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9

포성은 왜 들리지 않았을까?

[한호석의 개벽예감] (31)
자주민보 2012년 9월 26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꽃게잡이 어선 6척의 정체

2012년 9월 21일 남측 해군 고속정이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20mm 벌컨포(Vulcan)로 어선을 향해 경고사격을 하는 사건이 있었다. 남측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경고사격사건을 아래와 같이 여섯 장면으로 구성할 수 있다.

장면 1 - 꽃게잡이 어선 6척이 9월 21일 오전 11시 44분부터 연평도 서북방 앞바다에서 순차적으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0.9km까지 남하하는 “월선행위를 반복”하면서 조업하였다.

장면 2 - 남측 해군은 참수리 고속정 2척을 오후 3시쯤 ‘북방한계선’ 인근으로 북상시켜 두 차례 경고방송을 보냈다. 그런데도 꽃게잡이 어선 6척은 ‘북방한계선’ 남쪽에서 조업을 계속하였다.

장면 3 - 참수리 고속정은 오후 3시 29분과 3시 48분에 20mm 벌컨포 수십 발을 꽃게잡이 어선 6척이 있는 쪽으로 쏘아 경고사격을 하였다.

장면 4 - 경고사격을 받은 꽃게잡이 어선 6척은 오후 4시쯤 모두 ‘북방한계선’ 북쪽으로 퇴각했다.

장면 5 - 경고사격사건 당시 북측 경비정이 황해도 연안에서 순찰기동을 하고 있었는데, 남측 고속정이 꽃게잡이 어선들을 향해 경고사격을 하는 데도 사건현장 쪽으로 접근하지 않았고, 북측 해안포들도 사격준비태세를 취하지 않았다.

장면 6 -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무력충돌에 대비하여 남측 공군 전투기 F-15K가 공대지미사일과 공대공미사일을 장착하고 출격하였다.

그런데 남측 언론에 보도된 위의 여섯 장면만 살펴보면 경고사격사건의 전모와 진상을 파악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각 장면마다 ‘숨은 그림’들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나타나지 않은 ‘숨은 그림’을 찾아내야 그 사건의 전모와 진상을 파악할 수 있다.

남측 군부는 사건현장에 있었던 꽃게잡이 어선 6척이 북측 어선들이라 했고, 북측은 그 어선 6척이 중국 어선들이라 했다. 어느 쪽 주장이 진실일까? 남측 해군 고속정이 경고사격으로 퇴각시킨 꽃게잡이 어선 6척이 북측 어선인지 아니면 중국 어선인지를 판별하는 문제는 경고사격사건의 ‘숨은 그림’을 찾아내는 데서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다. 만일 그 꽃게잡이 어선 6척이 북측 어선들이라면, 북측은 자기 어선들이 남측 해군 고속정으로부터 경고사격을 받는 데도 아무런 대응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되고, 만일 그 어선 6척이 중국 어선들이라면, 남측은 중국 어선들에게 경고사격을 해놓고 북측 어선을 경고사격으로 퇴각시켰다는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하는 것은, 꽃게잡이철인 요즈음 ‘북방한계선’ 북쪽 바다에서 수많은 북측 어선과 중국 어선들이 조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연합뉴스> 2012년 9월 22일 보도는 연평도 앞바다의 ‘북방한계선’ 북쪽 해상에서 북측 어선 100여 척과 중국 어선 수백 척이 꽃게잡이를 하였다고 하였다. 물론 연평도 앞바다의 ‘북방한계선’ 남쪽 해상에서도 남측 어선들이 꽃게잡이를 하였다. <연합뉴스> 2012년 9월 21일 보도는 연평도 앞바다에서 남측 꽃게잡이 어선 30여 척이 매일 조업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거기서 꽃게잡이를 하는 북측 어선과 중국 어선 가운데는 위성항법장치(GPS)가 없는 작고 노후한 어선들도 있을 것이므로, 그런 어선들이 바다에 그어져 있지 않은 ‘북방한계선’을 수시로 넘나들며 조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동아일보> 2012년 9월 22일 보도는 북측 어선들이 ‘북방한계선’ 남쪽 640m~1.9km 해상을 들락거리며 꽃게잡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북측 어선들만이 아니라 중국 어선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북방한계선’을 넘나들며 조업하던 꽃게잡이 어선들이 9월 20일 이후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2012년 9월 23일 보도기사에서 그런 행동변화를 읽을 수 있는데, 꽃게잡이 어선들은 9월 12일 14차례, 9월 14일 13차례, 9월 15일 8차례, 9월 20일 2차례, 9월 21일 1차례, 9월 22일 1차례 ‘북방한계선’ 0.7~2.2km 정도를 넘어 남하한 것이다. ‘북방한계선’을 넘나들며 조업하던 꽃게잡이 어선들의 ‘월선행동’이 왜 9월 20일부터 갑자기 줄어든 것일까?

그 까닭은 <국방일보> 보도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국방일보> 2012년 9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해군2함대가 9월 19일부터 서해에서 유도탄고속함(PKG), 초계함(PCC), 고속정(PKM)을 동원하여 “실전을 방불케 하는”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하였다. 군함들이 실탄사격을 연습하는 동안 꽃게잡이 조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9월 20일부터 ‘북방한계선’을 넘나드는 꽃게잡이 조업이 급격히 줄어든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남측 해군이 서해에서 대함사격훈련을 실시하는 경우, 북측은 자기 어선들의 조업범위를 황해남도 해안 가까운 곳으로 제한하는 안전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런 정황을 생각하면, 경고사격사건이 있었던 9월 21일 북측 꽃게잡이 어선들의 조업범위는 매우 제한되었을 것이므로, 이전처럼 ‘북방한계선’을 넘나드는 위험한 조업은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남측 해군이 해상기동훈련을 하고 있었던 그 날 ‘북방한계선’을 넘나드는 위험한 조업을 하였던 꽃게잡이 어선 6척은 모두 중국 어선들이었던 것이다.

<연합뉴스> 2012년 9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경고사격사건이 있은 다음날인 9월 22일 오전에도 꽃게잡이 어선 1척이 ‘북방한계선’을 넘어 400m 정도 남하였는데, 남측 해군 고속정이 경고방송을 하자 북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꽃게잡이 어선은 ‘북방한계선’ 바로 북쪽에서 계속 조업을 하다가 한 차례 더 ‘북방한계선’을 잠깐 넘은 뒤 북쪽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것이다. <연합뉴스>는 그 ‘용감한’ 어선이 북측 어선인 것처럼 보도하였으나, 위에서 논한 정황을 살펴보면 그 꽃게잡이 어선도 중국 어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포성은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측 해군 고속정은 왜 중국 어선을 향해 경고사격을 한 것일까? 중국 어선이라도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하하면 경고사격으로 퇴각시키라는 상부 명령을 따라야 했기 때문에 중국 어선을 향해 경고사격을 하였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제껏 남측 해군 고속정이 연평도 앞바다에서 조업 중인 중국 꽃게잡이 어선을 경고사격으로 퇴각시켰다는 보도는 한 차례도 나온 적이 없다.

그게 아니라면, 남측 해군 고속정이 북측 어선과 중국 어선을 구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중국 어선을 북측 어선으로 오인하고 경고사격을 한 것일까? 물론 북측 어선과 중국 어선은 가까이에서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고, 남측 해군 고속정은 쌍안경으로 관측하였을 것이므로, 두 나라 어선들을 구별하지 못하였을 리는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안개에 쌓인 듯이 보이는 경고사격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면, 사건현장을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첫째, 사건 당일 중국 어선이 ‘북방한계선’을 넘은 시각은 오전 11시 44분이었는데, 남측 해군 고속정이 사건현장에 나타난 시각은 오후 3시쯤이었다. 경고사격을 하기까지, 왜 3시간이 지나도록 뜸을 들였을까?

또한 남측 해군 고속정이 사건현장에서 경고사격에 사용한 무기는 20mm 벌컨포인데, 현재 남측 해군이 운용하는 각종 함선들 가운데 20mm 벌컨포를 탑재한 함선은 배수량이 170t인 참수리 고속정밖에 없다. 참수리 고속정은 퇴역을 앞둔 낡은 기종이다. 참수리 고속정에 탑재된 20mm 벌컨포는 분당 2,700~3,300발을 쏘는 속사포인데, 사건현장에서는 그런 속사포를 불과 수십 발만 쏘고 말았다.

이처럼 남측 해군 고속정이 3시간이 지나 사건현장에 나타났을 뿐 아니라, 속사포를 쏘긴 쏘되 매우 조심하여 몇 발만 쏜 것은, 남측 해군이 북의 대응공격 가능성을 예상하고 매우 신중하게 움직였음을 말해준다.

둘째, 참수리 고속정 함미에 탑재된 20mm 벌컨포의 사거리가 4km인데, 경고사격 관행은 목표선박에서 약 1km 떨어진 해상에 착탄하도록 사격하는 것이다. 무력충돌위기가 고조된 연평도 앞바다에서 겁을 먹은 참수리 고속정은 되도록 남쪽으로 멀리 떨어져야 안전하기 때문에, 중국 어선으로부터 벌컨포 최장사거리(4km)를 유지하였을 것이므로, 중국 어선 6척의 조업현장에서 남쪽으로 적어도 5km나 멀리 떨어진 해상에서 20mm 벌컨포를 쏘는 경고사격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참수리 고속정에서 관측장비로 사용하는 쌍안경(KM20)의 관측거리는 4km다. 남측 해군 고속정이 4km밖에 있는 목표물을 관측하는 경우 정확히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데,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남측 해군 고속정은 사건 현장에서 목표물로부터 5km나 떨어진 해상에 있었으니 북측 어선인지 중국 어선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던 것이 분명하다.

넷째, <연합뉴스> 2012년 9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취재기자가 만난 연평도 주민은 남측 해군 고속정이 쏘았다는 20mm 벌컨포 포성을 전혀 듣지 못했노라고 말했다. 연평도 주민이 벌컨포 포성을 듣지 못했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이것은 남측 해군 고속정이 20mm 벌컨포를 매우 먼 거리에서 몇 발만 살짝 쏘았음을 말해준다. 그러했으니 연평도 주민들이 포성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다섯째, 사건현장에 뒤늦게 나타난 남측 해군 고속정은 오후 3시 29분에 1차 경고사격을 하였고, 19분이 지난 오후 3시 48분에 2차 경고사격을 하였다. 경고사격을 왜 두 차례나 하였을까? 남측 해군 고속정은 너무 먼 거리에서 벌컨포 몇 발을 살짝 쏘았으므로 조업에 열중하던 중국 어선 6척은 연평도 주민처럼 포성을 듣지 못하였다. 그래서 남측 해군 고속정은 1차 경고사격에도 퇴각하지 않는 중국 어선들을 향해 19분 뒤에 또 다시 경고사격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군 해군2함대는 ‘불꽃’을 어디에 떨구었을까?

<국방일보> 2012년 9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2012년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남측 해군2함대가 해상기동훈련을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실시하였다고 한다. 보도기사에서는 해상기동훈련이라고 표현되었지만 대북해상전연습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위의 보도기사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한국군 해군2함대는 인민군 항공기를 가상한 예인기를 표적으로 삼고 대공사격연습을 하였으며, 인민군 함선을 가상한 예인정을 표적으로 삼고 대함사격연습을 하였고, “함정, 항공기, 도서부대 전력이 유기적인 합동작전을 벌여 가상의 인민군 수상함과 공기부양정을 격멸”하는 합동공격작전까지 연습하였기 때문이다.

이 보도기사만 읽어보면, 한국군 해군2함대는 무력충돌위험이 커진 분쟁수역에서 매우 용감하게 대북해상전연습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정말 그처럼 용감하게 대북해상전연습을 강행한 것일까?

여기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2012년 8월 16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연평도가 손에 잡힐 듯이 바라다보이는 작은 섬인 무도에 소형선박을 타고 가서 최전선 군부대를 시찰하는 중에 “적들이 감히 서툰 불질을 해대며 우리의 령토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떨군다면 그것을 서남전선의 국부전쟁으로 그치지 말고 조국통일을 위한 성전으로 이어가라. 만약 침략자들이 전쟁을 강요한다면 서해를 적들의 최후 무덤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였다. 이 명령은 무도 방어대에게만 내린 명령이 아니라 서남지구(남에서는 서북도서)에 주둔하는 모든 인민군부대들에게 내린 명령이다.

<국방일보> 보도기사는 한국군 해군2함대가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실탄을 사격하는 대북해상전연습을 강행하였다는데, 어째서 인민군은 아무런 대응행동도 취하지 않았을까? 한국군 해군2함대의 대북해상전연습에 대해 인민군이 취한 대응행동은, 2012년 9월 22일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가 보도자료를 내놓은 것이 전부다. 2012년 2월 20일 한국군 해군2함대가 서해 5도 주변수역에서 대북해상전연습을 강행하기 바로 전 날, 인민군 전선서부지구사령부는 남측에게 공개통고장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사전에 공개통고장을 보내지도 않고 사후에 보도문만 발표하고 넘어간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만일 한국군 해군2함대가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떨군다면 그것을 서남전선의 국부전쟁으로 그치지 말고 조국통일을 위한 성전으로 이어가라”고 인민군에게 명령하였는데,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가 경고문도 아니고 보도문으로 급을 낮춰 느슨하게 대응하였다면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집행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이라면 불 속이나 얼음바다에도 뛰어들 만큼 충직하다고 알려진 인민군이 이번에는 왜 그처럼 이례적으로 느슨한 대응행동을 취한 것일까?

첫째, 남측 해군 고속정은 북측 어선이 아니라 중국 어선을 상대로 멀리서 벌컨포를 몇 발 쏘며 맥빠진 경고사격을 하였기 때문에, 인민군이 그처럼 느슨한 대응행동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는 한국군 해군 고속정이 왜 벌컨포를 멀리서 겨우 수십 발밖에 쏘지 못하였는지 간파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 보도문에는 “다른 나라 어선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나라가 두려워 그것을 우리 어선이라고 떠들어대는 괴뢰들의 추태가 얼마나 비렬한가” 라는 조롱조의 문장이 들어간 것이다.

