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27

실업공포 속에 무너지는 '인민의 가정'

변혁과 진보 (64)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통계청이 만들어낸 신기루

자본가 1명과 노동자 99명이 사는 것으로 가상한 어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가의 소득이 노동자의 소득보다 100배가 많다고 가정해보자. 자산격차는 따지지 않고, 소득격차만 따졌을 때, 100배의 소득격차가 생긴 그 가상사회에서 자본가 1명의 소득이 1,000원이면, 노동자 99명은 각자 10원의 소득밖에 얻지 못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인당 국민소득은 100배의 소득격차를 50배의 소득격차로 완화시켜주는 식으로 엉뚱하게 산정된다. 노동자 한 사람의 실제소득은 10원밖에 안 되는 데, 1인당 국민소득은 19.9원이라는 부풀려진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을 미국의 달러화로 환산하여 발표하기 때문에, 부풀려진 결과에 '환율효과'까지 덧씌워진다. 예컨대, 수출이 늘어나 경상수지에서 흑자를 보면, 외국계 자본의 국내투자가 늘어나 국내시장으로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므로 자본수지에서도 흑자가 나고, 그에 따라 환율이 떨어지게 된다.

환율하락이란 달러화 가치에 대한 원화 가치가 올라간다는 뜻이므로, 1인당 국민소득을 달러로 표시할 때 실제보다 더 많아 표시되어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수출이 늘어나고 외국계 자본의 국내투자가 늘어나 달러화가 넘쳐날수록 1인당 국민소득은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부풀려진 신기루로 변하는 것이다.

친자본 반노동 정권은 통계청을 만들어놓고, 국민소득을 실제보다 크게 부풀린 신기루를 만들어내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감쪽같이 속인다. 그러므로 국내총생산이니 1인당 국민소득이니 하는 따위의 각종 통계수치들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생경제현실을 배반한 허구적 숫자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친자본 반노동 정권은 그런 허구적 숫자놀이로 국민을 기만하고 세상을 속이면서 극단적 빈부격차와 사회적 양극화, 다시 말해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계급모순을 은폐하는 것이다.


실업률 변동을 주목하라

그러면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생경제현실을 지표로 가늠할 만한 다른 방도는 없을까? 민생경제현실을 현실에 맞게 표시하는 지표를 손꼽으면, 실업률이 손꼽힌다.

국내총생산이니 1인당 국민소득이니 하는 허구적 숫자놀이에 속아넘어갈 것이 아니라, 실업률 변동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실업률이 높으면 국민경제가 그만큼 불안정한 상태에 빠진 것이고, 반대로 실업률이 낮으면 국민경제가 그만큼 안정적으로 발전된 것이다.

만일 실업률이 0%로 떨어져 완전고용이 실현되면, 그런 나라야말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실업공포와 궁핍고통에서 벗어난 가장 훌륭한 선진국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계급모순이 존재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경제가 발전할수록 실업률이 등락을 거듭하면서 지속적으로 올라갈 뿐 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출증대로 환율이 떨어지면 기업의 수출경쟁력이 함께 떨어지고, 달러화로 표시된 임금은 반대로 올라가므로 자본가는 생산을 감축할 수밖에 없고 생산감축조치로 노동자를 해고하여 실업률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정반대의 원인으로 실업률이 오르고 있다. 자본주의세계시장에 경제공황이 몰아치는 지금, 자본가는 수출증대가 아니라 급격한 수출위축으로 생산을 대폭감축하거나 파산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노동자를 대량해고하여 실업률을 가파르게 끌어올리는 것이다.

수출증대를 원인으로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보다 수출위축을 원인으로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하고 치명적인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땅의 통계청은 매달 중순에 실업률을 발표한다. 통계청의 실업률은 어떻게 산출되는 것일까? 통계청은 매달 중순 1주간 동안 약 32,000가구를 표본으로 삼아 실업률을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월별 실업률을 발표한다.

그런데 통계청은 실업률을 조사할 때 경제활동인구와 비경제활동인구를 구분한다. 경제활동인구에는 취업자와 실업자가 포함되고, 비경제활동인구에는 그냥 쉬는 사람, 가사와 육아를 맡아보는 사람, 연로하여 일자리를 포기한 사람 등이 포함된다.

고시학원, 직업훈련기관 등에 다니거나 또는 홀로 취업준비를 하는 취업준비자는 명백한 실업자인데도, 통계청은 그들을 실업자로 분류하지 않고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한다. 통계청이 조작해놓은 실업자 개념은 자기들이 매달 중순 조사활동을 할 때, 그 이전 4주간 동안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한 사람들만 포함하는 매우 이상한 개념이다.

2011년 1월 현재 4주간 동안 구직활동을 포기한, 이 땅의 15세 이상 34세 이하 청년인구는 103만2,000명인데, 통계청은 그들을 실업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통계청이 이처럼 엉터리 통계기준을 꺼내놓으니까, 통계상 비경제활동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2011년 1분기에 비경제활동인구는 1,639만2,000명이나 되었다.

통계청이 실업자 개념을 엉터리로 조작해놓았기 때문에, 2011년에 고용률은 58%대로 떨어졌는데도, 공식실업률은 연간 평균 3.4%에 머물러 있는, 앞뒤가 맞지 않는 통계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2012년 1월 19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사실상 실업자'를 포함시켜 다시 산출하면, 2011년 실질실업률은 3.4%에서 11.3%로 3배 이상 급증한다고 한다.


'인민의 가정'은 무너지고 있다

'복지국가'라는 스웨덴의 실업률은 어떠할까? 스웨덴이 '복지국가'이므로 실업률이 당연히 낮을 것이라는 예상은 깨져나간다. 스웨덴의 실업률 변동추이를 보면, 2010년 7월에는 9.5%, 2011년 7월에는 8.8%, 2012년 1월 현재는 7.5%다. 이것은 공식실업률이다.

이 땅의 실질실업률이 공식실업률의 3배라고 하니, 스웨덴의 실질실업률도 그 정도 높지 않을까? 그렇다면 2012년 1월 현재 스웨덴의 실질실업률은 20% 이상으로 추산된다. 놀랍게도, 스웨덴은 이 땅의 실질실업률보다 근 2배나 높은 대량실업국가인 것이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누가 대량실업국가를 복지국가라고 부르면, 아이들이 들어도 웃을 것이다.

스웨덴은 1970년대에 유럽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고소득국가들 가운데 하나였고, 1980년대에는 실업률이 2-3% 선으로 떨어졌다. 그처럼 잘 나가던 복지국가 스웨덴이 어쩌다가 이 지경으로 몰락하였을까?

몰락의 결정적인 요인은, 스웨덴 경제가 파탄위기에 빠진 데 있다. 스웨덴 경제는 이 땅의 경제와 마찬가지로 수출주도형 시장경제다. 독일, 미국, 노르웨이, 영국, 덴마크, 핀란드 등이 스웨덴의 주요 무역대상국이다.

그런데 스웨덴의 수출주도형 시장경제가 파탄위기에 빠진 1990년부터 1993년 사이에 공식실업률은 평균 8%를 넘어섰다. 스웨덴 정부의 재정적자는 1993년에 국내총생산의 12%를 차지하였는데, 1994년에는 15%로 늘어났다.

