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7

12년 만에 다시 삽을 든 대학생들

진실의 말팔매 <28>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00년 1월 13일 청년돌격대원들이 손풍금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 '축복하노라'의 경쾌한 선율이 겨울바람 속에 울려퍼졌다. 두 눈을 잃은 신랑이 신부의 손을 꼭 잡고 살얼음 깔린 고속도로 한 복판을 그 노래선율에 맞춰 몇 발자국 걸었다. 그들의 결혼식은 그렇게 끝났다. 인생의 새로운 길에 첫 발을 뗀 그 두 남녀는 평양시 선교구역련대 청년돌격대에 소속된 신랑 황수연과 신부 오경선이다. 그들은 평양과 남포를 잇는 청년영웅도로 건설에 자원해 공사에 참가하였다.

'고난의 행군'이 막바지에 이르러 북측 인민들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었던 그 무렵, 1년 11개월 만에 장장 49km의 고속도로를 청춘남녀 5만 명이 달라붙어 피끓는 열정과 맨주먹으로 낮과 밤을 이어 뚫어나갔다. 고속도로 노반에 깔 자갈을 만들기 위해 바위산을 깨뜨리는 작업현장에서 처녀 돌격대원들은 정을 잡고, 총각 돌격대원들은 쇠망치를 잡았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금속성과 불꽃이 작열하던 그 곳에서 황수연이 내리치는 쇠망치가 오경선이 붙잡은 정을 힘껏 내리칠 때마다 바윗돌이 산산히 부서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부서진 바윗돌 조각이 튀어오르며 황수연의 두 눈을 찔렀다. 그 순간부터 그는 저 푸른 하늘을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되어 공사현장을 떠나야 하였다. 그런데 두 눈을 잃은 그의 곁에 오경선이 찾아왔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처녀는 바로 나예요. 나밖에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요." 시각장애인의 두 눈이 되어 평생을 함께 살기로 결심하며 남긴 그 처녀의 눈물 겨운 고백이었다. 

2001년 평양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도종환 시인이 '창비 웹매거진'에 실은 방문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청년중앙회관에 전시돼 있는 청년영웅도로건설 기록화
 (<로동신문> 2011년 1월 17일 보도사진)
"공연 중에 복도로 나와 거기 전시된 대형기록화들을 보았다. 처음엔 그저 흔한 선전기록화이려니 생각하고 그림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지난 1998년 중반부터 2000년 초까지 일 년 반에 걸쳐 뚫은 평양 남포 간 10차선 고속도로공사의 내용을 담은 기록화였다. 5만 명의 남녀 청년들이 자원하거나 추천을 받아 무보수로 노동해서 완성한 대공사였다. 백화점 여직원을 하다 배낭 하나를 메고 나오거나 건물보수사업소에서 일하다 어머니에게 쪽지편지 한 장을 남기고 나와 착암기를 쥐었다고 한다. 천막생활을 하면서 삽과 곡괭이와 햄머와 마대자루와 질통을 지고 5만 명이 달려들어 산을 평지로 만들고 골짜기를 메우며 다리를 놓는 건설공사, 이들은 마치 전쟁을 치르듯 도로를 닦았다. 기록화 밑에 전시된 공사도구들을 보며 나는 북한의 청년들이 무서웠다. 양쪽이 뭉툭해진 햄머들, 휘어진 정과 날이 사분의 일쯤 닳아 없어진 삽, 수십번을 꿰맨 운동화며 본래의 천보다 덧댄 헝겊이 더 많은 마대자루 이런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들이 공사장에서 죽으면 어머니가 다시 나와 마대자루를 졌고 공사 중에 다쳐 눈을 잃으면 옆에 있던 여자가 당신과 평생 살겠다고 나섰다. 오경선과 황수연이란 남녀가 그렇게 결혼을 했다."

그로부터 어언 10년이 흐른 2011년 5월 22일 평양 중심부에서 대규모 건설공사 착공식이 있었다. 평양을 "세계적인 도시로, 웅장화려한 인민의 도시로 더 잘 꾸리"기 위해 만수대지구에 77층에 이르는 고층아파트단지들, 현대적 건축양식의 공공건물들, 극장과 식당과 상점이 어우러진 문화봉사시설들, 10만 ㎡에 이르는 대형 녹지대를 동시에 건설하는 웅대한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 동안 만경대구역, 락랑구역, 서포구역, 력포구역에서 진행되어오는 평양시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공사는 만수대지구 건설공사에서 최고 수준의 건축양식을 뽐내며 절정에 이르게 될 것이다.

