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0

시장통제와 시장규제, 소통합과 대통합

변혁과 진보 (4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시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는 시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 문제가 중대하게 제기되는 까닭은,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시장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은 시장을 장악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자본가계급은 고용시장을 장악함으로써 노동계급 전체를 직접적으로 지배하는 것이다. 

오직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시장만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지배한다. 시장을 철폐한 사회주의 사회에도 계획경제의 보조역할을 수행하는 시장이 존재하는데, 그 시장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지배하는 시장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봉사하는 시장이다. 시장은 자본주의 이전 봉건사회에도 존재하였는데, 그 시장도 근로대중을 지배하는 시장은 아니었다. 

자기 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그것도 모자라서 정리해고제를 강행하고, 부당해고조치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용역깡패를 동원해 짓밟은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의 범죄가 드러났는데도, 그는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불려나가 거짓말 1인 촌극을 연출하고 사법처리를 받지 않아도 되는 현실은, 이 땅의 자본가계급이 사실상 초법적 지위를 누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2011년 8월 18일 보도 사진)
그들이 누리는 초법적 지위는 그들이 행사하는 시장지배력에서 오는 것이다. 만약 어떤 노동자가 그들의 초법적인 시장지배에 도전하면, 반노동 친자본 정권은 자본가를 비호하고 시장지배에 도전한 노동자를 사법처리하게 된다. 그래서 자본주의시장독재라는 개념이 생겼다. 자본주의시장독재는 독재적 지배의 근원이다.
  
만일 시장이 없다면, 자본가계급도 존재할 수 없다. 시장지배는 시장을 장악한 자본가계급의 전사회적 지배이며, 자본가계급의 필수생존요건은 시장에 대한 그들의 배타적 지배권 행사다. 그러므로 자본가계급의 시장지배를 받으며 사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그 독재적 지배와 결별할 때만이 진정으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새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고 시장독재가 판을 치게 된다. 만일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실현되는 민주주의가 있다면, 그것은 자본가계급의 시장지배를 용인하는 명목상 민주주의 또는 자본주의시장독재를 은폐한 가짜 민주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지배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현 시기 우리 사회의 변혁과 진보가 요구하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시장독재에서 벗어난 민주주의, 다시 말해서 시장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시장을 지배하는 사람 중심의 진보적 민주주의다.

시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전략적 대안은 시장확대, 시장규제, 시장통제, 시장철폐라는 네 가지로 압축된다. 이 대안을 정치이념적으로 정리하면, 신자유주의 대안은 시장확대이고, 사회민주주의 대안은 시장규제이고, 진보적 민주주의 대안은 시장통제이고, 급진적 사회주의 대안은 시장철폐다.


시장을 규제하려는 정당과 시장을 통제하려는 정당

정권교체와 신자유주의 폐지로 압축된 당면 정치임무를 수행하는 이 땅의 정치세력은 세 종류다. 신자유주의를 폐지하고 시장을 규제하려는 정치세력, 신자유주의를 폐지하고 시장을 통제하려는 정치세력, 신자유주의를 폐지하고 시장을 철폐하려는 정치세력이다.

시장규제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시장통제는 중요산업 국유화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시장철폐는 계획경제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시장철폐를 주장하는 급진적 사회주의는 정치세력화하지 못하고 존재감 없는 소수 정파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시장철폐 대안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살펴보나 마나 한 일이지만, 한나라당 강령은 "큰 시장, 작은 정부의 기조에 입각한 선진경제"를 표방하였다. 신자유주의를 아주 명백하게 표방한 것이다. 한나라당 강령은, 그 당이 신자유주의의 소멸과 함께 종말을 고할 운명에 처해 있음을 말해준다.

한나라당과 타협할 수 없는 대척점에 민주노동당이 있다.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를 폐지하고 시장을 축소, 통제하여 중요산업을 국유화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 새로운 대안은 민주노동당 강령에 명시된 '혼합경제'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혼합경제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혼합한 경제라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혼합경제체제에서 계획경제를 수행하는 실체가 바로 국유화된 중요산업이다.

민주노동당 강령은 혼합경제라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을 썼지만, 원래 중요산업 국유화 강령은 혼합경제라는 개념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혼합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산업을 국유화한 계획경제가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시장경제를 축소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요산업 국유화가 반드시 시장경제의 축소와 민주적 통제를 동반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새로운 경제체제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혼합한 것이 아니라, 중요산업을 국유화하고 시장경제를 축소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적 민주주의 정권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정치임무는 중요산업 국유화와 시장경제의 축소 및 민주적 통제라고 말할 수 있다.

