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26

신포급 전략잠수함은 몇 척인가?

[한호석의 개벽예감](160)
자주시보 2015년 05월 2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2014년 7월에 진행된 북극성-1호 지상시험발사
2. 수중시험발사 실제상황은 가상상황과 완전히 달랐다
3. 미해군 대잠작전기 긴급출동과 오산미공군기지 비상대책회의
4. 조선이 독자설계한 잠수함 4종이 작전배치되었다
5. 조선이 건조한 신형 전략잠수함 3척

▲ <사진 1> 2015년 5월 8일 전략잠수함에서 발사된 북극성-1호가 자세각을 유지하며 정상적인 탄도비행을 하는 장면이다. 그것은 수중사출과 탄도비행을 시차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한 최종결속시험이었다. 최종결속시험에서 성공한 조선은 수중시험발사를 더 이상 진행할 필요가 없다.   ©자주시보


1. 2014년 7월에 진행된 북극성-1호 지상시험발사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동해에서 2015년 5월 8일에 진행된 전략잠수함의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 성공소식을 보도하면서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풍랑을 헤치시고 륙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험발사장소에 도착하시여 새로 개발한 전략잠수함 탄도탄의 전술기술적 제원을 료해하시고 시험발사를 보아주시였다”고 전했다.

그런데 만일 수중시험발사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였다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시험발사장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배를 타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까지 나간 김정은 제1위원장 앞에서 진행되는 수중시험발사가 실패하는 것은 큰 낭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가 성공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시험발사장에 나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5년 5월 8일 수중시험발사 이전에 수중시험발사 성공이 확실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수중시험발사가 몇 차례 더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잠대지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는 세 단계에 걸쳐 순차적으로 진행되는데, 첫째 단계는 잠대지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그 성능을 검증하는 탄도비행시험이고, 둘째 단계는 수중미사일발사관에서 잠대지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그 미사일의 출수시각에 맞춰 로켓엔진을 점화하는 수중사출시험이고, 마지막 단계는 수중사출과 탄도비행을 시차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하는 최종결속시험이다. <조선일보> 2015년 5월 9일 보도는 잠대지탄도미사일이 수상사출시험, 수중사출시험, 잠수함사출시험의 3단계를 거쳐 작전배치된다고 하였지만, 미사일을 발사관에서 쏘아올리는 사출은 수상에서 진행하거나 지상에서 진행하거나 아무런 차이가 없으므로 구태여 수상사출시험이라는 말을 쓸 필요는 없다. 따라서 수상사출시험이라는 말은 탄도비행시험이라는 말로 바꿔 써야 뜻이 더 명확해진다.

탄도비행시험에서 성공해야 수중사출시험을 진행할 수 있고, 수중사출시험에서 성공해야 최종결속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데, 한국 국방부는 조선이 2015년 5월 8일에 진행한 수중시험발사를 수중사출시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그들의 주장대로 2015년 5월 8일에 수중사출만 진행되었다면 북극성-1호가 정상적인 탄도비행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해수면 위로 출수한 북극성-1호는 자세각을 유지하며 정상적인 탄도비행을 하였다. 북극성-1호가 약 100~150m를 날아갔을 것이라는 한국 언론의 추측보도는 엉터리다.

2015년 5월 8일 조선이 진행한 수중시험발사는 누가 봐도 수중사출과 탄도비행을 시차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한 최종결속시험이었다. 조선은 북극성-1호 최종결속시험에서 수중발사기술이 완성되었음을 검증하였으므로 앞으로 수중시험발사를 더 이상 진행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조선은 북극성-1호 시험발사의 첫 단계인 탄도비행시험을 언제 어떻게 진행했던 것일까? 조선이 북극성-1호 탄도비행시험을 진행한 경과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한국의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조선은 2014년 2월부터 7월 사이에 8종의 미사일을 250여 발 발사했다. 조선이 각종 미사일을 그처럼 무더기로 발사한 것은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그 가운데는 신형 미사일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는 시험발사도 있었고, 기존 미사일을 발사하여 가상표적에 명중시키는 화력타격연습도 있었다. 조선이 신형 미사일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2014년에 진행하였던 시험발사들 가운데는 북극성-1호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는 시험발사도 있었다. 북극성-1호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는 시험발사는 아래와 같이 두 가지 조건에 맞춰 진행되었다.

첫째, 2014년에는 북극성-1호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조선은 그 미사일을 시험발사할 때 미국의 공중감시망을 따돌려야 하였다. 조선이 2014년에 진행한 북극성-1호 시험발사는 항행금지구역을 사전에 설정하지 않고 진행된 기습발사였고, 미국의 정찰위성이 예상하지 못하는 불의의 장소에서 진행된 불시발사였다.

둘째, 앞서 발표한 나의 글에서 논한 대로 북극성-1호 사거리는 1,500km로 추정되므로, 조선은 그 미사일의 사거리를 3분의 1로 줄여 쏘는 단축발사를 진행해야 하였다. 왜냐하면, 조선이 북극성-1호를 서부지역에서 발사하여 동해의 영해선 안쪽에 탄착시키려면 500km 이상 비행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주목하는 것은, 조선이 항행금지구역을 설정하지 않고, 미국의 정찰위성이 평소에 집중감시하는 지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역에서 불시에 기습적으로 발사한 미사일이 500여 km를 날아간 사례들이 유독 2014년 7월에만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2014년 7월 9일 황해북도 평산군에서 발사된 미사일 2발은 500여 km를 날아가 동해상에 탄착하였고, 7월 13일 개성 북쪽에서 발사된 미사일 2발도 500여 km를 날아가 동해상에 탄착하였고, 7월 26일 황해남도 장산곶에서 발사된 미사일 1발도 500여 km를 날아가 동해상에 탄착하였다.

조선이 작전배치한 단거리탄도미사일들 가운데 사거리가 500km인 미사일은 없다. 화성-5호 사거리를 500km라고 추정하는 일부 군사전문가들이 있지만, 그 미사일의 사거리가 300~700km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므로, 500km라고 특정할 수는 없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4년 7월 조선의 서부지역에서 며칠간격을 두고 연속 발사되어 동일하게 500여 km를 날아간 그 미사일의 정체가 북극성-1호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은 2014년 7월 중에 북극성-1호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는 시험발사를 세 차례 진행하면서 그 미사일 5발을 발사하였던 것이다. 2014년 7월 북극성-1호 탄도비행시험에서 그 미사일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한 조선은 전략잠수함에 그 미사일을 싣고 동해로 나가 수중에서 시험발사하는 다음 단계에 들어설 수 있었다.

▲ <사진 2> 이 사진은 2014년 인도가 인도양에서 잠대지탄도미사일 K-15 싸가리카를 시험발사할 때 사용한 잠함이다. 인도는 수중미사일발사관이 설치된 이 잠함을 30m 발사수심에 침하시킨 뒤 거기에서 K-15를 발사하였으나, 기술적으로 실패하였다.     © 자주시보

그런데 다른 나라의 잠대지탄도미사일 개발경험을 보면, 수중시험발사라고 해서 처음부터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예컨대, 조선이 북극성-1호를 시험발사한 2014년에 인도도 잠대지탄도미사일 K-15 싸가리카(Sagarika)를 시험발사하였는데, 인도의 수중시험발사는 조선의 수중시험발사와 달랐다.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인도는 수중미사일발사관이 설치된 잠함(潛函)을 30m 발사수심에 침하시킨 뒤 거기에서 K-15를 발사하는 식으로 수중시험발사를 두 차례 진행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그런데 조선은 잠대지탄도미사일을 잠함에서 쏘아올리는 수중시험발사를 생략하고, 전략잠수함에 북극성-1호를 싣고 동해로 나가 수중에서 시험발사하였다. 이런 사정을 보면, 북극성-1호 개발사업 책임자들은 수중시험발사를 진행할 때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에 넘쳐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수중시험발사 실제상황은 가상상황과 완전히 달랐다

2015년 5월 8일 이전에 조선에서 진행된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관한 소식을 국제사회에 알려준 사람은 미국의 언론인 빌 거츠(Bill Gertz)와 미국의 군사전문가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다. 미국 국방부와 정보기관 관리들에게서 들은 정보를 인용한 빌 거츠의 기사는 2014년 8월부터 몇 차례 <워싱턴자유횃불(WFB)>에 실렸고,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촬영된 상업위성사진을 분석한 조셉 버뮤디즈의 기사는 2014년 10월부터 몇 차례 <38 노스(North)>에 실렸다. 미국 정부관리들에게서 얻은 빌 거츠의 정보가 상업위성사진을 분석한 조셉 버뮤디즈의 정보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빌 거츠가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5월 5일판에 실은 기사를 읽어보면, 조선이 북극성-1호 시험발사를 2015년 5월 8일 이전에 세 차례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언급한 조선의 시험발사경과를 살펴보면, 2014년 10월 지상시험발사가 진행되었고, 2015년 1월 23일 수상시험발사가 진행되었고, 2015년 4월 22일 수중시험발사가 진행되었는데, 미국 정보기관들은 2015년 4월 22일 조선이 “사출시험(ejection test)”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음을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빌 거츠는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3월 19일판 기사에 이렇게 썼다. “조선은 2014년 11월 신포조선소 남쪽에 설치된 지상발사대에서 사출시험을 진행한 뒤 (2015년) 2월 KN-11 비행시험(북극성-1호 비행시험을 뜻함-옮긴이)을 진행하였”는데, “미국 정보기관들은 미국 국방부가 KN-11 잠대지탄도미사일이라 부르는 미사일의 첫 비행시험을 2015년 2월에도 탐지하였다.” 

빌 거츠가 쓴 3월 19일판 기사와 5월 5일판 기사를 비교하면, 그가 시험발사시점을 헷갈렸음을 알 수 있다. 그는 2014년 10월이라고 써야 하는데 11월이라고 잘못 썼고,  2015년 1월이라고 써야 하는데 2월이라고 잘못 썼다. 그런 착오가 발생한 까닭은, 빌 거츠가 <워싱턴자유횃불> 5월 5일판 기사에서 “그 미사일프로그램(북극성-1호 개발사업을 뜻함-옮긴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비공개로 남아있다”고 지적한 것처럼, 미국의 국방부와 정보기관들이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빌 거츠가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관해 쓴 기사들 속에 그의 빗나간 추측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대한 빌 거츠의 빗나간 추측은 조선이 2014년 10월부터 2015년 4월 22일까지 지상발사시험→수상발사시험→수중발사시험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였다고 기록한 부분이다. 그가 조선의 수중발사시험에 앞서 지상발사시험과 수상발사시험이 각각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 까닭은, 신포조선소 정박장을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에서 지상발사대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물체와 수상발사대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물체를 찾아내고 그에 대해 장황하게 언급한 조셉 버뮤디즈의 빗나간 영상자료분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 28일 <38 노스>에 실린 기사에서 조셉 버뮤디즈는 신포조선소 정박장 인근에 지상발사대처럼 생긴 물체가 서 있는 것이 보이는 상업위성사진을 분석하면서 그 물체를 북극성-1호 지상발사대라고 추정하였는데, 빌 거츠는 같은 날 <워싱턴자유횃불>에 실린 자신의 기사에서 버뮤디즈의 그런 추정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였다.

그러나 조선이 2014년 10월에 진행한 북극성-1호 시험발사의 실제상황은 조셉 버뮤디즈와 빌 거츠가 머릿속에서 그려본 가상상황과 완전히 달랐다. 실제상황은 어떠하였을까? 

▲ <사진 3> 2014년 10월 28일 주일미해군항공기지를 이륙한 최신형 대잠작전기 포싸이든 P-8A 한 대가 동해 상공으로 날아갔다. 바로 그 시각 동해에서는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를 처음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미해군 대잠작전기는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현장을 촬영하고 오산미공군기지에 착륙하였는데, 그 기지에서는 미국태평양사령부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장성급 지휘관들이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 자주시보


3. 미해군 대잠작전기 긴급출동과 오산미공군기지 비상대책회의

미국 해군은 바다속에 숨어있는 적국 잠수함을 공중에서 탐지, 공격하는 대잠작전에 최신형 무장장비를 동원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진 3>에서 보는 포싸이든(Poseidon) P-8A 대잠작전기다. 한국에서는 포세이돈이라고 읽는다. 다기능해양정찰레이더를 장착하고 시속 815km로 비행하는 이 대잠작전기가 바다속에 숨어있는 적국의 잠수함을 탐지하면, 폭탄창을 열고 경어뢰 마크(Mark) 54를 활공강하폭탄처럼 투하하여 잠수함을 공격한다. 미국은 주일미해군항공기지들에 전진배치해놓은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 4대를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수시로 출동시켜 중국 잠수함들을 감시해왔다. 이를테면, 2014년 8월 19일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 1대가 중국의 싼야(三亞)잠수함기지가 있는 중국 남부 하이난섬 동쪽 해상에 나타났는데, 중국 요격기들이 긴급출격하여 근접비행으로 견제하자 항로를 바꿔 돌아갔다. 미국은 북침전쟁연습으로 알려진 ‘독수리연습’을 한반도 남부작전구역에서 감행할 때도,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를 동원하여 항공대잠작전을 연습한다. 

그런데 중국 잠수함에 대한 항공감시와 ‘독수리연습’의 항공대잠작전에 동원되는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2014년 10월 28일 주일미해군항공기지를 이륙하여 한반도 인근해상에 나타났다. ‘독수리연습’이 진행되는 일정에 따라 해마다 3월 중에 한반도 인근해상에 나타나곤 하던 그 대잠작전기가 예정도 없이 10월 말에 갑자기 나타났으니, 심상치 않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그처럼 매우 이례적으로 한반도 인근해상에 출현한 사건은 2014년 11월 7일 <문화일보> 보도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는 동해에서 대잠정찰비행을 마친 뒤에 주일미해군항공기지로 귀대하지 않고 기수를 돌려 경기도 오산에 있는 미공군기지에 착륙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대잠작전기가 동해에서 대잠정찰비행을 하던 바로 그 시각 오산미공군기지에서는 미국태평양사령부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장성급 고위지휘관들이 집결하여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동해 상공에서 촬영해온 항공정찰자료를 놓고 비상대책을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대잠작전기가 출동하였고 고위급 비상대책회의까지 진행된 2014년 10월 28일은 조선의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관한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기 다섯 달 전이었으므로,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왜 한반도 인근해상에 긴급출동하였는지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밝혀진 것은 조선이 바로 그 날 동해에서 북극성-1호 시험발사를 진행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한미국군사령부 장성급 지휘관들이 용산기지에서 오산기지로 내려간 것만이 아니라 미국태평양사령부 장성급 지휘관들까지 하와이기지에서 오산기지로 날아가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한 것을 보면, 미국에게 매우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빌 거츠가 위에서 언급한 기사에서 추측한 대로, 만일 조선이 북극성-1호를 지상발사대에서 쏘는 단순하고 초보적인 시험발사를 2014년 10월 28일에 진행하였다면, 미국태평양사령부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장성급 지휘관들이 오산미공군기지에 집결하여 비상대책회의까지 진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한 것은, 2014년 10월 28일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북극성-1호를 싣고 동해로 나가 제1차 수중시험발사를 진행하였음을 말해주는 뚜렷한 방증이다. 

둘째, 미국태평양사령부 장성급 지휘관들이 군용항공기를 타고 하와이기지를 이륙하여 오산기지까지 아무리 부리나케 날아가도 9시간은 족히 걸린다. 따라서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북극성-1호를 싣고 수중시험발사장을 향해 신포조선소 정박장을 출항하였다는 보고가 미국태평양사령부에 전달되자마자 그 사령부의 장성급 지휘관들이 허겁지겁 오산기지로 날아갔다 해도,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가 진행되는 때에 맞춰 오산기지에 도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사정을 파악하면, 당시 미국군 지휘부는 이미 며칠 전부터 각종 항공정찰수단을 동원하여 신포조선소 정박장에서 움직이는 전략잠수함 동향을 면밀히 감시해오다가 그 전략잠수함이 10월 28일에 수중시험발사를 진행하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파악하였고, 미국태평양사령부 장성급 지휘관들은 10월 28일 이전에 오산기지에 미리 도착하여 북극성-1호가 수중시험발사를 개시할 때를 대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빌 거츠는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5월 11일판 기사에서 미국 정부관리들의 말을 인용하여 “미국 정보기관들이 조선의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을 면밀히 감시해왔으며, 그 시험발사가 곧 진행되리라는 것을 지난 며칠 동안 예상하고 있었다”고 지적하였는데,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에 대한 미국의 항공감시는 이미 2014년 10월 28일 직전부터 시작되었다. 

