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08

정권전복음모 가득한 미 특수군 야전교범

[한호석의 개벽예감] (32)
자주민보 2012년 10월 06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세계 90여 개 나라에 침투, 잠입한 특수군 12,000명

2012년 5월 22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린 특수군 산업 연차대회에서 연설한 미국 특수군사령관 윌리엄 맥레이븐(William McRaven)은 미국 특수군 활동의 약 80%는 공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것은 그들의 활동이 사실상 비밀군사활동이라는 뜻이다. 현재 미국 특수전사령부 예하 군부대들에 배속된 66,000명 병력 가운데 작전에 투입되는 실전병력은 12,000명인데, 미국은 특수군 12,000명을 세계 90여 개 나라에 침투, 잠입시켜 비밀군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예컨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11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그 나라에 주둔하는 미국 특수군의 군사활동에 관해 국제사회에 알려진 것은 없다. 미국 켄터키주 포트 캠블(Fort Campbell)에 사령부가 있는 제5공수특전단 제2대대 소속 특수군 병사 한 명이 아프가니스탄 전선에서 반미저항세력의 폭탄공격을 받고 2012년 10월 2일에 전사하였다는 소식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그런 전사소식이 이외에 특수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떤 군사활동을 벌이는지 알기 힘들다. 전쟁상황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미국 특수군이 주둔하거나 침투해 있는 세계 90여 개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군사활동은 비밀에 쌓여 있는 것이다.

▲ 미국 육군 ‘야전교범(Field Manual) 31-20-3’표지 [자료사진= 인터넷 검색, www.scribd.com]
 
미국이 특수군 군사활동을 비밀에 부치는 까닭은, 그들의 군사활동이 공개되는 경우 미국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미국 특수군은 주권국가에 불법적으로 침투, 잠입하여 정찰활동을 벌이거나 표적인물을 납치, 고문, 암살하거나 핵심시설을 파괴하거나 반미정권을 전복시키는 등 국제사회의 법질서를 파괴하는 만행을 세계 각국에서 마음대로 저지르고 있다.

미국 특수군은 그처럼 국제사회의 법질서를 파괴하는 만행을 저질러도 자기들의 만행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므로 문책을 받을 염려는 조금도 하지 않는다. 미국은 그런 만행집단을 특수군이라는 이름으로 운용하고 있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국주의깡패국가로 전락한 것이다.

비밀에 쌓여 있는 미국 특수군의 정체를 파악하려면, ‘위킬릭스(Wikileaks)’가 폭로한 미국 육군의 비공개 문서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1994년 9월 20일 미국 육군본부가 출판한 미국 육군 ‘야전교범(Field Manual) 31-20-3’(위 사진)이라는 문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219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야전교범은 당시 미국 육군참모총장 골든 설리번(Gordon R. Sullivan)의 지시로 미국 육군장관 보좌관 밀튼 해밀튼(Milton H. Hamilton)이 주도하여 작성한 것이다.

▲ 미국 육군 ‘야전교범(Field Manual) 31-20-3’을 작성한 육군장관 보좌관 밀튼 해밀튼과 제작 지시를 내린 육군참모총장 골든 설리번의 서명 [자료사진= 인터넷 검색, www.scribd.com]


제목은 ‘특수군을 위한 외국내부방위 전술, 기술 및 절차(Foreign Internal Defense Tactics, Techniques, and Procedures for Special Forces)’인데, 이 ‘야전교범’에는 미국 특수군의 지휘체계와 군사전술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안보지원활동’과 비재래식 전쟁

‘야전교범’에서 이 글의 주제에 부합하는 중요한 내용만 간추려 논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미국 특수군은 다른 나라에 은밀히 침투하여 ‘미국의 국익’을 위한 비밀군사활동을 벌이는 작전단위인데, 미국 정부는 그들의 비밀군사활동을 다른 나라를 위한 ‘안보지원활동(security assistance activities)’이라고 부르며, ‘외국내부방위(Foreign Internal Defense)’라는 개념으로 공식화하였다.

‘안보지원활동’에서 특수군이 맡은 임무는 반미국가에 침투, 잠입하여 반란군을 조직하고, 훈련하고, 지도하며 그들의 반란전술능력을 강화시켜 정권전복 급변사태를 일으키는 것이다.

잠입, 정찰, 납치, 고문, 암살, 시설파괴, 정권전복 같은 국가주권과 인권을 폭력으로 짓밟는 만행을 무슨 ‘안보지원활동’이라느니 ‘외국내부방위’라느니 하는 거짓말로 위장하는 궤변을 늘어놓으니, 어안이 벙벙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둘째, 미국 특수군의 비밀군사활동을 총괄하는 범정부조직은 이른바 ‘무기이전관리단(Arms Transfer Management Group)’인데, 백악관 국가안보협의회, 국방부, 합참의장실, 중앙정보국, 국무부 산하 군축 및 국제안보국과 국제개발처, 재무부 등으로 ‘무기이전관리단’을 구성한다. ‘무기이전관리단’의 역할과 임무는 미국 특수군이 벌이는 모든 군사활동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것이다. 미국 군부가 단독으로 특수군의 비밀군사활동을 지휘통제하는 게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비롯한 범정부기구가 합동으로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을 지휘통제한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미국이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을 매우 중시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또한 미국이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에 힘을 집중시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무기이전관리단’ 의장직은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부장관(Under Secretary for Arms Control and International Security Affairs)이 맡는다. ‘무기이전관리단’ 의장은 ‘외국내부방위’에 관련된 미국 정부 관계부서들의 모든 정책, 계획, 실무작업을 조절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미국 특수군이 세계 90여 개 나라에서 벌이는 비밀군사활동에 관한 정치적 판단과 결정은 ‘무기이전관리단’이 내리는 것이다. 2012년 10월 현재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부장관은 로즈 갓몰러(Rose Gottemoeller)이므로, 그녀가 ‘무기이전관리단’ 의장을 맡아보고 있다. 국무부와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은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졌지만, ‘무기이전관리단’과 로즈 갓몰러는 언론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셋째,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에 관한 정치적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범정부기구가 ‘무기이전관리단’이면, 그것을 실무적으로 집행하는 정부기구는 ‘방위안보지원국(Defense Security Assistance Agency)’이다. ‘방위안보지원국’의 책임관리는 미국 국방부 정책 담당 부장관(Under Secretary of Defense for Policy)이다. 2012년 10월 현재 미국 국방부 정책 담당 부장관은 제임스 밀러(James N. Miller)이므로, 그가 ‘방위안보지원국’을 총괄하고 있는 것이다. ‘방위안보지원국’ 국장 제임스 밀러는 국방장관 리언 패네타(Leon E. Panetta)를 보좌하여 특수군의 비밀군사활동에 관한 국방부 정책과 계획을 총괄한다. 방위안보지원국의 역할과 임무는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에 관련된 계획과 사업을 추진하고, 그에 관한 국제지원을 이끌어내는 대외협상을 담당하고, 재정을 관리하고,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에 관련된 미국 군수산업체들과 미국 국방부 사이의 상호연락업무를 맡는다.

넷째, 미국 합참본부는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에 관한 합동전략기획, 합동전략능력계획, 합동계획정보평가를 담당하고, 미국 야전사령관은 특수군이 전개하는 비밀군사활동, 인도주의활동, 민사활동을 현지에서 지휘한다. 특수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안보지원활동’은 첩보전, 심리전, 민사활동, 인도적 지원, 인도적 지원과 민간지원, 안보지원, 군사작전, 안정화작전, 타격작전, 원격작전, 국경작전, 도시지역작전, 미국군 지원활동 등이다.

특수군은 미국 육군이 운용하는 야전작전체계(Battlefield Operating System)에 따라 활동한다. 야전작전체계란 작전단위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작전단위를 출동시키고, 작전단위에게 화력을 지원하고, 작전단위를 위해 공중방어를 하며, 작전단위의 기동 및 생존을 보장해주고, 작전단위의 병참을 지원하고, 작전단위를 통제하는 것이다.

다섯째, ‘안보지원활동’ 제1단계는 특수군이 ‘안보지원기구’로부터 직접 작전통제를 받는 특수군작전분견대(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를 파견하여 비밀군사활동을 벌이는 단계다. ‘안보지원활동’ 제2단계는 특수군 대대급 작전단위가 대상국가의 내부 또는 외부에서 작전기지를 운영하면서 비밀군사활동을 벌이는 단계다. ‘안보지원활동’ 제3단계는 특수전사령부가 특수작전기지와 한 두 개의 전진기지를 대상국가에 설치하고 비밀군사활동을 벌이는 단계다.

여섯째,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단계에 이르면, 합동군사고문단, 합동군사집단, 군사훈련부, 방위야전실 또는 방위협력실로 구성되는 ‘안보지원기구(Security Assistance Organization)’를 현지에 설치하고, 현지에 주재하는 모든 미국 정부부서 책임자들로 구성된 ‘외교업무부(Diplomatic Mission)’를 현지에 설치한다.

일곱째, 국제사회에 미국 홍보처(U.S. Information Service)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미국 정보처(U.S. Information Agency)는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에 관한 미국의 정책적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선전하고, 국무부의 지도를 받아 공개적인 심리전을 수행한다. 또한 미국 국무부 산하 미국 국제개발처는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을 비군사부문에서 지원한다.
▲ 2006년 9월 20일 출판된 미군 ‘야전교범 3-05’표지 [자료사진= 인터넷 검색, www.scribd.com]
위와 같은 내용이 1994년 9월 20일 미국 육군본부가 출판한 ‘야전교범(Field Manual) 31-20-3’에 들어 있는데, 미국 육군본부는 위의 ‘야전교범’을 보완한 ‘야전교범 3-05’(사진)를 2006년 9월 20일에 출판하였다. ‘증보판 야전교범’의 제목은 ‘육군 특수군 비재래식 전쟁(Army Special Operations Forces Unconventional Warfare)’이다. ‘증보판 야전교범’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특수군의 핵심적 임무를 이전보다 더욱 세분화, 전문화하여 비재래식 전쟁, ‘외국내부방위’, 직접행동, 특수정찰, 반테러활동, 심리작전, 민사작전, 대량파괴무기 반확산, 정보작전지원 등 아홉 가지로 규정한 것이다.

특히 비재래식 전쟁이라는 임무를 종전의 ‘외국내부방위’라는 임무보다 앞세우면서 가장 중요한 임무로 규정해놓은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미국의 전쟁전략이 재래식 전쟁에서 비재래식 전쟁으로 전환되었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말하는 비재래식 전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미국 육군본부는 새로운 전쟁전략으로 등장한 비재래식 전쟁에 관해 해설한 ‘특수군 비재래식 전쟁작전(Special Forces Unconventional Warfare Operations)’이라는 제목의 ‘야전교범 3-05.201’을 2003년 4월 30일에 출판하였고, ‘육군 특수군 비재래식 전쟁’이라는 제목의 ‘야전교범 3-05.130’을 2008년 9월 30일에 출판하였다.

