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3

더 크고 엄청난 정세변화 일으킬 남북관계개선 급진전

[한호석의 개벽예감] (283)
자주시보 2018년 01월 22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조미핵대결종식으로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
2. 미국에서 해괴한 소문들이 떠돌고 있다
3. 모호화 어법 뒤에 숨겨진 비밀 
4. 쌘프랜시스코 3자비밀회담, 그건 허사다


1. 조미핵대결종식으로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

지금 세계의 시선은 급격한 정세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한반도로 집중되고 있다. 그 정세변화는 두말할 나위 없이 남북관계개선의 급진전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1일 아침에 신년사를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남북관계개선이 마치 경이로운 기적처럼 우리의 눈앞에 극적인 장면들을 하나씩 펼쳐가고 있는 중이다.

남과 북이 우리 민족끼리 힘과 슬기를 합쳐 밀고 나가는 남북관계개선은 다음 달에 열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아로새긴 멋진 서막을 올리게 된다. 지금 남과 북이 우리 민족끼리 협력하여 준비하고 있는 평창동계올림픽은,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신성한 강토를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로 불태우겠다는 극악무도한 폭언을 토해낸 미치광이의 핵공갈을 물리치고 기어이 평화를 실현하려는 우리 민족의 장한 기상을 세계에 떨칠 사상 최고의 평화축전으로 펼쳐질 것이다. 

▲ <사진 1> 이 사진은 2018년 1월 9일 판문점 남측 구역에 있는 평화의 집에서 남북고위급 회담이 개최되었을 때 남과 북의 대표단 단장들이 서로 손을 맞잡은 장면이다. 남측 대표단 단장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고, 북측 대표단 단장은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1일 아침에 신년사를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남북관계개선이 마치 경이로운 기적처럼 우리의 눈앞에 극적인 장면들을 하나씩 펼쳐가고 있는 중이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런 급격한 정세변화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반만년 민족사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조국분단으로 무려 70년 동안 갈라져 살아왔지만, 우리 민족끼리 뜻이 통하고 힘과 슬기를 합치면 아주 짧은 시간에 분단체제를 허물어버리고 위대한 통일국가를 건설할 엄청난 저력이 우리 민족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을 실증한 것이다. 70년 분단체제 밑에 짓눌렸던 민족의 저력이 굴종과 적폐의 거죽을 찢고 솟구쳐 올라 삼천리강산을 뒤덮으며 용용히 흐르기 시작하였다.

남북관계 개선은 남과 북 중에서 어느 한 쪽이 홀로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끼리 뜻이 통하여 힘과 슬기를 서로 합칠 때, 바로 그럴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빛나는 혁신이며, 눈부신 도약이며, 가슴 벅찬 승리이다. 그리하여 남북관계 개선은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된 오늘의 정세변화 속에서 남과 북이 미국의 한반도 핵전쟁위협을 배격하고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려는 대전환의 출발점에 나서는 것이며, 분단체제를 혁파하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는 것이다. 남과 북이 힘과 슬기를 합친 민족주체역량으로 관계를 개선하는데, 어찌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으랴!  
남북관계 개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때부터 2007년 10.4선언이 발표된 때까지 8년 동안 남북관계 개선이 실현되었다. 그런데 올해 실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은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실현되었던 남북관계개선과 매우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1)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기간에는 조미핵대결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그 기간에 실현된 남북관계개선은 조미핵대결의 ‘금지선’을 넘어설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조미핵대결이 남북관계개선의 속도, 방향, 범위를 내리누르는 억제요인으로 되었던 것이다. 조선과 미국이 핵대결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남과 북은 관계개선 초기단계에는 들어섰으나 완성단계에로 더 멀리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조미핵대결이 종식되는 정세의 질적 변화가 일어나야 남북관계개선이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길을 열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18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남북관계개선은 조미핵대결이 종식된 정세의 질적 변화 속에서, 그 질적 변화를 추동요인으로 하여 실현되기 시작한 새로운 차원의 남북관계개선이다. 만일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지 않았더라면, 남북관계도 개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조미핵대결종식과 남북관계개선의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사진 2> 이 사진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4일 평양에서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서명한 뒤 백화원 영빈관에서 마련된 환송오찬에 참석한 장면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오찬원탁 중앙에 앉은 뒤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2000년 6월에 그 곳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도 바로 그 자리에 앉으셨다고 말했다. 두 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김영일 총리는 환송오찬 축하발언에서 "오늘 선언은 온 겨레에게 새로운 힘과 신심을 안겨주고 있다. 북남수뇌상봉은 우리 민족끼리 뜻과 힘을 합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고 말했고,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뒤이은 축하발언에서 "남북 정상께서는 만남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 민족의 장래에 하나같이 소중하고 뜻깊은 합의를 이뤄내셨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또 다시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은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된 정세의 질적 변화를 추종요인으로 하여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이루어졌던 남북관계개선과 다르다.     ©자주시보,한호석소장

(2) 2000년부터 2007년까지 8년 동안 남북관계개선에서 이룩된 귀중한 성과들은 대북적대정책을 또 다시 들고 나와 휘둘렀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도발망동에 의해 혹심하게 파손되었고, 남과 북은 이전의 적대관계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연속 자행한 대북도발이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에 붙어 돌아간 종속변수였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한미동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을 지배하는 한, 그런 대북도발은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에 붙어돌아가는 종속변수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대북적대정책을 완화하기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민족의 염원과 정세발전의 요구에 맞게 대북관계개선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는가 아니면 완화하지 않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끝내 완화하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는 대북관계개선을 추진하다가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할 것인가 아니면 완화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이 남북관계개선의 진전여부를 전망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 미국에서 해괴한 소문들이 떠돌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6.25전쟁이 정전된 이후 오늘까지 65년 동안 미국 역대 행정부들은 조선을 고립, 압살해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왔다. 65년 동안 지속되어온 그런 대조선적대정책이 트럼프 행정부에게로 계승되었으므로, 트럼프 행정부가 대조선적대정책을 자발적으로 완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그러나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은 영구불변한 것이 아니므로, 그들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예상되는 완화계기는 하나뿐이다. 조선과 미국이 격돌한 대결에서 조선이 승리하여 미국에게 대조선적대정책을 포기하라고 강제하고, 미국은 조선의 그런 강압적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 다시 말해서 조미적대관계에서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 미국은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조미적대관계에서 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미국은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지 않으면, 지금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도 평창동계올림픽대회 기간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70여 년 지속되어오는 조미적대관계에서 승자와 패자를 결정지은 정세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 변화는 70년 조미적대관계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엄청난 변화다. 그래서 그것을 질적 변화라고 불러야 한다. 최근 <자주시보>에 실린 내 글들에서 반복적으로 서술해오고 있는,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25년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 조미핵대결종식, 바로 이 사변이 70년 조미적대관계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질적 변화다. 하지만 미국 언론매체들이 교묘하게도 보도형식을 빌어 퍼뜨리고 있는, 조미핵대결에 관한 헛소문들을 순진하게 믿는 사람들은 그런 엄청난 사변, 정세의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 <사진 3> 위의 두 사진들은 2013년 3월 29일 0시 30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사령부 작전실에서 긴급작전회의를 소집하였을 때, 작전실에 게시되었던 '전략군 미 본토 타격계획'이라는 제목의 핵타격계획도를 재구성한 것이다. 그날 심야작전회의는 미국이 B-2 스텔스전략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동시켜 조선에 대한 핵위협을 감행한 것으로 하여 긴급히 소집되었다.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날 긴급작전회의에서 "명령만 내리면 첫 타격으로 모든 것을 날려보내고 씨도 없이 재가루로 불태워버리라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위의 핵타격계획도가 말해주는 것처럼, 조선은 이미 2013년 이전에 미국 본토 전역을 핵타격사정권 안에 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조선이 2017년 말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것은 미국 본토 전역을 핵타격사정권 안에 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자주시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서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하여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는데도, 조선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정상각으로 발사하지 않았으므로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조미핵대결이 종식되지 않았다느니, 또는 조선의 전략핵시설 몇 개소를 파괴하는 이른바 ‘코피공격(bloody nose attack)’을 감행하여 조선을 굴복시키려는 기습타격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다느니 하는 해괴한 소문들이 미국에서 떠돌고 있다. 미국 언론매체들이 퍼뜨리는 그런 헛소문들은 한국 언론보도에도 버젓이 실리고 있고, 그런 보도 아닌 보도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은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남북관계개선의 진전여부를 전망하는 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므로, 요즈음 미국 언론매체들이 퍼뜨리는 조미핵대결종식에 관한 헛소문들이 얼마나 황당한 거짓말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 조선의 완성된 대륙간탄도미사일능력을 깎아내리려는 미국의 일부 미사일전문가들은 화성-15형이 정상각으로 발사되지 않고 최대 고각으로 발사된 것이 마치 어떤 기술공학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주장이야말로 허튼 소리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정상각으로 발사하는 것보다 최대 고각으로 발사하는 것이 로켓기술공학적으로 더 어렵다. 조선이 화성-15형의 사거리를 크게 줄여 정상각으로 발사하면, 일본 열도를 넘어 북태평양 상공으로 날아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조선은 재돌입체의 돌진낙하비행상황을 관측하지 못하고 미국만 그 상황을 관측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화성-15형 재돌입체의 돌진낙하비행상황을 단독으로 관측한 경우, 그 재돌입체가 돌진낙하하다가 대기마찰로 타버렸다고 허위선전을 해도 조선은 반박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조선은 조선에서 관측할 수 있는 동해 수역에 재돌입체를 떨어뜨리기 위해 화성-15형을 최대 고각으로 쏘아올렸던 것이다. 

그런 논거 이외에 더 있다. 조선은 2016년 3월 14일에 진행되었던 대륙간탄도미사일 재돌입체성능을 판정하는 대기권 재돌입환경 모의시험에서 합격한 재돌입체를 화성-12형에 장착하고 2017년 5월 14일 동해 상공으로 고각발사하였고, 2017년 8월 29일과 9월 15일에는 각각 북태평양 상공으로도 발사하였다. 또한 조선은 화성-12형에 장착하였던 재돌입체를 화성-14형에도 장착하고 2017년 7월 4일과 7월 28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고각발사하였다. 이처럼 조선은 재돌입환경모의시험을 통과한 재돌입체를 화성-12형에 장착하여 세 차례 시험발사한 뒤에 화성-14형에도 장착하고 두 차례 더 시험발사한 것이다. 물론 조선은 그 다섯 차례 시험발사에서 모두 성공하였다. 

특히 2017년 7월 29일 조선이 고각으로 쏘아올린 화성-14형은 정점고도 3,724.9km까지 올라갔다가 동해 수역에 탄착했는데, 거기에 장착된 재돌입체가 돌진낙하비행 최종구간에서 대기마찰로 타버리지 않고 정상적으로 탄착하였다는 사실은 일본 <NHK> 홋까이도 지부에 설치된 기상관측카메라가 촬영한 기상관측동영상에서 실증된 바 있다. 이에 관해서는 <자주시보> 2017년 8월 7일에 실린 나의 글 ‘마하스템 예고한 7월 29일 오전 0시 28분’에서 자세히 서술하였다. 

▲ <사진 4> 이 사진은 2017년 7월 29일 일본 홋까이도 지부의 기상관측카메라가 촬영한 동영상 중에서 화성-14형 재돌입체의 섬광이 마지막 순간에 위아래로 갈라지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장면을 확대한 것이다. 이 사진에 나타난 위쪽 섬광체의 크기는 아래쪽 섬광체에 비해 작고 섬광의 밝기도 낮다. 이것은 재돌입체에 들어있는 핵탄두폭발조종장치가 모의열핵탄두를 기폭하는 순간, 모의열핵탄두는 폭발되고, 핵탄두폭발조종장치는 파열되면서 서로 떨어져나간 장면이다. 수직으로 낙하하는 재돌입체에서 파열잔해들이 튀어나왔으므로 마치 섬광이 위아래로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특이한 소멸현상이 나타났다. 만일 재돌입체가 정상적으로 탄착되지 않았다면 섬광체는 위아래로 갈라지지 않은 채 소멸되었을 것이다. 조선은 다섯 차례 검증을 거치면서 대기권재돌입판정기준에 합격한 재돌입체를 2017년 11월 29일에 마지막으로 화성-15형에 장착하고 최대고각으로 쏘아올렸다. 조선의 국가핵무력은 그렇게 완성되었고, 조미핵대결은 그렇게 조선의 승리로 25년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다.     ©자주시보,한호석소장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실들은 조선이 만든 재돌입체가 적어도 다섯 차례 검증을 거치면서 대기권재돌입판정기준에 합격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리하여 조선은 다섯 차례 검증에서 대기권재돌입판정기준에 합격한 재돌입체를 한층 더 발전시킨 각개발사식 재돌입체(MIRVs)를 화성-15형에 장착하고 최대 고각으로 쏘아올렸던 것이다. 2017년 11월 29일 조선은 화성-15형에 장착된 각개발사식 재돌입체 모의탄두들이 “조선동해 공해상의 설정된 수역에 정확히 탄착되였다”고 발표하였는데, 여기서 ‘정확히 탄착되었다’는 말은 예정된 탄착구역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며, 동시에 돌진낙하비행 최종구간에서 대기마찰로 타버리지 않고 정상적으로 탄착하였다는 뜻이다. 이에 관해서는 2017년 12월 4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동해의 밤하늘에 나타난 붉은 섬광체 3개’에서 자세히 서술하였다.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능력을 그처럼 고도화하여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실증되었는데도 미국의 몇몇 분별없는 미사일전문가들은 그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면서 조선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정상각으로 발사하지 않았으므로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2) 조선의 전략핵시설 몇 개소를 파괴하는 이른바 ‘코피공격’을 감행하여 조선을 굴복시키려는 기습타격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헛소문은 원래 영국의 언론매체 <텔리그라프(Telegraph)>가 2017년 12월 20일에 처음 퍼뜨린 것인데,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코피공격검토설’을 언론에 흘려준 사람은 허벗 맥매스터(Herbert R. McMaster)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2017년 12월 상순 중국 베이징에서 조선과 미국이 반관반민 비공개접촉을 진행한 직후인 12일 12일 렉스 틸러슨(Rex W. Tillerson) 국무장관이 토론회 연설에서 조선에게 조건 없는 양자회담을 전격 제의하였을 때,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틸러슨 국무장관의 조건 없는 양자회담제의를 극력 반대하면서 이른바 ‘코피공격작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는 것처럼 헛소문을 조작하여 언론에 흘려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텔리그라프>가 기사화한 이후 잠잠해지는가 싶었던 그 헛소문은 2018년 1월 9일 미국 언론매체 <월스트릿저널>과 <비지니스 인싸이더>에서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각각 고개를 다시 쳐들었다. 그 두 언론매체들은 최근 백악관에서 조선의 전략핵시설들에 대한 ‘코피공격작전’이 검토되고 있다는 헛소문을 다시 실었고, 한국 언론매체들은 그 헛소문을 분별없이 퍼날랐다. 