둘째, 위에 인용한 <국방일보> 보도기사는 한국군 해군2함대가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대북해상전연습을 강행하였다고 보도하였는데, ‘인근’이라는 모호한 표현만 가지고서는 어디쯤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한국군 해군2함대가 대북해상전연습을 벌인 위치를 좌표로 확인할 길은 없지만, 연평도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연합뉴스> 2012년 9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취재기자가 만난 연평도 주민은 “어제도 총소리가 한 번 들렸던 것 같은 데 오늘은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말하였다. 이 말은 9월 20일에 총소리가 한 번 들렸던 것 같고, 9월 21일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와 달리, 2009년 11월 10일 대청도와 소청도의 주민들은 남측 해군과 북측 해군이 대청도 동쪽 10km 해상에서 2분 동안 함포사격을 주고 받을 때 “천둥 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고 취재기자에게 말했는데, 어째서 이번에는 천둥소리는커녕 총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미적지근하게 말하였을까?

포성이 나지 않은 소음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한국군 해군2함대가 함포를 쏘며 실탄사격연습을 하였다면 연평도 주민이 포성을 듣지 못하였을 리 없다. 실탄사격연습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한 것처럼 남측 군부가 언론에 거짓말 제보를 하였을 리는 없으므로, 연평도에서 포성이 총성처럼 들리는 아주 먼 거리에서 실탄사격연습을 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연평도 주민의 귀에 포성이 총성처럼 들릴 만큼 먼 거리라면, 연평도에서 남쪽으로 얼마나 멀리 떨어진 해상에서 실탄사격연습을 하였던 것일까? 그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실탄사격연습을 하였으므로,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는 그 실탄사격연습을 레이더 화면으로 지켜보았을 뿐 북측 관할수역에는 “단 한 점의 불꽃”도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군사적 대응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2009년 5월까지만 해도 남측 해군은 1,200t급 초계함 4척을 소연평도 해상 남쪽 3.2km까지 바짝 북상시켜 전진배치하며 북을 자극하였지만, 얼마 전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서해를 적들의 최후 무덤으로 만들라”고 인민군 서남지구사령부에 명령한 이후에는 남측 함선들이 그렇게 북쪽 가까이 북상하지 못한다.


6개 요격목표 동시에 격추하는 인민군 지대공미사일

경고사격사건이 벌어졌을 때, 남측 군부는 북과의 무력충돌에 대비하여 공대지미사일과 공대공미사일을 탑재한 F-15K 전투기를 출격시켰다고 언론에 밝혔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경고사격사건이 일어난 시각, 한국군 F-15K 전투기는 어느 선까지 북상하여 비행하고 있었을까?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F-15K 전투기가 비행할 수 있는 북방한계선은, 황해남도 남단에 배치된 인민군 지대공미사일을 피할 수 있는 회피기동한계선과 일치한다. F-15K 전투기가 인민군 지대공미사일 사정권 안으로 ‘겁도 없이’ 들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연합뉴스> 2011년 4월 6일 보도기사가 지적하였듯이, F-15K 전투기를 비롯한 한국군이 운용하는 모든 전투기, 수송기, 작전헬기들은 중적외선 섬광탄을 탑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민군 반항공부대가 중적외선 추적기능을 가진 신형 지대공미사일을 쏘면 그대로 격추당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남측 군부는 지금 중적외선 섬광탄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개발사업이 몇 해 뒤에 완료되어 양산체계로 들어갈 수 있는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제인스 정보집단(Jane's Informmation Group) 2008년 4월 2일 자료에 따르면, 북은 서방세계에서 S-200이라 불리는 장거리-중고도 지대공미사일 20기를 미얀마에 수출하였다. 북이 S-200 지대공미사일을 해외에 수출한 것은, 북이 소련산 S-200 지대공미사일을 자체 기술로 개량한 독자적인 S-200급 지대공미사일을 대량생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원래 소련산 S-200 지대공미사일은 사거리 300km, 요격고도 40km이므로, 북이 자체 기술로 개량하여 생산하는 S-200급 지대공미사일은 그보다 좀 더 성능이 좋을 것이다. 인민군 반항공부대에게 S-200급 지대공미사일만 있어도, 한국군 전투기들은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비행해야 한다.

북이 개량한 S-200급 지대공미사일은 세계 최장 요격거리를 자랑하지만, 동시요격기능은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북이 새로 개발한 것이 동시요격기능을 가진 신형 지대공미사일이다. 북에서는 ‘주체식 요격미사일종합체’라 부르고, 서방세계에서는 ‘KN-6’이라 부르는 S-300급 신형 지대공미사일은 사거리 150km, 요격고도 27km이며, 12개 표적을 동시에 추적하고, 6개 요격대상을 동시에 격추하는 최첨단 지대공미사일이다. 북이 2010년 10월 10일 인민군 열병행진에 처음 등장시킨 S-300급 신형 지대공미사일(주체식 요격미사일종합체)은 S-200급 대공미사일보다 사거리와 요격고도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 대신 강력한 동시요격기능을 갖추었다.

한국군 전투기를 주눅 들게 만드는 인민군 반항공부대의 전력은 지대공미사일에 한정되지 않는다. <세계일보> 2012년 9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 반항공부대는 한국군 무기체계를 완전히 무력화시킬 위치확인체계 기만기술(GPS area-mapping deceiving technology)을 운용하고 있는데, 위치확인체계 기만기술이란 종래의 위치확인체계 교란기술(GPS jamming technology)보다 한 급 높은 첨단기술이다. 이 보도기사에 따르면, 인민군 전자전 차량에 탑재된 위치확인체계 기만장비는 강력한 기만신호전파를 남측 전역에 방출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강력한 인민군의 전자전 능력은 비행 중인 한국군 전투기를 엉터리 위치정보로 기만하고, 위치확인체계로 유도되는 공대지 미사일의 정밀타격기능을 무력화시킨다.

인민군 반항공작전능력에 관한 위의 여러 정보를 살펴보면, 경고사격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국군 F-15K 전투기는 연평도 상공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연평도에서 남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진 충청남도 보령 앞바다 상공을 맴돌았던 것으로 보인다.

2012년 9월 22일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는 보도문에서 “서남전선사령부는 이미 적들이 움쩍하기만 하면 서해 바다를 멸적의 함정으로, 서남전선작전을 조국통일대전으로 이어놓을 데 대한 최고사령부의 작전명령을 받은 상태에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계를 모르는 우리 전선군부대들의 강력한 타격행동 뿐”이라고 한국군을 위협하였다.

김정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조국통일대전 작전계획서’를 최종 결재하고, 최후 결전 준비를 완료하고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라는 지시를 내렸으므로,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의 위와 같은 위협은 말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서 한국군이 실탄을 사격하는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인민군의 공격이 무서워 ‘북방한계선’ 근처에는 올라가지도 못하는 한국군은, 북을 자극하는 무모한 대북해상전연습을 감행할 게 아니라 일본의 독도침탈책동을 확실하게 저지할 대일해상전연습에 열중해야 할 것이다.(2012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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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8

진보정치와 사회변혁 전진시킬 결전의 10월을 맞으며


변혁과 진보 (9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5.2%에 비낀 진보정치의 희망을 보는가?

2012년 9월 25일 주한미국대사관이 길 건너편에 바라다보이는 광화문광장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가 대선출마선언식을 가졌다. 대선출마를 선언하는 그녀의 뒤로 주한미국대사관의 커다란 미국 국기가 내걸려 있었다.
 
 과거 대선시기에도 진보정당 후보가 대선출마선언식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이정희처럼 미국대사관을 등지고 대선출마를 선언한 후보는 없었다. 대선출마자가 선언식에서 미국대사관을 등진 것은, 미국의 발 아래 굴종해온 더러운 '하수인 정치'를 끝장내려는 강한 청산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 2012년 9월 25일 주한미국대사관을 등지고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 (<민중의 소리>사진)
 
확성기에서 울려나온 이정희의 육성은 차분하였으나, 그녀의 대선출마선언은 좀스러운 사회개량의 탁류를 거슬러 변혁적 시대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울림이었다.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정치의 길을 개척하는 자주선언으로, 악정만을 거듭해온 수구우파정권을 영영 사라지게 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진보선언으로, 치욕과 고통으로 얽룩진 저 낡은 분단체제를 허물고 21세기 누리에 빛날 통일조국을 세우려는 통일선언으로 옹골차게 영근 자주-진보-통일의 변혁적 시대정신이 3부 화음처럼 강렬하게 울려나온 것이다.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다시 치켜든 통합진보당 깃발은 그 강렬한 울림에 한껏 설레며 9월의 서울 하늘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 이튿날인 9월 26일에 대선주자 지지율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박근혜 36.0%, 안철수 31.9%, 문재인 20.3%, 이정희 5.2%로 나왔다. 대선출마를 선언하기 전에 3.8% 수준에 머물렀던 이정희 지지율은 대선출마를 선언하자마자 5.2%로 올라간 것이다.
 
집당탈당의 풍파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밀려들고, 종북모략의 광풍이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 휘몰아친 혹독한 시련의 시기, 그 풍파와 광풍을 눈물겨운 투쟁으로 헤쳐온 통합진보당에게 5.2%의 지지율은 참으로 소중하다.
 
비록 10%에도 미치지 못하건만, 진보정치를 열망하는 각계각층 대중들이 안겨준 5.2%의 대선주자 지지율을 가슴에 받아안고 통합진보당은 다시 일어선 것이다.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으로 열어갈 자주의 길을 향해, 민중의 미래를 향해, 그리고 평화통일을 열망하는 조국의 미래를 향해 신들메를 매고 다시 떠나야 할 그 엄숙한 출발선에 다시 나선 것이다.

 
대선판에 뛰어든 무소속 제3후보, 그의 씁쓸한 운명

이정희를 제외하고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 3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이 9월 25일에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문재인 20.4%, 안철수 32.0%, 박근혜 36.4%로 나타났다. 그런데 문재인-박근혜 양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은 문재인 48.3%, 박근혜 43.3%였고, 문재인-안철수 양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은 문재인 36.9%, 안철수 42.1%였다.
 
문재인-박근혜 양자구도에서 근소한 차이로 박근혜를 살짝 앞선 문재인은, 안철수와 경쟁하는 양자구도에서는 안철수에게 상당히 큰 차이로 밀렸다. 이것은 안철수가 대선판에 뛰어들면서 문재인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안철수가 대선판에 뛰어든 것이 문재인에게 '불리한 요인'으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박근혜 지지층과 안철수 지지층이 서로 겹치는 부분보다 문재인 지지층과 안철수 지지층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국면 내내 안철수는 문재인 지지층을 자기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기며 문재인을 낙선위험에 몰아넣을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가 무소속 제3후보로 대선판에 뛰어들어 3자구도가 형성됨으로써 문재인의 대선가도에는 그처럼 커다란 난관이 조성된 것이다.
 
무소속 제3후보의 등장으로 대선판세가 야권후보에게 매우 불리하게 변동된 선행사례는 1997년 12월 18일에 실시된 제15대 대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선을 석 달 앞둔 1997년 9월 18일 민주당을 뛰쳐나간 이인제가 무소속 제3후보로 대선판에 뛰어들자, 3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은 김대중 29.7%, 이회창 15.6%, 이인제 24.0%였다. 11월 10일 이회창-조순 후보단일화가 실현되자 이회창 지지율이 급상승하여 김대중을 맹추격하기 시작했는데, 11월 25일에 나온 지지율은 김대중 32.1%, 이회창 31.5%, 이인제 19.9%였다.
 
결국 제15대 대선은 김대중 40.3%, 이회창 38.75%, 이인제 19.2%의 득표율로 막을 내렸다. 김대중이 1.55% 포인트밖에 되지 않는 근소한 표차로 이회창을 간신히 이긴 것이다. 만일 이인제가 김대중의 표밭을 갉아먹지 않았다면 김대중은 여유있게 이겼을 터인데, 이인제가 무소속 제3후보로 대선판에 뛰어드는 바람에 자칫 정권교체를 실현하지 못할 뻔한 위험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2002년 12월 18일에 있었던 제16대 대선에서도 매우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었다. 2002년 5월 2일 여야 대선후보가 각각 확정되어 양자구도가 형성되었을 때, 지지율은 노무현 43.0%, 이회창 32.9%로 나왔다. 그런데 10월 8일 정몽준이 무소속 제3후보로 대선판에 뛰어들자, 3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은 노무현 14.7%, 이회창 31.0%, 정몽준 27.1%로 요동치며 뒤집혔다.
 
11월 26일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로 대선판도는 다시 양자구도로 되돌아갔고, 지지율은 노무현 42.2%, 이회창 35.2%로 나왔다. 결국 제16대 대선은 노무현 48.9%, 이회창 46.6%의 득표율로 막을 내렸다. 노무현이 2.3% 포인트라는 근소한 표차로 이회창을 간신히 이긴 것이다. 만일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가 실현되지 못하였다면, 노무현은 이회창을 이기지 못하였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차례 대선경험이 주는 교훈은, 무소속 제3후보의 등장이 야권후보에게 매우 불리한 판세를 조성한다는 것과 후보단일화가 매우 중요한 승리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교훈을 생각하면, 올해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해 문재인과 안철수를 후보단일화로 끌어가야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는 실현될 수 있을까?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는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 두 후보가 단일화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후보단일화가 매우 힘들어 보이는 것이다.
 