미국 군부의 설명에 따르면, 재래식 전쟁은 정규군의 무력충돌이고, 비정규전은 반란군의 무력충돌이고, 비재래식 전쟁은 무장반란 또는 재래식 군사작전에 의한 무력충돌이며, ‘외국내부방위’는 파괴활동, 무법상태, 반란으로 붕괴위기에 빠진 다른 나라의 정권을 보호해주는 군사활동과 민사활동을 뜻한다. 이러한 개념분류에 따르면, 미국이 ‘외국내부방위’라는 기존 전략개념과 비재래식 전쟁이라는 새로운 전략개념은 서로 구분된다. 다시 말해서, ‘외국내부방위’는 붕괴위기에 빠진 친미정권을 보호해주는 군사활동 및 민사활동을 뜻하는 것이며, 비재래식 전쟁은 내란을 유발하여 반미정권을 전복시키는 군사활동을 뜻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친미정권을 반미저항세력의 무장활동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은 ‘외국내부방위’에 속하고, 시리아의 반미정권을 전복시키는 반란세력을 지원해주는 것은 비재래식 전쟁에 속한다.

미국 군부는 특수군이 수행하는 비재래식 전쟁을 일곱 단계로 구분하였는데, 준비(preparation), 초기접촉(initial contact), 침투(infiltration), 조직화(organization), 육성(buildup), 고용(employment), 전이(transition)로 이어지며 단계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2005년 9월 19일에서 2005년 10월 14일까지

미국군 소식지 <성조> 2005년 10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2005년 10월 14일 주한특수전사령관 리처드 밀스(Richard W. Mills)는 한국특수군분견대(Special Forces Detachment Korea)의 명칭을 제39특수군분견대로 바꾸는 부대명칭변경식을 진행하였다. 그 보도기사에 담겨 있는 정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제39특수군분견대는 미국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Fort Lewis)에 있는 제1공수특전여단에 배속된 부대이며, 주한특수전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파견부대다.

둘째, 1965년 8월 27일 서베를린에서 특수군분견대로 창설되었고, 1984년 10월 1일 해체되었다가, 1988년 10월 1일 남측에서 재창설된 제39특수군분견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국 특수군부대다.

셋째, 2005년 10월 현재 제39특수군분견대 병력은 16명인데, 그 16명이 6개의 한국군 특수전여단, 1개의 특수임무단(Special Mission Group), 1개의 특수전훈련단(Special Warfare Training Group), 반테러활동을 담당하는 제707특수임무대대(Special Mission Battalion)를 지도한다.

넷째, 제39특수군분견대는 평시에 한국군 특수전여단 및 특수작전단위들에게 특수전 수행에 필요한 전술, 기술, 절차를 가르치는데, 전시에는 ‘연합지원단(coalition support team)’의 핵심요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위의 보도기사에 나온 정보에 따르면, 미국은 1988년 10월에 재창설하였던 한국특수군분견대의 명칭을 17년이 지난 2005년 10월에 변경하였다. 부대명칭을 변경한 것은 부대의 역할과 임무를 종전보다 더 강화하였다는 뜻이다. 부대명칭변경에 담긴 그런 뜻을 생각하면서 2005년 10월이라는 시점을 눈여겨보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2005년 당시 미국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을 범정부적 차원에서 지도하였던 ‘무기이전관리단’ 의장은 당시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부장관 존 볼튼(John R. Bolton)이다. 부시 정부 안에서도 가장 극우적 성향을 드러낸 관리로 악명을 떨친 그는 자기 재임기간에 한국특수군분견대의 역할과 임무를 강화하는 작업을 총괄하였다. 또한 2005년 당시 미국 국방부 정책 담당 부장관은 더글러스 페이스(Douglas Feith)였다. 그는 당시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를 보좌하여 ‘방위안보지원국’을 지휘하였다. 이런 정황을 보면, 럼스펠드, 페이스, 볼튼 3인방이 한국특수군분견대의 역할과 임무를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부시 정부의 극우관리 3인방이 주도한 한국특수군분견대의 역할과 임무 강화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아래에서 다시 논하겠지만, 2005년을 기점으로 부시 정부 안에서는 북의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비재래식 전쟁 준비가 본격화되었다. 한국특수군분견대의 부대명칭변경은 북의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비재래식 전쟁 준비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셋째, 2005년 9월 19일 제4차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각자의 정책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하였다”는 항목이 들어 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특수군분견대의 역할과 임무를 북의 정권을 전복시키는 비재래식 전쟁준비로 집중시킴으로써, 9.19 공동성명 문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주권존중과 평화공존과 관계정상화의 공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렸다. 미국의 그러한 공약파기는 앞에서는 공약을 맺으면서 뒤에서는 정권전복음모를 꾸미는 제국주의깡패국가의 전형적인 소행이다. 미국이 6자회담을 벌여놓고, 9.19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게 아니라, 북의 정권을 폭력으로 전복시킬 비재래식 전쟁을 도발할 준비시간을 벌기 위한 기만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넷째, 부시 정부는 북의 정권을 전복시킬 비재래식 전쟁을 준비하는 역할과 임무를 왜 하필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직후에 한국특수군분견대에게 주었을까? 그 까닭은, 2005년 2월 10일 북이 핵무기 제조와 보유를 공식선언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핵보유국으로 등장한 북을 상대로 재래식 전쟁을 벌이면, 미국도 북의 핵공격으로 초토화될 것이므로, 미국은 대북군사전략을 재래식 전쟁에서 비재래식 전쟁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수군분견대 부대명칭변경과 북의 ‘민주화 및 인권문제’ 제기

미국이 북의 정권을 폭력으로 전복시키려는 비재래식 전쟁을 실제로 준비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제39특수군분견대는 지난 7년 동안 무슨 짓을 저질러왔을까? 미국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이 제39특수군분견대로 부대명칭을 변경한 2005년 10월 이후에 일어난 아래와 같은 사건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북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대북테러공작이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 2008년 12월 18일 북의 언론에 보도된 국가안전보위부 대변인 담화에 따르면, 북과 중국의 “국경 부근에 잠입하여 불순분자들을 규합”하던 황 아무개라는 자는 탈북자 리 아무개를 포섭하여 “수뇌부의 현지시찰 로정, 시기와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훈련을 시킨 뒤에 “수뇌부의 이동을 추적하기 위한 음성 및 음향수감추적장치와 극독약”을 주어 북에 잠입시켰다가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되었다. 국가안전보위부 대변인 담화에서는 그 두 테러범이 ‘남조선 정보기관’ 소속이라고 언급하였지만, 위에서 논한 정황을 보면 제39특수군분견대가 직접 파견하였거나 남측 정보기관을 통해 파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미국 국무부는 2006년부터 이른바 ‘북한 민주화’를 위한 예산을 배정하기 시작하였고, 국제개발처를 통해 집행하였다. 미국 특수군 ‘야전교범’에 따르면, 국무부 산하 국제개발처는 특수군의 대북비밀군사활동을 지원해주는 주무부처들 가운데 하나다. 제39특수군분견대의 작전이 북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군사활동이라면, 국제개발처의 ‘북한 민주화’ 지원자금 배정은 북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민사활동이다.

셋째,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2006년 4월 탈북자를 백악관에 불러들여 면담하는 촌극을 연출하였고, 미국 정부는 2006년 5월부터 탈북자의 미국 망명을 허용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2006년부터 유인탈북공작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남측에 들어간 탈북자는 2006년도에 이르러 전년에 비해 46% 포인트나 늘어난 2,018명으로 급증하였다. 미국이 제39특수군분견대의 역할과 임무를 강화한 것과 유인탈북공작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6자회담이 열린 베이징에서는 주권존중, 평화공존, 관계정상화를 약속해놓고, 워싱턴 디씨에서는 북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그야말로 정신분열증적 범행을 저질러온 미국에게 북이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해야 옳은 것인가? 정권전복음모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아무런 실효도 거두지 못할, 그리하여 미국에게 북의 정권을 전복시킬 비재래식 전쟁을 도발할 준비시간을 벌어줄 6자회담이나 맥없이 계속해야 옳았을까? 만일 자기 정권을 폭력으로 전복시키려는 제국주의깡패국가의 음모와 책동 앞에서 그들의 정권전복 준비를 위한 기만술책으로 벌여놓은 다자회담에 응하면서 시간이나 보내는 그런 어리석은 정권이 세상에 있다면, 그 정권은 미국의 간교한 술책이 유발하는 정권전복 급변사태를 피하지 못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북이 2006년 10월 9일과 2009년 5월 25일 지하핵실험을 각각 실시하였을 뿐 아니라, 2009년 7월 15일에는 6자회담이 영원히 끝났다고 선언한 것은, 앞에서는 9.19 공동성명에 합의하는 시늉을 하면서 뒤에서는 정권전복 급변사태를 은밀히 추진해온 미국에게 보낸 응답이었다. 그러나 정권전복음모에 병적으로 집착한 미국은 북이 보낸 단호한 응답을 받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정권전복 테러공작을 계속 강행하였다. 그 동안 북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9.19 공동성명을 어떻게 해서나 되살리려고 힘썼으나, 미국은 오직 기만과 악행으로 대하여 왔던 것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조국통일대전’을 결심하고, 지난 여름 8.25 경축연설에서 자신의 그 결심을 전 세계에 공개한 까닭은, 제국주의깡패국가의 정권전복 테러공작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미국은 북의 ‘조국통일대전’을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지금 한반도 군사정세는 마치 폭풍전야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잠잠해 보이지만, 위에서 논한 내막을 살펴보면 전쟁징후를 사전에 노출하지 않는 북의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알 수 있다.(2012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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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6

시장경제 쇠락기는 대안경제 모색기


변혁과 진보 (96)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초대형 공황이 오는 것일까?

미국에서는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가, 유럽연합과 일본에서는 재정위기가 격화되면서, 세계적 범위에서 경제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실업률과 빈곤률은 큰 폭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일시적이고 국부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그런 현상은, 세계적 범위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쇠락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경제라 하면 오로지 시장경제밖에 모르기에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미신처럼 믿어온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은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세계적 범위에서 그처럼 쇠락해가는 현실 앞에서 그만 공포에 질려버렸다. 온갖 경제지표들이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지금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전반적으로 쇠락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런 현실을 차마 믿으려 하지 않는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은 일시적 경기침체와 점차적 경기회복이라는 거짓말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퍼뜨리는 기만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엄연하다. 오늘 대량실업 확산과 경제성장률 폭락과 빈부격차 극대화가 세계적 범위에서 광범하게 지속되고 있는 '특이한 현상'은 1929년에 세계를 휩쓸었던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같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파국적인 초대형 공황(super-depression)이 밀려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1929년의 대공황과 오늘의 대공항 사이에서 드러나는 차이점은, 전자가 급진적으로 폭발하였던 것에 비해 후자는 파상적으로 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개양상의 현상적 측면만 다를 뿐, 대공황의 본질적 측면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세계경제사에 대한 기본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자본주의시장경제에서 공황은 불가피한 숙명이다. 학술개념으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공황이란 사회적 생산관계에서 생겨난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모순이 격화, 폭발하여 거대한 굉음과 충격을 일으키는 대량실업 확산과 경제성장률 폭락과 빈부격차 극대화의 비극적인 착종인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것처럼, 대공황기에는 계급적 착취와 빈궁, 사회적 소외와 차별이 폭력적인 양상으로 자행된다. 실업 폭증과 비정규직 극대화, 그리고 끝없는 부채증식과 연쇄도산, 흉악범죄 및 자살의 만연 같은 오늘 우리 사회를 질식시키고 있는 공포스러운 현실은 사회계급적 모순이 곪아터진 파멸적 결과들이다. 착취와 빈궁, 소외와 차별의 고통을 겪는 우리 사회의 민중이 환멸을 느끼며 저주하는 "이 놈의 더러운 세상"은 그렇게 대파국으로 밀려가고 있는 중이다.

