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뉴스 2012년 09월 17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핵공포의 균형’은 사라졌는가?
1947년부터 1991년까지 45년은 냉전기였다. 적대관계가 극도로 격화되어 불과 불이 오가는 전쟁을 열전(hot war)이라 하고, 적대관계가 폭발 직전에 놓인 긴장상태를 냉전(cold war)이라 한다. 1947년부터 1991년까지 45년 동안 6.25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 같은 열전이 일어났는데, 그런 시대를 왜 냉전기라고 하는 것일까? 아시아와 중동에서 열전이 계속 일어났는데도 냉전이라고 하는 까닭은, 냉전의 중심축을 소련과 미국의 적대관계로 규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소냉전이라는 말을 쓰면서, 6.25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을 미소냉전의 부산물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련과 미국의 적대관계를 인식의 중심에 놓고 냉전기를 바라보는 대국주의 관점은 폐기되어야 하며, 아시아와 중동에서 일어난 일련의 반제열전들을 미소냉전과 적어도 동등하게 평가하는 균형적인 시각으로 세계사를 다시 읽어야 한다.
45년 동안 지속되었던 소련과 미국의 냉전은
핵무기라는 전대미문의 대량파괴무기를 서로 겨누며 정치군사적으로 대치하였다는 점에서, 핵전쟁 위험이 조성된 핵냉전이었다. 지금 러시아와 미국이
실전배치한 핵전쟁수단들도 그렇지만, 지난 냉전기에 소련과 미국이 실전배치하였던 핵전쟁수단들도 지구를 여러 차례 파괴하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것이었다. 이것은 지난 냉전기에 소련과 미국이 핵무기 증강을 경쟁적으로 지속하였으면서도, 상대만이 아니라 자기도 멸망하게 될
공멸적 핵전쟁을 감행하지 못하는 조건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6.25전쟁에서 북을 상대로, 베트남전쟁에서 북베트남을 상대로 핵공격을
감행하려는 잔인무도한 작전계획을 준비하였으나 결국 행동에 옮기지 못한 까닭은, 대북핵공격이 소련과의 핵전쟁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하는 확전
공포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냉전기의 핵전쟁 위험을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라고 말한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핵공포의 균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세계사는 냉전이 1991년에 끝났다고 말한다.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냉전이 끝났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엄청난 핵전쟁수단을 갖추고 있지만, 미국에 대해 냉전적 적대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냉전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중국의 국력이 강해지는 것을 우려한 미국이 이른바 ‘중국위협론’을 꺼내들고
‘신냉전’이 금방 도래할 것처럼 말하는 일부 주장도 들리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착오다. 중미관계에 갈등요인이 분명히 있지만,
그런 갈등요인이 중미관계를 냉전적 적대관계로 돌려놓는 것도 아니며, 중미관계를 ‘핵공포의 균형’으로 몰아가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중국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 부대리대사 윌리엄 웨인스타인(William Weinstein)이 2009년 7월 1일 본국에 보낸, 중미
방위협의회담(Defense Consultive Talks)에 관한 세 편의 비밀전문을 읽어보면, 중국과 미국은 갈등요인을 안고 있으면서도 충돌을
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비밀전문에 따르면, 그 두 나라는 심지어 비공개로 정보교류도 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그러할진대,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그보다 더 유연하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핵공포의 균형’은 이제 영영
사라지고 만 것일까? 중미관계 또는 러미관계를 중심에 두고 오늘의 세계를 바라보면, ‘핵공포의 균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대국주의적 단순논법에서 벗어나, 복잡다단하게 전개된 세계 핵정세를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1999년에 다시 시작된 핵냉전
냉전으로 얽룩진 20세기가
기울어가던 1999년 10월 2일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평범한 날이지만, 훗날 역사가들은 그 날부터 핵냉전이 재개되었다고 세계사에 쓸
것이다. 1999년 10월 2일은 미국이 지상배치 중간단계 방어(Ground-Based Midcourse Defense)라는 미사일방어망
구축작업을 본격적으로 개시한 날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대표적인 군수기업 레이시언(Raytheon)이 제작한 외기권
요격체(Exoatmospheric Kill Vehicle)를 발사하는 탄도미사일 요격실험이 그 날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이제껏
미국 이외에 어떤 나라도 만들지 못한 외기권 요격체는 길이 1.4m, 지름 0.6m, 무게 64kg의 조그만 물체이지만, 거기에는 미국이 개발한
최첨단 공학기술이 집약되어 있었다. 그 외기권 요격체를 탑재한 강력한 미사일은 초속 10km에 이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비행하여 적국의
미사일을 공중에서 격추하는 것이다. 적국이 쏜 미사일을 쫓아가 요격하려고 하니, 적국 미사일이 날아오는 초속 6km의 비행속도를 따라잡을 강력한
감지장치는 물론이고 적국 미사일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새로운 종류의 미사일을 만들어내야 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외기권 요격체를 개발한 첨단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외기권 요격체 개발로 시작된 미사일방어망 구축사업이 중요한 것이다. 그 구축사업에서
주목하는 것은 1999년이라는 특정시점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1999년에 외기권 요격체 발사실험을 처음 실시함으로써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기
시작하였을 뿐 아니라, 국가미사일방어법(National Missile Defense Act)도 1999년에 제정하였다. 이 법은 “제한된
