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13

챠베스의 20년 집권과 볼리바리안 혁명의 계속 전진


변혁과 진보 (97)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999년부터 2019년까지 20년 집권

2012년 10월 7일에 실시된 베네주엘라 대통령선거에서 우고 라파엘 챠베스 프리아스(Hugo Rafael Chavez Frias) 대통령이 엔리케 카프릴로스 라돈스키(Herique Caplrilos Radonski)를 55.25% 대 44.13%의 득표율로 꺾고 승리하였다.
 
이로써 챠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주엘라 연합사회주의당(PSUV)이 2019년 2월까지 6년 동안 집권을 연장하게 되었다. 우고 챠베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때는 1999년 2월이었으므로, 그가 2019년 2월까지 집권하게 되면 집권기간은 20년이 된다. 다시 말해서, 우고 챠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은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발전되어가는 것이다.
 
'21세기 사회주의'라는 기치를 들고 전진해온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은 라틴 아메리카식 사회변혁의 표준형으로 정착되었다.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들에서 그와 매우 유사한 혁명이 일어났고, 또 현재 진행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쿠바 혁명이 라틴 아메리카식 사회변혁의 표준형으로 공인되었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라틴 아메리카식 사회변혁의 표준형으로 공인된 것이다. 볼리바리안 혁명에는 쿠바 혁명을 계승한 측면도 있고, 쿠바 혁명을 새로운 시대환경에 맞게 더욱 발전시킨 측면도 있다. 쿠바 혁명과 볼리바리안 혁명의 상호관계는 매우 중요하므로,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별도로 상론할 필요가 있다.
 
암투병 중에 57번 째 생일을 맞은 2011년 7월 28일, 챠베스 대통령은 자신이 이끌어온 볼리바리안 혁명의 투쟁구호를 새로운 투쟁구호로 바꾸었노라고 말했다. 이전에 제시하였던 '조국, 사회주의냐 죽음이냐'라는 투쟁구호를 "사회주의조국과 승리, 우리는 살아갈 것이며 승리할 것이다"라는 새로운 투쟁구호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혁명의 지도자가 혁명의 투쟁구호를 새로운 구호로 바꾼 것은 의미심장하다.
 
챠베스 대통령이 볼리바리안 혁명 초기에 제시한 '조국, 사회주의냐 죽음이냐'라는 투쟁구호는, 대미예속과 우익독재로 망해가던 베네주엘라를 자주적 사회주의로 살리지 못하면 베네주엘라는 죽는다는 절박한 인식을 뜻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베네주엘라의 사회주의 변혁을 죽음을 각오한 투쟁으로 실현하겠다는 비장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볼리바리안 혁명이 12년째 접어들었던 2011년에 그 혁명의 최고지도자는 "사회주의조국과 승리, 우리는 살아갈 것이며 승리할 것이다"라는 새로운 투쟁구호를 제시한 것이다. 이 새로운 투쟁구호는 무슨 뜻인가? 새로운 투쟁구호는 볼리바리안 혁명이 베네주엘라를 '사회주의조국(socialist motherland)'으로 변화발전시킨 오늘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고, 그와 더불어 베네주엘라 민중이 앞으로도 계속 사회주의로 살아갈 것이며, 사회주의조국의 최후 승리를 위해 투쟁할 것이라는 혁명적 의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챠베스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베네주엘라 민중이 자기 조국을 사회주의조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볼리바리안 혁명이 베네주엘라 민중과 베네주엘라 국가의 상호관계를 변화발전시켜 사회변혁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볼리바리안 혁명의 새로운 단계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단계적으로 발전해가는 볼리바리안 혁명의 발전수준을 파악하려면, 새로운 정치방식의 실현, 새로운 사회적 생산양식의 도입, 새로운 사상문화생활의 창조라는 세 가지 발전양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이 실현한 새로운 정치방식

볼리바리안 혁명이 실현한 새로운 정치방식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알려면, 그 혁명이 반제자주화를 실현하였는가 하는 문제와 인민주권을 실현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각각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오늘 현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볼리바리안 혁명은 베네주엘라가 대미예속에서 벗어나 국가적 자주성을 실현하도록 이끄는 반제반미투쟁으로 전개되었다. 볼리바리안 혁명은 반제자주화투쟁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였다.
 
그런 베네주엘라를 반제자주화의 길에서 이탈시키려고 기회를 엿보던 미국은, 2002년에 베네주엘라 우익세력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챠베스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급변사태를 일으켰고, 급변사태가 실패로 끝나자 군사적 압박을 가하였다.
 
이를테면, 미국은 무인첩보기를 베네주엘라 영공에 침범시키고, 베네주엘라에 근접한 네덜란드령 섬들에 미국 공군 전투기를 전진배치하여 베네주엘라 영공을 침범하고, 베네주엘라에 인접한 친미예속국 콜롬비아에 미국군 기지를 건설하고, 중남미지역을 관할하는 제4함대를 재창설하면서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을 좌절시켜보려고 미쳐날뛰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제국주의깡패국가의 무력침공에 맞서 싸우며 국가적 자주성을 수호하는 물리력은 군대이므로, 베네주엘라에서도 볼리바리안 혁명 이후 군대를 강화하는 문제는 매우 중대한 혁명과업으로 제기되었다. 군인 출신인 챠베스 대통령은 베네주엘라군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힘쓰고 있다.
 
그런데 베네주엘라는 국방공업의 자립화를 아직 실현하지 못하였으므로, 모든 무기와 군사장비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이란, 브라질, 스페인, 캐나다에서 무기와 군사장비를 수입하고 있다. 국방공업의 자립화는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풀어야 할 커다란 숙제다.
 
둘째, 어느 나라에서나 인민주권을 실현하는 정치과업은 진보정당 또는 혁명정당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므로, 베네주엘라에서 인민주권을 어떻게 실현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알아보려면, 볼리바리안 혁명을 수행하는 베네주엘라 연합사회주의당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
 
베네주엘라 연합사회주의당은 2010년 4월에 개최한 임시전당대회에서 자기의 지위와 역할을 볼리바리안 혁명의 "정치전위(political vanguard)"로 규정하였다. 이것은 베네주엘라 연합사회주의당이 자신을 혁명적 전위당으로 자인하였음을 말해준다. 혁명적 전위당이란 대중정치조직을 이끌어가는 정당이다.
 
베네주엘라에는 인민생활향상과 사회환경개선을 책임진 베네주엘라식 대중정치조직인 코뮨협의회(Commune Council)가 2만개나 조직되었다. 150∼400가구로 구성된 도시의 코뮨협의회와 약 20가구로 구성된 농촌의 코뮨협의회는 자본주의시장경제에서 벗어나 생산과 소비를 코뮨적 협동생활로 이끌어가는 대중정치조직이다.
 
이처럼 베네주엘라 각지에 조직된 2만개의 코뮨협의회를 이끌어가는 것이 약 600만명 당원으로 조직된 베네주엘라 연합사회주의당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베네주엘라 연합사회주의당은 혁명적 전위당으로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베네주엘라에서 인민주권은 전사회를 코뮨협의회로 조직하려는 투쟁과 그 투쟁에서 전위적 역할을 수행하는 베네주엘라 사회주의연합당의 정치적 영도에 의거하여 더 높은 단계에서 실현되고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의 새로운 사회적 생산방식을 도입한 '사회주의 과야나 계획'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새로운 사회적 생산방식을 어떻게 도입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지배와 착취를 유지해온 낡은 생산방식을 철폐하고 새로운 사회적 생산방식을 도입하는 문제는, 전략산업(주요산업) 국유화와 생산활동 민주화라는 두 가지 정치과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실현된다.
 
베네주엘라에서 2007년 5월 1일에 시작된 전략산업 국유화는 계속되고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은 베네주엘라의 석유, 석유화학, 철강, 전력, 통신, 공항 및 항만, 금융, 시멘트, 제약, 식품가공을 비롯한 전략산업부문에서 국유화를 실현하였다. 현재 베네주엘라 경제부문에서 국유화 비율은 약 30%에 머물러 있다.
 
전략산업을 국유화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유화된 기업의 노동자들이 생산활동을 민주적으로 경영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볼리바리안 혁명이 전략산업 생산활동의 민주화에서 이룩한 성과는, 베네주엘라 노동자 대표 600명이 오랜 토론과정을 거쳐 2009년 6월 9일 챠베스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 '2009 - 2019 사회주의 과야나 계획(Plan Socialist Guayana)'으로 집약되었다.
 
국유화된 전략산업부문의 노동자들이 챠베스 정부와 협력하여 생산활동을 직접적으로 통제하고, 민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노동자들 스스로가 작성한 이 역사적인 보고서는, 베네주엘라 국유기업에서 노동자들이 생산활동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정치방침을 담은 것이다. 보고서 내용을 이 짧은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사회주의 과야나 계획'이 제시한 아홉 가지 목표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첫째, 노동자의 생산 통제(control of production by the workers)
둘째, 혁명적 이론과 행동의 개발(development of a revolutionary theory and action)
셋째, 기업체의 거대기업체로의 통합(integration of industries into a mega company)
넷째, 노동자의 사상적, 정치적 발전과 기술적, 생산적 발전(ideological-political and technical-productive development of workers)
다섯째, 노동자의 집단적인 기술 소유(collective ownership of technology by workers)
여섯째, 건강한 노동조건의 보장(guarantee of healthy working conditions)
일곱째, 노동자가 제기한 사업에 대한 재정적 실현가능성(financial viability of projects proposed by workers)
여덟째, 새로운 사업을 위한 에너지 사용능력을 확보하는 것(to ensure energy availability for new projects)
아홉째, 노동자 생산관리의 공적 책임성을 위한 법령을 제정하는 것(to establish codes for public accountability of the woker's management)이다.
 
이러한 아홉 가지 투쟁목표는 '사회주의 과야나 계획'을 높이 들고 전략산업 생산활동을 민주화하기 위해 투쟁하는 베네주엘라 노동계급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고 있다.

 
새로운 사상문화생활의 창조, 그리고 혁명의 후계문제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새로운 사상문화생활을 어떻게 창조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객관적 지표로 나타내기 힘들지만, 사회환경을 살펴보면 사상문화생활 형편을 가늠할 수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 대미예속과 우익독재로 망해가고 있었던 베네주엘라의 암흑기에 마약, 납치, 살인 같은 흉악범죄가 만연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흉악범죄는 볼리바리안 혁명이 시작된 이후에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유엔 산하 마약 및 범죄국이 발표한 보고서는 베네주엘라의 살인범죄율이 챠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첫 해인 1998년과 비교하여 2010년에 2.5배나 더 높아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베네주엘라의 범죄감시단체가 2011년 12월 28일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베네주엘라에서 살해된 사람은 19,336명이다. 농지개혁을 요구하는 농민활동가들이 살해되는 경우도 있는데, 2001년 이후 지금까지 살해된 농민활동가는 약 300명이나 된다.
 
베네주엘라에서 흉악범죄가 그처럼 횡행하는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범죄자가 경찰, 판사, 검사 등에게 뇌물을 주고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부패한 사법체계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흉악범죄를 근절하기 힘들지만, 사법체계 개혁하여 법적 제재를 강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 해결방도는 법적 제재 강화를 요구하는 낡은 사상문화생활을 넘어서 도덕적으로 새로운 사상문화생활을 창조하는 것이다.
 
