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1

파키스탄과 리비아를 거쳐 미국에 간 조선의 핵탄두 설계도

[한호석의 개벽예감)(348)
자주시보 2019년 05월 20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압둘 카디르 칸의 국제핵거래망과 CIA의 고용간첩들
2. 압수한 기밀자료 놓고 신경전 벌인 미국과 스위스
3. 설계도에 나오는 소형화, 경량화, 정밀화된 핵탄두
4. 왜 우라늄핵탄 만들지 않고, 플루토늄핵탄 만들었을까? 
5. 우라늄핵탄, 플루토늄핵탄, 수소탄 만드는 동방의 핵강국 


1. 압둘 카디르 칸의 국제핵거래망과 CIA의 고용간첩들

2003년 6월 21일 목가적인 풍경이 흐르는 스위스 동부지역의 조용한 산간마을 제니스에 외지인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은 빅 블랙 리버 테크놀로지라는 유령회사의 최고경영인으로 위장하고, 제임스 킨스먼과 션 매허피라는 가명을 쓰는 미국 중앙정보국 소속 공작원들이었다. 공작원 두 사람은 제니스에서 고용간첩을 만나 비밀계약을 체결하였다. 비밀계약의 내용은 진공밸브(vacuum valve)의 지적 소유권 및 판매권을 고용간첩들이 소유한다는 것, 그리고 중앙정보국이 고용간첩에게 지급하는 공작금 100만 달러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로드 타운에 설립된 위장회사인 트라코 그룹 인터내셔널의 은행계좌에 입금한다는 것이었다. (뉴욕타임스 2008년 8월 25일) 

진공밸브는 우라늄을 농축하는 원심분리기의 핵심부품이다. 원심분리기(centrifuge)는 원자력발전소의 핵연료 또는 핵무기의 핵물질을 만드는 우라늄농축장비다.  

제니스에서 비밀계약이 체결된 때로부터 4개월이 지난 2003년 10월, 리비아로 가던 도이췰란드 선적 화물선 BBC 차이나가 이딸리아 남부 타란또항에서 전격 나포되었다. 나포사건의 배후에 미국이 있었다. 나포된 화물선을 수색하자, P-1 원심분리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리비아의 가다피 정권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주문한 장비들이다. 

원심분리기를 압수한 미국은 가다피 정권의 비밀핵개발계획이 드러났다고 떠들어대면서 리비아에게 핵포기를 강요하였다. 미국의 드센 압박으로 궁지에 몰린 가다피 정권은 핵개발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찰단을 리비아에 급파하여 P-1 원심분리기, 우라늄농축공장 설계도, 핵탄두 설계도를 모조리 압수하였다. 그 핵탄두 설계도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어느 세탁소에서 사용하는 세탁물보관자루에 쌓여있었다. 이런 정황은 가다피 정권이 가지고 있던 P-1 원심분리기, 우라늄농축공장 설계도, 핵탄두 설계도가 파키스탄에서 만들어졌음을 말해준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에 나타난 것은 미국이 리비아의 가다피 정권에게서 압수하여 2004년에 미국 본토 테네시주 오크리지로 반출해온 원심분리기들이다. 테네시주 오크리지에는 핵무기연구소인 오크리지국립실험소가 있다. 위의 사진에 나타난 원심분리기들은 나무상자에 2기씩 들어있다. 이 원심분리기들은 파키스탄이 개발한 P-1(1세대 원심분리기)이다. 가다피 정권은 파키스탄의 핵무기개발 총책임자 압둘 카디르 칸이 운영하는 국제핵거래망을 통해 이 원심분리기를 수입하여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칸의 국제핵거래망에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고용간첩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중앙정보국은 고용간첩들이 보내주는 첩보를 분석하면서 국제핵거래망을 감시, 추적해왔다. 리비아와 이란은 칸의 국제핵거래망을 통해 핵무기개발장비와 핵탄두 설계도 등을 입수하려고 하다가 미국 중앙정보국의 차단공작에 걸렸다.     

가다피 정권은 파키스탄이 제작한 P-1 원심분리기를 10,000개나 수입하여 우라늄농축공장을 건설하려던 판이었는데, 만일 그 공장이 미국의 방해를 받지 않고 계획대로 건설되었다면, 해마다 핵탄두 10발씩 만들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었다. (뉴욕타임스 2004년 2월 12일)

미국 중앙정보국과 영국 정보기관 M16은 리비아에서 압수한 원심분리기, 우라늄농축공장 설계도, 핵탄두 설계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모든 압수물품들이 국제핵거래망을 통해 리비아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가디언 2008년 6월 15일) 여기서 말하는 국제핵거래망은 당시 파키스탄의 핵무기개발 총책임자였던 압둘 카디르 칸이 운영해온 국제핵거래망이다. 미국은 칸의 국제핵거래를 불법으로 낙인찍었지만, 실제로 국제핵거래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자기가 핵거래를 하면 합법이고, 남이 핵거래를 하면 불법이라는 미국의 이중적 법리판단이야말로 궤변 중의 궤변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미국 중앙정보국에 고용된 스위스 국적 간첩 3명이 칸의 국제핵거래망에서 핵심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중앙정보국의 고용간첩들은 프리드리히 티너, 우르스 티너, 마르코 티너다. 프리드리히는 우르스와 마르코의 친아버지이고, 우르스는 마르코의 친형이다. 

