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민보 2013년 10월 22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북의 협상중단유예기간은 언제, 어떻게 끝났는가?
외교정책이나 군사전략에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라는 개념이 쓰인다. 전략적 모호성이란 어떤 중대현안에 대해 의도적으로 모호한 책략을 펼친다는 뜻이다. 예컨대, 어떤 핵보유국이 자기의 핵보유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책략을 펼칠 때, 그러한 책략을 공식화하고 그것을 전략적 모호성 정책이라 부른다.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실행하는 까닭은, 어떤 외교문제나 군사문제에 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때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대외협상의지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만일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오던 어떤 나라가 그것을 폐기하는 경우, 그런 폐기행동은 대외협상의지를 거두었음을 뜻한다. 전략적 모호성 폐기는 대외협상의지포기와 직결되는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북미관계에 제기된 ‘핵문제’를 다시 읽어보면, 대미협상에 관한 북의 견해와 의사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5년 2월 10일 북측 외무성이 세상을 놀라게 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 성명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면 이렇다.
“미국이 핵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우리 제도를 기어이 없애버리겠다는 기도를 명백히 드러낸 이상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취할 것이다. (줄임) 우리는 이미 부쉬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고립압살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하였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우리의 핵무기는 어디까지나 자위적 핵억제력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위의 인용문이 말해주는 것처럼, 북은 이미 8년 전에 자기의 핵보유에 관한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폐기하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것은 북이 그 때 이미 대미협상의지를 사실상 거두었음을 뜻한다.
북측 외무성이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폐기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날로부터 4년 열엿새가 지난 2009년 2월 26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가 전체 당원들에게 보내는 내부문서를 배포하였다. 당시 일본 언론을 통해 보도된 그 내부문서에서 북의 당중앙위원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나라(북을 뜻함-옮긴이)를 누구도 싸움을 걸지 못할 핵강국으로 올려세웠다”고 칭송하면서, “선진국만이 독점한 최첨단기술(최첨단핵기술이라는 뜻-옮긴이)을 우리식으로 개발”하였고, “세계가 전혀 알지 못하고, 우리가 아직 밝히지 않은, 우리 인민도 본 적이 없는” “우리식의 첨단무기(첨단핵무기라는 뜻-옮긴이)”가 “우리에게 있다”고 밝혔다.
북측 외무성이 북의 핵보유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폐기하고, 북의 당중앙위원회가 북의 강력한 핵무력에 관해 전체 당원들에게 알려준 것을 보면서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2009년 2월 현재 증폭핵분열탄 개발을 끝낸 북은 강력한 핵무력을 틀어쥐고 대미협상을 사실상 중단하는 전략전환단계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런데 위의 외무성 성명 전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당시 북은 자기의 핵보유에 관한 전략적 모호성 정책 폐기를 공식화하면서도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성명에는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립장과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최종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언명한 일종의 유예단서(moratorium proviso)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북이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은 위의 성명이 발표된 이후 4년 동안 이어졌다. 2005년 2월에 외무성 성명발표와 당중앙위원회 내부문서 배포로 시작된 4년에 걸친 유예기간 중에 북은 2006년 10월 9일 제1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고, 2009년 5월 25일 제2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유예조치는 일정기간 동안만 지속되는 법이다.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은 2009년 6월 13일 북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추가생산과 우라늄농축개시를 공개적으로 언명함으로써 결국 막을 내렸다. 2009년 6월 13일 북이 대미협상중단 유예조치를 결국 마감한 까닭은, 2009년 5월 25일에 북이 실시한 제2차 지하핵실험을 두고 미국이 유엔안보리를 사주하여 그 핵실험을 범죄행위로 규정하는 한편 추가제재결의를 2009년 6월 12일에 채택하는 대북적대행위를 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당시에 미국이 그런 적대행위를 하지 않고 대북협상으로 돌아섰더라면, 북이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은 2009년 6월 이후에도 좀 더 연장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예기간이 몇 해 더 연장되었더라도 그것은 무의미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자기의 대북핵위협을 중단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북을 핵포기로 유인하기 위해 대통령친서를 보내는 등 시간끌기에 골몰하면서, 실제로는 추가제재와 적대행위에 집착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북이 2013년 2월 12일에 실시한 제3차 지하핵실험은 그 전에 실시한 두 차례 지하핵실험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북이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에 각각 실시한 지하핵실험은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에 미국을 협상으로 끌어내려는 초강경한 압박이었지만, 2013년 2월에 실시한 지하핵실험은 미국을 협상으로 끌어내려는 압박이 아니라 미국에 맞서 핵전쟁도 불사한다는 핵무력시위였다. 미국을 협상에 끌어내려는 의도로 실시한 핵실험과 미국과의 전면전을 불사하는 핵무력을 시위한 핵실험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북이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이 이처럼 2009년 6월 13일에 끝난 것은,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미협상전략을 접고 무력사용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반미전쟁전략으로 선회하였음을 말해준다. 요즈음 언론에 보도되는 ‘조국통일반미대전’에 관한 북의 공개언급과 군사활동은, 미국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반미전쟁전략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 북의 대미협상전략이 협상타결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면, 오늘 북의 반미전쟁전략은 무력사용으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북의 무력사용에서 핵무력사용이 중심으로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2013년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한 것은, 핵무력건설을 지금부터 시작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건설한 핵무력을 최강수준에서 완비하면서 전쟁수행력을 핵무력중심체계로 개편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맥락을 이해하면, 2013년 2월 중순부터 4월초까지 이르는 기간에 폭발점에 거의 다가선 전쟁위기상황에서 북이 핵무력동원태세에 돌입한 것은 미국을 압박하는 군사행동이 아니라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수행하려는 결전행동이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13년 10월 9일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논평에는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립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구절이 들어있다. 이 구절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5년 2월 10일 북측 외무성이 발표한 성명에 들어 있었던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립장과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최종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언명한 유예단서와 일맥상통한다. 북이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이 이미 4년 전에 끝났는데, 왜 유예기간에 쓰였던 유예단서가 오늘 또 다시 나온 것일까?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는 길이 완전히 막혀버린 현 상황에서, 대화와 협상에 관한 북의 언급은 대외명분 이상의 의의를 갖지 못한다.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에 대해서만 계속 반복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으므로, 대화와 협상에 관한 대외명분도 가끔 언급하는 것이다.