셋째, 미국 해군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조선의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에 관한 영상정보와 신호정보를 수집하려면, ‘독수리연습’을 진행하던 때처럼 조선 영공에서 멀리 떨어진 남해 상공을 맴돌며 정찰비행을 해서는 안 되고, 수중시험발사현장에 되도록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동해 중부상공으로 북상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의 기억 속에는 그들이 지난날 겪었던 뼈저린 경험들이 지워지지 않고 지금도 악몽처럼 남아있다. 대북정찰비행을 감행하던 미국 정찰기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돌진해온 조선의 추격기들에게 격추되어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몰살경험도 있고, 신출귀몰하는 조선의 추격기들에게 붙잡힌 미국 정찰기가 하마터면 공중에서 나포되어 조선으로 끌려갈 뻔했던 공포경험도 있다. 이를테면, 1959년 6월 16일 조선의 추격기들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은 미국 정찰기 RB-45는 승무원이 기총사격으로 중상을 입자 황망히 달아났고, 1965년 4월 27일 조선의 추격기들로부터 기습적인 기총사격으로 기체가 만신창이가 된 미국 정찰기 EC-121은 간신히 추락을 면하고 일본 요꼬다공군기지로 돌아갔고, 1969년 4월 15일 조선의 추격기들로부터 공대공미사일 기습공격을 받고 격추된 미국 정찰기 EC-121에 탑승한 승무원 31명은 전원 몰살당했으며, 1981년 8월 26일 조선의 영공에 접근하던 미국 정찰기 SR-71은 조선이 발사한 지대공미사일에 피격될 위험을 간신히 넘겼으며, 2003년 3월 2일 미국 전략정찰기 RC-135S는 조선의 추격기들에게 공중에서 나포당하여 조선으로 끌려갈 뻔하였다.

이런 악몽 같은 경험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뼈아픈 ‘학습효과’를 얻은 미국군 지휘부는 2014년 10월 28일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를 동해 중부상공으로 북상시킬 때 조선의 추격기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대잠작전기만 보낼 수 없었을 것이고, 대잠작전기를 호위하는 전투기 편대도 함께 보낸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0월 28일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동해에서 진행한 제1차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를 항공정찰을 통해 파악한 미국은 조선이 잠대지탄도미사일을 수중에서 발사하는 전략잠수함을 보유하였음을 확인하였고, 그 잠수함에서 북극성-1호가 발사되는 장면을 영상자료를 통해 확인하였다.

바닷속에 설정된 50m 발사수심까지 침하한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동해 상공으로 북극성-1호를 쏘아올리는 수중시험발사는 그처럼 2014년 10월 28일에 시작되어, 2015년 1월 23일, 4월 22일, 5월 8일로 이어졌다.

빌 거츠가 미국 정보기관이 흘려준 정보를 인용하여 쓴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5월 5일판 기사에 따르면, 조선은 2015년 4월 22일 수중시험발사에서 성공하였다. 북극성-1호 개발사업 책임자들은 2015년 4월 22일 수중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만 보고서는 성공을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그보다 앞서 2014년 10월 28일과 2015년 1월 23일에도 수중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을 보고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처럼 세 차례 진행된 수중시험발사에서 연속적으로 성공하였기 때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5년 5월 8일 최종적으로 진행된 수중시험발사를 현장에서 직접 참관한 것이고,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수중시험발사가 기술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대서특필한 것이다. 이처럼 네 차례 진행된 수중시험발사에서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북극성-1호를 동해 상공으로 쏘아올리며 성공할 때마다, 미국은 자기들에게 엄습해오는 공포를 느끼며 전율했을 것이다.

▲ <사진 4> 2015년 1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참가한 로미오급 잠수함이다. 같은 로미오급 잠수함이라도 이 잠수함은 지난 시기 소련과 중국에서 운용하였던 로미오급 잠수함과 다르다. 이 사진에서 보는 조선의 로미오급 잠수함은 조선이 1980년대 기술로 개량한 것이므로 다른 나라들에서 운용한 로미오급 잠수함들보다 성능이 훨씬 더 우수하다.     © 자주시보


4. 조선이 독자설계한 잠수함 4종이 작전배치되었다

북극성-1호 개발사업은 그 미사일을 만드는 사업만이 아니라 그 미사일을 발사하는 수중미사일발사체계를 만드는 사업까지 포함한다. 이렇듯 북극성-1호와 수중미사일발사체계를 동시에 개발하는, 공학기술적으로 매우 어렵고 방대한 사업을 몇 년 동안 완료하는 것은, 조선이 아무리 ‘조선속도’를 창조하고 있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전략잠수함에서 북극성-1호를 수중발사하는 기술을 개발, 완성하는 것도 어렵지만, 북극성-1호를 발사한 전략잠수함을 개발, 완성하는 것은 더 어렵다.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이 함교에 설치된 신포급 전략잠수함은 언제 건조된 것일까? 그 건조시기를 파악하려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조선은 수중배수량이 1,830t인 로미오급 잠수함을 1976년부터 건조하기 시작하여 1995년까지 20년 동안 모두 22척 건조하였는데, 1995년 이후에는 로미오급 잠수함을 더 이상 건조하지 않았다. 로미오급 잠수함을 건조하는 원천기술은 오래 전에 소련에서 개발된 것인데, 중국은 소련의 기술지원으로 로미오급 잠수함을 건조하였고, 조선은 중국의 기술지원으로 로미오급 잠수함을 건조하였다. <사진 4>는 2015년 1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참가한 로미오급 잠수함을 촬영한 것인데, 그 잠수함은 조선에서 건조된 개량형 로미오급 잠수함이다. 지난 시기 소련과 중국에서 운용하던 로미오급 잠수함과 외형부터 상당히 다르다. 

둘째, 로미오급 잠수함 22척을 건조하면서 잠수함건조기술을 습득한 조선은 1980대 중반부터 독자설계한 조선식 잠수함을 건조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이 독자적인 설계기술로 건조한 조선식 잠수함은 그 동안 영상자료를 통해 알려진 것만 해도 네 종이다. 수중배수량이 적은 잠수함부터 차례로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 <사진 5> 2015년 1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참가한 수중배수량 390t급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소형 잠수함을 상어II/K-300이라는 자의적 명칭으로 부른다, 1996년 강릉 해안에 좌초된 잠수함의 개량형인데, 조선은 이 잠수함을 40척 이상 대량으로 작전배치하였으니, 엄청난 잠수함전력을 보유한 것이다.     © 자주시보

<사진 5>는 2015년 1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참가한 잠수함이다. 미국은 2005년 정찰위성을 통해 이 잠수함의 존재를 확인하였고, 상어 II/K-300이라는 자의적 명칭을 붙였다. 수중배수량이 390t인 이 소형 잠수함은 1996년 강릉 해안에 좌초된 잠수함의 개량형이다. 2011년 3월 현재, 조선은 이 잠수함을 40척 이상 대량으로 작전배치하였으니, 엄청난 잠수함전력을 보유한 것이다. 

▲ <사진 6> 2012년 3월 13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합동타격훈련에 참가한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잠수함의 존재를 정찰위성을 통해 확인하지 못해서 자의적 명칭도 붙이지 못했다.     © 자주시보

<사진 6>은 2012년 3월 13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합동타격훈련에 참가한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잠수함의 존재를 정찰위성을 통해 확인하지 못해서 자의적 명칭도 붙이지 못했다.

▲ <사진 7> 2014년 5월 31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기록영화 '백두산 훈련열풍으로 무적의 강군을 키우시여'에 나온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잠수함의 존재를 정찰위성을 통해 확인하지 못해서 자의적 명칭도 붙이지 못했다.     © 자주시보

<사진 7>은 2014년 5월 31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기록영화 ‘백두산 훈련열풍으로 무적의 강군을 키우시여’에 나온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잠수함의 존재를 정찰위성을 통해 확인하지 못해서 자의적 명칭도 붙이지 못했다.

▲ <사진 8> 2015년 5월 8일 조선의 전략잠수함 탄도탄 수중시험발사에 동원된 신포급 잠수함이다. 신포급 잠수함은 <사진 7>에서 보는 익명의 잠수함과 함체크기가 비슷하다. 그 익명의 잠수함을 이미 작전배치한 조선이 그와 함체크기가 비슷한 신포급 잠수함을 추가로 건조한 까닭은, 최후결전에서 미국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는 핵추진 전략잠수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자주시보

<사진 7>에서 보는 익명의 잠수함과 <사진 8>에서 보는 신포급 전략잠수함은 함체크기가 서로 비슷해 보인다. <사진 7>에서 보는 익명의 잠수함을 이미 작전배치한 조선이 그와 함체 크기가 비슷한 신포급 잠수함을 추가로 건조한 까닭은, 최후결전에서 미국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는 핵추진 전략잠수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사진 9> 이 사진은 이란의 소형 잠수함들이 페르시아만으로 집단출동하는 장면이다. 조선의 소형 잠수함들이 수중매복구역에서 불시에 나타나 사면팔방에서 집단적으로 기습공격을 퍼부으면 미국의 항모타격단은 살아남지 못한다.     © 자주시보


5. 조선이 건조한 신형 전략잠수함 3척

잠수함을 건조하는데서 조선이 견지해오는 원칙은 크기가 작은 잠수함을 많이 만드는 소형다함주의다. 조선이 잠수함을 건조할 때 소형다함주의를 견지하는 까닭은 적의 음파탐지망을 뚫고 은밀기동, 근접매복, 불시타격을 수행하는 수중유격전에 가장 적합한 것이 소형 잠수함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디젤전동식 소형 잠수함들은 최후결전에서 미국의 항모타격단을 격침하기 위한 잠수함들이다. <사진 9>는 이란의 소형 잠수함들이 페르시아만으로 집단출동하는 장면인데, 조선의 소형 잠수함들이 수중매복구역에서 불시에 나타나 사면팔방에서 집단적으로 기습공격을 퍼부으면 미국의 항모타격단은 살아남지 못한다.

<국방일보> 2014년 3월 31일판 기사에 따르면, 잠수함 함체크기는 능동식 음파탐지기가 탐지하는 거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모의실험결과는 잠수함의 함체크기가 작을수록 능동식 음파탐지기가 탐지하는 거리가 짧아져 탐지될 확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잠수함 함체크기가 작을수록 엔진소음도 적게 나기 때문에, 수동식 음파탐지기에 탐지될 확률이 낮아진다. 그래서 조선은 디젤전동식 잠수함만이 아니라 핵추진 잠수함도 작게 만들었다.
앞서 발표한 나의 글에서 논한 대로, 조선의 신포급 잠수함은 프랑스의 루비급 핵추진 잠수함처럼 소형 가압경수로 1기를 설치한 경량급 핵추진 전략잠수함이므로, 그 전략잠수함을 건조한 시기는 경수로제작기술을 개발한 시기와 밀접히 연관된다.

조선의 경수로개발사업은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 조선이 소련으로부터 경수로 1기를 도입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면서 경수로 4기를 조선에 건설하기 위한 협정을 체결한 때는 1985년 12월이었는데, 비록 소련의 경수로를 도입하지 못했고, 경수로건설협정도 이행되지 못하였으나, 그 무렵 조선은 소련으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경수로제작기술을 이전받았다.
그로부터 약 10년 동안 조선은 경수로제작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힘썼고, 1995년경 우라늄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여 마침내 비밀시설에서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개발한 조선에게 경수로 개발은 공학기술적으로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선신보> 2009년 11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의 기계공업부문 관계자들은 우라늄농축기술이 확보되면 경수로설비를 제작하고 조립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였고, 경수로제작과 관련된 기술지표들에 대한 타산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경수로 국산화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은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소형 경수로를 1998년경 완공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이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착수한 때는 그보다 조금 앞선 1995년이다. 조선의 기록영화 ‘련속참관기-장군님과 동지,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아서 (9)’에는 1995년 4월 2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광진 조선인민군 차수로부터 신형 잠수함 축소모형에 관한 보고를 받는 현장을 촬영한 사진이 나오는데, 그 사진은 조선의 핵추진 잠수함 개발이 1995년에 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1995년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착수한 조선의 개발속도를 아무리 늦춰 잡아도 개발착수시기로부터 약 10년 동안 설계, 경수로제작, 부품제작을 모두 끝내고 2005년부터는 지하잠수함기지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조립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조선은 2005년부터 오늘까지 신포급 핵추진 전략잠수함을 몇 척 건조하였을까? 핵추진 잠수함은 디젤전동식 잠수함과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잠수함건조능력이 막강하다는 나라도 핵추진 잠수함을 해마다 1척씩 건조하지 못한다.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과 함체크기가 엇비슷한 루비급 핵추진 잠수함을 4척 건조한 프랑스의 경험을 보면, 경량급 핵추진 잠수함은 3년에 1척씩 건조되었다. 조선의 2000년대 핵잠건조능력과 프랑스의 1980년대 핵잠건조능력이 엇비슷하다고 보면, 조선은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 3척을 건조한 것이다.  

그런데 잠수함을 건조하고 나서 시험운전기간을 거쳐 작전배치하기까지 5년 걸린다. 5년이라는 기간을 생각하면, 2005년에 첫 번째로 건조된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 1척은 2010년에 작전배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연합뉴스> 2015년 5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찰위성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신포급 잠수함을 처음 식별한 때는 2012년 5월이다. 

2010년에 두 번째로 건조된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 1척은 올해 2015년에 작전배치되고, 2015년에 세 번째로 건조된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은 2020년에 작전배치될 것이다. 그러므로 2015년 현재 조선에서는 신포급 핵추진 전략잠수함 2척이 작전배치되었고, 나머지 1척은 시험운전을 시작하였다.

▲ <사진 10> 미국의 해군전문 웹싸이트 <커벗 쇼어즈(Covert Shores)>에 현시된 신포급 전략잠수함의 북극성-1호 수중발사장면 상상도다. 전략잠수함은 그것을 막을 방어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강의 무장장비이며, 전쟁을 그것 한 방으로 단숨에 끝낼 수 있다는 점에서 최상의 무장장비다. 조선은 조국해방 70주년, 당창건 70주년을 맞이한 전환적 시기에 전략잠수함 수중시험발사 성공으로 최후결전준비를 마침내 완성할 수 있었다.     © 자주시보

<사진 10>에서 보는 것처럼, 수중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지상목표를 타격하는 전략잠수함이야말로 조선 특유의 전법인 고속기동, 매복기습, 화력집중, 섬멸타격에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무장장비다. 전략잠수함은 그것을 막을 방어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강의 무장장비이며, 전쟁을 그것 한 방으로 단숨에 끝낼 수 있다는 점에서 최상의 무장장비다.

조선은 미국의 핵타격위협과 경제제재를 뚫고 나가느라고 남들과 달리 허리띠와 신들메를 단단히 졸라매고 간고분투해야 하였지만, 2015년 5월 8일 전략잠수함의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에서 완전한 성공을 거둠으로써 조선에서 조국해방 70주년, 당창건 70주년을 맞이한 전환적 시기에 최후결전준비를 마침내 완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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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9

최후일격 암시하는 북극성-1호

[한호석의 개벽예감](159)
자주시보 2015년 05월 18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수중시험발사장에 나타난 신포급 전략잠수함
2. 바닷물 가르며 솟구쳐 오른 탄도미사일 2발
3. 발사수심 50m에서 대기하는 전략핵탄미사일
4. 조선은 대서양에서 최후일격 날린다  

▲ <사진 1> 2015년 5월 9일 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장에 나타난 조선의 전략잠수함은 외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잠수함이다. 그런데 그 잠수함은 전략잠수함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작은 잠수함이다. 전략잠수함에는 가압경수로와 탄도미사일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 사진에서 보는 조선의 전략잠수함은 크기가 너무 작다. 크기가 저렇게 작은 경량급 잠수함이 어떻게 전략잠수함으로 될 수 있을까?      ©자주시보


1. 수중시험발사장에 나타난 신포급 전략잠수함
 
핵탄미사일로 무장한 최강의 수중전략무기는 전략잠수함이다. 전략잠수함들에는 강력한 추진력을 뿜어내는 가압경수로가 설치되었다. 가압경수로를 잠수함에 설치하면, 잠수함의 중량이 그만큼 더 무거워지고, 몸집도 더 커진다. 5대 핵강국들인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이 모두 비대화된 중량급 전략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 중량급 전략잠수함을 비대한 순서대로 열거하면, 러시아의 아쿨라급(Akula-class) 전략잠수함은 48,000t, 미국의 오하이오급(Ohio-class) 전략잠수함은 18,750t, 영국의 밴가드급(Vanguard-class) 전략잠수함은 15,900t, 프랑스의 트리옴팡급(Triomphant-class)급 전략잠수함은 14,335t, 중국의 진급(Jin-class) 전략잠수함은 11,500t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조선의 전략잠수함도 중량급 잠수함일 것이라고 상상하였다. 그런데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2015년 5월 9일 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조선의 전략잠수함은 두 눈을 의심하리만치 작은 경량급 잠수함이었다.