스웨덴의 공공부채는 1990년에 국내총생산의 43%를 차지하였는데, 1994년에는 78%로 폭증하였다. 당시 스웨덴 정부는 사실상 파산당한 자국 은행들을 구하기 위해 183억 달러를 긴급투입하여 파탄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스웨덴은 경제파탄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철강, 종이, 펄프 같은 원자재 수출 대신에 서비스, 정보통신, 무선통신 등의 부문에서 수출에 주력하였으나, 그만큼 수입이 더 늘어나는 바람에 수출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줄어들었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수출액은 4%가 줄었고, 수입액은 11%가 늘어나는 바람에 무역수지는 13%가 줄었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말하는 복지라는 것은 조세제도에 의존하는 복지다. 그들은 복지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혈세를 짜내는 증세조치를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를테면, 스웨덴 노동자는 자기가 받는 임금의 6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2007년을 기준으로 스웨덴의 세수총액은 국내총생산의 51.1%를 차지한다. 스웨덴식 '복지국가'는 혈세국가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그처럼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이려면 당연히 국민소득이 증가해야 하고, 국민소득이 증가하려면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요컨대, 스웨덴식 '복지국가'는 안정적 경제성장→국민소득 증가→증세→복지정책 유지로 연속되는 선순환과정 위에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스웨덴의 수출주도형 경제는 성장하기는커녕 차츰 쇠락할 운명에 처해 있다. 바로 이것이 스웨덴식 '복지국가'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중간지대'를 선택했던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1932년부터 1976년까지 장기집권하면서 건설해놓은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인민의 가정(Folkhemmet)'이라 부르며 세상에 자랑해왔지만, 이제는 아니다.

1932년부터 1949년까지 스웨덴 재정장관으로 재직하였던 케인즈주의자 에른스트 비그포르쓰(Ernst Wigforss, 1881-1977)와 1932년부터 1946년까지 스웨덴 총리로 재직하였던 사민주의자 페르 알빈 한쏜(Per Albin Hansson, 1885-1946)이 설계하였던 '인민의 가정'은 무너지고 있다.
 
물론 스웨덴만 그런 슬픈 운명에 처한 것이 아니다. 복지재정이 대략 국내총생산의 30%를 차지하는 서유럽 '복지국가'들이 모두 스웨덴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복지의 종착역'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 사이에 조성된 계급모순을 청산하지 않고 적당히 완화시킨, 다시 말해서 빈부격차와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한 자본주의사회에서 스웨덴식 '복지국가'는 환상이다. 그런 사회에서 복지는 경제성장기에 일시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뿐이다.

현실이 이러한 데도, 서구중심주의에 도취되어 진보를 자처하는 이 땅의 일부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오늘도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주문처럼 열심히 외우고 있다.
 
스웨덴식 '복지국가'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우리식의 진정한 복지를 추구할 수 있다. 우리식의 진정한 복지는 스웨덴의 '혈세정책'과 실패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라, 외국계 자본과 국내 재벌이 장악한 중요산업을 국유화하여 실현되는 것이다.

우리식 중요산업 국유화에 대해 간단히 말하면, 자본주의시장경제에서 이탈하여 오직 이 땅의 국민대중을 위해 사회적, 협동적으로 경영되고, 생산관리체계가 민주화된 국유기업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우리식 중요산업 국유화를 실현하여야 서로 돕고 한 가족처럼 화목하게 사는 '인민의 가정'을 이 땅에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1월 2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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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0

추축시대와 자주시대, 문명사적 전환

변혁과 진보 (6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변혁과 진보 (63)


추축시대가 낳은 사람중심의 관념론적 철학사상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의 굵은 발자취가 20세기 서양철학계에 남아있다. 독일에서 정신의학을 연구하였던 그는 1948년에 스위스 바젤대학교 교수로 취임한 뒤에는 철학자로 변신하였다.

그의 철학적 사고는 비록 관념론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세계문명사에 대한 그의 통찰에는 주목할 만한 개념 하나가 들어있다. 1949년에 독일에서 출판된 야스퍼스의 책 '역사의 기원과 목표(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에서 그가 논한 '추축시대(樞軸時代, Achsenzeit)'라는 개념이다.

야스퍼스가 말한 추축시대란, 한 마디로 말해서, 세계문명사의 대전환기를 뜻한다. 세계문명사는 밋밋한 직선형으로 발전되어온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기간에 이르러 근본적인 변화와 질적인 도약을 겪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추축시대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싯달타(기원전 563-483), 공자(기원전 551-479),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 같은 사상가들이 동서양에 나타나 세계문명사의 발전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기원전 6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까지 약 200년 동안 진행된 세계문명사의 대전환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싯달타, 공자,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말해주는 공통점은 사람중심의 철학사상이라는 데 있다.

비록 그 세 사상가가 살았던 문명권은 서로 달랐으나, 그들은 자연 그 자체를, 또는 사람이 자기의 심리를 자연에 투영하여 빚어낸 어떤 초월적 존재를 철학적 사색의 주제로 삼은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을 철학적 사색의 총적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어떤 초월적 존재를 상정하고 그런 가상존재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았던 자연종교와 그에 기초한 고대문명을 훌쩍 뛰어넘은 사상사적 전환과 문명사적 전환이 바로 그들에 의해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상적 대전환과 문명사적 대전환이 싯달타, 공자, 소크라테스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당대에는 그 누구도 문명사적 대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을 알지 못했다. 세계문명사를 긴 안목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이 먼 훗날에 나타나 인류에게 그 전환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세계문명사의 대전환은 왜 하필이면 기원전 6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까지 약 200년 기간에 시작되었던 것일까? 야스퍼스의 해명에 따르면, 추축시대는 낡은 제국이 몰락하고 아직 새로운 제국이 출현하기 이전의 중간기에 해당한다.

기원전 2,000년부터 612년까지 매우 긴 기간 동안 존속하였던 앗시리아제국이 몰락하고, 기원전 336년부터 323년까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존속하였던 마케도니아제국이 출현하기 전까지의 중간기에 추축시대가 위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고대제국의 몰락과 발흥 사이의 중간기에 세계문명사의 대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일까?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고대제국은 귀족계급이 노예계급을 착취하는 사회적 생산관계 위에 성립된 것이었다. 또한 노예제 사회의 생산력은 해외침략전쟁을 통한 노예확보, 자원약탈, 영토확장에 의해 발전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고대제국의 몰락과 발흥 사이의 중간기에 해당한 추축시대 200년은, 고대제국의 해외침략전쟁이 일시적으로 중지되었던 평화기였음을 알 수 있다. 세계문명사의 대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한 추축시대는 고대제국의 해외침략전쟁이 일시적으로 중지된 평화시대였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고대 자연종교는 귀족계급이 노예계급을 억누르고 착취하는 노예제 사회의 생산관계에 조응한 이념적 상부구조로 성립되었지만, 그와 달리 싯달타, 공자, 소크라테스의 철학사상은 노예제 사회의 생산관계에 조응한 사상이 아니었다. 그들의 철학사상은 자연종교를 뛰어넘어 사람을 철학적 사색의 총적 주제로 삼은 새로운 철학사상이라 점에서 진보적 성격을 가졌던 것이다.

싯달타, 공자, 소크라테스의 철학사상이 사람을 철학적 사색의 총적 주제로 삼기는 하였으나, 사람의 본성과 운명을 사람과 세계의 관계 속에서 인식하지 않고, 사람을 물질세계와 분리시킨 관념적 존재로 인식하였다는 점에서 관념론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의 사상은 사람중심의 관념론적 철학사상이었다.


문명사적 전환이 일어나는 자주시대

싯달타, 공자, 소크라테스가 창시한 사람중심의 관념론적 철학사상에서 한 걸음 전진하여 세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혀준 유물변증법의 유물론적 세계관이 정립되기까지 세계문명사는 2,000년이 넘는 기나긴 탐구와 사색의 발전과정을 거쳐야 하였다.

