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7

한미동맹 조롱하는 트럼프, 미일동맹 중시하는 트럼프

[한호석의 개벽예감](362)
자주시보 2019년 08월 26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궤변을 진실로 믿어버린 친미주의자
2. 친미맹방을 발밑에 두고 멸시하는 미국
3. 주둔비 전액부담 못하면 철군하는 수밖에
4. 미국의 새로운 지배전략수행에서 배제되는 한국
5. 아베의 군국주의무력증강 지원해주는 트럼프


1. 궤변을 진실로 믿어버린 친미주의자 

2018년 9월 26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와 대담하였다. 대담 중에 철군문제에 관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질문자 - “미국은 60년 넘게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데, 당신은 주한미군이 철수되기를 바라는가?”

문재인 - “바라지 않는다. 종전선언과 관련해서, 종전선언이 발표되면 유엔사령부의 지위가 흔들리거나 또는 주한미군이 철수되어야 하는 어떤 압박을 받게 되는 게 아니냐 하는 의심이 있다. 그러나 종전선언은 한국이 65년 전에 정전협정을 체결한 이후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못한 채 정전상태로 지나왔기 때문에 이제라도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전쟁을 끝내는 정치선언을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종전선언은 평화협상이라는 과정을 거쳐 평화협정으로 되는 것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정전체제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전선언은 유엔사령부의 지위나 주한미군의 지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주한미군의 지위는 전적으로 한미동맹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평화협정과는 무관하다. 지금 주한미군은 남북관계에서 평화를 조성하는 대북억지력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에 평화와 안정을 조성하는 균형자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안보를 도와주는 것은 물론이고, 동시에 미국의 세계전략과 잇닿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에도, 심지어 남북이 통일된 뒤에도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대담을 하기에 앞서 2018년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은 북측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진행한 남북정상회담 대국민보고회에서 위의 대담내용과 거의 똑같은 발언을 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문재인 대통령의 위와 같은 대담발언은 열렬한 친미주의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전형적인 친미발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친미발언을 무심히 스쳐갈 수 없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8년 9월 26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와 대담하는 장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담에서 종전선언이 발표되더라도 유엔사령부의 지위가 흔들리거나 주한미국군이 철수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주한미국군이 대북억지력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에 평화와 안정을 조성하는 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에도, 그리고 남북이 통일된 뒤에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친미주의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전형적인 친미발언이다. 그런 친미발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결과 전쟁을 불러오는 주한미국군 영구주둔론과 대북흡수통합론을 주장했다. 그가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하고 1주일 뒤에,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보수언론매체에 대담자로 출연하여 친미발언을 늘어놓은 것은,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한 그가 북의 대남전략에 끌려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번득이는 미국을 안심시키고 환심을 사려는 계산된 행동이었다.     

(1) 한미동맹은 철두철미 미국의 태평양지배체제를 유지하는 장치의 일부인데,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친미주의자들은 한미동맹이 한국을 지켜준다는 착각의 수렁 속에 깊이 빠졌다. 친미주의자들이 모르는 것은, 미국이 자기의 태평양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에 전략거점을 꾸려놓고, 미일동맹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는 것, 그리고 한국을 미일동맹에 부속된 하위체제로 끌어들여 한미동맹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자국의 안보를 위해 이용한다는 것이다. 친미주의자들의 정치적 무지몽매는 한미동맹이 반미조선의 안보위협으로부터 친미한국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궤변을 진실로 믿게 만든다. 

(2) 더 심각한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통일된 한반도에 주한미국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주한미국군이 철수되어야 평화통일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은 70년을 헤아리는 분단역사가 입증한 진리인데, 문재인 대통령은 철군과 통일의 불가분리성에 관한 진리를 부정하였을 뿐 아니라, 주한미국군이 통일 이후에도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궤변을 꺼내놓았다. 주한미국군이 통일 이후에도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말은 영구주둔론을 정당화하려는 궤변일 뿐 아니라, 흡수통합론을 정당화하는 궤변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장한 대로, 만일 미국군이 주둔하는 가운데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그것은 자주통일도 아니고 평화통일도 아니며, 남측이 북측을 먹어버리는 흡수통합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자유한국당과 똑같이 영구주둔론과 흡수통합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주한미국군을 영구히 주둔시키려는 시도나 남측이 북측을 흡수통합하려는 시도는 대결과 전쟁을 불러올 것이므로, 영구주둔론과 흡수통합론은 변형된 대결옹호론이며 변형된 영구분단론이다. 그러므로 문재인 대통령이 영구주둔론과 흡수통합론을 주장할수록 자유한국당과 똑같이 대결과 전쟁을 부추기게 되는 것이다.      

(3)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언론매체와 대담하면서 위와 같은 친미발언을 늘어놓은 시점은 그가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한 날로부터 불과 1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하고 1주일 뒤에,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보수언론매체에 대담자로 출연하여 친미발언을 늘어놓은 것은,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한 그가 북의 대남전략에 끌려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번득이는 미국을 안심시키고 환심을 사려는 계산된 행동이었다. 

(4) 하지만 그런 행동은 부정적 결과만 가져왔다.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하고,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한 문재인 대통령이 1주일 뒤에 그 선언과 정면 배치되는 친미발언을 늘어놓으며 미국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으니, 그에 대한 북의 기대가 무너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북을 자극하는 친미발언을 늘어놓는 바람에 그에 대한 북의 신뢰는 고작 1주일밖에 유지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던 때로부터 근 한 해가 지난 요즈음 북이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 질책하는 것은, 평양공동선언 이후 그 선언에 배치되는 친미적 언행을 계속해왔을 뿐 아니라, 남북 사이에서 우발적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평양에 침투하여 북의 수뇌부를 제거한다는 이른바 참수작전연습(위기관리참모훈련)까지 승인한 그에게 그 동안 참고 참았던 북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현상인 것이다. 


2. 친미맹방을 발밑에 두고 멸시하는 미국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친미주의자들은 미국이 친미맹방에게 호의를 베풀어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미국은 친미맹방에게 호의를 베풀기는커녕 자기 발밑에 두고 멸시한다. 미국이 한국을 얼마나 멸시하는지 알려면, 미국 해군정보국에서 정보분석관으로 근무하던 중 대북군사정보를 주미한국대사관에 전달하다가 미국 사법당국에 체포되어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수감되었던 재미동포 김채곤 씨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2016년 9월 19일 <조선일보>에 실린 대담기사에서 그는 미국이 영국이나 캐나다에게는 대북군사상황에 관한 고급정보를 넘겨주면서도 정작 한국에게는 넘겨주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합니다. 미국 정부에서 일해 보면, 우리가 ‘맹방’, ‘우방’이니 하는 건 한국 혼자의 생각이고 미국의 국익에 따라 결정할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같은 친미주의자들은 미국이 한국을 맹방이라고 부르면서 친근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발밑에 두고 멸시한다는 것을 모른 채, 미국을 칭송하고 추종하는 자기 최면에 걸려있는 것이다.  

한미관계가 그처럼 근본적으로 뒤틀려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1월 5일 주한미국군사령관과 그 휘하의 고위군사지휘관들, 주한미국대사를 청와대에 모두 초청하여 오찬을 대접하면서 그들에게 “한미동맹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졌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를 만들어내는 동맹,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끌어내는 동맹, 나아가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전을 이끄는 위대한 동맹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역설하면서, “한미동맹이 영원할 수 있도록 끝까지 같이 갑시다”라고 호소했다. 입으로는 맹방이니 뭐니 떠들지만, 실제로는 한국을 발밑에 두고 멸시하는 미국 앞에서 “혈맹만세”를 외치는 것이야말로 한미관계의 참담한 현실을 모르는 청맹과니의 헛소리이고, 민족적 자존심을 내버린 굴종행위가 아닐 수 없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8년 11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한미국군사령관과 그 휘하 고위군사지휘관들, 주한미국대사를 청와대에 초청하여 오찬을 대접하면서 담화하는 장면이다.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이 영원할 수 있도록 끝까지 같이 갑시다"라고 말했다. 입으로는 맹방이니 뭐니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을 발밑에 두고 깔보고 멸시하는 미국 앞에서 "혈맹만세!"를 외치는 것이야말로 한미관계의 참담한 현실을 모르는 청맹과니의 헛소리이고, 민족적 자존심을 내버린 굴종행위가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처럼 한미동맹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자주의식이 몽롱해졌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친미주의자의 충성심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고 한미동맹을 조롱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처럼 한미동맹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자주의식이 몽롱해졌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친미주의자의 충성심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고 한미동맹을 조롱하였다. 한미동맹을 조롱하면서 한국에게서 분담금 명목으로 돈이나 뜯어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적나라한 모습이 <뉴욕포스트> 2019년 8월 9일 보도에서 드러났다. 보도에 따르면, 그날 뉴욕시 근교의 대저택에서 열린 대선자금모금행사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청중을 웃기는 만담 같은 즉흥연설을 펼쳐놓던 중에 “한국은 텔레비전도 잘 만들고, 경제도 잘 돌아가는데, 왜 우리가 그들을 지켜주기 위해 돈을 내는가? 그들이 돈을 내야지”라고 하면서 목청을 돋우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문재인 대통령을 지칭-옮긴이) 협상(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 책정협상을 지칭-옮긴이)에 어떻게 끌려 들어왔는지를 묘사하는 대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고 한다. 이것은 한국을 발밑에 두고 멸시하며 모욕하는 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만 멸시하는 게 아니라 다른 맹방들도 멸시하는데, 그런 거친 언행은 그가 백악관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이를테면, 그는 1990년 3월 1일에 발간된 미국의 도색잡지 <플레이보이>에 실린 대담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일본, 서부 도이칠란드, 싸우디 아라비아, 한국 같은 이른바 맹방들이 우리나라에서 돈을 뜯어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이기적으로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나라들은 우리 등에 업혀서, 이제껏 만들어진 것 가운데 가장 큰 돈기계를 가동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우리나라를 이용해먹는다. 그 나라들은 (자국 기업들에게) 많은 보조금을 주면서 좋은 상품을 생산한다. 만약 우리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약 15분 만에 지구 위에서 사라질 나라들, 그런 부유한 나라들에게서 우리는 보상도 받지 못하고 해마다 1,500억 달러씩 잃어버리며 그 나라들을 지켜주면서도 전 세계에서 웃음거리로 되고 있다. 우리 맹방들은 우리에게서 수 십 억 달러를 뜯어가고 있다.”

위의 인용문이 말해주는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30여 년 전부터 친미맹방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극도로 불신하고 있었다. 그의 판별기준에 따르면, 친미맹방들 가운데 미국에게 이용가치가 거의 없는 맹방은 한국이다. 조선의 핵무력완성과 중국의 국력증강과 로씨야의 대미갈등으로 국제정세가 급변된 오늘, 미일동맹을 강화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한미동맹은 이용가치가 거의 없고, 막대한 유지비를 소모하여 미국에게 재정손실만을 안겨주는 골치거리로 보인다. 그러니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멸시하는 게 당연하다. 