전략잠수함에는 가압경수로, 탄도미사일, 중어뢰를 모두 설치해야 하므로 중량급으로 설계될 수밖에 없는데, 조선의 전략잠수함은 크기가 너무 작아서 중어뢰 이외에 가압경수로와 탄도미사일은 들여놓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 성공소식을 전한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보도기사의 제목에 “전략잠수함 탄도탄수중시험발사에서 완전성공”이라고 썼고, 보도기사의 본문에서도 그 잠수함을 전략잠수함이라고 수차례 명기하였다. 조선에서는 전략잠수함이라는 말을 다른 뜻으로 쓰는 것일까?

▲ <사진 2> 신포급 잠수함은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을 함교 안에 수직으로 설치하였다. 그 발사관 안에 탄도미사일이 들어있다. 그렇게 하면 경량급 잠수함에서도 얼마든지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다른 핵강국들이 운용하는 중량급 전략잠수함들은 함교가 아닌 함체 안에 수중미사일발사관을 10문 이상 수직으로 설치하였다. 하지만 유사시 조선의 전략잠수함들은 그처럼 많은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필요가 없다. 조선이 말하는 최후일격은 한 방으로 끝내버리는 핵타격이기 때문이다.     © 자주시보

 
▲ <사진 3> 위쪽 사진은 신포급 잠수함을 촬영한 것이고, 아래쪽 사진은 조선의 로미오급 잠수함을 촬영한 것이다. 함교의 크기와 높이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자주시보

미국 국방부는 조선이 이번에 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에 사용한 잠수함을 신포급 잠수함이라 부른다. 조선에서는 크고 무거운 탄도미사일을 경량급인 신포급 잠수함에 어떻게 설치하였을까?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에서는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을 함교 안에 설치하도록 독특하게 설계하였다.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의 로미오급 잠수함의 함교와 신포급 잠수함의 함교를 비교하면, 신포급 잠수함의 함교높이가 더 높고 특히 함교폭이 훨씬 더 넓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이 들어갔으니 신포급 잠수함의 함교가 그처럼 커진 것이다.

그런데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을 함교 안에 설치하는 경우, 문제가 생긴다. 잠수함 함교 안에는 4가지 장비가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데,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을 설치하고 남은 공간에는 도저히 그 4가지 필수장비를 들여놓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함교에서 해수면 위로 떠밀어 올려놓고 사용하다가 필요에 따라 함교 안으로 완전히 집어넣는 4가지 필수장비는 통신장대(communication mast), 레이더장대(radar mast), 전자교란장대(ECM mast), 잠망경이다.

▲ <사진 4> 신포급 잠수함 함교부분을 확대한 사진이다. 붉은 원으로 표시된 부분은 잠수함으로 드나드는 2개의 출입문이다. 함교 안에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을 설치하였으므로, 출입문을은 함교 바깥쪽에 냈다. 푸른 원으로 표시된 미확인 물체가 함교 꼭대기에 설치되었다. 조선의 전략잠수함은 잠망경, 레이더장대, 전자교란장대, 통신장대를 함교에 일렬로 길게 늘어놓지 않고 그 물체 안에 모두 집어넣었다. 함교 안에 수중미사일발사관을 설치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 자주시보

신포급 잠수함의 함교부분을 확대한 <사진 4>를 보면, 붉은 원으로 표시된 것이 잠수함으로 드나드는 2개의 출입문임을 알 수 있는데, 푸른 원으로 표시된 미확인 물체도 보인다. 소형 선박의 돛대 비슷하게 생긴 그 물체는 함교 상판 뒤쪽에 설치되었다. 조선의 잠수함설계가들은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이 설치된 함교에서 통신장대, 레이더장대, 전자교란장대, 잠망경을 일렬로 늘어놓을 공간을 찾을 수 없었으므로, 그것은 모두 한 다발로 묶은 물체를 함교 뒤쪽에 그렇게 설치한 것이다. 

미국의 해군전문 웹싸이트 <커벗 쇼어즈(Covert Shores)>에 현시된 ‘분석-신포급 탄도미사일 잠수함’이라는 제목의 자료에 따르면, 신포급 잠수함의 함체길이는 68m이고, 함체폭은 6.5m로 추산된다. 한국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조선일보> 2014년 11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신포급 잠수함의 수중배수량은 2,500~3,000t, 함체길이는 67m, 함체폭은 6.6m로 추산된다.

▲ <사진 5> 이 사진에 보이는 프랑스의 루비급 잠수함은 함체크기가 신포급 잠수함과 거의 같은 경량급 잠수함이다. 그런데 그처럼 크기가 작은 루비급 잠수함에 가압경수로가 설치되었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조선의 신포급 잠수함을 전략잠수함이라고 부른 것은 조선이 그 잠수함을 루비급 잠수함처럼 경량급 핵추진 잠수함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 자주시보

수중배수량이 2,500~3,000t밖에 되지 않는 경량급 잠수함 함교에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을 설치하였다면, 함체 안에 가압경수로도 설치할 수 있을까? 기존 핵잠보유국들이 운용하는 각급 잠수함들 가운데 수중배수량과 함체길이가 신포급 전략잠수함과 아주 비슷한 경량급 잠수함은 <사진 5>에서 보는 프랑스의 루비급(Rubis-class) 잠수함이다. 루비급 잠수함은 수중배수량이 2,600t이고, 함체길이가 73.6m이므로, 신포급 잠수함과 함체크기가 거의 같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신포급 잠수함과 크기가 거의 같은 루비급 잠수함에 48메가와트급 가압경수로 1기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이다. 수중배수량이 10,000t이 훨씬 넘는 중량급 핵추진 잠수함들에는 출력이 200메가와트가 넘는 대형 가압경수로가 설치되었지만, 크기가 작은 루비급 잠수함에는 소형 가압경수로가 설치되었다. 소형 가압경수로를 설치한 경량급 핵추진 잠수함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의 루비급 잠수함이 핵추진 잠수함이지만 전략잠수함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루비급 잠수함은 사거리 180km의 엑소제(Exocet) 대함미사일과 533m 중어뢰를 실을 뿐, 핵탄미사일은 싣지 못한다. 수중미사일발사관이 없는 루비급 잠수함은 어뢰발사관에서 엑소제 대함미사일을 수중발사한다. 핵탄미사일을 설치하지 못하는 루비급 잠수함은 전략잠수함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프랑스가 1970년대의 잠수함건조기술로 경량급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였다면, 조선도 2000년대의 잠수함건조기술로 경량급 핵추진 잠수함을 능히 건조할 수 있다. 잠수함건조기술과 핵기술에서 조선보다 뒤떨어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도 핵잠건조사업에 착수했다는데, 지난 40년 동안 독자적인 잠수함건조기술을 축적해왔을 뿐 아니라, 고도의 핵기술까지 개발, 완성하여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만드는 조선이 어찌 핵추진 잠수함을 만들지 못하겠는가.

경량급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데서 결정적인 문제는 소형 가압경수로를 만드는 기술인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하는 것은 녕변핵시설단지에 완공된 35메가와트급 경수로가 이미 2014년부터 시험가동되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에게는 이전에 소형 가압경수로를 만들어 신포급 잠수함에 설치해본 선행경험이 있기 때문에, 녕변핵시설단지의 소형 경수로를 그처럼 매우 짧은 기간에 속성으로 건설할 수 있었다. 35메가와트 출력의 경수로는 경량급 핵추진 잠수함에 설치하기에 아주 적합하므로, 신포급 잠수함에 설치된 소형 가압경수로는 35메가와트급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신포급 잠수함은 몸집이 디젤전동식 잠수함만큼 작아도 핵추진 잠수함이기 때문에,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그 잠수함을 전략잠수함이라 부른 것이다.

조선에서는 전략잠수함을 설계할 때 기존 핵잠보유국들의 고정격식화된 발상과 완전히 결별하여 독자적으로 착상하였다. 기존 핵잠보유국들은 중량급 전략잠수함을 만들려고 서로 경쟁하지만, 조선은 정반대로 경량급 전략잠수함을 만든다는 것, 바로 그런 기발한 착상이 중량급 전략잠수함밖에 알지 못하는 세계핵잠건조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의 작전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프랑스의 루비급 핵추진 잠수함은 침하수심 300m, 승조원 68명이며, 도중에 추가로 식량보급을 받지 않고, 해수면에 떠오르지도 않고 15,700km를 잠항하면서 60일 동안 계속 작전할 수 있다. 디젤전동식 잠수함의 최장잠항일수는 15일밖에 되지 않는다. 디젤전동식 잠수함은 시속 37km로 잠항하지만, 핵추진 잠수함은 시속 60km의 경이적인 속도로 바다속을 종횡무진 누빈다. 조선의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도 그처럼 뛰어난 수중작전능력을 가졌다.

▲ <사진 6> 이 위성사진은 2014년 12월 18일 신포항 부두에 있는 신포급 잠수함을 촬영한 것이다. 그 잠수함에 수중미사일발사관을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붉은 원으로 표시된 매우 큰 직사각형 구멍이 함교 상판에 나있는데, 그 구멍에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을 설치하는 것이다. 수중미사일발사관 설치작업에 사용하는 대형 기중기가 함교 바로 옆에 서 있다. 푸른 원으로 표시된 것은 미사일발사시험선박이다.     © 자주시보


2. 바닷물 가르며 솟구쳐 오른 탄도미사일 2발

2015년 5월 9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동해에서 배를 타고 현장에 나가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신포급 전략잠수함의 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가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다. 그 날 성공을 거두기까지 몇 달 동안 신포급 전략잠수함 1척이 신포항 부두에 계속 모습을 드러냈는데,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이 분석해온 위성사진들에서 그 잠수함의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첫째, 2014년 12월 18일에 촬영된 <사진 6>은 신포급 전략잠수함에 수중미사일발사관을 설치하는 작업현장을 보여준다. 이 사진에서 붉은 원으로 표시된 것처럼 신포급 전략잠수함의 함교 상판에 매우 큰 직사각형 구멍이 하나 보이는데, 그 구멍에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이 들어가는 것이다. 수중미사일발사관을 함교 안에 수직으로 세워놓을 때 사용하는 대형 기중기가 함교 바로 옆에 서 있다.

▲ <사진 7> 이 위성사진은 2015년 3월 2일에 촬영된 것이다. 붉은 원으로 표시된 것처럼, 함교 상판에 열어놓은 수중미사일발사관 사출구 2개가 선명하게 보인다.   ©자주시보

둘째, 2015년 3월 2일에 촬영된 <사진 7>은 붉은 원으로 표시된 것처럼 함교 상판에 수중미사일발사관 사출구 2개를 열어놓은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을 함교 안에 설치하는 작업이 완료된 것이다. 미국 전략군사령관 쎄실 헤이니(Cecil D. Haney)가 연방상원 청문회에서 조선의 잠대지탄도미사일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것은 신포급 전략잠수함 함교 안에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을 설치하는 작업이 완료된 직후인 2015년 3월 19일이었다.

셋째, <사진 6>과 <사진 7>을 다시 살펴보면, 신포급 전략잠수함 왼쪽에 정박된 특이한 형태의 선박 1척이 보인다. 이 선박은 탄도미사일 수상시험발사에 사용되는 것이다. 2015년 1월 23일 조선은 바다에 띄워놓은 그 시험선박에 설치한 수직발사관에서 탄도미사일 수상시험발사를 진행하였다.

▲ <사진 8> 이 위성사진은 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가 진행된 다음 날인 2015년 5월 10일에 촬영된 것이다. 푸른 원으로 표시된 물체들은 미사일운반통에 넣은 탄도미사일을 실어나른 대형차량들이다. 붉은 원으로 표시된 물체는 대형차량에서 내려져 X형으로 겹쳐놓아둔 2개의 미사일운반통이다. 미사일운반통을 겹쳐놓은 것은 그 안에 미사일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넷째, <사진 8>은 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다음 날인 2015년 5월 10일에 촬영된 것이다. 사진에서 푸른 원으로 표시된 두 물체는 탄도미사일을 미사일운반통에 넣고 실어나르는 대형차량들이다. 사진에서 붉은 원으로 표시된 물체는 대형차량에서 내려져 X형으로 겹쳐놓아둔 2개의 미사일운반통이다. 미사일운반통이 그렇게 겹쳐놓인 것을 보면, 그 안에 미사일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사일이 들어있는 미사일운반통이라면 X형으로 겹쳐놓을 수 없다.

▲ <사진 9> 2015년 5월 9일 신포급 잠수함에서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솟구쳐오르는 출수장면이다. 근처에 소형선박이 보인다.     © 자주시보

▲ <사진 10> 위의 사진과 거의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이 사진에는 근처에 있던 소형선박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신포급 잠수함이 탄도미사일 2발을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발사하였음을 말해준다. 이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탄도미사일은 해수면에서 약 70도 각도로 상승비행을 하였다. 그런데도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신포급 잠수함이 잠대지탄도미사일 1발을 시험발사했는데 150m 정도 날아가다가 해수면에 떨어졌다느니 하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 자주시보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사진 8>이 촬영되기 하루 전인 지난 5월 9일 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를 진행할 때 신포급 전략잠수함에서 탄도미사일 2발이 발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9>에서 보는 선박 1척은 탄도미사일이 발사될 때 잠수함 곁에 있었는데, 탄도미사일이 발사된 동일한 현장을 촬영한 <사진 10>에서는 그 선박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신포급 전략잠수함이 탄도미사일을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2발 발사하였음을 말해준다.

조선의 잠수함기지는 모두 지하요새화되었다. 조선에서 잠수함을 건조, 개조하거나 수리, 정비하는 작업은 언제나 지하잠수함기지 안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미국의 공중정찰수단들에게 노출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014년 12월부터 신포급 전략잠수함은 지하잠수함기지에서 나와 신포항 부두에 계속 머물렀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전략잠수함에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을 설치하는 작업이 신포항 부두에서 대낮에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수중미사일발사관은 잠수함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그 설치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므로, 건조과정 중에 수중미사일발사관을 함교에 설치하고 나서 신포급 잠수함을 진수한 것인데, <사진 6>은 신포급 전략잠수함에 수중미사일발사관을 설치하는 작업현장을 보여준다. 이것은 신포급 전략잠수함에 없는 수중미사일발사관을 새로 설치한 것이 아니라, 그 전략잠수함에 들어있는 수중미사일발사관을 밖으로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 재설치작업을 미국의 공중정찰수단에 노출된 신포항 부두에서 대낮에 진행한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그런 재설치작업은 조선이 자기의 전략잠수함 보유사실을 미국에게 알려준 것이다. 조선의 무장장비들 가운데 최강의 수중비밀병기인 전략잠수함의 존재를 그런 식으로 드러내 보인 것은, 조선이 국가적 중대사를 앞두고 미국에게 강력한 경고신호를 보낸 것이다.
 
 
3. 발사수심 50m에서 대기하는 전략핵탄미사일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은 전략잠수함을 보유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핵강국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였다. 핵보유국이면서도 아직 전략잠수함을 갖지 못한 인도는 러시아에서 전략잠수함 1척을 10년 동안 빌려 쓰고 있다. 전략잠수함 개발에 힘쓰는 인도는 2014년에 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를 2번 진행하였는데, 그 수중시험발사는 해수면 아래로 침하한 잠수함에서 발사한 것이 아니라 수심 30m에 설치해놓은, 판툰(pontoon)이라 부르는 잠함(潛函)에서 발사한 것이다. 인도는 5대 핵강국을 추격해온 후발핵보유국이지만, 잠대지탄도미사일 개발과정에서 제기된 공학기술적 난제들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만들 수 있는 군사과학기술강국이라면 잠대지탄도미사일도 만들 수 있다. 이를테면, 중국은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잠대지탄도미사일로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인도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만들면서도 왜 잠대지탄도미사일을 아직 완성하지 못한 것일까? 그 까닭은 잠대지탄도미사일을 만드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그 미사일을 쏘아올리는 수중미사일발사체계를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 <사진 11> 이 사진은 발사수심 50m에 침하한 미국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에서 수중미사일발사관 사출구를 열고 탄도미사일 트라이던트-1호를 발사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가압공기가 발사관 안으로 고속사입되기 시작한 찰나에 물거품이 뿜어져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 자주시보

해수면 아래 발사수심까지 침하한 전략잠수함은 수중미사일발사관 사출구를 열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한다. 탄도미사일을 발사수심 50m에서 해수면 위로 밀어올리는 수중고속사출은 <사진 11>에서 보는 것처럼, 발사관으로 고속사입시킨 가압공기의 폭발적인 힘으로 무거운 탄도미사일을 밀어올려 밀도가 강한 바닷물을 뚫고 상승시키는 것이다. 수중고속사출에 필요한 몇 가지 공학기술을 열거하면, 잠수함 안에서 공기를 초고압으로 압축시키는 기술, 가압공기를 발사관으로 고속사입시키는 기술, 고속사출시 함내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소음과 충격을 감소시키는 기술, 탄도미사일이 해수면 위로 출수하는 순간 로켓엔진을 1초 이하의 단위에 맞춰 점화하는 기술, 탄도미사일이 해수면 위로 출수할 때 상승비행자세를 유지하는 기술 등이다.