탄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 영토를 방어할 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는 문제에 관련된 미국의 정책”을 수립하도록 규정하였다. 미국 연방하원은
국가미사일방어법을 1999년 2월 4일에 발의하고 3월 18일에 채택하였고, 연방상원은 5월 20일에 그 법안을 채택하였고,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Bill Clinton)은 7월 22일 그 법안에 서명하였다.
그런데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사업을 책임진
미사일방어국(Missile Defense Agency)이 국방부 산하에 설치된 때는 2002년이다. 추진주체를 내오기 3년 전에, 관련법부터
제정하고, 외기권 요격체 발사실험부터 실시한 것은, 당시 미국이 누구에게 쫓기듯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황급히 서둘렀음을 말해준다. 1999년에
미국은 누구에게 쫓기고 있었을까?
초강대국으로 자처해온 미국은 자존심이 무너질까봐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1999년에 미국이 북에게
쫓기고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998년 5월 30일 북은 핵탄두보다 한 급 높은
열핵탄두(thermonuclear warhead)를 폭발시킨 첫 지하핵실험을 파키스탄에서 성공적으로 실시하였고,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8월
31일에는 함경북도 화대군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북의 첫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탑재한 우주로켓 ‘백두산 1호’를 성공적으로 쏘아올렸다.
이처럼 북이 열핵탄두 기술과 우주로켓 기술을 보유하였음을 전격적으로 세상에 공개한 것은, 북이 미국 본토를 대륙간탄도미사일로 파괴할 수 있는
핵공격력을 확보하였음을 말해준 엄청난 사변이었다. 극심한 식량부족으로 죽을 먹어야 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 그처럼 엄청난 사변을 일으킨 북의
저력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처럼 엄청난 사변으로 충격을 받은 미국은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를테면, 대북정책조정관 겸 미국 대통령 특별고문으로 임명된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가 ‘북코리아에 대한 미국 정책의 검토:
사실조사와 건의(Review of United States Policy Toward North Korea: Findings and
Recommendations)’라는 비공개 정책문서를 작성하여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에게 제출한 날은 1999년 10월 12일이다. ‘페리
보고서’로 세간에 알려진 그 보고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은 국가기밀이지만, 미국이 언론에 흘려준 ‘요약본’에 따르면, 대북관계개선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북측과 특사상호방문을 추진하면서 2000년 10월 9일에는 ‘조미 공동코뮈니케’를 채택하였고, 당시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K. Albright)가 방북하여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추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드러난
것이지만, 당시 미국의 그런 행동에는 일관성과 진정성이 없었다. 1999년부터 2000년 사이에 미국이 대북관계에서 진짜 노린 것은
‘시간벌기’였다. 미국 본토를 공격할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막아낼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페리 보고서
요약본’을 통해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국가기밀이 바로 그러한 미사일방어망 구축에 관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빌 클린턴이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노라고 하면서도, 1997년 1월까지 자기 밑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워런 크리스토퍼(Warren M. Christopher)를
대북정책조정관에 임명한 것이 아니라, 1997년 1월까지 자기 밑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를 대북정책조정관에 임명한 것은
대북외교정책보다는 대북군사정책의 재검토에 ‘조정’의 무게를 실었다는 뜻이며, 전직 국방장관이 주도한 조정작업은 1999년부터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서두르는 내용으로 채워졌던 것이다. 페리가 클린턴에게 ‘페리 보고서’를 제출하기 열흘 전인 1999년 10월 2일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외기권
요격체 발사실험을 실시하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대북 선제핵공격을 위한
것이다
미국은 ‘페리 보고서’ 작성과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동시에 추진하였는데, 그 두 종류의 행동에서 중요한 것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였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한 ‘페리 보고서’가 미사일방어망 구축사업과 뗄 수 없는 관계로 결착된 것은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이 이란의 미사일공격이나 국제테러집단의 핵테러를 막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북의 미사일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구축된 것임을
말해준다. 초강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은 자존심이 무너질까봐 인정하기를 싫어하지만,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은 첫 날부터 오늘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북의 미사일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구축되었고 또 구축될 것이다.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한 목적이 오로지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미국 국방장관이 솔직히 인정한 때는,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개시한 날로부터 꼭 10년이 지난 2009년이다.
