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96)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초대형 공황이 오는 것일까?
미국에서는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가, 유럽연합과 일본에서는 재정위기가 격화되면서, 세계적 범위에서 경제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실업률과 빈곤률은 큰 폭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일시적이고 국부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그런 현상은, 세계적 범위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쇠락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경제라 하면 오로지 시장경제밖에 모르기에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미신처럼 믿어온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은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세계적 범위에서 그처럼 쇠락해가는 현실 앞에서 그만 공포에 질려버렸다. 온갖 경제지표들이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지금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전반적으로 쇠락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런 현실을 차마 믿으려 하지 않는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은 일시적 경기침체와 점차적 경기회복이라는 거짓말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퍼뜨리는 기만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엄연하다. 오늘 대량실업 확산과 경제성장률 폭락과 빈부격차 극대화가 세계적 범위에서 광범하게 지속되고 있는 '특이한 현상'은 1929년에 세계를 휩쓸었던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같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파국적인 초대형 공황(super-depression)이 밀려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1929년의 대공황과 오늘의 대공항 사이에서 드러나는 차이점은, 전자가 급진적으로 폭발하였던 것에 비해 후자는 파상적으로 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개양상의 현상적 측면만 다를 뿐, 대공황의 본질적 측면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세계경제사에 대한 기본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자본주의시장경제에서 공황은 불가피한 숙명이다. 학술개념으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공황이란 사회적 생산관계에서 생겨난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모순이 격화, 폭발하여 거대한 굉음과 충격을 일으키는 대량실업 확산과 경제성장률 폭락과 빈부격차 극대화의 비극적인 착종인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것처럼, 대공황기에는 계급적 착취와 빈궁, 사회적 소외와 차별이 폭력적인 양상으로 자행된다. 실업 폭증과 비정규직 극대화, 그리고 끝없는 부채증식과 연쇄도산, 흉악범죄 및 자살의 만연 같은 오늘 우리 사회를 질식시키고 있는 공포스러운 현실은 사회계급적 모순이 곪아터진 파멸적 결과들이다. 착취와 빈궁, 소외와 차별의 고통을 겪는 우리 사회의 민중이 환멸을 느끼며 저주하는 "이 놈의 더러운 세상"은 그렇게 대파국으로 밀려가고 있는 중이다.
세계경제사를 돌이켜보면, 자본주의시장경제는 주기적으로 공황을 겪으면서 파국에 빠져들곤 하였는데, 수구우파정권은 자본가계급과 공모결탁하여 대공황을 예방하는 방도 또는 대공황 고통지수를 완화하는 처방을 찾아내어 파국적 위기를 간신히 넘기곤 하였다. 그래서 자본주의체제는 그처럼 오랜 세월 동안 무너지지 않고 용케도 유지되어온 것이다.
역사적 경험은 수구우파정권의 위기관리라는 것이 폭력양상과 비폭력양상으로 각각 전개되어왔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수구우파정권이 추진한 폭력적 위기관리는 대외침략전쟁을 도발하여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 그리고 자국에서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해외에 '진출'하여 저임금 고용시장을 확대한 것이다. 전자를 대량살상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대량착취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 편, 수구우파정권이 추진한 비폭력적 위기관리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조합을 정치적으로 타협하게 만들어 '복지제도'를 운용한 것이다. 원래 '복지제도'는 공황을 예방하는 위기관리의 산물이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위기관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 그런 위기관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의 심리를 옥죄는 공포의 원인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논할 수 있다.
첫째, 선진자본주의국가의 수구우파정권은 대외침략전쟁을 도발하기는 하나 세계대전을 도발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경우 사회주의국가의 핵억지력이 보복핵공격으로 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국가의 핵억지력이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의 세계대전 도발야욕을 진압하는 억지요인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국가의 핵억지력에 의해 세계대전을 도발하지 못하게 된,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은, 정권전복 급변사태나 반테러전쟁 같은 비재래식 전쟁 시나리오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정권전복 급변사태나 반테러전쟁 같은 비재래식 전쟁을 도발해도 대공황에서 탈출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 나라들의 국가재정이 이미 파산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국가재정이 회복할 수 없는 파산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은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국가재정이 파산상태에 빠진 자본주의나라들이 정권전복 급변사태나 반테러전쟁 같은 비재래식 전쟁에 막대한 전비를 계속 지출하는 것은 그 나라들의 재정파산위기를 더욱 심화시켜줄 뿐이다.
자본가계급과 수구우파정권이 공황을 예방하기 위해 써먹은 또 다른 위기관리정책은, 사회민주주의에 감염된 노동조합과 정치적으로 타협하여 이른바 '복지국가'라는 것을 세워놓는 것이었으나, 자본주의국가들에서 국가재정이 파산상태에 빠졌으니 '복지국가'는 이제 해체시각을 남겨두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국가재정의 파산이 사회민주주의의 퇴조와 '복지국가'의 해체를 불러오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일부 노조활동가들과 정치인들이 사민주의 타령에 장단을 맞추며 '복지국가' 환상곡이나 연주하고 있으니 너무도 한심한 일이다.