위에 열거한 것처럼, 탄도미사일 수중발사기술은 인공위성 공중발사기술보다 더 어려운 고난도 기술이다. 그래서 5대 핵잠보유국들이 그 고난도 기술을 반세기 동안 장기독점해올 수 있었다. 그 기술이 오죽 어려우면, 달궤도에 관측위성을 쏘아올리는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을 가진 인도가 탄도미사일 수중발사기술을 아직 정복하지 못하였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조선은 이번에 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에 성공함으로써 5대 핵잠보유국들이 반세기 동안 유지해온 독점구도에 파열구를 내고 여섯 번째의 핵잠보유국으로 등장하였다.

▲ <사진 12> 2015년 5월 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배를 타고 동해로 나가 수중시험발사과정을 지켜보는 가운데, 발사수심까지 침하한 신포급 전략잠수함은 북극성-1호를 발사하였다. 수심 50m에서 고속사출되어 굉음을 내며 솟구쳐오른 그 미사일 동체에 북극성-1이라고 쓴 붉은 글씨가 선명하다. 유사시 핵탄이 들어갈 탄두부는 검은 색을 칠했고, 동체의 앞쪽과 뒷쪽에 굵고 검은 띠를 하나씩 둘렀다. 그 미사일은 화염과 연기를 뿜으며 동해의 하늘로 높이 날아갔다.     © 자주시보

2015년 5월 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배를 타고 동해로 나가 수중시험발사과정을 지켜보는 가운데, 발사수심까지 침하한 신포급 전략잠수함이 탄도미사일 북극성-1호를 발사하였다. 수심 50m에서 고속사출되어 바닷물을 가르며 솟구쳐 오른 북극성-1호는 <사진 12>에서 보는 것처럼 굉음 속에서 화염과 연기를 내뿜으며 동해의 하늘 높이 날아갔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그 놀라운 장면을 격동적인 필치로 이렇게 묘사하였다. “잠시 후 바다면을 뚫고 불쑥 솟구친 탄도탄이 거세찬 불줄기를 뿜으며 창공 높이 날아올랐다. 시험발사를 통하여 함내소음준위, 발사반충력, 탄도탄의 수면출수속도, 자세각 등 전략잠수함에서의 탄도탄수중발사가 최신군사과학기술적 요구에 완전히 도달하였다는 것이 검증확인되였다.”

북극성-1호의 작전성능은 육안관찰로 검증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 측정기구를 배치해놓고 수중시험발사과정을 정밀관측하는 것이다. <사진 9>에서 붉은 원으로 표시된 선박은 측정기구를 싣고 현장에서 북극성-1호의 작전성능을 검증한 조선의 관측선이다.

미국의 온라인언론매체 <워싱턴자유횃불(WFB)> 2015년 5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해수면 아래로 침하한 신포급 전략잠수함이 수중미사일발사관에서 탄도미사일을 사출하는 수중시험발사는 2015년 4월 22일에 진행되었고, 4월 말과 5월 초에도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되었다. 지난날 5대 핵잠보유국들은 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에서 20여 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성공하였는데, 조선은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를 4번 만에 성공시켰으니 세계가 놀랄 경이적인 사변이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그 경이적인 소식을 전하면서 “완전성공”이라고 썼다.

조선이 그처럼 잠대지탄도미사일 개발을 완성하였으니, 이제는 신속한 실전배치일정만 남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전략잠수함 탄도탄이 계렬생산에 들어가고 가까운 시일 안에 실전배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은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를 4번 실시하였으므로 그 미사일을 8발 발사하였고, 그보다 먼저 2015년 1월 23일 조선은 바다에 띄워놓은 시험선박에서 탄도미사일 수상시험발사를 선행하였으므로 그 미사일을 모두 10발정도 발사한 것인데, 그런 수량이라면 북극성-1호 계렬생산체계는 이미 확립되어 있는 것이다.  

북극성-1호의 작전성능을 파악하려면, 지난 시기 미국, 소련, 중국이 각기 자기 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던 잠대지탄도미사일과 비교, 고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폴라리스(Polaris)는 길이 8.7m, 지름 1.4m, 중량 13.1t이고, 소련의 R-13은 길이 11.8m, 지름 1.3m, 중량 13.7t이고, 중국의 쥐랑(巨浪)-1호는 길이 10.7m, 지름 1.4m, 중량 14.7t이다.

▲ <사진 13> 핵잠보유국들의 잠대지탄도미사일들 가운데 조선의 북극성-1호와 형태가 가장 비슷한 것은 중국의 쥐랑-1호다. 이 사진에 나타난 미사일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모사한 쥐랑-1호다. 두 미사일을 비교하면, 쥐랑-1호가 북극성-1호보다 조금 더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북극성-1호는 길이 약 10m, 지름 약 1.3m, 중량 약 13t인 것으로 추정된다.     © 자주시보

여기 열거한 세 종류의 잠대지탄도미사일 가운데 미사일형태가 북극성-1호와 아주 비슷한 것은 <사진 13>에서 보는 쥐랑-1호인데, 쥐랑-1호가 북극성-1호보다 조금 더 커 보인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북극성-1호는 길이 약 10m, 지름 약 1.4m, 중량 약 13t인 것으로 추정된다. 웹싸이트 <커벗 쇼어즈>에서는 북극성-1호가 길이 9.3m, 지름 1.5m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미사일의 작전성능을 살필 때 시선이 가장 먼저 가닿는 것은 사거리다. 북극성-1호의 사거리는 몇 km가 되는 것일까? 기존 핵잠보유국들의 사례를 보면, 미국의 폴라리스는 사거리가 1,800km, 소련의 R-13은 사거리가 600km, 중국의 쥐랑-1호는 사거리가 1,700km다.
사거리를 비교할 때, 소련의 R-13이 미국의 폴라리스나 중국의 쥐랑-1호에 비해 매우 짧은 까닭은, 소련이 초기의 미사일제작기술로 R-13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R-13을 만든 직후 긴 사거리를 가진 후속미사일들을 연속하여 만들었는데, R-15의 사거리는 1,000km이고, R-21의 사거리는 1,400km다.

위에 열거한 핵잠보유국들의 선행경험을 살펴보면, 그 나라들이 자기의 잠대지탄도미사일을 1,000km 이상 날아가도록 만들었고, 후속미사일을 만들면서 사거리를 단계적으로 늘려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북극성-1호의 사거리가 1,000km 이상이라는 점이 자명해지는데, 쥐랑-1호의 사거리가 1,700km이므로, 크기가 그보다 조금 작은 북극성-1호의 사거리는 1,500km로 추정된다. 

▲ <사진 14> 조선의 북극성-1호가 연기를 뿜으며 동해의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다.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1,500m인 것으로 추정된다. 길이가 약 10m로 추정되는 그 미사일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고도를 비행하였는데도,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150m밖에 날아가지 못했다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 자주시보

북극성-1호의 사거리가 그처럼 길기 때문에 수중시험발사를 진행할 때는 사거리를 대폭 줄여서 쏘아야 한다. 지난 5월 9일에 진행된 수중시험발사에서 북극성-1호가 단축된 사거리를 날아가 떨어진 동해상의 탄착점은 어디쯤이었을까? 잠대지탄도미사일은 광역타격수단이므로 점타격에 사용되는 전술핵탄을 장착하지 않는다. 광역타격수단의 정밀도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진 14>에 보는 것처럼, 북극성-1호는 육안으로 그 동체를 볼 수 없을 만큼 높은 고도로 날아갔다.

미사일의 작전성능을 거론할 때, 사거리와 함께 중시하는 것은 파괴력이다. 북극성-1호의 파괴력은 얼마나 강한 것일까?
잠대지탄도미사일에는 반드시 핵탄이 장착된다. 핵탄이 아니라 고폭탄이 장착된 잠대지탄도미사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달리, 잠대지순항미사일에는 핵탄이 아니라 반드시 고폭탄이 장착된다. 그래서 잠대지순항미사일로 무장한 잠수함은 전략잠수함보다 한 급 낮은 공격잠수함으로 분류된다.

다른 핵잠보유국들이 초기에 만들었던 잠대지탄도미사일의 파괴력을 살펴보면, 미국의 폴라리스에는 600킬로톤급 핵탄 1발이 장착되었고, 소련의 R-13에는 1메가톤급 핵탄 1발이 장착되었고, 중국의 쥐랑-1호에는 300킬로톤급 핵탄 1발이 장착되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조선의 북극성-1호에는 300킬로톤급 전략핵탄 1발이 장착될 것으로 보인다.
 
4. 조선은 대서양에서 최후일격 날린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5년 5월 9일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를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조선이 북극성-1호를 보유한 것은 “적대세력들의 뒤잔등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탄을 매달아놓는 것으로 된다”고 지적하였고, “적대세력들을 임의의 수역에서 타격소멸할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전략무기를 가지게 되였”다고 말했다.

적대세력들의 잔등에 시한탄을 매달아놓은 것이라는 표현은 북극성-1호의 타격범위가 미국의 후방작전구역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조선과 미국이 70년 동안 무력으로 대치해오는 상황에서 태평양이 미국의 전방작전구역이라면 대서양은 미국의 후방작전구역이다. 적대세력들을 임의의 수역에서 타격소멸할 수 있게 되었다는 표현은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가릴 것 없이 전후방작전구역 어디에서나 미국을 타격소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전시에 북극성-1호가 대서양에서 미국 본토를 향해 불시에 발사될 것임을 예고한다. 다시 말해서, 신포급 전략잠수함이 북극성-1호를 싣고 대서양에 가서 미국 본토 동부지역을 불시에 기습타격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중량급 전략잠수함들은 태평양작전구역과 대서양작전구역에 각각 나누어 배치되었는데, 그런 잠수함대국과 대치한 조선의 경량급 잠수함은 동해에서 연안작전이나 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조선의 잠수함작전능력이다. 그런 까닭에 태평양에도 가지 못할 조선의 경량급 잠수함이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 대서양까지 가서 원정작전을 할 것이라고 말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과장어법으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북극성-1호라는 이름에 들어있는 깊은 사연을 알면, 그런 낡은 고정관념은 사라질 것이다. 

자국산 미사일에 별이름을 붙이는 것은 조선에서 볼 수 있는 오랜 관례다. 이를테면, 조선에서 대전차미사일은 수성(나중에 불새로 개칭)이라 부르고, 대함미사일은 금성이라 부르고, 도로이동식 지대지미사일은 화성이라 부르고, 수직갱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목성이라 부르는데, 잠대지탄도미사일에는 북극성이라는 별이름을 붙였다.

조선의 미사일들에 붙여진 수성, 금성, 화성, 목성이라는 이름은 태양의 주위를 도는 행성들의 이름인데, 유독 잠대지탄도미사일은 지구로부터 434광년 떨어진 천구의 북극점에서 밝게 빛나는 별의 이름으로 부른다. 신형 미사일을 만들 때마다 태양계 행성의 이름을 순서대로 붙여온 조선의 미사일작명관례에 따르면, 잠대지탄도미사일은 토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데 그런 관례에서 벗어나 그 이름을 북극성으로 정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선의 잠대지탄도미사일이 북극성이라는 색다른 별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 미사일이 북극성과 관련된 사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연은 무엇일까? 아래의 정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전시에 조선이 미국과 추종국들의 아시아태평양작전구역을 타격할 때는 전술핵탄을 쓰게 될 것인데, 신포급 전략잠수함에 전략핵탄 2발이 실리는 것은 그 잠수함의 타격범위가 아시아태평양작전구역을 넘어 미국 본토로 향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둘째, 선제핵타격에는 점타격수단인 전술핵탄이 사용되고, 보복핵타격에는 광역타격수단인 전략핵탄이 사용되는데, 신포급 전략잠수함에서 발사할 핵탄미사일은 미국의 전술핵타격을 받았을 때 보복핵타격에 사용하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사실을 종합하면, 조선의 북극성-1호는 미국 본토에 대한 보복핵타격에 사용되는 최강의 전략무기라는 점이 자명해진다.

전시에 조선은 전술핵탄을 발사하는 동시다발-기습타격으로 미국과 추종국들의 아시아태평양작전구역을 선제공격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미국도 전술핵탄으로 조선의 군사기지들을 보복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조선의 선제핵타격을 받아 아시아태평양작전구역을 상실한 뒤에도 항복하지 않고 전술핵탄으로 조선에게 반격하는 경우, 조선은 최후일격으로 미국을 멸망시키려고 할 것이다. 조선이 최후일격에 사용할 비장의 전략무기가 바로 북극성-1호다. 북극성-1호에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300킬로톤급 전략핵탄 1발이 장착된다.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전시에 조선이 북극성-1호를 발사하는 최후일격은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 디씨를 타격하는 것이다.

2005년 11월 19일 미국의 핵시대평화재단(NAPF) 웹싸이트에 현시된 ‘워싱턴 디씨에서 발생한 300킬로톤급 핵폭발 결과’라는 제목의 글은 전시에 미국의 심장부를 덮칠 핵재앙을 아래와 같이 예언하였다.  

워싱턴 디씨 상공에서 일어난 핵폭발로 발생하는 거대한 핵섬광은 하루 중 태양빛이 가장 밝은 시간대인 정오에 사막지대에 내려쬐는 강렬한 태양빛보다 5,000배나 더 밝다. 그 핵섬광을 바라보는 순간 사람들의 두 눈은 즉시 멀게 된다. 천지를 뒤덮는 핵섬광과 함께 지름이 2km나 되는 거대한 핵화염이 터져나오는데, 핵화염 중심부의 온도는 태양 중심부의 온도보다 4~5배나 더 높은 섭씨 1억1,100만도이므로 지상의 모든 물체는 핵화염 속에서 형체도 없이 타버리거나 녹아버린다. 또한 핵폭발 1초 뒤 폭심에서 발생한 시속 1,200km의 초강력한 핵폭풍과 그 핵폭풍을 따라오는 시속 480~640km의 후폭풍은 방사선형으로 휘몰아치면서 지상의 모든 물체를 폭심으로부터 바깥쪽으로 멀리 날려버린다. 그로부터 4초 뒤에는 거대한 핵화염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면서 발생시킨 초강력한 흡입력에 의해 핵폭풍의 방향이 반대방향으로 갑자기 바뀌면서 시속 80~112km의 역폭풍이 몰아쳐 모든 물체를 폭심쪽으로 날려버린다. 그로써 100~168㎢ 안에 있는 모든 물체는 완전히 파괴, 소멸된다.

미국은 자기의 심장부가 조선의 전략핵타격으로 형체도 없이 사라져 멸망하는 참극을 어떻게 해서든지 피해야 한다. 미국이 조선과의 전쟁에서 자기 본토를 지키려면, 아시아태평양작전구역에 대한 방어는 포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조선이 전술핵탄을 발사하는 선제공격으로 미국과 추종국들의 아시아태평양작전구역을 파괴해도 미국은 조선에게 보복하는 반격을 포기해야 하는 뼈저린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전쟁씨나리오는 어디까지나 예견이다. 조선은 예견만 믿고 미국과의 최후결전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오판한 미국이 전술핵탄으로 조선에게 보복공격하는 최악의 씨나리오에도 당연히 대비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전시에 조선은 미국의 심장부를 최후일격으로 날려버릴 보복핵타격준비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전시에 조선의 신포급 전략잠수함이 워싱턴 디씨에 최후일격을 가하려면 대서양으로 가야 한다. 북극성-1호의 사거리는 1,500km로 추정되기 때문에, 신포급 전략잠수함이 미국 본토 서부해안에 근접한 태평양 바다속에서 그 미사일을 쏘면, 사거리가 너무 짧아 워싱턴 디씨에 도달하지 못한다.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백악관까지 직선거리는 3,923km이므로, 신포급 전략잠수함이 샌프란시스코 해안에서 200km 떨어진 태평양 수역에 수중매복하는 경우 사거리가 4,500km인 잠대지탄도미사일을 쏘아야 하는데 경량급 잠수함은 크고 무거운 미사일을 싣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전시에 신포급 전략잠수함은 미국 본토 동부해안에 근접한 대서양 수역에 수중매복해야 하는 것이다.