그리고 세계의 본질을 밝혀준 유물변증법의 유물론적 세계관에서 또 다시 한 걸음 전진하여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의 본질을 밝혀준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이 완성되기까지 세계문명사는 곡절 많은 발전과정을 거쳐야 하였다.

지면제약상 이 글에서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이란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진리, 그리고 사람이 자기의 자주적 본성에 따라 물질세계와 자신의 운명을 바꾼다는 진리를 밝혀준 새로운 세계관이다.

유물변증법의 유물론적 세계관이 세계의 본질을 밝혀주었다면,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은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의 본질을 밝혀주었다. 따라서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은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다시 말해서 사람의 본성과 운명에 대한 물음에 완벽한 해답을 준 완성된 세계관이다.

그러면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이 정립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사람중심의 관념론적 세계관이 기원전 6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까지 약 200년 기간에 정립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도 세계정세의 변화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과 세계정세의 변화동향 사이의 상관관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던 제국주의세계질서가 차츰 약화되고, 제국주의깡패국가들이 더 이상 세계대전을 도발하지 못하게 된 오늘의 세계정세는, 노예확보와 자원약탈과 영토확장을 노린 해외침략전쟁이 일시적으로 중지되었던, 고대제국의 몰락과 발흥 사이의 중간기 200년에 해당한 추축시대와 매우 흡사하다.
 
수레를 타고 다니던 추축시대에 싯달타, 공자, 소크라테스가 창시한 사람중심의 관념론적 철학사상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 세계문명사의 전환이 완결되기까지 근 1,000년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 인류는 세계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정보와 자료를 주고받는 초고속 소통시대에 살고 있다.

현존인류에게는 공동사고의 기회가 그만큼 넓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에 대한 자본의 사상통제력이 약화되는 시기에,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은 전 세계에 급속히 전파되어 현존인류의 공동사고를 촉발시킬 것이며 세계문명사의 전환을 결정적으로 앞당길 것이다.

사람중심의 관념론적 철학사상이 기원전 6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까지 약 200년에 해당한 추축시대에 세계문명사의 대전환을 일으키기 시작했다면,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이 정립된 이 시대는 세계문명사에 두 번째로 대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한 제2차축시대가 아닌가!

싯달타, 공자, 소크라테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이 제1차축시대를 살면서도 문명사적 전환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였던 것처럼, 현존인류도 제2차축시대를 살면서 문명사적 전환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야스퍼스식 어법으로는 제2차축시대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우리식 어법으로 정확히 표현하면 자주시대라고 해야 한다. 자주시대라는 말은 별다른 뜻이 없이 쓰는 유행어가 아니다.

사람과 세계의 관계가 냉혹한 현금관계로 고착되어버린, 그리하여 자본이 사람을 지배하고, 사람이 돈의 노예처럼 억눌려 살아야 하는 낡고 썩은 문명을 마감하고 사람이 세계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문명 전환의 시대, 그런 문명사적 전환기가 바로 자주시대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밀고 나가는 사회변혁운동은 그 역사적 의의가 진보적 정권교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문명사의 넓고 긴 안목으로 사회변혁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세계문명사의 넓고 긴 안목으로 다시 바라보면, 문명사적 전환을 향한 진보와 변혁이 일어나는 자주시대의 역동적 현실이 시야에 들어온다. 긴 어둠을 깨고 솟아오른 태양이 눈부시게 펼쳐놓은 새 아침의 붉은 노을처럼 장엄하지 않은가. (2012년 1월 2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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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9

불굴의 아프리카 대지 위에 남긴 마지막 말

진실의 말팔매 <49>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이 땅에서 크와메 투레(Kwame Ture)라는 혁명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면 스토클리 카마이클(Stokely Carmichael, 1941-1998)이라는 이름은 기억할까?

1986년부터 미국인들은 해마다 1월에 세 번째로 돌아오는 월요일을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을 기념하는 국경절로 지키는데, 올해는 1월 16일이 그 국경절이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처럼, 마틴 루터 킹은 1955년부터 1968년까지 미국에서 계속된 흑인민권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거꾸로 뒤집힌 세상에서는 흑인민권운동의 지도자가 마틴 루터 킹밖에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훌륭한 지도자가 두 사람이나 더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스토클리 카마이클과 말콤 엑스(Malcolm X, 1925-1965)다.

미국의 흑인운동노선은 흑인과 백인의 평화공존을 추구한 인종통합주의(racial integrationism)와 백인지배체제에 흡수통합되는 것을 거부하고 흑인의 자주성을 추구한 흑인분리주의(black separatism)로 갈라졌는데, 전자는 미국 중산층의 자유주의와 타협하였고, 후자는 흑인민중의 정치세력화와 사회정치적 해방을 추구하였다. 마틴 루터 킹은 인종통합주의를 주창한 지도자였고, 스토클리 카마이클과 말콤 엑스는 흑인분리주의를 주창한 지도자들이었다.

그런데 운동노선을 넘어 사상분야로 들어가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마틴 루터 킹이 인종통합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기독교에 두었고, 말콤 엑스가 흑인분리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이슬람교에 두었던 것에 비해, 스토클리 카마이클은 낡은 종교적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반제자주적 사회주의를 자기의 사상적 기초로 삼았다.

바로 그런 점에서, 카마이클은 민권운동 수준에 머물렀던 마틴 루터 킹을 훌쩍 뛰어넘은 흑인해방운동가였다. 그래서 그의 흑인운동을 흑인민권운동(African-American Civil Rights Movement)과 구별하여 흑인의 힘 운동(Black Power Movement)이라 부른다.

△ "검은, 우리는 아름답다" 스토클리 카마이클이 흑인의 힘 운동을 역설하며 연설을 하는 모습. (사진을 누르면 동영상 연설 장면을 볼 수 있음.)

미국에서 흑인의 힘 운동을 이끌던 그는 1969년에 홀연히 미국을 떠나 서아프리카로 건너갔다. 그는 왜 자기의 정치활동현장을 미국에서 서아프리카로 옮겼을까? 서아프리카에서 스토클리 카마이클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범아프리카 인민혁명당(All-African Peoples Revolutionary Party)이었다.

1968년에 기니(Guinea)에서 창당된 이 당은 당시 서아프리카에 불길처럼 타오른 아프리카민중의 반제자주화 사회주의운동의 정치적 중심이었다. 스토클리 카마이클은 생을 마칠 때까지 그 당의 지도성원으로 활동하였다.

1960년대 서아프리카에서 반제자주화 사회주의운동을 이끈 지도자 세 사람이 있었다. 아흐메드 세쿠 투레(Ahmed Sekou Toure, 1922-1984), 크와메 엔크루마(Kwame Nkrumah, 1909-1972), 모디보 케이타(Modibo Keita, 1915-1977)였다.

아흐메드 세쿠 투레는 프랑스의 제국주의지배에서 벗어나 1958년 10월 2일에 독립한 기니의 초대 대통령이었고, 엔크루마는 영국의 제국주의지배에서 벗어나 1957년 3월 6일에 독립한 가나(Ghana)의 대통령이었고, 모디보 케이타는 프랑스의 제국주의지배에서 벗어나 1960년 6월 20일에 독립한 말리(Mali)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서아프리카의 반제자주화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하게 된 미국 출신의 흑인해방운동가 스토클리 카마이클은 미국식 이름을 버리고, 그 운동을 이끄는 두 지도자의 이름에서 하나씩 따온 아프리카식 이름 크와메 투레로 개명하였다.