첫째, 지난 시기 이회창-조순 후보단일화와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는, 당시 낮은 지지율밖에 얻지 못한 후보들 가운데 어느 한 쪽이 대선완주를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 안철수에게 쏠리는 지지율이 매우 높다. 안철수에게 쏠린 높은 지지율이 그의 대권야심을 계속 자극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질 가능성은 없어 보이니, 그는 문재인과 후보단일화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자기가 박근혜를 이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젖은 안철수에게서 대선완주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그러나 정당의 안받침을 받지 못하고 정치경험마저 전혀 없고 '반짝 인기'에만 의존하는 무소속 후보 안철수가 대선에서 이길 가망은 없어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의 역할은 문재인의 표밭을 갉아먹음으로써 결국 박근혜를 당선시키는 '박근혜 간접지원'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지금 주한미국대사관과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는 골프나 치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이전 대선국면들에서 줄곧 그러했던 것처럼 올해도 본국으로부터 비밀공작역량을 대폭 지원받아 대선공작을 미친 듯이 벌이고 있을 것이다.
 
이 땅의 대선에 관련된 '위킬릭스' 비밀전문들을 분석해보면, 2007년 대선 때도 미국은 이명박을 당선시키기 위한 대선공작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미관계의 비밀스런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믿기 힘들겠지만, 미국의 대선공작이야말로 대미예속의 추악한 단면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올해 대선에서 미국의 비밀공작목표는 박근혜를 당선시켜 새누리당의 집권연장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미국이 새누리당의 집권연장을 보장해주려는 까닭은, 지난 시기 노무현 정권과 마찰을 겪었던 씁쓸한 경험을 또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미국 고위관리들의 두뇌에서 출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지난 시기 미국에게 골치 아팠던 노무현의 '직계'이고, 지금 문재인에게 줄을 대고 있는 정계인맥도 이전에 노무현을 둘러싸고 있었던 정계인맥과 매우 유사하여 미국에게는 좀 골치가 아픈 인맥이다. 만일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이 당선되면, 내년에 제2노무현 정권이 출현하여 한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자기들과 마찰을 겪을 수 있다는 껄끄러운 예감, 바로 이것이 미국 고위관리들이 문재인에게서 느끼는 거부감이다. 바로 그러한 사연이 있기 때문에, 미국은 문재인을 떨구고 박근혜를 당선시키려는 대선공작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만일 통합진보당이 집단탈당과 종북모략을 겪지 않았더라면, 통합진보당 대선후보 이정희가 대선판세를 좌우할 제3후보로 당당하게 등장할 판이었다. 만일 이정희가 제3후보로 등장하였더라면, 비록 지금 안철수에게 쏠리는 지지율에는 미치지 못하였더라도, 적지 않은 지지율을 얻었을 것으며, 따라서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강력한 야권연대를 실현하고 정권을 교체하는 대선경로는 미국의 대선공작으로도 막을 수 없는 필연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정희가 서려고 하였던 제3후보 자리는 집단탈당과 종북모략으로 결국 안철수에게 넘어가고 말았고, 통합진보당 대선후보는 제4후보로 밀려나고 말았다.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전진시킬 결전의 10월을 맞으며

이정희가 대선출마선언식에서 천명한 것처럼,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집권연장기도를 저지하고 정권교체를 실현하려면, 통합진보당은 제4후보로 밀려난 이정희를 제3후보로 올려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으로서는 매우 어려워 보이는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는 강력한 여론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강력한 여론압박만이 그 두 후보를 단일화로 끌어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는 문재인으로 단일화된다는 뜻이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가 실현되어야, 통합진보당 대선후보가 제3후보로 올라서면서 대선구도를 문재인-박근혜-이정희 3자구도로 재편할 수 있고, 그 3자구도에서 이정희의 정치적 역할을 극대화하여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이는 야권연대를 기어이 실현할 수 있고, 전략적 야권연대로 정권을 교체하여 진보정치를 밀고 나갈 전진의 교두보를 사회변혁의 앞길에 부설할 수 있다.
 
만일 통합진보당이 올해 대선국면을 이런 시나리오대로 펼쳐나갈 수만 있다면, 정녕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통합진보당은 집단탈당과 종북모략으로 추락한 지지율을 만회하면서 새누리당의 집권연장기도를 저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국의 대선공작을 전면적으로 파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대승리가 아닌가!
 
이러한 대승리 시나리오를 실현하려면, 이정희의 지지율을 5%선에서 10%선으로 무조건 끌어올려야 한다. 지지율 상승을 위해 통합진보당에 주어진 시간은 참 아쉽게도 10월 한 달 뿐이다. 10월 한 달 동안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노동자, 농민, 서민의 생산현장과 생활현장 곳곳에 널리 파고 들어가 목이 쉬도록 설득하며 통합진보당 대선후보에게로 민심을 돌려야 할 것이다. 통합진보당 12만 당원이 산도 떠옮기고 바다도 메우리라는 결심과 의지를 안고 각지 현장 속으로 뛰어들면, 무슨 일을 해내지 못하겠는가.
  
새누리당의 집권연장기도를 단호히 저지하고, 미국의 대선공작을 전면 파탄시키고, 정권교체를 반드시 실현하여, 사회변혁의 앞길에 진보적 정권교체의 전략적 교두보를 부설하는 참으로 값진 투쟁, 바로 그런 결전이 벌어질 10월이 통합진보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다가왔다. (2012년 9월 2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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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6

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 어디까지 왔나?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 (228)
통일뉴스 2012년 09월 24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MBC> 오보에 나타난 이면의 진실

2012년 9월 11일 남측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텔레비전방송 <MBC> 보도는 오보였다. 보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우리 군은 북한이 장사정포 등으로 서울 등 수도권에 선제공격을 당한 뒤에야 반격에 나서는 방어적인 군사작전원칙을 갖고 있었”지만, “이번 연습(8월 20일부터 31일까지 실시한 ‘을지 프리덤 가디언’을 뜻함 - 옮긴이) 때 이른바 ‘선제적 자위권’ 개념을 처음으로 작전에 적용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명백한 오보다.

한반도 군사정세를 아는 군사전문가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미국의 대북전쟁전략은 한국군을 참가시킨 선제공격으로 대북전쟁을 도발하여 공군력과 해군력으로 인민군을 제압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2000년대에 도발한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은 그런 식의 선제공격으로 개전되었다.
 
실제로 미국은 공군력과 해군력을 동원하여 불의의 선제공격을 가하는 대북무력침공 시나리오를 준비해두었다. 미국군이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감행하는 각종 대북전쟁연습은 인민군의 선제공격을 받은 뒤에 반격하는 방어연습이 아니라 인민군이 선제공격을 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는 공격연습이다. 그런데 <MBC> 보도는 마치 대북방어를 연습해오던 미국군과 한국군이 얼마 전 실시한 ‘을지 프리덤 가디언’에서 사상 처음으로 대북선제공격을 연습한 것처럼 오보한 것이다.

<MBC>의 오보는 거기서 그친 게 아니었다. 보도는 미국이 얼마 전 실시한 ‘을지 프리덤 가디언’에 적용된 대북전쟁연습 시나리오를 간략히 언급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이 서해 5도 지역에 포격도발을 하고 섬을 강점하는 국지도발상황”이 발생하고, 그와 동시에 “북한군이 전방으로 집단이동하는 상황까지 포착”되자, 그제서야 “전면전 징후가 상당하다고 판단한 한미연합사는 작전개시시간 ‘H-hour’를 선포했고, 곧바로 포병화력 등을 동원해 북한의 전방부대 등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미국이 정말로 그런 엉터리 대북전쟁연습 시나리오에 따라 ‘을지 프리덤 가디언’을 실시하였다면, 그것은 전쟁소설보다 더 저급한 전쟁만화처럼 보인다.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MBC>가 보도한 엉터리 대북전쟁연습 시나리오에 나와있는 것처럼, 인민군이 연평도와 백령도를 집중포격하고, 특수전 병력을 동원하여 그 두 섬을 점령하고, 인민군 주력부대가 전면전을 벌이기 위해 후방에서 전방으로 이동하는 식의 시차별 전쟁상황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전쟁만화의 몇 개 장면들이다. 북측 자료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인민군의 ‘조국통일대전’은 불의의 시각에 불의의 장소에서 미국이 상상하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선제공격으로 개시되는 속결전으로 전개될 것이다.
 
예컨대 2012년 4월 23일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발표한 대남통고문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북의 ‘조국통일대전’은 “일단 개시되면 3~4분, 아니 그보다 더 짧은 순간에 지금까지 있어본 적이 없는 특이한 수단과 우리 식의 방법으로” 전개되어 “불이 번쩍나게 초토화해버리는”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속결전이라는 것이다.

<MBC> 보도에 나온 전쟁만화 같은 대북전쟁연습설은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지만, 미국군이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대북선제공격을 연습하였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남측 언론에 일부러 흘려주어 보도하게 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껏 미국은 대북선제공격을 줄곧 연습해오면서도 그 연습이 “방어적 성격의 군사훈련”이라는 거짓말을 언론을 통해 유포해왔는데, 이번에 사상 처음으로 대북선제공격을 연습하였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것이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지난 8월 말에 실시된 ‘을지 프리덤 가디언’에서 대북선제공격을 연습하였다는 민감한 군사정보는 남측 정부 고위관계자가 제공하여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실제로 그처럼 민감한 군사정보를 언론에 흘려준 이례적인 행동은 남측 정부 고위관계자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이 고조되어 전례 없이 긴장된 현 상황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미국이 기획하고, 주도하는 대북전쟁연습과 관련하여, 남측 정부 고위관계자가 선제공격을 언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남측 정부가 대북전쟁연습에 관한 정보를 제멋대로 언론에 흘려줄 만큼 대미관계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갖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직 미국 군부만이 대북전쟁연습의 성격에 관한 민감한 정보를 언론에 흘려줄 수 있다.

 
지난 8월 이후 북측 외무성 대변인의 논조가 바뀐 까닭
 
‘을지 프리덤 가디언’에서 대북선제공격을 연습하였다는 민감한 정보를 미국 군부가 남측 정부 고위관계자의 입을 빌어 언론에 흘려준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그들이 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의 ‘조국통일대전’이 미국과 남측과 일본에 대한 불의의 선제공격으로 개시되리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미국 군부는 자기들의 대북선제공격능력을 드러내는 일종의 대북심리전술을 동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정황을 뒤집어보면, 북의 ‘조국통일대전’이 위협발언을 넘어 실제행동으로 준비되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오늘 북미관계는 전례 없는 전쟁위기상황으로 접어든 것이다.

전쟁위기상황으로 접어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별하는 근거는 전쟁징후인데, 전쟁징후에 관한 정보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극비로 논의되기 때문에 언론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언론보도만 읽고 있는 일반대중은 전쟁위기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만 아는 전쟁징후를 구체적으로 논할 수는 없지만, 언론보도를 정밀분석하여 한반도 전쟁징후에 관한 유추해석을 내릴 수는 있다. 그런 유추해석을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한반도 전쟁징후는 북과 미국의 적대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북의 언론에 보도된 대미발언을 정밀분석할 필요가 있다. 북측 언론보도를 주시하면, 최근 북측 외무성의 대미발언이 전례 없이 자주 보도된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내역을 추적하면 이렇다.

2012년 7월 31일 북측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에서 “최근 미국의 고위당국자들이 꼬리를 물고 나서서 우리를 집중적으로 걸고드는 정치적 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고 지적하고, “미국의 적대시정책에는 핵억제력 강화로 대처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확고부동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이런 담화내용은 표현방식만 조금 다를 뿐 이전에도 언론에 나온 적이 있으므로 ‘일상적’ 논조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대미관계 발언에서 그런 논조를 폈다.

그런데 지난 8월부터 외무성 대변인의 논조가 달라졌다. 이를테면, 8월 20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만일 미국이 구태의연한 적대시정책에 계속 매여달린다면 차례질 것은 비참한 종말 뿐이다. 침략자들의 선불질에 섬멸적 반타격을 안기고 조국통일대전으로 이어나가려는 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확고한 의지”라고 밝혔고, 9월 7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는 “남조선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려면 우리의 전면전쟁맛을 한번 볼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누가 봐도 이런 논조는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이 아니라 국방위원회 대변인의 발언이나 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의 발언처럼 매우 강경한 전쟁경고인 것이다.

북측 외무성 대변인의 논조가 8월부터 ‘조국통일대전’을 직접 언급하는 전쟁경고로 전환된 것은 2012년 7월 29일 북측 국방위원회가 발표한 대변인 성명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북측 국방위원회는 대변인 성명에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과 우리에 대한 비렬한 국가정치테로음모를 선군의 위력으로 짓부셔버릴 것”이라고 밝히고, (미국이) “우리의 존엄을 건드리는 국가정치테로와 크고 작은 침략전쟁소동에 집요하게 매여달리면서 미국 본토를 비롯하여 멀리 떨어져있는 그 본거지들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쟁경고를 보냈다.

지난 8월 이후 외무성 대변인 담화와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북이 미국과 상호연락해오던 것마저 중단하고 ‘조국통일대전’을 준비하였다고 보는 유추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국통일대전 작전계획서’를 최종 결재하였음을 밝혔고, 야전군부대를 시찰할 때 야전지휘관들에게 “조국통일대전 준비에 힘을 넣으라”고 지시하였을 뿐 아니라, 9월 1일 인민군 군악단 연주회를 지도하는 자리에서도 “앞으로 조국통일대전의 날이 오면 인민군 군악단의 혁명군악을 높이 울리며 진격해나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전쟁결심과 전쟁방도
 
북측 외무성 대변인 담화와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다시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측 최고영도자의 군부대 시찰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북측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2012년 1월부터 8월까지 8개월 동안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인민군 군부대를 33차례 시찰하였다. 시찰대상은 육군 21차례, 공군 6차례, 해군 5차례, 전략로케트군 1차례였다. 군부대 시찰만이 아니라, 3월 15일에는 육해공군 합동타격훈련을 지도하였다.

북측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군부대 시찰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없으나, 비공개 군부대 시찰까지 더하면 40차례 이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1월부터 8월에 이르는 기간에 매주 한 차례 이상 군부대 시찰을 계속해온 것이다. 이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매우 정력적으로 군부대를 시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처럼 군부대를 정력적으로 시찰하는 것은 단지 인민군 무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조국통일대전’ 준비태세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국통일대전 작전계획서’를 최종 결재하고 인민군 야전군부대들이 전투준비를 제대로 하였는지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것이다.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조국통일대전 작전계획서’를 최종 결재하고 야전군부대들의 전투준비상황을 집중적으로 점검한 것은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말해주는 징후로 해석된다. 이보다 더 명백한 전쟁징후가 또 어디 있겠는가.