3. 주둔비 전액부담 못하면 철군하는 수밖에  

2019년 2월 25일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ISIS)가 펴낸 ‘1990년 이후 주한미국군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의 회의적인 태도’라는 제목의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열거되었다.

(1)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하기 훨씬 이전인 1990년부터 맹방들을 위한 미국군의 노력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이것은 지난 30여 년 동안 트럼프의 공식발언 114건에 대한 분석에서 나타나는 일관된 내용이다.  

(2) 트럼프 대통령은 친미맹방들이 자국 안보를 위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3) 한국, 북대서양조약기구, 일본에 보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된 메시지는 친미맹방들이 미국군 주둔비를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4) 친미맹방들이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리익을 챙기면서도 미국에게 커다란 무역적자를 안겨주며 미국을 이용해 먹는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이다.

(5)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공동의 가치, 공동의 국제관심사, 공동의 도전 및 기회라는 관점에서 미국에게 이익을 주고 있는 증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해외주둔 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을 친미맹방들에게 전액 부담시키고, 만일 어떤 맹방이 전액부담을 거부하는 경우 그 나라에 주둔하는 미국군을 철수하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분담금문제를 중심에 놓고 동맹문제와 철군문제를 생각한다. 2016년 3월 26일 <뉴욕타임스> 기자 두 사람이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트럼프와 전화통화로 대담한 내용을 간추려 보도하였는데, 트럼프와 취재기자는 분담금문제와 철군문제의 상관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취재기자 - “만일 한국과 일본이 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을 인상하지 않을 경우, 당신은 그 나라에 주둔하는 미국군을 철수하겠는가?”

트럼프 - “그렇다. 철수하겠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수 십 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을 잃어버릴 수 없다. 나는 그 나라들이 분담금을 매우 많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 나라들이 분담금을 많이 내지 않으면, 나는 미국군을 철수하겠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꺼내놓았던 위와 같은 강경발언은 결코 지나가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2019년 5월 8일 미국 플로리다주 패너마씨티비치에서 연설하면서 자기가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을 어떻게 인상했는지를 밝히는 대목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9년 5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플로리다주 패너마씨티비치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연설하는 장면이다. 그는 연설 중에 자기가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을 어떻게 인상했는지를 밝혔다. 그는 "돈이 아주 많고, 우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 미국이 주한미국군 주둔비로 해마다 50억 달러씩 소모하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보다 앞서 2019년 2월 12일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자기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 5억 달러를 더 받아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앞으로 분담금을 더 인상하겠다고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2019년 7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서울에 파견하여 주한미국군 연간주둔비 48억 달러 전액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나는 미국군 지휘관에게 우리가 이 부유한 나라(한국을 지칭-옮긴이)를 지켜주는 데 얼마나 드느냐고 물었더니, 50억 달러가 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면 그들은 얼마를 내느냐고 물었더니, 5억 달러를 낸다고 했다. 돈이 아주 많고, 우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 그 나라를 지켜주기 위해 우리가 45억 달러를 잃어버리고 있다니, 이게 믿어지느냐? 그래서 나는 그 나라 지도자(문재인 대통령을 지칭-옮긴이)에게 전화를 걸어, 불공평하므로 당신들이 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가 국회에서 (국방예산이) 통과되었다면서, 5억 달러 이상은 못 내겠다고 했다. 나는 7억5천만 달러를 내라고 했는데, 5억 달러 수준에서 합의를 보았다. 나는 그들(문재인 정부를 지칭-옮긴이)에게 나머지 금액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라고 우리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그보다 앞서 2019년 2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자기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 한 통을 걸어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 5억 달러를 받아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앞으로 몇 해 동안 분담금은 더 오르게 될 것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잘했고, 앞으로도 아주 잘 할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그의 곁에 앉은 각료들도 전적으로 공감하였다. 누구나 직감하는 것처럼, 이 발언은 미국이 한국에게서 앞으로 더 많은 분담금을 뜯어내겠다는 갈취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19년 7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서울에 나타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정경두 국방장관을 각각 따로 만나, 주한미국군 운용비 항목을 열거한 지출명세서를 건네주면서 주한미국군 주둔비 48억 달러 전액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그런데 미중경제전쟁, 한일관계파탄, 세계시장경제의 전반적 침체가 공포의 삼각파도처럼 국제무역구도에 몰아치는 가운데 한국의 수출의존경제가 급속히 위축되어 경제적 시련을 겪는 한국은 미국에게 48억 달러를 상납할 수 없는 곤궁한 처지에 놓였다. 2018년에 진행된 분담금책정협상 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연간 12억 달러를 내라고 요구했을 때도 그렇게 많은 돈은 내지 못하겠다고 펄쩍 뛴 문재인 정부에게 이제는 연간 48억 달러를 내라고 하니, 문재인 대통령은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문재인 정부가 48억 달러를 상납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면서 좀 깎아달라고 간청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고 잡아떼면서, 만일 48억 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수밖에 없다고 협박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철군협박을 들이대도,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게 해마다 48억 달러씩 상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전액부담요구를 거부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결심을 뒷받침해주는 명분으로 된다는 점이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은 철군명분을 얻기 위해 한국에게 감당할 수 없는 전액부담을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4. 미국의 새로운 지배전략수행에서 배제되는 한국

2018년 4월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다. 그날 베이징에서 회의를 진행한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가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고, 미국에게 유엔헌장과 국제법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고 미국에게 국제법을 준수하라고 촉구한 국제기구는 없었는데, 상하이협력기구가 사상 처음 그런 성명을 발표하여 미국의 패권주의를 흔들어놓았다.    

상하이협력기구는 중국의 주도로 설립된 국제안보협력체다. 중국, 로씨야, 인디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등 8개국이 그 기구에 가입하였고, 이란, 몽골, 벨라루시, 아프가니스탄 등 4개국이 그 기구에 참관국으로 이름을 올렸으며, 뛰르끼에, 깜보쟈, 쓰리랑카,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네팔 등 6개국이 그 기구에 대화상대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포괄인구와 경제규모를 보면, 상하이협력기구는 유엔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국제기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상하이협력기구가 미국의 패권주의를 정면에서 비판한 것은 미국의 패권이 결정적으로 약화되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아시아가 미국의 패권에 순응하던 시대가 저물고, 미국의 패권이 약화된 새로운 국제안보환경이 조성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정세변화의 추이는 2019년 8월 19일 오스트레일리아 씨드니대학교 부설 미국학연구쎈터가 펴낸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수 십 년 동안 지속된 중동지역전쟁에 국력을 소모했고, 분렬적 당파정치와 전략시설들에 대한 저투자로 파산상태에 빠졌으며, 미국의 태평양지배체제는 위험에 노출되었고, 미국군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자꾸 위축되어 이제는 위험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뉴욕타임스>는 2019년 8월 13일 기사에서 트럼프의 불개입정책이 미국의 태평양지배체제를 약화시켰다고 분석했지만, 그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다. 트럼프의 불개입정책을 원인으로 하여 미국의 태평양지배체제가 약화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국력이 아시아태평양지역을 이전처럼 전반적으로 장악, 지배하지 못할 만큼 약화되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불개입정책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은 자기에게 불리해진 상황에서 벗어나 앞으로도 세계패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새로운 지배전략을 서둘러 추진해야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트럼프 행정부가 들고 나온 인도-태평양전략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은 미국 국방부가 2019년 6월 1일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문서인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에 들어있다.  

한국에서는 인도-퍼씨픽 스트래티지(Indo-Pacific Strategy)라는 영어명칭을 우리말로 인도-태평양전략이라고 번역하는데, ‘인도(Indo)’는 인도(印度)라는 발음과 똑같아서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인도(Indo)’는 인디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태평양과 연결되어 있는 인디아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인디아양-태평양전략이라는 번역어를 써야 마땅하지만, 한국에서 인도-태평양전략이라는 번역어가 널리 쓰이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도 편의상 그 번역어를 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인도-태평양전략에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의미가 들어있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9년 6월 1일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안보전략문서인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의 겉표지다. "준비태세, 동반자관계, 그리고 상호연계된 지역의 진전"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인도-태평양전략은 미국의 지배체제를 태평양에서 인디아양으로 확장시키고, 중국, 로씨야, 조선과 대립하며, 전략수행에서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중시하는 반면, 한국은 배제하는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국가안보문제에 직결된 조미핵협상을 진전시킬수록 한미동맹의 이용가치는 휘발되기 때문에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수행에서 한국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위의 보고서에는 한국이 배제된다고 기록되지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외부에 공개한 문서에서 한국을 배제한다고 밝히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런 중대하고, 민감한 안보전략문제는 비밀문서에 기록하는 법이다.     

(1) 인도-태평양전략이 포괄하는 지배범위는 미국 서부 해안에서 인디아 서부 해안에 이르는 광대한 해역이다. 인도-태평양전략은 미국의 지배체제를 태평양에서 인디아양으로 확장시킨다.  

(2) 미국이 인도-태평양전략으로 상대하는 적대국은 중국, 로씨야, 조선이다. 인도-태평양전략으로 상대하는 적대국에 조선이 포함된 것은, 그 전략수행이 한반도 정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말해준다. 중국, 로씨야, 조선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맞서기 위해 전략적 협동을 강화하기 시작하였고, 그에 맞서는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는 인도-태평양전략의 중심축으로 결합되기 시작하였다.   
(3) 미국이 인도-태평양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지배거점을 구축한 친미맹방은 일본,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태국이다. 미국은 이 다섯 나라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지만, 동맹관계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전략을 수행하는 데서 중시하는 양대 친미맹방은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다. 

(4) 한미동맹을 조롱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은 인도-태평양전략을 수행하는 데서 한국의 이용가치가 휘발되었음을 말해준다. 인도-태평양전략을 수행하는 데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미일동맹이다. 그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미일동맹에 부속된 한미동맹은 연간 5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유지비만 소모할 뿐 미국에게 주는 이용가치는 거의 없다. 

만일 문재인 정부가 연간 50억 달러에 이르는 주한미국군 주둔비 전액을 부담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지 않겠지만, 문재인 정부에게는 그 많은 돈을 내놓을 능력도 의사도 없다. 이런 사정을 간파한 트럼프 대통령은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명분을 내걸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한미동맹을 포기하는 대신, 미일동맹을 비상히 강화하고, 조선과 핵협상을 벌여 조미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핵위협을 감소시키는 전략목표를 설정하였다. 한미동맹을 조롱하고, 미일동맹을 중시하며, 조선과의 핵협상에 매달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된 언행은 바로 그런 전략목표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 인용된 <뉴욕포스트> 2019년 8월 9일 보도기사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에게 대선자금을 희사한 억만장자 지지자들 앞에서 한미동맹을 조롱하는 발언을 늘어놓고 나서, 자신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분관계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들어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번 주에 그(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지칭-옮긴이)로부터 멋진 친서를 받았다. 우리는 친구다. 사람들은 그가 나를 만날 때 미소를 짓는다고 말한다. 만일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북조선과 피터지는 큰 전쟁을 벌였을 것이다.”