그의 서아프리카 이주와 아프리카식 개명은, 미국의 흑인해방운동가가 아프리카의 흑인혁명가로 다시 태어났음을 뜻한다. 1971년에 출판된 그의 두 번째 저서 '스토클리는 말한다: 흑인의 힘에서 범아프리카주의에로의 귀환(Stokely Speaks: Black Power Back to Pan-Africanism)'이 그의 사상적 전환과 발전을 말해준다.

△ 1992년 미국을 방문, 샌프란시스코에서 범아프리카주의와 신세계 질서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는 크와메 투레(스토클리 카마이클) (사진을 누르면 동영상 연설 장면을 볼 수 있음.)

서아프리카에서 반제자주화 사회주의운동에 앞장선 흑인혁명가 크와메 투레는 아프리카 나라들의 정치적 단결을 역설하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 반제자주적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아프리카식 사회변혁의 길을 제시하고, 자기가 속한 범아프리카 인민혁명당을 통해 정력적인 정치활동을 벌였다.

원래 크와메 엔크루마 대통령과 세쿠 투레 대통령의 주도로 1968년에 창당된 범아프리카 인민혁명당의 당면목표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를 짓밟는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깡패국가들과 맞서 싸우기 위한 범아프리카 인민혁명군을 창설하려는 것이었다.

만일 범아프리카 인민혁명당이 범아프리카 인민혁명군을 창설하였더라면, 미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제국주의깡패국가들의 무력침공에 맞서 싸우는 전세계 반제군사전선이 강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제자주화 사회주의운동을 시작하더니 이제는 반제군사전선까지 형성하려는 그들을 제국주의깡패국가들이 그대로 놔둘리 없었다. 이를테면, 1966년 2월 24일 당시 크와메 엔크루마 대통령이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쟁에 맞서 싸우던 북베트남과 중국을 순방하는 동안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배후조종을 받은 군사반란이 가나에서 일어나 정권이 전복되고 엔크루마 대통령은 해외를 떠도는 망명객으로 한많은 생을 마쳤다.

제국주의깡패국가들의 난동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1970년 11월 21일 밤, 포르투갈군은 기니반란군과 함께 상륙정을 타고 기니의 수도 코나크리에 인접한 해안에 상륙하여 세쿠 투레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기습공격을 감행하였으나 실패로 끝났다. 이것이 이른바 '녹색바다 작전(Operation Green Sea)'으로 알려진 포르투갈의 기니 무력침공이다. 

다른 한 편, 미국에서 흑인해방운동가로 활동할 때부터 크와메 투레를 감시하였던 미국 중앙정보국은 그가 서아프리카로 이주하여 반제자주화 사회주의운동에 참가하자 그를 암살하려는 비밀공작을 추진하였다.

2007년에 기밀해제되어 세상에 공개된 미국 중앙정보국 비밀자료에 따르면, 크와메 투레가 서아프리카로 건너간 1968년부터 미국 중앙정보국은 그를 이전보다 더 집중적으로 감시, 추적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흑인해방운동가로 투쟁하던 시기에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자기 몸에 비밀리에 발암물질을 주입하여 자신을 살해하려고 기도하였음을 폭로한 적이 있다. 결국 전립선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던 그는 1998년 11월 15일 기니의 수도 코나크리에서 57세를 일기로 운명하였다.

흑인민권운동에서 출발하여 흑인해방운동을 거쳐 반제자주화 사회주의운동으로 나아갔던 흑인혁명가 크와메 투레가 병마와 싸우던 병원 입원실 창가로 아프리카의 눈부신 햇볕이 비쳐들고 있었다. 의식이 꺼져가던 생의 마지막 순간, 흑인민중과 함께 헤쳐온 고난과 승리의 한생이 그의 망막에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불굴의 아프리카 대지 위에 두 마디 말을 남기고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조직하라! 조직하라!" (2012년 1월 1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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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3

과학적 인간관과 진보의식화

변혁과 진보 (62)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신념의 생물학과 인간의 운명문제

미국의 유명한 세포생물학자 브루스 립튼(Bruce H. Lipton)이 쓴 흥미로운 책이 2005년 5월 미국에서 출판되어 세계 생물학계를 뒤흔들었다. 그 책의 제목은 '신념의 생물학: 의식, 물질, 기적의 힘을 풀어내다(The Biology of Belief: Unleashing the Power of Consciousness, Matter, and Miracles)'이다.

브루스 립튼이 그 책에서 논한 새로운 학설은 유전자 정보가 세포의 활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세포의 활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가 세포생물학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한 이 새로운 학설은 세계 생물학계를 100년 동안 지배해온 DNA 결정론을 뒤집어버렸다.

유전자는 사람의 운명을 지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고, 사람의 사상의식이 그 자신의 운명을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다는 과학적 진리가 생물학적으로도 또 다시 밝혀진 것이다.
 
사람과 세계의 상호관계에서 물질세계를 자기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변화시키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철학적 세계관의 진리, 그리고 사람의 사상의식이 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과학적 인간관의 진리는 오래 전에 해명되었는데, 브루스 립튼의 새로운 학설은 그러한 과학적 인간관의 진리를 세포생물학 분야에서 자연과학적으로 입증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런 이야기도 남아있다. 2010년 6월 21일 중국 랴오닝성 푸순에 있는 전범관리소 기념관이 2년 동안 보수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그 전범관리소 기념관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까닭은, 청국 마지막 황제 푸이가 1950년부터 9년 동안 전범으로 수감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운명전환의 흔적이 그 전범관리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푸이는 1908년 세 살 때 청국 제12대 황제로 등극하였고, 1912년 신해혁명으로 퇴위하였는데, 만주사변을 도발하여 만주를 무력강점한 일제가 1934년에 괴뢰국을 조작할 때 그는 만주국 황제로 변신하였다. 1945년 8월 초 그는 소련군이 만주전투에서 승리하자 전범으로 체포되었다.

전범관리소에서 생활하던 푸이는 처음에 자기 옷의 단추도 낄 줄 몰랐으나 나중에는 제 손으로 빨래도 하고, 바느질도 할 줄 아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운명의 극적인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1959년에 석방된 그는 1964년 제4기 전국정협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문사관 관원으로 일하다 1967년에 곡절많은 생을 마쳤다. 그의 극적인 운명전환은,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자기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과학적 인간관의 진리를 말해주고 있다.


뇌활동과 사상의식활동은 어떻게 다른가?

어떤 사람은 진보적인 사상의식을 가졌고, 또 어떤 사람은 수구적인 사상의식을 가졌다. 왜 그런 격차가 생겨난 것일까?

사상의식은 허공에 떠도는 영혼 같은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사람의 뇌활동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대뇌반구의 겉부분을 피질 또는 회색질이라 하고 속부분을 수질 또는 백질이라 하는데, 피질에는 신경세포체가 있고 백질에는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신경섬유망이 있다. 사람의 뇌에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와 약 1조 개의 신경아교세포가 있다. 신경섬유망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전기신호가 일어나는데 이를 시냅스라 한다.

그런데 시냅스라는 뇌활동은 사상의식활동 자체가 아니라, 사상의식활동의 생물학적 기초다. 뇌활동은 뇌를 가진 모든 동물들의 생물학적 활동이지만, 사상의식활동은 오직 세계의 주체인 사람에게만 고유한 사회적 활동이다.