세계경제사를 돌이켜보면, 자본주의시장경제는 주기적으로 공황을 겪으면서 파국에 빠져들곤 하였는데, 수구우파정권은 자본가계급과 공모결탁하여 대공황을 예방하는 방도 또는 대공황 고통지수를 완화하는 처방을 찾아내어 파국적 위기를 간신히 넘기곤 하였다. 그래서 자본주의체제는 그처럼 오랜 세월 동안 무너지지 않고 용케도 유지되어온 것이다.

역사적 경험은 수구우파정권의 위기관리라는 것이 폭력양상과 비폭력양상으로 각각 전개되어왔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수구우파정권이 추진한 폭력적 위기관리는 대외침략전쟁을 도발하여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 그리고 자국에서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해외에 '진출'하여 저임금 고용시장을 확대한 것이다. 전자를 대량살상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대량착취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 편, 수구우파정권이 추진한 비폭력적 위기관리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조합을 정치적으로 타협하게 만들어 '복지제도'를 운용한 것이다. 원래 '복지제도'는 공황을 예방하는 위기관리의 산물이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위기관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 그런 위기관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의 심리를 옥죄는 공포의 원인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논할 수 있다.

첫째, 선진자본주의국가의 수구우파정권은 대외침략전쟁을 도발하기는 하나 세계대전을 도발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경우 사회주의국가의 핵억지력이 보복핵공격으로 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국가의 핵억지력이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의 세계대전 도발야욕을 진압하는 억지요인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국가의 핵억지력에 의해 세계대전을 도발하지 못하게 된,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은, 정권전복 급변사태나 반테러전쟁 같은 비재래식 전쟁 시나리오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정권전복 급변사태나 반테러전쟁 같은 비재래식 전쟁을 도발해도 대공황에서 탈출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 나라들의 국가재정이 이미 파산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국가재정이 회복할 수 없는 파산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은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국가재정이 파산상태에 빠진 자본주의나라들이 정권전복 급변사태나 반테러전쟁 같은 비재래식 전쟁에 막대한 전비를 계속 지출하는 것은 그 나라들의 재정파산위기를 더욱 심화시켜줄 뿐이다.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이 공황을 예방하기 위해 써먹은 또 다른 위기관리정책은, 사회민주주의에 감염된 노동조합과 정치적으로 타협하여 이른바 '복지국가'라는 것을 세워놓는 것이었으나, 자본주의국가들에서 국가재정이 파산상태에 빠졌으니 '복지국가'는 이제 해체시각을 남겨두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국가재정의 파산이 사회민주주의의 퇴조와 '복지국가'의 해체를 불러오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일부 노조활동가들과 정치인들이 사민주의 타령에 장단을 맞추며 '복지국가' 환상곡이나 연주하고 있으니 너무도 한심한 일이다.

둘째, 자본주의국가들은 자국내 비정규직을 극대화하고 해외 저임금 노동시장을 확장하여 계급적 착취를 대량화하고 폭력화하였지만, 이제는 그것도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 비정규직 확대로는 생산력을 발전시키기는커녕 현상유지도 할 수 없으며, 저임금 노동시장을 확장할 '해외'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조직적 저항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야말로 착취의 대량화와 폭력화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대안경제 모색에서 제기되는 여섯 가지 문제

세계적 범위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전반적으로 쇠락하는 오늘의 현실은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를 요구한다. 일각에서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내부결함을 수정, 보완할 방도를 상상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내부결함을 수정, 보완할 수 없을 만큼 전반적으로 쇠락하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식쟁이들의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수정과 보완의 방도라는 것은 과학적인 해결방도가 아니라 비과학적인 공상의 분비물이다.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를 모색하는 것이 진보적인 설계전망이며 과학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을 모색하는 것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연구가 뒤따라야 하므로,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안경제 모색에서는 아래와 같은 문제들이 제기된다.

첫째,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를 모색하는 연구활동은 단순한 학술활동이 아니라 진보변혁적인 정치활동의 일환이다. 그러므로 학자들이나 학술단체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여 대안경제를 모색할 수 없으며, 낡은 세상을 새로운 세상으로 바꾸려는 진보정당이 자기의 정치사업으로 추진해야 마땅하다.

둘째,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는,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이 땅에 남겨놓은 고질적 병폐인 이윤중심적 사고를 전면적으로 폐기하고 사람중심적 사고로 모색해야 하는 새로운 경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중심적 사고는, 대안경제의 기본원리에 의거하는 새로운 사고를 뜻한다. 사람중심적 사고에서 '사람'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생산활동의 주체인 생산자대중 곧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추상화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사람중심적 사고란 생산자대중의 요구와 지향, 그들의 이익과 행복을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안경제는 당연히 생산자대중으로부터 인정과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셋째,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를 모색하는 과정은, 쇠락하는 시장경제를 고수하려는 정적들과의 치열한 투쟁을 수반한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적 생산자대중과 함께 그 투쟁의 앞장에 서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넷째, 대안경제는 진보적 정권교체로 실현될 것이다. 진보적 정권교체가 아니라면 대안경제를 실현할 다른 방도는 없다. 오직 진보적 자주정권 수립만이 대안경제를 실현하는 길이다. 대안경제를 모색하는 정치활동과 진보적 자주정권을 수립하는 정치활동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다섯째, 대안경제는 진보적 자주정권이 이 땅 위에 실현할 진보적 민주주의의 새로운 경제다. 진보적 민주주의의 새로운 경제에서는 당연히 주요산업 국유화와 생산활동 민주화가 실현될 것이다. 주요산업 국유화와 생산활동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실현한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체제,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에 실현할 대안경제라고 말할 수 있다.

여섯째, 대안경제는 진보적 자주정권이 북측 정권과 합의하여 실현할 통일국가 안의 지역통합경제로 확대, 발전하게 될 것이다. 통일국가 안의 지역통합경제는 현 시기 단계적으로 추진 중인 남북경제협력을 심화, 발전시키는 선행경험을 요구한다. 그 선행경험의 실천강령은 10.4 선언에 명시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10.4 선언을 전면적으로 이행할 정당이 승리해야 한다고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 힘차게 부르는 기백과 활력으로

누구나 아는 것처럼, 대안경제의 주인은 생산노동의 직접적 담당자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다. 생산자대중이 대안경제를 인정하고 지지하고 요구할 때, 대안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대안경제의 핵심내용인 주요산업 국유화와 생산활동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려면, 예속적 수구정권을 자주적 진보정권으로 교체하여 진보적 개헌을 실시해야 하며 생산자대중을 진보의식화하여 생산활동의 주체로 일어서게 하여야 한다.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고 생산자대중을 자주의식화하는 것은 진보정치의 근본문제이며 사회변혁의 전략적 과업이다. 이것은 어렵고 복잡한 추진과정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려면 진보적 대중정당의 역량을 비상히 강화해야 하며, 생산자대중을 자주의식화하려면 민주적 노동조합의 역량을 비상히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는 문제는 통합진보당에게 달렸고, 생산자대중을 자주의식화하는 문제는 민주노총에게 달렸다고 말할 수 있다.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기 위해서도 그렇고, 생산자대중을 진보의식화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진보적 대중정당과 민주적 노동조합의 상호관계를 끊임없이 밀착시켜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이 땅의 현실은 반대방향으로 역행하는 듯이 보인다. 집단탈당과 종북모략으로 통합진보당이 큰 타격을 입었으며, 노동계급의 조직적 분열에 더하여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노동계급을 정치적으로 분열시켰다. 타격상처와 분열상처가 아물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단축하는 것은 통합진보당에 결집한 진보정치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투쟁에 달렸다.

수구우파정당이 쇠락하는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붙들고 공포에 질려 있을 때, 상처를 안고 다시 일어선 통합진보당은 힘찬 노래를 부르며 자기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이 땅의 민주투사들이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군사독재정권의 광란적 탄압과 모략을 뚫고 나아갔던 그 기백과 활력으로... (2012년 10월 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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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항모강습단 격침하는 ‘불소나기 정대’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 (229)
통일뉴스 2012년 10월 1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11년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관람한 함상합창공연
 
 2012년 2월 5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인민군 해군 제790군부대를 시찰하였다. 해군 제790군부대는 함경남도 흥남과 신포 중간쯤에 있는 락원군 삼호항에 있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해군 제790군부대 혁명사적 교양실에 들어선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1년 6월 15일 그 부대를 시찰하는 중에 “함선에서 진행한 해병들의 대합창공연을 보아주시며 환하게 웃으시는” 사진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고 한다. 북에서는 해병대라고 하지 않고 해상륙전대라 하므로, 인민군 해병은 해병대원이 아니라 해군병사다.

위의 인용구절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해병들의 함상합창공연이다. 외부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민군 병영생활을 묘사한 북측 자료에는 화선음악회, 화선공연, 화선예술무대 같은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은 인민군 야전부대들에서 일반 병사들이 진행하는 소규모 음악공연을 뜻한다.

그런데 2001년 6월 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관람한 해군 제790군부대의 함상음악공연은 소규모 화선공연이 아니라 대규모 합창공연이었다. 북에서 유명한 인민군 공훈국가합창단은 120명 합창단원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들의 합창공연을 대합창공연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북에서는 합창단원이 300명 정도 출연해야 대합창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해병 300여 명이 출연하는 대합창공연을 갑판에서 진행하였다면, 그 군함의 승무병사가 300여 명이라는 말인데, 그 군함은 얼마나 큰 군함일까? 위에서 인용한 짤막한 문장만 읽어봐서는 그 군함이 얼마나 큰지 구체적으로 알 길 없으나, 구축함이라는 점을 직감할 수 있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은 배수량 1,600t의 호위함(frigate)이 북이 보유한 가장 큰 군함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 판단은 미국 군사정보당국의 정보판단에 의존한 것인데, 2007년 미국 해군연구소(U.S. Naval Institute)가 펴낸 책 ‘해군연구소 세계 전투함대 편람(The Naval Institute Guide to Combat Fleets of the World)’에 그에 관련된 정보가 들어있다. 그 정보는 북의 해군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졌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해군연구소가 작성한 것이므로, 누구도 그에 대해 논박할 수 없는 ‘정설’로 굳어졌다. 미국 해군연구소가 작성한 북의 군함에 관한 정보는 아래와 같다.

