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말팔매 <4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11년 12월 1일 <연합뉴스>가 "평양 건설현장 공개...대학생 동원 확인"이라는 이상한 제목의 기사 한 편을 실었다. 그 기사는 평양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해설'한 것이다. 그 사진들은 지난 여름 평양에서 진행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고 평양과 지방 명승지를 관광하던 외국인관광단 일원인 미국인 레이 커닝햄(Ray Cunningham)이 2011년 9월 5일 평양에서 길을 가다가 우연히 찍은 것들이다.
지금 평양은 엄청난 건설열기에 휩싸여있으므로, 곳곳의 건설현장들이 외국인관광객의 눈에 띈 것은 당연하다. 레이 커닝햄은 자기가 북측 각지를 관광하는 도중에 찍은 수 백 장 사진들 가운데 특히 평양의 여러 건설현장 주변을 지나면서 찍은 사진 30장을 '2011년 평양 건설(Pyongyang Construction 2011)'이라는 소제목으로 분류하여 사진 전문 웹사이트 '플리커(Flicker)'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그 사진들 가운데는, 맨 앞에 큰 깃발을 들고 평양 시내 어느 아파트 앞길을 행진하는 김책공업종합대학 재학생들의 행진대오를 먼 거리에서 촬영한 것이 있다. 사진을 확대해보면, 붉은 깃발에 "김책공업종합대학 응용화학00대대, 정보과학기술00대대"라고 쓰인 노란색 글씨가 보인다.
레이 커닝햄은 그 사진의 제목을 "일터로 행진하는 김책공대 학생들(Students of Kim Chaek University of Technology march to work)"이라고 붙이고 그 밑에 "그곳 대학교들은 휴교하였는데, 대학생들은 평양의 건설현장에 일하러 가는 것으로 보인다(The universities are dismissed and students can be seen heading to work on the construction sites of Pyongyang)"는 사진설명을 달아놓았다. 그가 행진 중인 대학생들에게 다가가 어디로 가는가고 물어보지 않고, 그냥 자기의 추측을 그렇게 써넣은 것이다.
물론 그의 추측은 빗나갔다. 그 대학생들은 평양의 건설현장에 동원되어 행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의 추측이 틀렸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음의 사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행진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건설현장에 험한 일을 하러 가는 차림새가 전혀 아니다. 그들은 모두 흰 색 상의에 검은 색 바지를 입었다. 여기에 실린 다른 사진을 보면, 그런 옷차림은 그 대학교의 여름 교복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흙먼지 펄펄 날리는 험한 건설현장에 흰색 정복차림으로 노동하러 가는 사람은 없다. 북측에서 건설현장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은 여기에 실은 다른 사진에 나타난 것처럼, 노동복을 입는 게 정상이다.
△ 또 다른 외국인이 찍은 사진. 노동복 차림의 노동자가 평양시내를 걷고 있다. 프랑스인 에릭 라포그(Eric Lafforgue)가 '플리커(Flicker)'에 올린 사진. |
또한 행진 중인 대학생들은 모두 손에 책가방을 들었거나 등에 책가방을 메었으며, 책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으면서 걸어가는 대학생들도 여러 명이 있다. 만일 건설현장에 노동하러 간다면, 무거운 책가방을 왜 가지고 가겠는가.
둘째, 레이 커닝햄이 '플리커'에 실은 여러 장 사진들 가운데는 김책공대 행진대오가 대동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가는 장면을 찍은 것도 있다. 위의 행진대오 사진보다 훨씬 더 먼 거리에서 찍은 이 사진에는 더 긴 대학생 행진대오가 나타나있고, 깃발도 하나 더 보인다. 커닝햄은 이 사진에 "양각다리 위의 노동여단(Work Brigades on Yanggak bridge)"이라는 제목을 달아놓았다. 사진설명은 없다.
△ 미국인 레이 커닝햄이 '플리커(Flicker)'에 올린 사진과 사진 설명 |
그런데 바로 이 사진이 커닝햄의 추측이 틀렸음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왜냐하면 김책공대에서 만수대지구 아파트 건설현장으로 가려면 대동강을 건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동강변에 있는 김책공대에서 대동강을 건너가면 평양의 서부지역에 들어서게 되는데, 김책공대에서 직선거리로 측정하면 만수대지구 아파트 건설현장은 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그러면 사진에 나온 김책공대 행진대오는 대동강 다리를 건너 어디로 가고 있었던 것일까? 그 사진만 봐서는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기 힘들지만, 서평양에 있는 어느 생산현장으로 현장실습을 가는 길이 아니었을까?
