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9

매력없는 전술은 내려놓으라

변혁과 진보 (42)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대중전달매체는 가장 강력한 선동선전수단이다

2006년 1월 24일 미국의 과학 웹사이트 라이브사이언스 닷컴이 새로 발견한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을 알려주었다. 미국 에머리대학교 임상심리학 연구진이 2004년 미국 대통령선거 직전에 공화당과 민주당에 각각 소속된 정치인들에게 그들이 각자 지지하는 대선후보에게 위협적인 정보들을 알려주고 그들의 두뇌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관찰하였다.

그들의 두뇌반응을 관찰하였더니, 두뇌에서 이성활동을 일으키는 회로는 거의 작동하지 않았고, 감성활동을 일으키는 회로가 활발히 작동하였으며, 이성적 판단으로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정보를 무시한 채 완전히 왜곡된 결론에 이르렀다.

그처럼 왜곡된 결론에 이르자 혐오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관장하는 부위의 두뇌활동이 멈추고, 심리적 보상을 관장하는 부위의 두뇌활동이 갑자기 증대되었다. 이 실험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정치적 판단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라는 사실이다.

위의 실험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와 감성은 직결되어 있다. 우리가 정치의식이라고 말하는 의식활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이성적 활동이 아니라 감성적 활동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정치활동에서 감정에 치우지지 않고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런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그런 주장 자체가 자기방어적 감정의 표출인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정치활동에서 감성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차지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자기의 정치활동에서 감성이 차지하는 중요한 의의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다. 대중의 정치적 판단이 이성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여기는 비과학적인 상식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어떤 정치적 현상이 일어났을 때, 대중은 그 현상을 감성적으로 판단하는데, 그 현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려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대중이 왜 정치적 판단을 잘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는 것이다.

명백한 것은, 대중의 정치적 판단이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좌우된다는 점이고, 민주노동당에 결집한 진보정치활동가들도 자기들이 어떤 정치적 현상을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감성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이다.

대중의 감성적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신문, 방송, 인터넷 같은 대중전달매체(mass communication)다. 대중전달매체라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매스컴'이니 '매스미디어'니 하는 불필요한 외래어를 남발하는 것은 자주적 어문활동을 무의식적으로 배반한 일종의 친미행위다.

해방 직후에 활동한 이 땅의 진보정치세력들이 남긴 역사자료를 읽어보면, 아지프로라는 낯선 낱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선동(agitation)과 선전(propaganda)의 영어낱말 앞부분을 조합해놓은, 말하자면 선동선전의 약어로 쓰인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 지식인들이 선동선전이라는 좋은 우리말 대신에 아지프로라는 나쁜 외래어를 쓰면서 자주적 어문활동에서 벗어난 일탈행위를 저질렀음을 알 수 있다.

미군정과 결탁하여 진보정치세력을 탄압해온 수구정치세력이 1948년 8월 이후 정권을 잡은 뒤에 좌파용어인 아지프로라는 외래어가 사라졌고, 선동선전이라는 우리말도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동이라는 나쁜 뜻으로 왜곡, 와전되고 말았다.

그러나 원래 선동선전이라는 말에는 수구정치세력이 왜곡해놓은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 있지 않았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각종 일간지들, KBS를 비롯한 여러 텔레비전방송들과 라디오방송들, 그리고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크고 작은 인터넷 매체들이 모두 대중의 정치적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선동선전수단들이다. 대중전달매체는 나쁜 뜻으로 왜곡되기 이전 원래 의미의 선동선전수단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땅의 정권과 자본은 각종 대중전달매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그것을 통해 선동선전활동을 맹렬히 전개해오고 있다.

벽보, 신문, 라디오 같은 대중전달매체만 있었던 지난 시기의 선동선전활동은 주로 말과 글로 전개되었지만,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라 텔레비전방송과 인터넷이 대중생활 속에 파고들면서 이제는 선동선전활동이 말과 글이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 같은 다양한 시각매체로 전개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오늘날 텔레비전방송과 인터넷동영상 같은 시각매체들이 대중의 감성적 판단에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백 마디 말과 글로 설명하는 어떤 현상보다 사진 한 장이나 동영상 한 장면이 표현하는 어떤 현상이 대중의 정치적 판단에 훨씬 더 강한 영향을 주는 법이다.

시각매체시대를 사는 대중의 정치적 판단은 설명이 아니라 표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대중은 사진 한 장이나 동영상 한 장면에 표현된 어떤 정치적 현상에 대해 때로 감동하고 열광하기도 하며 때로 혐오하고 적대하기도 한다.


박근혜 대세론의 두 가지 전술

정치적 현상에 대한 대중의 감성적 판단이 가장 활발해지는 때는 뭐니뭐니해도 선거국면이다. 총선이나 대선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지배적인 국면이며, 설명이 아니라 표현이 위력을 발휘하는 시기다.

특히 충격적인 사진 한 장이나 자극적인 동영상 한 장면이 총선과 대선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수구정치세력은 바로 그러한 대중의 감성적 판단에 영향을 주는 전술에 일찌감치 정통하였다. '미디어정치'나 '이미지정치'라는 말은 그렇게 하여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가장 약한 분야가 대중전달매체를 통한 선동선전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민주노동당을 싫어하는 대중전달매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중의 정치적 판단을 논리로 접근하려는 잘못된 경향이 민주노동당에 결집한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총선이나 대선에서 대중의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주는 긍정적 감성요인은 호감과 매력이다. 호감과 매력을 주는 후보에게 표심이 쏠리게 되어 있고, 호감은커녕 진부한 느낌을 주는 주는 후보는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정책과 공약이 얼마나 훌륭하고 진정성이 있는가 하는 논리적 설명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호감과 매력을 주느냐 하는 감성적 표현의 문제가 전면에 떠오르는 것이다.

창당 이후 10년 동안 민주노동당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위한 가장 훌륭한 정책과 공약을 제시하였는데도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선거에서 큰 표차로 패배한 까닭은 선동선전술을 소홀히 여기는 바람에 감성적 표현에서 낙제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당이나 정치인의 선동선전활동은 대중전달매체라는 수단을 통해 대중의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주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전달매체에 속한 정치부 기자의 시선이다. 정치부 기자가 어떤 장면을 선택하여 대중전달매체에 올려놓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므로 대중전달매체 정치부 기자가 호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대중전달매체 정치부 기자의 시선을 끄는 호감 어린 장면을 연출하는 데서 노숙하고 세련된 인상을 주는 정치인이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다. 대중전달매체 영상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깔끔하다. 정밀하게 관찰하면, 그녀의 머리모양새와 옷차림(특히 색감), 표정과 말투가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50대 미혼여성의 깔끔한 인상을 부각시키는 강한 시각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지금 야당 대권주자 물망에 오르내리는 그 어떤 남성정치인도 이 50대 미혼여성의 깔끔한 인상을 압도할 만한 대안적 인상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야당 대권주자 물망에 오르내리는 여러 남성정치인들은 대중의 정치적 판단을 좌우하는 감성표현에서 박근혜의 맞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른바 박근혜 대세론이 요지부동으로 유지되는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박근혜 의원의 깔끔한 인상이 주는 호감과 매력이다. 물론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그녀에게서 아무런 호감과 매력을 느끼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보정치활동가들의 그런 비호감이 그녀에 대한 대중의 감성적 판단과 일치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판 중의 오판이다.

그녀는 영부인 피살사건으로 사실상 영부인 역할을 떠맡게 된 때로부터 대중 앞에 나서는 감각을 몸으로 익혔을 것이고, 그런 감각이 오늘에는 선동선전술로 전화, 발전되어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인상정치(image politics)를 실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정치부 기자들 앞에서 연출하는 깔끔한 인상은 진흙탕에서 개싸움이 벌어지는 정치권 위로 살포시 얼굴을 내밀며 떠오른 연꽃을 연상케 한다. 수많은 박근혜 지지자들은 그 연꽃을 보며 열광하는 것이다. 대중의 눈에 한나라당이 꼴보기 싫어도 그 당에 속한 박근혜는 좋아 보이는 이상현상이 일어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일찌감치 이런 맥락을 간파한 박근혜 의원은 자신이 한나라당에 속해 있건만, 대중의 눈에 식상해 보이는 한나라당의 낡은 정치인들과는 전혀 색다른 인상을 연출하기 위해 애써왔다. '친박연대'를 앞세워 한나라당 지도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독특하고 색다른 감성을 전달하려는 그녀의 연꽃전술이 대중에게 먹혀들어가고 있다.

박근혜 대세론이 유지되는 비결은 그런 연꽃전술만이 아니다. 그녀는 박정희 경제건설 신화가 비춰주는 후광을 받고 있다. 그녀는 연꽃전술에 더하여 후광전술까지 동원하는 것이다. 물론 박정희 경제건설 신화는 원래 수구세력이 꾸며내었고, 친자본 반노동 성향의 대중전달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유포되어온 거짓신화에 지나지 않지만, 대중은 그 거짓신화에서 과거사의 야릇한 향수를 느끼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2011년 7월 둘째 주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   ( 711~715일 사이 전국 19세 이상 남녀 3,750 무작위 유무선전화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 1.6%p )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의 후광전술은 그녀를 자기 아버지 박정희의 경제건설을 재현할 대권주자로 떠오르게 만드는 요인이다. 오늘 민생경제 회복을 향한 대중의 정치적 요구에 대해 그녀는 박정희 경제건설 신화의 후광을 비추는 전술로 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후광전술은 연꽃전술과 함께 대중 지지율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는 박근혜 대세론의 비결이다.


표심을 움직이는 인상정치의 어제와 오늘

대중의 감성적 판단에 각인된 역대 대선후보들의 인상을 종합하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근엄한 권위주의자 인상을 풍겼고, 김영삼, 김대중, 이회창은 노련한 정치귀족 인상을 풍겼고, 노무현은 소탈한 서민 인상을 풍겼고, 이명박은 유능한 사업가 인상을 풍겼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른바 이회창 대세론을 뒤집고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는,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로 이어지는 3김의 정치귀족적 인상을 복제한 이회창 후보에게 식상해버린 대중의 표심이 그런 인상과 정반대되는 서민적 인상을 풍긴 노무현 후보에게 쏠렸기 때문이다.

또한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당선된 비결 가운데 하나는, 정동영 후보가 대중에게 자기의 어떤 특징적인 인상을 주는 데 실패하였던 반면에 이명박 후보는 사업가적 인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민생경제 회복을 바라는 대중의 정치적 요구와 이명박 후보의 유능한 사업가적 인상이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대중의 표심이 그에게로 움직였던 것이다.