냉전이 막바지 이르렀던 1980년대에 수중배수량이 9,300t인 소련의 얭키급(Yankee-class) 핵추진 잠수함은 미국 본토 동부해안에서 약 1,000km 떨어진 버뮤다라는 섬의 동쪽에 있는, ‘초계초소(patrol box)’라 부르는 구역에 수중매복하며 미국의 심장부에 최후일격을 가할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는데, 그 잠수함에는 500킬로톤급 전략핵탄을 장착한 R-31 탄도미사일이 실려 있었다.

▲ <사진 15> 베링해를 지나 북극해로 들어서면 북극점을 중앙에 두고 두 개의 항로가 나타난다. 캐나다 최북단을 오른쪽에 끼고 북극해를 지나는 북서항로가 바로 조선의 신포급 전략잠수함이 전시에 미국의 심장부를 공격하기 위해 지나게 될 원정항로다. 북서항로를 타고 북극해를 지나 대서양에 들어선 조선의 신포급 전략잠수함은 대서양수중매복구역에서 최후일격으로 미국의 심장부를 초토화하기 위해 수중매복에 들어갈 것이다.     © 자주시보

전시에 신포급 전략잠수함이 동해의 지하잠수함기지를 떠나 미국 본토 동부해안에 근접한 대서양수중매복구역으로 가는 항로는, 동해→오호쯔끄해→베링해→북극해→래브라도해를 통과하여 대서양으로 가는 북극항로밖에 없다. <사진 15>에 표시된 것처럼, 북극항로는 북서항로와 북동항로로 갈라지는데, 북서항로는 베링해에서 북극해를 거쳐 북미주로 가는 항로이고, 북동항로는 베링해에서 북극해를 거쳐 북유럽으로 가는 항로다.

북서항로는 냉전기에는 물론 요즈음도 러시아군 잠수함들이 쿠바를 오갈 때 이용하는 중요한 항로다. <뉴욕타임스> 2009년 8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쿠바를 향해 가던 러시아의 전략잠수함 2척 가운데 1척이 미국 동부해안에서 약 320km 떨어진 위치에 머무르고 있었다. 전시에 조선의 신포급 전략잠수함도 북서항로를 따라 대서양으로 갈 것이다.

전시에 신포급 전략잠수함이 대서양수중매복구역으로 가기 위해 북서항로를 지나려면 거대한 빙산들이 들어찬 북극해 바다속을 잠항해야 하는데, 디젤전동식 잠수함은 빙산바다 속을 잠항하지 못한다. 핵추진 잠수함이라야 북극해 바다속을 지날 수 있다. 조선이 미국과의 최후결전에서 이기기 위해 경량급 핵추진 잠수함을 반드시 만들어야 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1958년 8월 태평양을 출발한 미국의 1세대 핵추진 잠수함 노틸러스호가 북서항로를 타고 대서양으로 나갔다. 노틸러스호가 북서항로를 지날 때 시속 17km의 잠항속도로 4일 걸렸는데, 전시에 동해를 출발한 신포급 전략잠수함은 대서양수중매복구역까지 12일이면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최후결전을 앞두고 북극성이 빛나는 북서항로를 지나게 될 조선의 잠대지탄도미사일이 북극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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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2

정지통신위성은 은하-3호에 싣지 못한다

[한호석의 개벽예감](158)
자주시보 2015년 05월 11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왜 평양 도심에 신축하였을까?
2. 2년 동안의 분사시험을 거쳐 신형 로켓엔진을 만들다
3. 은하-3호에 싣지 못하는 정지통신위성
4. 우주환경시험기지 건설하고 우주선 만든다

▲ <사진 1> 김정은 제1위원장이 새로 건설된 위성관제종합지휘소의 연혁실을 돌아보고 있다. 거기에는 지난 시기 조선이 쏘아올린 3기의 운반로켓과 거기에 각각 탑재된 3기의 위성을 축약, 모사한 모형들이 전시되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감회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것은, 이 사진에서 보이지 않지만, 1998년 8월 31일 농구공처럼 생긴 첫 시험위성 광명성-1호를 싣고 발사된 조선의 첫 운반로켓이 솟구쳐오르는 사진이다.     © 자주시보


1.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왜 평양 도심에 신축하였을까?

2015년 5월 3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새로 건설된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현지지도한 소식을 보도하였다. <사진 1> 위성관제종합지휘소는 국가우주개발국 산하에 있고, 국가우주개발국은 우주공간기술위원회 산하에 있다. 2014년 4월 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결정에 의해 신설된 국가우주개발국은 조선의 우주개발계획을 작성하고 실행하며, 우주개발사업을 감독하고 통제한다. 

▲ <사진 2> 이것은 새로 건설된 위성관제종합지휘소 주건물을 정면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곡선과 직선을 비반복적으로 배치한 현대적 건축양식이 건축미학을 한껏 뽐내고 있는데, 건물 전체가 마치 소나무가 빽빽히 들어찬 산자락에 건물이 안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표지석에는 우리말로 위성관제종합지휘소라고 써넣었고, 그 밑에 영국식 영어로 쌔들라잇 컨트롤 센터라고 써넣었다. 조선에서는 미국식 영어가 아니라 영국식 영어를 쓴다.     © 자주시보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제963군부대 군인건설자들이 착공의 첫 삽을 뜬 날로부터 불과 8개월 만에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완공하였다고 한다. 위성관제종합지휘소는 기본건물, 보조건물, 측정소들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위성발사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주현시실, 위성을 관제하는 조종실 및 보조현시실, 궤도회전 중인 위성을 관측하는 광학관측실, 위성발사를 지켜보는 참관자들을 위한 관람실, 우주과학자, 기술자들의 연구활동과 생활편의를 위한 전자도서실, 휴게실, 회의실, 사무실, 식사실, 침실 등이 있다.

▲ <사진 3> 평양의 도심은 8개 행정구역으로 구성되었고,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부심은 11개 행정구역으로 구성되었다. 부심을 구성한 11개 행정구역 면적이 엄청나게 넓은 까닭은, 300만 평양시민들에게 공급하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협동농장들이 거기에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평양 도심의 8개 행정구역 가운데 5개 행정구역은 서평양에 속하고, 3개 행정구역은 동평양에 속한다. 서울의 한강은 강북과 강남 사이로 흐르는데 비해, 평양의 대동강은 동평양과 서평양 사이로 흐른다. 평양의 주요기관들은 동평양에 거의 집중되어 있는데, 위성관제종합지휘소도 동평양에 속하는 보통강구역에 건설되었다.     © 자주시보

상업위성사진을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미국 회사 ‘구글 어스(Google Earth)’로부터 제공받은 평양지역 위성사진을 분석한 <연합뉴스> 2015년 5월 5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위성관제종합지휘소는 평양 보통강구역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사진 3>에 나온 평양시 약도에서 보는 것처럼, 보통강구역은 평양 도심의 6개 행정구역 가운데 하나다. 105층 류경호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 보통강구역에 있다.

▲ <사진 4> 상업위성사진에서 위성관제종합지휘소의 위치를 찾아보았더니, 놀랍게도 배산림수형 명당자리에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었다. 위성관제종합지휘소 앞에 보통강이 흐르고, 뒷쪽에는 수림이 울창한 야산이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감싸안고 있다. 이 위성사진은 위성관제종합지휘소가 완공되기 전에 촬영된 것이다.     © 자주시보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사진을 보면, 위성관제종합지휘소는 야산 앞자락에 건설되었다. 위성에서 촬영된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야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위성관제종합지휘소 앞에 보통강이 흐른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자연환경친화사상인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위성관제종합지휘소가 자리를 잡은 터야말로 배산림수(背山臨水)형 명당자리인데, 우리 조상들은 집터를 그런 명당자리에 잡으면 모든 일이 잘 되고 흥한다고 믿었다.

평양의 중심에 있는 김일성광장에서 위성관제종합지휘소까지 직선거리는 4km밖에 되지 않는다. 위성관제시설을 수도 한 복판에 건설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다. 거주인구가 300만 명인 수도 한 복판에 위성관제시설을 건설한 것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매우 파격적인 발상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런 파격적인 발상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우주강국건설구상에 따른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성관제종합지휘소 건설을 직접 발기하시고 명당자리에 위치도 잡아주시였”으며, “위성관제종합지휘소가 일떠선 곳의 해발고는 비록 높지 않지만 이곳은 우리 민족의 존엄이 응축되여 있는 것으로 하여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고 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왜 평양 도심에 건설하도록 지시한 것일까? 

첫째, 우주개발은 현대과학기술이 집대성된 최첨단분야다. 국력강화와 사회발전에 필수불가결한 통신, 교통, 산업, 환경, 국방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우주개발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우주과학기술을 선점한 몇몇 강국들이 21세기 과학기술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오늘 ‘천하제일강국’을 건설하는 시대적 요구를 자임한 조선에게 우주개발은 그 요구를 실현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선의 국가발전을 추진하는 주요거점들 가운데 하나인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조선의 심장부인 평양에 건설하도록 지시한 의도를 알 수 있다. 평양 도심에 위성관제종합지휘소가 건설됨으로써 조선국가우주개발국 소속 과학자, 기술자들은 우주개발을 정력적으로 이끄는 최고영도자의 세심한 지도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받으며 최첨단돌파전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 <사진 5> 이것은 위성관제종합지휘소 내부시설의 일부를 촬영한 사진들이다. 위쪽 사진은 회의실이고, 아랫쪽 사진은 위성발사를 지켜보는 참관자들을 위한 관람실이다. 앞으로 조선이 위성을 발사하는 날, 그 관람실에는 조선의 위성발사를 지켜볼 세계 각국 인사들이 가득차게 될 것이다.     © 자주시보

둘째, 우주개발에 필요한 설비들은 하나같이 최첨단설비들이다. 그런 최첨단설비를 마련하려면 국가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여야 한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새로 건설된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현지지도하면서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 최첨단설비들을 더 보강해주”어야 한다고 지시하였는데, 그 지시는 조선의 국가자원이 우주개발에 필요한 최첨단설비를 마련하는데 집중적으로 투입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평양 도심에 위성관제종합지휘소가 건설됨으로써 조선국가우주개발국 소속 과학자, 기술자들은 최상의 연구조건에서 최첨단설비를 사용하며 우주개발사업을 더 빠른 속도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 5>

셋째, 우주개발의 직접적인 담당자는 우주과학자, 기술자들인데, 그들의 생활조건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해주어야 우주개발사업이 더욱 빠른 속도로 추진될 것이다. 평양 도심에 위성관제종합지휘소가 건설됨으로써 조선국가우주개발국 소속 과학자, 기술자들은 최상의 생활환경에서 최첨단돌파전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 <사진 6> 이 사진은 로켓엔진을 시험분사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시험대에 수평으로 설치되어 거대한 화염을 내뿜는 이 로켓엔진은 2002년 6월 미국에 설립된 민간우주개발기업 스페이스 익스플러레이션 테크놀로지스에서 개발한 팰컨로켓엔진이다.     © 자주시보


2. 2년 동안의 분사시험을 거쳐 신형 로켓엔진을 만들다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2년 동안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로켓엔진분사시험을 집중적으로 실시하였다. 로켓엔진분사시험은 로켓엔진 시제품을 시험대에 수평으로 놓고 연소, 분사하면서 추력발생, 연소시간 등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일본 텔레비전방송 <NHK> 2014년 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서해위성발사장에서 2013년 12월 25일 여섯 번째로 로켓엔진분사시험이 실시되었다. 이것은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2013년 한 해 동안 로켓엔진분사시험을 여섯 차례나 실시하였음을 말해준다. 평균 두 달에 한 차례씩 계속 실시한 것이다. 
미국의 국제안보협력센터(CISAS) 소속 위성사진분석가 닉 핸슨(Nick Hansen)은 2014년 7월 29일 미국의 대북정보분석 웹싸이트 <38 노스(North)>에 서해위성발사장 위성사진을 분석한 논문을 실었는데, 그 논문에 따르면, 서해위성발사장에서 2014년 3월 22일부터 5월 21일까지 로켓엔진분사시험이 집중적으로 실시되었고, 6월 10일부터 준비되어온 로켓엔진분사시험이 8월 초부터 또 다시 실시될 것으로 예견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우주개발국이 2013년에 이어 2014년에도 로켓엔진분사시험을 집중적으로 실시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6>
올해 2015년에 들어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로켓엔진분사시험이 재개되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2013년 초에 시작된 로켓엔진분사시험은 2014년 말에 종료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은 로켓엔진분사시험에서 매우 오래고 풍부한 경험을 축적하였는데, 2013년부터 2014년까지 2년 동안에 그러한 것처럼 로켓엔진분사시험에 집중한 적은 없었다. 로켓엔진제작기술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른 조선이 로켓엔진분사시험을 2년 동안 지속적으로, 집중적으로 실시한 것을 보면,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이제껏 조선에서 만든 적이 없는 고성능 로켓엔진을 만들기 위해 그처럼 많은 노력을 집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2년 동안 지속적으로 노력하여 완성한 신형 로켓엔진은 얼마나 강력한 것일까? 

한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아시아경제> 2014년 4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로켓엔진을 시험분사할 때 촬영한 위성사진에 나타난 그을음, 연소시간, 동체크기를 보면, 분사시험에 사용된 로켓엔진은 “대포동 계열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대포동 계열’이란 2012년 4월과 12월에 조선이 쏘아올린 운반로켓 은하-3호를 뜻한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그가 “대포동 계열”이라고 부른 은하-3호에 장착된 로켓엔진이 2014년에 시험분사된 것처럼 보았으나, 그런 관측은 빗나간 것이다. 과거에 사용했던 로켓엔진을 시험분사에 다시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분사시험은 신형 로켓엔진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므로, 분사시험에는 새로 만든 로켓엔진 시제품이 사용되는 것이다.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은하-3호 로켓엔진보다 더 강력한 신형 로켓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만든 로켓엔진 시제품을 시험분사한 것이다.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2년 동안 노력을 집중하여 새로 개발한 신형 로켓엔진은 은하-3호 1단 로켓엔진보다 더 강력한 것이 분명한데, 신형 로켓엔진의 성능은 어느 정도인가? 이 흥미로운 물음에 답하려면, 아래의 정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사진 7> 이 사진은 2012년 4월 서해위성발사장 조립건물 안에서 은하-3호를 수평으로 놓고 조립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얼마 전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이 운반로켓의 1단 로켓보다 2.2m 더 긴 신형 1단 로켓을 제작하였다. 신형 1단 로켓엔진의 추력은 1,200kN으로 추정된다.     © 자주시보

첫째, 2014년 10월 2일 미국의 위성사진분석가 닉 핸슨이 미국의 관영라디오방송 ‘미국의소리(VOA)’와 진행한 대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로켓엔진분사시험이 실시될 때, 차량길이가 23.5m가 되는 수송열차가 그 시험장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체길이가 20m 정도인 1단 로켓 시제품을 시험분사하였음을 말해준다. 은하-3호 1단 로켓의 동체길이가 17.8m이었으므로,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은하-3호 1단 로켓보다 동체길이가 2.2m 정도 더 긴 신형 1단 로켓을 제작한 것이다. <사진 7> 

둘째, 미국의 군사전문 웹싸이트 <글로벌 씨큐리티(Global Security)>에 현시된 자료에 따르면, 은하-3호 1단 로켓엔진의 추력은 1,050kN이다. 1N(뉴튼)은 질량 1kg의 물체를 1초 동안 1m 이동시키는 운동력(추력)을 표시한 측정단위인데, 1kN(킬로뉴튼)은 1N의 1,000배다. 미사일, 운반로켓, 항공기 등에 장착된 각종 엔진의 추력은 kN이라는 국제공용측정단위로 표시된다. 
은하-3호 1단 로켓엔진의 추력이 1,050kN이었으므로, 그 1단 로켓보다 동체길이가 2.2m 정도 더 긴 신형 1단 로켓의 엔진추력은 1,200kN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1,200kN의 추력을 내는 신형 1단 로켓엔진을 제작한 것이다.