▲ <사진 5> 이 사진은 미국 텔레비전방송이 이른바 '코피공격작전'에 관한 보도를 내보내는 화면이다. '코피공격작전'이라는 것은 미국이 조선의 전략핵시설 몇 개소를 공습으로 파괴하는 기습타격전을 뜻한다. 2017년 12월 상순 중국 베이징에서 조선과 미국이 반관반민 비공개접촉을 진행한 직후인 12월 12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토론회 연설 중에 조선에게 조건 없는 양자회담을 전격 제의하였을 때, 허벗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틸러슨 국무장관의 조건 없는 양자회담제의를 극력 반대하면서 '코피공격작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는 것처럼 헛소문을 조작하여 언론에 흘려주었다. '코피공격작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헛소문은 1994년 6월 클린턴 행정부가 조선의 녕변핵시설을 외과수술식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려고 하였다는 헛소문을 23년 만에 또 다시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자주시보,한호석소장

그러나 그 헛소문은 1994년 6월 클린턴 행정부가 조선의 영변핵시설을 ‘외과수술식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려고 하였다는 헛소문을 23년 만에 또 다시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2017년 4월 12일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가 추적, 보도한 바에 따르면, 1994년 6월 클린턴 행정부가 조선의 영변핵시설을 ‘외과수술식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려고 하였다는 것도 사실은 헛소문이었다고 한다. 조미회담을 반대한 극우파 관리들이 조선에게 겁을 주려는 망상에 빠져 조작한 헛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미회담을 반대하는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조선의 전략핵시설을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는 ‘코피공격작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헛소문을 또 다시 조작하여 언론에 흘려주었으니 ‘제 버릇 개에게 주지 못한다’는 속담에 어울리는 짓이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지 않는 미국 국방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워싱턴 이그재미너> 2018년 1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코피공격작전’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펜타곤이 무관심한 군사작전을 백악관이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야말로 앞뒤가 맞지 않는 헛소리다.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핵강국의 전략핵시설을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려고 한다는 헛소리는 러시아가 미국의 전략핵시설을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려고 한다는 헛소리만큼이나 황당무계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하면서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합니다”고 언명한 바 있다.  

3. 모호화 어법 뒤에 숨겨진 비밀 

위에 서술한 두 가지 헛소문은 미국 언론매체들 속에서 잠시 떠돌다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런 헛소문과 달리 남북관계개선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게 아니냐 하고 우려할 만한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 2018년 1월 18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확장억제전략협의회(EDSCG) 제2차 회의가 진행된 것이다. 이 회의에는 양측에서 외교 및 국방부문의 차관급 관리들이 각각 참석하였다. 한국 국방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그 차관급 회의에서 남북관계개선에 대해 협의하였고, 한미공조체제를 유지하기로 하였으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지속되는 한, 미 전략자산의 한국 및 주변지역에 대한 순환배치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이 보도내용을 읽으면, 미국은 올해에도 지난해처럼 항모타격단과 전략폭격기편대를 한반도에 수시로 출동시키면서 군사적 긴장을 여전히 고조시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최근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 개선이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이후에 중지되는 게 아니냐 하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그런 전망은 좀 성급한 것이다. 왜냐하면,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이후 미국이 항모타격단과 전략폭격기편대를 한반도에 또 다시 출동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차관급 관리들이 결정할 수 있는 단순한 군사문제가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심중히 결정해야 하는 국가안보문제이기 때문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 문제를 어떻게 결정하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지난 며칠 사이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과 그의 핵심참모들이 줄줄이 꺼내놓은 아래와 같은 연속발언들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1월 11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진행된 <월스트릿저널> 기자들과 대담하는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고 묻는 질문이 나왔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질문을 비껴갔다.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2018년 1월 16일 틸러슨 국무장관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외무장관 다자회의 직후 캐나다 외무장관과 함께 진행한 공동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고 묻는 취재기자의 질문이 나왔을 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화여부를 확인해주는 것이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직답을 피했다. 
이튿날인 2018년 1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통신> 기자들과 대담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의사소통을 한 적이 있었는가 하고 묻는 질문이 나왔을 때, 그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였다. 

▲ <사진 6> 이 사진은 2018년 1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통신> 기자들과 대담하는 장면이다. 그는 대담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의사소통을 한 적이 있었는가 하고 물은 질문이 나왔을 때, 그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였다. 그 자리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핵심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를 묻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직답을 피하면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였다.     ©자주시보,한호석소장

같은 날, 존 켈리(John F. Kelly) 백악관 비서실장은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와 진행한 대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고 묻는 질문이 나왔을 때, “(조선과 미국 사이에) 열려있는 통로들이 있지만 (그 질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위에 열거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핵심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를 묻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직답을 피하면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였다. 왜 그렇게 하였을까? 
실재하는 사실을 시인하기 힘든 정황이 조성되었을 때, 시인도 하지 않고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화(glomarization) 어법이 사용되는 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는 민감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핵심참모들이 시인도 하지 않고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화 어법을 사용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대화를 제의하였으나 그에 대한 응답을 아직 받지 못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이 민감한 문제와 관련하여 좀 더 구체적인 발언을 꺼내놓은 사람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다. 그는 2018년 1월 17일 <팍스 뉴스>와 진행한 대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는 질문이 나왔을 때,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외국지도자들과 통화한다”고 답변하였다. 얼핏 동문서답처럼 들리는 이 답변 속에 궁금증을 풀어줄 실마리가 있다. 켈리 비서실장의 그 답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대화를 제의한 것이 아니라 제3자의 도움을 받아, 다시 말해서 제3국 국가지도자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간접적으로 대화를 제의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은밀한 부탁을 받고 그의 대화의사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제3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사실들을 논할 필요가 있다.

패자가 승자에게 먼저 대화를 요청하는 것은 국제관례다. 조미핵대결에서 패한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핵대결을 승리로 이끈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먼저 대화를 제의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의 대화제의를 비밀로 감추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종식되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의한 대화의 형식은 정상회담이다. 2018년 1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통신> 기자들과 대담하는 중에 “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마주 앉을 것인데, 마주 앉아 문제를 해결하게 될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날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도 <팍스 뉴스>와 진행한 대담에서 “이제 현 시점에서 남은 길은 없다. 우리는 이 사람(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지칭함-옮긴이)을 상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그가 조미정상회담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발언이었다. 

▲ <사진 7> 이 사진은 2018년 1월 17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팍스 뉴스>의 '스페셜 리포트'라는 제목의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대담자 브렛 베이어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켈리 비서실장은 그 대담에서 지금 미국에게 남아있는 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협상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조미정상회담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발언이었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제의에 대한 응답을 주지 않았다.     ©자주시보,한호석소장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의에 응답을 주지 않았다. 왜 응답을 주지 않았을까? 첫째는,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원한다면, 국제관례에 따라 특사를 평양에 보내 정식으로 제의할 것이지, 제3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비공식적으로 제의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퇴짜를 받을 어설픈 행동이었다. 둘째는, 트럼프 대통령이 특사를 평양에 보내 정식으로 정상회담을 제의한대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 제의를 받아줄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9월 21일 자신의 명의로 발표한 성명에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제 할 소리만 하는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비난한 사람, 조선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전 세계에서도 비난과 지탄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사람과 마주 앉아 의미 있는 정상회담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의를 무시해버리고, 조미고위급회담을 구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4. 쌘프랜씨스코 3자비밀회담, 그건 허사다

2018년 1월 17일 한국의 주요언론매체들은 중요한 사실을 보도하였다. 2018년 1월 13일 미국 쌘프랜씨스코에서 한미일 3자안보수장회담이 은밀히 진행되었다는 보도였다. 그 비밀회담이 진행된 날로부터 나흘 지난 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청와대 관계자는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야찌 쇼따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보보장국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자회담을 비공개로 진행하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쌘프란씨스코 3자회담은 그것이 은밀히 진행된 비밀회담이었다는 점에서 음모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그들은 비밀회담에서 어떤 음모를 꾸민 것인가?

일본 <NHK> 2018년 1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이 비핵화협상에 나오도록 최대 압력을 가하는 미국의 기존 방침을 쌘프란씨스코 3자회담에서 재확인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보도기사에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3자회담에 참석하였다는 사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2자회담으로 잘못 알려졌었다. 
조선이 비핵화협상에 나오도록 최대 압력을 가하는 미국의 기존 방침을 재확인한 비밀회담에 정의용 실장이 참석한 것은, 최근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에 대처하는 문제도 당연히 그 비밀회담에서 논의되었음을 말해준다.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일본-한국이 3자합동으로 조선에게 최대 압력을 가하는 문제와 남과 북이 우리 민족끼리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문제는 상극 중의 상극이다. 조선에게 최대 압력을 가하는 것과 남과 북이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것은 양립될 수 없다.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것처럼,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조미회담과 남북관계개선을 반대하는 극우관료집단의 우두머리다. 그런 흉심을 품은 극우관료가 3자비밀회담을 긴급히 소집하여 조미회담과 남북관계개선을 가로막으려는 음모를 꾸민 것이 분명해 보인다. 

▲ <사진 8> 이 사진은 조선에서 전승절 60주년을 맞은 2013년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푸에블로호 앞에서 조선인민군 및 로농적위군 명예위병대를 사열하며 입장하는 장면이다. 2018년 1월 23일은 미국 첩보함 푸에블로호가 조선인민군에게 나포된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적국에게 자국 군함을 나포당하는 치욕을 겪었으며, 사죄문을 조선에게 바치고서야 7개월 동안 붙잡혀 있었던 전쟁포로 82명을 송환받는 치욕을 겪었다. 50년 전 조선에는 핵무기가 1발도 없었고, 미국에는 핵무기가 수 천 발이나 있었지만, 미국은 조선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핵공격력을 갖추고 있다. 핵무기가 1발도 없었던 조선에게 무릎을 꿇었던 미국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을 무슨 수로 당하겠는가. 미국이 조선에게 그 무슨 최대 압력을 가하는 것이야말로 푸에블로호의 치욕을 망각한 것이며, 치욕과 비교할 수 없는 파멸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자주시보,한호석소장

2018년 1월 23일은 미국 첩보함 푸에블로호(USS Pueblo)가 조선인민군에게 나포된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적국에게 자국 군함을 나포당하는 치욕을 겪었으며, “미국 함선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에 침입하여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을 반대하는 엄중한 정탐행위를 한데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지고 이에 엄숙히 사죄”한다고 명기한 사죄문을 조선에게 바치고서야 7개월 동안 붙잡혀 있었던 전쟁포로 82명을 송환받는 치욕을 겪었다. 50년 전 조선에는 핵무기가 1발도 없었고, 미국에는 핵무기가 수 천 발이나 있었지만, 미국은 조선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핵공격력을 갖추고 있다. 핵무기가 1발도 없었던 조선에게 무릎을 꿇었던 미국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을 무슨 수로 당하겠는가. 미국이 조선에게 그 무슨 최대 압력을 가하는 것이야말로 푸에블로호의 치욕을 망각한 것이고, 치욕과 비교할 수 없는 파멸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2018년 1월 17일 틸러슨 국무장관은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진행된 간담회에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전 국무장관과 함께 참석하여 발언하는 중에 “미국과 북조선이 협상탁에 나서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조미협상이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말한 비핵화협상을 뜻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조미핵대결에서 자기들이 패했는데도 조선의 비핵화를 협상목표로 내건 기존 방침에 미련을 두고 있다. 그들이 조선을 비핵화하겠다는 참으로 미련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한, 조선이 그들의 회담제의를 받아줄리 만무하다. 

미국은 조미핵대결에서 패하였으면서도 자기들이 최대 압력을 가하면 조선을 비핵화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의 오류, 실패, 좌절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억설과 궤변을 늘어놓는 법인데, 지금 조선을 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모습이 꼭 그런 꼴이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조선에게 회담제의를 계속해도 조선으로부터 ‘개무시’를 당하고 있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된다. 

▲ <사진 9> 이 사진은 2000년 9월 15일 남북선수단이 오스트레일리아 씨드니에서 열린 여름철올림픽대회 개막식에 단일기를 휘날리며 공동으로 입장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지금 남과 북이 우리 민족끼리 협력하여 준비하고 있는 평창동계올림픽은, 신성한 삼천리 강토를 '화염과 분노'로 불태우겠다는 극악한 폭언을 토해낸 미치광이의 핵공갈을 물리치고 기어이 평화를 실현하려는 우리 민족의 장한 기상을 세계에 떨칠 사상 최고의 평화축전으로 펼쳐질 것이다. 남과 북이 민족의 통일염원을 담은 단일기를 휘날리게 될 '평화올림픽'이 성사되면,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전폭적인 성원을 받으며, 그리고 제국주의전쟁위험을 배격하는 전 세계 평화애호인민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우리 민족끼리 추진하는 남북관계개선은 더욱 급물살을 타고 진전될 것이다.     ©자주시보,한호석소장

미국이 모르는 것은, 그들이 제아무리 반대하고 가로막아도 한반도 정세는 그들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쌘프랜씨스코 3자비밀회담에서 남북관계개선을 가로막으려는 음모를 꾸몄지만, 그건 허사다. 남과 북이 민족의 통일염원을 담은 단일기를 휘날리게 될 ‘평화올림픽’이 성사되면,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전폭적인 성원을 받으며, 그리고 제국주의전쟁위험을 배격하는 전 세계 평화애호인민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우리 민족끼리 추진하는 남북관계개선은 더욱 급물살을 타고 진전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8년 4월 19일부터 30일까지 평양 모란봉극장에서는 “우리 조국이 일제 통치에서 해방된 후 처음 한 자리에 모인”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가 진행되었다. 한반도 전역의 56개 정당 및 사회단체를 대표하여 그 역사적인 정치회합에 참석한 민족대표 695명은 ‘전 조선동포에게 격함’이라는 제목의 격문에서 “우리 조국강토에서 외국군대를 철거하고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이 우리 민족끼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라”고 외치면서 “우리 민족의 통일과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싸우는 백절불굴의 민족적 진취기상 만세!”를 불렀다. 70년 전 백절불굴의 민족적 기상을 안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였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절절한 외침. 그 외침은 70년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오늘도 삼천리 강산을 쿵쿵 울리며 우리 민족을 이끌어주고 있지 아니한가! 우리 민족끼리 화해하고 협력하고 단합하여 난관과 방해를 뚫고 통일의 길로 가라고, 어서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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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6