그러면 2012년 대선에서는 어떤 인상정치판세가 형성될 것인가? 인상정치의 시각에서 보면, 2012년 대선국면에서 대중이 호감과 매력을 느낄만한 후보는 두 가지 요소를 구비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민생경제 회복을 바라는 대중의 정치적 요구에 부응하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아, 저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숨통이 좀 트이겠구나!"하는 직감적 인상을 주는 후보가 대선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논리적 설명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자기의 민생경제 회복공약을 자꾸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대중을 설득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비과학적인 판단에 따른 헛수고다. 대중은 논리적 설명이 아니라 직감적 인상을 요구한다. 직감적 인상을 찾는 대중의 요구에 적절하게 부응하지 못하면, 대선후보 토론회 같은 데 나가서 아무리 논리적으로 매끈하게 민생경제 회복대책을 설명한다 해도 표심을 움직이지 못한다.

둘째, 이명박 대통령의 사업가적 인상과 정반대 인상을 주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으로 민생경제 파탄위기에서 벗어나기는커녕 민생경제가 되레 극도로 악화되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숨통을 조이는 절박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 땅의 대중은 2007년에 이명박 대선후보가 연출한 유능한 사업가적 인상에 속아넘어가 그에게 표를 주었구나 하는 배반감을 느끼고 있다. 그가 유능한 사업가적 인상을 연출한 것이 겉만 그럴듯한 사기극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채린 것이다.

감성적 판단은 교활한 이성의 작간에 속아넘어가기 쉽다. 지금 팽배해진 반이명박 정서는 바로 그 사기극에 대한 반감을 기조로 하여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2012년 대선에서 민생경제 회복능력을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유능한 사업가적 인상을 풍기는 대선후보는 반드시 패하게 되어 있다. 그것과는 전혀 색다른 인상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야당 대선후보의 등장은 2012년 총선 이후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변동되겠지만, 요즈음 박근혜 대세론에 도전하는 야권 대선후보 물망에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압축된다.


손학규 대표가 대중에게 주는 인상은 사업가적 인상이어서,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시절 인상과 손학규 대표의 현재 인상에서 대중은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손학규 대표가 민생행보에 아무리 열성을 보여도 대중적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민주당이 손학규 대표를 2012년 대선후보로 내세우는 경우, 낙선 가능성은 거의 100%다.

대중이 유시민 대표에게서 느끼는 인상은 중산층의 자유자적이다. 그의 자유자적한 인상은 자유주의 분위기에서 자라나 미묘한 중산층 소속감에 젖은 이 땅의 청년층에게 호감과 매력을 준다. 그에 대한 지지율이 20-30대 청년층에게서 높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자유자적한 인상은 그의 강점이자 약점이기도 하다. 40대 이상 중년층과 노년층에게 자유자적한 인상은 무게감을 상실한 가벼움으로 통한다.

선거는 청년층 표심만 움직여서는 이길 수 없다. 20-30대 유권자에게는 선거일에 투표하러 가는 임무를 저버리고 바람 쐬러 나가버리는 자유를 만끽하는 경우가 흔하다. 청년층에게서는 지지율이 득표율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청년층 유권자의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선거판에 유시민 대표가 경쟁력 있는 대선후보로 나서기 힘든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만일 20-30대 청년층을 투표소로 끌어낼 만한 대형사건이 일어나는 경우, 유시민의 대선 경쟁력이 급증할 수 있다. 이를테면, 2002년 대선 직전에 미국군 장갑차가 여중생 두 사람을 무참히 깔아죽인 사건에 대해 미국이 무죄판결을 내린 것을 보고 격분한 청년층의 표심이 미국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드러낸 노무현 후보에게 쏠린 것과 유사한 판세가 펼쳐지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2002년 대선에서 청년층에 불었던 반미열풍이 2012년 대선에서도 재현되리라고 예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근 야당 대권주자 대열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뛰어든 사람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그가 대중에게 안겨준 첫 인상은 깔끔함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느끼는 식상한 사업가적 인상을 뛰어넘는 그의 깔끔한 인상은 그에 대한 대중적 지지율 급상승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지금 대중들이 식상한 사업가적 인상과는 정반대의 인상을 찾고 있음을 말해준다.

눈이 작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것과 달리, 눈이 큰 유시민 대표와 문재인 이사장은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유시민 대표나 문재인 이사장은 모두 눈이 큰 편에 속하지만, 투명한 안경알 속에서 움직이는 문 이사장의 큰 눈이 대중의 뇌리에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문재인 이사장이 박근혜 의원이 연출하는 인상을 상쇄할 만큼 깔끔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등장한 것은 그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강점이지만, 그에게는 민생경제 회복능력을 보여주는 어떤 직감적 인상이 없다. 이것이 그가 극복해야할 약점이자 한계다. 깔끔한 인상은 가졌으나 민생경제를 회복시킬 직감적 인상을 갖지 못한 문재인 이사장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진 박근혜 의원을 대중 지지율에서 넘어서지 못한다. 

다른 한 편,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박근혜 대세론에 선뜻 도전장을 내밀기 힘든 까닭은, 박근혜 의원과 똑같은 여성정치인으로서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한계가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2012년 대선에 박근혜 의원이 아닌 다른 남성정치인을 후보로 내세우는 경우, 이정희 대표의 경쟁력이 상승할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한나라당이 박근혜 대세론을 뒤집을 남성후보를 등장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이정희 대표가 야당 대선후보 물망에 오르지 못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매력없는 진보정치의 왜소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가 뭐라 해도 신경 쓰지 않고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간다는 식의 태도로는 대중에게 다가갈 수 없다. 대중이 알아주지 않는 진보정치는 아무리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도 매력없는 정치적 왜소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위에서 논한 선동선전은 대중의 눈에 매력없게 보이는 진보정치의 왜소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술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전술을 깊이 연구하고 진보정치와 인상정치를 원만히 결합하여야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자기의 임무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진보정치와 인상정치의 원만한 결합을 위해 아래와 같은 네 가지 사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누구나 아는 것처럼, 2012년 4월에 실시될 총선결과에 따라 대선후보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제1야당이지만, 박근혜 대세론을 넘어설 유력한 대권주자를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이 커질 것이다. 그런 불안감은 총선 이후에도 총선 이전과 견주어 큰 변동이 없는 지지율이 나타나는 경우 위기감으로 번질 것이다.

둘째,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 국민참여당과 함께 3당합당을 반드시 실현하여 2012년 총선에서 경쟁력있는 진보통합당 대선후보를 등장시켜야 한다. 진보통합당 대선후보는 진보정치의 기준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인상정치의 새로운 기준으로도 판단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셋째, 지금 북측이 강한 시동을 건 미국과의 양자회담에서 성과를 거두어 역사적인 한반도 평화회담이 성사되는 경우, 2012년 선거국면에서 민생경제 회복문제와 함께 평화실현 문제도 대중의 정치적 요구로 등장할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진보통합당 대선후보는 민생경제 회복능력만이 아니라 평화회담 추진능력도 보여주는 인상정치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 

넷째, 2012년 총선 이후 진보통합당 대선후보와 민주당 대선후보를 단일화하는 과정을 거쳐, 야권단일후보가 한나라당 후보와 맞붙는 1 대 1 대결구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민주당과 연대하지 않고 진보통합당의 대선후보가 끝까지 완주하는 독자적인 선거전술은 박근혜 대세론에 무릎을 꿇는 필패전술이다. 매력없는 전술은 내려놓아야 한다. (2011년 7월 29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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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7

동정심은 필요 없다

진실의 말팔매 <3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주한미국군이 최악의 독극물 다이옥신이 들어간 고엽제 드럼통을 이 땅에 마구 파묻은 전대미문의 범죄행위가 우리 국민들의 우려와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더욱이 경상북도 왜관에 있는 미국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 드럼통을 불법매립하였다고 폭로한 현장 관계자들의 증언이 언론에 보도되었는데도, 미8군사령부는 지질탐사를 시행하는 척하는 기만극을 연출하면서 불법매립범죄를 슬그머니 덮고 넘어갈 음모나 꾸미고 있으니 그들의 파렴치한 행동을 보면 누구나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1978년 2월부터 왜관 미국군기지에 고엽제 드럼통을 불법매립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군 공병대 중장비 기사로 매립작업에 동원되었던 스티븐 하우스와 당시 미국군 대위로 비무장지대 최전방에서 근무하였던 필 스튜어트 두 사람이 몇일 전 서울에 들어갔다. 그들 두 사람은 2011년 7월 25일 국회의원회관 128호에서 열린 ‘전 주한미군 고엽제피해자 국회증언대회’에 참석하여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하였다.

△7월 25일 '전 주한미군 고엽제 피해자국회증언대회'에 참석,  왜관 미국군기지에 고엽제를 불법 매립한 사실을 폭로하는 스티브 하우스(사진 중앙. 사진 왼쪽은 필 스튜어트)  (<통일뉴스> 2011년 7월 25일 보도사진)

하우스의 폭로에 따르면, 자신이 속했던 802공병대대 델타중대는 1978년 2월부터 고엽제 드럼통 250개를 왜관 미국군기지에 불법매립하였으며, 그해 가을에도 고엽제 드럼통을 30-40개씩 여러 차례 불법매립하였다고 한다. 왜관 미국군기지에 있던 고엽제 드럼통을 불법매립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미국군기지에 있던 고엽제 드럼통도 그 기지로 운반해서 1979년 2월까지 불법매립을 계속하였다니,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 퇴역군인 두 사람은 이튿날인 7월 26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임진강 강변휴게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필 스튜어트는 1960-1970년대에 미국군이 서울, 인천, 부산, 동해안 등에서 고엽제를 사용, 유통, 저장하였다고 폭로하였다. 그의 폭로에 따르면, “고엽제가 들어있던 드럼통의 배출구 고무부분이나 장화바닥이 (맹독성 때문에) 껌처럼 흐믈거렸”는데도, 미국군 지휘부는 당시 미국군 중대장이었던 자신에게 고엽제가 “안전하고, 마실 수 있고, 양치질할 수 있고, 목욕할 수도 있다”고 속였다는 것이다.

미국군은 그 때나 지금이나 자기들의 범행을 은폐하려는 가소로운 기만극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폭로에 따르면, 당시 미국군은 맹독성 고엽제를 전방지대 곳곳에 마구 살포하고 나서, 살포작업에 사용하여 맹독성에 오염된 장비들을 임진강에서 씻곤 하였다.
 
위의 두 퇴역군인이 폭로한 내용은, 미국군이 맹독성 고엽제를 이 땅에 불법반입, 불법살포, 불법매립한 전대미문의 만행을 저질렀음을 입증해준다. 그런 만행이 30년이 넘도록 비밀에 묻혀있었다는 것도 믿기 힘든 일이고, 그런 만행을 저지른 당사자인 미8군사령부에게 고엽제 매립범죄를 조사하라고 맡긴 것도 믿기 힘든 일이고, 그들의 만행이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도 우리 국민들이 미국에게 분노하지 않는 것도 믿기 힘든 일이다.