북측 언론에서만 대외명분을 언급하는 게 아니라, 최근 북측 외무성도 미국에게 “조건 없는 대화”를 제기하였다. 이를테면, 2013년 9월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주최로 열린 반관반민 형식의 국제토론회에 참석한 북측 외무성 고위인사들의 발언, 9월 2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북과 미국의 반관반민 형식의 토론회에 참석한 북측 외무성 고위인사들의 발언, 그리고 10월 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북과 미국의 반관반민 형식의 토론회에 참석한 북측 외무성 고위인사들의 발언에서 조건 없는 대화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정책적 본의와 대외적 명분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북의 정책적 본의와 대외적 명분을 혼동할 만큼 우매하지 않다. 예컨대, 2013년 10월 10일 브루나이에서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과 존 케리(John F. Kerry) 미국 국무장관의 회담에서 두 사람은 “최근 조건 없는 협상재개를 주장하고 있는 북한의 유화공세”를 “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는” 전술이라고 인정하는 데서 “완벽한 의견일치를 보았다”는 것이다.
2013년 2월 12일에 지축을 뒤흔든 정치파장이 증폭되고 있다
2013년 2월 12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산악지대의 지하핵실험장에서 북이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실시하였다. 강력한 인공지진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풍계리핵실험장에서 직선거리로 78km 떨어진 양강도 혜산에 있는 아파트들이 통째로 흔들릴 만큼 엄청난 진동이었다.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은, 북이 많은 핵탄을 보유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차세대 핵탄인 증폭핵분열탄까지 보유하였음을 물리적으로 입증한 놀라운 사변이었다. 미국이 동해 상공에 급파한 특수정찰기가 기류를 타고 퍼졌을 방사능핵종을 포집해보려고 허둥대다가 결국 실패하여 매우 난감한 처지에 놓여있었을 때, 북은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성공시킨 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군인건설자, 당간부 11,592명을 대거 표창하였다.
증폭핵분열탄을 만드는 최첨단핵기술을 확보한 북은 핵탄을 다종화하는 첨단기술과 여러 종류의 핵탄을 제조하는 대량생산능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핵동력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핵융합기술 완성에 바짝 다가섬으로써 명실공히 핵강국 지위에 올라선 것이다. 그런 놀라운 정보를 자기들만 알고 감춰버린 미국은 핵강국이 보유한 다종화된 핵탄을 제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과연 그게 가능하겠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북이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실시하였던 당시 그 실험을 범죄행위로 규정한 미국의 반발소동이 언론보도를 온통 뒤덮어버리는 바람에, 핵폭발지진만큼 강력한 정치파장이 북미관계를 뒤흔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북의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에서 발생한 강력한 인공지진파는 세계 각국의 지진계를 흔들고 이내 잠잠해졌지만, 그 실험에서 발생한 강력한 정치파장의 위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폭되고 있다.
북의 협상중단유예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북이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실시하기 전까지 한반도 비핵화가 북과 미국의 협상타결로 실현될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 이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협상타결전망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북미협상 자체가 불가능한데, 한반도 비핵화를 북미협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영영 실현될 수 없다는 말인가? 2013년 10월 9일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논평은 “전조선반도 비핵화는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유훈이며 우리 공화국정부의 일관한 정책적 목표”라고 언명하였다. 이것은 북이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변함없이 한반도 비핵화를 기어이 실현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며, 또한 한반도 비핵화가 역사적 필연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협상타결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던 전망이 사라진 오늘에 와서도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변함없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며, 한반도 비핵화의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의지표명과 강조언술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대화와 협상으로는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없게 된 현재 상황에서 북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은 무력사용밖에 남지 않았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지금 북은 오직 ‘조국통일반미대전’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북의 이러한 전략전환은 한반도 비핵화를 대화와 협상으로 실현하려던 시대가 지난 뒤에 ‘조국통일반미대전’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어떤 확고한 전망이 북에게 열렸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북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의 핵무력을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북을 겨냥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한다는 뜻이므로, ‘조국통일반미대전’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말은 전쟁승리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에서 ‘선군혁명의 철갑군단’으로 알려진 최정예전차부대를 2012년 1월 1일에 시찰하는 것으로 개막된 김정은시대에 북이 추구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의 표현을 빌리면, ‘조국통일반미대전’ 승리와 미국의 항복으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는 ‘선군혁명의 비핵화’인 것이다.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북의 핵무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경제건설에 보내주어야 할 막대한 국가자원을 핵개발사업에로 돌리면서 필생의 노고로 마련하여 후대에게 물려준 ‘선군의 보검’으로 보일 것이고, 반면에 미국의 핵무력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면서 북의 국가적 자주권까지 빼앗으려는 ‘약탈의 흉기’로 보일 것이다. 북의 논리에 따르면, ‘선군의 보검’은 그들의 자위적 핵무력이고, ‘약탈의 흉기’는 미국의 침략적 핵무력이다. 따라서 북은 ‘선군의 보검’을 치켜들고 세계 최대의 강적과 최후결전을 벌여 ‘약탈의 흉기’를 없애버리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의 현실인식을 이해하면,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에서 발생한 강력한 정치파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벼린 ‘선군의 보검’으로 ‘약탈의 흉기’를 없애버리는 ‘정의의 무력행사’를 재촉하고 있으며, ‘조국통일반미대전’의 날을 앞당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북의 역사적 전망에 따르면, 한반도 비핵화가 역사적 필연인 것처럼, ‘조국통일반미대전’도 역시 그러하다.