볼리바리안 혁명이 진전되는 나라에서 흉악범죄를 뿌리뽑지 못한 것은 그 혁명이 새로운 사상문화생활을 창조하는 역사적 임무를 아직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낡은 사상문화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사상문화생활을 창조하는 것은 혁명과업들 가운데 가장 방대하고, 어렵고, 장기성을 요구하는 과업이다.
 
그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 새로운 문화, 새로운 예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혁명의 요구에 맞게 창조해야 하는데,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은 아직 그러한 발전수준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낡은 사상문화에 사로잡힌 기성세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사상문화 속에서 자라난 새 세대가 등장하는 세대교체는 약 30년을 요구한다. 시대 흐름만을 따져본다면, 지금 베네주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은 그러한 세대교체기간의 절반쯤에 이른 것이다. 볼리바리안 혁명에서는 지난 15년보다 다가오는 15년이 더 중요하다.
 
챠베스 대통령이 승리한 베네주엘라 대통령 선거일로부터 사흘이 지난 2012년 10월 10일, 대통령은 외무장관 니콜라스 마두로 모로스(Nicolas Maduro Moros)를 부통령에 임명하였다. 마두로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버스운전사로 전투적 노동운동을 이끌어었던 노조지도자였으며, 챠베스 대통령이 1998년에 당을 창당할 때 그를 보좌하여 창당사업을 추진하였던 최측근이다.
 
올해 50세인 그가 부통령에 임명된 것은, 볼리바리안 혁명의 미래를 이끌어갈 후계자로 사실상 지명된 것이다. 암투병 경력이 있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장담할 수 없는 챠베스 대통령이 자기 뒤를 이어 볼리바리안 혁명을 이끌어갈 후계자를 지명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만일 챠베스 대통령이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더라면, 볼리바리안 혁명은 초기에 중단되고 말았을 것이지만, 그가 20년 동안 집권하면서 혁명을 영도해오고 있고, 이제는 후계문제까지 해결하였으니 볼리바리안 혁명의 미래는 창창하다. 볼리바리안 혁명은 최후 승리를 향하여 계속 전진하고 있다. (2012년 10월 1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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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0

전면전 공격대형으로 집결한 침략무력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230)
통일뉴스 2012년 10월 08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괌에서 동중국해로 북상한 항모강습단 두 개 집단
 
주한미국군사령관 제임스 서먼(James D. Thurman)은 2012년 9월 22일 연평도 최전방부대를 시찰하였고, 13일 뒤인 10월 5일에도 연평도 최전방부대를 다시 시찰하였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연평도 최전방부대를 잇달아 시찰한 것은 아주 심상치 않은 일이다. 그의 연평도 최전방부대 연속시찰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연평도 최전방부대 연속시찰은 지난 9월부터 방대한 무력을 공격대형으로 집결시키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공격명령을 기다리는 미국의 전쟁준비에 직결되는 행동이다. 미국이 방대한 침략무력을 공격대형으로 집결시켰다는 사실은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 2012년 9월 30일 미국 주간지 <타임>지에 실린 기사가 스쳐지나가 듯이 대충 보도하였을 뿐이다.

<타임>지 기사에는 ‘분쟁 중인 섬들에 접근한 거대한 미국 함대, 그런데 뭘 위해? (Big U.S. Fleet Nears Disputed Islands, But What For?)’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 해군 항모강습단이 동중국해에서 작전을 시작하였는데, 작전구역은 중국이 댜오위다오라고 부르고 일본은 센카쿠라고 부르는 섬들이 있는 분쟁수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사에 나오는 항모강습단은 놀랍게도 한 개가 아니라 두 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본 요코스카(橫須賀) 해군기지가 모항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USS George Washington)를 주축으로 편성된 제5항모강습단과 미국 워싱턴주 킷샙 해군기지(Naval Base Kitsap)가 모항인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USS John C. Stennis)를 주축으로 편성된 제3항모강습단이다.

제5항모강습단은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주축으로 미사일순양함들인 카우펜스호(USS Cowpens)와 존 맥케인호(USS John S. McCain), 미사일구축함들인 핏저럴드호(USS Fitzgerald), 맥캠블호(USS McCambell), 채피호(USS Chafee), 머스틴호(USS Mustin), 충훈호(USS Chung-Hoon), 그리고 함재기 80여 대를 운용하는 제5항모비행단 등으로 편성되었다.

제3항모강습단은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를 주축으로 미사일순양함들인 모빌 베이호(USS Mobile Bay)와 앤티텀호(USS Antietam), 미사일구축함들인 웨인 마이어호(USS Wayne E. Meyer), 듀이호(USS Dewey), 킷호(USS Kidd), 마일리어스호(USS Milius), 그리고 함재기 80여 대를 운용하는 제9항모비행단 등으로 편성되었다.

<타임>지 기사에 나오는 항모강습단 두 개 집단만 가지고서도, 미국은 전면전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타임> 기사는 “유별난 화력집중(unusual concentration of firepower)”이라고 서술하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항모강습단은 대외침략전쟁에 앞장서는 침략선봉무력이다.

아래에 열거하는 정보를 살펴보면, 미국이 동중국해에 집결시킨 ‘유별난 화력집중’이야말로 침략전쟁을 예고하는 징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이 언론보도를 차단하고 은밀히 공격대형으로 집결하여 침략전쟁을 도발하려는 것은 실로 경악과 충격을 자아내는 비상사태가 아닐 수 없다.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고 집결한 미국 침략무력의 최근 동향은 아래와 같다.

첫째, 미국은 2012년 9월 11일부터 19일까지 미국의 서태평양 군사전략거점인 괌(Guam) 주변해역에서 25개 이상의 해상작전단위들을 총동원한, ‘용감한 방패(Valiant Shield) 2012’라는 작전명칭으로 대규모 침략전쟁연습을 감행하였다. 원래 ‘용감한 방패’는 2006년부터 격년제로 괌 주변해역에서 실시해오는 전쟁연습이지만, 이번에는 전례 없이 항모강습단을 두 개 집단이나 동원하였으므로 전면전을 예상한 실전연습이 분명하다.

미국 공군 보도국 2012년 9월 26일 보도자료에 따르면, ‘용감한 방패 2012’는 “현존 작전계획에 따라 미국군의 공중무력, 지상무력, 해군무력, 사이버전력을 통합적으로 운용하는” 데 중점을 둔 훈련이었다. 또한 미국 <해군보> 2012년 9월 20일 보도사진해설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보와 안정을 강화하기 위한 작전을 펼치는, 미국 해군의 11개 항공모함들 가운데 2개 항공모함이 ‘용감한 방패’ 훈련의 마지막 단계에 준비작전을 벌였다”고 하면서, “그 지역에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위기상황에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통합비행작전만이 아니라 해상훈련과 대잠훈련도 실시하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미국 해군 보도국 보도자료를 종합하면, ‘용감한 방패 2012’에서는 제5항모강습단과 제3항모강습단을 동원하여 공중전, 대잠수함전, 해상전을 연습하였고, 수색 및 구조훈련, 인도주의 지원훈련, 그리고 실탄사격 격침훈련도 실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용감한 방패 2012’를 마치고 괌 해군기지에 2012년 9월 21일부터 나흘 동안 정박한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는 9월 25일 그 곳을 떠났다. 제5항모강습단이 괌에 나흘 동안 머무는 동안, 제3항모강습단도 괌 주변해역을 벗어나 어디론가 항해하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전면전을 예상한 실전연습을 마친 항모강습단 두 개 집단은 어디로 떠났을까?

위에 인용한 <타임>지 기사에 따르면, 괌 주변해역에서 북상한 제5항모강습단은 대만 북쪽 해역에 배치되었고, 역시 괌 주변해역에서 북상한 제3항모강습단도 대만 남쪽 해역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미국 군부는 항모강습단 이동경로에 관한 군사기밀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타임>지의 보도내용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제5항모강습단과 제3항모강습단을 한꺼번에 동원하여 동중국해에 공격대형으로 배치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과거경험을 상기하면, 미국은 전면적인 침략전쟁을 도발하려 할 때마다 항모강습단 두 개 집단을 전진배치하는 공격대형을 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만 북쪽과 남쪽에 각각 항모강습단을 배치한 것은 전면전을 예상한 전형적인 공격대형이다.

셋째,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를 주축으로 편성된 제3항모강습단은 원래 제5함대 작전구역인 중동의 아라비아해에 출동하여 이란을 무력침공할 기회를 노리던 해상작전단위인데, 이번에는 아라비아해로 가지 않고 괌 주변해역에서 실전급 전쟁연습을 벌인 뒤에 동중국해로 북상하였다. 미국 해군 보도국이 일본 요코스카발로 발표한 2012년 9월 29일 보도자료에 따르면, 원래 제5함대 작전구역에 배치되는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는 이번에 “제7함대 작전구역 야전사령부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배치일정보다 4개월이나 일찍 제7함대 작전구역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의 연간 작전일정은 해마다 2월부터 8월까지 7개월 동안 아라비아해에 배치되었다가, 8월에 모항인 워싱턴주 킷샙 해군기지로 돌아가 4개월 동안 머물고, 이듬해 1월 말에 다시 아라비아해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4개월 동안 모항에 머물러야 할 정기체류일정을 갑자기 중지하고 자기 작전구역이 아닌 제7함대 작전구역의 동중국해에 나타났다. 이것은 일상적인 출동이 아니라 전쟁이 임박한 비상사태에 대처한 긴급출동이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항모강습단 긴급출동은 전쟁이 임박한 상황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상륙준비단과 잠수함대도 집결하였다
 
이번에 미국이 방대한 침략무력을 동중국해에 집결시킨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정보는, 해군무력 이외에 상륙무력까지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2012년 9월 10일부터 24일까지 반홈 리처드 상륙준비단(Bonhomme Richard Amphibious Ready Group)과 제31해병원정대(32st Marine Expeditionary Unit)가 동중국해에 인접한 필리핀해 서북쪽 해역에서 ‘검증훈련(CERTEX)’이라는 것을 실시하였다. 반홈 리처드 상륙준비단은 제7함대 작전지역에 전진배치된 유일한 상륙준비단인데, 일본 사세보(佐世保)가 모항인 상륙강습함 반홈 리처드호(USS Bonhomme Richard), 상륙정박함 토투가호(USS Tortuga), 상륙수송함 덴버호(USS Denver) 등으로 편성되었다. 40,500t급 초대형 상륙강습함 반홈 리처드호에는 강습헬기 42대, 해상공격기 5대, 대잠헬기 6대, 그리고 상륙정, 상륙돌격장갑차, 자주포 같은 전투장비로 중무장한 해병대 병력 1,800여 명이 실려 있다.

반홈 리처드 상륙준비단 검증훈련에는 일본 육상자위대가 참가하였고, 호주군 공군 및 육군까지 참관하였다. 또한 그 검증훈련에서는 민간인 소개작전을 연습하였는데, 이 작전연습은 미국이 무력침공을 도발할 때 침공대상국에 체류하는 미국인을 다른 나라로 도피시키는 작전이다.