그날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조롱하면서 자신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분관계를 강조하였다. 남과 북을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너무 대조적이다. 이런 대조적인 현상이 말해주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국가안보문제에 직결된 조미핵협상을 진전시킬수록, 그의 표현을 빌리면, 자신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분관계가 지속되는 한, 한미동맹의 이용가치는 휘발되기 때문에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수행에서 한국이 배제된다는 사실이다. 

미국 국방부는 위에서 인용된 안보전략문서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에서 미국이 자기의 안보전략을 수행하는 데서 이용하게 될 친미맹방들을 일본,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태국 순으로 열거하였다. 이것만 보면, 미국이 인도-태평양전략수행에서 한국을 두 번째로 중시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외부에 공개한 문서에 한국을 배제한다고 밝히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런 중대하고, 민감한 안보전략문제는 비밀문서에 수록되는 법이다. 미국이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국가안보전략문제는 정세흐름을 분석하면서 추리해야 한다.  


5. 아베의 군국주의무력증강 지원해주는 트럼프

그날 정치만담 같은 즉흥연설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중시하는 미일동맹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뉴욕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아베 신조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흥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베 신조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베 신조의 아버지 아베 신따로(1924~1991)가 67세를 일기로 사망했을 때, <뉴욕타임스> 1991년 5월 16일부에는 그의 사망을 알리는 부고기사가 실렸다. 기사내용에 따르면, 아베 신따로는 1944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제국 해군항공대에 입대했고, 1945년 봄에 가마가제특공대에 들어갔는데, 그가 특수훈련을 받던 중에 일제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났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특수훈련은 착륙장치가 없고 이륙장치만 있는 자폭항공기들이 폭탄을 싣고 날아가 공격대상 40km 앞에서 분산비행을 하다가 사방에서 수직으로 돌진하여 미국 해군 군함에 충돌하는 자폭공격훈련을 뜻한다. 1944년 10월에 조직된 가미가제특공대는 태평양전쟁 말기 10개월 동안 자폭공격을 약 5,000번 감행했지만, 자폭공격으로 격침시킨 미국 군함은 47척밖에 되지 않았다. 일제가 최후발악으로 감행한 가미가제 자폭공격은 실패였다. 

트럼프는 아베의 아버지가 태평양전쟁시기에 가마가제특공대원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흥미가 동했다. 그래서 트럼프는 가미가제특공대원들이 술에 취하거나 마약을 투입하고 자폭공격을 감행한 게 아니냐고 아베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아베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기 나라를 사랑하였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아베의 답변은 사실왜곡이다. 미국 학사원 정회원이었던 문화인류학자 오오누끼 에미꼬가 쓴 ‘죽으라면 죽으리라’는 제목의 책에 따르면, 가미가제특공대원들은 일본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자폭용사들이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 몇몇 전쟁광신자들은 가미가제특공대에 자원입대했지만, 자원입대자가 얼마 되지 않자, 일제는 항공대원들과 항공학교 졸업생들을 강제로 입대시켰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19년 6월 28일 일본 오사까에서 열린 주요20개국 정상회의 중에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놓은 모습이 눈길을 끈다. 이 다정한 모습은 우연히 연출된 장면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친숙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트럼프와 아베 사이에 형성된 친숙한 관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수행에서 일본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정부의 군국주의무력증강을 용인하는 수준을 넘어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한미동맹을 조롱하는 것을 보면, 인도-태평양전략이 어느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가미가제특공대가 ‘미영귀축’을 부르짖으며 미국을 공격하였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아베의 왜곡답변에 귀가 솔깃해졌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자들 앞에서 “애국심을 가진 가미가제 조종사들이 비행기에 연료를 절반밖에 넣지 않고 군함을 향해 날아가는 장면을 상상해보라!”고 마구 떠들어댔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만담에서 주목되는 것은, 아베가 자기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트럼프에게 들려줄 정도로 두 사람이 친숙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와 아베 사이에 형성된 친숙한 관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수행에서 일본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정부의 군국주의무력증강을 용인하는 수준을 넘어 그것을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해주면서, 다른 한편에서 한미동맹을 조롱하는 것을 보면, 인도-태평양전략이 어느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눈치 채지 못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3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판문점에서 만나기 위해 서울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을 청와대로 맞아들여 회담하면서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인도-태평양전략이 추진될수록 한미동맹의 이용가치가 휘발되는 줄을 전혀 알지 못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그 동맹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자신의 염원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도-태평양전략수행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태평양전략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전략수행에 협조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어리숙한 약속을 듣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서 그는 한국의 재정지출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연간 48억 달러짜리 전액부담청구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것은 인도-태평양전략을 수행하는 데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정세변화에 둔감한 문재인 대통령을 압박하여 왕창 뜯어내겠다는 속셈이다. 

만일 문재인 대통령이 48억 달러를 내지 못하겠다고 버티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다고 몇 차례 협박하다가,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명분을 내걸고 철군결정을 내릴 것이다. 한미동맹을 믿는 최면에 걸린 친미주의자들에게 각성의 찬물을 끼얹고,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미증유의 대격변은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올 것이다.

2019/08/20

참수작전연습 감행하면서 평화의 악수를 청하다니

[한호석의 개벽예감](361)
자주시보 2019년 08월 19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2019년 8월 16일 응징사격과 절교선언
2. 대북전쟁연습 중지하고 대북핵협상 계속하려는 트럼프
3. 북이 위기관리참모훈련에 격노한 이유
4.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일어난 뜻밖의 사건
5. 청와대에 48억 달러짜리 청구서 보낸 트럼프 


1. 2019년 8월 16일 응징사격과 절교선언

그것은 응징사격이었다. 대북전쟁연습을 벌여놓고 한반도의 평화를 말하는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에게 보내는 북의 대남응징사격이었다.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19년 8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제협력이 속도를 내고 평화경제가 시작되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통일이 우리 앞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던 바로 그 시각, 한미연합군은 대북선제공격과 평양점령 그리고 <연합뉴스> 2019년 8월 10일 보도를 인용하면 “수복지역에 대한 치안, 질서유지 등을 수행하는 안정화작전”을 연습하고 있었다. 

광복절 다음날인 2019년 8월 16일 오전 8시 1분부터 15분 동안 군사분계선 동부전선에서 5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북측 강원도 통천군에서 요란한 발사폭음이 울렸다. 저고도비행능력, 극초음속비행능력, 초정밀타격능력을 모두 갖춘 최첨단 비탄도미사일(non-ballistic missile) 두 발이 화염을 내뿜으며 날아가 230km 밖에 있는 작은 타격목표에 명중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대남응징사격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남응징사격을 현장에서 지도하면서 “우리를 상대로 불장난질을 해볼 엄두도 못 내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미연합군이 감행하는 대북전쟁연습을 ‘불장난질’이라고 질타한 것이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9년 8월 16일 오전 8시 1분부터 15분 동안 군사분계선에서 5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북측 강원도 통천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신형비탄도미사일을 시험사격하는 장면이다. 저고도비행능력, 극초음속비행능력, 초정밀타격능력을 모두 갖춘 비탄도미사일 두 발이 화염을 내뿜으며 날아가 230km 밖에 있는 작은 타격목표에 명중하였다. 같은 날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담화에서 대북전쟁연습을 벌여놓고 평화를 운운한 문재인 대통령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문재인 정부에게 절교를 선언하였다. 2019년 8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말하고 있을 때, 한미연합군은 대북선제타격과 평양점령 그리고 수복지역에 대한 치안, 질서유지 등을 수행하는 안정화작전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런 도발행동에 맞서 조선인민군은 응징사격으로 대응하였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절교선언으로 대응하였다.     

북에서 대남응징사격이 진행되던 날,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담화에서 대북전쟁연습을 벌여놓고 평화를 운운한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발표를 두고 “북쪽에서 사냥총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에 애써 의연함을 연출하며 북조선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력설하는 모습을 보면 겁에 잔뜩 질린 것이 력력하다”고 맹렬히 비난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 또는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 이라고 지탄하였고, “두고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앉을 생각도 없다”고 절교를 선언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북의 거듭되는 경고와 반대를 무시하고 2019년 8월 5일부터 대북전쟁연습을 또 다시 감행하였고, 그에 대응하여 조선인민군은 대남응징사격을 또 다시 단행하였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남절교를 선언하였다. 1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대결분위기가 남북관계를 전면파탄으로 몰아넣었다.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하였고,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였으며, 백두산 정상에 함께 올라 평화통일의지를 과시하였다. 그런데 그처럼 아름다운 상봉과 대화의 기억은 불과 몇 달 만에 가뭇없이 사라지고, 이제는 불신과 대결만 남았다. 

남북관계가 불과 몇 달 만에 대화에서 대결로 뒤바뀐 급변현상을 보며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관계는 왜 대화에서 대결로 급전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문재인 정부가 북의 거듭되는 경고와 반대를 무시하고 2019년 3월과 8월에 각각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대화에서 대결로 급전시키면서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한 의도와 배경을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2. 대북전쟁연습 중지하고 대북핵협상 계속하려는 트럼프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조미정상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의 공약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거듭 확인하였다. 그것은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고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약속한 공약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는 자기의 공약을 거듭 확인하였다는 사실은 2019년 7월 16일 조선 외무성이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밝혀졌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은 이행되지 않았고, 한미합동전쟁연습이 또 다시 진행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과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에서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고 거듭 공약했는데, 왜 이행되지 않은 것일까? 이 글을 집필하기 전까지 나는 이 의문을 풀어줄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추측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나의 추측은 다음과 같이 두 갈래로 흘러갔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고 임기응변으로 약속해놓고, 백악관에 돌아가서는 그 약속을 저버리고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승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려고 하였으나, 각료들이 공약이행을 강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쩔 수 없이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승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추측은 빗나간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임기응변으로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가 2019년 8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어보면 알 수 있다. 2019년 8월 9일 백악관 출입기자들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에 대해 언급할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미합동전쟁연습을 불쾌하게 여겼다고 하면서, “당신들도 알다시피, 나도 또한 그것(한미합동전쟁연습을 뜻함-옮긴이)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변상을 받아야 한다. 나는 그 사실을 한국에게 말한 바 있다”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막대한 군사예산을 소모하는 한미합동전쟁연습을 반대하고 있음을 명백히 드러낸 발언이다. 