단계적 발전경로에서 무단계 급진경로로 전환하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유훈들 가운데는 한반도 통일만이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도 있다. 북에서 통일과 비핵화는 ‘선대수령들의 유훈’이다. 북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선대수령들의 유훈’을 반드시, 하루빨리 실현해야 하므로, 유훈실현은 북의 당과 국가와 군대와 인민에게 첫째가는 임무로 된다.
그런데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 두 유훈을 실현하는 방도는 협상타결이 아니라 무력사용 곧 ‘조국통일반미대전’이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북은 ‘조국통일반미대전’ 승리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한반도 통일도 그와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얼마 전 김정은 제1위원장이 앞으로 3년 안에 무력통일을 실현하겠다고 북측 내부에서 여러 차례 공언하였다는 정보가 남측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는데, 적어도 2016년 안에 ‘조국통일반미대전’ 승리로 비핵화와 통일을 한꺼번에 실현하려는 것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결심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하던 기간에 북은 대미협상으로 끌어낸 미국을 최후담판으로 굴복시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함으로써 북을 겨냥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고, 주한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군시키고, 그러한 정세변화과정에서 자주적 진보정권이 남측에 수립되면 그 정권과의 정치협상을 통해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단계적 발전경로를 추구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비핵화→철군→남북정치협상→통일정부수립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발전경로이며, 일찍이 1948년 4월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연석회의에서 채택한 철군→남북정치협상→통일정부수립으로 나아가는 자주독립국가건설의 단계적 발전경로와 겹쳐지는 것이다. 북을 겨냥한 미국의 핵위협이 발생하기 전인 1948년에 진행된 남북연석회의에서는 비핵화단계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북이 2013년 2월 12일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실시하고 곧이어 3월 31일에 경핵병진노선을 채택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단계적 발전경로 대신에 무단계 급진경로를 택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북이 단계적 발전경로를 접고 무단계 급진경로를 택하였음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북측 자료가 외부에 알려진 적은 없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그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미국과 이승만정권이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에서 채택된 철군→남북정치협상→통일정부수립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발전경로를 차단하였을 때 6.25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오늘 미국과 박근혜정권이 비핵화→철군→남북정치협상→통일정부수립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발전경로를 차단하였으므로 북으로서는 ‘조국통일반미대전’ 이외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남북연석회의에서 표출된 자주독립국가건설을 향한 전민족적 지향과 의지가 미국과 이승만의 5.10 단선강행으로 좌절된 이후 북위 38도선에서 무력충돌위험이 격화되다가 전면전이 터지기까지 기간은 불과 2년이었다. 그런데 대화와 협상으로 한반도의 비핵화와 통일을 실현하려던 북의 노력이 미국과 박근혜정권의 대북적대행위로 차단된 이후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지금 무력충돌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에 고조되는 무력충돌위험은 서해교전이나 연평도포격전 수준이 아니다. 왜냐하면 올해 2013년에 들어와서 ‘국지도발대비계획’을 작성한 미국군과 한국군은 실전급 전쟁연습을 연이어 실시하고 있으며, 그에 대응하여 인민군도 서해5도 분쟁수역에 인접한 황해남도 각 군사기지들의 해군력, 공군력, 포병력을 대폭 증강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국방부와 국정원 최고위 간부가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내용이다.
65년 전 북위 38도선에서 무력충돌위험이 격화되다가 전면전이 터지기까지 위기상황이 2년 동안 지속되었으므로, 올해 2013년부터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무력충돌위험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고조되는 것은 전면전이 2∼3년 앞으로 다가왔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최근 박근혜정부 고위 관료가 발표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3년 안에 무력통일을 실현하겠다고 북측 내부에서 여러 차례 공언하였다는 정보는, 북이 비핵화와 통일을 한꺼번에 실현하는 무단계 급진경로를 택하였고 그로써 전면전이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북이 택한 무단계 급진경로에서는 대미협상단계만 생략되는 게 아니라, 남북협상단계도 당연히 생략된다. 이처럼 북이 한반도 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남북협상에 대한 기대를 접은 까닭은, 박근혜정권이 이전 남북정상이 합의한 평화적 남북관계개선안인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전면 부정하였고, 더욱이 국정원, 국방부, 경찰청, 선관위 등등 국가기관이 전면 개입한 부정선거가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이를 규명하고 처벌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이대로 가면 2017년 12월에 실시될 대선에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이행할 진보적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전혀 없고 새누리당의 연속적 재집권하여 평화적 남북관계 개선은 요원한 일이라고 북이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엔안보리를 사주한 미국의 대북적대행위가 그러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새누리당 재집권의 영속화 가능성도 북이 비핵화와 통일을 한꺼번에 실현할 무단계 급진경로를 택하게 된 또 다른 요인이 아닐까 추측된다.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유보한 가운데 분단 70년이 다가오고 있다
2013년 2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기간에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에 돌입하려고 하였던 직접적인 동기는 미국의 대북적대행위가 극도로 격화된 데 있었다. 미국은 북의 위성발사와 지하핵실험을 무조건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유엔안보리를 사주하여 추가제재를 결의하였을 뿐 아니라 스텔스전투기와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대북전쟁연습까지 감행한 것이다.
