도 룡연군 장산반도에는 2012년 초에 완공된 고암포기지가 있다. 고암포기지에는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소속 공기부양정 70여 척이 배치되었다. 특수작전군 전투원들은 그 공기부양정을 타고 남측 후방으로 고속침투하게 되는데, 한국군 공격헬기로부터 로켓포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공기부양정들은 공격헬기의 엄호를 받으면서 남측 후방으로 침투할 수 있다.  

 

6) 특수작전군의 기습공격준비

평안북도 철산군 기지에 있던 공기부양정 10여 척이 황해남도 룡연군 고암포기지로 남하배치되었다. (<연합뉴스> 2015년 8월 24일 보도) 2012년 초에 완공된 고암포기지 격납고들에는 공기부양정 70여 척이 배치되었다. 황해남도 룡연군보다 훨씬 더 남쪽에 있는 황해남도 옹진군 련봉리에 공기부양정기지가 2019년에 새로 건설되었다. 련봉리기지에는 공기부양정 54척이 배치되었다. 조선에서 생산하는 신형 공기부양정은 특수작전군 전투원 60명을 태우고 바다에서 시속 110km로 항해할 수 있다. 신형 공기부양정 54척은 특수작전군 전투원 3,240명을 남측 후방 해안에 기습적으로 상륙시킬 수 있다. 2015년 8월 당시 한국군 정찰기들은 조선인민군 소속 공기부양정들이 남하배치된 정황만 포착했지만,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은 해상에서 공기부양정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공중과 지상과 지하에서 다양한 침투수단들을 사용하여 남측에 침투하게 된다.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은 2017년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태양절 경축 군사행진에서 그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은 육군, 해군, 항공군 및 반항공군, 전략군에 이어 제5군종으로 창설되었다. 특수작전군 병력수는 10만명으로 추산된다.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10만명이 공중, 해상, 수상, 지하에서 다종다양한 침투수단들을 사용하여 남측 후방 곳곳에 침투하여 불시에 동시다발로 기습공격을 시작하면 한국군의 후방 방어선은 무너지고 수많은 전략거점들이 순식간에 점령될 것이다.  

  

7) 대연합함대의 출동

조선인민군 해군 잠수함 50여 척이 동시에 출항하여 “수상전투단의 선두에 전개”되었는데, 수상전투단은 “고속정⟶미사일고속정⟶호위함 순서로” 편성되었다. (<문화일보> 2015년 8월 26일 보도) 그처럼 많은 잠수함들을 동시에 출동시킨 것은 “선진국보다도 높은 가동률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었다”고 한다. (<조선일보> 2015년 8월 27일 보도) 남측 언론매체들은 수상전투단이라고 불렀지만, 대연합함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15년 8월 무력충돌위기사태 중에 사상 처음으로 자기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 조선인민군 대연합함대는 잠수함, 방사포고속정, 어뢰고속정, 미사일고속정, 초계함, 호위함으로 편성된 강력한 해군무력이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대연합함대의 진짜 모습은 2015년 10월 5일 서해 백령도에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남포 앞바다에서 진행한 해상기동훈련에서 드러났다. 서방측 민간위성이 그 해상기동훈련을 촬영한 위성사진자료에 나타난 조선인민군 대연합함대는 총 87척으로 편성되었다. 무인쾌속정 32척, 방사포고속정 5척, 경비정 5척, 스텔스고속공격정 1척, 초계정 1척, 어뢰고속정 13척, 미사일고속정 5척, 잠수함 1척, 잠수정 8척, 상륙정 5척, 공기부양정 10척, 무인타격기발진선으로 편성된 것이다. 이런 놀라운 정황은 조선인민군 대연합함대가 한국군 해상방어선을 돌파하고, 남측 후방 해안에 특수작전군 전투원들을 상륙시킬 목적으로 편성되었음을 말해준다.   

 

위에 열거한 것처럼, 무력충돌위험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15년 8월 조선인민군 각급 전투부대들은 임의의 시각에 대남공격을 개시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최고사령관의 총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력충돌위험을 직감한 미국은 한미연합군 북침전쟁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을 잠시 중지시키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박근혜의 청와대에게 무력충돌위험을 해소할 대북협상을 시작하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되어 2015년 8월 22일부터 판문점에서 무력충돌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남북고위급회담이 시작되었다. 남북고위급회담은 8월 25일 오전 0시 55분에 공동보도문을 채택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남과 북의 대표들이 2박3일 동안 장시간 협상을 벌였는데도, 합의문을 채택하지 못하고 공동보도문을 채택한 것은 무력충돌위기가 해소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2015년 8월 박근혜 정부가 대북확성기방송을 재개한 사태로 촉발되었던 무력충돌위기는 5년이 지난 올해 문재인 정부가 악질탈북자단체들의 대북전단살포를 묵인한 사태로 다시 재발되었다. 5년 전과 마찬가지로, 무력충돌위험이 고조될 8월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