2009년 5월 14일 당시 미국 국방장관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는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30기의
요격미사일은 현재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북코리아가 가질 (미사일)능력에 대응한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북코리아에 대한 강력한 방어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 날 로벗 게이츠가 발언한 것처럼, 미국은 북의 미사일공격을 막아내려고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였다고
하지만, 미국의 그런 주장은 사물의 한 측면만 말하는 것이다. 미국이 말하지 않는 다른 한 측면은 대북 핵전쟁위협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미국의 대북 핵전쟁위협과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사물의 두 측면인 것이다.
지난 시기 미국의 대북 핵전쟁위협은 일방적이고,
국지적인 전쟁위험을 조성하였으나, 북이 대미 핵보복능력을 실물로 입증한 1998년 이후 미국의 일방적이고, 국지적인 대북 핵전쟁위험은 북과 미국
사이의 쌍방적이고, 세계적인 전쟁위험으로 전환되었다. 만일 미국이 북에게 선제핵공격을 가하면, 북도 미국에게 반드시 보복핵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점에서, 북과 미국 사이의 전쟁위험은 쌍방적이고, 세계적인 전쟁위험으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998년 이후 미국이
두려워하게 된 공포의 대상은 북의 핵보복능력이다. 그래서 미국에게는 북의 보복핵공격을 막아낼 전략적 방어능력이 필요하였다. 미국이 1999년에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황급히 개시하였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자기의 주적인 북에 대한
선제핵공격력을 유지하기 위한 대북 핵전쟁전략의 다른 측면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말이 ‘방어망’일 뿐이지, 실제로는
방어전략이 아니라, 선제핵공격을 보장해주는 공격전략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국방부가 미사일방어를 총지휘하는
미사일방어국(Missile Defense Agency)을 설치한 때는 2002년이고, 미사일방어망을 실제로 가동하는 미국 북부사령부(U.S.
Northern Command)를 창설한 때는 2002년 4월 25일이다. 미국은 이처럼 미사일방어망을 가동하기가 바쁘게 선제핵공격 준비도
동반적으로 다그쳤다. 이를테면, 미국 전략사령부(U.S. Strategic Command)가 선제핵공격 전쟁계획인 ‘개념계획
8022(CONPLAN 8022)’를 완성한 때는 2003년 11월이고, 미국 국방장관이 ‘지구적 타격 임시경보령(Interim Global
Strike Alert Order)’을 내린 때는 2004년 6월이다.
세계 각국 언론매체들은 미국이 그런 선제핵공격 준비를
갖추게 된 원인을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일어난 ‘9.11 테러’에서 찾았지만, 그것은 오보였다. 미국이 알 카에다(al-Qaeda)
같은 국제테러단체에 핵공격을 가하려고 선제핵공격 준비를 갖추었다는 식의 보도는 만화 같은 이야기다. 명백하게도, 미국의 선제핵공격은 처음부터
끝까지 북을 노린 것이며, 미국의 미사일방어는 미국의 선제핵공격을 받은 북이 미국에게 가할 보복핵공격을 막아보려는 것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북의 미사일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북 선제핵공격을 위한 것이다.