한미동맹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이 땅에 미국군을 장기주둔시켜오는 미국의 지배체제가 우리 국민들에게서 자주의식과 저항의지를 거세해버리고 저들의 지배질서에 순응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처럼 믿기 힘든 해괴한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미국군이 이 땅에서 오래 전에 저지른,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적당히 덮어버리고 넘어가려는 전대미문의 고엽제 만행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명백하게도, 고엽제 만행의 원인은 주한미국군 장기주둔이다. 바로 그 원인에서 미국군이 저지른 고엽제 만행을 비롯한 온갖 범죄가 발생한 것이고, 주둔에 따른 온갖 피해와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더욱이 주한미국군 장기주둔이라는 원인에서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미국군의 끊임없는 북침전쟁연습에 따른 군사적 긴장과 핵전쟁위험이 가해오는 이 땅의 주권침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국민들은 고엽제 불법반입, 불법살포, 불법매립에 대한 공식 사과를 미국 정부에게 요구하고, 고엽제 불법매립으로 발생한 환경오염을 제거하는 경비를 전담하라고 미국 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권침해의 화근인 주한미국군을 철군하기 위한 평화회담을 시작하라고 미국 정부에게 당당히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요구가 합리적이고 정상적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7월 26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미국군기지 캠프 케이시 주변에서 민주노동당 평화도보순례단이 고엽제 불법매립을 폭로한 두 퇴역군인과 함께 진행하기로 예정한 걷기대회와 2차 기자회견이 갑자기 취소된 것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고엽제 불법매립을 폭로한 두 퇴역군인이 불법매립을 저지른 주한미국군을 규탄하고,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하라는 민주노동당 평화도보순례단의 구호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전 주한미국군 필 스튜어트(사진 중앙)와 스티브 하우스가 민주노동당 홍희덕의원과 함께 7월 26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 주변을 답사하며 고엽제 불법 살포를 증언하고 있다. (<노컷뉴스> 2011년 7월 26일 보도사진)

이러한 사태는 이미 그 전날에 열렸던 기자회견에서 예고되었다. 그 자리에서 필 스튜어트는 “신임 주한미국군사령관은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 사용된 에이전트 오렌지와 기타 맹독성 제초제에 대한 완전하고 투명한 진상을 공개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고엽제 만행의 원인이 한미동맹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고, 되레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고엽제 만행의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한 것은 어처구니 없는 궤변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수많은 퇴역군인들 가운데 미국군이 다른 나라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을 규탄하고, 해외에 주둔하는 미국군 철군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해외에 주둔하는 미국군이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준다는 깊은 착각에 빠져있는 퇴역군인들이 대다수다. 고엽제 만행을 폭로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그 두 퇴역군인도 그런 대다수에 속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두 사람은 7월 27일 미국군기지 캠프 캐럴이 있는 경상북도 왜관지역을 찾아가 지역주민들에게 사죄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개인자격으로 지역주민들에게 사죄하는 것은 문제의 초점을 흐려놓는 일이다. 고엽제 만행은 그 두 사람이 저지른 개인범행이 아니다. 왜관 지역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그 두 사람도 고엽제 만행의 피해자들이다. 명백하게도, 고엽제 만행은 미국군이 저지른 조직적 범죄이므로, 그 두 사람의 개인적 사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가 필요하다. 또한 고엽제 만행은 왜관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땅 곳곳에서 저질러진 것이므로, 어느 특정지역주민에게 사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 전체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미국군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고엽제 만행으로 피해를 입은 우리 국민들을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은 필요 없다. 우리 국민들은 자기들의 주권을 침해한 미국 정부의 공식사과를 받아야 하고, 미국 정부는 주권침해의 화근인 주한미국군을 철군하기 위한 한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여 근본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종전이 아니라 정전으로 6.25 전쟁의 포성이 멎은 때로부터 58년 동안 주한미국군 장기주둔으로 주권침해를 당해온 우리 국민들에게는 동정심 표시가 아니라 미국 정부의 공식사과와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가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 정당한 요구가 실현될  때, 고엽제 만행으로 짓밝힌 과거는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미래로 되살아날 것이다. (2011년 7월 2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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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2

대중은 간 데 없고 당기만 나부껴

변혁과 진보 (4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민주노동당이 걸어온 11년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전환기에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찾아오는 법이다. 지금 전환기에 들어선 민주노동당이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창당 11년 만에 민주노동당이 추진하는 진보통합당 건설은 민주노동당에게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쇠락의 위기가 될 수도 있다. 전환기에 들어선 민주노동당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고, 다시 일어서기 힘든 좌초의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이처럼 기회와 위기를 동반하는 전환기에 들어선 민주노동당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11년 동안 쌓아온 경험에서 교훈을 찾는 일이다. 무슨 교훈을 찾을 것인가?
  
창당 주역들은 민주노동당을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으로 건설하려고 하였다. 누구도 그러한 당 건설노선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을 건설하면 당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러한 믿음과 유리되었다. 창당 이후 11년이 지났으나 민주노동당의 역량은 지속적으로 강화, 증대되지 못하였다. 민주노동당 당원의 양적 증가는 일정 수준에서 멈추고 말았으며, 민주노동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율도 지속적, 점진적으로 상승하기는커녕 되레 점진적으로 감소되었다.

2008년 분당사태 이후 3년 동안 민주노동당에 대한 낮은 대중적 지지율은 장기적으로 고착되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이 이전에 전망하였던 원내 진출, 원내교섭단체 구성, 제2야당으로 부상, 대선 승리, 진보적 정권교체로 이어지는 집권 시나리오는, 원내 진출에서 멈춰버리고 분당사태로 반토막이 나는 바람에 이제는 정치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희망의 영역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누가 봐도 한계상황에 이른 것이 분명하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두 가지 문제를 짚어볼 수 있다.

첫째, 창당주역들이 설정한,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을 건설하려는 목표는 올바른 것이었으나, 그 목표에 이르는 실천방도를 찾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이 창당 과정에서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선포하였다고 해서, 그런 정당이 자동적으로 건설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의 사회정치역량이 미약한 조건에서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선포한다고 해서,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민주노동당에 총집결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전태일 정신을 따르는 노동자들보다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중산층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많다. 민주노총 기층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전태일 정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이 민주노동당이 처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넘어설 실천방도를 찾지도 못하면서,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희망적 사고에 언제까지나 젖어 있을 수는 없다.

둘째,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의 사회정치적 요구만이 아니라, 농민, 도시빈민, 중산층을 비롯한 여러 사회계층들의 정치적 요구를 수용해야 하였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대중노선에서 출발하여 계급노선으로 전화, 발전되어가는 긴 호흡이 필요하였다.

다시 말해서, 대중노선에 기초한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그 정당 내부에서 노동계급의 중심성을 차츰 보강하여 명실공히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으로 전화, 발전되어가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이고 정당한 당건설 과정이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호흡은 조급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너무 짧았다.

오늘의 전환기에 만일 민주노동당이 위의 한계상황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여 왜소해진 유럽형 좌파정당들의 정치적 고립을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다. 


변화를 요구하는 한계상황

민주노동당이 처한 한계상황은 변화를 요구한다.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 것일까?

민주노동당에 대한 대중의 객관적 평가에 귀를 기울이고, 진보정당과 대중의 결합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를 걷어내고 진정한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은 '운동권 정당' 신세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뜻한다.

계급적 원칙을 강조하는 좌파정당처럼 행세할 것이 아니라, 진보적 대중정당 답게 자기의 눈높이를 조금 낮춰서, 대중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는 유연한 전략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그런 유연한 전략은 지금 추진 중인 진보통합당 건설과업이 절실히 요구하는 것이다.

첫째, 새로 건설해야 할 진보통합당은 '운동권 정당'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지난 시기 '운동권'에서 열심히 활동하였던 당원들이 주도하는 민주노동당에 '운동권'과 정치권을 혼동하는 관행적 사고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내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이 각계각층 대중의 생활현장에 밀착된 의정활동을 펼치는 것에서 '운동권'과 정치권의 차이가 돋보인다. 항쟁국면이 아닌 평시에, 이 땅의 각계각층 대중이 민주노동당에게 바라는 것은 생활현장에 밀착된 의정활동이다. 민주노동당이 각계각층 대중의 생활현장에 밀착된 의정활동에 충실해야 대중의 지지와 신뢰를 받을 수 있고, 그런 지지와 신뢰를 바탕으로 당의 집권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각계각층 대중의 생활현장에 밀착된 의정활동에 충실하려면 대중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당의 활동영역을 전태일 정신을 따르는 소수의 선진적 대중 속에 고착시킬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다수의 개혁적 대중 속으로 더 넓혀야 한다.

새로 건설해야 할 진보통합당이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개혁적 대중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출 때, 그 때 비로소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개혁적 대중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났다고 자평하는 것은 착각이다.

대중의 눈높이에 자신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나자는 것, 그리고 당의 활동영역을 전태일 정신을 따르는 소수의 선진적 대중 속에 고착시킬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다수의 개혁적 대중 속으로 더 넓히자는 것, 바로 이것이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민주노동당이 추구하고 견지하고 관철하여야 할 대중노선이다.

둘째, 새로 건설해야 할 진보통합당이 전태일 정신을 따르는 소수의 선진적 대중에게서만이 아니라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다수의 개혁적 대중들에게서도 지지와 신뢰를 받으려면,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국민참여당과도 통합하여 진보통합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장해야 한다.

이러한 이치는 너무도 명백한 것이어서 누구나 금방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처럼 명백한 이치가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통하지 않고 있다. 대중노선의 견지에 보면,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참여당을 배제하려는 것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민주노동당의 정치이념은 진보적 민주주의이고, 참여당의 정치이념은 진보적 자유주의다. 민주주의변혁을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개혁을 추구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와 구별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자를 대치시키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오류다.

민주주의개혁을 배제한 민주주의변혁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진보적 민주주의가 진보적 자유주의와 대치된다고 말할 수 없다. 사회계급관계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민주주의변혁을 추구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민주주의개혁을 추구하는 중산층 및 자영업자들과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연합하여 폭넓은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이치가 이처럼 명백한데도 참여당을 배제하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만 통합하여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려는 것은, '도로 민노당'의 질곡에 스스로 빠지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만 통합하여 진보통합당을 건설할 경우, 잃을 것은 다수의 개혁적 대중이요 얻을 것은 불명예스러운 '도로 민노당' 간판 뿐이다.

 원래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도로 민노당'으로 건설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한 쪽은 진보신당인데, 이제 와서 진보신당이 참여당을 배제하고 민주노동당과 통합하려 함으로써 '도로 민노당'을 건설하려는 것은 누가 봐도 자가당착이다. 민주노동당은 '도로 민노당'을 건설하려는 억지논리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심사숙고해야 할 세 가지 시나리오

전환기에 들어선 민주노동당 앞에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놓여있다. 상황변화에 따라 실현방식에서 일정한 변형이 있을 수 있지만, 아래의 세 가지 시나리오가 진보통합당 건설의 기본방향인 것은 분명하다. 올해 여름에 아래의 세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서 어느 한 가지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심사숙고가 요구된다.
   
