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5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호석의 개벽예감](420)

자주시보 2020년 11월 23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전쟁관념 바꿔놓은 포격전

2. 서서남방 4.8km 해상은 어느 쪽이 관할하는가?

3. 전파교란으로 시작된 선제타격

4. 경고사격 120발, 응징사격 240발

5. 155mm 자주포와 85mm 고사포가 충돌한 격전

6. 국지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

 

 

1. 전쟁관념 바꿔놓은 포격전

 

오늘 2020년 11월 23일은 연평도 포격전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연평도 포격전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조선인민군이 한국군 전투부대에 선제화력타격을 가한 사건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일어났던 연평도 포격전을 다시 고찰하는 까닭은, 그 포격전 경험에서 한국군의 전투준비태세와 조선인민군의 전투준비태세가 각각 어떠한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나타난 작전적 우월성과 결함을 분석한 조선인민군은 지난 10년 동안 작전적 우월성을 발전시키고, 작전적 결함을 극복하면서 전투준비태세를 강화해왔다. 그리하여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야간열병식에서 과시한 것처럼, 오늘 조선인민군의 전투준비태세는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그에 비해, 연평도 포격전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 한국군은 지난 10년 동안 전투준비태세를 그닥 강화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연평도 포격전에서 한국군이 사용했던 K-9 자주포가 지난 10년 동안 각종 크고 적은 사고를 일으켰고, 결국 인명손실참사까지 불러왔다. 2015년 8월 13일 한국국방과학연구소가 안흥시험장에서 K-9 자주포 시험발사를 진행하는 중에 K-9 자주포 폐쇄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불기둥이 10m 상공으로 치솟는 화재가 발생했다. 그러나 한국국방과학연구소는 사고원인을 부실하게 조사하고, 사고 자체를 은폐하고 넘어갔다. 부실조사는 2년 뒤 참사를 불러왔다. 2017년 8월 18일 강원도 철원군 사격장에서 실탄사격훈련을 하던 K-9 자주포 포탑에서 폭발이 일어나 자주포에 탑승한 포병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폭발사고로 K-9 자주포 실탄사격훈련이 전면 중지되었는데, 폭발사고 이후 다섯 달이 지난 2018년 1월 18일 실탄사격훈련을 재개하기에 앞서 시험사격을 해보았으나 약실에서 화약이 타고 남은 찌꺼기가 발견되는 바람에 시험사격을 중지했다.

 

연평도 포격전이 가르쳐주는 또 다른 교훈은, 평소에 전투준비태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군대는 실전에서 패배하는 반면, 전투준비태세를 잘 갖춘 군대는 실전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나타난 남측과 북측의 대비적인 결과가 그런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남측은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북측은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남측이 입은 인명피해는 군인 사망자 2명, 군인 중경상자 16명, 민간인 사망자 2명, 민간인 중경상자 44명이었다. 또한 남측 민간부문이 입은 물적 피해를 보면, 주택 159동과 시설 31동이 파손되었고, 주민거주지역 하수도시설 1,150m가 파손되었고, 연평도 전체 임야의 4.5%에 이르는 25ha가 불탔다. 연평부대도 엄청난 물적 피해를 입었지만, 국방부는 군사장비 및 군사시설 피해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북측도 피해상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상업위성사진을 분석하면 인명피해는 없었고, 경미한 물적 피해만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논한다. 

 

조선외무성은 연평도 포격전 다음 날인 2010년 11월 24일 대변인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며칠 전부터 북측은 남측에 “우리측 령해에 한 발의 포탄이라도 떨어지는 경우 즉시 대응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하였”으며, 연평도 포격전 당일 오전 8시에는 “예민한 지점인 연평도 일대에서 포사격계획을 중지할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하는 전화통지문을 보내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군 수뇌부는 상황을 오판했다. 2010년 12월 29일 <프레시안>에 실린 대담기사에 따르면, 한민구 당시 한국군 합참의장은 연평도 포격전 당일 오전 9시에 연평부대 부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있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명령하고, 실탄사격훈련을 예정대로 강행했다고 한다. 무력충돌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한국군 합참의장은 연평부대에 대비명령을 내린 것인데, 그의 대비명령은 연평부대가 보유한 K-9 자주포 6문 가운데서 4문만 실탄사격훈련에 동원하고, 나머지 2문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사격준비태세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사격준비태세를 취하고 있던 K-9 자주포 2문은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의 선제타격을 받고 무용지물로 되었다. <사진 1> 

 

▲ <사진 1> 2010년 11월 23일에 일어난 연평도 포격전은 한국군 연평부대가 실탄사격훈련을 강행하고 그에 대응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선제타격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위의 사진은 집중포격을 당해 불타는 연평도의 모습이다.  



2. 서서남방 4.8km 해상은 어느 쪽이 관할하는가?

 

오전 10시 연평부대는 합참의장의 명령에 따라 실탄사격훈련을 시작했다. K-9 155mm 자주포가 등장했다. 이 포는 사거리가 약 45km에 이르는 곡사포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K-9 자주포의 탄착구역은 연평도 서서남방 4.8km 해상이었다고 한다. 서서남방은 정서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휘어진 방위를 뜻하므로, 연평도 서쪽 4.8km 해상에 탄착구역이 정해진 셈이다. 탄착구역으로 정해진 해상은 남측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해역으로 주장하는 곳이지만, 북측은 1953년 정전 직후 미국군사령관이 북측과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북방한계선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전협정 제2조 13항에 따르면, 북측 관할구역은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경계선 북쪽과 서쪽에서 정전 당시 미국군이 점령하고 있었던 백령도와 연평도를 비롯한 5개 섬을 제외한 나머지 섬들과 주변 해역이다. 그러므로 이 조항에 따르면, 연평도 주변해역은 전부 북측 관할구역에 속한다. 북측은 정전협정에 따라 자기의 관할구역을 표시하는 해상군사분계선을 그어놓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한국군이 탄착구역으로 정한 연평도 서쪽 4.8km 해상은 북측 해상군사분계선 안쪽에 위치하는 것이며, 연평부대는 북측이 그어놓은 해상군사분계선 안쪽으로 K-9 자주포를 사격했던 것이다.  

 

정전협정이 뭔지 모르고, 북측 해상군사분계선도 뭔지 모르는 연평부대 부대장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사격명령을 내렸다. 2010년 12월 29일 <프레시안>에 실린 대담기사에 따르면, 연평부대 포병들이 쏜 155mm 포탄들이 탄착구역에 떨어져 바닷물이 튀는 것이 (북측에서도) 보일 정도로 근접사격을 했다고 한다. 북은 격노했다.  

 

포격전이 끝난 직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우리 군대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긴급보도문을 발표했다. 보도문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우리측 령해에 쏘아댄 괴뢰들의 포탄은 무려 수십발에 달한다”고 지적하면서 “조선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언명했다. 

 

만일 한국군 수뇌부가 북측에서 관측할 수 없는 연평도 남쪽 해상에 탄착구역을 정하고, 그곳으로 K-9 자주포를 쏘라고 명령했더라면, 연평도 포격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을 오판한 한국군 수뇌부는 북측에서 육안으로 뻔히 보이는 연평도 서쪽 해상으로 사격해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안이하게 판단했다. 한국군 수뇌부의 오판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2012년 12월 14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정보참모부는 연평도 포격전이 시작되기 3시간 전인 당일 오전 11시 30분 “접적해역 일대에 화력도발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북의 탄약차량 움직임을 포착했고, 레이더와 필수통신망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휘관이 현장에서 지휘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고했지만, 한국군 수뇌부는 그것을 통상적인 활동으로 여기고 무시해버렸다고 한다. 한국군 수뇌부는 선제타격징후에 관한 긴급보고를 받고서도, 그 징후를 통상적인 군사활동으로 오판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군 수뇌부가 저지른 두 가지 상황오판은 한국군의 전투준비태세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군 수뇌부가 연평도 포격전 이후 10년이 지난 오늘에도 상황오판을 계속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하지 못해 안달하던 한국군 수뇌부는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좋은 기회로 여기고 엄청나게 큰 규모의 한미연합군사훈련을 2021년 3월 초에 강행할 것이 분명하다. 남북대화와 조미대화가 모두 끊어지고, 정치군사대결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상황을 오판한 한국군 수뇌부가 북을 극도로 자극하는 대규모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면 연평도 포격전보다 더 큰 무력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 무력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면, 조선인민군은 주저 없이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할 것으로 예견된다.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나기 이전 남측에는 한국군이 보유한 미국산 무기가 질적으로 매우 우수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군이 이길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었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전은 그런 전쟁관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우쳐주었다. <사진 2> 

 

▲ <사진 2> 연평도 포격전 당일 연평부대 포병들은 K-9 155mm 자주포 4문을 동원한실탄사격훈련을 하고 있었다. 북측에서 자기들의 관할수역으로 낙탄할 것을 우려한나머지 여러 차례 실탄사격훈련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고, 포격전 당일 오전에도 경고했지만, 한국군 수뇌부는 북의 경고를 무시하고 실탄사격훈련을 강행했다. 위의사진은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사격한 122mm 방사포탄에 맞은 연평부대 군사시설이 불타고 있는 장면이다. K-9 자주포로 실탄사격훈련을 하던 포병들은 선제타격을 받고 당황망조하여 방호시설 안으로 긴급대피했다. 그러는 사이에 포탄을 계속날아왔고, 불은 더 크게 번졌다. 이 사진은 연평부대 소속 정훈장교가 실탄사격훈련모습을 기록에 남기려고 사진촬영을 하는 중에 갑자기 포탄이 날아온 순간을 촬영한것이다.  



3. 전파교란으로 시작된 선제타격 

 

2010년 11월 23일 연평부대 실탄사격훈련은 당일 오후 2시 45분에 끝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연평부대 포사격훈련이 끝나는 시각을 21분 앞둔 오후 2시 24분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연평도 전역에 설치된 방범용 폐쇄회로화면(CCTV)이 갑자기 꺼진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전역에 있는 무선통신기지국들이 갑자기 마비되었다고 한다. 방범용 폐쇄회로화면이 꺼지고, 무선통신기지국이 마비된 것은, 조선인민군이 연평도에 강력한 교란전파를 발사한 것으로 하여 일어난 전파교란전 현상이었다. 

 

조선인민군이 불시에 발사한 강력한 교란전파는 연평부대의 ‘시신경’도 마비시켰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부대는 포격전 당일 오전 9시부터 대포병레이더 AN/TPQ-37을 가동했는데, 정작 포격전이 일어났을 때 북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전혀 탐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2010년 12월 3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직전 황해남도 해안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가 교란전파를 발사하여 연평부대의 대포병레이더가 ‘먹통’으로 되었다고 한다. 물론 대포병레이더만이 아니라 연평부대의 무선통신장비들도 ‘먹통’으로 되었다. 전시에 전투부대의 눈(레이더)과 귀(무선통신)가 마비되면, 전쟁은 그것으로 끝난다. 