사실관계는 명확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미합동전쟁연습이 북침전쟁연습이므로 반대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 전쟁연습이 군사예산을 소모하는 무익한 전쟁연습이므로 반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고 두 차례나 거듭 공약한 것은, 임기응변이 아니라 군사예산을 소모하는 무익한 전쟁연습을 중지하고 대북핵협상을 계속하려는 자기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려고 하였으나, 각료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전쟁연습을 승인한 것이었을까? 그런 것도 아니다. 각료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이행에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을 가로막지 못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의 견해와 주장을 반대하는 불충한 각료들을 줄줄이 해임시켜왔으므로, 지금 남아있는 각료들 속에서는 대통령의 견해와 주장을 감히 반대할 수 없는 억압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그에 대응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공약을 이행하지 않을 것인데, 그렇게 되면 조미핵협상이 완전히 파탄될 것이므로, 각료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미핵협상이 파탄되더라도 한미합동전쟁연습을 강행해야 한다고 건의할 상황도 전혀 아니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9년 8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남쪽 잔디정원에서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장면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친서에서 대북전쟁연습에 대해 불쾌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국군의 단독전쟁연습과 한미연합군의 합동전쟁연습이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귀띔해주었다. 실제로 2019년 8월 5일부터 8일까지 위기관리참모훈련이라는 명칭으로 한국군의 단독전쟁연습이 진행되었고, 8월 11일부터 20일까지 지휘소연습이라는 명칭으로 한미연합군의 합동전쟁연습이 진행되었다.     

위와 같은 내막을 살펴보면, 지난해 중지되었던 한미합동전쟁연습이 올해 다시 재개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힘들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 같은 의문을 푸는 실마리는 흥미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속에 감춰져 있었다. 2019년 8월 9일 그는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멋진 서한(beautiful letter)을 받았다. 그가 멋진, 세 장짜리 서한을 내게 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로 멋진 서한이다. 나는 서한내용을 공개하려고 하는데, 아무튼 그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는 시험들, 전쟁연습들에 대해 불쾌하게 느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미국과 함께 진행한 전쟁연습들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미국과 함께 진행한 전쟁연습(The war games on the other side with the United States)”이라는 말이다. 이 문장에 담긴 뜻을 파헤치면, 2019년 8월 5일부터 시작된 대북전쟁연습은 한국군이 진행하는 단독전쟁연습이고, 다른 한편으로 한국군과 미국군이 함께 진행하는 합동전쟁연습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군의 단독전쟁연습과 한미연합군의 합동전쟁연습이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귀띔해준 것인데, 정말 그러했을까? 

<연합뉴스> 2019년 8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이번 전쟁연습은 위기관리참모훈련(Crisis Management Staff Training, CMST)과 지휘소연습(Command Post Exercise, CPX)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위기관리참모훈련은 8월 5일부터 8일까지 진행되었고, 지휘소연습은 8월 11일부터 시작되어 20일까지 진행되었다. 

그런데 특이한 정황이 눈길을 끈다.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위기관리참모훈련이 올해 8월 5일부터 8일까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시기 ‘을지프리덤가디언’이라는 명칭을 붙인 한미합동전쟁연습은 2017년 8월 21일부터 31일까지 마지막으로 진행되었고, 2018년 8월 하순에는 진행되지 않았는데, ‘을지프리덤가디언’중에는 위기관리참모훈련이 없었다. 


3. 북이 위기관리참모훈련에 격노한 이유 

이번에 처음 진행된 위기관리참모훈련은 무엇일까? <연합뉴스> 2019년 8월 10일 보도는 위기관리참모훈련을 “각종 국지도발과 대테러대응상황 등을 가정한” 전쟁연습이라고 했고, <국민일보> 2019년 8월 12일 보도는 위기관리참모훈련을 “전면전 발발 전 위기고조단계를 가정한” 전쟁연습이라고 했고, <뉴시스> 2019년 8월 5일 보도는 위기관리참모훈련을 “위기상황을 조성하는” 전쟁연습이라고 했다. 이런 언론보도를 읽어보면, 위기관리참모훈련이 국지전연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위기관리참모훈련이 국지전연습이라면, 지휘소연습은 전면전연습이다.  

다시 말해서, 2019년 8월 5일부터 20일까지 이어진 대북전쟁연습 중에 한국군은 위기관리참모훈련이라는 명칭을 붙인 국지전연습을 진행하였고, 한미연합군은 지휘소연습이라는 명칭을 붙인 전면전연습을 진행하였던 것이다. 한국군의 국지전연습과 한미연합군의 전면전연습이 연속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8월 9일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이번 전쟁연습은 한편으로 한국군의 단독전쟁연습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군과 미국군의 합동전쟁연습이라는 뜻으로 말한 것은, 한국군이 국지전연습을 단독으로 진행한 직후 한미연합군이 전면전연습을 합동으로 진행한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한 말이다. 

원래 국지전은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무력충돌이다. 그래서 국지전은 평시작전통제권을 가진 한국군이 단독으로 수행하게 된다.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전되면,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군사령관에게 자동적으로 넘어가고, 미국군사령관이 전면전을 지휘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 진행된 대북전쟁연습은 미국군이 한국군에게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한 이후에 일어나는 전면전을 가상하여 진행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면전연습은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국군이 따라가는 새로운 형태의 대북전쟁연습이다. 

그러면 한국군이 단독으로 진행한 국지전연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전쟁연습인가? <한겨레> 2015년 7월 6일 보도에 따르면, 2015년 4월 14일부터 15일까지 워싱턴에서 진행된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제7차 회의에서 한국군 대표단과 미국군 대표단이 말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대표단은 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북의 도발원점과 지원세력은 물론 북의 지휘세력까지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미국군 대표단은 국지전이 일어나도 확전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말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한국군 특전사령부 예하 제13공수특전여단이 전투연습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제13공수특전여단은 군사분계선이나 '북방한계선' 일대에서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즉각 평양에 침투하여 북의 수뇌부를 제거한다는 참수작전부대다. 한국군이 2019년 8월 5일부터 8일까지 위기관리참모훈련이라는 명칭을 내걸고 감행한 국지전연습은 군사분계선 또는 '북방한계선' 일대에서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일어났을 때, 평양에 침투하여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연습이었다. 또한 국방부가 2019년 8월 14일에 발표한 '2020~2024년 국방중기계획'에는 제13공수특전여단의 대북침투무장력을 증강하는 비밀계획이 들어있었다. 한국군이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연습하고, 참수작전부대증강계획을 담은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운운하면서 북에게 평화의 악수를 청했다. 북에게는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 회의에서 한국군 대표단이 국지전이 일어나면 북의 지휘세력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북의 수뇌부를 제거한다는 이른바 ‘참수작전’을 주장한 것이다. 명백하게도, 한국군이 준비한 국지전에서 핵심적인 것은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한국군이 2019년 8월 5일부터 8일까지 위기관리참모훈련이라는 명칭을 내걸고 진행한 국지전연습은 군사분계선 또는 ‘북방한계선’ 일대에서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일어났을 때 한국군이 평양에 침투하여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연습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막연한 추론이 아니다. 

국방부가 2019년 8월 14일에 발표한 ‘2020~2024 국방중기계획’에는 특전사령부 예하 제13공수특전여단의 대북침투무장력을 증강하는 비밀계획이 들어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방부는 특전사령부 예하 제13공수특전여단에게 MH-47 특수전 헬기, 소형 자폭무인기, 다련발 유탄발사기, 야간투시경, 신형 저격총 등을 공급하여 참수작전능력을 대폭 강화하려는 것이다. 바로 이 제13공수특전여단이 군사분계선이나 ‘북방한계선’ 일대에서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일어났을 때 평양에 침투하여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부대다.  

국방부는 지난 8월 14일 ‘2020~2024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할 때, 참수작전부대의 대북침투무장력을 증강하는 비밀계획을 슬쩍 빼놓고 공개하지 않았지만, <조선일보> 2019년 8월 15일 보도를 통해 그 비밀계획이 세상에 드러났다.  

남측 국방부가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실제로 연습하고, 참수작전부대증강계획을 담은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한 바로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운운하면서 북에게 평화의 악수를 청했다. 북에게는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한국군이 참수작전연습을 강행하는 것을 보며 격노한 북은 2019년 8월 16일 참수작전연습이라는 ‘불장난질’을 감행하는 문재인 정부를 위협하는 응징사격을 단행하였고, 같은 날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문재인 정부에게 절교를 선언하였다. 

여기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정상회담을 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백두산 정상에 올라 평화통일의지를 과시하였는데, 그런 그에게 도대체 무슨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기에 태도가 180도 돌변하여 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연습을 승인하고 참수작전부대무력증강계획을 승인한 것일까? 


4.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일어난 뜻밖의 사건

2018년 11월 30일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극적인 변화를 일으킨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였다. 2018년 11월 30일 당시에는 사건당사자들 이외에는 아무도 그 사건에 대해 알 수 없었는데, 2019년 1월 25일 <중앙일보> 보도를 통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그 사건은 이러했다. 

2018년 11월 30일 아르헨띠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주요20개국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정상회의가 시작된 11월 30일, 현지에서 주요20개국 정상회의와 별도로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다. 30분 동안 진행된 약식회담이었다. 통역시간을 제외하면 실제회담시간은 15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처럼 짧은 정상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뜻밖의 말을 불쑥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으로 12억 달러(1조3,554억 원)를 내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요구한 것이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주둔비가 연간 40억 달러인데, 문재인 정부가 6억 달러밖에 내지 않는다고 하면서, 12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2017년에 체결된 분담금협정에 따라 2018년에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게 상납한 연간분담금은 8억3,000만 달러였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6억 달러밖에 내지 않는다고 깎아내리면서, 12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강요한 것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분담액수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서 8억3,0000만 달러를 6억 달러로 착오한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게 더 많은 분담금을 강요하려고 일부러 분담액수를 깎아내린 것이다. 

언론보도에서 확인할 수 없지만, 그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만일 문재인 정부가 12억 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노라고 문재인 대통령을 협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평소에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게 사용하는 협상수법을 보면, 그런 식의 협박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강요와 협박을 받는 순간, 문재인 대통령은 경악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걸었던 기대와 신뢰가 무너졌다. 만일 12억 달러를 내지 않겠다고 버티는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철군을 명령할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우려와 불안이 문재인 대통령을 괴롭혔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면, 남북이 평화통일을 실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철군이 남측 정권의 붕괴와 북의 무력공격을 유발할 것으로 착각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대비책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서둘러 추진한 대비책은 평양공동선언에 따른 남북관계개선이 아니라 한국군의 급속한 무력증강과 대북전쟁연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긴급지시에 따라 국방부는 두 가지 군사대비책을 마련하였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8년 11월 30일 아르헨띠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진행된 주요20개국 정상회의 중에 별도로 한미정상회담을 시작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그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주둔비가 연간 40억 달러인데, 문재인 정부가 6억 달러밖에 내지 않는다고 하면서, 12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언론보도에서 확인할 수 없지만, 그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만일 문재인 정부가 12억 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노라고 문재인 대통령을 협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평소에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게 사용하는 협상수법을 보면, 그런 식의 협박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강요와 협박을 받는 순간, 문재인 대통령은 경악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걸었던 기대와 신뢰가 무너졌다. 만일 12억 달러를 내지 않겠다고 버티는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철군을 명령할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우려와 불안이 문재인 대통령을 괴롭혔다.     