▲ <사진 8> 이 사진은 2012년 4월 13일 은하-3호에 실려 발사된 광명성-3호 1호기가 발사 직전 외부인들에게 공개되었을 때 촬영된 것이다. 당시 은하-3호는 발사 직후 서해에 추락하는 바람에 광명성-3호 1호기도 소실되었다. 광명성-3호 1호기는 광명성-3호 2호기와 똑같이 제작된 것이다. 우주선진국들은 위성발사에 실패할 것에 대비해 위성과 운반로켓을 2기씩 만든다. 2012년에 조선도 그렇게 하였다.   © 자주시보

▲ <사진 9> 이것은 광명성-3호 1호기 윗부분을 확대한 사진이다. 사진의 오른쪽에 옆으로 누운 원통형 물체에는 감지기가 들어있고, 왼쪽에 세워진 원통형 물체에는 지구를 촬영하는 촬영기의 렌즈가 들어있다. 거기에 둥그렇게 설치된 전선은 촬영기가 그 렌즈를 통해 촬영한 영상자료를 X-밴드 안테나로 보내주는 연결전선이다. X-밴드 안테나는 촬영기가 촬영한 지구관측영상자료를 지상의 위성관제종합지휘소로 송신한다.     ©자주시보


3. 은하-3호에 싣지 못하는 정지통신위성

러시아 언론매체 <스뿌뜨니끄> 2015년 4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박경수 부위원장은 러시아 통신사 <이따르-따스>와 진행한 회견에서 “현재 조선의 기술연구집단이 지구관측위성과 정지통신위성을 제작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고 하면서, “지구자원탐사, 기상관측, 국가경제발전, 인민생활향상 등을 위해 령도자의 위대한 구상을 받들고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우주정복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담에서 주목하는 것은, 조선의 기술연구집단이 지구관측위성과 정지통신위성을 제작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고 밝힌 대목이다. 그 발언은 신형 1단 로켓엔진을 제작한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그 신형 로켓에 실어 쏘아올릴 지구관측위성과 정지통신위성을 만드는 제조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된 정보를 분석하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첫째,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2015년 5월 8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우리가 만들어 가지고 있는 각종 위성들도 그 누가 미싸일이라고 하여 그대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며 그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라고 언명하였다. 이 문장에 따르면,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각종 위성을 이미 만들어놓은 것이다.

자국산 인공위성을 자국산 운반로켓에 실어 쏘아올리는 우주개발선진국들은 발사에 실패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똑같은 위성을 2기씩 만들어놓는다. 조선도 2012년에 광명성-3호를 은하-3호에 실어 쏘아올릴 때 그렇게 하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위에 인용한 조선국가우주개발국 대변인 담화에 나온 문장은 조선이 쏘아올릴 각종 위성들 가운데 일부가 이미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정은 조선이 당창건 70주년을 맞는 오는 10월 10일 이전에 지구관측위성과 정지통신위성을 쏘아올릴 것임을 예고해준다. 지구관측위성과 정지통신위성의 연속발사는, 조선의 표현을 빌리면, “조선로동당 창건 70돐에 드리는 가장 훌륭한 선물”로 될 것이다.

둘째, <사진 8>에서 보는 것처럼, 2012년 12월 12일 성공적으로 발사된 조선의 첫 실용위성 광명성-3호 2호기는 지구관측위성이었다. 그런데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지구관측위성을 왜 또 다시 만드는 것일까? 질량이 100kg인 광명성-3호 2호기는 고성능 지구관측위성이 아니다. 광명성-3호 2호기 윗부분을 확대한 <사진 9>를 보면, 그 위성에 간단한 장비들이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광명성-3호 2호기보다 성능이 더 좋은 고성능 지구관측위성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둘째,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고성능 지구관측위성만이 아니라 정지통신위성도 만들고 있다. 조선에서 정지통신위성이 제작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지통신위성이란 정지궤도(geosynchonous orbit)에 진입하여 지구의 자전속도와 같은 속도로, 지구의 자전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지구 주위를 원형으로 회전하는 위성이다. 정지통신위성의 비행속도 및 비행방향이 지구의 자전속도 및 자전방향과 같기 때문에, 지구에서 바라보면 그 위성은 정지궤도를 따라 회전하지 않고 어느 위치에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광명성-3호 2호기가 진입한 저지구궤도(Low Earth Orbit)는 지구 해수면으로부터 160~2,000km 떨어진 낮은 우주공간에 자리잡고 있는데 비해, 정지궤도는 지구 해수면으로부터 35,786km나 떨어진 매우 높은 우주공간에 자리잡고 있다. 지구관측위성이나 우주정거장은 저지구궤도에 쏘아올려야 하고, 정지통신위성은 정지궤도에 쏘아올려야 한다.
그런데 은하-3호에는 부피와 질량이 큰 정지통신위성을 실을 수도 없고, 정지궤도까지 먼 거리를 날아갈 수도 없다. 은하-3호는 길이 32m, 지름 2.4m, 질량 91t, 추력 1,354kN이다. 그러므로 조선이 정지통신위성을 쏘아올리려면 은하-3호보다 훨씬 더 큰 운반로켓을 새로 만들어야 하고, 매우 강력한 추력을 내는 로켓엔진을 만들어야 한다.

이 글의 집필시점인 2015년 5월 초순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은하-3호보다 더 크고 강력한 신형 운반로켓을 이미 만들었는지 아니면 아직 만드는 중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위에서 언급한 <스뿌뜨니끄> 보도기사에서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박경수 부위원장이 신형 운반로켓을 제작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신형 위성을 제작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을 보면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신형 운반로켓을 이미 만들었고, 지금은 그 로켓에 실을 신형 위성을 만드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 <사진 10> 이것은 중국이 1990년부터 1995년까지 기간에 정지통신위성을 실어 쏘아올린 창정-2E를 촬영한 사진이다. 조선이 정지통신위성을 쏘아올리려면 창정-2E와 같은 급의 운반로켓을 만들어야 한다.     © 자주시보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만든 신형 운반로켓은 어떤 것일까? 이 문제를 해명하려면, 중국이 정지통신위성을 쏘아올리기 위해 만든 운반로켓을 비교대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쏘아올린 정지통신위성의 질량은 3.3t이었는데, 중국이 그 위성을 정지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사용한 운반로켓은 창정(長征)-2E다. 3단으로 제작된 창정-2E는 길이 49.7m, 지름 3.35m, 질량 460t, 추력 5,923kN이다.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정지통신위성을 쏘아올리려면 창정-2E와 같은 급의 운반로켓을 만들어야 한다. <사진 10>

독일의 로켓전문가 노르베르트 브뤼게(Norbert Brűgge)는 자기의 웹싸이트에 현시한 서해위성발사장 분석기사에서 그 발사장에 있는 46m 높이의 9층 발사대가 60m 높이의 12층 발사대로 증축되었는데, 그렇게 증축된 발사대에서는 신형 엔진을 장착한, 지름 3m의 신형 운반로켓이 발사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브뤼게는 그 증축된 발사대에서 발사될 신형 운반로켓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국의 창정-2E처럼 길이가 50m 정도, 지름이 3m 정도, 질량이 450t 정도인 신형 운반로켓이 멀지 않아 그 증축된 발사대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견된다.

그런데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신형 운반로켓을 개발하는 데서 결정적인 문제는 창정-2E만큼 강한 추력을 내는 로켓엔진을 만드는 것이다. 만일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창정-2E처럼 6,000kN의 추력을 내는 강력한 로켓엔진을 만든다면, 그 신형 로켓엔진을 장착한 운반로켓의 동체길이와 동체지름은 50m 정도, 3m 정도로 각각 길어질 것이고, 그 로켓의 동체질량도 450t 정도로 늘어날 것이다.

▲ <사진 11> 이것은 러시아가 2004년부터 현재까지 사용하는 운반로켓 소유즈에 장착된 부착식 보조엔진을 촬영한 사진이다. 이 부착식 보조엔진은 러시아가 2001년에 개발한 RD-117 로켓엔진 5기를 한 다발로 묶어 강력한 추력을 내도록 설계되었다. 이 로켓엔진 1기의 추력은 1,021kN이므로, 1단 로켓의 추력총량은 5,105kN이다. 러시아가 최근에 소유즈 로켓을 쏘아올린 때는 2014년 12월 26일이다.     © 자주시보

1,354kN의 추력을 내는 은하-3호를 만든 경험밖에 없는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6,000kN의 추력을 내는 엄청나게 강력한 신형 운반로켓을 은하-3호 발사 이후 불과 3년 만에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은하-3호의 추력과 창정-2E의 추력 사이에 너무 큰 격차가 있기 때문에,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창정-2E만큼 강력한 신형 운반로켓을 그처럼 짧은 기간에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위에서 논한 것처럼,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2013년부터 2014년 까지 2년 동안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 1,200kN의 추력을 내는 신형 1단 로켓엔진을 이미 만들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 신형 로켓엔진 4개를 한 다발로 묶은 부착식 보조엔진(strap-on booster)을 만들면, 4,800kN의 추력을 낼 수 있다. 4,800kN의 추력을 내는 부착식 보조엔진을 1단 로켓으로 사용하면 추력총량이 6,000KN에 이르는 3단형 운반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나 중국도 정지통신위성을 쏘아올리기 위해 운반로켓 1단에 4개의 로켓엔진을 한 다발로 묶은 부착식 보조엔진을 장착하였다. <사진 11> 세계적 수준의 로켓제작기술을 가진 조선이 그런 부착식 보조엔진을 만드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즈음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반복적으로 보도하는 것처럼, 오는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을 “정치적 열의와 로력적 성과로 맞이하자”는 전투적 구호를 들고 노력하는 조선에서는 비약과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주개발분야도 예외로 될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조선의 우주개발사업이야말로 당창건 70주년을 맞이하여 자기의 국력을 세상에 과시할 중대사이므로, 조선국가우주개발국 소속 과학자, 기술자들은 정지통신위성을 쏘아올릴 추력 6,000kN급 신형 운반로켓을 만들기 위한 투쟁에서 “불타는 애국심과 창조적 열정을 남김없이 발휘”해왔던 것이다.

▲ <사진 12> 이 사진은 2011년 11월 17일 우주비행을 마치고 중국의 내몽골자치주에 착륙한 중국의 유인우주선 선저우-8호를 촬영한 것이다. 중국의 우주선은 공처럼 생겼다. 조선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자기들이 처음 보는 첨단설비라도 그 모습이 촬영된 사진 한 장만 보여주면 자기 식으로 만들어낸다고 하는데, 이 사진에 나온 공처럼 생긴 우주선을 만들려는 것일까?     © 자주시보


4. 우주환경시험기지 건설하고 우주선 만든다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2015년 5월 8일에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우리에게는 나라의 과학기술과 경제발전, 국가방위에 필수적인 각종 실용위성을 계속 쏘아올리는 것을 예견한 종합적인 국가우주개발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조선신보> 2012년 12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의 국가우주개발계획은 2012년에 시작되어 2016년에 끝나는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인데, 고성능 지구관측위성과 정지통신위성을 쏘아올리는 우주개발사업이 그 계획에 들어있다.

2014년 12월 10일 조선의 우주과학자, 기술자들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진행한 우주과학기술토론회에서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의 또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토론회는 “인공지구위성과 운반로케트의 제작 및 발사기술을 비롯한 우주과학기술과 관련한 기초리론, 응용부문의 론문발표와 학술교류를 통하여 나라의 우주과학기술을 빠른 기간에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목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우주비행체의 체계공학적 설계방법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이 그 토론회에서 발표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논문제목만 보고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이제껏 인공지구위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오던 조선의 우주과학자들이 우주비행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주비행체란 우주선을 뜻하는 말이다. 조선의 우주과학자들이 연구토론회에서 우주비행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은, 우주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조선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진 12> 

김정은 제1위원장이 새로 건설된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현지지도하면서 제시한 몇 가지 과업들 가운데는 우주환경시험기지를 건설하는 과업도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우주와 꼭 같은 환경 속에서 위성시험을 할 수 있는 우주환경시험기지를 건설해주”어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우주환경시험기지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인데, 우주와 똑같은 환경 속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하는 특수시설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 <사진 13> 이 사진은 러시아 우주인들이 우주와 똑같은 환경에서 적응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제작된 원통형 특수시설 KS-5411을 촬영한 것이다. 우주정거장에 체류한 러시아 우주인들이 이 특수시설에서 적응훈련을 하였다. 이번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건설과업으로 제시한 우주환경시험기지는 그런 특수시설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은 우주개발 1차 5개년 계획을 완수한 뒤에 우주선을 쏘아올릴 준비에 착수할 것이다. 비약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다.     © 자주시보

그런데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만드는 지구관측위성이나 정지통신위성은 우주와 똑같은 환경에서 시험할 필요가 없다. 우주와 똑같은 환경의 특수시설에서는 우주선을 시험한다. <사진 13>에서 보는 것처럼, 러시아 우주인들은 우주환경과 똑같이 제작된 특수시설에 들어가 적응훈련을 받았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번에 우주환경시험기지를 건설할 과업을 제시한 것은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위성만이 아니라 우주선도 만들 것이라는 점을 예고해주는 것이다.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정지통신위성을 쏘아올림으로써 우주개발 1차 5개년 계획을 완수한 뒤에는 우주선을 개발하는 우주개발 2차 5개년 계획을 추진할 것으로 예견된다. 

미국, 러시아, 중국 같은 우주개발선진국들의 경험을 보면, 정지통신위성을 쏘아올린 다음에 우주선을 쏘아올리는 발전경로를 밟아왔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중국은 1990년 7월 16일에 정지통신위성을 실은 창정-2E를 처음으로 쏘아올렸고, 1995년 12월 28일에 그 운반로켓을 마지막으로 쏘아올렸는데,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99년 11월 19일 중국에서 처음으로 만든 우주선을 쏘아올렸다. 중국의 첫 무인우주선 선저우(神舟)-1호는 지구궤도를 14바퀴 회전한 뒤 21시간 11분 만에 내몽골자치주에 착륙하였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Yuri Gagarin)을 태우고 1961년 4월 12일에 저지구궤도에 진입한 소련의 유인우주선 보스또크(Vostok)-1호의 1단 로켓으로 사용된 부착식 보조엔진의 추력은 3,8884kN이었고, 그 운반로켓의 추력총량은 4,850.5kN이었다. 그런데 위에서 논한 것처럼,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4,800kN의 추력을 내는 부착식 보조엔진을 1단 로켓으로 사용하여 추력총량이 6,000KN에 이르는 강력한 운반로켓을 새로 만들었으니, 우주선을 실을 운반로켓은 이미 해결된 것이고, 우주선 제작기술만 개발하면 되는 것이다.

2015년 4월 17일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박경수 부위원장은 러시아 통신사 <이따르-따스>와 진행한 회견에서 “평화적인 우주개발사업에서 앞서가는 러시아가 이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성과를 거두기를 바라며, 올해 조로친선의 해를 계기로 우주연구분야에서 조선과 로씨야 간의 협력이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바라는 대로 조선과 러시아가 우주과학기술분야에서 서로 협력하면, 조선은 자기의 첫 우주선을 개발하는 일정을 더 앞당길 수 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새로 건설된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현지지도하면서 “평화적인 우주개발은 우리 당과 인민이 선택한 길, 선군조선의 합법적인 권리”라고 지적하였고, “민족의 존엄과 자존심을 걸고 진행하는 중대사인 우주개발분야에서도 최첨단을 돌파하려는 것은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고 의지”이므로 “주체조선의 위성은 앞으로도 당중앙이 결심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련이어 우주를 향하여 날아오를 것”이라고 말하였다. 우주정복을 향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확고한 결심과 강렬한 의지를 따르는 조선의 우주과학자, 기술자들의 최첨단돌파전에 의해 ‘천하제일강국’ 건설을 향한 조선의 우주개발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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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5

흑막에 가려진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의 진상

[한호석의 개벽예감](157)
자주시보 2015년 05월 0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스가모형무소의 수형번호 436번 전범
2. 1978년, 1997년, 2015년, 미일군사동맹의 점진적 변화
3. 눈앞에 다가온 일본군 재창설 
4. 미국이 일본의 핵야욕을 충족시켜주는 방법

▲ <사진 1> 미국과 일본은 2015년 4월 27일 미국 뉴욕에서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였다. 개정에 합의한 직후,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애쉬튼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나까따니 겐 일본 방위상, 후미오 기시다 일본 외무상과 두 손을 맞잡았다. 사진 속에서 그들의 표정은 밝지만, 그들이 개정해놓은 미일방위협력지침은 핵전쟁의 위험이 그들의 머리 위에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한다.     © 자주시보


1. 스가모형무소의 수형번호 436번 전범
 
2015년 4월 27일 봄기운이 무르익은 미국 뉴욕에서 진행된 미국과 일본의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에서 방위협력지침이 개정되었다. <사진 1> 한국, 미국, 일본의 언론매체들은 미국과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한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그러나 그런 분석은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의 부차적인 요인만 알고, 그보다 더 중요한 선차적인 요인들은 알지 못하는 우매한 분석으로 보인다.