심각한 상황전개는 거기서 멈춘 게 아니었다. 서태평양에로 출동명령을 받은 펠럴루 상륙준비단(Peleliu Amphibious Ready Group)과 제15해병원정대(15th Marine Expeditionary Unit)가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 있는 샌디에고 해군기지를 출발하여 2012년 9월 17일 제7함대 작전구역으로 들어가 반홈 리처드 상륙준비단과 합류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미국 해군 잠수함대 움직임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 해군 잠수함대는 대잠수함전, 대수상함전, 지상타격전, 특수침투전, 비정규전, 기뢰전, 그리고 첩보-감시-정찰 등 가장 중요한 군사임무를 수행하는 전략적인 공격무력이다. 항모강습단이 배치되는 전방보다 침공대상에 한층 더 가깝게 전진배치되는 최전방 공격수단이 잠수함대이므로, 이번에 잠수함대가 배치된 작전구역이 어디인지를 밝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전혀 노출되지 않고 은밀하게 기동하는 잠수함의 동선(動線)을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다행하게도 미국 <해군보>와 해군 보도국 보도자료에 실린 몇 개의 보도사진과 보도자료들을 읽어보면, 미국 해군 잠수함의 서태평양 이동경로를 엿볼 수 있다.

미국 하와이주 진주항(Pearl Harbor)에 모항을 둔 버지니아급 스텔스 잠수함 하와이호(USS Hawaii)가 2012년 9월 7일 필리핀 수빅만(Subic Bay) 해군기지에 입항하였다. 또한 미국 하와이주 진주항에 모항을 둔 로스앤젤레스급 신속공격 잠수함 라 홀라호(USS La Jolla)가 2012년 9월 10일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에 입항하였다.

미국이 항모강습단 두 개 집단을 괌 주변해역에 동원하여 ‘용감한 방패 2012’라는 침략전쟁연습을 벌이고 있었던 2012년 9월 11일부터 19일까지 스텔스 잠수함 하와이호와 신속공격 잠수함 라 홀라호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두 핵추진 잠수함이 한반도 남쪽 해역을 향해 차츰 북상하고 있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괌 해군기지에 모항을 둔 잠수함 보급함 프랭크 케이블호(USS Frank Cable)가 북상하여 2012년 9월 7일 필리핀 수빅만(Subic Bay)에 입항한 것이다. 잠수함 보급함이 괌을 떠나 필리핀으로 북상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스텔스 잠수함 하와이호와 신속공격 잠수함 라 홀라호 이외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다른 잠수함들도 이번 작전에 동원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정황을 생각하면, 이번에 미국이 잠수함 여러 척으로 편성된 잠수함대를 공격대형으로 동중국해에 배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잠수함대를 공격대형으로 전진배치하고, 잠수함 보급함이 잠수함대를 따라 북상한 것이야말로 선제기습공격을 도발하려는 징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위에 열거한 정보를 종합하면, 2012년 9월 미국은 항모강습단 두 개 집단, 상륙준비단 두 개 집단, 그리고 강력한 잠수함대를 동중국해에 전면전 공격대형으로 집결시킨 것이다.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이 그처럼 방대한 해군무력과 상륙무력을 전면전 공격대형으로 집결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황은 너무 심각하다.

공격대형으로 집결한 침략무력은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방대한 해군무력과 상륙무력을 전면전 공격대형으로 동중국해에 집결시킨 미국은 어느 나라를 침공하려는 것일까? 위에서 인용한 <타임>지 기사에서는 미국의 ‘유별난 화력집중’이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 영유권 갈등이 두 나라의 무력충돌로 비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사전무력배치로 보인다고 추정하였다. 미국의 유력한 주간지 <타임>이 그런 추정기사를 내보내자 이에 자극을 받은 중국 언론매체들은 2012년 10월 3일 미국이 항모강습단을 댜오위다오에 접근시켜 긴장을 더 격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하였고, 중국의 일부 언론매체는 중국의 핵잠수함들이 댜오위다오에 접근한 미국 항모강습단을 핵미사일로 조준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잠수함대, 항모강습단, 상륙준비단 순으로 북상배치한 전면전 공격대형은 한반도에서 대북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것이지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 무력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만일 미국이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 무력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해군무력을 사전배치하였다면, 항모강습단 한 개 집단을 동중국해에 배치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잠수함대와 상륙준비단 두 개 집단까지 동원할 필요는 전혀 없다.

물론 중국과 일본이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지만, 그 두 나라가 지금 해군 함대를 동원한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중국 감시선과 일본 순시선이 대치하고, 접근한 어선단을 향해 물대포나 쏘는 정도일 뿐이며, 무력충돌이 임박한 상황은 아니다.

더욱이 중국과 미국은 동중국해에서 자국의 해군무력이 대치하는 긴박한 상황을 예상하지도 않고 있다. 예컨대, 2012년 9월 17일 ‘아프리카의 뿔’ 주변해역에서 미국 해군 미사일구축함 윈스턴 처칠호(USS Winston Churchill)와 다른 해군함선들이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호위함 이양호(frigate Yi Yang)와 함께 해적퇴치 합동훈련을 실시한 것만 봐도, 그 두 나라가 동중국해에서 당장 무력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미국 태평양함대사령부 대변인 대린 제임스(Darryn James)는 <타임>지 취재기자에게 “이번 작전(서태평양에 방대한 해군무력을 집결시킨 작전을 뜻함 - 옮긴이)은 어떤 특별한 사건과는 무관하다. 미국의 지역안보활동의 일환으로, 미국 해군의 11개 항모강습단 중에서 2개의 항모강습단을 서태평양에 배치하여 안정과 평화를 지키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깊은 군사정보를 아는 전문가들에게 그런 말은 어설픈 속임수다. 잠수함대, 항모강습단, 상륙준비단을 전면전 공격대형으로 전진배치해놓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공격명령을 기다리면서, 무슨 안정이니 평화니 하는 따위의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는 것은 세상을 기만하는 짓이다.

명백하게도, 미국이 동중국해에 배치한 전면전 공격대형은 미국이 대북전쟁을 임의의 시각에 일으킬 수 있음을 현실로 입증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핵추진 잠수함이 북측 근해에 은밀히 잠입하여 수중발사 미사일로 불시에 북의 군사전략거점들을 정밀타격하는 선제기습공격을 개시하고, 곧바로 항모강습단 두 개 집단이 전격적으로 투입되어 북의 전쟁수행력을 제거한 다음, 상륙준비단 두 개 집단이 북에 상륙하여 평양을 점령하는 대북전쟁 시나리오를 실제행동에 옮기기 직전 상태에 이른 것이다.

물론 미국의 대북전쟁 도발책동은 동중국해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미국은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사용한 특수지뢰방호차량 78대를 2012년 9월 26일 주한미국군 기지들에 이동배치하였으며, 2004년에 남측에서 철수했던 화학대대를 주한미국군 전방부대에 재배치하고, 정밀유도폭탄과 지대지 탄도미사일과 방공미사일까지 추가로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거기에 더하여, 미국은 2012년 9월 27일 부산 동남쪽 해역에서 한국군, 일본자위대, 호주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이른바 ‘확산방지구상(PSI)’이라는 작전명칭으로 대북해상봉쇄연습까지 벌여놓았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한 주한미국군사령관 제임스 서먼의 연평도 최전방부대 연속시찰은 바로 그런 심각한 상황에서 취한 행동이었다.

여러 군사정보들을 종합해보면, 미국은 선제기습공격으로 북을 침공하려는 전면전 공격대형을 갖추고 공격시각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미국이 이번에 항모강습단을 제주도 남쪽 해상까지 바짝 북상시켜 전진배치하는 식으로 전쟁징후를 더 노골적으로 드러냈더라면, 미국과의 최후 결전을 벼르는 북은 자기의 전쟁징후를 노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시에 조국통일대전을 개시하였을지 모른다. 그런 사실을 미리 간파한 미국은 잠수함대만 한반도 쪽으로 은밀히 북상시키고, 항모강습단 두 개 집단을 괌에 집결시켜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한 다음, 상륙강습단 두 개 집단을 후방에 대기시킨 상태에서, 항모강습단 두 개 집단을 동중국해로 좀 더 북상시켜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최후 결전을 앞두고 군화를 벗지 않는 군대가 있다
 
미국이 그처럼 방대한 침략무력을 동중국해에 공격대형으로 집결시킨 전례 없는 도발행동은, 방대한 해군무력과 상륙무력을 집결시켜 북을 위협하면 북이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서리라는 판단이 전제된 것이며, 만일 정세가 최악으로 돌변하여 북미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전진배치한 방대한 침략무력을 총동원하여 대북전쟁에서 이길 수 있으리라는 타산이 전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그런 판단과 타산은 북의 전쟁수행력을 너무 오인한 것이다. 이미 조국통일대전 공격대형으로 배치된 인민군은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공격명령만 내리면 언제든지 전쟁징후를 노출하지 않은 채 선제기습공격으로 조국통일대전을 개시할 수 있다. 만일 북측 인근해역에 잠입한 미국 해군 잠수함대가 수중발사 미사일로 북의 군사전략거점을 향해 선제기습공격을 개시하는 순간, 당연히 인민군 잠수함대도 수중발사 미사일로 미국의 군사전략거점들을 향해 기습공격을 개시할 것이며, 북의 조국통일대전은 동중국해에서 한반도로 북상하는 항모강습단과 상륙준비단이 서해와 동해에 들어서기 전에 너무도 신속하게 끝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의 조국통일대전은 미국 해군 잠수함대가 북의 영토를 먼저 공격한 것에 대한 군사적 대응이므로 당연히 미국 본토에 치명적인 보복공격을 가하여 미국을 ‘전기 없는 19세기’로 되돌려놓을 것이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이미 최종 결재한 북의 조국통일대전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몇몇 글들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으므로 이 글에서 재론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유아시아방송> 2012년 10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요즈음 인민군 전방부대는 물론이고 후방부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병들이 전투복을 입고 군화를 신은 채 비상취침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지난 시기 북에서 준전시동원령이 선포되었을 때나 연례적인 군사훈련 중에는 전방부대가 전투복을 입고 군화를 신은 채 비상취침을 하였으나 후방부대까지 비상취침을 계속한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지금 인민군이 그처럼 전례 없는 비상태세를 갖추고 최후 결전에 대비하는 것은,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인민군에게 조국통일대전 동원태세에 돌입하라는 명령을 내렸음을 뜻한다. 위의 보도기사에 따르면, 인민군 전체 장병들이 비상취침을 시작한 때는 9월 20일을 전후라고 한다. 9월 20일 전후라면, 항모강습단 두 개 집단이 괌 주변해역에서 ‘용감한 방패 2012’라는 대북전쟁연습을 끝내고 동중국해로 막 북상하기 시작한 때이고, 상륙준비단 두 개 집단이 제7함대 작전구역에서 대기상태에 있었던 때다.

