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과학정치와 미신정치의 격돌에서 어느 쪽이 이길 것인가?
2012년 12월 4일 대선후보 토론회가 1시간 50분짜리 생방송으로 남측 전역과 해외동포사회에 방영되었다. 대선국면에 큰 영향을 미칠 이 토론회는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었다. 출연한 세 대선후보들도 그 토론회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사전에 각별히 준비했을 텐데, 준비정도와 진행상황이 꼭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토론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로 진행하는 것이므로, 그 자리에서의 승패는 화술에서 결정되는 법이다. 토론회에 제기된 내용의 핵심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대처하는 사고의 순발력, 유권자 대중이 알아들 수 있게 설명하는 논리전개력, 대중심리에 파고들며 공감을 불러일으킬 적확한 용어를 쓰는 언어구사력 등이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요구되는 화술기법의 중요요소들이다.
그런 화술기법을 놓고 비교한다면,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나 박근혜 후보는 이정희 후보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였다고 평할 수 있다. 이정희 후보를 싫어하는 수구언론마저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가 이정희 후보의 독무대였다고 평했을 정도니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 토론회를 텔레비전 영상을 통해 지켜본 수많은 시청자들은 평소에 잘 알지 못했던 또는 수구세력의 악랄한 종북모략공세 때문에 완전히 잘 못 알고 있었던 이정희 후보의 ‘똑 소리 나는’ 진면목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특히 자기 마음에 드는 대선후보를 아직 고르지 못한 부동층 유권자들은 구구절절 옳은 말만 골라서 속사포처럼 막힘없이 쏟아내는 이정희 후보의 모습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에 기겁한 어떤 수구언론매체는 오는 12월 10일에 진행될 제2차 대선후보 토론회는 이정희 후보를 제외시키고 문재인-박근혜 양자구도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억지를 늘어놓았다.
이정희 후보에 비해, 문재인 후보는 화술기법이 상당히 뒤졌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는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할 대목을 여러 차례 놓치고 우물우물 넘기는 실수를 하였다. 더욱이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는 음성조절도 매우 중요한데, 문재인 후보는 상대에게 안겨주는 듯한 음성이 아니라 입 안에서 웅얼거리는 듯한 음성으로 말하는 바람에 시청자들에게 좀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화술기법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완패한 쪽은 박근혜 후보다. 그녀는 언어교정학원에 다니면서 화술기법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측은한 생각마저 들 정도로 토론회 내내 참 답답하고 어눌한 모습을 보였다.
주목하는 것은, 대선후보 토론회의 화술기법이 단순히 말솜씨가 아니라는 점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치현안들에 관한 정보에 정통해야 하고, 각종 정치현안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한 대선후보라야 토론회에 나가서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자기의 견해와 주장을 펼 수 있다.
진보정치는 과학정치이고, 수구정치는 미신정치이며, 중도정치는 우왕좌왕정치라는 사실이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를 통해서도 명백히 드러났다.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는 과학정치와 미신정치의 격돌이었고, 과학정치가 미신정치를 제압한 대결이었다.
진보정치가 곧 과학정치라는 말은 사회역사발전의 과학적 합법칙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힘쓰는 과학적 속성을 지닌 정치라는 뜻이고, 수구정치가 곧 미신정치라는 말은 자본주의시장경제와 한미동맹 따위를 우상처럼 섬기는 미신행위의 정치적 연장이라는 뜻이고, 중도정치가 곧 우왕좌왕정치라는 말은 ‘오른쪽’에 한 발을 딛고, ‘왼쪽’에도 한 발을 살짝 걸친 다음, 시류에 따라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정치라는 뜻이다.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 관전평을 요약적으로 서술하면, 진보정치를 역설한 이정희 후보는 노동자, 농민, 서민의 정치적 요구와 희망을 설득력 있게 대변하였고, 통합의 정치를 강조한 문재인 후보는 수구적 유권자층을 너무 의식해서 그런지 ‘오른쪽’에 두 발을 딛고 서서 가끔 ‘왼쪽’을 기웃거리며 우왕좌왕하였고, ‘안보정치’를 주장한 박근혜 후보는 이정희 후보의 날카로운 집중공세에 당황망조하여 횡설수설하다가 끝났다.
그런데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보여준 모습은 그런 폭로전술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고, 따라서 유권자 대중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그로써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를 계기로 올라가기는커녕 더 떨어질 공산이 커졌다. 12월 19일의 ‘결전’을 눈앞에 둔 대선국면 막바지에서, 민주통합당으로서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 하락보다 더 심각한 위기요인은 없을 것이다.