프리드리히 티너는 진공밸브를 발명하여 국제특허까지 받은 스위스의 저명한 기계공학자다. 그가 개발한 진공공학기술은 기계공업부문과 우라늄농축부문에서 사용되는 이중용도의 첨단기술이다. 원심분리기에 핵심부품으로 들어가는 진공밸브를 개발한 것을 인연으로 하여, 프리드리히 티너는 1970년대 중반 이후 근 30년 동안 압둘 카디르 칸과 함께 일해왔다. 

칸과 손잡고 원심분리기를 개발해온 프리드리히 티너는 칸이 운영하는 국제핵거래망에 자연스럽게 관여하게 되었는데, 가다피 정권이 칸의 국제핵거래망을 통해 원심분리기를 수입하기 시작한 1990년대 말부터 칸과 티너 3인의 관계는 더욱 밀착되었다. (뉴욕타임스 2008년 8월 25일) 

그러나 칸은 티너 3인이 미국 중앙정보국의 고용간첩들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중앙정보국은 티너 3인의 간첩활동을 통해 칸의 국제핵거래망을 손금 보듯 들여다보며 감시했다. 클린턴 행정부와 부쉬 행정부에서 중앙정보국장을 지낸 조지 테닛은 국장직에서 퇴임한 후 2007년 미국에서 출판된 자신의 회고록에서 중앙정보국은 10년 이상 칸의 국제핵거래망을 집중적으로 추적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칸의 국제핵거래망을 호시탐탐 노린 중앙정보국의 감시와 추적에 걸려든 나라가 리비아와 이란이다. 티너 3인이 중앙정보국의 고용간첩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난 때로부터 5년이 지난 뒤, 부쉬 행정부 관리들은 취재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비밀을 털어놓았다. “중앙정보국 요원들은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티너에게 1,000만 달러를 지급하였는데, 때로는 여행가방에 현금을 가득 채워 주기도 했다. 그 대가로 티너는 리비아의 (핵)폭탄프로그램을 종식시키는데 도움이 된 비밀정보와 이란의 핵개발사업을 말해주는 비밀정보, 그리고 칸의 핵거래암시장을 무력화하는 비밀정보 등을 (중앙정보국에) 제공하였다.” (타임 2008년 8월 28일) 

중앙정보국은 칸의 국제핵거래망을 감시만한 게 아니라, 리비아와 이란의 핵무기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교란공작도 감행했다. 티너 3인은 리비아와 이란에 핵개발장비들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한다. (뉴욕타임스 2008년 8월 25일) 


2. 압수한 기밀자료 놓고 신경전 벌인 미국과 스위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리비아와 이란의 핵무기개발을 저지하려는 중앙정보국의 방해공작과 교란공작에 고용간첩으로 깊숙이 개입한 티너 3인은 결국 스위스 사법당국에 체포되었다. 스위스 사법당국은 그들의 집과 사무실에서 컴퓨터 파일과 기밀문서를 압수하였다. 압수된 기밀자료는 수백만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었다. 

압수한 기밀자료를 조사하던 스위스 사법당국은 아연실색하였다. 왜냐하면 파키스탄, 리비아, 이란이 연계된 국제핵거래망에 관한 비밀정보들, 그리고 티너 3인이 국제핵거래망에서 미국 중앙정보국의 고용간첩으로 활동해온 내막에 관한 비밀정보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부쉬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타임> 2008년 8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스위스 사법당국이 압수한 기밀자료에는 핵폭탄 설계도와 원심분리기 설계도만이 아니라 티너와 중앙정보국의 연계에 관한 기록물들을 비롯하여 티너의 활동에 관한 10여 년 간의 기록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 2008년 8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스위스 사법당국이 압수한 기밀자료에는 핵무기개발에 관한 기술자료들, 원심분리기에 관한 기술자료들, 미사일유도체계에 관한 기술자료들, 그리고 “매우 정밀한 핵폭탄 설계도”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스위스 사법당국은 신병과 물증을 확보하였으나, 이 엄청난 사건을 처리할 방도를 찾지 못해 고심했다. 왜냐하면, 미국 중앙정보국이 그 사건에 깊숙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스위스 사법당국은 티너 3인을 법적으로 처벌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넘겨달라고 미국에게 거듭 요청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스위스 사법당국의 거듭되는 요청을 번번이 무시하면서 응답하지 않았다.  