상상하라, 승자와 패자가 마주앉아 총결산하는 회담을

[한호석의 개벽예감](282)
자주시보 2018년 01월 1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조선의 승리를 인정하는 러시아, 조선의 승리를 은폐하는 미국
2. 패자의 다급한 회담간청, 승자는 무시해버렸다
3. 트럼프가 보여준 태도변화,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4. 승자와 패자가 마주앉아 총결산하는 회담 열리게 된다


1. 조선의 승리를 인정하는 러시아, 조선의 승리를 은폐하는 미국 

조선에서 조미핵대결이라는 말은 쓰이지 않고, 반미대결전이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원래 조미핵대결이라는 말은 내가 만들어 쓰는 신조어다. 내가 조미핵대결이라는 말을 쓰게 된 까닭은, 1953년 7월 27일 정전 이후 지속되어오는 조미대결전의 기나긴 노정에서 조미핵대결이라는 특정기간을 구분해서 고찰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말하는 반미대결전은 조미핵대결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벌어지고 있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핵대결이라는 개념은,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개발, 완성하는 문제를 놓고 조선과 미국이 대결한다는 뜻이다. 자기의 국가핵무력을 개발, 완성하려는 조선과 그 노력을 가로막으려는 미국이 격돌한 대결, 그것이 조미핵대결이다. 
1993년 조선에 대한 미국의 특별사찰 강요로 촉발되어 해를 거듭할수록 차츰 격화되어온 조미핵대결은 2017년에 이르러 가장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런 점에서 2017년은 조미핵대결의 최종국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17년 최종국면에서 조선은 미국 본토 전역을 사정권에 둔 초강력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하였고, 그에 앞서 그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될 초강력 열핵탄두를 기폭하는 지하핵시험에서도 성공을 거둠으로써 자기의 국가핵무력이 마침내 완성되었음을 실증하였으며, 장장 25년 동안 지속되어온 조미핵대결의 마지막 장에 국가핵무력완성이라는 승리의 마침표를 찍었던 것이다. <사진 1> 

▲ <사진 1> 2017년 11월 29일 조선 은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함으로서 조미핵대결을 자기의 승리로 종식시켰다. 나는 이전에 <자주시보>에 발표한 글에서 화성-14형의 사거리를 14,000km로 추산하였는데, 위의 사진은 이스라엘의 어느 언론인이 그 사거리를 13,000km로 추산한 사정권을 세계지도 위에 표시한 것이다. 화성-15형 사정권이 표시된 위의 세계지도가 잘 말해주는 것처럼, 화성-15형은 남극대륙 중앙부까지 날아갈 수 있고, 남아메리카대륙 및 아프리카대륙 서남단 일부를 제외한 세계 모든 지역을 사정권 안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선의 핵공격위험에서 벗어려면, 아르헨티나에 가서 안전한 피신처를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위의 지도는 장장 25년에 걸친 조미핵대결에서 미국이 조선의 국가핵무력완성을 가로막지 못하고 완패하였음을 보여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에서는 조미핵대결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 때문에, 조미핵대결이 종식되었는데도 조미핵대결이 종식되었다는 표현은 쓰지 않고, 그 대신 조선의 국가핵무력이 완성되었다는 다른 표현을 쓴다. 비록 표현은 서로 달라도,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과 조미핵대결 종식은 서로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신년사에서 “국가핵무력완성의 력사적 위업을 성취하였다”고 공식 선포한 것은,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음을 공식 선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고, 그로써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서 처음으로 인정한 나라는 러시아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Interfax News Service)> 2018년 1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올렉 버미스트로브(Oleg Burmistrov) 러시아 외교부 특명전권대사는 그 통신사와 진행한 신년대담에서 유엔안보리가 대조선제재를 추가로 결의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유엔안보리가) 석 달마다 (대조선제재)결의를 채택하는 것은 그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가까운 장래는 물론 먼 장래에도 유엔안보리의 제재노선은 본질적으로 전망이 없다. 조선에 대한 제재와 압박의 가능성은 소멸되고 말았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의 독자적인 대조선제재를 가리켜 “상황을 악화시키는 해로운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미국의 대조선제재를 비난하고 반대하는 러시아의 목소리는 쎄르게이 랴브꼬브(Sergei A. Ryabkov) 러시아 외교차관이 2018년 1월 13일 러시아 <타스통신(Tass News Agency)>과 진행한 대담에서 더 크게 울려나왔다. 그는 조선과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비윤리적이고 잔인하다”고 하면서 맹렬히 비난하였다. 

이런 비난과 반대는 앞으로 미국이 유엔안보리에서 대조선제재문제를 제기하더라도 러시아는 그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예고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트럼프 행정부에게 대조선제재압박을 중지하고 조미회담에 나서라고 강한 어조로 촉구한 것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미관계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가 새해에 들어와 돌변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런 태도변화는 러시아가 조미핵대결에서 조선이 승리하였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조미핵대결에서 조선이 승리하였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V. Putin) 러시아 대통령이다. 그는 2018년 1월 11일 러시아 언론인들과 대담하면서 “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 확실히 승리했다고 믿는다. 그는 핵무기를 가졌고, 지구의 거의 모든 지역에 도달할 수 있고, 그의 잠재적 적국 영토의 어느 곳이라도 도달할 수 있는 사거리 13,000km에 이르는 미사일도 가졌다”고 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영명하고 노숙한(shrewd and mature)” 지도자라고 칭송하였다. <사진 2>

▲ <사진 2> 지금 미국은 조선과의 핵대결에서 자기들이 패하였는데도 패배를 승복하지 않고, 패배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그런데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다는 사실을 가장 명시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위의 사진은 2018년 1월 11일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언론인들과 대담하는 장면인데, 그는 대담에서 조선이 미국과의 핵대결에서 확실히 승리했다고 인정하면서, 조미핵대결을 승리로 이끈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영명하고 노숙한 지도자로 칭송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백악관은 조선의 국가핵무력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만일 그들이 조선의 국가핵무력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지난 25년 동안 미국이 집요하게 추진해온 대조선비핵화압박정책이 완파되었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꼴이고, 따라서 조미핵대결에서 미국이 완패당했다는 것도 자인하는 꼴이므로, 백악관은 조선의 국가핵무력완성을 인정하기도 싫고, 인정할 수도 없는 아주 난감한 처지에 빠진 것이다. 

그런 난감한 처지를 알면서도 그랬는지 아니면 모르고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미국 언론매체가 난감한 처지에 빠진 백악관에게 얄궂은 질문을 던졌다. 질문공세에 걸려든 사람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주요성원인 마익 팜페오(Mike Pompeo) 중앙정보국장이다. 그는 2018년 1월 7일에 방영된 미국 텔레비전방송 <CBS> 대담프로그램 ‘페이스 더 네이션(Face the Nation)’에 출연하여 아래와 같은 얄궂은 질문을 받았다.  

질문자 - 지난 10월 당신은 북조선이 미국의 도시를 핵공격으로 위협하는 한계선을 넘기까지 앞으로 몇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그 시간대에 있다는 말인가? 
팜페오 - 그건...그것은 바뀌지 않고 똑같다. 
질문자 - 아직도 몇 달이 남았다는 말인가?
팜페오 - 그렇다.
질문자 - 그러면 우리...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석 달이 남았는가? 넉 달이 남았는가?
팜페오 - 그 정도로 확실하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위의 대담이 잘 말해주는 것처럼, 팜페오 중앙정보국장은 조선이 미국 본토를 핵타격사정권 안에 두었는지를 캐물은 질문을 받았을 때, 말을 버벅거리면서 곤혹스런 답변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려면 아직도 몇 달이 더 지나야 한다는 팜페오 국장의 곤혹스런 답변은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했다는 사실, 그리하여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은폐해보려는 수작으로 보인다. 미국의 국가안보현안들에 대해 누구보다 가장 정확하게 정보판단을 내린다는 중앙정보국장이 미국에게 몰아닥친 가장 심각한 국가안보문제를 놓고 말을 버벅거리면서 곤혹스런 답변을 늘어놓은 것이야말로 지금 백악관이 얼마나 난감한 처지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지를 뚜렷이 드러내주는 사례다. 


2. 패자의 다급한 회담간청, 승자는 무시해버렸다 

조미핵대결이 종식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의심하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은 2018년 1월 1일부터 급변하기 시작한 현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조미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그러나 꽁꽁 얼어붙었던 조미관계가 화성-15형 시험발사성공 이후 물밑에서 급류를 타기 시작하였음을 알려주는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살펴보면, 조미회담이 다가오고 있음을 능히 예견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국가핵무력완성을 선포하기 직전, 조미핵대결에서 사실상 완패한 미국은 제3자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물밑에서 어떤 은밀한 행동들을 취하고 있었다. 그 사연을 파헤쳐볼 필요가 있다.  

첫째, 조선이 2017년 11월 29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성공하여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음을 실증한 직후인 2017년 12월 상순 어느 날 조미핵대결의 승자인 조선과 패자인 미국은 중국 베이징에서 비공개 접촉을 진행하였다. 일본 정부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한 <산께이신붕> 2018년 1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과 미국은 2017년 12월 상순 베이징에서 흔히 ‘1.5 트랙(Track 1.5)’이라고 불리는 반관반민접촉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그 비공개 접촉에 미국측 대표로 나선 사람은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시아실장을 지낸 존 메릴(John Merrill)이었고, 조선측 대표는 누구였는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비공개 접촉이 진행된 직후 렉스 틸러슨(Rex W. Tillerson) 미국 국무장관은 조선에게 조건 없는 조미회담을 전격적으로 제의하였다. 그는 2017년 12월 12일 워싱턴에 있는 국제문제연구기관 애틀랜틱협의회(Atlantic Council)에서 연설하면서 “우리는 북조선이 회담하고 싶어 하는 어느 때라도 회담할 준비가 되었다고 외교적 측면에서 말한 바 있고, 조건 없이 첫 번째 회담을 진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 (and we're ready to have the first meeting without preconditions). 당신들이 원한다면, 우리는 날씨에 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으니, 일단 만나보자. 만일 당신들이 사각탁에 앉을 것인지 아니면 원탁에 앉을 것인지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자. 우리는 적어도 마주앉아 대면할 수 있다. 마주앉게 되면,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노정도(road map)를 그려내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2017년 12월 12일 워싱턴에 있는 애틀랜틱협의회에서 연설하는 장면이다. 그는 연설에서 미국이 어느 때라도 조선과 회담을 진행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하면서 조건 없이 첫번째 회담을 열자고 전격적으로 제의하였다. 이전에 미국은 조선이 비핵화 의지를 먼저 표명해야 조미회담이 시작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2017년 12월 조미핵대결 최종국면에서 너무 다급해진 바람에 조건 없는 회담을 열자고 간청한 것이다. 그러나 조미핵대결의 승자인 조선은 패자의 간청에 아무런 응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더욱 애가 타들어간 미국은 2017년 12월 말에 이르러 조건 없는 조미회담을 갖자고 공식 제의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그 제의에도 아무런 응답을 주지 않았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위와 같이 발언한 틸러슨 국무장관은 조미회담을 반대하는 허벗 맥매스터(Herbert R. McMaster) 국가안보보좌관의 즉각적인 반박을 받고 주춤거렸지만, 미국의 외교수장이 조선에게 조건 없이 회담을 열자고 전격적으로 제의한 것은 의미 있는 태도변화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둘째, 조건 없이 조미회담을 열자는 틸러슨 국무장관의 발언에 대해 조선이 아무런 응답을 주지 않은 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발표일이 차츰 다가오자,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기 시작한 미국은 2017년 12월 말 조선에게 조미회담을 개최하자는 공식 제의를 다급하게 전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일보> 2018년 1월 8일 보도에 따르면,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 정부 당국자는 “미국은 이미(2017년 말을 뜻함-옮긴이) 북한 측에 회담개최제안을 했다. 북한이 북미직접대화의 중재자로 중국이나 러시아가 나서는 것을 꺼리고 있어 북미회담 개최지로는 북한이 선호하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가 검토돼왔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그런 제안은 외교채널을 통해 북한에도 공식 전달됐고, 이후에도 이 채널이 수시로 가동되고 있다”고 말했다.   

패자인 미국이 승자인 조선에게 무조건 회담하자는 다급한 제안을 보낸 시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의 국가핵무력완성을 공식 선포한 2018년 신년사를 발표하기 불과 며칠 전이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국가핵무력완성을 선포하면, 미국의 국가안보가 파탄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신년사를 발표하기 이전에 어떻게 해서든지 조선의 국가핵무력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조미회담을 다급하게 서둘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조선에게 조미회담개최를 제안한 것이 아니라 간청한 것이다. 그것은 패자의 다급한 간청이었다.   

셋째, 위에 인용한 <세계일보> 2018년 1월 8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조선에게 조건 없는 회담을 열자고 공식 제안하였으나, “북한은 아직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조미핵대결의 승자인 조선은 패자인 미국이 보낸 다급한 회담간청연락을 받고서도 그 문제에 대한 응답을 주지 않았다. ‘제국의 체면’을 접어두고, 조선에게 다급하게 회담개최를 간청한 미국에게 전해진 것은 조미관계개선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대남관계를 개선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발언소식이었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지금 조선은 회담을 간청하는 미국을 외면하고, 대남관계개선에만 집중하는 중이다. 조선은 왜 미국의 회담간청을 외면하고, 대남관계개선에만 집중하는 것일까? 외부에서 그 사정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국이 조미핵대결에서 완패하였는데도 자기들의 패배사실을 은폐하면서 승복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조선이 미국의 회담간청을 외면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이 조미핵대결에서 자기들이 패하였다는 사실을 은폐한다는 말은 그들이 실현가망성이 완전히 사라진 조선의 비핵화문제를 아직도 입버릇처럼 꺼내놓으면서, ‘키리졸브-독수리’ 대조선전쟁연습을 완전히 중단하지 않고 평창동계올림픽 이후로 연기하겠다고 발표하였다는 뜻이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미국이 조선의 비핵화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키리졸브-독수리’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할 때, 조선은 미국의 회담간청에 응답할 것이고, 그에 따라 조미회담이 진행될 것으로 예견된다. 