첫째, 국방부는 국방중기계획을 서둘러 발표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강요와 협박을 받은 날로부터 40일이 지난 2019년 1월 11일 국방부는 한국군 무력증강비용을 94.1조 원(연평균 증가률 10.8%)으로 급증시키고, 무력운용비용을 176조6,000억 원으로 급증시킨 ‘2019~2023 국방중기계획’을 서둘러 발표하였다.  

국방부가 국방중기계획을 “서둘러” 발표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시기에는 4~5월 중에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해오던 국방부가 올해 2019년에는 이례적으로 1월 초로 앞당겨 발표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긴급지시를 받은 국방부가 국방중기계획을 서둘러 발표하였음을 말해준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중지되었던 한미합동전쟁연습이 2019년에 재개되도록 힘썼다. 위에 인용된 트럼프 대통령의 8월 9일 발언을 들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한미합동전쟁연습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전쟁연습을 중지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지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친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불이행을 지적하지 않은 것은, 올해 대북전쟁연습을 재개한 당사자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재개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받을 수 있을 만큼 전쟁준비태세를 갖추었는지 검증한다는 명분을 꺼내놓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북전쟁연습재개를 간청하였고, 그 간청에 따라,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국군이 따라가는 새로운 형태의 대북전쟁연습이 재개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의 경고와 반대를 무시하고 ‘19-1 동맹’이라는 명칭을 붙인 대북전쟁연습을 2019년 3월 4일부터 12일까지 감행하였고, 명칭을 공개하지 않은 대북전쟁연습을 2019년 8월 5일부터 20일까지 또 다시 감행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국방부는 2019년 1월 11일에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해놓고, 그로부터 7개월 뒤인 8월 14일에 또 다시 국방중기계획을 중복발표한 것이다. 국방부는 1월 11일에 ‘2019~2023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고, 8월 14일에는 ‘2020~2024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현상은 문재인 대통령의 긴급지시를 받은 국방부가 국방중기계획을 서둘러 발표했다가, 미흡한 점들이 드러나자 이를 보완하여 보정판 국방중기계획을 다시 발표하였음을 말해준다.  

국방부는 국방중기계획에서 무엇을 보완했을까? 2019년 4월 1일 한국 국방부를 방문한 미국 국방장관 대행 패트릭 섀너핸은 정경두 국방장관과 회담하기 직전 기자회견에서 “3월훈련은 아주 성공적이었지만, 가을훈련(8월훈련이라는 뜻-옮긴이)에서 이뤄낼 수 있는 개선점들도 파악했다. 이 문제를 한국 국방부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섀너핸의 발언을 들어보면, 문재인 정부는 2019년 3월 4일부터 12일까지 ‘19-1 동맹’이라는 명칭으로 강행한 대북전쟁연습에서 드러난 미흡한 점을 보완하여 대북전쟁계획을 수정, 보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전쟁계획을 보완하면서 무력증강계획도 함께 보완하였다. 국방부가 2019년 1월 11일에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해놓고, 그로부터 7개월 뒤인 8월 14일에 또 다시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5. 청와대에 48억 달러짜리 청구서 보낸 트럼프 

미국 뉴욕시 근교에 있는 롱아일랜드 써폭 카운티 남쪽에 브리지햄튼이라는 동네가 있다. 2019년 8월 9일 브리지햄튼에 있는 4,000만 달러짜리 쌘드캐슬 대저택에 트럼프 대통령이 나타났다. 2020년 11월 3일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대선자금모금행사에 참석한 것이다. 행사에는 그를 지지하는 억만장자 재벌총수들이 참석했다. 그 행사에 참석하는 일반입장료는 2,800달러, 귀빈입장료는 11,000달러, 부부동반입장료는 56,000달러이고, 트럼프와 사진 한 장 찍으려면 35,000달러를 내야 하고, 트럼프와 오찬을 나누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려면 100,000달러를 내야 하고, 오찬석상에서 트럼프의 옆에 앉아 사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려면 250,000달러를 내야 한다. 상상을 초월한 거액이 오가는 모금행사에 억만장자 재벌총수 500여 명이 참석했는데, 그들이 대선자금으로 내놓은 모금액은 1,200만 달러였다. 미국인 8명 가운데 1명이 끼니를 잇지 못하는 기아인구로 전락한 나라에서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제3세계의 자원을 수탈하여 긁어모은 검은 돈이 그렇게 탕진되었다.     

자기의 대선승리를 위해 억만장자 재벌총수들이 거액을 희사하는 장면을 목격한 트럼프 대통령은 흥분하였다. 그는 흥분을 안고 연설단상에 올랐다. 그것은 정치연설이 아니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농담에 섞어 청중에게 선사하는 정치재담이었다. 원래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하는 백악관 수석보좌관 스티븐 밀러가 써준 원고를 읽는 식으로 진행되지만, 2019년 8월 9일 대선자금모금행사에서는 그런 절차를 따르지 않은 정치재담이 진행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재담은 무려 1시간 동안 이어졌다. 즉흥적인 정치재담은 절제된 언어로 다듬어진 정치연설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대통령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런데 아쉽게도, 미국 언론매체들 가운데 오직 <뉴욕포스트>만이 2019년 8월 9일부에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재담을 짤막하게 인용하였다. 그 인용보도에 따르면, 정치재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소년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에 있는 월세통제아파트에 수금하러 갔던 회고담을 꺼내놓았다. 월세통제아파트라는 것은 뉴욕시가 행정명령으로 월세인상을 통제하여 입주세대들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는 서민아파트다. 회고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브루클린에 있는 월세통제아파트에서 114달러 13쎈트를 받아내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 달러를 받아내는 것이 더 쉬웠다. 내 말을 들어보라. 바로 그 13쎈트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위에 인용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회고담처럼 들리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것은 임기응변에 능한 그가 즉흥적으로 꾸며낸 정치재담의 한 대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버지 프렛 트럼프(1905~1999)는 자기 아들 도널드 트럼프가 18살이 되던 1964년에 뉴욕 브루클린의 바닷가 코니 아일랜드에 트럼프 빌리지라고 불리는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설하였다. 건설비는 7,000만  달러였다. 이것을 2019년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5억8,000만 달러다. 1964년 당시 프렛 트럼프는 5억8,000만 달러를 투자하는 부동산재벌총수였다. 그런데 그런 재벌총수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아파트 월세 114달러(현재 화폐가치로는 943달러)를 수금하러 다녔다니,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트럼프의 회고담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꾸며낸 이야기였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아버지가 114달러 13쎈트를 수금했던 당시 소수점 아래단위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것도 즉흥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다. 1964년에 거래한 금액을 55년이 지난 뒤에 소수점 아래단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무리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이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해서 이따금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미국 언론매체들로부터 핀잔을 받는 트럼프 대통령이 55년 전에 있었던 월세수금액의 소수점 아래단위를 기억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재담에서 왜 그런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냈을까? 그는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이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거액을 문재인 정부에게서 받아내는 자기의 능력을 지지자들 앞에서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 그가 월세수금액의 소수점 아래단위까지 언급한 것은 문재인 정부로부터 받아내는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을 한 푼도 깎아주지 않겠다는 갈취의지를 지지자들 앞에서 드러낸 것이다.   

그날 정치재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로부터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으로 10억 달러를 이미 받아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2019년 2월 10일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강요에 굴복하여 상납하기로 한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은 10억 달러가 아니라 9억2,500만 달러(1조400억 원)다. 원래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12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10개월 동안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여 2억7,500만 달러를 깎은 것이다. 그런데 2019년 8월 9일 정치재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로부터 10억 달러를 받아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협상과정에서 2억7,500만 달러가 깎였는데도, 10억 달러라고 둘러댄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을 얼마나 더 받아내려는 것일까? 그는 2019년 4월 27일 미국 위스컨신주 그린베이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우리가 50억 달러를 내면서 지켜주는 부유한 나라가 있다. 그 나라는 5억 달러만 낸다. 그 나라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겠지만, 나는 전화 한 통으로 올해 5억 달러를 더 내놓게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19년 7월 24일 청와대를 방문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회담하는 장면이다. 사진 속에서 두 사람은 웃고 있지만, 회담분위기는 심각하였다. 그 자리에서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주한미국군 주둔비 48억 달러의 지출내역이 열거된 지출명세서를 건네면서, 문재인 정부가 48억 달러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볼턴은 청와대를 방문한 직후 국방부에 가서 정경두 국방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당국자들에게 미국이 주한미국군 주둔비로 연간 48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고 하면서, 미리 준비해온 지출명세서를 나눠준 뒤, 문재인 정부가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동맹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돈만 뜯어내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문재인 대통령이 느끼는 불신과 배신감은 더욱 커졌을 것이며, 48억 달러를 내지 않겠다고 버티는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철군을 명령할 것이라는 우려와 불안은 더욱 증폭되었을 것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중앙일보> 2019년 7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문재인 정부에게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2019년 7월 24일 서울에 나타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문재인 정부에게 건네줄 지출명세서를 들고 왔다. 그는 청와대를 방문하여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주한미국군 훈련비용, 전력전개비용, 해외파병수당을 비롯한 48억 달러(5조8,000억 원)의 지출내역이 열거된 지출명세서를 건네주면서,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위해 1년 동안 쓰는 비용이 48억 달러인데, 이 비용을 한국이 전액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볼턴은 청와대를 방문한 직후 국방부에 가서 정경두 국방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당국자들에게 미국이 주한미국군 주둔비로 연간 48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고 하면서, 미리 준비해온 지출명세서를 나눠준 뒤, 문재인 정부가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통해 전달한 ‘분담금 청구서’를 받아본 문재인 대통령은 경악하였다. 2018년 11월 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으로 12억 달러를 요구했었는데, 이제는 그보다 무려 4배가 늘어난 48억 달러를 요구하였으니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맹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돈만 뜯어내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문재인 대통령이 느끼는 불신과 배신감은 더욱 커졌을 것이며, 48억 달러를 내지 않겠다고 버티는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철군을 명령할 것이라는 우려와 불안은 더욱 증폭되었을 것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2019/08/13

위대한 항일전쟁 종전의 역사

[한호석의 개벽예감] (360)
자주시보 2019년 08월 12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광복군과 전략외사실의 합동작전회의
2. 시안비행장으로 돌아간 C-47 수송기
3. 김구의 서한을 외면한 트루먼
4. 1945년 7월 소련군 총참모부 전략회의
5. 연계를 맺으려고 애쓴 광복군과 조선인민혁명군


1. 광복군과 전략외사실의 합동작전회의

1896년 3월 29일 류인석 의병장이 지휘하는 항일의병 3,500명이 일본군이 관군과 함께 주둔하는 충주 관찰부를 공격하고 충주성을 점령한 것이 항일전쟁의 시작이다. 의병운동이라는 말이 쓰이지만,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인 의병부대들의 무장투쟁은 의병운동이 아니라 항일전쟁이다. 이런 사실을 보면, 항일전쟁은 1896년 3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49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일왕 히로히또가 라디오방송을 통해 항복을 선언하였던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도 일본군은 무장해제를 거부하였고 일부 지역에서는 교전이 벌어지는 바람에 제2차 세계대전은 일제가 항복문서에 조인한 1945년 9월 2일에 종전되었지만, 조선민족의 항일전쟁은 히로히또가 항복선언을 발표한 1945년 8월 15일에 사실상 종전되었다.  