비록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인민군은 최후 결전 동원태세에 돌입하였고, 미국군은 대북전쟁 공격대형으로 결집함으로써, 북과 미국이 사실상 전면전에 근접한 일촉즉발의 상황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그처럼 방대한 침략무력을 공격대형으로 집결시켜놓고서도 섣불리 공격명령을 내리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것은 북의 치명적인 무력보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미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북이 미국으로부터 수중발사 미사일 몇 발을 맞는 동안 미국은 북으로부터 파멸적인 집중공격을 받고 재기불능의 대재앙을 입게 될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미국은 정세오판에 빠져 북의 전쟁의지를 시험해보려는 위험천만하고 무모한 대북자극행동을 중지하고 즉각 퇴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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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8

정권전복음모 가득한 미 특수군 야전교범

[한호석의 개벽예감] (32)
자주민보 2012년 10월 06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세계 90여 개 나라에 침투, 잠입한 특수군 12,000명

2012년 5월 22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린 특수군 산업 연차대회에서 연설한 미국 특수군사령관 윌리엄 맥레이븐(William McRaven)은 미국 특수군 활동의 약 80%는 공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것은 그들의 활동이 사실상 비밀군사활동이라는 뜻이다. 현재 미국 특수전사령부 예하 군부대들에 배속된 66,000명 병력 가운데 작전에 투입되는 실전병력은 12,000명인데, 미국은 특수군 12,000명을 세계 90여 개 나라에 침투, 잠입시켜 비밀군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예컨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11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그 나라에 주둔하는 미국 특수군의 군사활동에 관해 국제사회에 알려진 것은 없다. 미국 켄터키주 포트 캠블(Fort Campbell)에 사령부가 있는 제5공수특전단 제2대대 소속 특수군 병사 한 명이 아프가니스탄 전선에서 반미저항세력의 폭탄공격을 받고 2012년 10월 2일에 전사하였다는 소식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그런 전사소식이 이외에 특수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떤 군사활동을 벌이는지 알기 힘들다. 전쟁상황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미국 특수군이 주둔하거나 침투해 있는 세계 90여 개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군사활동은 비밀에 쌓여 있는 것이다.

▲ 미국 육군 ‘야전교범(Field Manual) 31-20-3’표지 [자료사진= 인터넷 검색, www.scribd.com]
 
미국이 특수군 군사활동을 비밀에 부치는 까닭은, 그들의 군사활동이 공개되는 경우 미국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미국 특수군은 주권국가에 불법적으로 침투, 잠입하여 정찰활동을 벌이거나 표적인물을 납치, 고문, 암살하거나 핵심시설을 파괴하거나 반미정권을 전복시키는 등 국제사회의 법질서를 파괴하는 만행을 세계 각국에서 마음대로 저지르고 있다.

미국 특수군은 그처럼 국제사회의 법질서를 파괴하는 만행을 저질러도 자기들의 만행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므로 문책을 받을 염려는 조금도 하지 않는다. 미국은 그런 만행집단을 특수군이라는 이름으로 운용하고 있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국주의깡패국가로 전락한 것이다.

비밀에 쌓여 있는 미국 특수군의 정체를 파악하려면, ‘위킬릭스(Wikileaks)’가 폭로한 미국 육군의 비공개 문서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1994년 9월 20일 미국 육군본부가 출판한 미국 육군 ‘야전교범(Field Manual) 31-20-3’(위 사진)이라는 문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219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야전교범은 당시 미국 육군참모총장 골든 설리번(Gordon R. Sullivan)의 지시로 미국 육군장관 보좌관 밀튼 해밀튼(Milton H. Hamilton)이 주도하여 작성한 것이다.

▲ 미국 육군 ‘야전교범(Field Manual) 31-20-3’을 작성한 육군장관 보좌관 밀튼 해밀튼과 제작 지시를 내린 육군참모총장 골든 설리번의 서명 [자료사진= 인터넷 검색, www.scribd.com]


제목은 ‘특수군을 위한 외국내부방위 전술, 기술 및 절차(Foreign Internal Defense Tactics, Techniques, and Procedures for Special Forces)’인데, 이 ‘야전교범’에는 미국 특수군의 지휘체계와 군사전술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안보지원활동’과 비재래식 전쟁

‘야전교범’에서 이 글의 주제에 부합하는 중요한 내용만 간추려 논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미국 특수군은 다른 나라에 은밀히 침투하여 ‘미국의 국익’을 위한 비밀군사활동을 벌이는 작전단위인데, 미국 정부는 그들의 비밀군사활동을 다른 나라를 위한 ‘안보지원활동(security assistance activities)’이라고 부르며, ‘외국내부방위(Foreign Internal Defense)’라는 개념으로 공식화하였다.

‘안보지원활동’에서 특수군이 맡은 임무는 반미국가에 침투, 잠입하여 반란군을 조직하고, 훈련하고, 지도하며 그들의 반란전술능력을 강화시켜 정권전복 급변사태를 일으키는 것이다.

잠입, 정찰, 납치, 고문, 암살, 시설파괴, 정권전복 같은 국가주권과 인권을 폭력으로 짓밟는 만행을 무슨 ‘안보지원활동’이라느니 ‘외국내부방위’라느니 하는 거짓말로 위장하는 궤변을 늘어놓으니, 어안이 벙벙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둘째, 미국 특수군의 비밀군사활동을 총괄하는 범정부조직은 이른바 ‘무기이전관리단(Arms Transfer Management Group)’인데, 백악관 국가안보협의회, 국방부, 합참의장실, 중앙정보국, 국무부 산하 군축 및 국제안보국과 국제개발처, 재무부 등으로 ‘무기이전관리단’을 구성한다. ‘무기이전관리단’의 역할과 임무는 미국 특수군이 벌이는 모든 군사활동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것이다. 미국 군부가 단독으로 특수군의 비밀군사활동을 지휘통제하는 게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비롯한 범정부기구가 합동으로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을 지휘통제한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미국이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을 매우 중시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또한 미국이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에 힘을 집중시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무기이전관리단’ 의장직은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부장관(Under Secretary for Arms Control and International Security Affairs)이 맡는다. ‘무기이전관리단’ 의장은 ‘외국내부방위’에 관련된 미국 정부 관계부서들의 모든 정책, 계획, 실무작업을 조절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미국 특수군이 세계 90여 개 나라에서 벌이는 비밀군사활동에 관한 정치적 판단과 결정은 ‘무기이전관리단’이 내리는 것이다. 2012년 10월 현재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부장관은 로즈 갓몰러(Rose Gottemoeller)이므로, 그녀가 ‘무기이전관리단’ 의장을 맡아보고 있다. 국무부와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은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졌지만, ‘무기이전관리단’과 로즈 갓몰러는 언론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셋째,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에 관한 정치적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범정부기구가 ‘무기이전관리단’이면, 그것을 실무적으로 집행하는 정부기구는 ‘방위안보지원국(Defense Security Assistance Agency)’이다. ‘방위안보지원국’의 책임관리는 미국 국방부 정책 담당 부장관(Under Secretary of Defense for Policy)이다. 2012년 10월 현재 미국 국방부 정책 담당 부장관은 제임스 밀러(James N. Miller)이므로, 그가 ‘방위안보지원국’을 총괄하고 있는 것이다. ‘방위안보지원국’ 국장 제임스 밀러는 국방장관 리언 패네타(Leon E. Panetta)를 보좌하여 특수군의 비밀군사활동에 관한 국방부 정책과 계획을 총괄한다. 방위안보지원국의 역할과 임무는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에 관련된 계획과 사업을 추진하고, 그에 관한 국제지원을 이끌어내는 대외협상을 담당하고, 재정을 관리하고,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에 관련된 미국 군수산업체들과 미국 국방부 사이의 상호연락업무를 맡는다.

넷째, 미국 합참본부는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에 관한 합동전략기획, 합동전략능력계획, 합동계획정보평가를 담당하고, 미국 야전사령관은 특수군이 전개하는 비밀군사활동, 인도주의활동, 민사활동을 현지에서 지휘한다. 특수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안보지원활동’은 첩보전, 심리전, 민사활동, 인도적 지원, 인도적 지원과 민간지원, 안보지원, 군사작전, 안정화작전, 타격작전, 원격작전, 국경작전, 도시지역작전, 미국군 지원활동 등이다.

특수군은 미국 육군이 운용하는 야전작전체계(Battlefield Operating System)에 따라 활동한다. 야전작전체계란 작전단위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작전단위를 출동시키고, 작전단위에게 화력을 지원하고, 작전단위를 위해 공중방어를 하며, 작전단위의 기동 및 생존을 보장해주고, 작전단위의 병참을 지원하고, 작전단위를 통제하는 것이다.

다섯째, ‘안보지원활동’ 제1단계는 특수군이 ‘안보지원기구’로부터 직접 작전통제를 받는 특수군작전분견대(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를 파견하여 비밀군사활동을 벌이는 단계다. ‘안보지원활동’ 제2단계는 특수군 대대급 작전단위가 대상국가의 내부 또는 외부에서 작전기지를 운영하면서 비밀군사활동을 벌이는 단계다. ‘안보지원활동’ 제3단계는 특수전사령부가 특수작전기지와 한 두 개의 전진기지를 대상국가에 설치하고 비밀군사활동을 벌이는 단계다.

여섯째,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단계에 이르면, 합동군사고문단, 합동군사집단, 군사훈련부, 방위야전실 또는 방위협력실로 구성되는 ‘안보지원기구(Security Assistance Organization)’를 현지에 설치하고, 현지에 주재하는 모든 미국 정부부서 책임자들로 구성된 ‘외교업무부(Diplomatic Mission)’를 현지에 설치한다.

일곱째, 국제사회에 미국 홍보처(U.S. Information Service)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미국 정보처(U.S. Information Agency)는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에 관한 미국의 정책적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선전하고, 국무부의 지도를 받아 공개적인 심리전을 수행한다. 또한 미국 국무부 산하 미국 국제개발처는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을 비군사부문에서 지원한다.
▲ 2006년 9월 20일 출판된 미군 ‘야전교범 3-05’표지 [자료사진= 인터넷 검색, www.scribd.com]
위와 같은 내용이 1994년 9월 20일 미국 육군본부가 출판한 ‘야전교범(Field Manual) 31-20-3’에 들어 있는데, 미국 육군본부는 위의 ‘야전교범’을 보완한 ‘야전교범 3-05’(사진)를 2006년 9월 20일에 출판하였다. ‘증보판 야전교범’의 제목은 ‘육군 특수군 비재래식 전쟁(Army Special Operations Forces Unconventional Warfare)’이다. ‘증보판 야전교범’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특수군의 핵심적 임무를 이전보다 더욱 세분화, 전문화하여 비재래식 전쟁, ‘외국내부방위’, 직접행동, 특수정찰, 반테러활동, 심리작전, 민사작전, 대량파괴무기 반확산, 정보작전지원 등 아홉 가지로 규정한 것이다.

특히 비재래식 전쟁이라는 임무를 종전의 ‘외국내부방위’라는 임무보다 앞세우면서 가장 중요한 임무로 규정해놓은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미국의 전쟁전략이 재래식 전쟁에서 비재래식 전쟁으로 전환되었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말하는 비재래식 전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미국 육군본부는 새로운 전쟁전략으로 등장한 비재래식 전쟁에 관해 해설한 ‘특수군 비재래식 전쟁작전(Special Forces Unconventional Warfare Operations)’이라는 제목의 ‘야전교범 3-05.201’을 2003년 4월 30일에 출판하였고, ‘육군 특수군 비재래식 전쟁’이라는 제목의 ‘야전교범 3-05.130’을 2008년 9월 30일에 출판하였다.