북은 자기의 위성발사와 지하핵실험이 미국에 의해 범죄행위로 규정당하고, 미국이 유엔안보리를 사주하여 추가제재를 결의하고, 스텔스전투기와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대북전쟁연습까지 감행하는 경우를 가리켜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그런 극단적인 적대행위는 북의 ‘전시사업세칙’에 명기된 것처럼 북은 “미제의 침략전쟁의도가 확정된” 전쟁발발요인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기간에 그러한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이 발생한 엄중한 상황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인민군과 로농적위군에 전투태세돌입을 명령하고, 미국의 ‘급소’를 정조준한 목성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화성계열 핵타격미사일까지 동원하는 최후결전대기명령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은 2013년 3월 8일 인민무력부 부부장 강표영 상장(남측에서는 중장)의 평양시 군민대회 연설에 반영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타격은 일단 시작되면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완수할 때까지, 이 땅에서 침략과 악의 근원이 완전히 청산될 때까지 중단 없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조국통일대전의 출발진지를 차지한 인민군 장병들은 방아쇠에 손을 걸고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미 타격목표를 확정한 대륙간탄도미싸일을 비롯한 각종 미싸일들은 경량화, 소형화되고 다종화된 핵탄두들을 장착하고 대기상태에 있습니다. 누르면 발사되게 되어있고 퍼부으면 미제국주의의 아성이며 악의 본거지인 워싱톤은 물론 그 추종세력들의 소굴까지도 불바다로 타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조국통일반미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군에 최후결전을 대기하라고 명령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마지막으로 내려야 할 개전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왜 개전명령을 내리지 않았을까? 정확한 사정이야 외부에서 알 수 없지만, 2013년 2월 중순부터 급속히 격화된 전쟁위기상황은 원래 북의 위성발사와 지하핵실험을 범죄행위로 규정한 미국의 대북적대행위에 의해 일어난 것이므로 북의 의사와 상관없이 북의 전쟁징후가 미국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처럼 미국이 북의 전쟁징후를 주시하는 조건에서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을 개전하면, 미국으로부터 즉시반격을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 북의 전쟁징후를 간파한 미국은 북의 총공격에 맞서 즉시 반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처럼 전쟁징후가 노출된 조건에서 ‘조국통일반미대전’을 개전하는 것은 북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개전명령을 내리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김정은 제1위원장이 개전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서 ‘조국통일반미대전’ 철회결정을 내린 것은 결코 아니며, 다만 유보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 한반도정세는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잠시 유보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잠시 유보한 상태에서 녕변핵시설을 재가동하고 핵시설능력확장공사를 다그칠 뿐 아니라, 서해위성발사장에서 강력한 로켓엔진연소실험을 실시하는 등 위성발사준비를 밀고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최근 미국상업위성이 녕변핵시설단지와 서해위성발사장을 촬영한 위성사진들에 피어오르는 감속로 굴뚝 연기만 봐도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기존 녕변핵시설을 재가동하고 핵시설능력확장공사를 다그치는 북이 대형원자로건설을 완공하고, 또 다시 위성까지 발사하는 날, 미국은 극단적인 대북적대행위를 재개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북적대행위 감행→전면전 발발위기 고조→전쟁징후 노출→북의 개전유보로 이어진 지난 봄의 위기상황이 앞으로도 자꾸 되풀이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상황은 앞으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민군과 로농적위군이 전쟁징후를 노출하지 않은 평시분위기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불시에 개전명령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조국통일반미대전’은 ‘전시사업세칙’에 명기된 전쟁발발요인들이 발생하는 급박한 위기상황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비위기상황에서도 불시에 일어날 수 있다. 2013년 3월 8일 인민무력부 부부장 강표영 상장은 평양시 군민대회 연설에서 “우리 인민군대는 그 어디에도 구속됨이 없이, 그 무슨 경고나 사전통고 없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대상에 대하여 무자비한 정의의 타격을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비위기상황에서 불시에 ‘조국통일반미대전’을 개전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처럼 북의 불시개전의지가 확고한 상황에서는 전쟁징후가 나타난 위기상황보다 전쟁징후가 보이지 않는 비위기상황이 미국에게 훨씬 더 위험하다.
미국도 그런 상황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북이 아무런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은 요즈음 같은 비위기상황에서도 북의 불시개전 가능성을 우려하여 불안에 떨면서 각종 대북전쟁연습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으며, 한국군은 물론 일본자위대까지 끌어들인 3자연합 전쟁체계수립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위기상황에서 불시에 일어날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우려하면서 불안에 떠는 미국이 대북전쟁연습으로 그것을 막으려는 것은 실전을 연습으로 막으려는 것만큼 불가능해 보인다.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을 “폭풍처럼 단숨에” 끝내고 미국의 항복을 받겠다고 공언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6.25전쟁 당시 북은 전쟁을 속결하고 분단 5년이 되는 1950년 8월 15일 통일정부수립을 선포할 계획을 밀고 나갔지만, 7월 4일부터 미국이 방대한 증원무력을 한반도 전선에 투입하자 전쟁속결이 불가능해졌고 통일정부도 구성할 수 없었다. 그런 경험을 겪었던 북은 오늘 전쟁징후가 보이지 않는 비위기상황에서 ‘조국통일반미대전’을 불시에 개전하고 미국의 증원무력이 출발하기도 전에 ‘급소타격’으로 미국의 항복을 받아내어 전쟁을 속결하고,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 8월 15일 통일정부수립을 선포하려는 무력통일계획을 세운 것은 아닐까? 그래서 고요할수록 더욱 전쟁 우려를 금할 수 없는 살얼음 시각을 보내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북미대화와 남북관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단순 위기 무마용 대화가 아닌 근본적으로 북미관계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호전시킬 결단이 절박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외교정책이나 군사전략에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라는 개념이 쓰인다. 전략적 모호성이란 어떤 중대현안에 대해 의도적으로 모호한 책략을 펼친다는 뜻이다. 예컨대, 어떤 핵보유국이 자기의 핵보유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책략을 펼칠 때, 그러한 책략을 공식화하고 그것을 전략적 모호성 정책이라 부른다.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실행하는 까닭은, 어떤 외교문제나 군사문제에 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때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대외협상의지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만일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오던 어떤 나라가 그것을 폐기하는 경우, 그런 폐기행동은 대외협상의지를 거두었음을 뜻한다. 전략적 모호성 폐기는 대외협상의지포기와 직결되는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북미관계에 제기된 ‘핵문제’를 다시 읽어보면, 대미협상에 관한 북의 견해와 의사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5년 2월 10일 북측 외무성이 세상을 놀라게 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 성명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면 이렇다.
