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말팔매 <19>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북측에 정부가 수립되기 1년 전인 1947년 9월 김일성 주석이 함경북도 성진에 있는 성진제강소를 찾아갔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 세워진 그 제강소에는 고압전류로 가동하도록 설계된 낡은 전기용해로가 돌아가고 있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착취와 약탈밖에 알지 못하던 일제침략자들은 안전장치도 없는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전기용해로 작업장에 조선인 노동자들을 내몰았고,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원한의 용해로 앞에서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그처럼 가슴 아픈 사연을 들은 김일성 주석은, 건국시기에 철생산이 아무리 중요해도 노동자들을 그처럼 위험한 작업장에서 더 이상 일하게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원철직장을 폐쇄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강산에 산업부흥의 열기가 끓어오르던 당시로서는 단 1kg의 철강제품도 절실히 요구되었던 터라, 성진제강소 노동자들은 전기용해로를 폐쇄하고 싶어도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김일성 주석은 1948년 5월 다시 성진제강소를 찾아가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다시 강조하고 전기용해로를 무조건 폭파하라고 지시하였다. 용해로를 없애면 철을 생산하지 못하게 될 것을 자기들의 목숨보다 더 걱정하는 노동자들의 충실한 심정을 헤아린 김일성 주석은, 폭파지시와 더불어 새로운 제강기술을 도입하는 긴급조치까지 취하였다. 그 긴급조치에 따라 평양에서 기술진이 성진제강소에 급파되었다.
그리하여 1948년 11월 성진제강소 노동자들은 자기들 손으로 과감히 전기용해로를 폭파하였다. 함경북도 성강의 땅과 하늘을 뒤흔든 그 폭발음은, 생산보다 노동계급을 더 중히 여기는 새 시대가 열렸음을 세상에 알린 폭발음이었다.
그로부터 꼭 61년이 지난 2009년 11월 평안북도 운산에서 또 다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운산공구공장 건물들을 폭파한 폭발음이었다. 운산공구공장 노동자들은 왜 자기 공장건물을 폭파하였을까? 사연은 이러하였다.
1956년에 건설된 운산공구공장은 1970년대에 기술혁신을 이룩하여 각종 공구를 생산하는 대공장으로 변모되었고, 각종 질좋은 제품들을 생산하여 해외에 수출까지 하였다. 그 공장은 1983년에 능력확장공사를 벌여, 원료가공기지와 종합가공기지를 새로 건설하였다. 3,3000㎡ 부지에 소재직장, 일반공구직장, 측정공구직장, 절삭공구직장, 드릴직장, 수출직장, 생필직장, 공구설계사업소, 설계연구소 등이 자리잡은 운산공구공장은 북측의 공구생산공장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공구라고 하면 흔히 개인작업도구를 생각하기 쉽지만, 운산공구공장에서는 개인작업도구는 물론이고 조립절단바이트, 조립후라이스, 긴날편 이동조립드릴 같은 기계제작 공구류를 주로 생산한다. 이러한 공구를 생산하기 위해 그 공장에는 초대형 드릴, 초고압 1,6000t 프레스, 초대형 절단기 같은, 자체로 제작한 설비들을 들여놓았다.
2009년 11월 24일 <로동신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운산공구공장을 현지지도하는 사진 23장을 보도하였다. <로동신문>은 6개면으로 발행되는데, 그 날은 특별하게 5개면에 걸쳐 현지지도 사진 23장이 게재되었고, 나머지 1개면만 기사가 실렸다. 이처럼 파격적으로 편집된 <로동신문>이 나온 것을 본 남측 언론매체들은 그 사연을 알지 못해 어리둥절한 나머지 편집과정에서 오류가 생겨 급히 사진기사로 대체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보도까지 내보냈다. 그러나 그런 의혹보도는 북측 내부사정에 어두운 사람들이 빚어낸 우스꽝스러운 촌극이었다.