중요산업 전반을 한꺼번에 국유화할 것인가 아니면 단계적으로 국유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회계급관계와 정치세력관계, 그리고 산업화 수준과 노동계급의 자주의식화 수준에 의해 결정될 것이고, 시장경제의 축소와 민주적 통제를 한꺼번에 전반적으로 실현할 것인가 아니면 단계적으로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그렇게 결정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조건과 형편을 따져보면, 중요산업 국유화와 시장경제의 축소 및 민주적 통제를 한꺼번에 실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단계적으로 실현해갈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 편, 진보신당 강령도 민주노동당 강령과 마찬가지로 중요산업 국유화와 시장경제의 축소 및 민주적 통제를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은행 국유화와 공공부문 확장이라는 개념은 명시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진보신당도 중요산업 국유화와 시장경제의 축소 및 민주적 통제를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요산업 국유화와 시장경제의 축소 및 민주적 통제를 추구하는 진보정당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뿐이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합당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합당문제에서 쟁점으로 떠오른 국민참여당은 그 문제에 관련하여 어떤 강령을 가졌을까? 참여당 강령은 사람 중심의 사회투자, 사회복지 확대, 불균형과 양극화 극복, 동반성장을 명시하였다. 참여당 강령에 시장경제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지만, 사람 중심의 사회투자, 사회복지 확대, 불균형과 양극화 극복, 동반성장 추구라는 개념은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를 표방한 개념으로 해석된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사회민주주의 경제강령이다.

참여당이 자기 정치이념을 사회민주주의라고 명시적으로 밝힌 적은 없으나, 그 당의 강령을 살펴보면 사회민주주의 성향을 넉넉히 감지할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시장을 규제하여 사회적 시장경제를 실현하려는 정치이념이다.

이처럼 참여당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과 다른 정치이념을 가졌지만 3당합당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은 까닭은, 그 당의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진보정치전략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은 신자유주의 반대를 시장규제로 해석하였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시장통제로 해석하였다. 양쪽의 차이는 시장통제와 시장규제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통제는 시장을 제약한다는 뜻이고, 시장규제는 시장을 제한한다는 뜻인데, 제약과 제한 사이에는 양적 차이만 있을 뿐 질적 차이는 없다.

주목하는 것은, 시장통제를 추구하는 진보정당과 시장규제를 추구하는 사민주의당의 관계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시장통제와 시장규제는 정책적으로 연합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하나의 강령을 합의, 채택하고 합당할 수 있는 전략적 동반자의 관계에 놓여있다. 시장통제를 주장하는 정당과 시장규제를 주장하는 정당은 얼마든지 합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국민참여당을 배제하고 2당합당 방식으로 '도로 민노당'을 건설할 것이 아니라, 국민참여당과 함께 3당합당 방식으로 폭넓은 진보정당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참여당과의 관계에서는 그 무슨 '계급적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면서 3당합당을 '계급적 원칙'을 저버린 '계급연합'이라고 심판하고, 참여당을 배제한 2당합당을 고집하는 것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눈이 멀어 진보정치의 역량강화를 스스로 포기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참다운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표방한 사민주의자들과도 적극 연합해야 하며,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참다운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민족자주를 요구하는 민족주의자들과도 적극 연합해야 한다.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사민주의자들이나 민족주의자들은 연합대상이지 결코 배척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국민참여당을 배제한 2당합당론의 오류를 비판, 극복하고 3당합당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과업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민주당과 참여당은 어떻게 다른가?

소통합을 하기도 힘든 판인데, 대통합을 하자는 의제가 제기되었다. 대통합론자들의 목소리가 차츰 커지면서 당건설 과정에서 혼동과 혼란이 생기고 있다. 대통합론자들은 정파등록제 같은 것을 시행하면 대통합당을 건설해도 그 당 안에서 각 당이 정파별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유혹논리'도 펴고 있다.