첫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밀고 당기기만 반복하다가 결국 진보통합당 건설이 좌초되는 시나리오다. 이것은 변혁과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이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1년 7월 20일 <한겨레>가 진보통합당 건설문제를 보도하는 기사에서 "시간은 재깍재깍 가는데, 국민들이 보기엔 무엇 하나 뚜렷이 이뤄진 게 없다"고 지적하면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지루한 밀고 당기기가 반복되다 보니, 구경꾼들이 늘고 관심이 커지기는커녕 지지층의 실망만 커지고 있다"고 혹평한 것은 과장보도가 아니다.
 
진보통합당 건설이 좌초한 뒤에, 민주노동당이 다시 일어나 정상항해를 계속할 수 있을까?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좌초 이후에 대한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 진보통합당 건설이 좌초한 것은, 민주노동당이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그나마 유지해오던 소폭의 지지기반마저 잃어버리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통합당 건설의 좌초는 민주노동당이 당의 명운을 걸고 거부해야 할 시나리오다.

둘째, 좌초 위험을 피하기 위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먼저 통합하고 나서 나중에 참여당을 끌어들이는 시나리오다.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절충안으로 합의한 단계적 통합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단계적 통합론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왜냐하면, 참여당을 끝내 배제하려는 진보신당이 진보통합당 안에 들어가서도 계속 반대할 것이 뻔한데, 무슨 수로 그들의 반대의사를 꺾고 참여당을 진보통합당에 끌어들이겠다는 말인가. 단계적 통합론이 '도로 민노당' 건설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도로 민노당'이 해답이 아닌 것처럼, 단계적 통합론도 해결책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의 반대를 의식하여 일단 단계적 통합론을 제기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단계적 통합론에 의존하는 모험은 피해야 한다. 진보통합당을 모험으로 건설할 수는 없다.

셋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참여당이 정치적으로 타협하여 폭넓은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는 시나리오다. 두 말할 나위 없이, 3당 통합이야말로 '운동권 정당'과 '도로 민노당'에서 벗어나 대중노선을 관철할 가장 바람직한 당건설 시나리오이며 오늘의 정치현실이 허락하는 유일한 당건설 시나리오다. 그러므로 대중노선에 따라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민주노동당은 3당 통합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의 3당 통합이야말로 '운동권 정당'과 '도로 민노당'에서 벗어나 대중노선을 관철할 가장 바람직한 당건설 시나리오다. (<연합뉴스> 2011년 6월26일 보도사진)

그런데 3당 통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3당의 정치적 타협이다. 정견이 서로 다른 3당이 통합하려면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는데, 한 가지 문제는 유연한 전술에서 정치적 타협이 나온다는 점이고, 다른 한 가지 문제는 원칙 없는 타협은 자신을 스스로 배반하는 패착이라는 점이다.

진보통합당 건설과 관련하여 유연한 전술을 취하고 있는 쪽은 뜻밖에도 참여당이다. 당대표가 '과거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발언을 하고 대선 불출마를 거론한 것이나, 참여당이 연석회의에 참가하지 않았으면서도 연석회의 합의문을 승인한 것은 예상을 뛰어넘은 유연한 전술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비해, 진보신당과 좌파는 앞뒤가 꽉 막힌 경직된 전술밖에 모르고 있다. 대중들의 눈으로 보면, 어느 쪽이 참신하고 어느 쪽이 한심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3당이 누가 보아도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설정해놓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정치적으로 타협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객관적 기준을 설정해놓지 않고 무턱대고 타협한다면 그것은 야합이지 타협이 아니다. 객관적 기준이 없는 통합은, 아무런 원칙이 없이 오직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몰리는 '송사리떼 야합'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진보진영 대표자들이  2011년 6월 1일 국회 정론관에서 연석회의 합의문
타결 소식을 발표하고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것처럼, 3당 통합에서 정치적 타협을 실현할 객관적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 연석회의 합의문이다. 연석회의 합의문에 대한 수용 여부를 떠나서 어떤 다른 기준을 제기하는 것은, 연석회의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단행위로 된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진보신당과 좌파가 연석회의에서 합의한 객관적인 기준과 다른 어떤 자의적인 기준을 꺼내들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참여당을 배제하는 것은 연석회의 합의정신에 배치되는 것이다.
 
지금 민주노동당에게 주어진 선택은 참신한 통합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진부한 통합을 추구하는가 하는 것이다. 말로는 진보통합당을 건설한다고 하면서 참여당을 배제한 채, '운동권 정당', '도로 민노당'으로 되어버리는 것이 진부한 통합이다. 그에 반해, 연석회의 합의문에 의거한 정치적 타협으로 3당 통합을 실현하고, 3당 통합을 중심으로 폭넓은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는 것이 참신한 통합이다. 

만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참여당을 배제한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면, 그 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패할 것이며, 고립과 침체의 연륜만 쌓여갈 것이다. 반대로, 만일 정치적 타협으로 3당 통합을 실현하면, 진보통합당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첫 단계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65년 전의 비극을 재연하려는가?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고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던 65년 전에도 3당 통합을 실현하기 위한 객관적 기준이 제시되었다.

△ 좌우합작운동을 이끌었던 여운형과 김규식 
1946년 10월 7일에 발표된 좌우합작 7원칙이 바로 그 기준이다. 좌우합작 7원칙은 좌익이 제시한 5원칙과 우익이 제시한 8원칙을 여운형과 김규식이 절충하여 마련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65년 전에는 좌우합작 7원칙을 수용한 모든 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이 총결집하여 진보통합당을 건설하여야 하였고, 오늘날에는 연석회의 합의문을 수용한 모든 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이 총결집하여 진보통합당을 건설하여야 한다.

통합의 객관적 기준에 들어있는 내용은 65년의 시간적 격차에 따라 달라졌어도, 통합의 객관적 기준이 가지는 정치적 의의는 65년 전이나 오늘이나 똑같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1946년의 좌우합작 7원칙과 2011년의 연석회의 합의문이 똑같은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65년 전에 3당 통합의 객관적 기준으로 제시된 좌우합작 7원칙은 이렇다.

1. 조선의 민주독립을 보장한 삼상회의 결정에 의하여 남북을 통한 좌우합작으로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수립할 것.
2. 미소공동위원회 속개를 요청하는 공동성명을 발할 것.
3. 토지개혁에 있어 몰수, 유조건 몰수, 등수를 따라서 차례로 감하는 매상 등으로 토지를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하며, 시가지의 기지 및 대건물을 적정처리하며, 중요산업을 국유화하며, 사회노동법령 및 정치적 자유를 기본으로 지방자치제의 확립을 속히 실시하며, 통화 및 민생문제 등을 급속히 처리하여 민주주의 건국과업 완수에 매진할 것.
4.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처리할 조례를 본 합작위원회에서 입법기구에 제안하여 입법기구로 하여금 심리, 결정케 하여 실시케 할 것.
5. 남북을 통하여 현 정권 하에 검거된 정치운동자의 석방에 노력하고, 아울러 남북 좌우의 테러적 행동을 일체 즉시 자체토록 할 것.
6. 입법기구에 있어서는 일체 그 권능과 구성방법, 운영 등에 대한 대안을 본 합작위원회에서 작성하여 적극적으로 실행을 기도할 것.
7. 전국적으로 언론, 집회, 결사, 출판, 교통, 투표 등의 자유가 절대 보장되도록 노력할 것.

역사적으로 평가하면, 1946년의 좌우합작 7원칙은 1927년에 결성되어 1931년까지 활동하였던 신간회의 좌우합작정신을 8.15 해방 직후의 시대적 요구에 맞게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명명백백한 통합의 객관적 기준을 조선공산당 지도부가 계급노선의 이름으로 부정하고 나섰다. 1946년 10월 26일과 27일 박헌영은 <독립신보>에 연재한 '좌우합작 7원칙 비판'이라는 제목의 기명논설에 이렇게 썼다.

 "우익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또 좌익적인 언사에도 관계없이 본질에 있어서 우익반동성을 내포하고 있는 7원칙은 의연 우익노선인 것이며 좌우합작의 가면 하에 우익노선을 원활하게 집행하자는 기도에 불과하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좌우합작의 7원칙은 그것이 어떠한 언사를 농하고 있더라도 아무리 간교한 가면으로 장식되었더라도 그 정체를 은폐할 수 없는 것이다. 대중을 기만하여 반동진영으로 몰고 입법기관을 권위화하여 군정을 유지, 연장하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이 통합을 방해하고 분열을 획책하기 위해 비판을 가장하고 꾸며낸 악질적인 음해모략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여기서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땅의 진보정치세력이 그처럼 말이 되지 않는 음해모략을 저지, 파탄시키지 못하고, 결국 3당 통합에 실패하였다는 점이다.

만일 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이 좌우합작 7원칙을 수용한 3당의 통합을 중심으로 폭넓은 진보통합당을 건설하고, 그 강력한 힘으로 미소 양군 동시철군과 민주주의변혁을 추진하였더라면, 우리는 지금 전쟁과 분단도 없고 계급적 지배와 착취도 없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불행하게도, 박헌영의 사기행각에 속고, 조선공산당 지도부의 좌경적 오류에 휘말린 이 땅의 진보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테러와 탄압, 학살과 전쟁으로 파멸적 손실을 입고 말았다. 대중은 간 데 없고 당기만 나부끼는 비극을 지금 누가 재연하려는가? (2011년 7월 2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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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0

북측에는 별난 상품이 있다

진실의 말팔매 <30>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북측에도 백화점이 있다. 평양에 있는 백화점은 평양 제1백화점, 평양 제2백화점, 동평양 백화점, 서평양 백화점, 락원 백화점, 광복 백화점, 대성 백화점 등이다. 물론 북측의 여러 지방도시들에도 백화점이 있는데, 인구비율에 따라 인구가 적은 도시에는 1개, 인구가 많은 도시에는 2-3개 씩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남측에서 게재한 북측 백화점에 관한 웹싸이트 정보를 찾아보니, 북측에서는 시인민위원회가 특권층에게 발행하는 구매권이 있어야 백화점에서 물품을 살 수 있는데, 백화점 앞에는 구매권을 파는 암표상들이 우굴거리고 있으므로, 서민들은 암표를 사서 백화점을 이용하고 있다는 식으로 씌여있었다. 반북수구세력이 북측을 헐뜯기 위해 날조해낸, 그야말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이다.

북측에서 가장 큰 백화점은 평양시 중구역 경흥동에 있는 평양 제1백화점이다. 이 백화점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9층이며, 연건평 4만㎡다. 자본주의 나라들에 있는 백화점은 예외없이 재벌의 이윤추구를 위해 운영되지만, 북측의 백화점은 예외없이 상업봉사망이 운영하는 국영백화점이다.