일반적으로 전쟁징후는 병력과 무장장비를 이동하여 전선에 배치하고 작전지휘체계의 통신연락이 급증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지금 북에서 그런 전쟁징후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착오다. 인민군은 전선에 공격대형으로 이미 배치되어 최고사령관의 공격명령을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병력과 무장장비를 전선으로 이동하여 배치할 필요가 없으며, 공격명령을 내리면 언제든지 현재 위치에서 즉각 전투에 돌입하게 된다. 또한 인민군 작전지휘체계의 통신연락은 2000년부터 무선이 아니라 빛섬유까벨(남에서는 광섬유 케이블)을 통해서 하거나 연락병을 파견하기 때문에 주한미국군과 한국군 정보부대의 통신감청으로는 인민군 통신연락이 급증했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미국은 2.29 북미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함으로써 대북협상을 끝내 거부하였고, 북이 6자회담에 나오고 싶으면 저자세를 보여라는 식의 부당한 요구로 북을 자극하였고, 선제공격을 전제로 하는 실전급 대북전쟁연습을 계속 감행하였을 뿐 아니라, 테러범들을 북에 잠입시켜 북에서 최고 존엄으로 숭앙하는 동상을 파괴하고 ‘급변사태’를 일으켜 북측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기도하였다. 국가적 자존심과 자주권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북으로서는 그러한 미국의 외교적 폭언과 군사적 악행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국통일대전 작전계획서’를 최종 결재하였고, 인민군에게 조국통일대전 명령을 내릴 결심을 굳힌 것이다.

북측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민족의 숙원이며 염원인 조국통일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뒤를 이어 북의 최고영도자로 추대된 김정은 제1위원장은 2대에 걸쳐 내려온 조국통일유훈을 자신이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막중한 책무를 지니게 되었다.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 각각 정상회담을 통해 열어놓은 평화통일의 가능성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이명박 정권의 반통일정책에 의해 완전히 가로막힌 것으로 보인다. 평화통일의 길이 가로막힌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금강산 관광길마저 가로막히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평화통일의 가능성이 그처럼 꽉 막혀버린 오늘,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국통일유훈을 실현하는 책무를 수행하려면 ‘조국통일대전’으로 조국통일유훈을 실현하는 것밖에 다른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너무 막심한 전쟁피해로 민족 전체가 화를 입을 수 있다. 이런 조건을 생각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국통일대전’의 전쟁피해를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 풀기 힘든 문제를 고심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2012년 3월 2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판문점을 시찰하면서 남긴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정전담판 회의장, 정전협정 조인장, 판문각, 통일각을 “잘 보존관리하여 통일된 조국에서 살게 될 후대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앞으로 싸움이 일어나면 우리 군대와 인민은 원쑤들이 무릎을 꿇고 정전협정 조인이 아니라 항복서에 도장을 찍게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판문점 시찰 중에 남긴 말에는 스쳐지나갈 수 없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격전으로 가장 먼저 파괴될 곳은 전선이며, 따라서 전선 중에서도 최전선인 판문점부터 파괴될 것이 뻔한 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판문점에 있는 사적물들과 건물들을 잘 보존관리하여 통일조국의 후대들에게 넘겨주자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김정은 제1위원장은 최전선에 있는 판문점도 파괴되지 않을 만큼 전쟁피해를 최소화한 ‘조국통일대전’을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국통일대전’의 전쟁피해를 최소화할 기적 같은 방도는, 얼핏 생각하면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런 방도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북의 ‘조국통일대전’ 개전 직후 미국의 무릎을 꿇리고 항복서에 도장을 찍게 만드는 것이 바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생각하는 전쟁방도다.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여 실전급 대북전쟁연습을 계속 감행하는 ‘초강대국’ 미국이 다른 나라에 항복하는 ‘기적’을 상상하기 힘든데, ‘조국통일대전’ 개전 직후 북이 미국의 항복을 재빨리 받아내어 전쟁피해를 최소화할 그런 기적 같은 방도가 과연 있을까?
 
 
묘향산맥 산악지대에 ‘백두산호랑이부대’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애 마지막 시기에 종합전술훈련을 지도한 군부대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백두산호랑이부대’라고 부른 제630대련합부대가 바로 그 군부대다. 북에서 ‘대련합부대’는 군단급 부대이므로 ‘백두산호랑이부대’는 제630대련합부대라는 단대호로 부르는 군단급 부대다.

한국군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1년 2월 13일 보도와 <조선일보> 2011년 12월 14일 보도를 종합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백두산호랑이부대’라고 부른 제630대련합부대는 ‘폭풍군단’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최정예 특수전 부대이며, 병사 한 명이 맨손격투로 적 15명을 제압하는 격술훈련을 날마다 3시간 이상 받으며 8년 간의 혹독한 ‘지옥훈련’으로 단련된 ‘인간병기’ 60,000명을 12개 저격여단으로 편성한 인민군 제11군단이다. ‘폭풍군단’은 묘향산맥이 서남쪽으로 흘러내린 평안남도 덕천군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다른 한 편,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직후 제105땅크사단에 이어 두번째로 시찰한 부대가 있다. 그 부대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2년 1월 17일에 시찰한 제169군부대인데, 바로 이 부대가 ‘폭풍군단’ 예하 사단급 부대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부대를 시찰하면서 야전지휘관들에게 “올해 우리 함께 멀고 험한 훈련길을 달려 어버이 장군님께서 바라시던대로 부대의 싸움준비를 기어이 완성하자”고 당부하였고, 그 부대를 ‘강력한 주력군’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북의 ‘조국통일대전’에서 ‘폭풍군단’이 매우 중요한 전투임무를 수행하게 되리라는 점을 말해준다.

<조선일보> 2011년 12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폭풍군단’ 예하에는 ‘번개’, ‘우뢰’, ‘벼락’으로 각각 불리는 특수전 여단들이 배속되어 있다고 한다. ‘폭풍’이라는 말도 그렇지만, ‘번개’, ‘우뢰’, ‘벼락’은 피하려 해도 도저히 피할 수 없을 만큼 찰나에 일어나는 공포스러운 자연현상들이다. ‘폭풍군단’의 전투임무는 바로 그런 부대별칭이 암시하고 있다.

남측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폭풍군단’의 전투임무를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놀랍게도, ‘폭풍군단’은 인민군이 전선에서 선제공격을 개시하기 전부터 ‘조용히’ 작전을 개시하게 된다. ‘폭풍군단’에 배속된 ‘인간병기’ 60,000명은 한국군 복장으로 갈아입고 공중, 산악, 지하에서 남측으로 뚫린 수많은 밀로(密路)를 통해 남측 각지의 급습목표 인근에 사전침투하였다가 인민군의 선제공격개시와 더불어 주한미국군 기지들과 서울을 비롯한 주요도시들을 급습하여 주한미국군과 재한미국인을 무더기로 생포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12년 3월 21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 군관들과 병사들이 “손들엇(Hands up), 움직이면 쏜다(Don't move. You will be shot)” 같은 간단한 영어회화문장 100가지를 무조건 외우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조국통일대전’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인민군이 최고사령관의 공격명령이 내리면 주한미국군과 재한미국인을 무더기로 생포할 급습작전목표를 세워두었음을 뜻한다.

2012년 2월 8일 <유투브(You Tube)>에 게시된 북의 기록영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인민군대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에는 ‘폭풍군단’ 특수전 병력이 모형 시가지에서 습격훈련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영상에 나오지는 않지만, 그들의 시가지 습격훈련에는 당연히 주한미국군과 재한미국인을 무더기로 생포하는 습격훈련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인민군 ‘폭풍군단’ 특수적 병력의 급습에 대비하여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용감한 통로(Courageous Channel)’라는 작전명으로 재한미국인 소개작전을 해마다 연습하고 있다. 주한미국군 병력은 28,500명 수준이고 재한미국인은 130,000명 수준인데, 주한미국정부기관 근무자들과 주한미국군 가족들 약 10,000명이 최우선 소개대상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재한미국인 약 140,000명을 추가로 소개해야 한다. 미국군 소식지 <성조> 2009년 5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재한미국인 소개작전연습은 2박3일 일정으로 실시되는데, 경기도 오산에 있는 미공군기지로 집결시킨 다음 전세기를 이용해 일본으로 피신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개작전연습이 하나마나한 것이라는 점은 이집트에서 벌어진 미국인 소개작전에서 드러났다. 이집트에서 반정부 소요사태가 폭발하였던 2011년 1월 31일부터 미국이 이집트에 있는 미국인을 터키와 이탈리아로 대피시키는 소개작전을 3일 동안 벌였으나, 1,900명밖에 대피시키기 못하였다. 그렇게 된 까닭은,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는 바람에 공항으로 가는 길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한국군 복장으로 갈아입고 선제공격이 개시되기 전에 오산지역에 사전침투하여 공격명령을 기다릴 ‘폭풍군단’은 인민군이 전선에서 선제공격을 개시하는 순간, 오산공군기지를 급습할 것이다. 오산공군기지 습격전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경비력이 약한 오산공군기지는 순식간에 뚫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2012년 7월 17일 전라북도 군산에 있는 미공군기지가 어이없게도 노동자 한 사람에게 뚫린 사건이 있었다. 군산에 사는 40대 남자가 곡괭이로 기지 철조망 밑을 40cm 정도 파내어 기지 안으로 잠입하고, 기지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런데도 그는 붙잡히지 않았다. 나중에 급히 현장에 달려간 미국 헌병들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진 그는, 미국군기지에 들어가면 미국으로 망명되는 줄 알고 잠입하였다고 하면서 이 땅을 떠나고 싶어 그러했노라고 경찰에게 진술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주한미국군기지 경비가 얼마나 허술한지 드러났다. 중요한 군사전략거점인 군산의 미공군기지가 민간인의 곡괭이 한 자루에도 뚫려버렸으니, 혹독한 습격훈련으로 단련되고 각종 습격군사장비로 무장한 인민군 ‘폭풍군단’의 급습에는 너무도 간단히 뚫릴 것이다. 물론 오산공군기지만이 아니라 남측의 모든 공군기지와 민간공항이 ‘폭풍군단’의 급습목표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2011년 5월 22일 파키스탄 탈레반 무장대원 6명이 카라치에 있는 해군기지에 사다리를 타고 담을 넘어 들어가 습격하였다. 파키스탄군은 17시간 동안이나 치열한 교전을 벌려 가까스로 격퇴하였는데, 교전 중에 탈레반 무장대원은 4명이 전사했는데 파키스탄군은 10명이나 전사했으며, 해상초계기 P-3C 오리온 2대가 탈레반 무장대원들의 로켓탄 공격으로 파괴되었다. 카라치 해군기지 습격사건은 탈레반 무장대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습격작전능력을 지난 인민군 ‘폭풍군단’의 급습에 주한미국군기지들이 모조리 뚫릴 것임을 예고해준다.

미국군기지들이 그렇게 습격당할 것이므로, 서울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이 ‘폭풍군단’의 무더기생포작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약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서울 거주 미국인들은 인민군이 전선에서 선제공격을 개시하면 교통이 막혀 꼼짝할 수 없게 된다. 폭풍군단 특수전 병력은 교통두절상태에 빠진 서울의 외국인 거주지를 급습하여 미국인을 무더기로 생포할 것이다. 또한 그들을 대피시키려고 소개작전에 전세기들을 동원하기도 전에 상황은 끝날 것이다.

충격적인 예상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1979년 11월 4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대학생들이 미국대사관에 쳐들어가 70명을 생포하였다. 생포된 그들은 외교관 32명, 대사관 경비병력인 해병대원 18명, 현역 군인인 대사관 무관 13명, 중앙정보국 정보원 4명, 통신요원 2명, 민간인 1명이었다. 그 가운데서 18명은 조기석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나머지 52명은 1981년 1월 20일까지 1년 79일 동안 억류되었다. 두 손을 결박당하고 머리를 흰 천으로 동여맨 미국인 인질들의 모습이 전파를 타고 미국 텔레비전에 방영되자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결국 미국은 이란의 이슬람혁명세력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이란혁명 중에 미국인 70명이 생포되자 1년 70여 일만에 항복하였지만, 이 땅에서 주한미국군기지들과 외국인 거주지들이 급습당하여 미국군과 미국인이 무더기로 생포되면 미국은 북에게 즉각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이런 급습작전 준비를 완료한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개전 직후 짧은 시간 안에 미국의 항복을 받아낼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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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2

임박한 전쟁위험, 무엇을 할 것인가?

변혁과 진보 (94)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한반도 전쟁위험은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까지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사회변혁이 평화상황에서 실현될 것으로 전망해왔다. 그런 전망은 틀린 것이 아니지만, 사물의 한 쪽만 바라본 것이다. 사회변혁은 오직 평화상황에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상황에서도 실현되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전쟁위험이 가장 심각한 정전상태에 놓여있는 한반도에서는 사회변혁이 평화상황에서 실현될 가능성보다 전쟁상황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전쟁을 소설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문학소재 같은 것로 생각하는 것은 오늘 전쟁위험이 임박한 한반도 정세를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산이다. 이 문제를 고찰하려면, 우선 한반도 전쟁위험에 대한 정보부터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첫째, 한반도 전쟁위험이 발생한 근본원인은 미국의 대북전쟁위협이다. 미국은 한반도 분단의 주범일 뿐 아니라, 작전계획이라는 이름의 여러 가지 대북전쟁계획을 세워놓고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실전급 규모의 대북전쟁연습을 끊임없이 감행하고 있다.
 