49년 동안 지속된 항일전쟁은 항일의병전쟁 → 항일독립전쟁 → 항일혁명전쟁으로 발전하였다. 1896년부터 1910년까지 항일전쟁 제1단계에서는 항일의병전쟁이 전개되었고, 1911년부터 1931년까지 항일전쟁 제2단계에서는 항일독립전쟁이 전개되었고, 1932~1945년까지 항일전쟁 제3단계에서는 항일혁명전쟁이 전개되었다. 

1896년부터 근 반세기에 걸쳐 간고한 혈전이 계속된 항일전쟁은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조선민족의 승리로 끝났다. 항일전쟁 종전 74주년을 맞은 오늘 그 전쟁이 어떻게 종전되었는지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위대한 항일전쟁 종전의 역사는 7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8월 7일 중국 산시성 시안(西安)에서 매우 특이한 작전회의가 진행되었다. 김구 임정 주석을 비롯한 임정 및 광복군 고위지휘관들과 윌리엄 도노반 미국 육군 소장을 비롯한 전략외사실(Office of Strategic Services, OSS) 고위지휘관들의 합동작전회의였다. 전략외사실은 1942년 6월 13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로저벌트의 특명으로 조직되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활동하다가 1945년 9월 20일에 해체된 전시군사정보기관이다. 전략외사실을 모체로 하여 1947년 9월 18일에 중앙정보국(CIA)이 조직되었다. 

그런데 미국의 전시군사정보기관 지휘관들이 왜 중국 시안에서 광복군 지휘관들을 만나 합동작전회의를 했을까? 거기에 얽힌 사연은 다음과 같다. 프랭클린 로저벌트 대통령은 자기의 특명으로 창설된 전략외사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큰 몫을 하리라고 기대했지만, 전략외사실은 전공을 세우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워싱턴 정가에서 전략외사실 무용론이 나돌게 되었다. 존폐위기에 내몰린 전략외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격전지로 떠오른 아시아전선에서 반드시 전과를 거두어야 하였다. 다급해진 전략외사실은 일제가 강점한 한반도에 공수특전대를 침투시키는 작전계획을 1945년 1월에 수립했다. 

그런데 조선의 언어, 지리, 풍습도 모르고, 외모도 조선인과 전혀 다르게 생긴 미국인 공수특전대원들이 식민지조선에 침투하여 일본군과 일제통치기관을 공격하는 것은 실패를 자초하는 일이었다. 대안을 모색하던 전략외사실의 시선을 끌어당긴 것은 광복군이었다. 그때부터 광복군 대원들을 훈련시켜 식민지조선에 침투시키려는 전략외사실의 전략구상이 무르익었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그 전략구상은 ‘독수리작전’이라는 비정규전계획으로 구체화되었다고 한다. 1945년 이른 봄 도노반 전략외사실 실장은 그런 작전계획을 가지고 김구 주석을 만났다. 광복군과 전략외사실이 국내침투작전을 함께 수행하기로 최종 합의한 때는 1945년 4월 3일이었다. <사진 1>


▲ <사진 1> 위쪽 사진은 1945년 8월 7일 김구 임정 주석과 윌리엄 도노반 미국 전략외사실 실장이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광복군과 전략외사실의 합동작전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장면이다. 김구 주석 왼쪽에 보이는 사람이 엄항섭 임정 판공비서 겸 선전부장이고, 김구 주석과 도노반 실장 사이에 보이는 두 사람이 이청천 광복군 총사령관(검은 옷)과 이범석 광복군 제2지대장(흰 옷)이다. 아래쪽 사진은 1945년 8월 4일 공수특전훈련을 마친 광복군 제3지대 대원 20여 명이 다른 대원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가운데 안경을 낀 미국인 장교가 광복군 제3지대에서 선발된 20여 명 대원들에게 공수특전훈련을 시킨 클레어런스 윔스 대위이고, 그 왼쪽에 양복을 입은 사람은 김학규 광복군 제3지대장이다. 광복군 제3지대에서 선발되어 공수특전훈련을 받은 20여 명 대원들 가운데는 재미동포 통일운동가였던 윤영무 선생(1920~2015)도 있다. 나는 윤영무 선생으로부터 광복군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앞으로 언젠가 그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1945년 5월 11일부터 석 달 동안 광복군 대원 50여 명은 전략외사실 장교들로부터 식민지조선에 침투하기 위한 공수특전훈련을 받았다. 국내침투작전은 일제가 조선을 불법병탄한 날인 1945년 8월 29일에 개시하기로 정했다.     

전략외사실에게 위와 같은 내부사정이 있었던 것처럼, 임정에게도 내부사정이 있었는데, 그 내부사정은 다음과 같다. 1941년 9월 17일 임정이 중국 충칭에서 광복군을 창설하던 때 장졔스 정부(국민당 정부)가 광복군 작전통제권을 장악했었는데, 임정은 1944년 8월에 가서야 광복군 작전통제권을 되찾았다. 작전통제권을 되찾았으나 광복군의 무장을 허용하지 않는 장졔스 정부의 저지선을 넘지 못하는 바람에 광복군은 전투를 벌이기는커녕 총도 만져보지도 못하고 목총훈련이나 하던 판이었다. 그런 침울한 분위기가 계속되던 중에 김구 주석은 식민지조선에 침투하는 비정규전에 광복군을 참가시키고 싶다는 도노반 실장의 제안을 받자 크게 고무되었다. 

그러나 김구와 도노반 앞에는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리고 그들이 넘을 수 없는 큰 걸림돌이 가로놓였다. 그 걸림돌은 1945년 8월 15일 항일전쟁이 종전되던 날 임정과 광복군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항일전쟁이 종전되었던 74년 전, 임정과 광복군의 앞길에 걸림돌을 놓아 마지막으로 찾아온 전투기회를 물거품으로 만든 장본인은 미국이었다. 미국이 조기종전을 밀어붙인 까닭에, 임정과 광복군은 전투기회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1945년 8월 임정과 광복군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간 전시상황은 다음과 같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은 기폭시험도 미처 하지 않아 터질지 안 터질지조차 알지 못하는 핵폭탄을 황급히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뜨렸다. 당시 미국은 소련이 대일전쟁을 개전하면 미국군이 한반도와 일본렬도에 상륙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소련군이 만주와 홋까이도로 남하진격하여 한반도와 일본렬도를 점령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였다. 만약 소련군이 한반도와 일본렬도를 점령하면, 미국군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을 포기하고 하와이로 후퇴해야 하므로, 미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련군의 진격을 멈춰 세워보려고 날뛰었다. 당시 미국의 전략목표는 종전과 평화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소련군의 남하진격을 저지하고 자기들이 먼저 아시아태평양지역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그처럼 다급한 상황에 내몰린 미국이 소련군의 남하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황급히 선택한 것이 핵폭탄 투하다. 

그래서 미국은 소련이 대일전쟁을 개전하기 전인 1945년 8월 6일 우라늄핵폭탄을 서둘러 히로시마에 투하하였고, 소련이 일제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던 1945년 8월 9일에는 플루토늄핵폭탄을 나가사끼에 투하하였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을 점령하려는 제국주의야욕에 사로잡힌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서 핵공격으로 24만 명을 참혹하게 살육한 전쟁범죄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2. 시안비행장으로 돌아간 C-47 수송기

광복군 대원들 중에서 선발된 50여 명은 1945년 5월 11일부터 석 달 동안 전략외사실 장교들로부터 식민지조선에 침투하기 위한 공수특전훈련을 받았다. 광복군이 공수특전훈련을 마친 날은 1945년 8월 4일이었다. 후보생 50명 중에서 훈련 도중 12명이 탈락하는 바람에 공수특전훈련을 마친 대원은 38명이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8월 7일 서안에서 김구 주석과 광복군 지휘관들, 도노반 전략외사실 실장과 지휘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내침투작전을 위한 합동작전회의가 진행되었다. 국내침투작전은 일제가 조선을 불법병탄한 날인 1945년 8월 29일에 개시하기로 정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시간은 그들의 편에 서지 않았다. 광복군 대원들이 국내침투작전을 시작하기 직전인 1945년 8월 15일 일왕 히로히또가 항복하였다. 일제가 항복하였다는 놀라운 소식, 조선민족이 애타게 기다려온 기쁜 소식을 들은 김구 주석에게는 환희보다 실망이 앞섰다. 그가 남긴 자서전 ‘백범일지’에는 당시 그의 심정이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깝고 다가올 일이 걱정되었다.”