미국 군부의 설명에 따르면, 재래식 전쟁은 정규군의 무력충돌이고, 비정규전은 반란군의 무력충돌이고, 비재래식 전쟁은 무장반란 또는 재래식 군사작전에 의한 무력충돌이며, ‘외국내부방위’는 파괴활동, 무법상태, 반란으로 붕괴위기에 빠진 다른 나라의 정권을 보호해주는 군사활동과 민사활동을 뜻한다. 이러한 개념분류에 따르면, 미국이 ‘외국내부방위’라는 기존 전략개념과 비재래식 전쟁이라는 새로운 전략개념은 서로 구분된다. 다시 말해서, ‘외국내부방위’는 붕괴위기에 빠진 친미정권을 보호해주는 군사활동 및 민사활동을 뜻하는 것이며, 비재래식 전쟁은 내란을 유발하여 반미정권을 전복시키는 군사활동을 뜻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친미정권을 반미저항세력의 무장활동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은 ‘외국내부방위’에 속하고, 시리아의 반미정권을 전복시키는 반란세력을 지원해주는 것은 비재래식 전쟁에 속한다.

미국 군부는 특수군이 수행하는 비재래식 전쟁을 일곱 단계로 구분하였는데, 준비(preparation), 초기접촉(initial contact), 침투(infiltration), 조직화(organization), 육성(buildup), 고용(employment), 전이(transition)로 이어지며 단계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2005년 9월 19일에서 2005년 10월 14일까지

미국군 소식지 <성조> 2005년 10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2005년 10월 14일 주한특수전사령관 리처드 밀스(Richard W. Mills)는 한국특수군분견대(Special Forces Detachment Korea)의 명칭을 제39특수군분견대로 바꾸는 부대명칭변경식을 진행하였다. 그 보도기사에 담겨 있는 정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제39특수군분견대는 미국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Fort Lewis)에 있는 제1공수특전여단에 배속된 부대이며, 주한특수전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파견부대다.

둘째, 1965년 8월 27일 서베를린에서 특수군분견대로 창설되었고, 1984년 10월 1일 해체되었다가, 1988년 10월 1일 남측에서 재창설된 제39특수군분견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국 특수군부대다.

셋째, 2005년 10월 현재 제39특수군분견대 병력은 16명인데, 그 16명이 6개의 한국군 특수전여단, 1개의 특수임무단(Special Mission Group), 1개의 특수전훈련단(Special Warfare Training Group), 반테러활동을 담당하는 제707특수임무대대(Special Mission Battalion)를 지도한다.

넷째, 제39특수군분견대는 평시에 한국군 특수전여단 및 특수작전단위들에게 특수전 수행에 필요한 전술, 기술, 절차를 가르치는데, 전시에는 ‘연합지원단(coalition support team)’의 핵심요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위의 보도기사에 나온 정보에 따르면, 미국은 1988년 10월에 재창설하였던 한국특수군분견대의 명칭을 17년이 지난 2005년 10월에 변경하였다. 부대명칭을 변경한 것은 부대의 역할과 임무를 종전보다 더 강화하였다는 뜻이다. 부대명칭변경에 담긴 그런 뜻을 생각하면서 2005년 10월이라는 시점을 눈여겨보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2005년 당시 미국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을 범정부적 차원에서 지도하였던 ‘무기이전관리단’ 의장은 당시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부장관 존 볼튼(John R. Bolton)이다. 부시 정부 안에서도 가장 극우적 성향을 드러낸 관리로 악명을 떨친 그는 자기 재임기간에 한국특수군분견대의 역할과 임무를 강화하는 작업을 총괄하였다. 또한 2005년 당시 미국 국방부 정책 담당 부장관은 더글러스 페이스(Douglas Feith)였다. 그는 당시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를 보좌하여 ‘방위안보지원국’을 지휘하였다. 이런 정황을 보면, 럼스펠드, 페이스, 볼튼 3인방이 한국특수군분견대의 역할과 임무를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부시 정부의 극우관리 3인방이 주도한 한국특수군분견대의 역할과 임무 강화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아래에서 다시 논하겠지만, 2005년을 기점으로 부시 정부 안에서는 북의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비재래식 전쟁 준비가 본격화되었다. 한국특수군분견대의 부대명칭변경은 북의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비재래식 전쟁 준비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셋째, 2005년 9월 19일 제4차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각자의 정책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하였다”는 항목이 들어 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특수군분견대의 역할과 임무를 북의 정권을 전복시키는 비재래식 전쟁준비로 집중시킴으로써, 9.19 공동성명 문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주권존중과 평화공존과 관계정상화의 공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렸다. 미국의 그러한 공약파기는 앞에서는 공약을 맺으면서 뒤에서는 정권전복음모를 꾸미는 제국주의깡패국가의 전형적인 소행이다. 미국이 6자회담을 벌여놓고, 9.19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게 아니라, 북의 정권을 폭력으로 전복시킬 비재래식 전쟁을 도발할 준비시간을 벌기 위한 기만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넷째, 부시 정부는 북의 정권을 전복시킬 비재래식 전쟁을 준비하는 역할과 임무를 왜 하필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직후에 한국특수군분견대에게 주었을까? 그 까닭은, 2005년 2월 10일 북이 핵무기 제조와 보유를 공식선언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핵보유국으로 등장한 북을 상대로 재래식 전쟁을 벌이면, 미국도 북의 핵공격으로 초토화될 것이므로, 미국은 대북군사전략을 재래식 전쟁에서 비재래식 전쟁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수군분견대 부대명칭변경과 북의 ‘민주화 및 인권문제’ 제기

미국이 북의 정권을 폭력으로 전복시키려는 비재래식 전쟁을 실제로 준비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제39특수군분견대는 지난 7년 동안 무슨 짓을 저질러왔을까? 미국 특수군 비밀군사활동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이 제39특수군분견대로 부대명칭을 변경한 2005년 10월 이후에 일어난 아래와 같은 사건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북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대북테러공작이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 2008년 12월 18일 북의 언론에 보도된 국가안전보위부 대변인 담화에 따르면, 북과 중국의 “국경 부근에 잠입하여 불순분자들을 규합”하던 황 아무개라는 자는 탈북자 리 아무개를 포섭하여 “수뇌부의 현지시찰 로정, 시기와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훈련을 시킨 뒤에 “수뇌부의 이동을 추적하기 위한 음성 및 음향수감추적장치와 극독약”을 주어 북에 잠입시켰다가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되었다. 국가안전보위부 대변인 담화에서는 그 두 테러범이 ‘남조선 정보기관’ 소속이라고 언급하였지만, 위에서 논한 정황을 보면 제39특수군분견대가 직접 파견하였거나 남측 정보기관을 통해 파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미국 국무부는 2006년부터 이른바 ‘북한 민주화’를 위한 예산을 배정하기 시작하였고, 국제개발처를 통해 집행하였다. 미국 특수군 ‘야전교범’에 따르면, 국무부 산하 국제개발처는 특수군의 대북비밀군사활동을 지원해주는 주무부처들 가운데 하나다. 제39특수군분견대의 작전이 북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군사활동이라면, 국제개발처의 ‘북한 민주화’ 지원자금 배정은 북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민사활동이다.

셋째,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2006년 4월 탈북자를 백악관에 불러들여 면담하는 촌극을 연출하였고, 미국 정부는 2006년 5월부터 탈북자의 미국 망명을 허용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2006년부터 유인탈북공작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남측에 들어간 탈북자는 2006년도에 이르러 전년에 비해 46% 포인트나 늘어난 2,018명으로 급증하였다. 미국이 제39특수군분견대의 역할과 임무를 강화한 것과 유인탈북공작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6자회담이 열린 베이징에서는 주권존중, 평화공존, 관계정상화를 약속해놓고, 워싱턴 디씨에서는 북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그야말로 정신분열증적 범행을 저질러온 미국에게 북이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해야 옳은 것인가? 정권전복음모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아무런 실효도 거두지 못할, 그리하여 미국에게 북의 정권을 전복시킬 비재래식 전쟁을 도발할 준비시간을 벌어줄 6자회담이나 맥없이 계속해야 옳았을까? 만일 자기 정권을 폭력으로 전복시키려는 제국주의깡패국가의 음모와 책동 앞에서 그들의 정권전복 준비를 위한 기만술책으로 벌여놓은 다자회담에 응하면서 시간이나 보내는 그런 어리석은 정권이 세상에 있다면, 그 정권은 미국의 간교한 술책이 유발하는 정권전복 급변사태를 피하지 못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북이 2006년 10월 9일과 2009년 5월 25일 지하핵실험을 각각 실시하였을 뿐 아니라, 2009년 7월 15일에는 6자회담이 영원히 끝났다고 선언한 것은, 앞에서는 9.19 공동성명에 합의하는 시늉을 하면서 뒤에서는 정권전복 급변사태를 은밀히 추진해온 미국에게 보낸 응답이었다. 그러나 정권전복음모에 병적으로 집착한 미국은 북이 보낸 단호한 응답을 받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정권전복 테러공작을 계속 강행하였다. 그 동안 북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9.19 공동성명을 어떻게 해서나 되살리려고 힘썼으나, 미국은 오직 기만과 악행으로 대하여 왔던 것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조국통일대전’을 결심하고, 지난 여름 8.25 경축연설에서 자신의 그 결심을 전 세계에 공개한 까닭은, 제국주의깡패국가의 정권전복 테러공작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미국은 북의 ‘조국통일대전’을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지금 한반도 군사정세는 마치 폭풍전야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잠잠해 보이지만, 위에서 논한 내막을 살펴보면 전쟁징후를 사전에 노출하지 않는 북의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알 수 있다.(2012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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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6

시장경제 쇠락기는 대안경제 모색기


변혁과 진보 (96)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초대형 공황이 오는 것일까?

미국에서는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가, 유럽연합과 일본에서는 재정위기가 격화되면서, 세계적 범위에서 경제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실업률과 빈곤률은 큰 폭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일시적이고 국부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그런 현상은, 세계적 범위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쇠락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경제라 하면 오로지 시장경제밖에 모르기에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미신처럼 믿어온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은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세계적 범위에서 그처럼 쇠락해가는 현실 앞에서 그만 공포에 질려버렸다. 온갖 경제지표들이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지금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전반적으로 쇠락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런 현실을 차마 믿으려 하지 않는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은 일시적 경기침체와 점차적 경기회복이라는 거짓말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퍼뜨리는 기만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엄연하다. 오늘 대량실업 확산과 경제성장률 폭락과 빈부격차 극대화가 세계적 범위에서 광범하게 지속되고 있는 '특이한 현상'은 1929년에 세계를 휩쓸었던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같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파국적인 초대형 공황(super-depression)이 밀려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1929년의 대공황과 오늘의 대공항 사이에서 드러나는 차이점은, 전자가 급진적으로 폭발하였던 것에 비해 후자는 파상적으로 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개양상의 현상적 측면만 다를 뿐, 대공황의 본질적 측면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세계경제사에 대한 기본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자본주의시장경제에서 공황은 불가피한 숙명이다. 학술개념으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공황이란 사회적 생산관계에서 생겨난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모순이 격화, 폭발하여 거대한 굉음과 충격을 일으키는 대량실업 확산과 경제성장률 폭락과 빈부격차 극대화의 비극적인 착종인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것처럼, 대공황기에는 계급적 착취와 빈궁, 사회적 소외와 차별이 폭력적인 양상으로 자행된다. 실업 폭증과 비정규직 극대화, 그리고 끝없는 부채증식과 연쇄도산, 흉악범죄 및 자살의 만연 같은 오늘 우리 사회를 질식시키고 있는 공포스러운 현실은 사회계급적 모순이 곪아터진 파멸적 결과들이다. 착취와 빈궁, 소외와 차별의 고통을 겪는 우리 사회의 민중이 환멸을 느끼며 저주하는 "이 놈의 더러운 세상"은 그렇게 대파국으로 밀려가고 있는 중이다.

