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8년 06월 18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민족사적 의의와 세계사적 의의
2. 막판까지 논쟁 벌인 두 가지 중대한 문제
3. 트럼프가 말하지 않은 조미정상회담의 비밀
4. 종전선언은 왜 합의되지 않았는가?
5. 역사적인 공동성명에 명기된 네 가지 합의사항
6. 오찬에서 작별까지 극적인 장면들
1. 민족사적 의의와 세계사적 의의
8천만 민족과 76억 인류가 고대해온 조미정상회담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폴공화국의 쎈토사섬에 있는 카펠라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시대와 민족에게 안겨준 거대한 의의를 두 갈래로 설명할 수 있다.
(1) 고구려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이후 오늘까지 강대국들의 침략과 강점, 지배와 간섭을 받아온 1,350년의 민족수난사에서 우리 민족이 강대국을 상대로 대등한 담판을 벌이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조선이 1,350년 만에 그 상상을 뛰어넘었다. 조선은 세계의 지배자로 자처하는 미국을 상대로 대등한 담판을 벌였을 뿐 아니라, 그 담판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로써 조선은 반만년 민족사를 새로 썼다. 8천만 민족은 조선의 승리로 빛나는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의 민족사적 의의를 목도하였다. <사진 1>
(2) 세계정치사에 두드러진 자취를 남긴 역사적인 정상회담들이 있다. 1961년 6월 4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미소정상회담이 열렸고, 1972년 2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미중정상회담이 열렸다. 그 두 정상회담은 대국 대 대국의 담판이었다. 그처럼 적대관계에 있는 대국들이 정상회담을 벌인 사례들은 있었지만, 적대관계에 있는 소국과 대국이 정상회담을 벌인 사례는 없었다. 더욱이 소국이 대국과 대등한 담판을 벌여 승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세계정치사를 지배해왔다. 그러나 조선의 강한 힘은 그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조선은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을 상대로 대등한 담판을 벌였을 뿐 아니라, 그 담판을 승리로 이끌어 세계정치사를 바꿔놓았다. 76억 인류는 조선의 승리로 빛나는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의 세계사적 의의를 목도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 사이에 진행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주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옆자리에서 조역을 맡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조역의 시각이 아니라 주역의 시각에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진행과정을 고찰해야 전모와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2. 막판까지 논쟁 벌인 두 가지 중대한 문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2018년 6월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폴에 도착하였다. 이튿날 최선희 조선외무성 부상과 성 김(김성용) 미국측 협상대표는 싱가폴에서 실무회담을 진행하였다. 판문점에서 실무회담을 여섯 차례나 진행하면서도 합의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으므로,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막판 실무회담을 진행한 것이다. 두 가지 중대한 문제를 합의하지 못했었다.
(1) 조미정상회담 준비과정을 잘 아는 워싱턴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조선일보> 2018년 6월 14일부 보도기사를 보면, 미국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비핵화의 범위와 시간표”를 명기할 것을 요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막판 실무회담에서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아니라 “비핵화의 범위와 시간표”를 요구하였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조선은 그 요구마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기 요구를 기어이 관철하였다. <사진 2>
조선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비핵화의 범위와 시간표”를 명기하려는 미국의 요구를 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그 까닭은, 미국이 비핵화의 범위를 한반도로 확대하지 않고, 조선으로 한정시키려고 획책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아니라 “조선의 비핵화”를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기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만일 미국의 요구대로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조선의 비핵화”라고 명기하면, 미국은 핵전략자산을 한국에 반입하거나 배치해도 되지만, 조선은 그런 핵위협을 받으면서도 비핵화 합의를 이행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조선이 “비핵화의 범위”를 공동성명에 명기하려는 미국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만일 미국의 요구대로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비핵화의 범위”를 명기하면, 미국의 사찰단은 ‘현장검증’을 구실로 조선에 들어가 일방적인 핵사찰을 감행하게 될 것이다. 조선이 “비핵화의 범위”를 공동성명에 명기하려는 미국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한 또 다른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와 반대로, 조선의 요구대로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조선반도의 비핵화”라고 명기하면, 조선과 미국은 현장검증을 위한 상호핵사찰을 해야 하는데, 상호핵사찰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미국은 주한미국군기지들을 조선의 사찰단에게 개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조선반도의 비핵화”라고 명기하는 문제는 “조선의 비핵화”라는 개념을 “비핵화의 범위”라는 개념으로 바꿔치기하여 합의하려던 미국의 계략을 봉쇄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 다시 말해서 조미정상회담의 승패를 결정짓는 매우 심중한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쌍방 실무협상단은 막판까지 “비핵화의 범위”를 공동성명에 명기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을 거듭하였던 것이다.