“미국이 핵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우리 제도를 기어이 없애버리겠다는 기도를 명백히 드러낸 이상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취할 것이다. (줄임) 우리는 이미 부쉬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고립압살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하였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우리의 핵무기는 어디까지나 자위적 핵억제력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위의 인용문이 말해주는 것처럼, 북은 이미 8년 전에 자기의 핵보유에 관한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폐기하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것은 북이 그 때 이미 대미협상의지를 사실상 거두었음을 뜻한다.
북측 외무성이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폐기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날로부터 4년 열엿새가 지난 2009년 2월 26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가 전체 당원들에게 보내는 내부문서를 배포하였다. 당시 일본 언론을 통해 보도된 그 내부문서에서 북의 당중앙위원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나라(북을 뜻함-옮긴이)를 누구도 싸움을 걸지 못할 핵강국으로 올려세웠다”고 칭송하면서, “선진국만이 독점한 최첨단기술(최첨단핵기술이라는 뜻-옮긴이)을 우리식으로 개발”하였고, “세계가 전혀 알지 못하고, 우리가 아직 밝히지 않은, 우리 인민도 본 적이 없는” “우리식의 첨단무기(첨단핵무기라는 뜻-옮긴이)”가 “우리에게 있다”고 밝혔다.
북측 외무성이 북의 핵보유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폐기하고, 북의 당중앙위원회가 북의 강력한 핵무력에 관해 전체 당원들에게 알려준 것을 보면서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2009년 2월 현재 증폭핵분열탄 개발을 끝낸 북은 강력한 핵무력을 틀어쥐고 대미협상을 사실상 중단하는 전략전환단계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런데 위의 외무성 성명 전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당시 북은 자기의 핵보유에 관한 전략적 모호성 정책 폐기를 공식화하면서도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성명에는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립장과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최종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언명한 일종의 유예단서(moratorium proviso)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북이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은 위의 성명이 발표된 이후 4년 동안 이어졌다. 2005년 2월에 외무성 성명발표와 당중앙위원회 내부문서 배포로 시작된 4년에 걸친 유예기간 중에 북은 2006년 10월 9일 제1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고, 2009년 5월 25일 제2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유예조치는 일정기간 동안만 지속되는 법이다.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은 2009년 6월 13일 북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추가생산과 우라늄농축개시를 공개적으로 언명함으로써 결국 막을 내렸다. 2009년 6월 13일 북이 대미협상중단 유예조치를 결국 마감한 까닭은, 2009년 5월 25일에 북이 실시한 제2차 지하핵실험을 두고 미국이 유엔안보리를 사주하여 그 핵실험을 범죄행위로 규정하는 한편 추가제재결의를 2009년 6월 12일에 채택하는 대북적대행위를 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당시에 미국이 그런 적대행위를 하지 않고 대북협상으로 돌아섰더라면, 북이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은 2009년 6월 이후에도 좀 더 연장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예기간이 몇 해 더 연장되었더라도 그것은 무의미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자기의 대북핵위협을 중단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북을 핵포기로 유인하기 위해 대통령친서를 보내는 등 시간끌기에 골몰하면서, 실제로는 추가제재와 적대행위에 집착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북이 2013년 2월 12일에 실시한 제3차 지하핵실험은 그 전에 실시한 두 차례 지하핵실험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북이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에 각각 실시한 지하핵실험은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에 미국을 협상으로 끌어내려는 초강경한 압박이었지만, 2013년 2월에 실시한 지하핵실험은 미국을 협상으로 끌어내려는 압박이 아니라 미국에 맞서 핵전쟁도 불사한다는 핵무력시위였다. 미국을 협상에 끌어내려는 의도로 실시한 핵실험과 미국과의 전면전을 불사하는 핵무력을 시위한 핵실험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북이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이 이처럼 2009년 6월 13일에 끝난 것은,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미협상전략을 접고 무력사용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반미전쟁전략으로 선회하였음을 말해준다. 요즈음 언론에 보도되는 ‘조국통일반미대전’에 관한 북의 공개언급과 군사활동은, 미국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반미전쟁전략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 북의 대미협상전략이 협상타결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면, 오늘 북의 반미전쟁전략은 무력사용으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북의 무력사용에서 핵무력사용이 중심으로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2013년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한 것은, 핵무력건설을 지금부터 시작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건설한 핵무력을 최강수준에서 완비하면서 전쟁수행력을 핵무력중심체계로 개편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맥락을 이해하면, 2013년 2월 중순부터 4월초까지 이르는 기간에 폭발점에 거의 다가선 전쟁위기상황에서 북이 핵무력동원태세에 돌입한 것은 미국을 압박하는 군사행동이 아니라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수행하려는 결전행동이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13년 10월 9일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논평에는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립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구절이 들어있다. 이 구절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5년 2월 10일 북측 외무성이 발표한 성명에 들어 있었던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립장과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최종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언명한 유예단서와 일맥상통한다. 북이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한 기간이 이미 4년 전에 끝났는데, 왜 유예기간에 쓰였던 유예단서가 오늘 또 다시 나온 것일까?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는 길이 완전히 막혀버린 현 상황에서, 대화와 협상에 관한 북의 언급은 대외명분 이상의 의의를 갖지 못한다.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에 대해서만 계속 반복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으므로, 대화와 협상에 관한 대외명분도 가끔 언급하는 것이다.