3. 트럼프가 보여준 태도변화,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2018년 새해 들어 조선을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달라졌다. 조선에게 막말과 협박을 쏟아내던 그의 태도가 그 정도로 바뀌게 될 줄은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조미핵대결에서 조선이 승리하고, 미국이 패배하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패자인 미국을 대표하는 그가 그처럼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의사들로부터 정신상태를 의심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조금 전에 꺼내놓은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리는 악습에 젖어있기 때문에, 그의 발언을 선뜻 믿기는 힘들다. 하지만, 요즈음 한두 번이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가 조선에 대한 자신의 변화된 태도를 보여주는 발언들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에 열거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사진 4> 2018년 1월 10일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아홉번째 전화통화를 하였다. 백악관의 공식발표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화통화에서 "적절한 시점과 올바른 상황에서" 조미회담을 개최하는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는 조미회담이 성사될 수 있는 적절한 시점과 올바른 상황이 어떤 것인지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모호하게 언급하고 넘어갔는데, 그런 모호성은 그가 조미회담을 예상하는 징표로 보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2018년 1월 6일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빗(Camp David)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취재기자들의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언제나 대화를 신뢰한다. 절대적으로 나는 대화를 신뢰할 것이며, 그렇게 하는 데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변하였다. 또한 그는 만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전화통화를 하게 되면 어떤 전제조건이 요구되는가 하는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았을 때 “그건 전혀 내가 한 말이 아니다. 그(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지칭함-옮긴이)는 내가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쓸데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조금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1퍼센트도 하지 않는다. 그도 이것을 알고 있다. 만일 우리가 매우 평화적이고, 매우 훌륭한 해결책을 가지고 (회담에) 나설 수 있다면, 그리고 회담들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면, 그것은 모든 인류에게 멋진 일이 될 것이다”고 답변하였다. 

위의 인용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건 없는 조미대화를 전격적으로 제안한 틸러슨 국무장관의 2017년 12월 12일 발언을 지지하였다. 이것은 그가 회담추진론자 틸러슨과 회담반대론자 맥매스터의 의견대립을 관망해오다가 결국 회담추진론자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CNN> 2018년 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곧 자진사퇴하게 되는데, 이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회담추진론자 틸러슨의 발언권이 강화될 것임을 예고해주는 것이다. <사진 4>



(2) 2018년 1월 10일 워싱턴 시간으로 오전 8시부터 30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였다. 두 정상은 그 날 아홉 번째 전화통화를 하였으므로, 전화통화 자체가 놀랄만한 일은 전혀 아니었다. 정작 놀라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말한 발언내용이다. 백악관의 공식발표문에 따르면, 그날 트럼프 대통령은 전화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적절한 시점과 올바른 상황에서 미국과 북조선의 회담을 개최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너그러움(openness)을 표시하였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국가 대 국가의 외교관계는 접촉(contact)→대화(dialogue)→회담(talks) 순으로 전개되는 것이 관례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접촉단계와 대화단계를 두 단계 뛰어넘어 조미회담 개최문제를 느닷없이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조미회담이란 정치협상이 진행되는 고위급회담을 뜻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예민한 언어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야 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회담이 “적절한 시점과 올바른 상황에서” 성사될 수 있을 것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는 조미회담이 성사될 수 있는 적절한 시점과 올바른 상황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조선이 비핵화 의사를 먼저 밝혀야 조미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던 종전의 주장을 접고, 회담조건을 모호하게 처리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모호성은 그가 조미회담을 예상하는 징표라고 생각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그처럼 바뀐 것을 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결정만 내리면 언제든지 조선과의 회담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전화통화에서 “남북대화가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넘어 자연스럽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 뒤 향후 남북 간 회담 진행상황을 긴밀히 협의키로 했다”고 보도하였다. 하지만 백악관의 공식발표문에는 비핵화라는 말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두 정상이 조선의 비핵화를 위한 조미대화의 가능성을 전망하였다는 식으로 서술한 한국 언론매체들의 보도는 확대해석을 넘어 사실왜곡이다. 조미관계에 대한 왜곡보도에 이골이 난 한국 언론매체들의 보도는 막말쟁이 대통령 트럼프의 말보다 더 믿을 수 없다.  

(3) 2018년 1월 10일 오전 10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새해 들어 첫 번째 각료회의를 주재하였다. 그는 회의실에 모인 각료들에게 약 두 시간 전에 문재인 대통령과 진행한 전화통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남북관계개선을 뜻함-옮긴이)이 어디로 이어지게 될는지 누가 아는가? 바라건대, 그것은 우리나라(미국을 뜻함-옮긴이)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한 성공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몇 주 또는 몇 달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될 것이다”고 말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지금 급진전되고 있는 남북관계개선이 “몇 주 또는 몇 달 안에” 조미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 발언으로 들린다. 

(4) 2018년 1월 10일 각료회의를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을 방문한 에르나 쏠베르그(Erna Solberg) 노르웨이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그 자리에서 노르웨이 취재기자가 미국군이 대조선공습작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미국군 고위지휘관의 발언을 거론하면서 그 문제에 대해 말해달라고 요청하였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군 고위지휘관의 그런 발언내용을 무시하면서, “우리는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장기적인 평화기에 들어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와 북조선의 관계에 몇 가지 문제점(some problems)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지금 좋은 회담들(남북관계개선회담을 뜻함-옮긴이)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a lot of good talks are going on right now)... 좋은 에너지들이 많이...나는 이것을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조선과의 전쟁가능성을 부정하면서 남북관계개선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한 발언으로 들린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18년 1월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월스트릿저널> 기자들과 대담하는 장면이다. 대담 중에 그는 자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였고, 자신이 매우 유연한 사람이라고 자찬하면서, 누군가 자신의 가장 절친한 벗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그가 조선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사를 갖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개선의사를 받아들여 고위급 조미회담을 하더라도, 조미정상회담까지 성사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기 측근들로부터도 지능과 정신건강을 심각하게 의심받고 있을 뿐 아니라, 막말과 협박과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면서 미국에서는 물론이고 전세계적 범위에서도 끊임없는 비난과 배격, 지탄과 조롱을 받는 사상 최악의 대통령과 정상적인 정상회담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5) 2018년 1월 11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월스트릿저널> 기자들과 대담을 진행하였다. 그 대담내용 중에서 민감한 문제들은 기사화되지 않았는데, 조미관계에 관련하여 주고받은 대담발언 중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지칭-옮긴이)와 훌륭한 관계(great relationship)를 가지고 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일본의 아베 총리와 훌륭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북조선의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very good relationship)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놀라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한 취재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때로는 공격적인 발언을 하였다고 지적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당신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많이 보겠지만, 갑자기 누군가 나의 가장 절친한 벗이 된다 (Sure, you see that a lot with me and then all of sudden somebody's my best friend). 나는 그런 사례를 20개 아니 30개나 제시할 수 있다. 나는 매우 유연한 사람이다 (I'm a very flexible person)”고 답변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위와 같은 발언을 꺼내놓은 것을 보면, 그가 조선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사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승자와 패자가 마주앉게 될 총결산회담 열리게 된다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으므로 올해 조미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변화의 급류를 타게 될 것이라는 것, 이것이 내가 이 글에서 제시하는 정세전망이다. 그러나 조선의 국가핵무력에 대한 무지와 편견, 오해와 착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조미핵대결이 종식되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아직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조미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기 시작하였는데도 자기들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의심하거나 외면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부정, 그런 의심, 그런 외면은 부질없는 짓이다.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객관적인 현실은 우리의 예상범위를 뛰어넘는 고속도로 변화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지금 정세변화는 남북관계개선에서 먼저 일어나고 있다. 남북관계개선이 진전되면,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견된다. 미국이 조선의 비핵화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키리졸브-독수리’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할 때, 조미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급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사진 6> 

▲ <사진 6> 위의 사진은 2017년 3월 1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 있는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키리졸브-독수리 대조선전쟁연습을 반대하는 집회가 진행되는 장면이다. 올해 2018년 키리졸브-독수리 대조선전쟁연습은 평창동계올림픽대회를 계기로 연기되었는데, 며칠 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일시적으로 중지된 전쟁연습을 재개하는 일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시적으로 중지된 대조선전쟁연습을 재개하는 문제는 미국 국방부가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되는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재개일정을 아직 정하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대조선전쟁연습 재개문제는 조미관계와 한반도 정세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떠올랐다. 만일 미국이 조선의 비핵화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키리졸브-독수리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면, 조미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급변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렇다면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된 이후 조미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어떤 방향으로 급변하게 되는 것인가? 이 중대한 물음에 단답형으로 답변하기는 힘들지만, 아래와 같은 ‘예상답안’을 거론할 수 있다.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으므로, 조미핵대결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조선이 수행해온 반미대결전도 앞으로 조선의 승리로 종식될 것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까닭은 조미핵대결의 승자인 조선과 패자인 미국이 마주앉아 핵대결종식을 총결산하는 일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총결산에서 65년 조미대결전의 승패가 결정될 것으로 예견된다. 

여기서 말하는 조미핵대결 총결산이란 전쟁이 끝난 뒤 승전국과 패전국이 마주앉아 전후문제를 처리하는 총결산을 하는 것과 똑같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 있었던 전후총결산경험들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승전국과 패전국이 만나 전후문제를 처리하는 총결산에서는 강화조약을 체결하는 문제, 패전국 군대가 점령지에서 철군하는 문제, 패전국이 점령했던 지역을 원상귀속시키는 문제, 승전국이 패전국으로부터 전쟁피해에 대한 배상 및 보상을 받아내는 문제, 전쟁포로를 상호송환하는 문제 등이 해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조미핵대결은 실제로 교전이 벌어진 전쟁이 아니라 대결이었으므로, 전쟁피해나 전쟁포로는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조미핵대결이 종식된 오늘, 승자인 조선과 패자인 미국에게는 조미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총결산만 남아있는 것이다.  

조선과 미국이 평화협정체결문제와 철군문제를 총결산하려면, 당연히 조미고위급회담을 진행해야 한다. 머지않아 시작될 조미고위급회담은 승자와 패자가 마주앉게 될 총결산회담이라는 점에서 이전에 진행되었던 조미회담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회담으로 될 것이다. 조미핵대결이 승패를 결정지으며 종식되기 이전에 진행되었던 지난날의 조미회담들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으므로, 조선은 평화협정체결문제와 철군문제만 제기하려고 하였고, 미국은 조선의 비핵화문제만 제기하려고 하였다. 그런 협상은 아무런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중도반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미핵대결이 2017년 최종국면에서 승패를 가르며 종식된 이후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머지않아 진행될 조미고위급회담은 승자가 제기하는 의제만 놓고 협상하는 회담으로 될 것이고, 패자는 곤혹스럽게 승자의 의제를 받아들여 협상하는 회담으로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두 가지 의제를 놓고 총결산하는 회담에서 협상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조미고위급회담이 성사되면, 조미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시기와 방법을 협상하게 될 것이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시기와 방법을 협상하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또한 조미고위급회담이 성사되면, 조선이 핵동결을 시행하는 시기와 방법, 그리고 핵동결의 범위 등을 협상하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누구나 인정하는 것처럼, 조미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수는 조미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뒤집어놓을 대사변 중의 대사변이다. 그런 대사변이 일어나는 전환기에는 우리가 예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들이나 뜻밖의 사건들이 ‘개벽의 파도’처럼 몰려오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이 땅에서 반만년을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세월의 끝까지 함께 살아갈 우리 민족에게 자기의 힘과 슬기로 위대한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해야 할 실로 가슴 벅찬 기회와 도전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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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조미핵대결 종식된 2018년, 남북정상회담 성사될 길조 보인다

[한호석의 개벽예감](281)
자주시보 2018년 01월 08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조미핵대결에 승리의 마침표 찍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단추
2.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명령 거부할 수 있다고 말한 미국군 전략사령관
3. 신년사에 담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책적 구상과 전략적 의도
4. 2018년 새해에 통일국가건설운동의 전성기 펼쳐진다
5. 철군협상국면 열어놓을 남북군사회담 개최와 핵전쟁연습 중단

▲ <사진 1>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1월 1일 신년사를 발표하는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국가핵무력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하였다고 공식 선포하였다. 이것은 위험천만한 고비들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넘어온 곡절 많은 25년 동안 벌어진 조선과 미국의 핵대결이 마침내 조선의 최종 승리로 종식되었음을 확인한 것이며, 미국의 대조선비핵화압박정책이 총파산으로 귀착되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조미핵대결에서 조선은 이겼고, 미국은 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그런 놀라운 소식은 새해 첫날 아침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조미핵대결에 승리의 마침표 찍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단추

2018년 새해 첫날 아침, 세계는 조선과 미국의 핵대결이 종식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1993년 클린턴 행정부가 조선의 녕변핵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부당하게 강요한 것으로 하여 촉발되었던 미증유의 핵대결이 끝난 것이다. 조선의 핵무력 개발을 저지하려는 경제제재와 압살협박을 단계적으로 가증시키며 장장 25년 동안 끊임없이 지속되어온 미국의 대조선비핵화압박정책이 결국 총파산으로 귀착되었다. 위험천만한 고비들을 아슬아슬 타고 넘었던 곡절 많은 25년 공방전이 조선의 최종 승리로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다.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려는 조선과 그것을 가로막으려는 미국이 피차 국운을 걸고 벌인 세기적인 대격돌에서 조선이 미국의 집요한 방해와 저지와 압박을 물리치고 끝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으므로, 조선이 이겼고, 미국은 졌다. <사진 1>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국가핵무력완성의 력사적 대업을 성취하였다”고 공식 선포함으로써 조선의 최종 승리를 확인하였고, 2017년 한 해 동안 격렬하게 벌어진 조미핵대결 최종국면에서 조선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아래와 같이 구체적으로 밝혔다.  
“바로 1년 전 나는 이 자리에서 당과 정부를 대표하여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공표하였으며 지난 한 해 동안 그 리행을 위한 여러 차의 시험발사들을 안전하고 투명하게 진행하여 확고한 성능을 온 세상에 증명하였습니다. 지난해에 우리는 각종 핵운반수단들과 함께 초강력 열핵무기시험도 단행함으로써 우리의 총적 지향과 전략적 목표를 성과적으로, 성공적으로 달성하였으며 우리 공화국은 마침내 그 어떤 힘으로도, 그 무엇으로써도 되돌릴 수 없는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쟁억제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타격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우에 항상 놓여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고 말했다. 이 놀라운 소식이 알려지자, 경악과 충격에 휩싸인 세계 정치계 및 언론계는 죽가마처럼 벅적 끓어올랐다. 백악관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신년사에서 국가핵무력완성을 선포할 것이라고 예감하였겠지만, 정작 그런 예상이 현실로 닥쳐오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백악관의 경악반응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발언에서 즉각 나타났다. 트위터 발언에서 그는 자기가 “더 크고 강력한 핵단추”를 가졌노라고 떠들어대는 소아병적인 경악반응을 보였는데, 평소에도 분별없이 쏟아내는 대통령의 트위터 발언에 환멸을 느낀 미국 언론매체들은 그런 치졸한 트위터 발언은 이제 좀 그만두라면서 그에게 핀잔과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치졸한 트위터 발언으로 잠시 소동이 일어났다고 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단추 발언 속에 담긴 진의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단추 발언은 미국 본토 전역을 핵타격사정권 안에 둔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24시간 발사대기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핵단추라는 것은 핵탄두 또는 열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명령을 하달하는 특수장치를 비유한 형용명사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8월 14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는 중에 작전지휘소 미사일발사통제실을 돌아보는 장면이다. 궁륭식으로 건설된 이 지하시설에는 최고사령관의 미사일발사명령을 집행할 때 사용되는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전자통신설비들이 일렬로 설치되어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신년사에서 자신의 사무실 책상 위에 핵단추에 항상 놓여있다고 언급한 것은 미국 본토 전역을 핵타격사정권 안에 둔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24시간 발사대기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신속정연하고, 항시대기하는 조선의 핵타격명령체계는 완비되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대륙간탄도미사일 실전발사를 명령하는 체계는 극비이므로, 발사명령을 하달하는 특수장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외부에서 알 수 없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초인종을 누르듯이 핵단추를 직접 누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 동안 조선의 언론보도를 통해 외부에 알려진 정황들을 참작하면, 조선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실전발사는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최고사령부 전시작전회의에서 최종결정을 내리고 작전명령서에 서명하면, 그 명령이 전략군사령관을 통해 핵전부대들로 즉시 하달되어 실행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최고사령부 전시작전회의를 소집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는 국가비상사태가 닥친 경우에는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곧바로 결심하여 전략군사령관에게 직접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명령을 하달할 것으로 보인다. 
어째든 그 어느 경우에나 신속정연한 핵타격명령체계가 확립되어 있어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전발사를 단행할 수 있다는 점은 두말한 나위 없이 명백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단추 발언은 그처럼 신속정연하고, 항시대기하는 핵타격명령체계가 완비되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선포한 국가핵무력완성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이 계렬생산, 실전배치되고 있다는 뜻과 더불어 최고사령관이 직접 통제하는 신속정연하고, 항시대기하는 핵타격명령체계까지 완비되었다는 뜻도 지녔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7년 8월 14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면서 “우리 당이 결심만 하면 언제든지 실전에 돌입할 수 있게 항상 발사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지시하면서, “전략군에서는 핵무력에 대한 최고사령관의 유일적 령도체계, 유일적 지휘관리체계를 확고히 세우고 주체적인 로케트타격전법을 더욱 완성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핵단추 비유는 그 날의 지시가 완전히 집행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명령 거부할 수 있다고 말한 미국군 전략사령관