이정희 후보가 앞으로 두 차례 더 남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도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짓눌러온 온갖 모순을 속이 시원하게 폭로하고, 수구독재 대명사로 등장한 박근혜 후보를 ‘촌철살인의 무기’로 맹타한다면, 그녀와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율은 예상을 깨고 크게 뛰어오를 것이다.
이정희 후보의 지지율 상승과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 정체 또는 소폭 하락이 가시화되면, 그것은 ‘국민연대’를 중얼거리는 민주통합당이 안철수가 무슨 말을 해줄까 그의 입만 쳐다보고,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려는 우스꽝스러운 실책을 강타할 것이고, 통합진보당의 정치적 위상을 끌어올리면서 그 당을 조준한 종북모략소동을 무력화시킬 것이고, 민주통합당을 통합진보당과의 연대로 견인할 것이다. 대선후보 토론회가 영향을 미칠 새로운 대선국면이 기대된다.
이번 대선에 통합진보당이 제3당으로 출전하여, 이정희라는 이름으로 대중의 인정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폭넓은 정치적 공감대를 형성하였다는 것, 바로 이것이 그 당이 이번 기회에 확실히 틀어쥔 그야말로 천금 같은 수확물이다.
이번 대선국면에서 온갖 악조건을 딛고 일어서서 어떻게 해서든지 진보적 정권교체의 길을 열어놓으려는 이정희 후보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19세기 유럽 낭만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끄루아(Eugène Delacroix)가 1830년 7월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생생하게 그린 대표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세계적인 명작을 연상하게 된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그 명작에 나오는 여신은 어떤 모습인가? 불타는 노뜨르담 사원이 멀리 배경에 보이는데, 신발을 벗어던진 맨발로,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혁명의 길에 뛰쳐나온 실로 강렬한 여성전사의 모습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프랑스 혁명의 상징 삼색기를 오른 손에 잡고 허공 높이 치켜들었고, 긴 총검이 꽂힌 혁명의 총을 왼 손에 힘껏 움켜쥐고, 고개를 뒤로 돌려 그녀의 뒤를 따라 혁명의 길로 진격하는 각계각층 혁명군 대오를 바라보는 시선이 온몸 떨리는 전율적 미감을 안겨준다.
들라끄루아는 프랑스 혁명을 이끄는 힘을 왜 여성전사의 모습으로 형상화했을까? 피끓는 혁명의 진격대오 맨 앞에 여성전사를 내세운 것은, 들라끄루아가 낭만주의 화풍에 젖어있었던 당대 예술사조의 미학적 표현이었다고 논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꼭 그렇게만 볼 게 아니다. 근육질 남성전사들이 적들과 맞서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세계가 혁명의 길에 있다는 것, 그리고 혁명이 아름다움으로 빛나기에 위대하다는 것, 바로 그런 진실을 비록 비사실주의적 화법이지만 여성전사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들라끄루아가 183년 전에 그린 그 그림은, 남성전사가 아니라 여성전사를 혁명의 길 맨 앞에 그려 넣은 것으로 하여 세계적인 명작이 될 수 있었다.
여성전사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혁명의 미학을 담은 예술작품에 대해 말하자면, 멀리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까지 갈 필요도 없다. 눈 덮인 백두산정이 올려다 보이는 삼지연 못가에 뽀얀 물안개 피어오를 때, 오른 손에 잡은 혁명의 총으로 조국 땅을 짚고 배낭을 멘 몸을 굽혀 살포시 왼 손을 물가에 내밀며 잔잔한 물결에 닿을 듯 말 듯한 모습을 형상한 삼지연 대기념비의 항일혁명 여성전사 모습이 들라끄루아가 프랑스 혁명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의 세계와 상통하는 게 아닐까.
만일 들라끄루아 같은 어느 천재 화가가 이 땅에 나타나 화필을 잡는다면, 맨발로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길에 뛰쳐나온 이 땅의 여인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한반도 통일기를 쥔 오른 손을 허공 높이 치켜들고, 수구독재를 겨냥한 ‘촌철살인의 무기’를 왼 손에 힘껏 움켜쥐고, 고개를 뒤로 돌려 그녀들을 따라 진격하는 민중대오를 바라보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화폭에 그릴 것이다. 그리고 그 멋진 그림 밑에는 ‘민중을 이끄는 자주의 여성전사들’이라는 제목을 써넣을지 모른다. (2012년 12월 4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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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답답하고 어눌한 말솜씨를 보인 것은, 그녀가 단순히 화술기법이 모자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각종 정치현안들에 관한 정보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하였다는 데 근본원인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진보정치는 과학정치이고, 수구정치는 미신정치이며, 중도정치는 우왕좌왕정치라는 사실이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를 통해서도 명백히 드러났다.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는 과학정치와 미신정치의 격돌이었고, 과학정치가 미신정치를 제압한 대결이었다.