 

이런 놀라운 경험은, 조선인민군이 조국통일대전을 개시하는 경우 전파교란전부터 시작할 것임을 예고한다. 연평도 포격전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 크고 무거운 전자교란장비를 차량에 탑재하고 황해남도 해안으로 이동하여 교란전파를 발사했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야간열병식에 참가한 전파교란부대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는 전혀 다른 양상의 전파교란작전이 전개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다. 그날 야간열병식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 전문병들은 자동보총을 들고, 위장무늬전투복과 방탄조끼를 입었으며, 방탄모를 썼는데, 전문병 전원이 검은색 접시처럼 생긴 안테나가 부착된 특수야전배낭을 메고 있었다. 특수야전배낭에 휴대형 전파교란장비가 들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전시에 그들은 달빛 없는 무월광 심야시간에 한미연합군의 반항공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저고도습격기를 타고 남측 후방 곳곳에 침투하여 교전대상에 바짝 접근할 것이고, 침투지점에서 특수야전배낭에 들어있는 전파교란장비를 켜는 순간 한미연합군의 레이더, 무선통신장비, 위성항법체계는 마비될 것이다. <신동아> 2020년 1월호 분석기사에 실린, 한국군이 청와대에 보고한 2014년도 대외비문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휴대형 전파교란장비를 무려 12종이나 실전배치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동시다발로 전파교란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중앙전파관리소 보고서를 인용한 2017년 9월 24일 <뉴스1>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 동안 조선인민군은 전파교란작전연습을 네 차례 진행했는데, 남측의 무선통신기지국 2,229개소, 항공기 2,143대, 선박 980척이 전파교란을 당했다고 한다. 

 

최전방 9곳에 설치된 한국군 전파교란감시소들은 항상 북쪽만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저고도습격기를 타고 남하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 전문병들이 남측 후방 곳곳에 침투하여 휴대형 전파교란장비를 사용하면, 최전방에 배치된 한국군 전파교란감시소들은 자기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서 전파교란작전이 진행되는지 알지 못하고 북쪽만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근 한국군 수뇌부는 삼성전자가 시판하는 지능전화 ‘갤럭시 S20’을 개조한 군사작전용 지능전화 180대를 2021년 상반기에 한국군 전투원들에 보급하여 작전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전투지휘체계를 구축하려고 한다. 한국군 수뇌부의 상황오판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사진 3>

 

▲ <사진 3>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부대는 조선인민군 포병들이 쏜 포탄을 추적할 수있는 대포병레이더 AN/TPQ-37을 보유하고 있었다. 연평도 포격전이 시작되기 직전연평부대는 자기들의 실탄사격훈련 중에 대포병레이더를 가동하고 있었다. 위의 사진은 미국군이 운용하는 대포병레이더 AN/TPQ-37을 촬영한 것이다. 그런데 포격전이 일어났을 때, 연평부대 대포병레이더는 북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전혀 탐지하지못했다. 왜냐하면,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가 강력한 교란전파를 발사하여 연평부대의 모든 전자장비들을 '먹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4. 경고사격 120발, 응징사격 240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연평도 포격전 당일 오후 2시 34분부터 2시 55분까지 21분 동안 1차 사격을 계속했다. 그들은 황해남도 강령군 개머리해안에 있는 진지에서 방사포를 쐈다. 개머리해안에서 연평도까지 거리는 약 12km다.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나기 약 1개월 전인 201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열병행진에 1990년식 122mm 40관 방사포가 등장했는데, 바로 그 방사포가 연평도 포격전에 동원되었다. 4축8륜 차량에 탑재된 이 방사포의 사거리는 20.4km다. 122mm 방사포탄 1발의 탄체중량은 66.3kg이고, 장약중량은 27kg다. 122mm 일반포탄의 장약중량은 3.6kg인데, 122mm 방사포탄의 장약중량은 그보다 8배나 더 무겁다. 이것은 방사포탄의 파괴력이 일반포탄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는 연평도 포격전에 참가한 한국군 연평부대 장병들의 상황진술이 실렸는데,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K-9 자주포 4문을 사격위치로부터 서서남방 4.8km 해상으로 쏘는 실탄사격훈련을 했는데, 1문당 15발씩 모두 60발을 쏘았다.  

2) 4번포가 마지막 포탄을 쏘려고 장전했는데, 불발탄이 포신에 끼어 빠지지 않아 당황한 사이에 북에서 포탄들이 날아왔다. 처음에는 포신에 끼어있는 불발탄이 터진 줄로 알았는데, 나중에 그것이 북에서 날아온 포탄인 것을 알았다.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1차 사격에서 몇 발을 쏘았을까?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북에서 포탄을 몇 발 쏘았는지 계산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밤새 분석하고 평가해 현재까지 판단하고 있는 것은 170발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0년 11월 24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소방방재청은 상황보고에서 “북이 200여 발을 쐈다”고 밝혔고, 연평도 주민들의 체험담에 따르면, 포탄 200여 발이 “비오듯 쏟아졌다”고 한다.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위급한 순간에 낙탄수를 계산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200여 발이 쏟아졌다는 말은 대피소에 들어간 연평도 주민들이 밖에서 들리는 폭음을 듣고 대충 추산한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조선인민군 방사포중대는 122mm 40관 방사포를 9문씩 보유하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기본전투단위는 중대이므로, 연평도 포격전에 1개 방사포중대가 참가한 것이 분명하다. 1개 방사포중대가 122mm 40관 방사포 9문을 모두 쏘았으므로, 대피소에 들어간 연평도 주민들은 300여 발의 폭음을 들었다고 말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200여 발의 폭음을 들었다고 했으니, 약 100여 발의 폭음을 듣지 못한 것이다. 왜 폭음을 듣지 못한 것일까?

 

이 의문을 풀어줄 단서는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 들어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연평도 앞바다에 포탄 90여 발이 떨어졌다고 한다. 포탄이 바다에 떨어지면 폭발하지 않기 때문에 폭음이 들리지 않는다.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쏜 122mm 방사포탄 90여 발이 연평도까지 오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진 것을 보고, 당시 남측 언론매체들은 122mm 방사포가 너무 낡아서 오발탄이 90여 발이나 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방사포가 아무리 낡았다고 해도 면적이 6.14㎢나 되는 연평도를 맞추지 못하고, 90여 발을 연속 오발하는 방사포는 있을 수 없다. 더욱이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연평도 포격전에서 사용한 방사포는 포격전이 일어나기 약 1개월 전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열병행진에 등장한 1990년식 122mm 40관 방사포가 아닌가.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100여 발을 연평도로 쏘지 않고, 의도적으로 연평도 앞바다로 쏘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연평도를 타격하기 전에 앞바다에 120발을 낙탄하는 경고사격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연평부대에게 그런 경고사격이 통할 리 없었다. 연평부대는 실탄사격을 계속했다. 경고사격이 전혀 통하지 않자,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연평도를 향해 응징사격을 시작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122mm 40관 방사포 3문을 동원하여 연평도 앞바다로 120발을 쏘는 경고사격을 한 다음에, 나머지 방사포 6문을 동원하여 연평도로 240발을 쏘는 응징사격을 했던 것이다. 

 

2010년 10월 23일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제1탄은 연평부대 병사생활관에 떨어졌고, 곧이어 연평부대 사무실, 창고, 훈련장, 탄약고 주변 등에 떨어졌다고 한다. 방사포탄 200여 발을 맞은 한국군 연평부대는 오후 2시 49분에 K-9 자주포로 1차 대응사격을 했다. 선제타격을 받고 15분이 지나서 대응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원래 한국군 군사교범에는 선제타격을 받으면 4분 안에 즉각 대응사격을 하도록 규정되었다. K-9 자주포는 사격명령이 떨어지면, 30초 만에 제1탄을 쏠 수 있다. 하지만 방사포탄 200여 발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선제타격을 받은 상황에서는 군사교범의 사격규정이나 자주포의 사격성능 같은 것은 무의미했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는 연평포 포격전에 참가한 한국군 연평부대 장병들의 상황진술이 들어있는데 그 진술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 뒤 약 5초 만에 굉음과 함께 파편과 돌이 튀었다. 포(K-9 자주포를 뜻함-옮긴이)에 파편이 부딪히는 소리가 비오듯 들렸고, 포 안에까지 돌덩이가 튀었다. 슝 소리와 함께 굉음이 귀를 울리더니 주변에 포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고, 땅을 뒤흔드는 진동이 느껴졌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고 모두가 경황이 없었다.”

2) 부대 안에 떨어진 포탄 중에서 1발은 1번포가 위치한 포대 안을 직격했고, 다른 1발은 3번포 포대외벽을 직격했다. 3번포에 붙은 불은 “간신히” 껐지만, 1번포는 화재가 너무 심해 사격하지 못했다.  

3) 피격으로 불이 나면서 K-9 자주포 사격통제장치가 고장이 나서, 하는 수 없이 수동식으로 사격해야 했다.  

4) K-9 자주포 뒤쪽에 놓아둔 잔여장약들에 불이 붙어 폭발하는 바람에 K-9 자주포 2문은 사용하지 못했다. <사진 4>

 

▲ <사진 4> 위쪽 사진은 한국군 연평부대가 보유한 K-9 155mm 자주포가 이동하는 모습이고, 아래쪽 사진은 평양에서 진행된 열병식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의122mm 40관 방사포가 행진하는 모습이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122mm 40관 방사포 3문을 동원하여 연평도 앞바다로 120발을 쏘는 경고사격을 한 다음에, 나머지 방사포 6문을 동원하여 연평도로 240발을 쏘는 응징사격을 했다.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의 교란전파발사로 대포병레이더가 마비되는 바람에방사포 사격원점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던 한국군 연평부대는 미리 입력된 타격좌표에 따라 무도를 향해 K-9 자주포 3문을 쏘았다.  