첫째, 북에는 배수량 1,600t의 소호급 호위함(Soho-class frigate)이 한 척밖에 없다. 소호(Soho)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지역명칭인데, 북에서 독자적으로 건조한 군함에 미국 군사정보기관이 왜 ‘소호’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다.
 
둘째, 북에서 소호급 호위함 다음으로 큰 군함은 배수량 1,200t의 나진급 초계함(Najin-class corvette)인데, 나진급 초계함은 두 척 뿐이다. 미국 군사정보기관이 라진을 나진이라고 쓴 것부터 부정확하다.
 
셋째, 소호급 호위함은 1980년에 취역하였고, 라진급 초계함은 1975년에 취역하였다.

위의 정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북이 호위함과 초계함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지 않고 모두 자체로 건조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군함건조시기가 1970년대이므로, 지난 40여 년 동안 신형 호위함이나 신형 초계함을 한 척도 건조하지 않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군사정보기관이 라진급 초계함 실물사진은 세상에 공개하면서도 유독 소호급 호위함 실물사진은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미국 해군연구소가 펴낸 위의 책에는 북의 소호급 호위함이 선체 두 개를 나란히 붙여놓은 것처럼 생긴 쌍둥이 선체(catamaran hull)로 설계되었고, 해상작전헬기를 탑재하는 비행갑판(flight deck)이 있다는 내용이 있다. 만일 미국 군사정보당국이 실물을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그처럼 묘사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정황은 미국 정찰위성이 촬영한 북의 소호급 호위함 실물사진을 미국 군사정보당국이 오래 전에 확보하였으면서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미국 군사정보당국은 왜 북의 소호급 호위함 실물사진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을까? 궁금증을 풀어준 것은, 2004년에 어떤 미국인이 미국 상업위성 사진자료를 제공하는 누리집 ‘구글 어스(Google Earth)’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은 위성사진이다. 그 사진에는 매우 특이하게 생긴 북의 군함 한 척을 위성에서 공중촬영한 장면이 담겨 있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그 위성사진은 정찰위성이 아니라 상업위성이 촬영한 것이라서 해상도가 떨어지지만, 그 위성사진에 나타난 매우 특이하게 생긴 북의 군함은 그 동안 세상에 소문으로만 전해진 바로 그 소호급 군함이었다. 위성사진에 나타난 북의 군함은 어느 선착장에 정박하고 있는데, 그 주변에 정박하고 있는 작은 함정 5척도 보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위성사진에 나타난 북의 군함이 배수량 4,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이라는 사실이다. 그 비행갑판은 매우 넓어서 대잠헬기 두 대를 한꺼번에 탑재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1년 6월 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관람한, 인민군 해병 300여 명이 출연한 함상합창공연은 바로 그 넓다란 비행갑판에서 열렸던 것으로 보인다.

군사전문가들이 그 위성사진을 확대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그 헬기탑재 구축함에는 대함미사일 발사관 6기, 대구경 함포 1문, 자동식 대공포 2문, 수동식 대공포 4문, 대잠 수중로켓발사대 4기를 비롯한 강력한 무장장비가 탑재되어 있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북의 헬기탑재 구축함이 쌍둥이 선체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이다. 쌍둥이 선체는 고속으로 기동하는 함선의 전형적인 형태인데, 쌍둥이 선체로 건조된 중국의 후베이급(Hubei-class) 미사일고속정(배수량 200t)이 취역한 시기는 2004년이고, 쌍둥이 선체로 건조된 미국의 연안전투함(배수량 3,000t)이 취역한 시기는 2008년이다.

그 위성사진은 북이 배수량 4,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을 건조하는 선진적 군함건조술을 이미 1970년대 후반기에 확보하였음을 말해준다. 한국군이 운용하는 배수량 4,4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이 취역한 때는 2002년인데, 그 구축함의 엔진, 무장장비, 레이더, 통신장비들은 다른 나라에서 전부 수입하여 조립해놓은 것이다. 이제야 미국 군사정보당국이 북의 소호급 군함 실물사진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까닭이 드러난다. 그들은 북이 4,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을 자체로 건조하여 지난 30여 년 동안 운용해왔다는 놀라운 정보를 은폐하고 싶었기 때문에, 정찰위성이 촬영한 실물사진이 있는데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이 이러쿵 저러쿵 논하는 북의 해군력에 관한 각종 정보들은 미국 군사정보당국이 저평가한 엉터리 정보이고, 그런 엉터리 정보를 가지고 쓴 언론보도기사들이 세상에 퍼져 북의 해군력이 빈약하다는 고정관념이 굳어지고 말았으니 너무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구축함 드나드는 거대한 지하해군기지
 
군사문제에 관심을 가진 ‘구글 어스’ 사용자들이 북의 각 지역을 공중촬영한 위성사진자료를 무료로 사용하게 되자, 미국 군사정보당국의 대북군사정보 독점체제가 흔들리고 있으며, 그에 따라 미국 군사정보당국이 북의 군사력를 터무니없이 저평가해온 게 아니냐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북의 해군력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말해주는 위성사진은 2007년에도 ‘구글 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군사전문가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문제의 위성사진은 <조선일보> 2007년 11월 7일 보도기사에 실린 ‘구글 어스’ 위성사진이다. 그 위성사진에는 외부세계에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북의 헬기탑재 군함 한 척이 남포항 선착장에 정박한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 군함은 크기로 보아 3,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이 분명한데, 위에서 논한 4,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과 전혀 다르게 생겼다. 미국과 남측의 군사정보당국은 그 위성사진에 나타난 3,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이 오랜 취역기간 끝에 퇴역판정을 받고 고철로 북에 팔린 러시아산 크라이백급(Krivak-class) 구축함이라고 추정하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크라이백급 구축함을 우크라이나에만 수출하였을 뿐 다른 나라에는 전혀 수출하지 않았으며, 고철로도 수출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수출하지 않은 구축함이 북의 남포항에 정박해 있다는 말은 억지로 꾸며낸 궤변으로 들린다. 언제나 그러한 것처럼, 북의 군사력을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는 미국과 남측의 군사정보당국은 자기들이 처음 보는 군사장비가 북에 등장하는 경우, 북이 자체로 개발한 군사장비라고 인정하기를 꺼리면서 무조건 러시아산 수입품목으로 규정해버리는 악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위성사진에 나타난 3,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은 이상하게도 무장장비와 레이더를 모두 떼어낸 썰렁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미국과 남측의 군사정보당국은 북이 러시아에서 그 구축함을 고철로 사들인 게 아니냐고 추정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 보도기사에서도 인정하였던 것처럼, 그 헬기탑재 구축함을 러시아에서 고철로 수입하였기 때문에 무장장비와 레이더를 떼어낸 게 아니라 남포에 있는 해군정비소에서 무장장비와 레이더를 신형으로 교체하기 위해 떼어낸 것으로 보아야 이치에 맞다. 그 위성사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북에는 위에서 언급한 4,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 이외에 3,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 위성사진에 나타난 3,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은 남포에 있는 해군정비소에서 신형 구축함으로 개조되었다는 것이다. 북이 2007년에 구축함 개조사업을 진행 중이었으므로,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오늘에는 개조가 완료된 3,000t급 신형 구축함을 실전배치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다. 위성사진에 나타난 북의 1,600t급 호위함, 3,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 4,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이 모두 한 척씩만 위성사진에 포착되었다는 점이다. 북은 그 군함들을 각각 한 척씩만 건조한 것일까? 북의 해군력이 빈약하다는 왜곡된 정보만 들은 사람들은 북의 군함건조능력이 저조하니까 겨우 한 척씩밖에 건조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얀마군 대표단의 방북보고서를 읽어보면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08년 늦가을에 방북한, 미얀마군 합동참모본부장 수라 쉐 만(Thura Shwe Mann)을 단장으로 한 미얀마군 대표단의 방북보고서에는 그들이 2008년 11월 24일 평안남도 남포에 있는 인민군 서해함대사령부를 돌아보았다고 씌여있다. 서해함대사령부에 도착한 그들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해군기지 입구에 커다란 방파제가 있고, 계류장에 크고 작은 군함들이 정박되어 있는 광경이었다. 그들이 인민군 서해함대사령부에서 관찰한 것은 북이 건조한 배수량 2,500t급 호위함이다.

방북보고서는 그 호위함이 남포선박설계연구소에서 건조하여 해외에 수출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신형 호위함의 존재가 이제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2008년 당시에는 아직 해외에 수출되지 않았던 것이다. 북이 미얀마에 그 호위함을 수출하려고 미얀마군 대표단에게 보여주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2,500t급 호위함을 수출하는 군함건조능력을 가진 북이 호위함과 구축함을 달랑 한 척씩만 건조하였을 리 만무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해군 제790군부대를 시찰한 그 날, 해군 제158군부대도 시찰하였다. 해군 제158군부대는 삼호 바로 아래쪽에 있는 함경남도 락원군 퇴조만에 있다. ‘구글 어스’가 제공하는 위성사진자료를 통해 해군 제158군부대의 위치를 알 수 있는데, 퇴조만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락원항이 보이고, 퇴조만 바깥쪽에 제158군부대 본부청사가 보인다. 퇴조만까지 철로가 놓여있고, 주변에 대공미사일기지가 있는 것도 보인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찬바람이 불어치는 군항에 나오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어뢰정 1307호에 몸소 올라 전술훈련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군항에 나오셨다”는 표현은 지하해군기지를 시찰한 뒤에 군항으로 나왔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구글 어스’가 제공하는 위성사진을 살펴보면, 퇴조만에서 바다쪽으로 뻗어나간, 마치 쇠뿔처럼 생긴 지대에 있는 제158군부대 지하해군기지 출입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하해군기지 출입구는 모두 세 군데인데, 동해로 직통하는 출입구는 윗쪽에 두 군데 있고, 퇴조만으로 통하는 출입구은 아랫쪽에 한 군데 있다. 그런 식의 출입구 배치는 지하해군기지가 고무래 정(丁)자처럼 건설되었음을 말해준다. 거대한 퇴조만 한 쪽을 지하해군기지로 만들었으니 기지규모가 얼마나 큰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2008년 11월 서해함대사령부를 방문한 미얀마군 대표단이 본 것은 길이 600m, 높이 30m, 폭 30m로 건설한 거대한 지하해군기지다. 그들의 방북보고서에 따르면, 지하해군기지 출입구에는 적군의 미사일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길이 30m, 높이 30m, 두께 3m의 거대한 콘크리트 방호벽이 설치되었는데, 그 방호벽은 전기장치로 움직인다. 또한 콘크리트 방호벽을 지난 다음에는 두께 3m의 강철문이 하나 더 설치되었는데, 그 강철문도 콘크리트 방호벽처럼 전기장치로 여닫는다. 군함이 지하해군기지 안으로 100m 들어가면, 거기서부터는 철로 위에 끌어올려져 더 깊은 안쪽으로 이동된다. 철로로 이동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얀마군 대표단에게 공개한 지하해군기지에는 초계함, 호위함, 구축함이 아니라 배수량이 500t을 넘지 않는 고속공격정들이 들어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북에는 초계함, 호위함, 구축함이 들어가는 또 다른 형태의 지하해군기지들이 있다. 미국 상업위성이 북의 호위함과 구축함을 한 척씩밖에 촬영하지 못한 까닭은, 그런 군함들이 서해안과 동해안에 건설한 지하해군기지들에 들어가 있어서 웬만해서는 촬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해외에 수출하는 북의 2,500t급 호위함
 