미국과 일본의 정치군사적 공모를 드러내 보여줄 심층정보들은 언제나 흑막에 가려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번에 그 두 나라가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한 목적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결론은 복잡한 요인들을 한 가지 요인에로 환원시킨 인식오류다. 물론 미국과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그처럼 겉으로 드러난 한 가지 요인만 가지고서는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의 진상을 파악할 수 없다.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한 이 글의 분석방향은 두 갈래다. 첫 번째 갈래는 미일동맹변천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는 것이고, 두 번째 갈래는 이 글의 분석방향과 연관된 비밀문서들에서 미국과 일본의 진짜 속셈을 살펴보는 것인데, 그런 분석을 통해서 흑막에 가려진 진상으로 다가설 수 있다.

▲ <사진 2> 1946년 3월 26일 일본 스가모형무소에서 찍은 이 수형사진 속의 인물은 당시 미점령군에게 체포되어 그 형무소에 수감된 일제전범 기시 노부스께다. 미점령군은 다른 전범들은 교수형에 처했으면서도 기시는 전격 석방하였다. 이 기이한 석방조치는 기시를 일본 총리로 만들어주었으며, 정치적으로 재기한 기시는 전후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을 촉진시켰고, 일본의 핵야욕을 되살려놓았다.     © 자주시보

이 글은 1946년 일본 도꾜에 있는 스가모형무소에 수감되어 전범재판을 받던 일제전범의 초췌한 몰골이 촬영된 한 장의 수형사진에서 시작된다. 1946년 3월 26일이라는 촬영날짜가 찍힌 수형사진 속의 인물은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그 형무소에 수형번호 436번으로 수감된 기시 노부스께(岸 信介, 1896-1987)다. 이 수형사진이 말해주는 것은, 동아시아를 식민지화하려고 광란하던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여 조작해놓은 만주괴뢰국을 설계하고 관리해온 막후실권자였던 그 사람, 일제의 침략전쟁을 총지휘한 전시내각에서 상공대신을 맡아보았던 바로 그 사람 기시 노부스께가 일제의 패전으로 미점령군에게 체포되어 스가모형무소에 수감된 1급 전범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은 스가모형무소에 수감된 1급 전범 7명의 교수형을 1948년 12월 23일에 집행할 때, 그들과 함께 수감된 1급 전범 기시 노부스께만은 전격 석방하였다. 미국은 왜 기시를 교수대에 매달지 않고 석방하였을까? 그가 일제전범에서 미국에게 충성을 맹약한 극우반공주의자로 변신하였기 때문이고, 미점령군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기들에게 이용가치가 별로 없어 보이는 다른 전범들은 교수형에 처하면서도, 자기들이 이용할 만하게 보인 기시는 살려두었던 것이다.

교수대에 끌려가기 직전 미국의 전격 석방으로 구사일생 목숨을 건진 기시 노부스께는 출감 이후 전범전력을 숨기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지 않았다. 일본의 발목에 채워진 전범국의 족쇄를 쌘프란씨스코 강화조약 체결로 벗겨준 미국의 지원, 특혜, 비호 속에서 그는 전후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을 추진하는 노회한 야심가로 재기하였다.

▲ <사진 3> 미국의 유력한 시사주간지 '타임'은 1960년 1월 25일부 표지인물로 일본의 극우정치권을 대표하는 기시 노부스께를 선정하였다. 원폭투하로 불타는 피폭도시의 폐허에서 회생한 불사조 한 마리가 일제침략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향해 두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아오르려는 기이한 상상도가 배경에 그려졌다. 미국은 1급 전범 출신인 그를 처형하지 않고 석방해주었고, 결국 국제정치무대에 불사조의 모습으로 화력하게 등장시켜 아시아의 반공돌격대장으로 이용하였다.     © 자주시보

전범출신 야심가의 정치적 재기는 일본 정계의 울타리를 훌쩍 넘어 국제정치무대로 향했다. 미국의 유력한 시사주간지 <타임>은 1960년 1월 25일부 표지인물로 기시 노부스께를 선정하였다.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그 표지의 배경에 그려진 기이한 그림은 원폭투하로 불타는 피폭도시의 폐허에서 회생한 불사조 한 마리가 일제침략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향해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막 날아오르는 상상도다.

▲ <사진 4> 1960년 1월 19일 백악관을 방문한 당시 일본 총리 기시 노부스께가 신미일안보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드와잇 아이젠하워가 팔짱을 끼고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11년 전 스가모형무소 교수대에 매달렸어야 하는 기시가 미국 대통령의 환대를 받으며 백악관에 들어간 극적인 반전의 흑막 뒤에는 미국과 일본의 계략이 있었다.     © 자주시보

<사진 4>는 피폭일본의 폐허에서 회생한 ‘불사조’의 모습으로 국제정치무대에 등장한 당시 일본 총리 기시 노부스께가 1960년 1월 19일 백악관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드와잇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와 함께 신미일안보조약에 서명하는 장면이다. 1948년 12월 23일 스가모형무소 교수대에 매달렸어야 하는 1급 전범 기시 노부스께가 11년 뒤에 미국 대통령의 환대를 받으며 백악관에 들어갔으니, 이런 극적인 반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극적인 반전의 흑막 뒤에는 미국과 일본의 간계가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에게 항복한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전후 일본의 진보세력을 폭력으로 제거하고 전범세력에게 정권을 쥐어주었고, 전범세력이 지배하게 된 일본과 범죄적 간계를 공모하였는데, 기시 노부스께를 ‘불사조’로 둔갑시킨 극적인 반전은 바로 그런 범죄적 간계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공모한 범죄적 간계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동아시아 사회주의진영의 양대축인 조선과 중국을 상대로 무력침공준비와 국가전복공작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식민지강점범죄와 침략전쟁범죄를 청산하지 않은 채 전과범국가로 전락한 일본이 미국의 지원으로 유엔회원국이 된 1960년 1월 14일로부터 닷새가 지난 1월 19일 드와잇 아이젠하워는 백악관에서 기시 노부스께를 만나 신미일안보조약에 함께 서명하였는데,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미국이 조선과 중국을 상대로 준비하는 무력침공준비와 국가전복공작에 일본을 끌어들이는 계략에 따른 행동이었다. 미국이 교수대에 매달지 않고 살려 놓아준 수형번호 436번 전범이 그 계략의 한 쪽에 서 있었다.

1960년 당시 미국과 일본이 공모한 계략은 미국의 전술핵탄을 주일미국군기지에 비밀리에 배비해놓았다가 불시에 조선을 치려는 북침핵전쟁음모에로 집중되었다. 미국의 핵문제 전문가 핸스 크리스텐슨(Hans M. Kristensen)이 1999년 7월에 발표한 논문 ‘핵우산 아래의 일본: 냉전시기 일본에서의 미국의 핵무기와 핵전쟁계획수립’에 따르면, 드와잇 아이젠하워와 기시 노부스께가 신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하였던 1960년부터 3년 동안 미국은 워싱턴주 타코마의 맥코드공군기지에 두었던 전술핵탄들을 비밀리에 일본의 요꼬다, 미사와, 이루마, 가데나 등의 주일미국군기지들에 이동배치해놓았고, 1962년 9월에는 미일동맹군이 미국 태평양사령관의 작전지휘를 받는 북침핵전쟁연습인 ‘높은 언덕(High Hills) II’를 감행하였다.
1962년 9월부터 미국군이 일본자위대를 끌어들여 감행하였던 북침핵전쟁연습의 흑막 뒤에는 미국이 스가모형무소에서 전격 석방한 기시 노부스께의 핵야욕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2. 1978년, 1997년, 2015년, 미일군사동맹의 점진적 변화

기시 노부스께가 백악관에서 신미일안보조약에 서명한 때로부터 18년이 지난 1978년 11월 27일 미일방위협력지침이 제정되었다. 이 땅에서 전쟁의 불길이 치솟고 있었던 1951년 9월 8일 미일안보조약을 서둘러 체결하였고, 1960년 1월 19일에는 그 조약의 내용을 더 강화한 신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한 미국과 일본은 왜 방위협력지침을 추가로 제정한 것일까? 그 까닭은, 1970년대 후반 미국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던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미일동맹군을 증강해야 할 다급한 요구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정은 이러하였다.

20세기 세계사에 냉전기라고 기록된 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는 냉전만이 아니라 열전도 벌어졌는데, 그 열전의 무대가 바로 베트남전선이다. 미국은 첨단무기로 무장한 미국군과 추종국 군대들을 그 전선에 대거투입하고 무던히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구식 무기밖에 갖지 못한 북베트남군에게 쓰라린 패배를 당하고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에서 완전히 쫓겨나고 말았다. 첨단무기로 무장한 미국군이 당연히 이길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베트남전쟁에서 미국군이 어이없게 패하였을 때, 미국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컸다. 첨단무기가 전쟁에서 만능이 아니라는 진리를 뒤늦게 깨달은 미국은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또 다른 전쟁에 대비하여 후방지원이 필요했는데, 미국은 그런 후방지원임무를 일본에게 맡겼던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또 다른 전쟁에 대비하여 미국군은 전방전투임무를 맡고 일본자위대는 후방지원임무를 맡는다는 것, 바로 이것이 1978년 11월 27일에 제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의 기본내용이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패한 자기에게 닥쳐올 미증유의 위험이 조선과의 전쟁이라고 예감하였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미국의 한심한 전쟁능력을 목격한 조선은 미국과 싸워 능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더욱 굳게 가질 수 있었다. 중국 외교문서를 인용한 중국인 전문가의 연구결과를 보도한 <연합뉴스>와 <조선일보> 2013년 10월 24일 보도들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베트남전선에서 사이공 함락이 눈앞에 다가왔던 1975년 4월 18일부터 26일까지 중국을 방문하여 ‘남조선 해방’을 위한 군사행동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였다고 한다. 

▲ <사진 5>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사건이 일어나자, 미국은 조선에게 보복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방대한 무력을 한반도에 집결시켰다. 이 사진은 당시 미해군 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구축함 피킹호와 미사일구축함 프레블호를 대동하고 동해의 작전구역으로 출동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시보

베트남전쟁이 끝난 뒤에 조미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예감이 팽팽한 긴장감을 몰아왔던 그 시기에 조선인민군과 미국군이 물리적으로 격돌한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으니, 그것이 바로 1976년 8월 18일에 일어난 판문점사건이다. 그 사건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국군 병사들의 정전협정 위반행위를 제지하던 조선인민군 병사들에게 미국군 병사들이 먼저 싸움을 걸자 그에 격분한 조선인민군 병사들이 그들을 현장에서 쳐죽인 사건이다. 판문점사건 직후 미국은 무력보복을 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사진 5>에서 보는 것처럼 전면전을 하고도 남을 방대한 무력을 이 땅의 공중과 해상에 집결시켰다. 서태평양에서 긴급출동한 항공모함 3척, 오키나와에서 출격한 F-4 전투기 24대, 괌에서 출격한 B-52 전략핵폭격기 3대, 미국 본토에서 출격한 F-111 전술핵폭격기 20대가 이 땅에 몰려들었던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관련자료들은 당시 판문점 정전위원회 조선인민군 대표가 김일성 주석의 위임에 의하여 작성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구두통지에서 유감의 뜻을 밝힌 것으로 하여 조선이 전쟁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서술하였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월간조선> 2013년 3월호에 실린 관련기사에 따르면, 판문점사건이 일어나자 평양시민 30만명이 각 지방으로 분산, 소개되었고, 등화관제와 전시배급제가 실시되었으며, 로농적위대는 물론 학생들까지 총을 잡았고,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침투한 ’폭풍군단’ 부대들이 각지의 주한미국국 및 한국군 군사기지들 주변에 매복하고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당시 정황은 조선의 군대와 인민들이 ‘최후결전’에 총궐기할 일촉즉발의 마지막 단계에 돌입하였음을 말해준다. 당시 조선은 핵탄을 한 발도 갖지 못했는데, 그런 조선이 핵탄 수 천 발로 무장하고 덤벼드는 미국과 단독으로 맞서 전면전을 벌이려 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패하고 쫓겨난 때가 불과 1년 전이었으므로, 그런 미국에게 조선과의 전면전에서 이길 자신이 전혀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선인민군이 북베트남군과는 격이 다른 강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미국군은 그런 강군과 맞서기 위해 지원군이 필요하였는데, 미국이 체계적으로 육성한 일본자위대가 바로 그런 지원군이었다. 그래서 안보조약으로 결탁해온 미국과 일본은 조선을 상대로 싸우게 될 전면전에 대비하여 또 다른 전쟁지침을 별도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 전쟁지침이 바로 미일방위협력지침이다.    
 
냉전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70년대 후반 미국과 일본에게는 소련을 군사적으로 견제할 필요가 있었지만, 소련 견제는 미일방위협력지침 제정에서 부차적인 요인으로 되었을 뿐이다. 소련 견제보다 더 직접적이고, 선차적인 요인은 미국이 겪었던 베트남전쟁 패배와 조선과의 전면전 위기였던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조선과의 전면전에 대비해 방위협력지침을 제정한 때로부터 또 다시 9년이 지난 1997년 9월 24일 미국과 일본은 그 지침을 개정하였다. 그 무렵 동아시아 정세에 어떤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기에 미국과 일본은 기존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한 것일까? 1997년에 조선은 ‘고난의 행군’을 헤쳐가며 건국 이래 가장 혹심한 시련을 겪고 있었고, 미국과 일본에서는 조선이 앞으로 6개월 안에 갑자기 붕괴할지 모른다는 ‘붕괴임박설’이 흉흉한 소문처럼 나돌고 있었다. 국제사회는 걱정 어린 시선으로 조선의 운명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걱정 어린 시선은 조선의 모습 가운데서 겉으로 드러난 절반의 모습밖에 볼 수 없었다. 조선이 드러내지 않은 나머지 절반은 어떤 모습이었던가?