진보정치가 곧 과학정치라는 말은 사회역사발전의 과학적 합법칙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힘쓰는 과학적 속성을 지닌 정치라는 뜻이고, 수구정치가 곧 미신정치라는 말은 자본주의시장경제와 한미동맹 따위를 우상처럼 섬기는 미신행위의 정치적 연장이라는 뜻이고, 중도정치가 곧 우왕좌왕정치라는 말은 ‘오른쪽’에 한 발을 딛고, ‘왼쪽’에도 한 발을 살짝 걸친 다음, 시류에 따라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정치라는 뜻이다.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 관전평을 요약적으로 서술하면, 진보정치를 역설한 이정희 후보는 노동자, 농민, 서민의 정치적 요구와 희망을 설득력 있게 대변하였고, 통합의 정치를 강조한 문재인 후보는 수구적 유권자층을 너무 의식해서 그런지 ‘오른쪽’에 두 발을 딛고 서서 가끔 ‘왼쪽’을 기웃거리며 우왕좌왕하였고, ‘안보정치’를 주장한 박근혜 후보는 이정희 후보의 날카로운 집중공세에 당황망조하여 횡설수설하다가 끝났다.
대선후보 토론회를 계기로 전환될 대선구도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제1야당 대선후보인 문재인이 대결의 정치를 청산하고 통합의 정치를 추구하겠다고 말한 것은 큰 실수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무슨 ‘여야협의’를 운운하며 수구집권여당에게 무슨 아량과 관용 따위를 보여주고 그들과 ‘상생의 기회’를 찾아야 할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대선후보 토론회야말로 민족자주와 대미예속 사이의 적대적 모순, 민중과 수구독재정권 사이의 적대적인 모순,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적대적인 모순을 낱낱이 파헤쳐 유권자 대중에게 폭로하면서 그 추악한 모순 덩어리로 존재하는 수구집권세력을 향해 단호한 ‘여론심판’을 내려야 할 정치격전장이 아닌가.
평소에 이 땅의 이른바 주류언론들이 수구집권세력의 하수인 나팔수로 자처하면서 대미예속적 수구독재를 적극 두둔하는 바람에, 이 땅의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온갖 모순을 그런 정치격전장에서 폭로하지 않는다면 수구집권세력을 상대로 ‘혈투’를 벌이는 대선에서 무슨 수로 그 세력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인가. 폭로전술은 대중의 공분을 불러일으켜 수구세력을 대중의 힘으로 제압할 가장 위력적인 정치무기다.
그런데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보여준 모습은 그런 폭로전술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고, 따라서 유권자 대중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그로써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를 계기로 올라가기는커녕 더 떨어질 공산이 커졌다. 12월 19일의 ‘결전’을 눈앞에 둔 대선국면 막바지에서, 민주통합당으로서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 하락보다 더 심각한 위기요인은 없을 것이다.
원래 민주통합당의 사회계급적 기반은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서 시류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유동적인 중산층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그 당은 자기들의 정치적 유동성을 통합이니 상생이니 하는 듣기 좋은 말로 곧잘 치장하지만, 수구집권세력에 맞선 정권탈환문제를 놓고 격전을 벌이는 대선국면에서는 정적들을 향해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정면대결을 해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 토론회 전략은 대선국면의 격전현실에서 한 걸음 이탈하여 통합과 상생의 잠언을 어물어물 늘어놓으며 우왕좌왕하였으니 잘 못되었어도 한참 잘 못된 것이다. 며칠 뒤 다시 진행될 제2차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그런 전략적 오판을 접고, 박근혜 후보와 대립각을 세워 공세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전환하기를 기대한다.
지난 민주노동당 시절에도 그 당의 대선후보가 대선후보 토론회 생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 이정희 후보처럼 노동자, 농민, 서민의 정치적 요구와 희망을 설득력 있게 대변하면서, 수구정당 대선후보를 벼랑끝으로 마구 몰아붙인 적은 없었다.
‘촌철살인’이라더니 이정희 후보의 토론회 발언이야말로 바로 그런 격이었다. 이정희 후보를 알지 못하고, 통합진보당에 무관심하던 수많은 부동층 유권자들은 그녀의 짜릿한 촌철살인 공세발언을 듣고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꽉 막혔던 속이 다 후련해지는 억압감정해소를 집단적으로 경험하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정희 후보의 대선후보 토론회 참가는 성공적이었다.
이정희 후보가 앞으로 두 차례 더 남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도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짓눌러온 온갖 모순을 속이 시원하게 폭로하고, 수구독재 대명사로 등장한 박근혜 후보를 ‘촌철살인의 무기’로 맹타한다면, 그녀와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율은 예상을 깨고 크게 뛰어오를 것이다.