 

 

5. 155mm 자주포와 85mm 고사포가 충돌한 격전 

 

2010년 11월 2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오후 2시 49분부터 시작된 1차 대응사격에서 연평부대는 타격좌표가 미리 입력된 무도를 향해 K-9 자주포를 쏘았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황해남도 강령군 개머리해안에서 방사포를 쏘았는데, 대포병레이더가 마비되는 바람에 방사포 사격원점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한국군 연평부대는 미리 입력된 타격좌표에 따라 무도를 향해 K-9 자주포를 쏜 것이다. 당시 연평부대가 무도를 향해 사격한 K-9 자주포는 3문이다. 연평부대는 K-9 자주포 6문 중에서 3문은 선제타격을 받고 무용지물로 된 것이다. 그들은 K-9 자주포 3문을 동원하여 무도를 향해 50여 발을 쏘았다. 2010년 12월 2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연평부대 포병들이 쏜 K-9 자주포 15발이 무도방어대 안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미리 갱도진지에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인명피해가 전혀 없었다. 2010년 11월 26일 <KBS> 텔레비전방송 보도에 따르면, 당일 연평도에서 망원렌즈 촬영기로 무도방어대를 촬영했더니, “북측 해안포는 포신을 연평도 쪽으로 계속 열어놓고 있었고, 포신상태도 멀쩡한 상태였다. 동굴(갱도진지를 뜻함-옮긴이) 곳곳에 배치된 북측 포신들도 똑같이 멀쩡했다. 특히 해안포 근처로 북한군이 한가롭게 돌아다니거나 떼를 지어 어디론가 천천히 향하는 등 긴박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2010년 11월 26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K-9 자주포는 최대발사속도로 1분당 6발을 쏠 수 있지만, 최대발사속도로 계속 쏘면 포신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포탄이 포신 안에서 터질 수 있고, 뜨겁게 달아오른 포신에서 포탄을 쏘면 오발되기 때문에, 처음 6발을 쏜 다음에는 포신의 열을 식히기 위해 일정한 시차를 두고 지속발사속도로 쏘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속발사속도는 이론적으로 분당 2발이라고 하지만, 실전상황에서는 분당 1발밖에 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평부대 포병들은 K-9 자주포를 분당 1발씩 쏘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연평부대 포병들이 K-9 자주포 50여 발을 사격하기까지 약 12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갱도진지에서 사격준비를 갖추고 대기 중이던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한국군 연평부대로부터 불의의 기습타격을 받았으나, 동요하지 않고 연평부대의 사격이 뜸해질 때를 기다리며 반격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연평부대 포병들의 사격은 오후 3시 5분경에 끝났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그로부터 5분이 지난 오후 3시 10분 반격에 나섰다. 이것을 2차 사격이라고 부른다. 

 

무도방어대에는 방사포가 없고 85mm 견인고사포만 있다. 사고도가 10.5km인 85mm 견인고사포는 공중으로 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상목표를 향해 쏘는 곡사포로도 사용하는 2중용도의 포다. 곡사포로 사격할 때, 사거리는 15.65km다. 그러므로 무도방어대에 배치된 85mm 견인고사포는 황해남도 상공으로 내습하는 적기를 격추할 수도 하고, 연평도를 공격할 수도 있다. 85mm 견인고사포는 분당 12발씩 사격하는 매우 빠른 사격속도를 자랑한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평소에 타격좌표를 외우고 조준사격연습을 해왔으므로, 즉시 85mm 고사포를 갱도진지에서 끌어내 조준사격을 시작했다.  

 

그런데 연평도 포격전 당일 현장에는 초속 4.4m의 바람이 불었다. 그런 환경에서는 포병들이 탄도를 정확하게 계산해 포를 쏘더라도, 포탄이 비행하는 중에 측풍을 맞으면 풍향에 따른 오차가 발생하므로, 명중사격을 하기 힘들다. 그러나 무도방어대 포병들의 조준사격실력은 놀라웠다. 그들이 쏜 85mm 포탄은 마치 두 눈이 달린 것처럼 연평도 타격대상들에 명중했다. 2010년 11월 24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해안포부대(무도방어대)는 2차 사격에서 연평부대 레이더에 포를 쏘았다고 한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밝히지 않았으나, 연평부대 레이더는 무도방어대 포병들이 쏜 명중탄에 맞아 파괴되었다. 2010년 11월 26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해안포부대(무도방어대)가 쏜 포탄은 유류 20,000리터가 저장된 연평부대 유류저장시설과 연평부대 피복창고에 각각 명중했고, 이전에 헌병대가 쓰던 우체국, 이전에 군사시설로 사용되던 상점, 보건소 등에 각각 명중했다고 한다.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부대 유류저장시설이 폭발하여 산불로 번졌다고 한다. 산불로 연평도 숲의 70%가 불탔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오후 3시 10분부터 4시 42분까지 계속된 2차 사격에서 85mm 곡사포 80발을 조준사격하여 연평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2010년 11월 30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무도방어대 포병들이 2차 사격에 사용한 포탄 1발의 장약중량은 700g인데, 장약에 알류미늄분말을 혼합하여 폭발력을 강화한 포탄이라고 한다. 또한 그들이 쏜 포탄은 표적에 충돌하여 폭발하는 직격탄이 아니라, 근접신관을 장착하고 타격대상 4~7m 앞에서 공중폭발하여 타격효과를 극대화하는 포탄이라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8월 17일 무도방어대를 시찰하면서 연평도 포격전에서 명중탄을 날린 무도방어대에 영웅방어대 칭호를 수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9월 2일과 2017년 5월 4일에도 무도방어대를 시찰하면서 무도방어대 포병들의 전투준비태세에 만족을 표시했다. 

 

연평부대 포병들도 오후 3시 25분부터 K-9 자주포 사격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사격대상을 바꿔, 무도가 아니라 개머리해안을 향해 쏘았다. 연평부대 포병들은 개머리해안진지로 K-9 155mm 자주포를 쏘고,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연평부대로 85mm 고사포를 쏘는 치렬한 교전이 오후 3시 25분부터 3시 41분까지 계속되었다. 

 

2010년 12월 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부대 포병들은 개머리해안에 있는 포진지를 향해 K-9 자주포 30발을 쏘았다고 한다.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조선인민군 해안포는 갱도진지에 들어있기 때문에 K-9 자주포로는 타격하기 어려워, 해안포 중대 막사를 타격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2010년 12월 2일 <한겨레> 보도와 2013년 11월 21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으로부터 사흘이 지난 11월 26일에 촬영된 상업위성사진에는 연평부대가 쏜 K-9 자주포 14발이 개머리해안 포진지를 맞추지 못하고 엉뚱하게 포진지 후방으로 90~100m 떨어진 논밭에 떨어진 낙탄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2010년 12월 2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상업위성사진을 자세히 판독하였더니, 개머리해안 포진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K-9 자주포 6발의 낙탄흔적을 추가로 찾아냈다고 한다. 이처럼 어지럽게 흩어진 낙탄흔적은 연평부대 포병들이 개머리해안 포진지를 향해 K-9 자주포 20발을 쏘았으나, 1발도 타격대상을 맞추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무도방어대에서 그러한 것처럼, 개머리해안 포진지에서도 선제타격을 마치고 재빨리 갱도진지 안으로 대피했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없었고, 경미한 물적 피해만 발생했다. 

 

누가 봐도, 무도방어대 85mm 고사포는 연평부대 155mm 자주포의 상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85mm 고사포의 포구경은 155mm 자주포에 비해 70mm나 짧을 뿐 아니라, 85mm 고사포는 수동사격장치로 쏘고, 155mm 자주포는 자동사격장치로 쏘기 때문이다. 또한 85mm 고사포의 사거리는 155mm 자주포에 비해 30km나 짧다. 그러나 실전상황에서는 뜻밖에도 85mm 고사포가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 85mm 고사포는 사격속도가 155mm 자주포에 비해 10배 이상 빨랐다. 연평도 포격전은 현대전의 승패가 공격속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진리를 입증했다.

둘째, 무도방어대 포병들의 높은 사격명중률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되었다. 평소에 명중사격을 연습해온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실전상황에서 사격능력을 남김없이 발휘했다. 연평도 포격전은 현대전의 승패가 정밀타격에 의해 결정된다는 진리를 입증했다. <사진 5> 

 

▲ <사진 5> 위쪽 사진은 2017년 5월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평도 포격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무도방어대를 시찰하는 장면이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연평도 포격전에서 경미한 피해만 입었고, 연평부대에 명중탄을 퍼부어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무도방어대에 영웅방어대 칭호를 수여했다. 위쪽 사진에 보이는 견인포는 연평도 포격전에서 맹활약하여 영웅포 칭호를 수여받은 85mm 견인고사포다. 아래쪽 사진은 로씨야의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85mm 견인고사포 실물이다.85mm 견인고사포의 두 가지 특징은 공중을 방어하는 고사포로도 쓸 수 있고, 적진을 타격하는 곡사포로도 쓸 수 있다는 것과 사격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6. 국지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

 

연평도 포격전이 계속되자 조선인민군 수뇌부는 황해남도에 배치된 전투부대들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총공격태세로 전환했다. <연합뉴스> 2020년 11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당일 백령도가 마주보이는 북측 해안포 갱도진지들이 차폐문을 열고 사격준비를 갖추었다고 한다. 2010년 11월 24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해 5도 분쟁수역 인근의 북측 해안과 섬들에 밀집배치된 해안포는 약 1,000문이라고 한다. 해안포 1,000문이 연평도와 백령도를 조준하여 사격준비태세를 갖춘 것이다. 

 

2010년 11월 27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중에 조선인민군 서해함대사령부는 황해남도 옹진군 사곶에 배치된 해군 8전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고, 그에 따라 8전대에 소속된 모든 전투함선들과 전투병력이 총공격태세에 돌입했다고 한다. 당시 해군 8전대가 보유한 고속정과 경비정은 70여 척 이상이었다.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그-23기 5대가 황해남도 황주비행장에서 출격대기상태에 있고, 황해남도 과일비행장과 온천비행장에서도 미그-19기들과 미그-23기들이 출격대기상태에 있다고 한다. 또한 황해남도에 배치된 금성-1 지대함순항미사일들이 발사태세를 취했다고 한다. 금성-1 지대함순항미사일의 사거리는 160km다. 2010년 11월 28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황해남도에 번개-1 지대공미사일이 전진배치되었다고 한다. 번개-1 지대공미사일은 사거리가 45km이고, 요격고도가 25km다. 2014년 2월 24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태영은 포격전 중에 조선인민군 반항공부대가 SA-5 장거리대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그가 언급한 SA-5 장거리대공미사일은 사거리가 250km에 이르는 번개-5 반항공미사일이다. 

 

우발적인 국지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이 극도로 높아졌다. 그런 사태를 우려한 한국군은 당일 오후 5시 55분 조선인민군에게 사격중지를 촉구하는 전화통지문을 발송했다. 만일 한국군이 사격중지를 촉구하지 않았더라면, 국지충돌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전면전이 일어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조선인민군 해안포 1,000문이 연평도와 백령도를 향해 불을 뿜었을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도에는 한국군 1,200명이 주둔하였고, 백령도에는 한국군 4,000명이 주둔하였는데, 그들은 조선인민군의 집중사격을 받을 급박한 위험에 빠졌던 것이다. 

 

남북대화와 조미대화가 완전히 중단되고 군사대결상태에 들어선 오늘, 한국군 수뇌부는 연평도 포격전에서 뼈아픈 교훈을 찾고, 현 상황을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기 전에, 북침전쟁연습을 재개하려는 경거망동을 중지해야 한다.

