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30

세계 3대 친미파쇼독재자의 과거사는 오늘 어떻게 되었을까?

진실의 팔말매 <44>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친미파쇼독재자로 전 세계에 악명이 높았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미국의 배후조종으로 권력을 잡고 반공을 명분으로 파쇼독재를 자행하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리고 그들의 말로가 비참하였다는 공통점도 있다. 세계 3대 친미파쇼독재자에 관한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2011년 10월 12일 필리핀 대통령 베니그노 아키노는 1989년에 사망한 전직 대통령 페르니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1917-1989)의 시신을 필리핀 국립묘지로 이장하려는, 그의 추종자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친미파쇼독재를 자행한 반인륜범죄자다.


△마르코스는 자신의 집권시기였던 1980년 벤퀘트 산간지역에 자신의 콘크리트 흉상을 제작했다. (왼쪽 사진) 그러나 1986년 그가 미국으로 도망가자, 흉상의 얼굴은 지역 주민들에 의해 파괴됐다. (오른쪽 사진)

그의 친미파쇼독재 21년 동안 민주주의를 요구하여 투쟁하던 정치활동가 3,257명이 처형 또는 살해당하였고, 35,000여 명이 고문당하였으며, 70,000여 명이 투옥당하였다. 천추에 용납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반인륜범죄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마르코스는 대권을 쥐고 있었던 시기에 필리핀 국고에서 약 50억 달러를 빼돌려 부정축재한 도둑정치(kleptocracy)의 주범이기도 하다.

1986년에 필리핀 민중들은 항쟁을 일으켜 그를 권좌에서 끌어냈는데, 갈 곳이 없었던 그는 자기가 숭앙하던 미국으로 도망쳤다가 3년 뒤에 미국의 품에서 사망하였다.

1993년 필리핀 정부가 그의 시신을 미국에서 필리핀으로 가져오도록 허용하였는데, 그의 추종자들은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그의 고향마을에 미라로 임시보관하면서 줄곧 국립묘지로 이장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요구는 단호히 거절당하였다. 그처럼 극악무도한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친미파쇼독재자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필리핀의 마르코스만 친미파쇼독재자로 전 세계에 악명이 높았던 게 아니다.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15-2006)도 친미파쇼독재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2011년 8월 18일 '칠레 정치범과 고문에 관한 국가조사위원회'는 피노체트가 친미파쇼독재를 자행하였던 1973년부터 1999년까지 잔혹한 정치탄압을 받은 희생자들 가운데, 납치, 고문, 투옥, 살해, 처형을 당한 9,800여 명의 희생자 명단을 추가로 확인하였다.

피노체트 친미파쇼독재는 칠레의 민주주의를 요구한 정치활동가 40,018명을 살해 또는 처형하였다. 그 가운데 실종자는 3,065명이다. 마르코스와 마찬가지로, 피노체트도 마약밀매와 무기밀매로 부정축재한 도둑정치의 주범이었다.

1998년 10월 17일 피노체트는 신병치료를 위해 머물던 영국 런던에서 전격 체포되었다. 그의 폭압통치기에 칠레에서 고문당한 수많은 희생자들 가운데는 당시 칠레에 체류하던 스페인 국적자 94명이 포함되어 있고, 스페인 국적자 1명은 살해당했다.

그러한 범죄사실을 파악한 스페인 사법당국이 국제체포영장을 영국의 사법당국에게 보내 체포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영국 정부는 그를 재판하는 척하며 시간을 끌다가 국제여론이 잠잠해진 2000년 3월에 칠레로 슬그머니 돌려보냈다.

△가택연금 상태로 말년을 산  피노체트

칠레에서 오랫동안 재판을 받던 그는 2004년 12월 가택연금형에 처해졌고, 2006년 12월 10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있는 육군병원에서 심장마비로 91세에 사망하였다.