미얀마군 방북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11월에 북이 미얀마군 대표단에게 보여준 배수량 2,500t급 호위함의 분류명칭은 “코스트 가드(Coast Guard)”다. 북에서 코스트 가드를 우리말로 어떻게 부르는지 알 수 없으나, 원래 코스트 가드는 해양경찰이라는 뜻이다. 다른 나라에는 해양경찰이 있는데, 북에는 해양경찰이 없으므로 해군 경비정이 해경임무까지 맡아본다. 예컨대, 인민군 경비정은 2012년 5월 8일 새벽 서해에서 조업하던 중 북측 영해를 침범한 중국 어선 3척을 나포하였다가 21일에 송환한 바 있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북이 미얀마군 대표단에게 보여준 군함을 해경급 호위함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미얀마군 방북보고서에 따르면, 해경급 호위함은 길이 108m, 폭 13.3m다. 무장장비로는 대함미사일(anti-ship missile), 76mm 자동식 함포 1문, 30mm 6렬 자동식 대공포 1문, 14.5mm 6렬 대공포 1문, 533mm 어뢰, 252mm 폭뢰로켓발사기, 대형 폭뢰 및 기뢰, 82mm 레이더 교란물체 발사기 등이 탑재되었다.

그런데 미얀마군 방북대표단은 보고서에서 그 해경급 호위함의 다른 무장장비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서술하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대함미사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았다. 미얀마군 대표단은 방북 직후 귀국길에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이 운용하는 배수량 1,960t의 장후급(Jianghu-class) 호위함(Type 053)을 관찰하였는데, 그 호위함에 사거리 120km의 대함미사일(YJ-82)이 탑재되었다고 하면서, 무기체계가 더욱 현대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중국인민해방군 호위함에 탑재된 대함미사일에 대해 그처럼 구체적으로 서술한 그들이 왜 인민군 호위함에 탑재된 대함미사일에 대해서는 그저 대함미사일이라고만 써넣었을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북의 2,500t급 호위함에 탑재된 대함미사일에 관한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해상전 승패는 함포보다는 대함미사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제껏 서방세계에 떠도는 북의 대함미사일에 관한 정보에 따르면, 북은 오래 전에 소련에서 생산한 사거리 80km의 스틱스(Styx) 대함미사일과 그것을 중국에서 개량한 사거리 150km의 실크웜(Silkworm) 대함미사일밖에 갖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이 북의 대함미사일에 관한 정보를 논할 때마다 스틱스 대함미사일과 실크웜 대함미사일을 습관처럼 언급하지만, 그러한 언급은 북의 대함미사일 생산능력을 터무니없이 저평가하는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군사정보회사 ‘제인스 정보 집단(Jane's Information Group)’이 밝힌 바에 따르면, 1970년대 초 북은 중국으로부터 대함미사일들인 HY-1과 NY-2의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생산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는 모방생산하였고, 1993년 2월에는 실크웜 대함미사일을 자체 기술로 개량한 자국산 대함미사일로 발사실험을 실시하였다. 미국 군사정보기관이 AG-1이라고 한때 부르다가, 나중에는 KN-01이라고 고쳐 부른 대함미사일이 1993년 2월에 시험발사하였던 바로 그 자국산 대함미사일이다.

그런데 북은 2000년대에 들어와 KN-01보다 한 급 높은 신형 대함미사일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 군사전문가 우지 루빈(Uzi Rubin)이 2006년 6월 20일에 발표한 글에 따르면, 북의 신형 대함미사일 설계기술이 이란으로 수출되었는데, 이란혁명수비군이 2006년 6월에 실시한 미사일 발사훈련에 등장한 라드(Raad) 대함미사일이 북의 설계기술로 생산한 것이다. 이란혁명수비군이 작전배치한 라드 대함미사일 사거리는 360km다. 2008년 11월 미얀마군 대표단이 서해함대사령부에서 관찰한 2,500t급 호위함에 탑재된 대함미사일이 바로 사거리 360km의 신형 대함미사일이다. 북이 미얀마군 대표단에게 보여준 2,500t급 호위함에는 사거리 360km의 신형 대함미사일이 탑재되었는데, 중국이 그들에게 보여준 배수량 1,960t급 호위함에는 사거리 120km의 대함미사일이 탑재되었으니, 미얀마군 대표단은 자기 보고서에서 중국의 호위함이 더 현대화될 필요가 있다고 비교평가를 하였던 것이다.

북에는 세계 최강의 ‘불소나기 정대’가 있다
 
북의 초계함, 호위함, 구축함이 들어가는 지하해군기지가 그리 많지 않으니 호위함이나 구축함도 역시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지하해군기지에는 수상함만이 아니라 잠수함도 들어가야 하므로 정박공간은 아무래도 제한적이다. 이것은 북의 해군이 중대형 군함을 위주로 편성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명백하게도, 인민군 해군력의 중심역량은 잠수함과 소형함정이다.

<블러퍼 편람: 2007년도 북코리아 해군력 (Bluffer's Guide: North Korean Naval Power 2007)>에는 북이 운용하고 있는 다섯 종류의 고속공격정에 관한 정보가 실려 있다. 배수량이 약 500t으로 추정되는 미사일고속정, 배수량이 약 200t으로 추정되는 두 종류의 미사일고속정, 배수량이 약 150t으로 추정된는 스텔스 어뢰고속정, 배수량이 약 80t으로 추정되는 스텔스 어뢰고속정이다. 이 신형 고속공격정들은 ‘구글 어스’ 위성사진에서 찾아낸, 이제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미얀마군 대표단의 방북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이 돌아본 남포선박수리소에는 고속공격정들이 수리를 받기 위해 정박되어 있었다고 한다. 고속공격정이란 배수량이 500t을 넘지 않는 함정을 말하는데, 북에서는 미사일고속정, 방사포고속정, 어뢰고속정 등으로 분류된다. 북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속공격정를 보유한 나라인데, 각종 고속공격정만 300척이 넘는다.

창군한지 2년 4개월만에 일어난 6.25 전쟁 시기에 ‘세계 최강’을 자처한 미국군과 전면전을 벌인 인민군은 해군력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6.25 전쟁 이후 북에서 해군력 강화에 특별히 힘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북은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력으로 무기를 개발하여 해군무기체계 현대화에 힘쓰면서, 독자적인 해군전술 개발에도 힘썼다.

300척이 넘는 각종 고속공격정으로 무장한 북의 해군체계를 보면, 북의 해군전술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북은 수많은 미사일고속정, 방사포고속정, 어뢰고속정을 다양한 공격대형으로 해상전에 투입하여 미국군 제7함대를 집중공격하는 전술을 연마해오고 있다. 그런 전술을 북에서는 무엇이라 부르는지 알 수 없으나, 미국군은 ‘군집전술(sworming tactics)’이라 부른다. 다양한 공격대형으로 편성된 고속공격정대가 사방에서 고속으로 돌진해 들어가면서 대함미사일, 함포, 방사포, 어뢰, 수중로켓포 등을 ‘적함선집단’을 향해 소나기처럼 집중발사하는 가공할 공격전술이므로 ‘불소나기 전술(flame-showering tactics)’이라 부를 만하다. 북에서 말하는 ‘적함선집단’이란, 핵추진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편성된 항모강습단을 뜻한다.

핵추진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하고 순양함과 구축함 등으로 편성된 미국군 항모강습단이 인민군 고속공격정대의 ‘불소나기 전술’에 걸리면 대패할 것이라는 사실이 미국군의 실전급 해상전연습에서 입증되어 미국 군부가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이를테면, 2002년 7월 24일부터 8월 15일까지 미국 군부는 2억5,000만 달러의 경비를 지출하여 ‘밀레니엄 챌린지 2002 (Millennium Challenge 2002)’라는 작전명을 내걸고 사상 최대 규모의 실전급 해상전연습을 실시하였다. 그런데 가상적군의 고속공격정대가 퍼부은 ‘불소나기 전술’에 걸려든 미국 해군은 항공모함 1척, 순양함 10척, 대형 상륙함 5척이 격침되고, 20,000명 이상의 해군병력이 몰살되는 충격의 참패를 당했다.

당시 실전급 해상전연습에 나선 가상적군의 고속공격정대가 미국군 항모강습단을 격침할 때 퍼부은 ‘불소나기’가 바로 대함미사일인데,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민군 고속공격정대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대함미사일로 무장하였다. ‘밀레니엄 챌린지 2002’는 인민군 ‘불소나기 정대’가 잠수함대와 합동작전을 하지 않고서도 그처럼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한 놀라운 사변이었다. 실전급 해상전연습에서 인민군 고속공격정대 역할을 맡은 가상적국 해군이 미국 해군 항모강습단을 거의 전멸시킨 것은, 그 동안 미국 해군이 차지하고 있었던 세계 최강 해군력 지위가 사실상 인민군 해군에게 넘어갔음을 뜻한다.

2002년에 있었던 실전급 해상전연습에서 충격의 참패를 당한 미국 군부는 인민군 ‘불소나기 정대’에 맞서기 위해 황급히 반수상전 교리(anti-surface warfare doctrine)를 새로 만든다느니, 연안전투함(littoral cambat ship)을 새로 건조한다느니 하면서 야단법석을 쳤다.

하지만 2012년 10월 현재 미국은 연안전투함을 3척밖에 건조하지 못하였다. 첫 번째로 건조한 연안전투함 프리덤호(USS Freedom)는 2008년 9월 18일에 취역하였고, 두 번째로 건조한 연안전투함 인디펜던스호(USS Independence)는 2010년 1월 16일에 취역하였고, 세 번째로 건조한 연안전투함 포트 워스호(USS Fort Worth)는 2012년 9월 22일에 취역하였다. 그런데 너무 급하게 건조해서 그런지, 연안전투함은 선체 곳곳에 균열이 생기고 엔진이 자주 고장나는 바람에 작전기일보다 수리기일이 더 길어졌다. 미국 해군 공보당국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연안전투함 사진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런 공보사진 유포행위는 자기들의 치명적 약점을 감추려는 허장성세일 뿐이다. 미국 해군이 자기의 항모강습단마저 ‘불소나기 전술’에 격침당할 판인데 설계결함으로 파행하는 연안전투함을 내세워, 세계 최강의 인민군 ‘불소나기 정대’를 상대하겠다면 아마 인민군 해병들의 비웃음을 살지 모른다.

다급해진 미국 군부는 앞으로 30년 동안 연안전투함 55척을 건조할 계획이 있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미국의 국가재정파탄이 그 야심찬 건조계획을 그대로 집행하게 허락할지는 미지수다. 그처럼 불안정한 계획에 따르더라도 앞으로 30년 뒤 미국 해군은 태평양 제해권을 잃어버리고, 미국 본토 연안방어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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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9

포성은 왜 들리지 않았을까?