2020/11/18

폭발점으로 다가서는 군사정세

 [한호석의 개벽예감](419)

자주시보 2020년 11월 16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군을 몇 시간 안에 궤멸시킨다

2. 제4차 대만해협위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3. 조선인민군과 한미연합군의 싸움, 중국인민해방군과 미일동맹군의 싸움 

4. 동북아시아 군사정세는 폭발점으로 다가서고 있다

 

 

1.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군을 몇 시간 안에 궤멸시킨다

 

2020년 11월 4일 대만 언론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황수광(黃曙光) 참모총장과 쉬옌푸(徐衍璞) 부참모장을 비롯한 대만군 수뇌부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명령에 따라 타이베이(臺北) 북쪽 다즈(大直)에 있는 헝산(衡山)전쟁지휘소에 들어갔다고 한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을 심각하게 우려한 대만군 수뇌부가 전쟁지휘소에 들어가 대만군에게 경계태세를 명령한 것이다. 전쟁이 임박했을 때, 군수뇌부는 전쟁지휘소에 들어간다. 

 

대만군 수뇌부는 2020년 9월 19일에도 헝산전쟁지휘소에 들어가 대만군에게 경계태세를 명령했었다. 2020년 9월 18일 중국인민해방군 전략폭격기와 전투기 18대가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가 대만 해안에서 불과 68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상공까지 바짝 접근했고, 이튿날에도 폭격기와 전투기 19대가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가 또 다시 대만 해안 상공에 바짝 접근했으므로, 대만군 수뇌부는 즉시 헝산전쟁지휘소로 직행하여 대만군에게 경계태세를 명령했던 것이다. 당시 이런 위기상황이 조성된 원인은 2020년 9월 17일 키드 크락(Keith Krach) 미국 국무부 차관이 이끄는 국무부 대표단이 대만을 방문하여 중국을 극도로 자극한 데 있었다.  

 

그런데 2020년 11월 4일에는 중국인민해방군 전자전기 1대가 대만 서남부 방공식별구역에 들어갔을 뿐이고 전략폭격기와 전투기를 동원한 대만근접비행은 없었는데도 대만군 수뇌부는 헝산전쟁지휘소에 들어가 대만군에게 경계태세를 명령했다. 이런 급박한 움직임은 대만군 수뇌부가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근접비행보다 더 심각한 군사적 위험을 직감하고 전쟁지휘소에 들어가 대만군에게 경계태세를 명령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대만군이 직감한 심각한 군사적 위험은 무엇인가? 나는 2020년 11월 9일 <자주시보>에 실린 ‘공동전선에서 포성이 울릴 때’라는 제목의 글에서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21년 7월 23일을 앞두고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을 수행할 다섯 가지 주객관적 조건이 성숙되었다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그 조건들을 여기에 다시 열거한다. 

 

- 중국은 대만통일전쟁준비를 완료했다.

-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은 분리독립책동에 광분하면서 중국을 극도로 자극하고 있다.

- 미국은 대만문제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면서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

- 보건재앙과 정치혼란에 빠진 미국의 전쟁능력이 약화되었다.

-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유리한 군사정세가 한반도에 조성되었다.

 

중국 <신화퉁신(新華通信)> 2020년 11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20년 11월 13일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제출한 ‘중국인민해방군 연합작전강요’라는 제목의 군사전략문서를 비준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연합작전이라는 말은 육군, 해군, 공군, 전략로켓군의 연합작전을 뜻하므로, 지금 중국인민해방군은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언론매체 <환추시바오(環球時報)> 2016년 12월 7일 사설에 따르면, “인민해방군은 몇 시간 안에 대만군을 궤멸시키고 대만섬을 점령할 능력이 있다. 대만을 도우려는 미국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전투는 끝날 것”이라고 한다. <사진 1> 

 

▲ <사진 1>위의 사진은 대만 북쪽 다즈에 있는 헝산전쟁지휘소 정문을 촬영한 것이다. 헝산전쟁지휘소는 대만군 전쟁지휘소다. 이 전쟁지휘소는 당연히 지하에 건설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진에 나타난 지휘소 정문은 어느 중소기업사업장 정문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다. 저런 분위기 속에서 전쟁지휘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2020년 11월 4일 대만군 수뇌부는 헝산전쟁지휘소에 들어가 대만군에게경계태세를 명령했다. 전쟁이 임박했을 때, 군수뇌부는 전쟁지휘소에 들어간다.  

 

매우 다급해진 대만군은 전시동원체제를 마련했다. 2020년 10월 22일 옌더파(嚴德發) 대만 국방부장은 입법원 외교국방위원회에서 “차이잉원 총통이 동원령을 내리면, 45만명 병력이 대만방어작전에 나설 것”이라고 하면서, 전시에 정규군 18만5,000명과 예비군 26만명이 동원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10월 27일 대만 언론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대만군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대처하기 위한 대규모 전투훈련을 대만 각지에 있는 5개 작전지구에서 일제히 진행했다고 한다. 

 

대만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만 국가안전국 추궈정(邱國正) 국장은 2020년 10월 29일 대만 입법원 외교국방위원회에서 “현 시기 양안(중국과 대만을 뜻함-옮긴이) 사이에서 전면전이 일어날 확률이 평소보다 높다”고 말했다고 한다. 바로 그때 어느 대만 입법위원이 최근 중국 모래채취선들이 대만군이 주둔하는 마쭈렬도(馬祖列島) 인근 해역에 자주 출현하는 것이 무력공격조짐이 아니냐고 추궈정 국장에게 거듭 물었다. 대만군이 요새화한 마쭈렬도는 중국 본토 해안에서 불과 3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몇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졌다. 질문을 받은 추궈정 국장은 직답을 피하면서 “여러 가능성을 두고 분석하고 있다”고 아리송하게 답변했다.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해협에 있는, 대만군이 주둔하는 작은 섬들을 공격하는 국지전을 차츰 전면전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만통일전쟁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 대만해협에서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즉시 전면전에 돌입하는 방식으로 대만통일전쟁을 수행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러므로 무력공격조짐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0년 11월 23일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연평도를 포격했다. 그런데 당일 오후 6시 30분(서울시간으로 오후 7시 30분) 당시 대만 총통 마잉주(馬英九)는 총통부 청사에서 비상국가안전회의를 긴급히 소집했고, 대만군 수뇌부는 헝산전쟁지휘소에 들어가 대만군에게 경계태세를 취하도록 명령했다. 연평도 포격전은 오후 3시 41분에 끝났고, 한국 외교안보장관회의는 오후 4시 35분에 시작되었는데, 대만 비상국가안전회의는 오후 7시 30분에 시작되었고, 대만군 수뇌부는 전쟁지휘소에서 대만군에게 경계태세를 명령했던 것이다. 포격전은 대만에서 약 1,000km 떨어진 연평도에서 벌어졌으나, 대만군이 즉시 경계태세를 취한 것은 한반도 군사정세와 대만해협 군사정세가 얼마나 밀접히 결부되었는지를 보여준다.    

 

 

2. 제4차 대만해협위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전진, 전진, 태양을 따라 나가자

최후 승리를 위해, 전국 해방을 위해“

 

이것은 중국인민해방군가의 맨 마지막 소절이다. 여기서 말하는 “최후 승리”와 “전국 해방”은 대만통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중국 전국을 해방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실만 봐도, 대만통일전쟁이 중국의 국가운명을 좌우하는 핵심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대만통일전쟁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직후부터 중국의 국가운명을 좌우하는 핵심문제로 되었다. 

 

1949년 12월 7일 중국 본토에서 벌어진 내전에서 참패한 장졔스(蔣介石)의 국민당군은 130만 명에 이르는 지지자들과 함께 대만으로 달아났다. 1950년 5월 1일 중국인민해방군은 중국 최남단에 있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하이난섬(海南島)을 점령했고, 그때부터 대만을 점령하기 위한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면 25년 동안 지속된 내전이 종식될 수 있었다. 중국인민해방군 정예부대들은 대만 해안으로부터 약 150km 떨어진 푸젠성(福建省)으로 집결하여 대만통일전쟁을 준비했다. 중국은 대만통일과 내전종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바로 그런 시기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6.25전쟁이 일어난 때로부터 이틀이 지난 1950년 6월 27일 당시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은 “대만해협의 중립화는 미국의 최고 이익”이라고 하면서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 해군 제7함대를 대만해협에 급파하여 해상을 봉쇄했다. 미국의 대만해협봉쇄는 유엔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한 불법행위였지만, 1949년 4월 23일에 창설된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은 무장력이 너무 약했기 때문에 미국 해군 제7함대에 맞설 수 없었다. 미국은 6.25전쟁이 거의 끝나가던 1953년 2월 2일에 가서야 대만해협봉쇄를 해제했는데, 6.25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중국은 대만통일전쟁의 결정적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전쟁의 포성이 멎었던 1953년 7월 27일 이후 중국은 대만통일전쟁을 위한 군사행동을 재개했다. 제1차 대만해협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푸젠성에 집결한 중국인민해방군 포병부대들은 1954년 8월 11일부터 9월 3일까지 푸젠성에서 3~4km 떨어진, 대만군이 주둔하는 진먼댜오(金門島)와 마쭈렬도에 집중포격을 퍼부었고, 11월에는 다첸제도(大陳諸島)에 집중포격을 퍼부었다. 푸젠성과 저장성(浙江省) 인근에 있는 여러 섬들에서 중국인민해방군과 대만군이 치렬한 공방전을 벌어는 가운데, 중국인민해방군은 1955년 1월 18일 다첸제도에서 13km 떨어진 이장샨댜오(一江山島)에 상륙하여 그 섬을 점령했다. 대만통일전쟁의 결정적인 시기가 다가왔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의 대만통일을 가로막으려고 광분했다. 1955년 1월 29일 미국 연방상원과 연방하원은 ‘대만결의안’을 의결했다. 그 결의안에서 미국 연방의회는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무력개입을 하는 전쟁권한을 미국 대통령에게 주었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 대통령의 전쟁권한에 중국 본토에 핵공격을 가하는 권한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이다. 1955년 3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는 미국이 중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느니 뭐니 하면서 핵공갈을 늘어놓았고, 당시 미국 해군 참모총장 로벗 카니(Robert B. Carney)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중국의 군사력을 파괴하는 전쟁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느니 뭐니 하면서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중국 본토에 대한 미국의 핵공격을 반대한다는 당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Winston L. S. Churchill)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중국은 미국의 핵공갈이 공갈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중국이 6.25전쟁에 참전하였을 때 중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므로, 중국인민해방군이 대만해방전쟁에 돌입하는 경우 중국 본토가 미국의 핵공격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가 중국의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되어 중국인민해방군 포병부대들은 1955년 5월 1일 대만군이 점거하고 있는 대만해협의 작은 섬들에 대한 집중포격을 중지했다. 