스위스 사법당국의 요청에 한동안 응하지 않던 미국은 갑자기 해괴한 요구를 꺼내들었다. <뉴욕타임스> 2010년 12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부쉬 행정부의 국무장관 칸돌리자 라이스는 스위스 외교부 고위관리들에게 티너 3인에 대한 수사를 중지하라고 요구하였다고 한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칸의 국제핵거래망에서 미국 중앙정보국의 고용간첩으로 활동하였던 스위스 국적자 우르스 티너의 신상기록자료를 촬영한 것이다. 스위스 사법당국은 미국 중앙정보국의 고용간첩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프리드리히 티너, 우르스 티너, 마르코 티너를 체포하였고, 그들의 집과 사무실에서 수백만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기밀자료를 압수하였다. 압수된 기밀자료에는 파키스탄, 리비아, 이란이 연계된 국제핵거래망에 관한 비밀정보들, 티너 3인이 국제핵거래망에서 미국 중앙정보국의 고용간첩으로 활동해온 내막에 관한 비밀정보들, 핵무기개발에 관한 기술자료들, 원심분리기에 관한 기술자료들, 미사일유도체계에 관한 기술자료들, 매우 정밀한 핵탄두 설계도 등이 들어있었다. 티너 3인을 고용하여 국제핵거래망에서 벌여온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내막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까 우려한 미국은 스위스 사법당국에게 압수한 기밀자료를 모두 파기하고, 체포한 혐의자 3인을 석방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스위스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였다.     

티너 3인에 대한 스위스 사법당국의 사법처리가 미국의 비협조와 방해로 난항을 겪으면서 어느덧 4년이 흐른 2007년 7월 말, 스위스 법무장관 크리스토프 블로허는 미국 법무장관 앨버토 곤잘레스와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 로벗 뮬러를 만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스위스 법무장관은 티너 3인에 대한 사법처리문제를 논의하려고 워싱턴에 갔으나, 미국은 사법처리에는 관심이 없었고, 스위스 사법당국이 티너 3인을 체포하면서 압수한 기밀자료를 넘겨달라는 생뚱맞은 요구를 꺼내놓았다. (뉴욕타임스 2008년 8월 25일)

스위스 법무장관은 기밀자료를 넘겨달라는 요구만 듣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랬더니 미국은 스위스 사법당국이 압수한 기밀자료를 파기하라는 또 다른 요구를 꺼내놓았다. (타임 2008년 8월 28일) 미국이 스위스 사법당국에게 기밀자료를 파기하라고 요구한 까닭은, 티너 3인을 고용하여 국제핵거래망에서 벌여온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내막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시 부쉬 행정부 관리들이 전한 말에 따르면, “중앙정보국은 (티너의) 재판과정에서 티너와 미국의 관계가 세상에 드러나 핵밀거래자들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혹이 불거지지나 않을까 우려했을 뿐 아니라, 이란의 핵개발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던 시기에 (중앙정보국의 대이란첩보사업을 위한) 신입간첩모집사업이 위험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한다. (타임 2008년 8월 28일) 

미국의 압력을 받은 스위스 정부는 저항을 포기하고 굴복을 택했다. 2007년 8월 말, 스위스 대통령 파스칼 코체핀은 티너 3인에 대한 형사처벌을 취소할 수 있다고 하였고, 같은 해 11월 14일에는 스위스 사법당국이 압수한 기밀자료를 전부 파기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말했다. 2008년 5월 23일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스위스 대통령 코체핀은 스위스 사법당국이 압수한 기밀자료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독 하에 전부 파기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스위스 사법당국이 기밀자료들을 파기했다는 소식을 들은 미국 중앙정보국 고위간부는 “우리는 그 문서들이 파기되어 매우 기쁘다”고 반색하였다. (타임 2008년 8월 28일) 

그러나 그들이 기뻐한 이유는 기밀자료가 파기된 것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스위스 국제방송 2009년 4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스위스 사법당국이 전부 파기하였다는 기밀자료의 사본이 스위스 검찰청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그 사본들은 미국에 넘어갔다. 스위스 사법당국은 2006년에 프리드리히를 석방했고, 우르스와 마르코를 2008년 12월과 2009년 1월에 각각 석방했다. 핵확산을 저지한다는 미명 아래 자행된 중앙정보국의 국제간첩활동은 참으로 어수선하게 막을 내렸다. 