북측 언론에서만 대외명분을 언급하는 게 아니라, 최근 북측 외무성도 미국에게 “조건 없는 대화”를 제기하였다. 이를테면, 2013년 9월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주최로 열린 반관반민 형식의 국제토론회에 참석한 북측 외무성 고위인사들의 발언, 9월 2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북과 미국의 반관반민 형식의 토론회에 참석한 북측 외무성 고위인사들의 발언, 그리고 10월 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북과 미국의 반관반민 형식의 토론회에 참석한 북측 외무성 고위인사들의 발언에서 조건 없는 대화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정책적 본의와 대외적 명분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북의 정책적 본의와 대외적 명분을 혼동할 만큼 우매하지 않다. 예컨대, 2013년 10월 10일 브루나이에서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과 존 케리(John F. Kerry) 미국 국무장관의 회담에서 두 사람은 “최근 조건 없는 협상재개를 주장하고 있는 북한의 유화공세”를 “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는” 전술이라고 인정하는 데서 “완벽한 의견일치를 보았다”는 것이다.
2013년 2월 12일에 지축을 뒤흔든 정치파장이 증폭되고 있다
2013년 2월 12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산악지대의 지하핵실험장에서 북이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실시하였다. 강력한 인공지진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풍계리핵실험장에서 직선거리로 78km 떨어진 양강도 혜산에 있는 아파트들이 통째로 흔들릴 만큼 엄청난 진동이었다.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은, 북이 많은 핵탄을 보유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차세대 핵탄인 증폭핵분열탄까지 보유하였음을 물리적으로 입증한 놀라운 사변이었다. 미국이 동해 상공에 급파한 특수정찰기가 기류를 타고 퍼졌을 방사능핵종을 포집해보려고 허둥대다가 결국 실패하여 매우 난감한 처지에 놓여있었을 때, 북은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성공시킨 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군인건설자, 당간부 11,592명을 대거 표창하였다.
증폭핵분열탄을 만드는 최첨단핵기술을 확보한 북은 핵탄을 다종화하는 첨단기술과 여러 종류의 핵탄을 제조하는 대량생산능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핵동력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핵융합기술 완성에 바짝 다가섬으로써 명실공히 핵강국 지위에 올라선 것이다. 그런 놀라운 정보를 자기들만 알고 감춰버린 미국은 핵강국이 보유한 다종화된 핵탄을 제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과연 그게 가능하겠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북이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실시하였던 당시 그 실험을 범죄행위로 규정한 미국의 반발소동이 언론보도를 온통 뒤덮어버리는 바람에, 핵폭발지진만큼 강력한 정치파장이 북미관계를 뒤흔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북의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에서 발생한 강력한 인공지진파는 세계 각국의 지진계를 흔들고 이내 잠잠해졌지만, 그 실험에서 발생한 강력한 정치파장의 위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폭되고 있다.
북의 협상중단유예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북이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실시하기 전까지 한반도 비핵화가 북과 미국의 협상타결로 실현될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 이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협상타결전망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북미협상 자체가 불가능한데, 한반도 비핵화를 북미협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영영 실현될 수 없다는 말인가? 2013년 10월 9일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논평은 “전조선반도 비핵화는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유훈이며 우리 공화국정부의 일관한 정책적 목표”라고 언명하였다. 이것은 북이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변함없이 한반도 비핵화를 기어이 실현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며, 또한 한반도 비핵화가 역사적 필연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협상타결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던 전망이 사라진 오늘에 와서도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변함없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며, 한반도 비핵화의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의지표명과 강조언술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대화와 협상으로는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없게 된 현재 상황에서 북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은 무력사용밖에 남지 않았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지금 북은 오직 ‘조국통일반미대전’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북의 이러한 전략전환은 한반도 비핵화를 대화와 협상으로 실현하려던 시대가 지난 뒤에 ‘조국통일반미대전’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어떤 확고한 전망이 북에게 열렸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북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의 핵무력을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북을 겨냥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한다는 뜻이므로, ‘조국통일반미대전’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말은 전쟁승리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에서 ‘선군혁명의 철갑군단’으로 알려진 최정예전차부대를 2012년 1월 1일에 시찰하는 것으로 개막된 김정은시대에 북이 추구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의 표현을 빌리면, ‘조국통일반미대전’ 승리와 미국의 항복으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는 ‘선군혁명의 비핵화’인 것이다.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북의 핵무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경제건설에 보내주어야 할 막대한 국가자원을 핵개발사업에로 돌리면서 필생의 노고로 마련하여 후대에게 물려준 ‘선군의 보검’으로 보일 것이고, 반면에 미국의 핵무력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면서 북의 국가적 자주권까지 빼앗으려는 ‘약탈의 흉기’로 보일 것이다. 북의 논리에 따르면, ‘선군의 보검’은 그들의 자위적 핵무력이고, ‘약탈의 흉기’는 미국의 침략적 핵무력이다. 따라서 북은 ‘선군의 보검’을 치켜들고 세계 최대의 강적과 최후결전을 벌여 ‘약탈의 흉기’를 없애버리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의 현실인식을 이해하면,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에서 발생한 강력한 정치파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벼린 ‘선군의 보검’으로 ‘약탈의 흉기’를 없애버리는 ‘정의의 무력행사’를 재촉하고 있으며, ‘조국통일반미대전’의 날을 앞당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북의 역사적 전망에 따르면, 한반도 비핵화가 역사적 필연인 것처럼, ‘조국통일반미대전’도 역시 그러하다.