그렇다면 미국도 조선처럼 신속정연한 핵타격명령체계를 확립해놓았을까? 미국의 미닛맨(Minuteman)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기지에서 발사통제관(launch control officer)으로 근무한 경력을 가진 브루스 블레어(Bruce G. Blair)의 말을 각각 인용한 <블룸벅 뉴스> 2017년 1월 20일 보도기사와 <월스트릿 저널> 2017년 9월 23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발사하려면 여덟 차례의 절차를 거친다고 한다. 여덟 차례의 절차를 열거하면,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가 경보를 발령하는 절차, 대통령에게 비상상황을 긴급히 보고하는 절차, 대통령이 전시작전회의를 긴급히 소집하는 절차, 전시작전회의에서 대통령이 최종결정 및 발사명령을 내리는 절차, 국방부 전시상황실(war room)에서 발사명령의 진위여부를 검증하는 절차, 전시상황실이 대통령의 발사명령을 전략사령부에 전달하는 절차, 전략사령부 휘하 핵전부대들에서 발사체계 안전잠금장치를 푸는 절차, 발사통제관들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절차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복잡다단한 과정이다. 브루스 블레어의 추론에 따르면, 위에 열거한 여덟 차례의 절차를 모두 거치는데 45~60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닛맨이 실전배치된 발사기지를 촬영한 것이다. 지상에 드러난 시설은 좀 허술해 보이지만, 발사시설은 지하에 건설되었다.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발사하는 핵공격을 시작하려면 여덟 차례의 복잡다단한 절차를 걸쳐야 한다. 이 절차를 모두 걸치는데 45~60분이 걸린다고 한다. 촌각을 다투는 핵전쟁상황에서 그런 시간은 너무 길어 보인다. 미국의 핵타격명령체계는 시간지체의 약점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하지만 그것은 실황이 아니라 추론이므로, 실전상황에서는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불의의 돌발변수들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불의의 돌발변수가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서 나타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돋보인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ABC> 2010년 10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빌 클린턴(Bill Clinton)은 대통령으로 재직 중에 대륙간탄도미사일 실전발사를 명령할 때 사용하는 핵암호카드를 갱신하려고 하자, 자신이 핵암호카드를 분실하였노라고 자백하면서 그 카드를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클린턴보다 앞서 대통령으로 재직하였던 지미 카터(Jimmy Carter)도 자기 양복 주머니에 핵암호카드를 넣어둔 채, 세탁소에 그 양복을 맡겼다고 한다. 핵암호카드는 전시상황이 아니면 전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므로, 미국 대통령들이 그것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지능지수가 높다는 미국 대통령들마저 그처럼 핵암호카드를 잃어버리는 소동을 피웠는데, 2018년 1월 5일 미국 언론인 마이클 울프(Michael Wolff)가 미국 언론매체들에서 폭로한 것처럼 대통령 가족들과 백악관 참모들로부터 지능을 100% 의심받을 만큼 지능지수가 낮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머니 속에 핵암호카드가 들어갔으니 그처럼 조마조마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설령 트럼프 대통령이 실전상황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명령을 내리더라도, 지능지수가 낮은 그를 불신하는 미국군 전략사령관과 영관급 장교들은 실전발사명령을 의심하면서 명령집행을 거부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실제로 미국 텔레비전방송 <CBS> 2017년 11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전직 전략사령관 로벗 켈러(C. Robert Kehler)는 2017년 11월 14일 연방상원 대외관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전략사령부 소속 장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명령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하였고, 현직 전략사령관 존 하이튼(John E. Hyten)도 2017년 11월 17일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진행된 국제안보토론회에서 연설하면서 로벗 켈러의 위와 같은 발언에 동조하였다고 한다. 또한 미국 텔레비전방송 <ABC> 2017년 11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연방상원 청문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핵통제권을 함부로 남용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속출하였다고 한다. 
얼마 전에 일어난 위와 같은 뜻밖의 이변들은 미국의 운명을 좌우할 핵암호카드가 정상인보다 지능이 약간 낮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머니 속에 들어간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지를 직감한 미국군 고위지휘관들과 연방상원의원들이 심한 불안을 느끼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태가 이처럼 악화되었으므로,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실전상황에서 불의의 돌발변수들이 뒤엉키면서 미국의 핵타격명령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하고, 그에 따라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한 발도 발사되지 않을 수 있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닛맨이 발사대기하고 있는 지하발사기지 내부를 촬영한 것이다. 사진에서 하얀 보를 씌운 붉은 색 의자가 보이는데, 실전상황에서 발사통제관은 그 의자에 앉아 자기 몸에 안전띠를 채운 다음, 대통령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실전발사명령을 집행하게 된다. 물론 핵단추는 없으며, 안전잠금장치를 푸는 데 사용하는 열쇠가 있다. 발사통제관 두 사람이 각각 서로 다른 열쇠를 사용하여 안전잠금장치를 풀게 되어 있는데, 그 두 사람은 10m 떨어진 서로 다른 방에서 각각 안전잠금장치를 풀고 발사명령을 집행하게 된다. 어느 한 사람이 안전잠금장치를 풀지 않으면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발사되지 않는다. 발사통제관들 가운데 임무교대를 마친 사람들은 취침실에 들어가 쉬게 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보다 더 심각한 사태는 평시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정상적으로 관리하면서 실전발사명령을 대기하고 있어야 할 핵전부대들에서 왕왕 벌어지고 있다. 미국군 핵전부대에 근무하는 영관급 장교들이 기강해이의 늪에 빠져 핵무기관리부실사고들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바람에, 트럼프 대통령이 핵타격명령체계를 정상적으로 작동시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명령을 하달해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제대로 발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미국 언론보도들에 따르면, 미국군이 이제껏 분실한 핵폭탄은 약 50개에 이르고, 분실한 핵탄미사일은 27기에 이르고, 분실한 각종 핵무기 부품들은 수 백 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것만이 아니라,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실전배치된 핵전부대에서 발사명령을 집행해야 할 발사통제관 3명이 발사장치를 켜놓고 잠들어버린 사건이 발각된 적이 있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핵무기 운반 특수차량을 몰고 가던 수송담당관이 음주운전으로 교통경찰에게 적발된 사건도 있었으며,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기간에 미국군 핵전부대들에서 핵무기를 부주의하게 다루다가 망가뜨린 사건은 237건이나 일어났다. 
위에 열거한 충격사건들은 미국의 핵무기관리체계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보여준다. 핵무기관리체계가 그처럼 부실하면, 핵무기고에 수 천 발이나 쌓여있다는 미국의 핵탄두들은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실전상황에서 무용지물로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3. 신년사에 담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책적 구상과 전략적 의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018년 신년사는 조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려는 정책적 구상과 전략적 의도가 담긴 문헌이다. 그 정책적 구상과 전략적 의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조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조선이 설정한 총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그 물음에 답할 수 있다. 조선이 건국 이후 70년 동안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총적 목표가 무엇인지 알려면, 역사적 고찰이 요구된다. 이 글의 길이가 제한되어서, 역사문헌을 인용하면서 자세히 논하지는 못하지만, 조선이 달성하려는 총적 목표는 아래와 같이 설명될 수 있다.

(1) 김일성 시대에 조선이 설정한 총적 목표는 주한미국군 철수와 자주통일국가 건설이었다. 주한미국군을 철수시켜야 민족의 숙원인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 조선이 견지해온 불변의 지론이며 원칙적 입장이다. 그러므로 조선에게 있어서 그 두 목표는 서로 뗄 수 없이 밀착된 것이다. 이 총적 목표들은 1948년 4월 하순 평양에서 진행된 역사적인 남북연석회의에서 민족의 총의에 의해 당면과업으로 확정되었으며, 같은 해 9월 9일 창건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자기의 총적 목표로 재확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이 걸어온 70년 역사의 노정을 살펴보면, 조선은 지난 70년 동안 자기의 총적 목표를 한시도 잊지 않았으며, 하루도 수행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에게는 그만큼 절실하고, 중대한 목표인 것이다.  

(2) 1994년 7월 조선의 총적 목표를 유업으로 계승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유업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의 국가역량을 새로운 투쟁에로 집중시켰는데, 그것이 국가핵무력 건설이었다. 조선이 핵강국으로 일어서야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킬 수 있으며, 그로써 주한미국군 철수와 자주통일국가 건설의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을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조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책적 구상이었으며, 전략적 의도였다. 그리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인민들이 눈비를 맞고 죽을 먹으며 가혹한 시련을 헤쳐가야 하였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식량과 석유를 사올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을 그 총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선군혁명투쟁, 곧 국가핵무력 건설에 투입하였던 것이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정은 당시 후계자와 함께 핵병기공장을 시찰하면서 거대한 대륙간탄도미사일 탄체 내부를 살펴보는 장면이다. 이 사진이 촬영된 시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2009년 또는 2010년인 것으로 보인다. 사진에 나타난 거대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인민들이 눈비를 맞고 죽을 먹으며 가혹한 시련을 헤쳐가야 하였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식량과 석유를 사올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을 국가핵무력 건설에 투입하였다. 비록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련을 겪고 있었지만, 조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켜 주한미국군 철수와 자주통일국가 건설의 총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 바로 이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책적 구상이었으며, 전략적 의도였던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생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의 총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 가지 강령적 과업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통일대전준비 완료, 대미철군협상 진행, 대남관계개선 추진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신의 생애에서 마지막 10년을 통일대전준비를 완료하고, 대미철군협상을 시작하고, 대남관계를 결정적으로 개선하는 과업수행에 전부 바쳤다. 그리하여 그 10년 동안 조선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었고, 미국을 협상으로 끌어낼 수 있었으며,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할 수 있었다. 

(3) 2012년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의 총적 목표와 3대 과업을 계승하였다. 지난 6년 동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일심동체 자강력’을 불러일으켜 총적 목표를 달성하고 3대 과업을 실현하는 길로 조선을 이끌어왔다. 조선의 앞길을 가로막으려는 미국과 추종국들의 경제제재와 압살협박을 물리치며 간고한 투쟁을 벌인 끝에 조선은 마침내 2017년 말까지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고, 통일대전준비를 완료하였다.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주한미국군 철수와 자주통일국가 건설이라는 총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70년에 걸친 장구한 투쟁에서 국가핵무력 완성과 통일대전준비 완료가 가지는 의의는 실로 크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런 격동적인 정세변화를 반영하여 2018년 신년사를 발표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한미국군 철수와 자주통일국가 건설이라는 총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70년 투쟁에서 아직 실현하지 못한 두 가지 과업, 곧 대미철군협상과 대남관계개선을 올해 2018년에 반드시 시작할 것이라는 점이다. 대미철군협상과 대남관계개선을 올해에 실현하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강한 의지를 2018년 신년사에서 읽을 수 있다.   