재벌백화점에서는 해외에서 수입한 값비싼 사치품에 이른바 '명품'이라는 딱지를 붙여 상위중산층이나 부유층에게 팔고 있지만, 국영백화점은 국산 인민소비품을 인민들에게 국정가격으로 팔고 있다. 재벌백화점을 찾는 손님은 상위중산층이나 부유층이므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백화점 내외부를 화려하게 치장하고 고급화 전략으로 요란을 떨지만, 중산층이나 부유층이 존재하지 않고 인민들만 존재하는 북측에서 국영백화점을 찾는 손님은 인민들이므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백화점 분위기가 소박하고 실용적이고 서민적이다. 국영백화점과 재벌백화점을 잠깐 비교해봐도, 북측의 사회주의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2011년 7월 5일과 6일 제2차 평양 제1백화점 상품전시회가 열렸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 상품전시회에는 240여 개소의 생산단위들이 생산한 1,400여 종, 350만여 점에 달하는 "질좋고 다양한 경공업제품들"이 전시되었다고 한다.

평양 제1백화점에서 제1차 상품전시회가 열렸던 때는 2010년 12월 16일이다. 제1차 상품전시회에는 약 280여 종의 상품밖에 출품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열린 제2차 상품전시회에는 약 1,400여 종이 출품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7개월 동안 경공업 부문에서 생산되는 상품종류가 5배나 급증하였음을 실물로 입증한 것이다.

<로동신문> 2011년 7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제1백화점 상품전시회장을 현지지도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전시된 상품들을 일일이 보시면서 (줄임)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고, "상점망들에 각종 질좋은 상품들이 차넘칠 때라야 우리 일군들이 인민의 충복으로서의 자기의 사명과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고 한다.

2011년 7월 16일에는 당과 국가의 책임일군들과 근로단체, 성, 중앙기관 일군들도 그 상품전시회장을 참관하였다. 이것은 북측이 최근 경공업 발전을 매우 중시하여 그 부문에 국력을 부쩍 집중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면 제2차 상품전시회에는 어떤 상품들이 출품되었을까? 현장에 가서 살펴볼 수 없어 아쉬움을 느끼던 참에, 2011년 7월 16일 <조선중앙통신> 웹싸이트에 '경공업 발전의 면모를 보여주는 상품전시회'라는 제목으로 9분58초 길이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그처럼 짧은 길이의 동영상에 1,400여 종의 상품들을 모두 담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동영상 촬영자의 재량으로 선발된 일부 상품들만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 눈길을 끄는 것은 화장품류다. 출품된 화장품류 가운데서 일부만 주마간산격으로 동영상에 나타나지만, '봄향기' 또는 '은하수'라는 상표가 붙은 로션(lotion)을 살결물이라는 고운 우리말 제품명으로 바꾸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여성들이 싣는 스타킹을 북측에서는 살양말이라는 고운 우리말 제품명으로 부른다. 제품명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북측의 자주적 어문정책이 그들의 고유한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제2차 상품전시회에 전시된 북측의 화장품 (<조선중앙통신> 2011일 7월 16일 보도사진)

살결물을 비롯해서 피부미용에 좋은 각종 기능성 화장품이 최근 북측에서 많이 생산된다는 사실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피부관리에 좋은 효과를 안겨주는 감자세수비누가 최근 북측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동영상에서는 미백크림과 미안크림이라는 제품도 보였는데, 크림 파운데이션(cream foundation)과 클렌징 크림(cleansing cream)을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 추측된다. 동영상은 여러 종류의 남성용 살결물도 보여주었다.

동영상에는 나오지 않지만, <조선신보> 보도에 따르면 만수대창작사에서 출품한 반지, 목걸이, 팔찌도 이번 상품전시회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만수대창작사는 북측에서 기량이 가장 뛰어난 최고 수준의 예술가들이 작품활동을 하는 곳인데, 그들의 예술적 감각으로 빚어낸 장신구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이번 상품전시회에 출품된 각종 당과류도 흥미롭다. 미국에서는 버터로 구운 과자를 버터 비스켓(butter biscuits)이라 하는데, 북측에서는 빠다과자라 부른다. 동영상에 나타난, 선흥식료공장에서 생산한 빠다과자는 어떤 맛일까? '은하수'라는 상표가 붙은 기름사탕은 처음 들어보는 사탕종류다. 기름으로 만든 사탕이라니, 어떤 맛일까? 미국에서는 각종 과일맛이 나게 만든 사탕을 프룻 드랍스(fruit drops)라 하는데, 북측에서는 '은하수' 상표가 붙은 과일드롭프스를 생산하고 있다. 동영상에는 케이크류도 보였는데, 북측에서 그것을 어떻게 부르는지는 동영상 화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제2차 상품전시회에 전시된 룡악산샘물공장 제품 (<조선중앙통신> 2011년 7월 16일 보도사진)


북측의 경공업 부문에서 이전과 달리 각종 화장품, 장신구, 당과가 많이 생산되는 것은, 북측의 인민생활수준이 높아졌음을 말해준다. 북측에서 만성적 식량난이 계속되고 있다는 말은, 반북수구세력이 북측의 향상된 인민생활이 남측 서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꾸며낸 헛소문이다. 
 
동영상에는 신발류도 보인다. 여성용, 남성용, 아동용 각종 신발들이 판매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아리랑'이라는 상표가 붙은 우리 전통양식 신발이 이채로움을 더해주었다. 여름철에 싣는 샌들(sandals)은 북측에서도 적당한 우리말 이름을 찾지 못했는지, 싼달이라 부른다. 보통강신발공장에서 출품한 싼달이 동영상에 보인다. 싼달 가운데서도 투명한 색감을 지닌 것을 북측에서는 사출수정싼달이라 부른다.

이번 상품전시회에는 의류, 직포류, 가전제품류, 악기류, 자전거류, 가구류, 주류, 청량음료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각종 상품들이 출품되었다. 실내에 또는 승용차 안에 향기를 품어주는 방향제도 있고, 화장실을 청소할 때 쓰는 세척제도 있다.

북측의 국영백화점에서 상품과 화폐를 교환하면 이윤이 생긴다. 그런데 남측의 재벌백화점 영업과 달리, 북측의 국영백화점 영업에서 발생한 이윤은 개인이 챙겨가는 이윤이 아니다. 그 이윤은 경공업과 상업봉사망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기술혁신과 설비확장에 재투자된다.

북측에서 생산되는 상품종류가 7개월만에 280여 종에서 1,400여 종으로 늘어났으니, 그런 추세로 경공업 발전을 밀고 나가면 2012년에는 7,000여 종으로 늘어날 것이고, 생산량도 더 많아질 것이다. 이처럼 상품종류가 늘어나고 생산이 대량화될수록 더 질좋은 상품을 다른 나라의 시장가격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싼 국정가격으로 인민들에게 공급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 남측에서는 정반대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통계청은 남측의 소비자물가가 6개월째 4% 이상 고공비행을 계속하면서 그야말로 살인적인 물가상승율을 기록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살인적인 물가상승으로 얼마나 위기감을 느꼈으면, 2011년 7월 20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긴급 관계장관 대책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물가억제 비상대책을 세우려 하겠는가.


△6개월째  4%이상 상승을 보이는 남측의 소비자물가
(<한겨레신문> 2011년 7월 1일 보도 자료)
그러나 이미 치솟아버린 물가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물가상승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는 "지난해 경기부양책으로 수요를 촉진시켜 작년에 성장률이 높아졌지만, 물가는 치솟았다. 환율로도 물가를 높이고, 초저금리로도 물가를 올려놨다. 그래 놓고 공정위가 나서 물가 잡겠다는 건 '쇼'다. 주권자들이 무식하다는 전제 하에 '이만큼 무식하니 쇼를 해도 속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3년을 보낸 것"이라고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물가정책을 질타하였다.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제가 성장할수록 전반적으로 물가가 상승하여 서민생활을 위협하지만, 북측에서는 경제가 성장할수록 물가가 하락하여 인민생활이 풍족해진다.

물가가 그처럼 정반대로 움직이는 까닭은,  두 종류의 상품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본가가 소유한 생산단위에서 자본가의 이윤추구를 위해 생산되고 자본가가 소유한 유통업체들에서 국민들에게 시장가격으로 판매는 상품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생산단위에서 인민을 위해 생산되고 사회주의상업봉사망이 인민들에게 국정가격으로 공급하는 상품이다.

둘 다 똑같이 화폐와 교환되는 상품이지만, 전자와 후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후자를 전자와 구분하기 위해 인민소비품이라 부른다. 인민소비품에는 사치품은 없고 생활필수품이 주를 이룬다. 북측에는 인민소비품이라 부르는 별난 상품이 있다. (2011년 7월 2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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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5

갈림길에 선 민주노동당의 고심과 선택

변혁과 진보 (40)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국민노총의 출현과 개별적 노조단위의 생존권투쟁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사회에는 두 개의 사회계급이 존재한다.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두 사회계급이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일방적인 지배, 구조적인 억압과 착취가 생겨나며, 사회계급관계가 폐절될 때까지 지속된다. 이처럼 어느 한 계급이 다른 한 계급으로부터 지배, 억압, 착취를 당하는 불상용적인 관계를 계급모순이라 한다.

계급모순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반드시 투쟁이 일어나지만, 그런 사회에서 일어나는 투쟁이 모두 계급투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계급모순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생존권투쟁도 일어날 수 있고, 계급투쟁도 일어날 수 있다. 개별적 노조단위의 생존권투쟁은 계급모순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그런 생존권투쟁이 노동계급의 계급투쟁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생존권투쟁은 노동계급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존권을 짓밟힌 농민, 도시빈민,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여러 사회계층들도 생존권투쟁에 나선다.

사회계급으로 단결하지 못한 노동계급이 개별적 노조단위에서 벌이는 생존권투쟁은 일상적이지만, 사회계급으로 단결한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이 일상적 생존권투쟁을 뛰어넘어 계급투쟁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 세 가지 조건이란 계급의식 획득, 계급적 단결, 노동자당 건설이다. 계급의식을 지니고 계급적으로 단결한 노동계급이 자기 정당을 건설하였을 때, 그 때 비로소 계급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투쟁은 투쟁양상이 아무리 격렬해도 생존권투쟁에 머물게 된다. 

계급모순에 의해 촉발된 개별적 노조단위의 생존권투쟁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노동계급의 비일상적 계급투쟁을 일으킬 세 가지 조건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계급적 현실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계급모순이 격화되었건만, 계급투쟁이 일어날 조건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국민노총 출현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생존권투쟁은, 오늘 우리 사회에서 계급모순이 격화되었건만, 계급투쟁이 일어날 조건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국민노총 출현은, 이익집단으로 전락한 노동계급이 자본가계급과 상생하고 반노동 친자본 정권과 협력하는 자기 배반적인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현실로 보여준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국민노총이 말하는 상생과 협력은 반노동 친자본 지배질서에 대한 자발적 복종이다.