[한호석의 개벽예감] (31)
자주민보 2012년 9월 26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꽃게잡이 어선 6척의 정체

2012년 9월 21일 남측 해군 고속정이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20mm 벌컨포(Vulcan)로 어선을 향해 경고사격을 하는 사건이 있었다. 남측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경고사격사건을 아래와 같이 여섯 장면으로 구성할 수 있다.

장면 1 - 꽃게잡이 어선 6척이 9월 21일 오전 11시 44분부터 연평도 서북방 앞바다에서 순차적으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0.9km까지 남하하는 “월선행위를 반복”하면서 조업하였다.

장면 2 - 남측 해군은 참수리 고속정 2척을 오후 3시쯤 ‘북방한계선’ 인근으로 북상시켜 두 차례 경고방송을 보냈다. 그런데도 꽃게잡이 어선 6척은 ‘북방한계선’ 남쪽에서 조업을 계속하였다.

장면 3 - 참수리 고속정은 오후 3시 29분과 3시 48분에 20mm 벌컨포 수십 발을 꽃게잡이 어선 6척이 있는 쪽으로 쏘아 경고사격을 하였다.

장면 4 - 경고사격을 받은 꽃게잡이 어선 6척은 오후 4시쯤 모두 ‘북방한계선’ 북쪽으로 퇴각했다.

장면 5 - 경고사격사건 당시 북측 경비정이 황해도 연안에서 순찰기동을 하고 있었는데, 남측 고속정이 꽃게잡이 어선들을 향해 경고사격을 하는 데도 사건현장 쪽으로 접근하지 않았고, 북측 해안포들도 사격준비태세를 취하지 않았다.

장면 6 -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무력충돌에 대비하여 남측 공군 전투기 F-15K가 공대지미사일과 공대공미사일을 장착하고 출격하였다.

그런데 남측 언론에 보도된 위의 여섯 장면만 살펴보면 경고사격사건의 전모와 진상을 파악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각 장면마다 ‘숨은 그림’들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나타나지 않은 ‘숨은 그림’을 찾아내야 그 사건의 전모와 진상을 파악할 수 있다.

남측 군부는 사건현장에 있었던 꽃게잡이 어선 6척이 북측 어선들이라 했고, 북측은 그 어선 6척이 중국 어선들이라 했다. 어느 쪽 주장이 진실일까? 남측 해군 고속정이 경고사격으로 퇴각시킨 꽃게잡이 어선 6척이 북측 어선인지 아니면 중국 어선인지를 판별하는 문제는 경고사격사건의 ‘숨은 그림’을 찾아내는 데서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다. 만일 그 꽃게잡이 어선 6척이 북측 어선들이라면, 북측은 자기 어선들이 남측 해군 고속정으로부터 경고사격을 받는 데도 아무런 대응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되고, 만일 그 어선 6척이 중국 어선들이라면, 남측은 중국 어선들에게 경고사격을 해놓고 북측 어선을 경고사격으로 퇴각시켰다는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하는 것은, 꽃게잡이철인 요즈음 ‘북방한계선’ 북쪽 바다에서 수많은 북측 어선과 중국 어선들이 조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연합뉴스> 2012년 9월 22일 보도는 연평도 앞바다의 ‘북방한계선’ 북쪽 해상에서 북측 어선 100여 척과 중국 어선 수백 척이 꽃게잡이를 하였다고 하였다. 물론 연평도 앞바다의 ‘북방한계선’ 남쪽 해상에서도 남측 어선들이 꽃게잡이를 하였다. <연합뉴스> 2012년 9월 21일 보도는 연평도 앞바다에서 남측 꽃게잡이 어선 30여 척이 매일 조업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거기서 꽃게잡이를 하는 북측 어선과 중국 어선 가운데는 위성항법장치(GPS)가 없는 작고 노후한 어선들도 있을 것이므로, 그런 어선들이 바다에 그어져 있지 않은 ‘북방한계선’을 수시로 넘나들며 조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동아일보> 2012년 9월 22일 보도는 북측 어선들이 ‘북방한계선’ 남쪽 640m~1.9km 해상을 들락거리며 꽃게잡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북측 어선들만이 아니라 중국 어선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북방한계선’을 넘나들며 조업하던 꽃게잡이 어선들이 9월 20일 이후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2012년 9월 23일 보도기사에서 그런 행동변화를 읽을 수 있는데, 꽃게잡이 어선들은 9월 12일 14차례, 9월 14일 13차례, 9월 15일 8차례, 9월 20일 2차례, 9월 21일 1차례, 9월 22일 1차례 ‘북방한계선’ 0.7~2.2km 정도를 넘어 남하한 것이다. ‘북방한계선’을 넘나들며 조업하던 꽃게잡이 어선들의 ‘월선행동’이 왜 9월 20일부터 갑자기 줄어든 것일까?

그 까닭은 <국방일보> 보도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국방일보> 2012년 9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해군2함대가 9월 19일부터 서해에서 유도탄고속함(PKG), 초계함(PCC), 고속정(PKM)을 동원하여 “실전을 방불케 하는”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하였다. 군함들이 실탄사격을 연습하는 동안 꽃게잡이 조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9월 20일부터 ‘북방한계선’을 넘나드는 꽃게잡이 조업이 급격히 줄어든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남측 해군이 서해에서 대함사격훈련을 실시하는 경우, 북측은 자기 어선들의 조업범위를 황해남도 해안 가까운 곳으로 제한하는 안전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런 정황을 생각하면, 경고사격사건이 있었던 9월 21일 북측 꽃게잡이 어선들의 조업범위는 매우 제한되었을 것이므로, 이전처럼 ‘북방한계선’을 넘나드는 위험한 조업은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남측 해군이 해상기동훈련을 하고 있었던 그 날 ‘북방한계선’을 넘나드는 위험한 조업을 하였던 꽃게잡이 어선 6척은 모두 중국 어선들이었던 것이다.

<연합뉴스> 2012년 9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경고사격사건이 있은 다음날인 9월 22일 오전에도 꽃게잡이 어선 1척이 ‘북방한계선’을 넘어 400m 정도 남하였는데, 남측 해군 고속정이 경고방송을 하자 북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꽃게잡이 어선은 ‘북방한계선’ 바로 북쪽에서 계속 조업을 하다가 한 차례 더 ‘북방한계선’을 잠깐 넘은 뒤 북쪽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것이다. <연합뉴스>는 그 ‘용감한’ 어선이 북측 어선인 것처럼 보도하였으나, 위에서 논한 정황을 살펴보면 그 꽃게잡이 어선도 중국 어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포성은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측 해군 고속정은 왜 중국 어선을 향해 경고사격을 한 것일까? 중국 어선이라도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하하면 경고사격으로 퇴각시키라는 상부 명령을 따라야 했기 때문에 중국 어선을 향해 경고사격을 하였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제껏 남측 해군 고속정이 연평도 앞바다에서 조업 중인 중국 꽃게잡이 어선을 경고사격으로 퇴각시켰다는 보도는 한 차례도 나온 적이 없다.

그게 아니라면, 남측 해군 고속정이 북측 어선과 중국 어선을 구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중국 어선을 북측 어선으로 오인하고 경고사격을 한 것일까? 물론 북측 어선과 중국 어선은 가까이에서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고, 남측 해군 고속정은 쌍안경으로 관측하였을 것이므로, 두 나라 어선들을 구별하지 못하였을 리는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안개에 쌓인 듯이 보이는 경고사격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면, 사건현장을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첫째, 사건 당일 중국 어선이 ‘북방한계선’을 넘은 시각은 오전 11시 44분이었는데, 남측 해군 고속정이 사건현장에 나타난 시각은 오후 3시쯤이었다. 경고사격을 하기까지, 왜 3시간이 지나도록 뜸을 들였을까?

또한 남측 해군 고속정이 사건현장에서 경고사격에 사용한 무기는 20mm 벌컨포인데, 현재 남측 해군이 운용하는 각종 함선들 가운데 20mm 벌컨포를 탑재한 함선은 배수량이 170t인 참수리 고속정밖에 없다. 참수리 고속정은 퇴역을 앞둔 낡은 기종이다. 참수리 고속정에 탑재된 20mm 벌컨포는 분당 2,700~3,300발을 쏘는 속사포인데, 사건현장에서는 그런 속사포를 불과 수십 발만 쏘고 말았다.

이처럼 남측 해군 고속정이 3시간이 지나 사건현장에 나타났을 뿐 아니라, 속사포를 쏘긴 쏘되 매우 조심하여 몇 발만 쏜 것은, 남측 해군이 북의 대응공격 가능성을 예상하고 매우 신중하게 움직였음을 말해준다.

둘째, 참수리 고속정 함미에 탑재된 20mm 벌컨포의 사거리가 4km인데, 경고사격 관행은 목표선박에서 약 1km 떨어진 해상에 착탄하도록 사격하는 것이다. 무력충돌위기가 고조된 연평도 앞바다에서 겁을 먹은 참수리 고속정은 되도록 남쪽으로 멀리 떨어져야 안전하기 때문에, 중국 어선으로부터 벌컨포 최장사거리(4km)를 유지하였을 것이므로, 중국 어선 6척의 조업현장에서 남쪽으로 적어도 5km나 멀리 떨어진 해상에서 20mm 벌컨포를 쏘는 경고사격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참수리 고속정에서 관측장비로 사용하는 쌍안경(KM20)의 관측거리는 4km다. 남측 해군 고속정이 4km밖에 있는 목표물을 관측하는 경우 정확히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데,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남측 해군 고속정은 사건 현장에서 목표물로부터 5km나 떨어진 해상에 있었으니 북측 어선인지 중국 어선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던 것이 분명하다.

넷째, <연합뉴스> 2012년 9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취재기자가 만난 연평도 주민은 남측 해군 고속정이 쏘았다는 20mm 벌컨포 포성을 전혀 듣지 못했노라고 말했다. 연평도 주민이 벌컨포 포성을 듣지 못했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이것은 남측 해군 고속정이 20mm 벌컨포를 매우 먼 거리에서 몇 발만 살짝 쏘았음을 말해준다. 그러했으니 연평도 주민들이 포성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다섯째, 사건현장에 뒤늦게 나타난 남측 해군 고속정은 오후 3시 29분에 1차 경고사격을 하였고, 19분이 지난 오후 3시 48분에 2차 경고사격을 하였다. 경고사격을 왜 두 차례나 하였을까? 남측 해군 고속정은 너무 먼 거리에서 벌컨포 몇 발을 살짝 쏘았으므로 조업에 열중하던 중국 어선 6척은 연평도 주민처럼 포성을 듣지 못하였다. 그래서 남측 해군 고속정은 1차 경고사격에도 퇴각하지 않는 중국 어선들을 향해 19분 뒤에 또 다시 경고사격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군 해군2함대는 ‘불꽃’을 어디에 떨구었을까?