4. 2018년 새해에 통일국가건설운동의 전성기 펼쳐진다

대미철군협상과 대남관계개선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연관된 양대 과업인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018년 신년사에 따르면, 벌써 올해 1월 초순부터 대남관계개선이 힘있게 추진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전에 발표한 신년사들에서도 대남관계개선의 중요성을 언급하였지만, 2018년 신년사에서는 대남관계개선을 언급한 부분이 크게 늘었고,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파격적인 내용들이 담겼다. 그 파격성이 절정에 이른 지점이 바로 북측의 평창올림픽대회 참가문제를 언급한 대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남조선당국은 온 겨레의 통일지향에 역행하여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에 추종함으로써 정세를 험악한 지경에 몰아넣고 북남 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더욱 격화시켰으며 북남관계는 풀기 어려운 경색국면에 처하게 되였습니다”고 지적하면서도, “지금은 서로 등을 돌려대고 자기 립장이나 밝힐 때가 아니며 북과 남이 마주앉아 우리 민족끼리 북남관계개선문제를 진지하게 론의하고 그 출로를 과감하게 열어나가야 할 때”라고 명시하면서 북측이 평창올림픽대회에 참가하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경색된 남북관계를 북측의 평창올림픽대회 참가를 계기로 풀어나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북측이 평창올림픽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만 보면서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커다란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있어서 북측의 평창올림픽대회 참가는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앞으로 등장할 여러 계기들 가운데 첫 번째 계기일 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북남관계개선은 당국만이 아니라 누구나가 바라는 초미의 관심사이며 온 민족이 힘을 합쳐 풀어나가야 할 중대사”라고 지적하면서, “민족적 화해와 통일을 지향해나가는 분위기를 적극 조성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북과 남 사이의 접촉과 래왕, 협력과 교류를 폭넓게 실현하여 서로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통일의 주체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이 언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새해 1월부터 남북정부당국 사이의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이해되며, 그와 더불어 남북해외 민간부문들에서도 다면다층적인 접촉, 내왕, 교류, 협력을 추진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이해된다. <사진 6>

▲ <사진 6> 역사적인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되었다. 이 사진은 2007년 10월 4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백화원 국빈관에서 열린 환송 오찬석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무엇인가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우리 민족에게 조국통일의 희망을 안겨준 두 분은 서거하였지만, 그 두 분이 남긴 조국통일위업은 오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계승되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018년 신년사는 남북정상회담을 예고하였으며, 2018년 1월 9일에 진행될 남북고위급회담은 남북최고위급회담을 예고하는 길조라고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관계개선의지에 적극 호응한다면, 우리 민족은 70년 통일국가건설운동사에서 전례 없이 획기적인 대전환을 맞이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 글이 집필되고 있는 2018년 새해 첫 주말 남북정부당국은 고위급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번개 같은 속도로 추진하는 중이며, 급기야 1월 9일에는 판문점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다. 
남북고위급회담이 성과적으로 진전되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전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남북해외 민족통일대회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성대히 개최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의해 중단되었던 남북해외 민족통일대회가 남북연석회의 70주년을 맞는 올해에 다시 열리면, 그것은 우리 민족끼리 단합하여 내외반통일세력들의 분단영구화책동을 물리치고 위대한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게 될 것이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이 말해주는 것처럼,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 민족의 열망과 의지는 70년이 지난 오늘에도 변함없이 강렬하게 분출되고 있다. 조국통일이라는 네 글자는 우리 민족이 자기의 심장에 피눈물로 아로새긴 불멸의 신념과 미래를 표상한다.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70년 투쟁에서 수많은 유명무명 통일열사들이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목숨을 바쳤다. 70년 전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걸어갔던 통일국가건설의 길을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걸었고, 지금은 아들, 딸 세대가 걸어가고 있다. 내외반통일세력의 방해와 압박이 아무리 심해도,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숙원은 머지 않아 반드시 실현될 것이며, 이 땅에 위대한 자주통일국가가 탄생할 것이다. 2018년 새해는 그처럼 가슴 벅찬 꿈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희망의 원년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또한 남북고위급회담이 성과적으로 진전되면, 민족경제협력거점인 개성공단으로 오가는 남북운송로가 서부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다시 활짝 열릴 것이고, 민족의 명산 금강산으로 오가는 남북관광로도 동부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다시 활짝 열릴 것이며,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남북항로도 군사분계선 상공을 넘어 다시 활짝 열릴 것이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의해 마련된 남북통행로들은 단순한 교통로가 아니다. 그것은 민족분열을 획책하는 외세의 간섭을 물리치고 우리 민족끼리 화목하게 살아가는 화해의 길이며, 전쟁위험을 몰아오는 외세의 간악한 음모를 파탄시키고 한반도의 안전을 수호하는 평화의 길이다.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가장 중대하고, 결정적인 조치는 남측에서 남북정상회담이라고 부르고, 북측에서 북남최고위급회담이라고 부르는 역사적인 회담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신년사에서 언급한 “북과 남이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북남관계를 개선하며 자주통일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이 바로 남북정상회담 개최인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신년사에서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은 남북관계개선의 최고봉인 남북정상회담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2018년 1월 9일 판문점에서 진행될 남북고위급회담은 남북최고위급회담을 예고하는 길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관계개선의지에 적극 호응한다면, 우리 민족은 70년 통일국가건설운동사에서 전례 없이 획기적인 대전환을 맞이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018년 신년사에는 올해 남북관계개선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킴으로서 전민족적인 통일국가건설운동의 전성기를 펼쳐가려는 정책적 구상과 전략적 의도가 담겨있다.  

     
5. 철군협상국면 열어놓을 남북군사회담 개최와 핵전쟁연습 중단 

위에 서술한 것처럼, 올해 남북관계가 전면적으로 개선되어 전례 없는 평화적 환경이 조성되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연습을 감행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미국이 전쟁연습을 하지 못하면, 주한미국군은 존재이유를 급속히 상실하고 한 쪽 구석에 찌그러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이 사라지고 평화가 실현되었으니 주한미국군을 더 이상 주둔시킬 필요가 없다는 철군여론이 미국에서 고개를 들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한 기세를 늦추지 않고 백악관을 철군협상에로 강하게 잡아끌 것으로 예견된다. 

1945년 9월 8일 미국의 한반도분단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인천에 상륙한 점령군은 반만년 민족사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외국군이며, 지난 70여 년 동안 동맹의 허울을 쓰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미국의 분단영구화정책과 대조선전쟁위협에 동원되어온 북침돌격대다. 그런 전쟁화근을 70여 년 동안이나 우리 민족의 신성한 강토에 남겨둔 것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치욕이며, 그런 북침돌격대를 한반도에 남겨두고서는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할 수 없다. <사진 8> 

▲ <사진 8> 이 사진은 1945년 9월 8일 인천에 상륙한 점령군이 이튿날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행군장면이다. 미국의 한반도분단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북위 38도 이남지역을 무혈점령한 미국군은 반만년 민족사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외국군이며, 지난 70여 년 동안 동맹의 허울을 쓰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미국의 분단영구화정책과 대조선전쟁위협에 동원되어온 북침돌격대다. 그런 전쟁화근을 70여 년 동안이나 우리 민족의 신성한 강토에 남겨둔 것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치욕이며, 그런 북침돌격대를 한반도에 남겨두고서는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할 수 없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지금 백악관은 조선이 요구하는 철군협상에 응할 조짐을 보이기는커녕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와 압살협박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조선이 맹렬히 추진하는 국가경제자립화가 더욱 고도화되는 가운데 남북관계가 전면적으로 개선되고, 남북정상회담까지 성사되면, 백악관이 매달려 있는 경제재재와 압살협박의 끈은 맥없이 끊어져버릴 것이다. 
백악관의 압살협박 중에서도 심각한 것은, 올해도 이전처럼 또 다시 대조선전쟁연습을 강행하려는 위험한 움직임이다. 그 위험한 전쟁연습은 미국군이 핵전략자산을 동원하고,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키리졸브-독수리’라는 작전명칭을 내걸고 해마다 3월 초부터 4월 말까지 감행해오는 핵전쟁연습이다. 만일 그런 핵전쟁연습이 올해 또 다시 감행된다면, 철군협상은 고사하고 전쟁위험만 더욱 고조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은 미국을 철군협상에로 잡아끌기 위해 위험한 핵전쟁연습부터 중단시켜야 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4일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평창올림픽대회 기간에 ‘키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이튿날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올해 ‘키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이 평창올림픽대회 이후로 연기되었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오는 2월 9일부터 25일까지 평창동계올림픽대회가 진행될 것이고, 오는 3월 9일부터 18일까지 평창동계패럴림픽대회가 진행될 것이므로, ‘키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이 연기되었다면, 오는 4월 중순쯤에 감행하겠다는 것이다. 마땅히 중단해야 할 핵전쟁연습을 4월 중순으로 연기하는 것은 긴장완화와 정세발전에 역행하는 짓이다. 

핵전쟁연습일정을 연기하는가 아니면 완전히 중단하는가 하는 중대한 문제를 검토하고 결정하는 것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아니라 백악관이다. 그러므로 이 중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백악관에서 어떤 변화조짐이 나타나지 않았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는데, 비록 미세하게 보이지만 분명한 변화조짐이 시야에 들어온다. <연합뉴스> 2018년 1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올해 ‘키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일정이 평창올림픽대회 이후로 연기되더라도, 항모타격단을 동원하지 않고, 전략폭격기 출격횟수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백악관이 올해 ‘키리졸브-독수리’ 전쟁연습에 핵전략자산을 투입하지 않고, 무력동원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변화조짐이다. 핵전략자산을 투입하지 않고, 재래식 무력만 투입하면, 규모를 대폭 축소한 재래식 전쟁연습으로 될 수 있지만, 전쟁연습 자체를 전면적으로 중단하는 것이 긴장완화와 정세발전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다. 하지만 지금 백악관은 아직 그런 최선의 방책을 취할 용단을 내리지 못한 채 엉거주춤하고 있는 꼴이다.  
그처럼 엉거주춤하고 있는 백악관을 핵전쟁연습 중단결정으로 떠밀어줄 요인이 있다. 그 요인은 남북군사회담이 성사되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획기적인 조치들이 취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신년사에서 “북과 남은 정세를 격화시키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하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여야” 한다고 언명한 것은, 남북군사회담을 개최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사진 9> 

▲ <사진 9> 이 사진은 2000년 9월 25일 한반도의 최남단 제주도에서 열린 제1차 남북군사회담 장면이다. 그 해 6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이 발표되자, 우리 민족끼리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열망과 의지가 분출되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제1차 남북군사회담이 열린 것이다. 올해 남북군사회담이 재개되는 것은 확정적이다. 남북군사회담이 성사되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획기적인 조치들이 취해지면, 한반도 핵전쟁연습 중단문제를 결정하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는 백악관을 중단결정으로 힘있게 떠밀어줄 수 있다.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적 환경이 조성되면, 조선과 미국은 철군협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 문제와 관련한 희망적인 관측은 지난 1월 2일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의 발언으로 쏠린다. 국방부 출입 취재진 앞에서 그는 남북군사회담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물은 취재기자의 질문이 나오자 2017년 7월 남북군사회담을 북측에 제의했는데, 그 제의에 관한 북측의 응답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이 답변은 북측이 남북군사회담을 개최하자고 하면, 남측은 언제든지 회담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018년 신년사는 남북군사회담을 예고하였으므로, 남북군사회담 성사는 확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군사회담이 성사되면, 미국의 핵전쟁연습이 중단될 수 있고, 그런 전례 없는 변화가 일어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적 환경이 조성되면, 조선과 미국은 철군협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미핵대결 종식으로 질적 변화를 일으킨 오늘의 정세를 아직 똑바로 알지 못하는 백악관이 파산운명에 처하여 너덜너덜해진 대조선비핵화압박정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그것이야말로 미련한 자해행동이 아닐 수 없다. 2018년 새해를 눈부시게 장식하는 정세발전추세는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전환점으로 백악관을 이끌어가고, 신흥 사회주의핵강국 조선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전환점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런 새로운 시대의 징조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018년 신년사에 비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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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통일국가건설 1082주년, 통일국가건설운동 70주년

[한호석의 개벽예감](280)
자주시보 2018년 01월 01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1082년 전에 등장한 통일국가 고려의 위용
2. 1012년 역사를 파괴한 1948년 분단체제
3. 민간인 165만7,000명이 희생된 참극과 재난
4. 민족대표 695명이 모란봉극장에 모였다
5.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정치대결

▲ <사진 1> 위쪽 사진은 왕씨 가문 족보에 나오는 고려 태조 왕건의 초상이다. 개성에 사는 왕건의 31대손 왕지송 노인은 왕씨 가문에서 수 백 년 동안 소중히 보관해오던 가문 족보와 왕건이 사용하였다는 옥새를 들고 1992년 9월 개성시당위원회를 찾아가 그 족보와 옥새를 김일성 주석께 드린다고 하였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왕건릉을 몸소 돌아보고, 그 릉을 훌륭히 개건하여 통일국가 고려를 건설한 왕건의 업적을 기려야 한다고 지시하였는데, 그 소식을 들은 왕지송 노인은 너무 감격하여 족보와 옥새를 김일성 주석께 드린다고 하였던 것이다. 아래쪽 사진은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의해 훌륭히 개건된 왕건릉이다. 918년에 고려를 창건한 왕건은 936년에 후삼국을 통일하여 민족사적 위업을 마침내 완수하였다. 통일국가 고려를 건설한 것은 반만년을 헤아리는 우리 민족사에서 거대한 의의를 가진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1082년 전에 등장한 통일국가 고려의 위용  

2018년은 통일국가건설 1082주년, 통일국가건설운동 7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런 뜻깊은 새해의 첫날, 반만년 민족사에서 매우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 통일국가건설역사와 통일국가건설운동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태조 왕건이 통일국가를 건설한 해는 936년이다. 918년에 고려를 창건한 그는 936년에 후삼국을 통일하여 민족사적 위업을 완수하였다. 왕건이 통일국가 고려를 건설한 것은 거대한 민족사적 의의를 지닌 대사변이다. 그 의의를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고려의 후삼국 통일은 단순히 통일국가를 건설한 것이 아니라, 천년강국 고구려를 계승한 통일국가를 건설하였다는 점에서 거대한 의의를 지닌다. 고려라는 나라이름 자체가 고구려를 계승하였음을 명백히 말해준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통일국가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사진 1>

첫째, 통일국가 고려는 고구려의 첫 계승국이었던 발해를 우리 민족사에 포함시켰다. 발해는 고구려의 옛 강역에서 698년에 창건되어 926년까지 존재했던 동방대국이다. 고려가 발해를 우리 민족사에 포함시켰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통일국가 고려는 민족사의 정통성을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역사발전경로로 확립하였다. 신라는 당나라를 추종하였고, 고구려는 당나라와 대결하였으므로, 고려가 민족사의 정통성을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역사발전경로로 확립한 것은 민족의 자주성을 첫 통일국가의 기초로 마련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 통일국가 고려는 이전에 고려의 국경선으로 알려졌던, 압록강 하구에서 강원도 원산을 잇는 선을 훌쩍 뛰어넘어 발해의 드넓은 강역을 자국 영토로 포괄하였다.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역사발전경로를 확립하였으므로, 발해의 강역을 자국 영토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윤한택 연구교수가 요나라 역사서 ‘요사(遼史)’와 ‘고려사’를 대조하여 연구한 내용을 2017년 5월 26일에 발표하였는데, 그는 옛 문헌들에 고려의 서북방 국경선으로 기록된 압록은 오늘의 압록강이 아니라 중국 랴오닝성 톄링(鐵嶺)시에 흐르는 랴오허(遼河) 지류라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2017년 11월 17일 러시아 과학원 고고학자들은 서울에서 진행된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고려의 유적과 유물들이 최근 연해주에서 발굴되었다는 정보를 공개하였다. 이런 새로운 사실들은 통일국가 고려가 서북방으로는 압록강을 넘어 요하 인근까지, 그리고 동북방으로는 두만강을 넘어 연해주까지 포괄하는 광대한 강역에 세워진 동방대국이었음을 말해준다. 
   