다른 한 편,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정리해고제 및 비정규직 폐지를 요구하며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생존권투쟁은 우리 사회의 계급모순이 얼마나 격화되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지만, 그 생존권투쟁은 다른 생산현장들에서 연대투쟁으로 확대, 발전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7월 9일 평화행진을 하던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이 경찰차벽에 막혀 끝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진입하지 못했다. (민주노총 <노동과 세계> 2011년 7월 10일 보도사진)
 
각계각층 인사들이 '희망의 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생존권투쟁을 적극 지원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에 결집된 노동자들이 각기 자기 생산현장에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생존권투쟁과 함께하는 노동조합 연대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철탑 기중기 꼭대기에 올라가 목숨을 건 투쟁을 그처럼 오랫동안 벌여왔고, 그 투쟁이 사회정치적 문제로 부상하였는데도, 민주노총 지도부와 일부 노동자들만 연대투쟁에 나섰을 뿐, 다른 수많은 노동자들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국민노총 출현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생존권투쟁은, 우리 사회에서 계급모순이 격화되었건만 계급투쟁이 일어날 조건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계급투쟁 대 계급연합의 이분법적 사고

모순과 투쟁을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한 것으로 혼동하는 것이 문제다. 계급모순과 계급투쟁을 혼동하는 데서 좌파적 착각이 발생하는 것이다. 계급모순이 격화되었건만, 계급투쟁이 일어날 조건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계급투쟁에 의거한 전략과 전술을 제기하는 것은 착각이 빚어낸 좌경적 오류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오류를 좌경모험주의라 부른다.

그 반대의 경우를 우경기회주의라 부른다. 계급모순이 격화되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노동조합의 생존권투쟁을 경시하거나 외면하면서 자본가계급과의 상생을 모색하고, 몰계급적 전략과 전술을 제기하는 것이 우경기회주의다.

원래 사회변혁운동은 기본적으로 급진적 성향을 지니기 때문에 몰계급적 우경기회주의보다는 맹동적 좌경모험주의에 빠지기가 더 쉽다. 일단 맹동적 좌경모험주의에 빠지면, 계급투쟁에 의거한 맹동적인 전략과 전술이 마치 계급노선을 견지하는 것처럼 보이고, 계급투쟁에 의거하지 않는 전략과 전술은 모조리 우경기회주의의 계급연합으로 보이는 착각이 일어나게 된다.
 
계급투쟁 대 계급연합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계급노선만 주장하게 되고, 대중노선을 우경기회주의적 계급연합으로 규정하여 배척하게 된다. 그런 착각에 빠지면, 진보적 대중정당이 아니라 노동자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진보대통합당 건설과정에 계급적 원칙을 잣대로 들이대고 통합의 폭을 좁히기 마련이다.

만일 지금 우리 사회의 노동계급이 계급의식을 획득하고 계급적으로 단결하여 투쟁을 벌인다면, 민주노동당에 결집한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민주노동당을 발전적으로 해산하고 노동자당을 건설해야 할 것이며, 두 단계 사회변혁론과 진보적 민주주의강령을 폐기하고 무단계 사회변혁론과 사회주의강령을 채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상적인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의 노동계급은 계급의식을 지니지 못했고, 계급적으로 단결하여 투쟁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땅의 노동계급이 일으키는 투쟁은 개별적 노조단위의 생존권투쟁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계급모순이 우리 사회만큼 격화된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그 나라 노동계급이 일으키는 투쟁에 비해 훨씬 미약하다.

△2010년 12월 15일 정부의 재정긴축조치에 맞서 총파업을 벌이며, 
 의회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그리스 노동자들
이를테면, 우리의 경우는 각계각층 인사들이 '희망의 버스'를 타고 생존권투쟁이 벌어진 개별 생산단위로 내려가 촛불을 들지만,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에서는 노총의 지도에 따라 노동계급이 전국적 총파업으로 반노동 친자본 정권과 맞장을 뜨거나 또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수도 중심부에 집결하여 반노동 친자본 정권과 맞장을 뜬다. 촛불집회, 삼보일배, 노상단식농성으로 전개되는 이 땅의 투쟁이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투쟁보다 더 우월하고 더 위력적이라고 아무도 말할 수 없다. 


판단기준은 명백하다

민주노동당이 수행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당면과업은 진보통합당 건설이다. 진보통합당을 제대로 건설해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투쟁을 한 단계 높은 곳으로 끌어올릴 수 있고, 그로써 민주주의변혁을 전진시킬 수 있다.

여기서 나서는 문제는, 진보통합당 건설을 좌우경적 오류에 빠지지 않고 올바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진보통합당 건설은 노동자당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므로, 민주노동당은 계급노선이 아니라 대중노선을 견지하여야 한다.

그런데 좌파는 계급투쟁 대 계급연합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처럼 명백한 사실을 모르거나 또는 알면서도 자기들의 정파적 이익을 앞세우기 때문에 그처럼 명백한 사실을 부정한다. 그렇지만 좌파가 아무리 부정해도, 진보통합당 건설은 대중노선 이외의 그 어떤 다른 노선으로 추진될 수 없다.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대중노선을 견지한다는 말은 대중노선에 의거하여 연합전선을 구축한다는 뜻이다. 대중노선에 의거한 연합전선이란 진보성향의 소수정당과 정파들끼리 결합하는 이른바 독자생존과 배치되는 개념이다. 대중노선에 의거한 연합전선은,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다양한 사회정치세력들이 야권공동의 정치강령에 따라 총결집하는 폭넓은 전선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야권공동의 정치강령에 따라 결집한다는 점이다. 만일 야권공동의 정치강령에 따르지 않고,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다양한 사회정치세력들이 결집하면 '묻지마 민주대연합'이라는 우경적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다양한 사회정치세력들 가운데서도 야권공동의 정치강령을 받아들인 사회정치세력들이 총결집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이 구축하려는 대중노선에 의거한 연합전선인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대중노선을 견지하고, 야권공동의 정치강령에 따라 정당형태의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을 가리켜 진보통합당 건설이라 한다.

그렇다면 진보통합당 건설 방침이라고 할 수 있는 야권공동의 정치강령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야권공동의 정치강령을 담아놓은 것이 2011년 5월 31일에 채택된 '진보정치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 최종 합의문'이다.

대중노선에 의거하여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연석회의 합의문을 판단기준으로, 행동지침으로 중시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진보통합당 건설에 동참하는 자격은 야권공동의 정치강령을 받아들이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으로 규정되며, 따라서 연석회의 합의문을 승인하는 문제가 동참 여부를 판별하는 객관적 기준으로 된다.

널리 알려진 대로, 국민참여당은 연석회의 합의문을 공식 승인하였으나, 민주당은 야4당이 참가하는 야권통합당 건설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건설하려는 것은 진보통합당이지 야권통합당이 아니다. 진보통합당 건설은 야권통합당 건설과 다르다. 야권통합당 건설은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야4당이 '묻지마 민주대연합' 방식으로 통합하는 것이지만, 진보통합당 건설은 연석회의 합의문에 담긴 야권공동의 정치강령을 승인한 정당들이 통합하는 것이다.

판단기준은 명백하다. 연석회의 합의문을 승인한 국민참여당과는 진보통합당을 건설할 수 있으나, 그 합의문에 대해 아무런 입장표명도 하지 않고 야4당이 참가하는 야권통합당을 건설하자고 제안한 민주당과는 진보통합당을 건설할 수 없다. 민주당과는 야권통합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정치연대를 모색하여야 한다.

국민참여당은 연석회의 합의문을 승인한 것에 그치지 않고, 유시민 대표가 전농 사무실에 찾아가 노무현 정부 시기에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한 것에 대해 사과하였고,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와의 대담을 통해 노무현 정부 시기에 노동유연화 정책을 추진한 것에 대해 반성하였다. 또한 그는 <중앙일보>와의 대담을 통해 2012년 정권교체를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의 대선 불출마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공당의 대표로서 그런 태도를 보여준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7월 13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단식농성 기자회견에 참여한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 ( 민주노총 <노동과 세계> 7월 13일 보도사진)

좀 어색한 비교가 되겠지만, 손학규 대표에게 위의 세 가지 행동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인다. 그런데도 참여당이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우기면서 참여당의 진보통합당 건설 참가를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보신당과 좌파가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진보신당은 "참여당은 노선전환에 대한 분명한 입장표명과 함께 과거 신자유주의정책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조직적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는 몇 마디 말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과거와 다른 정치활동을 통해 행동으로 검증되어야 함에 따라 그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기간 동안 실천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은 종북주의 소동을 불러일으키며 분당사태를 몰고온 진보신당과 진보통합당 건설을 논의하면서 노선전환을 분명하게 표명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종북주의 소동에 대해 조직적으로 성찰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충분한 기간 동안 실천적 검증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연석회의 합의문을 승인하지 않은 진보신당이 연석회의 합의문을 승인한 국민참여당에 대해 노선전환 표명, 조직적 성찰, 실천적 검증으로 이어지는 까다로운 자격심사조건을 들이댄 것은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진보신당은 국민참여당의 진보통합당 건설 참가를 반대하기 전에 연석회의 합의문부터 승인해야 한다. 

다른 한 편, 계급투쟁 대 계급연합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좌파도 국민참여당을 배척하고 있다. 그런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있으면, 연석회의 합의문으로 채택한 야권공동의 정치강령이 객관적 판단기준으로 보이지 않고, 계급노선 관철이라는 자기들의 주관주의적 판단기준만 눈에 보이는 법이다. 그런 이분법적 사고로는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 강화한 폭넓은 진보통합당을 건설하지 못하며, 기껏해야 당의 명칭만 바꾼 '운동권 정당'에서 맴돌 것이다.

이처럼 진보신당과 좌파가 국민참여당의 진보통합당 건설 참가를 반대하는 것은 진보통합당 건설에 큼지막한 장애물을 설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설치한 장애물을 넘지 못하는 경우,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맞을 것인지를 예견하려면,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의 좌파정당들이 근래에 겪은 실패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 좌파정당들의 실패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 유럽연합 경제권이 무너지는 소리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 경제권의 붕괴는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 땅에서도 그러하지만, 그처럼 심각한 위기상황에 빠진 그 나라들에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긴축재정'이라는 이름의 빈궁화가 강요되며, 그에 맞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격렬한 투쟁이 전개된다. 

그런데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의 좌파정당들은 정작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반노동 친자본 정권에 정면대결을 선포하고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그들의 투쟁을 영도하기는커녕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습을 찾을 길 없다.

대중적 지지기반이 없는 소수정파들끼리 옹기종기 모인 좌파정당이 거대한 대중투쟁의 분출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며 아무런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지금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의 좌파정당들이 노출한 정치적 무기력증은, 정파적 분열과 정치적 고립이라는 그들 자신의 질곡이 이미 오래 전부터 예비해온 것이다.

첫째, 독자생존을 모색한 좌파정당들이 정파적 분열과 정치적 고립의 질곡에 빠진 통에, 거대한 대중투쟁이 일어났어도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 서글픈 모습을 그리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에는 좌파정당이 6개나 있다. 그 가운데서 그리스공산당과 급진좌파연합(Coalition of the Radical Left)만 원내진출에 성공하였고, 나머지 4개 좌파정당은 원내진출도 하지 못한 존재감 없는 군소정당들이다.