 

포격은 중지했지만, 대만통일을 집요하게 가로막는 미국의 핵위협을 물리치고 기어이 대만통일을 실현하려는 중국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중국이 미국의 핵위협을 물리치는 길은 핵무장밖에 없었다. 그래서 1955년 7월 4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중국의 핵무기개발사업을 지휘할 정책담당자 3인을 지명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제2차 대만해협위기가 발생했다. 1958년 8월 23일 오후 6시 중국인민해방군 포병부대들은 대만해협 진먼댜오와 마쭈렬도에 포탄 50,000발을 퍼붓는 집중포격을 가했다. 이튿날 밤 중국인민해방군 상륙부대는 대만해협의 작은 섬 둥딩댜오(東碇島)에 상륙하기 위한 전투에 돌입했다. 화들짝 놀란 미국은 제7함대를 대만해협에 급파했고, 최신형 전투기들을 대만 공군기지들에 배치했으며, 미국 본토에 있는 반항공미사일부대 1개 대대를 대만에 배치했고, 203mm 곡사포와 155mm 곡사포를 대만군 포병부대에 제공했다. 

 

제2차 대만해협위기 중에 중국인민해방군은 집중포격에서 멈추지 않고 공습작전을 전개했다. 1958년 9월 22일 중국 본토에서 이륙한 중국인민해방군 J-5 전투기 100대가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대만 공습에 나섰다. 그에 맞서 대만군도 전투기 32대를 긴급히 출격시켰다. 대만해협 상공에서 조우안 쌍방 전투기들은 치렬한 공중전에 돌입했다. 100 대 32의 공중전이 벌어졌으므로, 중국인민해방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이길 것으로 누구나 예상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만군 전투기들은 비밀병기를 사용하여 중국인민해방군 전투기들을 한 대씩 격추하기 시작했다. 그 비밀병기가 바로 미국이 대만에 긴급히 보내준 AIM-9 공대공미사일이다. 공대공미사일이라는 개념 자체를 알지 못했던 중국인민해방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어이없게도 20여 기를 격추당하고 퇴각했다. 그로써 미국이야말로 대만통일전쟁을 가로막은 주적이라는 사실이 또 다시 입증되었다.  

 

1995년 7월 21일 제3차 대만해협위기가 발생했다. 대만독립을 획책하는 리덩후이(李登輝)가 대만총통에 당선되어 국가분렬책동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기 때문에 중국은 군사행동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5년 7월 21일부터 1996년 3월 23일까지 8개월 동안 지속된 제3차 대만해협위기 중에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해협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위협사격을 여러 차례 진행했고, 푸젠성에 전투부대들을 집결시켜 대만상륙전을 연습했다. 화들짝 놀란 미국은 항모전투단 2개를 대만 인근 해역으로 급파했고, 100,000t급 핵추진항공모함과 40,000t급 강습상륙함을 비좁은 대만해협 안으로 들이밀면서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상륙을 서둘러 차단했다. 

 

그러나 미국군에게 겁을 먹고 물러설 중국인민해방군이 아니었다. 중국인민해방군은 8,400t급 미사일구축함과 3,000t급 잠수함들을 출동시켰다. 그 구축함에는 항공모함을 공격할 반함선미사일을 탑재되었고, 그 잠수함들에는 항공모함을 공격할 중어뢰가 탑재되었다. 또한 중국인민해방군은 최신형 전투기 수호이-30을 100대나 출격시켰다. 대만통일전쟁이 눈앞에 다가왔다. 전쟁공포에 빠진 많은 대만주민들이 미국과 캐나다로 도피했다. 중국인민해방군 미사일부대들이 탄도미사일을 집중발사하여 대만군 방공망을 파괴하면, 중국인민해방군 상륙부대들이 대만해협을 건널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중국은 제3차 대만해협위기 속에서도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하지 못했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13년 1월 1일 중국 언론매체 <환구망> 보도기사에서 그 사연이 밝혀졌다. 보도에 따르면, 1996년 제3차 대만해협위기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미국은 중국인민해방군 미사일부대들이 사용하는 위성위치확인체계신호(GPS signal)를 조작하는 전자전을 은밀히 벌여 중국인민해방군 미사일부대들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비행 중에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도록 교란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어 중국인민해방군 미사일부대들이 대만 인근 해상으로 발사한 탄도미사일 3발 가운데 2발이 목표수역에서 벗어났다. 1996년 당시 중국은 전자교란전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 전자전으로 탄도미사일의 비행을 교란하면, 중국으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1996년에 일어난 제3차 대만해협위기 속에서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20년 1월 19일 중국 웨이보에 유출된 중국인민해방군 전쟁지휘소 내부를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을 보면, 대만섬 남쪽에 상륙하는 작전지휘소라는 지휘소명칭이 보이고, 대만섬 남쪽에 상륙하는 작전경로도라는 제목의 대형지도가 벽에 걸려있다. 상륙지대를 보여주는 커다란 모형판이 실내 중앙에 놓여 있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사진 속의 전쟁지휘소는 대만 남부해안에 상륙하는 작전임무를 맡은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륙전대의 전쟁지휘소인 것으로 보인다. 대만섬 서부해안은 높은 산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상륙하기에 불리하다. 그래서 중국인민해방군은 남부해안과 북부해안에 상륙하는 작전계획을 세워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제3차 대만해협위기가 발생했던 때로부터 어언 25년 세월이 흘렀다. 그 긴 세월 동안 중국은 미국의 무력개입을 차단하고 대만통일전쟁을 수행할 강한 힘을 키워왔다. 이를테면, 중국인민해방군 미사일부대들은 대만의 전략거점들을 조준한 미사일 2,500발을 집중배치했다. 그리고 대만해방전쟁에서 중심역할을 수행할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은 자기의 무장력을 대폭 강화했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항공모함 2척 

핵추진잠수함 12척을 포함함 잠수함 79척

구축함 50척

호위함 49척

경비함 71척

미사일정 109척

구잠함 94척

경비정 17척

소해정 36척

강습상륙함 2척

상륙수송함 8척

상륙함 32척

상륙정 33척

 

대만해방전쟁에서 중심역할을 수행할 중국인민해방군 공군도 해군에 뒤질세라 자기의 무장력을 대폭 강화했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전투기 1,200대

공격기 150대

폭격기 153대

정찰기 139대

수송기 445대

훈련기 1,618대

헬기 1,157대

 

그것만이 아니었다.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통일전쟁에 개입한 미국군을 격퇴할 강한 무장력도 갖췄다. 만일 상황을 오판한 미국이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 본토를 공격하면, 중국은 사거리가 4,000km에 이르는 정밀타격탄도미사일 둥펑-26을 발사하여 괌과 오끼나와에 설치된 미국의 군사전략거점들을 외과수술식으로 제거할 수 있다. 만일 상황을 오판한 미국이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을 저지하기 위해 항모전투단을 대만 인근 해역으로 출동시키는 경우, 중국은 사거리가 1,500km에 이르는 반함선탄도미사일 둥펑-21D를 발사하여 미국 항모전투단을 격침할 수 있다.  

 

지금 중국은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중국은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21년 7월 23일 이전에 오끼나와 ⟶ 대만 ⟶ 필리핀 ⟶ 보르네오를 연결하는 제1도련선(島連線) 밖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밀어내려는 평정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제1도련선 평정에서 핵심문제는 대만통일이다. 중국이 대만통일을 실현하면 일본 오끼나와는 중국의 포위망 안에 들어가게 된다.

 

또한 중국은 제1도련선 평정계획을 실행한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49년 10월 1일 이전에 일본 오가사와라제도 ⟶ 괌 ⟶ 싸이판 ⟶ 파푸아뉴기니를 연결하는 제2도련선 밖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몰아내려는 제2차 평정계획을 추진할 것이다. 제2도련선 평정에서 핵심문제는 괌에 배치된 미국의 군사력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3. 조선인민군과 한미연합군의 싸움, 중국인민해방군과 미일동맹군의 싸움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미연합군과 미일동맹군이 서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의 측면을 공격하는 것이다. 한미연합군과 미일동맹군이 중국인민해방군의 측면을 공격하면,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혹심한 피해를 입고 승리할 것이다. 중국은 어떻게 하면 혹심한 피해를 입지 않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를 고심했다. 

 

중국의 고심은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했을 때 과연 한미연합군과 미일동맹군이 자동적으로 무력개입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결부된 것이다. 우선 한미연합군의 무력개입문제부터 살펴보자.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한미연합군의 무력개입문제를 결정하는 근거로 된다. 그 조약의 제2조는 다음과 같다. 

 

“당사국은 어느 일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단독적으로나 공동으로나 자조와 상호원조에 의하여 무력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하고 강화시킬 것이며, 본 조약을 실현하고 그 목적으로 추진할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 하에 취할 것이다.”

 

위에 인용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에 나오는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는 뜻이 아니라, 북이 남을 공격한다는 뜻이므로, 이 조항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과 무관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다음과 같다.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지배 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지배 아래로 합의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위의 인용문은 암시적인 표현이 들어있는 데다, 매끄럽게 번역하지 못한 문장이어서 뜻을 이해하기 힘들다. 위의 인용문을 직설적인 용어로, 알기 쉽게 다시 풀어쓰면 다음과 같은 뜻이 드러난다. 

 

“중국이 한국의 행정지배 아래에 있는 영토(군사분계선 이남지역)에 무력공격을 하는 경우, 그리고 중국이 앞으로 한국이 흡수통일하여 행정적으로 지배하게 될 영토(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 무력공격을 하는 경우, 미국과 한국은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 자국의 헌법절차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위의 해석문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6.25전쟁에 참전하여 한국을 공격했던 중국이 한국을 또 다시 공격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또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에 따르면, 중국이 한국을 공격하는 경우에도 미국이 자동적으로 무력개입을 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헌법절차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헌법절차에 따라 행동한다는 말은 미국 연방의회에서 무력개입문제를 의결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남측이 북측을 흡수통일하는 경우 중국이 한국을 공격하는 상황을 가정한 조항이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는 상황을 가정한 조항은 아니다. 따라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과 무관하다. <사진 3> 

 

▲ <사진 3> 1961년 7월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김일성 주석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는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위의 사진은 김일성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가 조약문에 서명하고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 조약 제2조에 따르면,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하면, 조선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중국을 지원해야 한다. 전쟁상황에서 조선이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중국을 지원한다는 말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이 일어날 때 조선도 지체 없이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대만통일전쟁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조선과 중국이 체결한 조약이다. 1961년 7월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김일성 주석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는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는데, 그 조약 제2조는 다음과 같다.