조선은 “비핵화의 범위”를 들고나온 미국의 계략을 봉쇄하였고, 공동성명에는 조선이 제기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명기되었다.
(2) 대미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한 <중앙일보> 2018년 6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조미정상회담 전날인 6월 11일 자정을 조금 넘겨 끝난 마지막 실무회담에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조선이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미국인 범죄자 3명을 송환하고, 지하핵시험장을 폐기하는 성의 있는 행동을 하였는데, 미국은 그에 상응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대조선제재를 해제하는 문제를 공동성명에 명기할 것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튿날 발표된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대조선제재를 해제하는 문제가 명기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까닭은,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하여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 참석한 백악관 각료들이 조선의 제재해제요구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들과 다른 견해를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마친 직후, 현장에서 진행된 단독기자회견에서 “(조선의) 핵무기가 더 이상 위험요인이 아니라고 판단될 때, (대조선)제재가 해제될 것이다. 제재는 큰 역할을 하였으나, 바로 그 지점에서 해제될 것이다. 나는 빨리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데, 제재는 해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들어보면, 그가 대조선제재를 이른 시일 안에 해제하려는 의사를 가진 것이 분명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 트럼프 대통령도 그에 상응하여 대조선제재를 해제하기 시작할 것이다.
3. 트럼프가 말하지 않은 조미정상회담의 비밀
2018년 6월 12일 오전 9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국기들이 나란히 걸려있는 상봉장소에서 악수를 나누었다. 이 역사적인 상봉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65년 세월을 마감하는 기적적인 사변이었다.
양국 정상은 역사적인 상봉을 마치고 회담장으로 자리를 옮겨 단독회담을 시작하였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석자 없이 진행한 단독회담이다.
2018년 6월 14일 조선에서 방영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기록영화에 나오는 해설에 따르면, 단독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수십년간 지속되여온 적대적인 조미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깃들도록 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실천적 문제들에 대하여 솔직한 의견을 나누시였”다고 한다. 솔직한 의견을 나누었다는 말은 마음을 터놓고 담화하였다는 뜻이다.
마음을 터놓고 담화하였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문제를 제기하였을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문제를 제기하였을 것이다. 단독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장 듣고 싶었던 것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향이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듣고 싶었던 것은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향이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진 3>
나는 2018년 6월 11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결승선이 보인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워싱턴포스트> 2018년 6월 7일부 기사를 인용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임기 중에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려는, 고집에 가까운 의지를 가졌다는 사실을 서술한 바 있는데, 그가 미국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려는 의지를 가진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그는 단독회담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비핵화가 실현되는 것에 상응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이 분명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단독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가 실현되는 것에 상응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의 철군조치에 상응하여 비핵화를 실현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주한미국군의 완전한 철수와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단계별-동시적 행동원칙에 따라 실현해나갈 것을 구두로 합의한 것이다. 바로 이 구두합의가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의 비밀이다.
단독회담에서 철군문제와 비핵화문제를 구두로 합의하면서 마음이 서로 통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미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8년 6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단독회담에 이어 진행된 확대회담 중에 양측 배석자들에게 “우리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때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면서, 앞으로 서로 자주 통화하자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양국 정상은 단독회담 중에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쌔라 쌘더스(Sarah H. Sanders) 백악관 대변인을 각각 불러 그들에게 양국 정상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로써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위성전화를 이용한 직통연락선을 갖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 15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와 진행한 대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직접 연결되는 내 전화번호를 주었다. 그는 어떤 어려움이 생기면 나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 나도 그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 우리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 매우 좋은 일”이라고 말하면서, 2018년 6월 17일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밝힌 바 있다. 조미관계개선은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척되기 시작했다.
4. 종전선언은 왜 합의되지 않았는가?