일제의 항복소식을 들었어도, 도노반 실장은 작전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하였다. 일제가 항복한 다음날인 1945년 8월 16일 새벽 광복군 공수특전대원들을 태운 28인승 C-47 수송기 한 대가 국내침투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시안비행장을 이륙하였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C-47 수송기가 목적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서해 상공을 날아가고 있을 때, 도노반 실장이 느닷없이 무선통신으로 복귀명령을 내린 것이다. 일왕이 항복을 선언하였는데도 조선 점령 일본군은 무장해제를 거부하였다는 연락을 받은 그가 사태의 위험성을 직감하고 복귀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가 내린 복귀명령은 광복군의 국내침투작전이 중단되었음을 의미하였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1945년 8월 18일 C-47 수송기에 탑승한 광복군 대원들이 서울 여의도에 있는 제2경성비행장에 내렸으나, 비행장을 경비하던 일본군들의 감시 속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이튿날 중국 시안비행장으로 복귀하던 중 수송기에 비행연료를 보급받기 위해 중국 산둥성 류팅비행장에 잠시 착륙하였을 때 촬영한 것이다. 광복군 대원들이 시안비행장을 출발하기 전, 도노반 전략외사실 실장은 그들에게 장졔스 군대의 군복과 중국옷을 입혔고, 제2경성비행장에 착륙하면 중국인처럼 행동하라고 명령했다. 위의 사진을 보면, 중국인 복장을 한 대원들과 장졔스 군대의 군복을 입은 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도노반 실장이 중국인으로 위장한 광복군 대원들을 서울에 파견한 목적은 일본군에게 포로로 붙잡힌 미국군의 신변안전을 확인하고 그들을 미국으로 송환하는 문제를 일본측과 협의하려는 데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또 일어났다. 일제가 항복한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1945년 8월 18일 새벽 3시 30분 광복군 대원들을 태운 C-47 수송기가 시안비행장을 이륙하여 한반도를 향해 날아간 것이다. 중국 대륙 상공을 가로지르며 8시간을 비행한 끝에 당일 오전 11시쯤 그 수송기는 제2경성비행장에 착륙했다. 제2경성비행장은 서울 여의도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임정과 광복군이 기대했던 국내침투작전이 아니었다. 도노반 실장은 그들에게 국내침투작전을 명령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국내침투작전을 명령했다면, 일본군이 삼엄하게 경비하는 제2경성비행장에 착륙하지 않고, 서울 근교에 있는, 일본군 경비망이 허술한 어느 낙하지점 상공에서 대원들이 낙하산을 타고 강하하였을 것이다. 시안비행장을 출발하기 전, 도노반 실장은 광복군 대원들에게 장졔스 군대의 군복과 중국옷을 입혔고, 제2경성비행장에 착륙하면 중국인처럼 행동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런 기이한 명령은 도노반 실장이 그들을 대일작전에 참가시킨 것이 아니라 군사사절단으로 서울에 파견한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도노반 실장이 군사사절단을 서울에 파견한 목적은 한반도에서 일본군에게 포로로 붙잡힌 미국군의 신변안전을 확인하고 그들을 미국으로 송환하는 문제를 일본측과 협의하려는 데 있었다.   

제2경성비행장 활주로에 멈춰선 수송기의 문을 열고 내려서던 광복군 대원들은 자기들에게 총을 겨누고 다가온 일본군에게 포위되었다. 광복군 대원들을 인솔한 미국군 중령 버드는 일본군에게 자신들은 군사사절단으로 왔으므로 적대행위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일본군 지휘관은 군사사절단이 도착할 것이라는 상부의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들을 경비병막사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도노반 실장은 군사사절단을 서울에 보내겠다고 서울에 있는 일본군사령부에게 미리 통보하지 않았으므로, 제2경성비행장 경비대는 상부로부터 아무런 지시를 받지 못했다. 8월의 무더위만큼 불편한 시간이 흘러갔다. 다음날 광복군 대원들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수송기를 타고 시안으로 돌아갔다. 일제의 항복소식을 듣고 전의를 상실한 전략외사실의 비겁한 행동 때문에 광복군은 49년 항일전쟁이 끝나가던 종전과정에 일본군에게 총 한 방 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3. 김구의 서한을 외면한 트루먼

만일 광복군 공수특전대가 전략외사실의 작전계획에 따라 식민지조선에 침투하여 일본군과 일제통치기관을 공격하는 비정규전을 벌였다면 항일전쟁 종전의 역사는 조선민족에게 유리하게 바뀌었을까? 1945년 8월 18일 광복군 대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제2경성비행장에 잠시 착륙했던 장준하는 대원들이 그 비행장에서 일본군과 결사전을 벌여 전사했더라면 연합국이 조선을 승전국으로 인정하지 않았을까 하면서 훗날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종전상황은 그가 생각한 것처럼 단순하게 흘러간 것이 아니었다. 임정과 광복군에게 매우 불리하게 꼬여가고 있었던 종전상황은 다음과 같다.

1945년 8월 15일 직후 중국 시안에서 김구 주석은 임정 주석 명의로 작성한 자신의 친서를 도노반 실장에게 건네주면서 그것을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병약한 프랭클린 로저벌트 대통령은 1945년 4월 12일 병환으로 갑자기 별세하였고, 당일 부통령 트루먼은 대통령에 즉각 취임하였다.) 도노반 실장은 워싱턴에 소환되는 자기 부하에게 김구 주석의 친서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하라고 지시하였다. 김구 주석의 친서는 1945년 8월 18일 백악관 비서실을 통해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달되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에 있는 임정청사에서 진행된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을 마친 직후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그런데 태극기와 장졔스 정부가 사용한 국기가 서로 엇갈려 걸려있고, 장졔스 국방부 인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광복군은 창설 당시 대원이 30여 명밖에 없었다. 장졔스는 광복군이 자기 군대 총참모장의 명령과 통제에 따라야 한다고 하면서 광복군 작전통제권을 가져갔다. 이에 격노한 임정은 임정을 충칭에서 워싱턴으로 옮기겠다고 하면서 장졔스를 압박하여 광복군 작전통제권을 돌려받았지만, 광복군을 유지하는 재정을 장졔스로부터 계속 받아야 했다. 1945년 4월 현재 임정 의정원의 문서에 따르면, 당시 광복군은 339명이었다. 광복군 제1지대 대원이었던 독립운동가가 훗날 밝힌 바에 따르면, 광복군은 장졔스 정부로부터 보급품을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해 대원의 가족들을 비롯하여 대원이 아닌 사람들을 명단에 끼워넣었다고 한다.     

김구 주석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우리는 귀하가 조선의 독립을 보장할 것으로 확신하며, 조선의 독립이 원동의 평화를 위한 열쇠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썼다. 그러나 김구 주석의 친서를 받은 트루먼 대통령의 반응은 너무 냉담하였다. 그는 도노반 실장에게 이런 회신을 보냈다.

“나는 1945년 8월 18일 한국임시정부 수장이라고 소개한 김구 씨의 메시지에 답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미국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자칭 정부의 대표가 보낸 메시지를 본인에게 전하는 통로로 당신의 요원들이 행동한 것이 부적절하다고 본 당신에게 사의를 표한다.”

트루먼 대통령이 임정과 광복군을 무시한 것은 항일전쟁이 일제의 패망으로 종전되었으나 조선이 승전국으로 인정받기는커녕 임정과 광복군의 존재마저 인정받기 힘들게 되었음을 예고한 불행한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1945년 11월 23일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정요인들은 미국군이 보내준 C-47 수송기를 타고 김포비행장에 도착하였다. 그날 임정요인들의 뒤를 따라 김포비행장에 내렸던 광복군 대원 장준하는 훗날 자서전 ‘돌베개’에서 꿈에도 그리던 조국에 돌아온 시각, 자신에게 갈마든 참담한 심정을 이렇게 술회하였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벌판뿐이었다. 일행이 한 사람씩 내렸을 때, 우리를 맞이하는 건 미군 병사 몇이었다. 우리의 예상은 완전히 깨어지고 동포의 반가운 모습은 허공으로 모두 사라져버렸다. 조국의 11월 바람은 퍽 쌀쌀하고 하늘도 청명하지 않았다. (중략) 나의 조국이 이렇게 황량한 것이었구나. 우리가 갈망한 국토가 이렇게 차가운 것이었구나. 나는 소처럼 힘주어 땅바닥을 군화발로 비벼댔다. 나부끼는 우리 국기, 환상의 환영인파, 그 목아프도록 불러줄 만세소리는 저만치 물러나 있고, 검푸레한 김포의 하오가 우리를 외면하고 있었다.”   


4. 1945년 7월 소련군 총참모부 전략회의

1945년 4월 16일 소련군은 나치 치하의 베를린에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소련군 81,000명이 전사하고, 나치군 100,000명이  전사한 베를린격전은 두 주간 동안 계속되었고, 1945년 5월 2일 마침내 소련군의 승리로 격전이 끝났다. 1945년 5월 8일 나치는 항복하였고, 유럽전선에서 포성이 멎었다.  

그보다 석 달 앞서 1945년 2월 4일부터 11일까지 흑해 연안 크라이미아반도 얄타에서 로저벌트 미국 대통령, 스딸린 소련 총리, 처칠 영국 수상이 정상회의를 진행하였다. 그 회의에서 스딸린 총리는 나치가 항복하여 유럽전선에서 전쟁이 끝나면, 2~3개월 안에 소련이 대일전쟁을 시작하겠노라고 공약하였다. 

1945년 5월 8일 나치의 항복으로 유럽전선에서 전쟁이 끝났으므로, 소련은 유럽전선에 배치했던 소련군의 전투병력, 무장장비, 군수물자를 수송렬차편으로  10,000km 떨어진 원동전선(Far East Front)까지 실어날랐다. 세계 역사상 가장 방대한 규모의 전투병력, 무장장비, 군수물자를 가장 멀리 이동하여 재배치하는 작전이 전개된 것이다. 이동배치작전이 끝난 날은 1945년 7월 30일이었다. 

1945년 8월 3일 알렉싼드르 와씰렙스끼 원동소련군 총사령관은 스딸린 총리에게 소련군의 원동전선배치가 끝났으므로, 언제든지 명령만 내리면 일제관동군에게 총공격을 개시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그런데 소련군이 유럽전선에서 원동전선으로 이동배치되고 있었던 1945년 7월 어느 날,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에 있는 소련군 총참모부 청사에서 소련군 고위지휘관 전원이 참석한 중요한 전략회의가 진행되었다. 와씰렙스끼 원동소련군 총사령관이 주재한 그 회의에서 대일전쟁전략이 토의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끄는 김일성 사령관이 그 회의에 참석하였다. 1998년 평양에서 출판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8권에는 1945년 여름 어느 날 대일전쟁을 앞두고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소련군 총참모부 전략회의에 참석하였던 체험담이 상세히 수록되었다. 김일성 주석은 ‘세기와 더불어’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쏘련군 총참모부가 소집한 회의에 가보니 메레쯔꼬브와 스띠꼬브를 비롯해서 대일작전과 관련되여 있는 각 전선사령부의 책임일군들도 벌써 다 와있었습니다. 와씰렙스끼 총사령관도 거기에서 다시 만나보았습니다. (중략) 나는 모스크바에서 쥬꼬브도 만나보았습니다. 그가 독일주둔 소련점령군 총사령관과 독일관리감독리사회 쏘련측 대표로 있을 때입니다. 쥬꼬브가 무슨 일로 거기에 왔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로서는 매우 인상깊은 상봉이였습니다. 이름난 백전로장인 쥬꼬브는 대단히 서글서글하고 소탈한 사람이였습니다.”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끼릴 메레쯔꼬브는 대일전쟁 중에 제1원동전선군 사령관이었고, 테렌티 스띠꼬브는 대일전쟁 중에 제1원동전선군 정치위원이었다.

광복군 통수권자인 김구 주석이 워싱턴에서 진행된 미국군 합동참모본부 전략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할 일인데, 조선인민혁명군을 지휘하는 김일성 사령관이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소련군 총참모부 전략회의에 참석하였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난 데는 두 가지 사연이 있었다.  