 

“체약 쌍방은 체약 쌍방 중 어느 일방에 대한 어떠한 국가로부터의 침략이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취할 의무를 지닌다. 체약 일방이 어떠한 한 개의 국가 또는 몇 개 국가들의 련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

 

위의 인용문이 말해주는 것처럼,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하면 조선은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에 따라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중국을 지원해야 한다. 전쟁상황에서 조선이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중국을 지원한다는 말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이 일어날 때 조선도 지체 없이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한다는 뜻이다. 조선의 조국통일대전은 한미연합군이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개입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개입하는 미일동맹군의 전투력을 분산시킴으로써 중국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미일동맹군이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개입하는 문제인데, 미일안전보장조약이 그 문제를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살펴보자. 1960년 1월 19일 워싱턴에서 체결된 미일안전보장조약 제5조는 다음과 같다. 

 

“각 당사국은 일본의 행정권 아래에 있는 영토에서 벌어지는 각 당사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고 인식하면, 각자 헌법조항 및 절차에 따라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는 행동을 할 것임을 선언한다.”

 

위의 조항에 따르면, 미일동맹군은 일본 영토에 대한 제3국의 무력공격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이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하는 경우 일본은 그 전쟁에 무력개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중국은 대만을 귀속하고 나서, 일본이 불법적으로 지배하는, 대만과 오끼나와 사이에 있는 무인도인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은 센가꾸렬도라고 부름)도 귀속할 것이고, 그에 따라 오끼나와는 중국의 포위망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일동맹군은 중국인민해방군을 상대하는 전쟁연습을 줄곧 해왔기 때문에 일본자위대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개입하는 데서 작전적 어려움이 없다. 

 

예컨대, 2020년 10월 26일부터 11월 5일까지 주일미국군 9,000명과 일본자위대 37,000명이 참가한 합동전쟁연습 ‘킨 쏘드(Keen Sword)’가 일본 전역에서 진행되었다. 일본방위성이 펴낸 ‘방위백서’ 2019년판에 따르면, 일본자위대와 주일미국군은 1년 동안 10종 이상의 합동전쟁연습을 38회나 실시했으며, 총연습기간은 406일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일본은 2016년 3월부터 미국의 중국공격에 동참하는 무력행사를 합법화한 ‘안전보장관련법’을 만들어놓고 미일동맹군의 대중전쟁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육상자위대 막료장(육군참모총장) 출신 이와따 기요후미(岩田淸文)는 2017년 9월 15일 워싱턴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 미국이 중국과 무력충돌을 하는 경우 미국군은 제2도련선으로 일시 후퇴하고, 일본자위대가 제1도련선에서 중국인민해방군과 싸우는 작전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붕> 2020년 10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방위성은 14만명을 동원한 대규모 대중전쟁연습을 2021년에 실시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처럼 일본자위대는 미국의 힘을 믿고 만용을 부리며 중국인민해방군과 붙어보려는 것이다.  

 

 

4. 동북아시아 군사정세는 폭발점으로 다가서고 있다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했을 때, 조선이 지체 없이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하면, 전시에 한미연합군을 무조건 지원해야 하는 미일동맹군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과 조선의 조국통일대전에 동시에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미일동맹군은 그 두 전쟁에 동시에 대처할 전투력을 갖지 못했다. 미국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무력개입을 할 것인지 아니면 조선의 조국통일대전에 무력개입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대만을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한국을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해방군이 각각 준비한 군사력과 전쟁준비태세를 보면, 미국은 조선의 조국통일대전에 무력개입을 해도 패할 수밖에 없고,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무력개입을 해도 패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게는 패전 가능성만 남아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은 수수방관하지 않고,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전략적 선택은 다음과 같은 손익계산에 따라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서 승리하면, 미국은 대만을 잃어버릴 뿐 아니라, 미일동맹의 전략거점인 오끼나와가 중국의 포위망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미국의 서태평양 전략거점인 괌마저 전략적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조선이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하면, 미국은 한국을 잃어버릴 뿐 아니라, 미일동맹의 전략거점인 일본 사세보가 불안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은 괌과 오끼나와를 종전대로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손익계산을 따져보면, 미국은 조선의 조국통일대전에 무력개입하는 것을 포기하고,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무력개입할 때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그러므로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통일전쟁에서 대만군을 제압하는 한편, 대만군보다 훨씬 더 강한 미일동맹군과 싸우게 될 것이다. <사진 4>

 

▲ <사진 4> 2020년 11월 초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큰물피해복구에 동원된 군부대들에게 피해복구지역 살림집건설을 완료하지 못했더라도 11월 25일까지 무조건원대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것은 2020년 12월 1일부터 2021년 3월20일까지 진행될 연례적인 군사훈련에 참가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이번 군사훈련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엄중한 시기에 진행될것이므로, 조선인민군은 가장 강도 높은 실전연습을 벌일 것이며, 그에 따라 한미연합군 수뇌부는 극도로 긴장할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공개활동을 중지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0년 10월 21일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70주년을 맞아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렬사릉원을 방문한 이후 오늘까지 26일째 공개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올해에 들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회의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가 거의 매달 진행되었는데, 2020년 10월 5일 이후 회의는 열리지 않고 있다. 

 

미국의 반사회주의선전매체 <자유아시아방송> 2020년 1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2020년 11월 초 큰물피해복구에 동원된 군부대들에게 피해복구지역 살림집건설을 완료하지 못했더라도 11월 25일까지 무조건 원대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원대복귀명령은 2020년 12월 1일부터 시작되는 연례적 군사훈련에 참가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조선인민군은 2020년 12월 1일부터 2021년 3월 20일까지 연례적 군사훈련을 진행할 것인데, 예년 경험을 보면, 정치사상학습 ⟶ 부대별 실전연습 ⟶ 신년사 학습 ⟶ 쌍방실동연습 및 협동작전연습 ⟶ 작전지휘훈련 ⟶ 판정과 총화 순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견된다. 이번 군사훈련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엄중한 시기에 진행될 것이므로, 조선인민군은 가장 강도 높은 실전연습을 벌일 것이며, 그에 따라 한미연합군 수뇌부는 극도로 긴장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인구이동이 가장 많은 2020년 11월 26일 추수감사절 휴가가 끝나면, 그러지 않아도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폭발하여 최악의 보건재앙에 빠질 것이고, 대선결과와 정권이양문제를 놓고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는 트럼프파와 바이든파의 대결이 격화되어 최악의 정치혼란에 빠질 것이다. 미국이 그런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동북아시아 군사정세는 조선의 조국통일대전과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이 동시에 일어날 거대한 폭발점으로 다가설 것이다.

2020/11/11

공동전선에서 포성이 울리는 날

 [한호석의 개벽예감](418)

자주시보 2020년 11월 09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2020년 10월 23일 항미원조전쟁 70주년

2. 대만통일전쟁준비를 완료한 중국

3. 분리독립책동에 광분하는 대만

4.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미국

5. 재앙에 빠져 전쟁능력이 약화된 미국

6. 통일전쟁에 유리한 군사정세가 조성된 한반도

 

 

1. 2020년 10월 23일 항미원조전쟁 70주년

 

중미수교가 발효된 1979년 1월 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대만동포에게 고하는 편지’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에 실었다. 중국이 중미수교를 발표한 것과 동시에 대만통일의지를 천명한 것을 보면, 그들의 대미정책과 통일정책이 얼마나 밀접히 결부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로부터 40년 세월이 흐른 2019년 1월 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40년 전 ‘대만동포에 고하는 편지’를 발표한 것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대만통일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무력사용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력을 사용할 대상은 외부세력의 간섭, 그리고 극소수 대만독립분렬세력과 그들의 행동이지 대만동포가 아니다. 조국은 반드시 통일되어야 하며, 필연적으로 통일될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말한 ‘외부세력의 간섭’은 대만문제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이고, 그가 말한 ‘극소수 대만독립분렬세력’은 대만을 중국에서 떼어내 친미국가를 세우려는 차이잉원(蔡英文) 정권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대만문제에 내정간섭을 자행하는 미국에, 그리고 대만을 분리시켜 친미국가를 세우려는 차이잉원 정권에 무력사용 가능성을 엄중히 경고한 것이다. 

 

2020년 5월 22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인민대회당에서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3차 전체회의가 진행되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그 회의에서 정부공작보고를 하는 중에 대만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대만의 독립과 분렬을 획책하는 행위를 결단코 반대하며 저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대만주민들에게 “대만독립에 반대하고 통일촉진에 참여하라”고 호소했다. 이 발언에서 주목되는 것은, ‘평화적 통일’이라는 관용어 대신 ‘통일’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썼다는 사실이다. 이런 변화는 평화적 통일의 길이 가로막혔다고 판단한 중국이 비평화적 통일의 길을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0년 10월 15일 <런민르바오>는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한국 언론매체들이 그 논평을 발췌보도한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차이잉원 당국의 지시 아래 대만정보당국은 대만독립세력의 선두에 섰다. 그들은 불의한 행동을 일삼고, 혼란을 조성했다. 대만독립세력에게 경고한다. 불장난을 하면 죽는 길밖에 없다. 정세를 조속히 인식하고, 일찌감치 손을 거둬들여 죄를 뉘우치고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이것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연합뉴스> 2020년 10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런민르바오>가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경고한 문구는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기 직전에 사용한 문구라고 한다. 예를 들면, 중국과 인디아가 국경분쟁에 휘말렸던 1962년 9월 22일 <런민르바오> 사설에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경고문구가 들어갔는데, 그 이튿날 중국인민해방군이 인디아군을 공격했던 것이다. 이런 사례를 보면, 최근 중국이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에게 무력사용의지를 거듭 표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년 10월 23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인민대회당에서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출국작전(抗美援出國作戰) 70주년 대회가 진행되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위시하여 중국 최고지도부 전원이 참석한 중대한 국가행사였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대회에서 40여 분 동안 연설했는데, 그의 연설은 텔레비전방송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중국 언론매체들은 그 연설문에 중요강화(重要講話)라는 부제를 달고 전문을 실었다. 그 연설에 주목하는 까닭은, 70년 전 항미원조전쟁에 대한 중국의 역사인식과 오늘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을 제압하고 국가통일위업을 달성하려는 중국의 정세인식이 담겼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매체들이 그 연설문을 발췌보도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50년 6월 25일 조선에서 내전이 일어났다. 미국은 조선내전에 무력간섭을 하기로 결정했고, 제7함대를 대만해협에 파견했다. 중국이 경고했는데도, 미군은 그해 10월 초 38선을 넘었고, 전쟁의 불길은 중조접경지역까지 번졌다. 중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험이 조성되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중국은 조선의 요청에 따라 항미원조보가위국(抗美援保家爲國)의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인민의 중요한 부탁과 민족의 기대를 받아 안은 중국지원군은 평화수호와 침략반대의 기치를 들고 압록강을 건넜다.” 