단계적 발전경로에서 무단계 급진경로로 전환하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유훈들 가운데는 한반도 통일만이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도 있다. 북에서 통일과 비핵화는 ‘선대수령들의 유훈’이다. 북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선대수령들의 유훈’을 반드시, 하루빨리 실현해야 하므로, 유훈실현은 북의 당과 국가와 군대와 인민에게 첫째가는 임무로 된다.
그런데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 두 유훈을 실현하는 방도는 협상타결이 아니라 무력사용 곧 ‘조국통일반미대전’이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북은 ‘조국통일반미대전’ 승리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한반도 통일도 그와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얼마 전 김정은 제1위원장이 앞으로 3년 안에 무력통일을 실현하겠다고 북측 내부에서 여러 차례 공언하였다는 정보가 남측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는데, 적어도 2016년 안에 ‘조국통일반미대전’ 승리로 비핵화와 통일을 한꺼번에 실현하려는 것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결심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대미협상중단을 유예하던 기간에 북은 대미협상으로 끌어낸 미국을 최후담판으로 굴복시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함으로써 북을 겨냥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고, 주한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군시키고, 그러한 정세변화과정에서 자주적 진보정권이 남측에 수립되면 그 정권과의 정치협상을 통해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단계적 발전경로를 추구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비핵화→철군→남북정치협상→통일정부수립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발전경로이며, 일찍이 1948년 4월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연석회의에서 채택한 철군→남북정치협상→통일정부수립으로 나아가는 자주독립국가건설의 단계적 발전경로와 겹쳐지는 것이다. 북을 겨냥한 미국의 핵위협이 발생하기 전인 1948년에 진행된 남북연석회의에서는 비핵화단계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북이 2013년 2월 12일 증폭핵분열탄 폭발실험을 실시하고 곧이어 3월 31일에 경핵병진노선을 채택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단계적 발전경로 대신에 무단계 급진경로를 택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북이 단계적 발전경로를 접고 무단계 급진경로를 택하였음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북측 자료가 외부에 알려진 적은 없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그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미국과 이승만정권이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에서 채택된 철군→남북정치협상→통일정부수립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발전경로를 차단하였을 때 6.25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오늘 미국과 박근혜정권이 비핵화→철군→남북정치협상→통일정부수립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발전경로를 차단하였으므로 북으로서는 ‘조국통일반미대전’ 이외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남북연석회의에서 표출된 자주독립국가건설을 향한 전민족적 지향과 의지가 미국과 이승만의 5.10 단선강행으로 좌절된 이후 북위 38도선에서 무력충돌위험이 격화되다가 전면전이 터지기까지 기간은 불과 2년이었다. 그런데 대화와 협상으로 한반도의 비핵화와 통일을 실현하려던 북의 노력이 미국과 박근혜정권의 대북적대행위로 차단된 이후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지금 무력충돌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에 고조되는 무력충돌위험은 서해교전이나 연평도포격전 수준이 아니다. 왜냐하면 올해 2013년에 들어와서 ‘국지도발대비계획’을 작성한 미국군과 한국군은 실전급 전쟁연습을 연이어 실시하고 있으며, 그에 대응하여 인민군도 서해5도 분쟁수역에 인접한 황해남도 각 군사기지들의 해군력, 공군력, 포병력을 대폭 증강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국방부와 국정원 최고위 간부가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내용이다.
65년 전 북위 38도선에서 무력충돌위험이 격화되다가 전면전이 터지기까지 위기상황이 2년 동안 지속되었으므로, 올해 2013년부터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무력충돌위험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고조되는 것은 전면전이 2∼3년 앞으로 다가왔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최근 박근혜정부 고위 관료가 발표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3년 안에 무력통일을 실현하겠다고 북측 내부에서 여러 차례 공언하였다는 정보는, 북이 비핵화와 통일을 한꺼번에 실현하는 무단계 급진경로를 택하였고 그로써 전면전이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북이 택한 무단계 급진경로에서는 대미협상단계만 생략되는 게 아니라, 남북협상단계도 당연히 생략된다. 이처럼 북이 한반도 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남북협상에 대한 기대를 접은 까닭은, 박근혜정권이 이전 남북정상이 합의한 평화적 남북관계개선안인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전면 부정하였고, 더욱이 국정원, 국방부, 경찰청, 선관위 등등 국가기관이 전면 개입한 부정선거가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이를 규명하고 처벌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이대로 가면 2017년 12월에 실시될 대선에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이행할 진보적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전혀 없고 새누리당의 연속적 재집권하여 평화적 남북관계 개선은 요원한 일이라고 북이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엔안보리를 사주한 미국의 대북적대행위가 그러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새누리당 재집권의 영속화 가능성도 북이 비핵화와 통일을 한꺼번에 실현할 무단계 급진경로를 택하게 된 또 다른 요인이 아닐까 추측된다.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유보한 가운데 분단 70년이 다가오고 있다
2013년 2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기간에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에 돌입하려고 하였던 직접적인 동기는 미국의 대북적대행위가 극도로 격화된 데 있었다. 미국은 북의 위성발사와 지하핵실험을 무조건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유엔안보리를 사주하여 추가제재를 결의하였을 뿐 아니라 스텔스전투기와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대북전쟁연습까지 감행한 것이다.