<국방일보> 2012년 9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2012년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남측 해군2함대가 해상기동훈련을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실시하였다고 한다. 보도기사에서는 해상기동훈련이라고 표현되었지만 대북해상전연습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위의 보도기사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한국군 해군2함대는 인민군 항공기를 가상한 예인기를 표적으로 삼고 대공사격연습을 하였으며, 인민군 함선을 가상한 예인정을 표적으로 삼고 대함사격연습을 하였고, “함정, 항공기, 도서부대 전력이 유기적인 합동작전을 벌여 가상의 인민군 수상함과 공기부양정을 격멸”하는 합동공격작전까지 연습하였기 때문이다.

이 보도기사만 읽어보면, 한국군 해군2함대는 무력충돌위험이 커진 분쟁수역에서 매우 용감하게 대북해상전연습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정말 그처럼 용감하게 대북해상전연습을 강행한 것일까?

여기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2012년 8월 16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연평도가 손에 잡힐 듯이 바라다보이는 작은 섬인 무도에 소형선박을 타고 가서 최전선 군부대를 시찰하는 중에 “적들이 감히 서툰 불질을 해대며 우리의 령토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떨군다면 그것을 서남전선의 국부전쟁으로 그치지 말고 조국통일을 위한 성전으로 이어가라. 만약 침략자들이 전쟁을 강요한다면 서해를 적들의 최후 무덤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였다. 이 명령은 무도 방어대에게만 내린 명령이 아니라 서남지구(남에서는 서북도서)에 주둔하는 모든 인민군부대들에게 내린 명령이다.

<국방일보> 보도기사는 한국군 해군2함대가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실탄을 사격하는 대북해상전연습을 강행하였다는데, 어째서 인민군은 아무런 대응행동도 취하지 않았을까? 한국군 해군2함대의 대북해상전연습에 대해 인민군이 취한 대응행동은, 2012년 9월 22일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가 보도자료를 내놓은 것이 전부다. 2012년 2월 20일 한국군 해군2함대가 서해 5도 주변수역에서 대북해상전연습을 강행하기 바로 전 날, 인민군 전선서부지구사령부는 남측에게 공개통고장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사전에 공개통고장을 보내지도 않고 사후에 보도문만 발표하고 넘어간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만일 한국군 해군2함대가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떨군다면 그것을 서남전선의 국부전쟁으로 그치지 말고 조국통일을 위한 성전으로 이어가라”고 인민군에게 명령하였는데,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가 경고문도 아니고 보도문으로 급을 낮춰 느슨하게 대응하였다면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집행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이라면 불 속이나 얼음바다에도 뛰어들 만큼 충직하다고 알려진 인민군이 이번에는 왜 그처럼 이례적으로 느슨한 대응행동을 취한 것일까?

첫째, 남측 해군 고속정은 북측 어선이 아니라 중국 어선을 상대로 멀리서 벌컨포를 몇 발 쏘며 맥빠진 경고사격을 하였기 때문에, 인민군이 그처럼 느슨한 대응행동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는 한국군 해군 고속정이 왜 벌컨포를 멀리서 겨우 수십 발밖에 쏘지 못하였는지 간파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 보도문에는 “다른 나라 어선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나라가 두려워 그것을 우리 어선이라고 떠들어대는 괴뢰들의 추태가 얼마나 비렬한가” 라는 조롱조의 문장이 들어간 것이다.

둘째, 위에 인용한 <국방일보> 보도기사는 한국군 해군2함대가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대북해상전연습을 강행하였다고 보도하였는데, ‘인근’이라는 모호한 표현만 가지고서는 어디쯤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한국군 해군2함대가 대북해상전연습을 벌인 위치를 좌표로 확인할 길은 없지만, 연평도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연합뉴스> 2012년 9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취재기자가 만난 연평도 주민은 “어제도 총소리가 한 번 들렸던 것 같은 데 오늘은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말하였다. 이 말은 9월 20일에 총소리가 한 번 들렸던 것 같고, 9월 21일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와 달리, 2009년 11월 10일 대청도와 소청도의 주민들은 남측 해군과 북측 해군이 대청도 동쪽 10km 해상에서 2분 동안 함포사격을 주고 받을 때 “천둥 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고 취재기자에게 말했는데, 어째서 이번에는 천둥소리는커녕 총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미적지근하게 말하였을까?

포성이 나지 않은 소음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한국군 해군2함대가 함포를 쏘며 실탄사격연습을 하였다면 연평도 주민이 포성을 듣지 못하였을 리 없다. 실탄사격연습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한 것처럼 남측 군부가 언론에 거짓말 제보를 하였을 리는 없으므로, 연평도에서 포성이 총성처럼 들리는 아주 먼 거리에서 실탄사격연습을 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연평도 주민의 귀에 포성이 총성처럼 들릴 만큼 먼 거리라면, 연평도에서 남쪽으로 얼마나 멀리 떨어진 해상에서 실탄사격연습을 하였던 것일까? 그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실탄사격연습을 하였으므로,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는 그 실탄사격연습을 레이더 화면으로 지켜보았을 뿐 북측 관할수역에는 “단 한 점의 불꽃”도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군사적 대응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2009년 5월까지만 해도 남측 해군은 1,200t급 초계함 4척을 소연평도 해상 남쪽 3.2km까지 바짝 북상시켜 전진배치하며 북을 자극하였지만, 얼마 전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서해를 적들의 최후 무덤으로 만들라”고 인민군 서남지구사령부에 명령한 이후에는 남측 함선들이 그렇게 북쪽 가까이 북상하지 못한다.


6개 요격목표 동시에 격추하는 인민군 지대공미사일

경고사격사건이 벌어졌을 때, 남측 군부는 북과의 무력충돌에 대비하여 공대지미사일과 공대공미사일을 탑재한 F-15K 전투기를 출격시켰다고 언론에 밝혔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경고사격사건이 일어난 시각, 한국군 F-15K 전투기는 어느 선까지 북상하여 비행하고 있었을까?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F-15K 전투기가 비행할 수 있는 북방한계선은, 황해남도 남단에 배치된 인민군 지대공미사일을 피할 수 있는 회피기동한계선과 일치한다. F-15K 전투기가 인민군 지대공미사일 사정권 안으로 ‘겁도 없이’ 들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연합뉴스> 2011년 4월 6일 보도기사가 지적하였듯이, F-15K 전투기를 비롯한 한국군이 운용하는 모든 전투기, 수송기, 작전헬기들은 중적외선 섬광탄을 탑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민군 반항공부대가 중적외선 추적기능을 가진 신형 지대공미사일을 쏘면 그대로 격추당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남측 군부는 지금 중적외선 섬광탄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개발사업이 몇 해 뒤에 완료되어 양산체계로 들어갈 수 있는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제인스 정보집단(Jane's Informmation Group) 2008년 4월 2일 자료에 따르면, 북은 서방세계에서 S-200이라 불리는 장거리-중고도 지대공미사일 20기를 미얀마에 수출하였다. 북이 S-200 지대공미사일을 해외에 수출한 것은, 북이 소련산 S-200 지대공미사일을 자체 기술로 개량한 독자적인 S-200급 지대공미사일을 대량생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원래 소련산 S-200 지대공미사일은 사거리 300km, 요격고도 40km이므로, 북이 자체 기술로 개량하여 생산하는 S-200급 지대공미사일은 그보다 좀 더 성능이 좋을 것이다. 인민군 반항공부대에게 S-200급 지대공미사일만 있어도, 한국군 전투기들은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비행해야 한다.

북이 개량한 S-200급 지대공미사일은 세계 최장 요격거리를 자랑하지만, 동시요격기능은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북이 새로 개발한 것이 동시요격기능을 가진 신형 지대공미사일이다. 북에서는 ‘주체식 요격미사일종합체’라 부르고, 서방세계에서는 ‘KN-6’이라 부르는 S-300급 신형 지대공미사일은 사거리 150km, 요격고도 27km이며, 12개 표적을 동시에 추적하고, 6개 요격대상을 동시에 격추하는 최첨단 지대공미사일이다. 북이 2010년 10월 10일 인민군 열병행진에 처음 등장시킨 S-300급 신형 지대공미사일(주체식 요격미사일종합체)은 S-200급 대공미사일보다 사거리와 요격고도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 대신 강력한 동시요격기능을 갖추었다.

한국군 전투기를 주눅 들게 만드는 인민군 반항공부대의 전력은 지대공미사일에 한정되지 않는다. <세계일보> 2012년 9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 반항공부대는 한국군 무기체계를 완전히 무력화시킬 위치확인체계 기만기술(GPS area-mapping deceiving technology)을 운용하고 있는데, 위치확인체계 기만기술이란 종래의 위치확인체계 교란기술(GPS jamming technology)보다 한 급 높은 첨단기술이다. 이 보도기사에 따르면, 인민군 전자전 차량에 탑재된 위치확인체계 기만장비는 강력한 기만신호전파를 남측 전역에 방출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강력한 인민군의 전자전 능력은 비행 중인 한국군 전투기를 엉터리 위치정보로 기만하고, 위치확인체계로 유도되는 공대지 미사일의 정밀타격기능을 무력화시킨다.

인민군 반항공작전능력에 관한 위의 여러 정보를 살펴보면, 경고사격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국군 F-15K 전투기는 연평도 상공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연평도에서 남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진 충청남도 보령 앞바다 상공을 맴돌았던 것으로 보인다.

2012년 9월 22일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는 보도문에서 “서남전선사령부는 이미 적들이 움쩍하기만 하면 서해 바다를 멸적의 함정으로, 서남전선작전을 조국통일대전으로 이어놓을 데 대한 최고사령부의 작전명령을 받은 상태에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계를 모르는 우리 전선군부대들의 강력한 타격행동 뿐”이라고 한국군을 위협하였다.

김정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조국통일대전 작전계획서’를 최종 결재하고, 최후 결전 준비를 완료하고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라는 지시를 내렸으므로,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의 위와 같은 위협은 말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서 한국군이 실탄을 사격하는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인민군의 공격이 무서워 ‘북방한계선’ 근처에는 올라가지도 못하는 한국군은, 북을 자극하는 무모한 대북해상전연습을 감행할 게 아니라 일본의 독도침탈책동을 확실하게 저지할 대일해상전연습에 열중해야 할 것이다.(2012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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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8

진보정치와 사회변혁 전진시킬 결전의 10월을 맞으며


변혁과 진보 (9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5.2%에 비낀 진보정치의 희망을 보는가?

2012년 9월 25일 주한미국대사관이 길 건너편에 바라다보이는 광화문광장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가 대선출마선언식을 가졌다. 대선출마를 선언하는 그녀의 뒤로 주한미국대사관의 커다란 미국 국기가 내걸려 있었다.
 