 

“조선은 중국지원군을 소중히 여기며 지원해주었다. 두 나라 인민과 군대는 동고동락하고, 생사운명을 함께 하면서 피로써 위대한 전투적 우의를 맺었다. 당시 중국은 미국에 비해 국력에서 큰 차이가 있었지만, 중국지원군은 조선의 군민과 힘을 합쳐 싸웠다. 두 나라 군대는 미군을 패배시키고, 그들의 불패신화를 깨뜨렸다.” 

 

“오늘 중국은 2개의 100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대한 역사적 교차로에 있다. 우리의 앞길은 순조롭지 않지만, 항미원조전쟁의 고난을 뚫고 이룩한 위대한 승리를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중국은 주권, 안보, 발전리익이 훼손당하는 것을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신성한 영토를 침범하거나 분렬시키는 시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항미원조전쟁 70주년 기념대회를 60주년 기념행사에 비해 더 성대하게 개최하고, 시진핑 국가주석의 연설을 생중계한 것은 무심히 지나칠 일이 아니다. 위에 인용한 연설내용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1) 항미원조전쟁의 역사를 계승하는 의지를 피력했다.

2) 2개의 100년 목표를 향해 전진할 것을 호소했다. 

(2개의 100년 목표라는 것은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21년 7월 23일까지 달성할 목표,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49년 10월 1일까지 달성할 목표를 뜻한다.) 

3) 미국의 대만분리책동을 제압하고 대만을 귀속시켜 통일위업을 성취하려는 의지를 천명했다. <사진 1>   

 

▲ <사진 1> 2020년 10월 23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인민대회당에서 중국인민지원군항미원조출국작전 70주년 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대회에서40여 분 동안 연설했다. 그 연설에는 70년 전 항미원조전쟁에 대한 중국의 역사인식과 오늘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을 제압하고 국가통일위업을 달성하려는 중국의 정세인식이 담겼다.  

 

 

2. 대만통일전쟁준비를 완료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언급한 2개의 100년 목표는 중국의 국력과 문명을 미국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국가발전과 대만을 귀속시키는 국가통일이다. 국가발전과 대만통일은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사회주의국가발전을 성취하려면, 대만을 귀속시켜야 한다. 중국이 대만통일을 실현하지 못하면, 국가발전도 성취할 수 없으므로, 국가발전과 대만통일을 동시병행시켜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국가발전과 대만통일을 가로막은 악명 높은 방해자가 있다. 지금 미국은 중국의 국가발전과 대만통일을 백방으로 방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은 미국의 방해를 물리치고 국가발전과 대만통일을 실현해야 하는데, 이것은 간고하고 격렬한 투쟁이다. 간고하고 격렬한 투쟁 속에서 중국은 대만통일전쟁을 준비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6년 9월 1일 대만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만 국방부는 8월 31일 입법원에 제출한 ‘중국 군사력에 관한 보고’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인민해방군에게 2020년까지 대만을 귀속시킬 강한 전투력을 갖춰야 하고, 완벽한 작전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특별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런 지시에 따라, 인민해방군은 지난 4년 동안 전투력 강화에 박차를 가했으며, 대만을 귀속시키기 위한 작전계획을 세웠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중국은 2020년까지 대만통일전쟁준비를 완료하고, 주객관적 조건이 성숙되는 경우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21년 7월 23일 전에 대만통일전쟁을 개시하려는 전략을 추진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을 개시하는 주객관적 조건은 다음과 같다.

 

-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준비를 완료할 때 

-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이 분리독립책동에 광분할 때  

- 미국이 대만문제에 노골적으로 개입하여 중국의 내정에 간섭할 때   

- 미국이 국가적 재앙에 빠져 전쟁능력이 약화될 때 

- 대만통일전쟁에 유리한 군사정세가 한반도에 조성될 때

 

중국은 대만통일전쟁준비를 완료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인민해방군의 대만공격씨나리오에 맞춰 찾아야 한다. 대만공격씨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1차 공격 - 미사일을 집중발사하여 대만의 방공망, 통신망, 교통망, 전력공급망을 파괴한다. 

2차 공격 - 2개 항모전투단이 대만해역을 봉쇄한다. 

3차 공격 - 폭격기와 전투기가 대만의 군사기지들을 공습한다.

4차 공격 - 육전대와 공수단이 대만에 상륙하여 방어선을 돌파하고 전략거점들을 점령한다.

 

위의 대만공격씨나리오에는 미국의 무력개입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이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무력개입을 감행할 가능성,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중국의 군사전략은 길게 서술해야 하므로, 그에 관한 서술은 생략한다. 위에 서술한 대만공격씨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최근 인민해방군의 군사활동을 관찰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인민해방군 미사일부대들은 1차 미사일공격준비를 끝냈다. 2020년 10월 18일 홍콩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만을 조준한 단거리탄도미사일들인 둥펑(東風)-11, 둥펑-15를 둥펑-17 극초음속미사일로 교체하고 있다. 둥펑-17의 사거리는 2,500km이며, 엄청나게 빠른 마하 10의 속도로 변칙활공비행을 하기 때문에 대만의 미사일방어망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또한 위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과 마주한 중국 푸젠성(福建省)과 광둥성(廣東省)의 미사일려단들이 완전무장을 끝냈으며, 미사일기지가 2배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인민해방군 항모전투단은 대만해역을 봉쇄할 2차 공격준비를 끝냈다. 인민해방군 기관지 <지팡준바오(解放軍報)> 2020년 5월 2일 보도에 따르면, 50,000t급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주축으로 구성된 항모전투단이 2020년 4월 한 달 동안 대만해협, 동중국해, 남중국해에서 실전훈련을 했다고 한다. 랴오닝 항모전투단은 항공모함 1척, 핵추진잠수함 3척, 미사일구축함 2척, 미사일호위함 6척, 호위함 4척, 보급함 1척으로 구성된다. 2019년 12월 17일 취역한 70,000t급 항공모함 산둥함은 10개월 동안 운항시험과 해상훈련을 마치고 2020년 10월 말에 실전배치되었다.  

 

인민해방군 공군은 대만의 하늘을 뒤덮는 3차 공격준비를 끝냈다. 2020년 10월 18일 홍콩 언론보도에 따르면, 인민해방군 공군은 젠-20 스텔스전투기를 실전배치했다고 한다. 젠-20은 미국의 스텔스전투기들인 F-22와 F-35의 뒤를 이어 전 세계에 세 번째로 등장한 스텔스전투기다. 2019년 현재 인민해방군 공군은 젠-20 스텔스전투기 50대를 보유했다. 젠-20은 대만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가 전략거점에 LS-6 정밀유도폭탄을 투하할 수 있다. 2020년 7월 13일 홍콩 언론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젠-20의 개량형인 젠-20B 스텔스전투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인민해방군 공군은 H-6 전략폭격기 140대를 실전배치했는데, 이 전략폭격기는 유도폭탄, 지상공격순항미사일, 반함선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인민해방군 해군 항공대도 H-6 전략폭격기 30대를 실전배치했다.  

 

인민해방군 최정예부대들인 공수군과 육전대는 대만에 상륙하는 4차 공격준비를 끝냈다. 2018년 5월 29일 홍콩 언론보도에 따르면, 인민해방군 공군 제15공수군이 6개 독립려단으로 개편되어 총병력을 35,000명으로 늘였고, 침투헬기 100대와 다량의 무인정찰기를 보유하여 전투력을 대폭 증강했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중국어 언론매체 <둬웨이(多維)> 2020년 5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2개 여단에 10,000명으로 편성되었던 인민해방군 해군 육전대가 6개 여단 30,000명으로 대폭 증강되었고, 항공륙전려단과 공중돌격대대가 새로 조직되었다고 한다. 2020년 10월 18일 홍콩 언론보도에 따르면, 인민해방군 해군은 육전대기지를 2020년에 2배로 확장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은 2019년 9월 25일 40,000t급 강습상륙함을 진수했다. 육전대 병력 1,673명과 작전헬기 30대, 수륙양용전차, 장갑차, 쾌속정을 실은 강습상륙함은 폭이 150~200km인 대만해협을 시속 42km의 속도로 가로질러 4시간 만에 대만에 도착할 수 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인민해방군은 대만의 반격에 대비해 견고한 방공망을 구축했다. 중국은 2018년 8일 로씨야에서 수입한 최신형 S-400 요격미사일종합체 6개 대대분을 두 달 동안 로씨야 기술진의 방조를 받아 실전배치했다. S-400은 대만이 발사한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고, 대만에서 출격한 작전기를 요격할 수 있다. 인민해방군이 S-400 반항공미사일을 쏘면, 대만의 미사일과 전투기는 낙엽처럼 떨어질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2020년에 들어와 인민해방군이 대만으로 접근하여 항공작전연습과 해상작전연습을 집중적으로 진행해왔다는 사실이다. 2020년 10월 7일 옌더파(嚴德發) 대만 국방부장이 입법원 외교국방위원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20년 1월 초부터 10월 초까지 인민해방군 작전기 1,710대가 대만 공역에 진입했고, 인민해방군 군함 1,029척이 대만 해역에 진입했다고 한다. 인민해방군 전투기가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으면 약 3분 20초 만에 대만 상공에 진입할 수 있다. 

 

위에 열거한 정황들을 보면, 2020년 11월 현재 인민해방군의 대만통일전쟁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2> 

 

▲ <사진 2> 중국은 2019년 9월 25일 40,000t급 강습상륙함을 진수했다. 이 강습상륙함은 육전대 병력 1,673명과 작전헬기 30대, 수륙양용전차, 장갑차, 쾌속정을 싣고대만해협을 시속 42km의 속도로 가로질러 4시간 만에 대만에 도착할 수 있다. 이런사례가 말해주는 것처럼, 지금 인민해방군 전투부대들은 대만통일전쟁을 수행하기위한 전투준비를 끝내고, 시진핑 국가주석의 총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3. 분리독립책동에 광분하는 대만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이 분리독립책동에 광분할 때, 중국은 통일전쟁의 포성을 울릴 것이다. 대만의 민주진보당 정권은 분리독립책동에 광분하고 있는데, 그 사정을 다음과 같다.  

 

2008년 5월 20일부터 2016년 5월 20일까지 중국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가 집권한 시기에 대만은 이른바 3불정책을 실행했었다. 3불정책이란 중국과 통일하지 않는 불통(不統), 대만이 독립하지 않는 불독(不獨),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불무(不武)를 뜻한다. 

 

그런데 2016년 5월 20일 민주진보당의 차이잉원이 집권한 이후 사정은 급변했다. 민주진보당은 3불정책을 파기하고 분리독립책동에 광분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2020년 1월 14일 영국 <BBC> 텔레비전방송과 대담하면서 “우리는 이미 독립된 국가다. 우리는 우리를 중화공화국(Republic of China)이라고 부른다. 독립국가라고 선언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차이잉원 정권의 분리독립책동은 일개중국정책(一個中國政策)을 견지해온 중국을 극도로 자극했다. 중국은 차이잉원 집권 이전 중국국민당 집권기에 진행했던 대만과의 정치협상 및 교류협력을 완전히 중단했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차이잉원이 집권한 직후 대만통일전쟁준비를 2020년까지 완료하라는 지시를 인민해방군에게 내렸던 것이다. 