▲ <사진 6> 조선이 미사일능력을 증강시키는 것을 저지하려고 1996년 4월 20일 조선과 미사일회담을 시작한 미국은 자기의 북침핵전쟁능력을 증장시키기 위해 1997년 9월 24일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였다. 이 사진은 2012년 4월 15일 태양절에 평양에서 진행된 군사행진에 등장한 화성-6호 준중거리미사일이다. 4축8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사거리 1,500km의 이 탄도미사일은 핵탄을 장착하고 일본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다.     © 자주시보

1996년 2월 22일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존 도잇취(John M. Deutch)가 연방상원 정보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조선이 드러내지 않은 절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보고서에서 그는 노동 미사일과 대포동 미사일을 개발하는 조선의 미사일능력증강은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위협으로 된다고 우려하면서, 조선이 장거리 미사일의 성능을 향상시킬 미사일유도통제기술을 갖지 못하도록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가 지적한 노동 미사일은 조선에서 쏘면 일본의 심장부를 핵탄으로 타격할 사거리 1,500km의 화성-6호 준중거리미사일이며, 그가 지적한 대포동 미사일은 조선에서 쏘면 미국 본토를 핵탄으로 타격할 사거리 10,000km의 목성-1호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도잇취의 보고서는 <사진 6>에 보이는 조선의 미사일이 동아시아 군사정세를 뒤흔들어 놓았음을 말해준다. 1994년부터 조선을 상대로 핵회담을 진행해오던 미국이 협상방향을 핵문제에서 미사일문제로 갑자기 바꿔 1996년 4월 20일에 미사일회담을 시작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1997년 9월 24일 미국과 일본이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한 것은 조선의 핵타격권에 들어가게 된 미국이 일본과의 합동작전범위를 확장하여 자기의 북침핵전쟁능력을 증강시키려는 새로운 조치를 취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이 합의한 새로운 조치가 조선을 겨냥한 선제타격전략이라는 사실은 미일방위협력지침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1997년에 개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에는 “일본의 주변사태가 예상될 때, 미일 양국 정부는 그 사태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명기되었고, 2015년에 2차로 개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에는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이 임박하면, 양국 정부는 일본의 방위에 필요한 준비를 갖추고,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명기되었다. 그 지침에 명기된 ‘예방조치’는 미국군과 일본자위대가 함께 조선을 먼저 치는 선제타격을 의미하는데, 그 선제타격이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는 선제타격이 아니라 핵탄을 사용하는 선제핵타격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미국이 미일합동작전범위를 북침선제타격으로 더욱 확장해놓은 방위협력지침 개정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때로부터 또 다시 18년이 지난 2015년 4월 27일 그 두 나라는 그 지침을 2차로 개정하였다. 1978년에 방위협력지침을 제정하자고 요구한 쪽은 미국이고, 1997년에 그 지침을 개정하자고 요구한 쪽도 미국인데, 이번에 그 지침을 또 다시 개정하자고 요구한 쪽은 일본이다. 이런 사정은 2차 개정이 제정이나 1차 개정과 달리 일본의 군사적 요구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미일방위협력지침 2차 개정의 진상을 파헤치려면, 2차 개정에서 일본이 노리는 군사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3. 눈앞에 다가온 일본군 재창설 

미일방위협력지침 2차 개정에서 일본이 노리는 군사적 목적 가운데 첫 번째 목적은 일본군 재창설이다.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악하여 집단자위권을 갖겠다는 것은 일본자위대를 정규군으로 재창설하겠다는 뜻이다. 일본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추진한 자기의 군사적 재무장을 이미 오래 전에 완료하였으므로, 오늘 일본자위대는 자위대라는 간판만 달았지, 내용적으로는 사실상 정규군인데, 지금 일본의 노림수는 자위대라는 간판을 내리고 일본군이라는 간판을 내걸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사실상 정규군을 보유하였으면서도 일본군이라는 간판을 내걸지 못한 것은, 70년 전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미국에 의해 일본군을 강제로 해산당한 과거사가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기 때문인데, 이번에 일본은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함으로써 자위대를 일본군으로 재창설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미일방위협력지침 2차 개정으로 고무된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培 晉三)는 안보에 관련된 국내법들을 줄줄이 개악한 뒤에 자위대를 일본군으로 재창설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군이 재창설되면 일본은 교전권을 공식적으로 보유하게 되는데, 그것은 미국이 스가모형무소에서 살려 놓아준 일제전범들이 실행하려고 하였던 미완의 계획을 65년 만에 다시 살려내 완성하는 것이다. 기밀해제된 미국의 비밀문서를 인용한 <교도통신> 2006년 8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일제시기 육군대신이었던 전범 출신 우가끼 가즈시게(宇垣一成)가 총사령관을 맡고, 그 밑에서 육군중장이었던 전범 출신 가와베 또라시로(河邊虎四郞)가 참모총장을 맡는 일본군 재창설 계획이 1950년 2월 미점령군의 양해 아래 작성되었는데, 당시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吉田武)는 그 계획에 대한 백악관의 최종승인을 받기 위해 우가끼와 가와베를 워싱턴 디씨에 파견하려고 하였다.

이 땅에서 6.25전쟁이 터지기 직전 일제전범 출신 극우세력이 추진했던 일본군 재창설 계획은 65년이 지난 오늘 아베 신조가 대표하는 극우세력에 의해 재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강점범죄와 침략전쟁범죄를 청산하지 않은 채 전과범국가로 전락한 일본이 일본군을 재창설하여 교전권을 틀어쥐면, 그것은 일제의 광란적인 침략전쟁책동을 70년 뒤에 되살려놓는 죄악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 <사진 7> 미일방위협력지침 2차 개정으로 일본자위대는 미국군과의 공동작전에서 교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미일동맹군이 일차적으로 노리는 공격대상이 조선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므로, 미일방위협력지침 2차 개정은 미국이 일본에게 북침전쟁의 길을 터준 것이다.     © 자주시보

한국과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이번에 방위협력지침이 개정되어 일본자위대의 파병범위가 전 세계로 확대되었고, 파병시기도 전시만이 아니라 평시까지 확대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하였지만, 그런 해석은 문제의 초점을 흐려놓은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일본자위대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교전권을 행사하려는 게 아니라, 미국군이 전쟁을 감행할 어느 특정지역에서 미국군과 공동작전으로 교전권을 행사하려는 것이다. <사진 7>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일본자위대가 교전권을 틀어쥐면 독도를 강탈할 위험이 조성될 수 있다고 우려하였지만, 그런 보도는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작성한 전쟁계획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의 산물이다. 교전권을 틀어쥔 일본자위대가 전쟁을 벌이려는 특정지역은 독도가 아니다. 일본자위대는 미일동맹군의 한 축으로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므로, 일본자위대의 작전지역은 미일동맹군의 작전지역과 일치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작전지역은 미국군이 일본자위대와 함께 북침전쟁을 감행하려는 한반도인 것이다. 미일동맹군이 ‘K반도사태’를 상정한 대규모 지휘소연습(CPX)을 실시하고, 그에 따른 실전연습(FPX)까지 연속 실시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1999년 9월과 10월이었다.

미국군과 함께 북침전쟁을 감행하려는 일본자위대의 작전구상은 <마이니찌신붕> 1970년 3월 23일부 보도기사에서 폭로된 바 있는데, 그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자위대는 조선반도 유사시에 조선반도의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 대마도해협에서 해상봉쇄작전을 벌인다. 북조선이 선제공격을 할 경우, 일본은 조선전쟁에 참전한다. 그 밖의 다른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미국군이 조선반도에서 작전하면 일본자위대는 일미안보조약에 따라 조선반도에 상륙한다. 한국에 체류하는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에 위해가 가해진다고 판단될 때는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자위대가 조선반도에 상륙한다.” 

▲ <사진 8> 일제는 1940년대에 원폭개발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하였다. 이 사진은 당시 원폭개발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던 이화학연구소 건물을 촬영한 것이다. 이화학연구소는 1943년 7월 원폭설계도를 완성하였다.     © 자주시보


4. 미국이 일본의 핵야욕을 충족시켜주는 방법

일본이 미일방위협력지침 2차 개정에서 노리는 군사적 목적 가운데 두 번째 목적은 앞으로 재창설될 일본군이 미국군의 핵전쟁에 가담하기 위한 핵전능력을 획득하려는 것이다. 이 심각한 문제를 파악하려면 아래와 같은 정밀분석이 요구된다.

일본은 74년 전부터 핵야욕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도쿄신붕> 2012년 8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1941년에 일본군으로부터 원폭개발연구를 의뢰받은 이화학연구소는 2년 동안 검토한 끝에 10킬로톤급 원폭을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1943년 3월 일본 육군항공기술연구소에 제출하였다. <교도통신> 2008년 7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원폭개발연구에 착수한 이화학연구소는 1942년 7월부터 1943년 1월까지, 그리고 1943년 2월부터 1944년 4월까지 원폭개발에 사용되는 싸이클로트론(cyclotron)이라는 장치를 가동하였고, 1944년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싸이클로트론을 제작하였다. <사진 8> 이화학연구소가 원폭설계도를 완성한 때는 1943년 7월이었다.

일제는 우라늄이 매장된 함경남도 흥남지구에 지하화된 토륨추출시설을 건설하였고, 1944년부터 거기서 일제 해군제독 하세가와 히데오(長谷川秀夫)의 지휘 밑에 300명에 이르는 일본인 과학자들이 ‘F-NZ’라는 사업명칭을 내걸고 핵물질을 개발하였다. 

그 무렵 일제로부터 핵물질추출을 위한 기술지원을 요청받은 나치독일은 자기들이 제작한 싸이클로트론을 대형수송기에 실어 북극항로를 통해 1945년 초 일제에게 넘겨주었다. 원폭개발에 광분하던 일제는 1945년 8월 12일 새벽 강원도 원산 앞바다 영흥만 북쪽에 있는 무인도에서 소규모 원폭실험을 실시하였다.

▲ <사진 9>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하여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일제가 원폭개발연구에 사용하던 싸이클로트론 4기를 압수하여 1945년 11월 요꼬하마 앞바다에 버렸다. 이 사진은 미점령군이 압수한 싸이클로트론을 어선에 싣고 요꼬하마 앞바다로 나가 바다에 버리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시보

1945년 8월 24일 공중강습으로 낙하산을 타고 흥남에 강하한 소련군 공수부대원들은 흥남지구의 토륨추출시설을 습격하여 일본인 과학자들을 체포한 뒤 그들을 모스크바로 압송하였고, 일본을 점령한 미국군은 일제의 원폭개발연구자료를 압수하여 워싱턴 디씨로 보내면서 그 연구사업에 참여했던 일본인 과학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으며, 일제에게서 압수한 4기의 싸이클로트론을 1945년 11월 요꼬하마 앞바다에 버렸다. <사진 9>

일제의 핵야욕은 패전으로 좌절된 것처럼 보였으나, 미국이 스가모형무소에서 석방한 기시 노부스께에 의해 12년 만에 되살아났다. 1957년 당시 일본 총리였던 그는 “현행 헌법 아래에서도 자위를 위한 핵보유는 용인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 궤변은 미국이 일본의 핵야욕을 실현할 통로를 열어주었음을 의미하는데, 기시 노부스께는 자기의 핵야욕을 실현할 통로를 열어준 미국의 호의에 고무되어 핵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 국무부 산하 극동지역연구부는 1957년 8월 2일에 작성한 비밀보고서에서 “일본은 지금 원자로와 핵연료를 수입하지만, 곧 자체 기술로 원자로와 핵연료를 개발하면, 원자력 생산의 부산물인 플루토늄 또는 무기급 핵분열물질을 획득할 것으로 보인다”고 하면서, 그러면 일본은 5년 만에 핵탄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견하였다. 기시 노부스께가 미국의 고무와 지원을 받으며 핵야욕을 실현할 시점이 1962년으로 예견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58년 6월 20일 미국 국무장관에게 보낸 비밀전문에서 주일미국대사는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 야마다 히사나리(山田久就)가 자기에게 “방위용 핵무기에 관해 고려한 뒤에 그것을 보유하기로 결정할 것인지 결정하지 않을 것인지 논의한다”고 말한 사실을 전했으며, 1958년 9월 9일에 작성된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의 회의기록은 “기시 일본 총리는 일본의 핵무기 보유가 불가피하다고 믿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요미우리신붕> 2010년 11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1969년 2월 3일부터 사흘 동안 일본에서 진행된 일본-서독정책기획협의에서 일본 외무성 관리는 “일본은 핵개발연구와 로켓개발연구를 통합하여 북조선의 위협이 있을 때 핵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준비를 완료하였음을 의미한다.

핵야욕을 품은 일본이 이미 1969년에 고도의 핵기술을 획득하였으면서도 핵무장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까닭은, 미국이 일본에게 핵우산과 핵기술을 제공해주는 대신 일본의 핵무장을 저지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처럼 일본의 핵무장을 저지해오던 미국이 2010년부터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이상한 행동이란 2010년부터 미국이 일본과 ‘확장억지대화(Extended Deterrence Dialogue)’를 진행하기 시작하였을 뿐 아니라, 2012년부터는 한 술 더 떠서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의 고위관리들에게 미국 본토의 대륙간탄도미사일기지, 핵추진잠수함기지, 전략사령부 등을 시찰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미국이 말하는 확장억지란 핵타격을 뜻하는 것이므로, 미국과 일본이 확장억지대화를 진행하는 것은 그 두 나라가 핵탄배비문제와 핵타격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미국이 일본에게 자기의 핵무장기지들을 보여주는 것은 논의 차원을 넘어서 실행 차원으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군은 자기들이 단독으로 운용해오던 핵전략을 앞으로 재창설될 일본군과 공동으로 운용하려는 준비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껏 미국의 핵우산은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해준 것이었지만, 지금 그 핵우산은 미국과 일본이 핵탄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유의 핵우산으로 전변되는 중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의 핵무장을 저지해왔던 미국은 지금 미국의 핵탄을 일본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미일공동확장억지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공동확장억지전략은 이번에 개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에 명시되었는데, 그 지침은 “양국 정부는 급변사태에 대처하여 가동할 관련기구들이 참가하는 쌍무조절기구(bilateral coordination mechanism)를 정상적인 환경 아래서 창설할 것”이라고 하면서, “미국군과 일본자위대는 쌍무조절센터(bilateral coordination center)의 운용을 포함하는 쌍무조절기구를 통하여 작전, 정보, 병참지원을 긴밀히 조절할 것”이라고 명시하였다. 이것은 주일미국군사령부와 일본자위대 통합막료감부가 함께 핵타격전을 지휘하는 공동작전지휘부를 상설기구로 창설하겠다는 뜻이다.

충격적인 것은, 미국이 이미 58년 전에 자기의 핵탄을 일본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확장억지전략구상을 예행연습하였다는 사실이다. <교도통신> 2015년 1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합참본부는 1958년 2월 17일에 작성한 비밀문서에서 미국군과 일본자위대가 1957년 9월 24일부터 닷새 동안 미국의 핵탄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핵타격도상훈련을 주일미국군기지에서 실시하였으며, “미국은 일본자위대가 핵무기를 도입하기를 바란다. 자위대는 가장 현대적인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를 갖추어야 한다”는 결정사항을 태평양사령관에게 통보했다는 것이다. 
 
▲ <사진 10> 기시 노부스께는 일본의 핵야욕을 실현하려다가 미국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오늘 아베 신조는 자기 외할아버지 기시가 58년 전에 이루지 못한 일본의 핵야욕을 미국의 확장억지전략에 편승하는 방법으로 실현하려는 것이다. 이 사진은 기시 노부스께가 자기의 어린 외손자 아베 신조를 무릎에 앉히고 찍은 가족사진이다.     © 자주시보

여기서 1957년이라는 시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57년은 미국의 특별석방조치로 스가모형무소에서 살아나온 기시 노부스께가 “현행 헌법 아래에서도 자위를 위한 핵보유는 용인된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일본의 핵야욕을 선동한 시점이다. 기시 노부스께는 일본의 핵야욕을 실현하려고 시도하다가 미국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오늘 아베 신조는 자기 외할아버지 기시가 58년 전에 이루지 못한 일본의 핵야욕을 미국의 확장억지전략에 편승하는 방법으로 실현하려는 것이다. <사진 10>

▲ <사진 11> 2015년 4월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일본 총리 환영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버락 오바마는 기시 노부스께의 핵야욕을 계승한 아베 신조를 크게 환대하였다. 그 두 사람의 다정다감한 모습 뒤에 가려진 것은 미일공동북침핵전쟁을 노리는 오바마-아베의 위험하고 음흉한 계략이다.     © 자주시보

기시 노부스께가 1960년 1월 백악관에서 신미일안보조약에 서명한 때로부터 아베 신조가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본에 서명한 오늘까지 55년 동안 미국은 일본의 군사적 지위와 역할을 점진적으로 격상, 확대시켜주었다. 이를테면 1978년에 제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에서 일본자위대는 조미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미국군의 후방지원을 맡게 되었고, 1997년에 개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에서 일본자위대는 미국군의 북침선제타격에 가담할 수 있게 되었으며, 2015년에 개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에서 일본자위대는 미국군과 공동으로 북침핵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 11>에서 보는 것처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5년 4월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연출한 친근한 모습은 이번에 미국이 일본자위대의 지위와 역할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격상, 확대시켜주었음을 암시한다.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지 않으면서도 자기의 북침핵전쟁에 일본자위대를 깊숙이 끌어들이려는 것, 바로 이것이 미일방위협력지침 2차 개정의 흑막에 가려진 미국의 계략이며, 핵야욕을 품은 일본이 미국의 확장억지전략에 편승하여 미일공동북침핵전쟁을 감행하려는 것, 바로 이것이 미일방위협력지침 2차 개정의 흑막 뒤에 가려진 일본의 계략이다.

그러나 일본의 그런 계략은 역사적 사실을 망각한 자기파멸의 꼼수로 보인다. 1940년대 태평양전쟁 시기에 미국 본토를 공격하기 위한 원폭을 개발하려고 광란하던 일제가 5년도 채 되지 않아 원폭재앙으로 패망한 역사적 사실을 망각한 결과는 자기파멸의 반복이다. 핵야욕에 눈이 멀어 역사적 사실도 망각하고, 미국의 확장억지전략에 매달려 북침핵전쟁음모에 광분하는 일제전범의 후예들은 어느 날 조선의 핵타격으로 파국적 종말을 맞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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