그러나 소통합과 대통합이라는 용어선택부터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작은 것보다 큰 것을 선호하는 직감적 반응을 노린 소통합-대통합 분류법에는 논리적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 함정이란 당건설 문제를 2012년 총선과 대선에 관한 문제로 축소하는 것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대통합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대통합이 소통합보다 더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합으로 세워진 차기정권이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대통합론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 중의 단견이다. 대통합당을 건설하면 한나라당 재집권을 저지하고 정권을 교체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지지만, 그렇게 집권한 대통합당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아래 사실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대통합론에서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은 민주당이다. 대통합론자들은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는 통합하려고 하면서 왜 민주당과는 통합할 수 없다고 미리 차단선부터 긋는가 하고 반문한다. 그런 반문은 민주당과 참여당의 차이를 간과하고, 그 두 당을 동일시하는 착오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야권대통합 을 주장하는 민주당 야권통합특위 위원회 회의 모습.
(<오마이뉴스> 2011년 7월 10일 보도 사진)
민주당과 참여당의 차별성을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은 각 당의 강령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객관적 기준인 강령을 살펴보지 않고, 민주당과 참여당을 똑같은 자유주의정당으로 간단히 규정해버리는 것은 논리를 배반한 자의적 판단이다. 당의 정체성은 언제나 당의 강령으로 표현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참여당 강령이 사람 중심의 사회투자를 표방한 것과 달리, 민주당 강령은 사람 중심 시장경제를 표방하였다. 양자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차이는 사회투자와 시장경제의 차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 중심의 사회투자를 표방한 참여당은 '사회복지 확대'를 강령에 명시하였고, 사람 중심 시장경제를 표방한 민주당은 '중산층 확대'를 강령에 명시하였다. 노동자, 농민, 서민을 위한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참여당 강령과 중산층을 확대하는 민주당 강령은 큰 차이를 드러내 보인다.

또한 참여당은 '불균형과 양극화 극복'을 강령에 명시하였고, 민주당은 '양극화 완화'를 강령에 명시하였다.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는 참여당 강령과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하는 민주당 강령은 큰 차이를 드러내 보인다.

또한 참여당은 '동반성장'을 강령에 명시하였고, 민주당은 '사회적 대타협'을 강령에 명시하였다. 동반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사회적으로 타협하는 것도 큰 차이를 드러내 보인다.

이처럼 참여당 강령과 민주당 강령을 비교하면, 참여당이 민주당보다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인 성향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정당이념 분류법을 따른다면, 참여당은 사민당 계열의 전형적인 중도우파정당으로 분류되고, 민주당은 사민당보다 '오른쪽'에 있는 중도우파정당으로 분류된다. 물론 민주당 안에는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개혁정파가 있지만, 그 정파가 민주당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민주당이 자기 강령을 참여당 수준으로 개정하여 사민당 계열의 중도우파정당으로 변신한다면, 대통합은 가능하고 또 대통합을 추진해야 마땅하지만, 민주당이 그렇게 변신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민주당 안에 있는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개혁정파가 탈당하여 3당합당에 합류할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것도 힘들다.


퇴보정치의 위험, 진보정치의 차단과 견인

이런 조건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 민주당과 통합하는 경우, 집권에 성공한다 해도 집권 이후 신자유주의를 폐지하는 정책을 추진할 때 내분과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노선에 따라 크게 확장된 시장을 어느 정도까지 축소하고, 축소한 시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하는 정치문제를 둘러싸고 집권당 내부에서 심각한 분열과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민주당 계열은 시장을 축소하는 범위를 되도록 줄이고 시장을 형식적으로 규제하는 정책을 주장할 것이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참여당 계열은 시장을 축소하는 범위를 되도록 넓히고 시장을 통제하는 정책을 주장할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대통합 집권당 안에서 양쪽이 정치적으로 타협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당권문제와 맞물리게 될 것이므로, 정치적 타협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타협할 수 없는 경우 대통합 집권당은 분당사태를 겪을 것이고, 분당사태로 무기력해진 차기정권은 대중들로부터 외면과 지탄을 받는 절망적 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처럼 분당위험이 높은 대통합당 건설은 생각하지 말고 상호연대하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진보통합당이 건설되는 경우 그 당과 민주당이 정책연합 수준에서 연대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도가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의 시각으로 보면, 차기정권은 신자유주의를 폐지하고 시장축소와 시장통제의 임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그런 중대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정권은 노무현 정권의 재탕일 뿐이다. 노무현 정권을 뛰어넘어 진보하여야 할 차기정권을 노무현 정권의 재탕으로 되돌려놓을 대통합당 건설은 진보정치의 길이 아니라 퇴보정치의 길이다.
 
민주당이 퇴보정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차단하고, 차기정권이 시장축소와 시장통제의 길로 들어서도록 견인하는 것은 진보통합당에게 주어질 중대한 임무다. 그러한 차단과 견인은 정치적 타협이 아니라 집권당과 차기정권에 대한 투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3당통합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2011년 8월 2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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