3. 설계도에 나오는 소형화, 경량화, 정밀화된 핵탄두

스위스 사법당국이 압수한 1,000기가바이트 분량의 30,000개 파일들 가운데서 눈길을 끈 것은 매우 정밀하게 작성된 핵탄두 설계도다. 그 설계도에 나오는 핵탄두는 어떻게 생겼을까? 

(1) 설계도에 나오는 핵탄두는 중거리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핵탄두다. 영국 언론매체 <가디언> 2008년 6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설계도에 나오는 핵탄두는 조선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노동’(공식명칭은 화성-7)과 이란의 중거리탄도미사일 샤합-3에 각각 장착될 수 있는 핵탄두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디언>은 설계도에 나오는 핵탄두가 화성-7이나 샤합-3에 장착되는 것만이 아니라, 파키스탄의 중거리탄도미사일 가우리에도 장착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좀 더 심층적인 정보를 살펴보면, 파키스탄과 이란은 조선에서 화성-7의 설계기술과 완제품을 직수입하여 가우리와 샤합-3을 각각 만들었다. 그러므로 가우리와 샤합-3은 화성-7의 복제품들이다. 이런 정황은 그 3종의 중거리탄도미사일들에 장착되는 핵탄두가 조선의 핵탄두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2) 설계도에 나오는 핵탄두는 외형과 성능이 파키스탄 핵탄두와 매우 비슷하다. 스위스 사법당국이 압수한 기밀자료를 조사한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들의 말에 따르면, 컴퓨터 파일에 들어있는 핵탄두 설계는 파키스탄의 핵탄두 설계와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 2008년 6월 15일) 그들은 매우 비슷하다는 표현을 썼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스위스 사법당국이 압수한 핵탄두 설계도는 파키스탄 핵탄두 설계도의 디지털 사본이다. 우르스 티너는 파키스탄 핵탄두 설계도의 디지털 사본을 자기 컴퓨터 파일에 저장해놓고, 핵탄두 설계도를 고액으로 사려는 구매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파키스탄 핵탄두 설계도의 디지털 사본은 스위스 사법당국이 압수한 우르스 티너의 컴퓨터 파일에만 들어있었던 게 아니다. 리비아의 가다피 정권도 칸의 국제핵거래망을 통해 파키스탄 핵탄두 설계도의 디지털 사본을 입수하였다. 이 핵탄두 설계도 사본은 2006년 미국이 리비아에 파견한 사찰관에게 압수되어 미국으로 반출되었다. 미국이 리비아에서 압수, 반출한 파키스탄 핵탄두 설계도의 디지털 사본이 지금 미국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2006년 당시 미국 언론매체들은 미국이 리비아에서 3종의 핵탄두 설계도를 압수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사진 3>


▲ <사진 3> 맨위쪽 사진은 중국이 1964년 10월 16일 자국의 첫 핵시험에서 기폭시킨 핵폭탄 모형이다. 이 핵폭탄은 지름이 1.6m 정도로 크고 무거워서 중거리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없었고, 수송기에 싣고 적진 상공에서 공중투하해야 하였다. 그래서 이 핵폭탄의 뒷부분에는 공중투하용 방향날개가 달렸다. 미국이 리비아의 가다피 정권에게서 압수한 3종의 핵무기 설계도 디지털 사본들 가운데 첫번째 설계도가 바로 이 구식 핵폭탄 설계도였다. 가운데 사진은 2017년 12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제8차 군수공업대회가 진행되었을 때, 행사장으로 사용된 4.25문화회관의 복도에 게시된 사진문헌들 가운데 하나다. 촬영시점과 촬영장소를 알 수 없는 이 사진문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탄두를 살펴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핵탄두 표면에 마치 꼭지처럼 생긴 작은 물체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듬성듬성 튀어나온 것이 보인다. 사진문헌에 나타난 핵탄두는 1999년에 조선을 방문하였던 파키스탄의 핵무기개발 총책임자 압둘 카디르 칸에게 조선이 보여주었던 바로 그 핵탄두다. 당시 조선은 그에게 핵탄두 3발을 보여주면서 '관찰학습'을 하도록 배려하였는데, 그 핵탄두의 직경은 약 60cm이고, 뇌관 64개가 장착되었다고 한다. 맨아래쪽 사진은 2016년 3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부문의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지도하는 모습을 촬영한 조선의 언론보도사진에서 핵탄두만 추출, 확대한 사진이다. 표면이 매끄럽게 생긴 구면체 핵탄두다. 이 핵탄두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3 전투부에 장착된다. 핵탄두가 소형화, 경량화, 정밀화되었으므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화성 계렬의 대륙간탄도미사일들만이 아니라 주일미국군기지들과 괌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 계렬의 중거리탄도미사일들에도 충분히 장착될 수 있다.     