이정희 후보의 지지율 상승과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 정체 또는 소폭 하락이 가시화되면, 그것은 ‘국민연대’를 중얼거리는 민주통합당이 안철수가 무슨 말을 해줄까 그의 입만 쳐다보고,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려는 우스꽝스러운 실책을 강타할 것이고, 통합진보당의 정치적 위상을 끌어올리면서 그 당을 조준한 종북모략소동을 무력화시킬 것이고, 민주통합당을 통합진보당과의 연대로 견인할 것이다. 대선후보 토론회가 영향을 미칠 새로운 대선국면이 기대된다.
지난 시기 이 땅의 진보정당은 대중의 인정과 지지를 받는 정치적 인물을 내세우지 못한 까닭에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정치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채, 대선국면마다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찬바람 부는 선거현장에서 여기저기 헤매기를 얼마나 하였던가. 그런 정치적 공감대를 형성할 유력한 정치인 한 사람을 대중 앞에 내세우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어느 천재적 화가가 이 땅에 나타나 화필을 잡는다면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이정희 후보가 거둔 소중한 성과는 노동자, 농민, 서민의 정치적 요구와 희망을 절절하게 대변한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성과는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진보적 정권교체라는 첫 승리로 이끌어가는 전진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다.
이번 대선국면에서 온갖 악조건을 딛고 일어서서 어떻게 해서든지 진보적 정권교체의 길을 열어놓으려는 이정희 후보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19세기 유럽 낭만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끄루아(Eugène Delacroix)가 1830년 7월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생생하게 그린 대표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세계적인 명작을 연상하게 된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그 명작에 나오는 여신은 어떤 모습인가? 불타는 노뜨르담 사원이 멀리 배경에 보이는데, 신발을 벗어던진 맨발로,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혁명의 길에 뛰쳐나온 실로 강렬한 여성전사의 모습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프랑스 혁명의 상징 삼색기를 오른 손에 잡고 허공 높이 치켜들었고, 긴 총검이 꽂힌 혁명의 총을 왼 손에 힘껏 움켜쥐고, 고개를 뒤로 돌려 그녀의 뒤를 따라 혁명의 길로 진격하는 각계각층 혁명군 대오를 바라보는 시선이 온몸 떨리는 전율적 미감을 안겨준다.
들라끄루아는 프랑스 혁명을 이끄는 힘을 왜 여성전사의 모습으로 형상화했을까? 피끓는 혁명의 진격대오 맨 앞에 여성전사를 내세운 것은, 들라끄루아가 낭만주의 화풍에 젖어있었던 당대 예술사조의 미학적 표현이었다고 논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꼭 그렇게만 볼 게 아니다. 근육질 남성전사들이 적들과 맞서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세계가 혁명의 길에 있다는 것, 그리고 혁명이 아름다움으로 빛나기에 위대하다는 것, 바로 그런 진실을 비록 비사실주의적 화법이지만 여성전사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들라끄루아가 183년 전에 그린 그 그림은, 남성전사가 아니라 여성전사를 혁명의 길 맨 앞에 그려 넣은 것으로 하여 세계적인 명작이 될 수 있었다.
여성전사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혁명의 미학을 담은 예술작품에 대해 말하자면, 멀리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까지 갈 필요도 없다. 눈 덮인 백두산정이 올려다 보이는 삼지연 못가에 뽀얀 물안개 피어오를 때, 오른 손에 잡은 혁명의 총으로 조국 땅을 짚고 배낭을 멘 몸을 굽혀 살포시 왼 손을 물가에 내밀며 잔잔한 물결에 닿을 듯 말 듯한 모습을 형상한 삼지연 대기념비의 항일혁명 여성전사 모습이 들라끄루아가 프랑스 혁명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의 세계와 상통하는 게 아닐까.
만일 들라끄루아 같은 어느 천재 화가가 이 땅에 나타나 화필을 잡는다면, 맨발로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길에 뛰쳐나온 이 땅의 여인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한반도 통일기를 쥔 오른 손을 허공 높이 치켜들고, 수구독재를 겨냥한 ‘촌철살인의 무기’를 왼 손에 힘껏 움켜쥐고, 고개를 뒤로 돌려 그녀들을 따라 진격하는 민중대오를 바라보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화폭에 그릴 것이다. 그리고 그 멋진 그림 밑에는 ‘민중을 이끄는 자주의 여성전사들’이라는 제목을 써넣을지 모른다. (2012년 12월 4일 작성)
[알림]스마트폰 사용자를 위한 <변혁과 진보> 큐알코드와 모바일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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