 과거 대선시기에도 진보정당 후보가 대선출마선언식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이정희처럼 미국대사관을 등지고 대선출마를 선언한 후보는 없었다. 대선출마자가 선언식에서 미국대사관을 등진 것은, 미국의 발 아래 굴종해온 더러운 '하수인 정치'를 끝장내려는 강한 청산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 2012년 9월 25일 주한미국대사관을 등지고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 (<민중의 소리>사진)
 
확성기에서 울려나온 이정희의 육성은 차분하였으나, 그녀의 대선출마선언은 좀스러운 사회개량의 탁류를 거슬러 변혁적 시대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울림이었다.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정치의 길을 개척하는 자주선언으로, 악정만을 거듭해온 수구우파정권을 영영 사라지게 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진보선언으로, 치욕과 고통으로 얽룩진 저 낡은 분단체제를 허물고 21세기 누리에 빛날 통일조국을 세우려는 통일선언으로 옹골차게 영근 자주-진보-통일의 변혁적 시대정신이 3부 화음처럼 강렬하게 울려나온 것이다.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다시 치켜든 통합진보당 깃발은 그 강렬한 울림에 한껏 설레며 9월의 서울 하늘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 이튿날인 9월 26일에 대선주자 지지율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박근혜 36.0%, 안철수 31.9%, 문재인 20.3%, 이정희 5.2%로 나왔다. 대선출마를 선언하기 전에 3.8% 수준에 머물렀던 이정희 지지율은 대선출마를 선언하자마자 5.2%로 올라간 것이다.
 
집당탈당의 풍파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밀려들고, 종북모략의 광풍이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 휘몰아친 혹독한 시련의 시기, 그 풍파와 광풍을 눈물겨운 투쟁으로 헤쳐온 통합진보당에게 5.2%의 지지율은 참으로 소중하다.
 
비록 10%에도 미치지 못하건만, 진보정치를 열망하는 각계각층 대중들이 안겨준 5.2%의 대선주자 지지율을 가슴에 받아안고 통합진보당은 다시 일어선 것이다.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으로 열어갈 자주의 길을 향해, 민중의 미래를 향해, 그리고 평화통일을 열망하는 조국의 미래를 향해 신들메를 매고 다시 떠나야 할 그 엄숙한 출발선에 다시 나선 것이다.

 
대선판에 뛰어든 무소속 제3후보, 그의 씁쓸한 운명

이정희를 제외하고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 3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이 9월 25일에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문재인 20.4%, 안철수 32.0%, 박근혜 36.4%로 나타났다. 그런데 문재인-박근혜 양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은 문재인 48.3%, 박근혜 43.3%였고, 문재인-안철수 양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은 문재인 36.9%, 안철수 42.1%였다.
 
문재인-박근혜 양자구도에서 근소한 차이로 박근혜를 살짝 앞선 문재인은, 안철수와 경쟁하는 양자구도에서는 안철수에게 상당히 큰 차이로 밀렸다. 이것은 안철수가 대선판에 뛰어들면서 문재인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안철수가 대선판에 뛰어든 것이 문재인에게 '불리한 요인'으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박근혜 지지층과 안철수 지지층이 서로 겹치는 부분보다 문재인 지지층과 안철수 지지층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국면 내내 안철수는 문재인 지지층을 자기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기며 문재인을 낙선위험에 몰아넣을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가 무소속 제3후보로 대선판에 뛰어들어 3자구도가 형성됨으로써 문재인의 대선가도에는 그처럼 커다란 난관이 조성된 것이다.
 
무소속 제3후보의 등장으로 대선판세가 야권후보에게 매우 불리하게 변동된 선행사례는 1997년 12월 18일에 실시된 제15대 대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선을 석 달 앞둔 1997년 9월 18일 민주당을 뛰쳐나간 이인제가 무소속 제3후보로 대선판에 뛰어들자, 3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은 김대중 29.7%, 이회창 15.6%, 이인제 24.0%였다. 11월 10일 이회창-조순 후보단일화가 실현되자 이회창 지지율이 급상승하여 김대중을 맹추격하기 시작했는데, 11월 25일에 나온 지지율은 김대중 32.1%, 이회창 31.5%, 이인제 19.9%였다.
 
결국 제15대 대선은 김대중 40.3%, 이회창 38.75%, 이인제 19.2%의 득표율로 막을 내렸다. 김대중이 1.55% 포인트밖에 되지 않는 근소한 표차로 이회창을 간신히 이긴 것이다. 만일 이인제가 김대중의 표밭을 갉아먹지 않았다면 김대중은 여유있게 이겼을 터인데, 이인제가 무소속 제3후보로 대선판에 뛰어드는 바람에 자칫 정권교체를 실현하지 못할 뻔한 위험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2002년 12월 18일에 있었던 제16대 대선에서도 매우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었다. 2002년 5월 2일 여야 대선후보가 각각 확정되어 양자구도가 형성되었을 때, 지지율은 노무현 43.0%, 이회창 32.9%로 나왔다. 그런데 10월 8일 정몽준이 무소속 제3후보로 대선판에 뛰어들자, 3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은 노무현 14.7%, 이회창 31.0%, 정몽준 27.1%로 요동치며 뒤집혔다.
 
11월 26일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로 대선판도는 다시 양자구도로 되돌아갔고, 지지율은 노무현 42.2%, 이회창 35.2%로 나왔다. 결국 제16대 대선은 노무현 48.9%, 이회창 46.6%의 득표율로 막을 내렸다. 노무현이 2.3% 포인트라는 근소한 표차로 이회창을 간신히 이긴 것이다. 만일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가 실현되지 못하였다면, 노무현은 이회창을 이기지 못하였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차례 대선경험이 주는 교훈은, 무소속 제3후보의 등장이 야권후보에게 매우 불리한 판세를 조성한다는 것과 후보단일화가 매우 중요한 승리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교훈을 생각하면, 올해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해 문재인과 안철수를 후보단일화로 끌어가야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는 실현될 수 있을까?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는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 두 후보가 단일화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후보단일화가 매우 힘들어 보이는 것이다.
 
첫째, 지난 시기 이회창-조순 후보단일화와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는, 당시 낮은 지지율밖에 얻지 못한 후보들 가운데 어느 한 쪽이 대선완주를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 안철수에게 쏠리는 지지율이 매우 높다. 안철수에게 쏠린 높은 지지율이 그의 대권야심을 계속 자극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질 가능성은 없어 보이니, 그는 문재인과 후보단일화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자기가 박근혜를 이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젖은 안철수에게서 대선완주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그러나 정당의 안받침을 받지 못하고 정치경험마저 전혀 없고 '반짝 인기'에만 의존하는 무소속 후보 안철수가 대선에서 이길 가망은 없어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의 역할은 문재인의 표밭을 갉아먹음으로써 결국 박근혜를 당선시키는 '박근혜 간접지원'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지금 주한미국대사관과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는 골프나 치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이전 대선국면들에서 줄곧 그러했던 것처럼 올해도 본국으로부터 비밀공작역량을 대폭 지원받아 대선공작을 미친 듯이 벌이고 있을 것이다.
 
이 땅의 대선에 관련된 '위킬릭스' 비밀전문들을 분석해보면, 2007년 대선 때도 미국은 이명박을 당선시키기 위한 대선공작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미관계의 비밀스런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믿기 힘들겠지만, 미국의 대선공작이야말로 대미예속의 추악한 단면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올해 대선에서 미국의 비밀공작목표는 박근혜를 당선시켜 새누리당의 집권연장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미국이 새누리당의 집권연장을 보장해주려는 까닭은, 지난 시기 노무현 정권과 마찰을 겪었던 씁쓸한 경험을 또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미국 고위관리들의 두뇌에서 출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지난 시기 미국에게 골치 아팠던 노무현의 '직계'이고, 지금 문재인에게 줄을 대고 있는 정계인맥도 이전에 노무현을 둘러싸고 있었던 정계인맥과 매우 유사하여 미국에게는 좀 골치가 아픈 인맥이다. 만일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이 당선되면, 내년에 제2노무현 정권이 출현하여 한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자기들과 마찰을 겪을 수 있다는 껄끄러운 예감, 바로 이것이 미국 고위관리들이 문재인에게서 느끼는 거부감이다. 바로 그러한 사연이 있기 때문에, 미국은 문재인을 떨구고 박근혜를 당선시키려는 대선공작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만일 통합진보당이 집단탈당과 종북모략을 겪지 않았더라면, 통합진보당 대선후보 이정희가 대선판세를 좌우할 제3후보로 당당하게 등장할 판이었다. 만일 이정희가 제3후보로 등장하였더라면, 비록 지금 안철수에게 쏠리는 지지율에는 미치지 못하였더라도, 적지 않은 지지율을 얻었을 것으며, 따라서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강력한 야권연대를 실현하고 정권을 교체하는 대선경로는 미국의 대선공작으로도 막을 수 없는 필연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정희가 서려고 하였던 제3후보 자리는 집단탈당과 종북모략으로 결국 안철수에게 넘어가고 말았고, 통합진보당 대선후보는 제4후보로 밀려나고 말았다.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전진시킬 결전의 10월을 맞으며

이정희가 대선출마선언식에서 천명한 것처럼,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집권연장기도를 저지하고 정권교체를 실현하려면, 통합진보당은 제4후보로 밀려난 이정희를 제3후보로 올려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으로서는 매우 어려워 보이는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는 강력한 여론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강력한 여론압박만이 그 두 후보를 단일화로 끌어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는 문재인으로 단일화된다는 뜻이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가 실현되어야, 통합진보당 대선후보가 제3후보로 올라서면서 대선구도를 문재인-박근혜-이정희 3자구도로 재편할 수 있고, 그 3자구도에서 이정희의 정치적 역할을 극대화하여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이는 야권연대를 기어이 실현할 수 있고, 전략적 야권연대로 정권을 교체하여 진보정치를 밀고 나갈 전진의 교두보를 사회변혁의 앞길에 부설할 수 있다.
 
만일 통합진보당이 올해 대선국면을 이런 시나리오대로 펼쳐나갈 수만 있다면, 정녕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통합진보당은 집단탈당과 종북모략으로 추락한 지지율을 만회하면서 새누리당의 집권연장기도를 저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국의 대선공작을 전면적으로 파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대승리가 아닌가!
 
이러한 대승리 시나리오를 실현하려면, 이정희의 지지율을 5%선에서 10%선으로 무조건 끌어올려야 한다. 지지율 상승을 위해 통합진보당에 주어진 시간은 참 아쉽게도 10월 한 달 뿐이다. 10월 한 달 동안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노동자, 농민, 서민의 생산현장과 생활현장 곳곳에 널리 파고 들어가 목이 쉬도록 설득하며 통합진보당 대선후보에게로 민심을 돌려야 할 것이다. 통합진보당 12만 당원이 산도 떠옮기고 바다도 메우리라는 결심과 의지를 안고 각지 현장 속으로 뛰어들면, 무슨 일을 해내지 못하겠는가.
  
새누리당의 집권연장기도를 단호히 저지하고, 미국의 대선공작을 전면 파탄시키고, 정권교체를 반드시 실현하여, 사회변혁의 앞길에 진보적 정권교체의 전략적 교두보를 부설하는 참으로 값진 투쟁, 바로 그런 결전이 벌어질 10월이 통합진보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다가왔다. (2012년 9월 2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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