첫 번째 설계도에 나오는 핵무기는 크기가 너무 커서 탄도미사일에 장착하지 못하는 구식 핵무기였다. (워싱턴포스트 2008년 6월 15일) 이 구식 핵무기는 1960년대 중반 중국이 만든 1세대 핵무기다. (뉴욕타임스 2008년 6월 16일) 압둘 카디르 칸은 2003년 10월 12일 자기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1982년에 중국이 핵무기 설계도를 파키스탄에게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중국의 첫 핵시험은 1964년 10월 16일에 진행되었는데, 첫 핵시험에서 기폭된 핵폭탄은 지름이 1.6m 정도나 되는 크고 무거운 핵폭탄이었으므로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없었다. 중거리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려면, 탄두지름을 90cm 이하로 줄여 소형화, 경량화하여야 한다. 

<뉴욕타임스> 2010년 12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리비아에서 압수한 3종의 핵무기 설계도 가운데서 중국의 구식 핵폭탄 설계도 이외의 다른 2종의 설계도는 고도의 핵기술로 정밀하게 작성한 핵탄두 설계도라고 한다. 고도의 핵기술로 작성한 핵탄두라는 말은 중거리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도록 소형화, 경량화된 핵탄두라는 뜻이다. 

그 정밀한 핵탄두 설계도는 스위스 사법당국이 압수한 우르스 티너의 컴퓨터 파일에 저장되었던 바로 그 핵탄두 설계도였다. 리비아 가다피 정권은 칸의 국제핵거래망에서 핵심역할을 하는 미국 중앙정보국 고용간첩 우르스 티너에게서 그 핵탄두 설계도를 입수한 것이다. 


4. 왜 우라늄핵탄 만들지 않고, 플루토늄핵탄 만들었을까? 

조선 영토의 80%가 ‘보물고’다. 그 ‘보물고’에는 석유, 철광석, 석탄, 석회석, 마그네싸이트, 금, 은, 구리, 아연, 흑연, 희토류, 망간, 니켈, 크롬, 티탄, 우라늄, 지르코늄 등 값비싸고 희귀한 지하자원들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그처럼 거의 모든 종류의 지하자원을 골고루, 풍부히 가진 나라는 전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다. 조선의 애국가 1절에 나오는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이라는 구절은 시가적 표현만이 아니라 현실인식의 반영인 것이다. 

조선에 매장된 각종 지하자원들 가운데서 천연우라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에는 얼마나 많은 천연우라늄이 매장되어 있을까? <뉴욕타임스> 2014년 8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고품질 천연우라늄 400만톤이 조선에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전 세계 천연우라늄 매장량은 473만톤으로 추산되는데, 조선에 고품질 천연우라늄이 400만톤이나 매장되어 있다니 깜짝 놀랄 일이다. 조선은 세계 최고 천연우라늄 부국이다.     
그런데 좀 이해하기 힘든 문제가 있다. 세계 최고 천연우라늄 부국에서 개발된 핵무기가 우라늄핵탄이 아니라 플루토늄핵탄이라는 사실이다. 천연우라늄 부국이 왜 우라늄핵탄을 만들지 않고, 플루토늄핵탄을 만들었을까?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에 나타난 노란색 물질은 흔히 노란 케익(yellowcake)이라고 불리는 천연우라늄을 정련한 가루다. 우라늄광산에서 캐낸 천연우라늄광석을 곱게 분쇄, 정련하여 이런 가루를 만드는데, 이것을 농축하면 핵물질인 우라늄 235을 얻어낼 수 있다. 저농축하면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되는 연료로 되고, 고농축하면 우라늄핵탄에 들아가는 핵물질로 된다. 조선은 세계 최고 천연우라늄 부국이다. 조선에서는 위의 사진에 나타난 노란 케익이 대량생산된다. 그런데 조선은 왜 우라늄핵탄을 만들지 않고, 플루토늄핵탄을 만들었을까?     

플루토늄핵탄을 만들려면, 반드시 원자로를 건설해야 한다.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에서 1986년부터 흑연감속로를 가동해오는 주된 목적은 전기생산이 아니라 플루토늄생산이다. 흑연감속로는 지하에 은폐할 수 없기 때문에, 조선은 미국의 집중적인 감시와 방해와 압박을 받게 되었고, 결국 조선의 핵무기개발을 저지하려는 미국과 격렬한 핵대결을 벌여야 했다. 만일 조선이 우라늄핵탄을 만들었더라면, 자국에 풍부히 매장된 천연우라늄을 사용하여 핵원료의 주체화를 실현하기에도 좋았을 것이고, 우라늄농축공장을 지하에 건설하여 미국의 감시를 따돌리기에도 유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은 자기에게 유리한 우라늄핵탄개발을 외면하고, 자기에게 불리한 플투토늄핵탄개발을 선택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는 다음과 같다.