 

차이잉원 정권의 분리독립책동에는 반중친미사상이 들어박혀 있다. 차이잉원 정권이 출범한 이후 지난 4년 동안 반중친미사상이 퍼져나갔다. 이를테면, 2020년 10월 6일 대만 입법원은 대미수교를 회복하는 결의안과 미국의 지원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각각 채택했는데, 이것은 대만 정치권이 반중친미사상에 휘말렸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020년 7월 3일 대만 외교부는 미국의 서태평양 영토인 괌(Guam)에 타이베이경제문화판사처를 설치했다. 미국의 군사전략거점인 괌에 영사관을 설치한 것이다. 

 

2020년 11월 4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민주진보당 중앙상무위원회에서 “민진당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미국과 협력을 강화해나갈 것”이고,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대만의 현실은 미국 대선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에 열거한 분리독립책동의 사례를 보면, 평화통일의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중국이 쥐고 있는 마지막 선택은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이 분리독립을 선언하기 전에 대만통일전쟁을 개시하는 것밖에 없다. <사진 3> 

 

▲ <사진 3> 분리독립책동에 광분하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2020년 7월 13일부터 5일 동안 진행된 대만군의 한광 36호 훈련현장을 시찰했다. 위의 사진은 차이잉원 총통이 대만군 공수부대 지휘관으로부터 훈련현황을 보고받는 장면이다. 미국의 손에서 성장한 대만군의 군복과 군모는 미국군의 군복과 군모를 모방했다. 대만이 반중친미사상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다.  

 

 

4.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미국

 

미국이 대만문제에 노골적으로 개입하여 중국의 내정에 간섭할 때, 중국은 통일전쟁의 포성을 울릴 것이다. 대만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중국의 주권과 안보를 훼손하는 도발행위다. 지금 미국은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그런 도발을 자행하고 있다. 

 

대만문제에 대한 미국의 법적 개입은 2020년 3월 27일 '대만동맹국제보호강화법'을 발효시키고, 2020년 7월 말 ‘대만침공방지법’을 연방하원에 상정하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대만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개입은 2019년 6월 1일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전략보고서에서 대만을 ‘나라’로 지칭한 것에서 드러났다. 또한 2020년 8월 10일 앨릭스 에이자(Alix M. Azar)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만을 방문했고, 2020년 9월 17일 키드 크락(Keith Krach) 차관이 이끄는 미국 국무부 대표단이 대만을 방문했다. 미국은 대만과 단교한 이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고위급 대표단을 대만에 파견한 것이다. 

 

대만문제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2019년 11월 하순 헤이노 클링크(Heino Klinck)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가 대만을 비공개로 방문하여 대만의 미사일방어체계에 관해 협의한 것과 2020년 8월 미국산 F-16V 전투기 66대를 대만에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더욱 노골화되었는데, 미국은 이 전투기들을 2023년부터 2026년까지 기간에 대만에 인도할 것이다. 또한 미국 국무부는 2020년 10월 말 23억7,000만 달러에 달하는 무기를 대만에 수출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미국 국무부가 18억 달러에 달하는 무기를 대만에 수출하기로 결정한 때로부터 불과 5일 뒤에 또 다시 내린 결정이다. 

 

만일 중국이 대만문제에 대한 미국의 도발적 개입을 억제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미국 국무장관이 대만을 방문하고, 미국 해군 항공모함이 대만에 기항하는 극단적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중국은 그런 극단적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미국의 도발적 개입을 억제해야 한다. 중국이 그런 단호한 억제조치를 단행해야 할 때가 되었다. <사진 4>

 

▲ <사진 4> 2020년 8월 10일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만을 방문했다. 미국이 대만과 단교한 이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연방정부의 장관이 대만을공식 방문한 것이다. 위의 사진은 에이자 장관 옆에서 차이잉원 총통이 연설하는 장면이다. 미국은 2020년 9월 17일 키드 크락 차관이 이끄는 미국 국무부 대표단을 대만에 파견하여 대만의 분리독립책동을 적극 지지했다. 이처럼 미국은 대만문제에개입하여 중국을 극도로 자극하는 내정간섭을 자행하는 중이다. 이런 심각한 사태는 중국을 격분시켰으며, 중국을 대만통일전쟁의 문턱까지 떠밀어주었다.  

 

 

5. 재앙에 빠져 전쟁능력이 약화된 미국

 

미국이 재앙에 빠져 전쟁능력아 약화될 때, 중국은 통일전쟁의 포성을 울릴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상대하기 버거운 강적이므로, 중국은 미국의 전쟁능력이 약화되기를 바랐지만, 그런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미국은 지난 몇 해 사이에 핵무력을 더욱 증강하였고, 중거리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미사일 같은 첨단무기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2020년에 들어와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미국에서 확산되어, 전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보건재앙을 겪는 나라가 된 것이다. 지금 미국의 확진자 누적수는 1,000만명을 넘어섰으며, 사망자는 24만명을 넘어섰다. 방역조치가 장기화되면서 미국의 민생경제가 심히 억제되었고, 그에 따라 실업과 파산과 빈곤이 급격히 증가되었다. 반면에 미국의 극소수 대자본가들은 천문학적인 재부를 긁어모아 빈부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졌다. 이런 소용돌이현상은 미국의 계급모순이 전례 없이 격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2020년 11월 3일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치렬한 표대결을 벌인 끝에 조 바이든(Joseph R. Biden Jr.) 후보가 근소한 표차로 이겼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결과에 불복하겠다고 선언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결과에 불복하면서 끝까지 버티면, 바이든 당선인이 정권을 인수하기 힘들어져 통치공백사태가 일어나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우월주의 우익무장대가 무장폭동과 테러를 감행할 위험이 있다. 미국의 정치전문지 <폴리티코(Politico)> 2020년 11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제대군인들과 경찰출신자들로 구성된 맹세수호자(Oath Keepers), 애국전선(Patriot Front) 등 백인우월주의 우익무장대들이 군사훈련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릿저널(Wall Street Journal)> 2020년 10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폭동과 테러에 대비하여 미국 전역에 현장지휘소(CP)를 설치했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보면, 미국은 참혹한 보건재앙, 계급모순의 격화, 실업과 파산과 빈곤, 폭동과 테러, 선거결과불복에 따른 정치혼란 및 통치공백사태가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국가적 재앙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이 재앙에 빠져 전쟁능력이 약화되는 것은 중국이 바라던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사진 5> 

 

▲ <사진 5> 2020년 11월 3일에 실시된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조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을 근소한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결과에 불복하였고, 선거문제를 연방대법원으로 끌어가려고 한다. 그로써 미국은 엄청난 정치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위의 사진은 2020년 11월 7일 미국 오레곤주 주도인샐럼에 있는 주정부 청사 앞에서 벌어진 트럼프 지지자들의 시위장면이다. 자동보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시위자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온 시위자의 모습이 보인다.트럼프 대통령이 선거결과에 불복하면서 정치혼란을 더욱 격화시키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우월주의 우익무장대들이 무장폭동이나 테러를 감행할 위험이 커진다.  

 

 

6. 통일전쟁에 유리한 군사정세가 조성된 한반도

 

대만통일전쟁에 유리한 군사정세가 한반도에 조성될 때, 중국은 통일전쟁의 포성을 울릴 것이다. 미국의 전투력을 대만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 한반도 등지로 분산시켜야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을 수행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중국은 대만통일전쟁에 유리한 군사정세가 한반도에 조성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대만통일전쟁에 유리한 정세가 한반도에 조성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조선의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누구나 인정하는 것처럼,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은 급속히 강화발전된 군사력을 전 세계에 과시한 사변이었다. 야간열병식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이 어떻게 편제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신형 무기체계들이 등장했는지를 분석고찰하면, 최근 몇 해 사이에 조선이 군사력을 급속히 강화발전시켜 조국통일대전준비를 완료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국통일대전준비를 완료하였다는 평가는 무징후 화력타격, 전선돌파 고속기동, 사전침투 후방습격, 전방위 포위섬멸에 적합하게 전투부대들을 증강편제했고, 72시간 단기속결전에서 엄청난 힘을 폭발시킬 사상정신력과 첨단무기로 무장했다는 뜻이다.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과 첨단무기를 관찰한 중국도 그런 평가를 내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은 자기들이 대만통일전쟁준비를 완료한 시점에, 조선도 조국통일대전준비를 완료하였음을 알았으며, 그에 따라 대만통일전쟁에 유리한 군사정세가 한반도에 조성되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준비가 완료된 시점에 조선이 조국통일대전준비를 완료한 것은 우연한 일치가 아니다. 거기에는 70년 전 조선과 중국이 함께 싸운 공동전선전략이 반영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6>     

 

▲ <사진 6> 2020년 10월 2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70주년에 즈음하여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렬사릉원을 찾아 화환을 진정하고 경의를 표했다. 그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70년 전 조중공동전선을 변함없이 계승하는 의지를 천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그런 언명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항미원조출국작전 70주년 기념연설은 일맥상통한다. 70년 전 조선과 중국이 공동전선에서 함께 싸운 것처럼, 오늘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의 포성을 울리면, 조선도 조국통일대전의 포성을 울리며 공동전선에서 함께 싸울 것이다. 운명적인 순간이 다고오고 있음을 예감할 수 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20년 10월 2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70주년에 즈음하여 당, 정부, 군부의 간부들과 함께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렬사릉원을 찾았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중 두 나라 군대와 인민이 자기 운명을 하나로 련결시키고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서 피로써 쟁취한 위대한 승리는 세월이 흐르고 세기가 바뀐 오늘에 와서도 변함없이 실로 거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언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언명은 2020년 10월 23일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출국작전 70주년 기념대회에서 연설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그날 시진핑 국가주석은 연설에서 “중국지원군은 조선의 군민과 힘을 합쳐 싸웠다. 중국과 조선 두 나라 군대는 미군을 패배시키고, 미군의 불패신화를 깨뜨렸다. (중략) 우리는 항미원조전쟁의 고난을 뚫고 이룩한 위대한 승리를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을 개시할 수 있는 주객관적 조건이 성숙된 오늘, 70년 전 조중공동전선을 변함없이 계승하는 의지를 천명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언명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발언이 일맥상통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일맥상통의 의미는 70년 전 조선과 중국이 공동전선에서 함께 싸운 것처럼, 오늘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의 포성을 울리면, 조선도 조국통일대전의 포성을 울리며 공동전선에서 함께 싸울 것이라는 뜻이다. 

 

최근 정치정세와 군사정세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조중공동전선에서 포성이 울리는 운명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