세계경제사를 돌이켜보면, 자본주의시장경제는 주기적으로 공황을 겪으면서 파국에 빠져들곤 하였는데, 수구우파정권은 자본가계급과 공모결탁하여 대공황을 예방하는 방도 또는 대공황 고통지수를 완화하는 처방을 찾아내어 파국적 위기를 간신히 넘기곤 하였다. 그래서 자본주의체제는 그처럼 오랜 세월 동안 무너지지 않고 용케도 유지되어온 것이다.

역사적 경험은 수구우파정권의 위기관리라는 것이 폭력양상과 비폭력양상으로 각각 전개되어왔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수구우파정권이 추진한 폭력적 위기관리는 대외침략전쟁을 도발하여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 그리고 자국에서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해외에 '진출'하여 저임금 고용시장을 확대한 것이다. 전자를 대량살상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대량착취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 편, 수구우파정권이 추진한 비폭력적 위기관리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조합을 정치적으로 타협하게 만들어 '복지제도'를 운용한 것이다. 원래 '복지제도'는 공황을 예방하는 위기관리의 산물이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위기관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 그런 위기관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의 심리를 옥죄는 공포의 원인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논할 수 있다.

첫째, 선진자본주의국가의 수구우파정권은 대외침략전쟁을 도발하기는 하나 세계대전을 도발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경우 사회주의국가의 핵억지력이 보복핵공격으로 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국가의 핵억지력이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의 세계대전 도발야욕을 진압하는 억지요인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국가의 핵억지력에 의해 세계대전을 도발하지 못하게 된,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은, 정권전복 급변사태나 반테러전쟁 같은 비재래식 전쟁 시나리오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정권전복 급변사태나 반테러전쟁 같은 비재래식 전쟁을 도발해도 대공황에서 탈출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 나라들의 국가재정이 이미 파산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국가재정이 회복할 수 없는 파산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은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국가재정이 파산상태에 빠진 자본주의나라들이 정권전복 급변사태나 반테러전쟁 같은 비재래식 전쟁에 막대한 전비를 계속 지출하는 것은 그 나라들의 재정파산위기를 더욱 심화시켜줄 뿐이다.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이 공황을 예방하기 위해 써먹은 또 다른 위기관리정책은, 사회민주주의에 감염된 노동조합과 정치적으로 타협하여 이른바 '복지국가'라는 것을 세워놓는 것이었으나, 자본주의국가들에서 국가재정이 파산상태에 빠졌으니 '복지국가'는 이제 해체시각을 남겨두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국가재정의 파산이 사회민주주의의 퇴조와 '복지국가'의 해체를 불러오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일부 노조활동가들과 정치인들이 사민주의 타령에 장단을 맞추며 '복지국가' 환상곡이나 연주하고 있으니 너무도 한심한 일이다.

둘째, 자본주의국가들은 자국내 비정규직을 극대화하고 해외 저임금 노동시장을 확장하여 계급적 착취를 대량화하고 폭력화하였지만, 이제는 그것도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 비정규직 확대로는 생산력을 발전시키기는커녕 현상유지도 할 수 없으며, 저임금 노동시장을 확장할 '해외'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조직적 저항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야말로 착취의 대량화와 폭력화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대안경제 모색에서 제기되는 여섯 가지 문제

세계적 범위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전반적으로 쇠락하는 오늘의 현실은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를 요구한다. 일각에서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내부결함을 수정, 보완할 방도를 상상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내부결함을 수정, 보완할 수 없을 만큼 전반적으로 쇠락하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식쟁이들의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수정과 보완의 방도라는 것은 과학적인 해결방도가 아니라 비과학적인 공상의 분비물이다.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를 모색하는 것이 진보적인 설계전망이며 과학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을 모색하는 것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연구가 뒤따라야 하므로,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안경제 모색에서는 아래와 같은 문제들이 제기된다.

첫째,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를 모색하는 연구활동은 단순한 학술활동이 아니라 진보변혁적인 정치활동의 일환이다. 그러므로 학자들이나 학술단체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여 대안경제를 모색할 수 없으며, 낡은 세상을 새로운 세상으로 바꾸려는 진보정당이 자기의 정치사업으로 추진해야 마땅하다.

둘째,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는,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이 땅에 남겨놓은 고질적 병폐인 이윤중심적 사고를 전면적으로 폐기하고 사람중심적 사고로 모색해야 하는 새로운 경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중심적 사고는, 대안경제의 기본원리에 의거하는 새로운 사고를 뜻한다. 사람중심적 사고에서 '사람'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생산활동의 주체인 생산자대중 곧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추상화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사람중심적 사고란 생산자대중의 요구와 지향, 그들의 이익과 행복을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안경제는 당연히 생산자대중으로부터 인정과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셋째,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를 모색하는 과정은, 쇠락하는 시장경제를 고수하려는 정적들과의 치열한 투쟁을 수반한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적 생산자대중과 함께 그 투쟁의 앞장에 서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넷째, 대안경제는 진보적 정권교체로 실현될 것이다. 진보적 정권교체가 아니라면 대안경제를 실현할 다른 방도는 없다. 오직 진보적 자주정권 수립만이 대안경제를 실현하는 길이다. 대안경제를 모색하는 정치활동과 진보적 자주정권을 수립하는 정치활동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다섯째, 대안경제는 진보적 자주정권이 이 땅 위에 실현할 진보적 민주주의의 새로운 경제다. 진보적 민주주의의 새로운 경제에서는 당연히 주요산업 국유화와 생산활동 민주화가 실현될 것이다. 주요산업 국유화와 생산활동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실현한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체제,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에 실현할 대안경제라고 말할 수 있다.

여섯째, 대안경제는 진보적 자주정권이 북측 정권과 합의하여 실현할 통일국가 안의 지역통합경제로 확대, 발전하게 될 것이다. 통일국가 안의 지역통합경제는 현 시기 단계적으로 추진 중인 남북경제협력을 심화, 발전시키는 선행경험을 요구한다. 그 선행경험의 실천강령은 10.4 선언에 명시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10.4 선언을 전면적으로 이행할 정당이 승리해야 한다고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 힘차게 부르는 기백과 활력으로

누구나 아는 것처럼, 대안경제의 주인은 생산노동의 직접적 담당자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다. 생산자대중이 대안경제를 인정하고 지지하고 요구할 때, 대안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대안경제의 핵심내용인 주요산업 국유화와 생산활동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려면, 예속적 수구정권을 자주적 진보정권으로 교체하여 진보적 개헌을 실시해야 하며 생산자대중을 진보의식화하여 생산활동의 주체로 일어서게 하여야 한다.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고 생산자대중을 자주의식화하는 것은 진보정치의 근본문제이며 사회변혁의 전략적 과업이다. 이것은 어렵고 복잡한 추진과정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려면 진보적 대중정당의 역량을 비상히 강화해야 하며, 생산자대중을 자주의식화하려면 민주적 노동조합의 역량을 비상히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는 문제는 통합진보당에게 달렸고, 생산자대중을 자주의식화하는 문제는 민주노총에게 달렸다고 말할 수 있다.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기 위해서도 그렇고, 생산자대중을 진보의식화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진보적 대중정당과 민주적 노동조합의 상호관계를 끊임없이 밀착시켜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이 땅의 현실은 반대방향으로 역행하는 듯이 보인다. 집단탈당과 종북모략으로 통합진보당이 큰 타격을 입었으며, 노동계급의 조직적 분열에 더하여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노동계급을 정치적으로 분열시켰다. 타격상처와 분열상처가 아물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단축하는 것은 통합진보당에 결집한 진보정치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투쟁에 달렸다.

수구우파정당이 쇠락하는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붙들고 공포에 질려 있을 때, 상처를 안고 다시 일어선 통합진보당은 힘찬 노래를 부르며 자기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이 땅의 민주투사들이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군사독재정권의 광란적 탄압과 모략을 뚫고 나아갔던 그 기백과 활력으로... (2012년 10월 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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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항모강습단 격침하는 ‘불소나기 정대’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 (229)
통일뉴스 2012년 10월 1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11년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관람한 함상합창공연
 
 2012년 2월 5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인민군 해군 제790군부대를 시찰하였다. 해군 제790군부대는 함경남도 흥남과 신포 중간쯤에 있는 락원군 삼호항에 있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해군 제790군부대 혁명사적 교양실에 들어선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1년 6월 15일 그 부대를 시찰하는 중에 “함선에서 진행한 해병들의 대합창공연을 보아주시며 환하게 웃으시는” 사진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고 한다. 북에서는 해병대라고 하지 않고 해상륙전대라 하므로, 인민군 해병은 해병대원이 아니라 해군병사다.

위의 인용구절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해병들의 함상합창공연이다. 외부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민군 병영생활을 묘사한 북측 자료에는 화선음악회, 화선공연, 화선예술무대 같은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은 인민군 야전부대들에서 일반 병사들이 진행하는 소규모 음악공연을 뜻한다.

그런데 2001년 6월 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관람한 해군 제790군부대의 함상음악공연은 소규모 화선공연이 아니라 대규모 합창공연이었다. 북에서 유명한 인민군 공훈국가합창단은 120명 합창단원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들의 합창공연을 대합창공연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북에서는 합창단원이 300명 정도 출연해야 대합창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해병 300여 명이 출연하는 대합창공연을 갑판에서 진행하였다면, 그 군함의 승무병사가 300여 명이라는 말인데, 그 군함은 얼마나 큰 군함일까? 위에서 인용한 짤막한 문장만 읽어봐서는 그 군함이 얼마나 큰지 구체적으로 알 길 없으나, 구축함이라는 점을 직감할 수 있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은 배수량 1,600t의 호위함(frigate)이 북이 보유한 가장 큰 군함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 판단은 미국 군사정보당국의 정보판단에 의존한 것인데, 2007년 미국 해군연구소(U.S. Naval Institute)가 펴낸 책 ‘해군연구소 세계 전투함대 편람(The Naval Institute Guide to Combat Fleets of the World)’에 그에 관련된 정보가 들어있다. 그 정보는 북의 해군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졌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해군연구소가 작성한 것이므로, 누구도 그에 대해 논박할 수 없는 ‘정설’로 굳어졌다. 미국 해군연구소가 작성한 북의 군함에 관한 정보는 아래와 같다.