<로동신문>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운산공구공장 현지지도 사진 23장을 왜 5개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는지를 알려준 사연은 2009년 11월 23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보도에 따르면, 운산공구공장을 찾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장노동자들의 투쟁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에게 "공구혁명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릴 것을 간곡히 호소"하였다. 또한 그는 "공구공장의 기술개건사업을 대담하고 통이 크게 진행하여 그 면모를 근본적으로 일신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1년 사이에 공장을 최신기술로 장비된 선군시대의 표본공장으로 훌륭히 꾸릴 데 대한 전투적인 과업을 제시"하였다.
규모와 설비가 방대하기 이를 데 없는 운산공구공장을 1년 안에 첨단설비로 개조된 '표본공장'으로 전환시키는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려면 기존 공장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폭파작업을 진행해야 하였다. 공장을 보수하고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흔적도 없이 폭파해버리고 새로운 첨단설비를 들여놓는 것이다. 자기들이 땀흘려 세운 공장을 폭파하는 것은 첨단설비로 기술혁신을 일으키겠다는 단호한 결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공장이 폭파된 뒤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 새로 건설된 운산공구공장 전경 (2011년 3월 7일 <로동신문> 보도 사진)
2011년 2월 12일 <로동신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새로 건설된 운산공구공장을 현지지도하였음을 보도하였다. 주목하는 것은, <로동신문>이 신형 설비로 개건되었다고 표현한 것이 아니라 새로 건설되었다고 표현하였다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운산공구공장 노동자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9년 11월 현지지도에서 제시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치렬한 돌격전을 벌려 1년 남짓한 사이에 공장을 새롭게 일떠세우는 놀라운 기적을 창조하였다"고 한다. 부지면적을 33,000㎡에서 110,000㎡로 3.3배나 더 넓혔고, "공장의 모든 생산 및 문화후생시설들과 구내를 새롭게 조형화, 예술화, 공원화, 수림화하여 공장을 문명화의 극치를 이룬 기업소로 전변시키고 지식경제시대 첨단산업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생산공정의 정보화, 유연화, 다품종화를 실현하였으며 공구생산을 비약적으로 늘이고 공구의 질을 세계적 수준에서 보장할 수 있는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였다."
특히 기존 노동자 문화회관과 노동자 후생시설을 폭파하고 새로 건설하였고, 수많은 나무와 꽃을 심어 공장구내를 공원처럼 꾸몄다는 보도내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운산공구공장에 새로 건설된 노동자 후생시설을 운공원이라 부르는데, 공장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식당, 목욕탕, 찜질방, 이발소, 미용실, 실내운동시설, 휴식공간 등이 산뜻한 대형시설로 갖춰져 있다. 1947년 11월 성진제강소의 전기용해로를 폭파함으로써 생산보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더 중히 여긴 정신이 61년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변함없이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로동신문>은 "CNC공작기계들과 로보트들로 일체화되여있는 자동화된 생산공정들에서 질좋은 각종 공구들이 련이어 생산되는 모습"을 바라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 인민이 그려오던 리상사회의 면모가 반영된 고도로 문명화된 현대적인 공장"이라고 격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운산공구공장은 CNC공작기계들과 로봇(robot)생산공정이 상호결합된 무인화 생산체계가 도입된 세계 굴지의 최첨단 공장임을 알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운산공구공장을 현지지도한 때로부터 나흘 뒤인 2월 16일 북측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정령을 발표하여 그 공장 노동자들과 련하기계관리국 기술자들이 새로 개발한 무인화 생산체계에 김일성상을 수여하였다.
1948년 11월 함경북도 성강을 뒤흔든 폭발음이 생산보다 노동계급을 더 중히 여기는 사회주의 건설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폭발음이었다면, 2009년 11월 평안북도 운산을 뒤흔든 폭발음은 최첨단 돌파전이 벌어지는 새로운 단계의 사회주의 건설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폭발음이었다. (2011년 4월 2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