평양 락원거리에 20층 이상 고층아파트들이 건설된 때는 1975년이다. 1980년대에 북측은 30층 이상의 초고층 탑상형 아파트들을 원통형, 병풍형 같은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세웠다. 남측에서는 1990년까지만 해도 성냥갑 같은 일자형 아파트밖에 짓지 못하였다. 42층에서 69층에 이르는 초고층 탑상형 아파트인 삼성 타워팰리스가 서울에 세워진 때는 2002년이다. 아파트 건축양식에서 북측은 남측보다 20년 앞선 것이다.

평양시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장에는 속도전청년돌격대가 아니라 인민군이 동원되었다. 인민군 1개 여단이 한 개 동씩 맡아서 공사를 벌이는 것이다. 청년영웅도로는 1975년 5월 16일에 창설된 속도전청년돌격대가 1년 11개월만에 완공하였지만, 평양시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은 인민군이 3년 동안 건설하고 있다.

평양에 10만 세대 살림집을 건설하는 시공기간은 앞으로 약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시공기간을 약 1년밖에 남기지 않은 막판에 가장 높은 수준의 건설공사역량을 요구하는 방대한 만수대지구 건설을 착공하였으니, 놀라운 일이다.

△만수대지구 건설장에서 살림집기초공사를 진행 중인 인민군 (<로동신문> 2011년 6월 26일 보도사진)

인민군 건설역량은 그토록 짧은 기간에 10만 세대 살림집을 완공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는 1958년부터 내려오는 전통이 있다. 3-4년이 걸러야 한다던 2만 세대 살림집을 불과 1년 만에, 그것도 7,000세대 분의 자재와 노력 만으로 완공한 평양시 건설공사에서 14분 만에 한 세대씩 살림집을 조립하는 놀라운 건설속도를 창조하였던 때는 1958년이었다. 그들의 건설속도는 점점 더 빨라져 1960년대에는 14분이 11분으로 줄었고, 1970년대에는 7분으로 줄었다. 세상을 놀라게 한 '평양속도'로 세워진 것이 평양의 천리마거리, 비파거리, 락원거리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의 반북수구언론들이 평양시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을 헐뜯기 시작했다. 그들이 퍼뜨린 헛소문에 따르면, 그 건설공사가 자재난에 빠져 중도에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북측에서 잘 되는 일이면 무조건 헐뜯기부터 하고 보는 악습이 몸에 밴 반북수구언론들이 그런 식의 헛소문을 날조하여 퍼뜨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들이 퍼뜨리는 헛소문들 가운데 하나가 인력난이다. 평양시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공사가 인력난을 겪자 대학생들까지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6월 28일 일본 <교도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측 당국은 2011년 7월부터 2012년 4월까지 10개월 동안 모든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대학생들을 10만 세대 건설공사에 투입하였다는 것이다.

북측에서는 6.25 전쟁 시기 전선에 탄원하여 나간 대학생들을 다시 불러들여 후방의 임시교사로 보내 학업을 계속하게 하였는데, 전시도 아닌 평시의 건설공사에 휴교령을 내리고 대학생들을 동원하였다니, 아무리 헛소문이라도 그런 헛소문이 또 어디 있을까! 

12년 전 청년영웅도로를 건설하던 당시 청년돌격대가 힘겨운 건설공사를 벌이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들은 평양시 대학생들은 청년돌격대원들이 숙소에서 잠자고 있는 밤중에 남몰래 공사현장에 모여들어 횃불을 들고 야간작업을 벌였다. '도둑공사'는 그렇게 밤마다 계속되었다. 상부에서 시켜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고난의 행군'을 함께 헤쳐가던 그 시기의 청춘남녀라면 누구나 나누어 맡아야 할 공동책임으로 여긴 것이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오늘, 북측 언론보도는 거의 날마다 평양시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현장을 보도하고 있다. 청년영웅도로가 완공된 때로부터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 동안 북측의 건설현장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삽과 곡괭이와 쇠망치로 땅을 파고 산을 허물던 공사장에서는 락원기계련합기업소에서 생산한 유압식 굴삭기(excavator)와 만능삽차(wheel loader)들이 동음을 울리고, 마대자루와 질통을 지고 달리던 공사장에서는 승리자동차공장에서 생산한 대형 덤프차들과 금성뜨락또르공장에서 생산한 평토기(bulldozer)들이 달리고 있다.

이처럼 건설장비는 바뀌었어도 바뀌지 않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정신이다. 청년영웅도로 건설장에서 밤마다 '도둑공사'를 벌이며 청년돌격대원들의 건설전투를 지원했던 바로 그 협동정신이 평양의 대학생들을 또 다시 불러일으켰다.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장에 밤마다 무리 지어 나타나는 대학생들의 손에 횃불과 삽과 곡괭이가 쥐어져 있다. 12년 전 그들의 선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2011년 7월 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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