둘째, 통일국가 고려는 연호를 천수(天授)라 정하고, 오늘의 개성인 송악을 수도로 삼았으며, 천자국(天子國)으로 자처하였다. 천자는 곧 황제이므로, 천자국은 황제가 통치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통일국가 고려가 독자적인 연호를 정하고, 천자국으로 자처한 것은, 세계문명중심에 천자국 중국이 있고, 그 변방에 미개한 네 무리의 오랑캐들과 여덟 무리의 야만족들이 있다고 보았던 이른바 사이팔만(四夷八蠻) 천하관(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천하관을 정립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1992년 10월 개성 인근에 있는 왕건릉 개건공사장에서 땅을 파던 굴착기 삽날에 걸려 출토된 특이한 청동유물이 있다. 그 유물은 의자에 앉은 청동좌상이었는데, 큰 귀, 가늘고 긴 손가락, 사각형에 가까운 발, 평평한 발바닥을 가진 벌거벗은 형상이었다. 출토될 때, 그 나신청동상에는 비단으로 지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 청동좌상은 금으로 장식한 옥대 장식물이 함께 출토되는 바람에 고려의 불상이 아니라 왕건의 청동좌상으로 고증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왕건의 청동좌상은 천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통천관(通天冠)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왕건의 통천관은 중국의 황제들이 쓰던 통천관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왕건의 통천관에는 태양을 표상하는 8개의 동그란 장식물들이 달려있는데, 이런 장식물은 중국 황제의 통천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통일국가 고려가 자주성을 건국기초로 삼았음을 말해준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1992년 10월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진행된 왕건릉 개건공사장에서 땅을 파던 굴착기 삽날에 걸려 출토된 왕건 청동좌상의 얼굴 부분을 촬영한 것이다. 이 청동좌상은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형상되었는데, 큰 귀와 가늘고 긴 손가락, 사각형에 가까운 발과 평평한 발바닥을 가진 나신좌상이다. 출토될 때, 그 나신좌상에는 비단으로 지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사진에 나타난 왕건의 청동좌상은 천자(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통천관을 머리에 쓰고 있다. 왕건의 통천관에는 태양을 표상하는 8개의 동그란 장식물들이 달려있는데, 이런 장식물은 중국 황제의 통천관에서 찾아볼 수 없다. 통일국가 고려는 자주성을 건국기초로 삼은 천자국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셋째, 통일국가 고려의 건설은 우리 민족이 사상 처음으로 통일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동질의식을 지니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아주 먼 옛날 아사달에서 단군조선이 개국된 이후 장구한 세월에 걸쳐 형성되어온 민족의 동질성을 공고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로 되었다. 
우리 민족은 통일국가 고려가 건설되었던 936년부터 1948년까지 1012년 동안 통일국가 안에서 민족의 동질성을 더욱 강화, 발전시키며 함께 살아왔다. 1012년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은 분단이라는 말조차 알지 못했으며, 알 필요도 없었다. 1910년 일제는 974년 동안 우리 민족의 존립거점으로, 생활터전으로 되어왔던 통일국가를 무력으로 강탈했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 동안 일제의 악독한 식민통치를 받았지만, 남북으로 갈라지지는 않았다. 


2. 1012년 역사를 파괴한 1948년 분단체제 

미국의 분할점령정책과 단독정부수립정책에 의해 한반도에 세워진 것이 1948년 분단체제다. 미국의 분할점령정책에 따라 북위 38도선이 분단선으로 고착되었을 뿐 아니라,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의 열망을 짓누르면서 남조선단독선거가 강행되었으며, 그 선거결과에 의거하여 남조선단독정부가 출현하였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들춰낼 필요가 있다.

(1)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국 극동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밑에서 부관으로 복무했던 에드워드 로우니(Edward L. Rowny)는 2013년 6월에 출판된 자신의 회고록 ‘미국 병사의 코리아전쟁 무용담(An American Soldier's Saga of the Korean War)’에서 1945년 8월 초 미국 전쟁성 작전국 전략정책단 회의에서 딘 러스크(David Dean Rusk), 앤드루 굿패스터(Andrew J. Goodpaster)를 비롯한 영관급 장교들이 한반도를 북위 39도선으로 분할점령하자고 주장하였는데, 그들의 직속상관인 죠지 링컨(George A. Lincoln)은 북위 38도선으로 분할점령하자는 주장을 관철시켰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것은 만주전투에서 일제관동군을 제압한 소련군이 한반도를 향해 파죽지세로 남하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한 미국이 허겁지겁 북위 38도선을 분할점령선으로 획정하였다는 기존 정설을 뒤엎는 것이며, 미국이 한반도분할점령을 오랜 시간에 걸쳐 주도면밀하게 검토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3> 

▲ <사진 3> 1945년 9월 9일 서울에 점령군으로 들어간 미국군은 일제의 조선총독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일제가 조선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하였던 바로 그 건물에 일장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내걸었으며, 점령군 군사정부를 세우고 군정을 실시하였다. 위쪽 사진은 성조기를 게양한 미국 점령군 군사정부 청사의 모습이다. 점령군 군사정부는 38도선을 중심으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분할점령정책을 실시하였다. 아래쪽 사진은 미국 점령군 병사들이 개성 인근 38도선의 남북통행로에 초소를 세워놓고 경비를 서고 있는 장면이다. 이 사진은 1947년 5월 25일에 촬영되었다. 미국은 우리 민족의 통일국가건설운동을 폭력으로 짓누르고, 한반도분할점령정책과 남조선단독정부수립정책으로 고려의 통일위업달성 이후 면면히 이어져온 1012년 역사를 무참히 파괴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945년 11월 20일 당시 점령군 군사정부 사령관이었던 존 하지(John R. Hodge)의 정치고문 윌리엄 랭던(William R. Langdon)은 미국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단독정부수립구상을 처음으로 언급하였다. 이런 사실은 미국이 한반도를 분할점령한 직후부터 단독정부수립정책을 검토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명백하게도, 미국은 1000년 통일국가를 계승하여 새로운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 민족의 투쟁과 노력을 분할점령과 단독정부수립으로 좌절시키고 1948년 분단체제를 세웠던 것이다. 

1947년 8월 26일 미국군 수송기 한 대가 김포비행장에 착륙하였다. 수송기 출입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당시 미국 대통령의 특사 앨벗 웨드마이어(Albert C. Wedemeyer)였다. 중국을 방문한 뒤 서울에 나타난 웨드마이어 특사는 서울 방문을 마치고 일본 도꾜를 거쳐 워싱턴으로 돌아갔는데, 중국 및 남조선 시찰활동을 정리한 장문의 보고서를 1947년 9월 9일 트루먼에게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는 트루먼 행정부가 한반도정책을 확정하는 데서 결정적인 요소로 되었다. 그 보고서에 제시된 권고사항이 눈길을 끄는데, 그 부분을 번역,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조선에서 미국의 철수는 소련의 비례적 철수에 영향을 주는 합의에 근거하여,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해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담보조치들과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적절한 담보조치들이 시행되는 것을 지지하고, 예상하는 남조선에 군사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 조선국립경찰과 조선해안경비대에 무기와 장비를 계속 제공한다.
- 북의 위협에 대처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미국군이 지휘하는 조선정찰군(Korean Scout Force)을 창설하여 현존 경비대를 대체한다.
- 조선에 대한 미국군의 임시점령(interim occupation)을 계속한다. 
- 기술전문인력과 전술부대들의 훈련에 조언을 준다.”

위의 인용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1947년 9월 당시 트루먼 행정부가 한반도에서 미국군과 소련군이 동시에 철수하게 될 것을 예견하면서 그에 대비한 조치들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철군에 대비한 조치라는 것은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해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담보조치들”이다. 웨드마이어 보고서는 그 담보조치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았지만, 역사자료를 읽어보면, 트루먼 행정부가 아래와 같은 담보조치들을 시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1) 미국은 조선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문제를 미소공동위원회에서 해결하려던 기존 전략을 포기하고, 그 문제를 유엔으로 끌고 갔다. 왜냐하면 집권야욕에 사로잡혀 정세를 오판한 남조선 우익세력이 모스크바 삼국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바람에 그 세력을 앞세워 조선임시정부를 수립하려던 미국의 계획추진에 큰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친미반소성향을 지닌 우익세력을 내세워 조선임시정부를 수립하려던 미국의 전략구상이 미소공동위원회에서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자, 그 위원회를 깨버리고 자기의 전략구상을 유엔무대에서 실행에 옮기려고 획책한 것이다. 
그리하여 트루먼이 웨드마이어 보고서를 받아본 날로부터 여드레가 지난 1947년 9월 17일 미국은 조선문제를 유엔에 상정하였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현저하게 남아있지만, 1947년 당시 유엔은 미국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조선문제를 유엔으로 끌고 가면 미국이 마음먹은 대로 처리할 수 있었고, 실제 그렇게 되었다. 

(2) 미국은 한반도분할점령에 계속 집착하였다. 미국군은 38도선 이남지역에 진주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3년 동안 그 지역의 공식명칭은 남조선이었다.) 명백하게도, 그들은 남조선주둔군이 아니라 남조선점령군이었다. 트루먼 행정부의 공식문건들에서 남조선주둔군이라는 용어는 찾을 수 없고, “남조선점령군(occupation force in South Korea)”이라는 용어만 나온다. 미국은 그 점령지에 군사정부를 세우고 군정을 실시하였다. 점령군 군사정부는 8.15 직후 남조선 각지에 건설된 모든 인민위원회를 폭력으로 제거하였고, 친미반소의 옷으로 갈아입고 변신한 부일반민족세력이 주도하게 될 남조선단독정부를 수립하려고 광분하였다. 하지만 점령군 군사정부의 그 전략수행은 진보정치세력의 반대와 민중의 저항에 부딪쳐 그들이 예상한 대로 순탄하게 추진될 수 없었다. 그래서 점령군 군사정부는 진보정치세력을 제거하고, 민중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부와 경비대를 증강시키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 사정은 아래와 같다. <사진 4> 

▲ <사진 4> 백악관의 한반도분단정책을 현지에서 집행한 점령군 군사정부는 남측 각지에 건설된 모든 인민위원회를 폭력으로 제거하였고, 부일반민족세력이 주도하게 될 남조선단독정부를 수립하려고 광분하였다. 점령군 군사정부의 그런 전략수행은 진보정치세력의 반대와 민중의 저항에 부딪쳐 순탄하게 추진될 수 없었다. 그래서 점령군 군사정부는 진보정치세력을 제거하고 민중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부와 경비대를 증강시켰다. 남조선경찰부를 확대, 개편한 한국 경찰청과 남조선국방경비대를 정규군으로 확대, 개편한 한국군은 1950년 6.25전쟁 직전부터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까지 남측 전역에서 113만명의 민간인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위쪽 사진은 미국군 장교가 '국민보도연맹원' 학살현장에서 한국군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1950년 7월 한국군이 후퇴하면서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을 닥치는 대로 마구 학살한 사진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945년 10월 21일 점령군 군사정부는 일제강점기 경무부에 소속되었던 부일민족반역자들을 긁어모아 남조선 각 도에 경찰부를 설치하였고, 이듬해에는 그것을 경찰청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1946년 1월 15일 점령군 군사정부는 일본군 출신과 만주군 출신 부일민족반역자들을 긁어모으고 광복군 출신자 몇 사람을 끌어들여 1개 연대 규모의 남조선국방경비대를 창설하였는데, 1948년 8월 15일 남조선단독정부를 수립할 때 그 경비대를 정규군으로 개편, 증강시켰다. 
점령군 군사정부가 부일민족반역자들을 긁어모아 창설하였고, 미국산 무기로 무장시켜 지휘통제하였던 남조선경찰청→한국경찰청과 남조선국방경비대→한국군은 6.25전쟁 직전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된 직후까지 남측 전역에서 진보적 민중들을 닥치는 대로 마구 학살하였다. 1960년 10월 20일에 결성된 전국피학살유족회가 당시 민주당 정부에 제출한 공문에 따르면, 자기 가족이 학살당했다고 신고한 피학살자 총인원은 남측 전역에서 113만명이었는데, 이를 지역별로 보면, 경상남도 25만명, 경상북도 21만명, 전라남도 21만명, 전라북도 19만명, 제주도 8만명, 경기도 6만명, 충청북도 5만명, 충청남도 3만명, 강원도 3만명, 서울 2만명이었다. 


3. 민간인 165만7,000명이 희생된 참극과 재난

점령군 군사정부는 남조선국방경비대를 창설하고 지휘통제하였으며, 경비대의 군사훈련을 지도하면서 무력을 체계적으로 증강시켰다. 웨드마이어 보고서에 따르면, 점령군 군사정부가 남조선국방경비대의 무력을 증강시키는 목적은 “북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런 사실만 놓고 봐도, 미국은 70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무력을 증강하는 구실로 ‘북의 위협’을 내세워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점령군 군사정부가 추진해온 남조선국방경비대 무력증강에 따라 그 경비대가 한국군으로 확대, 개편된 것에 한껏 고무된 이승만 정부는 무력으로 북을 점령하려는 이른바 ‘북벌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1949년 7월 17일 국방부장관 신성모는 대한청년단 훈련장에 나타나 연설하면서 “국군은 대통령으로부터 명령을 기다리고 있으며, 명령만 있으면 하루 안에 평양이나 원산을 점령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49년 10월 7일 이승만은 <UP통신> 회견에서 “나는 우리가 3일 안으로 평양을 점령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만주와 한국의 국경은 38선보다 방어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5>