사람과 동물의 뇌활동에 대해서는 뇌과학이 해명하지만, 사람의 사상의식활동에 대해서는 진보적 사회과학이 해명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과 동물의 뇌활동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생물학적 문제는 뇌과학이 해명하지만, 사람의 사상의식활동이 왜 진보적으로 또는 수구적으로 전개되는가 하는 사회적 문제는 진보적 사회과학이 해명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사람의 사상의식은 뇌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 형성되어 뇌의 기억장치에 저장되어 외부 정보에 대한 반응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사회적 관계에서 어떤 내용의 경험과 학습을 받는가 하는 사회적 요인이 사상의식활동을 직접적으로 결정한다.

군집생활은 해도,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자연계에서 자연본능에 따라 생활하는 동물의 뇌활동은 '우리'를 생각하지 못하고 '나'만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 사회역사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나'만을 생각하는 자연본능적 뇌활동을 뛰어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사상의식활동으로 질적 비약을 이루었다.

'우리'를 외면하고 '나'만 생각하는 자연본능적 뇌활동에 의존하며 그런 내용의 경험과 학습에 노출된 사람은 당연히 개인주의적 사상의식활동을 하게 된다. 그와 달리,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진보적인 사상의식활동에 따라 생활하며 그런 내용의 경험과 학습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집단주의적 사상의식활동을 하게 된다.

2010년 12월에 발간된 '관심, 인식, 정신물리학 휘보'에 실린 미국 네브래스카 주립대학교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진보적 사상의식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방향을 계속 따라가는 강한 신호반응을 보였으나, 수구적 사상의식을 지닌 사람은 그런 신호반응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진보적 사상의식을 지닌 사람이 바라보는 세계와 수구적 사상의식을 지닌 사람이 바라보는 세계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진보적 사상의식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포함한 '우리'의 세계로 사회구성원을 이끌어가지만, 수구적 사상의식은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나'의 세계에 사회구성원을 가두어버린다.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형성된 두 종류의 상호대립적인 사상의식이 각기 뇌구조를 일정하게 바꿔놓는다는 점이다. 2010년 12월 29일 오스트레일리아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영국 런던대학교 인지신경과학연구소의 게라인트 리스 교수의 연구결과를 보도하였는데, 진보적 사상의식을 가진 사람과 수구적 사상의식을 가진 사람의 뇌구조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의 뇌 가운데 편도체와 전측 대상회가 각각 사상의식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되는데, 자주와 평등을 지향하는 진보적 사상의식을 가진 사람의 뇌는 전두엽 한가운데에 있는 전측 대상회가 두꺼운 반면, 굴종과 불평등을 용납하는 수구적 사상의식을 가진 사람의 뇌는 편도체가 두꺼운 것이다.


'나'의 오늘은 비록 짧을지라도

오래 전에 진보적 사회과학이 해명하였음을 물론이고, 최근에 세포생물학과 뇌신경과학으로도 진리성이 확증된 과학적 인간관을 공부하면, 어떤 사회변혁론을 배울 수 있을까? 세상을 바꾸려면 사람을 바꾸어야 하며, 사람을 바꾸려면 그의 사상의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과학적 인간관에서 배우는 우리식 사회변혁의 근본원리다.

그러한 사회변혁의 근본원리가 제기하는 문제는, '우리'를 외면하고 '나'만 생각하는 수구적인 사상의식을 버리고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진보적인 사상의식을 갖는 진보의식화에 관한 것이다.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한생을 바친 애국자, 사회의 진보와 변혁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혁명가를 사회적으로 우러르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고귀한 삶을 본받으려는 까닭은, 그런 애국자와 그런 혁명가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나'의 오늘을 아낌없이 희생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사회 각 부문에서 이름도 없이 명예도 없이 투쟁하는 이 땅의 정치활동가들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나'의 오늘을 바치는 진보의식화된 변혁주체들이다.

그런 진보의식화된 변혁주체들이 조직적으로 결속되어 강력한 정치역량을 발휘할 때, 이 땅의 민중이 바라는 진보적 정권교체가 실현되고,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길이 열리게 된다. 이 땅의 변혁주체들이 그래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통합진보당을 건설한 것 아닌가.

이 땅의 변혁주체들이 전진하는 우리식 사회변혁 발전과정을 축약하면, 진보의식화→진보정당 건설→자주적 진보정권 수립→사회성격 개조와 통일공화국 건설→사회체제 변혁→사상의식 개조로 이어지는 길고 복잡하고 험난한 과정이다.

이 땅의 변혁주체들은 그처럼 길고 복잡하고 험난한 길에 들어섰다. '나'의 오늘은 비록 짧을지라도 '우리'의 미래는 그 변혁의 길에서 영원할 것이다. (2012년 1월 1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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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1

불발탄은 우리의 내일을 죽일 것이다

진실의 말팔매 <48>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961년 5월 13일 당시 미국 대통령 존 케네디가 미국군 특수전 병력 100명을 남베트남에 파병하고, 12월 11일에는 항공모함 코어호(USS Core)를 주축으로 한 항모강습단을 남베트남 해역에 출동시킨 것으로 시작된 미국의 베트남 무력침공은 제국주의깡패국가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저지른 수많은 전쟁범죄들 가운데서도 가장 끔찍스러운 전쟁범죄였다. 베트남 전쟁은 1975년 4월 29일 미국의 패전으로 끝났으나, 15년 동안 계속된 그 전쟁이 베트남 인민들에게 입힌 상처는 너무 참혹하였다.

전쟁이 끝난 때로부터 35년이 지난 오늘도 그 상처에서 피가 흐른다. 지금 베트남 곳곳에 묻혀있는 불발탄이 터져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1975년부터 2000년까지 베트남에서 불발탄 폭발로 목숨을 잃은 사망자가 4만2,000명이 넘고, 부상자는 6만2,000명이 넘는다.

베트남 전쟁 중인 1965년부터 1975년까지 미국이 베트남 영토에 쏟아부은 집속탄(cluster bomb)이 9,700만t이나 되었으니, 전쟁 후 35년이 지났어도 불발탄 재앙은 계속되고 있다. 베트남 영토의 20%에 이르는 지역에 각종 불발탄 35만t이 묻혀있는데, 그 많은 불발탄을 모두 제거하려면 앞으로 300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300년 동안 불발탄 재앙 속에서 살아야 할 베트남의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다. 불발탄 재앙은 이 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 재앙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청소년 학생들이 겪는 학교폭력이다. 흔히 왕따라고도 하고 집단 따돌림이라고도 하는 학교폭력이 날이 갈수록 집단화, 흉포화되고 더욱 확산되고 있다.


청소년 학생이 다른 학생을 집단폭행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물고문을 하거나 개줄로 목을 조르고 지속적으로 금품을 갈취하는 등 잔혹한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 2010년에 이 땅의 청소년 학생 3,5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유형은 폭행 39%, 모욕 20%, 금품갈취 12%, 협박 10%, 집단따돌림 7%, 심부름 4%, 성희롱 및 성추행 4%로 나타났다.

서울과 경기도에 사는 중고등학교 재학생 청소년 1,1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무려 48%가 지난 1년 동안에 학교폭력을 한 차례 이상 겪었다고 한다. 한, 중, 일 세 나라의 중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땅의 중학생 응답자 가운데 49%가 학교폭력을 겪었다. 중국 중학생 응답자 가운데 학교폭력을 겪은 피해자는 38%, 일본 중학생의 경우는 피해자가 28%로 나타났다.

2010년에 이 땅의 청소년 학생 24만2,0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12.8%에 달하는 3만908명이 정신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에서 폭력과 범죄가 난무하니,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이 파괴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009년 기준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진학을 포기한 청소년은 초등학교 7만3,000명, 중학교 7만7,000명, 고등학교 15만5,000명으로 총인원이 30만5,000명이나 된다. 누군들 그런 폭력학교에 다니고 싶어하겠는가.