미국군이 주도하고 한국군이 참가하는 대북전쟁연습은 대북위협을 전제한 무력시위가 아니라 대북선제공격을 전제한 실전연습이다. 미국은 최근에 한국군만이 아니라 일본 자위대까지, 그리고 심지어 호주군까지 대북전쟁연습에 끌어들였다. 이것은 미국의 대북전쟁연습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음을 뜻한다.
 
둘째, 실제로 무력충돌이 일어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한국 해군 군함의 북상을 통제하기 위해 그어놓은 '북방한계선(NLL)'을 사이에 두고 쌍방의 무력충돌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북방한계선'은 국제법적 근거가 없이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작전통제선이므로, 정전협정 당사자들인 북과 미국은 정전협정에 기초하여 서해 해상분계선을 획정하여야 하지만, 미국은 '북방한계선'을 고수하겠다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미국의 그런 태도는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화와 협상으로는 '북방한계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꽉 막혀버린 현재 상황에서, 관할수역에 대한 주권을 중시하는 북이 '북방한계선'을 고수하려는 미국과 남측 정부의 태도를 용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로써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또 다시 무력충돌상황이 조성된 것은 분명해보인다.
 
그런데 만일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또 다시 무력충돌이 벌어지는 경우, 지난 시기의 서해교전이나 연평도 포격전 같은 소규모 우발적 무력충돌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군사기밀이라서 외부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대치쌍방은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날 경우 전면전으로 비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전면전 준비를 갖추어놓았다.
 
셋째,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고 평화협정에 의거하여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라는 북의 계속되는 요구를 거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평화협정 체결문제와 철군문제를 논할 고위급 북미 정치회담마저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끊임없이 회피하고 있다.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미국의 거부와 회피로 모조리 막혀버린 것이다. 이처럼 대화와 협상이 막혀버렸으니, 남아있는 방도는 전쟁밖에 없지 않은가.
 
넷째, 북의 언론보도를 분석해보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관철하려는 강한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유훈은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유훈은 조국통일유훈일 것이다.
 
북측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국을 통일하는 것은 우리 인민의 념원이며 나의 의지입니다. 조국통일은 우리 대에 하여야지 다음 대에 넘겨줄 수 없습니다. 조국을 통일하는 것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임무이며 민족적 과업입니다"고 말하였는데, 그 말은 유훈으로 되었다. 젊고 패기에 넘치는 북의 새로운 최고영도자는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려는 결심을 굳힌 것으로 생각된다.
 
다섯째, 미국의 대북전쟁연습이 위험수위를 넘어섰고,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무력충돌 가능성이 고조되었고, 미국이 북의 평화제안을 거부하고 정치회담제안마저도 회피한 오늘의 상황에서 북의 새로운 최고영도자가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북은 통일전쟁으로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려고 할 것이다.
 
최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작전계획서'를 최종 결재하고, 인민군의 전투준비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시찰을 계속하면서 조국통일대전에 즉각 나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고 군부대들에게 직접 명령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미국의 정보차단과 정보왜곡으로 국제사회는 크게 오판하고 있지만, 인민군의 전쟁수행력은 매우 강하다. 인민군은 정신력과 무장력이 강하고, 훈련열의와 훈련수준이 높고, 작전지휘체계가 잘 짜여져 있다. 대북군사정보를 정밀하게 재분석하면, 정보차단과 정보왜곡을 넘어서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신력과 무장력이 강하고, 훈련열의와 훈련수준이 높고, 작전지휘체계가 잘 짜여져 있다는 것은, 전투준비를 완료하고 최고사령관의 조국통일대전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005년 1월 북측에서 유출되어 남측 언론에 공개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2004년 4월 7일에 작성하여 북측 전역에 배포한 '전시사업세칙'에는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전당, 전군, 전민이 총동원되여 전쟁준비를 더욱 완성함으로써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기어이 실현하고 통일된 조국을 후대들에게 물려주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는 구절이 있다.

일곱째, 국제적 군사정세도 한반도 군사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동아시아와 중동의 군사정세는 매우 불안정하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미국 및 일본, 중동에서 이란과 미국 및 이스라엘이 첨예한 군사대결상황에 들어섰다. 이것은 한반도 군사정세를 더욱 긴장시키는 외부요인으로 되고 있다.
 
위의 정보를 종합해보면, 지금 미국과 남의 대북전쟁 준비상황과 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상황은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임박한 전쟁위험, 무엇을 할 것인가?

미국의 대북전쟁연습이 무력시위가 아니라 실전준비인 것처럼, 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도 무력시위가 아니라 실전준비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감지하지 못하는 동안, 미국의 대북전쟁연습과 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로 한반도 전쟁위험이 매우 고조되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임박한 전쟁위험,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만일 북미관계의 적대적 모순이 폭발하여 미국에서 대북전쟁이라고 부르고 북에서 조국통일대전이라고 부르는 전쟁이 일어나면, 이 땅에서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전쟁상황과 결부시켜 생각해보지 않았으므로, 그처럼 돌발적인 물음에 선뜻 답하기 힘들 것이다. 혹시 누군가 한반도 전쟁상황에 결부하여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전망하였더라도, 지금 남측 사회 분위기에서 그런 전망을 공개토론으로 끌어내어 논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맥을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전쟁위험으로 급변하는 오늘의 한반도 정세에 대응하여 새로운 정치방침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한반도 전쟁은 예고 없이 일어날 것이다. 전쟁징후를 전혀 나타내지 않고 있다가, 불시에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준비는커녕 예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한반도 군사정세는 전쟁징후가 나타나야 대응방침을 세울 게 아니냐고 보는 안이한 판단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전쟁징후 여부와는 상관 없이 독자적으로 대응방침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군사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에 따르면, 북이 준비한 조국통일대전은 아주 짧은 시간에 전쟁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끝나게 될 세계 전쟁사에서 처음 있을 속결전이 될 것이다. 그와 달리, 미국과 남이 실전연습을 하고 있는 대북전쟁은 장기전 양상을 띄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주도권을 북이 쥐면 속결전으로 금방 끝날 것이고, 전쟁주도권을 미국이 쥐면 장기전으로 시간을 끌게 될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상반된 전망에 따라, 북이 주도하는 속결전에 대응하는 정치방침과 미국이 주도하는 장기전에 대응하는 정치방침을 모두 숙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금까지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추구해온 양대 강령은 진보적 민주주의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강령인데, 만일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전쟁상황이 전개되는 경우 자주적 평화통일강령은 자동적으로 폐기되고 진보적 민주주의강령만 남게 될 것이다.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강하게 제기되었다.
 
넷째, 지금 진보정치활동가들의 노력은 통합진보당을 정상화하고 대선전략을 세우는 일에 집중되고 있다. 통합진도당을 정상화하고 대선전략을 세우는 일은 시급하고 중대한 과업이지만,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쟁위험으로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는 일도 그에 못지 않게 시급하고 중대한 과업으로 되었다. 만일 올해 대선에서 수구우파정권이 이겨 재집권할 경우, 전쟁위험은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악화될지 모른다.
 
통합진보당 정상화 및 대선전략 수립과 함께, 전쟁위험으로 급변하는 정세에 주동적으로 대처하자! 이것이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제기하여야 할 당면구호다. (2012년 9월 2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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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8

매우 위험한 핵냉전에 갇힌 미국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 (227)
통일뉴스 2012년 09월 17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핵공포의 균형’은 사라졌는가?

1947년부터 1991년까지 45년은 냉전기였다. 적대관계가 극도로 격화되어 불과 불이 오가는 전쟁을 열전(hot war)이라 하고, 적대관계가 폭발 직전에 놓인 긴장상태를 냉전(cold war)이라 한다. 1947년부터 1991년까지 45년 동안 6.25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 같은 열전이 일어났는데, 그런 시대를 왜 냉전기라고 하는 것일까? 아시아와 중동에서 열전이 계속 일어났는데도 냉전이라고 하는 까닭은, 냉전의 중심축을 소련과 미국의 적대관계로 규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소냉전이라는 말을 쓰면서, 6.25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을 미소냉전의 부산물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련과 미국의 적대관계를 인식의 중심에 놓고 냉전기를 바라보는 대국주의 관점은 폐기되어야 하며, 아시아와 중동에서 일어난 일련의 반제열전들을 미소냉전과 적어도 동등하게 평가하는 균형적인 시각으로 세계사를 다시 읽어야 한다.

45년 동안 지속되었던 소련과 미국의 냉전은 핵무기라는 전대미문의 대량파괴무기를 서로 겨누며 정치군사적으로 대치하였다는 점에서, 핵전쟁 위험이 조성된 핵냉전이었다. 지금 러시아와 미국이 실전배치한 핵전쟁수단들도 그렇지만, 지난 냉전기에 소련과 미국이 실전배치하였던 핵전쟁수단들도 지구를 여러 차례 파괴하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것이었다. 이것은 지난 냉전기에 소련과 미국이 핵무기 증강을 경쟁적으로 지속하였으면서도, 상대만이 아니라 자기도 멸망하게 될 공멸적 핵전쟁을 감행하지 못하는 조건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6.25전쟁에서 북을 상대로, 베트남전쟁에서 북베트남을 상대로 핵공격을 감행하려는 잔인무도한 작전계획을 준비하였으나 결국 행동에 옮기지 못한 까닭은, 대북핵공격이 소련과의 핵전쟁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하는 확전 공포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냉전기의 핵전쟁 위험을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라고 말한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핵공포의 균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세계사는 냉전이 1991년에 끝났다고 말한다.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냉전이 끝났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엄청난 핵전쟁수단을 갖추고 있지만, 미국에 대해 냉전적 적대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냉전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중국의 국력이 강해지는 것을 우려한 미국이 이른바 ‘중국위협론’을 꺼내들고 ‘신냉전’이 금방 도래할 것처럼 말하는 일부 주장도 들리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착오다. 중미관계에 갈등요인이 분명히 있지만, 그런 갈등요인이 중미관계를 냉전적 적대관계로 돌려놓는 것도 아니며, 중미관계를 ‘핵공포의 균형’으로 몰아가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중국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 부대리대사 윌리엄 웨인스타인(William Weinstein)이 2009년 7월 1일 본국에 보낸, 중미 방위협의회담(Defense Consultive Talks)에 관한 세 편의 비밀전문을 읽어보면, 중국과 미국은 갈등요인을 안고 있으면서도 충돌을 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비밀전문에 따르면, 그 두 나라는 심지어 비공개로 정보교류도 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그러할진대,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그보다 더 유연하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핵공포의 균형’은 이제 영영 사라지고 만 것일까? 중미관계 또는 러미관계를 중심에 두고 오늘의 세계를 바라보면, ‘핵공포의 균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대국주의적 단순논법에서 벗어나, 복잡다단하게 전개된 세계 핵정세를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1999년에 다시 시작된 핵냉전
 
냉전으로 얽룩진 20세기가 기울어가던 1999년 10월 2일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평범한 날이지만, 훗날 역사가들은 그 날부터 핵냉전이 재개되었다고 세계사에 쓸 것이다. 1999년 10월 2일은 미국이 지상배치 중간단계 방어(Ground-Based Midcourse Defense)라는 미사일방어망 구축작업을 본격적으로 개시한 날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대표적인 군수기업 레이시언(Raytheon)이 제작한 외기권 요격체(Exoatmospheric Kill Vehicle)를 발사하는 탄도미사일 요격실험이 그 날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이제껏 미국 이외에 어떤 나라도 만들지 못한 외기권 요격체는 길이 1.4m, 지름 0.6m, 무게 64kg의 조그만 물체이지만, 거기에는 미국이 개발한 최첨단 공학기술이 집약되어 있었다. 그 외기권 요격체를 탑재한 강력한 미사일은 초속 10km에 이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비행하여 적국의 미사일을 공중에서 격추하는 것이다. 적국이 쏜 미사일을 쫓아가 요격하려고 하니, 적국 미사일이 날아오는 초속 6km의 비행속도를 따라잡을 강력한 감지장치는 물론이고 적국 미사일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새로운 종류의 미사일을 만들어내야 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외기권 요격체를 개발한 첨단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외기권 요격체 개발로 시작된 미사일방어망 구축사업이 중요한 것이다. 그 구축사업에서 주목하는 것은 1999년이라는 특정시점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1999년에 외기권 요격체 발사실험을 처음 실시함으로써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기 시작하였을 뿐 아니라, 국가미사일방어법(National Missile Defense Act)도 1999년에 제정하였다. 이 법은 “제한된 탄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 영토를 방어할 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는 문제에 관련된 미국의 정책”을 수립하도록 규정하였다. 미국 연방하원은 국가미사일방어법을 1999년 2월 4일에 발의하고 3월 18일에 채택하였고, 연방상원은 5월 20일에 그 법안을 채택하였고,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Bill Clinton)은 7월 22일 그 법안에 서명하였다.

그런데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사업을 책임진 미사일방어국(Missile Defense Agency)이 국방부 산하에 설치된 때는 2002년이다. 추진주체를 내오기 3년 전에, 관련법부터 제정하고, 외기권 요격체 발사실험부터 실시한 것은, 당시 미국이 누구에게 쫓기듯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황급히 서둘렀음을 말해준다. 1999년에 미국은 누구에게 쫓기고 있었을까?