(1) <로동신문>은 2014년 8월 15일부와 8월 16일부에 김일성 사령관이 지휘한 반일인민유격대, 조선인민혁명군이 벌인 수많은 전투들 가운데서 주요전투들을 다음과 같이 수록하였다. 

1. 쟈피거우전투 (1933년 3월 31일)
2. 동녕현성전투 (1933년 9월 6일~9월 7일)
3.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 (1933년 초~1934년 2월)
4. 라자구전투 (1934년 6월 26일~6월 28일)
5. 시난차전투 (1936년 7월 10일)
6. 무송현성전투 (1936년 8월 17일)
7. 만강전투 (1936년 8월 24일)
8. 보천보전투 (1937년 6월 4일)
9. 간삼봉전투 (1937년 6월 30일) 
10. 소사하수전투 (1937년 11월)
11. 남패자전투 (1938년 11월 중순)
12. 홍토산자전투 (1939년 1월 24일)
13. 사등방전투 (1939년 3월)
14. 13도구전투 (1939년 3월 상순)
15. 구가점전투 (1939년 4월 11일~4월 12일)
16. 올기강전투 (1939년 6월 10일)
17. 륙과송전투 (1939년 12월 17일)
18. 쟈신즈전투 (1939년 12월 24일)
19. 대마록구전투 (1940년 3월 11일)
20. 홍기하전투 (1940년 3월 25일)
21. 북2도구, 남2도구, 신성툰전투 (1940년 4월 29일)
22. 라진해방전투 (1945년 8월 12일) 

당시 소련군 총참모부는 김일성 사령관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한반도 북부지대와 동만주에서 1932년부터 13년 동안 계속해온 항일전쟁을 높이 평가하였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1930년대 후반 항일전쟁시기 김일성 사령관이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함께 촬영한 것이다. 원래는 흑백사진이었는데, 조선에서 천연색 사진으로 재생하여 보존하고 있다. 사진 배경에 통나무로 만든 밀영집이 보인다. 사진에서 김일성 사령관은 검은테 안경을 끼고 앉아 있다. 일제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위장용으로 안경을 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앞에는 나이가 매우 어려보이는 소년병이 군복을 입고 앉아있는데, 아마도 소년연락병인 듯하다. 사진에서 맨 오른쪽에 양복을 입은 사람은 조선인민혁명군과 연계되어 지하정치공작을 하는 조국광복회 성원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권총은 도이췰란드에서 생산된 마우저 C96이다. 이 권총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세계 각국에서 널리 사용되었는데, 모젤권총이라고 불렸고, 중국인들은 싸창이라고 불렀다. 탄환이 10발 들어가는 이 권총의 유효사거리는 200m다.     

(2) 대일전쟁을 앞둔 1945년 여름 원동소련군 총사령부가 하바롭스크에 설치되었고, 와씰렙스끼가 원동소련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김일성 주석은 ‘세기와 더불어’ 제8권에서 자신이 하바롭스크에 드나들면서, 와실렙스끼 총사령관, 로디온 말리놉스끼(바이깔횡단전선군 사령관), 메레쯔꼬브(제1원동전선군 사령관), 스띠꼬브(제1원동전선군 정치위원), 니꼴라이 레베제브(제1원동전선군 고위지휘관), 와씰리 쥬꼬브(제2원동전선군 고위지휘관)를 비롯한 원동소련군 고위지휘관들과 친분관계를 맺었다고 회고하였다. 

그들 가운데서도 김일성 사령관이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은 메레쯔꼬브 제1원동전선군 사령관이다. ‘세기와 더불어’ 제8권에서 김일성 주석은 자신과 메레쯔꼬브 사령관의 첫 상봉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메레쯔꼬브는 구면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내 손을 꽉 잡아 흔들면서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리를 권하고 나서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전쟁에서는 조선 동지들이 우리들의 선배입니다, 대일작전에서 조선 동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활동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메레쯔꼬브는 국제련합군에서의 조선 지대의 활동에 대하여 간단히 료해한 다음 나에게 조선 국내의 군사정치정세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우리나라에서의 일본의 군사력량배치와 통치방법, 국내인민들의 반일투쟁과 혁명조직들의 분포정형, 비밀근거지들과 련결되여있는 무장대들의 활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세기와 더불어’ 제8권에서 소련군 총참모부 전략회의에 참석한 직후 모스크바에서 게오르기 쥬다노브를 만나 담화하였다고 회고하였다. 유럽전선에서 승리하여 나치의 항복을 받아내고 도이칠란드 주둔 소련군 사령관으로 활약한 쥬다노브는 김일성 사령관이 그를 만났던 1945년 7월 당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제2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김일성 사령관과 쥬다노브 제2비서의 담화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쥬다노브 제2비서 - “조선사람들이 나라가 해방된 후 몇 해 동안에 독립국가건설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김일성 사령관 - “늦어도 2~3년이면 해낼 것이다.” 
쥬다노브 제2비서 - “해방 후 조선인민의 건국투쟁에 어떤 형태의 지원을 주었으면 좋겠는가?”
김일성 사령관 - “쏘련이 독일과 4년 동안 전쟁을 했고 앞으로 일본과도 큰 전쟁을 치르어야 하겠는데 무슨 힘으로 우리를 도와주겠는가, 도와준다면 물론 고맙겠지만 우리는 될수록 자체의 힘으로 나라를 일떠세우려고 생각한다. (중략)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쏘련의 정치적 지지이다, 쏘련이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우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조선문제가 조선인민의 리익과 의사에 맞게 해결되도록 힘써주기 바란다.”
쥬다노브 제2비서 - “당신과의 상봉결과를 쓰딸린에게 보고하겠다.”


5. 연계를 맺으려고 애쓴 광복군과 조선인민혁명군

조선인민혁명군은 제1원동전선군이 폭격기, 기갑부대, 보병부대를 총동원하여 동만주로 진격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함경북도로 진격하는 작전계획을 세웠다. 김일성 주석이 ‘세기와 더불어’ 제8권에서 밝힌 작전계획은 다음과 같다.  

- 간백산 일대에 집결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한반도 북부지대로 진격한다. (간백산은 함경남도 혜산군과 함경북도 무산군에 걸쳐있는 해발고 2,164m의 높은 산이다.)
- 원동의 훈련기지에 집결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수송기를 타고 평양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강하하여 전투에 돌입한다. (원동의 훈련기지는 당시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이 소련군으로부터 현대전 훈련을 받은 야영학교인데, 하바롭스크 부근에 있었다.)
- 국내에서 활동하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와 정치공작원들은 항쟁조직을 결성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격에 합세한다. 

마침내 결전의 날이 왔다. 1945년 8월 8일 소련은 일제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 8월 9일 0시가 조금 지난 시각 원동소련군 160만 명은 세 방향에서 일제관동군에게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세기와 더불어’ 제8권에서 김일성 주석은 “같은 날 나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에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전을 개시할 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고 회고하였다. 

김일성 사령관의 공격명령을 받은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는 원동소련군이 총공격을 개시하기 약 15분 전인 8월 8일 밤 11시 50분 두만강변의 조선인 마을 토리에 있는 일제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고 그 마을을 해방하였다. 뒤이어 두만강 연안에 집결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일제의 국경요새들을 차례로 격파하고 함경북도 경원과 경흥을 해방하였으며, 웅기에 상륙하여 웅기를 해방하고 청진으로 진격하였다. 라진은 소련군 태평양함대가 라진에 상륙하기 전에 조선인민혁명군 부대와 라진무장대가 해방하였고, 회령도 소련군이 공격하기 전에 조선인민혁명군 부대와 까치봉무장대가 해방하였다. 1945년 8월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공작전에 함께 참가하였던 당시 소련 태평양함대 소속 해군병사 울라지미르 똘스찌꼬브가 항일전쟁이 끝난 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이 당시의 협동작전을 말해주고 있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1945년 8월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공작전에 함께 참가하였던 당시 소련 태평양함대 소속 해군병사 울라지미르 똘스찌꼬브가 항일전쟁이 끝난 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똘스찌꼬브다. 옷차림으로 보면 이 사진은 1945년 겨울에 촬영된 것 같다. 1945년 8월 8일 소련은 일제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 8월 9일 0시가 조금 지난 시각 원동소련군 160만 명은 세 방향에서 일제관동군에게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김일성 사령관의 공격명령을 받은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는 원동소련군이 총공격을 개시하기 약 15분 전인 8월 8일 밤 11시 50분 두만강변의 조선인 마을 토리에 있는 일제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고 그 마을을 해방하였다. 뒤이어 두만강 연안에 집결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일제의 국경요새들을 격파하고 함경북도 경원, 경흥, 웅기, 청진으로 진격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과 지역무장대들, 그리고 소련군 제1원동전선군이 함경북도에 있는 일본군과 일제통치기관을 공격하고 있을 때, 원동의 훈련기지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공수특전대가 출전준비를 끝냈다. 공수특전대는 수송기를 타고 한반도 깊숙이 침투하여 후방교란전을 벌이라는 김일성 사령관의 명령을 받고 비행장으로 나갔다. 그날이 바로 1945년 8월 15일이었다. 비행장으로 나간 공수특전대는 일제가 항복하였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기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항일선렬들이 피흘려 싸운 1940년대 항일전쟁 중에 민족주의무장세력은 광복군으로 집결했고, 사회주의무장세력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집결했다. 광복군과 조선인민혁명군은 너무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고, 정치이념도 서로 달랐지만, 항일전쟁 중에 서로 연계하려고 애썼다. ‘세기와 더불어’ 제8권에는 항일전쟁 중에 김일성 사령관이 조선인민혁명군과 광복군을 연계하기 위해 힘썼던 사실들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강병선이 주관했던 신의주의 지하조직에 관내와의 련계를 확보할 데 대한 지령을 내려보냈습니다. 그 지령에 따라 신의주의 지하조직은 천진에 있는 한 공작원에게 중경과 연안쪽에 조선인민혁명군의 련락통로를 개척할 과업을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와 중경, 연안과의 합작을 위한 중간련락거점을 만들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김구 주석도 광복군과 조선인민혁명군을 연계하기 위해 여러 모로 힘썼는데, ‘세기와 더불어’ 제8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김구의 비서로 있던 안중근의 조카 안우생의 회상에 의하면 김구도 우리에게 련락원을 파견하였다고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련락원은 만주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중도에 해방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1942년 12월에는 림시정부파견원의 자격으로 김가 성을 가진 사람이 목단강까지 왔다가 우리를 만나지 못하고 중경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만일 조선인민혁명군과 광복군이 연계를 맺고 힘을 합쳐 일제와 싸웠더라면, 우리 민족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8.15 해방과 전혀 다른 8.15 해방을 맞았을 것이고, 우리나라는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강대한 민족자주역량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항일전쟁의 위대한 역사가 분단시대에 주는 통일건국운동의 제1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