이 땅에서 가출한 청소년에 대한 경찰신고건수는 2010년에 1만9,445건이었다. 청소년 1만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0년에 가출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13.7%였다. 학업중단과 진학포기가 가출로 이어지는 심각한 사회현상이 만연되었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가출청소년들이 빠져드는 곳은 타락과 범죄의 함정밖에 없다. 2010년 한 해 동안 청소년 범죄자는 9만4,862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절도범이 39.0%, 폭력범이 25.9%였고, 살인, 강도, 강간, 방화를 저지른 강력범도 3,428명이나 되었다. 강력범은 2008년에 2,322명이었는데, 2년 만에 48%나 증가하였다. 2008년에 464명이었던 청소년 강간범은 2010년에 2,029명으로 폭증하였고, 청소년 살인범은 같은 기간 19명에서 23명으로 늘었다.

푸른 꿈과 따스한 행복을 안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청소년들이 어쩌다가 이 지경으로 망가지고 말았을까? 누구나 알 수 있듯이, 그런 비극의 근본원인은 이 땅의 패악스러운 자본주의체제에 있다. 사회구성이 1%와 99%로 갈라지는 극도의 불평등과 빈부격차, 사람은 팽개치고 돈만 아는 배금주의의 정신적 황폐화, 사회적 빈곤과 불안정이 자살과 타락과 범죄로 폭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 바로 이런 것들이 이 땅의 국민들이 날마다 겪는 자본주의체제의 패악성이 아닌가.

이 땅의 청소년들이 그처럼 패악스러운 세상에서 자라고 있으니 정신건강이 무참히 파괴당하고 인격파탄에 빠져드는 재앙을 겪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은 사회체제의 피해자들이다. 패악스러운 자본의 세상을 뒤집어 살맛나는 민중의 세상으로 바꾸지 않는 한, 학교폭력예방운동을 아무리 해봐야 100년이 걸려도 학교폭력을 제거할 수 없다.

베트남에서 침략전쟁의 상처로 남은 불발탄은 제거하는 만큼 재앙위험이 줄어들지만, 이 땅의 패악한 사회체제가 청소년의 가슴에 박아넣은 불발탄은 사회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계속적으로 증가, 확산되어 결국에는 우리 모두의 미래와 희망을 죽이는 가장 치명적인 재앙을 불러온다.

베트남 영토에 박혀있는 35만t의 불발탄보다 이 땅의 청소년들 가슴에 박혀있는 재앙의 불발탄이 더 참혹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11년 현재 이 땅의 인구 가운데 21.2%를 차지하는 18세 이하 청소년 인구 1,037만9,000명의 가슴에 박힌 재앙의 불발탄을 하루빨리 제거해주어야 한다.

청소년은 장차 이 땅에 건설될 통일조국의 미래와 희망이다. 그처럼 소중한 그들의 가슴에 재앙의 불발탄이 박혀있다면, 이 땅의 내일에 미래와 희망이 깃들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근본을 바꾸는 사회변혁은 그래서 더 절실하다. (2011년 1월 1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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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6

전선은 사상계에도 형성되어야 한다

변혁과 진보 (6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사상의 빈곤에 시달리다

사람들이 흔히 학계라 부르는 지적 활동공간이 있다. 사람들은 사상과 지식을 구분하지 않지만, 원래 사상이란 지식의 세계관적 기초이므로 사상과 지식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객관세계에 대한 사람의 인식활동은 정보→지식→사상→세계관으로 체계화되고, 심화되고, 발전되어간다. 사람의 인식활동은 사상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받아들이고, 세계관을 통해 객관세계의 본질 및 사람 자신의 본성과 운명을 파악한다. 그러므로 사상부문의 지적 활동공간인 사상계는 다종다양한 일반지식을 다루는 지적 활동공간인 학계와 구분되어야 마땅하다.

이 땅에서 아직 전쟁의 포성이 들리던 1953년 4월 서울에 창간되어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폭압의 공포를 들씌우던 1970년 5월까지 장준하 선생이 펴낸 '사상계'라는 월간지가 있었는데, 반공광신자들이 설치던 광란의 1960년대에 '사상계'는 월간지 '청맥'과 함께 진보적 사상운동의 한 축이었다. '사상계'와 '청맥'을 중심으로 전개된 진보적 사상운동의 역사적 경험은 사상계가 사회변혁운동이 진출해야 할 중요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사상계 1953년 4월 창간호

무릇 사회변혁운동이란 진보적이고 변혁적인 사상이 수구적이고 반동적인 사상을 제압하고 척결하는 사상계의 치열한 투쟁 곧 사상운동이다. 사회변혁운동이 사상운동으로 되는 까닭은, 과학적 변혁담론이 진보적이고 변혁적인 사상을 뿌리로 하여 자라나기 때문이다. 뿌리가 있어야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것처럼, 진보적이고 변혁적인 사상이 정립되지 않으면 사회변혁운동도 일어나지 않는다. 뿌리 깊은 나무가 거목으로 커갈 수 있는 것처럼, 진보적이고 변혁적인 사상을 깊이 체득한 사회변혁운동이 실패와 침체를 모르고 성장할 수 있다.

다른 사회운동들과 달리, 낡은 세상을 새로운 세상으로 바꾸는 사회변혁운동은 오로지 사상운동에서 생성하고 발전하며, 오로지 사상운동에서 공급받은 동력으로 전진하고 투쟁하며, 오로지 사상의 힘으로 승리한다. 사회변혁운동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모체는 진보적이고 변혁적인 사상이며, 사회변혁운동을 전진시키는 동력원천은 사상운동이다. 낡고 썩은 세상을 새롭고 살맛나는 세상으로 바꾸는 변혁운동현장에서 사상활동의 숨결과 사상투쟁의 열기가 느껴져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땅에서 사상운동의 형편은 어떠한가? 선거전술과 복지담론이 곳곳에서 요란하고, 진보적 정권교체의 구호소리가 드높지만, 사상운동은 잠잠하다. 1960년대 이 땅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활발히 활동하였던 '사상계'와 '청맥' 같은 사상운동의 전략거점이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땅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늘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불행하다. 그것은 그들 자신이 겪는 불행이며 동시에 이 땅의 사회변혁운동에 찾아온 불행이다.


△청맥 1964년 11월호

인쇄용지를 넉넉히 구하기 힘들어 애태우던 궁핍한 시절 1960년대 이 땅에서는 사상운동이 전개되었지만, 도서출판시대를 뛰어넘어 정보와 지식이 인터넷 공간에서 거의 무제한으로 양산되고 확산되는 정보화시대의 이 땅에서는 지금 사상운동이라는 말조차 생소한 느낌을 안겨주고 있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그들 자신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사상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눈앞에서 진행되는 악순환

진보정치활동가들만 사상의 빈곤에 시달리는 게 아니라, 이 사회 전체가 사상의 빈곤에 빠져있다. 과학적 사고능력이 저하되고 선정적인 상품문화에 나포된 천박한 세태, 논리적 사고를 접어두고 장난기 어린 감성표출에 열광하는 세태, 읽을 만한 사회과학서적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사회과학서적을 읽는 사람을 시대에 뒤떨어진 바보처럼 취급하기 십상이고, '나가수'보다 조금 수준을 높여 '나꼼수'나 들여다보며 헐렁한 잡담을 즐기는 세태.