▲ <사진 5> 미국은 단독정부수립정책에 따라 점령군 군사정부와 이승만을 앞세워 남조선단독정부를 세웠다. 위의 사진은 1945년 8월 15일 서울에 있는 점령군 군사정부 청사 앞마당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하식'에 최고 귀빈으로 참석한 미국 극동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와 한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단독정부를 수립한 이후, 맥아더와 이승만은 이른바 '북벌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면서 한국군의 무력을 대폭 증강시켰다.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승만 정부의 ‘북벌정책’ 뒤에는 당시 일본-남조선 점령군을 총지휘하고 있었던 극동군사령관 맥아더가 버티고 있었다. 1948년 8월 15일 오전 11시 20분 중앙청 앞마당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하식’ 축하연설에 최고 귀빈으로 나선 맥아더는 “정의의 군대가 용진하는 이 시각, 그들의 승리는 현대사의 커다란 비극 가운데 하나인 인위적 장벽과 분단으로 무색해졌다”고 하면서 “이 장벽은 반드시 무너져야 하며, 무너질 것이다. 자유국가에서 살게 된 자유로운 한국인들의 궁극적인 통일을 그 무엇도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북벌정책’의 실질적인 추진자가 맥아더 자신이었음을 드러내준 것이었다. 이처럼 미국은 1948년 분단체제를 수립해놓은 것에서 멈추지 않고, ‘북벌정책’까지 추진하였으니,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점령군이 한반도에 그어놓은 분단선은 국경선이 아니었다. 남측 시각에서 보면, 분단선은 대한민국과 그 북반부지역인 ‘북한’을 갈라놓은 것이고, 북측 시각에서 보면, 분단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그 남반부지역인 ‘남조선’을 갈라놓은 것이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국가로 양립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왜냐하면 한반도에는 오직 하나의 국가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국가는 어떤 나라인가? 남측에서는 대한민국이 유일국가라고 하고, 북측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유일국가라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가운데 어느 한 쪽은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이고, 다른 한 쪽은 국가가 아니면서도 국가를 참칭하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남측에서는 북측을 ‘반국가단체’라고 부르고, 북측에서는 남측을 ‘미제의 식민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 그리고 국가가 아니면서도 국가를 참칭하는 집단 사이의 대립과 충돌은 결국 전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분단이라는 말조차 알지 못했던 우리 민족에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참극과 재난이 닥쳐왔다. 1012년 동안 함께 살아온 단일민족이 ‘한국사람’과 ‘조선사람’으로 갈라져 싸우면서 서로 죽이고 죽였고, 미국군은 조선사람을 죽였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6.25전쟁 중에 미국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파괴된 평양의 모습이다. 얼굴에 부상을 당한 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폭격으로 파괴된 잔해 사이를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이들은 미국군의 무차별 폭격에서 겨우 목숨을 건졌다. 6.25전쟁에서 민간인 사망자를 추산하면, 남측에서 24만5,000명이 죽었고, 북측에서 28만2,000명이 죽었으니, 민간인 57만7,000명이 희생당한 것이다. 우리 민족을 그런 참극과 재난 속에 빠뜨린 원흉은 우리 민족의 통일국가건설운동을 짓누르고, 1948년 분단체제를 수립해놓은 미국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누구도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으나, 6.25전쟁에서 군인 전사자를 제외하고 민간인 사망자만 추산하면, 남측에서 24만5,000명이 죽었고, 북측에서 28만2,000명이 죽었으니 민간인 사망자는 총 52만7,000명이었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6.25전쟁 직전부터 정전협정 체결 직후까지 남측에서 민간인 113만명이 무참히 학살당했다는 사실이다. 대량학살을 명령한 미국군 고위지휘관들과 한국군 고위지휘관들, 한국 정부 고위관리들과 한국 경찰 고위간부들은 요즈음 같으면 국제형사재판소에 전범으로 기소되어 처벌을 받았어야 하였으나, 그들이 되레 피학살자 유족들을 처벌하는 정치탄압을 자행하였다.    
전쟁 3년 동안 군인을 제외하고 민간인만 165만7,000명이 희생당했으니, 이보다 더 끔찍한 참극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가혹한 재난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민족을 그런 참극과 재난 속에 빠뜨린 원흉은 분할점령과 단독정부수립으로 우리 민족의 통일국가건설운동을 짓누르고, 1948년 분단체제를 수립해놓은 미국이다.   

6.25전쟁으로 더욱 굳어진 1948년 분단체제는 마땅히 자주적 발전을 위해 분출되어야 할 민족역량을 언제나 분열과 대결에 소모하도록 강제하였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의 의지와 지향을 끊임없이 도려내었다. 우리 민족이 단일한 언어와 혈통, 단일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운명공동체로서 존립하고 발전하려는 의지와 지향을 끊임없이 도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1948년 분단체제야말로 우리 민족의 자주적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가장 험악하고, 가장 해악적인 요인이 아닐 수 없다.


4. 민족대표 695명이 모란봉극장에 모였다

1948년 당시 우리 민족에게 들이닥친 사태는 너무도 긴박하고 위중하였다. 점령군 군사정부와 이승만을 앞세워 단독정부수립을 집요하게 획책한 미국은 1948년 5월 10일을 선거일로 정해놓고, 선거준비사업을 강행하였다. 고려의 통일위업달성 이후 면면히 이어진 1012년의 민족사가 파괴되고, 통일국가건설운동이 좌절될 절체절명의 위기가 우리 민족의 보전과 존립을 시시각각 위협하고 있었다. 
바로 그러한 때, 남조선단독선거와 남조선단독정부수립을 강행하려는 미국과 맞서 싸우며 기어이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전민족적인 운동이 벌어졌다. 그 운동의 정점에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가 있다. 남북연석회의는 1948년 4월 19일 오후 6시 5분 평양에 있는 모란봉극장에서 성대히 개막되었다. 한반도 전역에서 56개 정당, 사회단체를 대표하는 민족대표 695명이 참석하였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1948년 4월 19일 평양에 있는 모란봉극장에서 개막된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 주석단을 촬영한 사진이다. 김일성 당시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이 연설하고 있다. '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하여 전조선인민은 단결하자!'는 구호가 내걸렸고, 한반도 지도 옆에 태극기가 걸려있다. 남북연석회의가 진행된 시점에는 남북에서 각각 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이었으므로, 아직 국기를 공식 제정하지 못한 터라 북조선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사용하였던 태극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역사적인 남북연석회의는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갈라놓으려는 미국의 한반도분단정책을 파탄시키고,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전민족적인 투쟁의 고귀한 결실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역사적인 남북연석회의는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갈라놓으려는 미국의 한반도분단정책을 파탄시키고, 고구려→발해→고려→근세조선으로 이어진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전민족적인 투쟁의 고귀한 결실이었다. 이 위대한 민족사적 과업을 실현하는 투쟁에 민족구성원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적극 나서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익정치세력을 대표하는 김구 한국독립당 대표와 김규식 민족자주연맹 대표는 남북연석회의에 마지못해 얼굴을 내밀었다. 김구는 4월 20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김규식은 4월 22일에 평양에 도착하였는데, 남북연석회의에는 참석하지 않고, 줄곧 밖에서 맴돌았다. 평양에 머무는 동안 모란봉, 영천암, 만경대, 혁명자유가족학원을 방문하였으나, 회의장에는 나가지 않았다. 
소련군 연해주관구 25군사령부 군사위원이었던 니꼴라이 레베데브(Nikolai G. Lebedev)가 남긴 ‘비망록’에 따르면, 김구는 “나는 연석회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들 계획대로 회의를 계속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구는 4월 22일 회의 셋째 날이 되어서야 남북연석회의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인 오후 12시 45분경 회의장에 나타났는데, 5분 동안 축하연설을 하더니, 곧바로 퇴장하여 자기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김규식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면서 남북연석회의에는 얼굴도 내밀지 않고, 나중에 축하연회에만 잠깐 나타나 축하연설을 하였을 뿐이다. 

김구는 남북연석회의가 끝난 이튿날인 4월 27일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내가 대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몸도 피곤하고 또 대표들(그를 수행한 한국독립당의 다른 대표들-옮긴이)이 참석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구차한 변명이었다. 김구와 김규식이 평양에 간 진짜 목적은 자기들이 바라던 남북요인회담(4인회담)을 하기 위한 것이었지,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 두 우익정객은 왜 남북요인회담에만 집착하였을까? 원래 김구는 이승만과 손을 잡았었고, 김규식은 점령군 군사정부가 조작해놓은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에 들어가 활동했었다. 하지만 김구는 단독정부수립야욕을 품은 이승만에게 이용당했고, 김규식은 단독정부수립음모를 꾸미던 점령군 군사정부에게 이용당했을 뿐, 우익정치세력 내부에서 극우파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김구와 김규식은 그런 정치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탈출구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바로 남북요인회담 추진이었다. 

늙은 우익정객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각계각층 민중들은 남조선단선반대투쟁전국위원회를 조직하기로 결정한 남북연석회의 방침에 따라 한반도 전역의 도, 군, 면에 남조선단선반대투쟁위원회를 조직하였다. 남조선단선반대투쟁전국위원회는 이승만을 앞세운 점령군 군사정부의 단독선거를 저지하려는 격렬한 대중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를테면 남조선 각지에서 선거사무소 습격사건들, 경찰서 습격사건들, 공공시설물에 대한 파괴 및 방화사건들, 야간봉화시위들이 계속 일어났다. 노동자들은 단선반대총파업투쟁에 궐기하였고, 청년학생들은 단선반대동맹휴학투쟁에 궐기하였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격렬한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점령군 군사정부는 단독선거를 준비하는 선거인등록을 1948년 3월 30일부터 강행하였다. 1948년 4월 12일 서울에서 통행인 1,2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는 선거인등록이 강제로 진행되었음을 말해준다. <조선일보>가 1948년 4월 15일에 보도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선거인등록에 참여한 사람은 934명(74%)이었고,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328명(26%)이었는데, 참여한 934명 가운데 850명(91%)은 강제로 등록하였고, 84명(9%)만 자발적으로 등록하였다는 것이다. 경찰, 시청, 동회, 선거위원회, 우익청년단, 초중등학교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인등록을 강요하였다. 다른 사람의 도장을 갖고 가서 명부에 찍는 대리등록도 있었고, 있지도 않은 사람을 명부에 올려놓는 유령등록도 있었다. 이런 불법사례들은 선거인등록 자체가 민주주의적인 절차를 위반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8> 

▲ <사진 8> 이 사진은 1948년 5월 10일 점령군 군사정부가 점령군에게 특별경계령을 내리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전민족적인 반대와 저항을 짓누르고 강행한 남조선단독선거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에 나타난 남녀청년 5명은 남조선단독선거를 파탄시키기 위한 대중투쟁에 참가하였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당시 남조선 각지에서 격렬하게 전개된 단독선거반대투쟁에서 사망자는 128명, 중상자는 137명, 검거투옥된 사람은 5,425명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948년 5월 8일 점령군에게 특별경계령을 내린 점령군 군사정부는 5월 10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남조선단독선거를 강행하였다. 당시 언론보도는 “장총을 들은 경관, 곤봉을 들은 향보단원들이 길목마다 지켜 엄격한 경비를 섰고, 관공서, 각 학교, 상점, 음식점, 극장 기타 일체 신문사, 사회기관들은 설날처럼 문을 꼭꼭 닫고, 나다니는 길손도 미군 자동차 외에는 한산하기 짝이 없었고, 무섭게 흐리터분한 하늘에 미군 비행기의 폭음소리가 한갓 고요한 기분을 자아내었다. (중략) 무장경관 70명, 사복경관 30명, 향보단원 등 물샐틈없는 경비전 속에서 개표가 시작되었다”고 하면서 선거현장의 공포분위기를 전하였다. 단독선거반대투쟁에서 사망자는 128명, 중상자는 137명, 검거, 투옥된 사람은 5,425명이었다. 

사태가 이 지경으로 되었으므로, 단독선거를 감시한다는 유엔조선임시위원단은 전 세계 민주국가들이 공인한 선거원칙에 따라 단독선거를 무효화해야 하였지만, 미국의 추종국들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필리핀, 시리아, 엘쌀바돌, 대만, 프랑스가 파견한 친미대표들로 구성된 유엔조선임시위원단은 미국의 단독정부수립정책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였다. 1948년 2월 12일 유엔소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출발하기 전, 유엔조선임시위원단 단장 벤갈릴 메논(Bengalil K. K. Menon)은 서울의 라디오방송에 출연하여 “남은 남이고, 북은 북이니, 그들은 결코 만날 수 없으리라”는 극악한 망언은 늘어놓았다.   


5.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정치대결

1948년 남북연석회의 이후 오늘까지 장장 70년 동안 우리 민족이 계속해온 통일국가건설운동의 대척점에 미국이 있다. 그 대척점에서 미국은 1948년 분단체제를 합법화, 영구화하려고 끊임없이 획책하고 있다. 지난날 미국의 분할점령정책과 단독정부수립정책은 오늘날 분단영구화정책과 대조선적대정책으로 전이되었다.  

미국이 ‘한미동맹’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실제로 추구하는 목적은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만들어 1948년 분단체제를 영구화하려는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한미동맹’이라는 명분을 내건 미국은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라는 우리 민족의 정당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방대한 핵전략자산을 투입한 전쟁연습을 계속하여 정세를 고의적으로 긴장시키고, 친미세력의 장기집권을 보장해줌으로써 1948년 분단체제를 영구화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1948년 분단체제를 해체하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면, 그 체제를 수립해놓고 유지, 관리하는 미국의 분단영구화정책을 파탄시켜야 한다. 미국의 분단영구화정책이 존속되는 한, 1948년 분단체제를 해체하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 

미국의 분단영구화정책을 파탄시킨다는 말은 미국과 전면적인 정치대결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그 정치대결은 남북연석회의 역사를 계승한 전민족적인 통일국가건설운동과 그 운동을 짓누르는 미국의 분단영구화정책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결이다.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숙명적인 정치대결이다.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서 시작된 통일국가건설운동사에 어느덧 70년의 연륜을 새겨넣은 올해 2018년은 한반도 전역에서 자주통일을 열망하는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총단합하여 통일국가건설운동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9> 

▲ <사진 9>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서 시작된 통일국가건설운동사에 어느덧 70년의 연륜을 새겨넣은 올해 2018년은 한반도 전역에서 자주통일을 갈망하는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총단합하여 통일국가건설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위의 사진은 2016년 8월 15일 서울 대학로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열린 8.15 전국노동자대회의 한 장면이다. 대학로를 가득 메운 수많은 노동자들이 사드배치 철회, 평화협정 체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을 요구한 거대한 함성은 그들의 통일열기만큼 강렬하였다. 선대들로부터 통일국가건설운동을 위대한 유업으로 넘겨받은 후대들에게는 미국의 분단영구화정책을 파탄시키고 기어이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결의가 넘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948년 4월 23일에 진행된 남북연석회의 넷째 날 회의에서 ‘전조선동포에게 격함’이라는 제목의 격문이 발표되었다. 70년 전 통일국가건설운동을 벌였던 선대들은 그 격문에서 70년 뒤 통일국가건설을 벌이고 있는 후대들에게 이런 절규를 남겼다.

“....조선민족은 죽지 않았다. 우리 조선민족은 또 다시 외국의 노예로서 암흑의 길을 결코 밟지 않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하나이며, 우리 조국도 하나이다.... 우리 민족은 통일독립을 요구한다.... 우리 조국에 위험이 박두한 이 엄숙한 순간에 만일 우리가 조금이라도 주저한다면 우리 후손들은 어찌될 것이며 그들은 얼마나 우리를 원망할 것인가....”

하지만 후대들은 선대들을 결코 원망하지 않는다. 선대들로부터 통일국가건설운동을 위대한 유업으로 넘겨받은 후대들에게는 미국의 분단영구화정책을 파탄시키고 기어이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결의가 넘친다. 통일국가건설운동 70주년을 맞이한 그들의 앞길에 2018년 새해 첫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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