첫째, 북에는 배수량 1,600t의 소호급 호위함(Soho-class frigate)이 한 척밖에 없다. 소호(Soho)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지역명칭인데, 북에서 독자적으로 건조한 군함에 미국 군사정보기관이 왜 ‘소호’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다.
 
둘째, 북에서 소호급 호위함 다음으로 큰 군함은 배수량 1,200t의 나진급 초계함(Najin-class corvette)인데, 나진급 초계함은 두 척 뿐이다. 미국 군사정보기관이 라진을 나진이라고 쓴 것부터 부정확하다.
 
셋째, 소호급 호위함은 1980년에 취역하였고, 라진급 초계함은 1975년에 취역하였다.

위의 정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북이 호위함과 초계함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지 않고 모두 자체로 건조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군함건조시기가 1970년대이므로, 지난 40여 년 동안 신형 호위함이나 신형 초계함을 한 척도 건조하지 않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군사정보기관이 라진급 초계함 실물사진은 세상에 공개하면서도 유독 소호급 호위함 실물사진은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미국 해군연구소가 펴낸 위의 책에는 북의 소호급 호위함이 선체 두 개를 나란히 붙여놓은 것처럼 생긴 쌍둥이 선체(catamaran hull)로 설계되었고, 해상작전헬기를 탑재하는 비행갑판(flight deck)이 있다는 내용이 있다. 만일 미국 군사정보당국이 실물을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그처럼 묘사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정황은 미국 정찰위성이 촬영한 북의 소호급 호위함 실물사진을 미국 군사정보당국이 오래 전에 확보하였으면서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미국 군사정보당국은 왜 북의 소호급 호위함 실물사진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을까? 궁금증을 풀어준 것은, 2004년에 어떤 미국인이 미국 상업위성 사진자료를 제공하는 누리집 ‘구글 어스(Google Earth)’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은 위성사진이다. 그 사진에는 매우 특이하게 생긴 북의 군함 한 척을 위성에서 공중촬영한 장면이 담겨 있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그 위성사진은 정찰위성이 아니라 상업위성이 촬영한 것이라서 해상도가 떨어지지만, 그 위성사진에 나타난 매우 특이하게 생긴 북의 군함은 그 동안 세상에 소문으로만 전해진 바로 그 소호급 군함이었다. 위성사진에 나타난 북의 군함은 어느 선착장에 정박하고 있는데, 그 주변에 정박하고 있는 작은 함정 5척도 보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위성사진에 나타난 북의 군함이 배수량 4,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이라는 사실이다. 그 비행갑판은 매우 넓어서 대잠헬기 두 대를 한꺼번에 탑재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1년 6월 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관람한, 인민군 해병 300여 명이 출연한 함상합창공연은 바로 그 넓다란 비행갑판에서 열렸던 것으로 보인다.

군사전문가들이 그 위성사진을 확대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그 헬기탑재 구축함에는 대함미사일 발사관 6기, 대구경 함포 1문, 자동식 대공포 2문, 수동식 대공포 4문, 대잠 수중로켓발사대 4기를 비롯한 강력한 무장장비가 탑재되어 있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북의 헬기탑재 구축함이 쌍둥이 선체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이다. 쌍둥이 선체는 고속으로 기동하는 함선의 전형적인 형태인데, 쌍둥이 선체로 건조된 중국의 후베이급(Hubei-class) 미사일고속정(배수량 200t)이 취역한 시기는 2004년이고, 쌍둥이 선체로 건조된 미국의 연안전투함(배수량 3,000t)이 취역한 시기는 2008년이다.

그 위성사진은 북이 배수량 4,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을 건조하는 선진적 군함건조술을 이미 1970년대 후반기에 확보하였음을 말해준다. 한국군이 운용하는 배수량 4,4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이 취역한 때는 2002년인데, 그 구축함의 엔진, 무장장비, 레이더, 통신장비들은 다른 나라에서 전부 수입하여 조립해놓은 것이다. 이제야 미국 군사정보당국이 북의 소호급 군함 실물사진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까닭이 드러난다. 그들은 북이 4,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을 자체로 건조하여 지난 30여 년 동안 운용해왔다는 놀라운 정보를 은폐하고 싶었기 때문에, 정찰위성이 촬영한 실물사진이 있는데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이 이러쿵 저러쿵 논하는 북의 해군력에 관한 각종 정보들은 미국 군사정보당국이 저평가한 엉터리 정보이고, 그런 엉터리 정보를 가지고 쓴 언론보도기사들이 세상에 퍼져 북의 해군력이 빈약하다는 고정관념이 굳어지고 말았으니 너무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구축함 드나드는 거대한 지하해군기지
 
군사문제에 관심을 가진 ‘구글 어스’ 사용자들이 북의 각 지역을 공중촬영한 위성사진자료를 무료로 사용하게 되자, 미국 군사정보당국의 대북군사정보 독점체제가 흔들리고 있으며, 그에 따라 미국 군사정보당국이 북의 군사력를 터무니없이 저평가해온 게 아니냐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북의 해군력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말해주는 위성사진은 2007년에도 ‘구글 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군사전문가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문제의 위성사진은 <조선일보> 2007년 11월 7일 보도기사에 실린 ‘구글 어스’ 위성사진이다. 그 위성사진에는 외부세계에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북의 헬기탑재 군함 한 척이 남포항 선착장에 정박한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 군함은 크기로 보아 3,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이 분명한데, 위에서 논한 4,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과 전혀 다르게 생겼다. 미국과 남측의 군사정보당국은 그 위성사진에 나타난 3,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이 오랜 취역기간 끝에 퇴역판정을 받고 고철로 북에 팔린 러시아산 크라이백급(Krivak-class) 구축함이라고 추정하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크라이백급 구축함을 우크라이나에만 수출하였을 뿐 다른 나라에는 전혀 수출하지 않았으며, 고철로도 수출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수출하지 않은 구축함이 북의 남포항에 정박해 있다는 말은 억지로 꾸며낸 궤변으로 들린다. 언제나 그러한 것처럼, 북의 군사력을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는 미국과 남측의 군사정보당국은 자기들이 처음 보는 군사장비가 북에 등장하는 경우, 북이 자체로 개발한 군사장비라고 인정하기를 꺼리면서 무조건 러시아산 수입품목으로 규정해버리는 악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위성사진에 나타난 3,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은 이상하게도 무장장비와 레이더를 모두 떼어낸 썰렁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미국과 남측의 군사정보당국은 북이 러시아에서 그 구축함을 고철로 사들인 게 아니냐고 추정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 보도기사에서도 인정하였던 것처럼, 그 헬기탑재 구축함을 러시아에서 고철로 수입하였기 때문에 무장장비와 레이더를 떼어낸 게 아니라 남포에 있는 해군정비소에서 무장장비와 레이더를 신형으로 교체하기 위해 떼어낸 것으로 보아야 이치에 맞다. 그 위성사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북에는 위에서 언급한 4,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 이외에 3,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 위성사진에 나타난 3,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은 남포에 있는 해군정비소에서 신형 구축함으로 개조되었다는 것이다. 북이 2007년에 구축함 개조사업을 진행 중이었으므로,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오늘에는 개조가 완료된 3,000t급 신형 구축함을 실전배치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다. 위성사진에 나타난 북의 1,600t급 호위함, 3,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 4,000t급 헬기탑재 구축함이 모두 한 척씩만 위성사진에 포착되었다는 점이다. 북은 그 군함들을 각각 한 척씩만 건조한 것일까? 북의 해군력이 빈약하다는 왜곡된 정보만 들은 사람들은 북의 군함건조능력이 저조하니까 겨우 한 척씩밖에 건조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얀마군 대표단의 방북보고서를 읽어보면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08년 늦가을에 방북한, 미얀마군 합동참모본부장 수라 쉐 만(Thura Shwe Mann)을 단장으로 한 미얀마군 대표단의 방북보고서에는 그들이 2008년 11월 24일 평안남도 남포에 있는 인민군 서해함대사령부를 돌아보았다고 씌여있다. 서해함대사령부에 도착한 그들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해군기지 입구에 커다란 방파제가 있고, 계류장에 크고 작은 군함들이 정박되어 있는 광경이었다. 그들이 인민군 서해함대사령부에서 관찰한 것은 북이 건조한 배수량 2,500t급 호위함이다.

방북보고서는 그 호위함이 남포선박설계연구소에서 건조하여 해외에 수출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신형 호위함의 존재가 이제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2008년 당시에는 아직 해외에 수출되지 않았던 것이다. 북이 미얀마에 그 호위함을 수출하려고 미얀마군 대표단에게 보여주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2,500t급 호위함을 수출하는 군함건조능력을 가진 북이 호위함과 구축함을 달랑 한 척씩만 건조하였을 리 만무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해군 제790군부대를 시찰한 그 날, 해군 제158군부대도 시찰하였다. 해군 제158군부대는 삼호 바로 아래쪽에 있는 함경남도 락원군 퇴조만에 있다. ‘구글 어스’가 제공하는 위성사진자료를 통해 해군 제158군부대의 위치를 알 수 있는데, 퇴조만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락원항이 보이고, 퇴조만 바깥쪽에 제158군부대 본부청사가 보인다. 퇴조만까지 철로가 놓여있고, 주변에 대공미사일기지가 있는 것도 보인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찬바람이 불어치는 군항에 나오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어뢰정 1307호에 몸소 올라 전술훈련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군항에 나오셨다”는 표현은 지하해군기지를 시찰한 뒤에 군항으로 나왔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구글 어스’가 제공하는 위성사진을 살펴보면, 퇴조만에서 바다쪽으로 뻗어나간, 마치 쇠뿔처럼 생긴 지대에 있는 제158군부대 지하해군기지 출입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하해군기지 출입구는 모두 세 군데인데, 동해로 직통하는 출입구는 윗쪽에 두 군데 있고, 퇴조만으로 통하는 출입구은 아랫쪽에 한 군데 있다. 그런 식의 출입구 배치는 지하해군기지가 고무래 정(丁)자처럼 건설되었음을 말해준다. 거대한 퇴조만 한 쪽을 지하해군기지로 만들었으니 기지규모가 얼마나 큰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2008년 11월 서해함대사령부를 방문한 미얀마군 대표단이 본 것은 길이 600m, 높이 30m, 폭 30m로 건설한 거대한 지하해군기지다. 그들의 방북보고서에 따르면, 지하해군기지 출입구에는 적군의 미사일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길이 30m, 높이 30m, 두께 3m의 거대한 콘크리트 방호벽이 설치되었는데, 그 방호벽은 전기장치로 움직인다. 또한 콘크리트 방호벽을 지난 다음에는 두께 3m의 강철문이 하나 더 설치되었는데, 그 강철문도 콘크리트 방호벽처럼 전기장치로 여닫는다. 군함이 지하해군기지 안으로 100m 들어가면, 거기서부터는 철로 위에 끌어올려져 더 깊은 안쪽으로 이동된다. 철로로 이동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얀마군 대표단에게 공개한 지하해군기지에는 초계함, 호위함, 구축함이 아니라 배수량이 500t을 넘지 않는 고속공격정들이 들어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북에는 초계함, 호위함, 구축함이 들어가는 또 다른 형태의 지하해군기지들이 있다. 미국 상업위성이 북의 호위함과 구축함을 한 척씩밖에 촬영하지 못한 까닭은, 그런 군함들이 서해안과 동해안에 건설한 지하해군기지들에 들어가 있어서 웬만해서는 촬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해외에 수출하는 북의 2,500t급 호위함
 
미얀마군 방북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11월에 북이 미얀마군 대표단에게 보여준 배수량 2,500t급 호위함의 분류명칭은 “코스트 가드(Coast Guard)”다. 북에서 코스트 가드를 우리말로 어떻게 부르는지 알 수 없으나, 원래 코스트 가드는 해양경찰이라는 뜻이다. 다른 나라에는 해양경찰이 있는데, 북에는 해양경찰이 없으므로 해군 경비정이 해경임무까지 맡아본다. 예컨대, 인민군 경비정은 2012년 5월 8일 새벽 서해에서 조업하던 중 북측 영해를 침범한 중국 어선 3척을 나포하였다가 21일에 송환한 바 있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북이 미얀마군 대표단에게 보여준 군함을 해경급 호위함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미얀마군 방북보고서에 따르면, 해경급 호위함은 길이 108m, 폭 13.3m다. 무장장비로는 대함미사일(anti-ship missile), 76mm 자동식 함포 1문, 30mm 6렬 자동식 대공포 1문, 14.5mm 6렬 대공포 1문, 533mm 어뢰, 252mm 폭뢰로켓발사기, 대형 폭뢰 및 기뢰, 82mm 레이더 교란물체 발사기 등이 탑재되었다.