바로 그런 척박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사상의 빈곤이 사상적 우민화를 재촉하고, 사상적 우민화가 또 다시 사상의 빈곤을 한층 더 악화시키는 사상적 빈곤과 우민화의 악순환이 우리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민화의 극치는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갖가지 통계자료들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놀랍게도 미국은 우민대국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미국식 자본주의가 3억 명에 이르는 미국 국민을 그저 웃고 즐기기에만 열중하는 우민으로 만들었다.

이를테면, 2009년 3월 <유럽통신휘보(European Journal of Communication>가 미국, 영국, 덴마크, 핀란드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탈레반이 무엇인지 아는 응답자는 미국인 58%, 덴마크인 68%, 영국인 75%, 핀란드인 76%로 나타났다. 또한 미국 일간지 <유에스에이 투데이> 2008년 11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가운데 7명은 역사지식에서 낙제점을 받는 무지를 드러냈다. <뉴욕타임스> 2009년 12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인의 정보접수량이 지난 30년 동안 350%나 급증하였는데도, 미국인들은 탈레반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미국 역사에도 무지한 우민으로 전락하였다.

고도로 정보화된 나라에 사는 미국인들이 왜 우민으로 전락하였을까? 그 까닭은, 그들이 받아들이는 정보라는 것이 잡담 수준의 정보이기 때문이다. 기존 인쇄매체를 통한 정보접수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미국에서 사는 미국인들은 지금 전자우편이나 휴대전화를 통해 일상대화나 잡담을 주고받거나 비디오게임을 즐기는데 열중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정보접수량의 55%를 차지한 것은 비디오게임 사용이었다. 각종 잡다한 정보들만 폭증하고, 지식과 사상은 실종되고, 천박하고 선정적인 상품문화가 압도적인 사상정신적 황폐화, 바로 이것이 오늘 미국 사회의 숨막히는 현실이다.

그처럼 천박하고 선정적인 미국의 상품문화가 1980년대부터 이 땅에 밀물처럼 몰려와 이 땅의 국민대중을 우민화하였다. 1970년대부터 이 땅의 옷차림과 대중문화가 차츰 미국화되더니,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 정책'을 밀어붙인 1990년대 이후에는 이 땅의 식생활과 언어생활과 문화생활과 사고방식마저 미국화되어버렸다.

<연합뉴스> 2009년 4월 6일 보도에 따르면, 이 땅의 국민들 가운데 6.25전쟁이 어느 해에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10대 응답자의 56.8%, 20대 응답자의 56.5%, 30대 응답자의 28.7%, 40대 응답자의 23.0%의 비율로 나타났다. 나이가 젊을수록, 다시 말해서 미국의 상품문화에 노출되고 감염된 정도가 심한 젊은 세대일수록 우민화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천박하고 선정적인 미국식 상품문화의 무분별한 도입이 이 땅의 국민대중을 우민화하고, 사상정신적 황폐화를 불러왔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이 땅은 우민대국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반제자주사상 결핍과 자유주의 과잉

이 땅의 지식인들이 활동하는 학계는 어떠할까?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이 땅의 학계는 미국-유럽 중심주의에 도취되었다. 이 땅의 학계가 미국-유럽 중심주의에 도취된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려면, 미국과 유럽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땅의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연합뉴스> 2011년 9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동안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땅의 지식인들 가운데서 58.5%가 미국에서, 14.7%가 일본에서, 6%가 영국에서, 5.8%가 중국에서, 5.7%가 독일에서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려 70.2%가 미국과 유럽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땅의 지식인들 가운데서 사회과학부문이 32.2%, 공학부문이 24.1%, 인문학부문이 18.4%, 자연과학부문이 11.8%, 예술 및 체육부문이 5%로 나타났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땅의 지식인들 가운데서 무려 50.6%가 사상부문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지식인들인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 땅에 들어와 활동하는 진보적 지식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거의 모두 미국-유럽 중심주의에 도취되었다. 미국-유럽 중심주의에 도취된 그들은 서구식 변혁담론을 논하고, 서구식 사회주의담론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 그들의 시야에는 우리식 변혁담론이 변혁담론이 아닌 것처럼 보이고, 우리식 사회주의담론이 사회주의담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서구식 변혁담론과 서구식 사회주의담론이 벗지 못하는 사상적 질곡이 있으니, 그것은 반제자주사상 결핍과 자유주의 과잉이다. 반제자주사상이 결핍된 진보적 지식인은 반제자주사상과 민족주의를 혼동하여 반제자주사상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자유주의가 과잉된 진보적 지식인은 집단주의와 전체주의를 혼동하여 집단주의를 범죄시한다.

반제자주사상 결핍과 자유주의 과잉이라는 질곡에 갇힌 이 땅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남측의 우리식 변혁담론을 좌파민족주의담론으로 폄하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으며, 북측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전체주의와 세습이라고 비난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에서 유학하는 동안 서구 사상계의 반제자주사상 결핍증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염된 이 땅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근대국가건설이 계급투쟁의 전취물이라는 유럽의 역사적 경험만 중시할 뿐이고, 근대국가건설이 식민지민족해방운동의 전취물이라는 아시아의 역사적 경험은 외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반제자주사상과 민족주의를 혼동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식 변혁담론이 왜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 강령을 실현하는 변혁단계를 제시하였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식 변혁담론이 왜 통합진보당 같은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는 당건설이론을 제시하였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사상적 질곡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서구 사상계의 자유주의 전통을 모방, 답습한 이 땅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계급소멸과 국가조락 이후의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주의를 절대기준으로 설정해놓기 때문에, 사회주의국가가 계급소멸과 함께 조락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주의국가가 왜 반제자주화의 보루가 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주의국가가 왜 집단주의 운명공동체로 건설되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수구적 지식인들과 똑같이 전체주의론과 세습론을 늘어놓는다.

이 땅의 진보적 지식인들 가운데서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 강령을 제시한 우리식 변혁담론을 논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고, 우리식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반제자주사상과 집단주의를 이해하는 사람도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학가에서 사회과학서점이 자취를 감추었고,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학습하고 토론하는 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것은 진보적 사상운동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가 조성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진보적 사상운동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그 장애는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반드시 넘어야 할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이 땅의 사상계에 전선을 형성할 필요가 제기되었다.

반동적 시장주의와 친미굴종사상의 어둠을 뚫고 진보적 민주주의와 반제자주사상을 전파할 사상전선을 형성하고, 우리식 변혁담론의 과학적 우월성과 위력적 실천으로 노쇠한 서구식 변혁담론을 제압할 사상전선을 형성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이 땅에서 변혁과 진보를 추구하는 문필가, 지식인, 연구자, 언론인들이 펼쳐야 할 진보적 사상운동의 당면과제다. 사회변혁운동에서 전환을 일으켜야 할 2012년 새해는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또 하나 당면과제를 안겨주었다. (2012년 1월 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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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114,212명에게 물어보라

진실의 말팔매 <47>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12년 1월 2일 영국의 누리집 '이라크 사망자 계수(Iraq Body Count)'에 '2003년부터 2011년까지 폭력사태에 따른 이라크 사망자들(Iraq Deaths from Violence 2003-2011)'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게시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년 동안 계속된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이라크 민간인은 114,212명이다. 그들 가운데 총기교전으로 사망한 민간인이 60,024명이고, 공중폭격이나 급조폭발물로 사망한 민간인이 37,840명이고, 미사일공격이나 공습으로 사망한 민간인이 5,648명이다. 연령을 확인한 사망자 45,779명 가운데 8.64%에 이르는 3,911명이 18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민간인이 114,212명이었으니, 부상당한 민간인은 수 십만 명에 이르렀을 것이고, 또 얼마나 많은 재산이 잿더미로 변하였을까.