둘째, 자본주의국가들은 자국내 비정규직을 극대화하고 해외 저임금 노동시장을 확장하여 계급적 착취를 대량화하고 폭력화하였지만, 이제는 그것도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 비정규직 확대로는 생산력을 발전시키기는커녕 현상유지도 할 수 없으며, 저임금 노동시장을 확장할 '해외'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조직적 저항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야말로 착취의 대량화와 폭력화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대안경제 모색에서 제기되는 여섯 가지 문제
세계적 범위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전반적으로 쇠락하는 오늘의 현실은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를 요구한다. 일각에서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내부결함을 수정, 보완할 방도를 상상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내부결함을 수정, 보완할 수 없을 만큼 전반적으로 쇠락하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식쟁이들의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수정과 보완의 방도라는 것은 과학적인 해결방도가 아니라 비과학적인 공상의 분비물이다.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를 모색하는 것이 진보적인 설계전망이며 과학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을 모색하는 것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연구가 뒤따라야 하므로,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안경제 모색에서는 아래와 같은 문제들이 제기된다.
첫째,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를 모색하는 연구활동은 단순한 학술활동이 아니라 진보변혁적인 정치활동의 일환이다. 그러므로 학자들이나 학술단체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여 대안경제를 모색할 수 없으며, 낡은 세상을 새로운 세상으로 바꾸려는 진보정당이 자기의 정치사업으로 추진해야 마땅하다.
둘째,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는,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이 땅에 남겨놓은 고질적 병폐인 이윤중심적 사고를 전면적으로 폐기하고 사람중심적 사고로 모색해야 하는 새로운 경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중심적 사고는, 대안경제의 기본원리에 의거하는 새로운 사고를 뜻한다. 사람중심적 사고에서 '사람'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생산활동의 주체인 생산자대중 곧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추상화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사람중심적 사고란 생산자대중의 요구와 지향, 그들의 이익과 행복을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안경제는 당연히 생산자대중으로부터 인정과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셋째,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대안경제를 모색하는 과정은, 쇠락하는 시장경제를 고수하려는 정적들과의 치열한 투쟁을 수반한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적 생산자대중과 함께 그 투쟁의 앞장에 서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넷째, 대안경제는 진보적 정권교체로 실현될 것이다. 진보적 정권교체가 아니라면 대안경제를 실현할 다른 방도는 없다. 오직 진보적 자주정권 수립만이 대안경제를 실현하는 길이다. 대안경제를 모색하는 정치활동과 진보적 자주정권을 수립하는 정치활동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다섯째, 대안경제는 진보적 자주정권이 이 땅 위에 실현할 진보적 민주주의의 새로운 경제다. 진보적 민주주의의 새로운 경제에서는 당연히 주요산업 국유화와 생산활동 민주화가 실현될 것이다. 주요산업 국유화와 생산활동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실현한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체제,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에 실현할 대안경제라고 말할 수 있다.
여섯째, 대안경제는 진보적 자주정권이 북측 정권과 합의하여 실현할 통일국가 안의 지역통합경제로 확대, 발전하게 될 것이다. 통일국가 안의 지역통합경제는 현 시기 단계적으로 추진 중인 남북경제협력을 심화, 발전시키는 선행경험을 요구한다. 그 선행경험의 실천강령은 10.4 선언에 명시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10.4 선언을 전면적으로 이행할 정당이 승리해야 한다고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 힘차게 부르는 기백과 활력으로
누구나 아는 것처럼, 대안경제의 주인은 생산노동의 직접적 담당자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다. 생산자대중이 대안경제를 인정하고 지지하고 요구할 때, 대안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대안경제의 핵심내용인 주요산업 국유화와 생산활동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려면, 예속적 수구정권을 자주적 진보정권으로 교체하여 진보적 개헌을 실시해야 하며 생산자대중을 진보의식화하여 생산활동의 주체로 일어서게 하여야 한다.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고 생산자대중을 자주의식화하는 것은 진보정치의 근본문제이며 사회변혁의 전략적 과업이다. 이것은 어렵고 복잡한 추진과정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려면 진보적 대중정당의 역량을 비상히 강화해야 하며, 생산자대중을 자주의식화하려면 민주적 노동조합의 역량을 비상히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는 문제는 통합진보당에게 달렸고, 생산자대중을 자주의식화하는 문제는 민주노총에게 달렸다고 말할 수 있다.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기 위해서도 그렇고, 생산자대중을 진보의식화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진보적 대중정당과 민주적 노동조합의 상호관계를 끊임없이 밀착시켜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이 땅의 현실은 반대방향으로 역행하는 듯이 보인다. 집단탈당과 종북모략으로 통합진보당이 큰 타격을 입었으며, 노동계급의 조직적 분열에 더하여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노동계급을 정치적으로 분열시켰다. 타격상처와 분열상처가 아물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단축하는 것은 통합진보당에 결집한 진보정치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투쟁에 달렸다.
수구우파정당이 쇠락하는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붙들고 공포에 질려 있을 때, 상처를 안고 다시 일어선 통합진보당은 힘찬 노래를 부르며 자기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이 땅의 민주투사들이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군사독재정권의 광란적 탄압과 모략을 뚫고 나아갔던 그 기백과 활력으로... (2012년 10월 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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