그런데 미얀마군 방북대표단은 보고서에서 그 해경급 호위함의 다른 무장장비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서술하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대함미사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았다. 미얀마군 대표단은 방북 직후 귀국길에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이 운용하는 배수량 1,960t의 장후급(Jianghu-class) 호위함(Type 053)을 관찰하였는데, 그 호위함에 사거리 120km의 대함미사일(YJ-82)이 탑재되었다고 하면서, 무기체계가 더욱 현대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중국인민해방군 호위함에 탑재된 대함미사일에 대해 그처럼 구체적으로 서술한 그들이 왜 인민군 호위함에 탑재된 대함미사일에 대해서는 그저 대함미사일이라고만 써넣었을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북의 2,500t급 호위함에 탑재된 대함미사일에 관한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해상전 승패는 함포보다는 대함미사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제껏 서방세계에 떠도는 북의 대함미사일에 관한 정보에 따르면, 북은 오래 전에 소련에서 생산한 사거리 80km의 스틱스(Styx) 대함미사일과 그것을 중국에서 개량한 사거리 150km의 실크웜(Silkworm) 대함미사일밖에 갖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이 북의 대함미사일에 관한 정보를 논할 때마다 스틱스 대함미사일과 실크웜 대함미사일을 습관처럼 언급하지만, 그러한 언급은 북의 대함미사일 생산능력을 터무니없이 저평가하는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군사정보회사 ‘제인스 정보 집단(Jane's Information Group)’이 밝힌 바에 따르면, 1970년대 초 북은 중국으로부터 대함미사일들인 HY-1과 NY-2의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생산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는 모방생산하였고, 1993년 2월에는 실크웜 대함미사일을 자체 기술로 개량한 자국산 대함미사일로 발사실험을 실시하였다. 미국 군사정보기관이 AG-1이라고 한때 부르다가, 나중에는 KN-01이라고 고쳐 부른 대함미사일이 1993년 2월에 시험발사하였던 바로 그 자국산 대함미사일이다.

그런데 북은 2000년대에 들어와 KN-01보다 한 급 높은 신형 대함미사일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 군사전문가 우지 루빈(Uzi Rubin)이 2006년 6월 20일에 발표한 글에 따르면, 북의 신형 대함미사일 설계기술이 이란으로 수출되었는데, 이란혁명수비군이 2006년 6월에 실시한 미사일 발사훈련에 등장한 라드(Raad) 대함미사일이 북의 설계기술로 생산한 것이다. 이란혁명수비군이 작전배치한 라드 대함미사일 사거리는 360km다. 2008년 11월 미얀마군 대표단이 서해함대사령부에서 관찰한 2,500t급 호위함에 탑재된 대함미사일이 바로 사거리 360km의 신형 대함미사일이다. 북이 미얀마군 대표단에게 보여준 2,500t급 호위함에는 사거리 360km의 신형 대함미사일이 탑재되었는데, 중국이 그들에게 보여준 배수량 1,960t급 호위함에는 사거리 120km의 대함미사일이 탑재되었으니, 미얀마군 대표단은 자기 보고서에서 중국의 호위함이 더 현대화될 필요가 있다고 비교평가를 하였던 것이다.

북에는 세계 최강의 ‘불소나기 정대’가 있다
 
북의 초계함, 호위함, 구축함이 들어가는 지하해군기지가 그리 많지 않으니 호위함이나 구축함도 역시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지하해군기지에는 수상함만이 아니라 잠수함도 들어가야 하므로 정박공간은 아무래도 제한적이다. 이것은 북의 해군이 중대형 군함을 위주로 편성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명백하게도, 인민군 해군력의 중심역량은 잠수함과 소형함정이다.

<블러퍼 편람: 2007년도 북코리아 해군력 (Bluffer's Guide: North Korean Naval Power 2007)>에는 북이 운용하고 있는 다섯 종류의 고속공격정에 관한 정보가 실려 있다. 배수량이 약 500t으로 추정되는 미사일고속정, 배수량이 약 200t으로 추정되는 두 종류의 미사일고속정, 배수량이 약 150t으로 추정된는 스텔스 어뢰고속정, 배수량이 약 80t으로 추정되는 스텔스 어뢰고속정이다. 이 신형 고속공격정들은 ‘구글 어스’ 위성사진에서 찾아낸, 이제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미얀마군 대표단의 방북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이 돌아본 남포선박수리소에는 고속공격정들이 수리를 받기 위해 정박되어 있었다고 한다. 고속공격정이란 배수량이 500t을 넘지 않는 함정을 말하는데, 북에서는 미사일고속정, 방사포고속정, 어뢰고속정 등으로 분류된다. 북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속공격정를 보유한 나라인데, 각종 고속공격정만 300척이 넘는다.

창군한지 2년 4개월만에 일어난 6.25 전쟁 시기에 ‘세계 최강’을 자처한 미국군과 전면전을 벌인 인민군은 해군력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6.25 전쟁 이후 북에서 해군력 강화에 특별히 힘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북은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력으로 무기를 개발하여 해군무기체계 현대화에 힘쓰면서, 독자적인 해군전술 개발에도 힘썼다.

300척이 넘는 각종 고속공격정으로 무장한 북의 해군체계를 보면, 북의 해군전술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북은 수많은 미사일고속정, 방사포고속정, 어뢰고속정을 다양한 공격대형으로 해상전에 투입하여 미국군 제7함대를 집중공격하는 전술을 연마해오고 있다. 그런 전술을 북에서는 무엇이라 부르는지 알 수 없으나, 미국군은 ‘군집전술(sworming tactics)’이라 부른다. 다양한 공격대형으로 편성된 고속공격정대가 사방에서 고속으로 돌진해 들어가면서 대함미사일, 함포, 방사포, 어뢰, 수중로켓포 등을 ‘적함선집단’을 향해 소나기처럼 집중발사하는 가공할 공격전술이므로 ‘불소나기 전술(flame-showering tactics)’이라 부를 만하다. 북에서 말하는 ‘적함선집단’이란, 핵추진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편성된 항모강습단을 뜻한다.

핵추진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하고 순양함과 구축함 등으로 편성된 미국군 항모강습단이 인민군 고속공격정대의 ‘불소나기 전술’에 걸리면 대패할 것이라는 사실이 미국군의 실전급 해상전연습에서 입증되어 미국 군부가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이를테면, 2002년 7월 24일부터 8월 15일까지 미국 군부는 2억5,000만 달러의 경비를 지출하여 ‘밀레니엄 챌린지 2002 (Millennium Challenge 2002)’라는 작전명을 내걸고 사상 최대 규모의 실전급 해상전연습을 실시하였다. 그런데 가상적군의 고속공격정대가 퍼부은 ‘불소나기 전술’에 걸려든 미국 해군은 항공모함 1척, 순양함 10척, 대형 상륙함 5척이 격침되고, 20,000명 이상의 해군병력이 몰살되는 충격의 참패를 당했다.

당시 실전급 해상전연습에 나선 가상적군의 고속공격정대가 미국군 항모강습단을 격침할 때 퍼부은 ‘불소나기’가 바로 대함미사일인데,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민군 고속공격정대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대함미사일로 무장하였다. ‘밀레니엄 챌린지 2002’는 인민군 ‘불소나기 정대’가 잠수함대와 합동작전을 하지 않고서도 그처럼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한 놀라운 사변이었다. 실전급 해상전연습에서 인민군 고속공격정대 역할을 맡은 가상적국 해군이 미국 해군 항모강습단을 거의 전멸시킨 것은, 그 동안 미국 해군이 차지하고 있었던 세계 최강 해군력 지위가 사실상 인민군 해군에게 넘어갔음을 뜻한다.

2002년에 있었던 실전급 해상전연습에서 충격의 참패를 당한 미국 군부는 인민군 ‘불소나기 정대’에 맞서기 위해 황급히 반수상전 교리(anti-surface warfare doctrine)를 새로 만든다느니, 연안전투함(littoral cambat ship)을 새로 건조한다느니 하면서 야단법석을 쳤다.

하지만 2012년 10월 현재 미국은 연안전투함을 3척밖에 건조하지 못하였다. 첫 번째로 건조한 연안전투함 프리덤호(USS Freedom)는 2008년 9월 18일에 취역하였고, 두 번째로 건조한 연안전투함 인디펜던스호(USS Independence)는 2010년 1월 16일에 취역하였고, 세 번째로 건조한 연안전투함 포트 워스호(USS Fort Worth)는 2012년 9월 22일에 취역하였다. 그런데 너무 급하게 건조해서 그런지, 연안전투함은 선체 곳곳에 균열이 생기고 엔진이 자주 고장나는 바람에 작전기일보다 수리기일이 더 길어졌다. 미국 해군 공보당국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연안전투함 사진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런 공보사진 유포행위는 자기들의 치명적 약점을 감추려는 허장성세일 뿐이다. 미국 해군이 자기의 항모강습단마저 ‘불소나기 전술’에 격침당할 판인데 설계결함으로 파행하는 연안전투함을 내세워, 세계 최강의 인민군 ‘불소나기 정대’를 상대하겠다면 아마 인민군 해병들의 비웃음을 살지 모른다.

다급해진 미국 군부는 앞으로 30년 동안 연안전투함 55척을 건조할 계획이 있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미국의 국가재정파탄이 그 야심찬 건조계획을 그대로 집행하게 허락할지는 미지수다. 그처럼 불안정한 계획에 따르더라도 앞으로 30년 뒤 미국 해군은 태평양 제해권을 잃어버리고, 미국 본토 연안방어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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