2011년 9월 15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에 실린 압둘 카디르 칸의 자술서에 따르면, 조선은 6.25전쟁이 끝난 뒤 1950년대 말, 소련으로부터 핵폭탄 설계도와 무기급 플루토늄 200kg을 입수했고, 그것을 가지고 핵폭탄을 만들었다고 한다. 수송기로 운반하는 크고 무거운 핵폭탄을 만든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은 1990년대 후반 핵무기개발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파키스탄에 장기체류하던 조선의 장성급 군사지휘관 강태윤이 칸에게 직접 들려준 이야기다. 

6.25전쟁 중에 미국은 핵폭탄을 무더기로 투하하여 조선과 중국 동북지방을 초토화하려고 광분했는데, 그런 가공할 핵위협을 체험한 소련은 미국과 3년 간의 격전을 벌인 조선과 중국에 각각 핵기술을 지원했다. 그렇게 되어 중국은 1958년에 핵무기개발을 시작했고, 조선도 거의 같은 시기에 핵무기개발을 시작했다. 핵무기개발과정에 부닥치는 수많은 기술적 난관을 뚫고 나간 조선과 중국은 1960년대 중반에 각각 핵폭탄을 완성할 수 있었다.  

1950년대 말 소련이 조선과 중국에 전수한 핵무기제조기술은 무기급 플루토늄 15kg을 가지고 커다란 핵폭탄 1발을 만드는 수준이었다. 그런 핵무기제조기술을 전수받은 조선은 무기급 플루토늄 200kg을 가지고 핵폭탄을 10발 정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핵무기에 대해 알지 못하고 원자탄이라는 말이나 간혹 쓰였던 1950년대 말에 조선은 핵폭탄을 만들고 있었다. 

1950년대 말 조선이 소련으로부터 입수한 핵무기제조기술이 플루토늄핵탄을 만드는 기술이었으므로, 조선은 지난 60년 동안 플루토늄핵탄제조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세계 최고 수준의 핵탄제조기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정보부족과 편견으로 훼손된 낡은 관념을 버리고,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알아야, 조선의 핵강국 선언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다. 


5. 우라늄핵탄, 플루토늄핵탄, 수소탄 만드는 동방의 핵강국 

그렇다면 조선은 플루토늄핵탄만 만들고, 우라늄핵탄은 만들지 않았을까? 조선의 핵무기개발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조선이 플루토늄핵탄만 만든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문제를 해명하려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사실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1) 조선의 우라늄광산은 황해북도 평산과 평안남도 순천에 있고, 우라늄제련공장은 황해북도 평산과 평안북도 박천에 있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평안북도 구성과 함경북도 선봉에도 매장량이 풍부한 우라늄광산이 있다. 조선에서 가동되는 우라늄광산 및 우라늄제련공장의 연간 총생산량은 약 2,000톤이다. 2013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연간 우라늄생산량은 1,850톤이므로, 조선은 미국보다 조금 많은 우라늄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100개나 되는 미국의 원자력발전소들이 소모하는 연간 우라늄총량은 약 18,400톤인데, 미국에서 생산된 우라늄 1,850톤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므로, 미국은 로씨야에서 저농축 핵연료를 대량 수입하여 원자력발전소들에 공급해왔다. 

그런데 조선의 연간 우라늄생산량이 미국보다 조금 더 많은 약 2,000톤이라는 사실이 강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조선이 우라늄을 생산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중반인데, 원자력발전소가 없는 조선이 우라늄광산을 개발한 이후 지난 30년 동안 해마다 우라늄 2,000톤을 생산하였다면, 60,000톤을 생산한 것이다. 그 많은 우라늄을 어디에 사용해온 것일까?   

(2) 2011년 9월 15일 <팍스 뉴스>에 실린 칸의 자술서에 따르면, 조선은 1990년대 초에 6불화우라늄생산공장을 가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칸은 자술서에서 조선의 6불화우라늄생산공장이 언제 건설되었는지 말하지 않았지만, 건설 직후에는 6불화우라늄을 연간 2톤씩 생산하다가 생산능력이 더욱 확장되어 연간 10톤으로 증가되었다고 했다. 6불화우라늄을 분리하면, 핵무기에 들어가는 우라늄 235를 추출할 수 있으므로, 조선이 1990년대 초에 6불화우라늄을 생산하고 있었다는 것은 우라늄 235를 추출하여 우라늄핵탄을 생산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3) 2011년 9월 15일 <팍스 뉴스>에 실린 칸의 자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에 파견되어 미사일개발기술을 전수하던 조선의 미사일기술자 10명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1998년 어느 날, 칸은 P-1(1세대 원심분리기) 20기를 감사표시로 조선에 보내려고 하였는데, 조선의 미사일기술자들은 이왕이면 P-2(2세대 원심분리기) 4기를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사실을 두고, 미국은 조선이 파키스탄에서 가져간 P-2를 가지고 원심분리기를 개발하여 우라늄을 농축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하지만 그런 추정은 사실과 다르다.   