자신만만한
발언은 허풍이었다
미국 국방부가 2010년 2월에 발표한 ‘탄도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Ballistic Missile
Defense Review Report)’에 들어있는 해설약도에 따르면,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타격범위는 북쪽으로 그린랜드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포괄하고, 동쪽으로 영국과 대서양 서쪽 절반을 포괄하고, 중앙으로 북미대륙 전역과 중앙아메리카 전역을 포괄하고, 남쪽으로 남미대륙 칠레 중부와
브라질 북서부까지 포괄한다.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타격범위가 그처럼 방대하지만,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아무 곳이나 타격하지 않으리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지구본을 살펴보면, 북에서 미국 본토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경우 그 미사일은 북극 상공을 거쳐 미국의
중앙부 상공 400km에서 공중폭발하여 강력한 전자기파 방출로 미국 전역을 마비시키거나, 미국의 선제핵공격을 받는 최악의 경우에는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 디씨로 날아가게 될 것이다. 미국이 알래스카에 지상배치 요격미사일을 배치한 까닭은,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북극 상공을 거쳐 미국 본토로 날아오는 탄도비행궤적을 계산하였기 때문이다.
2004년 1월 22일 미국은
알래스카주 포트 그릴리(Fort Greely)에 제49미사일방어대대를 창설하고, 지상배치 요격미사일 26기를 그 대대에 배치하였다. 또한
미사일방어여단을 시험적으로 운용해오던 미국은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할 것으로 크게 우려하였던 2006년 6월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미국 북부사령부 예하 제100미사일방어여단을 서둘러 창설하였다. 그로써 제49미사일방어대대는 제100미사일방어여단 소속으로 되었다.
미국 북부사령부가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경우에 대비한 전쟁계획을 작성하기 시작한 때는 2005년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 북부사령부는 ‘작전계획’ 이전 단계의 ‘개념계획’밖에 작성하지 못하였다. ‘개념계획’은 ‘작전계획’에 비해 정밀도와 구체성이
떨어진다. 또한 미국 북부사령부는 ‘사후관리개념계획(Consequence Management Concept Plan)’과 ‘민간당국
방어지원계획(Defense Support of Civil Authorities Plan)’을 작성해두었는데, 이것은 미국 북부사령부가 15개의
시나리오에 따라 시행하려는 비상계획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전상황에서 그런 각종 ‘작전계획’과 시나리오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가 2010년 2월에 발표한 ‘탄도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지상배치 요격미사일 30기만 있으면,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그린랜드, 영국에 미사일방어용
조기경보레이더를 배치하였고, 해상에는 이지스 구축함 및 순양함들, 해상배치 엑스밴드(X-band) 레이더를 배치하였고, 정밀한 지휘통제체계까지
세웠으므로,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한 방어능력에 관해 아주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이를테면, 2010년 9월 9일 당시 미국 북부사령관
제임스 위니펠드(James A. Winnefeld)는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나와 “만일 지금 북코리아 또는 이란이 쏜 미사일이
날아오는 경우 요격할 수 있는가고 묻는다면, 요격할 수 있다고 답하겠다”고 말하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미국 군부의 그런
자신만만한 발언은 허풍이었음이 이번에 드러났다. 이에 관한 사실은, 미국 연방의회로부터 용역연구를 맡은 미국의 전국연구협의회(National
Research Council)가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과 군사전문가들을 동원하여 2년 동안 연구한 끝에 2012년 9월에 펴낸 239쪽짜리
보고서 ‘탄도미사일방어에 대한 판단: 다른 대안들과 비교한 미국의 다단식 추진 미사일방어의 개념 및 체계에 대한 평가(Making Sense
of Ballistic Missile Defense: An Assessment of Concepts and Systems for U.S.
Boost-Phase Missile Defense in Comparison to Other Alternatives)’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이 “얼마쯤 개량된(modestly improved) 위협에도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결함투성이며 취약하다”고
평가하고, 심각한 결함을 지적하였다.