2009년 10월 4일에 실시된 의회선거에서 그리스공산당은 7.5%의 득표율로 300석 중 21석을 차지했고, 급진좌파연합은 4.6%의 득표율로 9석을 차지했다. 그리스 반자본주의 좌파전선(Front of the Greek Anticapitalist Left), 맑스-레닌주의노선을 따르는 그리스공산당, 마오주의노선을 따르는 그리스공산당, 트로츠키노선을 따르는 노동자혁명당, 그리스공산당 재건조직은 의회에서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한 존재감 없는 좌파정당들이다. 가뜩이나 대중적 지지기반이 허약한 좌파군소정당들이 그처럼 무슨 노선이요, 무슨 노선이요 하면서 서로 갈라졌으니 그리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만일 민주노동당이 진보통합당 건설에 실패하는 경우, 의회선거 득표율이 10%를 밑도는 그리스공산당처럼 '만년 소수당'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1918년에 창당된 이후 92년이 지난 그리스공산당이 아직도 7.5%의 득표율밖에 얻지 못한 것은, 집권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년 소수당'의 명맥이나 이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둘째, 정치연합을 실현하였는데도, 제대로 하지 못해 결국 실패로 끝난 경우가 있다. 포르투갈과 이탈리아에서 그런 실패경험을 찾아볼 수 있다. 포르투갈공산당은 녹색생태주의당(Ecologist Party "the Greens"), 사회주의 성향을 지닌 민주개입(Democratic Intervention)과 3당 정치연합을 실현하여 민주단결연합(Democratic Unity Coalition)을 결성하고, 2011년 6월 5일에 실시된 총선에 나섰다. 그러나 민주단결연합은 7.9%의 득표율로 230석 중 16석밖에 차지하지 못하였다. 실패로 끝난 것이다.

그런 실패경험은 이탈리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산주의재건당(Communist Refoundation Party), 이탈리아공산주의자당(Party of Italian Communists), 민주좌파(Democratic Left), 녹색연합(Federation of the Greens)이 2007년 12월 8일에 좌파무지개(The Left-The Rainbow)라는 4당 연합체를 결성하였다.

 2008년 4월 13일과 14일에 실시된 총선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좌파무지개는 총선에서 대패하여 3.1%의 득표율밖에 얻지 못하였다. 그 네 당이 제각기 총선에 나섰던 2006년의 득표율을 모두 합하면 10.2%였는데, 4당이 연합하여 총선에 나섰더니 득표율이 오르기는커녕 되레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좌파무지개는 총선 대패 직후인 2008년 5월 자진해산하였다.

포르투갈의 3당 연합이나 이탈리아의 4당 연합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존재감 없는 소수정당들끼리 결집해 폭좁은 정당연합체를 건설하였기 때문이다. 정당연합체를 건설한다고 하면서 소수정당들끼리만 결집하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 강화할 수 없다.

만일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을 배제하고 진보신당과 결집한 '운동권 정당'을 건설해놓고 진보통합당이라는 간판을 달아놓는다면, 포르투갈의 3당 연합이나 이탈리아의 4당 연합이 실패한 전철을 밟을 것이고, 결국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대패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이 제안한 야권통합당 건설에 기웃거리는 우경적 오류에 빠져서도 아니되고, 진보통합당 건설에 동참하려는 국민참여당을 배척하는 진보신당과 좌파의 좌경적 오류에 빠져서도 아니된다. 민주노동당은 두 단계 사회변혁의 길을 가리키는 대중노선을 견지하고, 야권공동의 정치강령에 찬동하는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총결집한 폭넓은 진보통합당을 건설해야 한다. (2011년 7월 1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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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3

캠프 있는 군대와 캠프 없는 군대

진실의 말팔매 <29>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한국군은 2009년 4월부터 사단급 이상 각 부대별로 '비전캠프(Vision Camp)'와 '그린캠프(Green Camp)'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말 명칭을 쓰지 않고, 영어명칭을 쓴 것부터가 제 정신을 잃은 짓이다.

 '비전캠프'는 병영에서 사고를 일으킬 것으로 우려되는 병사들을 바로잡아주는 품행교정기관이고, '그린캠프'는 군복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이나 자살이 우려되는 병사들에게 인성교육과 심리치료를 실시하는 심리치료기관이다.

2010년에 '비전캠프'에 입소한 병사는 7,300여 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3,500여 명은 품행교정에 성공하였고, 2,200여 명은 품행이 다소 좋아졌고, 나머지 1,100여 명은 입소 전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품행교정에 실패한 1,100여 명 병사들 가운데 600여 명은 군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았고, 그 가운데 550여 명은 결국 병영에서 퇴출당했다.

또한 '그린캠프'를 운영하기 시작한 2009년 4월부터 2011년 1월까지 그 곳에 입소한 병사는 8,459명인데, '그린캠프'에서 교육과 치료를 받고서도 개선되지 않아 군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고 병영에서 퇴출당한 병사는 871명이다.

2010년 10월 11일 병무청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장수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군복무 부적합 또는 심신장애로 병영에서 퇴출당한 현역병은 2006년 3,099명, 2007년 3,408명, 2008년 3,736명, 2009년 3,880명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육군 5개 사단 병사 9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군복무 부적합자가 10.9%에 이르는 10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군복무 부적합자로 판정을 받으면 '보호관심병사'로 분류되어 전문상담관이나 군종장교로부터 심리치료를 받게 된다.

'보호관심병사'로 분류되는 현역병 수가 약 10%로 늘어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군 지휘부는 인성검사를 더욱 강화하였다. 2009년부터는 하사 이하 병사들만 인성검사를 받았으나, 2011년 11월부터는 전군의 대위, 중위, 소위 등 위관장교들과 중사, 상사도 인성검사를 해마다 두 차례씩 받아야 한다.

주목해야 할 문제는, '보호관심병사'가 생겨나는 원인이다. 2011년 7월 4일 강화도 선두리에 있는 해병대 2사단 해안소초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으로 장병 4명이 피살되고 2명이 부상당했을 때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한국군에서는 기수열외, 구타, 가혹행위, 집단따돌림, 하극상, 금품갈취가 일상화되어 있고, 절도, 강도, 성범죄, 군사기밀 유출, 공금횡령, 군납비리가 만연되어 있다.

△한국군에 만연된 구타, 가혹행위, 집단따돌림으로 인해 각종
군기사고가  쉼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 병영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극심한 고통을 참고 견디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고통을 참고 견디지 못한 '보호관심병사'들이 선택하는 것은 자살, 총기난사, 탈영이다. 2009년 10월 1일 국방부가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이철우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9년 8월 말까지 군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 사고로 숨진 현역병 1,374명 가운데 55%에 이르는 717명이 이른바 '군기사고'로 죽었다.

 '군기사고'로 죽은 현역병 가운데 자살로 죽은 사람이 717명, 총기사고로 죽은 사람이 13명, 폭행으로 죽은 사람이 7명이었다. 또한 2011년 6월 8일 국방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석용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탈영병은 7,531명이었고, 해마다 평균 1,076명이 탈영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어느 나라에서나 군대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우리 사회에 부정부패와 폭력과 각종 범죄가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군 병영생활에서 부정부패와 폭력과 각종 범죄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면, 군사분계선 건너편에 있는 인민군 병영생활은 어떠할까? 인민군 장교로 복무하다 1999년에 남측으로 넘어간 탈북자가 쓴, 2007년 서울에서 출간된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에는 우리가 모르거나 정반대로 잘못 알고 있는 인민군 병영생활이 담겨있다.

위의 책에 따르면, 인민군 군인들 사이에서는 김 아무개 동무 또는 김 아무개 동지로 부른다고 한다. 자기와 동급이나 자기보다 아랫사람은 동무라 부르고, 자기보다 윗사람은 동지라 부른다. 아무개야 하는 식으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군인들 사이에서 고하를 막론하고 상호존중하는 기풍이 세워져야 호칭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민군이 1960년대에 영창제를 폐지하였다는 사실이다. 영창제를 폐지한 것은, 인민군대 안에서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민군 군인들 가운데 규율을 위반하거나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 어떤 처벌을 받을까?

한국군의 경우 규율위반이나 명령불이행을 저지른 군인에게는 욕설과 구타, 가혹행위와 얼차려가 가해진다. 그와 달리 인민군의 경우 잘못을 저지르거나 군사규율을 위반한 군인은 경무부에서 잠시 잡아두거나 부대 내에 적당한 곳에 사각형 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따라 정보행진을 하는 벌을 준다고 한다. 정보행진은 인민군이 군사행진을 할 때 걷는 걸음이다. 또한 명령을 따르지 않은 병사에게는 추궁과 설득, 그리고 총화시간에 상호비판을 한다. 폭력적인 처벌행위가 아니라 설득과 비판으로 바로잡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군 병영생활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 인민군 병영생활에서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위의 책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두 가지 요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첫째, 신병훈련을 마친 인민군 병사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최전방 부대에 배치되어 총을 들고 '미국놈들'과 싸우는 군인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당간부 자녀들이나 정부 고위층 자녀들도 마찬가지여서 병역을 기피하기는커녕 "전반적으로 로비를 해서라도 군에 보내려는 분위기"라고 한다. '미국놈들'과 싸우는 영예로운 임무를 수행하려는 전투정신을 지닌 군인들이 기수열외, 구타, 가혹행위, 집단따돌림, 하극상, 금품갈취를 저지를 수 없고, 절도, 강도, 성범죄, 군사기밀 유출, 공금횡령, 군납비리를 저지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희천발전소 건설에 참여한 조선인민군 청년돌격대원들이 여흥을
즐기는 모습. (<로동신문> 2011년 3월 13일 보도 사진)
 둘째, 인민군은 입대한 뒤에 3년 동안 초급병사에서 중급병사로 진급하고, 10년 동안의 군복무를 마치기 전에 분대장급인 중사 또는 상사로 진급한다는 것이다. 인민군 장교는 반드시 사병에서부터 하사관까지 거쳐야 하는데, 군복무생활이 우수한 하사관을 군관학교에 보내 장교로 양성한다. 이것은 사병생활을 오랫 동안 거치면서 군복무생활에서 모범을 보인 군인이라야 인민군 장교가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 장교들이 이끄는 부대에서 기수열외, 구타, 가혹행위, 집단따돌림, 하극상, 금품갈취를 저지를 수 없고, 절도, 강도, 성범죄, 군사기밀 유출, 공금횡령, 군납비리를 저지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위의 책에서 지적하지 않은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이 또 있다. 그것은 사회와 군대의 연관관계다. 북측 사회의 모습이 인민군대에 그대로 투영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북측 사회에서도 범죄가 발생하지만, 북측의 범죄발생율은 남측의 범죄발생율에 비하면 매우 낮다.