초강대국으로 자처해온 미국은 자존심이 무너질까봐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1999년에 미국이 북에게 쫓기고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998년 5월 30일 북은 핵탄두보다 한 급 높은 열핵탄두(thermonuclear warhead)를 폭발시킨 첫 지하핵실험을 파키스탄에서 성공적으로 실시하였고,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8월 31일에는 함경북도 화대군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북의 첫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탑재한 우주로켓 ‘백두산 1호’를 성공적으로 쏘아올렸다. 이처럼 북이 열핵탄두 기술과 우주로켓 기술을 보유하였음을 전격적으로 세상에 공개한 것은, 북이 미국 본토를 대륙간탄도미사일로 파괴할 수 있는 핵공격력을 확보하였음을 말해준 엄청난 사변이었다. 극심한 식량부족으로 죽을 먹어야 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 그처럼 엄청난 사변을 일으킨 북의 저력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처럼 엄청난 사변으로 충격을 받은 미국은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를테면, 대북정책조정관 겸 미국 대통령 특별고문으로 임명된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가 ‘북코리아에 대한 미국 정책의 검토: 사실조사와 건의(Review of United States Policy Toward North Korea: Findings and Recommendations)’라는 비공개 정책문서를 작성하여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에게 제출한 날은 1999년 10월 12일이다. ‘페리 보고서’로 세간에 알려진 그 보고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은 국가기밀이지만, 미국이 언론에 흘려준 ‘요약본’에 따르면, 대북관계개선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북측과 특사상호방문을 추진하면서 2000년 10월 9일에는 ‘조미 공동코뮈니케’를 채택하였고, 당시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K. Albright)가 방북하여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추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드러난 것이지만, 당시 미국의 그런 행동에는 일관성과 진정성이 없었다. 1999년부터 2000년 사이에 미국이 대북관계에서 진짜 노린 것은 ‘시간벌기’였다. 미국 본토를 공격할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막아낼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페리 보고서 요약본’을 통해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국가기밀이 바로 그러한 미사일방어망 구축에 관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빌 클린턴이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노라고 하면서도, 1997년 1월까지 자기 밑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워런 크리스토퍼(Warren M. Christopher)를 대북정책조정관에 임명한 것이 아니라, 1997년 1월까지 자기 밑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를 대북정책조정관에 임명한 것은 대북외교정책보다는 대북군사정책의 재검토에 ‘조정’의 무게를 실었다는 뜻이며, 전직 국방장관이 주도한 조정작업은 1999년부터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서두르는 내용으로 채워졌던 것이다. 페리가 클린턴에게 ‘페리 보고서’를 제출하기 열흘 전인 1999년 10월 2일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외기권 요격체 발사실험을 실시하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대북 선제핵공격을 위한 것이다
 
미국은 ‘페리 보고서’ 작성과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동시에 추진하였는데, 그 두 종류의 행동에서 중요한 것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였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한 ‘페리 보고서’가 미사일방어망 구축사업과 뗄 수 없는 관계로 결착된 것은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이 이란의 미사일공격이나 국제테러집단의 핵테러를 막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북의 미사일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구축된 것임을 말해준다. 초강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은 자존심이 무너질까봐 인정하기를 싫어하지만,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은 첫 날부터 오늘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북의 미사일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구축되었고 또 구축될 것이다.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한 목적이 오로지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미국 국방장관이 솔직히 인정한 때는,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개시한 날로부터 꼭 10년이 지난 2009년이다. 2009년 5월 14일 당시 미국 국방장관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는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30기의 요격미사일은 현재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북코리아가 가질 (미사일)능력에 대응한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북코리아에 대한 강력한 방어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 날 로벗 게이츠가 발언한 것처럼, 미국은 북의 미사일공격을 막아내려고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였다고 하지만, 미국의 그런 주장은 사물의 한 측면만 말하는 것이다. 미국이 말하지 않는 다른 한 측면은 대북 핵전쟁위협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미국의 대북 핵전쟁위협과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사물의 두 측면인 것이다.

지난 시기 미국의 대북 핵전쟁위협은 일방적이고, 국지적인 전쟁위험을 조성하였으나, 북이 대미 핵보복능력을 실물로 입증한 1998년 이후 미국의 일방적이고, 국지적인 대북 핵전쟁위험은 북과 미국 사이의 쌍방적이고, 세계적인 전쟁위험으로 전환되었다. 만일 미국이 북에게 선제핵공격을 가하면, 북도 미국에게 반드시 보복핵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점에서, 북과 미국 사이의 전쟁위험은 쌍방적이고, 세계적인 전쟁위험으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998년 이후 미국이 두려워하게 된 공포의 대상은 북의 핵보복능력이다. 그래서 미국에게는 북의 보복핵공격을 막아낼 전략적 방어능력이 필요하였다. 미국이 1999년에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황급히 개시하였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자기의 주적인 북에 대한 선제핵공격력을 유지하기 위한 대북 핵전쟁전략의 다른 측면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말이 ‘방어망’일 뿐이지, 실제로는 방어전략이 아니라, 선제핵공격을 보장해주는 공격전략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국방부가 미사일방어를 총지휘하는 미사일방어국(Missile Defense Agency)을 설치한 때는 2002년이고, 미사일방어망을 실제로 가동하는 미국 북부사령부(U.S. Northern Command)를 창설한 때는 2002년 4월 25일이다. 미국은 이처럼 미사일방어망을 가동하기가 바쁘게 선제핵공격 준비도 동반적으로 다그쳤다. 이를테면, 미국 전략사령부(U.S. Strategic Command)가 선제핵공격 전쟁계획인 ‘개념계획 8022(CONPLAN 8022)’를 완성한 때는 2003년 11월이고, 미국 국방장관이 ‘지구적 타격 임시경보령(Interim Global Strike Alert Order)’을 내린 때는 2004년 6월이다.

세계 각국 언론매체들은 미국이 그런 선제핵공격 준비를 갖추게 된 원인을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일어난 ‘9.11 테러’에서 찾았지만, 그것은 오보였다. 미국이 알 카에다(al-Qaeda) 같은 국제테러단체에 핵공격을 가하려고 선제핵공격 준비를 갖추었다는 식의 보도는 만화 같은 이야기다. 명백하게도, 미국의 선제핵공격은 처음부터 끝까지 북을 노린 것이며, 미국의 미사일방어는 미국의 선제핵공격을 받은 북이 미국에게 가할 보복핵공격을 막아보려는 것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북의 미사일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북 선제핵공격을 위한 것이다.
 
 
자신만만한 발언은 허풍이었다
 
미국 국방부가 2010년 2월에 발표한 ‘탄도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Ballistic Missile Defense Review Report)’에 들어있는 해설약도에 따르면,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타격범위는 북쪽으로 그린랜드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포괄하고, 동쪽으로 영국과 대서양 서쪽 절반을 포괄하고, 중앙으로 북미대륙 전역과 중앙아메리카 전역을 포괄하고, 남쪽으로 남미대륙 칠레 중부와 브라질 북서부까지 포괄한다.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타격범위가 그처럼 방대하지만,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아무 곳이나 타격하지 않으리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지구본을 살펴보면, 북에서 미국 본토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경우 그 미사일은 북극 상공을 거쳐 미국의 중앙부 상공 400km에서 공중폭발하여 강력한 전자기파 방출로 미국 전역을 마비시키거나, 미국의 선제핵공격을 받는 최악의 경우에는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 디씨로 날아가게 될 것이다. 미국이 알래스카에 지상배치 요격미사일을 배치한 까닭은,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북극 상공을 거쳐 미국 본토로 날아오는 탄도비행궤적을 계산하였기 때문이다.

2004년 1월 22일 미국은 알래스카주 포트 그릴리(Fort Greely)에 제49미사일방어대대를 창설하고, 지상배치 요격미사일 26기를 그 대대에 배치하였다. 또한 미사일방어여단을 시험적으로 운용해오던 미국은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할 것으로 크게 우려하였던 2006년 6월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미국 북부사령부 예하 제100미사일방어여단을 서둘러 창설하였다. 그로써 제49미사일방어대대는 제100미사일방어여단 소속으로 되었다.

미국 북부사령부가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경우에 대비한 전쟁계획을 작성하기 시작한 때는 2005년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 북부사령부는 ‘작전계획’ 이전 단계의 ‘개념계획’밖에 작성하지 못하였다. ‘개념계획’은 ‘작전계획’에 비해 정밀도와 구체성이 떨어진다. 또한 미국 북부사령부는 ‘사후관리개념계획(Consequence Management Concept Plan)’과 ‘민간당국 방어지원계획(Defense Support of Civil Authorities Plan)’을 작성해두었는데, 이것은 미국 북부사령부가 15개의 시나리오에 따라 시행하려는 비상계획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전상황에서 그런 각종 ‘작전계획’과 시나리오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가 2010년 2월에 발표한 ‘탄도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지상배치 요격미사일 30기만 있으면,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그린랜드, 영국에 미사일방어용 조기경보레이더를 배치하였고, 해상에는 이지스 구축함 및 순양함들, 해상배치 엑스밴드(X-band) 레이더를 배치하였고, 정밀한 지휘통제체계까지 세웠으므로,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한 방어능력에 관해 아주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이를테면, 2010년 9월 9일 당시 미국 북부사령관 제임스 위니펠드(James A. Winnefeld)는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나와 “만일 지금 북코리아 또는 이란이 쏜 미사일이 날아오는 경우 요격할 수 있는가고 묻는다면, 요격할 수 있다고 답하겠다”고 말하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미국 군부의 그런 자신만만한 발언은 허풍이었음이 이번에 드러났다. 이에 관한 사실은, 미국 연방의회로부터 용역연구를 맡은 미국의 전국연구협의회(National Research Council)가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과 군사전문가들을 동원하여 2년 동안 연구한 끝에 2012년 9월에 펴낸 239쪽짜리 보고서 ‘탄도미사일방어에 대한 판단: 다른 대안들과 비교한 미국의 다단식 추진 미사일방어의 개념 및 체계에 대한 평가(Making Sense of Ballistic Missile Defense: An Assessment of Concepts and Systems for U.S. Boost-Phase Missile Defense in Comparison to Other Alternatives)’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이 “얼마쯤 개량된(modestly improved) 위협에도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결함투성이며 취약하다”고 평가하고, 심각한 결함을 지적하였다.

북이 액체추진제로 가동하는 엔진을 장착한 2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추진제 연소시간은 4분10초다. 또한 북이 고체추진제로 가동하는 엔진을 장착한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추진제 연소시간은 3분이다. 두 종류의 추진제가 각각 연소하는 시간이 서로 다른 까닭은, 액체추진제 엔진이 고체추진제 엔진에 비해 연소시간이 느리기 때문이다. 북은 당연히 연소시간이 더 빠른 고체추진제 엔진을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 본토로 발사할 것이다. 그러므로 북이 고체추진제로 가동하는 엔진을 장착한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에 대비하여, 미국은 연소시간이 끝나기 30초 전인 2분 30초 안에 요격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고도의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사일방어망은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엉터리 정보와 무용지물, 그리고 매우 위험한 핵냉전
 
결함지적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위의 보고서에서 언급한 ‘얼마쯤 개량된 위협’이라는 표현은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성능을 좀 개량한다는 뜻인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액체추진제로 가동하는 로켓엔진을 장착한 2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량하여 고체추진제로 가동하는 신형 로켓엔진을 장착한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보고서는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해 크게 오판하였다. 그 보고서가 그렇게 오판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미국 국방부가 2010년 2월에 발표한 ‘탄도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을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 보고서에는 ‘탄도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를 인용한 대목이 여러 군데 나온다.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탄도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는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을 터무니 없이 낮춰잡은 엉터리 정보를 유포한 것이다.

지금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해 실전배치한 전략미사일은, 고체추진제로 가동하는 로켓엔진을 장착한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이고, 단일탄두가 아니라 다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고, 핵추진 잠수함에서 수중발사하는 다탄두 중거리 핵미사일이다.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실전배치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이 북의 핵추진 잠수함 실전배치를 인정할 리 만무하다. 미국은 북이 낡은 소련산 잠수함과 침투용 소형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는 왜곡축소정보만 유포해왔다.

미국은 알래스카에 지상배치 요격미사일 26기를 배치한 이듬해인 2005년에 캘리포니아 남부해안지방 롬폭(Lompoc) 부근에 있는 밴든벅 공군기지(Vandenberg Air Force Base)에도 지상배치 요격미사일 4기를 추가로 배치하였다. 북이 캘리포니아 해안을 공격할 아무런 이유도 없고, 실제로 함경북도 산악지대에 배치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캘리포니아 남부 쪽으로 쏘기도 힘들다. 그런데 왜 미국은 캘리포니아 남부해안에 지상배치 요격미사일을 추가로 배치한 것일까? 북의 잠수함 발사 중거리미사일을 요격하려고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북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문제는 따로 논할 주제다.

2011년 4월 13일 미국 국방부 핵 및 미사일방어정책 담당 부차관보 브래들리 로벗츠(Bradley H. Roberts)가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소위원회 청문회에서 꺼내놓은 발언에 따르면, 미국은 미사일방어능력을 지금보다 50% 더 증강시켜 총 44기의 요격미사일을 배치하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요격한계가 뻔한 그런 미사일을 아무리 많이 배치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지상배치 요격미사일 탄두는 개당 가격이 무려 3,900만 달러나 하는 최고가 무기이고, 미국이 미사일방어망을 유지하기 위해 쏟아붓는 경비는 해마다 100억 달러나 되는데, 그렇게 엄청난 경비를 잡아먹은 미사일방어망은 결국 실패작인 것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은 북의 핵미사일 공격을 막아낼 길이 없다.

북이 막강한 핵억지력을 확보한 한 편,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이 사실상 무용지물로 되고 말았다는 사실은, 북과 미국의 적대관계가 핵무기를 서로 겨눈 핵냉전으로 전화되었음을 말해준다. 지난 시기 소련과 미국 사이에 조성되었던 적대관계는 서로 핵무기를 감히 사용하지 못하는 핵냉전이었던 것에 비해, 오늘 북과 미국 사이에 조성된 적대관계는 선제핵공격 가능성이 상존하는 매우 위험한 핵냉전이다.

미국은 북의 대미 선제핵공격 가능성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느낄수록 미사일방어망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극비사항으로 은폐하면서, 대북 선제핵공격 연습에 광란하는 것으로 핵냉전에서 탈출해보려고 몸부림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한, 그런 몸부림으로는 핵냉전 위험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며, 핵냉전에 갇혀버린 미국의 불행한 운명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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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핵강국의 조용한 등장 알려주는 사진

[한호석의 개벽예감] (30)
자주민보 2012년 09월 17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버월 벨의 청문회 발언은 사실이었나?
 