만일 조선이 파키스탄에서 P-2를 가져가 원심분리기를 개발하려고 했다면, 칸이 조선의 미사일기술자들에게 감사표시로 보내려고 하였던 P-1을 P-2로 바꿔달라는 사적인 요청을 하지 않고, 정부 대 정부의 관계에서 수출입계약을 체결했을 것이다. 파키스탄이 P-1을 P-2로 교체한 때는 1983년이었으므로, 조선은 파키스탄이 P-2를 개발하였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았으면서도, P-2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조선은 국가 차원에서 P-2에 무관심했고, 그래서 조선의 미사일기술자들은 귀국길에 감사표시로 받은 P-2 4기를 가져갔다. 그렇기 때문에, 칸은 2009년 9월 31일 파키스탄 방송과의 대담에서 파키스탄이 조선의 탄도미사일기술을 이전받는 대가로 조선에 원심분리기를 넘겨주었다는 미국의 주장을 강하게 부인하였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원심분리기에 무관심했던 것일까? 그 까닭은 조선이 파키스탄의 원심분리농축기술과는 전혀 다른 우라늄농축기술을 개발하여 우라늄 235를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라늄농축기술에는 원심분리농축기술만 있는 게 아니다. 파키스탄은 원심분리농축기술을 개발했지만, 조선은 그보다 더 우월한 기술을 개발했다. 조선이 개발한 것은 레이저분리기를 사용하는 우라늄농축기술이다. 레이저분리농축기술은 원심분리농축기술보다 전기를 더 적게 쓰면서도 우라늄은 더 많이 농축할 수 있고, 언제나 골칫거리로 되는 방사능 폐기물은 더 적게 나온다. 조선은 그처럼 우월한 레이저분리농축기술을 개발하여 우라늄핵탄을 만들어왔다. 미국은 조선에서 원심분리기가 가동되는 우라늄농축공장들이 은폐되었다고 의심하면서 감시와 추적을 해오고 있지만, 그건 헛발질이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모어에 있는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실험소에 설치된 실험용 레이저분리농축기를 촬영한 것이다. 설비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이 레이저분리농축기를 가동하여 우라늄을 농축한다. 파키스탄은 원심분리기농축기술을 개발했지만, 조선은 그보다 더 우월한 레이저분리농축기술을 개발했다. 미국은 조선에서 원심분리기가 가동되는 우라늄농축공장들이 은폐되었다고 의심하면서 감시와 추적을 해오고 있지만, 그건 헛발질이다. 조선은 레이저분리농축기가 설치된 우라늄농축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4) <뉴욕타임스> 2008년 6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2006년 리비아에서 압수하여 반출한 3종의 설계도들에 나온 3종의 핵탄두들은 모두 내폭형 우라늄핵탄으로 설계되었고, 농구공처럼 생긴 구면체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 2008년 6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그 3종의 설계도 중에서 2종의 설계도에 나오는 핵탄두는 중국이 핵개발 초기에 만들었던 핵폭탄에 비해 크기는 절반밖에 되지 않고, 파괴력은 두 배나 크고, 현대적인 전자장치들이 들어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칸은 2008년 6월 4일 미국 통신사 <맥클랫취 뉴스 페이퍼즈>와의 대담에서 리비아의 가다피 정권이 입수했던 핵탄두 설계도의 디지털 사본은 파키스탄 핵탄두 설계도의 디지털 사본을 복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칸은 파키스탄의 핵탄두 설계도를 어느 나라에서 입수했는지 정확한 답변을 피하며 얼버무렸다. 하지만 현대적인 설계기술로 정밀하게 작성된 그 핵탄두 설계도는 파키스탄의 기술지원요청을 받은 조선이 파키스탄에게 넘겨준 조선의 핵탄두 설계도 디지털 사본이다. 이런 놀라운 사실은 다음과 같이 논증된다. 

칸은 2008년 6월 4일 미국 통신사 <맥클랫취 뉴스 페이퍼즈>와의 대담에서 자신이 1994년에 조선을 방문하였을 때, 조선은 파키스탄의 핵기술보다 “훨씬 더 발전되고(much more advanced)”, “훌륭한(excellent)” 핵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매우 정교한(very sophisticated)” (핵탄두) 설계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칸의 자술서를 인용한 <워싱턴포스트> 2009년 12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1999년에 평양을 방문한 칸에게 뇌관 64개가 설치된 핵탄두가 1발씩 들어있는 보관함 3개와 핵탄두 격발기가 1개씩 들어있는 보관함 3개를 모두 보여주면서, 이 핵탄두들은 한 시간 안에 미사일에 장착되어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날 칸이 조선의 지하핵무기고에서 관찰하였던 핵탄두 3발은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도록 탄두지름을 60cm으로 축소시킨 소형화, 경량화, 정밀화된 핵탄두다. 