젊은 여성들이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며 범죄피해의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만 봐도 북측의 범죄발생율이 매우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 곳곳에서는 경찰서, 파출소, 방범초소, 방범폐쇄녹화기들이 수없이 눈에 띄지만, 평양에서 인민보안부 산하 기관을 찾기는 매우 힘들다. 방북인사들이 찍어온 각종 현장사진들이 많지만, 인민보안부 산하 기관이 찍힌 사진은 없다. 이것은 북측의 범죄발생율이 매우 낮다는 것을 말해준다. 북측에서 각종 범죄가 만연한 것처럼 묘사하는 남측 언론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북측 사회의 범죄발생율이 그처럼 매우 낮으므로, 인민군 병영생활에서 기수열외, 구타, 가혹행위, 집단따돌림, 하극상, 금품갈취 같은 현상이 생길 리 없고, 절도, 강도, 성범죄, 군사기밀 유출, 공금횡령, 군납비리 같은 범죄가 발생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지금 한국군은 병영생활에서 온갖 부정적인 현상들과 범죄를 없애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남측 사회가 서로 돕고 신뢰하는 공정한 사회로 변혁되어야 한국군 병영생활도 개선될 것이다. (2011년 7월 1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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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0

진보통합당 건설문제와 국민참여당의 정치적 변신

변혁과 진보 (39)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전환기에 요구되는 심사숙고

요즈음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심사숙고라는 말처럼 절실한 느낌을 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오는 9월까지 진보통합당을 건설해야 하는 전환기에 처해있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심사숙고다.

무엇을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말일까?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라면 누구나 고심하고 있는 것처럼,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변혁을 전진시킬 힘있는 전선을 구축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민주주의변혁을 전진시킬 힘있는 전선을 구축하는 당면과업은 지금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로 추진되고 있다.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민주주의변혁노선에 맞게 건설하면 민주주의변혁이 한 걸음 더 전진할 것이지만,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좌우경적 오류를 저지르면 민주주변혁을 한 걸음 더 전진시키기는커녕 후퇴하거나 좌절할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과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제기된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 강화한 진보통합당을 건설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새로 건설한 진보통합당이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면, 외형상 당은 건설하였으되 당건설은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당건설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판별기준은, 대중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에 달려있다.

만일 새로운 진보통합당이 민주노동당보다 더 높은 대중적 지지기반을 갖지 못한다면, 민주노동당을 강화, 발전시킬 방도를 찾으면 되는 것이지 무엇 때문에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그토록 힘들여 건설하여야 하겠는가!

대중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하지 않고,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자기 정당 또는 자기 정파의 이해관계부터 따지는 것도 옳지 않고, 또한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면 자동적으로 대중적 지지수준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옳지 않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건설하려는 새로운 진보통합당은, 대중적 지지기반을 크게 확대, 강화하였다는 뜻에서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를 앞에 붙인 진보통합당이다.


민생경제 회생과 정권교체의 결부

각계각층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받으며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려면, 대중이 가장 절실하게 여기는 당면문제에 '감동적인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난 현안을 꺼내들고 대중의 관심사와는 무관한 논쟁이나 벌이면서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려는 것은, 대중의 외면을 자초하는 패착이다.

이를테면, 북측의 후계문제는 지금 남측 대중이 절실하게 여기는 당면문제가 아닌 데도 그 문제를 당건설의 중요쟁점으로 제기하고 집요하게 논쟁하는 것은, 대중의 외면을 자초하는 패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지금 일부 세력이 북측의 후계문제를 당건설의 중요쟁점으로 제기하여 논쟁하는 것은, 북측의 후계문제에 대해 자기들과 다른 관점을 가진 세력과 맞서려는 정치공학적 행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 행동이야말로 정파 이익에 집착하여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을 난관에 빠뜨리는 옹졸한 짓이다.

그렇다면 이 땅의 대중이 가장 절실하게 여기는 당면문제는 무엇일까? 대중에게 가장 절실한 당면문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과 생활권을 보장해주는 민생경제다. 다시 말해서, 파탄으로 기울어진 민생경제를 살리는 문제가 가장 절실한 당면문제라는 말이다.

이 글을 집필하는 시각,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벌어진 치열한 투쟁은 정리해고제를 철폐하여 민생경제를 살리는 것이 얼마나 절박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7월 9일 밤 영도조선소를 향해 행진하는 정당 사회단체 대표, 노동자, 시민들.
(민주노동당 진보정치 2011년 7월 10일 보도사진)

민생경제라는 개념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배제하고 부유층과 특권층에게만 무한이익을 보장해주는 국가경제라는 개념에서 분리된다. 국가경제와 민생경제를 분리하여 생각할 때, 국가경제는 성장을 거듭하고 민생경제는 쇠락을 거듭하는 국부민빈(國富民貧)의 모순이 겉으로 드러난다.
 
새로운 진보통합당이 파탄으로 기울어진 민생경제를 살릴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면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지금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참가한 여러 사회정치세력들은 파탄으로 기울어진 민생경제를 살릴 어떤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고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능력이란 민생경제를 살릴 정치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을 뜻하는데,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참가한 여러 사회정치세력들 가운데 특히 좌파성향의 정치세력은 민생경제를 살릴 정치적 해결책을 신자유주의 극복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들의 설명법에 따르면, 신자유주의가 민생경제를 파탄시켰으므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면 민생경제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설명에서 신자유주의 극복과 민생경제 회생은 동의어로 등장한다.

그러나 주목하는 것은,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신자유주의 극복과 민생경제 회생을 등치시킨 설명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서울 한 복판에서 길거리를 지나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신자유주의가 무슨 뜻인지 설문조사를 실시한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응답자는 몇 명이나 될까?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에서 만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신자유주의는 생소한 '먹물용어'로 들린다.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민생경제 회생과 신자유주의 극복을 동일시하는 설명법에 익숙하지 못하다. 민생경제를 살리려면 신자유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설명은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이 땅의 대중은 신자유주의에 대해 반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적극 추종하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 반감을 느끼고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민생경제를 파탄시킨 책임을 신자유주의에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참가한 여러 사회정치세력들은 민생경제 파탄의 책임을 신자유주의라는 추상적 개념에 결부시켜 대중과의 소통을 힘들게 만들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을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이명박 정권이라는 투쟁대상에 결부시켜야 대중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다.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민생경제를 망쳐놓고 부유층과 특권층만 잘 살게 만드는 이명박 정권을 2012년 선거에서 갈아치워야 민생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좌파성향의 정치세력이 민생경제 회생과 신자유주의 극복을 결부시키고 있는 것에 비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민생경제 회생과 정권교체 실현을 결부시키고 있다.

정권교체로 민생경제를 살리는 것, 바로 이것이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절실한 심정으로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제기하는 정치적 요구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2012년 선거에서 이명박 정권을 갈아치우고 민생경제를 살려줄 정당이 출현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참가한 여러 사회정치세력들은 바로 그러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요구와 기대를 적극 받아들이고, 그에 기초하여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국민참여당의 민주노동당과의 거리 좁히기를 바라보는 중도좌파의 시각
 
새로운 진보통합당이 신자유주의 극복을 자기의 정치강령으로 채택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새로운 진보통합당의 투쟁목표를 신자유주의 극복이라는 진보적 개념으로 추상화할 것이 아니라 민생경제 회복이라는 대중적 요구로 구체화해야 하며, 새로운 진보통합당의 투쟁대상을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이라는 실체로 정해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참가한 여러 사회정치세력들이 반신자유주의 진보통합당의 모습이 아니라 반이명박-반한나라당 진보통합당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야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음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문제를 생각하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진보정치세력들끼리만 새로운 진보통합당을 건설할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찬성하지 않는 비진보정치세력들과도 동반하여 대중적 지지기반을 더욱 확대, 강화한 폭넓은 진보통합당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서 제기된 문제의 핵심은, 신자유주의를 찬성하지 않는 비진보정치세력을 배척할 것인가 아니면 동반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그 쟁점에 서 있는 비진보정치세력이 국민참여당이다.

그 쟁점에 대한 좌파세력의 반응은, 국민참여당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노무현 정권의 정치노선을 계승한 자유주의 정당이므로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국민참여당이 참가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국민참여당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노무현 정권의 정치노선을 계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국민참여당이 정치적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최근에 공개적으로 발언한 몇 가지 내용들은, 그 당이 노무현 정권의 정치노선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면서 진보정치세력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변화다.

이러한 정치적 변신은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참여한 여러 사회정치세력들이 환영해야 할 변화이지, "단순한 정치공학적 이유 때문에 이념적으로 거리가 너무도 먼 진보정당들에 추파를 던"지는 행위로, "정치공학적으로 잔머리를 돌"리는 행위로 비난할 문제는 전혀 아니다. 더욱이 공식직함도 달지 않은 실명을 거론하면서 "유시민이 (연석회의) 합의문에 서명하면 '정치적 사기'"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학술적 규정으로 보기는 힘들고, 옹졸하고 편협한 태도로 보인다.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이 국민참여당을 배척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의 정치성향은 좌파적이다. 민주노동당 안의 좌파성향 정파들이나 좌파성향 당원들도 국민참여당을 배척하고 있다. 그들이 그러한 태도를 취하는 까닭은, 좌파가 민주노동당 같은 중도좌파와 통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좌파가 국민참여당 같은 중도우파와 통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이념적 문제도 개재되어 있지만, 좌파가 더욱 우려하는 것은 정치공학적 문제다. 만일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통합하는 경우, 그렇게 통합된 당 안에서 좌파는 존재감 없는 당내 소수파로 되어 발언권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좌파정당이 아니라 중도좌파정당이며, 민주주의변혁을 추구하는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좌파활동가들과 다르다. 중도좌파는 좌파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좌파와 달리, 중도좌파는 좌파와 중도우파를 모두 포괄하는 폭넓은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하며, 좌파나 중도우파가 자기 쪽으로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정치적 변신을 환영, 고무해야 한다.

△국민참여당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찬성 의사를 표명하고 연석회의 합의문을 공식 승인하는 경우,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그 당의 진보통합당 건설참가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중도좌파의 시각에서 보면, 민주노동당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국민참여당의 정치적 변신이 정치공학적 문제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참여당의 변신을 비난하는 좌파성향 지식인들 및 정파의 정치적 배척이 정치공학적 문제로 되는 것이다.

국민참여당이 민주노동당처럼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면 배격 의사를 강하게 표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찬성 의사를 표명하고 연석회의 합의문을 공식 승인하는 경우,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그 당의 진보통합당 건설참가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 

중도좌파의 시각에서 보면, '신자유주의 상속의 원죄'를 질타하는 자극적인 언사를 동원하여 국민참여당을 배척하는 옹졸하고 편협한 태도를 취할 것이 아니라, 국민참여당이 신자유주의와 결별할 수 있도록 그 당과 소통하면서 진보정치의 포용력을 보여주는 것이 천만번 올바른 태도다.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참가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변신하고 있는 국민참여당은 좌파에게는 여전히 배척대상으로 보이겠지만, 민주노동당에게는 새로운 진보통합당 건설에 함께 할 전략적 동반자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한 국민참여당이 동참한 진보통합당 건설은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시야에 진정으로 새로운 진보통합당의 출현으로 인식될 수 있으며, 그로써 새로운 진보통합당은 자기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더욱 확대,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7월 1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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