북은 자기의 위성발사와 지하핵실험이 미국에 의해 범죄행위로 규정당하고, 미국이 유엔안보리를 사주하여 추가제재를 결의하고, 스텔스전투기와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대북전쟁연습까지 감행하는 경우를 가리켜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그런 극단적인 적대행위는 북의 ‘전시사업세칙’에 명기된 것처럼 북은 “미제의 침략전쟁의도가 확정된” 전쟁발발요인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기간에 그러한 ‘조국통일반미대전’ 발발요인이 발생한 엄중한 상황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인민군과 로농적위군에 전투태세돌입을 명령하고, 미국의 ‘급소’를 정조준한 목성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화성계열 핵타격미사일까지 동원하는 최후결전대기명령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은 2013년 3월 8일 인민무력부 부부장 강표영 상장(남측에서는 중장)의 평양시 군민대회 연설에 반영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타격은 일단 시작되면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완수할 때까지, 이 땅에서 침략과 악의 근원이 완전히 청산될 때까지 중단 없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조국통일대전의 출발진지를 차지한 인민군 장병들은 방아쇠에 손을 걸고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미 타격목표를 확정한 대륙간탄도미싸일을 비롯한 각종 미싸일들은 경량화, 소형화되고 다종화된 핵탄두들을 장착하고 대기상태에 있습니다. 누르면 발사되게 되어있고 퍼부으면 미제국주의의 아성이며 악의 본거지인 워싱톤은 물론 그 추종세력들의 소굴까지도 불바다로 타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조국통일반미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군에 최후결전을 대기하라고 명령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마지막으로 내려야 할 개전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왜 개전명령을 내리지 않았을까? 정확한 사정이야 외부에서 알 수 없지만, 2013년 2월 중순부터 급속히 격화된 전쟁위기상황은 원래 북의 위성발사와 지하핵실험을 범죄행위로 규정한 미국의 대북적대행위에 의해 일어난 것이므로 북의 의사와 상관없이 북의 전쟁징후가 미국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처럼 미국이 북의 전쟁징후를 주시하는 조건에서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을 개전하면, 미국으로부터 즉시반격을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 북의 전쟁징후를 간파한 미국은 북의 총공격에 맞서 즉시 반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처럼 전쟁징후가 노출된 조건에서 ‘조국통일반미대전’을 개전하는 것은 북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개전명령을 내리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김정은 제1위원장이 개전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서 ‘조국통일반미대전’ 철회결정을 내린 것은 결코 아니며, 다만 유보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 한반도정세는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잠시 유보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잠시 유보한 상태에서 녕변핵시설을 재가동하고 핵시설능력확장공사를 다그칠 뿐 아니라, 서해위성발사장에서 강력한 로켓엔진연소실험을 실시하는 등 위성발사준비를 밀고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최근 미국상업위성이 녕변핵시설단지와 서해위성발사장을 촬영한 위성사진들에 피어오르는 감속로 굴뚝 연기만 봐도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기존 녕변핵시설을 재가동하고 핵시설능력확장공사를 다그치는 북이 대형원자로건설을 완공하고, 또 다시 위성까지 발사하는 날, 미국은 극단적인 대북적대행위를 재개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북적대행위 감행→전면전 발발위기 고조→전쟁징후 노출→북의 개전유보로 이어진 지난 봄의 위기상황이 앞으로도 자꾸 되풀이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상황은 앞으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민군과 로농적위군이 전쟁징후를 노출하지 않은 평시분위기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불시에 개전명령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조국통일반미대전’은 ‘전시사업세칙’에 명기된 전쟁발발요인들이 발생하는 급박한 위기상황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비위기상황에서도 불시에 일어날 수 있다. 2013년 3월 8일 인민무력부 부부장 강표영 상장은 평양시 군민대회 연설에서 “우리 인민군대는 그 어디에도 구속됨이 없이, 그 무슨 경고나 사전통고 없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대상에 대하여 무자비한 정의의 타격을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비위기상황에서 불시에 ‘조국통일반미대전’을 개전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처럼 북의 불시개전의지가 확고한 상황에서는 전쟁징후가 나타난 위기상황보다 전쟁징후가 보이지 않는 비위기상황이 미국에게 훨씬 더 위험하다.
미국도 그런 상황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북이 아무런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은 요즈음 같은 비위기상황에서도 북의 불시개전 가능성을 우려하여 불안에 떨면서 각종 대북전쟁연습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으며, 한국군은 물론 일본자위대까지 끌어들인 3자연합 전쟁체계수립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위기상황에서 불시에 일어날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우려하면서 불안에 떠는 미국이 대북전쟁연습으로 그것을 막으려는 것은 실전을 연습으로 막으려는 것만큼 불가능해 보인다. 북이 ‘조국통일반미대전’을 “폭풍처럼 단숨에” 끝내고 미국의 항복을 받겠다고 공언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6.25전쟁 당시 북은 전쟁을 속결하고 분단 5년이 되는 1950년 8월 15일 통일정부수립을 선포할 계획을 밀고 나갔지만, 7월 4일부터 미국이 방대한 증원무력을 한반도 전선에 투입하자 전쟁속결이 불가능해졌고 통일정부도 구성할 수 없었다. 그런 경험을 겪었던 북은 오늘 전쟁징후가 보이지 않는 비위기상황에서 ‘조국통일반미대전’을 불시에 개전하고 미국의 증원무력이 출발하기도 전에 ‘급소타격’으로 미국의 항복을 받아내어 전쟁을 속결하고,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 8월 15일 통일정부수립을 선포하려는 무력통일계획을 세운 것은 아닐까? 그래서 고요할수록 더욱 전쟁 우려를 금할 수 없는 살얼음 시각을 보내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북미대화와 남북관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단순 위기 무마용 대화가 아닌 근본적으로 북미관계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호전시킬 결단이 절박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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