<연합뉴스> 2018년 6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확대회담 중에 “전 세계 사람들은 내 책상 위에 있는 핵단추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치워지게 됐다는 걸 알고 당신을 존경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2018년 6월 14일 조선에서 방영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기록영화에 나오는 해설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확대회담 중에 “두 나라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뿌리 깊은 불신과 적대감으로부터 많은 문제가 산생되였다. 조선반도의 평화를 이룩하고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량국이 서로에 대한 리해심을 가지고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하며 이를 담보하는 법적, 제도적 조치를 취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하며 이를 담보하는 법적, 제도적 조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조선은 미국에게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하는 법적, 제도적 조치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것으로 완료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의사를 가진 것은 분명하다. 그는 평화체제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핵전쟁위험도 해소할 수 없고, 조미관계를 정상화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마친 직후, 회담장에서 진행된 단독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전협정이 체결되었어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 과거가 미래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어제의 갈등이 내일의 전쟁으로 이어져도 안 된다. 역사가 거듭 증언하는 것처럼, 적이 벗으로 될 수 있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준비과정을 잘 아는 워싱턴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조선일보> 2018년 6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종전선언 초안을 만들어 가지고 싱가폴에 갔다고 한다. 만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이 합의되었더라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과 한반도 종전선언문이 동시에 발표되었을 것이다. <사진 4>
그런데 왜 평화협정이 아니라 종전선언인가? 만일 조미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그 협정은 미국 연방의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요즈음 미국 연방의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들과 협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할까봐 우려하고 있다. 철군을 반대하는 연방의회가 평화협정을 비준해주지 않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워싱턴 정치권의 내부사정이 그처럼 복잡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의회의 비준을 받지 않아도 되는 종전선언을 준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은 합의되지 않았다. 초안까지 준비해왔으면서도, 왜 합의되지 않았을까?
원래 한반도 종전선언은 노무현 대통령이 조지 부쉬(George W. Bush) 대통령에게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한 사안인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제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발표하려는 조짐을 미리 눈치 채고, 자신도 싱가폴에 가서 남북미 3자가 한반도 종전선언을 합의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 소망을 갖게 된 까닭은,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다음과 같이 명기되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고,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합의하려고 초안을 준비했던 것이다. 만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이 합의되면, 판문점 선언은 훼손될 판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따돌리고 한반도 종전선언을 발표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솔한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에 이바지하기 바라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입장도 고려해야 했다. 베이징과 싱가폴의 외교소식통들이 전한 말을 인용한 <교도통신> 2018년 6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자신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개최시점에 맞춰 싱가폴을 전격 방문하는 문제를 그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직전까지 검토하였다고 한다.
거기에 더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종전선언과 평화체제구축을 분리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면, 종전선언과 평화체제구축을 분리시키지 말고 포괄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그래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종전선언을 합의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경솔한 행동을 중지시켰다.
5. 역사적인 공동성명에 명기된 네 가지 합의사항
가장 중요한 첫 번째 합의사항에는 조선과 미국이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두 나라 인민들의 념원에 맞게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해나가기로 하였다”고 명기되었다. 이것은 국교를 수립하게 된다는 뜻이다. 특수한 사정에 놓인 조선과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중에 국교를 수립할 것이다.
두 번째 합의사항에는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명기되었다.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라는 개념은 임시적이고 불안정한 정전체제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반드시 조미국교도 수립될 것이고, 조선과 미국이 국교를 수립하려면 평화체제가 반드시 구축되어야 한다. 조선과 미국이 일반관례에 따라 평화협정을 채택하면, 미국 연방의회를 장악한 반대파의 비준저지선을 돌파하기 어렵다. 협정(treaty)이라는 용어 대신 합의(agreement)라는 용어를 쓰면, 의회 비준을 받을 필요가 없다. 1973년 1월 27일 북베트남과 미국은 프랑스 빠리에서 ‘베트남에서 전쟁종식과 평화회복에 관한 합의’라는 사실상(de facto)의 평화협정을 채택함으로써 평화체제를 구축한 바 있다.
세 번째 합의사항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8년 4월 27일에 채택된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고 명기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선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명기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관해서는 위에서 논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조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지금 미국과 한국에서 횡설수설, 시끌벅적하지만, 그 조항을 정확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사진 5>
(1) 조선이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한다고 공동성명에 명기한 까닭은, 판문점 선언에 명기된 비핵화 조항에 따라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실현된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판문점 선언에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고 명기되었는데, 바로 이 조항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도 재확인된 것이다.