칠레 정부는 사망한 그를 위해 국장을 거행하자는 피노체트 추종자들의 요구를 거부하였고, 그의 유해는 산티아고에 있는 가족묘지에 묻혔다. 흉악한 친미파쇼독재자 피노체트는 생전에 가택연금상태에서 장기재판을 받다가 자연사하였지만, 칠레 정부의 과거청산작업은 그의 사망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2009년 9월 2일 칠레 정부는 피노체트 친미파쇼독재 시기에 잔혹한 탄압을 자행하였던 국가정보국 요원 출신자 129명을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2008년 5월 26일에 국가정보국 요원 출신자 100여 명을 체포한 뒤 두 번째로 시행된 사법처리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필리핀의 마르코스, 칠레의 피노체트와 더불어 친미파쇼독재자로 전 세계에 악명이 높았던 사람이 전직 대통령 박정희(1917-1979)다. 그는 미국 육군방첩대(CIC) 한국지부장의 사주를 받아 1961년 5월 16일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정권을 찬탈하였으며,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국이 운영하던 궁정동 안가의 비밀연회장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손에 암살당했다.

그런데 해괴한 것은, 세계 3대 친미파쇼독재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악명이 높았던 박정희의 범죄사실에 대한 사법당국의 법적 규명이 전혀 되지 않았고, 그의 범죄실상마저도 파헤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박정희 친미파쇼독재 18년 동안, 이 땅에서 자행된 구금, 납치, 테러, 살해, 처형은 얼마나 많았으며, 그의 하수인들이 조작한 간첩사건과 자행한 고문사건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남측에서 박정희의 범죄사실을 추적해온 언론인이 폭로한 바에 따르면, 박정희가 부정축재로 남긴 유산만 해도 10조원이 넘는다니, 그도 마르코스와 피노체트와 똑같은 도둑정치의 주범이다.

그런데 통탈할 노릇은, 2005년 12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만들어놓고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결정사항'이나 발표하다가 어물어물 막을 내린 것이다. 과거사를 법적으로 규명하고 청산하여야 마땅한데도, 과거사를 정리하겠다니, 도대체 범죄를 정리한다는 망측한 궤변은 누가 조작해냈을까? 과거사 정리라는 말 자체가 과거사 청산을 포기하였음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처럼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갔으니,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는 기고만장하여 현재사로, 미래사로 연장, 확대되고 있다. 청산되지 않아 기고만장해진 과거사가 어떻게 연장, 확대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필리핀 정부당국의 거부조치에 따라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했고, 칠레의 피노체트도 칠레 정부당국의 거부조치에 따라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했으나, 박정희는 암살당하자 서울에 있는 국립현충원에 버젓이 안장되었다.

더욱이 칠레의 피노체트는 죽기 전에 가택연금상태에서 재판이라도 받았으나, 박정희는 사망 이후에 찬양을 받고 있다. 친미파쇼독재자를 찬양하는 기괴한 정치촌극이 벌어지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데, 참담하게도 이 땅만은 세계적인 예외로 되었다.

△2011년 11월 14일 구미에서 열린 박정희 동상 제막식

2011년 11월 1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이 세워졌고, 같은 날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그의 생가터에서는 7,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박정희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경상북도 구미지역 25개 사회단체들이 '박정희대통령동상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12억원을 들여 대형동상을 세운 것이다.

원래 박정희 반신상은 그가 군사반란을 일으켰던, 지금은 문래공원으로 바뀐, 서울 영등포구 육군 제6관구사령부 자리에 1966년 7월 7일에 이미 세워진 바 있는데, 이제는 반신상도 성에 차지 않아 높이가 8m나 되는 대형동상까지 세운 것이다.

칠레의 친미파쇼독재 청산조치에는 감히 비길 수도 없고, 정치적으로 칠레보다 낙후한 필리핀의 친미파쇼독재 단절노력과도 상치되게 친미파쇼독재자를 찬양하는 이 땅의 정치현실은 너무도 암담하다.

필리핀처럼 친미파쇼독재와는 단절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칠레처럼 친미파쇼독재를 청산해야 하는데도, 이 땅의 추악한 정치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그 무슨 기념도서관이니 동상이니 하는 것들을 세우는가 하면, 이 땅의 국민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박정희 향수병'이라는 환각상태에 빠져있는 것이다.

친미파쇼독재의 추악한 과거를 청산하지 않은 낡아빠진 오늘이 만나는 것은 절망과 불행과 재앙의 내일일 것이다. (2011년 11월 3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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