조선을 방문하여 조선의 핵탄두설계기술이 얼마나 높은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알게 된 칸은 조선의 핵과학자들로부터 세계 정상급 핵탄제조기술을 전수받았다. 칸의 자술서를 인용한 <워싱턴포스트> 2009년 12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핵탄두 기폭장치의 일종인 고속전기스위치 크라이트론(krytron)을 만드는 제조법을 조선에서 배웠다고 했는데, 조선에게서 어찌 그것만 배웠겠는가.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이스라엘의 미사일전문가 탈 인바르가 작성한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전투부를 보여주는 개념도다. 왼쪽에 있는 것은 핵탄두가 들어간 화성-13 전투부이고, 오른쪽에 있는 것은 수소탄두가 들어간 화성-14 전투부다. 조선은 지난 30년 동안 고품질 천연우라늄 60,000톤을 생산하고, 레이저분리농축기술을 개발하여 우라늄핵탄을 계속 만들어온 동방의 핵강국이다. 또한 조선은 파키스탄의 핵무기개발 총책임자가 인정한 세계 정상급 핵탄두설계기술로 플루토늄핵탄, 우라늄핵탄, 수소탄을 만들어온 동방의 핵강국이다. 미국은 동방의 핵강국에게 핵무기를 폐기하라는 말이 되지 않는 요구를 들이대며 정세를 악화시킬 게 아니라, 조선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고 동방의 핵강국과 공존하는 평화의 길을 택해야 한다.     

(5) 1998년 5월 30일 조선은 파키스탄 영토에서 비공식 핵시험을 하였다. 12킬로톤의 폭발위력이 나왔다. 조선은 2006년 10월 9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있는 지하핵시험장에서 사상 처음 공식 핵시험을 진행하였는데, 그보다 8년 앞서 파키스탄 발로치스탄주 차가이사막에 있는 임시핵시험장에서 비공식 핵시험을 하였던 것이다. 파키스탄은 그보다 이틀 앞선 5월 28일 차가이사막의 임시핵시험장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핵시험장에서 우라늄핵탄 4발을 기폭시키는 핵시험을 하였는데, 1998년 5월 30일 차가이사막의 임시핵시험장에서 기폭된 것은 플루토늄핵탄이었다. 1998년 당시 파키스탄은 우라늄핵탄만 가지고 있었고, 플루토늄핵탄은 없었다. 파키스탄이 중국의 기술지원을 받아 조하라바드에 건설한 40메가와트급 쿠삽 연구용 원자로는 1998년 4월에 가동되었으므로, 파키스탄이 어떻게 원자로를 가동한지 한 달 뒤에 플루토늄핵탄을 만들어 핵시험에 사용할 수 있었겠는가. 

주목되는 것은, 1998년 5월 30일 조선이 차가이사막의 임시핵시험장에서 핵탄두 2발을 연속적으로 기폭시키는 핵시험을 하려고 준비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조선은 12킬로톤급 핵탄두 2발을 핵시험에 사용하려고 파키스탄에 가져갔었는데, 그 가운데서 1발만 기폭시켰고, 다른 1발은 기폭시키지 않았다. 핵탄기폭에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핵탄을 의도적으로 기폭시키지 않은 것이다. 조선이 1998년 5월 30일 핵시험에서 기폭시키려고 준비하였으나 기폭시키지 않은 두 번째 핵탄두가 바로 우라늄핵탄이다. 

지난 30년 동안 고품질 천연우라늄 60,000톤을 생산하고, 레이저분리농축기술을 개발하여 우라늄핵탄을 계속 만들어온 동방의 핵강국은 지금 얼마나 많은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을까? 파키스탄의 핵무기개발 총책임자가 인정한 세계 정상급 핵탄두설계기술로 플루토늄핵탄, 우라늄핵탄, 수소탄을 만들어온 동방의 핵강국은 지금 얼마나 많은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을까? 바로 이 물음의 해답 속에, 미국이 조선에게 핵무기를 폐기하라고 요구할 수 없는 명백한 이유가 들어있다. 미국은 동방의 핵강국에게 핵무기를 폐기하라는 말이 되지 않는 요구를 들이대며 정세를 악화시킬 게 아니라, 조선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고 동방의 핵강국과 공존하는 평화의 길을 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