2006년 3월 9일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버월 벨(Burwell B. Bell)이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였다. 청문회에서 한반도 군사상황을 거론하던 그는 인민군 전력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대(the world's largest submarine fleet)”가 북에 있다고 하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인민군과 첨예하게 맞선 무력대치상태에서 한미연합군을 지휘하는 버월 벨은 가장 많은 대북군사정보를 알고 있는 야전사령관인데, 그런 그가 미국 연방하원 청문회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대가 북에 있다고 언급한 것은 그냥 스쳐갈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영어 표현으로는 잠수함 보유척수가 가장 많은 것(the largest in number)도 가장 큰 잠수함대라는 뜻이고, 잠수함대의 총배수량이 가장 큰 것(the largest in total displacement)도 가장 큰 잠수함대라는 뜻이므로, 버월 벨의 그 발언은 좀 모호하게 들린다.

지금까지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은, 버월 벨의 그 발언을 인민군 잠수함대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잠수함을 보유하였다는 뜻으로 해석해왔다. 그런 식의 해석이 일반화된 까닭은, 영국 런던에 있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가 펴내는 연례보고서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에 나온 인민군 잠수함대에 관한 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 사이에 유포된, ‘군사균형’을 비롯한 몇몇 군사정보들은 인민군 잠수함대에 관한 이런 정보를 전해준다.

첫째, 인민군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소련으로부터 위스키급(Whiskey class) 잠수함 4척을 도입하였다. 1950년대에 소련에서 건조되었고, 1980년대에 퇴역한 위스키급 잠수함은 수중배수량이 1,350t급인 디젤-전기 잠수함이다. 북이 도입한 위스키급 잠수함은 4척 뿐이다. 도입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북의 위스키급 잠수함 4척은 너무 낡아서 고철로 해체되었거나 초년병 훈련용 또는 기만전술용으로 쓰일 것이다. 따라서 위스키급 잠수함 4척은 인민군 잠수함대 보유량에서 제외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은 인민군이 아직도 위스키급 잠수함 4척을 운용하고 있다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둘째, 인민군은 1960년대 후반에 소련으로부터 로미오급(Romeo class) 잠수함 3척을 도입하였다. 로미오급 잠수함은 수중배수량이 1,830t급인 디젤-전기 잠수함이다. 소련은 중국에게 로미오급 잠수함 설계기술을 지원하여, 중국도 로미오급 잠수함을 자체로 건조하였는데, 1970년대 초에 북은 중국이 건조한 로미오급 잠수함 4척을 도입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 소련은 북에게도 로미오급 잠수함 설계기술을 지원하여, 북도 중국처럼 로미오급 잠수함을 자체로 건조하였다. 이미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로미오급 잠수함 7척을 도입한 북은 1980년대에 동급 잠수함 5척을 자체로 건조하여 총 12척을 보유하였고, 1990년대에는 동급 잠수함 10척을 더 건조하여 2000년 현재 총 22척의 로미오급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었다.

셋째, 인민군은 수중배수량이 370t인 상어급(Sang-o class) 잠수함 40척, 수중배수량이 130t인 연어급(Yono class) 잠수정 10척을 현재 운용하고 있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인민군 잠수함대에는 로미오급 잠수함 22척, 상어급 잠수함 40척, 연어급 잠수정 10척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인민군 잠수함대에 배치된 잠수함 62척과 잠수정 10척의 수중배수량을 모두 합하면 56,360t이다. 그런데 미국군 잠수함대에 배치된 로스앤젤레스급(Los Angeles class) 잠수함 42척의 수중배수량을 모두 합하면 290,934t이고, 러시아군 잠수함대에 배치된 타이푼급(Typhoon class) 잠수함 3척의 수중배수량을 모두 합하면 144,000t이다. 이렇게 비교해보면, 인민군 잠수함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대라는 버월 벨의 말은 수중배수량이 아니라 보유척수가 가장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버월 벨의 그런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군 잠수함대에 배치된 핵추진 잠수함도 72척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민군 잠수함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대라는 버월 벨의 말은 북의 군사적 위협을 부풀리려는 과장발언이었을까?

지금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이 알고 있는 인민군 잠수함대에 관한 정보 가운데서 눈여겨보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북이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로미오급 잠수함을 더 이상 건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북이 건조한 잠수함은 상어급 잠수함을 개량한 소형 잠수함과 연어급 잠수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은 왜 20년이 넘도록 로미오급 잠수함을 건조하지 않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평양에 있는 조선혁명박물관에 보존된 한 장의 오래된 사진에서 찾을 수 있다.


보존사진이 말해주는 놀라운 사연

2012년 7월 14일 세계 최대의 동영상 누리집 <유투브(You Tube)>에 ‘련속참관기 - 장군님과 동지,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아서 (9)’라는 제목의 텔레비전 방영 동영상이 실렸다. 조선혁명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령도사적’에 관해 해설해주는 그 동영상은, 인민군 무력강화사업에 충실하였던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김광진 차수의 실화를 담은 동영상자료다. 김광진 차수는 1984년 12월에 인민무력부 부부장에 임명되었고, 1992년 4월에 차수 칭호를 받았고, 1997년 불치의 병에 걸려 70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동영상에 나오는 해설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광진 차수에게 “(인민군 무장장비를) 우리나라의 지형조건에 맞게 현대화할 과업을 주시였다”고 하며, 김광진 차수는 그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여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동영상에 나오는 조선혁명박물관 보존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잠수함 모형 앞에서 김광진 차수로부터 보고를 받는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동영상에 나오는 해설강사의 말에 따르면, 그 사진은 1995년 4월 25일에 촬영된 것인데, 4월 25일은 인민군 창건 기념일이다.

무력강화사업을 책임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이 인민군 창건 기념일에 잠수함 모형을 앞에 놓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잠수함에 관해 보고하는 그 사진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1995년 4월 당시 북은 이미 신형 잠수함 건조사업을 추진 중이었던 것이다. 그 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광진 차수로부터 신형 잠수함 건조사업에 관한 보고를 받는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그 사진이 말해주는 것처럼, 1995년 4월 당시 북이 신형 잠수함 건조사업을 추진하고 있었으므로, 아무리 늦어도 2000년대 초에는 건조사업을 마쳤을 것이고,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오늘까지 북은 1990년대에 개발한 신형 잠수함을 계속 생산하여 실전배치하였을 것이다. 북이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로미오급 잠수함을 더 이상 건조하지 않은 까닭은, 신형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의 신형 잠수함은 어떤 잠수함일까? 그 사진에 나타난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신형 잠수함 모형을 앞에 놓고 김광진 차수로부터 보고를 받았으므로, 북이 건조한 신형 잠수함은 바로 그 모형과 똑같이 생긴 잠수함이 분명한데, 신형 잠수함 모형은 함체도색과 함체구조가 인민군이 운용해오던 기존 잠수함과 크게 다르다.

첫째, 신형 잠수함 모형은 함체 위에 상층부를 한 층 더 얹어놓은 것 같이 생긴 2층 구조다. 이러한 2층 구조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잠수함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외부형태다. 함체 위에 상층부를 한 층 더 얹어놓은 것 같이 보이는 그 부분이 바로 탄도미사일 수직발사대가 설치된 공간이다. 길이가 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잠수함 안에 수직으로 세워놓아야 하므로 위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같은 잠수함 강국이 운용하는 전략잠수함들 가운데 그렇게 생긴 잠수함이 흔하다.

사진에 나타난 신형 잠수함 모형은 특히 러시아군의 델타(Delta) 4급 잠수함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양자 사이의 차이점은, 인민군 신형 잠수함 모형의 경우 탄도미사일 수직발사대 공간이 전망탑(sail) 앞에 있는 데 비해, 러시아군 델타 4급 잠수함은 탄도미사일 수직발사대 공간이 전망탑 뒤에 있는 것이다. 미국군이 지난 시기 운용하였고 지금은 퇴역한 벤자민 프랭클린급(Benjamin Franklin class) 잠수함도 델타 4급 잠수함처럼 탄도미사일 발사대 공간이 전망탑 뒤에 있다.

인민군 신형 잠수함 모형은 실물 축소판이므로, 실물 잠수함의 길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잠수함 전망탑 길이와 잠수함 함체 길이의 비율을 계산하면 전체 길이를 추산할 수 있다. 사진에 나타난 신형 잠수함 모형의 함체 길이는 전망탑 길이의 약 8배다.

어느 나라에서나 잠수함 전망탑을 터무니 없이 길게 만들지 않기 때문에, 다른 나라 잠수함 전망탑 길이와 잠수함 함체 길이의 비율을 계산하여 그것을 인민군 신형 잠수함의 동종 비율과 비교하면 인민군 신형 잠수함 길이를 추산할 수 있다. 외형이 인민군 신형 잠수함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러시아군의 델타 4급 잠수함이 비교대상으로 적합하다. 러시아군의 델타 4급 잠수함은 1985년 12월에 취역하였는데, 그 동안 모두 7척을 건조하였고, 지금도 운용 중이다. 델타 4급 잠수함 함체 길이는 전망탑 길이의 약 10배다. 이런 비교결과를 보면, 인민군 신형 잠수함 길이가 러시아군 델타 4급 잠수함보다 조금 짧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델타 4급 잠수함 함체 길이는 167m이므로, 그보다 길이가 조금 짧은 인민군 함체 길이는 약 140m일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사진에 나타난 신형 잠수함 모형은 전부 진록색으로 칠해졌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김광진 차수로부터 신형 잠수함 모형을 놓고 보고를 받았던 때로부터 17년이 지난 2012년 3월 1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로 진행된 인민군 육해공군 합동타격훈련에 진록색 잠수함 1척이 등장하였다. 북이 공개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인민군 륙해공군 합동타격훈련을 지도하시였다’라는 제목의 기록영화에 나온, 진록색 잠수함은 전망탑만 수면 위로 내놓고 기동하면서 어뢰 1발로 표적함선을 날려버린다. 그런데 전망탑만 수면 위로 내놓았기 때문에, 그 진록색 잠수함이 17년 전 보고현장에 모형으로 전시되었던 진록색 잠수함과 같은 급의 잠수함인지 확인하기는 힘들다.

러시아군이 운용하고 있는 델타 4급 잠수함은 수중배수량이 18,200t이고, 수심 400m까지 내려갈 수 있으며, 승조원 130명을 태우고 80일 동안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계속 잠항할 수 있다. 또한 그 잠수함은 90메가와트급 가압경수로 2기가 공급하는 20,000마력의 추진력으로 수중에서 시속 40~44km로 잠항한다. 이런 정보를 살펴보면, 인민군이 운용하고 있는 신형 잠수함의 수중배수량은 10,000t 정도로 추정되며, 승조원을 100명쯤 태우고 2개월 이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계속 잠항하는 잠수함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민군이 운용하고 있는 신형 잠수함은 북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소형 가압경수로가 설치된 공격형 핵추진 잠수함이라는 사실이다. 북이 경수로 기술을 이제껏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개발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에서 논한 바 있으므로 이 글에서 재론하지 않는다.

나는 2012년 2월 23일 <자주민보>에 기고한 글 ‘종적을 감춘 핵잠수함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북이 러시아군 태평양함대의 11,500t급 공격형 핵추진 잠수함 ‘양키 놋취(Yangkee Notch)’ 2척을 1993년에 도입하여 개조하고, 이를 실전배치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2012년 7월 북에서 공개된 위의 사진 한 장으로 나의 그런 추정은 5개월만에 전면 수정될 수밖에 없다. 다만 북이 러시아로부터 1993년에 도입했던 핵추진 잠수함 2척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핵추진 잠수함 설계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생각되며, 그 기술을 가지고 1995년에 자체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북은 공격형 핵추진 잠수함을 자체로 건조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잠수함 강국인 것이다.


김광진 차수가 1990년에 남긴 말

1997년 10월 21일 미국 연방상원 정무위원회 산하 국제안보, 확산 및 연방업무 소위원회가 개최한 북의 미사일 확산문제에 관한 청문회에 불려간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통역자 출신 탈북자가 청문회에서 털어놓은 대북군사정보가 워싱턴 정가에 파문을 일으켰다.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당시 직책)을 수행한 중국 방문길에서 그는 북이 사거리 4,000km 이상의 중거리 미사일 개발을 이미 끝내고 현재 생산 중이라는 김광진 부부장의 말을 직접 들었다고 털어놓았던 것이다.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인민군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한 때는 1990년 10월이다. 이것은 북이 이미 1990년 10월에 사거리 4,000km 이상의 중거리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놀라운 정보다.

무력강화사업의 책임을 맡은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해외방문 중에 자기 수행원에게 사실이 아닌 것을 말했을 리는 없으므로, 위의 정보에 따르면 북은 이미 1990년에 사거리가 4,000km가 넘는 중거리 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세상에 알려진 북의 중거리 미사일 생산시기보다 무려 10년 이상 앞선 이른 시기에 북이 중거리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정보에 따르면, 인민군의 미사일 전력에 관한 국제사회의 기존 관념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사거리가 4,000km로 추산되는 인민군 중거리 미사일이 미국 정찰위성에 처음 포착된 때는 2003년 9월이다. 그런데 김광진 차수가 1990년 10월에 언급한 사거리 4,000km 이상의 미사일과 미국 정찰위성이 2003년 9월에 포착한, 사거리 4,000km로 추산되는 미사일은 같은 종류의 중거리 미사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두 미사일에 관한 정보가 각각 알려진 시점 사이에 무려 13년이라는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차를 감안하면, 북은 김광진 차수가 1990년 10월에 언급한 사거리 4,000km 이상의 1세대 중거리 미사일을 미국 정찰위성이 2003년 9월에 포착한 사거리 4,000km의 2세대 중거리 미사일로 개량한 것이 분명하다.