(2) 조선이 공동성명에 명기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개념은 조선이 주한미국군철수에 상응하여 단계적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뜻이며, 조선이 외부의 개입 없이 자체적으로 비핵화를 실현한 뒤에 완전한 비핵화가 실현되었음을 확정, 발표한다는 뜻이며, 미국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할 수도 없고, 검증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3) 완전한 비핵화가 실현된 조선반도, 다시 말해서 판문점 선언에 명기된 “핵 없는 조선반도”는 조선의 핵무기가 완전히 폐기된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대조선전쟁연습을 중지하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함으로써 핵전쟁위험이 완전히 해소된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확대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6.25전쟁 중에 포로로 잡혔거나 행방불명된 미국군의 유골을 발굴하고, 이미 발굴, 확인된 유골들을 즉시 미국에 송환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원래 이 문제는 정상회담 의제에 들어있지 않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요청을 즉석에서 흔쾌히 수락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면해서 상대방을 자극하고 적대시하는 군사행동들을 중지하는 용단부터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대조선전쟁연습을 중지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2018년 6월 14일 조선에서 방영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기록영화에 나오는 해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 사이에 선의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조선측이 도발로 간주하는 미국-남조선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안전담보를 제공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한 관계개선이 진척되는 데 따라 대조선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의향을 표명”하였다고 한다. 그는 한미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하고, 조선에 대한 안전담보를 제공하고, 조미관계개선이 진척되는 것에 상응하여 대조선제재를 해제하겠다는 전향적인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6. 오찬에서 작별까지 극적인 장면들
확대회담을 마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수행원들과 함께 오찬에 참석하였다. 2018년 6월 14일 조선에서 방영된 기록영화에 나오는 해설에 따르면, 오찬에서는 “조미회담의 성과를 공고히 하고, 조미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하여 쌍방 사이에 의사소통과 접촉 및 래왕을 보다 활성화해나갈 데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였”다고 한다. 이처럼 조선과 미국이 의사소통, 접촉, 내왕을 활성화하기로 하였으니,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적자의 조선여행을 금지시킨 행정명령을 취소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오찬 직후 양국 정상은 배석자나 통역관을 대동하지 않고 카펠라 호텔 경내의 산책길을 거닐었다. 이름 모를 열대식물들이 피어난 산책길을 거닐며 담소를 나누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은 조선과 미국이 불신과 적대를 뒤로 하고 이해와 소통의 새로운 길로 들어섰음을 보여준 극적인 장면이다. <사진 6>
그런 분위기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흥분하였다. 그래서 그는 산책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야수(beast)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대통령 전용차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안내하여 전용차 내부를 공개하였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비밀공간을 전격적으로 공개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신뢰와 호의를 표시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 15일 <팍스 뉴스>와 진행한 대담에서 “나는 지금 북조선과 훌륭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는 마음이 잘 통했다”고 말했다.
이윽고 공동성명 서명식이 진행되었다. 양국 국기가 나란히 걸려있는 서명식장에서 양국 정상은 역사적인 문서에 서명하기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이번에 김정은 위원장과 상봉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김정은 위원장과 훌륭한 대화를 나누고, 여러 가지 좋은 일을 시작하려고 합의하였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이와 관련하여 사의를 표하며, 이번 수뇌상봉이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훌륭한 결과들에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오늘 우리는 과거를 덮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력사적인 공동성명에 서명하게 된다. 세계는 중대한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7>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에 각각 서명한 직후, 굳은 악수를 나누며 기념사진을 촬영하였고, 곧이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조선이 지난 44년 동안 온갖 풍파를 헤치며 성사시키려고 애써온 조미정상회담은 역사상 처음으로 조미국교수립과 평화체제구축과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로 공약한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냈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은 8천만 민족과 76억 인류의 열망과 기대에 부응하는 영원불멸의 자취를 역사에 아로새겼다. 인천 월미도에 상륙한 미국군이 200대의 군용트럭을 타고 서울에 들어가 38도선 이남지역을 점령하였던 1945년 9월 9일로부터 장장 73년 동안 흘러온 낡은 시대가 저물고, 바야흐로 개벽의 새 시대가 밝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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