북이 액체추진제로 가동하는 엔진을 장착한 2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추진제
연소시간은 4분10초다. 또한 북이 고체추진제로 가동하는 엔진을 장착한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추진제 연소시간은 3분이다. 두
종류의 추진제가 각각 연소하는 시간이 서로 다른 까닭은, 액체추진제 엔진이 고체추진제 엔진에 비해 연소시간이 느리기 때문이다. 북은 당연히
연소시간이 더 빠른 고체추진제 엔진을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 본토로 발사할 것이다. 그러므로 북이 고체추진제로 가동하는 엔진을 장착한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에 대비하여, 미국은 연소시간이 끝나기 30초 전인 2분 30초 안에 요격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고도의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사일방어망은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엉터리 정보와 무용지물, 그리고 매우 위험한 핵냉전
결함지적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위의
보고서에서 언급한 ‘얼마쯤 개량된 위협’이라는 표현은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성능을 좀 개량한다는 뜻인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액체추진제로
가동하는 로켓엔진을 장착한 2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량하여 고체추진제로 가동하는 신형 로켓엔진을 장착한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보고서는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해 크게 오판하였다. 그 보고서가 그렇게 오판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미국 국방부가
2010년 2월에 발표한 ‘탄도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을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 보고서에는
‘탄도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를 인용한 대목이 여러 군데 나온다.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탄도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는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을
터무니 없이 낮춰잡은 엉터리 정보를 유포한 것이다.
지금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해 실전배치한 전략미사일은,
고체추진제로 가동하는 로켓엔진을 장착한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이고, 단일탄두가 아니라 다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고, 핵추진 잠수함에서
수중발사하는 다탄두 중거리 핵미사일이다.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실전배치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이 북의 핵추진 잠수함 실전배치를 인정할 리
만무하다. 미국은 북이 낡은 소련산 잠수함과 침투용 소형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는 왜곡축소정보만 유포해왔다.
미국은 알래스카에
지상배치 요격미사일 26기를 배치한 이듬해인 2005년에 캘리포니아 남부해안지방 롬폭(Lompoc) 부근에 있는 밴든벅
공군기지(Vandenberg Air Force Base)에도 지상배치 요격미사일 4기를 추가로 배치하였다. 북이 캘리포니아 해안을 공격할 아무런
이유도 없고, 실제로 함경북도 산악지대에 배치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캘리포니아 남부 쪽으로 쏘기도 힘들다. 그런데 왜 미국은 캘리포니아 남부해안에
지상배치 요격미사일을 추가로 배치한 것일까? 북의 잠수함 발사 중거리미사일을 요격하려고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북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문제는
따로 논할 주제다.
2011년 4월 13일 미국 국방부 핵 및 미사일방어정책 담당 부차관보 브래들리 로벗츠(Bradley H.
Roberts)가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소위원회 청문회에서 꺼내놓은 발언에 따르면, 미국은 미사일방어능력을 지금보다 50% 더 증강시켜 총
44기의 요격미사일을 배치하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요격한계가 뻔한 그런 미사일을 아무리 많이 배치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지상배치 요격미사일
탄두는 개당 가격이 무려 3,900만 달러나 하는 최고가 무기이고, 미국이 미사일방어망을 유지하기 위해 쏟아붓는 경비는 해마다 100억 달러나
되는데, 그렇게 엄청난 경비를 잡아먹은 미사일방어망은 결국 실패작인 것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은 북의 핵미사일 공격을 막아낼 길이 없다.
북이 막강한 핵억지력을 확보한 한 편,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이 사실상 무용지물로 되고 말았다는 사실은, 북과 미국의 적대관계가
핵무기를 서로 겨눈 핵냉전으로 전화되었음을 말해준다. 지난 시기 소련과 미국 사이에 조성되었던 적대관계는 서로 핵무기를 감히 사용하지 못하는
핵냉전이었던 것에 비해, 오늘 북과 미국 사이에 조성된 적대관계는 선제핵공격 가능성이 상존하는 매우 위험한 핵냉전이다.
미국은
북의 대미 선제핵공격 가능성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느낄수록 미사일방어망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극비사항으로 은폐하면서, 대북 선제핵공격
연습에 광란하는 것으로 핵냉전에서 탈출해보려고 몸부림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한, 그런 몸부림으로는 핵냉전
위험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며, 핵냉전에 갇혀버린 미국의 불행한 운명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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