그처럼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이라크 전쟁을 누가 일으켰나?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은 왜 이라크에 쳐들어갔나? 누구나 아는 것처럼, 당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비밀리에 추진 중인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이라크를 무력침공하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 무력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꺼내놓은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은 그들이 날조해낸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2009년 9월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는 영국 의회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파괴무기를 45분만에 실전에 동원할 수 있다는 충격발언으로 의회를 자극하여 영국군의 이라크 전쟁 참전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45분만에 실전에 동원한다는 '군사정보'는, 이라크 전쟁 전에 바그다드에 침투하여 암약하던 영국 비밀정보국(SIS) 소속 밀파간첩이 본부에 보고한 것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 이라크군 지휘관 두 사람이 바그다드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서 대량파괴무기를 45분만에 실전에 동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을 택시운전사가 엿들었는데, 영국 비밀정보국 간첩이 우연히 그 택시운전사를 만나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본부에 보고하였다는 것이다.

수다쟁이 택시운전사로부터 들은 뜬소문을 본부에 보고한 간첩도 처벌대상이지만, 그처럼 황당한 뜬소문을 정보자료로 작성해 영국 총리실에 상신한 영국 비밀정보국의 죄질은 더 나쁘고, 그런 정보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짜정보로 영국 의회와 영국 국민을 속이고 영국군의 이라크 전쟁 참전을 밀어붙인 당시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야말로 악질 중의 악질이다. 

2000년 당시 이라크를 탈출해 독일에 거주하고 있었던 이라크 출신 망명자 라피드 아흐데므 알완 알-자나비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비밀리에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했다는 정보를 독일 연방정보국(BND) 요원에게 제공하였는데, 알-자나비는 2011년 2월 15일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과 대담하면서 자신의 정보가 거짓이었다고 고백하였다.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스펠드는 2011년 2월 20일 <CNN>과 대담하는 자리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파괴무기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국이 알았더라면 무력침공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럼스펠드의 그 발언이 사실이라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하였다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거짓정보에 깜쪽같이 속아넘어갔다는 말인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파괴무기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기들이 알지 못해서 실수로 이라크를 쳐들어갔다는 소리야말로 세상을 또 다시 속이려드는 럼스펠드의 가증스러운 수작이다. 

미국은 거짓정보를 날조, 유포하여 세상을 속이고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하여 무고한 이라크 민간인 114,212명을 무참히 죽였다. 이것은 명백하게도, 전쟁범죄에 의한 민간인 대량학살이다.


재물을 갈취하려고 사람 1-2명을 죽인 살인범은 끝까지 추적, 검거하여 형사처벌하면서도, 민간인 114,212명을 대량학살한 전범자는 형사처벌을 받기는커녕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떵떵거리고 살도록 방치하는 것은 인류의 양심과 이성이 용납하지 않는 모순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하여 민간인 114,212명을 대량학살한 전범자들을 모조리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여 형사처벌해야 마땅하다.

이라크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대량학살을 자행한 전범자들은 11명이다. 침략전쟁도발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쉬, 부통령 딕 체니, 국무장관 콜린 파월,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합참의장 리처드 마이어스, 중앙정보국장 조지 테닛,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이고, 침략전쟁도발 당시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 국방장관 제프 훈, 합참의장 마이클 워커, 비밀정보국장 리처드 디어러브가 전범자 명단에 들어간다.

그런데 전범자 11명의 신원이 명백히 드러나 있고, 전쟁범죄를 처벌하는 국제형사재판소가 있는데도,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전범자들을 고소하는 나라가 없다는 사실이다. 만일 어떤 나라가 그 전범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고소하면, 그 나라는 미국으로부터 즉각 보복공격을 받을 것이므로 아무도 고소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복공격에 대한 공포가 정의로운 형사처벌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조직폭력배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것을 목격한 서민들이 그들의 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설령 전범자 11명을 국제형사재판소 법정에 세워 처벌한다고 해도, 전쟁범죄 자체를 뿌리뽑지 못할 것이다. 전쟁범죄의 근원은 전범자를 만들어내는 제국주의깡패국가다. 중동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하여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한 주범국은 미국이고 종범국은 영국이다. 제국주의깡패국가를 정상국가로 변혁, 개조하고, 제국주의진영을 해체, 소멸시켜야 전쟁범죄와 대량학살범죄를 뿌리뽑을 수 있다.

현실이 이처럼 명백한 데도, 제국주의깡패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졌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제국주의침략전쟁으로 무참히 학살당한 이라크 민간인 114,212명에게 제국주의깡패국가의 실존 여부를 물어보아야 한다. 이라크 침략전쟁의 끔찍스러운 참상을 알게 되었으면서도 제국주의깡패국가의 존재를 의심한다면, 그것은 지능지수가 정상에 못미치는 지적 장애현상일 것이다. 

제국주의깡패국가는 60여 년 전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침략전쟁과 이윤수탈에 광분하며 인류에게 재앙과 고통과 죽음을 강요하고 있다. 이라크 침략전쟁에 의한 민간인 대량학살은 그런 참상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참혹한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도, 리비아 무력침공도, 시리아 내란도발도, 이란 전쟁위협도 모두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깡패국가들의 집단적 범죄다.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진영이 지구 위에 남아있는 한, 인류의 자주와 평화, 약소국의 주권과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 제국주의깡패국가들이 미쳐날뛰는 국제사회에는 정의와 법치 같은 것은 통하지 않고, 제국주의깡패국가가 무고한 약소국을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포악과 야만이 넘실거린다.

제국주의깡패국가를 정상국가로 변혁, 개조하고, 제국주의진영을 해체, 소멸시킬 때까지 제국주의침략자들과 끝까지 비타협적으로 맞서싸우는 반제자주화투쟁이 인류의 자주와 평화를 지키는 길이고, 약소민족의 주권과 생존을 지키는 길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라크를 무력침공하여 민간인 114,212명을 죽인 바로 그 제국주의군대가 이 땅에도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국주의깡패국가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은 주한미국군이 없으면, "북한이 남침하여 전쟁이 일어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이른바 '남침위험설'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파괴무기를 45분만에 실전에 동원한다는 택시운전사의 가짜정보처럼 세상을 속이는 거짓말이다.


북침전쟁훈련을 전개하기 위해 한반도 해역에 출몰한 미국해군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

남북이 전쟁을 벌이는 경우 남북 전체가 파괴될 판인데 주한미국군이 철군했다고 해서 왜 동족끼리 전쟁으로 서로 죽이겠는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통해 남북이 정치적으로 화해하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평화통일로 나아가자고 두 차례씩이나 합의하였는데, 주한미국군이 철군했다고 해서 왜 동족끼리 전쟁으로 서로 죽이겠는가.

한반도 전쟁위험은 주한미국군 철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주한미국군 주둔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제국주의깡패국가들 가운데 우두머리인 미국이 항모강습단 침공무력을 동원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북침전쟁연습을 뻔질나게 벌여놓으니 한반도 전쟁위험이 고조되지 않을 수 없다. 이라크에서 그처럼 극악무도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미국군이 한반도에서는 갑자기 온순해져서 이 땅의 평화를 지켜줄 것이라는 착각이야말로 친미반북선전에 세뇌당한 정신도착증이다.

철군은 평화통일의 지름길이고, 주둔은 전쟁위험의 발화점이다. 주한미국군 주둔으로 한반도 평화가 유지된다는 거짓말에 아직도 속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미국군에게 무참히 학살당한 이라크의 원혼들에게 물어보라. 미국군이 정말 이 땅의 평화를 지켜주는지를... (2012년 1월 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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