셋째, 레이 커닝햄이 '플리커'에 실은 사진들 가운데는 평양에 있는 어떤 건물 신축공사장을 찍은 또 다른 사진 한 장이 들어있다. 이 사진에 그가 달아놓은 제목은 "북코리아 평양의 새 아파트 건설(New Apartment Construction in Pyongyang North Korea)"다.
△ 미국인 레이 커닝햄이 '플리커(Flicker)'에 올린 사진과 사진 설명 |
그 사진을 보면, 붉은 색 글씨로 "결사관철"이라고 쓴 커다란 구호판이 신축 중인 건물 정면에 걸려있고, 여기 저기에 붉은 깃발이 꽂혀있는데, 조금 작은 글씨로 "중국어학부"라고 쓴 글씨판도 보인다. 중국어학부라 했으니, 중국어학부 재학생들이 그 건설공사에 참가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김책공대에는 중국어학부가 없고, 평양외국어대학에 중국어학부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사진에 나온 어떤 건물 신축공사장은 만수대지구 초대형 아파트 공사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골조공사를 지상 6층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보나, 정면에서 바라본 건물 폭이 좁은 것으로 보나, 만수대지구 초대형 아파트가 아니라 어떤 다른 지역의 소형 아파트로 생각된다.
더 결정적인 사실은 그 사진 오른쪽에 류경호텔이 멀리 보인다는 점이다. 평양외국어대학에서 류경호텔까지 직선거리는 남서쪽으로 4.5km이므로, 그 사진은 평양외국어대학 부근에 있는 대학 부속건물 공사현장을 찍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사장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학생들이 자기 대학 부속건물 공사장에 자원봉사하러 나간다면, 하루일과를 마치고 저녁시간에 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진을 촬영한 낮시간에는 그 공사장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틈만 나면 북측을 중상비방하는 <연합뉴스>는 레이 커닝햄이 잘못 추측한 사진 세 장을 가지고 너절한 헛소문을 퍼뜨렸고, 그 헛소문이 다른 언론매체들의 전재보도를 타고 흘러나가 일파만파로 번졌다.
그들이 퍼뜨린 너절한 헛소문에 따르면, 평양에서 진행되는 아파트 10만 세대 건설현장에 "대학생들을 동원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며, "그 동안 공사에 동원된 대학생 가운데 200여 명이 각종 사고로 숨졌다는 얘기가 정통한 대북소식통 등에 의해 전해진 바 있다"는 것이며, "(평양 대학생들의) 부모가 골재를 상납하면 (건설현장) 동원을 면제해준다는 얘기도 있었다"는 것이다.
원래 평양의 대학들이 휴교하고 대학생들을 건설현장에 동원하였다는, 말이 되지 않는 헛소문은, 2011년 7월 5일 <미국의 소리>가 가장 먼저 퍼뜨렸다. <미국의 소리>는 평양의 대학생들이 2011년 6월 27일부터 무려 10개월 동안 건설현장에 동원되고 있다는 헛소문을 날조한 것이다.
900억 달러에 이르는 거창한 아파트 공사가 예정대로 진척되는 것을 보고 밸이 꼴려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라 해도, 이쯤되면 흔히 떠도는 헛소문이 아니라 대북혐오에 중독되어 이제는 아예 이성적 판단기능이 마비된 정신질환자의 헛소리가 아닌가. 통신사나 방송이라는 간판을 달아놓고, 기자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며, 하루가 멀다하고 정신질환자의 헛소리를 보도기사라고 써갈기는 그들의 처지가 참 가련해 보인다.
<로동신문> 2011년 12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자진하여 야간지원돌격대를 결성한 평양의 각계각층 시민들이 자기 직장에서 퇴근한 뒤에 만수대지구 아파트 건설현장을 돕고 있는데, 야간지원돌격대로 건설현장에 달려나간 연인원은 7월부터 10월말까지 10만여 명이나 된다.
2011년 10월 초 평양을 방문한 재미동포 김현환 박사가 쓴 '방북기'에 따르면, 밤 9시쯤 만수대지구 아파트 건설현장에 나가보았더니 평양의 청년들이 저녁마다 건설장에 달려와 야간청년돌격대에 가담하여 건설공사를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김책공대를 비롯한 평양의 각 대학들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 야간청년돌격대에 자진 탄원하여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어떤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닌데, 사회와 집단을 위해 청춘의 열정을 불태우는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어디 없을까? (2011년 12월 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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