북이 개량한 2세대 중거리 미사일이 바로 화성 10호 미사일이다. 화성 10호 미사일은 2010년 10월 10일 당창건 경축 인민군 열병식에서 6축12륜 발사차량에 실려 웅장한 자태를 드러냄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북의 2세대 중거리 미사일인 화성 10호 미사일은 다른 미사일과 달리 탄두부가 뾰족하지 않고 뭉툭한 우유병 꼭지처럼 생겼다. 뭉툭한 탄두부에 핵탄두가 여러 발 들어있는 다탄두 미사일인 것이다. 또한 화성 10호 미사일은 다른 미사일과 달리 미사일 동체에 꼬리날개가 달리지 않았다. 이것은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다탄두 핵미사일임을 말해준다.

핵추진 잠수함을 지상 열병식에 등장시킬 수 없었던 북은 핵추진 잠수함 수직발사대에 있는 사거리 4,000km의 타탄두 미사일 화성 10호를 지대지 중거리 미사일을 싣는 6축12륜 발사차량에 임시로 실어 열병식에 등장시킴으로써 인민군이 강력한 핵추진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화성 10호 미사일의 등장은, 북이 1990년 10월 김광진 차수가 생산 중이라고 언급하였던 1세대 지대지 중거리 미사일을 최첨단 기술로 대폭 개량하여 2세대 중거리 미사일인 잠수함 발사 다탄두 미사일을 만들어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1995년 4월 25일 인민군 창건 기념일에 김광진 차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설명한 그 진록색 잠수함 모형은 장차 화성 10호를 탑재할 핵추진 잠수함 모형이었던 것이며, 지금 조선혁명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그 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추진 잠수함 건조사업에 관한 보고를 받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러시아군의 델타급 핵추진 잠수함에는 미사일 16발이 들어가는 수직발사대가 설치되었고, 533mm 어뢰 4발이 들어가는 어뢰발사관도 설치되었다. 다른 핵강국들이 보유한 핵추진 잠수함도 미사일 16발짜리 수직발사대와 533mm 어뢰 4발짜리 어뢰발사관을 공통적으로 설치하였으므로, 인민군이 보유한 신형 잠수함도 당연히 그런 수준의 강력한 무장을 갖추었을 것이다.

<자유아시아방송> 2010년 10월 13일 보도기사에서 미국의 군사전문가 브루스 벡톨(Bruce Bechtol)은 북이 2010년 10월 10일에 공개한 6축12륜 발사차량에 실린 중거리 미사일을 약 200기 실전배치하였을 것으로 보았다. 벡톨의 추정에 따르면, 북은 핵추진 잠수함에 실을 약 200기의 화성 10호 중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두 가지 일정만 남았다

북의 핵추진 잠수함은 바다로 통하는 해안동굴식 잠수함 건조기지에서 건조되고, 평소에도 해안동굴식 잠수함 기지에서 물 속으로 드나들며, 해안동굴식 잠수함 정비소에서 정비를 받기 때문에, 미국 정찰위성에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 미국 정찰위성에 노출된 일반 해군기지에 정박하였다가 이따금 어디론가 사라지는 인민군 잠수함들은 모두 로미오급 또는 상어급 잠수함들이다.

미국은 북이 핵추진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을까? 미국은 북의 핵추진 잠수함을 본 적은 없으나, 여러 정보를 분석하여 북이 핵추진 잠수함 보유국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중요한 군사기밀은 알아도 안다고 밝히지 않는 법이다.

북은 파키스탄에서 1998년 5월에 한 차례, 그리고 함경북도 길주군 핵실험장에서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에 각각 한 차례씩 모두 세 차례나 지하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실시하였을 뿐 아니라, 경수로 기술을 실물로 입증하였고, 2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 13호 6기를 2012년 4월 15일 열병식에 등장시켜 자국이 핵보유국임을 당당히 선포하였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14년 동안 자기의 핵억지력을 순차적으로 세상에 공개해온 북은 녕변핵시설 단지에 건설 중인 소형 경수로를 완공하고, 핵추진 잠수함을 세상에 공개하는 마지막 두 가지 일정만 남겨두고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미국이 독점해온 전략무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추진 잠수함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추진 잠수함을 모두 갖춰야 진정한 핵강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지금 그 두 가지 전략무기를 모두 갖춘 핵강국은 전 세계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 세 나라밖에 없다. 영국과 프랑스는 핵추진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으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보유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추진 잠수함을 모두 보유한 제4핵강국이 조용히 부상하였다. 동방의 사회주의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바로 그 제4핵강국이다. 제4핵강국의 등장은,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군사대결을 북미대결관계로 집약시킨 대사변이다.

북이 핵억지력 부문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앞지르면서 미국, 러시아, 중국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제4핵강국으로 부상하였으므로, 세계 핵전력 균형은 사실상 깨지고 말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제4핵강국의 핵추진 잠수함이 세상에 공개되는 대충격의 날이 오면, 세계 안보지형과 국제정치관계는 뒤집히게 될 것이다. 지금 태평양과 대서양 어느 바다속을 소리 없이 누비며 대양순찰활동을 벌이고 있을 제4핵강국의 공격형 핵잠수함들은 미국의 선제핵공격위험을 강력히 짓누르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조국통일대전 명령’을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미국과 일본은 북을 자극하는 경거망동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2012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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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3

폐품처리장에서 다시 꺼냈나?


변혁과 진보 (9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그들의 움직임은 25년 전의 경험을 연상케 한다

올해 대선에 노동자-민중 독자후보를 출마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수구언론의 눈 밖에 나 있고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진보정치권 안에서 생겨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기에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노동자-민중 독자후보를 출마시키려는 움직임은 지금까지 아래와 같이 전개되었다. 2012년 8월 21일 민주노총 새정치특별위원회에서 노동자-민중 독자후보전술이 논의되었고, 공교롭게도 같은 날 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진행한 기자회견에서도 그 전술이 제기되었다. 또한 9월 12일에는 진보인사 30여 명이 모여 '노동자-민중 후보 추대 1차 연석회의'를 진행하였다.
 
노동자-민중 독자후보를 출마시키려는 대선전술은, 이 땅의 진보정치세력이 비판적 지지와 독자후보 추대로 갈라졌던 1987년 대선 경험을 연상케 한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6월 민주항쟁으로 급격히 전환된 정치정세는 진보정치세력에게 정권교체를 실현할 대선전술을 요구하였다.
 
정권교체라는 대전환을 기다리던 25년 전 대선국면에서, 당시 진보정치세력의 선택은 비판적 지지와 독자후보 추대로 갈라지는 바람에 정권교체에서 실패하였다. 만일 그 때 진보정치세력이 비판적 지지전술로 힘을 결집하여 미국과 노태우 일당의 군사독재정권 연장책동을 파탄시키고 정권교체에 성공하였더라면, 그리고 5년 뒤 노태우 정권에 이어 군사독재정권의 '사생아'로 출현한 3당합당을 저지할 수 있었더라면, 그리하여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년이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전진하는 10년'이 되었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펼쳐진 대선국면에서 이 땅의 진보정치세력에게는 진보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역량을 결집시킬 대중정당이 없었기 때문에 비판적 지지전술을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만일 그 때 이 땅에 진보적 대중정당이 있었다면, 비판적 지지라는 말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25년이 지난 오늘도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25년 전에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오직 야당만을 정권교체의 담당자로 인정하고 있었고, 따라서 진보정치세력이 야당과 힘을 합하여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비판적 지지전술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민중독자후보전술은 그러한 정치현실과는 동떨어진 '진보의 허상'을 쫓아가다가 진보정치세력을 분열시키고 결국 좌초해버린 전술이었다.

 
통합과 연대까지 오는 데 25년 걸렸다

우리 노동계급과 근로대중도 다른 나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처럼 자기의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87년 대선 패배 이후 진보정치세력이 처음 눈을 뜨게 된 참신한 정치과업이었다. 그래서 1990년대 10년 동안 이 땅의 진보정치세력은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였지만, 실패를 거듭하였다.
 
1990년대 진보정당 건설운동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이었나?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이 결집한 각계층 진보적 대중조직이 아직 건설되지 못한 불리한 조건에서 서둘러 추진한 정당건설이었기 때문에 실패하였고, 새로운 사회를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이 실현될 미래상으로 투시하는 과학적인 발전전망을 아직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실패하였고, 이 땅의 사회정치적 현실에 꼭 들어맞는 우리식 두 단계 사회변혁의 과학적 인식에 근거한 정당건설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1990년대를 그렇게 보내고, 2000년 1월에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강령으로 제시하여 이 땅의 진보정치를 한 걸음 더 전진시키는 중대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단독역량만으로는 진보적 정권교체의 길을 열어놓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2000년대에 민주노동당이 밀고 나간 진보정치운동 10년은 그런 한계를 안고 있었다.
 
바로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이 땅의 진보정치는 통합과 연대의 새로운 전략을 선택하였다. 2011년에 민주노동당이 제기한 진보대통합과 야권연대는 바로 그러한 선택으로 불러일으킨 진보정치의 커다란 변화이며 발전이었다.
 
돌이켜보면, 진보정치가 통합과 연대까지 오는 데 무려 25년 긴 세월이 흘렀다. 그 25년 동안 진보와 변혁의 험로에서 수많은 민주열사들과 통일열사들과 노동열사들이 정적들의 폭력에 희생당했고, 그 고귀한 희생의 자취를 묵묵히 뒤따르며 청춘을 바친 수많은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쇠창살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눈물겨운 투쟁을 벌였다.
 
그들의 희생과 투쟁에 의해 민주노총과 전농을 비롯한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건설된지도 오래되었고, 진보적 대중정당의 경험도 10년 이상 연륜을 쌓았고, 통합과 연대의 전략을 선택하여 진보와 변혁의 새로운 국면도 열어놓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와 발전은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기본구조가 갖춰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당면한 과업은 그 기본구조에 추진동력을 공급하는 것이다.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기본구조에 공급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에너지, 바로 그것이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진보정치발전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으려는가?

그런데 25년 전에 실패하여 폐품처리장에 파묻혀버린 줄 알았던 민중독자후보전술이 이번에는 노동자-민중독자후보전술이라는 더 길어진 이름으로 갑자기 다시 나타났으니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통합진보당을 외면하는 일부 진보인사들이 통합진보당이 추진하려는 야권연대전략을 반대하기 위하여 꺼내놓은 독자후보전술은 '반대를 위한 반대'이며, 현실성과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폐품전술'이다. 그런 '폐품전술'을 제기한 것은 25년 동안 이 땅의 진보정치가 숨가쁘게 헤쳐온 역사적 경험을 망각한 퇴행이다. 단순퇴행이 아니라 25년 전의 뼈저린 실패를 되풀이하려는 전략적 패착이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무엇보다도, 노동자와 민중이 지지할 노동자-민중 대선후보가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선을 불과 100일도 남겨두지 않은 촉박한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그것도 당적 기반도 없는 노동자-민중 대선후보를 급조해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과학적이며 무모한 '진보의 허상'이다. 당적 기반도 없이 급조한 노동자-민중 대선후보를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인정해줄 리 만무하다.
 
독자후보전술을 꿈꾸는 진보인사들은, 정치현실에서 동떨어진 '진보의 허상'을 쫓을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대선국면 민심동향부터 진지하게 다시 살피고 대선전술 좌표를 올바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야권연대전략으로 정권교체를 실현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폐품처리장에서 낡은 독자후보전술을 다시 꺼내어 진보정치 발전사의 '시계바늘'을 25년 전으로 돌려놓으려는가?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전략, 다시 정독하라

오늘 통합진보당이 추구하는 야권연대는 25년 전에 논의되었던 비판적 지지가 아니다. 오늘의 야권연대와 25년 전의 비판적 지지를 같은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우리식의 두 단계 사회변혁론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인식혼란이다. 우리식의 두 단계 사회변혁론을 알지 못하고 급진주의 조급증에 빠진 일부 좌파정치활동가들이 야권연대와 비판적 지지를 동일시하는 착각에 빠지는 법이다.
 
25년 전의 비판적 지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오늘의 야권연대는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 이후에 발전되어온 이 땅의 정치현실을 전면적으로 반영하고,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에 의거한 우리식의 두 단계 사회변혁노선을 견지하는 과학적인 진보정치전략이다. 그렇게 보는 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전략은, 이번 분당소동 이전까지만 해도 약 10%의 지지층밖에 결집시키지 못한 통합진보당의 단독역량으로는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에 근거한다.
 
둘째,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전략은, 그 당이 장차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한 진보정치발전의 교두보를 확보해야 한다는 현실인식에 근거한다. 야권연대라는 전략적 교두보가 없으면, 저 깊고 넓은 강을 건너 진보적 정권교체의 피안에 도달하지 못한다.
 
셋째,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전략은 새누리당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민주통합당과 무조건 힘을 합하고 보자는 식의 우경적 타협전술이 아니라, 진보적 대중정당의 단독집권전략를 수행하기 위한 집권준비기의 전략이다.
 

길은 멀고, 투쟁은 간고하지만

당을 우경화시키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당을 분당으로 끌어간 우경파벌주의자들의 소동 속에서도 기어이 당을 지켜냈으니, 분당은 통합진보당 사수파의 전략적 패배가 아니라 전술적 패배다. 통합진보당을 지킨 사수파의 수호전은 그런 전술적 패배로 끝난 게 아니다. 우경파벌주의자들이 빠져나간 통합진보당의 앞길에는 더 크고 격렬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진보 대 수구의 정치투쟁, 변혁 대 반변혁의 계급투쟁은 올해 대선국면에서 정권교체 대 집권연장의 격렬한 전면대결로 전개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수파는 자기 당을 사랑하는 당원대중들, 지지자들과 함께 전열을 재정비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지지를 받는 야권연대전략을 수행하는 격전에서 반드시 승리하여 전세를 역전시켜야 한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2012년의 대선국면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길은 멀고, 그 길을 헤쳐가는 투쟁은 간고하다. 하지만 역사는 말한다. 진보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심을 받들고, 민주열사들과 통일열사들과 노동열사들이 남긴 염원과 지향을 간직하고,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이 실현될 눈부신 미래를 사랑하는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최후 승리가 있으리라고... (2012년 9월 1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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